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yellow2022-09-02 00:01:27
[SIWFF 데일리] 잡초처럼 뻗어나간 뿌리들
<미나리> 리뷰
영화제에서는 미개봉할 것 같은 영화, 혹은 찾아보기 어려울 영화를 골라 보는 재미가 전부라 생각했다. 그런데 '언젠가 봐야지'하고 끝없이 미루기만 했던 영화를 보는 즐거움도 있음을 <미나리>를 통해 알았다. 주목받는 인물들 속 가려진 이야기를 찾는 재미도.
미나리
Minari

SYNOPSIS
낯선 미국, 아칸소로 떠나온 한국 가족. 가족에게 뭔가 해내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은 아빠 제이콥은 자신만의 농장을 가꾸기 시작하고 엄마 모니카도 일자리를 찾는다. 아직 어린아이들을 위해 모니카의 엄마 순자가 함께 살기로 하고, 순자는 가방 가득 고춧가루, 한약, 미나리씨를 담아 찾아온다. 앤과 데이빗은 여느 '그랜마' 같지 않은 할머니가 영 못마땅하다.
감독
Lee Isaac CHUNG (정이삭)
출연
한예리, 스티븐 연, 윤여정, 앨런 김, 노엘 케이트 조
1980년대 미국을 배경으로 두고 있는 영화는 지극히 한국적이었다. 한국인과 동양계 미국인이 나와서, 혹은 한국어가 대사 대부분을 차지해서 등의 이유는 아니다. 눈에 보이지 않지만 보이지 않는 구조가 느껴졌다. 아빠 제이콥은 '가장'으로서의 자신의 명분과 위세를 분명히 하고자 사업을 벌였다. 캘리포니아에서의 삶을 모두 청산하고 시골 한구석에 들어와 한국 채소를 가꾸는 농장을 만들겠노라고.
어린아이가 둘이나 있는 집에서 한 사람이 일에만 집중하는 건 불가능한 일이다. 아이들을 돌볼 사람이 없으니. 식사는, 땀에 절은 옷가지들은, 누가 처리해준단 말인가. 결국 이 모든 것을 받칠 사람이 있어야만 한다. 역할을 도맡은 건 엄마 모니카.

모니카는 남편의 꿈이 불안해 보이기만 한다. 아들 데이빗은 심장이 좋지 않아 병원 가까이 있어야 하는데, 학교는 커녕 아이들과 어울릴 다른 아이들도 거의 보이질 않고, 자신 또한 컨테이너의 네모난 공간 외엔 아무것도 없는 기분이 든다. 실은 그보다 더 작은지도 모르겠다. 병아리의 성별을 구분하여 살릴 것과 폐기할 것을 가르는, 그 작고 조악한 바구니가 하루의 전부인 것 같으니.
모니카와 제이콥은 자꾸 다툼만 늘어간다. 언성을 높이고, 아이들은 방에 들어가 둘의 싸움을 중재할 방법을 고안하고. 싸우지 말라는 바람은 종이비행기를 타고 날아갔지만 엄마 아빠 둘 중 누구에게도 닿지 못한다. 아이들은 할 수 있는 게 없는 셈이다. 자신의 이름이 오르내리는 싸움이 눈앞에서 들리는데 어떤 발언권도 없이 그저 관망하거나 외면하는 수밖에는.

불안정한 균열의 틈 사이로 또 다른 엄마, 그러니까 모니카의 엄마인 순자가 들어선다. 이토록 밝은 얼굴의 모니카는 관객에게도 가족에게도 낯설기만 하다. 독특한 유머감각을 지닌 순자는 데이빗의 눈에도, 앤의 눈에도 이상했다. 할머니인데 할머니 같지 않은 어떤 노인. 데이빗은 경계하는 마음으로 모니카의 뒤에 숨기만 한다.
데이빗의 반응이 어떻든 모니카와 순자는 서로를 살뜰히 살핀다. 순자는 매콤한 고춧가루처럼 모니카에게 위로가 될 식재료, 그리고 약간 묵직한 돈 봉투를 내밀어 실질적으로 보탬이 될 만한 손길까지 내민다. 맞벌이하는 두 사람이 집을 비울 때 아이들과 함께해 줄 어른이 있다는 것 또한 모니카에겐 큰 힘이 된다. 완전히 농장 일에 빠진 제이콥만큼은 아니더라도 이전보다는 모니카가 일에만 집중할 수 있으니.
모니카는 순자가 데이빗을 위해 가져온 약재를 함께 달이고, 끼니를 챙기고, 집을 나설 때마다 걱정 담긴 인사를 건넨다. 순자 또한 엄마로서의 역할을 오래 해왔을 터. 자신이 아닌 남을 챙기고, 받치고, 때로는 자신의 것을 내어주는 일상이 익숙하다. 미나리는 모니카, 제이콥, 앤과 데이빗 네 가족이 힘겹게, 그러나 강인하게 뿌리내린 모습을 상징한다. 모니카와 순자처럼 가정의 기반이 된, 지난 세기의 모든 '어머니'들이 어디에서나 쑥쑥 뻗어나가는 확장성 또한 같은 맥락이라고도 볼 수 있겠다.
그들의 모성애를, 지고지순함을, 희생을 숭고하게 여기는 마음보다는 그들의 고생스러움이 피어낸 푸릇푸릇하고 질긴 줄기를 기억하고 싶다.

서울국제여성영화제 SIWFF
8/25(THU) ~ 9/1(THU)
2022-08-26 | 13:30 - 15:26 메가박스 상암월드컵경기장 9관
2022-08-29 | 13:00 - 14:56 메가박스 상암월드컵경기장 1관
Relative cont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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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에단호크, 이완 맥그리거 신작영화에서 만나다!
애플스튜디오는 아버지의 장례식에서 재회하는 이복형제의 이야기를 다룬 이완 맥그리거와 이단 호크가 함께 나오는 새 장편 영화 ' 레이먼드와 레이’로 돌아온다. ' Albert Nobbs '와 ' In Treatment '의 연출을 맡았던 로드리고 가르시아가 각본과 감독을 맡았다.
이완 맥그리거는 레이먼드 역을, 에단 호크는 레이 역을 맡아 까다로운 부모와의 어려운 관계 속에서 유산을 놓고 갈등을 겪는 인물들을 연기를 한다. 로그라인에 따르면, "그들은 여전히 유머 감각을 가지고 있고, 아버지의 장례식은 그들 자신을 재건할수 있는 기회이다. 분노도, 고통도, 어리석음도 있고 또 사랑이 있을 수도 있죠. 물론 무덤을 팔 수도 있습니다.”라고 전한다.이 영화는 아카데미상 수상자인 알폰소 쿠아론(로마), 보니 커티스(라이언 일병 구하기), 모킹버드 픽쳐스의 줄리 린(앨버트 놉스)이 제작한다. 가브리엘라 로드리게스와 쉬 카머가 총괄 프로듀서를 맡는다.
“레이먼드와 레이 "는 애플의 최신작이다. 최근 애플 TV 플러스 스트리밍 플랫폼에는 앙투안 푸콰 감독과 윌 스미스가 함께한 'Emancipation',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와 로버트 드니로가 출연한 마틴 스콜세지의 'Killers of the Flower Moon', 톰 행크스와 함께한 'Finch' 등 여러 편의 영화가 공개됐다. 코엔형제의 ‘The Tragedy of Macbeth”에는 덴젤 워싱턴과 프랜시스 맥도먼드가 주연을 맡았다. 애플스튜디오는 지난해 선댄스영화제에서 첫 출품한 이래로 2500만 달러(약 2500억 원)의 사상 최대 실적을 올린 가족 드라마 '코다(CODA)'를 최근 공개했고, 행크스와 함께 2차 세계대전 드라마 '그레이하운드'도 프리미어 되었다.
출처 : 네이버 영화
맥그리거는 최근 "Halston"에 출연하여 에미상 후보에 올랐다. 그는 차기작으로 디즈니 플러스의 오비완 케노비 스트리밍 시리즈에 출연한다. 호크는 미국 쇼타임의 드라마 "더 굿 로드 버드"에 출연하여 극찬을 받았다. 그는 앞으로 블룸하우스의 "더 블랙 폰"과 "나이브 아웃 2"에도 출연할 것이다.할리우드에서 오랫동안 사랑받고 있는 두 레전드 배우의 연기를 하루빨리 보게 되기를 기대해봅니다!
씨네랩 에디터 Hez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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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BIFF 데일리] 모범생과 나쁜 학생들
제27회 아시아영화의 창 <모범생 아논>
ⓒ 부산국제영화제
정보
개요 드라마 | 태국 | 87분
감독 소라요스 프라파판
출연 코른다나이 마르크 다우첸베르크, 원유 웡수라왓 등
줄거리
새 학기를 맞이한 방콕의 사왓디 고등학교. 국제수학올림피아드에서 금메달을 딴 아논은 학교의
‘모범 학생’이 되어 교장 선생님의 총애를 받는다. 좋은 대학에 진학하는 것이 지상 목표인 이곳에서
검은 유혹의 손길이 다가오자 갈등하기 시작하는 아논. 한편 학교에서 일어난 체벌 사건이 소셜미디어에
공유되며 학생들의 공분을 불러일으킨다.
