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INELAB2024-01-22 10:28:05
1월 셋째 주 주말 박스오피스 분석 with 씨네픽
<서울의 봄> 역대 흥행 7위 기록
<외계+인 2>의 반전 흥행은 없었습니다. <서울의 봄>은 꾸준한 관객수로 한국 영화 역대 흥행 순위 7위까지
올라갔습니다.
한편 북미에서는 리메이크 된 <퀸카로 살아남는 법>이 심상치 않은 반응을 보이고 있다는데요. 흥행 요인과 함께 국내, 북미 박스오피스 같이 만나보아요.
[국내 박스오피스]
<서울의 봄>이 계속된 흥행으로 <범죄도시2> <암살> <7번방의 선물>을 제치고 역대 한국 영화 TOP7에 올라섰습니다. 6위는 관객 수 1298만여 명을 기록한 <도둑들>로 이번 주 1294만 여명을 기록한 <서울의 봄>이 다음주에 <도둑들>을 제치고 6위에 올라설 것으로 보입니다.
<외계+인2>은 반전 없는 관객 수를 기록하고 있으며, <위시>도 간신히 100만을 넘기며 2위를 유지 중이며
개봉하는 영화 숫자가 적어지면서 저번주와 같은 순위를 동일한 영화가 유지하고 있습니다.
[북미 박스오피스]
<퀸카로 살아남는 법>이 할리우드 박스오피스에서 심상치 않은 상승세를 보이고 있습니다. 영화는 2004년 린제이 로한이 주연을 맡은 동명 영화를 원작으로 한 미국의 뮤지컬 코미디 영화로 수익을 5000만 달러를 올리며 1위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영화 흥행 요인으로 배급사에서 공격적인 마케팅으로 SNS에 영화 클립을 푼 것, 특히 젊은 관객층을 유입하기 위해 틱톡을 적극적으로 활용해 그 효과를 본것으로 흥행 요인을 꼽고 있습니다.
Relative cont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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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IWFF 데일리] '아'들의 조우, 사랑, 일탈
* 이 글은 씨네랩으로부터 초청받아 참석한 리뷰입니다.
* 스포일러가 있으니 관람하지 않으신 분은 읽으실 때 주의해 주시기 바랍니다.
[포스터]
[감독]
니콜레트 크레비츠
[출연]
소피 로이스, 우도 키어, 밀란 헤름스
[시놉시스]
한동안 연기 활동을 하지 않은 배우 아나, 골칫덩이로 여겨지는 고아 아드리안. 서로를 만나게 된 두 사람은 함께 저녁을 먹고, 거리를 거닐며 담배를 나눠 피우는 사이로 발전한다. <와일드 Wild>(2016)로 사랑의 범위를 확장하는 시도를 했던 니콜레트 크레비츠 감독의 신작이다. (제24회 서울국제여성영화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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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때때로 일탈을 꿈꾼다. 삶이 메마를 때, 더 이상 흐르지 않을 때. 그 옛날 세차게 흐르던 강이던 시절을 그리워하면서. <아에이오우: 사랑의 빠른 철자법>의 주인공 '아나' 역시 그러한 일탈을 꿈꾼다. 남편과 사별한 그에게 삶의 낙이라곤 찾아보기 힘들다. 직장에서는 '나이에 비해서는 매력적이나 그럼에도 한물 간 퇴물'로 취급 받고 사회는 그를 도움이 필요한 노부인으로 바라본다. 그의 젊음은 시들었고 그는 더더욱 위축되어 간다.
아나의 꿈은 한 어린 소매치기, '아드리안'과의 조우에서부터 실제가 되었다. 어수룩하게 가방을 훔쳐 달아나던 아드리안을 처음 보았을 때, 아나는 무언가 형용키 어려운 싱그러움을 느낀다. 그는 단순히 스쳐 지나가는 인연이 될 수도 있었을 테지만, 운명은 지독하게도 그 두 사람을 이어주었고, 두 사람은 어느 복지국 재활 프로그램에서 재회했다.
'아'로 시작하는 이름을 가진 두 사람은 서로에게 어떠한 동질감을 느낀다. 과잉행동장애로 말을 더듬고 친구들과 잘 어울리지 못하는 그는 아나와 마찬가지로 이 사회의 '아웃사이더'다. 부모 자식뻘의 나이 차가 나면서도 두 사람이 서로에게 강렬하게 이끌리게 된 것은 어쩌면 이러한 이유 때문일지도 모른다.
아드리안은 온몸으로 아나를 원하노라 표현한다. 매일 같이 그를 찾아가고, 남의 물건을 훔쳐서라도 그를 위한 선물을 마련한다. 그리고 아나는 소외된 소년인 아드리안에게 어른으로서가 아니라, 동등한 사람으로서, 같은 눈높이에서 조언한다. 그는 말한다. 잘 안되면 어떠냐고, 네가 잘하는 다른 걸 해보라고. 각자의 방식으로 고여만 있던 서로의 삶을 흐르게 한 것이다. 새로운 세계로의 길을 열어준 것이다.
영화에서는 '아'는 막을 수 없는 소리, 항상 뻗어나가는 소리이다. 아이가 처음 태어났을 때, 모르던 것을 깨달을 때, 감탄할 때, 오르가슴을 느낄 때... ... 그 모든 순간, 가장 먼저 내뱉는 소리가 바로 '아'라는 것이다. 아나와 아드리안, '아'로 이름이 시작하는 두 사람은 어쩌면 서로에게 이러한 '처음' 혹은 '깨달음'을 선사하게 되었는지도 모른다. 그것이 비록 사회적으로 지탄받을 만한 방식일지언정, 서로에게는 각별하다. 그들은 그토록 꿈꾸던 일탈이라는 과업을 완수했으므로.
사회적 관습에 익숙해진 우리의 시선으로 보기에는, 나이든 여자와 도벽이 있는 소년의 결합은 그다지 도덕적이지 않아 보인다. 그들은 숱하게 위법을 저지르고, 그로 말미암아 형사에게 쫒기기까지 하지만, 그럼에도 그들은 서로를 사랑하기를 멈추지 않는다. 그 나름대로의 해피엔딩을 맞이하면서.
