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이정2023-10-08 18:42:09
[BIFF 데일리] 각자의 누에고치 안에서
영화 <노란 누에고치 껍데기 속> 리뷰
Director] 팜 티엔 안 PHAM THIEN An
Program note]
호치민시의 시끌벅적한 야외 식당. 세 남성이 대화를 나누던 중 바로 옆 도로에서 오토바이 사고가 난다. 늘 있는 일이라 별 관심이 없는 티엔. 하지만 알고 보니 사고 피해자가 다름 아닌 티엔의 형수이다. 티엔은 졸지에 사망한 형수의 시신과 홀로 남겨진 다섯 살배기 조카를 시골 고향으로 데려가야 하는 상황에 놓인다. 그리고 이들을 남겨놓고 떠난 형을 찾는 것도 티엔의 몫이다. 베트남의 신예 감독 팜 티엔 안의 장편 데뷔작. ‘신예’라는 표현이 무색할 만큼 놀랍도록 아름다운 영상과 흡입력 있는 연출로 삶과 믿음에 대한 깊은 통찰을 제시한다. 올해 칸영화제에 출품되어, 1993년 트란 안 홍 감독의 <그린 파파야 향기> (1993) 이후 30년 만에 황금카메라상을 받은 베트남어 영화로서 평단의 극찬과 함께 새로운 작가의 탄생을 알렸다. (부경환)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좋아하는 순간이 참 많지만, 영화가 상영되기 전 감독의 짤막한 인사 영상을 보는 순간도 내게는 큰 즐거움이다. 팜 티엔 안 감독은 영화의 호흡이 아주 느리다면서, 1/3만 참고 보면 그 이후로는 주인공의 여정을 따라가기 어렵지 않을 거라고 했다. 그러나 영화가 시작되고 얼마되지 않아 나는 이 영화에 매료되고 만다. 영화에 대해 잘 모르는 내 눈에도, 미장센이나 사운드가 너무 훌륭해서 모든 장면이 흥미로웠기 때문이다. 장면에서 장면으로 연결되는 방식 하나하나 눈을 뗄 수가 없었다.
껌 파는 인형 탈과 스포츠 경기를 보며 왁자지껄한 사람들, 맥주를 홍보하는 여성 아르바이트생과 맥주를 마시는 사람들 사이에서, 고고한 표정으로 영생을 말하는 친구. 그 대비 안에서 하나의 생이 거두어지는 사고가 일어나는 또 하나의 대비. 기차처럼 흘러가는 병실의 풍경을 지나고 지나, 고인의 유류품을 전달받는 병원 사무실은 공간을 뚫듯이 보여준다. 저녁거리를 사러 나왔다가 작은 새를 줍는 장면, 이어지는 결혼식 촬영 장면 또한 대비와 대비를 계속 이어가며 생(生)을 생각하게 한다. 분명 감독의 말대로 호흡이 느리지만, 미장센과 사운드가 들려주는 말이 워낙 많아서 느려도 느리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영화를 잘 모르는 스스로가 아쉬울 만큼, 카메라의 시점이 흥미로웠다. 고향으로 돌아와 거행되는 장례 행렬은 마치 묘지에서 바라보는 듯한 시점으로 찍혀 있고, 이어 땅을 파는 장면은 관이 아닌 새를 묻는 장면이었다.
시신 염습을 도와준 이웃 노인과의 대화는 어둑한 집안이 보이지 않는 창문을 배경으로 목소리만 들려오다가 대화가 한참 진행된 후에야 노인의 집안 벽을 훑어 준다. 한 사람의 인생에 대한 이야기는 누구에게나 그렇게 전달되는 것임을 암시하기라도 하듯이. 인생의 전리품을 하나하나 이야기하던 노인은 전쟁 당시 자신의 갈비뼈를 관통했던 총알을 보여주는데, 그 직후 갈비뼈 자리를 만져보는 티엔의 모습은 예수의 부활을 의심하며 옆구리를 만져 보았던 제자 도마를 떠올리게 한다.

죽음은 영원한 기쁨이라는 말을 써 붙여 놓은 가톨릭 장례식 이후, 식구들은 장례 단 앞에 모여서 기도를 하고, 우중에 전깃불은 들어왔다 나갔다 하는데 황금빛 나비가 날아간다. 죽은 자의 영혼이 나비라면, 죽음이 나비가 되는 거라면, “노란 누에고치 껍데기 속”은 삶이 아닐까.
티엔은 “노란 누에고치 껍데기 속” 같은 삶에서 번민한다. 형수의 유류품에 있던 한 장의 결혼 사진, 사랑이 영원하길 비는 문구가 담겨 세월 따라 낡아 버린 사진 속 형과 형수를 가만 바라보면서. 신의 계획이란 과연 무엇인지. 왜 형은 떠난 것이며, 형수의 목숨은 거두어졌는지. 그러나 우리는 삶을 조망하면서 무엇을 알 수 있을까. 고치 안 번데기는 차곡차곡 변신로봇처럼 모양을 바꾸는 게 아니라, 애벌레였던 몸을 완전히 녹였다가 새로이 만들어진다. 고요해 보이는 누에고치 껍데기 속에서는 격렬한 변화의 과정이 있는 것이다. 삶도 어쩌면 그렇지 않을까. 티엔이 사랑한 사람들이 자꾸 티엔의 삶을 떠나갈 때, 이해할 수 없는 삶을 티엔으로서는 결결이 살아낼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별도 사랑도 모두 녹여내어 변태하는, 누에고치 안의 시간을 티엔도 겪어낸다.

후반부에 만난 마을의 할머니는 “사람이 온 천하를 얻어도 자기 영혼을 잃으면 무슨 소용”이겠냐는 성경의 말을 인용한다. 이를 달리 말하면, 자기 영혼을 얻는다면 온 천하를 잃어도 괜찮다는 대우 명제가 될 것이다. 티엔은 어두운 세상을 계속해서 걷는다. 꿈과 현실의 경계가 흐릿해지는 순간도 있고, 궂은 비를 맞으며 지치는 시간도 있지만, 그래도 계속해서 걸어가고 흘러간다. 각자의 누에고치 안에서 각자의 방식대로 견고해질 삶을, 알 수 없어도 우리는 계속 그렇게.
[제28회 부산국제영화제(2023. 10. 04-13) 상영시간표]
10월 06일 11:30 롯데시네마 센텀시티 9관 (106)
10월 10일 16:00 롯데시네마 센텀시티 9관 (415)
10월 11일 16:00 롯데시네마 센텀시티 8관 (472)
Relative cont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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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베놈: 라스트 댄스 | SSU에 '로건' 향을 첨가한 라스트 댄스
*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환상의 짝꿍이자 안티히어로인 '에디 브록'(톰 하디)과 그의 심비오트 '베놈'. 카니지와 맞서 싸우며 샌프란시스코를 엉망으로 만든 뒤 멕시코로 도주한 두 친구는 멀티버스에 갔다 온 후 놀라운 사실을 알게 된다. '스트릭랜드'(치웨텔 에지오프) 준장이 이끄는 미군 특수부대가 '페인'(주노 템플) 박사의 연구에 필요한 심비오트를 확보하기 위해 그들을 쫓기 시작한 것.
