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니엘2022-12-18 22:00:49
황후에게 필요했던 건 과연 무엇이길래?
영화 <코르사주> 시사회 후기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황후인 엘리자베트는 아름답기로 소문났으며 체중을 유지하기 위해 꾸준한 식단 관리와 엄격한 운동을 해왔다. 하지만 그녀는 자유분방한 성격으로 왕실을 벗어나 불륜도 하고 이상한 행동들도 많이 했다. 그녀의 딸인 발레리는 엄마인 엘리자베트에게 귀여움을 받는 사랑스러운 딸이었으며 그런 엄마를 좋아한다. 또한 황제인 프란츠 요세프 1세는 자신의 아내이자 황후인 엘리자베트에게 무엇이든 해주려고 하지만 엄격한 왕실 속에서 살아가기가 힘든 엘리자베트였기에 그녀는 다양한 일탈을 하게 된다. 그토록 원하는 것을 누리던 황후에게 부족했던 것은 무엇이었을까?
황족이라고 다 좋은 것만은 아닌가 보다.
일탈을 꿈꾸는 황후에 비추어진 삶을 이야기하는 영화!
엄격하고 풍유로운 황실에서 벗어나고픈 엘리자베트는 1킬로나 되는 가발을 쓰고 우아하게 지내왔다. 그러나 그녀에게도 엄격한 체중 관리와 몸무게를 재는 것은 답답하면서도 자신이 하고픈 일과는 거리가 멀었던 게 아니었을까라고 생각해 본다. 하인들을 불러 욕조 속에서 숨을 참고 얼마나 버티는지 시간을 재도록 하고 답답한 가발을 가위로 자르는 행위도 한다. 그리고 많은 귀족 남자들에게 구애도 받고 불륜도 했던 엘리자베트였다. 하지만 이 영화에서 정신병원으로 위문을 간 엘리자베트는 다양한 정신질환자들을 만나 보면서 자신의 삶도 왕실의 구속에 갇혀있다는 생각을 한 것 같아 보인다. 그러나 그녀의 딸인 발레리가 그린 그림을 앨리자베트에게 보여주는데 그 그림은 국민들에게 황후로서 역할을 제대로 하는 모습이었다. 과연 수많은 일탈을 하던 그녀가 진정 원하는 건 무엇이었을까? 진정한 행복은 구속된 왕실에서 벗어나 평범한 자유가 아니었나 싶다.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황후에 대한 비극의 말로는?
※ 씨네랩의 크리에이터로서 시사회에 초대받아 작성한 주관적인 리뷰입니다.
Relative cont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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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가 하필 인간이라서, <팟 제너레이션>
* 본 리뷰에는 영화의 자세한 이야기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팟 제너레이션 The Pod Generation, 2023
영국 / 109분
감독: 소피 바르트우리가 하필 인간이라서, <팟 제너레이션>
적당한 공포와 적절하게 배합된 연민과 침묵은 인간의 생존에 필수적이다. 섬세하고 감각적인 장치로 사람들이 향하는 방향이 순뱡향이든 역방향이든 상관없이, '멈춰 있는 순간'에만 발동한다. 절대 피할 수 없으며, 강제적으로 작동해 기어이 멈춰 선 이의 발을 지면에서 떼게 한다. 인간에게 '정지' 행위는 죽음이 다가오는 걸 알면서도 어떠한 조치도 취하지 않겠다는 어리석은 결정이기 때문이다. 내가 암묵적으로 합의한 이 필수조건은 철저한 계획하에 만들어진 거창한 방책이 아니다. 직접 경험으로 얻은 교훈과 지식을 축적한,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존재한다고 믿게 된 이른바 생존 본능이다. 인간이 본능적으로 인간을 위해 비극을 적극적으로 생산하며 사는 일이 자연의 순리와 같다는 점에서 우린 매 순간 죽음을 향해 가지만 절대 죽지 않기 위해 애쓰는 존재다.
인간은 단순하다. 생존을 우선시하는 본능이 나를 끊임없이 움직이게 하고, 우린 각자 자기만의 방법을 정립하며 원하는 삶을 살기 위해 노력한다. 여러 방식이 존재하지만, 그중 세 가지 방식이 공통적으로 포함되어있다. '나와의 분리', '조건 없는 수용', '맹목적인 믿음'. 앞서 언급한 공포와 연민, 침묵이 인간의 내면에 박힌 생존용 고정핀이라면 분리와 수용, 믿음은 생을 향한 원초적인 욕구가 실행되는 길을 만드는 역할을 한다. 그 덕분에 인간인 우린 계속 길을 걷는다.
영화 <팟 제너레이션> 스틸컷(다음)
소멸을 부정하기 위해 시작된 인간의 생존 본능은, 시간이 흘러 자연스럽게 개인의 가치관, 신념, 취향, 일상으로 파고들었다. 단순히 숨이 끊어지는 순간만이 아니라 현재 내가 누리고 바라고 원하는 것이 불가능해질 때도 죽음은 물론이고, 죽음이 주는 극단적인 감정까지 느끼게 됐다. '어떻게 죽음을 피할 것인가'보다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가 중요해졌고, '앞으로 있을 죽음'보다 '지금 당장 없는 무언가'를 더 갈망하게 됐다. 흥미로운 건, 삶의 태도와 관점이 변화되었어도 고정핀은 여전히 박혀있으며 공통 방식도 달라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어떠한 위협 속에서도 온전히 '나'를 따로 분리해 보호하고, 변화하는 세상의 흐름에 적응하며, 그 선택을 진실하다 믿는다. 그 결과 오늘날 우린 어떠한 상황에도 머뭇거리지 않고 더 적극적으로 스릴 있게 투쟁하는, '격렬하게 애쓰는 존재'가 됐다.
어쩌면 당연한 흐름이다. 인간은 더 이상 살고 죽는 간단한 문제에 속한 동물이 아니니까. 자연의 순환 속에서 경계 없이 자기 세상을 확장하면서 그에 따른 온갖 난제를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활용까지 하며 살고 있으니까. 그렇게 보면, 우린 참 뭐라 설명하기 힘든 존재다. 예측불허하면서 충분히 예측할 수 있고 정말 단순하면서 그만큼 복잡한 인간. 죽음과 생존을 같다고 여기며 끊임없이 삶을 욕망하는 인간. <팟 제너레이션>은 이 모든 걸 담고 있다.
영화 <팟 제너레이션> 스틸컷(다음)
레이첼은 인공지능을 개발하는 회사에서 똑똑하고 능력이 뛰어난 여성 임원이다. 아침에 눈을 떠 저녁에 눈을 감기까지 고도로 발달한 과학기술의 힘을 사용하며 합리적으로 편하게 산다. 하지만 앨비는 다르다. 그는 자연을 사랑하는 식물학자다. 인간이라면, 인간이 만든 과학 기술적 세계가 아닌 자연 속에서, 자연과 상호작용하며 진정한 인간다움을 가꾸며 살아야 한다고 믿는다. 두 사람은 다르다. 인공지능이 실시간으로 체크해 주는 행복 지수가 말해준다. 앨비는 늘 낮거나 측정 불가이지만 자기만의 자연(섬에 있는 집)을 갖고 있어 진짜 미소를 지으며 산다. 레이첼은 인공지능의 행복 지수 관리를 신뢰한다. 적당한 지수를 유지하면서 간혹 높지 않은 날엔 거짓 미소를 짓기도 하지만 지금의 삶에 만족한다. 아침마다 무슨 옷을 입을지 고민하지 않아도 되고, 바다가 보고 싶으면 대중교통으로 귀중한 시간을 허비할 필요 없이 공원에 설치된 '네이처팟'에 들어가면 된다. 굳이 자연을 현장 체험으로 가지 않아도 되는 현재, 레이첼이 사는 곳은 쓸모보다 편리함이 더 귀한 가치로 여겨지는 아주 좋은 세상이다.
