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니엘2023-10-06 17:41:36
[BIFF 데일리] 무진에서도 성찰이 필요하다
영화 <안개> 리뷰
감독: 김수용
출연진: 신성일,윤정희,김정철,이낙훈
시놉시스
서울에서 제약회사의 전무로 있는 윤기준은 직장 일의 피로 때문에 1주일 휴가를 내고 무진으로 내려간다. 무진은 안개가 자욱한 곳인데 그 동네는 윤기준이 6.25 전쟁 때 있었던 고향이다. 무진에 도착한 윤기준을 반기는 건 중학교 동창이자 성공한 세무서장인 조한수였고 둘은 이야기를 나누다가 모임 자리에 가게 된다. 그 모임 자리에서는 서울에서 예술 대학을 나와 무진에서 음악 교사로 일하는 하인숙이라는 여자를 처음 보게 되고 윤기준과 하인숙은 서로 가깝게 지내게 되는데...
윤기준은 자신의 내면을 되돌아보면서 과거와 현재를 떠올린다. 현재의 자신에게 독백으로 말하며 지금은 무진에서 가장 성공한 동창들 중 한 명이지만 과거에는 초라할 수밖에 없는 사람이어서 그런지 복잡하고 심리적인 압박이 있다. 그런 윤기준에게 하인숙이라는 여자는 보통의 여자가 아니었다. 한마디로 자신의 불안정한 욕구를 채워줄 여자였던 것이다. 둘은 만난 지 얼마 안 돼서 사랑에 빠지지만 아내가 있던 그에게도 이 여자는 치명적인 매력을 가진 여자였고 그의 이모에게도 자신의 아내라고 칭할 만큼 한마디로 말하자면 두 번째 아내였다.
그런데 하인숙의 입장은 과연 어땠을까? 윤기준에게 서울로 같이 데려가달라고 하고 오빠라고 친근감을 보이면서 무진에서 벗어나고픈 간절한 심정 말이다. 서울의 예술 대학에서 성악을 공부했지만 무진으로 내려와 모임자리에 나가면 주야장천 유행가만 부르는 자신이 필자가 봐도 윤기준과 상황이 똑같았다. 그런 답답함에 접점이 있었던 걸까? 영화 안개는 복잡한 내면의 심리 관계를 해결하고픈 윤기준과 하인숙을 중심으로 돌아간다.
복잡한 내면으로 인한 사랑 그리고 성찰
2023. 10.06 (금) 12:00 CGV 센텀시티 2관
부산국제영화제 기간: 2023. 10.04 (수)~ 2023. 10.13 (금)
Relative cont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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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계적인 거장 감독들의 원픽! 배우 <아담 드라이버> #톺아보기
안녕하세요!
영화/OTT 큐레이션 매거진 '씨네랩'입니다.
1월 12일 세계적인 명품 브랜드 '구찌',
구찌일가의 음모, 욕망, 스캔들을 다룬 영화 <하우스 오브 구찌>가 개봉했습니다.
극 중 구찌를 이끌었던 수장인 '마우리찌오 구찌' 역을 맡은
배우 아담 드라이버에 대해 톺아보는 시간을 가지려고 합니다.
2021년 10월 20일 개봉한 <라스트 듀얼: 최후의 결투>에 이어
연일 바쁜 행보를 보이고 있는 배우인데요.
할리우드 및 세계적인 거장감독들이 사랑하는 배우, 아담 드라이버 톺아보기!
그럼 시작하도록 하겠습니다.
1. 프로필(Profile)이름 : 아담 드라이버 (Adam Douglas Driver)
출생 : 1983년 11월 19일
국적 : 미국
직업 : 배우
2. 아담 드라이버의 성장과정
아담 드라이버는 평범한 가정에서 태어났습니다. (어머니는 법률 사무 보조원이었다고 하네요)
어렸을 때는 꽤나 반항적인 성격으로 영업사원으로 일을 하기도 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미국 해병대에 입대하여 2년 8개월간 군복무한 이력도 있습니다.
결국 사고로 인해 몸을 다쳐 의병 제대를 하게되었다고 합니다. 배우가 되기 위한 운명적인 과정이었을까요?:)
3. '아담 드라이버'의 초기작
아담 드라이버는 여느 배우들처럼 초기에는 영화/드라마의 조연, 단역을 거치게 됩니다.
코엔형제 감독의 <인사이드 르윈>에서도 조연으로 참여하고, 드라마 <걸스>시리즈에서도 애덤 역으로 인지도를 쌓아가기 시작합니다.
아담 드라이버가 배우로서 크나큰 도약을 할 수 있었던 작품은 <헝그리 하트>인 것 같습니다.
아담 드라이버는 베니스국제영화제에서 남우주연상을 수상하며 배우로서 인정을 받게 됐으며,
그 이후 출연한 <스타워즈: 깨어난 포스>에서 카일로 렌 역으로 출연하며 세계적인 인지도를 쌓아가게 됩니다.
<헝그리 하트>
<스타워즈: 깨어난 포스>
4. '아담 드라이버'의 주요 필모작
- 2014년 작 <인사이드 르윈>, 알 코디 역
출연진 : 오스카 아이삭, 캐리 멀리건, 저스틴 팀버레이크, 아담 드라이버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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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 중 비중은 적었지만 주인공 오스카 아이삭의 음악작업을 위해 코러스를 도와주는 역할을 맡아 매력적인 중저음의 보이스를 들려주었습니다.
- 2014년 작 <프란시스 하>, 레브 역
출연진 : 그레타 거윅, 믹키 섬너, 아담 드라이버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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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 중 그레타 거윅의 친구 역할로 더 젋고 더 친근한 아담 드라이버의 모습을 볼 수 있는 작품입니다.
지금보다는 이미지가 더 가까이 다가설 수 있는 정감있는 모습이네요.
- 2015년 작 <위아영>, 제이미 역
출연진 : 벤 스틸러, 나오미 왓츠, 아만다 사이프리드, 아담 드라이버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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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큐멘터리 연출을 하는 젊은 세대의 역할입니다. 극 중에서 벤 스틸러가 연기하는 다큐멘터리 연출자와는
상반되는 성격으로 힙하고 자유로운 모습으로 벤 스틸러에게 영감을 주기도 하는 캐릭터입니다.
- 2015년 작 스타워즈: 깨어난 포스>, 카일로 렌 역
출연진 : 데이지 리들리, 존 보예가, 오스카 아이삭, 아담 드라이버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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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담 드라이버는 '다스 베이더'를 잇는 새로운 악의 포스
루크 스카이워커의 조카인 카일로 렌 역을 맡았습니다.
- 2017년 작 <스타워즈: 라스트 제다이>, 카일로 렌 역
출연진 : 데이지 리들리, 마크 해밀, 아담 드라이버, 오스카 아이삭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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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워즈: 깨어난 포스>에 이은 두 번째 스타워즈 시리즈 출연작입니다.
사실 국내에서는 카일로 렌 캐릭터의 불호적인 의견도 많은데요.
아담 드라이버에게 연기를 너무 악역으로서의 카리스마가 없어보이게 한다는 이유에서라고 전해지네요.
- 2017년 작 <패터슨>, 패터슨 역
출연진 : 아담 드라이버, 골쉬프테 파라하니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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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오하이오주의 작은 도시 '패터슨'시에 사는 버스 기사 '패터슨' 역할을 맡았습니다.
극 중 버스 기사 역으로 일상적인 삶을 시로 표현하는 캐릭터입니다.
평범한 일상 속에 요일 별로 매일 시를 쓰며 담담하게 일상을 보냅니다.
- 2018년 작 <블랙클랜스맨>, 필립 역
출연진 : 존 데이비드 워싱턴, 아담 드라이버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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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8년 프랑스 최초의 흑인 경찰 '론'과 함께 KKK단에 잠입하기 위해 힘을 합쳐
백인우월주의 단체를 소탕하려는 백인 경찰 '필립'역을 맡았습니다.
