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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onymoushilarious2022-05-30 09:25:34

이건 나를 위한, 아니 우리 모두를 위한 응원가

드라마 나의 해방일지 리뷰

하나의 문학 작품을 읽는 것 같은 드라마가 화제가 되고 있다. 사실 이 드라마의 시청률은 잘 나오고 있는지 아닌지는 중요하지 않다. 하나의 잘 만들어진, 매 화의 대사 하나하나가 공들여 쓰여졌다는 게 느껴지는 드라마 정말 오랜간만에 찾았다. 어느 대사 하나 예상할 수가 없다. 그래서 이 드라마가 호불호가 많이 갈리는 것 같은데, 최소한 나에게는 너무나 취향이다. 그래서 난 이 드라마가 너무 어둡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함께 덕질하자고 꼬셔보려고 한다. 과연 내 구구절절한 글로 그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1. 폐부를 찌르는 대사의 향연

 

 

이 드라마의 장르를 나눠본다면, 휴먼 80/로맨스 20 정도가 될 것 같다. 로맨스에 대해 이야기하기 이전에 이 드라마는 현대 사회에서 살아가고 있는 다양한 종류의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느끼는 관계에 대한 고찰이 너무 잘 느껴지는 드라마이다. 관계가 가진 성질은 다양해서 가족과의 관계가 될 수도 있고, 연인과의 관계가 될 수도 있고, 동료와의 관계가 될 수도 있다. 연인 간의 관계의 실패로, 질투와 시기가 난무하는 동료와의 관계 등으로 관계 자체에서 염증을 느끼는 두 남녀, 구씨와 미정은 서로를 이해하고, 서로에 대한 '추앙"을 시작한다. 다른 사람에게서 받은 상처를 새로운 사람에게서 치유받고자 하기 위함일까. 결국 인간은 사람에게 질리면서도 사람 간의 관계에서 벗어날 수 없는 걸까. 대사 하나하나에서 내 인생을 돌아볼만한 묵직한 대사들이 많았다.

 

 

 

“싫을 때는 눈 앞에 사람들이 왔다 갔다 하는 것도 싫어. 말을 걸면 더 싫고. 쓸데없는 말을 들어줘야 하고 나도 쓸데없는 말을 해 내야 되고. 생각하는 것 자체가 중노동이야.”

 

 

 


“나도 그런데. 하루 24시간 중에 괜찮은 시간은 한두시간 되나? 나머지는 다 견디는 시간. 하는 일 없이 지쳐. 그래도 소몰이하듯이 어렵게 어렵게 나를 끌고 가요.”

 

 

 

 

 

이 대사가 내가 이 드라마를 계속 보게 만든 폐부를 찌르는 대사였다. 처음 만나서 어색함에  아무말이나 해야 할 때, 상대가 하는 말도 아무말이구나 싶을 때, 이 어색한 상황에서 도망치고 싶을 때 오는 현타. 그리고 그 상황이 종료되고, 한창 말 잘하고 나와서 '내가 그런 말을 하고 나왔지. 쓸데없는 말이었는데."하는 자책에서 비롯된 두 번째 현타. 구씨의 대사에서 이런 내 모습이 투영되어 깊이 공감했다.

 

 

 

그리고  요 근래 내 자신을 왜 좋아할 수 없을까에 대해 깊이 생각하고 있어서 이런 인간과 인간 간의 관계에 대한 대사에 공감했는지도 모른다.. 나는 남이 하는 이야기가 가끔 지칠 때가 있다. 그들의 일방적인 이야기에 지치면, 그 지친 감정은 곧 짜증으로 치환된다. 그리고 나도 그렇게 일방적으로 이야기하는 사람들을 싫어하면서도 내가 힘든 일이 있을 때, 누군가에게 주절주절 이야기할 때가 있다. 그리곤 후회한다. 그 사람은 이 이야기가 재미가 없었을 텐데, 내 기분을 상하게 하지 않기 위해 그저 들어준 것은 아닐까. 그래서 또다시 미안해진다. 내 이기적인 마음을 비판하며, 또다시 나는 나를 미워하게 된다.                         

 

나도 그들과 똑같은 사람이었으면서 남을 비판했을 때, 내가 나에게 느끼는 위선적 혐오감,  나는 오늘도 마음으로 삭히지 못하고, 또 감정을 표출해내고야 말았다는 후회 그리고 내 말을 들어주느라 지쳤을 사람들에 대한 미안함, 하나의 인간 관계를 잃어버린 것 같다는 불안함. 그렇게 쿨한 척 하지만 한없이 소심한 내 자신에 대한 끝없는 자책. 이 생각의 잔재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져 나에 대한 자책으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인간을 싫어하고, 인간에게서 내 자신을 휘둘리지 않으려고 노력하면서도 인간들과의 관계를 끊임없이 신경쓰는 나 자신에 대한 비판이 결국 나에 대한 혐오로까지 이어지는 것 같다.

 

 

 

나는 인간을 상대하는 게 힘들어서  인생은 혼자 살면 되는 거 아닌가 싶다가도 결국 온전히 혼자서만 사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것, 결국 완전히 인간과의 관계에서 벗어날 수는 없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의 그 공허함을 이 드라마의 전체적인 분위기와 대사를 통해 '맞아, 나도 그런 비슷한 느낌 받았었어'하며 동질감을 느끼고, 좀 덜 외로울 수 있었던 것 같다.

 

 

 

2. 왜 하필 추앙일까.

