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드레2022-06-09 01:03:25
흩어진 마음에 더 이상 차가운 비가 내리지 않도록 펼치는 우산
영화 <브로커> 리뷰
어두운 밤, 비가 내리고 어떤 여자의 뒷모습이 보인다. 그리고 그는 베이비 박스가 아닌 그 앞에 아기를 놓고 사라지고 이를 지켜봤던 수진이 아이를 베이비 박스 안에 넣어둔다. 베이비 박스 안에 들어온 아기를 확인하던 상현과 동수가 아기를 몰래 데려가고, 다음 날에 엄마인 소영이 아기를 찾으러 돌아온다. 아기가 사라진 것을 안 소영이 경찰에 신고하려 하지만 그들의 내막을 알게 된 소영이 그들을 따라나선다. 계속 열리는 트렁크, 세차하면서 열리는 문으로 인해 축축하지만 따뜻한 햇볕과 시원한 바람 덕에 금방 마르는 옷은 지금과는 조금 다른 삶을 살아갈 수 있지 않을까 하는 희망을 끼얹는다. 하지만 우성이의 새 부모를 찾아준다는 명목하에 이루어진 상습적 영아 납치와 인신매매는 어두운 만큼 긍정적이지는 않다. 무슨 일이라도 일어날 것 같은 불길한 예감은 떳떳하지 않은 이들에게 적중한다.
아이를 낳자마자 모성애가 생기는 것이 아닌 것처럼 아이를 키우는 일을 혼자서는 쉽게 할 수 없다. “아이 하나 키우는 데 온 마을이 필요하다”라는 말처럼 아이를 키우는 일이 모두 개인의 책임으로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사회 공동체의 노력과 책임을 통해 이루어진다. 가족이 아닌 사람들이 모여 “태어나줘서 고마워.”라는 말을 가족이 건네는 것처럼 건넨다. 작위적인 대사들과 직접 개입함에도 명확하지 않은 의미들이 극명한 불호를 만들어 내지만 아이를 지키기 위한 수단으로써 활용되는 ‘박스’의 활용이 영화의 의미를 조심스레 매듭짓는 듯하다.
미화시키지 않기 위해서 누군가의 사정을 드러내지 않은 걸까? 베이비 박스에 대한 여러 시선이 충돌하지만 그를 바로 잡는 정답은 나오지 않는다. 베이비 박스에 대한 존치 여부에 대해서도 정확히 다루는 것 같지도 않다. 의문을 품은 채, 이 복잡한 여정 속에서 드러나는 인물들은 서로 다른 가치관으로 한 가족이 되어간다. 책임감 있으면서도 무책임한 모순을 펼치며 인간적인 면모를 보이는 이들에게서 왠지 <어느 가족>이 겹쳐 보인다.
Relative cont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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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거장은 어떻게 거장이 되는가?
이 시사회는 씨네랩으로부터 초청받아 참석하였습니다.
천재에 대한 일화는 언제나 대중의 흥미를 불러 일으킨다. 그가 다다른 '거장'의 지위가 눈부셔서이기도 하지만, 그보다는 이러한 천재들이 그 나름대로의 탁월한 방식으로 한 분야의 새 지평을 여는 순간들이 짜릿하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새로움을 추구하는 그들의 남다름은 매력적이고, 그들의 열정은 경탄을 자아낸다. 대개 그들의 삶에는 혁신이 있고, 약간의 과장을 덧붙이자면, 그 삶의 흐름은 혁명적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엔니오 모리꼬네는 그러한 천재의 반열에 오른 거장 중의 하나다. 그가 영화에 담아낸 음악들은 너무나도 유명해서, 그의 이름을 들어 본 일이 없더라도 그의 음악을 들어보지 못한 이는 없을 것이다.(사실, 내가 그랬다.) 거친 황야 너머로 울려퍼지는 팬플루트 소리라든가, 낯선 남미 땅에서 울려퍼지는 제레미 아이언스의 오보에 연주('넬라 판타지아'라는 음악으로 더 알려져 있다.)는 한국인들의 귀에도 너무나도 익숙한 곡들이 아닌가. <시네마 천국>, <황야의 무법자>, <피아니스트의 전설> 등 제목만 말해도 '아!'하고 탄성이 절로 나오는 영화들 역시 그의 음악을 말미암아 빛을 발했다.
이쯤되면 궁금해진다. 엔니오는 대체 어떤 사람이기에 이런 불후의 명곡들을 만들었을까? 우리는 운 좋게도 오는 7월에 나오는 영화, <엔니오: 더 마에스트로>에서 이 궁금증을 해결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영화는 엔니오 모리꼬네라는 거장의 삶을 추적하며 그가 음악사적으로 어떠한 의미를 가진 사람이었는지를 조명한다. 그와 동시에, 거장이 거장으로 불리기까지 그의 삶이 어떠했는지를 보여준다.
영화 속에서 그는 천재이자 혁신가이고, 또 한편으로는 한 인생을 꿋꿋하게 살아낸 개인이기도 하다. 천재를 감히 평범하다고 일컫어도 될지 모르겠지만, 그의 삶은 분명 눈부셨지만 사람다운 구석이 있었고, 바로 그 점이 관객들을 매료시킨다. 스크린 너머에서 엔니오 모리꼬네라는 거장은 그저 거장으로 태어나 거장으로 존재한 것이 아니라 끝없는 노력과 열정, 실험 정신, 그리고 좌절을 말미암아 진정한 '마에스트로'로 거듭난다.
조용하고 소극적인 성격이었다던 그의 삶은 놀라울 정도로 도전의 연속이었다. 그는 그에게 주어진, 혹은 정해진 길만을 걷기를 거부했다. 트럼펫 연주자가 되라는 아버지의 말을 어기고 작곡가가 되었고, 현대 음악을 경시하던 기존 클래식 학계에 기꺼이 반기를 들었다.
그는 나아가 그 당시로서는 지나치게 '상업적'이며 음악의 고유한 가치를 떨어트린다는 평을 받던 영화 음악을 작곡하기 시작했다. 그가 대중으로부터 사랑을 받을수록 클래식계에서의 비난은 거세어졌지만 그는 꿋꿋이 그의 길을 걸었고, 마침내는 클래식계와 영화계 양쪽 모두에게서 인정 받는 음악가이자 영화인으로 자리매김하였다.
그는 언제든지 거만해질 수 있었고, 언제든지 그가 뿌리를 둔 고전 음악계나, 그에게 명성을 가져다 준 영화 음악을 뿌리칠 수 있었지만 그는 그렇게 하는 대신 젊은 날의 그 자신이 그러했던 것처럼 매순간을 절실하게 살았다. 그는 혁신과 변화, 새로움을 꿈꾸는 자였지만 그와 동시에 음악 선배들이 수 백년에 걸쳐 전해 온 규칙을 계승하고자 했고, 바로 이 점이 그를 한 사람의 위대한 음악가가 되게 했을 것이다.
나는 음악을 듣는 것은 좋아하지만 내로라하는 작곡가들의 이름이나 아주 단순한 화성학이니 뭐니 하는 음악 용어에 대해서는 문외한이다. 사실 영화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이러한 분야의 전문가가 아닐지라도 그의 삶은 충분히 눈부시고, 그가 기울인 탁월하고도 성실한 노력들을 본받고 싶다는 생각이 들게 한다.
