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INELAB2024-01-22 10:28:05
1월 셋째 주 주말 박스오피스 분석 with 씨네픽
<서울의 봄> 역대 흥행 7위 기록
<외계+인 2>의 반전 흥행은 없었습니다. <서울의 봄>은 꾸준한 관객수로 한국 영화 역대 흥행 순위 7위까지
올라갔습니다.
한편 북미에서는 리메이크 된 <퀸카로 살아남는 법>이 심상치 않은 반응을 보이고 있다는데요. 흥행 요인과 함께 국내, 북미 박스오피스 같이 만나보아요.
[국내 박스오피스]
<서울의 봄>이 계속된 흥행으로 <범죄도시2> <암살> <7번방의 선물>을 제치고 역대 한국 영화 TOP7에 올라섰습니다. 6위는 관객 수 1298만여 명을 기록한 <도둑들>로 이번 주 1294만 여명을 기록한 <서울의 봄>이 다음주에 <도둑들>을 제치고 6위에 올라설 것으로 보입니다.
<외계+인2>은 반전 없는 관객 수를 기록하고 있으며, <위시>도 간신히 100만을 넘기며 2위를 유지 중이며
개봉하는 영화 숫자가 적어지면서 저번주와 같은 순위를 동일한 영화가 유지하고 있습니다.
[북미 박스오피스]
<퀸카로 살아남는 법>이 할리우드 박스오피스에서 심상치 않은 상승세를 보이고 있습니다. 영화는 2004년 린제이 로한이 주연을 맡은 동명 영화를 원작으로 한 미국의 뮤지컬 코미디 영화로 수익을 5000만 달러를 올리며 1위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영화 흥행 요인으로 배급사에서 공격적인 마케팅으로 SNS에 영화 클립을 푼 것, 특히 젊은 관객층을 유입하기 위해 틱톡을 적극적으로 활용해 그 효과를 본것으로 흥행 요인을 꼽고 있습니다.
Relative cont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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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정의 얄궂은 속성
절친한 친구는 삶의 희로애락을 함께한다. 그러나 아무리 가까운 친구라도 서로의 굴곡을 직접 살아줄 수는 없다. 누구나 자신만의 파고가 있다. 기를 써도 안 풀리는 때가 있고, 모든 일이 수월히 진행될 때도 있다. 우정의 얄궂은 속성은 여기서 생긴다. 나의 고점과 저점이 친구의 것과 겹치지 않고 서로 엇갈릴 때 말이다. 친한 친구가 힘든 시기를 보낼 때, 때로 우리는 그저 평범한 일상을 보내고 있는 것만으로도 죄책감을 느낀다. 반대 상황에서는 괜한 분노와 열등감이 차오르기도 한다. 비슷한 환경에서 관계 맺어온 관성으로 인해 현재의 ‘격차’가 낯설게 여겨지는 것이다. 얄팍한 우정은 이 엇갈림을 견디지 못한다. 반대로, 이런 고비를 연달아 넘기는 우정은 그만큼 단단해진다. 이것이 결함 많은 인간이 맺는 우정의 속성이다.
〈여덟 개의 산〉은 이 주제를 처연한 아름다움을 담아 완벽에 가깝게 풀어낸다. 이야기는 1984년 이탈리아의 한 산골 마을에서 시작한다. 도시에서 외동으로 자란 피에트로는 여름방학을 맞아 한 산골 마을의 별장에 머물고, 그곳에서 브루노를 만난다. 브루노는 사람들이 점차 도시로 떠나 황량해진 마을에 남은 유일한 아이였다.
금세 가까워진 둘 사이 첫 번째 변곡점이 찾아온다. 피에트로의 부모는 머리가 좋은 브루노가 학교도 다니지 못하는 상황을 아쉬워하며, 벽돌공으로 일하는 브루노의 아버지에게 그의 도시 유학을 제안한다. 하지만 브루노 아버지는 이를 거부한다. 결국 브루노는 도시에서 교육받으며 자신의 미래를 모색할 수 있는 피에트로와 달리, 어린 나이부터 아버지를 따라다니며 육체 노동자라는 정해진 길을 걷는다. 이후 둘은 십수 년간 만나지 못했다. 만나지 않았다고 말할 수도 있겠다. 어쩌면 같은 길을 걸었을지도 모르지만, 이제는 서로가 완전히 다른 길을 갈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피에트로는 과거 자신이 브루노를 도시로 데려오는 데 적극적이지 않았다는 데 미안함을 느끼고, 브루노는 어쩌면 자신의 것이었을지도 모를 삶을 살아가는 피에트로를 부러 냉담하게 대한다.
그리고 두 번째 변곡점. 이번에는 상황이 반대다. ‘쓸모 있는’ 일을 하라는 아버지의 권유를 거부하고 자신이 하고 싶은 공부와 일에 매진한 피에트로는 방황하는 중이다. 어쩌면 아버지의 말이 맞았을지도 모른다. 그가 공부하고 익힌 것들은 현실을 살아가는 데는 아무 쓸모도 없다. 반면 브루노는 피에트로가 갖지 못한 단단한 안정감을 가진 듯 보인다. 육체노동자 특유의 실용성은 피에트로가 결코 갖지 못할 것이다. 게다가 세상을 떠난 아버지와 자신이 갈등하며 대화조차 하지 않은 기간에 브루노가 그 역할을 대신 해왔다는 걸 알게 되고, 그가 호감을 가졌던 여성 라라마저 브루노의 아내가 된다. 자기 삶을 꾸려나가는 일뿐 아니라 아들, 남자 역할까지 브루노에게 뒤처진다는 느낌이 피에트로를 괴롭게 한다.
〈여덟 개의 산〉은 찰나의 어린 시절을 빼고는 늘 엇갈리기를 반복하는 두 친구의 이야기를 담담히 좇는다. 혼란스러운 순간마다 서로에게 우주가 되어 친구의 삶에 질서를 부여해주고 혼란을 정돈해주는 이들은 우리에게 우정이 무엇인지를 알려준다. 우리는 결코 친구의 삶을 대신 살아줄 수 없다. 때로는 자기 세계에 처박힌 친구의 답답한 모습에 가슴을 치고, 때로는 친구가 건넨 진정어린 조언의 날카로움에 깜짝 놀라 반감을 느끼기도 한다. 하지만 불완전하게나마 그 곁에 진심을 다해 머물 순 있다. 그 모든 시간이 쌓이며 우리는 친구가 된다.
이탈리아의 한 산골 마을의 풍광은 둘의 우정을 위한 완벽한 무대다. 한적한 산골 마을의 광활한 사계는 무던한 아름답다. 이 풍광은 오랜 시간 생의 문제와 씨름하며 우정을 쌓는 피에트로, 브루노와 대비를 이룬다. 마치 초연한 태도로 버티고 서서 둘의 문제가 모든 인간이 겪는 일이라는 것을 알려주는 듯 말이다. 동시에 두 사람 우정의 최후 안식처가 되어주기도 한다. 우정이란 개인의 의지와 진심만으로는 어쩔 수 없는, 어쩌면 필연적 한계를 가진 인간들의 악전고투에 불과할지도 모르지만 그 일이 절대 하찮지는 않다고 말해주는 것이다. 이 영화를 보며 떠오르는 얼굴이 있었다는 것만으로도 커다란 평화를 얻었다. 보잘것없을지라도, 우리는 관계 맺으며 서로의 버팀목이 되어주는 중이다. 피에트로가 브루노에게 그러하듯이, 브루노가 피에트로에게 그러하듯이.