레이첼에겐 '이 환경'이, 앨비에겐 이 환경이 아직 정복하지 못한 '생존한 자연'이 존재하기에, 부부의 삶은 안정적으로 흘러가고 있었다. 하지만 레이첼이 인지능력이 더 높은 인공지능 '마샤'를 성공적으로 출시하면서부터 상황은 달라진다. 회사가 그녀에게 승진 혜택으로 인공 자궁(팟) 서비스를 이용할 기회를 제공한 것이다. 부부에게 인기몰이 중인 페가수스의 자궁 센터는 팟이란 플라스틱 알 모양의 기기로 임신과 출산을 가능하게 하는 서비스를 운영 중이고, 사실 레이첼도 아기를 갖고 싶은 마음에 남편 몰래 대기 명단에 이름을 올려놨었다. 예상대로 자연 임신을 원했던 앨비는 아내에게 논의 없이 아기가 알에서 나오게 하는 대가를 지불했다며 화를 낸다. 그러나, 결국 그는 사랑하는 아내의 선택을 받아들이기로 '선택'한다.
영화 <팟 제너레이션> 스틸컷(다음)
선택. 앨비와 레이첼이 함께 쌓아온 규칙이 다시 재정립되는 순간인데, 그 공은 두 사람이 아니라 레이첼의 심리치료사 일라이저, '인공지능'에 있다. 거대한 눈, 일라이저는 훌륭한 아이를 갖는 것뿐이라며 레이첼이 내면 깊숙이 원했던 말을 대신해 줬고, 인공지능이기에 인간의 영혼을 못한다고 믿는 앨비에겐 최고 등급의 사생활 보호 서비스를 제공했다. 남편의 반대와 자연을 반하는 행위를 한다는 죄책감에서 해방된 레이첼과 자연만을 믿고 살면서도 혼자 남모를 속앓이를 했던 앨비는 일라이저의 한 마디 처방에 그동안의 문제를 '나'에게서 분리하고 누구보다도 빠르게 생각을 전환한다. 이제 두 사람의 목적은 혼란스럽고 낯설어 어찌해야 할 바를 모르겠는 우리의 팟을 잘 돌보는 일이다.
팟은 정말 엄마 배 속에 있는 것처럼 그들의 혼을 쏙 빼놓는다. 영양분을 달라며 알람을 울려대고, 자기 모습을 실시간으로 보이며 눈을 떼지 못하게 한다. 앨비와 레이첼은 각자의 속도로 팟을 받아들인다. 팟을 먼저 품기 시작한 건 예상과 달리 식물학자 앨비다. 팟 캐리어(유모차 같은)를 메던 친구를 이해하지 못했던 그는 어느새 캐리어 달인이 되어 팟을 자기가 일하는 온실에 동행한다. 나아가 집 밖에서도, 집 안에서도 끊임없이 팟과 교감한다. 팟은 자연을 사랑하는 그의 예외적 선택으로 자연이 됐다. 임신과 출산에서 자유로워진 후 계속 똑똑하고 능력 있는 여성으로 살던 레이첼은 백팔십도 달라진 남편의 모습에 당황스러움을 감추지 못한다. 아빠가 어떻게 엄마보다 더 아기와 가까워질 수 있지? 그도 그럴 것이 자연대로라면 태아와의 강력한 교감은 엄마만이 느낄 수 있는 특권이다. 엄마만이 체감할 수 있는 감정들을 인공 자궁을 선택한 레이첼이 무슨 수로 경험할 수 있단 말인가. 사실 레이첼은 이미 알고 있었다. 임산부의 배에 손을 올리고 태동을 느끼며 자신도 임신 중이라고, 당신처럼 아기를 품고 있다고, 아무리 되뇌어도 '나'의 임신과 '그녀'의 임신은 절대 같을 수 없다는 진실을 말이다. 더는 견딜 수 없었던 레이첼은 팟과 남편을 데리고 다시 일라이저를 찾아간다.
영화 <팟 제너레이션> 스틸컷(다음)
레이첼은 팟 서비스를 이용하기 전부터 볼록하게 나온 자기 배를 만지며 평화로운 모래사장을 걷는 꿈을 꿨었다. 팟이 생긴 이후엔 조그만 알을 출산하는 섬뜩한 꿈을 꿨었는데, 일라이저는 꿈은 자의적이며 구시대적인 산물일 뿐이라며 더 이상 인간은 꿈을 해석하거나 이해하지 않는다고 그녀를 안심시켰었다. (자궁 센터 원장도 인간은 꿈을 꾸지 않는 게 정상이라고 당당히 말했고, 한술 더 떠서 아기에게 부모가 원하는 꿈도 꾸게 할 수 있다며 신제품 드림팟을 선전한 바 있다) 즉, 자연과 여자의 자궁, 이젠 인간의 꿈까지도 좌지우지할 수 있는 세상에서, 엄마가 될 준비가 되지 않은 것 같다며 걱정하는 레이첼의 우려는 불필요한 고민이었다. 그런데도 쉽사리 고민을 떨쳐내지 못하는 그녀에, 일라이저는 팟 안에 든 태아와 자신을 연결해 달라고 말한다. 그 순간 레이첼과 앨비는 처음으로 멈칫하며 거대한 눈에게서 빠르게 도망친다.
그동안 그들은 숱하게 합리화를 해왔다. 여성의 자궁 대신 팟에서 태아가 자라는 것뿐이며, 자연임신으로 부모가 된 부부와 똑같은 경험을 하는 건 아니지만 그것과 크게 다르지 않은 경험을 하고 있다고 믿었다. 레이첼의 말처럼, 중요한 건 플라스틱 알이 아니라 태어날 '우리 아기'니까. 분명 자연의 선물로 받은 축복이라 생각했는데, 인간의 기술로 태어나 조작으로 만들어지는 뭐라 정의할 수 없는 '정체불명의 무언가' 같은, 이 불쾌감과 거북스러움이 그들을 덮친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그동안 해왔던 분리와 수용, 믿음 방식을 계속 유지한다. 레이첼은 남편처럼 회사에 팟을 들고 다니면서, 아기와 유대관계를 만들어 나간다. 오로지 자신에게 올 '아기'만을 생각하면서.
팟의 대기 명단이 길어지자, 자궁 센터는 부부에게 유도분만을 제안한다. 광고할 때만 해도, 아기가 스스로 나오고 싶은 순간에 신호를 주면 출산 과정을 돕는다며, '자연이 결정'한다고 온갖 위대한 척은 다 하더니 결국 자본의 흐름에 아기를 다루고 있던 것이다. 레이첼과 앨비는 거부한다. 팟은 페가수스의 자산이지만, 그 안에 든 아기는 우리 전부니까. 앨비는 곧바로 팟을 몰래 집으로 데려오고, 아기를 백화점에서 골라 사는 꿈을 꾼 레이첼은 섬에서 가정 분만을 하자고 선언한다. 부부는 진짜 자연 속에서 진짜가 된 팟을 품고 자연과 온전히 동화된 시간을 보낸다. 원격으로 팟의 기능을 꺼버린 페가수스의 저급한 협박에도 굴하지 않고 아기를 믿고 기다린다. 드디어 온 아기의 신호. 앨비는 플라스틱 알을 강제로 개봉해 아기를 꺼내 품에 안는다. 감격스러워하는 앨비와 레이첼 그리고 그들의 축복, 팟 제너레이션의 탄생으로 영화는 끝이 난다.