소위 말하는 '유교걸(유교 사상에 찌든 여자)'인 필자로서는 이들의 일탈을 온전히 이해할 수는 없다. 그러나 두 사람은 그 모든 부도덕함을 기꺼이 무릅쓰고 마침내 서로에게로 가 닿는다. 어째서일까? 그것은 어쩌면, 우리가 기존의 고루하고 메마른 일상에서부터 벗어날 필요가 있다는 메시지를 보내고 싶어서는 아니었을까? 혹은 우리가 꿈꾸는 어떤 판타지를 스크린 너머에서 재현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물론, 이 영화의 해석은 관객이 생각하기에 달려있겠지만.
'아에이오우-사랑의 빠른 철자법', 22.08.26 | 서울국제여성영화제 08/25(목) - 09/01(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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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금기를 위반하는 '낙오자 연대'
7★/10★
*영화의 스포일러를 포함한 글입니다.
*영화 매체 〈씨네랩〉에 초청받은 시사회에 참석한 후 작성한 글입니다.
모든 혁명가가 감옥에 갇힌 사회에서는 감옥에서 가장 날카로운 사유가 피어오른다. 이 영화에서 감옥에 갇힌 음악가들이 아름다운 화음으로 합창하는 것처럼. ‘샤라비’는 음악이 금지된 사회다. 완전한 금지는 아니다. 모든 곰은 단 하나의 음으로만 연주할 수 있다. ‘도’ 이외의 음계를 노래하거나 연주하는 곰은 모두 경찰에 체포된다. 다른 음계는 모두 반역이다. 당연히 감옥은 미어터질 것이다. 그러나 ‘반란 분자’들이 한데 모인 곳에서는 종종 통치자의 의지를 거스르는 사건이 발생하고는 한다. 법과 경찰력을 주요 통치 수단으로 하는 권위주의 체제의 모순은 여기에 있지 않을까. 의도치 않게 모든 불순분자가 모여 무슨 꿍꿍이를 벌일지 모를 장을 제공한다는 데 말이다.
곰 어네스트와 쥐 셀레스틴은 절친한 친구 사이다. 이들은 어네스트가 거리에서 연주하고 받은 돈으로 생계를 해결하는데, 셀레스틴이 실수로 어네스트의 바이올린을 망가뜨리고 만다. 어네스트의 고향 샤라비에 있는 바이올린 장인만이 망가진 바이올린을 고칠 수 있다. 그래서 두 동물은 샤라비로 향한다. 그러나 샤라비는 어네스트의 기억과 많이 달라진 상태다. 음악을 자유롭게 즐기던 과거와 달리 지금은 음악하는 자들을 모두 체포하는 사회가 되어버린 것이다.
어네스트는 이내 이 모든 일의 배후에 자신이 가정사가 있음을 알게 된다. 샤라비에는 하나의 불문율이 있다. ‘현실을 그냥 받아들여야 한다.’ 어제까지는 음악을 즐겼더라도, 오늘부터 법이 음악을 금지한다면 음악을 멈춰야만 한다. 그런데 음악 금지법은 도대체 왜 생긴 걸까? 어네스트가 가업을 잇기를 거부해서다. 어네스트의 선조는 대대로 판사로 일했다. 어네스트도 당연히 판사가 되리라는 기대를 받았다. 샤라비에서는 ‘현실을 그냥 받아들여야’ 하니까. 하지만 어네스트는 부계의 운명을 거부하고 음악가로 살기로 결심한 후 샤라비를 떠났고, 이후 샤라비에는 어네스트에 대한 괘씸죄로 음악 금지법이 제정되었다.
샤라비의 변화를 목격한 어네스트는 괴롭다. 그냥 자신이 포기하고 가업을 이었다면 샤라비는 음악을 계속 즐길 수 있었을 테고, 그토록 많은 곰이 투옥되지도 않았을 것이다. 결국 어네스트는 법복을 입고 판사가 되겠다는 선언을 하려 한다. 셀레스틴이 다시 한번 어네스트의 진짜 욕망을 일깨워주고, 실은 어네스트뿐 아니라 모든 곰이 가업을 잇기보다는 자신이 하고 싶은 다른 일이 있다는 걸 고백하게 만들기 전까지는 말이다.
셀레스틴은 감옥에 갇힌 어네스트와 접촉하는 과정에서 경찰들이 악기를 숨겨두는 곳을 알게 되고, 결정적 ‘반란’을 함께 도모할 다른 혁명가 곰들과도 접촉한다. 상술했듯, 혁명가를 한곳에 강제로 모아두면 뜻밖의 협업이 이루어지기도 한다. 어네스트의 친구 셀레스틴은 이를 역이용해 어네스트를, 그의 가족을, 나아가 샤라비를 구한다. 종속적 운명과 자율에 관한 따뜻하고 유쾌한 우화에 절로 웃음이 지어진다.
도대체 어네스트와 셀레스틴이 어떤 관계인지, 두 동물이 어떻게 친구가 되었는지에 대한 물음이 생길 법하다. 2014년에 개봉한 전작 〈어네스트와 셀레스틴〉에 그 답이 있다. 각각 지상과 지하, 서로를 적대시하는 곳에서 지낸 둘은 곰과 친구가 되고 싶다는 셀레스틴의 엉뚱한 상상력에서 출발해 조금씩 우정을 다져나간다. 두 동물이 각각 무리의 아웃사이더였다는 점이 중요하게 작용했다. 어네스트는 길거리를 부랑하며 먹을 것을 구하는 가난한 음악가다. 수시로 경찰의 단속 대상이 되고, 부자 곰들은 그를 늘 적대한다. 보육원에서 자란 셀레스틴은 곰이 괴물이라며 무서워하는 다른 쥐들과 생각이 다르고, 치과의사가 되라는 권유에 마음이 동하지 않아 무리에서 소외된다. 이 불온한 소외감으로 둘은 친구가 되었다. 여기에 소속된 무리에게 사랑받지 못하는 예술가 정체성을 지녔다는 공통점이 더해진다. 그리하여 결국 둘은 ‘곰과 쥐는 친구가 될 수 없다’는 금기를 무너뜨린다. 기존 체제의 근본적인 질서를 깨버리는 것이다.