<모범생 아논>의 T.M.I
ⓒ 부산국제영화제
기획 계기
고등학교 때, 친구가 기존 정권에 반하는 행동을 보인 적이 있는데 이를 자신이 8년 전에 봤던 쿠데타와
연결 지어 만들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더하여, 젊은 세대들의 '나쁜 학생 운동'에 대한 양상도
결합하여 만들어보고 싶었다고 한다.
영화 속 시위 장면
영화를 보면 시위의 장면을 다큐멘터리처럼 담은 컷이 있다. 이 부분은 실제로 찍은 것도 있지만,
기사에 쓰이거나 SNS로 공유된 자료를 활용한 것도 있다.
마스크를 착용하고 촬영한 이유
코로나 시대 현상을 강조하고 싶기도 했고, 이전 단편 영화 작업을 통해 마스크를 착용하고 촬영하면
대사 수정하는 과정이 수월하다는 점을 깨닫게 돼서 마스크를 착용하고 촬영했다.
<모범생 아논> 리뷰
ⓒ 부산국제영화제
태국 사회를 풍자한 단편들을 통해 이름을 알린 소라요스 프라파판 감독이 첫 장편 데뷔작으로 역시나
태국 사회에 대한 이야기를 담은 영화를 선보였다. 지금까지 나온 스틸컷들을 통해 알 수 있듯이 컷들의
색감, 구도, 구성이 굉장히 매력적이다.
ⓒ 부산국제영화제
영화 속 아논의 모습은 영화의 제목과는 다소 다른 학생이었다. 공부를 잘하지만, 수업 시간에 자고
담배도 피는 모범생과는 거리가 멀었다. 이 영화의 또 다른 주인공인 학생들. 부패하고 과도한 체벌이
일어나는 학교에 부조리함에 맞서 학생들은 자신을 나쁜 학생이라고 지칭하며 나쁜 학생 운동을 하게 된다.
모범생과 나쁜 학생 모두 이들을 반어적으로 나타내고 있다는 점에서 흥미를 자아낸다.
본 영화는 영화적 측면 뿐만 아니라 사회적인 측면에서도 돋보이는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태국에서 상영될 수 있을지 의문이 들 정도로 태국 사회의 부정적인 측면을 담아냈다.
21세기, 동시대에 벌어진 이야기를 담았기에 영화에 공감하고, 더 나아가 이러한 문제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는 시간을 마련해주었다.
"이런 분들께 추천 해드립니다"
- 태국의 현 사회에 대해 알고 싶다?
- 역사와 관련된 콘텐츠를 보는 것을 좋아한다 ?
- 사회문제에 대해 관심이 있으신 분 ?
태국 사회에 대해 몰랐던 사실을 알게 되고, 태국 사회에 관심을 갖게 만드는 영화 <모범생 아논>.
영화 <모범생 아논>은 내일 부산국제영화제에서 마지막 상영이 있으니
궁금하신 분들은 예매하시길 바랍니다!
그럼, 지금까지 영화 <모범생 아논>이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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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네랩 에디터 Hiz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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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테스와 보낸 여름> - ‘마지막으로 남은 공룡은 외로웠을까?’
테스와 보낸 여름
(My Extraordinary Summer with Tess)
개봉일 : 2020.09.10. (한국 기준)
감독 : 스티븐 바우터루드
출연 : 소니 코프스 판 우테렌, 조세핀 아렌센, 트에보 게리츠마, 제니퍼 호프만
‘마지막으로 남은 공룡은 외로웠을까?’
“혼자 남겨지면 어떤 기분이 들까?” 여느 때처럼 찾아온 뜨거운 여름이 끝나갈 때쯤, 소년은 한가지 걱정이 생겼다. 모든 동물과 인간은 언젠간 죽는다. 강아지도, 저기 바닷물 안에서 펄떡이고 있는 물고기도, 나도, 사랑하는 가족들도 결국 언젠간 죽을 것이다. 소년은 해변가에 구덩이를 파고 누워 언젠가 닥쳐올 이별과 죽음에 대해 생각한다. 소년은 몇 가지 고민을 거쳐 언젠가 다가올 외로움에 익숙해지는 연습을 하기로 결심한다. 외로움에 익숙해지면 혼자 남겨졌을 때 보다 잘 적응할 수 있을 테니까.
<테스와 보낸 여름>의 주인공인 소년 샘은 자신이 ‘이 세상에 마지막으로 남은 공룡’과 같은 운명이 되지 않을까 걱정하며 다른 사람에게 너무 마음을 주지 않는 것이 좋다고 말한다. 가족들과 함께 온 여름휴가지만 샘은 외로움에 적응하겠다며 매일같이 혼자만의 시간을 갖는다. 가족들을 사랑하지 않는 건 아니지만, 이별 후에 닥쳐올 상실감을 예방하기 위해서 말이다. 필요 이상의 마음을 주지 말자고 다짐한 소년의 마음을 단박에 이끈 건 섬에 살고 있는 소녀 ‘테스’였다.
처음 만난 소년 샘에게 다짜고짜 살사를 함께 배우자며 울타리를 열어주던 소녀는 엄마 몰래 비밀스러운 계획을 실행한다. 서로를 엉뚱하다고 말하는 샘과 테스는 의외로 쿵짝이 잘 맞는다. 둘은 어른들은 모르는 비밀을 나누며 샘의 여름휴가가 끝나기 전, 비밀의 주인공에게 모든 걸 고백하기로 한다.
샘이 테스를 만난 그 해 여름은 유난히 이상했고, 행복했고, 새로웠다. 매해 찾아오는 여름이지만 테스를 처음 만난 그 해는 샘에게 오래도록 기억될 것이다. 그리고 다른 향을 가진 다음 여름이, 또 다른 색을 가진 또 다음 여름이 샘과 테스에게 찾아올 것이다. 둘에게, 우리 모두에게 앞으로 더 행복한 여름만이 찾아왔으면 좋겠다. 외로움에 대해 고민할 틈조차 없는 그런 행복한 여름말이다.
테스와 보낸 여름 시놉시스
엉뚱한 소년 ‘샘’은 가족과 함께 떠난 바닷가 휴양지에서도 죽음에 대해 고민하는 중이다. 지구에 남은 마지막 공룡은 어떤 마음이었을까 상상하던 ‘샘’은 언젠가 혼자 남겨질 경우를 대비해 ‘외로움 적응 훈련’에 돌입한다.
그런데 섬에서 만난 소녀 ‘테스’로 인해 계획에 차질이 생기기 시작한다. 첫 만남에 다짜고짜 살사 춤을 추자고 하는 더 엉뚱한 소녀 ‘테스’는 어디로 튈지 알 수 없는 행동으로 ‘샘’을 놀라게 한다. 그러던 중 어른들은 모르는 ‘테스’의 비밀스러운 계획을 알게 된 ‘샘’은 이에 동참하게 되는데… 얼마 남지 않은 여름의 끝, 그전에 미션을 수행해야 한다!
* 아래 내용부턴 스포가 있을 수 있습니다 *
“너 살사 출 줄 알아?”
여름휴가 첫날, 샘은 해변에 구덩이를 파고 누워 언젠가 닥쳐올 가족들의 죽음과 남겨질 자신의 외로움에 대해 생각한다. 고민을 거듭하며 잡히지 않을 연을 향해 손을 뻗던 샘은 밝게 자신을 부르는 아빠의 목소리에 몸을 일으킨다. 좀 전까지 무거운 고민을 했지만 아이는 아이인 건지, 금방 아빠, 형과 어울려 해변을 뛰어다닌다. 한참 재밌어지려는 찰나, 형 요러가 샘이 누워있던 구덩이에 빠져 발목을 다친다.
요러는 샘 때문에 다쳤다고 짜증을 내고 샘은 구덩이를 못 본 형이 잘못이라며 티격태격한다. 병원에 도착한 세 부자는 진찰을 기다린다. 아빠는 툭하면 투닥이는 두 아들을 잠시 떼어놓기 위해 샘을 밖으로 내보낸다. 샘은 자신이 좋아하는 생선튀김을 사고 아빠와 형을 기다리며 목적지 없이 이리저리 걷고 있다.
마을을 구경하며 걷던 중 우연히 눈을 마주친 소녀 테스는 처음 본 샘에게 살사를 출 줄 아냐고 묻더니, 함께 배우자며 울타리를 열고 샘을 마당 안으로 이끈다. 뜬금없이 ‘이 세상에 마지막으로 남았던 공룡의 외로움’에 대해 고민하던 샘도 엉뚱하지만, 갑자기 함께 살사를 배우자며 처음 본 소년을 마당으로 끌고 들어오는 테스도 보통 엉뚱한 아이는 아닌듯하다.
“나중에 혼자 남겨지면 어떤 기분이 들까?”
샘은 테스를 만난 순간, 좀 전까지 고민했던 ‘마지막 공룡의 외로움’은 완전히 잊어버린다. 엉뚱하지만 밝은 소녀와 영상을 보며 살사를 추는 시간이 그저 즐겁다. 하지만 테스가 샘을 길가에 내려둔 채 홀로 쌩-가버린 저녁, 샘은 다시 외로움에 대해 생각한다. 저녁까지 함께 살사를 배워야 한다고 해놓고, 손님과 어색한 인사를 나누고 쌩하니 가버리다니. 샘은 테스의 행동이 이해가 가지 않는다. 함께 행복한 시간을 보내다가 한순간에 혼자가 돼버린 저녁. 샘은 외롭지 않기 위해 외로움 적응 훈련을 시작한다.