- 2019년 작 <결혼 이야기>, 찰리 역
출연진 : 스칼렛 조핸슨, 아담 드라이버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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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 결혼 생활을 이어가는 와중 '찰리' 와 '니콜'이 파경을 맞고 이혼과정에서
서로 싸우며 파국을 맞게 되는 과정을 담은 영화인데요.
극 중 아담 드라이버는 뉴욕에서 활동하는 연극 연출가 역을 맡았으며 인정도 받고
자수성가한 매력적인 인물입니다.
- 2019년 작 <데드 돈 다이>, 로니 피터슨 역
출연진 : 빌 머레이, 아담 드라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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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칸국영화제 개막작.
평범한 동네에 어느 날 좀비가 출현하게 되고 동네경찰인
클리프(빌 머레이)와 로니(아담 드라이버)가 좀비를 소탕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이야기를 다루고 있습니다.
- 2021년 작 <아네트>, 헨리 역
출연진 : 아담 드라이버, 마리옹 꼬띠아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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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의 거장감독인 레오 카락스의 작품.
예술가들의 도시 LA, 극 중 스탠드업 코미디언 '헨리'역 을 맡았으며
엄청난 달변 솜씨와 노래, 그리고 안무 등이 어우러진 기가막힌
스탠딩쇼를 보여주었습니다.
- 2021년 작 <라스트 듀얼: 최후의 결투>, 자크 르 그리 역
출연진 : 맷 데이먼, 벤 에플렉, 아담 드라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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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78회 베니스국제영화제 비경쟁부문 초청작.
극 중 자크 역을 맡은 아담 드라이버는 부조리한 권력과 야만의 시대, 14세기 프랑스에서
친구 '장'의 아내인 마르그리트를 겁탈하고 그것의 침묵을 강요하는
불명예적이고 비도덕한 인물을 맡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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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담 드라이버>의 주요 필모작을 살펴보니
정말 여러 작품에서 여러 캐릭터를 맡았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거장감독들의 러브콜을 정말 많이 받았는데요.
앞으로도 다양하고 멋진 모습으로 영화 관객들 앞에
자주자주 찾아와주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
그럼 씨네랩은 오늘 이것으로 마치고
다음 주에 더 멋있고 아름다운 배우 #톺아보기 시간으로 찾아뵙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안녕~~
P.S 혹시 #톺아보기 배우로 추천하고 싶거나 관심있으신 배우들이 있으면
주저말고 편안하게 댓글로 달아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씨네랩 에디터 cammi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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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첫사랑 기억 조작 영화 모음.zip
안녕하세요! 씨네랩입니다.
오늘은 첫사랑 기억 조작을 하는 달달한, 또 씁쓸하기도 한
첫사랑 영화, 총 일곱 편을 추천드릴까 합니다.
그럼, 지금부터 씨네랩이 추천하는 첫사랑 기억 조작 영화 모음집!
시작해보도록 하겠습니다 ٩( ᐛ )و
순정
ⓒ 네이버 영화
synopsis
라디오 생방송 도중 DJ에게 도착한 편지를 통해 현재와 과거를 넘나드는 첫사랑과 다섯 친구들의
우정을 담은 감성 드라마
cine pick!
첫사랑의 순수한 감정을 고스란히 담아내고, 배우들이 섬세한 감정 연기를 펼치며
관객들의 마음을 사로잡은 영화이다. 올드팝부터 90년대 가요까지 삽입하여 관객들의
향수를 불러일으키며 감성의 깊이를 더하였다.
그해 여름
ⓒ 네이버 영화
synopsis
방송 작가 수진은 윤교수의 첫사랑 정인을 찾아 앙숙인 김피디와 취재길에 나선다.
수내리에 도착해 정인의 행방을 찾던 그들은 마을 사람들로부터 윤교수와 정인의 사랑 이야기를 듣게 된다.
cine pick!
한 편의 소설을 읽는 듯하는 감성적이고 몰입감이 넘치는 영화이다. 두 배우의 눈빛 연기가 돋보이며,
영상미가 좋으며 여운이 오래 가는 영화이다.
그 시절, 우리가 좋아했던 소녀
ⓒ 네이버 영화
synopsis
열 일곱 커징텅과 그의 친구들은 션자이를 좋아한다. 소심한 커징텅과 달리 친구들은 션자이의
사랑을 얻기 위해 경쟁하고, 커징텅의 고백에 션자이는 대답하지 않는다.
cine pick!
첫사랑 영화의 대명사으로 불리는 <그 시절, 우리가 좋아했던 소녀>는 계속 회자될 정도로
많은 이들에게 사랑을 받은 작품이다. 청량하면서도 아련한 감성과 함께 공감을 이끌어내
관객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내 이야기!!
ⓒ 네이버 영화
synopsis
고릴라 같은 외모의 소년 타케오는 린코에게 첫눈에 반한다. 차마 좋아한다는 고백을 입 밖으로
꺼내지 못한 채 친구 스나카와와 함께 매일 린코의 주위를 맴돌기 시작한다.
cine pick!
일본을 대표하는 청춘 스타들이 나오며 관객들의 기대를 모았던 영화 <내 이야기!!>는 풋풋하고 사랑스러운
영화를 인기를 끈 작품이다. 원작을 잘 살려 호평을 받기도 하였다.
나의 소녀시대
ⓒ 네이버 영화
synopsis
유덕화와 결혼하는 것이 꿈인 평범한 고등학생 린전신은 뜻밖의 사건 때문에 학교를 주름잡는
불량학생 쉬타이위와 얽힌다. 그러던 어느 날, 두 사람은 서로의 연애 성공을 위해 비밀스러운 동맹을 맺게 된다.
cine pick!
영화의 색감과 연출이 뛰어나 청춘 그 자체를 담아낸 영화 <나의 소녀시대>. 첫사랑의 감정을 고스란히 전달하고,
OST가 그 감성을 더하면서 보고 나면 가슴이 먹먹해지는 영화이다.
여름날 우리
ⓒ 네이버 영화
synopsis
‘요우 용츠’(장약남)에게 풍덩 빠져버린 ‘저우 샤오치’(허광한)가 그녀에게 닿기까지 수많은 여름을
그린 첫사랑 소환 로맨스.
cine pick!
한국에서 큰 인기를 끌었던 박보영, 김영광 주연의 <너의 결혼식>을 리메이크한 영화이다.
현실적인 연기로 허광한 배우와 장약남 배우의 케미가 돋보이는 영화이다.
20세기 소녀
ⓒ 네이버 영화
synopsis
어느 겨울 도착한 비디오 테이프에 담긴 1999년의 기억, 17세 소녀 ‘보라’가 절친 ‘연두’의 첫사랑을
이루어주기 위해 사랑의 큐피트를 자처하며 벌어지는 첫사랑 관찰 로맨스
cine pick!