이 ‘낙오자 연대’의 진득한 우정이 일관되게 금기를 위반한다는 게 참 좋다. 다정하고 따뜻한 그림체 이면에 해방과 구원의 우정이 있다. 이 둘의 우정은 동질적인 집단에서 자신과 같은 친구만 사귀는 요즘은 좀처럼 생겨나기 어려울 것 같다는 점에서 더욱 귀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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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든 과거를 미래를 향한 동력으로 바꾸는 메시아의 등장
메시아의 등장
이 영화의 주인공은 폴 아트레이더스(티모시 샬라메)다. 아버지(오스카 아이작)가 죽었다. 그리고 살던 왕국이 공격당했다. 멸문당한 아트레이더스 가문. 힘겹게 어머니(레베카 퍼거슨)와 함께 빠져나와 아라키스로 향했다. 모자에겐 와신상담이라는 말이 가장 잘 어울린다. 하지만 그 이전에 두 사람은 지금 죽기 5분 전이다. 위기일발의 모자에게 구원의 손을 내미는 건 아라키스 사람들이다. 모자에게 손을 내미는 스틸가(하비에르 바르뎀). 스틸가는 폴의 능력에 대해 이야기하며 그가 '리산 알 가입'으로서 선택받은 자라고 주장한다. 반신반의하는 아라키스 사람들. 그중 한 명은 영화의 다른 주인공 챠니(젠데이아)다. 의심이 늘어난다. 그 의심은 폴 자신에게도 적용되는 말이다. 그 모든 미래가 폴을 위대한 메시아라고 알려주고 있지만 주인공은 그게 싫다. 이 세상의 모든 것이 인물들과 충돌한다. 살아남고, 복수까지 이뤄야 한다. 과연 아들 폴과 어머니 제시카는 복수에 성공할 수 있을까?
주특기를 보여주다
이 영화 <듄 : 파트 2>의 이야기는 감독 드니 빌뇌브의 인장이 크게 박혀있다고 볼 수 있다. 빌뇌브는 그동안 서서히 쌓아 올리다가 후반부에 터트리는 플롯을 쓰곤 했다. ‘듄’ 시리즈 이전 가장 최근작인 <블레이드 러너 2049>나 <컨택트>에서도 이런 경향이 보였다. 이런 감정적인 밀도를 쌓아 올리는 이야기 흐름은 이 <듄 : 파트 2>에도 유효한데, 영화에서 폴이라는 인물을 중심으로 방점이 찍힌 장면이 많다. 가령 폴이 영화 안에서 어떤 선택을 한다. 이 선택을 위해 영화는 이야기의 배경을 그전부터 깐다. 폴 이전에 영화 안에서 어떤 인물이 이와 비슷한 선택을 한다던가 특정 인물과의 관계를 바탕으로 폴의 어수선한 내면을 그린다는 것이 그렇다. 이렇게 서서히 쌓아 올린 인물의 내면을 바탕으로 이야기 중반부터 모든 영화는 천둥같이 울린다. 영화를 보면 ‘이제 정말 시작이구나’라는 느낌이 드는데, 티모시 샬라메의 호연을 받쳐주는 연출의 힘이 빛을 발했다고 볼 수 있다. 이를 통해 느껴지는 것. 후반부의 폴을 노골적으로 강조하는 연출 때문에 ‘빌뇌브치곤 약한 이야기 아닌가’ 싶은 감이 어느 정도는 있지만 이 영화가 후반부까지 이끌며 전달하는 카타르시스는 부정하기 어려울 것이다.
이 카타르시스를 보여주기 위해 <듄 : 파트 2>가 고른 다른 선택지는 바로 레이디 제시카서사다. 이야기의 저변을 다양하게 넓힌다는 측면이 아니더라도 이 인물은 <듄 : 파트 2>의 기획에서 빠져서는 안 된다. 이 인물은 점점 폴의 행보를 따라가거나 앞서가는 감이 좀 있다. 이는 영화를 관통하는 핵심 딜레마 중 하나와 직결되는 문제라 무조건 들어가야 했던 이야기의 핵심 구조이기도 하고, 또 단선적인 백인 주인공 서사에서 벗어나 이야기의 넓이를 넓힌다는 측면에서도 중요했다. 그리고 후술 하겠지만 영화가 고전 책들 그러니까 소설이나 역사책들을 오마주한 느낌이 좀 있는데, 이 '레이디 제시카'는 이름에서 연상되는 무언가를 모티브 삼은 듯하다. 이게 빌뇌브의 연출 특징과도 어울리기도 하지만 이 제시카가 혼자서 당당히 선다는 점에서도 이야기를 풍부하게 만든다는 점에서도 유효했다. 이 인물은 후속작 파트 3에서 이야기의 주제를 더 강조할 인물로 보이는데 안 본 관객들이라면 제시카의 능력에 주의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
시청각을 장악하다
전작의 강점으로 뽑을 수 있었던 시각효과는 본작 <듄 : 파트 2>에서도 장점이다. 글쓴이가 1편에 대해 가장 먼저 생각나는 것은 칼라단 묘사다. 이 당시 우주선을 묘사했을 때 왠지 이거 전부 CG를 입힌 것이 아니라 일부는 만든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실제로 찾아보면 어떤 우주선들은 빌뇌브를 비롯한 시각디자인 팀이 진짜 우주선을 만들고 어떤 건 입힌 것으로 보인다(실제로도 이 <듄> 1편에 대한 자료를 찾아보면 ‘옐로 스크린’에 대한 기사를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는데 이 연출 방식의 연장선상으로 볼 수 있을 것 같다). 이 ‘CG를 사용하되 배우들의 몰입을 위해 어떤 건 실제로 만들고 어떤 건 아닌’ 장면연출은 본작 2편에서도 역시 마찬가지인 것으로 보인다. 가령 오스틴 버틀러가 맡은 페이드 로타 역은 이야기의 중심 추가 된다는 점에서 핵심인데, 이를 실존인물과 정교한 CG로 이야기를 이끈다는 점에서 좋은 연출이었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또 이 시각화의 관점에서 이야기의 큰 동력이 되는 부분은 모래벌레다. 이 모래벌레에 관한 부분은 영화에서 가장 인상적인 장면이 될 것이다. 이 모래벌레를 둘러싼 인물들의 모습이나 이 것을 활용한 캐릭터들이나 SF의 생동감을 높이는 좋은 선택이 돋보인다.