 

 

 

 

계속 궁금했었다. 왜 작가는 연애하자는 말을 추앙이라고 바꾸어 표현했던 것일까. 처음에 이 대사를 들었을 때, 읭?하던 느낌을 아직도 잊을 수 없다. 그 때의 그 의문스러운 느낌 때문에 많은 뇌피셜 해석들을 찾아봤었는데, 기독교적인 세계관이 들어갔다고 해석하신 분들이 꽤나 많았었다. 그 해석에 대해 많이 동감하는 편이다.            

 

하지만 나는 그냥 세계관이고 뭐고 그냥 단순하게 해석해서 누군가와 연애를 할 때, 상대의 반응에 따라 내 기분이 왔다갔다 하는 것 자체에 염증을 느끼고, 내가 좋으면 그냥 좋다고 표현할 거라는 대사에서 이 추앙은 상대를 위한 것이 아니라 결과적으로 미정 자신을 위한 것이라는 점이 신선하고, 미정이라는 캐릭터의 걸크는 여기에 핵심 포인트가 있다고 생각했다.

 

 

 

자꾸 답을 기다리게 되는 마음은 어쩔 수 없지만, 두고 봐라. 나도 이제 톡 안 한다. 그런 보복은 안 해요. 남자랑 사귀면서 조용한 응징과 보복 얼마나 많이 했게요. 당신의 애정도를 재지 않아도 돼서 너무 좋아요. 그냥 추앙만 하면 되니까.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 사람들의 반응에 따라 이리저리 기분이 좌지우지되는 거 말고, 그냥 나는 그 때 상황에 맞추어 내가 하고 싶은 감정적 표현을 하고 사는 것만으로도 나의 자존감은 올라갈 수 있다는 것을 미정이 보여주고 있다. 이렇게 술에 절어사는 상대(구씨)를 바꾸려 들지 않고, 그저 좋아한다는 표현, 그를 향한 지속적인 관심을 표현하는 것으로 미정은 자기 자신을 위한 사랑을 시작한다는 개념이 너무 신박하다고 느껴졌고, 그런 담백하지만 묵직한 표현을 통해 구씨가 미정에게 스며드는 과정이 너무도 자연스러우면서 보기가 불편하지 않았다. 세상에 존재하는 다수의 사람들이 싫어도, 나를 제대로 이해하는 한 명의 사람만 있다면 세상은 살 만해진다는 미정의 말처럼 나를 사랑하는 사람 간의 섹슈얼한 관계가 아니라 나를 응원하는 사람의 존재 덕분에 나는 오늘도 버틴다는 메시지가 너무 가슴 따뜻해진다.

 

 

 

이런 드라마를 보면, 환상을 불러일으키는 자극적인 로맨스는 참 많지만 내 영혼을 보듬어주고, 내 마음을 이해하는 사람 하나 정도는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아니다. 나의 경우, 그런 사람을 찾으려면, 나부터 누군가를 일방적으로 사랑해보는 연습부터 해봐야 겠다. 나는 그런 경험이 전무하기에. 누군가를 사랑하고 싶다는 생각은 사치라고 생각했고, 지금도 그 생각은 유효하지만 나를 이해하고, 나를 구원할 한 사람은 필요하다. 지금의 나의 모습은 너무나 침체되어 있음을 느끼기에.

 

 

 

요근래 참 나에 대한 고찰도 많이 하고, 다른 사람과의 관계 속 나는 어떤 인간인가에 대해서도 많이 생각했었는데, 이제는 조금 생각을 단순화시키려고 한다. 그냥 하고 싶은 게 있으면 눈치 보지 말고 해야겠다. 남을 신경쓰지 않는 척했던 과거를 지나 정말 나만을 위한 삶을 살아내고 싶다.

 

 

 

3. 삶이 힘든 그대에게

 

 

 

지금 이 시각, 드라마는 대단원의 막을 내렸다. 아무래도 열린 결말인 듯하다.  무엇보다도 하수구에 떨어질 뻔한 위기의 동전을 구하고, 편의점에서 샀던 술을 노숙자에게 준 걸로 봐서 지옥으로 떨어지기 직전의 자신을 스스로 구원하고, 새로운 챕터를 열고 있는 것이다. 그가 화류계를 떠나고, 정말 술을 끊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최소한 술을 끊는 첫 스텝은 밟은 것 같아 마음이 놓인다. 그렇게 구씨는 조금씩 미정의 세계에 가까워질 수 있겠지. 나는 그렇게 믿을 거다. 아무래도 작가님은 각자가 원하는 결말을 알아서 상상하라는 의도로 그런 결말을 내신 것 같으니, 나는 내가 원하는 결말을 내련다.

 

 

 

삶이 힘들고, 연애가 지치고, 친구 관계도 염증이 날 때, 미정의 상황, 기정의 상황, 창희의 상황에 감정 이입하기 보다는 그들이 하는 말에 조금만 귀를 기울여보시기를 추천한다. 그들이 하는 말을 통해 내 안에서 답을 내지 못한 답답함을 뚫어내는 잔잔한 위로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내가 그랬다. 그렇게 해방일지에 스며들며, 이들의 말에 공감하며, 이들의 캐릭터가 대단히 성공하지는 못해도 어딘가에서 잘 살고 있기를 응원하게 된다. 어쩌면 나는 이 드라마 속 모든 캐릭터들을 "추앙"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들을 응원하면서 나도 누군가에게 무조건적인 응원, "추앙"을 받고 싶다. 그렇게 여러분들도 세상의 단 한 명의 사람에게 "추앙"받는 삶이시기를 바란다.

작성자 . Anonymoushilarious

출처 . https://brunch.co.kr/@lanayoo911/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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