방우리 감독이 한국형 청춘물을 보고 싶어 만든 <20세기 소녀>는 한국 관객들의 취향을 저격해
1위를 차지했으며, 전 세계 순위에서는 5위를 차지했다. 공개 전부터 캐스팅으로 화제를 모았던
영화는 따뜻하고 채도 높은 색감으로 많은 이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씨네랩 에디터 Hiz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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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욱신욱신하는 모든 이의 이름
*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농담 반 진담 반으로 그런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지금 우리의 의학발전은 인정하기 싫게도 과거 사람들에게 행해진 생체실험 덕분이라는 말이었다. 그래, 인정하기 싫게도, 맞는 것도 같다. 수많은 이에게 규칙적으로 바닷물 주사를 투여하지 않았다면 비브리오 패혈증의 존재는 보다 늦게 알려졌을 것이다. 바닷물이 혈액을 대신 할 수 있다는 거짓으로 판명된 가설 대신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된 것이다. 지금은 인간에겐 하진 않고 실험용 동물을 쓴다. 매정하게 말하자면 과정은 비인간적이었으나 결과는 인간을 위하는 것일 때도 있다. 그 판단을 어떤 사람도, 어떤 시대도 쉽게 내릴 수는 없다. 우리는 시대 아래서 자유롭지 못하다. 시대가 펼쳐놓은 판에, 말이 되어 이리저리 움직인다. 시대가 만약 신이라면 참 체계적인 큰 손이 아닐까. 때맞춰 부딪히는 이념을 널어두고, 갈등을 만들어내면서 사람을 시험한다. 우리는 시험당하고 시험하는 존재이다. 태어날 때도 내 원이 아니었건만 사는 것도 내 원이 아닌 바에야 이게 대체 다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그러나 '소용'은 애당초 성립되지 않는 말이다. 쓸모가 있고 득이 되는 것. 살아가는 것은 쓸모와 득으로는 나눌 수 없는 것이다. 영화 <동주>는 처음부터 끝까지 내게 그 말을 속삭이고 있었다. 많은 이들이 말했다. 일제강점기 하에서 윤동주와 송몽규는 다른 모습을 보여주었다고. 윤동주는 당대에는 빛을 발하지 못했으나 그의 시는 대대손손 교과서에 실릴 정도로 오래오래 남아있다. 송몽규는 일제강점기에서 열심히 앞장서 싸웠으나 결국 이름 하나 남기지 못했던 사람이라고. 이준익 감독 또한 윤동주는 과정은 좋지 않지만 결과가 좋았고, 송몽규는 결과는 없지만 과정은 훌륭했던 사람이라고 말했다. 윤동주의 아름다운 결과와 함께 과정이 아름다웠던 송몽규를 함께 보여주고 싶었다고.
이름을 훗날 길이길이 남기는 것은 누구나 꿈꾸는 일이다. 내 이름이 이왕이면 좋은 쪽으로 칭송을 받는다면야 그보다 좋을 일은 없다. 그러나 동주와 몽규가 그랬을까. 둘이 그 말을 들으면 어떻게 반응할지 상상해보았다. 동주와 몽규에게만은 적어도 과정과 결과, 그런 이분법을 두는 것이 옳은 것인지 의문이다. 그게 영화에서 불편하던 포인트였던 것 같다. 그건 마치 영화 구석구석 드러나던 선택지와 같다. 처음 영화 시작부터 나타났던 신앙과 공산주의에 대한 고민. 일본순사가 교실을 박차고 들어와 내밀던 개인주의냐 전체주의냐, 일본사람이냐 아니냐, 하던 불편한 선택지. 혹은 아버지가 내미는 진로선택의 일침과도 같았다. 이과냐, 문과냐. 문학을 공부하는 것이 무슨 쓸모냐 의사가 되어 사람을 구하는 것이 쓸모지. 마지막 자기 확신에 빠져 있는 일본 취조인의 이야기와도 같다. 야만이냐, 문명이냐. 국제법에 대강 끼워맞춰서 자발적인 듯 보이게 진술서를 받으면 문명이고, 그런 것조차 모르는 무지한 조선인은 야만이고. 이분법은 수많은 경우와 변수를, 이야기의 목을 댕강 잘라버린다. 마찬가지다. 과정과 결과는 그들이 원하지 않았을 이분법이다. 무엇이 과정이고, 무엇이 결과인가. 나에겐 동주와 몽규 모두 과정도 좋았고, 결과도 좋았다. 평생을 애써 자신이 뜻하는 바에 다가가려한 과정이 훌륭하다. 한스럽게 숨을 거뒀지만 이렇게 지금 다시 살아나 남은 우리가 더 좋은 사람이 될 수 있게 하는 결과가 훌륭하지 않은가.
아주 확고하게 영화의 시작부터 끝까지 동주는 몽규의 그림자이자 2인자였다. 마지막엔 무려 동주가 절규하면서 몽규의 그림자인 것을 인정한다. 그러나 정말 그런가? 드러나지 않았다고 동주가 수동적이며, 재능이 없고, 목적과 이유가 없다는 것은 아니다. 물론 동주는 몽규에 비해 수동적인 것처럼 보인다. 동주가 먼저 몽규를 부르지 않는데 비해 몽규는 영화 내내 '동주야'하면서 그를 부른다. 가장 귀에 많이 익은 대사이기도 하다. 동주가 마음에 들어하는 것 같은 여자에게 쭈뼛쭈뼛하면 몽규는 모르는 척 도와준다. 날 선 대화로 서로에게 흠집이 되는 말을 나눈 직후에도. 먼저 신춘문예에 당선되었다고 기뻐하기는 커녕 동주 상심하지 않게 말할 것을 먼저 고민하는 몽규다. 그는 당선되지 않아 시를 꽁꽁 매어두는 동주에게 직접 잡지를 만들어 시를 발표하자고 제안한다. 원하던 대학에 붙고도 동주가 붙지 않으면 바로 대안을 찾느라 바쁘다. 몽규는 기분이 상한 동주가 좋아하는 정지용, 백석의 시집을 가져다 주면 이윽고 동주가 자신과 눈을 맞추리란 것을 알고 있다.
그렇다면 몽규와 동주의 관계는 극단적으로 몽규의 일방적인 적극성과 헌신, 동주의 일방적인 소극성과 고집으로 이뤄진 것인가? 형만한 아우없다더니 역시 동주는 몽규같은 형을 만나 재능을 알아봐주고 뒤늦게 날개를 펴게 된 건가? 아니다. 몽규와 동주는 서로 다른 사람이다. 그 선을 넘지 않으면서 서로를 소중히 하려고 노력한다. 몽규는 시보단 산문의 힘을, 현실의 변화를 이끌어 내는 것을 중요시하고 동주는 문학, 시 그 자체의 울림으로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것을 중요시한다. 몽규는 다른 이를 말로 설득하고 총을 들고, 동주는 시를 계속 쓴다.
어느 순간 몽규에게 동주는 동주이면서. '윤 시인'이다. 동주말마따나 시집도 안내고 등단도 안했는데 왜 시인이라고 당당하게 소개할 수 있는걸까. 그건 영화 속에 나온 것처럼 동주가 그림자도 2인자도 아니며, 전혀 수동적인 사람도 아니기 때문이다. 드러나지 않을지언정 시에 대한 그의 뚝심은 영화 내내 흔들리지 않는다. 그가 존경하던 정지용 선생님이 시를 그만 쓰라고 하는데도 그는 꿋꿋하게 내내 우리말로 시를 쓰고 모아둔다.
다카마쓰 교수가 그에게 시를 써보는 게 어떻냐고 물었을 때 그의 기분은 어땠을까. 동주는 사실은 시를 쓰고 있다고 대답했다. 출판을 하지 않아 시인은 아니지만 시를 쓰고 있다고. 그 때 다카마쓰교수는 조선어로 된 시라서 출간을 하지 '못'하는 것이 아니냐며 한 마디를 날렸다. 그가 쟁여두고 있어서 출간하지 않았던 이유보다도 더 큰 이유는 시대가 정해놓은 한계이기도 했다. 그것을 교수가 지적한 것이다. 당신 잘못이 아니라 시대의 잘못이라고. 출간이 자유로웠다면 그는 아마 못이기는 척, 부끄러워하면서도 출간했을 것이다. 그가 부끄러운 것은 시를 줄곧 써서 현실을 바꾸지 못하고 숨어드는 것 같은 자책이다. 하지만 본질적인 이유는 자신있게 자신의 생각을 담은 그 시를 선뜻 낼 수 없는 시대때문이다. 다른 한 사람 한 사람의 마음을 울리지 못하고 혼자만의 우물에서 울리는 파장을 보고 있는 것이다. 그는 시대가 막아놓은 둑에서도 물 한방울씩을 알뜰히 모아두고 있었을 뿐인데.
