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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이나 유럽으로 나갈 날만 기다리며 외무부 중동과에서 하루하루 버틸 뿐인 외교관 ‘민준’(하정우). 그러던 어느 날, 민준은 놀라운 기회를 잡는다. 20개월 전 레바논에서 실종된 외교관 '오재석'(임형국)의 암호 메시지를 받은 것. 아무도 레바논에 갈 생각을 안 하는 가운데, 민준은 외무부 장관의 약속을 받아낸다. 비공식작전에 성공하면 미국 발령이라는 약속을. 이에 그는 레바논으로 향한다.
부푼 희망을 안고 베이루트 공항에 도착하자마자 공항 경비대에게 쫓기는 민준. 공항을 간신히 빠져나온 그는 한국인 택시기사 ‘판수’(주지훈)를 우연히 만난다. 설상가상으로 인질 몸값을 노리는 갱단마저 그를 쫓기 시작하자, 민준은 아무리 봐도 사기꾼 같은 판수만 믿고 비공식작전을 수행하기 시작한다.
매력 없는 모범생
팬데믹을 거치면서 한국 영화계에는 새로운 트렌드가 생겼다. 한국 외교사의 비하인드를 다루는 작품이 여럿 공개됐다. 남북 외교관의 소말리아 탈출기를 그려낸 <모가디슈>, 샘물교회 선교단 아프가니스탄 피랍사건을 다룬 <교섭>이 대표적이다. 김성훈 감독이 메가폰을 잡고 하정우, 주지훈이 출연한 <비공식작전> 역시 같은 트렌드를 따른다.
사실 트렌드에 올라탄 영화는 양날의 검을 손에 쥐고 있다. 상황이 좋게 흘러가면 관객의 니즈를 정확히 겨냥해서 흥행할 수 있다. 반대로 뒤늦게 트렌드에 올라탄 경우 리스크가 크다. 앞선 작품들과의 차별화에 실패해서 관객의 눈도장을 찍기 어렵기 때문이다. <비공식작전>은 후자에 가까운 상황이다. <교섭>의 흥행 실패는 해당 소재가 소구력이 없다는 현실을 보여줬다.
이에 <비공식작전>은 최대한 많은 관객을 최대한 넓히려고 노력했다. 초반부는 유머러스하다. 후반부를 채운 액션 시퀀스는 강렬하다. 하정우와 주지훈의 케미는 익숙하지만, 기대한 재미를 선사한다. 그 와중에 시대상을 반영한 묵직한 드라마는 심금을 울리기 위해 노력한다. 마치 모범생 같다. 특출 난 지점은 없어도 고루고루 균형을 잡았다. 다만 그 때문에 또 다른 문제가 생긴다. 조금 가혹하게 말하자면, 재미는 있되 매력이 없다.
묵직한 드라마의 힘
<비공식작전>에서 눈에 먼저 들어오는 대목은 드라마다. <교섭>과 유사한 이야기가 전체 틀을 잡는다. 두 작품 모두 국가의 역할에 대해 이야기한다. 다만 전달하는 방식은 다르다. <교섭>은 '정재호'(황정민)를 어떻게든 국민을 살려야 한다는 사명감의 화신으로 소개했다. 하지만 인물과 관객 간의 가교를 놓는 데는 실패했다. 개인의 일탈이 두드러진 샘물교회 사건을 소재로 삼다 보니 관객이 주인공에게 몰입할 여지가 없었다.
<비공식작전>은 영리하다. 정반대의 길을 택했다. 초반부에 민준은 허술하다. 그에게 외교관으로서 대단한 사명감은 사치다. 서울대 출신 후배에게 밀려 승진 못하는 그는 평범한 공무원 중 하나다. 이 소시민적 감성 덕분에 관객은 손쉽게 민준에게 마음을 열 수 있다. 이 교감은 그의 변화를 납득할 수 있는 여지도 준다. 평범한 직장인이 모든 자국민을 구하려는 진정한 외교관으로 거듭나는 이야기를 자연스럽게 따라갈 수 있다.
보조 플롯도 인상적이다. 레바논에서 그가 사투를 벌이는 동안 외무부는 안기부와 갈등을 빚는다. 외교관을 한 명이라도 더 구해야 되지 않겠냐는 외무부 장관의 항변은 힘이 없다. 외무부의 단독 작전 때문에 안기부장 심기가 불편해졌으므로. 이 갈등은 결국 국가의 역할에 대한 질문이다. 국익을 따지기 전에 국가는 국민의 생명을 보호해야 한다고 말한다. 6월 민주 항쟁과 서울 올림픽이 시대적 배경이라 더 의미심장하다. 그러다 보니 외무부 직원들의 단체 행동, 오재석 서기관과 민준의 만남은 과한 연출 없이도 뭉클하다.
분위기를 환기하는 버디 무비
물론 드라마에만 집중하면 자칫 분위기가 너무 진지해질 수 있다. <비공식작전>는 버디 무비를 활용해 열기를 적절히 식힌다. 민준과 판수의 티키타카가 쉼터인 셈이다. 이 접근은 효과적이다. 두 주인공의 이야기가 버디 무비의 전형과 조금은 다르기 때문이다.
보통 버디무비는 상극의 사람이 만나서 이야기를 만들어 간다. 처음엔 온갖 갈등을 빚다가 점차 닮아가는 변화의 감동이 핵심이다. 인종부터 성격까지 모두 다른 주인공이 등장한 <그린북>처럼. <교섭>만 해도 주인공의 성격도 스타일도 정반대였다.