비단 VFX가 아니더라도 이 영화의 시각적인 요소들은 굉장하다. 우선 공간적 배경인 사막은 어디서 이런 장소를 구해왔는지 이야기의 분위기를 살리는 좋은 로케이션 선택이었다. 또 영화는 색을 굉장히 잘 쓴 편에 속한다. 흰색, 초록색, 파란색, 회색, 흑백화면 등 색이 내포하고 있는 의미가 전달이 확실하다는 점에서 빌뇌브의 스타일이 그대로 드러난다. 또 <컨택트>에서 외계 비행선을 둘러싼 풍광이나 주인공이 딸과 노는 장면에서 느껴지는 이상한 우울감 같은 것도 영화가 구현을 잘 한 편이다. 가령 차니를 둘러싼 인물들의 정서를 카메라가 어떻게 보여주는지, 또 이 인물을 대하는 폴의 내면은 또 어떨 것 같은지 유추하게 만드는 카메라의 힘이 좋았다. 촬영 구도도 영화 안에서 정교하게 다 짜여있다. 이는 다수와 소수의 시각적인 대비다. 이 대비를 통해 영화가 폴의 어떤 측면을 부각하는지를 염두하고 본다면 이야기를 잘 받아들이실 수 있을 것 같다.
글쓴이는 이런 시각적 장점에도 불구하고 청각적 요소의 강점을 강조하고 싶다. 이 <듄 : 파트 2> 전작 <듄> 1편이 팬들에게 좋은 반응을 일으켰던 이유 중 하나는 특별관의 보급 때문이다. 특히 메가박스의 ‘돌비관’이 엄청난 인기였다(제주에는 이게 없다. 글쓴이는 복통이 느껴지지만). 이는 <듄> 1편이 연출한 청각적인 요소 때문인데, 역시 2편 마찬가지로 아이맥스보다 돌비관을 추천하는 바다. 왜? 이 영화에서 청각적으로 울리는 소리가 지루하게 보일 수도 있는 이야기 흐름에서 알람 같은 역할을 하기도 하지만 그 사운드가 가져다주는 생동감이 엄청나다. 글쓴이는 아직도 그 두두두두 하는 소리가 귀에 생생하다. 스타일을 장악한 빌뇌브의 연출력이 느껴진다.
장르 이력서
이 영화가 10000년대의 이야기를 핵심으로 삼고 있어 SF판타지로 생각하기 쉽지만 이 작품은 과거라는 테마는 굉장히 중요하다. 우선 글쓴이가 이 영화에서 ‘과거’를 느낀 지점은 세 가지다. 첫째는 ‘레이디 맥베스’ 서사를 캐릭터로 갖고 온 것이다. 두 번째는 영화 두 편이다.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나 <아라비아 로렌스>가 그렇다. 또 영화 일부 장면에서 <지옥의 묵시록>이나 <매드맥스>와 <블레이드 러너>가 느껴지는 부분이 얼마 있다(이 외에도 오마주한 영화는 많은데 어떤 장면에서 이를 적으면 직접적인 스포일러가 될 것 같다). 세 번째 이야기의 핵심 소재 중 하나인 어떤 것이 우리 현대를 살아가는 모습과 겹쳐 보이는 모습이 있다. 이는 우리의 세태뿐만 아니라 세계사의 측면에서도 관통하는 지점이 있다. 그리고 하이라이트 신의 모습은 분명히 고전 북미 영화들을 오마주 했다는 느낌이 강하게 난다. 이는 드니 빌뇌브가 본인의 덕후스러움을 뽐내기 위해 만든 것이 아니다. 영화의 핵심과도 이어지기 때문에 이 영화가 과거를 다룬 이유는 충분하다. 이야기의 흐름과 영화의 연출 의도가 맞아떨어진다는 점에서 빌뇌브의 경험치를 느낄 수 있는 부분이다.
조명 밑의 그림자
이 영화가 시각적으로 청각적으로 관객들의 만족도를 높인다고 해서 허점이 없는 것은 아니다. 솔직히 이 영화를 보기 전 기준으로 ‘듄’ 세계관 이해 못 하는 분들이 보면 지루해할 확률이 높다. 왜? 솔직히 이 영화가 그렇게 친절하진 않다. 알아야 할 정보가 많다. 윗문단의 연장선상에서 이야기의 동력을 쉽게 이해시키기 위해 세계사를 가져오긴 했으나 그건 영화를 좋아하는 팬들 입장에서나 이해할 수 있다. 영화가 교양과목이 아닌데 이 세계관을 다 이해하고 갈 필요는 없잖아? 그리고 빌뇌브 특유의 느릿느릿한 템포 때문에 쉽게 이야기가 꽂히지는 않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 가령 영화 초반부에 공중에 떠서 이동하는 인물들을 보여준데 왜 이 캐릭터가 이렇게까지 행동해야 하는지 굳이 알려줄 필요가 없지 않나 싶다. 이는 빌뇌브의 느린 템포가 이야기에서 이물질처럼 느껴지는 부분이기도 했다.
또 이 영화에 등장하는 인물들이 생동감이 넘친다고 보긴 어렵다고 생각한다. 특히 젠데이아가 맡은 차니 캐릭터에 감정이입이 쉬울지는 의문이다. 이 캐릭터가 이렇게 연출된 것은 핵심을 전달하기 위함인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1편을 정말 잘 기억하는 팬이 아니라면 이 인물의 행보가 쉽게 받아들여지지 않을 것 같다. 스틸가의 덕을 좀 봤다. 또 주인공의 반대 지역에 속해있는 인물들은 감정선이 붕 떴다. 이 역시 영화가 의도적으로 고른 선택지인데, 이 때문에 후반부의 하이라이트를 쉽게 받아들이지 못할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빌런의 존재감이 약하다고 이해하기 쉽다.