영화를 보고 나서 한 동안 나는 나의 삶은 어땠고, 앞으로는 어떻게 살아야할지에 대해 생각했다. 나는 그처럼 천재가 아니고 그만큼 탁월하거나 성실한 사람이 아닐지도 모르지만, 매일매일을 처음 이 일을 시작한 사람처럼 열정적으로 살아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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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엔니오: 더 마에스트로>는 엔니오 모리꼬네의 삶 뿐만 아니라 그의 아름다운 작품들을 영화관에서 즐길 수 있는 절호의 기회다. 시간이 난다면 가능한 음향 시설이 좋은 시설에서 마음껏 그의 음악을 즐겨보는 것도 이 영화를 즐기는 탁월한 방법 중 하나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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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명시 그 외는 없는, <스텔라>
* 본 리뷰에는 영화의 결말이 담겨 있습니다.
스텔라(Stella. A Life)., 2024
감독: 킬리안 리드호프
명시 그 외는 없는, <스텔라>
출처: 영화 <스텔라> 스틸컷(다음)
아름다운 별빛을 품은 금발의 미녀, 스텔라는 할리우드 진출을 꿈꾸는 재능 있는 재즈 가수다. 미국에서 원 없이 노래하며 살고 싶은 열망은 그녀와 함께하는 밴드 친구들도 품고 있는 소망이기에, 이들은 자발적으로 현실을 등진 채 연습에 몰두한다. 고대하던 공연 당일, 스텔라는 관계자들의 눈을 사로잡고 성공적으로 무대를 마친다. 관중의 열렬한 환호 속에서 밴드와 스텔라는 할리우드로 향하는 일생일대의 기회를 잡았음을 자축한다. 이제 남은 건 미국으로 향하는 레드카펫뿐. 그러나 이들을 호위하던 재즈가 뚝 끊기고 고막을 찢는 공장 소음이 울려 퍼지면서, 화려한 드레스가 아닌 잔뜩 더럽혀진 노동자 옷을 입고 강제 노역 중인 스텔라가 모습을 드러낸다. 사실 그녀는 재즈 가수이기 이전에 1940년 독일, 나치 정부하에 살고 있는 유대인이었고, 밴드와 스텔라가 등진 현실은 제힘은 물론이고 모두의 힘으로도 벗어날 수 없는, 유대인이기에 공포뿐인 세상이었다.
그러나 스텔라는 어둠 속에서도 자기 빛을 뿜어내는 걸 멈추지 않는다. 나치의 유대인 탄압으로 게토에 있는 군수공장에 끌려가 유대인 배지를 달고 온종일 기계 부품을 만들며 언제 죽을지 모를 현실을 받아들인 동포들과 달랐다. 밤이 찾아오면 배지 대신 빨간 립스틱을 바르고 거리로 나갔고, 유대인처럼 보이지 않는 금발과 푸른 눈은 그녀를 더 과감하게 만들었다. 유대인이지만 유대인이 아닌, 독일 시민 '같은' 외형(가면)은 스텔라에게 미국 진출 실패에 대한 보상이 될 순 없었지만, 지옥 속에서 그녀가 그녀답게 버틸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이었다. 수단은 곧 그녀만이 휘두를 수 있는 무기가 됐고 공장 책임자에게도 영향을 줬다. 도망치라는 책임자의 신호 덕에 스텔라와 그녀의 부모는 수용소로 잡혀갈 뻔한 위기를 넘긴다.
출처: 영화 <스텔라> 스틸컷(다음)
스텔라는 더 과감해진다. 우연히 거리에서 만난 신분증 위조 브로커(롤프)의 연인이 되어 그와 함께 일한다. 그들은 독일 시민인 척 거리를 쏘다니며 동포에게 돈을 뜯어낸다. 제삼자였던 동포의 경계는 점차 그녀의 가장 친한 밴드 친구들에게까지 확장되고, 스텔라는 절친에게도 목숨을 담보로 돈을 갈취하기 시작한다. 이때까지만 해도 그녀는 죄책감에 괴로워한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스텔라는 불편한 마음을 외면하기로 한다. 본인이 느끼는 고통과 별개로 나치는 여전히 유대인을 색출했고, 그녀에겐 안전한 은신처와 생계를 위한 돈이 필요했으니까. 언제 빼앗길지 모를 자유를 향한 욕망도 분명 결정적인 역할을 했겠지. 하지만 스텔라는 알지 못했다. 그 결정이 훗날 자기 삶은 물론 인간상까지 송두리째 무너트릴 계기가 될 거란 사실을 말이다.
스텔라는 밴드 친구의 고발로 게슈타포(나치의 비밀 국가 경찰)에 붙잡히면서 반쪽짜리 자유마저 완전히 빼앗긴다. 갖은 고문에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완전히 무너졌고, 수용소 수감을 피하고자 나치의 비밀 요원이 되기로 맹세한다. 비밀 요원 일은 딱 하나, 유대인 색출. 그동안 해왔던 브로커 일과 차원이 달랐다. 신분증 위조보다 더 예리하고 대담해야 했으며 재즈를 부르며 자아를 팽창하듯, 인간의 극한 이기심을 폭발시켜야 했다. 반드시 살아남아야 하기에 어떠한 감정도 비밀 요원 일에 방해 돼선 안 됐다. 그로 인해 받는 정신적 압박과 심리적 불안 역시 어쩔 수 없이 따라오는, ‘불편한 마음’과 똑같았다. 브로커와 비밀 요원은 스텔라에게 행위만 다를 뿐 사실상 생존이란 동일한 목적을 추구하는, 일치된 생존 방식으로 정립됐다. 이전보다 더 냉혹해져야 했다. 유대인을 잡는 유대인은 스텔라 말고도 넘쳐났으니까. 업무 성과 미달로 수용소에 끌려가지 않으려면 반드시 다른 요원보다 더 많은 동포를 고발해야 했다. 물론 다른 요원보다 더 많은 유대인을 색출했다고 해서, 두려움이나 공포를 느낄 필요 없는 독일인이 될 순 없었다. 태생적으로 바꿀 수 없는 현실은 레드카펫도 자유도 아닌 '길이 하나뿐인 생존'을 위한 서바이벌장으로 변했고, 그렇게 스텔라는 동포를 잡는 동포가 아닌 ‘독재 국가를 위한’ 요원이 됐다. 매혹적인 금발과 푸른 눈이 만든 무기는 그 쓸모를 잃었으며, 마음 한쪽에 자리했던 죄책감과 죄의식은 본인이 처한 비극에 더 철저히 가려졌다.
출처: 영화 <스텔라> 스틸컷(다음)
스텔라에게 남은 건 스스로 만든, 무자비한 본인뿐이었다. 금발의 배신자는 친구들은 물론 얼굴만 아는 사람들까지 닥치는 대로 고발해 적게는 600명, 많게는 3,000명을 죽음의 수용소로 보냈다. 그 덕에 강제수용소로 끝까지 끌려가지 않았지만, 종전 후 체포돼 전범 재판에서 유죄를 선고받는다. 그러나 이미 이전 재판에서 선고받은 형기(10년)를 마쳤다는 이유로 처벌 없이 풀려난다. 재판 내내 부모님 역시 수용소에서 죽임을 당했다며 본인 역시 피해자임을 주장했던 스텔라였다. 시간이 한참 흐르고, 작은 거울에 한 할머니가 비친다. 여전한 금발 머리와 푸른 눈 그리고 빨간 립스틱, 스텔라다. 악착같이 얻고자 했던 삶이 주는 압도적인 평온이 계속될 듯했는데, 돌연 스텔라가 창문을 열고 뛰어내린다. 쿵 소리도, 사람들의 비명도, 그 외 어떠한 소리도 들리지 않는 침묵 속에서 <스텔라> 끝난다.
