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ABBITGUMI2022-02-27 22:01:43
작은 욕망이 파멸에 이르기까지
-<나이트메어 앨리>(2022)
누구나 욕망이 있다. 그 욕망은 사람에 대한 것일 수도 있고, 어떤 물건이나 지위에 관한 것일 수도 있다. ‘욕망’의 사전적 의미는 부족함을 느껴 무엇을 가지거나 누리고자 하는 마음이다. 실현하고 싶어 하는 ‘꿈’과는 엄연히 다르다. 삶에서 부족한 무언가는 계속 생길 수밖에 없다. 태어나면서부터 먹을 것에 대한 욕망이 생기고 자라나면서 장난감을 비롯한 다양한 것을 욕망한다. 그것은 일종의 본능 같은 것이다. 대부분은 그 욕망을 채우기 위해 무언가를 하고, 노력을 기울이게 된다. 그건 인간의 일생에서 끊임없이 이어지며 때론 괴롭게 하고 또 황홀하게 하기도 한다.
모든 것이 그렇듯, 욕망을 채우는데도 넘지 말아야 할 선이 분명히 존재한다. 어떤 것을 탐하다가 그것이 채워진 순간, 그 황홀한 기분에 도취되기 쉽다. 그런 성취감은 점점 그 욕망에 집착하게 만들고 더욱 크고 완벽한 것을 취하게 만든다. 그래서 보이지 않는 금기의 선을 쉽게 넘게 된다. 한 번 선을 넘으면 다시 이전으로 돌아가기는 어렵다. 그저 계속 앞으로만, 욕망에만 이끌려 가게 된다. 사실 주변에서도 그렇게 몰락하는 여러 사람들을 볼 수 있다. 그만큼 욕망은 삶을 이끌어가는 동력이 되지만, 자칫 잘못하면 파멸로 이끄는 독약처럼 위험하기도 하다.
한 남자의 욕망의 변화를 따라가는 영화
영화 <나이트메어 앨리>는 주인공 스탠튼(브래들리 쿠퍼)이 자신의 욕망을 찾아가는 과정을 담는다. 스탠튼은 영화 초반 아버지로 보이는 시체를 집에 묻고 불을 낸다. 그만의 장례식처럼 보이는 그 장면에는 어떤 설명도 없다. 영화는 그저 그가 하는 행동을 보여주고 그가 향하는 길을 따라간다. 그리고 그가 우연히 만나게 된 유랑극단을 만나 그곳에서 일하게 된다. 그는 다양한 인물을 만나게 되는데, 특히나 그곳에서 만난 독심술사 지나(토니 콜렛)와 그의 남편 피트(데이비드 스트라탄)는 스탠튼에게 그들의 독심술을 조금씩 알려주게 된다.
독심술은 상대의 생각이나 감정을 알아내는 것이다. 어쩌면 스탠튼은 상대가 어떤 사람인지를 알고자 하는 욕망을 이미 가지고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지나를 만나기 전까지 스탠튼의 모습은 큰 욕망 없는 떠돌이처럼 보였지만 그가 독심술을 접하고 나서 그는 자신만의 계획을 만들어간다. 그 이후부터 주도적으로 자신만의 무언가를 만들어가려 애쓴다. 극단에서 만난 몰리(루니 마라)에게 대시를 하고, 그에게 도시로 가서 자신들만의 공연을 하자고 제안하는 등, 스탠튼은 조금씩 대담하게 자신만의 삶을 만들어간다.
영화에는 스탠튼의 과거에 대해서는 자세히 등장하지 않는다. 과거를 미스터리로 두면서 스탠튼이 변화해가는 모습을 보여주게 되는데, 극단을 떠난 이후 몇 년이 지난 모습을 보여주는 후반부는 그의 욕망이 극단으로 치닫는 모습이 이어진다. 실제로 그는 독심술에 뛰어난 재능이 있었고, 그것을 이용해 심령술까지 영역을 넓히게 된다. 아주 작은 심리 술로 시작한 그의 욕망은 독심술로 사람들을 사로잡고, 그것을 발전시킨 심령술을 이용해 사회에 영향력 있는 사람들에게까지 영향력을 뻗친다.
심리학자 릴리스를 만나면서 더욱 욕망에 집착하는 스탠튼
후반부에는 심리학자인 릴리스(케이트 블란쳇)를 등장시킨다. 스탠튼 역시 다른 사람의 심리를 파악하는데 재능이 있지만 릴리스는 스탠튼의 심리뿐만 아니라 그가 가진 욕망까지 투영해보게 된다. 사실 이 두 사람이 만난 그 순간은 스탠튼이 가진 욕망의 선이었다. 스탠튼이 그 선을 넘는지 넘지 않는지는 그가 릴리스를 계속 만나는지 아닌지로 알 수 있게 구성되어 있다. 그것을 아주 극명하게 보여주는 것이 스탠튼이 술을 거부하다 처음 마신 순간이다. 그 이후 스탠튼은 욕망의 선을 완전히 넘어버린다.
릴리스의 이미지는 무척 고급스럽고 화려하다. 스탠튼이 이전에 만난 어떤 인물보다 화려한 느낌을 가진 인물이다. 그래서 영화 속에서 두 인물이 만날 때, 스탠튼의 욕망이 더욱 도드라져 보인다. 스탠튼과 같이 살고 있는 몰리는 사실 그의 욕망을 어느 정도 조절하게 만든 인물이다. 하지만 릴리스는 그가 가진 화려함 때문인지, 스탠튼의 욕망을 강하게 자극시켜 파국으로 이끈다.
영화 초반, 유랑극단에는 이상한 기인이 등장한다. 그 기인은 극단 주인(윌렘 데포)이 어디선가 데려온 술주정뱅이였다. 주인이 술과 마약을 미끼로 데려온 기인은 술을 얻기 위해 주인의 말에 따라 이상한 공연을 하게 된다. 기인은 공연에서 살아있는 닭을 물어뜯고 이상한 공연을 관객에게 보여준다. 기인이 갇혀있는 곳에서 그를 만난 스탠튼은 기인이 하는 혼잣말을 듣는다. “이건 내가 아니야. 난 이렇지 않았어”. 스탠튼은 그 말을 그냥 듣고 흘리지만, 그 말은 결국 스탠튼에게 다시 돌아간다. 영화 속의 그 기인과 관련된 이야기는 수미쌍관처럼 영화의 앞과 뒤에 비슷한 장면이 배치되어 있다. 그래서 영화의 이야기가 완전히 끝나고 나면 그 처음과 끝의 장면들을 곰곰이 떠올릴 수밖에 없다.
아름답고 화려한 파멸의 이야기를 담은 감독 기예르모 델 토로
영화에는 소소하고 직접적이지만 아기자기한 유랑극단의 모습이 아름답게 담겨있고, 후반부 스탠튼과 몰리가 고급스러운 무대에서 벌이는 공연도 화려하게 담겨있다. 마치 스탠튼의 욕망이 계속 크고 화려하게 변하는 것처럼 작은 불꽃에서 시작되는 영화는 그 규모와 색감을 넓혀간다. 그러다 파멸의 순간 다시 회색빛이 영화의 중심이 된다. 이렇게 영화의 색감과 분위기, 음악은 이야기에 더욱 몰입하게 만든다.
<나이트메어 앨리>는 윌리엄 린지 그레샴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한 영화다. 1947년에 한 번 영화화된 적이 있지만 이번 기예르모 델 토로 감독이 연출한 2022년작은 영화판의 리메이크라기보단 원작 소설을 바탕으로 다시 재구성된 영화라고 할 수 있다. 기예르모 델 토로의 과거 영화들과 달리 괴물 같은 존재가 나오지 않지만 한 남자의 욕망이 괴물처럼 무섭게 변해가는 과정을 고급스러운 화면과 분위기로 담았다.
이 영화는 스탠튼 역을 맡은 브래들리 쿠퍼의 연기가 돋보이는 영화다. 그저 아버지에 대한 분노를 가진 남자가 자신만의 욕망을 가지게 되고, 결국 파멸까지 이르는 과정을 보여주는데, 브래들리 쿠퍼는 원초적인 욕망을 가진 인물에서 넘지 말아야 할 선까지 넘으면서까지 욕망으로 거칠게 달려가는 인물을 섬세하게 표현하고 있다. 케이트 블란쳇이나 루니 마라, 토니 콜렛 같은 좋은 배우들의 연기도 좋지만 이 영화는 브래들리 쿠퍼의 영화라고 불러도 이상하지 않다.
*영화의 스틸컷은 [다음 영화]에서 가져왔으며, 저작권은 영화사에 있습니다.