<비공식작전>은 다르다. 외교관 민준과 사기꾼 판수는 사실상 같은 인물이다. 민준은 외무부 중동과를 벗어나고 싶어 하지만 갇혀 있고, 판수는 레바논을 떠나고 싶지만 그럴 수 없는 사람이다. 그러던 중 그들은 눈앞에 찾아온 천금 같은 기회가 찾아오자 사투를 벌인다. 달리 말해 <비공식작전>은 같은 처지에 있는 두 사람이 꿈을 이루기 위해 협력하는 이야기다.
여기에 김성훈 감독의 장기가 곁들여진다. 그의 작품은 대체적으로 어둡지만, 유머를 잃지 않는다. <터널>처럼. <비공식작전>도 마찬가지다. 문을 사이에 둔 티키타카, 돈가방을 둘러싼 추격전에서는 두 배우의 합이 웃음을 유발한다. 그 과정에서 두 인물은 유대감을 쌓는다. 목적지만 가면 그만이었던 택시 기사와 승객은 서로를 진짜 목적지에 데려다 주기 위해 노력하는 동지가 된다. 기사와 승객이 바뀐 듯 보이기도 한다. 그 덕분에 이 버디 무비는 뭉클한 진심을 자연스럽게 전달할 수 있다. 가랑비에 옷 젖듯이.
방점을 찍은 액션
마지막으로 <비공식작전>은 액션과 서스펜스로 관객의 눈길을 끝까지 사로잡으려 한다. 액션의 스케일은 크지 않다. 하지만 지형지물을 아기자기하게 활용해서 긴장감을 고조한다. 광야에서 들개가 나오는 장면, 베이루트의 주택 옥상에서 민준과 무장 단체와의 대치, 차가 낄 정도로 좁은 골목길을 종횡무진하는 카 체이싱 장면이 대표적이다. 다만 비슷한 배경의 <모가디슈>와 비교하면 결정적인 장면이 부족하다는 인상도 남는다.
색다른 지점도 있다. 후반부 액션에서는 두 주인공의 활약이 두드러진다. 그런데 초중반부에는 검문소 테러 장면처럼 민준과 판수가 액션의 주체가 아니라 관찰자인 대목이 있다. 오재석 씨를 만나러 가는 도중에는 현지 중동 테러 조직의 교전 한가운데에 떨어지기도 한다. 이러한 간극은 오히려 영화의 몰입도를 높여준다. 지나치게 영화적인 액션이 아니라서 현실감이 살기 때문이다. 또 <교섭>과 달리 단조로울 수 있는 액션 패턴에 변주를 주면서 여름 대작에 걸맞은 쾌감을 주려 한다.
모범생이라 아쉽다
그러나 <비공식작전>은 끝끝내 아쉽다. 다방면으로 뛰어난 모범생이지만, 확실한 매력이 안 보인다. 배우 활용법은 문제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일례로 민준은 <수리남> 속 '강인구'와 결이 비슷하다. 그들은 그저 더 잘 살아보기 위해서 남들이 안 하는 일을 했고, 그 대가로 곤경에 빠진다. 둘 모두 적당히 가볍고, 종국에는 옳다고 생각하는 일을 한다. 대중적으로 익숙한 배우 하정우의 이미지가 고스란히 투영된 결과물이다.
영화의 전반적인 구도와 분위기가 감독의 전작인 <터널>을 닮은 점도 모범생 이미지를 강화한다. 위기에 빠진 주인공은 고립된 공간에서 원맨쇼를 펼친다. 바깥에서는 주인공을 도우려는 이들과 방해하는 세력이 갈등을 빚는다. 진지한 분위기는 주인공의 예상치 못한 코미디 덕분에 환기된다. 주인공이 혼자가 아니라 둘이라는 점만 다를 뿐이다. 그 결과 <터널>의 확장판을 보는 듯한 느낌을 떨칠 수 없다. 한 번 찾아낸 성공 방정식을 따라갔다는 인상이 강한 이유다.
그러다 보니 <비공식작전>은 굳이 극장까지 가서 봐야 하는 이유를 제공하지 못한다. <범죄도시 3>나 <밀수>가 호불호는 갈려도 자기만의 확고한 개성을 어필해 관객을 극장까지 유인한 것과 대조를 이룬다. 물론 팝콘 무비로서 튀는 단점이 없다는 점은 여름 시장에서 장점일 수 있다. 하지만 하정우와 주지훈, 그리고 김성훈 감독의 조합이 갖는 무게감과 명성에 비하면 마냥 장점이라고 하기도 애매해진다.
<비공식작전>은 여러모로 작년 여름시장의 생존자 중 하나인 <헌트>를 떠올리게 한다. 장르적으로 스릴러와 액션이 중심이라는 점에서 포지션이 유사하다. <신과 함께> 시리즈로 천만 영화를 만들어 냈던 하정우-주지훈 조합도 이정재-정우성 커플을 연상하기에 충분하다.
하지만 <헌트>와의 유사점 때문에 <비공식작전>의 단점은 오히려 더 분명해진다. 러닝타임을 액션으로 꽉꽉 채우고, 두 주인공의 비중도 거의 오 대 오로 가져가면 최대한 개성을 살리려 노력한 <헌트>. 반대로 <비공식작전>은 어떤 면도 준수한 수준 이상의 완성도를 보여주지 못했다.
그러다 보니 <비공식작전>의 미래는 어둡다. 극장에서 <헌트>처럼 손익분기점까지 버틸 수 있을 거라는 기대는 크지 않다. 심지어 <콘크리트 유토피아>와 예매율 1위를 차지한 크리스토퍼 놀란의 <오펜하이머>가 대기 중이니 앞날은 더욱 암울하다.
Acceptable 무난함
재미는 있다. 극장까지 가는 게 관건일 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