여행객이 한 명도 보이지 않는 조용한 해변, 파도에 쓸려온 물건들을 주워 만든 샘만의 훈련 장소가 만들어진다. 대화를 나눌 사람도 없고, 지나가는 사람도 없다. 샘은 완전한 외로움을 느끼며 그것에 적응하기 위해 노력한다. 눈앞에서 갑자기 사라져버린 테스와 언젠가 사라질 가족들을 생각하면서 2시간을 견딘다. 2시간, 4시간, 6시간, 8시간, 10시간. 샘은 이번 여름휴가가 끝날 때쯤 외로움에 익숙해지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는듯하다. 샘은 소중한 사람들과의 추억을 저-멀리 밀어놓고 조금씩 벽을 쌓아가고 있었다.
‘외로움에 익숙해지기!’라는 샘의 여름휴가 목표가 바뀌게 된 건 테스의 비밀 계획을 알고 나서부터였다. 테스가 피크닉을 준비한 날, 샘은 테스가 자신이 아닌 휘호와 피크닉을 가고 싶어 했다는 사실을 깨닫고 테스와 다른 방향의 길을 타고 숙소로 돌아온다. ‘나는 테스를 좋아하지만, 테스는 내가 아닌 휘호를 좋아하고 있다.’고 단단히 오해하고 있던 샘에게 테스가 먼저 다가온다. “휘호는 우리 아빠야.” 테스가 숨겨왔던 비밀을 고백하던 날, 샘의 아지트는 사라졌고, 여름휴가의 목표도 바뀌게 된다.
엄마의 여행수첩에 남은 이름을 단서 삼아 아빠 휘호를 찾아낸 테스는 태어나서 단 한 번도 보지 못한 아빠가 어떤 인물인지 알아내기 위해 휘호와 앨리서를 별장으로 초대한다. 샘과 테스는 휘호에 대해 알기 위해 퀴즈게임을 준비하고, 두 사람의 반응을 살핀다. 테스는 처음으로 아빠와 이야기를 나누고, 어깨동무를 해본다.
5752일(11년)의 시간. 테스는 아빠와 함께 만든 추억이 없었다. 그에 반해 샘은 네 가족이 함께 살았기에 자연스레 아빠, 엄마, 형과의 추억을 쌓아온 아이였다. 그래서인지 샘은 자신이 겪어보지 못한 ‘외로움’에 대해 걱정하고, 어쩌면 테스가 아빠를 모르는 게 더 나을지도 모른다고 말한다. ‘아빠’라는 소중한 사람이 생기면 그 이후에 따라올 슬픔과 외로움을 한 번 더 견뎌야 하니까.
“아이가 없어서 다행이다”라는 휘호의 말에 충격을 받은 테스가 집으로 뛰어가고 여름휴가의 마지막 날이 온다. 샘은 엄마 아빠의 걱정과 꾸지람을 뒤로하고 다시 혼자만의 시간을 갖는다. 갯벌에 발을 묻고 외로움에 대해 한참을 생각하던 샘은 자신의 발이 뻘에 깊이 묻혔다는 사실을 눈치채지 못해 위험한 순간을 맞이한다.
“현재는 미래를 준비하는 시간이다.”
“현재는 미래를 준비하는 시간이다.” 병원 벽에 걸려있던 그림에 적혀있던 문장이다. 마지막으로 남을 미래와 외로움을 걱정하던 샘은 가장 소중한 현재를 보지 못하고 있었다. 현재를 소중히 여기며 미래를 준비하기보단, 언젠가 닥쳐올 외로움에 면역력을 키우기 위해 현재의 외로움을 택한 것이다.
현재를 소중히 여기지 못하고 있던 샘에게 새로운 가르침을 준 건 힐러 할아버지였다. 뻘에 발이 묻힌 샘을 구해준 할아버지는 샘에게 이별과 인생에 대한 새로운 기준을 심어준다. 이별 또한 우리들의 삶이며 인생이고, 혼자 남겨지는 것을 걱정하기보단 소중한 사람들과의 추억을 모으라는 할아버지의 말. 가장 사랑하는 존재인 아내와 이별을 겪은 그의 말엔 홀로 남겨진 슬픔과 추억을 되짚는 사람의 웃음이 함께 담겨있는 듯하다.
“최대한 많은 추억을 모으거라”
힐러 할아버지가 샘에게 건넨 한마디가 이 이야기의 중심을 한순간에 관통한다. 스티븐 바우터루드 감독은 힐러 할아버지를 통해 이 영화를 보고 있는 수많은 관객들에게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하고 있는 현재의 소중함을 이야기하고 있다.
“새로운 추억 만드는 건 어떠세요?”
휘호에게는 딸이, 테스에게는 아빠가 생겼다. 5752일이라는 시간 동안 서로를 모르고 있었던 아빠와 딸은 이제 새로운 추억을 쌓기 시작한다. 샘은 홀로 살고 있는 힐러 할아버지를 파티에 초대해 함께 새로운 추억을 만든다. 샘의 그 해 여름휴가는 가장 이상한 최고의 일주일이었다. 미래를 걱정하며 현재의 소중함과 추억을 놓치고 있던 소년은 이제 걱정 없이 추억을 쌓기 시작한다.
사랑스러운 빛깔로 물든 샘의 그 해 여름 위에 다음 여름의 추억이, 또 다른 계절이 쌓이고 그 추억들은 언젠가 다가올 외로움과 슬픔을 이길 수 있는 힘이 되어줄 것이다. 순수하고 엉뚱한 소년 소녀의 상상과 계획으로 가득했던 여름의 끝자락 이야기 <테스와 보낸 여름>. 정말 한없이 사랑스럽고 무해한 영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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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빌 워 : 분열의 시대 | 늦은 개봉일이 야속할 경고문
*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극심한 사회적 갈등이 지속된 끝에 역사상 두 번째로 내전 상태에 돌입한 미국. 연방에서 독립한 주들의 시민군과 연방군이 치열한 전투를 지속하는 가운데, 기자 ‘리(커스틴 던스트)’와 ‘조엘(와그너 모라)’, ‘새미(스티븐 핸더슨)’, 그리고 ‘제시(케일리 스페이니)’는 연방 정부의 수도 워싱턴 D.C.로 향한다. 내전 발발 후 일방적인 기자회견 외에는 속내를 밝힌 적 없는 '대통령'(닉 오퍼먼)을 인터뷰하기 위해서.
현실에 역사와 상상을 더한 경고문
2021년 1월 6일, 2020년 미국 대통령 선거의 의회 인증일. 폭도들이 미국 국회의사당을 무력 점거했다. 대선 패배 후 부정선거 음모론을 제기한 도널드 트럼프 당시 미국 대통령을 지지하며 선거 결과를 바꾸려고. 폭동은 이내 진압되었다. 그러나 이 사건은 미국 의회가 1983년 미 의회의 상원 회의장에 폭탄 테러가 자행된 이후 40여 년만에, 그것도 자국민에 의해 피해를 입었다는 오명을 남겼다.
무엇보다도 이는 민주주의 선도자로 자처하고, 다양성과 포용성의 국가라고 내세우던 미국의 실상이 고스란히 드러난 사건이라서 특히 충격적이었다. 부정선거 음모론과 대통령 선거 불복 선언, 그리고 QAnon발 딥 스테이트 음모론과 같은 낭설에 의해 파괴된 미국 민주주의 시스템을 목격했으니까. 극심한 양극화로 인해 미국 사회가 상상도 못 했던 디스토피아에 가까워졌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시빌 워: 분열의 시대>(이하 <시빌 워>)는 이처럼 극심해지는 사회적 양극화에 역사적 맥락과 약간의 상상력을 덧붙였다. 종군기자의 시점에서 일부러 거리를 둔 채 미국의 두 번째 내전을 관찰하며 현실을 바꾸지 않으면 발생가능한 미래를 경고한다. 하지만 <시빌 워>의 야심과 의도는 기대에 비해 날카롭게 느껴지지 않는다. 한국에서는 영화보다 영화적인 현실이 <시빌 워>의 역할과 메시지를 이미 대신했기 때문이다.
보이지 않는 전쟁
시작은 야심에 걸맞는다. TV에서는 미국 대통령이 비상계엄이라도 선포하는 듯이 결연하게 승전 발표를 진행한다. 중계를 지켜보는 리의 방 밖, 도시 한복판에서는 폭발음이 들리며 내전에 휩싸인 미국의 현실이 보인다. 뒤이어 내전에 휩싸인 미국이라는 상상력에 부합하는 이미지도 연달아 펼쳐진다. 뉴욕에서는 난민들이 구호물자에 의존하고, 구호물품을 배부할 때 또 한 번 폭탄 테러가 발생하는 식이다.
하지만 여기까지다. 그 이후로 <시빌 워>는 중반부까지 내전 상황임을 알 수 있는 묘사가 거의 등장하지 않는다. 특히 정보가 부족하다. 내전의 구체적인 원인과 양상은 등장인물들의 대사를 듣고 알아서 짜 맞춰야 한다. 일례로 새미가 대통령 인터뷰를 위해 준비한 질문을 본 뒤 권위주의 대통령이 이끄는 미국 연방정부가 미국 연방수사국을 해체하고, 반정부 시위대를 공습하는 등 폭정을 저질렀음을 유추해야 한다.