[간단한 리뷰가 포함된 movielog를 제 유튜브 채널에서도 보실 수 있습니다. :)
주로 말 위주로 전달되기 때문에 라디오처럼 들어주셔도 좋을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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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트메어 앨리>
https://www.youtube.com/watch?v=KFUGkN-bfXc
Relative cont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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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작인지 자작인지 뭣이 중헌디
조금도 의심할 여지없이 이름마저도 '응 네가 생각하는 그거 맞아, 나 영국 출신!' 이렇게 얘기하는 것만 같은 넷플릭스의 <브리저튼>. 19세기 영국판 <가십걸>이라고 해서 시대극이나 사극을 좋아하는 편이라 가볍게 보기 시작했다. 그전에 <에밀리, 파리에 가다>와 <루팡>을 보고 넷플릭스에 대한 신뢰도가 높아져있었던 상황이기도 했다. 실제로 전 세계적으로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다고 한다. 그리고 나 포함 모두들 시즌 2가 얼른 다시 돌아오기를 오매불망 기다리고 있다.
시즌 1의 여덟 편을 보는 내내, 나는 브리저튼 집안 8남매 중 다섯째인 엘로이즈의 마음이었던 것 같다. 재미있게 보면서도 아래와 같은 의문들이 지속적으로 떠올랐다.
'도대체 왜 저렇게까지 결혼에 목숨을 걸어야 하지?'
'왜 남자들은 저렇게 하고 싶은 거 다 하면서 사는데 여자들은 못하지?'
언니인 다프네가 런던 사교계에 데뷔하여 좋은 신랑감을 찾기 위해 가면을 쓰고, 하고 싶지 않은 일들도 참아내는 것을 보며 엘로이즈는 언니처럼 잘할 수 있을지 걱정도 앞서고, 결혼보다는 본인이 좋아하는 공부와 글쓰기를 계속하고 싶은 마음뿐이다.
시대가 시대이고 고증을 착실히 한 작품인지라 어쩔 수 없겠지만, (근데 그래 놓고 왜 굳이 다인종으로 캐스팅했는지는 잘 이해가 안되기는 함) 수많은 무도회에서 여자들은 춤을 신청하는 카드를 받아야지만 남자들과 춤을 출 수 있다. 남자들만 선택권을 가지고 있고 여자들은 선택받기를 기다려야 한다. 아, 물론 남자들에게 '어서 나에게 춤추자고 신청해!' 압박을 넣을 수는 있다. 그리고 남자들이 관심 있는 여성에게 구애하기 위해 집으로 찾아가는 장면들이 나오는데 마찬가지로 남자들만 여자의 집에 방문할 뿐, 여자들이 먼저 발을 떼는 장면은 눈을 씻고 봐도 찾아볼 수가 없다.
이런 장면들은 특정 문화나 관습, 풍습이 후대까지 굉장히 길게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다시 한번 생각하게 해 줬다. 다른 나라는 어떨지 모르겠지만, 내 주변은 아직까지도 여자들이 먼저 고백을 하거나 프러포즈를 하는 것에 대해서 위의 관점에서 해석을 한다. 여자가 먼저 말을 꺼낼 만큼 매력이 없다거나, 혹은 멋지다거나라는 식으로 평가를 한다. 그 기저에는 아무래도 호감의 표시나 프러포즈는 남자가 먼저 하는 것이라는 전제가 깔려있다. 이런 생각들이 혹시 인간의 유전자에 박혀있어서 절대 빼낼 수 없는 건가 싶을 정도이다.
결국 우리의 1등 신붓감 다프네는 왕족 다음으로 높다는 공작의 부인이 된다. 조건만 최고인 게 아니라 둘은 서로를 열렬히 사랑하기까지 하니 일단 다프네의 결혼은 성공한 듯 보인다. 계속 보다 보니 당시 귀족 여성들이 왜 그렇게 결혼에 목을 매었는지 알 것 같기도 했다. 그녀들은 돈을 벌어 생계를 유지할 수 있는 직업을 가지지 않는다. 그녀들은 단지 공작부인 혹은 자작부인, 이렇게 누군가의 부인으로 불릴 뿐이다. 쓰고 보니 '취집'과 비슷하게 느껴진다. 하지만 당시의 시대 배경을 생각하니 앞서 가졌던 의문들이 '그럴 수도 있겠다'라는 정도로 정리가 되었다. 실제 그 시대에 영국에서 살며 <제인 에어>를 쓴 샬럿 브론테와 그녀의 자매들도 처음에 편견 때문에 남성 이름의 필명을 써서 책을 출간했을 정도라고 하니 그 당시의 시대상이 어느 정도 짐작이 간다. 그녀들을 정상 참작해주자.
우리나라는 은장도가 있을 정도로 여성이 순결이나 정조를 지키는 것은 굉장히 중요한 가치처럼 여겨졌다. 나는 이게 유교문화에서 파생된 것인 줄 알았는데, 의외로 영국 귀족 사교계에서도 떠받들어지는 가치였다. 미혼 여성들은 정원에 남자와 단 둘이 있기만 해도 스캔들에 휩싸여 혼사길 막힐 걱정을 해야 한다. 이 외에도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집안의 가장은 엄마가 아닌 첫째 아들인 점, 귀족 여성들의 생계와 삶의 질은 남편에게 달려있다는 점, 혼전임신이 굉장한 흠으로 여겨지는 점 등 여러 가지들이 내가 지금 사는 세상과 크게 달라 보이지 않았다. 앞서 말한 관습이나 풍습이 19세기와 21세기, 영국과 한국이라는 시대와 국경을 초월할 정도로 강력한 힘을 가진 듯하다. 좋다 나쁘다 혹은 옳다 그르다를 떠나서, 이렇게 시대와 국경을 초월해서 다 비슷한 걸 보면 사람 사는 게 다 똑같다는 말이 틀린 말이 아닌가 싶기도 하고.
마지막에 다프네는 본인을 괴롭혔던 가면을 벗고, '척'하지 않고 살기로 한다. 진실되게 행복한 삶을 살기 위해서는 본인이 쓴 가면을 벗어야 한다는 것을 깨닫는다. 다프네는 물론 결혼과 출산을 인생의 과업으로 여기지만, 나름 주먹도 날릴 줄 아는 여성이었다. 내 남편이 공작인지 자작인지보다 중요한 건, 내 삶을 어떻게 살아야 행복할 수 있을까를 고민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 지점에서 다프네에게는 본인의 부모님처럼 아이들을 낳고 잘 기르면서 화목한 가정을 만드는 것이 행복해지는 길이었던 것이다. 반대로 엘로이즈는 피아노와 자수를 배우는 대신, 공부를 하고 글을 쓰고 싶어한다. 이 고민에는 정답이 없으니 다프네와 엘로이즈처럼 자신만의 해답을 찾아가면 그뿐이다. 내 해답도 찾아가고 있는 중! 가볍게 볼 수 있는 로맨스인 줄만 알았는데, 보고 나니 의외로 생각할 거리를 많이 던져준 작품이었다. 얼른 시즌2가 나오길!
* 본 콘텐츠는 브런치 윤캔두 님의 자료를 받아 씨네랩 팀이 업로드 한 글입니다.
원 게시글은 아래 출처 링크를 통해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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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꼿꼿한 송혜교, 날아오른 임지연
* <더 글로리 파트1>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
더 글로리 파트1 (2022)
감독: 안길호
극본: 김은숙
출연: 송혜교, 이도현, 임지연, 염혜란, 정성일, 박성훈, 차주영, 김히어라, 김건우 등
방영횟수: 8부작
장르: 범죄, 드라마
공개일: 2022.12.30
재벌 2세 후계자와 불우한 여고생의 사랑, 신부의 운명을 갖고 태어난 소녀와 신적인 존재의 운명 같은 사랑, 갑자기 영혼이 뒤바뀐 스턴트맨과 기업 오너의 티격태격 로맨스, 목숨을 뛰어넘은 의사와 군인의 비현실적인 러브 스토리. 내가 지금껏 보아왔던 ‘김은숙’ 작가의 드라마는 줄곧 이런 이야기들이었다. 언제나 남자 주인공과 여자 주인공의 사랑 이야기를 써 왔고, 클리셰 범벅인 구조를 말의 맛을 살린 대사로 매력적으로 구현하는 능력이 탁월했다. 작품의 개연성이나 완성도와는 별개로 거의 모든 작품들이 흥행에 성공한 것을 보면, ‘김은숙’ 작가의 작품이 재미 하나만큼은 충분히 보장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순정만화 같은 오그라드는 대사나 고루한 캐릭터 설정, 판타지 못지않은 비현실적인 전개 때문에 눈살을 찌푸린 적이 적지는 않지만 그럼에도 내가 ‘김은숙’ 작가의 작품을 빼놓지 않고 보는 이유는 여러 단점에도 불구하고 극을 보게 만드는 확실한 재미가 있기 때문일 것이다. 작가 역시 대성공을 거둔 이후에도 스스로의 역량에 안주하려 하지 않았고, <미스터 션샤인>을 통해 새로운 장르를 시도하며 도전에 성공한 것은 물론, 작품성 면에서도 호평을 받는 성장의 면모를 보이기도 했다.