영화에선 쿠미라는 일본인 학생의 도움으로 영어로 시집을 출판하려 했다. 겁이 없이 진행된 해외 출간. 수동적인 이미지의 동주라면 마지막까지 쿠미가 알아서 빨리 출간을 하면 될 일이었다. 하지만 마지막 순간엔 그 원고를 쿠미가 아니라 동주가 직접 보내겠다고 한다. 그 소심하고 겁많은 사람이. 그걸 하려고 그는 잡힐 수 있다는 걸 알면서도 몽규와 함께 가지 않고 하루를 꼬박 기다렸다. 그건 수동적인 사람이 할 수 있는 선택이 아니다. 실제로 윤동주는 직접 한정판이나마 출판을 하기 위해 노력하기도 했고, 출판이 실패하고 다른 사람에게 원고를 넘겨두기도 했다. 동주는 학교의 필수적인 교련도 거부하고, 창씨개명도 최대한 늦게 하려한다. 그 거짓부렁이 진술서에도 서명하지 않겠다고 한다. 이런 윤동주의 과정이 좋지 않고, 결과만 좋다고 할 수 있을까.
몽규 역시 마찬가지다. 몽규는 결과가 없지만 과정이 좋은 사람인가. 과정과 결과를 어떻게 생각하는지에 따라 달라질 수 있는 문제이다. 동주와 몽규 사이의 과정과 결과를 생각해보면 의미는 달라진다. 동주를 '대기는 만성이다'하면서 질투에 휩싸이게 할 정도로 이른 나이에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된 '술가락'이 있다. 홀연히 독립군 활동을 하고 돌아오고 공부를 시작하곤 잡지 <문우>를 직접 발간했다. 거기엔 동주의 시도 있지만, 몽규의 우리말 뜻인 꿈별이라는 이름으로 쓰인 시 '밤' 이 있다. 조선일보에 실렸던 <하늘과 더불어>까지. 영화에 나오지 않았으나 영화를 보고 나면 동주의 시만큼 몽규의 작품도 좋고 궁금해져서 나눠본다.
< 술가락 >
- 송한범(송몽규 아명)
우리부부는 인제는 굶을 도리밖에 없엇다.
잡힐 것은 다 잡혀먹고 더잡힐 것조차 없엇다.
「아- 여보! 어디좀 나가 봐요!」 안해는 굶엇것마는 그래도 여자가 특유(特有)한 뾰루퉁한 소리로 고함을 지른다.
「………」 나는 다만 말없이 앉어 잇엇다. 안해는 말없이 앉아 눈만 껌벅이며 한숨만 쉬는 나를 이윽히 바라보더니 말할 나위도 없다는 듯이 얼골을 돌리고 또 눈물을 짜내기 시작한다. 나는 아닌게 아니라 가슴이 아펏다. 그러나 별 수 없었다.
둘 사이에는 다시 침묵이 흘럿다.
「아 여보 조흔수가 생겻소!」 얼마동안 말없이 앉아 잇다가 나는 문득 먼저 침묵을 때트렷다.
「뭐요? 조흔수? 무슨 조흔수란 말에 귀가 띠엿는지 나를 돌아보며 부드러운 목소리로 대답을 한다.
「아니 저 우리 결혼할 때… 그 은술가락말이유」
「아니 여보 그래 그것마저 잡혀먹자는 말이요!」 내말이 끝나기도 무섭게 안해는 다시 표독스운 소리로 말하며 또 다시 나를 흘겨본다.
사실 그 술가락을 잡히기도 어려웟다. 우리가 결혼할 때 저- 먼 외국 가잇는 내 안해의 아버지로부터 선물로 온 것이다. 그리고 그때 그 술가락과 함께 써보냇던 글을 나는 생각하여보앗다.
「너히들의 결혼을 축하한다. 머리가 히도록 잘 지나기를 바란다. 그리고 나는 이 술가락을 선물로 보낸다. 이것을 보내는 뜻은 너히가 가정을 이룬뒤에 이술로 쌀죽이라도 떠먹으며 굶지말라는 것이다. 만일 이술에 쌀죽도 띠우지 안흐면 내가 이것을 보내는 뜻은 어글어 지고 만다.」 대개 이러한 뜻이엇다.
그러나 지금 쌀죽도 먹지 못하고 이 술가락마저 잡혀야만할 나의 신세를 생각할 때 하염없는 눈물이 흐를 뿐이다마는 굶은 나는 그런 것을 생각할 여유없이 「여보 어찌 하겟소 할 수 잇소」 나는 다시 무거운 입을 열고 힘없는 말로 안해를 다시 달래보앗다. 안해의 빰으로 눈물이 굴러 떨어지고 잇다.
「굶으면 굶엇지 그것은 못해요.」 안해는 목메인 소리로 말한다.
「아니 그래 어찌겟소. 곧 찾아내오면 그만이 아니오!」 나는 다시 안해의 동정을 살피며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없이 풀이 죽어 앉어잇다. 이에 힘을 얻은 나는 다시 「여보 갖다 잡히기오 발리 찾어내오면 되지 안겟소」 라고 말하엿다.
「글세 맘대로 해요」 안해는 할 수 없다는 듯이 힘없이 말하나 뺨으로 눈물이 더욱더 흘러내려오고잇다.
사실 우리는 우리의 전재산인 술가락을 잡히기에는 뼈가 아팟다.
그것이 운수저라 해서보다도 우리의 결혼을 심축하면서 멀리 ××로 망명한 안해의 아버지가 남긴 오직 한 예물이엇기 때문이다.
「자 이건 자네 것 이건 자네 안해 것-세상없어도 이것을 없애서 안되네」 이러케 쓰엿던 그 편지의 말이 오히려 지금도 눈에 선하다.
그런 숟가락이건만 내것만은 잡힌지가 벌서 여러달이다. 술치 뒤에에는 축(祝)지를 좀 크게 쓰고 그 아래는 나와 안해의 이름과 결혼 이라고 해서(楷書)로 똑똑히 쓰여잇다.
나는 그것을 잡혀 쌀, 나무, 고기, 반찬거리를 사들고 집에 돌아왓다.
안해는 말없이 쌀음 받어 밥을 짓기 시작한다. 밥은 가마에서 소리를 내며 끓고잇다. 구수한 밥내음새가 코를 찌른다. 그럴때마다 나는 위가 꿈틀거림을 느끼며 춤을 삼켯다.
밥은 다되엇다. 김이 뭉게뭉게 떠오르는 밥을 가운데노코 우리 두 부부는 맞우 앉엇다.
밥을 막먹으려던 안해는 나를 똑바로 쏘아본다.
「자, 먹읍시다.」 미안해서 이러케 권해도 안해는 못들은체 하고는 나를 쏘아본다. 급기야 두 줄기 눈물이 천천이 안해의 볼을 흘러 나리엇다. 웨 저러고 잇을고? 생각하던 나는 「앗!」하고 외면하엿다. 밥 먹는데 무엇보다도 필요한 안해의 술가락이 없음을 그때서야 깨달앗던 까닭이다.
<밤 >
- 꿈별(송몽규 필명)
고요히 침전(沈澱)된 어둠
만지울듯 무거웁고
밤은 바다보다 깊구나
홀로 헤아리는 이 맘은
험한 산길을 걷고
나의 꿈은 밤보다 깊어
호수군한 물소리를 뒤로
멀-리 별을 쳐다 쉬파람 분다
< 하늘과 더불어>
- 꿈별
하늘-
얽히여 나와 함께 슬픈 쪼각하늘
그래도 네게서 온 하늘을
알 수 있어 알 수 있어..
푸름이 깃들고
태양(太陽)이 지나고
구름이 흐르고
달이 엿보고
너하고만은 너하고만은
아득히 사라진 얘기를 되풀고싶다
오오- 하늘아-
모-든것이
흘러 흘러 갔단다.
꿈보다도 허전히 흘러갔단다.
괴로운 사념(思念)들만 뿌려 주고
미련도 없이 고요히 고요히...
이 가슴엔 의욕(意欲)의 잔재(殘滓)만
쓰디쓴 추억(追憶)의 反(반)추만 남아
그 언덕을
나는 되씹으며 운단다.
그러나
연인(戀人)이 없어 고독(孤獨)스럽지 않아도
고향(故鄕)을 잃어 향수(鄕愁)스럽지 않아도
인제는 오직-
하늘속의 내맘을 잠그고 싶고
내맘속의 하늘을 간직하고 싶어
미풍(微風)이 웃는 아침을 기원(祈願)하련다.
