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드레2022-08-27 01:35:06
레모네이드의 씁쓸한 맛은 왜 그녀의 몫이 되었나.
영화 <레모네이드> 리뷰
여러 시선이 모여 한 방향을 가리키고 있다면 우리는 어느 곳을 봐야 할까. 당연하게도 여러 시선이 모인 한 방향을 봐야 한다고 대답할 것이다. 하지만 실제론 그렇지 않다. 생각보다 사람들은 남에게 관심이 없기 때문이다. 사소한 진실로 인해 발버둥 치듯 현실을 살아가는 한 사람의 이야기를 담은 레모네이드를 소개하려고 한다. 영화의 끝맛이 쓸지 달지는 보는 관점에 달렸다. 루마니아에서 온 마라는 미국인과 결혼하여 아메리칸드림을 꿈꾸고 있다. 다니엘과 함께하며 안정을 찾고 싶은 마라는 사랑해 마지않는 아들도 만났고 이제 영주권만 받으면 된다고 생각한다. 왠지 모를 두려움에 둘러싸인 마라는 여러 문제가 얽혀 있어서 더욱 불안해진다. 다시 돌아갈 수 없는 고향으로 인해 그 상황을 견디려 하지만 포기할 수 없었다. 그렇게 미국인이 되기 위한 발걸음을 내딛지만 그를 대가로 하는 현실을 맞닥뜨린다. 나아갈 수도 없고 뒷걸음칠 수도 없는 마라는 어떤 선택을 하게 될까.
디즈니랜드는 아니지만, 지금보다 더 나은 삶을 위해서 나아가는 수많은 사람은 마라를 통해 비친다. 미국에 정착하기 위해서는 누군가를 책임지고 동시에 잔혹해지며 거짓이 섞인 진실을 타협해야만 했다. 그것이 현실을 살아가기 위한 현실이자 현재였으니까. 이질감과 이분화된 개념들이 소외감을 불러일으켜 버겁게 느껴지지만 그런데도 나아가는 마라의 뒷모습이 인상적이다. 앞으로 나아가는 모습이 우직해서 이 사랑 섞인 환상이 환상이지 않기를 바랐던 마음이 부끄러워지기도 했다. 특정인에게 일어나는 일이 아닌 만큼 영화가 내어주는 분위기가 굉장히 힘들게 느껴졌다. 상황을 전달하는 것도 물론 중요하다고 생각하지만, 그 상황을 어떻게 표현하는지가 굉장히 중요하다. 이 영화는 끊임없이 자기 세계로 빨아들이려는 사람들로 인해 고통스러웠지만 동시에 세상을 살아가는 방식을 깨닫는 방식이 아프게 느껴졌다. 타인의 약점 앞에 선 인간은 한없이 잔혹해지는 것 같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안개 속을 헤쳐 나가는 마라가 무사히 살아가길 바라며 이 영화의 달콤씁쓸한 맛을 전한다.
Relative cont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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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관찰자의 시선이 머무는 곳
*본 리뷰는 씨네랩 크리에이터 '레이'님의 콘텐츠입니다. 출처는 하단의 주소에서 확인 가능합니다.
가장 개인적인 것이 가장 정치적인 것이다
다르덴 형제의 영화들은 일반 관객이 이해할 수 없는 범주를 향해 나아가지 않는다. 대중적이지 않은 소재를 다루면서도 대중이 공감할 수 있는 지점에서 멈추는 카메라는 현실과 극의 경계에 머물며 관객이 불편해지기 시작하는 시점에 도달한다. <언노운 걸>, <소년 아메드>와 같은 영화들은 다르덴 형제에 대해 전혀 알지 못해도, 극중의 배경에 대해 몰라도 이해하는 데 거의 지장이 없다. 대단히 일반적인 관객을 상정하는 이들 카메라는 그러면서도 감정을 강요하지 않는 선에 머문다. <토리와 로키타> 속 토리(파블로 실스 분)와 로키타(졸리 음분두 분)에게 벌어지는 폭력은 유혈사태와는 거리가 멀고 로키타를 클로즈업하여 폭력을 가리거나 로키타에게서 거리를 둠으로써 폭력을 간접적으로 묘사한다. 그리고 로키타를 향한 폭력은 토리에게 직접적으로 보이지 않거나 폭력의 사후에 발견된다. 폭력을 직접적으로 묘사하지 않으면서, 그리고 피해자의 감정적인 모습을 포착하지 않으면서 관객에게 폭력의 심각성을 알리는 고단수의 관찰은 한편으로는 폭력으로부터 관객을 무감각하게 유리시키기도 한다.
성폭력을 위시한 폭력을 묘사할 때 묘사자는 2차 가해와 폭력 포르노로부터 끊임없이 스스로를 검열해야 한다. 폭력에 대한 직접적인 묘사는 문제의 심각성을 환기하고 이목을 집중시키는 효과를 내지만 때로는 피해자에 대한 2차 가해가 되기도 하고 모방범죄를 일으키기도 한다. 또한 폭력을 묘사하기 위해 진행된 촬영 과정에서 재연 배우가 피해자가 되기도 한다. 다르덴 형제의 영화들에서 카메라는 결코 포르노의 선을 넘지 않지만 관객의 다소 냉담한 반응을 감수해야 하기도 한다. 영화상 로키타가 겪는 첫 성폭행은 대단히 간접적으로 묘사되기에 일부 관객은 알아차리지 못할 가능성마저 있다. 흥미롭게도 로키타가 겪는 성폭행에 대한 묘사는 서사가 진행되며 직접적인 묘사로 나아가는데(그러면서도 카메라는 로키타에 대한 섹슈얼한 시선과는 거리가 멀다), 관객의 시선과 토리의 시선이 일치해간다. 일부 둔한 관객은 알아차리기조차 쉽지 않은 첫 성폭행 장면에서 토리는 아예 배제되어 있다.
토리와 로키타의 현 상황에 대해서만 묘사하던 카메라는 영화 초중반이 되어서야 이들이 겪고 있는 문제를 드러낸다. 토리에게는 발급된 체류증이 로키타에게는 발급되지 않았고, 따라서 토리와 로키타는 헤어질 위기에 처한다. 로키타가 체류증을 정말 발급받아야 하는 상황인지, 이 둘이 친남매가 맞기는 한지, 로키타가 돈을 부친다는 부모는 친부모인 것인지 카메라는 현실적인 영역에는 결코 들어서지 않는다. 카메라의 관심은 오직 합법적으로 벨기에에 머물 수 없는 로키타와, 로키타와 헤어져야 하는 토리가 겪는 폭력적인 상황 뿐이다. 즉 다르덴 형제의 카메라는 정치적인 영역으로 전력을 다해 발을 내딛지 않는다. 체류증이 발급되지 않은 로키타와 헤어져야 하는 현실을 받아들일 수 없는 토리의 질문은 로키타를 향한 온정적인 시선을 요청하는 듯 보이지만 정작 로키타의 상황은 정확히 설명되지 않는다. 토리의 질문은 로키타에 대한 그리움으로써 묘사될 뿐 로키타의 체류증에 대한 당위성으로 이용되지 않는다.
최종적으로 다르덴 형제의 카메라가 도달하고자 하는 곳은 어디인가. 체류증이 필요한 이들에 대한 온정적인 시선인가, 이들을 둘러싼 역사적인 혹은 현실적인 문제들인가. 카메라는 이들 중 어디에도 관심이 없는 것처럼 보이며, 오직 약자를 이용하려는 가해자의 뒷모습만을 끊임없이 쫓아 들어간다. 토리와 로키타는 합법적인
앵벌이노동이 불가능한 상황이기에 너무나도 쉽게 불법적인 아르바이트에 동원된다. 이들이 발을 들인 공간은 애초에 불법이므로 그보다 더한 폭력이 발생하더라도 공권력의 개입은 도리어 위협이 된다. 이는 공권력의 도움을 받아야 하는 상황인 토리와 로키타가 경찰을 보자 오히려 피하려고 하는 장면에서 직접적으로 드러난다. 폭력을 직접적으로 묘사하지 않는 카메라는 사실은 폭력의 막다른 골목을 향하고 있는 셈이다.카메라가 관객의 온정적인 시선을 필요로 하지 않는 이유는 지극히 합리적이다. 일반인의 온정이 아닌 정치적인 문제가 해결되어야 토리와 로키타의 상황이 개선되기 때문이다. 언뜻 정치적인 선으로 넘어가지 않으려 애쓰는 것처럼 보이는 이들의 시선은 사실은 가장 정치적인 상황을 상정한다. 토리가 질문을 퍼붓는 면접관조차도 이들을 돕고 싶어하지만 규정이 변경되지 않는 이상 로키타는 체류증을 발급받을 수 없다. 다르덴 형제의 전작들, 특히 <언노운 걸>의 시선도 마찬가지였다. 의사 제니(아델 에넬 분)가 진료 시간이 끝나 더 이상 진료하지 않아 발생한 의료사고는 제니의 잘못으로 치부될 수 없다. 언뜻 개인의 잘못들로 점철된 것만 같은 사회는 사실은 집단적인 오류에 기반하고 있으며, 다르덴 형제의 카메라는 역설적으로 가장 개인적인 곳으로 렌즈를 들이대어 이를 폭로한다.