이민자와 인종 문제가 내전의 주요 원인 중 하나라는 암시도 마찬가지다. 워싱턴 D.C. 인근에서 제시는 흑인들을 집단 살해 중이던 군인에게 붙잡힌다. 이때 군인들은 그녀의 동행 중 홍콩 출신 기자만 골라 살해하고, 다른 이들은 반항하지 않는 한 위협만 한다. "포틀랜드의 마오주의자"라는 대사와 연결시키면 비로소 인종 차별과 이민자 문제, 미중 대립 등이 내전을 격화시켰음을 추측할 수 있다.
이에 더해 주인공 일행의 여정을 따라가면 캘리포니아 주와 텍사스 주를 주축으로 한 '서부군', 동남부 지역 19주가 뭉친 '플로리다 동맹'이 분리 독립해 연방군과 내전 중이라는 현황도 제한적으로나마 확인할 수 있다. 즉, <시빌 워>는 전쟁 영화처럼 보이지만 정작 마지막까지 전쟁을 보여주지 않으려고 애쓴다. 자연히 초중반부까지는 내용에 몰입하기가 쉽지 않다.
몰입을 방해하는 여정
흥미롭게도 <시빌 워>는 전쟁이 아닌 로드 트립에 나서면서 본색을 드러낸다. 종군 기자인 네 주인공은 백악관으로 향한다. 내전 발발 이후 대통령과의 첫 인터뷰를 하기 위해서. 하지만 서부군이 먼저 워싱턴 D.C.와 백악관에 당도한 나머지 그들은 계획한 인터뷰를 진행하지 못한다. 이는 여정의 목적을 맥거핀으로 이용하고, 그 대신 여정 자체에 의미를 부여하는 로드 무비 작법에 정확히 들어맞는 전개다.
리, 새미, 조엘, 제시의 여정은 그 자체로 두 가지 메시지를 전달한다. 우선 내전의 참혹함을 강조한다. 언제 어디서나 시체가 등장하고, 민병대와 군인이 전투를 펼치며, 무고한 시민 사이에서 폭탄이 터지는 불안정한 상황이 끊이지 않는다. 휴지조각이 되어버린 미국 달러 대신 캐나다 달러로만 물건을 살 수 있고, 그저 고향이 홍콩이거나 피부색이 검은색이라는 이유로 목숨을 잃을 수도 있다.
그와 동시에 내전으로부터 거리를 두도록 유도한다. 제시는 베테랑 사진 기자이자 롤모델인 리로부터 전쟁 지역에서 취재하는 법을 배운다. 총격적인 중인 군인들과 동행하면서 가장 생생하고 정확한 현장의 순간을 포착하려 한다. 그런데 묘한 연출 때문에 이 과정은 내전이라는 맥락과 동떨어져 있는 듯하다. 치열한 총격전에 우스꽝스러운 힙합 음악을 더해서 전투 중인 양 진영 어느 쪽에도 동조하지 않도록 만든다.
그렇다고 해서 아담 맥케이 감독의 <돈 룩 업> 같은 블랙 코미디를 의도하지도 않는다. 마지막까지 주요 장면 대부분은 퓰리처상을 수상해야 할 것 같은 흑백 보도사진 구도로 구성된다. 진중한 분위기를 유지하고, 관객을 철저히 관찰자 시점에 머물게 한다. 강렬한 음향 효과 덕분에 살 떨리는 현장감이 강조되고, 갈수록 전쟁 분위기가 짙어지는 후반부에서야 주인공들에게 몰입할 여지가 생겨난다.
영화라는 사진전
그러다 보니 <시빌 워>를 보다 보면 질문 하나가 뇌리를 떠나지 않는다. '왜 하필 사진 기자 시점에서 내전을 다룰까?'라는 의문이다. 애초에 내전이라는 스펙터클 속에 관객을 빠트리고자 했다면, 극 중 등장한 인물 중 더 적합해 보이는 이들이 많다. 대통령이나 각 진영에 속한 군인들만 내세워도 내전을 충분히 극적으로 묘사할 수 있다. 전투 현장을 구체적으로 묘사할수록 내전의 참혹함도 더 직관적으로 전해질 수 있다.
하지만 사진 기자의 본질을 따져 본다면 <시빌 워>의 독특한 구성과 형식, 연출과 편집은 비로소 하나의 의도를 보여준다. 사진 기자는 언제나 카메라 렌즈를 통해서 세상을 본다. 어떤 순간은 사진으로 남기고 어떤 순간은 흘려보낼지 필터링을 하는 게 그들의 업이다. 사건과 현장에 일부러 몰입도, 공감도 하지 않는다. 그 대신 누구보다 냉정하게 가치를 평가하고, 사진만으로 사건의 의미를 극대화하는 게 그들의 일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보면 <시빌 워>는 일종의 사진전 같다. 내전에 관해 구체적인 정보를 제공하지 않는 것만 보더라도 최소한의 설명만 붙는 보도 사진과 유사하다. 즉, 관객들이 미국의 두 번째 내전을 일종의 스펙터클로 즐기는 것은 애초에 목적이 아니다. 꼭 미국의 상황이 아니더라도, 내전으로 표출될 정도로 양극화된 사회적 갈등을 한 발짝 떨어져서 관찰하면서 그 위험성을 곱씹게 만드는 게 본 의도인 셈이다.
이는 후반부 링컨 기념관 공방전, 워싱턴 D.C. 시가전, 백악관 공성전, 백악관 내부 전투를 <시카리오>나 <제로 다크 서티>처럼 영웅적 묘사 없이 사실적으로 보여주는 이유와도 맞닿아 있다. 내전이라는 혼란상을 장르 영화로서 영위하는 대신 가까운 미래에 대한 경고로 활용한다. 언제 내전이 발생해도 이상하지 않을 사회적 갈등의 개인적, 공동체적 책임과 의무를 한 번쯤은 성찰하게 만드는 현실의 거울이나 다름없다.
사진전에 깃든 기자의 삶
제시와 리의 관계성은 사진전이라는 의도를 한 번 더 강조한다. 제시는 이제 막 현장에 발을 내디딘 사진기자다. 그녀는 리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열정 하나를 앞세워 워싱턴 D.C.행 여정에 동행한다. 하지만 그녀가 마주한 현실은 상상을 뛰어넘었다. 주유소 장면이 대표적이다. 주유소 주인은 피범벅이 된 남성 둘을 매달아 놓고 그들을 죽일지 말지 제시에게 묻는다. 예상 못한 상황에 제시는 그대로 주유소 주인 앞에서 얼어붙는다.
베테랑 사진기자 리는 다르다. 주유소 주인을 두 남자 사이에 세운 후 차분히 사진을 찍는다. 스스로를 자책하는 제시에게 냉정히 종군기자의 덕목을 일러준다. 기자는 기록하는 사람이라고. 총알이 빗발치고 폭발이 난무한 전장이더라도 관찰자로서의 자세를 유지해야 한다고. 못하겠으면 지금이라도 그만두라고. 이 충고에는 뼈가 있다. 기자라는 직업을 선택한 것 자체가 실수라는 말은 리의 실수 혹은 회한을 암시한다.
열정만 넘치는 제시와 냉정한 베테랑 리의 관계는 마지막 순간 다시 부각된다. 백악관 내부에서 총격전이 벌어지는 가운데 무리해서 사진 찍을 자세를 취한 제시. 그 순간 리는 몸을 던져 제시 대신 총알을 맞고, 제시는 쓰러지는 리를 연신 카메라에 담는다. 그녀의 희생 덕분에 제시는 대통령이 사살되는 역사적인 순간을 포착한 사진기자가 된다.
이는 리의 조언에 담긴 회한을 유추할 수 있는 힌트다. 리 역시 한 순간의 실수로 인해 선배를 잃었고, 그 순간을 후회하지만, 직업적 사명감 때문에 계속 사진을 찍지 않았을까. 그래서 본인을 닮은 제시를 만류하면서도 도와주고, 끝내 그녀를 위해 희생한 게 아닐까. 지친 자신을 대신해 제시에게 사명을 넘긴 것처럼도 보인다. 기자로서의 삶은 결코 평탄하지 않지만, <시빌 워>라는 사진전에 사용될 사진을 누군가는 찍어야 하니까.
영화보다 발 빠른 현실
안타깝게도 <시빌 워>는 영화 외적인 이슈로 인한 평가절하를 피할 수 없다. 우선 흥행을 고려한 선택이겠지만, 로드 무비를 블록버스터 전쟁 영화로 포장한 포스터와 예고편이 아쉽다. 겉포장을 보고 커진 기대를 영화 본편이 충족하지 못하면 실망감은 배가되니까. 예고편과는 전혀 다른 전개와 결말 때문에 혹평을 피하지 못했던 <조커: 폴리 아 되>처럼. <시빌 워>가 그 다음 리스트에 이름을 올리더라도 놀랍지는 않다.
무엇보다도 4월 개봉한 미국과 달리 12월을 선택한 국내 개봉일이 특히 불운하다. <시빌 워>는 정치적, 사회적 양극화의 폐해와 그로 인한 부정적인 미래를 묘사했다. 그런데 한국에서는 현직 대통령의 내란이라는 모습으로 최악의 미래가 이미 현실에 당도해 버렸다. 경고문이 너무 늦게 도착한 셈이다. 그 결과 1달 전이었으면 폐부를 찔렀을 메시지의 위력은, 진중하게 쌓아 올린 완성도가 무색하게도, 현실의 벽 앞에서 반감되고 만다.