그들의 추적을 힘겹게 따돌리며 뉴욕으로 향하던 에디와 베놈. 하지만 그들은 또 다른 추적자를 마주한다. 과거 심비오트에 의해 감옥에 갇힌 심비오트의 창조자 '널'(앤디 서키스)이 외계 괴물 '제노페이지'를 지구에 보내 그들을 추격하기 시작한 것. 에디와 베놈에게만 있는 감옥의 열쇠, 코덱스를 갖기 위해서. 이에 에디와 브룩은 그들의 마지막 동행이 될지도 모르는 전투에 돌입한다.
SSU에 <로건> 한 숟갈
슈퍼 히어로 영화에게 마지막 편이 있는 것은 훈장일지도 모른다. 마지막 편이 나올 정도로 시리즈가 이어졌다는 방증이고, 이는 매번 조금씩은 다른 모습으로 팬들을 만족시켰다는 의미니까. 실제로 10년 전만 하더라도 <다크나이트 라이즈> 정도를 제외하면 마무리 인사를 건넨 히어로 영화는 거의 없었다. 샘 레이미의 <스파이더맨> 시리즈조차 <스파이더맨: 노 웨이 홈> 전까지는 끝인사를 전하지 못했다.
그렇기에 휴 잭맨의 울버린과 이별한 줄 알았던 <로건>은 유독 뇌리에 강렬히 각인됐다. 엑스맨 시리즈에서도 울버린을 보기 어렵다고 생각한 찰나에, 뜨거운 박수를 보내며 작별을 고할 기회가 주어졌으니까. 서부극 작법으로 히어로 영화를 풀어냈기에 참신했고, 몸도 마음도 고통스러운 히어로에게 안식처를 마련했기에 더욱 뭉클한 작품이었다.
톰 하디와 켈리 마르셀 감독도 여러모로 <로건>을 감명 깊게 본 듯하다. '소니 스파이더맨 유니버스'(이하 SSU)의 개국공신인 <베놈> 시리즈의 최종장, <베놈: 라스트 댄스>(이하 <베놈 3>)가 <로건>과 흡사하기 때문. 캐릭터를 다루는 방법도, 줄거리도, 히어로에게 헌사를 보내는 방식마저도 닮았다. 물론 단순히 <로건>을 베낀 작품은 아니다. <베놈> 시리즈와 SSU만의 캐주얼한 멋과 맛은 여전하니까. 심지어 단점마저도.
베놈과 에디가 마침내 빛나다
완성도에 비해 <베놈> 시리즈가 흥행한 원동력은 크게 둘이다. 베놈 캐릭터 자체의 인기와 영화 속 베놈과 에디의 콤비. 극 중 베놈이 코믹스 속 빌런 캐릭터에 비해 지나치게 착하다는 점을 고려하면 후자의 역할이 더 크다고 볼 수도 있다. 포악하나 귀여운 구석이 있는 베놈과 예리한 기자이지만 허술한 일면이 있는 에디 브록이 만담을 주고받으며 서로를 닮아가는 성장 이야기는 독특한 매력이 있었다.
다만 <베놈> 시리즈는 여태 자기 매력을 살리지 못했다. 베놈과 에디의 관계를 단순히 유머 소재로 쓰거나, 다른 캐릭터를 조명하고자 둘의 서사를 축약했기 때문. 마지막 편인 <베놈 3>는 다르다. FBI에게 쫓기며 멀티버스까지 경험한 두 친구가 안티히어로로 활동할 동안 놓친 것을 짚어주면서 베놈과 에디 둘의 관계에 온전히 초점을 맞췄다. 그 결과 마침내 그들의 동행에는 감정선이 더해졌다.
그 중심에는 '마틴'(리스 이판) 가족이 있다. 로건이 로라를 에덴으로 데려주다가 농장을 운영하는 가족에게서 평화를 느꼈듯이, 에디와 베놈도 제노페이지의 추격을 따돌리고 뉴욕으로 가던 중 마틴 가족을 만난다. 그들과 하룻밤을 지내면서 에디와 베놈은 각자 잊고 지내던 것을 깨닫는다. 에디는 '앤'(미셸 윌리엄스)과 결별한 뒤 평범한 일상과 가정을 갖지 못한 회한을. 베놈은 자기 때문에 에디가 포기한 것들의 소중함을.
그 덕분에 <베놈 3>는 지난 두 편과 퍽 다른 분위기다. 이전까지 느끼지 못한 유대감 덕분에 베놈의 희생은 <베놈> 시리즈에게서 기대하지 않은 감동을 안긴다. 시리즈 3편을 통틀어서 가장 감정적으로 깊고, 파고가 높은 순간이다. <베놈>, <모비우스>, <마담 웹>과 같은 SSU 작품의 스토리텔링을 고려했을 때 놀라운 진보처럼 보이기도 한다. 1, 2편의 각본을 맡았던 켈리 마르셀이 메가폰을 잡은 결실이 아닐까 싶다.
<로건> 맛 대신 향만 첨가하다
캐릭터 구축 외에도 <베놈 3>이 <로건>의 장점을 활용하려 한 노력은 여러 방면에서 드러난다. 전체적인 스토리 라인부터가 <로건>과 매우 흡사하다. 베놈과 에디는 울버린과 프로페서 X가 그랬듯이 샌프란시스코를 난장판으로 만든 후 멕시코로 도망간다. 제노페이지의 습격을 받고 나서는 추격을 피해 필사적으로 달아나고, 베놈은 울버린이 그랬듯이 영웅적인 희생을 선택하며 결말을 마주한다.
예상치 못한 공통점도 있다. 두 영화 모두 자유의 여신상을 중요한 매개체로 활용하다. <로건>이 그랬듯이 <베놈 3>도 자유의 여신상에 베놈과 에디의 관계를 투영시킨다. 특히 자유의 여신상이 뉴욕에 도착한 이민자들을 맞이해 왔던 역사를 고려하면 의미심장한 뉘앙스도 느껴진다. 외계인인 베놈과 심비오트가 자기 쓰임새를 증명하려고 사력을 다하는 모습은 미국에 정착하려는 이민자의 심리를 대변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베놈 3>는 <로건> 향만 낼뿐, <로건>의 감동이나 강렬한 인상까지 따라 하지는 못했다. 마치 오렌지 과즙을 넣은 환타와 오렌지 향만 더한 환타의 맛이 상이한 것처럼. 그 이유는 영화 외적으로도, 내적으로도 있다. 외적인 이유로는 <로건> 만큼 농축된 경험이 없다는 점을 꼽을 수 있다. 관객과 함께 쌓아 올리고 공유한 시간이 울버린의 그것에 비하면 턱없이 부족하니, 근본적으로 하위 호환처럼 보일 수밖에 없다.