그 아침에
너와 더불어 노래 부르기를
가만히 기원(祈願)하련다.
몽규는 연희전문학교에 들어가 2등으로 졸업했다. 그 때 그는 분노할 때 분노하는 사람이었다. 2등 상이 어이없게도 대동아공영, 일본의 군국주의를 정당화하는 책이었고 받자마자 이따위 것을 상으로 준다며 집어 던져버렸다. 그것이 세상을 바꾸게 하지는 못했더라도, 그 자리에 있던 불편한 사람들의 마음은 아마 세상 속 시원하게 바꿔주었을 것이다. 동주와 일본으로 유학길을 떠날 땐 다시 교토제대에 합격했던 코스를 보면 그는 자신이 원하는 것은 얻을 수 있었던 능력자였다. 다만 동주와 마찬가지로 시대가 관여하는 일, 독립군 활동, 일본 내 유학생을 규합하려던 사건 등은 일이 목적대로 이뤄지는 것이 쉽지 않았을 뿐이다. 몽규는 영화에서 동주에 비해 상대적으로 부딪히고, 싸우고, 도전하며 멋진 형이자 동반자로 등장했다. 끝까지 동주보다 먼저 태어나 조금 늦게 세상을 떠났으니 참 인연은 인연이다. 그의 좋은 결과는 간략하게 설명하려 한다.
이 쯤되면 영화의 제목이 왜 <동주>여야만 했는지는 의문이다. 영화의 포인트 상으론 몽규도 같이 담겼어야 할 텐데 말이다. 게다가 왜 영화는 흑백이었을까. 어느 한 순간도 빠짐없이. 하지만 알 것도 같다. 영화를 보고 나면 동주, 몽규, 이렇게 성을 떼고 부르게 된다. 멀리 있는 분들이 가깝게 느껴진다. 동주는 윤동주만 말하는 것이 아니다. 동주야, 하고 부르던 몽규의 목소리가 담겨있다. 영화에 잘 드러나지 않았지만 살아남아 동주의 시를 같이 고민하고, 동주의 시를 출간해준 사람들의 목소리가 담겨있다. 동주는 대명사인 것이다. 마음의 색이 흑백으로 강제로 물들고, 모든 선택이 흑백같이 이분법으로 재단되던 시대에 좋은 과정을 보여주려 끊임없이 노력하고도 자신을 부끄러워했던 이들, 우리는 설사 모른다 하더라도 이토록 좋은 결과를 우리에게 이렇듯 감사하게 건네준 수많은 이들의 숨, 눈빛, 목소리, 마음이 담겨 있는 대명사. 들으면, 부르면 마음 한 켠이 욱신욱신해지는 그 모든 이의 이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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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뚝심의 그라운드 룰
요즘 복싱의 길을 걷고 있다. 엉겁결에 시작했는데, 몸도 마음도 단단해지는 걸 느끼며 신나게 하는 중이다. 그런데 이 즐거움은 아주 뜻밖의 어려움에 맞닥뜨렸다. 사람 얼굴을 때릴 수가 없는 거다.
처음엔 링에 올라가서 “사람을 어떻게 때려요…” 하다가 “사람 얼굴을 어떻게 때려요…”로 바뀌었으니 나름대로 성장했다 할 수 있지만, 신나게 날리던 주먹이 사람 얼굴 근처에 가면 나도 모르게 저절로 멈추곤 했다. 복싱은 격투에 속한다는, 근본적인 지점에 걸려버린 내가 복싱을 계속할 수 있을까? 관장님께 “사람 얼굴을 못 때리는데 어떡하죠?” 여쭤보았다. 그럴 수 있다는, 하다 보면 나아진다는 원론적인 대답을 듣고 고개를 끄덕이고 있는데, 문득 한 마디가 따라붙었다.
“그런데 복싱은 스포츠니까요. 정한 룰 안에서 하는 거고… 기권이라든지, 사람을 보호하기 위한 장치는 얼마든지 있으니까, 룰 안에서는 그냥 최선을 다하면 돼요. 그게 상대에 대한 예의이기도 해요.”
세상에. 나는 복싱이 격투인 것만 모르는 게 아니라 복싱이 스포츠인 것도 모르고 있었던 거다. 길 가다 괴한을 만나면 뚝배기를 깨서라도 이기고 돌아와야 한다는 생각이 앞서, 정정당당한 룰이 있는 스포츠임을 잊고 있었던 거다. 거한 깨달음으로 그 날 운동을 마치고 돌아오며, ‘그라운드 룰’이라는 것에 대해 곰곰 생각했다. 룰 안에서는 그냥 최선을 다한다는 거, 그건 뭘까.
영화 <킹메이커>를 보고 돌아오면서도 비슷한 생각을 한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그라운드 룰’은 무엇일까. 현대사의 실존 인물들을 모티프로 한 영화이고 정치인과 선거를 소재로 한 영화다 보니, 아무리 상상력을 얹은 픽션이라 한들 현실 재현에 그치지 않을까 하는 우려가 있었는데, <킹메이커>는 실화를 모티프로 활용하면서도 실화에 갇히지 않는 영리한 길을 갔다. 동시에 이는 ‘정치’ 영화 이전에 사람에 대한 영화다. 사람의 뚝심과 방향에 대한 이야기.
* * *
정치 활동의 시작점부터 궁극적 지향점까지를 한 수직선 상에 놓는다면, ‘선거의 승리’는 그 어디 쯤에 도시할 수 있을까? 사람마다 제각각 답은 다르겠지만, 그 답을 어디쯤 내려놓는 지가 정치인 인생의 방향성에도 영향을 분명 끼칠 것이다. 영화 <킹메이커>는 바로 그 지점에서 시작한다.
영화는 ‘빛과 그림자’ 같은 두 인물을 내세운다. 이상을 품고 험난한 길도 우직하게 나아가는 정치인 ‘김운범’과, 정치판에 발을 들일 때에는 발을 진흙탕에 담글 수밖에 없다는 현실의 꾀를 가진 선거 전략가 ‘서창대’의 이야기다. 여당의 눈엣가시였던 야당 국회의원 김운범은 때로는 서릿발 같이, 때로는 인간미 있게 연설을 하며 자신의 이상을 그려 나가고, 서창대는 상식을 비집고 허를 찌르는 전략을 세워 그 뒤를 보좌한다. 내 편일 때는 든든하지만 남의 편이라고 생각하면 무서울 만큼, 정도(正道)가 아닌 길이라도 가리지 않겠다는 서창대의 전략은 자극적인 만큼 잘 먹혀 들었다.
그러나 정도를 우직하게 걷는 사람과 길을 가리지 않는 사람이 나란히 꽃길을 걸을 수 있을까. 동경하는 지점이 같기에 어딘가에서 만날 수밖에 없던 두 사람은, 동경하는 지점까지 가는 다른 길을 생각하기에 다른 어딘가에서는 부딪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서로에게 다 동의할 수 없지만 서로를 영 저버릴 수도 없는 이들은 어떤 길을 갈 것인가.
철저한 이상주의자와 철저한 현실주의자가 정 반대의 길을 갈 것 같지만, 현실주의자는 이상을 동경하고, 이상주의자는 현실 감각을 필요로 한다. 거기서 내리는 이들의 선택이 다소 드라이하게 그려졌다면, 각자의 목표를 이루기 위한 수단으로만 서로를 바라보았다면 이 영화도 그저 그런 정치 영화 대열에 합류했을 것이다. 그러나 인간과 인간이 얽히는데 어떻게 아무 감정이 엮이지 않을 수 있을까. 서로에 대한 복잡한 마음, 자기 자신의 선 자리와 지나온 길을 바라보는 마음들은, 관객이 영화로 들어가게 문을 열어준다.