<스텔라>는 실존 인물 '스텔라 골드쉬라크'의 일생을 다룬, 실화를 바탕으로 한 작품이다. 감독은 처음부터 스텔라의 일대기를 꼼꼼히 살펴, 이를 영화에 조금의 덧붙임 없이 담았다. 나치, 홀로코스트란 배경(환경)보다 그 안에 속한 인간, 스텔라(개인)에게 관객이 집중하길 바랐다. 따라서 그녀의 생과 사를 작품 안에 거짓 없이 담는 걸 최우선 목표로 삼고, 스텔라에게 감정적으로 동화되는 지점을 의도적으로 생략했다. 이야기 전개에서 스텔라가 느끼는 고통과 두려움은 철저히 '개인'의 내면으로만, 즉 안으로만 파고들었다. 밖으로 빠져나와 제삼자에게 감정이 전이시키는 과정은 없었다. 중요한 건 스텔라의 행위에서 파생되는 결과였지, 그 안에 소용돌이치는 '나'만의 감정 태풍 따위가 아니었다. 영화는 살고자 하는 욕망으로 하루살이처럼 살았던 스텔라의 무수한 하루를 단순 기록했다. 사건 나열이 아닌 개인의 연속된 선택과 결과로 가중되는, 그다음의 선택과 결과에 무게를 뒀다. 스텔라 골드쉬라크가 해체되면 될수록 그녀의 개인사는 모두를 향한 이야기로 변형됐고, 이는 개인을 통해 전체와 역사를 바라보게 되는 길이 됐다. 영화는 스텔라란 인물을 회피하지 않고 똑바로 목도하는 일이야말로 끝나지 않는 비극의 역사를 제대로 마주하는 첫걸음이란 사실을 한 번 더 강조하면서, 끝에 다다라서는 최종 판단과 결정을 관객에게 넘기며 제 몫을 다 했다.
출처: 영화 <스텔라> 스틸컷(다음)
1980년 광주에서 의도치 않게 가해자가 된 '영호'(이창동, <박하사탕>(1999))와 1943년에 나치 친위대에 들어가 아우슈비츠 감시원으로 일했던 '한나 슈미츠'(스티븐 달드리, <더 리더: 책 읽어주는 남자>(2008))도 스텔라와 같은 길을 걸었다. 세 사람 모두 국가적, 시대적 환경 안에 갇힌 인물로 피해자이자 가해자, 가해자이자 피해자로 표현됐다. 죽음의 과정도 닮아있다. 영호는 그동안 저질렀던 자기 죄를 스스로 용서할 수 없어 괴로움에 몸부림치며 기차 앞에 섰다. 유대인을 가스실에 넣어 죽인 일보다 문맹을 폭로 당하는 걸 더 수치스럽게 여겼던 한나는 수감 후 글을 읽게 되고 나서야 비로소 악마 같았던 자신을 마주하고, 스스로 목을 맸다. '아무리 발버둥 쳐도 벗어날 수 없었던 시대'와 '마지막까지 이어진 자기 파괴적 결말', '이분법적으로 딱 잘라 정의할 수 없는 이야기'까지 영화가 각각 무엇을 더 강조하고 싶어 하는지에 따라 그 쓰임이 달랐을 뿐 모두 충실히 활용됐다.
영호는 누가 진짜 가해자이고 진짜 피해자인지를 질문했고, 한나는 사고하지 않은 복종으로 파생된 악의 평범성을 고심하게 했다. 타인에게까지 영향을 주는 자기반성이 뚜렷하게 보였기에, 두 인물은 말하고 싶은 메시지를 관객에게 확실하게 전달했다. 여기서 자기반성은 다양한 방식과 절차가 존재하는데 자기혐오와 자기 파괴는 꼭 포함되어 있다. 자기반성이 참회의 출발점이 될 수도 있고, 용서의 변곡점이 될 수도 있다는 게 요점이다. 두 사람의 자기반성은 관객에게 복잡한 감정을 느끼게 했고, 결과적으로 마음을 울리는 경종을 외면하지 않게 했다.
출처: 영화 <스텔라> 스틸컷(다음)
반면 스텔라의 자기반성은 밖이 아니라 안에서만 휘몰아쳤다. <스텔라>는 이마저도 의도적으로 희미하게 담았다. 스텔라가 죄책감에 괴로워하는 장면보다 고통으로 몸부림치는 (행위적인 측면의) 장면을 더 길게 노출했다. 스텔라가 창문을 열고 투신하는 순간에도 카메라는 그녀의 앞모습이 아닌 뒷모습을 보여줬다. 스텔라가 화면에서 사라진 뒤에도 카메라는 공허한 바람 소리조차 허용하지 않고, 오직 창문이 열린 방 안에서 머물러있었다. 그녀가 대체 어떤 얼굴과 어떤 마음으로 그와 같은 선택을 했는지, 우린 확언할 수 없었다. 심지어 그녀 자체도 관객이 뭘 알고 싶고, 또 뭘 회피하고 싶어 하는지 관심조차 두지 않은 게 분명했다. 보이지도 느껴지지도 않는 자기반성은, 공감이나 비난 심지어 반사적으로 가능한 일차원적 반응조차도 불가능하게 만들었다. 무관심과 관심의 대결에서 당연히 후자가 패배한 줄 알았는데, 스텔라의 메시지는 영호와 한나처럼 뚜렷하게 전달됐다. 아니, 오히려 더 냉철하고 단호하게 관객에게 닿았다. 마치 추상적인 물음이 가장 구체적인 답이 된 것처럼, 최종 판단은 알아서 각자 해야 함을 꼭 명심하길 바라는 것처럼‥.
<스텔라>는 명시 외엔 다른 방법을 쓰지 않았다. 그것만으로 충분하다는 자신감도 분명히 보인다. 다하우 수용소에 새겨진 추모문 중 ‘죽은 사람에게는 애도를 표하고 살아 있는 사람에게는 경고하기 위하여’란 구절이 <스텔라>를 관통해, 우리의 마음 깊숙한 곳까지 뚫고 지나갔음을 부정할 수 없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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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승리호> 도전적인 밑그림을 덮은 무미건조한 채색
2092년, 지구의 환경오염에 시달리던 사람들은 '설리반(리처드 아미티지)이 우주 위성궤도에 만든 새로운 보금자리 UTS로 향한다. 그러나 UTS에 정착할 수 있는 사람의 수가 한정적인 관계로 돈이 부족한 많은 이들은 지구에 그대로 남거나 우주를 떠돌며 힘겹게 살아간다. 우주 쓰레기 청소선 승리호의 선원인 ‘태호’(송중기), ‘장선장’(김태리), ‘타이거 박’(진선규), ‘업동이’(유해진)도 가족과 동료들을 잃은 파란만장했던 과거는 뒤로 한 채 돈 되는 일이라면 눈에 불을 켜고 달려들며 살아간다. 어느 날, ‘승리호’는 사고 우주정에서 대량살상무기로 알려진 인간형 로봇 ‘도로시(박예린)’를 발견하고, 그녀와 관련된 음모를 깨달은 뒤 새로운 모험에 나선다.