내적인 이유로는 <베놈 3>의 방향성을 꼽을 수 있다. <베놈 3>는 부족한 깊이를 메우기 위해서 철저히 에디와 베놈 중심으로, 캐주얼하게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편의적인 전개를 적극 활용해 SSU와 <베놈> 시리즈 특유의 매력을 뽐내려 한다. 플롯을 꼬지도 않았고, 복잡한 은유나 암시도 자유의 여신상을 제외하면 없다. 나머지 캐릭터는 온전히 두 친구를 위한 도구일 뿐이며, 그들의 추억을 회상할 때를 제외하면 앞만 보고 달린다.
여전한 단점
그 대가로 <베놈 3>는 이전처럼 완성도를 잃었다. 우선 개연성이 부족하고, 몰입도가 현저히 떨어진다. 일례로 베놈과 첸 아주머니가 춤을 추다가 제노페이지에게 위치를 들키는 일련의 과정은 모든 순간이 의아해서 쉽사리 납득할 수 없다. 스트릭랜드 준장, 페인 박사, 크리스마스 연구원의 행적도 마찬가지다. 그들이 심비오트를 적대하거나 돕는 동기, 그리고 변심하는 과정 대부분이 생략된 나머지 그들의 선택을 이해하기가 어렵다.
빌런과 심비오트의 활용법도 허망하다. 실질적인 메인 빌런 제노페이지는 평범한 외계인 CG 캐릭터에 불과하다. 물리적인 힘만 강할 뿐, 그들에게 부여된 특별한 서사나 개성은 전무하다. 심비오트 묘사도 일관성이 없다. 1편에서는 인류에게 거대한 위협이었다가, 갑자기 선역으로 묘사되기 때문. 2편 말미에 등장시키면서 기대감을 키웠던 '톡신'(스티븐 그레이엄)과 같은 캐릭터도 단순히 설명을 위한 도구적으로 소비해 버렸다.
SSU의 고질병인 편집 문제도 여전하다. 급작스러운 화면 전환 때문에 일정한 톤을 유지하지 못했다. 음악 활용이 단적인 예시다. 사용된 노래는 제각기 일리가 있지만, 각 시퀀스를 이어서 보면 흐름이 부자연스럽다.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 시리즈와 같은 재치는 찾기 어려운 셈이다. 결말에 삽입된 마룬 5의 'Memories'만 보더라도 추모의 의미를 담은 가사는 적절했지만, 이전까지의 분위기와는 조화를 이루지 못했다.
그나마 액션은 기대대로다. 특히 말과 같은 동물을 베놈이 활용하는 장면은 예고편 못지않게 본편에서도 눈길을 끈다. 심비오트 군단의 활약도 흥미롭다. 서로 다른 능력을 지닌 심비오트의 액션은 베놈에게 익숙해진 관객에게 새 볼거리를 보여주고, 눈을 즐겁게 한다. 다만 그들이 매력을 다 보여주기도 전에 퇴장한다는 점, 그리고 액션이 밤에만 펼쳐지다 보니 분간이 잘 안 되고 어지럽다는 게 옥에 티다.
깔끔한 결말 끝에 남는 물음표
종합하면 <베놈: 라스트 댄스>는 지극히 <베놈>답고, SSU다운 마무리라고 볼 수 있다. 달리 말해 기존 시리즈의 팬이라면 충분히 만족할 수 있는 최종장인 셈이다. 다만 일관성 있는 끝인사와는 별개로 <베놈 3>는 몇몇 의문을 남긴다. 쿠키영상에서 암시된 향후 시리즈의 전개가 오리무중이기 때문. 널을 어떻게 활용할 것이며, 멀티버스와 MCU의 연계는 어떻게 수습할 것인지에 대한 답을 찾아볼 수 없다.
한 두 가지 힌트가 있을 뿐이다. 에디 브록을 스파이더맨의 도시인 뉴욕에 남겼다는 점, 베놈을 퇴장시키면서 SSU에서든 MCU에서든 안티히어로가 아니라 빌런으로서 베놈을 등장시킬 환경을 마련했다는 점 정도가 유효한 암시처럼 보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베놈의 라스트 댄스가 최소한의 성공을 거뒀다는 사실만큼은 분명해 보인다. 어떤 영화에서 어떻게 등장하든 간에 여전히 베놈과 에디의 동행을 기대케 하니까.
Poor 형편없음
끝이 좋으면 모두가 좋으니 그래도 이만하면 성공한 시리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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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안해요 콜텍 노동자, ‘해결’된 줄 알았어요
4464일. 콜텍 해고 노동자가 일상으로 돌아오는 데 걸린 시간이다. 투쟁하며 길가에서 보내기엔 너무도 긴 시간이다. 이 길고도 긴 시간이 지나서야 회사는 ‘유감’을 표했고, 3명의 조합원에 대한 명예 복직, 25명의 조합원에 대한 보상금을 약속했다. 2019년 4월의 일이다. 2007년 부당해고 후 13년이 지난 때였다.
2010년 제작된 다큐멘터리 〈꿈의 공장〉을 보면, 콜텍 박영호 사장이 기존의 인천 공장을 ‘노조가 점령한 공장’이라 비난하며 새로 지은 대전 공장을 ‘꿈의 공장’이라 불렀다는 내용이 나온다. 다큐멘터리 〈재춘언니〉의 주인공 임재춘 씨가 일했던 곳은 ‘꿈의 공장’이었다. 임재춘 씨에게 공장은 그 '이름값'을 했다. 그는 그곳에서 무려 30년 동안 기타를 만들었다. 작업 환경은 열악했다. 임재춘 씨의 인터뷰에 따르면 그는 하루에 200~300개의 기타를 만들었다고 한다. 회사가 기타를 배우지 못하게 해 연주할 줄은 몰랐지만, 그럼에도 그에겐 한때 세계 기타 생산량의 30%를 점유했던 콜텍은 자부심 그 자체였다. ‘꿈의 공장’에서 노동하며 두 딸의 아버지이자 평범한 노동자로 살아갈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30년 동안 쌓은 자부심이 허탈함, 분노, 좌절로 바뀌는 데는 많은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공장 운영을 무기한 중단한다는 통지문 한 장에 30년 세월이 부정당했다. 자그마치 30년이다. 부당해고를 당한 임재춘 씨를 비롯한 그의 동료들이 빼앗긴 일상과 꿈을 되찾기 위해 투쟁에 나선 건 너무도 당연한 일이다. 그런데 투쟁 3년 차에 제작된 〈꿈의 공장〉과 13년 투쟁 기록을 담은 〈재춘언니〉를 비슷한 시기에 함께 본 나는 한 가지 의문이 들었다. 임재춘 씨를 비롯한 해고 노동자들은 그들의 투쟁이 13년 동안 지속된다는 것을 알고서도 이 투쟁을 시작할 수 있었을까?