Exceeds Expectations 기대 이상
포장지와 타이밍이 야속할 냉철한 사진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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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X뮤지컬 <스위니토드> 악마를 보았나?
* 영화 및 뮤지컬의 스포일러가 담겨 있습니다.
대학 가면 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던 위시리스트 중 하나가 조승우 배우가 나오는 뮤지컬을 보는 것이었다. 물론 돈이 있어도 쉽사리 볼 수 없다는 걸 깨달았고 이쯤 되니 자포자기한 상태였다. 이상하게도 올해는 좀 달랐다. 별 기대 없이 <스위니 토드> 좌석을 살펴보다가 덩그러니 나 여기 있소, 하는 자리를 발견했다. 취소표인 모양이다. 세상 살고 볼 일 아닌가.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던 일이 갑자기 가능한 순간이 온다니. 어느새 공연장에 그 티켓을 쥐고 앉아있었다. 감회가 새로운 어느 수요일 저녁이었다. 누군가가 오지 않기로 한 그 자리가 내가 올 수 있는 자리가 되었다는 것에 감사하면서. 자꾸 얘기하면 주책이 될 수도 있으니 1절만 하자. 소리를 듣자마자 귀가 즐겁고 저절로 지어진 웃음이 내려가지 않았다. 이름 세 글자로 기대하고 믿을 수 있고, 다른 이를 즐겁게 하는 건 대단한 능력이다.
뮤지컬 <스위니 토드>를 기다리면서 살펴보니 '호불호가 갈린다'는 평이 유독 많았다. 왜 아니겠나. 막장 드라마랑 비교해도 보통을 넘는다. 벤자민 바커의 아내이자 조안나의 어머니인 소중한 루시를 강간하고, 그 조안나를 입양해서 심지어 아내로 들이려는 터핀 판사의 비뚤어진 욕망. 억울하게 누명을 쓰고 돌아와 복수가 잘 풀리지 않자 불특정 다수의 목을 긋는 적나라한 살인 방식을 선보이는 이발사(스위니 토드/벤자민 바커), 심지어 그 시체에서 나온 고기로 파이 수익 창출을 이끌어내는 가게 주인 러빗 부인. 그 사이 아무것도 모르는 순진한 앤소니와 조안나의 사랑인지 도피인지 모를 곁다리 이야기. 아, 러빗 부인이 말하지 않은 중요한 이야기도. 듣도 보도 못할 만큼 살벌하다. 터핀 판사와 비들, 스위니 토드와 러빗 부인. 법조계의 독주를 막으려는 미용업계와 요식업계의 콜라보. 듣기 좋기보다는 불편하고 독특하게 느껴질 수도 있는 음악에, 중반부터 결말까지 유혈이 낭자하다. 피비린내 나는 복수란 누구 하나 웃는 사람을 남겨두지 않는다. 어느새 붉게 물든 피가 누구의 피인지 알 수 없게 된다.
오죽하면 왜 이렇게 자극적이고 보기 힘든 인물을 주인공으로 다뤘을지 의문도 들었다. 어떤 메시지를 전달하고 싶었다든가, 호기심을 불러일으키고 싶었다거나, 혹은 이중적인 사람의 모습을 다루는 게 극적이어서? 상상해보자. 복수를 꿈꾸는 연쇄 살인 이발사와 인육 파이를 파는 공범 파이 가게 주인. 공연으로 볼 때 우리는 그들이 마구 살인을 하기로 다짐하는 노래에 박수를 치고 N차 관람을 하고 있지만, 현실이었으면 우리는 세상이 미쳐 날뛴다면서 욕을 한 바가지하고 있었을 것이다. 왜 이런 이야기를 하냐고? 스위니 토드 원작 이야기가 실화 바탕이라는 설이 있어서 그렇다. 당시 런던에 돌던 소문이긴 했다고 하고. 실화일 때와 아닐 때 와 닿는 느낌이 좀 다르다. 날카로운 이발사의 칼날이 내 목이라고 피해 갔을까 싶은 정도의 서늘함?
무대는 확실히 이런 이야기를 펼쳐도 안전하게 느껴진다. 여러 인물을 고루고루 중요하게 잘 다뤄주었고 유혈이 낭자한데도 그리 잔인하다는 생각은 하지 못했다. 우울한 이야기 속에서도 연기나 대사가 가볍고 재치가 있어서 부담감도 적었다. 풍자와 언어유희가 가득했고, 내용을 예측하지 못하고 볼 수 있어 흥미로웠다. Worst Pie in London이나 Pirelli's Miracle Elixir, A Little Priest 등의 가사가 흥미롭다. 여자 취향이 같은 터핀 판사와 스위니 토드의 오묘한 듀엣곡 Pretty Woman도 빼놓을 수 없고. 스위니 토드가 폭발하는 Epiphany, Wait과 By the Sea 등 러빗 부인의 몽환적인 넘버가 자주 생각난다.
팀 버튼 감독의 영화 <스위니 토드>는 또 다르다. 뮤지컬과 전개는 거의 같지만 분위기가 무겁다. 차이점은 몇몇 넘버가 생략되거나 대체되었다는 점. The Ballad of Sweeny Todd, 첫 노래가 오케스트라 버전으로 대체되었다는 것. (이발사의 탈을 쓴 악마라는 가사도, 간담이 서늘한 삑- 소리도 넘어갔다. 터핀 판사가 조안나에 대한 사랑과 욕망을 표현하는 넘버와, 조안나와 앤소니의 Kiss me, 터핀 판사와 비들의 Ladies in Sensitivities, 비들과 러빗 부인이 부르던 Parlour Song이 생략되었다. 거지 여인의 19금 대사도 날아갔고 가발 장수인 것으로 준비하는 과정은 줄어들고 정신병원에서 조안나를 구출할 때 정신병원 운영자를 애도하게 되었다. 조안나는 빠져나오고도 악몽에 시달릴 것 같다며 걱정했다. 통통 튀던 러빗 부인이 좀 더 차분해졌고 유머가 줄어들었기 때문에 특유의 암울함이 잘 살아난다.
영화가 가볍지 않았기 때문에 잊고 있던 질문이 다시 떠올랐다. 이 이야기가 가진 큰 장벽들. 정당화하기 어려운 지점. 개인적인 복수를 하는 선을 넘어 왜 수많은 불특정 다수까지 이유 없이 살인하기에 이르렀을까. 복수하고 싶은 터핀 판사나 비들 정도만 처리하는 게 더 깔끔했을 텐데 다른 사람들은 무슨 죄가 있는가. 왜 모르는 사람들을 죽여 파이 재료로 쓰고 먹는단 말인가. 부가적인 의문은 복수의 방식. 꼭 스위니 토드가 직접 손으로, 친구 같은 이발용 칼로 해야 하는 것인가.
그 의문의 실마리는 영화와 뮤지컬 곳곳에서 확인할 수 있다. 먼저 루시의 강간 장면. 루시는 추방당한 남편을 기다리다가 터핀 판사의 꼬임에 넘어가 가장무도회에서 강간을 당한다. 가면을 쓴 수많은 사람들은 오히려 말리기는커녕 재미난 요깃거리라도 되듯 깔깔대며 웃어댔다. 스위니 토드(구 벤자민 바커)가 어떻게 아무도 도와주지 않았냐면서 탄식하는 부분이 실마리가 된다. 터핀 판사만큼이나 야속했던 건 무슨 상황인지 알면서도 아무것도 하지 않은 사람들이다. 어차피 사람들이 서로에게 관심도 없고 돕지도 않으며 남의 불행을 조롱하고 즐기기까지 하는데 소중한 존재일 리 없다. 인간이 인간답지 않은지 오래되었으니까.
이 아까운 기회를 놓쳤으니!
There's a hole in the world like a great black pit
And it's filled with people who are filled with shit
And the vermin of the world inhabit it
But not for long...
세상의 밑바닥 검은 구멍엔
똥만 먹는 버러지가 설쳐대
망할 씨발 새끼들의 썩은 내
다 집어치워
They all deserve to die
Tell you why, Mrs. Lovett, tell you why
Because in all of the whole human race
Mrs. Lovett, there are two kinds of men and only two
There's the one staying put in his proper place
And the one with his foot in the other one's face
Look at me, Mrs Lovett, look at you
죄다 죽어야 해
당연히 그래야지 당연히
여기 위대하신 인류의 역사엔
딱 두 종류의 인간뿐이네
하난 똥이나 처먹고 사는 놈
아님 남한테 똥을 사 먹이는 놈
No, we all deserve to die
Even you, Mrs. Lovett, even I
Because the lives of the wicked should be made brief
For the rest of us death will be relief
We all deserve to die!