한쪽 다리를 다쳐 토리와 함께 모래 언덕을 하강하는 로키타의 모습은 이를 상징적으로 드러낸다. 신체의 일부만을 다쳤을 뿐이지만 이동 자체가 불가능해진 로키타에게 남은 선택지는 토리만을 보내거나 토리와 함께 급속도로 하강하는 것이다. 로키타와 하강하기를 선택한 토리에게는 아직 두 다리라는, 즉 체류증이라는 선택지가 있다. 하지만 스스로 도망칠 수 없는, 즉 체류증이 없는 로키타는 어디로도 갈 수 없다. 그리고 마지막 순간에 이들을 비추는 카메라는 그저 멀리서, 지켜보는 것 말고는 할 수 없는 관객의 시선을 대변할 뿐이다.
*본 리뷰는 씨네랩의 시사회 초청을 받아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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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외로운 이들의 서툴지만 따뜻한 크리스마스 삼중주
- 바튼 아카데미 (The Holdovers, 2024)
외로운 이들의 서툴지만 따뜻한 크리스마스 삼중주
개봉일 : 2024.02.21.
관람등급 : 15세 이상 관람가
장르 : 코미디, 드라마
러닝타임 : 133분
감독 : 알렉산더 페인
출연 : 폴 지아마, 더바인 조, 도미닉 세사
개인적인 평점 : 4.5 / 5
쿠키 영상 : 없음
마음의 고통과 눈(雪)은 비슷한 부분이 있다. 천둥, 번개와 함께 요란하게 내리거나 또는 적은 양이라 해도 난간에 부딪히는 소리를 내는 통에 자연히 인식하게 되는 비와 다르게 소리 없이 내리는 눈은 스스로 고개를 돌려 눈으로 담지 않는 이상 그것이 내리고, 쌓이고 있다는 걸 인식하기 어렵다.
마음의 고통도 그렇다. 신체적인 고통은 마치 비처럼 내가 인식하려 하지 않아도 정직하게 밀려오지만 마음의 고통은 비교적 편하게 외면하고 부정할 수 있다.
그런데 그것을 너무 오래 방치하면 오래되어 꽁꽁 얼어버린 눈, 얼음처럼 긁어내기 아주 어렵고 크게 미끄러질 위험이 생길 수도 있다. 하지만 스스로 그 고통을 인정하고 긁어내는 일은 결코 쉽지 않으며 기꺼이 그것을 대신해 줄 누군가를 만난다는 건 기적과도 같은 일이다.
<바튼 아카데미>는 오래 방치되어 얼음처럼 단단해진 마음의 고통을 안고 사는 세 사람이 함께 크리스마스를 보내면서 서로의 외로움을 긁어내고 또 그 위에 작은 불을 때며 그것을 녹여내는, 작은 기적의 순간을 담고 있는 영화다.
1970년, 부잣집 도련님들이 주로 다니는 기숙학교 바튼 아카데미에 크리스마스 연휴가 찾아온다. 모두가 가족들과 함께 크리스마스를 즐기러 떠나고 학생과 동료들 모두 기피하는 고집불통 역사 선생님 폴과 가정 문제로 고민이 많은 문제아 털리, 아들을 잃고 혼자가 된 주방장 메리. 세 사람만이 넓은 학교에 남게 된다.
그 누구도 이 조합을 원하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딱히 갈 곳도 없으니 이들은 어쩔 수 없이 함께 마주 보고 앉아 밥을 먹고 TV를 보고 대화를 한다. 그러다 어떠한 사건을 기점으로 마음속 깊이 자리 잡은 아픔을 공유하며 서로를 이해하게 된다. 겨울이 깊어질수록 서툴고 날카로웠던 말들은 점점 따끈하고 부드럽게 변하고 폴, 털리, 메리는 하나의 대안 가족이 되어 소박하고 소중한 크리스마스 연휴를 꾸며간다.
이야기 자체는 조금 투박하고 서툴지만 70년대 미국의 크리스마스 분위기와 그 시절 영화들이 담고 있는 특유의 빈티지한 느낌 덕분에 그것이 단점보단 영화 자체의 매력처럼 느껴진다. 그리고 곳곳에 배치되어 있는 작은 웃음 포인트와 예상치 못한 순간에 터져 나오는 배우의 에너지가 극에 숨을 불어넣으며 보는 내내 옅은 미소를 짓게 만든다. 한마디로 따뜻하고 행복해지는 영화. <바튼 아카데미>는 그런 영화였다.
단단한 얼음을, 오래 쌓인 외로움을 긁어내다
털리의 탈골 사고의 의미
폴은 어머니와 일찍 이별했고 어떠한 이유로 집을 나와 바튼 아카데미에 입학하며 엘리트 코스를 밟는다. 하지만 대학에 진학한 후 빽이 두꺼운 룸메이트와 엮이며 더 이상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바튼 아카데미로 돌아온다. 거기에 더해 트리메틸아민뇨증이라는 몸에서 악취가 나는 병을 앓게 되면서 그는 자연히 사람들과 거리를 두게 된다. 폴은 여러 나라를 여행하고 자신의 지식을 담은 책을 쓰고 싶다는 꿈이 있지만 마음에 쌓인 아픔들은 그를 계속 주눅 들게 만든다.
털리는 이혼한 부모님과 양 아빠 사이에서 깊은 외로움을 느끼고 있다. 털리의 엄마, 양 아빠는 그에게 경제적인 지원을 아끼지 않지만 딱 거기까지다. 엄마와 양 아빠는 털리의 학교생활이나 친아빠를 향한 그리움 대신 자신들의 행복에 초점을 맞추고 행동한다. 두 사람의 신혼여행을 이유로 홀로 학교에 남게된 털리는 쓰레기통을 걷어차며 분노와 슬픔을 표출해 보지만 행복한 신혼여행을 떠난 두 사람은 전화조차 받지 않는다.
메리는 아들 커티스가 태어나기도 전에 불의의 사고로 남편을 잃고 고군분투하며 어렵게 아들을 키웠다. 총명한 아들은 엄마의 치맛바람 없이 대학에 합격했지만 학비가 모자라 제때 입학하지 못하고 징집된다. 그리고 그는 얼마 지나지 않아 타지에서 사망하고 메리는 아들과의 추억이 있는 바튼 아카데미를 벗어나지 못한다.
폴, 털리, 메리에겐 가족과 관련된 아픔이 있고 그것을 여전히 극복하지 못한 채 아파하고 있다는 공통점이 있다. 이들은 그 아픔으로 인해 틀어진 자신의 마음을 애써 부정하거나 피하면서 외로운 나날을 보낸다.
- 아래 내용부터 영화의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그렇게 소리 없이 아픔과 눈이 두툼히 쌓여가던 겨울. 털리는 뜀틀을 넘다가 팔이 탈골되는 사고를 겪는다. 폴은 눈물 콧물을 줄줄 흘리는 털리를 병원에 데려가기 위해 차 위에 쌓인 얼음과 눈을 벅벅 긁어내 그를 병원으로 데려간다. 그 덕분에 털리의 팔은 무사히 제자리로 돌아온다.
이 사건은 털리가 들어가선 안될 장소(체육관)에서 커다란 고통과 틀어진 신체를 마주하고 그것을 다시 제자리로 돌려놓는 순서로 진행되는데, 이는 폴, 털리, 메리가 고통으로 틀어진 자신의 마음을 인지하고 그것을 되돌려놓는 영화의 전체적인 순서와도 닮아있다.