어려운 질문이다. 임재춘 씨는 투쟁이 1년 안에 끝날 거라 예상했다 한다. 허망할 정도로 ‘낙관적인’ 전망이었다. 〈꿈의 공장〉에는 투쟁하는 해고 노동자 십수 명 나오는 데 반해, 〈재춘언니〉에는 임재춘 씨를 포함해 세 명의 해고 노동자만 남았다는 데서 콜텍 해고 노동자들이 어떤 시간을 견뎌왔을지를 짐작할 수 있다. 〈재춘언니〉가 천착한 건 바로 이 지점이다. 투쟁이 이렇게 길어질지 몰랐다는 감독의 말에서도 알 수 있듯, 이 영화는 해고 노동자들이 그 긴 시간을 무엇으로 버텨왔는지를 조명한다.
강한 투쟁력만큼이나 감성적인 요소도 중요하다는 게 〈재춘언니〉의 대답이다. 여장을 하고 〈햄릿〉의 오필리아를 연기하기, 천막 농성장 근처에 텃밭 가꾸기, 투쟁하느라 제대로 돌보지 못해 시든 방울토마토를 보며 서운해하기, 성별‧나이를 불문하고 연대 방문자와 수다 떨기, 표정만 보고 상대방이 필요로 하는 것 알아채기. 모두 중년을 훌쩍 지난 남성 임재춘 씨가 한 일이다. 그는 이렇게 13년을 버텼다. 농성장을 떠난 동료 노동자들을 이해한다는, 자신도 이제 투쟁은 그만하고 싶다고 말했던 임재춘 씨. 그는 나이와 성별에 어울리지 않는 관계 맺기 방식으로 ‘언니’라 불리며 자기 자신과 동료를 챙겼다. 나는 임재춘 씨가 있었기에 그토록 길고도 가혹했던 콜텍 노동자들의 투쟁이 성과를 내며 마무리될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전략적 사고, 장기적 전망, 완고한 의지, 투철한 정의감에 다정한 관계 맺기가 더해질 때야 투쟁 현장에 생기가 돌고 사람들은 서로를 보듬을 수 있음을, 〈재춘언니〉는 지난 13년의 세월을 통해 증명한다.
〈꿈의 공장〉을 보면, 콜텍의 부당해고에 항의하는 투쟁이 국제적 투쟁이었음을 알 수 있다. 한국의 여러 뮤지션뿐 아니라 기타를 사랑하는 수많은 해외 뮤지션, 일반인 애호가 등이 콜텍 해고 노동자에게 깊은 연대를 표했다. 국내에서도 콜텍의 투쟁은 꽤 많은 사람에게 여러 곳에서 회자되었다. 그런데도 13년이 걸렸다. 부끄러움이 솟구쳤다. 2010년대 초중반, 콜텍을 규탄하는 집회에 두어 번 참석한 기억이 있다. 그 이후로도 종종 뉴스로 콜텍 노동자들의 소식을 접했다. 긴 투쟁 끝에 콜텍 문제가 ‘해결’되었다는 소식을 들은 후로는 관심을 껐다. 콜텍의 투쟁이 ‘끝났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 영화의 마지막, 임재춘 씨는 한 공사장에서 일용직 노동자로 일하고 있다. 최근 영화 시사회 인터뷰에서는 경비 노동을 하고 있다고 밝혔다. 2020년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재춘언니〉를 처음 본 임재춘 씨는 울컥했다고 한다. 그리고 더 이상 대한민국에 콜텍 투쟁과 같은 일이 반복되지 않기를, 콜텍 투쟁이 대한민국의 마지막 투쟁이 되기를 바랐다고 한다. 그래서일까? “노동에 대해 이야기하고 TV에 나오고 해도 사회 현실이 변화되는 것은 없더라”는 그의 말에 울적해진 것은.
누군가가 13년의 긴 시간 동안 모든 것을 바쳐 의미 있는 성과를 얻어내는 동안, 노동자를 대하는 우리 사회의 인식은 얼마나 바뀌었나? 지금껏 우리는 얼마나 많은 투쟁 현장에서 약간의 연대와 죄책감만을 느끼다가 잊어버린 후, 모든 게 ‘해결’되었다고 자위하고는 돌아서버렸는가? 그래서 나는 〈재춘언니〉를 본 후, 콜텍 문제가 ‘해결’되었다고 여긴 것을 반성하고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선에서 “노동 투쟁 현장이 어떤지 함께 느끼”는 일에 보탬이 되는 일을 고민해보기로 했다. 각자의 자리에서 재춘언니와 관계를 맺자. 그리고 그 관계를 키워나가자. ‘해결’이란 말이 부끄러움을 동반하지 않을 때까지. 이것이야말로 누군가의 간절하고 절박한 투쟁이 ‘불법’이라는 이유로 공당의 대표에게 조롱당하는 요즘의 우리에게 필요한 일이다. 분노만큼이나 서로를 북돋는 다정한 관계 역시 중요함을 새삼 일깨워준 재춘언니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영화 전문 웹진 〈씨네랩〉에 초청받은 시사회에 참석한 후 작성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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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랑이라는 구원
"< 콜 미 바이 유어 네임>
루카 구아다니노 x 티모시 샬라메의 재결합“보통의 삶, 보통의 가족, 보통의 존재. 보통의 것이 불가능한 누군가에게. 당신과 비슷한 타인이 존재한다고, 그래서 서로가 이어져있을거라고. 그렇게 상처를 보듬고 사랑할 수 있을거라고, 영화는 말한다.
‘카니발리즘(식인)’을 소재로 하고 있지만 결코 잔인하고 자극적인 장면들을 보여주기 위한 호러영화가 아니다. 사회 밖으로 내몰려 그 주변을 맴돌아야만 하는 사람들에 대한 메타포일 뿐. 그렇기에 영화를 보는 내내 인물들이 가진 아픔의 한 구석을 조금이라도 이해하려 애썼다. 어디에 상처가 났는지, 그 상처는 얼마나 깊은지. 어떻게 해야 아물 수 있는지. 결국, 사랑이라고 생각했다. 하나가 되어 서로를 구원하는 수밖에 없다고.
(좌)테일러 러셀_매런과 (우)티모시 샬라메_리
삶의 경계선에 서있는 이들, 사회 속에서 이방인의 위치에 서있는 이들의 삶이란. 그것은 때로는 고독하며, 때로는 온전하지 못하다. 소중한 감정들을 짓눌러야 하고, 아픈 마음을 타인에게 쉬이 내비칠 수 없다.
영화는 식인을 하는 18세 소녀 매런(테일러 러셀)의 성장을 그린다. 엄마는 매런을 떠난 지 오래고, 언제나 그녀 곁을 지켜줄 것이라 생각했던 아버지마저 그녀를 떠나 결국 매런은 홀로서기를 해야 하는 상황에 놓이게 된다. 그렇게 떠돌이 생활을 하던 중 매런은 자신과 같은 식인 성향을 가진 리(티모시 샬라메)를 만난다. 왜 나랑 함께하기로 마음먹었냐는 매런의 말에, 네가 착한 사람 같아서,라며 화답한 리. 그렇게 리는 매런의 인생길에 동승하게 된다.
힘든 삶을 살아온 매런과 리가 마침내 서로를 알아보고 사랑할 수 있어서 참 다행이라 생각했는데. 이마를 마주댄 채 주고받던 말들이 참 애틋했다.