영화 <팟 제너레이션> 스틸컷(다음)
분리, 수용, 믿음. 두 사람은 부단히 노력해 아기를 얻었다. 그럼 된 것일까? 해피엔딩인가? 태어난 아기는 부부의 사랑 안에서 행복한 삶을 살 수 있을까? 레이첼은 내가 정말 듣고 싶은 말을 듣기 위해, 더 편한 선택을 하기 위해, 자신의 복제품(일라이저)을 만들었다. 그리고 일라이저를 통해 팟 서비스가 좋은 선택임을 객관적으로, 이성적으로 확인받았다. 그러나 부부가 사는 세상이 오직 지금, '현재에 사는 이들만'을 위해 만들어진 세계인 것처럼, 그들의 선택 역시도 우리 가족의 미래를 위한 결정이 아니라 '아기를 욕망하던 오늘의 나만'을 위한 선택이었다. 그 결과 꿈꾸지 않는 팟 제너레이션을, 아니 '꿈꿀 수 없는 인간'을 탄생시켰다. 꿈은 영화 속에서 인간이 인간임을 확인시켜 주는 유일한 장치였다. 꿈이 인간다움이라면, 팟 제너레이션 이후는 어떻게 되는 걸까. 그들의 아이는 정말 인간답게 살 수 있을까. 그 아이들이 계속 태어난다면 우리가 생각하는, 우리의 미래엔 무엇이 살아남을까.
<팟 제너레이션>은 우리가 얼마나 변덕을 부리면서도, 카멜레온처럼 나란 존재를 끊임없이 긍정하며 사는지 다시금 확인하게 한다. 나아가 이를 부정하지도, 긍정하지도 않는다. 그저 부부의 새로운 도전을 평범한 일상 안에 평이하게 녹여내는 데 집중한다. 인간의 생존 본능과 변화무쌍한 능력들도 악인의 횡포처럼 풀지 않는다. 단지 잔잔하게 흘러가는 부부의 개인사가 끝을 향해 갈수록 우리가 스스로 알아차리게 되는 것뿐이다. 점점 더 무겁게 짓누르는 위기감과 섬뜩함에 생존 본능이 발동되는 순간, 페가수스 사장이 쿠키 영상으로 등장한다. 그는 자궁 센터의 고객은 부모가 아닌 아기임을 확인시키며 언젠가는 아기가 부모를 선택할 수 있는 시대가 올 거라고 말한다. 그리고 부디, 그들이 현명한 부모를 선택하길 바란다며 인터뷰를 마친다. 결코 해피엔딩이 될 수 없는 이유다. 분명 팟으로 합리적으로, 더 안전하게 아기를 얻으려는 부부의 이야기가 전부일뿐인데, 물음 하나가 머릿속에서 떠나질 않는다.
"역시 어쩔 수 없겠지? 우리가 하필 인간이라서."
참신하고 흥미롭지만, 여러모로 행복 지수를 높이는 영화는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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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상영은 돌아와도 우리의 순간은 돌아오지 않아 ! "Carpe diem"
얼마 전, 영화 <죽은 시인의 사회>가 재개봉을 한다는 반가운 소식을 들었다. 지금 이 순간을, 현재를 마음껏 즐기라는 용기를 주는 <죽은 시인의 사회>를 만나기 전, 처음 이 영화를 만나 가슴 설레던 순간을 돌이켜보며 리뷰를 적으리라 마음먹었다.
지하철에서 인상 깊은 한 광고를 보았다. ‘많은 전자기기와 책을 보는 탓에 우리나라 청소년 대부분이 근시안이다.’라며 안경 교정을 추천하는 광고였다. 시력이 약하여 가까이 있는 것은 잘 보아도 멀리 있는 것은 잘 보이지 않는 것을 일컫는 근시. 나는 이 광고를 보고 근시안은 단지 시력을 말하는 것에만 그치는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현 교육 체제 아래 우리 사회 청소년들은 당장 주어진 일을 해내는 것에 급급해 스스로 미래를 마음껏 상상해 볼 시간도, 주변을 돌아볼 여유도 잃어버린 시야로 살아가고 있다. 이런 청소년들의 모습은 영화 <죽은 시인의 사회> 속에서도 볼 수 있다.
<죽은 시인의 사회>에는 매사에 소극적이고 자신감이 없으나 점차 세상을 향해 나아가는 ‘토드 앤더슨’, 강압적인 아버지에게 늘 순종해왔지만, 이제는 스스로 꿈을 찾아가려는 ‘닐 페리’, 우연히 만난 소녀에게 빠져 사랑을 배우는 ‘녹스 오버스트리트’, 당차고 과감히 도전을 즐기는 ‘찰리 달튼’, 모범생이지만 현실적이고 기회주의적 면모를 가진 ‘리처드 카메론’까지 다양한 성향을 지닌 학생들이 등장한다. 뚜렷한 개성과 성향을 지닌 서로 다른 다섯 소년은 키팅 선생을 만나면서 내적 성장과 변화를 겪는다. 소년들이 다니는 웰튼 아카데미는 ‘헬(Hell)튼 아카데미’ 라고 불릴 정도로 학생 전원 기숙사 생활은 물론, 엄격한 규율과 통제를 내세우며 학생들의 아이비리그 진학을 목표로 하며, 앞서 소개한 다섯 소년 역시 의사, 법조인 등 부모님들이 원하는, 사회에서 인정받는 진로를 염두에 두고 입학한 학생들이다. 그러나 웰튼 아카데미의 우수 졸업생이었던 키팅은 웰튼 아카데미가 추구하는 교육과는 달리 학생들에게 틀에 박힌 사고방식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사고할 것을 권유한다. 그는 시라는 문학을 통해 학생들 내면에 잠재 되어있는 가능성을 일깨워주고, 형식적이고 보편적인 시각에서 벗어나 자신만의 시각으로 세상을 바라볼 수 있도록 도모한다. 키팅 선생의 남다른 교육 방식은 영화의 초반부터 드러나는데, 첫 수업 시간, 키팅은 학생들에게 어떻게 시에 하나하나 점수를 매기고 평가할 수 있겠냐며 책의 서문 찢게 한다. 엄격한 교육과 교과서적인 틀 안에서 자라온 학생들은 책을 찢으라는 선생의 말에 당황하고 주저하며 쉽게 책에 손을 대지 못하지만, 이내 모두 각자만의 방식으로 책을 찢어나가기 시작한다. 주저하던 학생들이 하나둘 직접 손으로 책을 찢어가는 해당 장면은 키팅 선생으로 인해 학생들이 점차 변화해 나갈 것을 암시함과 동시에 학생들이 더 넓은 세상을 향해 내딛는 첫 발걸음을 의미하는 듯 하고, 이는 영화를 보는 관객들까지 알 수 없는 해방감을 느끼게 한다.
