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벨과 세바스찬>은 프랑스와 스위스 국경의 한 마을에서 살고 있는 6살의 세바스찬과 양을 해친 개라고 오해받은 개 벨의 우정을 그린 참으로 귀여운 영화이다. TV에서 나오는 <벨과 세바스찬, 계속되는 모험>을 먼저 보고 전작이 있는 것을 알게 되었다.
영화의 배경은 알프스산맥이다. 그러다 보니 전작과 후속작을 연달아보면 눈 쌓인 알프스와 푸르른 알프스를 연달아서 볼 수 있게 된다. 아름다운 자연의 모습을 영상 잘 담고 있다. 산을 넘어가면 '미국'이라서 엄마를 만날 수 있을 것이라고 믿었던 세바스찬에게는 미안하지만 그곳은 아주 아름다운 스위스였다. 이런 스위스의 알프스 산맥을 본따서 '산악관광'을 하겠다는 무리가 있으니 아름다운 영상을 보면서도 사실은 속이 시끄러웠다.
스위스는 알프스산맥이 나라의 1/4을 차지는 나라이다. 나라 면적에 대비 산림면적이 높은 순으로는 OECD 국가에서 두 번째이다. 우리나라도 호랑이 등허리에 태백산맥이 흐르고 있고, 토지 면적 대비 산림의 비율은 63%로 OECD 국가 중 네 번째이다. 순서로는 상위권이지만 산림의 울창함은 매우 떨어진다. 울창함을 따지는 기준은 사실은 모호하다. 그래도 전 세계적으로 쓰이는 단위인 ha당 임목축적(1ha(100 m×100m)당 나무의 축적, ㎥/ha)이 있으니 비교를 할 수 있을 것 같다. 산림청에 의하면 2015년 기준으로 우리나라는 146㎥/ha, 뉴질랜드 392㎥/ha, 스위스 353㎥/ha이다. 비율만 높았지 나무의 나이와 크기는 2.7배 정도 작은 것이다. 물론 우리나라가 겪었던 전쟁의 역사에서 수목의 수탈과 훼손이 워낙 많았기 때문에 그만큼이라도 성장한 것에는 자부심을 가져도 된다.
스위스와 우리나라를 비교한 이유는 우리나라의 모든 산지 개발, 산악 관광에는 '스위스'가 핑곗거리가 되기 때문이다. 간혹 중국의 장가계도 핑곗거리가 된다. 다른 나라에 가 보니 좋아서 벤치마킹해야 한다는 것은 한옥과 전혀 관계없는 지역의 지체장이 전주에 갔더니 한옥이 좋아 보여서 우리도 한옥을 하자 주장하던 어리석음과 너무 닮아 있다. 그 대표적인 예가 '설악산 오색케이블카'와 지리산 산악열차라 불리고 있는 '하동 알프스 프로젝트'이다.
그렇다. 스위스 산악열차는 정말 유명하다. <걸어서 세계 속으로-606회>를 보면 열차를 타보고, 자연을 느끼고 싶은 마음이 물씬 든다. 그런데 이 산악열차가 관광 때문에 만들어진 것일까? 자답하자면 그렇지 않다.
스위스 철도의 역사는 길다. 철도는 1800년대 중반부터 철도를 놓고 운영했고, 스위스의 대표적인 지역인 융프라우는 16년이라는 공사 기간이 걸려 1912년 처음 개통되어 이제 막 100년이 지났다고 한다. 이전에는 석탄을 이용한 열차였지만 지금은 석탄을 이용하지 않는다. 융프라우의 산악열차는 관광하기 위한 이동수단으로 유명해져서 많은 사람이 찾고 있지만 실제의 목적은 '관광'이 아니다. 여전히 이 지역 사람들은 이 열차를 출·퇴근용으로 활용하고 있다. 그래서 스위스의 열차들은 정시 출발, 정시 도착을 엄격하게 지키고 있다. 산 아래의 마을에서 출발해서 마을을 이동하는데 4회 이상의 열차를 갈아타야 하고, 이를 이용하기에 불편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다. 곤돌라도 마찬가지다. 즉 우리나라의 지하철과 같은 것이다. 이런 역사와 내용을 아는지 모르는지 다른 나라의 지하철을 벤치마킹 해와서 관광열차를 만들겠다니 속이 터질 노릇이다. 우리나라를 찾는 관광객들이 지하철을 많이 이용한다고 다른 나라에서 관광 개발로 벤치마킹하지는 않는데 말이다.
<벨과 세바스찬>에서 자꾸 눈이 가는 것은 귀여운 벨과 세바스찬만이 아니다. 바로 수려한 경관이다. 우리가 산을 가는 이유는 산에 있는 호텔이나 시설 때문이 아니다. 산이 아름다워서이고, 도시와 떨어진 자연환경을 느끼기 위해서이다. 그렇다면 스위스에서 벤치마킹 해와야 하는 것은 대체 뭘까? 스위스가 산악관광만으로도 먹고살 수 있게 된 것은 아름다운 자연환경 때문이지 보조해주는 수단인 열차와 케이블카 때문이 아니다.