"You don't think I'm a bad person?" - 리
넌 내가 나쁘다고 생각 안 해?
"All I think is that I love you." - 매런
널 사랑한다는 생각뿐이야.나의 결핍이 타인의 결핍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사실이 마음 아팠다. 매런이 자신의 어머니를 만나고 난 뒤에 리를 떠나려 했던 것처럼, 리가 사랑하는 동생 케일라 옆에 언제나 함께 있어줄 수 없었던 것처럼. 결국엔 각기 다른 모양의 결핍들이 연결되어 의도치 않게 서로에게 상처를 주기도 하고 자신 역시 상처받을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자신의 여동생 케일라를 끔찍이도 아꼈던 리. 너무나도 소중한 그녀에게, 리는 보통의 사랑을 내어줄 수 없다. 자신의 아픔이, 자신의 이야기가, 케일라에게 큰 상처가 될까봐 두려워서. 짓궂은 말들만 내뱉고, 전부를 터놓지 못하고, 보이지 않는 곳에서 울음을 삼킬 수밖에 없다. 공중전화부스에서 케일라의 목소리를 들으며 울먹이던 리의 마음이 너무나 연약해보였다.
저기 저 멀리, 언덕 위에 앉아있는 매런과 리를 보며 둘의 행복을 빌었다. 오직 둘만이 존재하는 그곳이 참 평화로워보였다. 각자의 이야기를 하고, 행복한 삶을 꿈꿀 수 있는 곳. 나와 닮은 상처와 결핍을 가진 너를 껴안은 채 위로받을 수 있는 곳. 아픔을 묻어두며 살아온 리는 매런에게 자신의 삶을 고백한다. ‘나’라는 존재가 거부당하는 가혹한 세상 속에서, 그렇게 각자가 가지고 있던 빈자리는 서로의 존재 덕에 사랑으로 가득 채워진다.
강렬하고 아름다웠던 마지막 장면이 아직까지도 오랜 여운으로 남아있다.
Eat me please, bones and all. -리
영화의 제목은, 종반부에서 리의 말로 귀결된다. 뼈까지 전부 먹어달라는 리. 그렇게 함으로써 나는 너 안에 영원히 존재하고 싶다고. 우리는 우리의 방식대로 사랑하자고. 너에게 내 전부를 주고 싶다고. 그의 애원은 이렇게나 사랑으로 가득하다. 매런을 향한 리의 마음이 느껴져 눈물이 났다. 갖고 있는 마음의 크기만큼 줄 수 없는 사랑은 서럽고 또 서럽다.
2022 부산국제영화제_ 본즈 앤 올
정식 개봉 전, 2022 부산국제영화제에서 먼저 만난 영화. 상영관을 나오면서부터 개봉일만을 손꼽아 기다렸던 것 같다. 영화라는 예술의 힘을 빌려, 사회 속 한 개인의 삶과 아픔을 들여다볼 수 있었다.
그들의, 그 둘의 사랑이 더 이상은 아프지 않길.
이 영화 역시 오랫동안 보내주지 못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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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젊은이는 더 이상 희생하지 않는다
캐빈 인 더 우즈
줄거리
다 함께 깊은 숲 속 별장에 놀러가기 위해 모인 다섯 친구들.
별장의 지하실에는 이상한 물건으로 가득 찼고, 숲의 분위기는 심상찮다.
그 사이, 그들을 지켜보고 있는 수상한 사람들까지.
그들은 무사히 이 숲을 빠져나갈 수 있을까?
*아래 내용은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젊은이는 더 이상 희생하지 않는다
숨은 의미 찾기
"사회는 무너져야 해. 우리가 너무 나약해서 그걸 허용하지 못할 뿐이지."
친구들은 마약쟁이 마티의 투덜거림을 대수롭지 않게 여긴다. 하지만 이 말은 영화를 통틀어 가장 중요한 대사다.
기관의 존재를 모르고 이 영화를 중반부까지 본다면 아마 누구나 한 번쯤은 봤을 법한 뻔한 공포영화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정말 안 어울리는 여러 명의 친구들이 갑자기 뭉쳐서 여행을 간다. 그들은 20대의 청춘인데, 그 중 한 명은 늘 무언가 고민을 가진 상태지만, 발랄한 친구들에 의해 마지못해 여행에 동참한다.
사진 참조 : 네이버 영화
엄청 큰 차를 타고 고속도로를 달리다가 꼭 길을 잃어버리고, 어쩐지 음산한 분위기의 가게를 찾아가서 꼭 길을 묻는다. 그럼 가게 주인은 거의 90%의 확률로 친구들이 가는 곳에 대해 부정적인 발언을 한다. 혹은 '돌아가라' 같은 표지판 같은 게 있지만 그런 것 쯤은 싸그리 무시해버린다. 그리고 도착한 곳은 딱 봐도 허름하고 으스스한데 주인공들은 거부감도 없는지 멀쩡히 그곳에 들어간다. 심각한 고민이 있던 주인공은 갑자기 새로운 사랑에 빠지고, 서브 커플은 자기들끼리 물고 빨면서 급 19금 영화를 상영하고, 외로운 분위기 메이커는 중간중간 산통을 깨는 방식으로 환기를 시켜준다. 그러고 있다 보면 주인공들은 스스럼없이 어둡고 쾌쾌한 지하실을 들락날락거리며 뻔질나게 하면 안 될 것 같은 짓들만 골라서 한다.
사진 참조 : 네이버 영화
뒷 내용은 안 봐도 알 것 같은, 뻔한 클리셰란 클리셰는 다 때려박은 공포영화 아닌가.
이 상황을 조종하는 건 비밀리에 감춰진 기관이다. 그들은 마치 익숙한 듯이 이런 상황들을 연출한다. 단정하게 차려입은 수많은 사람들을 보고 있으면 생기 없이 타자기를 두들기는 회사원이 떠오른다. 그들은 그저 근무를 하는 중이다. 그러니 이 상황이 다섯 명의 주인공에게는 진행 중인 현실이지만, 기관 사람들에게는 진행 중인 프로젝트에 불과한 것이다.
마티의 말마따나 이 세계는 구속되어 있다. 싸구려 B급 영화를 공장처럼 찍어내는 과정이 바로 그 증거다.
"이런 의식은 문화마다 다르고 세월에 따라 변하기도 했지만, 항상 젊은이들을 제물로 바쳤지."
무엇을 위한 구속이냐? 젊은 세대의 반란을 막기 위함이다.
영화에서 '과거에 지구를 지배했던 고대의 신들'을 실제로 본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 말은 즉 신이라는 존재들은 명확한 형체가 있는 실제 신이 아니라는 말이다. 그저 지금 이 사회를 통솔하고 권력을 쥐고, 세상을 멋대로 주물럭거리는 기득권자들을 말하는 것 뿐.