<죽은 시인의 사회>에서 특히 인상 깊은 장면을 골라야 한다면, 두 장면이 가장 먼저 떠오른다. 첫 번째는 키팅 선생이 수업 시간에 시 발표를 주저하는 토드를 이끌고 앞으로 나가 내면에 있는 생각들을 자유로이 뱉을 수 있게 해주는 장면이다. 어느 날 숙제로 해온 시를 발표해오라는 말에 숙제를 하지 못했다며 자신이 써온 시를 감추려하는 토드의 모습을 본 키팅은 토드를 교탁 앞으로 데리고 나가 칠판 위에 걸린 사진을 보고 연상 되는 것들, 그냥 지금 당장 머리에 떠오르는 것들을 주저 없이 말하게 하는데, 쉬이 시도하지 못하고 망설이던 토드는 이내 키팅 선생의 적극적인 유도를 따라 떠오르는 생각들을 과감히 내뱉기 시작한다. 이 장면은 ‘알은 세계다. 태어나려는 자는 한 세계를 깨뜨려야 한다.’라는 소설『데미안』의 한 구절을 연상하게 하기도 한다. 매사 소극적이고 주저하던 토드가 처음으로 스스로 한정 지었던 틀을 깨고 나와 더 큰 세상을 맞닥뜨린 순간이었다. 우물쭈물 조금씩 말을 내뱉다 키팅 선생의 열정적인 지도로 점차 과감하게 에너지를 발산하는 토드의 모습은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하기도 하는 한편, 과거 인물과 같은 이유로무언가를 실행에 옮기지 않았던 아쉬운 기회들을 후회하게 한다. '이러면 안 된다'는, '난 이렇게 행동할 수 없다'는 평소 토드의 이성적 자아와 그보다 더 깊은 내면에 묻어두었던 자유로운 상상들이 충돌해 소용돌이처럼 밖으로 뒤섞여 나오는 것이다. 이 장면을 담은 카메라의 앵글 또한 인상적인데, 빙글빙글 돌며 빠른 속도로 흔들리는 카메라 앵글은 당황스러운 상황 속 자신조차도 처음 접하는 낯선 모습에 혼란스럽기도, 벅차기도 한 토드의 마음을 더욱 드러내는 듯 하다.
두 번째로 떠오르는 장면은 닐 페리의 죽음이다. 우여곡절 끝에 올린 연극이지만 그 무대조차도, 자신의 진심조차도 아버지에게 철저히 무시 당하자 닐은 스스로 목숨을 끊는 안타까운 선택을 한다. 그의 죽음은 내면이 엿보이는 차분하고도 온화한 표정과 함께 마치 연극의 한 장면처럼 묘사된다. 공연 전날 밤, 아버지의 말에 더 반박하지 않고 닐은 그저 차분한 미소를 지어 보인다. 아버지를 향한 미움이나 제 뜻을 이루지 못한 것에 대한 불만이 아닌 차분하고 온화한 말투와 순종적인 미소에서는 자신의 환경 내에서는 스스로 결정하고 해나갈 수 있는 것이 없다는 것을 느낀 닐의 좌절과 체념, 그리고 삶의 의미에 대한 회의와 상실이 느껴진다. 가족 모두가 잠든 사이 그는 아버지의 서랍 속에 숨겨져 있던 권총으로 서재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게 되는데, 이러한 그의 죽음은 마치 안톤 체홉<갈매기>의 마지막 장면을 연상시킨다. 연극 <갈매기>에서 권총으로 목숨을 끊는 것을 택한 뜨레쁠레프는 그의 사망 장소가 서재였다는 점, 그 죽음이 자살이었던 점, 권총을 이용했다는 점에서 닐의 죽음과 유사한 면모를 가졌기 때문이다. 감독의 의도였을지, 아니면 그저 우연이었을지 확신할 수 없지만 이러한 닐의 죽음은 비록 현실에서는 아버지로 인해 연극이라는 소중한 꿈에 다가가지 못했어도, 생의 마지막 순간만큼이라도 연극을 하고 싶었던 간절한 꿈을 이룬 것으로 보이며 그의 꿈을 향한 열망과, 꺾여진 희망을 한층 더 돋보이게 한다.
영화의 마지막, 학생들은 학교를 떠나는 키팅을 바라보며 하나둘씩 책상 위로 올라가 그들만의 존경과 지지를 표한다.
아이들이 책상 위로 올라갈 때까지 로우 앵글(Low-angle)로 아이들의 하반신과 그 사이로 보이는 놀란 교장의 당혹한 표정을 담고 있던 카메라는 아이들이 모두 올라선 후 하이 앵글(High-angle angle)로 전환되어 책상 위에 올라선 소년들이 바라보는 키팅 선생의 모습을 비춘다. 이러한 구도는 소년들을 거대한 인물처럼 보이게 하며, 그들이 기존과는 다른 위치의 시각에서 세상을 바라볼 수 있게 되었음을 나타낸다. 그리고 바로 뒤이어 카메라는 다시 로우-앵글로 돌아와 키팅 선생의 시선에서 바라본 소년들의 모습을 담는데, 이것은 변화한 소년들과 그러한 소년들의 모습을 바라보는 키팅의 마음 또한 함께 깊이 느낄 수 있게 하며 그들의 관계성을 돋보이게 한다. 특히 관계성이 돋보인다고 생각했던 이유는 교실에 있던 학생들 중 일부만이 토드의 행동에 함께 참여했다는 점 때문이다. 영화가 끝나갈 무렵, 극 중 키팅이 떠나는 마지막 순간까지 책상에 올라가지 않은 학생들은 고개를 푹 숙인 채로 묵묵히 교과서만을 바라보고 있다. 이 점은 기존과 다른 새로운 사상이 유입되었을 때, 새로운 사상에 찬성하고 따르는 쪽이 있다면 그에 반대하는 쪽 역시 존재함을, 새로운 사상에 동의하지만 행여 자신에게 피해가 돌아올까 두려워 동조하지 못하는 다수 또한 있음을 생각하게 만들며 우리 사회를 돌아볼 기회를 제공한다.
부모와 학교, 그 목적을 이루기 위해 아이들이 서명하도록 강요하는 교장, 가부장적인 가정과 사회적 격차 등 영화 <죽은 시인의 사회>에서는 우리의 양심에 손을 얹어보게 하는, 깊은 생각에 빠지게 하는 다양한 요소들을 찾아볼 수 있다. 이 영화는 우리에게 질문을 던진다. ‘진정한 교사와 학교, 사회는 어떤 모습이어야 하는가?’, ‘지금, 이 순간 우리가 정말 누려야 하는 건 무엇인가?’, ‘행복이란 무엇인가’, ‘우리는 무엇을 위해, 왜 사는가?’.
그리고 외친다. “Carpe diem!”
지금, 이 순간에 충실하라고, 걱정하는 대신 용감하게 하고 싶은 꿈들을 펼치라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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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외부인에 의해 드러나는 구찌 가문의 치부
가족은 태어난 이후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는 존재다. 모든 사람은 태어난 직후부터 가족이라는 울타리 안에 들어온다. 서로 많은 교류를 하면서 많은 것을 배운다. 각자가 가진 특성이 있겠지만 일단 자신의 부모가 하는 일에 영향을 받는다. 부모가 예체능에 재능이 있는 경우, 그 분야에 접할 기회가 늘어난다. 그리고 어떤 사업을 하는 기업가라면 기업 운영이나 그 기업이 속한 분야에 대해서 알게 된다. 그렇게 접한 정보들을 통해 자신이 어떤 방향으로 가야 할지를 결정한다. 가족과 비슷한 길을 가든, 그 반대의 길을 선택하든 그것이 가족에게 받은 교육과 정보들을 바탕으로 결정된 것이라는 것은 명백하다.