우릴 봐 우리 꼬라지를 봐
죄다 죽어야 해
당신도 이런 나도 똑같아
추잡한 쓰레긴 꺼져줘야 좋고
우린 뒈져야 삶이 편안하고
죄다 죽어야 해
뮤지컬 Sweeney Todd - Epiphany 중
두 번째는 스위니 토드가 부르는 Epiphany 가사에서 볼 수 있다. 토드는 인간과 세상에 대해 시니컬한 입장이다. 반사회적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의외로 많은 사람들이 한 번쯤 해 본 생각이다. 경제적인 계급이 있다면 사람은 크게 두 부류. 자기 자리에서 할 일 잘하는 사람도 있지만 다른 사람을 억압하며 살아가는 사람이 있단다. 아마 그 뒤에 가사를 하나 붙여주자면 후자가 훨씬 잘 산다는 얘기였을 것이다. 토드는 순진하고 능력 있는 이발사 바커였을 때 전자에 속했지만 모든 것을 잃은 입장. 그가 한 발 더 나아간 건 죽음에 대한 생각부터였다. 어차피 사람은 죽지만 죽음이 두 부류의 인간 모두에게 필요하다. 나쁜 사람들은 일찍 죽어주는 게 이롭고, 선한 사람들은 죽음이 오히려 구원이 될지도 모를 만큼 힘들게 살고 있는 세상이다. 아무도 믿지 못하니 행동으로 이루는 것 역시 본인의 몫이다.
칼 들고 살인을 논하는데 다정해보이는 요상한 투샷
TODD:For what's the sound of the world out there?
세상을 채우는 이 소리
LOVETT: What, Mr. Todd? What, Mr. Todd? What is that sound?
뭔 소리죠 뭔 소리죠 말해봐요
TODD:Those crunching noises pervading the air!
씹고 씹히는 경쾌한 소리
LOVETT:Yes, Mr. Todd! Yes, Mr. Todd! Yes, all around!
네, 맞아요! 네, 맞아요! 잘 들려요!
TODD:It's man devouring man, my dear!
서로 잡아먹는 인간들
BOTH:And [LOVETT: Then] who are we to deny it in here?
새삼 놀라울 것도 없잖아
TODD:The history of the world, my love --
인류의 역사는 언제나
LOVETT:Save a lot of graves, Do a lot of relatives favors!
말해줘요, 말해줘요, 어떤 거죠
TODD:Is those below serving those up above!
누가 먹히고 또 먹느냐지
LOVETT:Ev'rybody shaves,
So there should be plenty of flavors!
중간에서 잘하면요 살아남죠
TODD:How gratifying for once to know
정말 공평하지 누구나
BOTH:That those above will serve those down below!
결국 술 한 잔의 안줏거리
TODD:Have charity towards the world, my pet!
손님은 누구나 평등해
LOVETT:Yes, yes, I know, my love!
그럼요, 평등해
TODD:We'll take the customers that we can get!
누구든 오시면 감사하게
LOVETT:High-born and low, my love!
부자도 거지도
TODD:We'll not discriminate great from small!
우린 절대로 차별 안 해
No, we'll serve anyone,
Meaning anyone,
뭐 먹어도 좋고,
먹혀도 좋아
BOTH:And to anyone
At all!
어디 아무나
와 봐
뮤지컬 Sweeney Todd - A little Priest 중
그리고 문제의 인간 고기 파이가 나오게 되는 곡 <A little Priest>도 마찬가지다. 살인은 그렇다 치고 식인이라니 엄청난 장벽이긴 하다. 너무 먹고살기가 힘들어 고기 없는 고기 파이 집을 하던 러빗 부인에게야 굴러 들어온 덩치 큰 고기를 놓치고 싶지 않고 토드야 갖다 묻어버리는 것보다 돈도 벌면서 흔적을 남기지 않는 게 마음에 들었을 것이다. 고양이 고기나 사람 고기나 같은 고깃값으로 쳐지는 걸 보면 돌아가는 상황이 알만 하다.
하나 신기한 건 왠지 모르게 파이를 사는 사람들 역시 공범이 되어버리는 듯한 이상야릇한 기분이 든다는 점. 맛있다면서 매일 가게를 찾아왔을 사람들은 주변 사람들이 사라진 것에 관심이나 있었을까? 파이 가게는 1층이고 이발소는 2층, 조금만 관심을 기울이면 들어온 손님이 나오지 않는다는 걸 알 수도 있었을 테지만 아무도 그런 이야기는 하지 않는다. 이발소나 파이 가게나 모두 흥할 뿐이다. 미식가도 맛있다고 칭찬했다니까. 갑자기 왜 어디서 고기가 났을까란 의문은 없지만 본인에게 피해가 되는 악취 같은 것에만 민감할 뿐이다. 거지 여인도 아는 사실을 사람들은 모른다. 애초에 보고 들을 생각이 없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Epiphany>와 마찬가지로 <A Little Priest>에서도 후렴구에 계급에 관련된 이야기가 함께 나온다. 개인적인 이유로 시작했을지언정 사회적인 의미를 부여하자니 당사자들에게 신나는 부분이 생긴다. 사람은 위아래로 나뉘고, 가진 자가 가지지 못한 자를 억압하고 착취하는 것이 당연했다. 그들이 누구를 죽인다고 큰 문제라도 됐겠나. 토드와 러빗 부인의 쾌감은 자신들이 듣도 보도 못한 혁명을 시작한 기분이었을 것이다. 마치 물이 위에서 아래로 떨어지는 게 당연했는데, 아래에서 위로 올라갈 수 있다는 걸 확인한 기분. 가지지 못한 이들이 가진 자들의 목숨으로 돈을 번다니. 그래 놓고 차별 없이 가진 자와 가지지 않은 자 모두를 면도+파이 세트 명부에 올려놓은 건 뜨악한 부분이다. 방금 전까진 차별당했다고 얘기한 것 아니었나? 왜 가지지 못한 자들까지 팀킬을?
하지만 여기서 가진 자들만 죽인다면 토드와 러빗 부인은 영웅이 되어버린다. 러빗 부인은 그러기엔 토드를 간절히 원하고 혼자만 한적한 삶을 누리려는 소박한 욕망이 있는 소시민. 토드는 개인적인 분노와 원한에 사로잡혔을 뿐만 아니라 인내심도 없다. 토드로 자칭 개명하면서 멘탈도 개조되었고 인간에 무관심해진 건 본인도 마찬가지. 과한 일반화 같지만 토드에게 루시를 험한 꼴 당하게 만들고 조안나를 돌봐주지 않은 그 나머지 사람들도 다 못된 사람들이다. 토드에겐 어차피 인간이란 한 부류인 셈. 아주 나쁜 가진 자들과 조금 덜 나쁜 가지지 못한 자들. 직접적으로 원한이 있는 자들과 간접적으론 없어져도 상관없는 자들.
러빗 부인 말대로 토드는 기다렸어야 한다. 터핀 판사와 비들의 목만 따도록 기다리면서 차라리 고양이 목이나 따면서 파이 가게 재료를 충당했어야 한다. 그의 정체를 알고 협박한 피렐리까지야 어쩔 수 없다 치더라도 말이다. 차라리 차별을 해서 죽였으면 두 부류의 사람들 중에서 한쪽의 욕만 먹었을 것이다. 무차별한 살인, 동기 없는 살인, 선착순 살인. 둘의 칼이 목을 가리지 않겠다는 가사는 무섭고 노래는 신나는 저 곡을 기준으로 결말은 파국으로 가게 된다.
러빗 부인과 토드의 서비스 마인드가 드러나는 곡이었지만 실제로 그들은 저렇게 완전히 차별 없이 손님을 대하지 않았다. 혼자 온 사람들만 죽였고 동행이 있는 사람들은 보내주었다. 아, 무엇보다 성별적인 차별이 좀 있다. 이발사다 보니 등장한 손님이 대부분 남자였던 것. 어른은 죽이면서 아이에겐 약한 모습을 보이는 이중적인 면모도 있었다.
알고 보니 루시였던 거지 여인을 알아보지 못하고 죽이고, 그렇게 노래를 불러대던 조안나를 알아보지도 못하고 죽일 뻔한 건 토드가 혼자 있는 사람을 골라 죽이면서, 복수에 판단력이 흐려지면서 생긴 부작용이다. 그렇다고 러빗 부인을 파이 가게 주인에 걸맞게 오븐에 던질 줄은 몰랐다. 면도칼로도 죽이지 않고 불에 타게 한 걸 보면 어지간히 러빗 부인이 루시에 대해 말하지 않아서 분노한 모양이다. 하긴 매일같이 같이 있어서 루시를 얼마나 찾았는지도 잘 알고 있을 텐데 말이다. 심지어 미안하다는 말 대신 '당신이 좋아서 그랬어요'라는 러빗 부인의 말이 더 소름 끼쳤을 수도 있다. 루시가 길거리를 돌아다니고 있는 걸 알았다면, 조안나의 얼굴을 먼저 봤다면 토드의 분노가 다르게 펼쳐질 여지가 있었을까.
어리석은 이발사 벤자민 바커, 루시, 조안나
스위니 토드의 부제는 플릿 가에 사는 악마의 탈을 쓴 이발사(The Demon Barber of Fleet Street). 악마의 탈을 쓴 이발사라 하지만 정말 악마는 어디에 있는가? 누구이고 무엇인가? 피를 묻히지 않았다 뿐이지 직권으로 가볍게 교수형을 내리고, 강간이며 온갖 범죄를 저질러도 용인되는 터핀 판사? 그의 옆에서 함께 즐기고 있었던 비들과 수많은 이름 모를 '윗사람들'? 악에 받쳐 어떻게 사는지 모를 "아랫사람들'? 멀리서 찾을 것 없겠다. 비들이 토드의 손에 이끌려 2층으로 올라갈 때, 터핀 판사가 토드를 찾아와서 콧노래를 부를 때 아, 원하던 대로 토드가 이들을 죽일 수 있을까 내심 응원했던 내 마음?