털리는 출입 금지 장소인 체육관에 들어가 틀어진 팔과 큰 고통을 마주하는 장면은 폴, 털리, 메리가 함께 크리스마스를 보내면서 평소엔 접근하지 않았던 마음 깊은 곳에 들어가 자신의 외로움과 아픔을 마주하게 되는 과정과 닮아있고, 폴이 털리를 병원에 데려가기 위해 차 위에 쌓인 얼음을 긁어내던 행동은 폴, 털리, 메리가 서로의 외로움을 이해하고 그것을 천천히 긁고 녹여내는 과정과 닮아있다. 그리고 폴 덕에 병원에 무사히 도착한 털리의 팔이 치료를 받고 제자리에 돌아오는 것은 폴, 털리, 메리가 마침내 조금 더 행복하고 조금은 덜 외로운 일상을 누리게 되었다는 엔딩과 닮아있다.
이러한 이유에서일까 털리의 탈골 사건 이후 이야기의 흐름이 조금씩 바뀌기 시작한다. 털리는 폴을 위해 거짓말을 하고 폴은 털리를 위해 새로운 크리스마스 트리를, 메리는 두 사람을 위해 따뜻한 크리스마스 식사를 준비한다. 그렇게 한 걸음을 뗀 세 사람의 우정은 날이 갈수록 깊어지고, 마음 깊이 쌓였던 아픔과 도로 위 눈들은 천천히 녹아간다.
새로운 크리스마스, 새로운 가족
크리스마스 트리와 체리쥬빌레의 의미
연휴가 시작되고 대부분의 학생들이 빠져나간 오후. 바튼 아카데미의 크리스마스 트리가 인부들에 의해 다시 팔려나간다. 마치 이 장소에 남겨진 이들은 행복한 크리스마스 분위기를 느낄 자격도 없다는 듯이 말이다.
세상은 크리스마스가 오기도 전 트리를 가져가버린 인부들처럼 일찌감치 폴, 털리, 메리의 소중한 가족을 앗아가고 그들이 행복할 자격도 빼앗는다. 하지만 폴, 털리, 메리는 이런 상황에서도 새로운 크리스마스와 새로운 가족을 만든다. 학교에 남은 세 사람은 학교에서 구매한 트리보다는 작지만 여전히 싱싱한 작은 크리스마스 트리를 함께 꾸미고, 다수의 사람들이 생각하는 행복한 가족과는 다르지만 충분하고 든든한 새로운 가족의 울타리를 만들어간다.
<바튼 아카데미>는 특별한 우정을 넘어 대안 가족의 영역으로 뻗쳐나가는 이야기다. 폴, 털리, 메리는 혈연으로 이어진 가족은 아니지만 서로의 아픔을 이해하고 감싸주는 새로운 가족을 이룬다.
활활 불타는 체리쥬빌레는 이들의 대안 가족 관계를 상징한다. 보스턴으로 여행을 떠난 세 사람은 저녁 식사를 위해 레스토랑에 모인다. 폴은 털리를 위해 그가 관심을 보인 체리쥬빌레를 주문하지만 직원은 원칙을 고수하며 주문을 받아주지 않고 화가 난 세 사람은 레스토랑을 박차고 나온다. 그리고 포장한 체리와 아이스크림. 주머니 속 술을 이용해 그들만의 활활 불타는 야매 체리쥬빌레를 만든다.
체리, 아이스크림, 술. 세 가지 재료로 만들어진 레스토랑의 시그니처 후식 체리쥬빌레는 엄마, 아빠, 아들이라는 보통의 혈연관계 가족을 떠올리게 만든다. 역사 선생, 주방장, 학생인 세 사람은 이 보통의 가족에 부합하지 않는다. 하지만 이들은 보통의 가족, 먹음직스러운 체리쥬빌레에 집착하지 않고 우리만의 가족, 우리만의 체리쥬빌레를 만든다.
영화의 초반부, 유난히 가족에 대한 그리움이 컸던 어린 털리는 어른들을 거부하고 홀로 학교를 누비며 아이스크림과 술을 퍼먹었지만 나중엔 폴, 메리와 함께 만든 체리쥬빌레와 그들의 따뜻한 손길을 받아들이며 새해를 맞이한다.
국어사전에선 가족을 혈연, 결혼, 입양 등으로 맺어진 친족 관계의 집단이라고 정의한다. 하지만 <바튼 아카데미>는 가족의 범위를 그보다 훨씬 넓게 펼쳐간다. 피를 나누지 않아도 아픔을 나누고 외로움을 채워주는 관계라면 그 또한 가족이라 할 수 있음을 친절히 보여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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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럭키, 아파트] 좌표지평계를 고정하는 방법
<럭키, 아파트>
수많은 작품이 있었을 것입니다. 이미 독립 영화계에서 유명한 작가나 감독님도 계실 것이고, 이름을 알리기 시작한 예쁘고 멋진 배우님도 계셨을 것입니다. 사회를 비판하거나 블랙 유머의 진수를 보여준 영화도 있었을 것이고, 우리가 놓쳤던 일상의 무지개를 발견한 영화도 많이 있었을 겁니다. 그런 쟁쟁한 작품들을 이기고 ‘전주시네마 프로젝트’ 마크를 당당하게 걸친 영화를 관람했습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오랜만에 독립영화의 색을 진하게 간직하면서 대중의 재미를 자극하는 요소로 가득한 영화였습니다. 흥미롭고, 실험적이며, 재미있습니다.
저는 오전 10시 30분 시사회에 참석하기 위해 가을 장맛비를 뚫고 50분 지하철로 이동했습니다. 의미심장한 장대비가 공간의 온도를 잠식하며 스산했죠. 피곤과 어려움이 몰려왔으나 영화가 시작하고 이어지는 서스펜스와 스릴이 긴장의 끈을 다시 잡게 해주었죠. 아마도 2011년 <모래>를 시작으로 <자, 이제 댄스타임>, <이태원>, <우리는 매일매일> 등 꾸준히 작품을 활동하시는 ‘강유가람 감독’님 덕분이라 생각합니다. 13년의 긴 세월이 전해주는 시나리오 자체의 재미와 계속해서 주어지는 인물의 과제, 입체적인 시점 자체가 좋았습니다. 관람하는 내내 이 작품은 이미 뼈대부터 탄탄하게 만들어졌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독립 영화는 자신만의 강점과 특색이 매우 강력하게 확고한 편이라 생각합니다. 그것이 때론 대중의 반발을 살 수도 있고, 비난이나 불호를 받을 수 있죠. 본 작품을 관람하며 그런 감정은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소외된 모든 자들에 대한 시를 쓰셨다고 생각했습니다. 줄무늬가 화려한 얼룩말이 초원에서 죽지 않고 머나먼 땅으로 여행을 떠나는 영화 같았습니다.
극에서는 현재 2024년 한국 사회가 안고 있는 여러 논쟁거리가 가득합니다. 감수성이 매우 풍부하시거나 사회적인 논란에 예민하신 분이라면 관람이 어려울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모든 논쟁거리가 결국 ‘사람’이라는 실타래로 이어지는 것을 확인하시면 왜 그렇게 모질게 구는 것인지에 대한 대답을 들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여러 주제가 동시에 함께 다뤄지기 때문에 보시는 관람객의 시선에 따라 영화는 다른 색깔로 변신할 수 있는 카멜레온이 됩니다.
이제 이사를 하면 떡을 돌린다는 이야기는 늙어버린 추억의 전유물이 된 상황입니다. 이웃의 얼굴을 모르고 사는 경우는 당연한 것이죠. 그만큼 삶 자체가 매우 빠르게 흘러가고, 그것을 느끼기엔 여유를 즐기는 시간이 부족하죠. 극의 전반부는 이제는 우리에게 너무나 익숙해진 노년층의 고독사와 그것을 알아차리지 못한 이웃, 사회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이웃의 상태나 상황을 유심히 바라보기 이전에, 이미 우리 집 문 앞에 던져진 대출이자 통지서에 시선이 갈 뿐입니다. 그것도 지극한 일상이죠. 영화 전반부를 관람하며 우리의 일상을 들여다보는 카메라가 흥미롭게 다가왔습니다. 어쩌면 너무 일상적인 소재인데, 어쩌면 우리 집 근처에서 일어날 수 있는 이야기인데 그것이 전해주는 평범함의 폭력이 어두운 아파트 복도를 따라 흘러갑니다.