이런 단점들은 영화의 가장 큰 결함으로 느껴지기도 한다. 이 영화의 가장 큰 단점은 이 ‘지루하다고 느낄 수 있음’을 <듄 : 파트 2> 자체가 너무나도 잘 알고 있다는 점이다. 전편에 비해서 분명히 이야기의 기승전결이 있다는 건 관객 입장에서 잘 받아들일 수 있는 부분이지만 그렇다고 이야기가 자연스럽지는 않은 것 같다. 지루해질 만하면 갑자기 재밌는 장면이 들어간다는 것이 이야기의 흐름이 자연스럽다고 볼 수 있을까? 차라리 분량을 더 늘리는 한이 있더라도 인물들의 내면을 더 이해할 수 있는 이야기를 설정하는 게 좋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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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무도 없는 곳, 2021 김종관 감독작품
가끔은 사람을 만나면서 동시에 이별을 떠올린다. 자유롭게 나다닐 수 없는 상황이 되고 나서, 오히려 인연이라는 것에, 또 세월이라는 것에 많이도 덤덤해졌다. 사람들은 그렇게 만나고 또 헤어지고, 또 만난다. 그렇게 헤어져도 꼭 다시 만날 것 같은 사람들은 아마도 가족들뿐 일 것이다. 이 영화는 일상인 가족들과의 가볍고, 또 무거운 이야기들이다. 우리가 잃고 얻은 게 개개인의 틀 안에서 모두 다 달랐을 코로나와 함께한 시간들. 공기처럼 물처럼 옆에 있어준, 혹은 떨어져 있는 가족의 의미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 보고 싶었다.
여기 한 남자가 있다. 고운 시선으로 조용히 책을 읽는다. 사람을 기다리는 것 같지만 만나야 할 사람은 바로 앞에서 눈을 감고 있다. 문득 주변을 비추어보니 모든 사람들이 다 혼자서 자신만의 방식대로 커피 한 잔을 두고 시간을 보내고 있다. 공간 속에 수많은 시간이 떠다니는 것만 같다.
첫번째 이야기는 사람들이 너무나 분주해 보이고, 모든 것이 재미없다 말하는 한 여인. 그녀에게 호텔에 들어오려는 노숙자의 이야기를 해 주는 남자. 그녀는 어느덧 그 이야기에 빠져든다. 이야기는 사실인 듯 하나 사실은 아닌 허구이지만, 그 안에 있는 공허함은 저릿하다.
두번째 이야기는 글을 쓰는 그 남자와 편집자와의 만남. 담배를 끊은 남자에게 인도네시아 산 담배를 권하는 그녀는 자신의 헤어진 남자친구에 관한 이야기를 하며 상실감에 대해 이야기한다. 화면이 너무 어두워 밤이라는 어둠에 갇힌 사람 둘을 보는 것 같다. 둘이 걷는 덕수궁 돌담길 같은 끝없이 이어진 길에서, 둘 사이를 뚫고 등장하는 정신이 온전치 않아 보이는 한 여인이 말한다.
'바람의 방향을 따라 가야해'
'손을 잡아야 길을 잃지 않을 수 있어'
영화를 끝까지 보고 나니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상해 보였던 그녀가 가장 정상으로 사는 사람은 아니었을까. 어른은 참 어려운 존재다.
세번째 이야기 그와 사진사와의 우연한 만남. 청산가리를 품에 안고 다니는 이 사내에게는 유방암이 전이된 아픈 아내가 있다. 그녀의 간병에 지치고 괴로운 그는, 우연히 마주친 남자를 보며 병을 이겨낼 수 있다는 희망을 이야기한다.
네번째 이야기 바텐더와의 만남. 손님들의 이야기로 시를 쓰는 기억상실증 바텐더를 만난다. 그녀는 그에게 말을 시킨다. 위스키 병에 담을 만한 추억을 나누어 달라 한다. 남자는 그 바텐더에게 바스락거리는 어린 시절의 추억을 이어 나간다.
감독님은 아마도 이런 생각으로 영화를 만드시지 않았을까. ‘어떤 힘든 일에도 사람은 쉽게 희망을 버릴 수 없다는 사실’. 영화 속 사진사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나도 기적은 안 믿어요ㅡ 하지만 기적이라는 게 있어요!” 라는 말에 얼만큼 동의해야 할지 생각해 봤다. 영화를 보고 있는 현실 속 내가, 여기까지 잘 버티고 더 긍정적으로 살아있는 게 기적이라면 기적인 것 같다.
어둡고 무겁다 했는데 영화가 벌써 한 시간 이상 흘러가 있었다. 어떤 사람이 살며 겪는 모든 이야기들에는 "관점의 차이" 에 따라 소설이 될 수 있는 것들이 아주 많다는 생각이 들었다. 영화를 본 그 날이 나의 생일이기도 했고, 많은 축하들을 받으며 혼자서 충만했던 건, 그간의 내 삶과 이야기의 경계는 한해한해 더 나이가 들 수록 점점 더 모호해져 가는 게 아닌가 느껴졌기 때문이다.
나의 추억들도, 또 지금의 나날들도 나의 관점에 따라 부감샷이 될 수도 클로즈업이 될수도 있는 건 아닐는지 싶었기 때문에. 내 삶은 내가 원하는 것만큼 시가 될 수도 소설이 될 수도 영화가 될 수도 있는 건 아닌지. 참으로 오랜만에 앞으로의 나날들이 기대된다.
영화 속 남자는 바텐더의 표현처럼 '기다린다는 말로 기다리는 사람이 되었다' 지구 건너편에 두고 온 아내에게 전화를 걸어 마음을 고백하는 그 남자를 보며, 보고 싶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 지구 건너편에 있어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동안 내가 안전하게 피신해 있었던 그 외로움에서 나와서. 희망이라는 걸 노래해 보고 싶어졌다.
"바람을 따라가야지”
“손을 잡아야 길을 안 잃어"
그 말씀을 해 주신 건 그 남자의, 엄마였다. 그 남자는 늘 자신의 주변에서 엄마를 만났다.