일반적으로 패밀리 비즈니스라고 부르는 사업들이 있다. 여러 가지 크고 작은 기업들이 대를 이어 가족의 사업을 물려받아 운영하고 있다. 한국에서 재벌이라고 불리는 그룹의 총수들은 부모를 이어 일종의 가업을 물려받는다. 그렇게 기업의 운영권을 물려받는다는 것은 가족의 전통을 이어받는다는 의미도 있지만 축적된 부를 그대로 물려받는다는 의미도 있다. 이런 일련의 과정들을 방해하는 인물이나 요소들은 보이지 않게 제거되어간다. 일종의 가족 문제라고도 볼 수 있는데 가족에 외부인이 새롭게 들어오거나 외부인이 가족의 일에 개입하려 할 때, 그것을 제거하기 위한 보이지 않는 투쟁이 나타난다. 이런 가족 내에서 벌어지는 일은 모든 가족에게 영향을 주고 서로의 관계를 깨지게 한다.
명품 기업 구찌 가문의 비극
영화 <하우스 오브 구찌>는 대표적인 명품 브랜드를 만들고 운영했던 구찌 가문의 이야기를 담는다. 여기서 등장하는 구찌 가족들은 그 관계의 멀고 가까움과 관계없이 서로 연결되어 있다. 오랜 시간 동안 서로 영향을 주고받았고, 그들의 가족이 운영하는 사업에도 큰 영향을 받아왔다. 주요 등장인물 중 하나인 마우리찌오 구찌(아담 드라이버)는 사실 가족이 운영하는 사업과 가장 멀리 떨어져 있는 인물이다. 영화 초반 그는 법률을 공부하고 있고 아버지 로돌포 구찌(제레미 아이언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파티에서 만난 파트리치아(레이디 가가)와 결혼을 한다. 마우리찌오는 가족을 등지면서까지 구찌 가문과 멀어지는 듯하지만 아내가 된 파트리치아에 의해 다시 본인의 가문으로 들어가게 된다.
이렇게 마우리찌오가 다시 가족의 울타리 안으로 들어가는데 도움을 준 이는 삼촌인 알도 구찌(알 파치노)다. 구찌의 운영을 대부분 책임지고 있는 그는 자신의 아들인 파올로 구찌(자레드 레토)의 무능함에 실망한 아버지이기도 하다. 그래서 조금은 능력이 있어 보이는 마우리찌오와 파트리치아를 자신의 사업 영역 안으로 들여놓는다. 결혼 이후 아주 가까운 사이가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가족의 마법은 조금씩 마우리찌오를 알도와 가깝게 만든다.
영화의 결과만 놓고 보다면 파트리치아는 악녀라고 해석할 수 있다. 하지만 영화 초반 그의 모습은 열정적이고 순수한 사랑의 추종자다. 파티에서 처음 마우리찌오를 만난 파트리치아는 우연히 길에서 만난 그 남자에게 적극적으로 데이트 신청을 한다. 영화에서 보여주는 그들의 모습에서, 그들이 서로에게 끌리는 힘을 온전히 느낄 수 있다. 그들의 사랑은 순수해 보이고 구찌 가문이라는 거대한 부의 원천이 없더라도 빛날 것만 같이 보인다. 하지만 그 두 사람이 구찌 가문의 가족들과 조금씩 교류하기 시작하면서 구찌 가문의 영향력 속으로 빨려 들어가게 된다.
외부인의 시선으로 구찌 가문을 바라보는 파트리치아
구찌 가문과 기업의 문제점을 보는 인물은 다름 아닌 파트리치아다. 외부인의 시선으로 가족을 바라보는 그는 각 인물들이 가진 문제를 제대로 파고든다. 시아버지인 로돌포는 자신이 배우였다는 사실을 자랑스러워하고 자신이 만든 구찌의 스카프에 대한 자부심이 있다. 하지만 파트리치아는 배우로서의 로돌포를 전혀 알지 못한다. 삼촌 알도에 대해서는 다른 부분을 본다. 기업 구찌를 운영하는 알도의 비도덕적인 재무 문제를 발견해내고 알도를 경영권에서 멀어지게 만든다. 조카인 파올로에게는 무능력을 보게 되고 그를 이용해 구찌 경영을 온전히 남편 마우리찌오가 차지할 수 있게 한다. 이런 일련의 과정을 통해 영화는 구찌 가족의 인물들이 가진 문제점을 하나씩 파고들어 관객에게 전달한다.
영화 <하우스 오브 구찌>는 보는 관객들이 어떤 인물에 감정이입을 하느냐에 따라 다양한 관점으로 해석해볼 수 있는 여지가 있다. 사라 게이 포든의 소설 '하우스 오브 구찌'를 원작으로 하는 영화는 거장 리들리 스콧에 의해 흥미롭게 영상화되었다.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다양한 관점으로 해석될 수 있는데 영화를 연출한 리들리 스콧이 각 인물들에 대해 어느 정도 거리를 두고 바라보기 때문이다. 파트리시아의 시선에서 영화를 볼 수도 있고, 마우리찌오의 시선으로 영화를 바라볼 수도 있다. 무엇보다 구찌 가문에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는지를 철저히 객관적인 외부자의 시선으로 영상에 담았다.
그래서 이 영화 안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모두 문제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 차례차례 드러난다. 어떤 인물은 편법으로 기업을 운영하고 있고, 어떤 인물은 무능하고 또 다른 인물은 개인적인 욕망에 심취해 있다. 영화 초반 아주 순수하게 보였던 마우리찌오조차 자신이 가진 문제점을 제대로 깨닫지 못하고 오랜 세월을 보낸다. 이런 일련의 과정들은 영화 속 유일한 외부인이었던 며느리 파트리치아의 시선을 따라가며 하나씩 까발려진다. 그렇게 구찌 가문이 몰락하는 과정이 무척 흥미롭게 담겨있다.
레이디 가가의 훌륭한 연기와 리들리 스콧의 뛰어난 연출이 만들어낸 수작
가문의 외부자인 파트리치아가 영화 속 악녀지만, 구찌 가문을 몰락시키는 인물들은 다름 아닌 구찌의 가족들이다. 서로 태어나면서 연결되고 영향을 주는 존재들인 가족은 어쩌면 각자를 객관적으로 보지 못하게 만드는 것일지도 모른다. 수많은 상호작용을 통해 서로에게 무수한 영향을 주고 각자의 장점들이 무엇인지를 서로 알게 해 주지만 구찌의 가족들은 자신이 잘하는 것에 심취되어 자신의 문제점을 보지 못하고 다른 가족이 가진 장점을 제대로 활용하지 못한다. 그렇게 만들어진 서로를 향한 보이지 않는 칼들은 외부인 파트리치아에 의해 각자 자신의 심장으로 향하게 된다.
파트리치아를 연기한 가수 겸 배우 레이디 가가는 <스타 이즈 본>을 통해 좋은 연기를 보여주었는데 이번 <하우스 오브 구찌>를 통해 좀 더 진일보한 모습을 보여준다. 그는 여러 가지 패션과 머리스타일로 구찌 가문에 들어간 며느리로 완벽히 변신했다. 사랑에 빠진 순수한 연기부터 질투와 분노의 화신이 되는 연기까지 훌륭한 연기를 보여준 그는 79회 골든글로브 시상식에서 여우 주연상을 타기도 했다. 마우리찌오를 연기한 배우 아담 드라이버의 연기도 훌륭하며, 특히나 조카 파올로를 연기한 배우 자레드 레토의 열연이 돋보인다. 누군가 배우의 이름을 알려주지 않으면 그가 자레드 레토라는 것을 전혀 알지 못할 것 같다.