영화는 풀어도, 풀어도 끝나지 않는 기출 문제집입니다. 본 작품도 고독사에 대한 답안지는 전해주지만, 그것을 접근해 가는 ‘주인공과 주변 인물의 부딪힘’이란 문제는 해결해 주지 않습니다. 선량한 마음을 동 대표를 시작한 누군가의 어머니는 사건이 지남에 따라 악인으로 변합니다. 잘 알지도 못하는 누군가를 돕기 위해 아픈 다리를 들고 움직이는 주인공 선우는 눈초리를 맞기 시작하죠. 일상 속 문제를 해결하고 사건을 마무리하는 역할인 경찰 역시 본 작품 속 이야기는 단지 퇴근 전에 빠르게 해결하고 넘어가고 싶은 아픈 기억일 뿐입니다. 영화를 관람하시며 흥미롭게 보셨으면 하는 지점은 여기입니다. 등장하는 모든 캐릭터가 특정한 이권을 가지고 있고, 그것에 상응하는 대적자가 존재합니다. 누군가를 밟고 올라가야 하는 전망 좋은 언덕에서 살아남기 위해 모두가 어딘가 날카로운 부분을 만들고 있었죠. 그러나 앞서 이야기했듯, 영화는 그 모든 문제에 대해 정답을 내려주지 않습니다. 흔들리는 시선과 점점 타들어 가는 담뱃불 그리고 빨갛게 눈을 아리는 경고등만이 화면을 가득 채웁니다.
관람하며 영화 중반부 일어나는, 시나리오상 가장 중요한 대목, 미드 포인트 사건이 무엇인지 확인하려고 조심했습니다. 대게 영화는 6분의 2지점, 절반 지점에서 극의 방향성 자체가 달라지거든요. 본 작품은 중반부 사건 이후, 시점 자체의 변화를 꾀합니다. 전반부에서 다룬 고독사에 대한 묘사나 이웃과의 갈등 자체가 사라지지 않는 존재에서 눈앞의 존재로 옮겨 집니다. 지금까지 사건을 해결하기 위해 움직이는 주인공을 장내의 분노와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 희생당한 사람으로 변신시킵니다. 극이 두 가지 이야기를 가졌다고 생각한 이유입니다. 이 부분은 개인적으로 아쉬웠습니다. 전반부 분위기나 주제를 끝까지 숨기거나 가져갔다면 너무 무리였을까 싶었습니다. 영화는 이미 대중에게 익숙한 소재를 풀어가는 어려움이나 반전보다는 문자 그래도 거리적으로 전반부와 가까운 이야기를 선택하죠. 취향적으로 아쉬운 행보지만 그렇다고 눈살을 찌푸리게 하거나 몰입도를 깨트리지는 않습니다. 중반부 이후 영화가 어떻게 변화하는지 바라보시는 것도 포인트라고 생각합니다.
아파트에서 함께 살고 있는 선우와 희서는 계속해서 삐걱거리다가 결국 폭발합니다. 두 사람이 주인공인데 주인공끼리 서로 물고 뜯고 해하는 방식은 기분이 참 묘했습니다. 결국 가장 가까운 사람에게 까지도 인간은 서로의 속마음을 알 수가 없습니다. 약간의 행동이나 목소리의 톤 등으로 상대가 나의 마음을 알아주길 바라죠. 말로 전해야만 하는 알아들을 수 있는 마음을 우리는 직설적으로 표현할 수 없는 ‘당기시오/미시오 문’이라고 느꼈습니다. 어릴 적 도덕 시간에 이해관계에 따라 우리의 위치와 모습은 달라진다는 구절도 생각났습니다. 현대 사회에서 천대받거나 소외되거나 약자는 보호받아야 한다고 교육받으나, 현실은 그렇지 못한 경우가 존재하죠. 애초에 그런 것에서 자유롭고 태어나는 순간 사랑받는 것이 확정받은 진실이 있는데 말이죠. 영화가 가장 기초적으로 만들어둔 물질 만능주의와 자유에 대한 개념은 아파트 지하에 감춰져 있었습니다.
애초에 문제는 해결하는 소소한 흥미를 가져야 합니다. 문제니까 정답을 찾아야 한다는 사고는 그 다음이죠. 말도 안 되는 인생 최대의 문제가 다가온다 하더라도 그것을 받아드리고 도움을 받거나 조언을 구하는 과정은 그 어린 시절 작았던 흥미에서 시작합니다. 문제 자체인 삶을 살고 있는 사람들도 동일하다고 관람 중 생각했죠. 이집트 신화의 괴물처럼 우리의 삶을 탄생과 죽음 사이에 두고 의도치 않게 껴안은 문제가 얼마나 무거운지 재보면 어떤 결과가 나올지 궁금해졌습니다. 촬영은 물로이요, 연출과 편집, 특히 화면 전체를 가로지르는 독특한 발색은 긴 여운을 안겨주기에 좋았습니다. 씁쓸하지만 가장 익숙한 이야기를 재치 있게 다뤘다고 생각합니다. 그것 자체가 영화가 추구하던 욕 먹을 때 웃으려고 노력하는 굳은 미소가 아니었나 싶습니다.
* 온라인 영화 매거진 씨네랩의 초청을 받아 참석 후 작성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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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앳원스(2022)> 리뷰
- 다니엘 콴 & 다니엘 쉐이너트 감독의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앳원스(2022)>에 대해 어떻게 말해야 할까? 없는 시간을 쥐어짜며 두 차례나 볼 만큼 좋았고, 처음 울었던 것과 똑같은 부분에서 눈물을 흘린 영화인데도 주변 사람들에게 제대로 추천하지 못했다. 물론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앳원스> 곳곳에 등장한 매니악한 개그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보다도 이 엄청난 영화를 고작 몇 마디의 말로 응축시키는 것이 참으로 어려웠기 때문이다(더글라스 애덤스 식으로 요약하자면 '42'에 대한 영화라고 하겠지만.). 플롯을 설명하려 시도할 때마다 나는 항상 대단한 벽에 부딪혔다. 이 영화는 선형적이지도, 순환적이지도 않으며, 오히려 끝나지 않는 하나의 그물망과 같은 영화이므로. 설명하자니 고난 그 자체이지만, 도무지 이야기하지 않고는 견딜 수 없어 나는 오늘 감히 불가능한 일을 시도한다.영화의 주인공인 에블린 콴(양자경)은 일상에 지친 중년 여성이다. 남편 웨이먼드 콴(키 호이 콴)은 다정다감하고 좋은 사람이지만 현실감각은 영 떨어지고, 하나뿐인 딸 조이(스테파니 수)는 대학교를 중퇴한 후 동성 연인 베키(탤리 메델)와 함께 집을 나가 산다. 에블린의 아버지(제임스 홍)는 자신을 떠나 미국에 정착한 에블린을 조금쯤 못마땅하게 여기는 듯 보이는데, 콴 부부는 부유하고 여유롭게 살며 능력을 증명하긴커녕 세무조사로 인해 운영하는 코인세탁소마저 가압류 명령을 받을지도 모를 만큼 위태롭다. 설령 실망으로 가득하다 하더라도 에블린 자신이 거듭 선택하고 판단한 삶이었다. 그렇기 때문일까. 녹록지 않은 일상 속에서 피어날 듯 말 듯 한 상상력조차 에블린은 스스로 차단하며 삶에 책임을 지고자 한다. 그런데 갑자기 듣도 보도 못한 기회가 찾아왔다. 바로 다른 우주를 살던 알파 웨이먼드가 나타나 이렇게 속삭인 것이다. 거대한 악, 조부 투파키를 막아야만 해. 오직 당신만이 할 수 있어.이미지 출처: IMDb가까운 사이가 친밀한 사이와 동의어가 아니라는 건 이미 영화 <레이디 버드(2017)>가 짚었더랬다. 사랑하지만 좋아한다고 말하기엔 어색한 모녀, 그저 딸이 최고의 모습으로 살길 바라는 엄마 마리온(로리 멧칼프)을 떠올려보자.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앳원스>의 에블린 역시 비슷한(그리고 한국인에게 너무도 익숙한) 캐릭터다. 메인 우주 속 에블린은 딸의 동성 연인을 할아버지에게 제대로 소개하지 않고, 이미 상처 입어 뛰쳐나가는 딸에게 살쪘다는 말을 거침없이 꺼내는 부류의 엄마다. 그렇다면 에블린이 성공한 과학자였던 알파 우주에선 어땠을까? 그는 다중 우주를 넘나들 방법을 개발하던 도중 딸 조이의 정신을 산산이 조각낸다. 엄마의 기대에 부응하고 싶었던 딸은 그렇게 모든 장소에, 모든 것을 경험하며, 동시에 존재할 수 있는 초월적 존재 ‘조부 투파키’가 되었다. 그러니 사건의 진원지는 알파 우주가 틀림없다. 그런데 영화는 에블린이 성공한 과학자였던 알파 우주를 주요 무대로 삼지도 않고, 조부 투파키의 역사를 구구절절 풀지도 않는다. 알파 우주는 순전히 뒷전이다. 이유는 명확하다. 