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작가2022-01-20 13:18:16
영원히 행복하게 살았더래요
넷플릭스 [판의 미로] 초간단 3분 리뷰
줄거리
만삭의 엄마와 숲 속으로 들어가는 오필리아.
먼 길을 힘겹게 달려왔건만, 새아버지는 자신들을 딱히 반기지 않는다.
책 읽기를 좋아하는 오필리아는 숲 속 미로에서 자신을 '판'이라 소개하는 요정을 만난다.
판은 그녀를 '모안나'라고 부르며 오필리아가 원래는 지하왕국의 공주라고 말한다.
오필리아가 살던 곳으로 돌아가기 위해서는 세 가지 임무를 수행해야 한다며, 예언의 책을 건네는데...
시청포인트
1. 마냥 아름답고 달콤한 판타지가 아닌 다크 판타지
2. 점점 오필리아에게 동화되는 자신을 발견
3. 여운 짙은 마지막 장면
전체 평점
★★★★★(5.0 / 5.0)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유명한 '그 장면'을 우연히 접하고 영화가 궁금해져서 보게 되었다. 이런저런 해석을 해보려고 했지만, 슬쩍 검색만 해봐도 어마어마한 분량의 분석들이 쏟아져 나오는 터라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다. 게다가 이 영화는 뜯어내서 일일이 분석하고 싶지 않을 만큼 매혹적이었다. 그야말로 '멍 때리고' 본 영화. 내게 정말 좋은 영화란 말을 길게 하지 않아도 되는 영화다. 혹은 숨이 턱 막혀 말이 나오지 않거나. 두고두고 보고 싶을 만큼 애절하면서도 아름다운 영화였다.
이 글은 내가 영화 속 내용을 진실 혹은 오필리아의 상상, 어떤 것으로 보고 있는지에 대해 이야기할 뿐이다. 어차피 이 영화의 핵심은 그 부분이 아니던가. 역사적 사실이나 정치적 견해가 아니라 말이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까지 '희망이 있겠거니'하는 마음으로 지켜보았지만, 암울한 결말에 울컥할 수밖에 없었다. 차라리 영화 내용이 모두 진실이라면 좋겠지만,
나로서는 오필리아의 상상이라고밖에 받아들여지지 않기 때문이다.
역사적 사실과 결부시키지 않고 표면만 보아도 이해가 된다. 연이은 부모의 죽음과 계부의 학대, 불안정한 주변 환경, 누구에게도 관심받거나 사랑받지 못한 채 방치된 아이. 오필리아는 책 속 아름다운 세상처럼 자신이 상상 속에서 만들어낸 지하왕국에서만 비로소 행복해질 수 있다.
현실에서 충분히 만족했더라면 구태여 판이 내미는 선택의 책을 받아 들 필요가 있었을까? 지금 현실세계에서 행복하게 살면 그만이다.
더불어 자신을 '공주'라고 생각한다는 점에서도 맞아떨어진다. 아름다운 드레스를 입었을 때 사람들은 오필리아를 보고 좋아하지만, 진흙투성이가 된 오필리아를 보고는 그녀의 어머니조차 화를 낸다. 굳이 자신의 외관이나 행동을 꾸미지 않아도,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바라봐주는 이는 없다. 어린 소녀는 자신의 자아를 방어하기 위해 스스로를 '기억을 잃은 공주'로 설정한 것이다.
보통 우리는 사람이 죽었을 때, '좋은 곳으로 갔을 것'이란 말을 하곤 한다.
그러나 오필리아가 피를 흘리며 쓰러진 후, 황금빛 드레스를 입고 지하왕국의 부모님 앞에 서 있는 장면에서 아이러니하게도 눈물이 났다. 어린아이는 자신이 감내할 수 없는 고통과 슬픔을 승화시켜 아름답고 황홀한 세계를 만들어왔던 것이다. 달빛만이 오필리아를 비추는 장면에 비해 지하왕국은 너무도 휘황찬란해서 확연한 슬픔을 자아낸다.
차가운 돌바닥에 쓰러진 작은 소녀에게는 이승에 남아 있을만한 그 어떤 이유조차 없다. 그나마 삶을 버티게 해 주었던 가족마저도 자신보다 앞서 저승에 갔기 때문. 오필리아에겐 차라리 죽음을 맞이하는 것이 고달픈 현실을 애써 살아가는 것보다 훨씬 나은 선택이었을지도 모르겠다. 그마저도 본인이 선택하지 않았다는 것이 애달플 뿐이지만.
오필리아가 죽은 후라도 자신이 원하는 '어느 거짓과 고통도 없는' 곳으로 가서 모안나 공주로 영원히 행복하길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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