*영화 매체 〈씨네랩〉에 초청받은 시사회에 참석한 후 작성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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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비한 동물사전>사랑과 연대로 아웃사이더들을 치유하다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검은 괴생명체 옵스큐러스가 거리를 쑥대밭으로 만든 1926년 뉴욕. 미국 마법 의회 MACUSA의 피쿼리 대통령과 오러인 '퍼시발 그레이브스(콜린 파렐)'가 옵스큐러스를 추적하는 사이, 영국인 마법사 ‘뉴트 스캐맨더(에디 레드매인)'가 뉴욕에 도착한다. 자신이 마법의 가방 안에서 돌보던 천둥새를 본래 집에 풀어주기 위해 미국을 찾은 뉴트. 그러나 은행을 지나던 중 금은보화를 좋아하는 동물인 니플러가 가방을 탈출한다. 그 와중에 뉴트와 노마지 ‘제이콥(댄 포글러)’의 가방이 뒤바뀌면서 신비한 동물들이 대거 탈출하자 그들은 동물들을 찾기 위해 뉴욕 곳곳을 누비기 시작하고, 전직 오러 ‘티나(캐서린 워터스턴)’와 마법 의회 직원이자 자매인 ‘퀴니(앨리슨 수돌)'와 그들은 엮이게 된다. 한편, 옵스큐러스의 횡포가 점점 거세지는 가운데 마법 사회와 노마지 사회를 모두 혼란에 빠트리는 테러가 발생하고, 이방인인 뉴트는 정체를 알 수 없는 소년 '크레덴스(에즈라 밀러)'와 함께 예기치 못한 혼란의 중심에 선다.
2016년에 개봉한 <신비한 동물사전>은 <해리 포터> 세계관 속 프리퀄 시리즈의 시작을 알린 작품으로, 시리즈의 3편인 <신비한 동물들과 덤블도어의 비밀>의 4월 개봉을 앞두고 재개봉했다. 개봉한 지 5년이 지난 현시점에서 <신비한 동물사전>은 속편인 <그린델왈드의 범죄>가 혹평을 받으면서 상대적으로 재평가되고 있으며, 원작자이자 각본가인 조앤 롤링이 혐오 논란에 휩싸이면서 역설적으로 주목받는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딱히 영웅이라 보기 힘든 아웃사이더들을 전면에 내세워서 <해리 포터> 시리즈로부터 이어지는 ‘사랑’이라는 주제 의식을 스크린 위에 인상적으로 구현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신비한 동물사전>에 관해 본격적으로 이야기하려면, <해리 포터> 시리즈를 되짚어보고 넘어가야만 한다. 이때 <해리 포터> 시리즈를 한 단어로 표현한다면, 그 단어는 ‘사랑’이 될 것이다. 당장 사랑이라는 감정과 그 힘을 아는 해리와 알지 못하는 볼드모트의 갈등이 시리즈의 중심에 있는 것만 보더라도 알 수 있다. 실제로 시리즈 속 해리는 부모님과 선생님, 동료, 그리고 친구들의 사랑과 우정 덕분에 볼드모트의 위협으로부터 몇 번이고 생존하고 탈출할 수 있었다. 반대 양상도 나타난다. 마지막 호그와트 전투에서 볼드모트의 저주가 호그와트를 지키려는 이들을 헤칠 수 없었던 것이 대표적이다. 이는 해리가 자신을 보호해준 수많은 이들처럼 사랑하는 이들을 위해 스스로를 희생한 결과 모두에게 보호 마법을 걸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반면에 볼드모트에게는 연인도, 친구도, 동료, 가족도 없었다. 그는 죽을 때까지 사랑을 이해하지도, 느끼지도 못했다. 그래서 그는 덤블도어와 해리의 계획과 선택을 전혀 이해하지 못했고, 자신의 영혼이 불구가 될 때까지 영혼을 잘라내는 어둠의 마법인 호크룩스를 연달아 만들면서 파멸을 자초했다. 그래서 <해리 포터> 시리즈는 알버스 덤블도어는 사랑이 모든 마법 중에서 가장 강력하며 마법의 기초가 되는 근원적인 고대 마법이라고 강조한다. 이러한 측면에서 <해리 포터>는 철저히 예수의 사랑과 희생을 강조하는 기독교 신약의 알레고리로 무장한 작품으로 보이기도 한다.
이는 <신비한 동물사전>도 마찬가지다. <해리 포터>의 프리퀄 영화는 사랑이라는 주제를 본인만의 방식으로 녹여낸다. 그 중심에는 새롭게 등장한 캐릭터들, 뉴트 스캐맨더, 티나 골드스틴, 퀴니 골드스틴, 제이콥 코왈스키가 있다. 이들은 모두 '아웃사이더'라는 공통점을 지닌다. 동물과의 소통이 더 편한 마법사인 뉴트는 대인관계에 굉장히 서투르다. 티 나는 자신이 맡은 일을 제대로 해내지 못했다는 이유로 미국 마법 의회에서 배척받는 인물이다. 그녀의 여동생인 퀴니는 선천적으로 사람의 마음을 읽는 능력을 지닌 강력한 레질리먼스라서 주변 사람을 불편하게 만든다는 이유로 미움을 산다. 제이콥 또한 변화한 미국 사회에 적응하지 못한 제1차 세계 대전의 참전용사로 묘사된다.
영화는 이 네 아웃사이더의 선택을 통해 사랑이라는 주제를 전달하고 있다. 옵스큐러스를 둘러싼 혼란과 뉴트의 가방에서 튀어나온 신비한 동물들로 인해 의심과 두려움이 가득한 관계였던 네 주인공. 그들은 뉴트를 돕는 일련의 여정을 통해 우정과 로맨스를 쌓고, 하나의 공동체를 형성해가면서 서로에게 필요했던 위로를 얻는다. 퀴니는 뉴트에게 마음을 받기만 하는 사람이 아니라, 마음을 주는 사람을 만나보는 것이 어떻겠냐며 그의 아픔을 어루만진다. 티나와 뉴트는 서로의 길을 응원하며, 뉴트는 빵집을 차리려는 제이콥의 꿈을 이루어 줄
지렛대를 놓아준다. 또 제이콥은 늘 외롭게 살아왔던 퀴니에게 따뜻함을 선사한다. 이렇게 영화는 소외받는 이들이 서로 어떻게 힘이 되어주고 치유해 줄 수 있는지를 중점적으로 보여준다.
이때 네 아웃사이더의 연대는 그 안에 속하지 못하는 다른 아웃사이더들의 존재 덕분에 더욱 강한 인상을 남기는 듯 보인다. 크레덴스가 대표적인 인물이다. 그는 어머니라고 생각한 사람에게 학대당한다. 그가 조력자이자 구원자로 믿었던 그레이브스는 이용가치가 떨어지자 크레덴스를 가차 없이 버린다. 이렇게 마법사 사회와 머글(노마지) 사회로부터 모두 버림받은 존재인 그는 네 주인공과 달리 자신을 보듬어줄 공동체를 발견하지 못하고, 끝내 혼자 남는다. 이러한 대조는 개인적으로, 또 사회적으로 충분히 사랑받지 못한 이들이 겪을 수 있는 어려움을 단적으로 드러낸다.
이에 더해 영화의 최종 흑막인 '그린델왈드(조니 뎁)' 역시 아웃사이더라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사실 아웃사이더라는 개념은 개인의 주관적 인식에 의해 결정된다. 자신이 공동체와 사회로부터 배제당하고 소외당한다는 서사를 가진다면 누구나 자신을 아웃사이더로 여길 수 있다. 이는 그린델왈드가 마법사 사회를 향해 자행한 자신의 테러를 합리화하는 방식이기도 하다. 그는 마법사들의 존재를 비밀에 부치는 법률을 두고 “이 법은 대체 누굴 위한 거지? 우리? 아니면 저들? 난 더 이상 이 법을 따르지 않겠다”라고 말한다. 마법사들이야 말로 마법사가 아닌 노마지(머글)에 의해 차별과 공격을 당하고 있으니 자신도 아웃사이더이고, 따라서 그들에게 반격하는 것은 정당하다는 것이다.
