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이2022-03-21 08:00:32
사회문제 맛보기
사회적인 문제들이 영화의 맥거핀으로 소비되어도 괜찮을까
호주에서 3주 연속 박스오피스 1위를 했다는 <드라이>는 마지막 순간까지 진실을 감추고 온전히 보여주려 하지 않는다. 가뭄이라는 뜻의 제목 <드라이>에 맞게 영화는 오랜 기간 가뭄이 이어진 마을 키와라를 배경으로 해들러 일가족 사망 사건을 파헤쳐 나간다. 가물어져 바닥이 갈라지고 땅의 맨바닥이 드러나는 장면이 영화 곳곳에 배치되지만 진실은 갈라진 바닥에 숨어 도통 실체를 드러내지 않는다. 그리고 이 사건을 조사하게 된 애런 포크(에릭 바나 분)는 그 진실을 찾아 마을을 샅샅이 뒤지게 된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20년 전에 벌어진 엘리 디컨의 죽음에 사사건건 부딪히고 해들러 가족의 죽음이 자신과 무관하지 않을지 모른다는 의심을 품지만 갈라진 키와라의 땅은 아무것도 알려주지 않는다. 엘리 디컨은 죽었을 때 바지 주머니에 애런의 이름이 적힌 메모지를 넣은 채 발견되었는데 이로 인해 애런은 엘리의 죽음에 책임이 있는 것처럼 여겨져 마을을 떠날 수밖에 없었다. 가물어질수록 작물은 말라가고 사람들도 함께 죽어가지만 애런은 도저히 진실을 찾을 수가 없다. 왜 <드라이>는 하필 가뭄이 든 마을을 배경으로 한 것일까?
엘리 디컨이 죽었을 때의 정황 중 특이점은 엘리가 강에서 발견되었다는 것이다. 이는 현재 사건이 말라가는 마을을 배경으로 하는 것과는 정 반대다. 또한 애런의 회상 신은 대부분이 강가를 배경으로 하기도 한다. 어린 시절 친구인 루크, 그레첸, 엘리와 강가에서 놀곤 했던 애런은 엘리에게 짖궂은 장난이라기엔 엘리가 죽을 뻔했지만을 치던 루크 해들러를 떠올리며 루크가 정말로 자신의 가족을 몰살하고 자살했을지 모른다고 의심한다. 하지만 루크의 부모님은 그럴 리 없다며 애런에게 수사를 부탁한다. 확실히 해들러 일가족의 죽음은 이상한 점이 많다. 막내딸인 갓난 아이만이 살아남았다는 점이나 사살에 사용된 탄약이 평소 루크가 사용하던 것과는 다른 종류였다는 것 등이다. 강가에서 시신으로 발견됐던 엘리와는 달리 해들러 일가족의 죽음은 가물어진 마을 한복판인 집에서 벌어진다. 물을 배경으로 죽음을 맞이한 엘리는 영화의 마지막 순간이 되어서야 그 진실을 알려주지만 해들러 일가족의 죽음은 가물어질수록 증거가 하나씩 드러난다. <드라이>의 배경이 가물어진 마을을 배경이어야만 했던 이유는 건조한 날씨에 서로에 대한 불신이 깊어져가는 긴장감을 상징하는 동시에 해들러 일가족의 죽음에 관한 진실이 밝혀지는 배경으로서도 가뭄이 유용하게 작동하기 때문이다.
한편 가뭄 이외에 영화는 다양한 주제들을 다루지만 어느것 하나 깊이 들어가지 않고 맛보는 데 머문다. 엘리가 죽었을 때 애런은 루크와 사건 정황에 대해 입을 맞추는데 같이 다른 곳에서 토끼 사냥을 했다고 거짓말한 것이 그것이다. 그리고 이 회상장면이 지나가고 나면 성인이 된 그레첸(제네비브 오라일리 분)이 실제로 토끼 사냥을 하고 있다. 이 장면은 영화 후반부에 밝혀지는 진실과 어느 정도 관련이 있기도 하지만 죄없는 토끼가 날조에 이용되거나 마당에 숨어든다는 이유로 사살당해도 되는지 관객에게 의문을 품게 만드는 장면이기도 하다. 하고많은 야생동물 가운데 토끼가 사살 대상이 된 이유는 작고 연약한 동물인 동시에 빠르지 않아 쉽게 사살할 수 있기 때문인데 이는 20년 전 죽은 엘리 디컨에 대한 비유로 기능하는 것처럼 보인다. 엘리의 죽음은 엘리에 대한 애도보다 애런과 루크에 대한 혐오 면에서 더 크게 작동한다. 평소에는 별 관심을 두지 않았던 소녀임에도 엘리가 죽자 마을 사람들은 크게 동요하고 비난할 누군가를 찾는다. 확실한 증거가 없음에도 알리바이가 딱히 있지도 않았던 애런과 루크는 엘리의 죽음에 책임을 지게 되고 결국 애런은 아버지와 함께 마을을 떠난다. 이 부분 또한 서로에 대한 사회적 무관심, 진실 그 자체를 찾기보다는 그저 비난에 초점이 맞춰지는 사회현상을 가볍게 보여주지만 더 깊이 들어가지 않고 영화는 현상을 바라볼 뿐이다.