일단 이 영화는 재미있다. 정치와 선거라는 소재, 짧지 않은 러닝타임… 얼핏 보면 쉽지 않을 것 같지만, 정작 들어가 보면 영화는 흥미진진하게 관객을 끌고 가면서도 딱 알맞은 정도로 친절하다. 정치를 소재로 쓴다고 해서 복잡한 대사로 사람 마음 어지럽게 하지 않고, 긴 러닝타임에도 불구하고 영화는 속도감 있게 전개된다. 화면이 전환되는 잠깐조차 다채롭게 눈길을 끈다. 전작 <불한당>처럼 <킹메이커> 또한 사람을 홀리는 미장센의 힘을 한껏 발휘했다. 보는 재미가 없을 수가 없다. 김운범과 서창대를 상징하는, (그리고 해석하기에 따라서는 더 많은 것도 상징할 수 있는) ‘빛과 그림자’를 활용한 연출도 친절하고 흥미롭다.
오래 지나지 않은 현대사와 실존 인물을 모티프로 하고 있음에도, 그 실존 인물의 무게에 눌리지 않았다는 점 또한 놀랍다. <불한당>의 감옥은 실사 고증과 무관한 판타지의 공간이었는데, (한국 영화보다는 아이돌 뮤직비디오에 나올 것 같은 감옥이었는데 그 점이 좋았다.) <킹메이커>는 그보다는 현실에 가까우면서도 현실과 적당한 거리 두기를 하는 데 성공한 듯싶다.
실화를 모티프로 가지고 왔고, 소품 하나까지 얼마나 치밀하게 시대를 고증하고자 했는지 눈에 보임에도, 정작 실존 인물들의 존재감은 덜어낸 점이 좋았다. 70년대 정치사에서 아는 이름이 단 하나도 없는 관객이라 해도 영화를 따라가는 데 무리가 없을 정도다. (물론 알고 보면 더 재미있긴 하다.)
여기에는 배우들의 형형한 존재감이 한 몫 했다. 모든 배우들이 동일한 무게감을 유지하고 있다. 모티프가 된 인물과 너무 가깝지도 너무 멀지도 않은 자리에 서 있고, 캐릭터가 취하는 스탠스는 대사로도 드러나지만 많은 순간 눈빛에서 발산된다.
* * *
다시 복싱 얘기를 좀 얹어 보자면, 나는 아직도 사람 얼굴을 못 때리고 있다. “최선을 다하면 된다”는 말은 마음으로 받아들였지만 몸으로 끌어내지 못했다. 언젠가는 되겠지 하면서 하고 있는데, 사실 생각해 보면 “최선”이라는 말만큼 어려운 것도 없다. 각자의 최선은 다른 거니까. 그럴 때는 그라운드 룰을 보아야 한다. 폭력은 나쁜 거지만, 복싱이라는 스포츠에서는 타격이 필요하므로 사람 얼굴을 때리는 일도 필요하다.
<킹메이커> 속 인물들도 저마다의 최선을 향해 달린다. 그들이 사는 정치 판은, 그라운드 룰조차 각기 다르게 정의되는 곳이니까. 다만 거기서 명확한 건 하나다. 뚝심. 명암이 존재할 수밖에 없는 곳에서, 어지러운 명암의 경계에서, 결국 피어오르는 건 각자의 뚝심이다. <킹메이커>는 그 뚝심 끝에서 만들어진 것들을, 만들어지는 과정을 생각하게 만든다. 말을 약탈하지 않고 정치는 가능한가? 목적이 정당하다면 수단은 그 어떤 것이어도 정당화될 수 있는가? 목적을 공유하지만 수단을 공유하지 못하는 두 인간은 어떻게 손을 맞잡을 수 있는가? 그렇게 손잡고 걸은 길 끝에는 무엇이 있는가? 영화 <킹메이커>는 사람의 마음에 이런 질문들을 풀어놓는, 가장 스타일리시하게 생긴 물음표였다.
? 영화 킹메이커 메인 예고편 보러 가기
https://www.youtube.com/watch?v=LWMUUYk5MfE&feature=youtu.be*온라인 무비 매거진 씨네랩을 통해 시사회에 초대받아 감상하고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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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성이라는 소름끼치는 무게
<로스트 도터>는 헐리웃에서는 작년 공개되어 아카데미 시상식 3개부문 후보에 올랐던 작품이지만 국내에서는 이제야 개봉하면서 모성을 다룬 <브로커>와 비슷한 시기에 공개된다. 칸 영화제에서 남우주연상을 수상하며 스포트라이트를 받기는 했지만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최고작은 아니라거나 소재에 대한 논쟁이 벌어지고, 호불호가 갈리는 악재마저 겹친 <브로커>는 모성에 대해 전통적인 시각을 제시하는 것처럼 보인다. 고레에다 감독은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를 제작한 이후 '여성도 아이가 태어나자마자 어머니가 되는 것은 아니다'라는 피드백을 받고 고심했고 그 결과 탄생한 이야기가 <브로커>라고 밝힌 바 있다. 소영(이지은 분)이 어머니가 되어가는 여정을 그렸다고는 하나 결과적으로 소영은 아이에 대한 애정으로 무엇이든 할 수 있는 전형적인 어머니로 자리매김한다. 반면 신인 여성감독 매기 질렌할의 <로스트 도터> 속 모성은 전혀 다른 양상을 띤다. 영화의 시작부터 끝까지 레다(올리비아 콜먼 분)는 성인이 된 딸들을 언급하기만 할 뿐 스크린으로 소환하지는 않는다. 레다의 딸들은 스크린 상에서 어린 아이들로서만 존재하며 이들은 사랑스러운 존재가 아닌 레다의 커리어를 방해하고 레다를 괴롭히는 장애물로 기능한다.
고레에다 감독이 천착해온 주제인 가족은 다양한 양상으로 나타나긴 했지만 가부장제 사회에서 전통적으로 드러나는 가족의 형태를 벗어나지 못한다. 특히 고레에다 감독의 최고작으로 일컬어지는 <어느 가족> 속 가족은 현대화된 핵가족의 틀조차 거부하고 시간을 거슬러 대가족의 형태를 두팔벌려 환영한다. 이들은 혈연이 아닐 뿐 전형적인 엄마와 아빠, 할머니, 형제자매로 이루어진 가족이다. <브로커> 속 가족 또한 배경을 부산으로 옮겨왔을 뿐 친모이자 엄마 역할을 수행하는 소영, 엄마와 아빠의 역할을 나눠맡는 동수(강동원 분), 아빠이자 가장 혹은 할아버지의 역할을 부분적으로 맡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상현(송강호 분) 그리고 아기 우성의 형으로 기능하는 해진으로 구성된다. 고레에다 감독은 전통적인 가족의 형태에 지나치게 집착한 나머지 그 가족 내에서 희생해야 하는 여성이나 가장의 무게 등에는 관심을 기울이지 못하는 실수를 범한다. <브로커> 속 가족은 아기 우성을 중심으로 구성원이 역할을 구성하지만 각자의 삶에 대해서는 그 누구도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다. 상현의 세탁소는 문 닫은 채 남겨져도 괜찮은 것인지, 동수가 찾지 못하는 어머니에 대한 집착을 버리고 독립적인 삶을 살 수는 없는 것인지, 해진 또한 새로운 가족을 찾을 수는 없는지, 소영은 우성을 되찾거나 놓아준 후 자신만의 삶을 구축할 수는 없는 것인지 영화는 답해주지 않는다. 영화 말미에 드러나는 각 캐릭터의 모습은 이들을 뒤쫓던 형사 수진(배두나 분)마저 우성을 중심으로 삶을 꾸려가게 만든다.
