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홍콩을 딱 한 번 가보았다.
출장에서 돌아오는 길이었다. 기내식을 4번씩 먹으며 두 번의 경유를 거쳐 아프리카 남단을 일주일 만에 왕복하는, 짧고 굵은 여정이었다. 돌아오는 길에 경유 시간이 떠서 홍콩 시내로 들어갈 수 있었다. 그동안 홍콩 공항을 종종 경유했지만, 공항 바깥으로 나가 본 것은 처음이었다.
별유천지가 따로 없었다. 왜 '별들이 소곤대는 홍콩의 밤거리'라는 가사가 나왔는지 피부로 이해했다. 시간이 먼지처럼 소복소복 쌓인 골목은 어디를 툭 쳐도 흥미로운 이야기가 스며 나올 것만 같았다. 금방이라도 양조위나 장국영이 고개를 내밀 것만 같은, 바라보면서도 더 바라보고 싶은 골목들이었다. 꼭 다시 와야지 생각했다. 밀크티 마시며 이 골목을 가만히 바라보기만 해도 참 좋을 것 같아서.
그리고 몇 달 후. 홍콩은 당분간 갈 수 없는 곳이 되었다.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나요? 페이스북 담벼락 기본 문구를 바라보는 기분으로 깜빡깜빡, 빈 곳을 응시했다. 바라보고 싶었던 골목 대신. 삶의 아귀가 맞지 않는 기분이 들 때마다 열어보던 홍콩 영화들 대신. 우산과 까만 마스크, 거리에 나서면 누구나 닮아 보이는 사람들에게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나요? 영화제마다 다큐멘터리에 홍콩 이야기가 있는지 둘러보며, 조각조각 찾아 헤맸다.
같은 질문을 품어 본 사람에게 추천하고 싶은 영화가 있다. 2022년 10월 13일 국내 개봉한 다큐멘터리 <시대혁명>이다.
주제의 무거움에 한 번, 152분이라는 러닝타임에 또 한 번 멈칫하게 될 이들을 위해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 영화는 당신을 무거운 감정 안에 혼자 버려두지 않을 것이다. 끔찍한 폭력을 목도하게 될까 봐 멈칫하겠지만, 내가 이 영화에서 본 것은 오히려 희망이었다. 홍콩에 대해서도, 시대에 대해서도.
시대혁명 속으로
거친 상황을 담은, 강렬한 포스터의 영화지만 당신에게만큼은 참 친절한 영화일 것이다. 152분의 러닝타임은 여러 챕터로 나뉘어 있어, 그다지 길게 느껴지지 않는다. 매우 적절한 소제목과 함께 각 장이 똑똑하게 분절되어 있다. 홍콩 상황을 잘 몰라도 충분히 씹어 삼킬 수 있도록, 한입 크기로 잘라 준다. 친절한 가공을 잔뜩 거쳤음에도 너무나 생생해서, 잠시 2019년 홍콩으로 시공간 이동을 하는 기분마저 들게 만든다. 연대하는 마음 외에는 큰 기대 없이 본 영화였는데, 너무나 훌륭해서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영화는 2019년 홍콩에서 '범죄인 인도법'을 계기로 일어난 시위를 담았다. 홍콩 사람이 범죄를 저지르면 중국으로 송환되어 재판받게 된다는 조항은, 당시 들려오던 수많은 의문사와 실종 사건들과 맞물려 공포를 자아냈다. 홍콩 사람들은 최루액에 우산으로 맞섰던 2014년 '우산 혁명'을 기억하며 다시 거리로 나선다. 영화는 2019년의 거리와 홍콩 사람들을 촘촘하게 담아낸다.
지도부가 없음에도 시위에서 사람들은 각자의 역할을 착착 찾아낸다. 마치 온라인 게임에서 각자의 직업을 선택하듯이. 시위가 진행하면서 변해가는 상황에 이들이 얼마나 유동적으로 움직이는지 생생하게 보여준다. 대부분의 등장인물들이 얼굴과 이름을 가리고 나오지만, 그들의 생각과 역할과 의미는 분명하게 드러난다. 그 결과 우리는 하나의 유기체처럼 움직이던 이들을 한 명씩 만나게 된다.
버스도 지하철도 끊긴 도시에서 시위 참석자들을 집에 들여보내는 '승용차 부대', 시위 최전선에 서는 이들을 돌보는 '엄마'와 '아빠', 전경의 위치와 최루탄 정보 등을 파악해 전달하는 '감시 부대'... 시위 안에서의 역할 차이는 물론 시위 바깥에서도 체계적으로 각자의 싸움을 이어가는 이들의 이야기가 담겨 있었다.