<미스터 션샤인>은 ‘김은숙’ 작가가 틀에 박힌 로맨틱 코미디 드라마만 쓸 수 있다는 편견을 깨부쉈지만 가장 최근작인 <더 킹: 영원의 군주>는 스타 작가 반열에 오른 후 단 한 번도 실패를 겪지 않았던 그에게 처음으로 뼈 아픈 작품이 되었다. <도깨비>와 <상속자들>로 이미 그와 함께 영광을 누린 적 있던 톱스타 ‘이민호’와 ‘김고은’을 기용했음에도 화제성을 확보하지 못했고, 특히 극본에 대한 혹평이 자자했다.
한 번의 쓰디쓴 패착은 ‘김은숙’ 작가를 각성시켰다. 주특기인 로맨틱 코미디 장르를 버리고 처음으로 장르물을 택한 그는 ‘학교폭력’을 소재로 독한 복수심을 품은 주인공의 이야기로 돌아왔다. 역사적인 의미에서의 교훈과 인물들 간의 절절한 로맨스를 통해 희로애락을 느끼게 해주었던 <미스터 션샤인>으로 한 번의 반전을 일으켰던 것처럼 다시 한 번 스스로의 필력을 쇄신하는데 도전을 한 셈이었다. <태양의 후예>로 쌍방에게 영광을 안겨주었던 ‘송혜교’를 다시 한 번 캐스팅 했고, ‘이도현’, ‘염혜란’, ‘임지연’, ‘박성훈’ 등 드라마와 영화를 오가며 연기력을 인정 받은 배우들과 막강한 한 팀을 꾸렸다.
‘김은숙’ 작가가 처음으로 시도한 피카레스크 장르물 <더 글로리>는 그의 장단점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개인적으로 인물들 간에 주고받는 티키타카와 언어유희를 활용한 대사, 그리고 극 자체의 재미는 국내에서 ‘김은숙’ 작가를 따라올 사람이 거의 없다고 생각하는데, 새로운 장르를 시도했음에도 작가 특유의 장점은 그대로 묻어난다. <더 글로리>가 작품성 면에서 대단한 호평을 받고 있는 것은 아니지만, 넷플릭스 흥행 1위를 기록한 것은 물론 온갖 커뮤니티에서 드라마에 대한 언급이 수도 없이 이어지고 있는 것을 보면 술술 읽히는, 김은숙의 재밌는 각본은 이번에도 통했다는 방증이다. 본격적인 사건들의 실마리가 풀리기 직전인 8화를 기준으로 드라마를 두 파트로 나눈 것도 영리한 판단이었다. 8화까지 정주행을 빠르게 마친 시청자들은 3월까지 목이 빠져라 다음 파트를 기대할 수밖에 없게 되었으니.
작품의 재미와는 별개로 완성도 면에서 비판을 받는 부분은 복수극을 대하는 작가의 태도가 너무나 순진하다는 것이다. <더 글로리>는 복수 하는 자와 당하는 자의 팽팽한 긴장감을 끌고 가야 하는 작품임에도 불구하고 ‘동은(송혜교)’의 계획이 술술 풀리기만 하고, ‘연진(임지연)’과 그의 친구들은 맥 없이 당하기만 해서 긴장감이 상대적으로 떨어진다는 것이다. 평면적인 캐릭터 또한 지적되고 있는데, 피해자인 ‘동은’과 가해자인 ‘연진’ 무리가 분명한 선악 구도를 형성하면서 가해자들에게 일말의 동정의 여지나, 개별적인 서사를 부여하지 않았고 재력과 사회적 명성을 갖췄음에도 ‘동은’의 복수에 전혀 대응하지 못하는 모습만을 나열했다는 것이다. 악인들의 무능함이 부각되다 보니 ‘동은’의 계획이 상대적으로 쉽게 실행되는 것처럼 보이고, 복수의 전면에 나서는 일이 많지 않아 쾌감 또한 부족하다는 것이다.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이와 같은 비판점이 이해가 되기는 하지만 깊게 공감이 되지는 않는다. 피해자인 ‘동은’이 17년간 품고 살았던 복수의 칼날을 가감 없이 펼쳐 나가는 전개만으로도 카타르시스는 충분하다. 애초에 가해자들의 무능함을 떠나 20대와 30대를 바쳐 치밀한 계획을 세운 ‘동은’을 당해내지 못하는 것은 당연하다. 오로지 복수 하나만을 바라보며 묵묵히 달려온 ‘동은’이 가해자들을 말려 죽이고자 마련한 수는 한둘이 아닐 것이고, 따라서 ‘동은’의 복수가 다른 어떤 것으로부터 방해 받지 않고 착착 이뤄지는 것은 개연성을 해치지 않는 전개일 것이다. 무엇보다 ‘연진’과 ‘재준’은 피해자인 ‘동은’을 제대로 기억조차 하지 못할 정도의 인간말종들이다. 이들은 십 수 년 전, 동급생에게 평생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주었으면서도 죄책감을 전혀 느끼지 못했으며 17년만에 재회한 ‘동은’은 그들에게 여전히 쉽게 무시할 수 있는 존재다. 따라서 ‘동은’이 복수심을 갖고 제멋대로 날뛴다 한들 그들에게 어떠한 영향도 미치지 못할 것이라 생각했을 것이기에 함께 힘을 합쳐 ‘동은’에게 맞서기는커녕 그룹 내에서의 분열만 일으킨 것이다. 8화의 엔딩 장면에서 ‘연진’이 ‘동은’이 살아온 흔적과 복수심의 크기를 비로소 알게 되었으니, 가해자들이 전력을 다해 ‘동은’과 싸우는 것은 아마 2부의 핵심적인 스토리가 될 것이다. 따라서 1부만을 두고 관습적인 설정을 지적하는 것은 시기상조라고 생각한다.
<더 글로리>가 복수극으로서의 쾌감은 물론 목표를 갖고 전력질주하는 주인공의 행동에서 재미를 느낄 수 있는 이유는 배우들의 신들린 연기력에 있다. 특히 주특기인 멜로 드라마 속 예쁜 캐릭터를 벗어나 남은 것은 독기 뿐인 학교폭력 피해자 ‘동은’으로 분한 ‘송혜교’는 연기 변신에 대한 꿈을 제대로 성취했다. 생명력을 완전히 잃은 듯한 눈빛, 복수심과 설움이 서려 있는 메마른 표정으로 극을 이끌어가는 힘은 차분하면서도 단단하다. 특히 냉정을 잃지 않겠다는 차가움 속에서도 슬픔이 엿보이는 표정들은 ‘동은’이 오랜 세월 얼마나 고된 시간을 견뎌 왔는지를 조금이나마 짐작케 한다.
‘송혜교’가 묵직하게 극의 무게중심을 잡아준 덕분에 악역을 맡은 배우들에게는 제대로 놀 수 있는 판이 깔아졌다. 데뷔 10년만에 첫 악역에 도전한 ‘임지연’은 극중 가장 눈부신 연기 성장을 보여준다. 그동안 왜 단 한 번도 악역을 맡지 않았는지 납득이 가지 않을 정도로 악에 받힌 캐릭터를 자신만의 색깔로 완벽하게 해석하여 대중에게 매력적인 캐릭터로 보이게끔 만들었다. 캐릭터를 연기한 배우마저 욕을 먹을 수도 있는 희대의 악인을 맡았음에도 ‘임지연’에 대한 호평이 연신 이어지는 것은 배우의 연기력이 그만큼 훌륭했기 때문이라는 의미일 것이다. 귓가에 톡톡 쏘는 카랑카랑한 목소리와 감정 변화에 따라 자유자재로 뒤바뀌는 표정, 그리고 분노를 표출하는 장면에서의 위압감은 작중 최고의 연기력이었다고 봐도 무방하다. 과거 그가 출연한 작품들을 보며 연기를 잘하는 배우라고 생각해 본 적이 한 번도 없었는데, 이제서야 나도 그에 대해 오랫동안 갖고 있던 편견을 깰 수 있게 되었다.
복수극은 장르 특성상 강렬함을 선보이는 악역 캐릭터를 맡은 배우들이 조명 받기 쉬운데, 이를 감안하더라도 악역을 소화한 배우들의 연기력은 대체로 뛰어나다. 특히 적은 분량이지만 ‘연진’의 어린 시절을 연기한 ‘신예은’은 잔인한 학교폭력의 주동자가 되어 얼굴을 갈아 끼웠다는 표현이 떠오를 정도로 소름 돋는 연기를 선보여 극 초반부에 큰 임팩트를 남겼다. ‘임지연’이 첫 악역으로 커리어 최고의 연기를 남긴 것처럼 ‘신예은’도 처음으로 선역을 벗어나 배우로서의 존재감을 각인시키는 데 성공했다.