한껏 공허함과 쓸쓸함 뒤 희망을 노래하는 게 바로 인간. 인간은 희망을 먹고 산다. 하루가 지나도 영화가 푹 우린 곰국마냥 생각난다ㅡ 이 영화는 희망을 이야기하기 이전에 상처에 대해 이야기하는 영화였다ㅡ 그게 부끄럽기도 듣기 싫기도 거북하기도 했다.
사람들에게 받은 상처는 왠지 어딘가 모르게 다 닮아있다. 신기한 사람들의 삶, 과 희망의 노래. ‘아무도 없는 곳’ 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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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관계와 상처 속 인물들의 버라이어티한 티키타카
개봉 전 시사 관람 후 작성된 리뷰입니다.
누군가와 새로운 관계를 만드는 과정은 예상할 수 없다. 오늘 새롭게 만나는 사람과 친한 사람이 될지, 사랑하는 사람이 될지, 아주 먼 관계가 될지 알 수 없다. 그저 서로 대화를 하고 같이 무언가를 해 나가면서 조금씩 그 관계를 알게 될 뿐이다. 그러다 어떤 사람과는 가까워짐을 멈추고 심지어는 밀어내는 경우도 생긴다. 어쩌면 그 일련의 과정은 우리 내면에 가지고 있는 관계에 대한 본능 같은 것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인생 동안 무수히 많은 사람들을 만나지만 한참이 지나고 보면 주변에 가까운 사람이 몇 안 남는다. 그 관계의 끝을 보기 위해 그렇게 무수한 소통을 해나가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런 무수한 소통과 관계 속에서 사랑이라는 좀 더 깊은 감정이 생기기도 한다. 사람들과의 관계를 예측할 수 없듯이 사랑이라는 감정이 생기는 시기도 알 수 없다. 어느 순간 싹튼 사랑의 감정은 상대방을 바라보며 행복을 느끼게 하고 어떤 경우에는 상처를 받게 하게도 한다.
수많은 관계 속에서 상처는 반드시 따라오는 것이다. 좋은 관계로 발전할 수도 있지만 서로 다른 마음을 가지고 있을 때가 있기 때문이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 나를 좋아하지 않고 밀어내려 한다면 그것에서 오는 상처는 온전히 가까워지고 싶은 사람의 몫이다. 그렇다고 그 관계를 밀어내는 사람의 마음이 아무렇지 않은 것은 아니다. 그 안에는 부담감과 미안함이 동시에 존재한다. 서로의 마음이 서로에게 잘 맞으면 가장 좋겠지만 여러 관계를 만나다 보면 그렇지 않은 경우를 꽤 많이 만나게 된다. 그래서 각자가 의도하지 않았겠지만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거나 반대로 내가 상처를 받는 일이 계속 반복된다. 그런 과정을 반복해서 겪다 보면 상처들을 어떤 식으로 보듬을 수 있는지도 조금씩 알게 된다.
관계와 상처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영화 <장르만 로맨스>
영화 <장르만 로맨스>는 작가인 주인공 현(류승룡)과 주변 인물들 사이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담는다. 현은 유명한 작가로 다음 작품을 구상 중이다. 하지만 아이디어가 떠오르지 않아 꽤 오랜 시간 동안 아직 글을 쓰지 못하고 있다. 이혼 후 재혼한 상태인 그는 전처 미애(오나라), 아들 성경(성유빈), 출판사 사장 순모(김희원) 그리고 새롭게 그의 앞에 나타난 제자 유진(무진성) 사이에서 정리되지 않는 자신의 과거와 현재의 관계들 속에서 방황한다. 영화 초반 그와 그 주변에 있는 인물들의 관계는 깨지기 직전으로 보인다. 가장 친한 친구인 순모는 현을 아끼는 마음도 있지만 사장으로서 그를 계속 압박하고 현의 전처인 미애와 아들 성경은 현현의 마음을 쉽게 이해해주지 않는다. 현은 그것을 온전히 받아들여야 하는 것을 알지만 그들의 야속한 마음을 술을 마시며 달랜다. 영화 속에서 유일하게 그를 밀어내지 않는 인물은 유진이다. 유진은 현의 앞에 어느 순간 나타나 자신이 쓴 원고를 전달하고 친절하게 다가오는 미스터리 한 인물이다.
사실 영화 초반에는 이 영화가 어떤 이야기를 보여줄지 예상하기 어렵다. 주요 캐릭터들의 관계는 꼬일 대로 꼬여있어 현이라는 인물이 그 꼬인 실타래를 해결할 수 없을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그 속에서 나오는 그의 유쾌한 모습은 보는 사람의 웃음을 유발하기도 한다. 그렇게 그들 간의 벌어지는 대화와 상황들은 큰 웃음을 선사하면서도 그들에 대한 공감을 느끼게 해 준다. 그런데 가만히 현을 지켜보다 보면 그가 왜 그렇게 가벼운 모습이 되었는지 궁금해진다. 그의 주변에 있는 인물들 사이에서 그가 있는 위치를 확인해 나가면서 그 궁금증은 점점 짙어진다. 조금은 우스꽝스러운 그의 뒷모습은 꽤 무거워 보인다. 그래서인지 그는 선뜻 글을 쓰기 위한 타이핑을 해나가지 못한다.
유진이 등장하고 그와 현이 같이 글 쓰는 작업을 하게 되면서 영화는 이 둘의 관계에 좀 더 초점을 맞춘다. 유진은 현이 쓴 습작이 너무 마음에 들어 협업을 제안했지만 왠지 그가 부담스럽다는 느낌을 받는다. 유진이 가진 글을 쓰는 능력과 감성은 현이 글을 쓰는데 꽤 많은 도움이 된다. 현은 같이 작업을 하면서 굉장히 조심스럽게 유진을 대하는데, 그 태도에는 이미 유명한 작가로서 상대에게 상처를 줄까 봐 조심하는 태도도 포함되어 있다. 그렇게 조심하지만 의도하지 않게 상대방에게 갈 상처를 완전히 막지는 못한다.