단도직입적으로 말해서 <승리호>는 보는 재미가 확실하다. 우주선 내부나 우주 도시의 거리, 클럽, 도박장, 우주선 수리장처럼 다양한 공간을 만들어낸 세트 미술은 미래의 세계관에 자연히 빠져들게 만든다. <스타워즈>나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와 비교해도 크게 어색하지 않은 우주선들의 추격전과 액션은 <신과 함께> 이후 한국의 CG 기술력이 한 단계 더 성장했다는 방증처럼 보인다. 전작인 탐정 홍길동처럼 본래 만화와 현실을 오가는 과장된 영상미를 보여주던 조성희 감독이기에 UTS의 마을이나 설리반의 사무실처럼 CG가 살짝 어색한 장면도 큰 문제가 되지는 않는다. 이러한 비주얼 측면의 성과는 영화가 극장에 걸리지 못한 현실이 야속할 정도다.
하지만 시각 효과를 잠시 제쳐둔 채 "<승리호>가 최초의 한국형 스페이스 오페라로서 성공적인가?"라고 묻는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절반의 성공, 혹은 절반의 실패라고 대답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구체적으로 말해 <승리호>는 스페이스 오페라라는 장르를 새로운 관점으로 재해석하는 데는 성공했다. 다만 그 재해석을 보여줄 때 할리우드의 기존 문법에 지나치게 의존한다는 문제를 노출한다.
스페이스 오페라(space opera) 영화는 우주에서 펼쳐지는 모험과 전쟁을 주요 소재로 삼는다. 사실 영화 장르로서 스페이스 오페라는 국내에서 인기가 없다. 가장 흥행에 성공한 작품인 <스타워즈: 깨어난 포스>가 320만 관객을 간신히 넘겼고, 그 이후 시리즈는 100만 명을 넘기지 못했다. MCU에 속한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 2>도 270만 명을 동원하는 데 그쳤으며 <스타트렉> 시리즈도 100만을 간신히 넘는다. 이처럼 스페이스 오페라에 대한 반응이 좋지 않은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다. 특히 스페이스 오페라 영화가 할리우드의 전성기를 이끌었던 서부극의 전통을 이어받은, 미국적인 영화의 대명사로 볼 수 있다는 점도 하나의 이유가 된다. 실제로 스페이스 오페라라는 용어는 1941년 SF 작가이자 평론가인 윌슨 티거가 최초로 사용했는데, 이는 서부극을 뜻하는 호스 오페라(horse opera)와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다는 의미였다.
서부극을 구성하는 이른바 '미국적' 토대는 두 가지로 파악할 수 있다. 하나는 개인주의이며 다른 하나는 개척주의 혹은 팽창주의다. 우선 서부극의 주인공은 대게 독선적이고 개인적인 반-영웅이다. 기존의 규범과 규율에 복종하기보다는 자신이 옳다고 믿는 바를 행해 사람들을 구하는 개인주의적 성향이 강하다. <스타워즈>의 주인공들은 이 전통을 그대로 계승한다. 루크 스카이워커, 아나킨 스카이워커, 한 솔로, 레이 등은 하나 같이 선대의 가르침, 제다이의 규율을 무시하고 자신의 직감이나 판단을 쫓는 경우가 많다.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의 팀원들도 스타로드가 순간적인 충동으로 타노스를 때린 것처럼 개인적인 돌발 행동을 서슴지 않는다. <스타트렉>의 커크 선장도 마찬가지다.
또한 서부를 개척하고, 혼돈과 질서가 없다고 여겨진 땅을 문명화하는 이야기를 보여줬던 서부극은 흔히 미국인의 정신이라고 표현되는 서부로의 개척주의, 팽창주의가 영화에 투영된 결과물로 볼 수 있다. 이러한 맥락에서 볼 때 스페이스 오페라는 말이 우주선으로, 미국 서부의 평야나 사막이 우주와 행성들로, 미국의 원주민을 외계인으로 바꾼 것에 불과하다. 1960년대에 케네디 대통령이 '뉴 프런티어(new fronier)'를 외치며 미국 서부를 전 세계, 심지어 달로 확장시킨 것처럼 동시대에 제작된 <스타트렉>에서도 미국(U.S.)을 상징하는 U.S.S. 엔터프라이즈 호는 우주 각지를 탐험한다. 이러한 미국 중심의 개척주의, 팽창주의의 전통은 <스타워즈>나 <스타트렉>에서 백인, 흑인, 황인 가리지 않고, 또한 지구인과 외계인을 가리지 않고 전부 영어를 사용하는 것에서도 엿볼 수 있다. 따라서 식민지의 피지배자로 근현대 시기를 보냈던 한국인에게 본질적으로 미국의 역사적 경험을 토대로 만들어진 스페이스 오페라 영화는 그다지 매력적인 선택지가 아닐 수밖에 없다.
이는 한국형 스페이스 오페라 영화를 만들려는 시도가 단순히 화면에 태극기를 보여주거나 '승리호'라는 우주선 이름을 한글로 보여주는 것을 넘어서 미국적 기반에 토대를 두지 않는 새로운 세계관을 보여줄 수 있어야 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승리호>는 이 미션을 성공적으로 수행한다. 우선 미국 중심의 개척주의, 팽창주의에서 탈피한 세계관을 선보인다. 주인공들이 기본적으로 통역기를 사용하며 한국어, 프랑스어, 영어, 스페인어, 러시아어, 나이지리아 피진어 등에 이르는 다양한 언어가 등장하는 것이 단적인 예시다. 그 외에도 미국의 개척, 팽창주의에 대한 반기는 다양한 모습으로 나타난다. 주인공들이 우주 쓰레기 처리선을 타고 다니는 장면, 거대한 엘리베이터를 타고 부유층만 사는 우주도시와 황폐화된 지구를 오가는 초반부 장면은 부익부 빈익빈 현상이 극단에 다다른 풍경에 대한 상상화를 그려내 미국 중심의 자본주의 질서의 폐해를 비판한다.
이는 생태주의적 접근과도 궤를 같이 한다. 서부 개척을 화성 개척과 등치시키며, 자연을 개발하고 소비한 뒤 새로운 개발 대상을 찾아 나서는 세태를 비판하는 것이다. 한국의 경제 성장을 상징하는 63 빌딩이 미세먼지로 뒤덮인 가운데 더 높은 빌딩들이 서 있는 서울을 보여주는 오프닝만 봐도 알 수 있다. 이는 영화의 주된 갈등이 도로시를 죽이려는 설리반과 지키려는 승리호의 대립에서 비롯되는 가운데, 이 갈등이 지구를 파괴하고 화성으로 이주하는 설리반과 지구들 되살리기 위해 나무를 심는 주인공들의 대조를 이루는 선택과도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이유다. 또한 어린아이로 등장하는 도로시 캐릭터 자체가 미래 세대를 위한 희망을 담은 존재이기 때문에 태호가 과거에 딸을 잃은 기억을 반복하지 않겠다고 결심하는 전개는 나름의 설득력을 갖추기도 한다.
한편 <승리호>는 연대와 협력의 메시지를 강조하며 개인주의적인 영웅 서사를 거부한다. 실제로 빌런과 승리호 일행이 대면하는 구도는 언제나 일 대 다의 구도 속에서 이루어진다. 설리반이 승리호 내부로 들어와 그들을 직접 제압하는 장면이나, 카밀라가 우주 공장 내부에서 승리호 일행과 격투를 벌이는 장면이 대표적이다. 초반부만 해도 서로가 서로에게 비난을 퍼붓던 서로 다른 국적의 우주 쓰레기선 승무원들, 서로 믿지 못하던 검은 여우단과 승리호 선원들이 힘을 모아 설리반의 음모를 막는 데서도 영화가 중점을 둔 대목을 눈치챌 수 있다. 이때 상술한 통역기는 연대와 협력의 메시지를 전달하는 측면에서도 중요한 영화적 장치다. 따라서 <승리호>의 세계관, 큰 그림, 밑그림은 분명 기존에 볼 수 있었던 스페이스 오페라 영화들과는 차별화된 한국형 스페이스 오페라의 가능성을 보여준다.