스위니 토드에서 본 악마는 인간을 두 부류로 나누는 그 선에 있다. 위와 아래를 나누는 선, 가진 자와 가지지 못한 자를 나누는 선. 무관심과 소외, 억압과 착취, 돈과 권력의 남용으로 만들어진 부조리한 그 선. 그 선이 벤자민 바커를 스위니 토드로 만들고, 터핀이 루시와 조안나를 탐하게 했고, 루시를 거리에 나앉게 했으며, 벤자민의 오랜 친구 면도칼을 범행도구로 만들었다. 러빗 부인은 벤자민 바커의 죄를 어리석음이라고 했다. 사람을, 사회를, 세상을 모른 어리석음. 그걸 어리석음이라고 부르고, 사람들이 알면서도 입을 닫게 한 그 보이지 않는 선에 악마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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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등 (2015)
영화 <4등>의 중심 인물은 모두가 피해자다. 이미 첫 아시안 게임에서 신기록을 세우고, 다가오는 아시안 게임의 유망주로 떠오르는 젊은 수영 천재 ‘광수’, 수영이 좋아서 시작했으나 매번 4등만 하는 ‘준호’, 기자이자 준호의 아버지인 ‘영훈’, 악착같은 준호의 어머니인 ‘정애’. 간략한 소개로만 보아선 이들이 무슨 피해자인지 의문이 들 것이다. 하지만, 영화속 이들을 지긋이 바라보면 그들이 어딘지 말도 안되는 선택을 하며, 그 선택의 원인을 좀처럼 찾을수 없다는 점을 알아차릴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영화속에서 좀처럼 보이지 않는 중력을 행세하는 힘의 주체는 대체 무엇인가? 쉽게 보이지 않는 이 희미한 중력장의 실체는 영화속 인물들을 하나 하나 정리하다보면 발견할 수 있다.
1-1. 광수
가장 먼저, 광수의 경우는 아시안 게임을 앞두고 태릉선수촌으로 들어가기로 결정한다. 그리고 태릉으로 출발하는 날 그의 오래된 고향의 폐건물에 들러서 광수는 불법 도박을 하고 있는 고향 선배들에게 작별 인사를 나누고 폐건물에서 빠져나오려고 한다. 하지만, 광수의 뒤에 떨어진 말. “내일 가도 되잖아, 너 천재잖아”라는 그 말이 광수를 다시 도박판으로 불러들인다. 서울로 떠나려던 광수는 뒤를 돌아보며 입맛을 다시고 뒤돌아서더니, 다음 컷에는 어느덧 광수가 도박판에서 도박을 하고 있는 컷으로 이어진다. 광수는 이 지점에서 어촌 마을의 도박에 빠진 ‘형님’들이 만들어 놓은 덫에 빠진 셈이다.
광수는 몇날며칠을 도박에 빠져 태릉선수촌에 늦게 들어가게 되고, 뒤늦게 들어간 광수를 본 선수촌 코치는 대걸레 자루로 광수에게 체벌을 가한다. 대걸레 자루로 백 대. 그 체벌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인다면 광수의 몸은 분명 곤죽이 되고 말 것이다. 광수는 저항하고, 저항은 코치의 심기를 건드린다. 곧 체벌은 감정적인 폭력으로 변질되고, 광수는 폭력을 견디지 못하고 선수촌을 떠난다.
1-2. 어머니 정애
정애는 아들 준호의 성공을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할 준비가 되어 있다. 하지만, 아들 준호는 매번 4등만 하고, 정애는 준호의 성적이 아쉽기만 하다. 정애는 준호를 위해서라면 자신이 기꺼이 악역이 되고자 한다. 준호에게 일부러 밉살스럽게 ‘4등’이라고 부르는 모습, 준호에게 대놓고 “엄마가 싫지? 그러면 수영할 때 엄마가 뒤에서 쫓아온다고 생각하고 해 봐”라는 식의 말들을 하며 준호의 성공을 위해서 기꺼이 악역을 자처한다. 정애가 아들에게 거는 기대는 첫째로 아들이 구질구질하게 살지 않았으면 하는 것이고, 둘째는 정애가 열정을 부을만한 것이란 이제 아들밖에 남아있지 않기 때문이다.
극심한 교육열로 유명한 한국사회 수많은 어머니의 초상을 담은 것이 영화 <4등> 속에서 그려진 정애의 모습이다. 특히나, 그 자식에게 거는 간절함의 깊이는 사회적인 계급과 지위가 낮을수록 짙어진다. 출산과 육아후 전업주부로서 아이들의 삶만을 좇는 정애에게는 사회적 지위가 없다. 그녀가 사회속에서 온전히 할 수 있는 일이라곤 오로지 아이들의 교육밖에 없다. 이는 한국사회의 구조, ‘여성’에게 부과되는 독박육아와 강력한 사회적 단절의 탓이다. 이런 구조 탓에 어머니 정애는 자기 자신에게서 더이상 기대할 수 있는 것이 없음을 깨닫고 두 아들을 다그친다. (자신처럼)구질구질하게 살기 싫으면, 노력해서 성공하라고 주문하고 있는 것이다.
1-3. 아버지 영훈
아버지는 수영 천재이자 유망주인 광수를 만나고 이 유망주를 일찍이 알아보고 친해진다. 영훈은 광수의 성적을 묻고 광수가 높은 기록을 세웠다는 대답을 듣고는 광수에게 기대를 걸며 명함을 건네준다. 그때까지만해도 그는 광수에게 호의적이다. 기자인 그가 수영 유망주와 친해지고자하는 목적은 어느정도 알 법하다. 그리고 이런 가벼운 인간관계는 작은 균열에도 쉽게 무너져내린다는 사실 또한 충분히 알 법하다.
광수가 태릉을 박차고 전화를 건 것은 ‘영훈’의 번호였다. 광수는 억울하다는 듯이 말한다. 대걸레 자루로 100대를 맞으라는데 그게 말이 됩니까, 자신이 있어서 늦게 간 겁니다, 개인적인 사정이 있어서 1 주일 늦었습니다. 그리고 광수의 절박한 전화를 받은 영훈의 대답은 “맞을 짓을 했으니까 맞았겠지”였다. 그리고 이런 영훈은 후에 자신의 아들 준호가 새로운 수영 코치 광수에게 체벌을 당했다는 말을 듣고 광수를 찾아가 그에게 아이에게 체벌을 하지 말라고 단호하게 말한다.
이를 통해서 영훈은 분명하게 체벌에는 반감을 갖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하지만, 체벌에 반감을 갖고 있는 영훈은 광수의 전화를 외면하는데, 이 행동에는 많은 이유가 있을 것이다. 그 이유란 영화를 통해서 다 알 수 없기에 추론만 가능할 뿐이지만, 가장 높은 가능성을 가진 이유를 제시해보자면, 영훈이 광수를 두둔한다고 하여 이득이 될 것이 없다는 점이다. 앞으로 자신의 업으로 한 집안을 이끌어가야 할 영훈에게 이득이 되지 않을 비주류의 물결에 몸을 떠맡기라는 선택은 어렵다. 영훈에게는 일단 제 식구들을 먹여살려야 할 의무가 있고, 그 의무는 전적으로 영훈에게만 짊어져 있기 때문에 먹고 살기 위해서라도 영훈은 다소간에 뻔뻔해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 역시 그 기형적인 한국 사회의 구조탓이라고 하겠다. 여성에게는 독박육아가, 남성에게는 생계유지의 의무가. 한쪽 성별에게 주어지는 전적인 의무들이 그 의무를 짊어진 사람들의 마음을 제멋대로 헤집고, 망쳐놓는다.
1-4. 준호
“형. 1 등하면 무슨 기분이에요?” 순진무구한 표정으로 4등 준호는 1등을 해낸 초등 수영부 선수에게 자신이 느껴보지 못한 감정을 묻는다. 이런 준호는 광수의 과거처럼 보이는 인물이다. 준호는 그저 수영이 좋아서 시작했고, 엄마는 성적이 나오지 않는 준호탓에 애가 타서 새로운 코치 광수에게 준호의 지도를 맡긴다. 그리고 광수는 준호에게서 재능을 발견한다. 광수는 재능있는 준호를 키우고자 체벌로 엄하게 가르치며, 어린 준호는 당연히 맞는 게 싫다. 하지만, 준호는 가정으로 돌아와 어느순간 자신의 동생에게 자신이 받은 체벌을 그대로 재현하며 동생의 울음소리에도 아랑곳하지 않는다. 마치 광수처럼.
역설적으로도 준호는 새로운 코치인 광수에게 ‘엄하게’ 교육을 받으면서, 성적은 점차 좋아진다. 하지만 성적과는 반대로 준호는 점차 코치의 체벌이 두려워 수영에서 느꼈던 순수한 흥미와 즐거움을 점차 잃게되고, 급기야 광수의 체벌 탓에 더 이상 수영을 하지 못하겠다며 아버지에게 고백하고, 수영장을 떠난다.
2. 기성 사회의 구조와 구조속의 피해자들.