상처 받는 인물, 상처 주는 인물
사실 영화 안에서 마음의 상처를 표현하는 인물이 한 명 더 있다. 바로 현의 아들인 성경이다. 여자 친구에게 이별통보를 받고 울음을 터뜨리는 그는, 영화 중반부에 만나는 이웃집 여자 정원(이유영)을 만나면서 작은 위로를 받는다. 하지만 성경은 그런 일탈의 과정에서도 무언가 아쉬움과 부족함을 느낀다. 연기자 지망생인 조금 엉뚱 발랄한 정원은 연기 연습을 하며 남는 시간에 성경과 시간을 보내지만 그것이 어떤 마음이었지는 알 수 없다. 현과 유진의 관계가 어떤 방식으로 풀려갈지 알 수 없는 것처럼 성경과 정원의 관계도 어떤 방향으로 나아갈지 알 수 없다.
유진은 누군가와의 관계에서 오는 상처에 대해 잘 알고 있는 인물이다. 자신과 관계를 맺는 사람을 온전히 이해한다고 생각하지만 그것이 상대방에게는 의도하지 않은 색깔로 받아들여진다는 것도 잘 알고 있다. 자신이 그토록 동경하던 유명 작가인 현과 새로운 관계를 만들면서 글을 인정받으려고 시도하는 그는 영화 내내 현의 곁에서 최선을 다해 자신의 이야기를 써나간다. 글쓰기라는 과정 속에서 완전히 그를 믿지 못하는 현의 옆에서 그의 표정은 밝아 보인다. 그것은 유진이라는 인물이 가진 내면의 감정이고 그것은 좋은 작품을 만드는 근원적인 감정이 된다. 그 모든 힘은 바로 두 사람이 대화하고 때론 다투며 새롭게 긍정적인 관계에서 나온다.
극 중 대부분의 인물들은 누군가에게 자신을 인정받기 원하고 좋은 관계가 만들어지길 원하지만 또 한 편으로는 다른 사람에게 상처를 주기도 한다. 마치 우리의 삶 속에서 만나게 되는 여러 관계에서 겪는 것처럼 의도치 않게 상처를 받고 또 상처를 준다. 누군가와의 관계는 그렇게 수없이 주고받는 상처를 통해서 만들어지는 것일지도 모른다. 처음 상처를 받았을 때는 현의 아들 성경처럼 그저 자신의 감정을 울음과 고함으로 온전히 외부로 표출하지만 그것이 여러 번 반복된다면 여러 관계를 정리하고 자신의 감정을 쉽게 드러내지 않게 될 것이다. 상처에 좀 더 담담해지게 되는 것이다. 영화 속에서 그렇게 자신의 상처와 감정을 쉽게 드러내지 않는 인물이 한 명 있다. 바로 주인공 현이다.
영화 <장르만 로맨스>는 주인공 현이 이혼과 재혼 과정에서 겪은 일들에 대해서는 설명하지 않는다. 그저 현재 그가 각 인물들과 어떤 태도를 보이고 어떤 마음으로 만나는지를 화면으로 보여줄 뿐이다. 하지만 그의 현재 얼굴을 계속 보다 보면 그가 과거에 겪었을 상처들이 조금씩 보인다. 그가 가진 우스꽝스러운 모습 뒤에 감춘 상처들은 자신에게 새롭게 만들어지는 사람과의 관계를 밀어낼 때, 좀 더 조심스럽게 만든다. 하지만 그가 가진 상처와 부담의 감정은 새로운 사람인 유진이라는 사람을 만나면서 좋은 글을 쓸 수 있게 만든다. 그들 각자가 가진 생각과 감정이 합쳐져 하나의 책으로 완성된 것처럼 우리가 맺는 모든 관계들에는 자연스럽게 상처와 부담의 감정이 따라올 수밖에 없다. 그 감정들이 모두 함께 겪을 때 비로소 자신에게 맞는 관계가 무엇인지를 보다 명확히 알 수 있기 때문이다. 영화 속에서 현과 유진은 각자의 위치와 입장에 맞게 적당히 거리를 두며 좋은 관계가 되려고 노력한다. 그래서 영화를 보는 관객들은 그 둘의 책이 과연 좋은 책으로 나올 수 있을지 궁금해하게 된다.
불편함이 없는 유쾌하고 따뜻한 영화
현의 전처인 미애도 자신이 가진 상처를 적극적으로 드러내지 않는 인물이다. 전남편인 현에게 분노와 짜증을 드러낼 때도 있지만 그건 공통적으로 신경 써야 할 아들 성경의 문제 때문에 더욱 그렇게 보이는 측면이 있다. 대체적으로 쾌활하고 밝아 보이는 미애는 순모가 가진 순수함과 자신을 사랑하는 마음을 보면서 그도 다음 가야 할 곳을 머릿속에 그리기 시작한다.
영화 <장르만 로맨스>는 조은지 배우의 첫 번째 장편 연출작이다. 상업영화로서는 첫 도전이기도 하다. 조은지 감독은 이 영화에 등장하는 대부분의 캐릭터들이 가진 감정을 세세히 표현하는데 특히나 관계를 시작 한려한 인물들의 감정을 잘 담아냈다. 무엇보다 주인공 현이 가진 억눌려있는 듯한 감정을 표현하는 방식에서 궁금증을 유발하게 만들면서 유머러스하게 그것을 조금씩 보여줘 관객의 이해를 돕는다. 그런 측면에서 주인공의 감정을 굉장히 쉽게 관객에게 전달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영화를 보는 관객 입장에서는 무슨 이야기가 펼쳐질지 예상하지 못하고 웃으며 지켜보다가 마지막에는 뭉클한 감정을 느끼게 된다. 그만큼 캐릭터의 감정이 영화에 잘 표현되어 있다.