문제는 <승리호>가 기존의 할리우드 문법을 사용해 세계관을 보여준다는 것이다. 특히 <승리호>의 장면들을 디테일하게 뜯어보면 기시감을 피할 수는 없다. 액션의 경우, 업동이가 우주선을 오가며 파괴하는 장면에서는 <토르: 라그나로크>, 행성을 파괴할 수 있는 무기를 무력화시키기 위해 무기 안에 잠입하는 전개는 <스타워즈>의 그림자를 벗어나지 못한다. 절체절명의 순간 우주 쓰레기 혹은 운석 지대와 같은 장애물 지대로 들어가는 것 역시 수십 년간 애용된 클리셰다. 미래의 우주를 그려낸 디테일한 설정도 마찬가지다. UTS의 설정이나 모양새는 <엘리시움>의 설정이나 <로그 원: 스타워즈 스토리>에서 등장한 스카리프 행성과의 비교를 피할 수 없다. "매끈하고 날렵한 할리우드 영화의 우주선"과 다르다는 일각의 평가 역시 <스타워즈>에 등장하는 전투기의 만듦새를 고려하면 설득력이 없다.
캐릭터의 설정과 관계도 마찬가지다. 능글맞은 파일럿, 강력한 여전사, 신체적 능력과 별개로 순박한 인물, 유머와 위기 탈출을 책임지는 인간이 아닌 존재라는 조합은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의 그림자를 지우지 못한다. 이는 전작에서 보인 배우들의 이미지를 고스란히 차용한 것이기도 하다. 제각각 다른 과거를 지닌 이들이 승리호라는 우주선에서 하나의 가족으로 묶이고 서로의 상처를 치유하며 보듬아 준다는 전개 또한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를 관통하는 핵심 주제와 일치한다. 주인공 일행을 매번 위기에 빠뜨리는 여성 서브 악역의 존재, 인간성을 말살한 소년병을 양성해 UTS 기동대로 활용했다는 설정은 <스타워즈> 시퀄 시리즈 속 스톰트루퍼를 연상시킨다. 결국 미장센이나 디테일한 연출의 측면에서 사실적인 영상을 구현한 기술력과 별개로 뭔가 독창적이나 새로운 것을 보여줬다고 보기는 어려운 것이다.
할리우드 영화의 작법을 빌린 것과 별개로 설득력이 떨어지는 대목들도 있다. 무엇보다도 악의 축으로 그려지는 설리반의 서사가 부족한 결과 순이를 지키는 이와 대 죽이려는 이의 가시적인 대립 이면의 메시지가 전달되지 않는다. 그의 혈관이 갑자기 부풀고 감정이 폭주하는 것, 로봇처럼 검사를 받는 모습 등 스치듯 지나가는 묘사만으로 인간을 혐오하고 지구를 파괴하려고 하는 그의 동기가 충분히 제시되었다고 보기 어렵다. 사실 장선장이나 태호가 설리반과 함께 일했다는 과거사를 보여줄 경우 그들의 철학적 대립이나 사회경제적 문제에 대해 깊이 있는 비판이 가능했다는 점에서 악역에 대한 묘사가 부족한 것은 아쉬움이 짙다. 그 외에도 도로시가 극 중 모든 문제를 해결하는 데우스 엑스 마키나로 활용되는 것과 같은 편의적인 전개가 종종 눈에 띈다.
물론 한국 영화 시장에서 스페이스 오페라 영화가 대부분 흥행에 실패했다는 점을 고려하면 비교적 익숙한 전개, 캐릭터, 볼거리를 선택한 것은 이해할 수 있는 영역이다. 240억 원의 제작비와 580만 명가량의 손익분기점은 메이저 배급사가 아닌 '메리 크리스마스'의 입장에서 실패를 무릅쓰기 어려운 부담이기 때문이다. 다만 세부적인 장면 구도, 연출 등에서 흥행을 위해 자신의 가능성을 지레짐작해서 제한한 듯 느껴지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장르적인 측면에서 차별화된 재해석을 선보였고, 수준 높은 볼거리도 제공했으며, 주제의식과 메시지도 사회 현실을 적절히 반영하는 데 성공했다는 점을 고려하면 더욱 그렇다. 그래서 <승리호>가 거둔 절반의 성공과 절반의 실패는 그 기쁨과 즐거움 못지않게 큰 아쉬움과 미련을 남긴다.
A(Acceptable, 무난함)
최초의 시도가 주는 뿌듯함과 스스로의 가능성을 믿지 못한 안타까움의 공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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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베킷> 로맨스, 액션, 정치 스릴러의 무색무취한 만남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그리스에서 애인 '에이프릴(알리시아 비칸데르)'과 함께 휴가를 보내던 미국인 관광객 '베킷(존 데이비드 워싱턴)'. 그는 숙소로 이동하던 중 졸음운전으로 인해 차가 전복되어 추락하는 교통사고를 일으킨다. 애인과는 달리 간신히 살아남은 그는 비탄에 잠긴 채 사건 경위에 대한 조사를 받고, 그리스 경찰에게 차가 추락한 주택 안에서 한 남자아이를 봤다고 진술한다. 그러자 친절하던 그리스 경찰들은 사건 현장을 찾은 그를 향해 느닷없이 총격을 가하기 시작하고, 베킷은 공격을 피해 도망친다. 아테네에 위치한 미국 대사관으로 가서 도움을 요청하기로 한 베킷은 나라를 가로지르기로 결심하고, 그렇게 그는 그리스를 둘러싼 정치적 음모의 거미줄에 빠져든다.
13일에 공개된 넷플릭스 오리지널 영화 <베킷>은 평범한 미국인 베켓이 갑작스럽게 그리스 경찰에게 쫓기는 추격전을 크게 세 개의 플롯으로 구성한 작품이다. <다이아키>와 <안토니아>로 이름을 알린 페르디난도 시토 필로마리노 감독은 우선 베킷과 에이프릴의 로맨스로 문을 열고, 알프레드 히치콕의 <오명>처럼 갑작스럽게 베킷과 그리스 경찰 간의 추격전과 액션으로 노선을 선회한다. 이후 베킷이 자신을 둘러싼 음모에 대한 단서를 맞춰가는 과정을 보여주면서 두 개의 플롯을 포괄하는 그리스 경제위기와 관련된 국내외적 정치 스릴러의 면모를 선보이고, 영화는 윌 스미스 주연의 <에너미 오브 스테이트>를 연상시키며 마무리된다.
문제는 <베킷>이 선보이는 세 개의 이야기가 전혀 화학작용을 일으키지 못하다는 점이다. 각각의 플롯은 그 자체의 매력이 부재하며, 상호 간의 연결고리도 느슨하다. 즉, <베킷>은 무엇을 보여주고 들려주려 했는지 의도는 어렴풋이 보일지언정, 손으로 만져지지는 않는 영화다.
