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두미2023-01-16 07:09:10
복수가 미련한 것이라 하는 사람들에게
복수가 미련하게 느껴진다면, '진짜' 당해보지 않은 것일지도
사진출처 ⓒ넷플릭스
더 글로리 (The Glory, 2022)
채널 : 넷플릭스, 16부작 (파트 1 완결) │ 장르 : 범죄·스릴러·드라마 │ 연출 : 안길호│ 극본 : 김은숙 │ 출연 : 송혜교, 임지연, 염혜란, 박성훈, 정성일 外 │ 등급 : 청소년 관람불가
<도깨비> 김은숙 작가의 또 다른 장르
<더 글로리> 김은숙 작가의 필모그래피 대부분은 로맨스였다. 천년의 시간을 넘어선 사랑 <도깨비>, 독립운동이라는 배경이 있었지만 어쨌든 ‘유진 초이’와 양반집 아가씨의 사랑을 다루었던 <미스터 선샤인>, 시간을 더 거슬러 올라가면 <신사의 품격>이 있고 <파리의 연인> 도 있었다. 그래서 흑화 된 송혜교를 전면에 내세운 이 드라마가 ‘김은숙 작가’의 것인 줄 몰랐다. 이번에 새삼 느끼는 바이지만 글 잘 쓰는 사람에게 역시 장르란 아무 장벽이 되지 못하는 듯싶다. 나는 리모컨을 내려놓지 못했고, 정주행으로 밤을 꼴딱 새웠다.
사진출처 ⓒ넷플릭스
누구에게나 있고, 어디에나 있던 학폭
드라마는 학폭을 다룬다. 행복을 사치처럼 여기며 마른 북어처럼 살아가는 동은(송혜교)이 바로 학폭의 피해자다. 어딘가에는 가 해자를 용서하거나 애써 잊어버리려는 피해자들도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동은이 입은 피해는 그럴 수 있는 범위를 진작에 넘어섰다. 동은의 몸에는 화상 자국이 가득하다. 부잣집 딸이자 가해자인 연진(임지연)이 십수 년 전 남긴 상처다. 하지만 성인이 되었어도 그 상처들은 동은의 몸에 마치 인장처럼 물리적으로 남아있을 뿐 아니라, 고기를 굽는 장면만 보아도 경기를 일으킬 정도로 씻을 수 없는 트라우마로 남는다.
사진출처 ⓒ넷플릭스
그렇다고 꼭 복수해야만 했을까
학폭을 당해보지 않아서 잘 몰랐다. 어딜 가나 인성이 개차반인 애들은 있는 법인데, 그렇다고 꼭 복수까지 해야 할까. 그 복수를 할 시간에 차라리 나에게 투자하고 더 잘나지면 그게 이기는 거 아닌가. 하지만 회를 거듭하면서 깨달았다. 피해자인 내가 용서하지 못했는데 가해자는 스스로를 용서한다는 사실이 얼마나 끔 찍한지를. 가해자 연진은 사과를 돈으로 할 수 있다고 믿기에 “꼴 값 떨지 말고 원하는 액수를 부르라”고 말한다. 하지만 어느 때나 강력한 해결책이 되는 돈은, 애석하게도 상처받은 영혼만큼은 치 유할 능력이 없다.
사진출처 ⓒ넷플릭스
공감은 지능이라고 했지, 아마
최근 스탠퍼드 대학의 한 심리학 교수가 ‘공감은 지능’이라는 내 용의 논문을 발표한 적 있었다. 선택받은 자신이 아닌 다른 삶들에 대해서는 아무런 공감도 죄의식도 연민도 느끼지 못하는 연진을 보며, 나는 다시 한번 확신했다. 공감은 지능이 맞고, 타인의 고통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야말로 최악의 결핍이고 결여라고. 어쩌면 그들도 어딘가로부터 받은 정서적 학대로 인해 공감지능 이 고장 나버린 ‘피해자’일지 모르지만, 그렇다고 그 결여가 또다 시 애꿎은 사람을 학대해서는 안 될 것이다. 피나는 노력으로 가해자가 되지 않으려 노력해야 할 뿐.
사진출처 ⓒ넷플릭스
끼리끼리는 사이언스
10대 시절 동은을 괴롭힌 학폭 가해자들이 30대가 되어서까지 연진을 중심으로 어울려 다니는 것을 보면 정말이지 ‘끼리끼리’ 가 과학이 아니면 뭔가 싶다. 뭐, 당연하겠지만 그런 애들의 우정 은 참 얕기도 얕다. 누군가를 짓밟을 수 있는 마음은 십수 년을 관계해온 절친에게라고 예외가 아니니까. 서로가 서로를 헐뜯고, 더 큰 다이아반지를 자랑하려 애를 쓰고, 가난한 친구를 ‘데리고 쓰던 애’라고 표현하는 그 얕은 우정. 물론 그 애들이 받아야 할 죗값은 더 커야 마땅하겠지만, 어쩌면 그들이 사는 곳은 이미 지옥이 아닐까 생각했다. 우정도, 진심 어린 소통도 없는 본인만 모르는 지옥.
사진출처 ⓒ넷플릭스
상처받은 사람들의 먹먹한 연대
부수고 복수하고 결국 파멸로 향해가는 스토리라인 속에서 유일하게 웃음을 주는 포인트가 있다면 그건 바로 현남(염혜란)과 동은의 연대가 아니었나 싶다. 현남은 남편에게 맞고 사는 또 다른 피해자다. 물론 동은은 자기 복수를 하기도 바빠 누구와 연대 같은 걸 할 여유조차 없어 보이지만, 사람의 천성이란 건 역시 바 뀔 수 없는 걸까. 서로의 복수를 위해 거래를 하는 중임에도, 자신과 비슷한 처지인 현남이 자꾸만 동은의 눈에 들어온다. 잔잔하게 흐르는 연대의 기운이 흐뭇하면서도 또 마음 아팠다. 밟히고 상처받아도 마르지 않는 선한 기운들이 느껴졌기에.
사진출처 ⓒ넷플릭스
그 복수가 성공하길 누구보다 바라
앉은 자리에서 계속 <더 글로리>의 ‘다음 화’를 넘기다 보면 누구나 공감할 것이다. 처음엔 ‘굳이 복수를?’했던 마음이 어느새 ‘완 전 밟아버려!’ 하는 마음으로 바뀐다는 것을. 감정이입이 이렇게나 무섭다. 동은을 멀리서 지켜보며 사랑과 응원이 섞인 무언가를 하는 꽃미남 의사 여정(이도현)도, 나중엔 동은의 화상 자국을 보며 말하지 않던가. 함께 칼춤을 추는 망나니가 되어주겠다고. 한없이 여리고 어질어서 끝내 가해자를 용서하는 여주인공이 아니라서 좋았다. 누군가의 상처는 절대로 잊혀지지 않는다. 그렇 기에 나 역시 그 망나니의 복수가 꼭 성공하기를 바라는 바다.
별점 ★★★★★
복수가 미련한 것이라고 하는 사람들, 용서가 답이라고 믿는 사람들에게 보내는 빨간색 헌사. 때때로 어떤 상처는 영원히 한 영혼을 갉아먹는다.
인스타그램 @woodumi
유튜브 『따수운 독설』
메일 deumji@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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