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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am your bunny2023-05-18 00:13:28

벗어날 수 없는 삼각형이라는 세계

<슬픔의 삼각형> 리뷰

- 씨네랩으로부터 초청받아 <슬픔의 삼각형> 시사회를 관람한 후 작성한 리뷰글입니다. 

스포일러가 담겨 있습니다. -

 

 

루벤 외스틀룬드 감독의 이전 작품인 <포스 마쥬어: 화이트 베케이션>을 매우 인상 깊게 봤었다.

인간의 웃기고 추한, 하지만 주변에서 봐 왔던, 혹은 쉽게 볼 수 있는 현실적인 모습이 잘 담긴 작품이기에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영화이다.

<슬픔의 삼각형>은 이렇게 감독의 전작처럼 현실과 많이 닮아 있는, 현실의 많은 부분을 흡수시켜놓은 블랙코미디 영화이다.

 

 

영화는 총 3부로 나누어져 있다. 

1부는 모델 커플인 '칼(해리스 디킨슨)'과 '야야(샬비 딘)'의 이야기, 2부는 초호화 크루즈 안에 탑승한 부자와 선원들의 이야기, 3부는 사고로 인해 크루즈가 전복된 뒤 무인도에서 살아남게 된 크루즈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아냈다.

 

영화는 모델 오디션을 보러 간 칼의 모습을 보여주며 시작한다.

그리고 여기서 영화의 제목이 어디에서 비롯되었는지가 언급된다.

면접관은 칼에게 미간의 주름을 펴보라는 말을 빗대어서 '슬픔의 삼각형을 펴보라'고 얘기한다.

실제로 이 '슬픔의 삼각형'은 뷰티 업계에서 사용되는 용어이다. 미간의 주름이라는 뜻으로, 인생에서 많은 어려움을 겪었다는 의미를 지녔다.

 

 

칼과 야야는 식당에서 계산 문제를 가지고 다툰다.

칼은 여자친구인 야야가 식탁 위에 있는 계산서를 모른 척 했다며, 자신은 돈 때문에 시비 거는 게 절대 아니라고, 돈 때문에 이런 말싸움을 하는 게 아니라고 계속 주장한다.

야야는 계산서를 모른 척 한 것이 아니라고, 결국 식당값을 계산한 칼에게 현금을 주겠다고 하지만 이들의 말다툼은 식당을 나와서 택시를 타고 호텔에 도착하기까지 계속 지속된다.

이 장면에서도 웃음 포인트가 곳곳에 있다.

대표적으로 호텔 엘리베이터에서 주기적으로 닫히는 엘리베이터 문을 계속 막으며 말다툼하는 둘의 모습에서 웃음이 나왔다.

개인적으로 칼은 조금은 찌질한 면모가 있는 남자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럼에도 쉽게 미워할 수 없는 사람이다.

사실 현실에서도 그렇지 않나. 상대방의 찌질한 모습들이 보일 때 순간 짜증은 나지만 이걸 이유로 마냥 그 사람을 미워하진 않는다.

이 영화는 이렇게 시작부터 현실과 많이 닮아 있음을 보여준다.



이렇게 말다툼을 했다고 해서 칼과 야야가 서로를 사랑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야야는 모델이라는 자신의 직업에 수명이 있으므로 자신을 과시용 와이프로 삼지 않을, 자신을 진짜 사랑해줄 남자를 찾는다.

그리고 칼은 그녀에게 그런 남자가 되어주겠다고 약속한다.

 

 

인플루언서인 야야의 협찬으로 둘은 초호화 크루즈 여행을 하게 된다. 

이곳에서 둘은 또 다툰다.

야야가 상체를 탈의한 남자 승무원에게 웃으면서 인사했다는 이유로 또 작은 말다툼을 나눈다.

하지만 이런 말다툼이 모두 사랑에서 비롯되었음을 야야도, 칼도, 그리고 스크린 너머의 관객들도 안다.

그리고 이러한 모습 역시 우리네 현실에서 쉽게 볼 수 있다.

 

 

이 크루즈 안의 모든 승무원들은 무조건 손님들에게 웃어보이고, 무엇이든 다 긍정의 대답을 할 것을 교육받는다.

절대 '안 된다'라는 말은 쓰지 않도록 교육받는다.

이 승무원들의 목적은 오로지 돈.