그릇된 신앙심과 폭력 사이에서 모순을 일삼는 마약 중독자 ‘이사라’로 분한 ‘김히어라’는 걸쭉한 욕설과 약쟁이 특유의 초점 없는 눈빛으로 강렬한 인상을 남겼고, 재력을 갖춘 가해자들과 달리 이리 붙었다 저리 붙었다 하며 자존심을 굽히고 근근이 살아가는 ‘최혜정’을 연기한 ‘차주영’은 주요 빌런들 중 가장 입체적인 연기를 선보여 배우의 존재감을 각인시켰다. 주말극 도련님 캐릭터를 완전히 떨쳐낸 ‘박성훈’, 외모적으로 가장 큰 폭의 변신을 시도한 ‘김건우’까지 하나같이 악으로 똘똘 뭉친 캐릭터를 연기함에도 불구하고, 배우들의 매력적인 해석이 더해져 시청자들로 하여금 단순히 욕 하면서 보는 것을 넘어 해당 캐릭터를 연기하는 배우들에게 매료되게끔 만든다.
배우들의 명연기로 인해 <더 글로리>는 하나의 성공적인 캐릭터 쇼가 되어 SNS에서 화제가 되고 있지만, ‘학교폭력’이라는 무거운 사회 문제를 다루고 있는 만큼 극에 내재된 주제의식에 좀 더 집중해 볼 필요가 있다. 본작에는 학생들이 안전을 보장받아야 할 학교라는 공간의 사각지대에서 암암리에 벌어지고 있는 잔혹한 학교폭력을 고발하고자 하는 기획의도가 담겨있을 것이며 피해자의 이야기를 통해 학교폭력의 잔혹성과 심각성에 대한 경종을 울리려는 목적에서 출발했을 것이다. 작가가 작품을 만들면서 가장 중시 여겼던 부분이 ‘나는 아무 잘못이 없어’라는 기조를 ‘동은’이 잃지 않는 것이었으므로 당해 마땅한 피해자는 아무도 없으며, 가해자와 방관자들이 얼마나 악한 존재인지를 보여주는데 초점을 두었을 것이다.
1화를 보고 시청자들의 의견이 분분했다. 뜨거운 고데기로 ‘동은’의 신체를 지지는 잔인한 학교폭력 장면이 너무 자극적이면서도 보기 괴로울 정도로 적나라하게 표현되었다는 것이다. 이는 작품을 감상하는 피해자들에게 트라우마를 안겨줄 수도 있고, 단순히 작품의 재미를 위해 폭력적인 장면을 플래시백으로 여러 차례 활용했다는 점에서 주제의식을 작품 흥행에 이용한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연출 방식에 문제가 있었을 지는 몰라도 고데기 학폭 사건은 어디까지나 실화를 바탕으로 쓰인 소재이며 실제 현장에서 벌어지는 학교폭력의 수위에 비하면 새발의 피에 불과하다. <더 글로리> 관련 영상 클립에서 댓글로 ‘김은숙’ 작가에게 학교폭력의 실태를 고발하는 작품을 만들어줘서 감사하다는 댓글을 단 학폭 피해자가 적지 않은 것을 보면, <더 글로리>의 학교폭력 연출 방식이 완전히 잘못되었다고 말할 수는 없을 것 같다. 실제 학교폭력을 겪어보지 않은 사람이라면, 끔찍한 폭력의 현장을 온전히 마주하여 한 사회의 일원으로서 학교폭력 문제에 관심을 가질 수 있어야 한다고 본다. 특히 극중 피해자에게 그 누구도 도움을 주지 않는 시스템에 속한 교사, 학생, 학부모들은 학교폭력과 절대적으로 무관할 수 없는 대상인만큼 구조화된 폭력이 얼마나 끔찍한 결과를 초래할 수 있는지 느끼도록 만드는 게 중요할 것이다. 만일 <더 글로리>를 보며 불편함을 느끼는 ‘연진’과 ‘재준’ 같은 사람들이 몇 명이라도 존재한다면, 적어도 작품의 기획의도가 실패했다고 볼 수는 없을 것 같다. 물론 피해자를 기억조차 못하고, 본인이 가해자였던 사실조차 잊은 채 이 드라마를 그저 재밌게 보고 있는 가해자라면 ‘동은’의 표현을 빌려 한 마디 전해주고 싶다. ‘천천히 말라 죽어 보자. 사는 동안은 지옥일 테니까.’
- 씨네랩 크리에이터 popofil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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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집중하게 만드는 '비호감' 스릴러
비호감 캐릭터들로 처음부터 끝까지 집중하게 만드는 스릴러 영화가 등장했다. 캐릭터들의 하드캐리가 돋보이는 작품인 '그녀가 죽었다'가 그 주인공.
'그녀가 죽었다'는 훔쳐보는 게 취미인 공인중개사 구정태(변요한)가 관찰하던 SNS 인플루언서 한소라(신혜선)의 죽음을 목격하고 살인자의 누명을 벗기 위해 한소라의 주변을 뒤지며 펼쳐지는 미스터리 추적 스릴러다. 신예 감독인 김세휘가 메가폰을 잡았고, 변요한과 신혜선이 영화 '하루' 이후 7년 만에 재회했다.
이 영화를 이끄는 두 캐릭터 구정태와 한소라가 매우 독특하다. 관음 혹은 염탐하는 게 취미(구정태)이고, SNS로 소통하는 인플루언서이다 보니 관종의 삶(한소라) 그 자체다. 다른 작품에서는 주로 빌런으로 나올 법한 비호감, 비정상적인 설정인데, '그녀가 죽었다'에선 메인 롤을 맡았다는 게 이색적이다.
작품명에서 알 수 있듯이, 여주인공이 초반에 죽는다. 그녀의 죽음 뒤에 담긴 비밀과 반전이 하나 둘 드러나기 때문에 제목만 봐선 쉽사리 예측되지 않는다. 전반부는 구정태가 관음, 염탐을 합리화하는 내레이션과 함께 스토리를 전개한다. 그러면서 구정태가 자신을 둘러싼 관종들과 부딪치고 불협화음을 내는 과정이 더해지면서 극적 긴장감을 높인다.
후반부에는 한소라가 관종력을 최대치로 끌어올리게 된 비밀을 공개한다. 그 또한 내레이션과 함께 이야기를 전하는데, 구정태와는 다른 방식으로 몰입도를 높인다는 점이다. 중반부터 서사가 서서히 헐거워지면서 개연성에 의문이 생겨도 크게 느끼지 못한 것도 캐릭터성 덕분이다.
두 주연 변요한과 신혜선은 누가 누가 연기를 더 잘하나 연기 대결을 펼친다. 변요한은 비호감 그 자체인 구정태를 친근한 이웃 같이 접근해 관객들 사이에 스며들게 만드는 영리함으로 자신의 내공을 뽐낸다. 자신의 취미생활을 즐기는 모습부터 사건으로 인해 오열하고 공포에 휩싸이는 등 다양한 얼굴로 스크린을 채운다.
신혜선은 '그녀가 죽었다'가 그의 필모그래피에 제대로 된 터닝포인트가 될 전망이다. 후반부 한소라 중심의 스토리가 전개되면서 드러내는 연기는 그동안 다른 작품에서 볼 수 없었던 얼굴이었다. 스포일러라서 자세하게 이야기할 수 없지만, 신혜선의 아우라는 매우 강력하다.
스릴러로서 역할은 충분하나, 후반부로 갈수록 사건의 임팩트가 조금씩 힘이 빠지고 급하게 마무리되는 등 작위적인 면은 아쉽다. 하지만 앞서 설명했듯이, 이 단점을 캐릭터가 커버하고 있으니 충분히 즐길 수 있을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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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월 셋째 주 극장 개봉 & 예정작
박성웅이 1인 7역을 소화한 <필사의 추격>이 오는 21일 개봉합니다.
할아버지 역할을 위해 무려 5시간에 걸쳐 분장을 했다고 하는데요.
또한 곽시양의 5년 만의 스크린 복귀작이자, 윤경호의 광둥어 연기가 돋보이는 작품으로,
영화 속 다채로운 볼거리를 예고했습니다.
필사의 추격
The Desperate Chase
개요: 코미디, 액션 | 한국 | 109분
감독: 김재훈
주연: 박성웅, 곽시양, 윤경호, 정유진, 박효주
개봉: 2024.08.21.
배급: TCO㈜더콘텐츠온
줄거리
완벽한 변장술로 형사들을 크게 뺑이 치게 만들어 빅뺑이라 불리는 사기꾼 김인해, 말보다 주먹이 빠른 분노조절장애 형사 조수광, 피도 눈물도 없는 보스 주린팡까지 각기 다른 이유로 제주도에서 운명적으로 조우한 세 사람! 도망칠 곳 없는 제주에 발을 디딘 그들의 쫓고 쫓기는 대환장 추격이 시작된다!
늘봄가든
SPRING GARDEN
개요: 공포, 스릴러 | 한국 | 90분
감독: 구태진
주연: 조윤희, 김주령
개봉: 2024.08.21.