이처럼 스스로에게 피해자 서사를 부여하고, 실재하든 아니든 외부의 적을 가정하여 공격성을 표출하는 것은 그린델왈드의 모티브인 히틀러와 나치의 서사임이 분명해 보인다. 동시에 혐오와 증오가 점점 더 중요한 정치적 개념으로 떠오르는 현대 사회에서 경계해야 할 서사이기도 하다. 즉, <신비한 동물사전>은 아웃사이더라는 틀을 깨고 나와 다른 이들과 공존할 것인지, 아니면 그 틀 안에 갇혀서 반목할 것인지 그 선택에 대해 묻는 영화인 것이다. 이는 2020년에 트랜스젠더 혐오 논란에 휩싸였고, 그 결과 해리포터 20주년 다큐멘터리에도 모습을 드러내지 못한 원작자 조앤 롤링의 태도가 더욱 실망적인 이유라고 할 수 있다.
한편 <신비한 동물사전>은 사랑, 구체적으로는 아웃사이더들의 연대라는 테마를 인간 사이에서만 국한시키지는 않는다. 덕분에 영화의 메시지와 주제의식은 더욱 효과적으로 전달된다. 그 중심에는 신비한 동물들이 위치한다. 본작에서는 <해리포터> 시리즈에서 살짝 모습을 비추고 존재를 암시했던 여러 동물들이 본격적으로 존재감을 과시하고 있다. 니플러, 스노잉 이블, 보우트러클과 천둥새 등이 뉴트와 맺는 유대 관계는 마법사와 노마지(머글) 간의 갈등과 함께 영화의 두 축을 나눠 맡는다.
뉴트는 각 개체에 알맞은 소통 방식을 정확히 알고 있으며 각 동물들이 무엇을 필요로 하고 좋아하는지를 알고 있다. 그렇기에 그는 동물들을 자신의 소유가 아닌 동등한 생명체로써 존중할 수 있고, 그들이 없어졌을 때도 더 큰 사고가 발생하기 전에 신속히 되찾을 수 있었다. 역으로 보면, 뉴트가 신비한 동물들을 자신과 동등한 개체로 대했기에 그들도 뉴트가 필요로 할 때마다 도움을 제공하기도 한다. 그렇기에 옵스큐러스와 그린델왈드가 초래한 위기를 극복하는 데 있어서 신비한 동물들도 자연스레 결정적인 역할을 할 수 있었던 것이다.
이처럼 <신비한 동물사전>은 주류 마법사 사회에서 배제당한 아웃사이더뿐만 아니라, 마법사와 동물들 간의 유대감에도 상당한 분량을 할애하며 그들이 함께 성장해 나가는 과정을 공들여 묘사한다. 그러니 이 영화를 보고서 남녀, 부모와 자식 간의 개인적 사랑을 넘어서는 공동체적, 사회적 차원의 사랑을 느끼지 않을 수는 없을 것이다. 그렇기에 <신비한 동물사전>은 거대한 상업 영화이자 판타지 영화이기 이전에 왜 사회적으로 소외되는 이가 없는 그런 공동체가 필요한지, 왜 다양성이 공존할 수 있는 환경이 중요한지를 자연스럽게 환기하는 드라마라고 할 수 있다.
다만 <신비한 동물사전>에는 아쉬움도 적지 않다. 뜻깊은 주제와는 별개로 장단점이 뚜렷한 스토리텔링 방식을 선택했기 때문이다. <불사조 기사단>부터 계속해서 해리 포터 시리즈의 메가폰을 잡고 있는 데이비드 예이츠 감독은 이번 작품에서 옵스큐러스의 정체와 관련된 맥거핀을 중요한 영화적 장치로 활용한다. 이는 <쿠쿠스 콜링>이라는 추리소설을 집필하기도 한 조앤 롤링의 영향도 있어 보인다.
실제로 이 맥거핀은 극의 분위기를 조성하고 영화의 리듬감을 조절하며 서로 다른 두 개의 플롯을 연결한다. 크레덴스가 등장하는 스릴러 내지는 미스터리 호러 장르와 뉴트가 등장하는 어드벤처 장르를 오가며 다채로운 매력을 보여주는 것이다. 또한 이 맥거핀은 1920년대라는 시대적 배경과 어우러지면서 호그와트를 배경으로 한 <해리 포터>의 밝고 동화적인 분위기가 아닌 <신비한 동물사전> 시리즈만의 어둡고 중후한 분위기를 형성하는 데도 성공한다.
그러나 맥거핀이 주는 반전을 맛보기 전까지 과정이 다소 늘어지는 점은 명백한 단점이다. 주요 인물들과 신비한 동물들을 소개하고 <해리 포터> 시리즈와의 연결점을 소개하는 단계에서 딱히 필요치 않은 장면이 끼어들어 극의 진행을 방해하는 부분이 적지 않다. 그럼에도 이는 전체적으로는 실보다는 득이 많았기 때문에, 기존 시리즈와 차별점을 두기 위해 충분히 시도해 볼 만했던 연출과 편집 상의 도전처럼 보이기는 한다. 이러한 맥락에서 보면 여러 측면으로 자신만의 매력을 구축해 관객들을 만족시킨 <신비한 동물사전>은 몇 가지 단점이 있다 하더라도 충분히 성공적인 시리즈의 시작이라고 할 수 있다.
A(Acceptable, 무난함)
사랑과 연대로 분노와 혐오를 극복하려는 아웃사이더들의 안정적인 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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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름을 부른다는 것
* <콜 미 바이 유어 네임>과 <레이디 버드>의 스포일러가 불친절하게 마구잡이로 들어 있습니다.
짙은 녹색이 산마다 성큼성큼 내려앉던 여름 내내, 그 폭염 속에서 어쩐지 나는 <콜 미 바이 유어 네임>을 문득문득 떠올렸다. 내가 그 영화를 본 건 4월이었는데, 마음에 들지 않는 점도 있었는데... 그럼에도 마음에 몇 달씩 이어지는 그림자를 남길 만큼 강렬하고 아름다운 이미지로 가득한 영화였다.
1983년 여름날, 이탈리아에 있는 별장에서 엘리오(티모시 살라메)는 여름 휴가를 보내고 있다. 교수인 아버지, 여러 가지 언어를 섞어 말하는 가족들... 상당히 지적인 분위기에서 엘리오 또한 피아노도 치고 기타도 치고 수영도 하면서 나른한 여름을 하루하루 채우고 있다.
그러던 어느 날 아버지를 도울 연구원으로 올리버(아미 해머)가 찾아오고, 한 계절 같은 두 사람의 사랑이 전개된다. 그러는 내내 등장하는 건물이며 호수, 햇살과 나무, 교수인 아버지 때문에 등장하는 슬라이드, 녹슨 유물들... 영화에 쓰인 소품이나 배경이 풍겨내는 아우라는 어마어마하게 우아하고 압도적이어서 보는 마음에 깊은 발자국을 남겼다. 아미 해머의 얼굴은 80년대 화보에서 튀어나왔다 싶을 만큼 아름다웠고, 티모시 살라메에게서는 옛 유럽 명화를 볼 때 들었던 느낌이 물씬 풍겼다. 비단과 진주, 모피와 비싼 물감 재료 같은 것들이 오가는 곳에서 초연하게 앉아 있을 것 같은 귀족적인 분위기.
영화 분위기 자체가 그랬다. 그러니 언제 어디서 로맨스가 시작돼도 이상하지 않을 배경이었고, 다소 짓궂은 성적 묘사에도 불구하고 영화가 고고해 보이게끔 하는 힘이 있었다. 영화가 여성 배우를 다루는 방식을 비롯해 마음에 들지 않는 이유를 몇 개나 꼽을 수 있는 내 마음에조차, 아름다운 풍경과 선명한 상징들이 움푹 자국을 남기는 영화였다.