그들의 논리대로라면 스위스는 관광으로 잘 살기 위해서 더 많은 개발을 했어야만 했다. 하지만 열차가 있기 때문에 능선을 파헤쳐서 도로를 내지 않았고, 융프라우는 전기차만 이용한다(경유차는 비상시에만 이용한다고 한다). 집 앞에 넓은 마당을 두고도 집 앞까지 차를 끌고 가지 않는다. 몸이 불편하더라도 공해가 없는 청정마을을 유지한다는 것이 그들의 생각이다. 정말 벤치마킹하려면 이러한 올곧은 생각까지도 벤치마킹해야만 한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케이블카를 타러 가기 위해 혹은 산악열차를 타러 가기 위해 가는 길이 불편하니 도로를 더 넓혀야 한다고 주장하고, 쉴 곳이 없으니 산 정상에 호텔을 지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스위스의 자연보호는 이런 간단한 것에 그치지 않는다. 세계 보호지역데이터베이스(WDPA)의 자료에 의하면 우리나라는 583개소의 보호지역을 지정해서 전체 육지면적의 8%를 보호 및 관리하고 있다고 되어 있다. 그에 비해 스위스는 5,893개소의 보호지역을 지정해서 10%나 되는 면적을 보호하고 있다. 개소로도 면적으로도 큰 차이가 있다. 스위스의 국립공원에는 케이블카가 단 한 대도 설치되어 있지 않다. 보호지역 내부로도 거의 설치되어 있지 않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법적 보호지역으로 지정해 놓고 '올림픽' 같은 국제 행사 때문에 특별법을 만들어서 해제하기도 했으니 양뿐만 아니라 질적으로도 많은 차이가 있는 것이다.
지금 우리나라의 산악관광의 길은 놀라울 정도로 1차원 적이다. 스위스가 꼭 정답도 아니겠거나와 그들의 보호 정책을 함께 공부했다면 보호지역을 개발하자는 말과 보호지역을 개방하자는 말을 쉽사리 하지 못했을 것이다. 우리나라는 이미 보호지역과 많은 산림 지역에 스키장, 케이블카 등 많은 관광시설들이 들어와 있다. 그곳들도 과거에 분명 산림이었는데 개발이 되었고 아직도 부족하다며 특별법 만들어서 개발하려고 하니 나무와 숲에 기대어 사는 동·식물들은 어디로 가야 할까?
케이블카를 설치하려고 지자체인 양양군이 사업자로 나선 설악산은 국립공원이고, 산 그 자체로 천연기념물이며, 스위스 융프라우처럼 세계자연유산으로 등록되어 있다. 천연기념물인 산양의 서식지이기도 하다. 하동군도 마찬가지다. 산악열차를 설치하려고 하는 지리산도 국립공원이고, 천연기념물이자 멸종위기종인 반달가슴곰의 서식지이기도 하다. 심지어 반달가슴곰은 국립공원공단에서 복원사업을 진행하고 있고 이미 방사를 진행한 지역이기도 하다.
설악산 케이블카와 지리산 산악열차는 환경적인 문제와 경제적인 문제로 진행이 중단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설악산 케이블카를 진행하는 양양군에서는 환경영향평가 부동의를 인정하지 못하겠다면서 '행정심판'을 청구했고, 결국 중앙행정심판위원회는 그들의 손을 들어주었다. 알프스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하동군에서는 정상의 호텔을 제외하고 산악열차와 케이블카는 다시 진행하겠다고 선언했다. 설악산 케이블카가 다시 진행되는 마당에 하동이 재추진하지 않을 이유는 없어진 것이나 마찬가지다.
우리나라의 산은 나름대로의 충분히 매력이 있다. 산악열차나 케이블카가 아니면 올라가지 못하는 그런 산도 없다. <벨과 세바스찬>과 <사운드 오브 뮤직>의 알프스는 우리의 것이 아니고 우리의 것이 될 수 없다. 고유의 매력을 살리는 관광자원 개발을 할 수 있는 인재들이 우리나라에는 충분히 많이 있는데 그들은 아이디어를 모을 생각조차 없는 것 같다.
자연을 정복하듯 만나러 가는 사람들도 있다. 하지만 여유를 느끼러 가는 사람들이 훨씬 많은 것이라고 생각한다. 자연과 환경의 훼손을 동반하는 개발은 아주 멀리 내다보고, 아주 오래 고민해야 한다. 훼손은 한순간이지만 회복은 어렵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이 글의 마지막은 <환경스페셜-설악산은 쉬고 싶다>의 멘트를 빌려오려고 한다.
"자연을 만나러 간 국립공원에서조차 우리는 속도와 편리를 내려놓지 못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