배급: ㈜바이포엠스튜디오
줄거리
대한민국 3대 흉가 곤지암 정신병원, 경북 영덕횟집, 그리고... 늘봄가든
소희는 언니 혜란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남편의 유일한 유산인 한적한 시골의 저택 ‘늘봄가든’으로 이사를 간다.
그곳을 방문한 후 그들은 이유를 알 수 없는 기이하고 섬뜩한 일들을 겪게 되는데… 당장 그 집에서 나와! 늘봄가든 괴담의 실체를 밝힐 진짜 공포가 시작된다!
영웅: 라이브 인 시네마
HERO: LIVE IN CINEMA
개요: 드라마, 액션, 뮤지컬, 공연실황 | 한국 | 159분
감독: 박재석
주연: 정성화, 정재은, 김도형
개봉: 2024.08.21.
배급: (주)위즈온센, 메가박스중앙㈜
줄거리
1909년, 대한제국은 일본에 주권을 빼앗길 위기에 처했다. 대한제국 의병 참모 중장 안중근과 그의 동지들은 단지 동맹으로써 독립운동에 결의를 다지고 명성 황후의 궁녀 설희 또한 독립운동에 동참한다. 1909년 10월 26일 하얼빈 역 일본 내각총리대신 이토 히로부미가 한일병합의 야망을 품고 하얼빈 역에 발을 내딛자 총성이 울려 퍼진다.
대한제국 의병 참모 중장 안중근, 세 아이의 아버지이자 믿음직한 남편이었던 안중근은 민족과 독립을 위해 이토 히로부미를 처단했다. 1910년 3월 26일 뤼순 감옥 안중근은 대한제국 의병군 참모중장의 자격으로 조국을 빼앗은 적국의 수장 이토 히로부미를 처단한 전쟁 포로라고 주장하지만, 일본 법정은 안중근을 국제법을 위반한 테러리스트라고 판결하며 사형에 처한다.
극장판 블루 록 -에피소드 나기-
Blue Lock The Movie -Episode Nagi-
개요: 애니메이션 | 일본 | 89분
감독: 이시카와 슌스케
더빙: 시마자키 노부나가, 우치다 유우마, 오키츠 카즈유키
개봉: 2024.08.21.
배급: CJ CGV
줄거리
“귀찮아”가 말버릇인 고등학교 2학년, ‘나기 세이시로’는 하루하루를 무기력하게 살고 있었다. 축구로 전 세계 제패를 꿈꾸는 동급생 ‘미카게 레오’가 그의 재능을 찾아내기 전까지는. ‘레오’의 권유로 축구를 시작하게 된 ‘나기’는 압도적인 축구 센스를 발휘하고 어느 날, 그들에게 ‘블루 록’ 프로젝트 초대장이 도착한다. 그곳에서 ‘이사기 요이치’, ‘바치라 메구루’, ‘이토시 린’ 등, 전국에서 선별된 스트라이커들이 기다리고 있는데… 세계 최고의 스트라이커가 되기 위한 꿈의 도전이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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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삶의 존재에 대해 생각해보게 만드는 '태어나길 잘했어'
주인공 '춘희'는 본래 손에 땀이 많은 다한증이라는 질병을 앓고 있는 인물입니다.
심한 다한증으로 인하여 집에서 걷기만 해도 바닥에 땀이 다 묻어 닦어야 할 정도로 곤람함을 많이 겪고 있었습니다.
부모님이 돌아가셔서 외숙모네 집에서 할머니와 함께 같이 살고 있는데,
아무래도 눈치 보이고 다한증으로 인해서도 집 안에서 눈치를 보고 있는 인물이라 딱한 마음이 들었죠.
춘희는 그렇게 외숙모네 집, 좁은 다락방에서 지내게 됩니다.
이 모습은 현재의 춘희 모습인데요.
여전히 외숙모네 집에서 생활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이제는 그 집에서 거의 혼자 지내는 것처럼 살다시피 하지만요.
춘희는 현재 마늘을 까는 아르바이트를 하며 다한증을 수술하기 위한 돈을 벌고 있습니다.
손에 땀이 많은 것이 스트레스이자 콤플렉스였던 춘희는
과거 학창 시절 때 불에 손을 댈 정도로 힘들어합니다.
결국엔 손에 화상으로 인해 상처를 입으며 살게 되었죠.
그러던 어느 날, 평소와 다를 바 없이 많은 양의 마늘을 손질하여 까고
외삼촌네 식당으로 가져가 일당을 받으며 터널을 지나가고 있는데
갑작스러운 번개에 의해 피하지 못하고 전류로 인해 쓰러집니다.
이때 !
영화 속 등장하는 터널이라는 공간은 상당수의 큰 의미를 차지하고 있는 공간이라고 생각해요.
터널이라는 공간 속에서 모든 일이 일어나고, 이곳에서 주인공들의 감정도 엿볼 수 있는 전체적인 분위기를 가지고 있거든요.
암튼, 춘희는 번개를 맞은 일로 인해 과거 학창시절 때의 나 자신을 종종 만나게 되는 굉장히 특이한 상황을 맞닥뜨리게 됩니다.
처음에는 이런 자신이 믿기지 않아 학창시절의 나의 모습을 발견하고 간혹 놀라긴 하지만,
점차 시간이 흐를수록 세상 둘밖에 없는 절친처럼 마음을 공유하게 됩니다.
위 장면은 현재의 내가 과거의 나에게 화상입은 손을 보여주며 얘기하고 있는 장면인데요.
현재의 '나'가
"어? 너는 손에 상처가 없네?"
하며 과거의 나에게 말했던 말이 떠오릅니다.
사실 맨 처음엔 춘희가 터널을 지나가다가 갑작스럽게 번개를 맞는 연출을 보고 좀 부자연스러우면서도 '장르가 바뀌는 건가?' 하는 생각이 잠깐 들기도 했는데, '과거의 춘희와 현재의 춘희를 만나게 해주며 살아가는 삶에 대해 고찰해주는 계기를 만들어주는 하나의 과정이었구나.' 하는 깨달음을 얻게 된 것 같아 왜 그렇게 연출했는지 이해가 가더라고요.
그래서 저는 이 장면을 하나의 명장면으로 뽑고 싶습니다.
이 사건이 일어나기 전과 후의 모습이 조금씩 달라지니까요.
더불어, 학창시절 때의 춘희와 현재 모습의 춘희를 자연스럽고 매끄럽게 연결한 점에서 연출적인 부분에서 큰 감명을 받았던 것 같습니다.
너무나도 자연스러워서 이게 과거의 일인지 현재의 일인지 모를 정도로 처음에는 약간의 혼란이 있었을 정도니까요.
과거의 모습과 현재의 모습을 대비시켜서 주인공 춘희가 여태 살아왔던 인생의 과정을 자세하게 이해할 수 있게 되었고,
그로 인해 어떠한 삶을 살아왔고 어떠한 마음의 변화를 겪어 왔으며 지내왔는지 등의 속사정을 대중의 입장에서 원활하게, 진지하게 알 수 있었기 때문이죠.
과거 나 자신과 마주치게 되고 진솔한 이야기를 서로 나누면서 삶의 의미를 찾아가며,
다시 한번 진정으로 나 자신에 대해 이해하고 알아가는 뜻 깊은 시간이 되지 않았나 싶습니다.
춘희도, 우리 모두에게도.
그래서인지 더욱 더 마음 속 깊은 울림이 남아있습니다. 아직도.
그리고 저는 개인적으로 영화 속 등장하는 사촌오빠의 대사 한 마디, 한 마디에 가슴 속 어딘가를 쿡 찌르는 듯한 느낌을 받아서 꽤 오랜 시간 사촌 오빠의 말을 곱씹었습니다.
어쩌면 그냥 흘러가는 말일 수도 있고, 영화를 보면 이 말이 순식간에 지나가서 캐치하기 어려울 수도 있겠지만
저에게는 그 말들이 너무 크게 와닿았습니다.
"살아줘서 고맙다."
극 중 사촌오빠는 춘희에게 이런 말을 건네는데요.
제가 이 말에 꽃혔던 이유는 아마도 누군가에게 '살아줘서 고맙다'는 말을 가장 듣고 싶기 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 말을 사촌 오빠가 해줘서 더 여운이 남습니다. 나에게 해주는 말 같았거든요.
알게 모르게 잘 지내는 듯 싶지만, 속으로는 그렇지 않았나 봅니다. 저도.
'살아있어주는 것만으로도 누군가는 나에게 고마움을 느낄 수 있구나.' 하는 느낌을 받을 수 있게 해준 대목이 아닐까 싶습니다.
또 영화 중반 쯤에 사촌 오빠는 춘희에게 이렇게 물어봅니다.
"너를 가장 행복하게 하는 게 뭐야?"
이 부분에서 살짝 뜨끔했습니다..ㅎㅎ
오히려 나에게 물어봤죠.
날 가장 행복하게 하는 게 무엇인지.
이 말은 참 쉬워보이면서도 대답하기 참 어려운 질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왜 이렇게 정곡을 찌르시는지요...