그러니 여름 한 철의 열매처럼 부드럽게 익었다가 기억 저편으로 사라져 버릴 첫사랑의 조각이 내 마음도 스친 것을 부정할 수 없다. 영화 속에서 계속 윙윙거리던 파리가 마지막까지 티모시 살라메의 몸에 들러붙어 있던 것처럼, 극중 엘리오의 마음만큼이나 내 마음에도 이 영화는 진득하게 윙윙거렸다. 영화에서 느껴지던 여름의 열기를 현실에서 느낄 때면, 그 여름 한가운데서 어느 책이든 책 한 권을 펼칠 때면 나는 <콜 미 바이 유어 네임>의 한 장면을 나도 모르게 떠올리곤 했다.
고요하지만 깊이 파고든 엔딩 장면만큼이나 마음을 건드린 부분은 영화 제목이기도 한 "네 이름으로 날 불러, 난 내 이름으로 널 부를게." 라는 대사였다. 엘리오와 올리버, 올리버와 엘리오. 어딘가 비슷한 음운이 많이 들어있는 두 이름이 부드럽게 섞이는 것도 좋았다. 이름이란 얼마나 그 사람을 다 담고 있는 것인가. 이름을 주는 것이 마치 다 주는 것처럼 여겨져서, 미성년자 건드린다고 언짢아하던 와중에도 그 대사에서만큼은 심장이 쿵 내려앉는 기분이었다.
이름을 준다는 것에서 심장이 내려앉은 데에는 이유가 있다. 분명 이름은 정체성을 드러내고, 반대로 정체성을 빚어내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어린 시절 나는 할머니가 작명소에 돈 주고 지어 왔다는 내 이름이 정말 싫었다. 민지, 지혜, 유미 같은 이름들처럼 주변에 많이 보이면서 나긋나긋 예쁜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아예 유니크한 이름도 아니었다. 주류에 속하지도 홀로 고고하게 서 있지도 않는, 이도저도 아닌 모습이 정말로 나 같이 느껴져 더욱 싫었다. 내 이름을 받아들이고 좋아하게 된 건 내 나름대로 의미 부여를 한 후의 일이었다.
그러나 내 이름 어딘가가 마음에 들지 않는 것, 이름으로 대표되는 나의 세계 어딘가가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이 비단 과거의 나만은 아닐 것이다. 어디 가서 "평범하다"고 말할 수 있는 소시민적 삶을 살아온 사람들 사이에서라면 거의 인류 보편적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흔한 경험이다. 그리고 이 흔한 사춘기를, 흔한 경험을 반짝거리는 이야기로 묶어낸 이름이 <레이디 버드>다.
특이한 경험을 그려낸 영화를 낮잡아보자는 것은 아니지만, 사실 세상 어딜 가도 두 번은 일어나지 않을 것처럼 독특한 사건이란 극보다 더 극적이어서 그 사건 자체만으로도 쉬이 눈길을 끌 수 있다.
그러나 보편적인 이야기를 묶으면서도 사랑스럽고 눈에 띄게 그려낼 수 있다면 그건 정말 재능이 아닐까? 훌륭한 배우, 훌륭한 극작가에 이어 훌륭한 감독으로도 이름을 올린 그레타 거윅은 본인 경험과 배경을 상당수 녹여내면서도 인류 중 상당 비율이 공감할 수 있을 법한 이야기를 만들어냈다.
시얼샤 로넌이 분하는 "레이디 버드"는 누가 봐도 절대 본명이 아니다. 크리스틴이라는 멀쩡한 (그리고 아마 어른들이 "분별 있는 이름"이라 하실 법한) 이름을 두고 스스로의 이름을 만든다. 실제로 레이디 버드가 재조립하고자 했던 건 이름뿐 아니라 그 이름 뒤에 있는 생활 그 자체였다. 자신이 사는 동네, 가족의 자산 규모, 학교에서 자신의 위치, 어머니나 친구나 다양한 주변인들과의 관계... 영화는 레이디 버드라는 단 한 사람의 주인공을 세우고, 주변인과 그 동네를 촘촘하게 보여주면서 레이디 버드의 세계에서 우리의 10대를 끌어낸다.
지루한 고향을 떠나 어딘가로 떠나기를 동경하는 삶, 자신을 둘러싼 모든 것들을 견딜 수 없어지는 순간. 빚부터 직업까지 수많은 역할들로 짓눌려 있는 엄마의 삶을 볼 때마다, 도저히 저렇게는 되고 싶지 않다 생각하는 오빠의 모습을 볼 때마다, 자신이 다니는 가톨릭계 학교의 면면이 마음에 들지 않을 때마다, 하이틴 로맨스 주인공과 친구처럼은 도저히 보이지 않는 자신과 친구를 볼 때마다, 레이디 버드는 격렬하게 반응한다.
차에서 뛰어내리고, 이름을 지어내고, 머리를 빨갛게 물들이고, 여러 가지 거짓말을 타래로 엮어가며 자기 눈에 반짝거리는 것들로 자신을 만들어간다. 자신만의 성(城)을 쌓아 올리는 소녀의 모습은 분명 허영에 가깝지만 딱히 얄미울 것도 심각해질 것도 없다.
왜냐하면 딱히 심각하지 않기 때문이다. 레이디 버드는 0으로 수렴하는 수학 점수를 받으면서 수학 경시대회에 나가겠다고 한다든지, 온통 수녀님뿐인 선생님 차를 신혼여행 떠나는 웨딩카처럼 장식한다든지, 의외로 보기보다 대담하게 사고를 계속 쳐대면서 도저히 이 곳을 견딜 수 없다고 말한다. 그러나 10대의 학교에 선생님으로 계신 수녀님의 눈에는 보인다. 레이디 버드가 실은 새크라멘토를 꽤 좋아하고 있다는 사실이. 물론 레이디 버드 본인도 아직은 모르는 일이다.
시얼샤 로넌, 그레타 거윅영화의 배경인 새크라멘토가 그레타 거윅 본인의 고향인 데다가 레이디 버드의 본명인 크리스틴은 그 어머니의 이름이라고 하니, 그레타 거윅의 자전적 이야기가 아니냐는 질문이 쏟아졌다. 그러나 그레타 거윅은 본인과 본인의 고향을 참고해서 만들었을 뿐 자전적 이야기는 아니라고 말했다. (나와 친구는 나오면서 "그냥 창피해서 그렇게 말한 거 아니야? 본인 얘기 맞을 것 같은데..."라고 생각하긴 했지만.) 분명 레이디 버드가 하는 행동들은 보편적인 누구의 경험이라기엔 좀 특이하지만, 거기서 느껴지는 감정들은 인간 보편적이기 때문일 것 같다.
결국 다른 우리 모두처럼, 즉 어른이 된 과거의 소녀들처럼 레이디 버드 또한 벗어나려던 모든 것들을 하나씩 받아들이기 때문이다. 프롬 파티에 함께 갈 멋진 남자친구와 학교에서 제일 "쿨한" 친구 대신, 파티 날 집에서 울적하게 앉아있던 친구와 만나 자기들만의 방법으로 파티를 즐긴다. 집을 떠나 멀리까지 대학을 가지만 결국 그곳에서 하고 싶은 대로 다 해본 후에 전화를 거는 곳은 집이고, 전화해서 하는 첫 마디는 "나 크리스틴이야"라고 자기 이름을 밝히는 것이다.
끊임없이 벗어나고자 하는 이유 중에는 자기의 것들이 지루하고 지긋지긋하게만 느껴지는 마음도 있지만, 한편으로는 벗어나려는 자신을 끊임없이 받아들여주는 끈을 촘촘히 확인하려는 마음도 있다. 너무 사랑하고 또 너무 가까운 이들과 나 사이에는 그런 원심력과 구심력이 공존한다. 엄마에게 쾅쾅 소리를 치다가도 어느 순간 조용히, 지금 이 모습이 나의 베스트라고 해도 나를 사랑할 거냐고 빤히 묻는 레이디 버드의 눈에는 그 마음이 정직하게 어려 있다.