영화를 연출한 리들리 스콧은 20년 전에 이 소설의 판권을 구입하여 여러 번 영화화 시도를 했다. 그동안 여러 감독과 배우들의 손에 들어갔지만 구찌 가문의 반대로 영화화까지 연결되지는 못했다. 하지만 이제야 비로소 리들리 스콧 본인의 손으로 연출을 하게 되었다. 영화는 그 당시의 분위기를 영상으로 훌륭하게 담고, 그때와 어울리는 음악을 탁월하게 선택함으로써 몰입감을 더한다. 158분이라는 긴 러닝타임을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배우들의 뛰어난 연기와 훌륭한 연출로 이야기의 끝까지 집중하게 만든다.
*영화의 스틸컷은 [다음 영화]에서 가져왔으며, 저작권은 영화사에 있습니다.
[간단한 리뷰가 포함된 movielog를 제 유튜브 채널에서도 보실 수 있습니다. :)
주로 말 위주로 전달되기 때문에 라디오처럼 들어주셔도 좋을 것 같아요.]
유튜브 Rabbitgumi 채널 구독과 좋아요도 부탁드립니다!
<하우스 오브 구찌 리뷰>
https://www.youtube.com/watch?v=b8yYru53t8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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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The Passion of the Christ/미국/2004)
(이미지 출처: 네이버 이미지)
예수 그리스도의 완전한 순종
멜 깁슨이 배우라기보다 감독으로 내 머릿속에 각인된 영화.
The Passion of the Christ는 극장개봉 전에 이미 유명해진 영화다. 반유대주의 영화라고 하여, 헐리웃을 점령한 유대인들로부터 미국의 엘리트 계층, 자본가 계층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유대인들에 이르기까지, 은근한 혹은 노골적인 반감이 표출되었다. 영화가 상영되고 난 후 그 유명세는 더 한층 상승되었다. gory 하다, 따라서 horror 장르로 분류해야 한다는 비아냥이 쏟아졌다. 심지어 수위가 높은 잔인한 고문장면 때문에 약한 심장을 가졌던 관객은 목숨을 잃기까지 했다.
더욱이 이제 멜 깁슨은 유대인들의 왕국인 헐리웃의 영화에 캐스팅되기는 글렀다는 말들이 공공연하게 오갔다. 아마 그 예측은 옳을 것이다.
영화는 예수 그리스도가, 그와 동고동락했던 열 두 제자 중 하나인 가롯 사람 유다 이스카리옷의 배반과 당시 유대 종교 엘리트 계층인 바리새인들의 음모 때문에 십자가에 못박혀 죽임을 당한 후 예언대로 사흘만에 부활하기까지, 즉 구약의 예언이 완벽하게 성취되는 기독교 복음의 핵심을 다룬다.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는 기독교 구약과 신약성경의 텍스트에 매우 충실하다.
하나님이 창조한 첫 번째 인간 아담으로 인해 인류에게 죄가 들어왔다. 하나님은 죄와 상관할 수가 없다. 그의 거룩함으로 말미암아 죄지은 자들은 죽을 수밖에 없다. 그리하여 하나님은 죄 없고 흠 없는 외아들을 인간으로 세상에 보내 인간들이 당해야할 하나님의 심판을 대신 당하도록 '상관'했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는 십자가에서 인류가 당할 모든 저주를 혼자 감당한 뒤 인간으로 죽었다. 그리고 역시 예언대로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났다. 그리하여 인류구원을 위한 고난의 사역을 완전히 성취했다.
멜 깁슨이 가톨릭(구교) 신자여서 그랬겠지만 영화에는 예수 그리스도의 육신의 어머니인 마리아에 대한 경외심이 배어있다.
그러나 구교와 신교를 초월한 복음의 정수를 전달하고 싶었던 감독의 의도는 고대 유대인들과 로마 군인들이 사용하던 그 언어로 영화를 제작했다는 것에서 확연히 드러난다. 기독교가 여러가지 종파로 나뉘기 전, 인간의 이데올로기가 섞이기 전의 예수 수난사건과 그의 부활이라는 복음의 핵심에 충실하고자 했던 것.
그리고 멜 깁슨은 영화를 전 세계에 배급하면서 더빙이 가능한 원고가 아닌 자막용 원고만을 만들었다. 영화를 더빙하지 못하도록 M/E (Music and Effect) 트랙도 아예 만들지 않았다. 이쯤되면 그의 의도가 더욱 분명해진다.
이 영화를 만나고 나서야 비로소 나는 정관사 the와 함께 대문자로 시작하는 Passion은 '그리스도가 십자가에 못 박히는 고난을 당하고 죽음'을 뜻함을 알았다.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는 신(하나님)과 인간의 모습으로 이 땅에 온 신(예수 그리스도), 그리고 인간을 다음과 같이 묘사한다.
하나님은 구약시대에 이스라엘 백성을 택하여 그들에게 스스로를 계시함으로써 그가 창조한 인간들과 교통하며 신의 뜻에 따라 통치되는 아름다운 국가를 세워 그 주변의 이방사람들에게 본을 보이고 모두 그 아름다운 국가를 따라 살기를, 즉 모든 인류가 신의 자녀가 되기를 바랬다. 그러나, 신의 계획안에서, 그것은 실현되지 못했다. 그래서 약속을 철두철미하게 지키는 신실한 이스라엘의 하나님은 한 약속을 했다. 내가 메시아를 보내리라. 그가 너희들을 구원하리라... 그리고 내 뜻으로 통치되는 나라가 이루어질 것이다. 그것이 바로 구약성경의 핵심이다. 그리고 하나님은 약속을 지켰다.
예수 그리스도는 신의 약속대로 이 땅에 왔다. 그는 이스라엘 땅에 태어난 성육신(인간의 몸으로 온 신)이다. 예수는 구약성경 곳곳에 예언으로 주어진 말씀대로 메시아로서 감당해야할 모든 것을 빠짐없이, 그리고 정확하게 성취한다. 그는 말로는 도저히 옮길 수 없는 고난을 피하지 않고 고스란히 당했다. 예언을 이루어 하나님의 약속을 실현하기 위해. 그것은 인류 역사에 다시없을 하나님을 향한 사랑이며 순종이다.
영화의 첫 장면에 등장하는 구약성경의 한 구절,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으므로 우리가 나음을 얻었도다." (이사야서 53장 5절)는 메시아에 대한 대표적인 예언이자 이 영화의 주제이다.
이제 인류는 예수 그리스도로 인해 모두 구원을 얻게 되었다, 단지 예수 그리스도를 믿기만 한다면. 그가 인류의 생명을 위해 기꺼이 죽음을 택하였다는 것을, 그리하여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화목을 이루었다는 것을 믿기만 한다면.
영화에 그려진 인간들의 모습은 어떤가.
예수가 메시아라는 것을 잘 아는 육신의 어머니 마리아는 그를 통해 하나님의 예언이 성취되는 것을 고통으로 지켜본다. 그 곁에는 예수의 열 두 제자 중 하나인 요한과 예수의 가르침을 좇았던 막달라 마리아가 늘 함께 있다. 그들은 아무 힘없이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는 것을 안타까움과 아픔으로 지켜보는 무력한 자들이었다.
예수와 함께 먹고 자며 전도하였던 제자 중 하나였던 유다는 물질이 탐이나 돈에 스승을 판다. 반역자다. 그리고 수제자였던 베드로는 흥분한 사람들이 자신을 해칠까봐 스승을 모른다고 부인한다. 그는 비겁했다.