승객들을 대한 뒤 받을 돈을 생각하며 열광하고, 춤춘다.

하지만 '선장(우디 해럴슨)'은 승객들 응대에는 관심이 없다. 책임감도 없다.

 

그러던 중 사건이 터지게 된다.

승객 1명이 자신을 응대하는 승무원에게 지금 당장 수영하라고, 선장이 와서 저지하지 않는 이상 자신의 명령을 거역해서는 안 된다는 식으로 이야기한다.

근무시간에 수영할 수는 없어서 승무원이 적당히 거절하려고 하지만, 이 부자 승객은 넘어가지 않는다.

현실에서 만났던 이런 진상들이 생각나서 이 장면은 좀 많이 머리가 아팠다.

무책임하고 무관심한 선장은 당연히 이 문제를 해결해주지 않았고, 결국 모든 승무원들은 이 승객의 명령에 따라 수영복을 입고 다함께 수영하게 된다. 이 승객 1명의 명령 때문에 각자 쉬고 있는 배 안의 청소부와 같은 직원들도 모두 강제로 수영을 한다.

 

 

그리고 승선 파티에서 부자 승객들이 본격적으로 추한 모습을 보이기 시작한다.

난기류라는 상황 속에서 마구 흔들리는 배 안에서 고급진 음식들을 먹던 승객들은 하나둘 토하고, 설사한다. 결국 변기도 역류하게 되어 배 안은 엉망진창이 되어버린다.

러시아 부자이자 자본주의자인 '디미트리(즐라트코 부리치)', 유명한 모델 인플루언서인 칼과 야야, 세계 평화를 위해 수류탄을 팔아 부자가 되었다는 노부부를 포함한 수많은 '부자 승객'들은 체면 차릴 겨를도 없이 엉망이 되어버린다.

이들이 떠난 자리를 치우는 사람들은 흔들리는 배에서 꼿꼿이 균형을 유지하며 서 있는 승무원들과 청소부들이다.

 

 

하지만 해적들이 이 배에 수류탄을 던져, 결국 배는 전복되고 무인도에 도착한 일부 사람들만 살아남게 된다.

아이러니하게도 이 사건의 시발점이 된 수류탄은 앞서 수류탄을 팔아 큰 부자가 되었다는 노부부의 수류탄이었다.

그리고 이 영화의 가장 주된 내용인, 3부가 시작된다.

 

기존 크루즈에서는 선명한 삼각형의 계급이 있었다.

가장 위에는 이 배의 손님인 여러 '부자 승객들'.

그 밑에는 승객들을 직접 응대하며 종종 두둑한 팁도 받는 '승무원들'.

그리고 가장 밑에는 청소부 '애비게일(돌리 드 레온)'과 같은 사람들.

계급의 가장 맨 아래에 있던 이들은 2부에서는 잘 보이지도 않는다.

 

하지만 이들이 도착한 곳은 '섬'이다.

개개인들이 지녔던 모든 것들이 '무'로 변하고, 오직 의식주를 해결하기 위한 능력만이 필요한 곳.

이곳에서 기존의 삼각형은 뒤집힌다.

유일하게 물고기를 잡을 줄 알고, 불도 피울 줄 아는 애비게일이 삼각형의 맨 꼭대기로 향하여 강한 권력을 쥐게 된다.

사실 섬에 있으면 모든 계급이 사라질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아니었다.

기존의 계급이 뒤집힐 뿐, 계급이 완전히 사라지지는 않는다.

강한 권력을 쥐게 된 애비게일은 이제부터 자신이 이곳의 '선장'임을 모두에게 선포하며, 자신의 뜻대로 행동할 것을 강요한다.

이것도 현실과 참 많이 닮아 있다.

여전히 우리 눈에는 보이지 않는 계급들이 있다. 너무나도 선명하게.

그리고 권력을 쥐게 되는 사람들은 꾸준하게도 자신이 지닌 힘을 강압적이고, 폭력적인 방식으로 이용한다.

참 씁쓸한 현실이다.

 

 

그리고 섬에서의 생활이 시작된다.

애비게일은 칼에게 먹을 것을 조금 더 챙겨주는 대신 자신의 성적 욕구를 풀어줄 것을 요구한다.

그리고 야야는 그런 칼을 적극적으로 막지는 못한다.