누군가의 파멸을 낱낱이 보여주는 게 이 영화의 목적이 아니기 때문이다. 대신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앳원스>는 파멸처럼 보이는 순간이라 하더라도 기실 완전한 끝은 아니라는 가능성을 모색한다. 이 세계의 조이를 조부 투파키가 깃들 수 있는 그릇으로 보지 않고 제 딸로만 바라보는 에블린이 있는 한 낙관적인 희망은 유효하다. 지금까지 에블린이 딸을 사랑한 방식이 지극히도 좁은 범위 안에서 이루어져 조이를 계속 상처입혔을지라도.흥미로운 건 알파 웨이먼드가 묘사한 조부 투파키와 실제 조부 투파키 사이엔 적지 않은 간극이 있다는 사실이다. 알파 웨이먼드는 조부가 목적도 욕망도 없이 모든 것을 파괴하려 한다고 했지만, 이는 사실과 다르다. 조부 투파키가 행하고자 한 건 세계를 멸망시키겠다는 악의에 가득 찬 시도가 아니었다. 조부 투파키는 영화 속에서 이렇게 고백한다. 자신을 이해해줄 에블린을 찾고 있다고. 그렇다. 다중 우주라는 특수한 무대가 설정되어 있지만 에블린과 조이는 지상에 발붙인 다른 흔한 모녀와 같이, 정체성이 분리되지 않은 채 하나의 흉터에서 발을 구르는 퍽 평범한 사람들이었다.정체성을 공유한다고 표현하기야 했다지만, 에블린과 조이는 매우 다른 사람들이다. 세대는 물론이요, 사용하는 모국어나 성장한 문화적 환경 역시 판이하지 않은가. 그러나 동시에, 에블린과 조이는 분리된 존재가 아니다. 두 사람은 부모 앞에서 실패한 딸이라는 속성을 공유하고, 이 씨앗은 두 사람의 심연에 항시 똬리를 틀고 있다. 생각해보자. 알파 우주에서 조이가 분열된 까닭은 에블린이 진행한 실험 때문이기도 했지만, 본질적으로는 어머니에게서의 인정욕구를 간절히 바랐던 조이의 욕망에 기인하지 않았나. 하지만 두 사람의 욕망이 충돌하는 순간 알파 에블린은 목숨을 잃고 알파 조이는 조부 투파키로 각성하는 최악의 결과를 맞이했을 뿐 모녀 사이의 교착상태는 조금도 해결되지 않았다. 여러 우주를 전전하지만 조부는 엄마와 딸의 관계를 개선하는 데 실패한다. 자신이 갈 수 있는 ‘모든 곳’에서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시도했음에도 상대는 변하지 않고 자신은 거부당한다는 결과패만 바라보게 된다. 실망은 축적되고 절망은 베이글을 통한 자기 파멸로 체현된다.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은 상실을 경험했음에도, 그러나, 조부는 여전히 에블린에게로 향한다. 어째서일까.이미지 출처: NY Times여기서 잠시 조부가 구현해낸 새카만 베이글에 관해 이야기 해 보자. 사실 베이글이 아니라 도넛이었어도 상관없다. 그 형태가 어떻든 조부가 말하고자 하는 건 변함없을 테니. 모든 것을 올려놓자 새카맣게 타버렸다는 베이글은 새하얗게 스러진 공허를 둘러싼 검은 한계이다. 조부가 외치는 것은 에블린과 함께 자신이 존속함으로써 계속되는 무의미한 세계를 멈추자는 것이 아니라 어쩌면, 자신의 기대, 새카맣게 타버린 가능성이자 한계를 없애달라는 절박한 요청이었을 것이다.박종천(2020)은 논문을 통해 현상적 불화의 한계에 갇힌 개인이 비가시적인 사랑과 배려를 통해 구원받는 영화적 양상에 관해 이야기한 바 있는데,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앳원스>의 조이-에블린의 관계가 제법 유사해 보인다. 방금 언급한 조부의 베이글은 영화 속에서 몇 차례, 마치 거대한 눈동자처럼 연출되는데, 이는 알파 우주의 조이가 조부 투파키가 되던 순간 잃어버린 눈을 대체하는 듯하다. 하지만 제대로 시야를 확보하고 거리를 가늠하기 위해선 두 개의 눈이 필요하다는 것을 떠올려보면, 조이의 여정은 자신이 잃어버린 남은 눈을 찾아 다니는 것일 테다. 영화는 조이가 잃어버린 다른 하나의 눈을 제시한다. 바로 에블린이 이마에 붙인 인형 눈이 그 해답이다. 에블린이 갖게 된 제3의 눈은 새로운 가능성을 상징하므로.알파 웨이먼드는 여러 우주를 넘나들고, 이 우주의 에블린을 각성시키는 데에 큰 도움을 준 유능한 남자지만 조이를 이해하는 데엔 철저히 실패했었다. 하지만 여러 실망과 실패가 이끌었다는 우주의 웨이먼드는 조이를 아낌없이 포용한다. 그는 에블린에게 말한다. Be Kind. 유약해 보였던 웨이먼드의 굳건한 강령은 에블린에게 새로운 가능성이 된다. 우주를 넘나드는 싸움을 통해서 해결할 수 없던 교착상태는 웨이먼드 식의 다정함으로 무너진다(사실 이 영화가 불교적 연기론을 상당수 차용한 듯 보이기에 웨이먼드의 대사는 자비를 보이라는 말에 가까우리라 보인다). 갈등이 커지기 직전 역지사지의 자세를 갖추자 세무관인 디어드리 보베어드라(제이미 리 커티스)를 포함한 많은 문제가 싱거우리만큼 부드럽게 해결된다.게다가 Be Kind라는 강령은 비단 타인과의 관계뿐만 아니라, 스스로에게도 충분히 적용된다. 무수한 우주를 유영한 에블린은 비로소 자기 자비를 실천하여 스스로를 구원한다–이는 너무도 어린 청년인 조이에겐 허락되지 않았던, 시간이 남긴 자산이다-. 자신이 열망한 이상향에선 오히려 세탁소를 운영하며 징그러울만큼 아등바등한 삶을 꿈꾸기도 하고, 시력을 잃는 끔찍한 사고는 성공의 발판이 되기도 하는 등, 삶과 우주, 그리고 모든 것에 대해 에블린의 시야가 확장되자 그가 평생 품고 살았던 한계가 순식간에 사라진다. 이윽고 확장된 ‘모든 곳의 에블린이 가진 모든 것’이 ‘단 한 순간’으로 집중된다. 놀라우리만큼 파괴적인 가능성을 찰나에 집중시키자 에블린이 발견하는 건 단 한 가지다. 가장 순수한 감정. 그러하므로, 한 줌의 시간일지라도 그 시간을 소중히 여길 거라는 에블린의 고백은 시간을 초월하며,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앳원스>는, 이런 제목으로도 읽을 수 있을 것이다. 너와 여기서, 언제나.이미지 출처: Daily Sabah브라이언 헤어 & 버네사 우즈가 집필한 책 제목, 『다정한 것이 살아남는다』처럼, 친절은 우주를 막론하고 강력한 힘이다. 그런데 이 말을 꺼낸 건 우주를 한 번도 건넌 적 없는 웨이먼드였다. 그러니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앳원스>가 얼마나 낙관적인 영화인지 새삼스럽게 감탄하게 된다. 각자가 가진 단일한 정체성을 유동적인 정체성으로 변환하는 힘, 피를 나눈 모녀관계라 한들 완벽과 거리가 먼 미완의 관계로 남을 수 있음을 성숙한 자세로 선언하는 힘, 전 우주를 구하는 힘은 버스 점프를 익히지 못한 당신 역시 실천이 가능한 '친절, 다정, 자비, 그리고 공감'이란 테제다. 설령 우스꽝스러운 환경에 처해 있다 해도(핫도그 손을 가진 인류 진화 단계에 들어선 건 아닐 테니!) 얼마든지 실천할 수 있는 가치이지 않은가. 아주, 아주 약간의 따뜻함만 있다면, 문제투성이인 삶조차 충분히 긍정함으로써 모두는 우주를 나를 그리고 당신을 구할 수 있다.<참고문헌>박종천 "불화와 화해의 영화적 변주곡" 국학연구 41 pp.493-535 (2020) : 493.양대종 "허무주의를 대하는 마음의 자세 - 니체 철학을 중심으로" 철학탐구 35 pp.131-161 (2014) : 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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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월 4주 차, 최신 씨네 뉴스
지난 12월 25일 4K 리마스터링과 새로운 장면을 추가해 재개봉했던 <더 폴: 디렉터스 컷>이 누적 관객 수 7만 명을 돌파하는 저력을 보여주고 있는 가운데, 영화를 연출한 타셈 싱 감독이 내한 일정을 알려 영화 팬들을 설레게 만들고 있습니다.