반면 <로스트 도터>는 가족이라는 틀을 벗어나 어머니에 집중한다. 레다는 가족여행 대신 홀로 휴가를 온 교수이고 명확히 드러나지는 않지만 삶에서 남편을 지운 것처럼 보인다. 레다가 마주치는 어머니들에게 레다는 인사치레로라도 긍정적인 말을 거의 해주지 못한다. 육아의 기쁨에 대해 설파하는 대신 임산부에게 '자식은 끔찍한 부담이에요'라고 경고하고 가족 파티를 하겠다는 가족에게 자리조차 비켜주지 않는다. 자식이 태어난 후 떠나버린(아마도 컬럼비아 대학으로 교수 발령이 난 것처럼 보인다) 남편의 빈 자리를 힘겹게 메꾸며 홀로 가정을 받쳐온 레다에게 가족 파티란 어머니의 희생을 가리기 위한 포장에 불과하다. 자리를 비켜달라는 부탁조차 남성들이 아닌 임신한 여성에게 전가되고 거절하는 레다 옆에서 남자들은 무례하게 욕이나 내뱉을 뿐이다. 가정의 허상을 깨달은 지 오래인 레다는 자신의 자리를 지키며 혼자만의 시간을 방해받으려 하지 않는다. 결국 상황에 대한 사과도 여성에게 미뤄지고 레다는 모든 상황을 이해한듯 사과를 받아들이고 자리를 피한다. 숙소로 돌아오는 길에 레다의 등에 떨어진 솔방울은 가족 혹은 자식의 무게를 대변한다. 어느날 갑자기 레다에게 주어져 상흔으로 남지만 깨끗이 사라지지는 않는 솔방울 흔적은 두번 떨어지면서 레다의 두 딸을 비유한다.
아이에 대한 무한한 애정과 아이라는 무게라는, 같은 소재를 가지고 전혀 다른 두 시각을 드러내는 두 영화의 가장 큰 차이점은 단연 감독의 성별이다. 상대적으로 육아 참여도가 낮은 동아시아의 남성인 고레에다 감독의 영화에는 주로 어린 아이들의 사랑스러운 모습이 담긴다. 고레에다 감독의 영화 속 아이들은 천진난만하고 세상물정을 모르며 사람들에게 한없이 친절한 동시에 어른에게서 끊임없이 애정을 갈구한다. 반면 <로스트 도터> 속 아이들은 때로는 무심하고 때로는 잔인하며 애정으로 오인되는 관심을 갈구한다. 그리하여 <로스트 도터> 속 엄마들은 아이에게 화를 내고 자신에게서 떨어뜨려 놓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 육아에 지친 니나(다코타 존슨 분)와 젊은 레다(제시 버클리 분)의 표정은 엄마이길 포기하고 싶어하는 것처럼 보인다. 우성에게 더 좋은 환경을 주기 위해, 혹은 스스로 우성을 키우기 위해 분투하는 소영과는 달리 니나와 레다는 아이를 자신에게서 분리하고 자신만의 시간을 얻길 원한다. 감독의 반성 이후에 만들어졌다는 <브로커>조차 단독 육아를 경험해본 적이 없는 이들의 눈으로 본 이상적인 모성이 반영된 반면 <로스트 도터>는 현실적인 모성에 기반한 이야기에 가깝다. <브로커>와 <로스트 도터>는 각각 모성에 대한 환상과 현실을 반영하며, 어느 쪽에 이입할 것인가는 관객의 몫이지만 <브로커>의 흥행 스코어와 평을 볼 때 모성의 환상에는 관객이 크게 공감하지 못한 듯하다.
레다가 아이에게서 훔친 인형은 제목과 맞물려 레다의 딸들인 비앙카와 마사를 반영한 것처럼 보이다가 망가진 레다의 인형에 대한 대체품으로 그 이미지를 옮겨간다. 비앙카가 망가뜨리고 자신이 창 밖으로 내던져 산산조각난 인형은 출산과 육아로 한계에 다다른 레다 그 자신을 반영한다. 결국 레다가 훔친 인형은 레다 그 자신이며, 가족이라는 굴레에서 도망가 자기 자신을 추스른 레다의 서사를 보여주는 것이다. 깨끗이 씻기고, 새 옷과 신을 사서 신긴 인형은 서사 내내 레다의 곁을 떠나지 못하다가 어느 순간 입에서 벌레를 뱉어낸다. 엄마임에도 불구하고 딸들을 떠나버린 자기 자신에 대한 혐오감이 형상화된 벌레는 인형의 입에서 기어나오며 내면의 오물을 모두 걷어낸다. 레다는 니나에게 끊임없이 인형을 되찾을 것이라고 말해 주는데 이는 결국 끝나지 않을 것만 같던 육아는 언젠가 끝나고 자기 자신을 되찾을 수 있을 것이라고 알려주는 엄마 선배로서의 조언이다. 하지만 인형을 돌려받는 니나는 아직 육아의 도중이기에 레다의 조언을 온전히 받아들이지 못하고 레다를 공격한다. 같은 위치에 놓인 여성, 엄마 동지조차도 그 과정을 온전히 겪어내기 전에는 모성의 굴레와 그 끔찍함에 대해 공감할 수 없음을 영화는 잔인하게 설명한다.
동시기 개봉한 모성에 관한 두 영화는 엄마라는 존재에 대한 허상과 실재를 보여준다. 어떻게 받아들일지는 관객 각자의 몫이지만, 확실한 것은 모성이라는 단어가 주는 무게는 부성의 무게와는 전혀 다르며 겪어내기 전에는 알 수 없는 것들로 가득하다는 것이다. 피로와 상처로 해안가에 쓰러진 레다가 다시 벗겨내는 오렌지 껍질이 끊어지지 않는다는 것은 죽을 때까지 끊어지지 않는 부모와 자식간의 관계를 보여주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리고 피로와 상처에 대해서는 내색하지 않고 딸들과 통화하는 레다의 모습은 자식 앞에서 삶의 무게를 내색할 수 없는 부모의 무게를 보여준다. 마지막까지 성인이 된 딸들과 물리적인 공간을 공유하지 않는 레다는 마음 한 켠으로는 내려놓고 싶은 모성의 소름끼치는 무게를 드러내는 것은 아닐까.
*<브로커> 이미지는 네이버영화 출처입니다.
*본 리뷰는 씨네랩의 시사회 초청을 받아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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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년 여성 커플의 제자리 찾기
씨네랩의 초정 시사로 개봉 전 관람 후 작성된 리뷰입니다.
나무들이 나란히 길게 배열되어 있는 어떤 강가의 공원에 두 아이가 있다. 까마귀들이 연신 울어대는 한적한 그 공원에서 두 아이는 숨바꼭질을 하고 있다. 한 아이가 어떤 나무 뒤에 숨고, 다른 아이는 그것을 찾기 시작한다. 한 아이가 숨은 아이 근처로 가면 숨은 아이는 그를 피해 조금씩 자리를 옮긴다. 그렇게 한참 두 아이가 숨바꼭질을 하다가 숨은 아이가 갑자기 사라져 버린다. 찾던 아이는 숨은 아이가 보이지 않자 큰 소리로 외친다. 그런데 그 목소리는 까마귀 소리다. 영화 <우리, 둘>의 오프닝 장면이다. 이 오프닝은 향후에 등장하는 두 여성의 이야기와 그 관계에 대한 은유가 담겨있어 궁금증을 유발한다.
영화 <우리, 둘>은 여성 커플인 마도(마틴 슈발리에)와 니나(바바라 수코바)의 이야기다. 이들은 20여 년 전 로마에서 처음 만나 사랑하는 관계로 발전했지만 주변 가족이나 친구에게는 그 관계를 알리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마도는 어떤 남자와 결혼을 했고 아이도 낳아 길러냈다. 남편과는 사별했지만 아이들과는 여전히 교류 중이다. 현재의 시점에서 마도와 니나는 바로 앞 집에 살고 있어 매일 만나고 사랑을 나누지만, 마도의 가족들에게는 여전히 알리지 못하고 있다. 니나는 마도에게 가족에게 비밀을 알리고 로마로 가서 남은 생을 보내자는 제안을 한다. 결과적으로 니나의 이 바램과 제안은 영화 내내 긴장을 만들어내는 일이 되어 버린다.
할머니가 된 20년 차 커플, 마도와 니나의 이야기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것은 조금은 불편하고 어려운 것을 극복하게 하기도 한다. 가족의 반대를 극복하고 서로의 관계에서 서로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 때문에 발생하는 갈등들도 사랑에 빠진 두 사람이 극복해야 하는 부분이다. 이런 어려움을 극복하는 과정은 꽤 많은 긴장과 스트레스를 동반한다. 그래서 어떤 경우에 두 사람의 관계가 깨지게 되는 경우도 생긴다. 이에 더해서 그 관계가 동일한 성이라고 했을 때 마음속의 장벽은 외부의 시선으로 인해 더욱 크게 다가올 것이다. 영화 <우리, 둘>의 주인공, 마도와 니나는 두 사람의 관계를 외부에 공개를 하려고 했다가 그 과정에서 그들이 겪는 어려움이 담겨 있다.