사진 참조 : 네이버 영화
그들은 자신을 위한 제물로 젊은이들의 뻔하디 뻔한 B급 영화를 원한다. 그 안에서 그들이 감정을 소모하고, 성적 대리만족을 주고, 고통스럽게 죽길 바란다. 그래서 젊은이들이 헛짓거리를 하게끔 그들을 조종한다. 기관은 금발염색 혹은 가스 살포 등등의 다양한 방법으로 주인공들에게 약물을 주입한다. 인지능력을 떨어트리는 방법이라면서. 아무리 똑똑한 젊은이라도 시야를 가린 채로 절벽에 내놓으면 걸을 수 없다. 그 상황에서 이어폰을 통해 '이렇게 움직여, 저렇게 움직여' 하고 조종하는 건 너무나도 쉬운 일이다.
"네 말이 맞아. 인류는 다른 누군가한테 기회를 줄 때가 됐어."
그러나 그 틀에서 가까스로 벗어난 두 명의 젊은이는 담배를 피우며 말한다. 자신들이 죽으면 지구를 살릴 수 있지만, 그들은 치열하게 살아남고자 몸부림친다. 기꺼이 지구와 타인을 위해 희생하기보단 지구의 종말을 택한다. 그들은 '어른'이나 '기성세대'라는 표현보다는 '인류'라는 포괄적인 단어를 사용한다. 이는 단순 기득권자들을 넘어 인류 전체에 대한 자기반성이나 다름없다.
사진 참조 : 네이버 영화
영화는 인간의 입장에서 치면 전혀 희망적이지 않다.
그저 기본 공포영화의 클리셰를 몽땅 깨버리는 엉망진창 얼렁뚱땅 흘러가는 영화다. 하지만 혼돈 속에서도 돋보이는 이러한 날카로움은 영화를 '짱구'가 아닌 '영화'로 만든다. 단기적으로 보았을 때, 결국 인류가 멸망하는 엔딩이기 때문에 배드엔딩이라고 할 수도 있다.
하지만 굳건한 시스템, 구속된 사회를 모조리 무너뜨린다면 폐허 속에서도 새로운 희망이 싹 틀 가능성은 있지 않을까?
2인분 같은 1인분 영화
감상평
일단 이 영화에서 가장 놀랐던 건 토르님의 강림. 나는 마블 세계관을 전부 들여다볼 엄두도 안 날 뿐더러, 히어로물에 큰 관심이 없다. 옛날에 로다주의 토니 스타크를 보면서 "아이언맨 넘 멋쪙!" 하긴 했지만, 그것도 다 옛날 얘기.
아무튼 그러하니 어벤져스도 그냥 스쳐가듯 연휴에 방영하는 걸로 스토리나 알고 있을 뿐이지만, 어쨌든 토르가 토르인 건 안다. 아니, 망치 들고 세상 천지 다 부수고도 남을 양반이 왜 저기서 저러고 있대.
SCP를 알게 되고 이런 저런 영상을 찾아보다가 이 세계관을 바탕으로 만든 영화도 있다길래 궁금해서 봤다. SCP096도 재밌었지만, 개인적으로는 이 영화가 더 재밌다. 비관적이고 비꼬는 듯한 전개 방식이 신선하고 우스웠다. 그냥 재미있으려고 봤는데 갖가지 메세지까지 던져줘서 혜자스러운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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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나친 관음증에 가려버린 야심 찬 재해석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아버지를 모른 채 어린 시절을 보내야 했던 '노마 진(릴리 피셔)'은 정신병에 시달리던 엄마에게 학대당한다. 그러던 어느 날 엄마가 정신병원으로 이송된 후 그녀는 아버지가 할리우드에서 일했다는 말 한마디를 간직한 채 보육원에서 지내게 되고, 노마는 배우로서 할리우드에서 활동하는 꿈을 키워 나간다. 이후 염색한 금발 머리와 섹슈얼리티가 두드러지는 외모를 무기 삼아 '마릴린 먼로(아나 데 아르마스)'로 거듭난 그녀는 스타덤에 오른다. 그러나 아버지의 부재가 남긴 공허함 때문에 먼로는 남자에게 집착하기 시작하고, 아울러 스타로서 화제의 중심에 서야 하는 독특한 삶의 무게에 짓눌리면서 그녀는 마릴린과 노마 사이에서 혼란에 빠진다.
앤드류 도미닉 감독이 메가폰을 잡고 아나 데 아르마스가 마릴린 먼로를 연기한 넷플릭스 오리지널 영화 <블론드>는 개봉 전부터 숱한 논란의 중심에 서 있었다. 제79회 베니스 국제 영화제 경쟁 부문 진출작이라는 점과 아나 데 아르마스의 높은 싱크로율은 기대를 키우기에 충분했다. 반면 원작인 조이스 캐럴 오츠의 동명 소설이 논픽션이 아닌 소설이라는 점을 두고 고인의 명예를 훼손하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도 적지 않았다. 일례로 미국의 영화 평론가 그레이스 랜돌프가 이 작품을 "전기 영화인 척하는 강간 판타지"라며 평론을 거부했다. 마침내 공개된 <블론드>는 이처럼 상반된 기대와 우려가 모두 옳았음을 보여준 영화였다. 시대의 상징을 재해석하려는 감독의 야심은 그 자체로 인상적이지만, 야심을 표현하는 방식에 있어서는 아쉬움을 넘어 불쾌한 대목이 적지 않았기 때문이다.
<블론드>는 자칫 단순히 금발의 섹스 심벌이라는 이미지에 갇힐 수 있는 마릴린 먼로를 더욱 입체적인 인간상으로 그려내려 한다. 그녀를 둘러싼 사건과 루머가 너무나도 유명한 만큼 과감한 접근법을 택했다고 볼 수도 있다. 구체적으로는 빛나는 할리우드 스타의 깊은 심연을 들여다보며 먼로를 치열한 정체성 싸움을 펼치는 역동적인 캐릭터로 재해석하려 했던 야심을 드러낸다.
카메라가 포착하는 마릴린 먼로의 모습은 크게 두 가지다. 우선 뿌리 없이 자란 꽃과도 같은 그녀의 괴로움에 초점을 맞춘다. 영화는 정신병에 걸린 엄마와 함께 지난 유년 시절을 보여주면서 배우 이전에 자연인 '노마 진'의 엘렉트라 콤플렉스를 자세히 묘사한다. 할리우드에서 일한다는 아버지는 사진만으로도 엄마의 폭행과 학대에 시달리는 어린 노마에게 큰 위안이 된다. 더 나아가 보육원에서 자라게 된 그녀에게 아버지의 존재는 그 자체로 안정되고 따뜻한 가정의 상징이 되어 버린다.