당시 구약을 믿고 암송하며 가르쳤던 유대교 종교 엘리트이며 지도자인 바리새인들은 난데없이 나타난 천한 목수의 아들 예수가 가르치는 말씀의 권위와 병든 자를 고치며 죽은 자를 살리는 그의 기적의 능력을 질투했으며, 바리새인들의 위선을 공공연히 비판하는 예수를 두려워했다. 아니, 예수 때문에 그들의 인기와 권위가 실추될까봐 무서웠다. 그래서 거짓증거를 날조하여 신성모독으로 예수를 죽였다. 야비한 살인자였다.
그리고 예수에게 사형선고를 내린 로마의 군인 빌라도. 그는 예수에게 죄가 없다는 것을 알았다. 그러나 유대인들 사이에 민란이 나면 로마황제의 눈 밖에 나게 되고 그렇게 되면 그의 정치생명은 끝나고 말 것을 두려워한 비겁한 출세주의자였다.
그리고 그 무력함, 비겁함, 야비함, 두려움 등의 어두움은 모든 인간에게서, 나에게서 늘 찾아지는 것들이다. 예수의 십자가 보혈로 깨끗하게 되지 않는 한.
인간은 세상에서의 안락한 삶, 즉 세상을 사랑하고, 속이는 자 사탄은 세상의 재미로 인간을 미혹하며 죄를 짓게 함으로써 신과 인간 사이를 갈라놓는다.
그러나 신은 위대한 사랑이다. 인간은 늘 하나님을 배반하나 하나님은 약속을 신실하게 지켜 인간에게 예수를 보냈다. 그리고 온갖 사탄의 책략에도 불구하고 예수는 죽음, 즉 사탄을 이김으로써 다시 한 번 하나님과 화목할 수 있는 기회를 인간에게 주었다.
인간은 단지 하나님의 아들 예수가 메시아이며 예수의 보혈로만이 하나님의 자녀가 될 수 있다는 것을 믿기만 하면 죄의 종, 즉 사탄의 종으로부터 하나님의 자녀로 그 신분을 바꿀 수 있다. 그것이 기독교 복음의 핵심이며 이 영화의 요지이다((©2021. 최수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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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넷플릭스] 맨헌트 : 유나바머 vs 유나바머 그가 입을 열다 : 드라마와 다큐멘터리의 차이.
살인자에게 스토리를 부여한다는 것은 어떤 일일까?
우리는 연쇄 살인마를 비롯한 범죄자를 대상으로 영화를 만들거나 드라마를 만든다.
범죄자의 행동이나 범행을 바탕으로 작품을 만든다면 관객의 관심은 물론 어떤 면에선 스토리의 큰 틀을 기댈 수 있기 때문에 실화를 기반으로 한 작품들이 많이 나온다.
수사물이나 스릴러를 자주 보는 편이라 실화를 기반으로 한 작품들도 종종 만난다.
때로는 [캐치 미 이프 유 캔]처럼 범죄자인 주인공을 응원하게 되는 작품들이 있었고,
범죄자에게 서사를 부여한다는 것에 대해 크게 생각이 없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 그 상황이 좀 무서운 것이라는 인지가 생겼다.
"범죄자에게 부여된 서사로 인해, 드라마 속 캐릭터나 범죄자의 행동을 조금이라도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이 과연 올바른 일일까?"
이런 고민 없이 소모하듯 작품을 봐도 되는 걸까?
이 고민에 길을 잡아준 작품이 있었다.
실화 기반 미드, 맨헌트 : 유나바머[MANHUNT : UNABOMBER]와 다큐멘터리 유나바머 그가 입을 열다 [Unabomber : In His Own Words]였다.
범죄물 / 다크 / 실화 기반 / 추리 / 테러 / 몰입도 높음 / 미국 드라마 / 미드 / 스릴러 / 넷플릭스 드라마 / 맨헌트 : 유나바머[MANHUNT : UNABOMBER]
미드 [맨헌트 : 유나바머]는 외로운 늑대형의 테러리스트 유나바머(시어도르 카진스키)의 성장과 범죄 체포까지의 스토리를 담고 있다.
어린 나이에 하버드대학교에 입학할 정도로 천재였던 유나바머는 대학 생활 중 지원했던 잘못된 심리 실험으로 인해 인격이 망가지게 된다.
이미 천재이기 때문에 보통의 평범함을 몰랐던 그는 인격이 망가지게 되면서 일반적인 사고를 할 수 없는 병든 사람이 되게 된다.
현대 문명이 인류를 파괴한다는 문명 혐오주의자가 된 유나바머는 자신의 천재적인 지식을 이용해서 폭탄 테러를 저지른다.
그는 철저하게 자신을 숨기고 살아서, 미국의 수사 기관에서는 유나바머를 찾지 못한다.
맨헌트는 유나바머와 수사관들의 스토리르 절묘하게 합쳐 스토리가 탄탄한 드라마를 보여준다.
분명히 테러범인데 맨헌트를 보고 있자면 이상하게 유나바머를 이해할 것 같은 기분이 든다.
그리고 유나바머가 잡혔을 때 다행이라는 생각이 드는 한편, 자신의 신념을 끝까지 지키려는 유나바머가 경이롭기도 했다.
하지만 그 생각은 다큐멘터리 유나바머 그가 입을 열다 [Unabomber : In His Own Words]를 보면서 바뀌게 되었다.
범죄물 / 실화 / 테러 / 몰입도 높음 / 미국 다큐멘터리 / 넷플릭스 다큐멘터리 / 유나바머 그가 입을 열다 [Unabomber : In His Own Words]
미드 맨헌트를 흥미롭게 봤기 때문에 선택하게 된 다큐멘터리가 [유나바머 그가 입을 열다]였다.
드라마와는 다르게 다큐멘터리는 유나바머의 가족, 주변 인물, 그를 쫓던 수사관들의 인터뷰를 통해 입체적으로 유나바머를 그려낸다.
맨헌트에서 필터를 씌워서 유나바머를 그려냈다면 유나바머 그가 입을 열다에서는 있는 그대로의 유나바머를 그린다.
특히 드라마에서 비중을 두지 않았던 테러 피해자의 인터뷰와 유나바머 주변에 살았던 이들의 인터뷰를 통해 그의 민낯을 그려낸다.
다큐멘터리를 보기 전까지, 자신의 신념을 위해 테러리스트가 되었던 외로운 늑대 유나바머란 이미지가 이 인터뷰들을 통해 깨지게 된다.
그가 겪은 일은 안타깝지만, 유나바머는 그저 살인을 저지른 테러범에 불과했다.
특히 드라마 맨헌트에서 이상하리 만큼 선하게 그려졌던 유나바머가 매우 거칠고 폭력적인 사람임이었을 알게 되었을 때 묘한 느낌이었다.
드라마보다 다큐멘터리를 먼저 보았다면 드라마를 보면서 어딘지 모르게 불쾌감을 느꼈을 것 같다.
그럼에도 맨헌트 : 유나바머[MANHUNT : UNABOMBER]와 유나바머 그가 입을 열다 [Unabomber : In His Own Words]는 완성도가 높은 작품들이다.
그리고 맨헌트를 본다면 꼭 유나바머 그가 입을 열다라는 다큐멘터리를 함께 보기를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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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삶이 고통스러워도 죽음이 있기에 그 고난도 끝이 있는 법이다.