먼저 도입부를 장식하는 베킷의 사랑 이야기를 보자. 상대적으로 보다 주관적 감상의 영역이라고 할 수 있는 두 배우 간의 호흡은 차치하더라도, 영화는 좀처럼 베킷의 심정에 빠져들어갈 계기나 동기를 제시하지 않는다. 시청자의 입장에서 이 커플에 대해 알 수 있는 것은 제한적이다. 두 남녀가 그리스에 여행을 왔고, 시위로 혼란스러운 아테네를 떠나 비교적 한적한 관광지를 돌아보고 있다는 것. 그리고 졸음운전으로 교통사고를 낸 베킷이 죄책감에 매우 고통스럽고, 스스로를 비난하고 있다는 것 정도다. 영화는 이들의 현재와 상황을 제시할 뿐, 그들의 내밀한 이야기를 보여주지는 않는다.
그러다 보니 피 흘리는 와중에도 베킷을 끊임없이 뛰고 구르도록 만드는 동기 중 하나인 죄책감 혹은 상실감은 마치 타인의 부고 기사를 읽는 듯 무미건조하게 느껴진다. 만약 둘이 어떻게 만났고, 어떤 추억을 공유했으며, 그들의 사랑이 얼마나 깊고 강한 지를 알려줄 장면이 짧게나마 있었다면 이러한 감상은 달라졌을 것이다. 물론 위의 내용만 있어도 베킷의 심정을 이해하는 데는 무리가 없다. 그러나 영화의 구조상 감정적으로 이입할 수 있는 캐릭터가 베킷이 유일한만큼, 주인공에게 공감할 여지를 주지 않는 로맨스는 도입부로서 실패라고 볼 수 있다.
본격적인 이야기가 전개되는 베킷과 그리스 경찰 간의 추격전 역시 기대에 걸맞은 모습을 보여주지는 않는다. 일단 긴장감이 없다. 사실 한 남자가 갑자기 표적이 되고, 정신없이 쫓기는 와중에 자신을 죄어오는 올가미를 하나둘씩 알아챈다는 전개는 이미 그 자체로 하나의 클리셰다. 그렇기에 위기에 빠진 주인공이라는 상황만으로는 더 이상 서스펜스를 자아낼 수 없다.
따라서 <베킷>과 같은 영화는 주인공을 다양한 변칙적인 상황 속에 던져 놓아야 하는데, 바로 이 대목에서 <베킷>은 잘못된 선택을 한다. 경찰에 의해 곤경에 처한 베킷이 그리스 현지인들의 도움을 받아 도주하고, 이에 경찰들은 현지인들을 위협해 얻은 정보에 기반해 그를 다시 추격하는 일련의 과정을 반복하기 때문이다. 암석으로 가득한 그리스의 산을 비롯해 좁은 공간 그 자체로 서스펜스를 고조시키는 집 내부나 기차 칸 같은 다양한 환경을 공간적 배경으로 삼고도 이들을 베켓의 추격전에 유의미한 변수로 작용시키지는 못한다. 단지 그리스어 대사에 해당하는 자막을 보여주지 않으면서 불안함과 초조함을 가중시키는 재치만이 잠시 빛날 뿐이다.
또한 중간중간 삽입되는 액션 역시 흥미를 돋우는 데 실패한다. 여러 영화에서 볼 수 있었던 액션 시퀀스는 신선하지 않다. 단적인 예로 주차장 건물에서 펼쳐지는 클라이맥스는 시간대만 낮으로 다를 뿐, <다크 나이트>에서 배트맨이 처음 등장하는 주차장 장면과 유사하다. 유사한 주제의식과 이야기를 공유하는 <본 얼티메이텀>을 연상시키도 한다. 액션 영화라는 장르적 특성을 감안하더라도 받아들이기 어려운 베킷의 능력 역시 몰입을 방해한다. 총탄이 복부를 관통하거나 건물 3층 높이에서 보어내려도 좀처럼 지치지 않고 고장 나지 않는, 슈퍼 히어로에 필적하는 그의 내구성과 신체적 능력은 영화의 개연성을 과하게 파괴한다. 특히 그리스의 현실과 밀접한 관련을 맺는 작품이라는 측면에서 비현실적인 액션은 영화의 전반적인 톤과도 어울리지 않는다.
무엇보다도 <베킷>은 이 작품의 궁극적인 목표라고 할 수 있는 그리스와 유렵연합, 미국이 뒤얽힌 정치 스릴러를 설득력 있게 풀어내지 못했다. 영화는 그리스에서 급진좌파연합(시리자, SYRIZA)이 정권을 잡고 그리스 구제금융 국민투표를 시행한 2015년 전후를 배경으로 삼은 듯 보인다. 당시 그리스에서는 세 번째 구제금융의 대가로 유럽연합에서 제안한 긴축재정 시행을 두고 사회적 갈등이 심화되었고, 급진좌파연합은 그리스의 경제 주권을 침탈한다는 이유로 긴축안을 거부하며 국민들의 지지를 받았다. 한편 2014년 우크라이나 사태를 경험한 후 러시아에 대한 경계심이 높아진 미국은 그리스가 유럽 연합 대신 러시아 혹은 중국으로부터 자금 지원을 받고 나토의 방어체계에서 떨어져 나가는 불상사를 걱정 중이었다.
문제는 영화의 불친절함 때문에 이러한 그리스의 국내외 정치적 배경을 좀처럼 알아챌 수 없다는 데에 있다. 영화는 철저히 베킷의 시점에서 진행되며, 그 결과 그리스의 정치 상황도 그저 외국인이자 관광객의 시점에서 묘사될 뿐 명확하게 설명되지 않는다. 그리스, 유럽연합, 미국, 러시아가 얽히고설킨 국제정치적 상황에 대한 설명이 미국 대사관에 걸린 오바마 대통령의 사진에 모두 함축되어 암시되는 것이 그 예시다. 베킷이 그리스 정치와 관련된 정보를 미국 대사관과 좌익 활동가로부터 각각 입수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베킷이 발견한 어린 남자아이의 중요성을 정반대의 입장에서 파악하고 해석한 정보는 필연적으로 상충될 수밖에 없고, 이는 베킷과 시청자들의 혼란을 가중시킨다. 그래서 그리스의 현실을 자세히 알지 못할 경우, 영화의 흐름과 전개를 쫓는 것도 녹록지 않다.
그러다 보니 <베킷>의 주제의식은 좀처럼 손에 잡히지 않는다. 영화는 미국 대사관의 도움에 실낱같은 희망을 거는 베킷과 자국민 보호라는 의무를 저버린 대사관 직원을 대비시키면서 국민의 보호라는 국가의 윤리적 의무와 현실적 이익의 충돌을 담아내고자 한다. 그리스의 정치적 배경이 작중 가상의 그리스 우익 정권을 미국 정부가 돕고, 미국 대사관 측에서 교통사고로부터 그리스 정치계를 뒤흔들 단서를 발견한 평범한 미국 시민을 제거하려는 동기로 작용했기에 가능한 일이다. 이 맥락에서 보면 자국의 이익과 반대로 행동하며 미국을 공격하는 캐릭터인 베킷, 평범한 시민이었던 그의 변화는 국가가 국민을 보호하지 않고 신뢰를 저버릴 때 초래할 나비효과를 상징한다. 잘못된 경제정책과 복지정책으로 인해 국가가 국민을 지켜줄 수 없는 상황에 처한 그리스를 배경으로 하기에 이 메시지는 분명 의미심장하다. 단지 명료하게 전해지지 않을 뿐이다.