엘리의 죽음은 의문투성이인 동시에 관객은 애런이 20년 전에 거짓말을 했다는 사실을 알고 있기에 혼란에 휩싸인다. 그렇다면 애런은 20년 전에 거짓말을 하지 않았어야 했을까? 애런이 사실대로 말했다면 애런은 엘리의 죽음에 직접적인 책임이 없음에도 책임을 져야 할 판이었다. 그렇다면 이 상황에서 거짓말은 용인되는 것인지, 혹은 애런이 무고하다는 사실을 스스로 알고 있음에도 아버지에게까지 거짓말을 하는 것이 당연한지 은연중에 영화는 관객에게 묻는 것처럼 보이지만 이 역시도 더 깊이 들어가지 않는다. 관객은 영화를 보는 내내 영화가 관객에게 어떤 질문을 던지고자 하는지 궁금해하지만 수많은 질문 가운데 초점이 맞춰지는 질문은 없다. 이 수많은 사회적 문제들이 끊임없이 이어지며 20년 후 일가족의 몰살까지 이어지지만 사실 엘리 디컨의 죽음과 해들러 일가족의 죽음은 독립적인 사건임이 영화가 진행될수록 드러난다. 영화가 무심코 던져주는 질문들은 영화 진행을 위한 맥거핀으로 기능하며, 애런은 이 맥거핀을 충실히 따라가며 관객의 혼란을 유도하는 동시에 본인도 혼란 속으로 들어간다. 애런이 이 혼란을 벗어나는 것은 결국 윤리적인 질문을 피해 객관적인 증거를 다시 한번 살펴보는 순간이다. 사건에서 자신의 기억과 감정을 모두 걷어내고 객관적인 실체를 마주한 애런은 사건의 진상에 도달하게 된다. 그리고 가물어진 마을에서 얼마 안되는 숲에 불이 질러질 위험으로부터 마을을 구해내고 숲 또한 보전된다.
숲이 보전되었다는 것은 아직 밝혀지지 않은 진실이 더 있다는 사실을 의미하는 것이다. 객관적인 사실을 가지고 해들러 일가족의 죽음에 얽힌 진실을 밝혀낸 애런은 다시 마을을 떠날 채비를 하며 엘리를 기리는 마음으로 숲을 향한다. 엘리의 죽음에 대한 진실은 반대로 애런의 감정이 촉발한 행동에서 드러난다. 엘리와 시간을 보내곤 했던 장소에서 엘리에게 작별인사를 하려던 애런은 무언가를 발견하고 결국 엘리의 죽음에 대한 진상을 알게 된다. 엘리의 죽음에 진정으로 책임이 있는 자가 밝혀질 때 또다시 영화는 사회적인 문제에 대해 가볍게 관객에게 마지막 질문을 던진다. 하지만 이 역시 깊이 들어가지 않고 맛보기만 함으로써 관객은 다시금 어리둥절해진다. 영화는 이런 사회적 현상들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어하는 것인가, 아니면 이 문제들을 단순히 몰입감을 위한 장치로서 소비할 뿐인가. <드라이>는 밀도 높은 서사를 가지고 마지막까지 긴장감을 유지시키는 영화지만 사회적 문제들을 맥거핀으로 소비한다는 측면에서는 아쉬운 영화이기도 하다.
영화가 끝나면 이제 관객은 현실로 돌아와 영화에서 제기되었던 문제들을 맞닥뜨려야 한다. 영화가 묘사한 다양한 종류의 혐오들은 정당한가?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허용할 수 있는 거짓말의 범위는 어디까지인가? 몰입도 높은 수사 서사를 가진 <드라이>가 모든 진실을 알려준 후에도 극장을 떠나는 관객의 뒷맛이 깔끔하지 않은 이유다.
*본 리뷰는 씨네랩 시사회 초청으로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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