만약 모든 것이 죽는다면
이 영화에 등장하는 수많은 인물 중, 누구의 행동과 말에 당신의 시선이 가장 깊게 머물렀을지 궁금하다. 돌아보면 나는 세 사람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70대 노인 '찬 아저씨Uncle chen'. 그는 수십년 째 농부로 살아왔는데, 아이들이 죽어가고 끌려가는 걸 더 볼 수 없어 길을 나섰다. 경찰이 온다는 소식이 들리면 "너희가 들어가야 나도 들어간다"며 아이들을 들여보내고, 다른 노인들과 손을 맞잡고 경찰의 폭력을 막는다. 종내에는 경찰이 그의 노구에까지 손을 올리면서 더 이상 시위에서 '전력'이 되지 못하지만, 당연하고 상식적인 말을 하는 노인의 존재에는 큰 울림이 있다. 더불어 홍콩을 향한 중국의 야욕이 얼마나 오래전부터 존재했는지도 살짝 보여준다. 중국은 주민들이 농사짓던 땅을 아무 합법적 절차 없이 집어삼키고 쫓아냈던 것이다.
14살 소년 모닝Morning. 그는 알레르기가 있어 최루 가스를 조금만 맡아도 기침이 나오는 몸이고 아직 어리지만, 구조대로 시위 현장을 뛰어다닌다. 최루 가스 때문에 제대로 말도 잇지 못하는 사람 앞에서 결연한 얼굴로 제 방독면을 벗어 씌워주고 함께 안전한 곳으로 뛰어가는 모습은, 아직 어리지만 곧고 힘차다. 한국 웹사이트에도 영상이 퍼졌던, 경찰이 지하철 속의 사람들을 마구잡이로 때리던 그 현장에도 그는 달려갔다. "총을 쏘든 때리든 다 맞겠으니 사람만 구하게 해달라"고 엉엉 우는 그의 모습을 보기 괴롭고 속상했다. 구조대를 막는 것은 국제법상 불법이지만, 홍콩 경찰은 국제법과 관례를 어긴 지 오래다. 그러나 다시 그는 여전히 올곧은 눈빛이다. 그는 아마도 조슈아 웡처럼 자랄 것이다. 단단한 신념을 뿜어내는 눈으로
마지막으로는 영화에서 많은 인터뷰를 했던, 사회복지사 중년 여성 재키. 상황을 차분하게 조망하고 움직인다. 얼굴이 벌게진 백인 남성이 삿대질하며 "너희가 홍콩을 다 망치고 있다. 부동산도 경제도 망치고 있다!"고 천박한 욕 섞어가며 소리치는 앞에서도 표정 하나 변하지 않는다. 법 없이도 살 사람 같은 표정이지만, 시위 현장에 늘 서 있다. 그 차분한 시선으로 본질을 진작에 꿰뚫었기 때문이다. 정치가 죽고, 자유가 죽은 땅에서는 사회복지사도 없다고. 그 땅에는 인권이란 게 없을 테니까. 자유가 없는 땅에서는 돌봄도 죽는다. 그 지적은 '좋은 것이 좋은 것' 식으로 바라보는 마음을 찌른다.
써놓고 보니 나는 '맞서 싸우는 힘'보다 '살리는 힘'에 마음이 기우는 사람인 것 같다. 그러나 결국 살리는 힘은 싸우는 힘과 연합할 수밖에 없다. 모든 것이 죽은 땅에서는 아무것도 살릴 수 없을 테니까. 죽이는 힘에 맞서야만 살릴 수 있을 테니까. 바로 그 마음으로, 흙을 바라보며 살아온 노인이, 단단한 눈빛의 소년이, 법 없이도 살 얼굴의 사회복지사가, 시위 현장에 서 있다.
우리의 무기, 기록과 희망
승산이 높지 않았다. 2019년의 시위는 결국 끝났다. 다만 흔한 역사 속 시위들처럼 '지도층의 내분' 같은 건 없었다. '지도층'조차 없이, 물방울 같은 각자가 모여 강처럼 흘렀을 뿐이다. 화염병을 어떻게 써야 하는지도 몰라서 가방에 넣어 들고 다니던 (당연히 기름이 다 흘러 못 쓰게 되었다) 아이가 화염병을 던지게 하고, 구글 맵을 볼 줄도 모르던 아이가 지도로 경찰 정보를 보내는 첩보 작전을 펼치게 만든 홍콩 경찰은 마침내, 시민들을 전쟁 상대처럼 여기기 시작했다. 아이들은 캐리 람을 죽여도 또 다른 캐리 람이 나타날 테니 결국 보통 선거권을 쟁취해야 하는 싸움임을 똑똑하게 인지하고 있는데.