동시에 영화는 마릴린 먼로라는 스타와 노마 진이라는 자연인의 간극 때문에 고통스러워하는 한 인간의 모습을 포착한다. 무섭게 열광하는 레드카펫의 군중들과 카메라를 비추는 모습. 그 유명한 치마가 바람에 휘날리는 먼로를 찍는 사진기들까지. 마릴린 먼로에 가까워질수록 노마 진이 사라지는 삶, 유명세를 감당하고 시대의 심벌로 거듭나는 삶이 얼마나 힘든지를 놓치지 않는다. 그렇기에 영화는 커리어의 정점에 도달한 순간 LA를 떠나 뉴욕으로 향하는 그녀처럼 노마 진의 흔적을 놓치고 싶어 하지 않는 한 여성을 역으로 포착할 수도 있다. 이처럼 <블론드>는 어릴 적 트라우마, 스타로서 소비되는 이미지, 이중적 생활로 인한 불안 심리 상태에 초점을 맞춰 마릴린 먼로의 이미지를 새로이 구축한다.
이러한 맥락에서 영화 분량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그녀의 염문과 가십은 단순한 스캔들의 영상화가 아니다. 그보다는 '노마 진'이라는 정체성에 대한 갈증을 강조한다. 그녀가 여러 남편을 '아빠 Daddy'라고 호칭하는 것이 단적이 예시다. 노마 진은 거듭 아버지의 자리를 대신할 사람을 쫓고, 그 아버지와 행복할 가정을 이룰 아이에게 집착하며 공허한 자신의 뿌리를 채워 넣으려고 애쓰기 때문이다. 그래서 영화는 마릴린 먼로의 가십을 항상 날아갈 듯한 희망과 낭떠러지로 떨어지는 듯한 절망의 이미지로 대비시켜 보여준다. 스타가 아닌 한 개인의 시점에서 제시하기에 그 명암은 더 짙다.
작중 처음으로 마음의 안식처로 생각했던 '찰스 채플린 주니어(제이비어 새뮤얼)'와의 관계는 사랑하던 아이를 포기해 두고두고 그녀의 원죄가 되어 버리는 낙태로 귀결된다. 그녀가 가장 화려한 스타로 발돋움하는 찰나에, 또 아버지를 만날 거라는 희망으로 부풀어 있던 순간 마주해야 했던 '조 디마지오(바비 카나베일)'의 프러포즈는 노마를 학대받던 어린 시절로 되돌려 보낸다. 극작가인 '아서 밀러(에이드리언 브로디)'에게 자신의 모든 이야기를 털어놓았지만 정작 아서가 그녀의 사연을 영화 시나리오의 한 조각으로 활용하는 사실을 알게 되자 깊이 좌절한다. '존 F. 케네디(카스파르 필립손)'와의 루머를 풀어내는 대목은 마릴린과 노마 사이에서 결국 체념해버린 그녀의 모습을 암시하듯 고통스럽고 기괴하다.
그렇기에 원작 제목 <블론드 Blonde>를 고수한 것 역시 도미닉 감독의 야심이 집약된 선택으로 보인다. 마릴린 먼로가 금발로 염색해서 이미지를 확립한 것은 이미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그런데 영화는 통념과 달리 마릴린 먼로로 변모하는 과정 이면에 숨어 있던 심상을 금발에 투영한다. 섹슈얼리티한 이미지의 구축보다는 노마 진이 사라지는 것에 대한 불안함과 노마 진으로 남기 위해 발버둥 치는 필사적인 노력을 제목에 담는다.같은 맥락에서 흑백과 컬러를 오가고, 현재 영화 제작 시 사용되는 대부분의 화면 비율을 한 번 이상 활용하며, 심리 변화에 따라 화면이 늘어지거나 휘어지는 연출도 눈에 띈다. 쉽사리 짐작하기 어려운 노마 진과 마릴린 먼로의 내면을 영상으로 풀어내기 위한 노력이 엿보이기 때문이다.
관건은 감독의 야심이 시청자들에게 설득력 있게 전달될 수 있느냐다. 여기서 <블론드>는 패착을 두었다. 다만 영화 속 마릴린 먼로와 실제 먼로의 삶이 다르기 때문만은 아니다. 사실 원작자인 조이스 캐롤 오츠부터 자신의 책이 논픽션이 아닌 소설이라고 공언한 만큼, <블론드>의 내용이 실제 사건과 다르다고 비판하는 것은 합당하지 않을 수 있다. 마크 저커버그의 페이스북 창립 스토리를 다룬 <소셜 네트워크>가 동명의 논픽션을 원작으로 하는데도 실제 사건과 여러 차이점이 있다는 것, 그런데도 봉준호나 타란티노와 같은 감독들이 이 작품을 2010년대 최고의 영화 중 하나로 꼽았다는 점을 고려하면 더욱 그렇다.
다만 작품 속 묘사가 실제 사건과 다를 경우 그 이유는 제시되어야 한다. <소셜 네트워크>가 실제와 다르게 표현한 대목은 마크 저커버그라는 캐릭터가 자신의 이익과 결부되지 않으면 타인의 심리를 파악하고도 고의적으로 무시하는 경향이 있었음을 강조한다. 그 덕분에 세상 모든 사람들을 연결해줄 페이스북이라는 거대한 SNS를 탄생시킨 주인공의 주변에 정작 친구도, 연인도, 동료도 남아있지 않는 아이러니한 엔딩의 비극성은 더욱 빛을 발한다. '소셜 네트워크'라는 제목의 이중적인 의미를 전달하는 데 톡톡히 기여하기 때문이다.
그에 비해 <블론드>는 실제와 달라야 하는 그 이유를 보여주지 못했다. 영화는 아버지와 가정의 부재가 남성들과 아이에 대한 집착으로 이어진 과정을 보여줄 필요가 있었다. 그래서 마릴린 먼로라는 캐릭터의 고통을 더 과장하고 그녀의 내적 혼란을 부추겼다. 실제로는 없었던 사건인 먼로의 낙태가 스토리 라인에 삽입되고, 연인 관계가 아니었던 남성들과의 관계나 확인되지 않은 루머가 적잖은 분량을 부여받은 것은 극적 전개를 위한 선택으로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그 선택을 보여주는 방식은 영리하지 않다. 2시간 30분이 넘는 긴 러닝 타임에도 불구하고 각 에피소드 사이에서 널뛰는 먼로의 감정선을 제대로 그려내지 못했다. 대신 아버지의 부재와 불우한 어린 시절이라는 한 원인에서 모든 이야기가 비롯되었다는 단순한 불행 포르노를 답습하는 데 그친다. 그 결과 왜 먼로가 몇십 년 동안 그토록 불안정한 상태여야 했는지를 전혀 납득시키지 못한다.
더 나아가 마릴린 먼로를 소비해 왔던 기존의 시각을 비판하면서, 정작 감독 본인도 같은 행태를 반복하는 내로남불에 빠지고 만다. 영화는 그녀를 둘러싼 수많은 카메라의 압박, 그녀를 착취하는 영화 업계 사람들의 무자비한 태도, 그녀를 성적으로 소비하고 활용하는 언론과 대중들을 마치 굶주린 괴물처럼 묘사한다. 결국 먼로의 내밀한 이야기를 드러내어 결과적으로 그녀를 자극적으로 탐닉한 이들이 한 여성을 비극으로 몰고 간 과오를 비판하려는 뉘앙스를 풍긴다. 그래서 영화는 먼로가 캐릭터를 재해석해서 원작자인 아서 밀러조차 깨닫지 못했던 캐릭터의 이야기를 보충하는 장면처럼 숱한 스캔들의 주인공이기 이전에 연기에 진심이었던 여배우의 모습도 단편적으로나마 제시한다.