원심력과 구심력은 힘의 크기가 같아서, 어느 하나가 이기는 일이 없다. 우리 모두와 사춘기와 마찬가지로 레이디 버드의 사춘기도 그렇게 팽팽한 원을 그리며 지나가지만 그런 날도 언젠가는 느슨하게 풀어진다. 조수석에서 짜증을 내다 차에서 뛰어내리던 레이디 버드가 운전석에 올라보고서야, 엄마가 운전할 때 어떤 생각을 하며 어떤 풍경을 바라보았을지 톺아보듯이. 그렇게 새크라멘토의 지평선을 바라보며 운전하는, 꼭 닮아 있는 엄마와 딸의 얼굴이 나란히 스크린 위에 그려지듯이.
비로소 크리스틴이라는 이름을 받아들이고 가족과 주변을 돌아보는 레이디 버드처럼 나도 내 이름에 나름의 의미를 붙이고, 입 속의 혀처럼 너무 당연하던 주변을 새삼스럽게 바라보는 마음이 든 후에야 나를 그럭저럭 받아들일 수 있었다. 이 영화를 보고 돌아와 일기에 다정하게 내 이름을 괜히 한 번 써보았다. 몇 글자 되지도 않는 이름 하나에는 나를 둘러싼 이들의 애정이 들어있고, 타자이면서도 나 자신 못지않게 가까운 위치에서 애정을 보내주는 그들과 나 사이의 거리가 너무 가깝지도 멀지도 않게 내 자리를 찾아 헤맸던 어린 시절이 들어 있었으므로. 레이디 버드는 그렇게 우리 모두의 이름이다.
너를 사랑해, 레이디 버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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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신을 마주하지 못한 이들에게 전하는 위로 같은
라일리는 촉망받는 미식축구 선수이다. 학교에서도 주목받는 인기남인 데다 운동선수로도 각광받고 있는 그의 삶은 문제가 없어 보인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스카웃해가겠다는 학교도 있으니 그의 삶은 그야말로 탄탄대로다. 그런데 아무도 말하지 못한 그의 핸드폰 속 세계에는 남자들의 몸자랑으로 가득한데.... 그는 자신의 정체성을 정말 모호하게 인지하고 있는 것 같지만 그저 자신의 삶의 방식에 불만이 없기 때문에 정체성에 대해 깊이 탐구할 생각도 딱히 없는 것 같다. 그는 미식축구 선수로서 아드레날린이 가득한 삶에 이미 익숙해져 있고, 자신의 정체성을 숨기고 연기하는 것이 자연스러운 그의 삶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리암이라는 친구와 안면을 트게 되면서 그의 온전했던 삶이 혼란스러워지기 시작한다.
1. 잘 짜여진 운동선수의 삶 속 어울리지 않는 그의 정체성
흔히 남자가 남자를 좋아한다고 하면 그 남자의 행동이 다분히 여성스러울 것이라는 편견을 갖게 된다. 하지만 사회가 규정한 기준보다 여성스럽다고 해서 전부 다 게이도 아니거니와 사회가 규정한 기준에 맞다고 해서 게이가 아닌 것도 아니다. 라일리는 학교에서도 인기 많은, 소위 주류 문화에 있는 사람처럼 보였기 때문에 아무도 그의 정체성을 의심하지 못했다. 더군다나 남성미가 뿜뿜하는 운동선수였기 때문에 더 의심하지 못했다. 미디어에서 보여지는 게이는 여성스러운 남자들의 모습으로 많이 어필되어 왔는데, 그런 모습과는 판이하게 다르게 보이기도 하고 말이다. 겉보기에 그는 착하고 인기많은 이성애자 남자 같아 보였다. 항상 아버지에 의해 운동 위주의 삶을 살아왔던 그였기 때문에 그는 커가면서 자신의 취향을 잘 알았지만 가족이라는 울타리 안에서 자신이 해야할 역할을 알아서 잘 연기한 착한 아들이었던 것이다.
그는 그에게 주어진 환경적 이득을 포기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학교에서 인기도 많고, 가족들에게도 사랑받는 아들이었던 이 포지션을 그는 포기할 수가 없었을 것이다. 사람은 결국 환경의 노예라서, 좋게 말하면 잘 짜여진 생활이고, 나쁘게 말하면 통제적인 환경에서 자신을 향한 기대를 놓아버리기엔 그는 너무 어린 나이이기도 했다. 자신의 정체성을 똑바로 마주하기엔 그를 둘러싼 환경이 그를 두렵게 했고, 그렇다고 무시하기엔 그의 정체성이 그의 삶에 미치는 영향이 너무 커져 버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그의 모습이 참 보면 볼수롤 안타까웠다.
2. 리암이라는 존재
라일리의 온전한 삶에 돌을 던진 친구가 있다. 그 친구는 리암으로, 학교에서 게이라는 사실이 꽤나 공공연하게 퍼져 있다. 하지만 그는 이미 자신의 정체성을 직시했고,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라일리와는 다르게 자신의 삶에 대해 긍정한다. 라일리는 자신이 살고 싶은 삶에 자신의 정체성은 필요가 없었기 때문에 혼란을 느꼈지만 리암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삶이니 긍정한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오히려 본능에 충실한 삶을 살고 있는 것 같아 보이기도 했다. 하지만 통제적인 삶을 살던 라일리에게 그의 존재는 꽤나 큰 충격이었을 것이다. 몸은 리암에게 끌리고 있으면서도 이성은 그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라일리의 위선적인 태도는 리암을 질리게 했지만 라일리에게는 일종의 통과의례였다고 생각한다. 아직 자신에게 솔직할 수 없는 그에게 한 번 정도는 해야할 일종의 몸부림이었다고나 할까. 그는 그를 둘러싼 환경을 뚫고 나와야 했기 때문이다.
3. 남의 시선보다는 내 자신이 중요하다는 당연한 메시지
이 영화는 쿨해 보이는 겉모습과는 달리 자유롭게 자신을 표현하지 못하고 살아온 라일리의 자아 찾기 프로젝트와 같은 영화라고 할 수 있겠다. 그는 언제나 부모님을 위해서 자신을 숨기고 친구들과의 평가에 신경쓰면서 자신에게 가장 소홀했던 사람이었다. 보다보니, 이 영화는 표면적으로는 LGBTQ영화이지만 '자신을 가장 신경쓰면서 살아야 한다'는 보편적인 메시지를 담고 있다. 뭐, LGBTQ라고 하면 대단한 메시지가 있을 것 같지만 사실 성소수자들도 함께 살아가야만 하는 사람들이기에 당연한 것이 아닌가 싶다. 세상의 주류 문화에 치여 자신을 돌보지 못한 사람들이 많은 것 같아 괜히 미안해졌다.
내 정체성에 대해 깨달았지만 내 자신을 표현하지 못함에서 나오는 슬픔을 나같은 이성애자들이 어떻게 이해한다고 말 할 수 있을까. 하지만 영화 속에서만큼은 라일리의 여자친구가 그를 온전히 이해할 있어 참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많은 소수자들이 라일리처럼 자신의 정체성을 숨기고 살고 있을 것이고, 온전히 나 자신이 이해받지 못할 것이라는 생각에 고통받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런 사람이 있다면 이 영화를 추천해주고 싶다. 어떤 선택의 기로에 서 있을 때, 가장 먼저 귀기울여야 할 사람은 자기 자신이라는 메시지를 주기 위해서. 내 마음에 귀 기울이는 것이 '이기적이면 어떡하지'라는 고민을 하는 사람이 있다면, '이럴 땐 이기적이어도 괜찮다'는 위로를 건네고 싶을 때 추천하면 좋을 것 같다.