오는 5일부터 7일까지 국내 관객, 언론과의 만남을 가질 타셈 감독은 “한국 관객의 사랑과 응원에 큰 감동을 받았고 바쁜 일정을 조정해 방한을 결심했다.규모보다 작품성을 지지하는 문화 대국의 국민성에 반했다”라고 소감을 전했습니다.
박찬욱 감독 신작 <어쩔수가없다> 스틸컷 첫 공개
박찬욱 감독의 신작 <어쩔수가없다>가 드디어 베일을 벗었습니다. 최근 모든 촬영을 마치고 첫 스틸컷을 공개하였습니다. 올해 개봉을 목표로 하고 있는 <어쩔수가없다>는 박찬욱 감독이 긴 시간 가장 만들고 싶어 한 작품으로 알려져 팬들의 기대감을 더욱 높이고 있습니다.
<어쩔수가없다>는 미국 작가 도널드 웨스트레이크의 소설 ‘THE AX’이 원작으로, '다 이루었다'고 느낄 만큼 만족스러운 삶을 살고 있던 회사원 '유만수'가 갑작스럽게 해고되자, 가족과 어렵게 장만한 집을 지키고자 재취업을 위해 고군분투하며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립니다.
<미나리> 정이삭 감독, 차기작 <Traveler> 확정
<미나리>, <트위스터스>를 연출한 정이삭 감독이 SF영화로 돌아옵니다. ‘Deadline’에 의하면, 스카이댄스와 계약을 체결해 조셉 에커트의 SF소설 ‘Traveler’을 영화화할 예정이라고 합니다.
47세의 생물학 기술자인 스콧 트레더가 자신도 모르게 시간 여행을 겪게 되며 변화하게 되는 삶을 다루고 있는 원작을 바탕으로 <터미네이터: 다크 페이트>의 저스틴 로즈가 각본을 맡았습니다.
배우 손석구, 최희서 미국 독립영화 동반 출연
배우 손석구, 최희서가 나란히 미국 독립 영화 <베드포드 파크 Bedford Park> 출연 소식을 알렸습니다.
<베드포드 파크>는 과거의 상처를 치유하고 잘못을 바로잡으려 하는 전직 레슬링 선수가 가족에 대한 의무와 개인적인 열정 사이에서 갈등하는 한국계 미국인 여자를 만나며 일어나는 이야기를 다룬다고 합니다.
할리우드에서 활동하는 작가 겸 편집자인 스테파니 안의 연출 데뷔작으로, 내년 영화제 출품을 목표로 올해 봄에 촬영 예정이며, 제작에는 배우 마동석과 함께 여러 편의 영화를 개발 중인 매니지먼트사 겸 제작사 B&C 콘텐츠가 참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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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뉴욕 한가운데서 길을 잃어버린 별을 위해
사실은 위험해
이 영화의 주인공은 얼굴 없는 가수 그레타(키아라 나이틀리)다. 어느 날의 공연장. 친구 스티브(제임스 코든)가 노래를 끝냈다. 마이크를 넘기는 그레타. 사람 앞에 나서는 게 싫다. 싫다고는 말하지만 시선이 집중됐기 때문에 자리에 가만히 있을 수는 없다. 노래를 부르는 그레타. 사람들은 그럭저럭 잘 듣는 것 같다. 군중들 속에 눈이 반짝이는 남자가 있었다. 그 사람은 다른 주인공 댄(마크 러팔로)이다. 음반 제작자인 댄. 예전에는 그래미 상까지 받았지만 현재의 그는 그냥 술주정뱅이다. 오늘을 받아들일 수 없는 남자 댄. 하지만 그레타를 바라보는 안목 자체는 녹슬지 않았다고 확신한다. 그레타에게 명함을 건네는 댄. "네 앨범을 만들어 줄게"라고 접근한다. 하지만 그레타는 음악에게 상처를 입었다. 거절하는 그레타. 하지만 댄과 술 마시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니 나쁜 사람은 아닌 것 같다. "음반 제작, 내일까지 고민하고 답 줄게요"라고 말하는 그레타. 그레타는 상처 입은 마음을 뒤로하고, 댄은 스스로를 위한 노래를 만들어야 한다. 다시 시작하는 음악에 뉴욕 시가 반응한다.
음악의 의미
글쓴이가 영화를 보면서 가장 좋았던 것. 음악의 의미를 영화가 플롯 안에서 구현했기 때문이다. 주인공 댄이 직접 “음악은 지루한 일상에 의미를 부여하지”라고 말한다. 글쓴이가 중요하게 생각했던 건 '의미를 부여한다'라는 점이다. 이 의미를 부여하는 것이 일상과 인간과의 관계에만 국한 짓는 것이 아니다. 1차적으로 이 영화가 음악으로 뉴욕이라는 도시를 재구성하기도 하지만 인간과 인간사이에도 의미를 부여하기도 한다. 이 영화에서 어떤 인물들은 음악으로 소통한다.
후자부터. 영화에서 중요한 관계 네 개만 뽑으라면 댄과 바이올렛 부녀, 댄과 그레타, 댄과 콜, 그레타와 세상과의 관계다. 이 네 관계가 공통적으로 공유하는 단점은 서로를 잘 모른다는 점이다. 이 네 관계 중 단점을 가장 직관적으로 보여주는 것은 댄-바이올렛 부녀다. 댄과 바이올렛은 서로를 잘 모른다. 초반부에 나오는 장면을 보면 아버지는 딸의 나이조차 모른다. 딸도 아버지가 뭘 하고 다니는지 모른다. 돈이 있는지 없는지 몰라서 무기력하게 도망 다니는 장면도 있다. 이렇게 서로 멀리 떨어진 것 같은 부녀가 가까워지는 계기가 영화 안에 두 장면이 있다. 이 요소가 동일시되는 지점이 어느 순간 등장하는데 영화가 음악을 바라보는 관점을 그대로 보여준 장치라고 생각한다. 대화 대신 음악을 등장시키는 것이다. 음악이 아니라면 서로 아는 척도 안 했을 댄과 그레타가 처음으로 만나는 과정, 마음을 여는 계기 등등 영화 안에서 어떻게 묘사되는지도 이것의 연장선상이다. 그리고 가장 기본적으로 이 영화의 과제가 뭘까? 바로 프로듀서 댄이 그레타의 프로듀서가 되어 그녀가 세상에게 보여주는 것이다. 이것부터 그레타가 음악을 통해 세상과 대화하고 싶어 한다는 걸 직접적으로 보여주는 설정이다. 영화는 이런 식으로 타인과 타인과의 관계를 음악으로 이어 낭만적으로 표현한다.
이런 설정은 영화가 장르적인 성격을 강화하기 위한 선택이었다. 이 영화는 음악영화이기 이전에 영화다. 적어도 이야기가 들어가야 음악이 들어가는 데 있어 연출적으로 중점을 둘 수 있다. 영화는 이 연출을 위한 이야기를 잘 짰다. 인물도 섬세한 성격으로 설정해서 음악에 따른 리액션 차이를 선명하게 보여줬고 노래하는 인물들을 아름답게 보여준다. 그레타와 콜이 교감하는 모든 장면이 그렇다. 음악으로 인물들이 교감한다는 전제 하에 예술을 받아들이는 캐릭터들의 리액션을 보여준다. 충분히 낭만적이고 사랑스러운 영화라고 부를 만 한 지점이다.