문제는 <블론드>의 시점도 먼로에 대해 마찬가지로 선정적이고, 소비적으로 접근한다는 점이다. 지나치게 노골적이고 관음증적인 앵글과 시선을 통해 집중적으로 포착된 마릴린 먼로의 사생활은 처음부터 끝까지 그녀를 그저 정신적으로 쇠약한 인물로 그려낸다는 인상을 준다. 또 그녀가 단지 성적인 존재로만 남겨졌다는 식의 묘사 역시 불쾌함을 남긴다. 그래서 이러한 연출에 대한 나름의 이유가 있다는 해명과 반론은 케네디와 먼로의 만남 장면처럼 구체적인 상황 묘사가 불필요한 대목에 힘을 준 순간 의미를 잃어버린다. 결국 영화의 결말은 그저 불편하고 찝찝할 뿐, 재해석의 의도나 야심은 작품을 곰곰이 따져보지 않는 한 와닿지 않는다. 그렇게 넷플릭스 <블론드>는 그 모든 고통을 표현해 낸 아나 데 아르마스의 열연만 남긴 채 막을 내린다.
P(Poor, 형편없음)
야심 찬 재해석에 절제의 미덕만 갖추었더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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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이> 김향기, <우아한 거짓말> <증인> 잇는 관객공감 & 따뜻한 필모그래피에 주목!
출처: 네이버 영화
배우 김향기가 2021년 새해를 여는 따스한 위로의 힐링 영화 <아이>에서 아동학과 졸업반의 보호종료아동 '아영'역을 맡으며 그동안 따뜻한 메시지로 관객들에게 위로와 공감을 선사해 온 필모그래피가 주목 받고 있다.
배우 김향기, 류현경, 염혜란 주연의 영화 <아이>는 일찍 어른이 되어버린 아이 ‘아영(김향기)’이 의지할 곳 없이 홀로 아이를 키우는 초보 엄마 ‘영채(류현경)’의 베이비시터가 되면서 시작되는 따스한 위로와 치유를 그린 영화로 올해 설 연휴 극장가에 만날 따뜻한 감성의 작품으로 개봉을 앞두고 있다.
영화 <아이>가 전할 따뜻한 위로와 치유의 메시지와 함께 더욱 기대를 모으고 있는 것은 바로 주인공 ‘아영’을 연기한 배우 김향기이다. 2014년 이한 감독의 <우아한 거짓말>에서 아무 말 없이 세상을 떠난 14살 소녀 ‘천지’로 161만 관객의 가슴에 따뜻한 감동과 여운을 전하며 백상예술대상 여자신인연기상을 수상한 그녀는 2019년 253만 관객을 동원한 <증인>에서는 아스퍼거 증후군을 앓고 있는 소녀 ‘지우’역을 맡아 다시 한번 뛰어난 연기 스펙트럼을 보여주며 한국영화평론가협회 여우주연상을 수상했다.
무엇보다 <아이>의 ‘아영’에 대한 관객들의 기대가 큰 이유 중의 하나는 배우 김향기가 선택한 두 편의 작품이 선사한 쉽게 가시지 않는 울림과 그 속에서 캐릭터를 완벽하게 연기한 배우의 연기력 때문이다. <우아한 거짓말>과 <증인> 두 작품 모두 따뜻한 위로와 치유의 메시지로 관객들의 가슴에 짙은 여운을 남기며 입소문 속 흥행 성공을 거두었다. 두 작품 속에서 각기 다른 캐릭터들의 발성, 표정, 움직임까지 완벽하게 연기한 김향기 배우 역시 큰 사랑을 받았다. 작품과 연기에 대한 신뢰감으로 김향기의 선택이라는 이유만으로도 <아이>에 대한 관객들의 기대감이 고조되고 있다. 김향기 배우가 맡은 <아이>의 ‘아영’은 누구보다 강한 생활력을 가진 아동학과 졸업반의 보호종료아동으로, 의지할 곳 없이 홀로 아이를 키우는 초보 엄마 ‘영채(류현경)’와 함께 상처로 가득한 세상에서 공감할 수 있는 따뜻한 치유와 위로의 메시지를 전할 예정이다. <아이>의 각본과 연출을 맡은 김현탁 감독은 “김향기 배우는 아영이라는 인물에 대해 너무 잘 알고 있어서, 어떤 지점에서는 감독보다 더 잘 알고 있다고 생각되었다. 내 역할은 김향기 배우가 연기하는 아영의 모습을 잘 담아내는 것이라고 생각했다”며 맡은 작품마다 완벽한 캐릭터 연기로 관객들에게 감동과 울림을 전한 김향기 배우에 대한 고마움을 전했다.
<우아한 거짓말>과 <증인>에 이어 <아이>까지 관객공감 200%의 따뜻한 필모그래피로 기대를 모으는 김향기 주연의 <아이>는 2월 10일 만나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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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Movielog #30] 스릴러로 돌아온 안젤리나 졸리의 추격극
영화 윈드리버의 타일러 쉐리던 감독이 신작 영화로 돌아왔습니다.
굉장히 건조하지만 아이를 잃은 슬픔을 가진 캐릭터를 등장시켜 일종의 복수극을 스릴러로 보여줬는데요.
이번 영화는 좀 더 스케일이 커지고 빨라졌습니다.
물론 아쉬운 점도 있지만 그래도 영화가 재미있습니다. 마음을 쫄깃하게 만드는 스릴러 영화에요.
시카리오 시리즈의 각본가로 유명한 타일러 쉐리던은 이제 연출을 시작하는 감독입니다.
다음 작품도 기대가 되는 감독이네요.
자세한 리뷰는 영상을 봐주세요.Rabbitgumi 채널 구독과 좋아요도 부탁드립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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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공조2 : 인터내셔날> 메인 예고편
"올 추석, 짜릿한 공조가 시작된다!" 헬로 헬로 익스큐즈미! 웃음 X 액션 X 케미 터뜨릴 공조 이즈 백! #많관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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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팅커 테일러 솔저 스파이> 재개봉 예고편
조직 내부에 숨어있는 스파이를 찾아라!
영국의 비밀정보부 요원 ‘조지 스마일리’(게리 올드만)는
러시아 스파이의 색출 작전에 실패한 후 은퇴하지만,
본부로부터 다시 한번 비밀 작전을 맡게 된다.
한편, 러시아 고위급 장교를 감시 중이던 현장요원 ‘리키 타르’(톰 하디)는
서커스라 불리는 MI6의 최고위급 간부 4명,
정보부장을 포함한 고위 관료 중 한 명이 스파이임을 알게 된다.
이제, ‘조지 스마일리’는 어제까지의 동료였던 정보부 모든 이들을 상대로
자신의 임무를 들키지 않고 스파이를 가려내야만 하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