<베킷>의 실패는 영화의 얼굴이라고 할 수 있는 주연 배우 존 데이비드 워싱턴의 모습에서 직관적으로 느껴지기도 한다. 영화에서 존 데이비드 워싱턴은 베킷보다도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테넷>의 주인공처럼 느껴진다. 물론 두 작품 모두 전반적으로 건조하고 침착한 톤을 유지하며, 주인공을 본인도 정확히 알지 못하는 상황에 빠트린다는 흐름 상의 유사점이 있기는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베킷이 <테넷> 속 '주도자'로 보인다는 사실은 결과적으로 영화가 자신만의 개성을 보여주지 못했음을 방증한다. 베킷이라는 인물을 생동감 있게 묘사할 수 있을 만큼 극의 완성도가 높지 못했기에 영화의 얼굴인 주연 배우에게 다른 얼굴이 온전히 덧입혀지지 않았다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베킷 혼자 나오면 무색무취하던 영화가 에이프릴과 레나가 등장할 때 잠시 생동감을 되찾는 것만 보더라도 <베킷>이 자신의 이야기를 온전히 펼치지 못했다는 사실은 어렵지 않게 확인할 수 있다.
P(Poor, 형편없음)
설렘 없는 로맨스, 지루한 추격전, 이해가 되지 않는 정치극이 빚어낸 총체적 난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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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배터드 바스터즈 오브 베이스볼
넷플릭스 다큐멘터리. 보는 내내 기분 좋게 웃을 수 있는 즐거운 영화. 이 영화를 보고나서 조금 밉상이었던 영화배우 커트 러셀이 멋지게 보일 정도였다. 커트 러셀은 쿠엔틴 라탄티노 감독의 영화 '데스 프루프'에서 악당으로 나와 세 명의 여성에게 곤죽이 되도록 맞아죽는 역할을 하는데, 영화의 엔딩 장면은 남성우월주의, 여성혐오, 남성가부장제, 페미니즘 등을 모두 내포한 상징적 장면이다.
이 다큐멘터리에서 발견할 수 있는 두 가지는, 커트 러셀의 집안, 정확히는 아버지 빙 러셀의 일대기에 관한 이야기와 미국 프로야구의 민낯이다. 빙 러셀은 자신의 삶에서 야구를 분리할 수 없을 정도로 야구 팬이자 직접 선수로도 활약한 인물이다. 아버지의 영향을 받아 커트 러셀도 한때 아버지가 운영하는 구단, 포틀랜드 매버릭스에서 선수로 활동했었다.
싱 러셀이 야구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아홉 살 무렵이라고 그의 아내 루 러셀이 증언한다. 싱 러셀의 아버지가 수상비행기를 가지고 있을 정도였으니, 러셀의 집안이 기본적으로 상류층이라고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싱의 아버지와 이야기를 하던 사람이 레프티 고메스로, 당시 뉴욕 양키스 투수였다. 이후 싱 러셀은 뉴욕 양키스 선수들과 함께 생활할 정도로 가까웠고, 루 게릭의 마지막 홈런 방망이를 가질 정도로 특별한 존재가 되었다. 그는 선수들이 타는 버스를 함께 타고 다녔고, 연습장에서 마음껏 선수들 사진도 찍는 귀염둥이였다.
결국 싱 러셀은 독립구단의 프로야구 선수가 되어 선수생활을 했으나, 머리에 폭투를 맞고 더 이상 선수생활을 할 수 없게 되었다. 싱 러셀은 가족을 이끌고 동쪽 끝 메인주에서 서쪽 끝 캘리포니아 헐리우드로 이주했다. 싱 러셀은 배우가 될 계획을 세웠는데, 헐리우드로 이주해 곧바로 조연 배우로 활동을 시작했다. 승마 실력이 좋아서 서부영화에 악역 조연으로 출연했고, 그가 출연한 '보난자' 시리즈는 인기를 끌었다. 그는 당대 유명배우들과 함께 출연했으며, 특별한 존재로 부각하지는 못했어도 꽤 성공한 배우였다.
그런 싱 러셀이 배우를 하면서도 마음에 품고 있던 것은 야구였다. 그는 야구 교습용 비디오를 제작했고, 이 비디오는 미국 프로야구 선수들도 참고할 정도였다. '보난자' 시리즈가 막을 내리면서, 40대의 싱 러셀은 갑자기 백수가 되었다. 1973년, 포틀랜드 비버스 야구팀이 연고지를 다른 곳으로 이전하면서 포틀랜드에 야구팀이 사라졌다. 비버스는 인기 없는 팀이었고, 만성 적자에 시달리고 있어서 더 작은 도시로 이전한 것이다.
이때 빙 러셀이 포틀랜드에 싱글A 야구팀을 창단하기로 결정한다. 포틀랜드에 연고가 있는 것도 아니고, 빙 러셀이 유명한 사람도 아니어서 포틀랜드 주민들은 빙 러셀의 야구단 창단을 믿지 않거나, 이상하게 생각했다.
빙 러셀은 헐리우드로 이주하기 전에 독립구단에서 프로선수로 활동하기도 했으니, 그가 독립구단을 창단한다고 생각한 건 자연스러운 것이었다. 하지만 1970년대에는 이미 미국에 독립구단이 존재하지 않았고, 메이저리그의 하위 리그 구단도 모두 메이저리그에 소속되어 있었다.
포틀랜드 주민들이 싱 러셀의 야구단 창단을 달가워하지 않았던 이유는 또 있었다. 바로 직전에 다른 연고지를 찾아 이전한 포틀랜드 비버스는 트리플A(AAA) 팀으로, 메이저 리그 바로 아래의 수준이었는데, 싱 러셀이 창단하겠다는 야구팀은 고작 싱글A(A) 팀으로, 이제 막 동네 야구의 수준을 벗어난 사회인 야구팀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포틀랜드 주민들은 이것을 모욕으로 받아들였다.
구단주는 빙 러셀, 감독은 프랭크 피터스, 단장은 래니 모스였다. 당시 미국 프로야구의 유일한 독립구단으로 출발한 것이다. 선수는 신문광고를 내서 공개모집했는데, 모두들 어처구니 없어했다. 어중이떠중이들만 모일 거라고 예상했고, 몇 명 오지도 않을 거라고 했는데, 공개 선발시험에 무려 400명 넘게 참가했고, 미국 전역에서 모여들었다. 이 무명의 선수들은 오로지 야구를 하고 싶다는 꿈을 가지고 몰려든 것이다. 심지어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날아오기도 했다.
그렇게 선수를 선발하고, 싱글A 리그에서 경기를 시작한다. 이들이 소화할 경기는 모두 84게임. 매버릭스 선수들은 모두 저마다 개성 있는 사람들이어서 언듯 보기에 오합지졸로 보였다. 마침내 첫 경기가 열렸고, 매버릭스는 4대 0으로 완봉승, 심지어 투수 진 랜섬은 노히트 노런을 기록한다. 이후 11-1, 11-4, 10-4, 12-5, 7-1 등 다른 팀을 압도한다. 별 볼일 없는 팀이라고 무시했던 포틀랜드 주민들은 놀라운 경기를 보여주는 매버릭스를 보기 위해 경기장을 찾기 시작했고, 지역신문에도 소개된다.