여러분은 여러분을 가장 행복하게 해주는 게 무엇인가요?
'태어나길 잘했어' 영화는 대중들에게 이렇게 나 자신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는 주제를 끊임없이 던져주고, 그 안에서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 또한 함께 전달해주고 있어서 속이 깊은 영화라고 생각합니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와서!
춘희는 우연히 '주황'이라는 한 남자와 새로운 인연을 맺게 됩니다.
주황은 어렸을 적 부모님의 가정폭력으로 인한 후유증으로 말을 심하게 더듬는 습관을 가지고 있는데요.
이 둘은 무언가의 끌림에 의해 서로 자주 들여다보게 되고, 주황의 적극적인 구애로 춘희의 마음을 조금씩 열리게 하여 사로잡습니다.
주황의 등장으로 인하여 한층 무겁기만 했던 영화의 공기가 조금은 유쾌하게 풀어져서 더 매력적인 영화로 거듭난 느낌이었습니다.
그만큼 주황이라는 캐릭터가 말로 형용할 수 없을 만큼 매력적이라는 의미이죠!
덕분에 같이 영화보고 있던 사람들도 주황만 나왔다 하면 환히 웃으며 그에 맞게 같이 즐기면서 봤던 기억이 나네요.
그동안 홀로 외롭게 지내왔던 춘희는 주황을 만나 함께 하는 기쁨을 알게 되고 하루하루 웃으면서 지낼 수 있게 됩니다.
그러던 어느 날, 춘희는 주황에게 이런 질문을 건넵니다.
"주황씨는 어렸을 때의 나를 만나면 어떨 것 같아요?"
이에 주황은 "저는.. 어렸을 때의 저에게 부모님께 맞지만 말고.. 맞서 싸우라고 하고 싶어요..!"와 같은 뉘앙스로 답합니다.
여러분은 어떨 것 같나요?
저라면 어느 상황이 닥쳐와도 흔들리지 않게 자존감 좀 높이고 단단해지는 마음 훈련을 하라고 건넬 것 같네요.
그리고
그리고 춘희는
"제가 춘희씨 지켜드릴게요."
라는 말을 주황이 할 때마다
"주황씨, 사람 지켜준다고 하는 거 쉽게 말해선 안 되는 거예요."
라는 말을 하며 약간의 방어적인 태세를 취합니다.
상처가 많은 춘희는 자신을 보호하기 위한 마음으로 이런 말을 주황에게 수십 번씩 건넵니다.
더 이상은 상처받기 싫은 거죠.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춘희는 주황에게 헤어짐을 뜻하는 인사말을 건넵니다.
"우리 그만 만나요. 저 자신에게 너무 지친 것 같아요."
와 같은 뉘앙스로 말입니다.
춘희는 이렇듯 주황에게 인사말을 할 때도 역시 배경은 터널이였는데요.
터널이 주는 공간적인 의미가 무엇일지 다시금 생각해보게 만듭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춘희가 학창시절 때부터 성인이 된 지금까지 살아왔던 집이라는 공간에 대해 이야기할까 하는데요.
학창 시절엔 사촌 가족들과 함께 지냈지만 춘희가 성인이 되었을 때는 거의 혼자 지내다시피 그 공간을 사용하게 되었는데요.
이 집이 이제는 부동산에게로 넘어가고,
춘희는 예전에 자신에게 이 집을 넘겨주겠다는 약속을 받았는데 그렇지 못한 상황이 되어서 한 마디를 건네죠.
"그 집 제가 지켰어요."
저의 개인적인 생각으로,
'그 집 제가 지켰어요.'라는 말은 이중적인 의미로 자신을 향한 말로도 성립이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어렸을 때의 외롭고 지친 나를 온전히 지킨 건 나 자신밖에 없었다고 말이죠.
이 영화에 대한 소감을 한 마디로 정리하자면 이럴 것 같아요.
[잔잔하게 흘러가는 듯 싶다가도 그 안에 담긴 따뜻한 메시지가 너무 강렬한 나머지 눈을 뗄 수 조차 없게 만드는 영화이다.]
여러분도 이 영화를 보시고
'아, 태어나길 잘했구나.'하는 마음이 드시길 바랍니다.
<내가 가장 눈여겨 봤던 점!>
1. '터널'이라는 공간적 의미가 나타내는 게 무엇일지.
2. 과거의 춘희와 현재의 춘희를 대비시킴으로써 어떤 메시지를 전달하고자 하고 있는지.
*씨네랩 크리에이터로서 참석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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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른을 위한 애니메이션 영화 모음
안녕하세요! 영화/OTT 콘텐츠 큐레이션 웹 매거진 '씨네랩'입니다.
어느새 완연한 봄날씨가 찾아왔는데요, 주말에는 비도 오고 기온도 떨어진다고 하니 감기 들지 않게 조심하셔야겠습니다.
바쁜 한 주의 끄트머리, 오늘도 씨네랩은 여러분의 주말을 책임질 재미있는 영화추천과 함께 돌아왔습니다!
애들은 가라! 오늘은 어른들을 위한 애니메이션 영화 일곱 편을 소개해드리려고 해요.
색감천재로 불리는 웨스 앤더슨 감독의 스톱모션 애니메이션 영화 <개들의 섬>부터
여러 할리우드 영화 연출에 영향을 끼친 콘 사토시 감독의 <퍼펙트 블루>까지!
다양한 소재와 독특한 분위기를 자랑하는 국내외 애니메이션 영화들을 지금 바로 만나보실까요?
개들의 섬(2018)
Isle of Dogs
ⓒ 네이버 영화
감독: 웨스 앤더슨
출연: 브라이언 크랜스톤, 코유 랜킨, 에드워드 노튼, 빌 머레이, 틸다 스윈튼 등
장르: 모험, 코미디
등급: 12세 관람가
러닝타임: 101분
인류를 위협하는 개 독감이 퍼지자, 세상의 모든 개들은 쓰레기 섬으로 추방되고, 자신이 사랑하던 개를 잃은 소년은 개를 찾아 홀로 섬으로 떠난다. 소년은 그곳에서 다섯 마리의 특별한 개들을 만나게 되고, 함께 사라진 개를 찾아가는 그들 앞에 기상천외한 모험이 펼쳐지는데… 개를 사랑한 소년, 소년을 사랑한 개 남다른 개들의 색다른 어드벤처가 시작된다!
걘 겨우 12살이니까.
우린 애들을 좋아하잖아.
ⓒ 네이버 영화
영화 <개들의 섬>은 할리우드 최고의 비주얼리스트인 웨스 앤더슨 감독의 두 번째 스톱모션 애니메이션 영화입니다. '견류 독감'의 영향으로 전국의 모든 개들을 쓰레기 섬으로 추방시킨 근미래의 일본을 배경으로 했으며, 2018년 베를린 국제 영화제 개막작 및 경쟁 부문에 초청되어 은곰상을 수상한 작품입니다. 전주국제영화제에서는 폐막작으로 선정되기도 했었는데요, 영화는 사랑하는 개 '스파츠'를 찾아 나선 소년 '아타리'와 그를 돕는 다섯 마리의 개들을 주인공으로 했으며 독창적인 컬러감과 구도로 전 세계 관객들의 마음을 사로잡아 왔던 웨스 앤더슨 감독이기에 개봉 전부터 많은 관심을 받았던 작품입니다.
웨스 앤더슨 감독의 영화답게 <개들의 섬>은 디테일에 있어서 엄청난 놀라움을 자아내는데요, 캐릭터들의 표정과 움직임, 배경 하나하나까지 놓치지 않는 정교한 작업을 위해 3년이 넘는 기간이 소요되었다고 합니다. 러닝타임 101분을 위해 무려 144,000개의 스틸을 이어 붙였으며, 1초에 24 프레임을 구현하는 기존 스톱모션 애니메이션의 'on ones' 기법과 달리 움직임이 다소 딱딱하고 불온전한 느낌의 'on twos' 기법으로 독특한 분위기를 만들어냈다고 하네요. 초밥을 만드는 장면 하나에 15주가 소요되었다고 하니 얼마나 심혈을 기울였는지 알 수 있는 부분입니다. 비주얼적인 부분뿐만 아니라 입체적인 캐릭터, 따뜻하면서도 감독 특유의 블랙 유머가 적절히 섞여 들어간 스토리텔링 또한 이 영화의 큰 매력입니다. 인간과 개의 교감을 섬세하게 다뤄 애견인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법한 가슴 찡한 이야기들이 담겨 있어요. 웨스 앤더슨을 좋아하신다면 그의 또 다른 스톱모션 애니메이션 영화인 <판타스틱 미스터 폭스> 또한 추천드립니다.
