씨네feel2021-11-23 22:26:03
아름답고 처연한 몸짓 <무녀도>
운명을 넘실넘실 타고 흐르는 섬세한 작화와 웅장한 뮤지컬 넘버
[각본/감독: 안재훈 | 목소리 출연: 소냐, 김다현, 장원영, 안정아, 달시 파켓 외 | 제작: 연필로 명상하기 | 배급: ㈜씨네필운 | 러닝타임: 85분 | 개봉: 2021년 11월 24일]
1982 년 노벨문학상 후보에도 오른 바 있는 한국문학의 거목 김동리의 대표 단편소설 [무녀도](1936)는 그동안 1972 년 개봉해 제 18 회 아태영화제 기획상, 인기여우상 수상의 영예를 얻은 실사영화와 다수의 드라마, 한국 록밴드 전설 ‘산울림’의 노래, 뮤지컬 등 다양하게 변주되며 세기가 변해도 많은 사람들로부터 회자되며 사랑받아온 불멸의 콘텐츠다. 안재훈 감독이 한국 단편문학 마지막 프로젝트로 선택한 단편소설 [무녀도]가 이번에는 주인공 무녀 ‘모화’의 한을 음악과 작화로 표현되어 뮤지컬 애니메이션이라는 새로운 장르로 다시 피어난다.
<무녀도>는 한 가족의 운명적인 갈등을 그리면서도 시대적 모순에 부딪힌 주체적인 존재 무녀 ‘모화’의 이야기를 중심으로 다룬 입체적인 여성 서사 애니메이션이다. 김동리 작가의 원작 [무녀도]는 여성 중심 서사가 드물었던 1920~30 년대 소설 중 여성 주인공을 통해 이야기하는 특별한 소설이다. 주인공인 ‘모화’는 샤머니즘을 섬기는 직업 종교인 무녀로, 모든 여성들이 시기하면서도 남성들이 허투루 대하지 못한 근대 전문직 여성이다. 마을에서 이름난 무녀 ‘모화’는 원인 모를 병환을 굿을 통해 해결하려고 하지만 영험이 점점 사라지는 것을 느끼며 마을 사람들로부터 그의 능력을 의심받는다. 영화는 이 대목에서 기독교라는 새로운 종교가 조선에 등장하면서 한국 전통문화와 외래 문물의 대립이 시작된다. 그리고 이를 통해 직업의 사멸에 대한 이야기에 집중한다. 무녀 인생을 건 ‘모화’의 마지막 굿판을 담은 엔딩은 시대의 흐름 때문에 사멸해가는 직업을 마감하는 ‘모화’의 모습으로 여운을 안기며 압도적인 카타르시스를 선사한다.
현역 뮤지컬 배우인 소냐, 김다현 등 실력파 배우들의 절절한 목소리로 귀를 사로잡는 소울풀한 음악은 영화에 신비감을 더한다. 굿과 소리, 춤사위, 구음, 수묵화 같은 전통과 뮤지컬 장르라는 현대적 요소가 공존하는 독특한 스타일의 작품은 뮤지컬 애니메이션이라는 실험적인 태도가 돋보인다. <무녀도>는 애니메이션과 뮤지컬, 두 개의 시나리오로 완성됐다. 노래하듯 대화하는 신, 뮤지컬 앙상블 신, 뮤지컬 안무를 공들인 연출 등 애니메이션뿐 아니라 뮤지컬 팬들에게도 공연을 보듯 확실한 재미를 준다. 굿판에 뮤지컬적인 화법을 넣어 관객들에게 듣는 재미를 선사하는 영화는 뮤지컬 판타지 신을 통해 훨씬 부드러운 방식으로 무속의 세계를 관객에게 전달한다. 장면마다 어울리는 소울풀한 음악과 앙상블 등 실제 뮤지컬을 보는 듯한 만의 세계관은 스크린을 통해 만나볼 수 있다.
<무녀도>는 애니메이션인만큼 작화에 대한 이야기를 빼놓을 수 없다. '모화'가 안개 낀 숲에서 흰 천 옷을 입고 춤을 추는 강렬한 롱테이크 오프닝 씬은 압도적인 스케일과 정서적 울림으로 표현됐다. 또한 원인 모를 병으로 아파하는 환자를 치유하는 굿을 하고 칼로 악귀를 쫓는 행위와 집안에 액운이 있을 때는 작두를 타며 굿을 하는 등의 원시적인 굿판은 에서 무녀 ‘모화’의 질곡의 삶과 응축된 한이 발현되는 다양한 정서의 퍼포먼스로 완성됐다. 철저한 고증과 자료조사, 심혈을 기울인 그림에서의 디테일이 있었기에 가능한 장면들이다. 영화의 제작을 맡은 연필로 명상하기 스튜디오는 모든 것이 디지털로 바뀌는 시대에 종이와 연필로 작업을 이어가는 보기 드문 곳으로 알려져 있다. 그래서 그림에서 느껴지는 정성과 아날로그적 감성이 관객들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애니메이션계의 칸이라고 불리우는 안시국제애니메이션영화제에서 심사위원 특별상을 수상한 우리 애니메이션 <무녀도>는 우리나라도 애니메이션 영화를 이만큼이나 빼어나게 만들 수 있다는 저력을 확인시켜주는 작품이다. 아름답고 처연한 '모화'의 마지막 굿판에서 울려퍼지는 노래는 이 걸출한 애니메이션 영화가 꼭 극장에서 보여져야 하는 이유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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