메이저리그 산하 구단 가운데도 싱글A 팀이 많았고, 이들은 독립구단인 매버릭스에 번번이 깨졌다. 메이저리그 구단주들은 독립구단 매버릭스가 눈엣가시였다. 매버릭스의 인기는 마침내 미국 전역에 알려졌고, 1974년, 싱 러셀은 '올해의 구단주' 상을 받기도 했다. 이것은 독립영화로 오스카상을 받는 것과 같다고 포틀랜드 지역신문 기자들이 증언한다.
1975년에 싱 러셀은 공중파TV NBC에 출연하고, 매버릭스 팀과 선수들도 자세하게 소개되면서, 매버릭스는 전국에 널리 알려진 스타 팀이 된다. 이 팀에 '짐 버튼'이라는 투수가 등장하는데, 뉴욕 양키스의 주전 투수로 월드시리즈에 진출한 최고의 투수였으나, 그가 쓴 책이 메이저 리그의 추문을 폭로했다는 이유로 구단에서 쫓겨나 야구를 그만두어야 했다. 그때 싱 러셀이 매버릭스에서 함께 뛰자고 제안했고, 짐 버튼은 매버릭스의 투수로 활동한다. 이후 짐 버튼은 1978년 메이저리그에 복귀한다.
포틀랜드에서 야구는 다시 인기를 얻기 시작했고, 시민들은 야구장을 찾았다. 독립구단에 싱글A팀이 하는 야구를 보기 위해 경기장을 찾은 관중 숫자는 미국야구에서 신기록을 세운다. 예전 팀인 비버스의 경기에는 겨우 30-40명 정도가 경기장을 찾았지만, 매버릭스 경기 때는 평균 4천5백명, 시즌 전체 12만 7천 명으로 마이너리그 신기록이었다. 즐겁고, 재미있고, 행복한 야구를 하는 매버릭스의 경기는 그 경기를 보러 오는 관중들까지 동화되었다.
메이저리그에서 운영하는 싱글A, 더블A, 트리플A 팀은 메이저리그 선수를 기르기 위한 육성팀의 역할에 불과했으므로, 메이저리그에서 하위 리그 경기의 승패나 즐거움은 전혀 고려하지 않았다. 하지만 매버릭스는 독립구단이었고, 무엇보다 야구를 즐기면서, 재미있게 하자는 철학을 가지고 있었기에 관중도 그 느낌을 안 것이다.
빙 러셀은 기존의 메이저리그 시스템에 맞서고 있었다. 빙 러셀이 그걸 계획한 것은 아니지만, 빙 러셀의 야구철학이 자연스럽게 메이저리그와 대립하게 된 것이다. 1977년에 매버릭스는 승률 66%로, 미국 전체 야구팀 가운데 1위였다. 메이저리그 산하구단은 매버릭스의 리그 우승을 막기 위해 메이저리그에서 활약하는 최고의 선수를 내려보냈다. 노스웨스트 리그 최종 결승전이 열리고, 강력한 우승 후보였던 매버릭스는 2-1로 패한다.
1978년, 포틀랜드를 떠났던 트리플A 팀이 다시 돌아온다는 소식이 들렸다. 이때 메이저리그의 법은 상위 구단이 들어오면 하위 구단은 그 지역을 떠나야 했다. 상위 구단은 지역에서 반경 145km 이내에 다른 구단이 존재하지 못하도록 막을 수 있는 권한이 있었다.
이런 일이 발생한 것은 메이저리그가 독립구단인 매버릭스를 없애기 위한 작전인 것이 분명했다. 그걸 알면서도 빙 러셀은 일방 당할 수밖에 없었다. 새로 포틀랜드로 들어올 구단은 빙 러셀에게 이전 비용은 2만6천 달러를 제시하면서, 기존의 관례보다 5배를 더 주는 것이라고 했다. 빙 러셀은 그 제안에 대해 무려 10배가 많은 20만6천 달러를 제시했다. 결국 이전 비용 문제는 법정으로 갔고, 법원은 중재를 거쳐 최종 결론으로 빙 러셀의 주장을 받아들이게 된다. 이것 역시 마이너리그 사상 최고 금액이었다.
빙 러셀과 매버릭스 선수들은 자신의 꿈을 이루는 멋진 시간을 보냈다. 미국 야구역사에서 매버릭스의 존재는 즐겁고, 재미있는 야구, 행복한 야구를 하는 마지막 독립구단으로 기억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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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혹한 현실 속에서 참혹하게 살아가기!
한결과 고운은 보증금 사기를 당해서 집이 없이 떠도는 삶을 살아가는 젊은 부부이다. 자신들은 아기를 키우느라 좀 더 좋은 환경에서 키우고 싶은 욕심이 있다. 매일 찜질방이나 모텔을 떠돌며 지내는 이들에게 한결은 자신에게 잘해줬던 할머니 집에 1달간 살기로 한다. 사실 할머니는 미국에 가서 한결에게 집에 들어오라고 했던 사람이다. 그러나 이 새로운 집에서 아기를 키우면서 한결과 고운에게 또 다른 걱정거리가 생긴다. 집이 없어 보증금이 없는 집에서 살아왔던 이 부부에게 과연 무슨 일이 벌어질까? 한결은 할머니가 왜 그런 말을 했고 집을 비웠을까? 고운은 아기가 급성 세균 감염에 걸려 치료해야 하는데 돈이 없다. 이 두 부부는 무슨 짓을 벌일까?
돈이 없어 여기 저기 떠도는
젊은 부부의 이야기!
현실에 있을 법한 이야기, 이 두 부부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
참혹한, 어쩌면 더 참혹하게
한결은 배달 일을 하며 가족의 생계를 꾸리는 사람이다. 하지만 보증금 사기를 당하고 난 뒤에 아기가 다쳐도 병원비를 낼 수 없는 형편이었다. 그래서 누군가에게 돈을 빌려야 간신히 살아갈 수 있는 환경에 처해있다. 고운도 보증금 사기를 당해서 경찰에 신고를 했지만 고운 뿐만 아니라 다른 피해자들도 돈을 돌려받을 수 없었고 고운은 계속 힘든 삶을 살아간다. 떠돌던 이들은 결국 한결에게 잘해줬던 할머니 집에 들어가게 되고 한결은 이 집에서 보증금을 모을 동안 1달간 살기로 한다. 하지만 할머니가 2층 방에서 죽어있었던 걸 목격하고 한결과 고운은 할머니의 시체를 땅에다 묻는다. 그리고 이 두 부부는 이 집에 들어온 이후로 싸움이 잦아지고 고운은 한결에게 할머니를 죽였냐고 의심을 하기까지 한다. 이 물음에 한결은 그런 일이 없었다고 말하지만 나중에 할머니의 요양을 담당했던 사회복지사가 이 집으로 방문을 했고 수상한 낌새를 느끼고 떠난다. 어쩌면 이들에게 필요했던 것은 더 나은 환경에서 살아가기를 원했던 것일까? 잔인한 현실 속에서 어렵게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렇기에 한결과 고운도 살아남기 위해 악착같이 살려고 했으나 결국 돈을 훔치게 되고 할머니를 죽였다는 의심도 받게 되어 걸리게 되면 감옥을 갈 수 있다는 사실을 아무도 모르게 숨긴다. 그래서 참혹한 현실에서 더 참혹하게 살아가는 것이 아니었을까?
보증금 사기를 당한 한결과 고운에게
주어졌던 것은 아무것도 없다. 참혹한 현실에서 살아남기란 쉬운 게 아니었기에...
※ 씨네랩의 크리에이터로서 시사회에 초대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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