퍼펙트 블루(1997)
Perfect Blue
ⓒ 네이버 영화
감독: 곤 사토시
출연: 이와오 준코, 마츠모토 리카, 치즈 신파치, 오쿠라 마사아키 등
장르: 미스터리, 스릴러
등급: 청소년 관람불가
러닝타임: 81분
절정의 인기를 누리고는 있지만 내리막길만 남아 있는 일본의 소녀 아이돌 그룹 ‘참’의 리더 격인 미마. 롱런을 위해 에이전시로부터 배우로의 전업을 권유받고 그룹을 탈퇴한다. 광적인 팬의 위협도 위협이지만 핑크빛 공주 의상을 입는 자신에 익숙했던 그녀에겐 갑자기 강간신을 찍는 성인 연기자로서의 자신을 받아들이는 것이 더 힘겨운 일. 시골에서 올라온 자연인으로서의 그녀가 진짜 그녀일까? 아니면 아이돌 스타로서의 그녀가 진짜 그녀일까? 혹은 누드사진을 찍는 그녀가 진짜일까?
1초 전의 자신과 지금의 자신이 어째서 동일인이란 걸 안다고 생각해?
단지 기억의 연속성. 그것 만에 기대어
우리들은 일관된 자기 동일성이라는 환상을 만들어 내고 있어.
ⓒ 네이버 영화
영화 <퍼펙트 블루>는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한 곤 사토시 감독의 1997년작 애니메이션 영화입니다. 곤 사토시의 극장용 장편 애니메이션 감독 데뷔작이기도 한데요, 아이돌 그룹 '참'의 멤버였던 '미마'가 아이돌 그룹을 탈퇴하고 배우로서 경력을 시작하며 벌어지는 사건들이 가상과 현실의 경계를 무너트리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감독의 말에 따르면 어차피 저예산 영화였기 때문에 동화(動畵)를 많이 쓸 수 없으니 움직임이 아닌 미술과 연출로 승부를 걸자고 생각했다고 하며, 결과적으로 작화와 연출 면에서 지금까지도 명작으로 거론되는 작품이 되어 애니메이션에서 연출의 힘이 얼마나 중요한 지를 보여준 사례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후에도 감독은 '상상과 일상의 융합'이라는 테마를 반복적으로 사용, 다양한 명작을 많이 배출해 냈습니다.
최근 대런 애러노프스키 감독의 영화 <더 웨일>이 개봉을 했는데요, 애러노프스키가 일본 애니메이션의 팬인 것은 공공연한 사실입니다만 그중에서도 특히 <퍼펙트 블루>를 종종 오마주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의 영화들 중 <레퀴엠 포 어 드림>, <블랙 스완> 등에서 <퍼펙트 블루>와 거의 유사하게 연출된 장면들을 찾아볼 수 있으며, 2001년에는 대런 애러노프스키 감독이 <퍼펙트 블루>의 리메이크 판권을 사려다 결렬되었다는 소식이 전해지기도 했답니다.
파프리카(2007)
Paprik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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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 곤 사토시
출연: 하야시바라 메구미, 후루야 토루, 야마데라 코이치 등
장르: 미스터리, SF
등급: 15세 관람가
러닝타임: 90분
29살의 정신과 치료사 치바 아츠코에게는 또 하나의 자아가 있다. 바로 18살의 대담무쌍한 꿈 탐정 파프리카이다. 파프리카는 사람들의 꿈속에 들어가 그들의 무의식에 동조함으로써 환자의 불안과 신경증의 원인을 밝혀내고 치료한다. 어느 날, 치바의 연구소에서 개발 중이던 혁명적인 정신치료장치 DC-MINI의 프로토타입이 도난당하고 조수마저 실종된다. 장치를 찾아 나선 치바는 무서운 음모가 진행되고 있음을 알게 된다.
- 왜 내 말을 안 듣는 거지? 파프리카는 내 분신이잖아.
- 아츠코가 내 분신이라는 발상은 못 하나 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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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파프리카>는 위에서 소개해드린 <퍼펙트 블루>를 만들기도 했던 곤 사토시 감독의 유작입니다. 이 작품의 제작 이후 감독은 췌장암이 발병해 투병 생활을 하다 2010년 사망해 많은 팬들의 안타까움을 샀는데요, <파프리카> 역시 <퍼펙트 블루>와 마찬가지로 동명의 소설을 원작으로 하고 있습니다. <파프리카>의 원작자이자 <시간을 달리는 소녀>의 원작자이기도 한 츠츠이 야스타카 본인이 해당 작품을 사토시가 영화화해 주길 원했으며, 원작 소설보다 더 확장된 상상력과 감독의 독창적인 연출력이 더해져 완성도 높은 작품이 나올 수 있었습니다.
영화는 이중인격의 인물, 악몽에 시달리는 현대인, 꿈의 영역까지 도달한 과학, 현실과 꿈의 뒤섞임 등 많은 것을 다루고 있는데요, SF와 미스터리, 스릴러와 액션 등 다양한 장르의 믹스에 여느 영화 못지않은 탄탄한 구조와 감독 특유의 탁월한 작화가 돋보이는 매력적인 작품입니다. 물리적 경계가 없는 매체인 애니메이션의 매력을 최대치로 끌어올린 영화로, 화려한 색채와 독특한 화면구성이 관객의 혼을 쏙 빼놓기에 충분합니다. 앞서 <퍼펙트 블루>를 오마주한 대런 애러노프스키 감독의 영화들을 언급드렸었데요,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인셉션>과 <파프리카>의 기초 설정 및 장면들의 유사성 또한 영화팬들 사이에 꾸준히 회자되는 이야기랍니다.
기예르모 델토로의 피노키오(2022)
Pinocchi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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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 기예르모 델 토로
출연: 이완 맥그리거, 크리스토프 왈츠, 틸다 스윈튼, 케이트 블란쳇 등
장르: 뮤지컬, 애니메이션
등급: 전체 관람가
러닝타임: 117분
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은 목각 인형 피노키오의 마법 같은 모험. 오스카 수상 감독 기예르모 델토로의 손에서 고전 동화가 새롭게 재탄생했다. 생명을 얻은 목각 인형의 이야기가 놀라운 스톱모션 뮤지컬로 스크린에 펼쳐진다. 현실의 한계를 뛰어넘어, 새 생명을 불어넣는 강력한 사랑의 힘이 펼쳐진다.
삶이 귀하고 의미 있는 건
그 삶이 짧기 때문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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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예르모 델토로의 피노키오>는 <판의 미로>, <셰이프 오브 워터: 사랑의 모양> 등을 연출했던 기예르모 델 토로 감독의 스톱 모션 애니메이션 영화입니다. 넷플릭스를 통해 공개되었으며, 스트리밍에 앞서 사전 공개되었던 평론가들을 대상으로 압도적인 호평을 기록하기도 했습니다. 원작 동화 피노키오의 맥락을 그대로 유지하면서도 지극히 현실적인 소재인 '전쟁'과의 연결고리가 자연스러워 감독만의 새로운 버전의 피노키오가 탄생했다는 점이 큰 호응을 얻었는데요, 영화 곳곳에 심어 둔 사회적인 풍자와 은유적인 메시지, 원작의 가장 중요한 요소인 인생의 교훈과 소중함이 버무려져 마냥 아름답지만 않으면서도 따뜻한 작품이라는 평입니다.
감독의 전작들을 보신 분들이라면 아시겠지만 기예르모 델 토로는 본래 몽환적이고 기괴한 분위기가 판타지적 세계관에 녹아들어 뛰어난 연출력을 선보이는 감독입니다. 피노키오를 만들면서도 행복한 분위기보다는 기괴하고 음울한 분위기를 주로 보여주고 싶었다고 밝혔는데요, 원작 소설의 무서운 면에 더 이끌렸으며 자신만의 피노키오를 만들고자 했다고 합니다. 이를 통해 결과적으로 기예르모 델 토로만의 피노키오가 완성되어 아이와 어른 모두의 마음을 울리는 걸작이 탄생할 수 있었으며, 올해 아카데미 장편 애니메이션상의 유력 후보로 거론되고 있습니다.
치코와 리타(2010)
Chico & Rit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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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 하비에르 마리스칼, 페르난도 트루에바, 토노 에란도
출연: 에만 소르 오냐, 리마라 메니시스, 마리오 구에라 등
장르: 멜로/로맨스
등급: 15세 관람가
러닝타임: 93분
1948년 쿠바의 하바나, 야망에 찬 천재 피아니스트이자 작곡가인 치코는 어느 날 밤 클럽에서 아름다운 목소리로 노래하는 가수 리타와 만난다. 젊음과 재능으로 빛나는 그들은 곧 사랑에 빠지지만 열정과 욕망, 질투와 오해가 뒤엉키며 안타까운 이별을 맞이한다. 그리고 네온사인 화려한 기회의 도시 뉴욕, 이제 막 그곳에 발을 디딘 치코는 스타로서 성공을 눈앞에 두고 있는 리타와 재회하게 되는데… 하바나에서 뉴욕 그리고 파리, 할리우드, 라스베이거스까지, 사랑과 꿈을 좇는 그들의 뜨거운 여정이 펼쳐진다.