영화 속 두 사람이 20년이라는 오랜 기간 동안 계속 비밀관계를 유지했는지, 아니면 마도가 결혼하고 남편과 사별한 이후 이 둘이 다시 본격적으로 만나게 되었는지 영화는 명확히 설명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그 20년이라는 긴 기간 동안 이 둘이 마음 깊숙이 서로를 사랑하고 원했다는 것은 알 수 있다. 영화 초반에 마도와 니나가 마도의 집에서 같이 생활하는 모습이 나온다. 여느 연인처럼 그들은 스킨십을 하고 밥을 먹고 대화를 한다. 이제 할머니 나이가 된 그들의 외모지만 두 사람의 행동은 어떤 편견도 없이 사랑하는 일반적인 부부나 연인의 모습과 다르지 않다.
영화에서 가장 큰 사건은 마도가 뇌졸중으로 쓰러지는 것이다. 자신의 가족에게 커밍아웃을 해야 하는 상황에서 가족들의 눈치를 보다 말을 하지 못한 마도는 그것을 알게 된 연인 니나의 짜증도 받아내야 했는데, 그 과정에서 받은 스트레스로 그만 쓰러지게 된 것이다. 이 사건이 니나에게 주는 영향은 크다. 공개되지 않은 관계인 탓에 공식적인 보호자가 될 수 없고, 니나가 마도에게 다가가려 할수록 주변의 시선은 따갑다. 이상한 사람이라는 의심을 받게 된 니나지만 그는 자신의 연인에게 다가가서 품어주려는 시도를 포기하지 않는다. 니나는 마도에게 다가가는 것이 점점 어려워질 때마다 좀 더 과격한 선택을 하게 된다. 그가 조금씩 과격해질 때마다 모든 것이 깨질 것 같은 분위기가 고조되면서 영화의 템포를 빠르게 만든다.
마도의 뇌졸중 증상 이후 서서히 공개되는 그들의 관계
꽤 오랜 기간 동안 주변에 자신의 정체성과 관계를 알리지 못한 두 사람의 이야기가 중심이 되는데, 그들의 달콤한 사랑의 모습은 이 영화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지 않는다. 그래서 여느 로맨스 퀴어 영화들과는 다르게 그들이 사랑에 빠지는 모습이나 사랑을 나누는 모습에서 그들이 느끼는 감정을 보여주기보다는 그들의 관계를 공개하는 과정에서 주변의 반응과 두 사람의 감정 변화를 영화에 중점적으로 담는다. 영화의 제목이 <우리, 둘> 인 것에서 알 수 있듯이 주변의 반응과 갑작스러운 질병 등 최악의 상황에서도 마도와 니나가 서로를 찾아가는 과정을 이끌어가는 건 그들 두 사람의 힘이다.
영화 맨 처음에 나왔던 두 아이는 마도와 니나라고 할 수 있다. 숨바꼭질을 하다 갑자기 사라진 아이는 뇌졸중으로 쓰러진 마도라고 할 수 있다. 그를 다시 찾기 위해 노력하는 아이는 니나로 보인다. 그 아이가 까마귀 목소리를 내면서까지 다른 아이를 부르는데 여전히 친구를 찾지 못한다. 실제로 니나는 마도를 다시 보기 위해 간병인을 이용하거나, 한밤중에 마도의 집에 몰래 문을 열고 들어가 마도를 보고 나온다. 그리고 어느 날은 마도의 딸 집에 찾아가 행패를 부리기도 한다. 마치 영화의 첫 장면에서 아이가 기이한 까마귀 소리를 내는 것처럼 니나는 상대방을 찾기 위해 자신이 평소에 가지고 있지 않은 기이한 행동을 하면서까지 자신의 사랑을 찾기 위해 노력한다. 영화 중반 마도의 상상이지만, 마도가 물속에 빠진 아이를 보는 것은 자기 자신을 보는 것이고, 물속에 빠진 아이를 니나가 건져내는 장면은 서로의 관계를 복원한다는 일종의 영화적 암시다. 이런 은유적인 장면들은 영화를 다 보고 난 후 여러 가지 시각으로 재해석될 수 있을 것 같다.
니나가 마도를 찾기 위해 점점 과격해지는 모습은 보는 입장에서 조금은 불편하게 느껴질 수 있다. 자신이 마도를 찾는 과정에서 누군가에게 계속 거짓말을 하고 이용하거나, 다소 폭력적인 방식으로 마도의 가족을 대하는 모습은 니나의 상실감을 이해함에도 불구하고 너무 과도하게 표현되고 있다는 생각도 든다. 그래서 그의 행동을 따라가다 보면 그의 사랑이 집착이 되어버린 것이 아닌지 걱정스럽게 느껴지기도 한다.
영화가 담고 있는 마도와 니나의 노력
영화는 니나의 뒤를 따라가지만 마도의 반응도 놓치지 않는다. 뇌졸중 증상 이후 멍하니 허공을 바라보는 모습을 보여주던 화면은 니나의 노력이 계속되면서 변하게 된다. 특히 마도의 몸 전체를 화면에 잡기보다는 마도의 얼굴 중 두 눈을 클로즈업으로 잡고 니나의 행동에 따라 나오게 되는 반응을 눈의 초점이나 눈이 여기저기를 바꿔가며 보려 하는 모습을 통해 보여주고 있다. 그래서 니나의 노력에 마도가 반응하려고 노력하는 것을 알 수 있는데 그 노력은 신체적인 한계를 극복한다는 점에서 니나의 노력과 차이가 있다. 그러니까 니나가 싸우는 것은 외부의 관계가 대부분이지만 마도는 자기 자신의 신체가 가진 한계를 극복하려 하는 것이다. 니나는 밖에서 안으로 들어오는 노력이고, 마도는 안에서 밖으로 나가려는 노력이다.
영화 속 마도의 딸 앤(레아 드루케)과 아들 프레드릭(제롬 바랑프랭)의 반응도 인상적이다. 이 둘은 본의 아니게 커밍아웃된 자신의 엄마와 이웃 여성의 관계를 인정하지 못하고 차단하려고 노력한다. 사실 어떤 가족에게 이 일이 벌어졌어도 반응은 모두 비슷할 것이다. 자신의 가족이 가지고 있는 성 정체성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그 관계를 부정한다. 그리고는 그것이 분노로 표출된다. 영화에선 그들의 반응을 단편적으로 보여주지만 그들이 마도와 니나의 관계를 인정했는지는 보여주지 않는다. 자녀와 가족들의 반응이 중요하겠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그 모든 어려운 상황에서도 관계를 이어가려는 의지가, 마도와 니나에게 있는지가 더 중요하기 때문이다.
이 영화를 연출한 필리포 메네게티 감독은 이 영화가 첫 연출작이다. 2020년 제10회 서울 국제 프라이드 영화제에서 퀴어영화 평론가상을 수상했고, 2021년 46회 세자르 영화제에서 데뷔 작품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두 여성이 겪는 답답함과 서로에 대한 사랑의 감정을 섬세하고 긴박한 시선으로 담은 영화 <우리, 둘>은 기존의 퀴어 영화들과 조금은 다른 영화다.
*영화의 스틸컷은 [다음 영화]에서 가져왔으며, 저작권은 영화사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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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로 말 위주로 전달되기 때문에 라디오처럼 들어주셔도 좋을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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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둘 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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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키영상은 없네요.
*아이맥스관에서 3D로 보실 분들은 3D 안경(재사용)이 깨끗이 안닦여 있는 경우가 있으니
안경을 닦을 수 있는 휴지 등을 준비해 가시면 좋을 듯합니다. 즐영하시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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