뉴욕 여행기
또 이 영화는 뉴욕 시의 일상을 보여주는 일종의 로드무비이기도 하다. 이 영화에서 가장 중요한 과제 '그레타의 앨범 만들기'에는 특징이 있다. 바로 도심 한가운데에서 음악을 만든다는 것이다. 이 설정의 배경에 결함이 있어 보이는 거 같긴 하지만 이건 음악영화다. 도심 한가운데에서 음악 만든다면 멋있잖아? 실제로도 영화가 이 광경을 멋있게 그 의미를 충실히 구현한다. 그리고 어떤 논리적 결함을 감수하고서도 이 영화가 정말 하고 싶었던 게 있다. 뉴욕에는 사람이 바글바글하다. 그리고 사람에겐 누구나 마음속 하나 상처가 있다. 이 영화는 이 상처 가득한 도시의 일상을 보여준다. 그리고 이 배경을 뒤로하고 음악을 녹음한다. 그레타의 이야기를 담은 앨범인 것과 동시에 뉴욕 시민들을 위로하고 싶었던 댄(내지는 감독)의 의도가 들어간 것이다. 'A Step You Can’t Take Back'같은 삽입곡의 가사를 보면 지하철이 등장한다. 그리고 영화는 공교롭게도 일상적인 일들이 벌어지는 지하철을 수시로 등장시킨다. 심지어 세상에게 상처받고 지하철에 탑승한 댄을 직접적으로 보여주는 장면도 있다. 더 나아가 그레타와 댄이 함께 뉴욕의 시민들을 바라보는 장면까지 있다. 이 장면에서의 사람들은 그냥 아무 생각 없이 걷는다. 영화가 고의적으로 일상을 사는 사람들을 비춘 것이다.
이것은 음악영화의 장르적인 특성을 하나 더 강화시킨다. 왜 영화가 뉴욕 시민들을 보여줬을까? 에 대한 당위성을 덧붙이는 것이다. 음악으로 무언가를 설명하는 것. 이것이 음악영화 장르에서 음악이 차지하던 방식이기도 하다. <사랑은 비를 타고>라는 영화를 본다. 이 영화는 시간적 배경이 무성영화에서 유성영화로 전환되던 때다. 유성영화라는 새로운 환경에 적응해야 하는 인물들이 영화 제작을 위해 노래를 연습한다. 이것은 단지 극적 요소가 아니라 당시 시대상을 보여주는 장치이기도 하다. 동시에 이 <사랑은 비를 타고>에서 인물의 내면이 노래와 춤으로 표현된다. 이것은 시각적, 청각적으로 보다 색다르게 접근했다는 점에서 혁명적인 연출임과 동시에 이야기가 아닌 것이 어떻게 플롯에 틈입할 수 있는가라는 점에서 중요했다. '음악으로 인물의 내면을 보여주겠어!'라는 고민이 극 중 안으로 구현된 것이다. <비긴 어게인> 역시 어떤 목적을 가지고 음악을 삽입했는지를 알 수 있는 장면이 몇 나온다. 그것은 위에서 언급한 '그레타와 댄이 뉴욕 시민들을 바라보는 장면'이나 '생활소음을 영화가 활용하는 방식'과도 관련이 있다. 이 모든 뉴욕의 단면이 그레타 앨범의 하나라는 것, 이들의 일상 역시 예술의 한 단면이라는 것을 암시적으로 보여준 것이다. 후술 하겠지만 이런 도시, 일상, 예술을 한 번에 결합시킨 존 카니의 연출법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원스>도 더블린이라는 장소가 중심이다. 여주인공(그녀)의 집을 비롯한 더블린 구석구석을 보여주며 도시를 배회하는 주인공의 모습을 보여준다. <싱 스트리트>도 음악을 통해 개인적 성장, 그러니까 살던 고향을 벗어난다는 성장서사를 플롯으로 삼았다(이것은 가장 최신작 <플로라 앤 썬>에서도 구현된다). 존 카니 감독이 잘할 수 있는 방식의 화법을 두 번째 영화에서 확립한 것이다.
복사+붙여 넣기?
글쓴이가 몇 년 만에 이 영화를 다시 보며 느낀 것. 기존 존 카니 감독 영화와 크게 다를 바가 없다는 점이다. 우선 영화의 축을 이루고 있는 것은 크게 세 가지다. 1) 아버지로서는 낙제점인 댄 2) 그레타의 앨범 제작기 3) 그레타와 댄의 관계다. 4) 도시 활용하기다. 1번. 최신작 <플로라 앤 썬>에서 주인공 플로라는 아이를 대하는 법을 몰라 전전긍긍하는 인물이다. 또 <싱 스트리트>에서 주인공의 친형으로 나오는 캐릭터는 내면에 거대한 상처를 품고 있지만 형제로서의 유대감이 극 안에서 강렬한 카타르시스가 된다. 2번. 그레타가 앨범을 제작하는 과정에 대한 부분은 <원스>라는 영화에서 직접적으로 나타난다. 전작의 모티브를 <비긴 어게인>에 그대로 가져온 것이다. 3) 그레타와 댄의 관계. 이 부분을 직접적으로 쓰긴 어렵지만 존 카니의 네 영화와 크게 다르지 않다. 음악만 다르지 영화의 어떻게에 해당하는 부분이 자가복제 쪽에 가까운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소규모든 대규모든 공연장을 활용하는 방식이 존 카니의 영화들과 크게 차이가 없다. 특히 <플로라 앤 썬>에서 사용된 연출이 <비긴 어게인>에 그대로 드러난다는 점은 본작(<비긴 어게인>)이 평범해지는 계기가 된다. <원스>에서 'falling slowly'라는 불후의 트랙을 남긴 것 말고, 사람과 사람 사이의 시선을 있는 그대로 섬세하게 묘사한 건 존 카니의 데뷔작이라 신선했던 걸까? <비긴 어게인>이 전작의 공식을 답습했고 이후에도 감독은 비슷한 화법을 구사했다는 것이 치명적으로 느껴진다.
부족한 상상력
글쓴이가 생각하는 이 영화의 가장 아쉬운 점은 섬세함이다. 영화를 잇는 연결고리'만' 존재하고 나머지가 부실한 것이다. 그레타의 앨범 제작기가 영화의 가장 중요한 과제다. 그럼 이 방식에 있어 전문적인 지식이 조금 더 나왔어도 크게 이질감이 들지 않았을 것이다. 오히려 이야기를 다룬 예술로서 창의성이 생겼을 것이다. 대표적으로 극후반부 그레타의 선택과 댄의 직업에 대한 부분이 그렇다. 그레타가 그런 선택을 고른 이유가 내적으로 다 근거가 있다. 그것까진 그럴 수 있다. 하지만 그게 전부일까? 다른 대안을 고른다거나 하는 방식은 없었을까? 단순히 내적 논리만 따라가기엔 현실적인 부분을 고려하지 않고 쉽게 판단하는 것 아닌가? 영화로서의 창의성을 고려하지 않고 낭만적인 음악의 속성만 강조하니 빈 부분이 많아 보인다. 부족한 상상력이 현실에 찌든 주인공과 낭만적인 영화가 충돌하는 계기가 된 것이다.
또 댄의 직업에 대한 부분은 영화의 반을 포기한 듯하다. 이 영화에서 댄은 음악'만' 만드는 인물이다. 인간관계가 굉장히 좁은 인물로 묘사된다. 댄이 음악인으로 활동하면서 아는 아티스트와 행정가가 이렇게 적을 일인가? 영화에 나온 것처럼 이 <비긴 어게인>과 댄이 아예 한 길만 우직하게 팠으면 '이 인물이 이렇게 생각할만한 근거는 다 있다'라고 생각할 법하다. 그렇다기엔 이 영화는 그런 부분을 염두한 흔적이 보인다. 염두했으면 확실하게 그 길로 트는 것도 나쁘지 않았을 텐데 100%중 65%만 써 애매하게 마무리짓는다. 이 영화는 뮤지컬 공연이 아니라 전적으로 영화다. 러닝타임을 길게 가져가는 한이 있더라도 이야기를 확실하게 끝낼만한 수가 있어야 이야기로서의 강점을 가질 것이다. 애매하게 끝낸 덕에 그냥 앨범에 대한 이야기'만'하고 끝낸 감이 있어 이야기가 전달하는 쾌감은 부족하다.