이런 영화를 보고 글을 쓰고 있지만 사실 내가 어떤 말을 해주어야 할 지는 모르겠다. 내가 그들을 이해한다고 말하는 것도 위선 같고, 그들에게 공감한다는 말을 하는 것도 너무 재수없어 보일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는 내 주변에 라일리 같은 친구가 있다면 라일리의 여자친구와 같은 포지션에 있고 싶다. 그렇게 그들의 정체성을 편하게 이야기해줄 수 있는 사람이 되는 것이 가장 최선이 아닐까 생각하면서 극장을 나왔다.
이번 '서울프라이드영화제'를 다녀오면서 내가 봐왔던 영화들의 범주가 더 넓어진 것 같아 좋았다. 물론 그전에도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 등 LGBTQ를 봐오긴 했지만 더 다양한 성수수자들의 입장을 간접적으로 체험할 수 있게 되어 내 상식 선에서는 생각할 수 없었던 여러 생각들이 스쳤다. 이번 영화제를 다녀오면서 나같은 이성애자들은 어떤 태도를 정립하는 것이 소수자들에게 존중을 표시하는 길일지를 고민하게 되었다. 너무 이해한다고 말하는 것도 거짓말 같고, 너무 감정적으로 공감하는 것도 과해보일 것 같아서였다. 그래서 내가 내린 결론은 한 발치 떨어져서 그들의 삶에 민폐가 되지 않는 것이 중요하겠다는 결론이었다. 적당한 수준의, 선을 넘지 않는 무관심을 표시하는 것, 그것이 곧 답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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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7살인 내가 깨어나 보니 37살?!
안녕하세요!
영화/OTT 콘텐츠 큐레이션 웹 매거진 '씨네랩'입니다.
45편의 작품에서 감독을 맡은 알렉스 하드캐슬 감독과 믿고 보는 배우 레벨 윌슨의 만남!!
바로 <시니어 이어>입니다.
'아는 맛이 제일 무섭다'는 말이 이 영화를 나타내기 딱 좋은 표현이라고 생각하는데요.
전형적인 하이틴물이지만, 정말 가볍게 보기 좋은 2022년 버전 하이틴 영화입니다.
누가 출연하나요?
스테파니 | 레벨 윌슨
FILMOGRAPHY
시니어 이어 (2022)
어쩌다 로맨스 (2019)
캣츠 (2019)
AWARDS
CinEuphoria Awards, 2021
MTV Movie+ TV Awards
AACTA, 2020
어떤 내용인가요?
치어리더팀에서 단장을 맡고 있으며, 멋진 남자친구까지 있는 스테파니!
이루고 싶은 걸 모두 이룬 스테파니의 마지막 소원은 바로 졸업 파티에서 퀸이 되는 거였습니다.
경기 전, 멋진 치어리딩을 선보이는데, 하이라이트 부분에서 착지 사고가 나고 말았습니다.
그렇게 스테파니는 20년동안 코마 상태에 빠지게 됩니다.
스테파니가 깨어나고 나서 낯선 얼굴, 낯선 환경에 혼란을 겪게 되는데요.
스테파니는 다시 학교에 돌아가기로 결심하고,
학교 교장이 된 친구에게 말해 고등학교에 돌아가게 됩니다.
20년이나 지났기에 많은 변화가 일어난 학교에서 스테파니는 잘 적응하고,
졸업 파티 퀸이 될 수 있을까요?
Reviews
"2022년 버전 하이틴 로맨스"
유명한 하이틴 영화를 보면 대부분 2000년대 초반에 나와 현 시대에 보면 조금 이해가 안 가는 부분도 있는데
<시니어 이어>는 2000년대 초반에 이야기와 2022년 현재의 이야기까지 담아 시대 변화에 따른 사회 변화, 학생들의 변화 등을 비교하면서 보는 재미가 있었습니다.
미국 영화 <21 점프 스트리트>와 한국 드라마 <서른이지만 열일곱입니다>까 떠오르는 이야기였습니다.
"기대되는 신예 배우들의 대거 등장"
<시니어 이어>의 조연 배우로 신예 배우들이 대거 등장하는데요.
물론 해외에서는 많은 활동을 하였지만, 한국에서는 처음 보는 배우들도 있었고요.
레벨 윌슨이 원탑 주인공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모든 배우들이 기억에 남을 정도로 매력적인 연기를 펼쳤습니다.
"추억의 팝송"
주인공이 2002년에 고등학교를 다녔다 보니 그 시절 팝송이 OST로 많이 나왔는데요.
신나는 추억의 팝송과 함께 영화를 즐길 수 있어 더욱 재밌었던 것 같습니다.
(추억의 팝송 뮤비 패러디도 보실 수 있답니다!)
지금까지 <시니어 이어>를 간단하게 살펴보았는데요.
어떠셨나요?
<시니어 이어>에는 패션과 하이틴 영화를 좋아한다면 알만한 특급 카메오가 등장하는데요.
궁금하다면 넷플릭스에서 <시니어 이어>를 시청해보세요!
씨네랩 에디터 Hiz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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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당황스럽지만 결국 빨려들게 되는 그들의 우주
닥터 스트레인지: 대혼돈의 멀티버스
(Doctor Strange in the Multiverse of Madness , 2022)
“당황스럽지만 결국 빨려들게 되는 그들의 우주”
등급 : 12세 관람가
장르 : 액션, 판타지, 모험
러닝타임 : 126분
감독 : 샘 레이미
출연 : 베네딕트 컴버배치, 엘리자베스 올슨, 베네딕트 웡, 레이첼 맥아담스, 치웨텔 에지오프, 소치틀 고메즈
개인적인 평점 : 3.5/5
쿠키 영상 : 2개 (엔딩 크레딧 중간에 1개, 엔딩크레딧 후 1개)
닥터 스트레인지: 대혼돈의 멀티버스 줄거리
끝없이 균열되는 차원과 뒤엉킨 시공간의 멀티버스가 열리며 오랜 동료들, 그리고 차원을 넘어 들어온 새로운 존재들을 맞닥뜨리게 된 ‘닥터 스트레인지’. 대혼돈 속, 그는 예상치 못한 극한의 적과 맞서 싸워야만 하는데….
<스파이더맨: 노 웨이 홈>의 타임라인에서 얼마 지나지 않은 시점, 뉴욕에 남아있던 스티븐(닥터 스트레인지)은 전 연인 크리스틴의 결혼식에 참여하게 된다. 스티븐은 아직 크리스틴에 대한 미련과 후회가 남아있지만 크리스틴의 “행복하지?”라는 질문에 애써 괜찮은척, 행복한 척을 해 보인다. 그가 아주 지독한 후회를 느끼고 있는 찰나, 포탈이 열리며 괴물과 함께 멀티버스의 키를 쥐고 있는 소녀, ‘아메리카 차베즈’가 등장한다. 차베즈와 대화를 나눠본 결과, 여러 우주가 위험에 빠져있다는 걸 알게 된 닥터 스트레인지는 어벤져스 중 가장 유능한 마법사였던 완다에게 찾아간다. 그리고 자신이 살고 있는 세계와 다른 세계를 구하기 위해 여러 우주를 떠돌게 된다.
작년 12월 멀티버스의 시작을 알렸던 <스파이더맨: 노 웨이 홈>의 개봉 이후 5달 만에 <닥터스트레인지: 대혼돈의 멀티버스>가 개봉했다. 제목부터 “우리는 이제 본격적으로 멀티버스를 팔 거야!”라고 선언한 이 영화는 말 그대로 혼란스러운 멀티버스 이야기였다. 영화를 보며 이 캐릭터들을 더 사랑하게 됐고, 2시간 동안 아주 즐겁게 즐겼다. 영화 안에 이것저것 차려진 메뉴가 참 많아 음미하기에 바빴다. 근데 정리가 덜된 밥상을 마음껏 즐기려다 보니 조금은 피곤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닥터 스트레인지다운 눈호강
2016년 <닥터 스트레인지>가 개봉했을 때, 새로운 유형의 히어로 닥터 스트레인지에 크게 놀랐던 기억이 있다. 지금껏 보지 못한 신선한 스티븐의 능력과 서사, 베네딕트 컴버배치 배우가 뿜어내는 매력. 그리고 <닥터 스트레인지>라는 영화가 보여준 웅장한 시각적 효과, 흔히 말하는 눈뽕! 그 눈뽕에 머리가 다 어질어질할 지경이었다.