개인적으로 제일 아이러니했고, 복잡했고, 흥미로웠던 관계이다.

나는 칼이 단순히 음식을 더 챙겨먹기 위해 애비게일이 원하는대로 모두 해주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기존에 야야와의 관계에서 느꼈던 어떤 부족한 감정을 애비게일과의 관계를 통해 채웠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씁쓸하면서도 동시에 우스꽝스러운 장면들이 쭉 나온다.

러시아 자본주의자인 디미트리는 파도에 떠밀려 온 부인의 시체를 보며 잠시 슬퍼한 뒤, 부인의 반지랑 목걸이를 따로 빼서 챙긴다. 무인도에 처음 도착했을 때부터 구해달라는듯이 계속 울부짖던 다친 당나귀를 사람들이 힘을 합쳐 때려 죽인 뒤 식량으로 이용한다. 그리고 또 서로서로를 격려하고 위로한 뒤, 자신들이 해냈다며 벽화까지 남긴다. 남자들은 애비게일에게 가는 칼을 짓궂게, 노골적으로 놀리기도 한다. 나름 무인도 생활에 적응하여 상대방의 수염도 깎아주고, 웃고 떠들며 그렇게 생활을 이어나간다.

 

영화는 야야와 애비게일, 칼의 모습을 보여주며 끝이 난다.

야야는 섬 구석구석을 더 찾아보기 위해 길을 나섰고, 애비게일은 이런 그녀를 따라간다.

마침내 야야는 이 섬에 존재하는 리조트의 것으로 추정되는 엘리베이터를 발견한다.

야야는 선뜻 발걸음을 내딛지만, 애비게일은 주저한다.

왜냐하면 애비게일은 다시 저 엘리베이터에 타는 순간 삼각형의 맨 아래로 추락하기 때문에.

애비게일이 삼각형의 맨 꼭대기에서 존재할 수 있는 순간은 슬프게도 무인도 안에서만 한정된다.

결국 애비게일은 살기 넘치는 표정으로 야야를 몰래 뒤에서 죽이려고 하고, 야야는 이런 그녀에게 한 가지 제안한다. 자신의 비서가 될 것을.

그리고 본능적으로 야야가 위험함을 느낀 칼이 그녀를 찾아 섬을 뛰어다니는 모습을 보여주며 영화는 끝이 난다.

 

 

영화의 중간중간 계속 씁쓸하던 감정이 결국 끝부분에서 극에 달했다.

자신이 지닌 권력을 지키기 위해 눈앞에 있는 야야를 죽여야 하는 애비게일,

이런 애비게일에게 부자 인플루언서인 야야가 추천한 직업은 자신의 비서.

그리고 그 중간에 있는 남자 칼.

 

'슬픔의 삼각형'은 결국 궁극적으로 계급사회를 뜻하는 것이었다.

단, 이 삼각형은 사라지지 않는다. 순간 뒤집힐 수는 있어도 여전히 삼각형은 존재한다. 계급은 존재한다.

그리고 이를 초래하는 가장 큰 원인은 '인간 개인의 욕망과 욕심'이다.

크루즈에서는 부자 승객들의 이기적인 욕망과 위선으로 인해 삼각형이 존재했고,

섬에서는 애비게일의 욕심으로 인해 또다른 삼각형이 존재했다.

 

현실과 많이 닮아 있어서, 영화 속의 인간들이나 현실의 인간들이나 다를 게 없어서 더 웃음이 나오고, 씁쓸해지는 작품이다.

 

 

 

영화 속에서 제일 인상 깊었던 배우는 야야를 연기한 샬비 딘이었다.

하지만 영화를 본 뒤, 이 작품이 그녀의 유작임을 알게 되었다.

샬비 딘은 관객들이 <슬픔의 삼각형>을 본 뒤 이 영화에 대해 이야기하고, 토론하고 싶어하면서 극장을 떠나길 바랐다.

그녀의 소망대로 이 영화는 지금도 끊임없이 많은 궁금증과 이야깃거리를 관객에게 던져줬으며, 아마 앞으로도 영원히 그럴 것이다.

이 글의 마지막에 그녀를 향한 슬픔과 좋은 연기를 보여줬음에 감사한 마음을 조심스럽게 담아본다.

 

작성자 . I am your bunny

출처 . https://blog.naver.com/meyou_saline/223105056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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