'Lost Stars'
이 영화에 대한 총평은 사랑스러운 작품이라는 것이다. 그레타라는 여성을 한 번도 본 적도 없고 이 세상에 존재하지도 않지만 괜히 그녀를 응원하게 된다. 또 어느새부턴가 비호감 그 자체인 댄에게 마음이 가고 입체적인 콜에 대해 여러 관점에서 생각하게끔 만든다. 사실 영화가 이거면 역할을 다했다고 봐도 무방하지 않을까? 살아 넘치는 생동감으로 잠시나마 환하게 웃게 만드는 것. 그리고 그런 우리를 'lost stars'로 데려다주는 것이 존 카니가 이 영화를 기획한 의도 그 자체라고 생각한다. 이후 존 카니의 두 영화에 대한 예고편이 됐다는 점에선 아쉽지만 'Lost stars'를 위시로 한 수많은 명곡들을 품은 영화라는 점에서는 충분히 좋은 영화라고 생각한다. 후에 호크아이가 되는 헤일리 스타인펠드와 이미 헐크인 마크 러팔로가 부녀관계로서 연기한다는 점 역시 소소한 재미거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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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Movielog #22] (브런치작가/영화리뷰/결말x) 진짜 저스티스리그가 찾아왔다!
잭 스나이더가 하차하면서 자신의 버전을 완성하지 못했던 저스티스 리그가 다시 찾아왔습니다.
2017년 조스웨던이 완성한 버전은 여러모로 평가가 좋지 못했죠.
이번 HBO max에서 공개된 영화는 한국에서는 Vod로 공개 되었어요.
4시간의 상영시간이 아깝지 않을만큼 완성도 자체는 조금 올라갔어요.
여전히 완벽한 영화는 아니지만 적어도 이전 버전에 비해서는 캐릭터 서사가 나아졌고, 액션 장면도 좋아졌어요.
또한 음악감독을 맡은 정키XL의 음악도 영화에 힘을 줍니다.
마지막 전투도 조금 바뀌어서 끝까지 긴장감을 유지 합니다.
잭 스나이더의 다음 편이 나오지 않더라도 그래도 좀 더 나은 저스티스 리그를 볼 수 있어 좋네요.자세한 내용은 영상을 참고하세요^^
Rabbitgumi 채널 구독과 좋아요 부탁드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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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매트릭스4」시리즈 속 모든 상징과 철학 뽀개기 #04 | 매트릭스 인문학적 리뷰 | 매트릭스 리저렉션 리뷰 | 매트릭스4 리뷰 | 매트릭스4 해석 | 매트릭스 리저렉션 해석 |
?《매트릭스4 리저렉션》(2021) 영화리뷰 / 매트릭스4 리저렉션 리뷰
《매트릭스 1~3》 인문학 결말포함 영화리뷰 #4
*후속영상
#1 [네오는 테스형♪] https://youtu.be/gckW2TYRFMc
#2 [현실은 진짜일까?] https://youtu.be/wfvqm5HBRb0
#3 [빨간 옷의 여자] https://youtu.be/X_fQcoytk70
#5 [스미스는 왜 졌을까] https://youtu.be/Uas0KZDCQec
*추천영상
- 매트릭스1 영화정보
장르: SF, 액션
감독/각본: 워쇼스키 형제
제작: 조엘 실버, 댄 크라치올로, 캐롤 휴스, 리차드 미리쉬
음악: 돈 데이비스
촬영: 빌 포프
편집: 자크 스탠버그
출연: 키아누 리브스, 로렌스 피시번, 캐리앤 모스, 휴고 위빙 외
제작사: 실버 픽처스, 빌리지 로드쇼 픽처스, 아츠 엔터테인먼트, 그라우쵸 II 필름 파트너쉽
배급사: 미국 워너 브라더스, 호주 로드 쇼 엔터테인먼트
개봉일: 미국 1999년 3월 31일, 대한민국 1999년 5월 15일
화면비: 2.39 : 1
제작비: 6300만 달러 ~ 6500만 달러
상영 시간: 136분
북미 박스오피스: $171,479,930 (1999년 9월 23일), 월드 박스오피스 $463,517,383 (2003년 3월 10일)
상영 등급: 12세 관람가
- 매트릭스2 리로디드 영화정보
장르: SF, 액션
감독/각본/원작: 워쇼스키 형제
제작: 조엘 실버, 비키 포플웰, 스티브 리처즈, 필 우스터하우스
음악: 돈 데이비스
촬영: 빌 포프
편집: 자크 스탠버그
출연: 키아누 리브스, 로렌스 피시번, 캐리앤 모스, 휴고 위빙, 글로리아 포스터, 제이다 핀켓 스미스, 해럴드 페리노, 모니카 벨루치, 랑베르 윌슨, 지나 토레스, 랜들 덕 김, 예성
제작사: 미국 빌리지 로드쇼 픽처스, 미국 실버 픽처스, NPV 엔터테인먼트, 하이네켄 브랜디드 엔터테인먼트
배급사: 워너 브라더스. 호주 로드 쇼 필름 디스트리뷰터스
개봉일: 미국 국기 2003년 5월 15일, 대한민국 국기 2003년 5월 22일, 호주 국기 2003년 5월 16일
화면비: 2.39 : 1
제작비: 1억 5,000만 달러
상영 시간: 138분
북미 박스오피스: $281,576,461 (2003년 10월 30일)
월드 박스오피스: $742,128,461 (2011년 11월 25일)
- 매트릭스3 레볼루션 영화정보
장르: SF, 액션
감독/각본/원작: 워쇼스키 형제
제작: 조엘 실버, 비키 포플웰, 스티브 리처즈, 필 우스터하우스
음악: 돈 데이비스
촬영: 빌 포프
편집: 자크 스탠버그
출연: 키아누 리브스, 로렌스 피시번, 캐리앤 모스, 휴고 위빙, 글로리아 포스터, 제이다 핀켓 스미스, 해럴드 페리노, 모니카 벨루치, 랑베르 윌슨, 지나 토레스, 랜들 덕 김, 예성
제작사: 미국 빌리지 로드쇼 픽처스, 미국 실버 픽처스, NPV 엔터테인먼트, 하이네켄 브랜디드 엔터테인먼트
배급사: 워너 브라더스. 호주 로드 쇼 필름 디스트리뷰터스
개봉일: 미국 국기 2003년 5월 15일, 대한민국 국기 2003년 5월 22일, 호주 국기 2003년 5월 16일
화면비: 2.39 : 1
제작비: 1억 5,000만 달러
상영 시간: 129분
북미 박스오피스: $139,313,948 (2004년 2월 26일)
월드 박스오피스: $427,343,298 (2004년 3월 28일)
- 매트릭스4 리저렉션 영화정보
장르: SF, 액션
감독: 라나 워쇼스키
각본: 라나 워쇼스키, 알렉산드르 하몬, 데이비드 미첼[1]
제작: 라나 워쇼스키
음악: 조니 클라이맥, 톰 티크베어
촬영: 존 톨
출연: 키아누 리브스, 캐리앤 모스 외
제작사/배급사: 미국 워너 브라더스, 워너 브라더스 코리아
개봉일: 미국 2021년 12월 22일, 한국 12월 22일
화면비: 2.39:1
상영 시간: 14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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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해피투게더 리마스터링>
"우리 다시 시작하자"
그가 다시 시작하자고 하면
난 늘 그와 함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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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넷플릭스 <예스 데이!>
지금부터 24시간, 아이들 마음대로!
언제나 안 된다고만 말해야 할 것 같았다. 아이들에게도, 직장 동료들에게도. 하지만 하루쯤 다르게 살아보기로 결심한 앨리슨과 카를로스. 24시간 동안 세 아이 마음대로 하는 ‘예스 데이’를 선물하기로 한다. 그때까진 짐작도 하지 못했다. 온 가족이 로스앤젤레스를 휩쓸며 정신없는 모험을 하게 되리라는 사실을. 그리고 다섯 식구가 그 어느 때보다 가까워지리라는 사실을.
엄마와 아빠는 안 된다고만 하는 사람. 그래도 오늘만은 달라지겠어. 24시간 동안 아이들 마음대로. 부모는 무조건 예스. 짜릿한 모험을 하며 즐거운 하루를 보내는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