경찰은 횡단보도 한복판에서, 아무 무장도 하지 않은 사람의 심장을 겨누어 총을 쏘았다. 시위를 무력 진압하다 못해, 일반적인 국제관례를 어기고 퇴로까지 차단하고 정말 몰살시킬 각오로 공격했다. 이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나 싶을 만큼 잔인하게 짓밟았다. 영화가 잔인한 장면을 자주 보여주지 않았음에도 홍콩 경찰은 정말 잔인했다. (여담이지만 SNS에 홍콩 경찰 지지 의사를 올렸던 수많은 중국인 아이돌들이 떠올라 또 화가 났다. 자유민주주의 국가에서 돈 벌면서 최소한의 상도덕도 없는 행위라고 생각하긴 했는데, 걔네가 지지한 게 이거라고요?)
시위의 마지막 순간은 홍콩 이공대를 배경으로 한다. 퇴로를 차단하고 시위대를 몰아세우는 홍콩 경찰 앞에서, 시위대에게 남은 길은 죽음 혹은 10년 징역형밖에 없다. 아이들을 구하기 위해 시민들이 움직이고, 수많은 사람이 목소리를 내지만, 경찰은 동일한 스탠스를 유지한다. 수천 발의 최루액과 물대포로 사람을 날리고, 총을 쏘고, 끝내 아이들을 무릎 꿇리고, 구타하고, 질질 끌고 가고...
그렇게 홍콩은 국제 사회에서 조금 잊힌다. 미얀마에서도 괴로운 일이 생겼고, 우크라이나에도 전쟁이 났으며... 중국의 굴기는 계속되었다. 2020년에 홍콩에서 국가보안법을 시행했고, 가까운 시일 내에 대만을 무력으로라도 통일하겠다는 말도 서슴없이 내뱉고, 한국 문화와 역사에도 자꾸 손을 대서 우리를 불편하게 또 긴장하게 한다. 이 상황에서 우리 뇌리에 마지막으로 남은 홍콩의 인상은, 진압되기 전 마지막으로 홍콩 이공대 벽에 누군가 남겼다는 짧은 편지다.
세상 사람들에게
중국 공산당은 당신의 정부에 침투할 것이고
중국 기업은 당신의 정치적 입장에 간섭할 것이다
위구르족에게 한 짓처럼
당신네 나라를 털어먹을 것이다
정신을 똑똑히 차려라
그렇지 않으면 다음은 당신 차례가 될 테니까
그렇게 끝났다고 생각했다.
훗날 홍콩 역사에 아마 2020년에서 2022년 사이는, 2019년이나 우산 혁명의 2014년보다 고요하게 기록될 것이다. 사실 그래서 본 영화였다. 어둠 속에서 연대하는 마음으로. 최루액에 맞서는 우산을 함께 받치는 마음으로, 의문의 추락사로 사라진 이들에게 낙하산을 달아주고 싶었던 마음으로.
그런데 정작 내가 등장인물들의 우산 아래 들어간 느낌을 받았다. 10년 징역형을 받고 나와도 아직 이십 대 혹은 삼십 대라고 말하며 웃는 얼굴들. 또 싸워야 하는 상황이 오면 더 잘 싸울 거라고 말하는 이들의 목소리들. 변조와 모자이크를 뚫고 여기까지 전해지는 그들의 생생한 에너지가, 젊음이, 푸른 꿈이 기묘한 희망을 주었다.
하긴 그렇다. 비루하고 추레하게 제국을 바라는 이들은, 푸른 자유를 꿈꾸는 이들보다 먼저 죽을 것이다. 아무리 경찰이 총을 쏘고 쇠봉을 휘둘러도 모든 시민 모든 아이를 죽일 수는 없으므로. 모든 관례를 부술 만큼 비겁해지지 않고서는 싸울 수도 없었던 그들과 달리, 시위대에 있던 이들은 모든 희생과 고민과 절망을 다 끌어안고도, "우리를 기록해 주세요"라고 울먹이면서 말하고도, 여전히 싸울 마음을 포기하지 않았다. 지금은 모든 것이 끝난 어둠 속이 아니라, 신발 끈을 다시 매면서 장기전을 바라보는 휴지기의 어둠 속이었다.
시간을 거슬러 홍콩에 우산을 받쳐줄 수도, 낙하산을 달아줄 수도 없는 우리지만, 단 하나 희망의 시간만큼은 함께 보낼 수 있다. 우리는 모두 같은 시간 안에 있으므로. 힘들어하면서도 함께 지켜볼 것이다. 우리의 무기는 기록과 희망이고, 그 두 가지의 공통점이 있다면 공유를 통해 힘이 부여된다는 점이니까. 전작에서 우중충한 향후 10년을 상상하며 <10년>을 만들었던 감독이 앞으로 새로운 <10년>을 상상해 펼칠 날을 기대하며, 촛불에서 촛불을 옮기듯, <시대혁명>으로 작은 힘을 함께 나누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