나도 당신을 모르지만 내 평생
당신을 기다려 온 것 같은 느낌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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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치코와 리타>는 2012년에 개봉한 스페인 애니메이션 영화로, 1992년 미국 아카데미영화상 최우수외국어영화상을 수상한 페르난도 트루에바, 유명 일러스트레이터인 하비에르 마리스칼, 토노 에란도가 공동 연출했으며 쿠바의 재즈 피아니스트 베보 발데스가 음악을 맡은 작품입니다. 국내에서는 제천국제음악영화제에서 소개되어 대상을 받기도 했는데요, 1950년대의 쿠바, 뉴욕, 라스베이거스 등의 장소를 오가며 펼쳐지는 아름다운 재즈 선율이 매력적인 영화입니다.
작화를 맡은 하비에르 마리스칼은 바르셀로나 올림픽의 마스코트 '코비'를 디자인한 천재 아티스트로, 투박하면서도 리드미컬한 일러스트에서 스페인 특유의 감성을 느낄 수 있습니다. 또한, 쿠바의 전설적인 재즈 피아니스트 베보 발데스가 연주하는 아름다운 재즈 선율이 영화 내 흘러 귀를 즐겁게 하며 찰리 파커, 디지 길레스피, 벤 웹스터, 냇 킹 콜 같은 재즈 명장들이 영화 속 캐릭터로 등장해 영화의 재미를 더했습니다. 재즈를 좋아하시는 분들께, 음악을 사랑하는 어른의 연애를 감상하고 싶으신 분들께 추천해 드립니다!
돼지의 왕(2011)
The King of Pig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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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 연상호
출연: 양익준, 오정세, 김혜나, 박희본 등
장르: 스릴러
등급: 청소년 관람불가
러닝타임: 96분
회사 부도 후 충동적으로 아내를 살인한 ‘경민(목소리 오정세)’은 자신의 분노를 감추고 중학교 동창이었던 ‘종석(목소리 양익준)’을 찾아 나선다. 소설가가 되지 못해 자서전 대필작가로 근근이 먹고사는 종석은 15년 만에 찾아온 경민의 방문에 당황한다. 경민은 무시당하고 짓밟혀 지우고 싶었던 중학교 시절과 자신들의 우상이었던 '철이(목소리 김혜나)' 이야기를 종석에게 꺼낸다. 그리고 경민은 학창 시절의 교정으로 종석을 이끌어, 15년 전 그날의 충격적인 진실을 밝히려 하는데...
이곳은 얼음처럼 차가운 아스팔트와
그보다 더 차가운 육신이 나뒹구는...
세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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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돼지의 왕>은 대한민국 애니메이션 최초로 잔혹 스릴러 장르를 표방한 성인 애니메이션 영화입니다. <부산행>, <정이> 등으로 국내를 넘어서 해외에서도 연출력을 인정받은 연상호 감독의 작품으로, 본격적으로 그를 대중에게 알리는 계기가 된 작품이기도 합니다. 다소 거칠고 현실적인 삽화체 그림이 특징이며 불편한 내용을 이야기하는 애니메이션이기에 일부러 불편함을 느끼게끔 디자인한 그림체라고 합니다. 매우 잔혹하고 진지한 분위기의 애니메이션 영화로, 교실 안에서 벌어지는 어린 학생들 간의 학교폭력과 독재권력에 대한 풍자, 사회적 부조리함을 보여주는 작품입니다.
<돼지의 왕>은 한국 장편 애니메이션 사상 처음으로 칸 영화제 감독 주간에 초청받았고, 에든버러 국제 영화제, 시드니 영화제, 파리 시네마 영화제, 몬트리올 판타지아 장르 영화제 등에 초청받으며 작품성을 인정받았습니다. 2022년에는 해당 영화를 원작으로 하는 동명의 티빙 오리지널 드라마가 제작되었는데요, 김동욱, 김성규, 채정안 등이 출연하였으며 원작 이상의 잔혹한 수위와 묘사 때문에 화제가 되기도 했습니다. 어린 학생들 간에 일어나는 잔인한 학교폭력과 이로 인해 상처받는 아이들, 모르쇠로 일관하는 어른들은 영화가 개봉한 지 10년이 넘은 현재까지도 해결되지 않은 문제로 남아 있습니다. 보다 강력한 규제와 관심이 필요한 상황, 학교폭력으로 인해 상처받는 사람들이 더 이상 나오지 않게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파닥파닥(2012)
Pada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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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 이대희
출연: 시영준, 김현지, 안영미, 현경수 등
장르: 드라마
등급: 12세 관람가
러닝타임: 78분
자유롭게 바닷속을 가르던 바다 출신 고등어 '파닥파닥'. 어느 날, 그물에 잡혀 횟집 수족관에 들어가게 된다. 죽음이 예정된 그곳에서 가장 오래 살아남은 '올드 넙치'. 그는 자신만의 생존비법(?)으로 양어장 출신의 다른 물고기들의 신망을 받는 권력자다. 바다로 돌아갈 꿈을 버리지 않고 탈출을 시도하는 '파닥파닥'으로 인해 수족관의 평화는 깨지고, '올드 넙치'와의 갈등은 시간이 갈수록 커져만 가는데... 바다를 향한 고등어 '파닥파닥'의 꿈은 과연 이루어질 수 있을까?
너희들은 이미 죽은 거야.
여기 들어온 이상 이미 죽은 거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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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으로 추천드릴 작품 역시 국내에서 제작된 애니메이션 영화인데요, 개봉 전부터 각종 영화제로부터 작품의 우수성을 인정받고 제13회 전주국제영화제의 국제경쟁 부문에 진출한 유일한 한국 작품으로 주목받았던 영화 <파닥파닥>입니다. <파닥파닥>은 드라마와 뮤지컬이 결합된 일종의 뮤직드라마의 형식을 갖춘 애니메이션 영화로, 횟집 수족관에 갇혀버린 바다 출신 고등어 '파닥파닥'이 자유를 갈망하며 벌어지는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연예인이 아닌 전문 성우들이 더빙을 한 것이 특징인데요, 극 중 뮤지컬 부문에서도 성우들이 모든 노래를 직접 불렀으며 한국 독립 영화의 애니메이션에서 배우가 아닌 성우들이 캐스팅되었다는 점에서 의의가 크다고 하네요.
영화의 배경이 되는 횟집 수족관은 마치 계급화와 서열화가 만연한 관료주의 인간사회를 축소해 놓은 듯한 공간으로 표현되며, 기회주의자, 냉소주의자 등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인간군상들이 물고기의 얼굴을 하고 등장합니다. 수족관의 보이지 않는 벽에 스스로를 가둬두고 현실에 안주하는 물고기들의 모습을 통해서는 꿈을 잊고 사는 현대인들의 모습이 오버랩되는 영화로, 꽤나 그로테스크하고 잔인한 연출과 음침한 분위기 때문에 어린아이들이 보기에는 다소 무리가 있는 작품입니다. 12세 관람가로 책정되어 있으나 15세 이상 관람, 나아가 청소년 관람 불가 영화로 개봉했어도 납득이 된다는 말이 나올 정도의 수준이라 발랄한 콘셉트의 마케팅에 낚인 것을 후회한 가족 관람객들이 많았다고 합니다.
이렇게 총 일곱 편의 애니메이션 영화를 소개해 드렸는데, 어떠셨나요?
즐겁고 평안한 주말 보내시길 바라며, 지금까지 씨네랩 에디터 YUMI였습니다!
다음에 또 만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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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일의 기억 영화 후기 / 논란의 여주인공 / 나름 객관적인 감상평
영화직관하는 남자 영직남의 “내일의 기억” 후기입니다.
쿠키영상은 따로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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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휴먼 보이스> 메인 예고편
떠난 연인과 함께 살던 집에서 그의 마지막 전화를 기다리는 여자.
드디어 전화가 울린다.
조심스럽게 대화가 오가고 그가 다시 돌아올 수 있기만을 바라며
여자는 행복했던 추억을 이야기한다.
하지만 사랑이 식은 남자는 그녀에게 이별을 고하고,
여자는 그의 대답을 받아들일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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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스피릿> 투게더 예고편
어릴 적 엄마를 잃고 '코라'고모와 할아버지 손에 자란 호기심 많은 소녀 '럭키'는 방학동안 '코라' 고모와 함께 아빠가 홀로 살고 있는 미라데로에 머물게 된다. 오랜만에 만난 아빠와의 서먹한 관계에서 어려움을 느끼던 '럭키'는 우연히 에너지 넘치는 야생마 '스피릿'을 만나 특벼한 교감을 나누게 되고, 새로 사귄 친구 '아비게일', '프루'와 함께하며 두근거림과 자유로움을 경험한다. 어느 날, '스피릿'과 그의 야생마 가족이 악당들에 의해 위험에 처하게 되고 '럭키'는 이들을 구하기 위해 친구들과 두려움을 무릅쓴 모험에 나서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