세상의 모든 물질은 살아남기 위해 몸부림을 친다. 인간도 마찬가지이다. 어쩌면 삶과 죽음은 공존하면서부터 모든 생명체에게 필연적으로 다가오는 법칙이 아닌가 싶다. 인간은 죽음을 극복하지 못하고 죽음이란 목적지에 굴복하고 말지만 더 가지기 위해 남들보다 노력하고 경쟁하며 필사적으로 살아간다. 그러나 영화 <숨>은 인간의 근본적인 물음인 죽음에 대해 깊게 성찰하는 다큐멘터리이다.
장례지도사는 매일 장례식을 치루기 전에 망자들의 육체를 염을 하며 그들의 생전 모습을 관찰하곤 한다. 사람들이 60대가 돼서 찾아올 때 두 부류가 있는데 부자는 더 가져가지 못해서 괴로워하며 경직되어 죽어간다는데 가난한 자는 편히 극락 간다고 한다. 그럼에도 장례지도사들은 매일매일 시체들을 어루만지고 닦고 하여 죽은 자의 넋을 기린다.
원래 인간의 삶은 고통인 걸까? 넝마꾼이라는 파지를 하루 종일 주워 생활을 하는 할머니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는데 가슴이 뭉클했다. 그 할머니는 한때 사업에 성공했지만 어느 날 사업의 실패로 인해 남의 집 지하에 살며 하루를 근근이 벌어먹는 삶을 살고 있는데 넝마꾼이라는 단어가 주는 그 의미가 할머니의 말대로 죽지 못해 살고 있는 삶을 말하는 듯했다.
빌어먹을 삶도 인생이지만 할머니는 꿋꿋이 파지를 주워 하루 1000원 안팎의 돈을 받으며 살아간다. 그렇지만 전기세와 가스비도 내지 못하는 실세이다.
인생도 쉼이 필요하다. 장례지도사는 자신의 아내와 함께 장례 일을 매일 하면서 쉬는 날이 업었다고 한다. 하늘도 바라보고 나무도 바라보고 자연 풍경도 느끼고 싶었다고 한다. 부부는 절에 가면서 그동안 살아왔던 세월의 의미들을 되새긴다. 죽음을 어떻게 바라볼지 현명한 죽음은 무엇이고 어떤 게 잘 죽는 건지 말이다. 그런데 장례지도사 부부도 여러 생각들을 했는데 나이 80이 되면 내가 해볼 것 다 해보고 살았는데 굳이 삶을 연명할 필요가 있냐고 서로 묻는다.
장례지도사 부부가 말하길 인간의 일부만 자신의 과업을 알아 행하고 죽지만 대부분은 모르고 살며 죽는다고 한다. 그래서 삶이란 그 목적을 모르는 여정이라고도 한다.
영화 <숨>에 불교, 기독교 같은 종교가 등장하는데 대중적인 인류의 종교이자 죽음 이후의 세계에 대해서 이렇다 저렇다 할 수 있는 걸 알려주는 사후 보험이다. 넝마꾼인 할머니도 자신의 죽음 이후에 하느님이 지으신 천국의 큰 집에 들어간다는 믿음을 목사로 통해 듣고 지금은 매우 힘들게 살고 있지만 사후에는 그렇지 않을 거라는 믿음을 굳건히 한다.
불교를 믿는 장례지도사 부부도 인간의 욕심과 허영심이 고통을 낳는다고 보고 조금 더 내려놓는 삶과 남들과 함께하는 인생을 살아가고자 불상 앞에 다짐한다.
인간이 죽고 고스란히 떠난 흔적은 누가 치울까? 그 흔적들과 부패물을 치우는 유품정리사는 그 현장을 목격하며 청소하고 그 집을 다시 사람이 살 수 있게 만들어 놓는다. 고인의 마지막 흔적을 지우면서 고인이 간직한 것들을 유족들에게 넘겨주는 유품정리사를 보며 우리 사회에 보이지 않는 죽음과 오랫동안 방치된 죽음이 엄청 많다고 생각했다.
유품정리사가 할 수 있는 건 오직 그런 죽음에 대해서 안타까워하는 것과 그런 죽음을 목격한 사람들이 고인에게 주는 눈초리들을 치워주는 것이다.
이 영화를 보고서 장례지도사의 마지막 대사가 생각났는데 권력을 행사하며 잘 사는 사람이든 평범한 사람이든 못난 사람이든 어느 사람이건 결국 죽으면 작은 관에 자리된다는 대사이다. 어차피 죽음 이후까지 모든 것을 못 가져가면서 어느 사람들은 남들 것을 빼앗고 누려왔었나? 그 사람들마저 죽으면 자신이 가진 것마저도 가져가지 못하는데 정작 자신들은 평생을 자만하고 있을까?
죽음은 모두에게 공평하다. 그래서 삶도 고통스럽지만 죽음이라는 마지막 목적지가 있어 그 끝을 평안하게 보낼 수 있는 게 아닐까라고 필자는 생각했다. 사후세계는 아무도 모르지만 <숨>을 보며 인간의 모든 것이 살기 위하고자 함이고 죽음의 공포를 방지하기 위해 더 나은 세상이 있다고 믿는 게 아닌가 싶다.
죽음은 인간의 가장 큰 평안이자 불멸의 안식처다.
※ 씨네랩의 크리에이터로써 영화 시사회에 초대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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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랑할땐 누구나 최악이 된다 - 요즘 시대의 자만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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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학을 공부하던 스물아홉 율리에는 자신이 진짜 원하는 걸 찾아 세상으로 나온다.
파티에서 만난 만화가 악셀과 사랑에 빠진 율리에,
하지만 삶의 다른 단계에서 만난 두 사람은 각자 다른 걸 원했고 조금씩 어긋난다.
“내 삶에서 조연 역할을 하는 것 같아…” 율리에는 인생의 다음 챕터로 달려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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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우파 이전에 배윤정이 있었다! 댄스 프로그램 비하인드썰 대방출부터 안무가 수입까지 모두 공개 | 씨네마사지 ?
영화 드라마 모두 마사지하듯 시원하게 이야기로 풀어드립니다!
씨네마사지 ?
※배꼽주의※
원조 스우파 배윤정과 함께 풀어보는
영화+댄스+토크쇼!!!!!! 1석3조!!!!!
"리뷰야 댄스가 하고싶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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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넷플릭스 <뮌헨 : 전쟁의 문턱에서> 공식 예고편
로버트 해리스가 집필하여 세계적인 베스트셀러가 된 소설 원작의 영화. 1938년 가을, 전쟁의 위기에 내몰린 유럽. 아돌프 히틀러는 체코슬로바키아 침공을 준비하고, 네빌 체임벌린 정부는 절박한 심정으로 평화적 해결을 모색하는 중이다. 긴장감이 고조되는 가운데 긴급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독일 뮌헨으로 향하는 영국 공무원 휴 레것과 독일 외교관 파울 폰 하르트만. 협상이 개시되자 두 오랜 대학 친구는 자신들이 얽히고설킨 정치적 음모와 거대한 위협의 정중앙에 놓여 있음을 깨닫는다. 전 세계가 주시하는 가운데, 두 사람은 전쟁을 막을 수 있을 것인가. 그 대가는 과연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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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넷플릭스 <젠틀맨: 더 시리즈> 공식 티저 예고편
범죄가 캐비아와 만났을 때! 《젠틀맨: 더 시리즈》에서 클래스가 다른 범죄자들의 이야기가 시작된다. 원작 영화에서 영감을 받은 가이 리치 감독의 신작 드라마 시리즈. 《젠틀맨: 더 시리즈》, 올 3월 공개. 오직 넷플릭스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