그래서 <닥터 스트레인지: 대혼돈의 멀티버스>가 개봉한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사실 ‘멀티버스’라는 키워드보다는 스티븐의 능력을 어떻게 사용할지, 이번엔 어떤 공간들을 보여줄지가 가장 기대됐다. <노 웨이 홈>에서도 스티븐이 만들어낸 공간을 볼 수 있었지만 다소 어색한 CG에 실망했던지라.. 그래도, 이번엔 닥터 스트레인지의 2번째 솔로 영화인데! 괜찮겠지!! 하며 희망 회로를 불타게 돌렸다. 그리고 희망 회로를 불태운 만큼 이 영화는 내가 만족할만한 퀄리티의 시각효과를 보여주었다. 첫 관람은 꼭 왕왕 큰 용아맥에서!!를 외친 보람이 있을 정도로 말이다. 캐릭터의 색을 잘 살린 디자인과 다양한 우주의 모습, 반사의 활용, 영화의 메인 컬러 빨간색을 잘 활용해 시각적인 공포를 높인 부분, 역동적임과 동시에 긴장감을 높여주는 화면 연출까지 마음에 쏙 들었다.
지금껏 본적 없는 어둡고 잔인한 마블 영화
마블 영화라고 하면 보통 생각하는 이미지가 있다. 어린 자녀가 있는 가족이 봐도 괜찮은 영화, 슈퍼히어로 영화. 많은 관객들이 생각하는 마블의 이미지다. 하지만 <닥터 스트레인지: 대혼돈의 멀티버스>는 좀 다르다. 영화가 개봉하기 전부터 배우들이 ‘새로운 마블 영화’, ‘어두운 분위기의 영화’라고 여러 번 언급하기도 했고, 예고편을 봐도 어느 정도 예상을 할 수 있듯이 <닥터 스트레인지: 대혼돈의 멀티버스>는 매우 어두운 톤을 갖고 있는 영화다.
분위기가 전보다 진중해지기도 했고, 어둡고 공포스러운 장면들이 꽤 많다. B급 공포 영화의 명인으로 불리는 ‘샘 레이미’ 감독 특유의 역동적인 화면과 ‘마블 영화’라는 틀을 깨며 가감 없이 집어넣은 점프 스퀘어, 다소 잔인하게 느껴질 수도 있는 상처와 액션 신들, 좀비물처럼 느껴지는 요소들도 꽤 많기에 ‘아이들과 함께 보는 마블 영화’라는 이미지는 잠깐 접어두는 게 좋을 것 같다.
‘마블 영화’라는 거대한 타이틀을 달고 있음에도 꿋꿋하게 자신의 색을 지켜낸 샘 레이미 감독의 능력에 감탄했다. 모 영화 같은 경우엔 마블 영화지만 너무 자신의 색을 지키는 바람에 말아먹은 경우도 있었는데… <닥터 스트레인지: 대혼돈의 멀티버스>는 닥터 스트레인지라는 정체성을 어느 정도 지키며 감독의 개성을 표현하는 데 성공했다. 닥터 스트레인지, 마블 영화로 이런 걸 한다고?
영화 개봉 전 공개된 홍보 영상 속, 샘 레이미 감독이 “영화를 본 관객들이 ‘이 영화 정말 멋있다!’고 느꼈으면 한다”라고 이야기했었는데, ‘아 이 영화 정말 멋있다!’ 150번도 더 말해 드릴 수 있다.
영화의 개봉일이 어린이날 전날이어서 그런지 ‘어린이날을 노리고 개봉한 마블 영화’ 같은 느낌이 있었는데, 예고편을 안 보고 그 어린이날 연휴 개봉이 주는 느낌에 속은(?) 관객들이 꽤 많은 듯 보인다. 추가로 <스파이더맨 트릴로지>를 생각하고 간다면 꽤 놀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마블이라고 이런 걸 안 하고 못해야 할 이유는 없다. 이렇게 스펙트럼을 넓혀가는 건 언제나 환영이다.
인간적인 영화
<닥터 스트레인지: 대혼돈의 멀티버스>는 이전에 개봉했던 <블랙 위도우>와 <노 웨이 홈>처럼 꽤나 인간적인 영화였다. 개인적으론 <엔드게임> 이후로 마블이 1대 히어로들의 상처를 하나둘 내놓고, 그것을 회복시키며 이들의 은퇴 수순을 준비하고 있는 것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블랙 위도우>, <노 웨이 홈>, <호크아이>, 그리고 최근 예고편을 공개한 <토르: 러브 앤 썬더>와 이 영화까지. 커다란 전투를 마친 히어로들의 내면에 남은 아픔과 미련을 툭 까놓으며 그들에게 새로운 희망과 안정감을 쥐어주고 있는 느낌이다.
아무리 강인한 히어로여도 이들도 사람이기에 상처를 받고, 사랑을 하고, 아파하기도 한다. 스티븐의 경우는 능력을 얻고 칼자루를 쥐게 된 이후 연인 크리스틴과 헤어지게 됐고, 완다는 원치 않는 능력을 얻은 후 전투를 치르다 오빠 퀵실버와 연인 비전을 잃는다. 어디에도 풀어놓을 수 없었던 이들의 슬픔과 분노는 멀티버스의 문을 열게 되고, 스티븐과 완다는 멀티버스 속에서 새로운 희망과 깨우침을 얻는다.
사랑하는 모든 걸 잃은 완다, 어벤져스에게 절체절명의 위기가 닥쳤을 때 언제나 이성적으로 결정을 해야 했던 스티븐. 큰 힘을 가졌기에 많은걸 희생한, 아픈 손가락이었던 두 사람이 한 영화에 나와 세상과 자신을 구해가는 과정이 개인적으론 다소 안쓰럽고 슬프기도 했다.
* 아래 내용부턴 스포가 있을 수 있습니다 *
멀티버스를 꿰뚫는 단 하나의 키워드 ‘사랑’
이들의 이야기는 모두 사랑으로부터 시작된다. 스티븐은 사랑을 지키기 위해 이별했고, 완다는 사랑을 지키지 못해 결국 악에 현혹된다. 얻지 못한 사랑을 마무리 짓기 위해 시작된 멀티버스 이야기는 돌고 돌다 결국 제자리를 찾는다. 스티븐은 깨진 시계의 알판을 고치며 마음을 단단히 다지고, 아이들을 지키고 싶다며 이기적으로 행동하던 완다는 아이들을 통해 자신의 죄를 알게 되고 또 다른 완다를 통해 위로를 받고 스스로를 희생하며 상황을 정리한다.
사랑은 사람을 미치게도 하고, 아프게도 하고, 지켜주기도 하고, 위로해주기도 한다. 각자 다른 우주에 살고 있는 인물들은 조금씩 다른 인생을 살아가지만, 그들을 한 번에 관통하는 키워드는 ‘사랑’이다. <노 웨이 홈>에서 앤드류의 피터 파커가 그러했듯 스티븐 또한 또 다른 우주를 통해 사랑으로부터 받았던 상처를 위로받고 새로운 삶을 살게 된다.
<닥터스트레인지: 대혼돈의 멀티버스>에서 아쉬웠던 점
영화 자체는 정말 재밌었고, 타고난 과몰입러로서 온갖 감정을 다 동원하며 감상했지만… 그럼에도 아쉬운 부분이 없진 않았다. 개인적으론 완다를 100% 이해하기엔 어려움이 있었고 새롭게 등장한 캐릭터 차베즈에게 큰 매력을 느끼지 못했으며 다른 우주에 깜짝 등장한 캐릭터들이 그저 ‘작은 보너스’ 같은 느낌으로 반짝 빛났다 사라지는 것이 정말 아쉬웠다.
