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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wr2023-11-17 07:43:22

누구도 선보이지 않은 방식으로 4월 16일을 추모하다

〈너와 나〉 리뷰

8★/10★


  〈너와 나〉를 연출한 조현철 감독은 이 영화가 세월호를 추모하는 영화라고 밝혔다. 그런데 영화에는 ‘세월호’라는 말이 단 한 번도 나오지 않는다. 세월호의 비극을 알지 못하는 사람이라면 이 영화를 두 여고생의 이야기라고만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세월호를 아는 사람이라면 영화가 무수히 많이 세월호를 소환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안산이라는 배경, 학교, 수학여행, 배가 침몰했다는 라디오 방송 등등. 우리는 세미와 하은의 내일을 알고 있다. 두 여고생의 일상과 사랑, 지극히 사소한(그러나 그로 인해 아름다운) 누군가의 순간들이 어떻게 중단될지를 말이다.     

  수학여행을 앞둔 세미는 불길한 꿈을 꾼다. 가장 친한 친구이자 그가 마음에 품고 있는 하은이 죽는 꿈이었다. 하은에게 고백하기를 마음먹고 기회를 살피던 세미는 불안과 긴장을 안고 하은을 찾는다. 하은은 다리를 다쳐 병원에 입원한 상태고, 그래서 내일 수학여행도 함께 가지 못한다. 그런데 세미가 하은을 찾아가 수학여행을 함께 가자고 조른다. 다리 깁스뿐 아니라 넉넉지 않은 형편에 급작스레 비용을 마련하기도 어렵지만, 세미의 간절함은 하은에게도 전해지고 둘은 함께 수학여행에 갈 방법을 찾는다.     

  그런데도 세미는 불안하다. 하은에게 비밀이 있는 것만 같아서다. 세미는 슬쩍 하은의 마음을 떠보기를 반복하지만 하은은 자꾸 말을 돌린다. 하은은 나보다 다른 친구가 더 소중한 게 아닐까? 하은에게 남자친구가 있는 건 아닐까? 내가 하은을 소중히 여기는 마음이 일방적인 것은 아닐까? 그러나 불안이 깃든 욕망을 하은에게 반복적으로 투영하는 세미는 마침내 오해를 풀고 하은 역시 자신과 같은 마음이라는 걸 깨닫는다. 그날 밤 둘은 몇 번이고 인사하고 다시 돌아서기를 반복하는, 이제 막 사랑을 시작한 사람들이 하기 마련인 애틋하고 다정한 인사를 나눈다. 마치 이것이 둘의 마지막이라는 걸 알고 있다는 듯이.     

  둘의 마지막 인사는 하은이 입원한 병원의 장례식장을 배경으로 한다. 죽은 자를 떠나보내는 곳에서 둘은 이제 막 사랑을 시작했다. 하지만 얼마 뒤면 그들 역시 장례식장을 찾은 다른 사람들처럼 슬픔으로 인사를 나눠야 할 것이다. 왜 사소하지만 행복한 일상이 죽음과 짝을 이뤄야만 할까? 세월호 이후 많은 이를 고민케 한 질문이다. 이는 〈너와 나〉를 추동하는 질문이기도 하다. 이 영화는 세월호 이후와 사회구조적 문제제기 대신 참사 이전의 삶에 카메라를 돌린다. 세월호라는 예정된 미래가 존재하지 않았다면 하은과 세미는 어렵게 확인한 서로의 마음, 작은 것도 소중히 여기는 마음을 이어갔을 것이다. 〈너와 나〉에는 글로 설명하기 어려운, 반드시 직접 봐야만 확인할 수 있는 일상의 사소한 아름다움이 곳곳에 담겨 있다. 영화는 언젠가 우리가 직접 경험했거나 일상에서 스쳐 가며 간접적으로 경험했을 그 또래 학생들의 풋풋함과 설렘, 평범한 나날의 고민을 섬세하고 아름답게 형상화한다. 예정된 비극이 두 사람의 일상을 과장하지도 않는다. 미래를 알고 있는 우리는 자꾸만 두 사람이 빚어내는 매 순간을 흘려 보내지 못하고 여기에 머무르게 된다. 그리고 불가능한 희망을 되뇐다. 부디 내일이 오지 않기를. 하은과 세미가 작별하지 않기를.     

  영화는 내내 햇살이 깃든 듯 밝고 부드러운 화면 질감을 배경으로 전개된다. 이 질감은 두 사람의 일상을 다정하고 살갑게 재현하는 효과와 동시에 세미의 꿈과 어우러져 현실과 꿈의 경계를 흩뜨려 몽환적 분위기를 자아내기도 한다. 탁자에 걸쳐 금방이라도 쏟아질 듯 보이는 오브제와 만나면 비극을 예시하는 듯도 보인다. 그리고 최종적으로는 미래와 현재를 겹쳐 산 자와 죽은 자를 하나로 포갠다. 죽은 사람뿐 아니라 그들과 함께 살다 떠났던 생명까지도. 추모와 애도의 의지가 깃든 이 환상 속에서 나는 네가 되어 깨어나고, 너와 나의 경계는 허물어진다. 무수히 반복돼 메아리치는 ‘사랑해’라는 말은 떠나간 자에게 건네지 못한 말이자 남겨진 자를 위무하는 속삭임으로 승화된다. 이 중층의 포개짐으로 서로의 경계를 구분할 수 없게 된 자들은 ‘우리’가 되어 비극으로 헤어지고 상처받은 자들을 다시 한데 모은다. 이렇게 〈너와 나〉는 그 누구도 선보이지 않은 방식으로 세월호를 추모한다. 매월 4월 16일, 이 영화를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그날, 그리고 일상을 살아갈 힘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작성자 . rewr

출처 . https://brunch.co.kr/@cyomsc1/3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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