이 네 명의 중심인물을 정리하다보면, 영화가 그려낸 그들의 삶은 도덕적 딜레마에 의한 긴장의 장력이 팽팽하게 유지되고 있음을 느낄 수 있다. 우선 광수는 태릉으로 떠아냐 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도박장에 남고, 모욕적이고 감정적인 체벌이 싫어 태릉을 떠났으면서 체벌을 대물림하며, 정애는 자신이 악역을 맡고 있음을 알고 있으면서도 악행을 중단하지 않고, 영훈은 타인의 고통은 외면하더라도 자기 자식의 고통에는 민감하게 반응하며, 준호는 마찬가지로 체벌이 싫었으면서 체벌을 대물림하고 권위적으로 누군가를 내려다보는 시선을 갖게 된다.
앞서 정리한 바와 같이 이 도덕적 딜레마들은 모두 어떤 원인에서 부터 발생하고 있는데, 이 인물들의 사례를 통해 귀납적으로 접근하면 그 원인을 밝혀볼 수 있을 것이다. 거두절미하고 말하자면, 영화속의 모든 문제는 불합리한 기성 사회의 구조에서 비롯된다. 어촌마을의 기성세대인 ‘형님’들이 만들어 놓은 도박판에 어쩔수 없이 빠져드는 광수, 그리고 잘못은 체벌을 통해 몸속에 교훈을 새겨야 한다는 기성의 교육 방식, 양심적인 비주류에 휘말리면 생계를 보장할 수 없는 사회속에서 생계를 위해 뻔뻔해져야 했던 영훈, 이 사회속에서 이젠 자신이 무엇도 될 수 없음을 깨닫고 그 자식들은 무엇이라도 근사한 삶을 살게 되기를 간절히 바라는 정애.
영화 <4 등>속 인물들을 통해서 “어떤 사물의 의미는 개별로서가 아니라 전체 체계 안에서 다른 사물들과의 관계에 따라 규정된다”는 구조주의 이론에 따라 잘못된 기성의 구조속에서 상처받는 이들의 면면을 볼 수 있다. 그리고 어쩔수 없이 잘못된 구조를 따르기 위해 자신들의 개별적인 의미와 신념을 잃고, 사회 주류의 신념과 구조를 따르는 이들의 삶이 멀리에 있지 않음을 분명하게 확인할 수 있으며, 사회적 지위와 계급이 낮을 수록 구조의 요구와 강요에 더욱 순종하게 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은 희미하게 확인할 수 있다.
물론 이 글이 기성 사회를 만든 기성 세대들을 비판하고자 함이 아니다. 우리 사회의 이런 아픔은 개발도상국이 선진국으로 성장하기 위한 시대적 상처이며, 일반적인 역사적 기류에 의한 것이지 특정한 누구에 의한 것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때문에 지금 필요한 것은 감정적으로 기성의 세대를 비판하는 것이아닌 기성의 사회 구조를 비판적인 시각으로 되돌아보며 무엇을 고쳐나가야 할까 생각해보는 것이다.
3. 구조속에서 잃어가는 것들
영화 <4 등>을 통해서 우리 사회가 현재까지 앓고 있는 상처를 재확인할 수 있음은 물론이며, 몇몇 사람들에게는 지난한 과거를 회상하며 자신의 처지와 영화속 불합리한 상황들을 동일시 여겨볼 수 있을 정도로 현실적으로 그려내고 있다.
영화 <4 등>속 인물들은 구조에 의해서 요구된 악역을 어느정도 떠맡는다. 이를 통해 관객은 상처를 지닌 자가 또 다른 누군가에게 상처를 입힌다는 역설적인 비인간성을 영화속에서 목격하며, 이 영화가 마냥 통렬한 사회비판의 영화로만 다가오지 않은 이유는 바로 그 때문이다. 아마도 비판만을 담은 영화였다면 아쉬움이 많이 남았을테지만, 영화 <4등은> 사회구조의 문제성에 대한 비판만을 하지 않고, 더 나아가 한 줄기의 희망을 예술적으로 그려내고 있기도 하다. 그 때문에 <4 등>은 조금 높게 평가하고 싶은 영화다.
구조속에서 잃어가는 것은 개별체의 순수한 특성이다. 우리 인간은 모두의 지문과 홍채가 다르듯이 인간이 가진 개별성은 인간 종의 특징 중 하나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개별적인 인간이 모인 사회의 다양성은 불가피하다. 하지만, 때때로 ‘구조’는 구성원들에게 특별한 지위와 책무를 떠맡기거나 강요한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인간의 순수한 특성, 개별성과 주체성을 잃게 된다.
인간은 사회적 강요와 구조가 정의한 개체성에서 탈피하여 자신만의 순수한 개체성을 추구할 때 아름답게 빛난다. 영화 <4등>에선 그 아름다움을 묘사하는데, 사회적 구조 속에서 정당화되는 체벌이 두려워 수영장을 떠난 준호가 다시금 수영을 하고 싶다는 순수한 동기로 늦은 새벽에 수영장을 찾아와 홀로 어둡과 차가운 물속에서 빛을 따라 헤엄치는 장면에서 그렇다.
이 씬이 아름다운 것은 바로 어둑한 새벽, 어둑한 물속에서 감감히 출렁이는 빛의 주변을 헤엄치는, 절대적인 어둠속 희미한 빛의 주위로 떠도는 여리고 어린 피사체의 모습이 씬에 아름답게 담겨있기 때문이다. 본래 밝기만 해서는 그 밝음의 정도를 인지하지 못하는 것이 우리 인간인지라, 어둠속에서의 그 희미한 빛을 향해 헤엄치는 준호의 모습은 그 어떤 희망적인 언어보다도 강렬한 희망의 언어로 읽힌다. 비록 그 빛이 준호를 수영장에서 꺼내올리는 빛에 불과했다 할지라도, 카메라에 담긴 영상은 그 결과로만 축약하기에는 너무도 아름답게 그려져 있다.
<4 등>은 이렇게 구조속에서 피해받는 이들의 고통과 초상들을 보여주는 한편으로는, 우리 각자가 지니고 있는 사회구조 내의 개별적 존재로서의 정체성에서 탈피하여 개별적인 존재를 추구하는 과정이 지닌 순수함의 미학을 카메라에 담아내며 희미하지만, 희미하기 때문에 강렬한 희망의 메세지를 유려하게 그려내어, 작금의 사회가 필요로 하는 비판의 메세지와 함께 영화의 미학적인 추구 또한 충실히 따르고 있는 꽤나 괜찮은 영화라고 할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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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영화의 배경인 '소말리아 내전' 역사 소개- 모가디슈 영화정보
장르: 드라마, 액션
감독: 류승완
각본: 류승완
제작: 강혜정
출연: 김윤석, 조인성, 허준호, 김소진, 정만식, 구교환, 김재화, 박경혜 외
촬영: 최영환
조명: 이재혁
편집
미술
음악
의상
주제곡
촬영 기간: 2019년 11월 ~ 2020년 2월
제작사: 대한민국 외유내강, 덱스터 스튜디오, 필름케이
배급사: 대한민국 국기 롯데엔터테인먼트
개봉일: 대한민국 국기 2021년 7월
화면비
상영 시간: 121분
제작비: 240억 원
- 시놉시스
내전으로 고립된 낯선 도시, 모가디슈
지금부터 우리의 목표는 오로지 생존이다!대한민국이 UN가입을 위해 동분서주하던 시기
1991년 소말리아의 수도 모가디슈에서는 일촉즉발의 내전이 일어난다.
통신마저 끊긴 그 곳에 고립된 대한민국 대사관의 직원과 가족들은
총알과 포탄이 빗발치는 가운데, 살아남기 위해 하루하루를 버텨낸다.
그러던 어느 날 밤, 북한 대사관의 일행들이 도움을 요청하며 문을 두드리는데…목표는 하나, 모가디슈에서 탈출해야 한다!
- 캐릭터
대한민국 대사관
한신성 대사 (김윤석 분)
강대진 참사관 (조인성 분)
김명희 (김소진 분)
공수철 서기관 (정만식 분)
조수진 대사관 사무원 (김재화 분)
박지은 대사관 막내 사무원 (박경혜 분)
북한 대사관
림용수 대사 (허준호 분)
태준기 참사관 (구교환 분)
2021년 개봉예정인 대한민국의 영화. 류승완 감독의 11번째 연출작.
1991년 소말리아 내전으로 인해 고립되어 버린 남북대사관 공관원들이 목숨을 걸고 함께 탈출했던 실제 사건을 모티브로 제작되었다.영화 제목이 캐스팅 과정에서는 '탈출' 이라는 가제로 알려졌으나, 이후 '모가디슈'로 확정되었다.
2020년 여름 성수기 개봉작품으로 준비중이었으나, 코로나19 사태로 인해 개봉이 1년 가까이 지연되었다.
영화의 배경은 소말리아 모가디슈지만 현재까지도 위험이 발발한 지역인지라 실제 촬영은 모로코에서 이루어졌다고 한다.#모가디슈 #모가디슈_예고편 #모가디슈_실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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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종착역> 메인 예고편
사진 동아리 '빛나리' 부원인 시연,연우, 소정, 송희는 '세상의 끝'을 찍어 오라는 방학 숙제를 하기 위해 지하철 1호선 신창역으로 향한다. 웃음이 끊기지 않던 친구들은 계획대로 잘 풀리지 않는 여정에 점점 지쳐가고, 낯선 곳에서 14살 첫 여름방학을 마주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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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디즈니+ <윌로우> 티저 예고편
"세상이 부르고 있어요" 세상의 끝, 새로운 위협에 맞설 위대한 마법이 시작된다! 판타지 어드벤처 [윌로우] 12월, 오직 디즈니+에서 공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