<완다 비전>을 본 관객이라면 완다가 왜 다크홀드에 손을 댔는지, 왜 드림 워킹을 하게됐는지 어느 정도 공감할 수 있었겠지만, <완다 비전>을 보지 않고 영화 속 완다의 설명만 들은 관객이라면 그가 정당하지 않은 이유로 급발진을 한 빌런으로 느껴질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또한 완다의 마지막이 상당히 허무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이대로라면 멀티버스 속 완다와 협력을 하는 스토리가 나오지 않는 이상, 사실상 완다는 은퇴 수순을 밟게 될 텐데 이 캐릭터의 마지막을 이렇게 장식한 게 못내 아쉬웠다. 매번 아픈 모습만 보였던 캐릭터인데 해방의 절차도 이렇게 어렵고 가슴 아프게 만들어버리다니… 속상했다.
그리고 본격적인 멀티버스의 문을 여는 새로운 능력자 차베즈는 배우의 매력, 서사와는 별개로 별다른 반짝임이 느껴지지 않는 캐릭터였다. 하지만 이제 첫 등장이기도 하고, 멀티버스가 확장되며 차후에 자신만의 영역을 구축해 갈수도 있다는 희망은 버리지 않기로 했다.
깜짝 등장한 캐릭터들은, 긴말은 하지 않으려고 한다. ‘이 영화에 프로페서가?!’하고 놀랐지만 별다른 의미 없이 지나쳐갔을 뿐… 아, ‘너를 믿는다’는 아주 중요한 말을 하나 남기긴 했다…
최근 마블 영화를 보며 느낀 아쉬움들
마블이라는 프랜차이즈는 가히 독보적이고 거대하다. 마블 이전에도 마블 이후에도 여러 히어로 영화들이 제작되었지만 마블의 히어로들과 이들의 세계관을 이길 프랜차이즈는 없다고 생각한다. 물론 <다크 나이트 트릴로지>나 DC 히어로 같은 크고 훌륭한 다른 히어로 프랜차이즈도 존재하지만 대중들이 가장 많이 떠올리는 ‘히어로 영화’를 만들어온 곳은 마블이 아닌가. 마블은 마블만의 영화를 만들어냈고 그로 인해 관객들의 취향, 극장가의 풍경이 함께 바뀌기도 했다.
누군가는 이런 히어로 영화를 유치하다고 느낄 수도 있고, 이들의 거대한 자본력과 제작 형태를 부정적으로 생각할 수도 있다. (마블 영화가 스크린을 독점하거나 무조건적인 흥행 공식을 따르고 있는 건 팩트니까). 전세계적인 팬덤을 이끌고 있는 프랜차이즈인 만큼 마블을 바라보는 시선은 정말 다양하다. 실제로 2019년, 마틴 스콜세지 감독이 한 인터뷰에서 언급했던 “마블은 시네마가 아닌 테마파크에 가깝다.”는 한 마디는 여전히 많은 이들의 입에 오르내리고 있으며 국내 팬들이 바라보는 마블의 이미지 또한 가지각색이다.
이번에 <닥터 스트레인지: 대혼돈의 멀티버스>를 보고 퇴장로에서 들은 이야기와 개봉 전, 후 SNS의 반응을 보면… 최근 마블의 이미지가 꽤 하락하고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가장 눈에 띄는 불만들은 크게 <엔드게임> 이후 은퇴한 캐릭터들에 대한 아쉬움 / 예, 복습에 대한 부담 / 개연성의 실종, 캐릭터들의 매력 부재 등이 있다. <엔드게임> 이후 1세대 히어로들의 은퇴는 당연한 수순이었고, 어쩔 수 없는 부분이라 치고 다른 아쉬움들을 짧게 이야기해보려고 한다.
마블이 하나의 세계관을 공유하는 프랜차이즈이다 보니 새로운 히어로가 등장한다 해도 이전의 캐릭터나 세계관을 알아야 한다는 부담감이 있는 상태에서 디즈니 플러스가 런칭되었고, 그 부담은 배로 늘어났다. 이번 영화만 해도 꼭 <완다 비전>을 봐야한다, <로키>, <왓이프>도 봐야 한다는 이야기가 돌았고, 디즈니 플러스 역시 <닥터 스트레인지: 대혼돈의 멀티버스>를 보기 전, 디즈니 플러스에서 <완다 비전>을 만나보라며 광고를 하기도 했다.
다른 시리즈를 모르면 새로운 영화도 온전히 즐길 수 없을지 모른다는 걱정에 영화를 보기 위해 영화를 공부하고 가야 하다니. 상당히 부담스럽고 피곤한 상황이다. 물론 실제로 ‘이걸 안 보면 이해 못 함!’ 정도의 상황이 나오지 않도록 어느 정도 설명을 해주긴 하지만, 이런 분위기가 언제까지 지속될지 다음에도 디즈니 플러스 예, 복습에 신경 써야 할지… 걱정되기도 한다. 드라마를 보지 않아도 어느 정도 재밌게 즐길 순 있지만 ‘알고 가야 더 보이는 영화’라고 한다면, 결국 이전 것들을 보지 않으면 100% 즐길 수 없다는 걱정을 떨쳐버릴 수 없다. 이러다 정말 ‘고인물들만 볼 수 있는 영화’가 되는 건 아닐까?
오래된 프랜차이즈 영화를 보며 느낄 수 있는 그만의 특별한 감동이 있는 것도 사실이고, 커다란 세계관 안에서 뛰노는 것도 정말 즐거운 일이란 건 부정할 수 없지만 적어도 영화와 드라마 시리즈 사이의 구분은 지어줬으면 하는 작은 바람이 있다. 계속 이렇게 장벽을 높여간다면 자칭 덕후가 아닌 사람은 더 이상의 접근을 피하게 될 수밖에 없으니.
그리고 최근 들어 느낀 가장 큰 아쉬움은 개연성의 실종이다. 활활 타오르는 덕심을 잠깐 내려놓고 말하자면, 영화는 분명 재미는 있는데… 가끔 개연성을 잃는다. 지금은 “왜 이렇게 되는 거지?” “왜 이건 이유를 말 안 해주지?”라는 질문이 떠올라도 배우들을 보며 어느 정도 흐린 눈을 하고 있지만 이 흐린 눈 필터를 언제까지 장착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아쉬워도 다시 티켓을 끊게 되는 테마파크
전체적으로 아쉬운 부분들도 있고, 어떤 영화는 나를 크게 실망시키기도 했지만 그럼에도 나는 당분간 이 환상적인 테마파크 안에 머물 것 같다. 적어도 오래 함께해온 1세대 히어로들이 남아있는 한은 말이다. 이만큼 나를 즐겁고 슬프고 설레게 하는 프랜차이즈가, 이렇게 성공한 테마 파크가 또 없기 때문이다. 이래서 아쉽고 저래서 아쉽다고 말하면서도 토르가 개봉하면 당장 달려갈 내 모습이 벌써 눈에 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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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월 3주 최신 개봉영화(인질, 올드, 언더그라운드, 팜스프링스, 남색대문)
[WEEKEND CHOICE MOVIE] 2021년 8월 3주차 #개봉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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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에 대한 더 자세한 내용은 https://blog.naver.com/rainbbox
@Weekend Choice Movi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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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콰이어트 플레이스]리뷰:2편 개봉 전에 정리해본 1편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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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단리뷰입니다. 2편 개봉 전에 참고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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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왓챠 <와이 우먼 킬 시즌 2> 독점 공개 영상
[2021년 7월, 왓챠 독점 공개]
올 여름, 살인의 꽃이 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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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넷플릭스 <경성크리처> 예고편
1945년 봄 모든 의심의 끝, 옹성병원 그곳에 인간과 괴물이 있었다 《경성크리처》 파트1 12월 22일, 오직 넷플릭스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