영화의 중심인물이라고 할 수 있는 현을 맡은 류승룡 배우는 오랜만에 그에게 아주 잘 맞는 캐릭터를 만났다. 그가 가진 유머러스한 모습뿐만 아니라 진중한 모습을 같이 볼 수 있기 때문에 현의 마음이 더욱 힘을 가질 수 있게 된 것 같다. 또한 유진 역을 맡은 무진성 배우는 이번이 첫 영화 데뷔작인데 자신의 감정을 솔직하게 이야기하면서 적절히 절제할 줄 아는 20대 청춘의 삶을 안정적인 연기를 통해 인상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그밖에 오나라 배우, 김희원 배우, 이유영 배우 그리고 성유빈 배우까지 모두 좋은 연기를 보여주고 있다. 특히나 김희원 배우 같은 경우, 과거에 볼 수 없었던 소심하고 사랑에 상처 받는 캐릭터도 그에게 잘 어울린다는 것을 그의 눈물연기로 보여주고 있다.
영화 <장르는 로맨스>는 불편함이 없는 영화다. 여러 종류의 사람들이 등장해 갖가지 소동이 벌어지지만 부담스럽지 않게 연출되어 있어 편안하게 등장인물들이 벌이는 일들을 즐길 수 있다. 코믹한 장면들도 간간히 포함되어 있어서 키득거리며 극장에서 즐길 수 있는 영화이고, 마음을 움직이게 하는 내용도 포함되어 있기 때문에 여러 가지 복합적인 감정이 포함되어 있는 영화라고 할 수 있다. 코로나 이후 블럭버스터 영화들이 속속 개봉하는 가운데 오랜만에 한국에서 <장르는 로맨스> 같이 따뜻하게 공감을 이끌어내는 영화가 개봉하게 되었다. 즐거움과 따뜻함을 같이 느낄 수 있는 영화이기 때문에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사람들과 함께 극장에서의 관람을 추천한다.
이 리뷰는 영화 <장르만 로맨스> 마케팅 사로부터 소정의 원고료를 받아 작성되었으며, 이 내용은 주관적인 개인 의견을 바탕으로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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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판타스틱 4 | 지나치게 반듯한 히어로 가족
*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잘 만든 MCU 영화'의 조건
'잘 만든 슈퍼 히어로 영화'는 공통점이 있다. 싸움을 잘 붙인다. <다크 나이트>의 '조커', <엑스맨: 데이즈 오브 퓨처 패스트>의 '센티넬', 샘 레이미의 <스파이더맨> 속 '그린 고블린'과 '닥터 옥토퍼스' 같은 빌런들이 꾸준히 회자되는 이유라고 할 수도 있다. 히어로와 빌런의 갈등과 대립이 주목받을수록 빌런 고유의 서사와 특성도 덩달아 깊은 인상을 남길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집합의 범위를 '잘 만든 MCU 영화'로 줄이면 다른 공통점을 발견할 수 있다. 여전히 싸움은 잘 붙이지만, 히어로와 빌런 대신 히어로와 히어로가 싸움의 주체가 된다는 사실이다. <어벤져스>에서는 뉴욕 전투가 시작되기 전까지 6명의 영웅과 닉 퓨리가 뒤엉켜 말다툼을 벌였고, <캡틴 아메리카: 시빌 워>에서는 아예 어벤져스가 둘로 나뉘어 전투를 치렀으며, 토리와 로키는 시리즈 내내 싸웠다. <썬더볼츠*>도 다르지 않았다.
흥미롭게도 이는 MCU가 여러 시네마틱 유니버스 중 가장 성공적인 팀업 무비를 만들 수 있는 비결이었다. 히어로들끼리 싸우면서 미운 정 고운 정이 다 드는 동안, 관객들도 그들의 신념과 철학, 한계와 약점을 목격하고, 그들에게 인간적으로 유대감을 느끼고 공감할 수 있었으니까. 그 덕분에 수많은 캐릭터가 한 작품에 등장해도 각각의 개성과 존재감은 묻히지 않을 수 있었다.
<판타스틱 4: 새로운 시작>(이하 <판타스틱 4)은 정반대다. '잘 만든 가족 드라마'이지만, '잘 만든 MCU 영화'는 아닌 듯하다. 가족애, 특히 모성애에 집중한 드라마는 인상적이다. 윤리적 딜레마의 활용도, '가족'의 중요성을 시의적절하게 환기하는 메시지도 영리하다. 하지만 정작 관객들과 상호작용을 해야 할 네 명의 주인공은 강렬한 인상을 남기지 못했다. MCU 팀업 무비답지 않게, 싸울 줄 모르나 싶을 정도로 반듯했기 때문이다.
판타스틱 4가 딜레마를 푸는 법
지구-828의 수호자인 '판타스틱 4'. '수 스톰/인비저블 우먼'(바네사 커비)의 임신을 축하하며 새로운 가족을 맞이할 준비를 하던 그들은 돌연 위기에 빠진다. '실버 서퍼'(줄리아 가너)가 나타나 행성 파괴자 '갤럭투스'(랠프 아인슨)의 공격을 경고했기 때문. 자신을 막으려 우주로 향했 판타스틱 4에게 갤럭투스는 제안한다. '리드 리처즈/미스터 판타스틱'(페드로 파스칼)과 수의 아들이자 우주적 능력을 지닌 '프랭클린'을 넘기면 지구와 인류를 살려주겠다고.
그 순간 판타스틱 4는 '트롤리 딜레마'라고도 불리는 공리주의적 딜레마에 직면한다. 이 딜레마는 고장 난 기차가 다섯 명의 작업자가 있는 선로로 달려가고 있을 때, 레버를 당겨서 한 명의 작업자가 있는 선로로 변경할 수 있다면 대를 위해 소를 희생해야 하는지를 묻는다. 판타스틱 4의 입장에서는 작업자 다섯 명의 목숨이 온 인류와 지구의 운명이고, 한 명의 작업자가 그들의 가족이라는 게 차이점일 뿐이다.
이때 판타스틱 4는 철저히 인간적이고 개인적인 선택을 내린다. 어렵게 임신한 아들인 만큼 리드와 수는 절대 프랭클린을 포기하지 않는다. 그래서 그들은 다섯 명의 작업자가 기다리는 선로, 곧 지구와 인류가 기다리고 있는 선로를 선택한다. 이에 시민들은 판타스틱 4를 의심하고, 그들에게 분노를 표출한다. 그들이 보기에 판타스틱 4의 결정은 특별한 힘에 따르는 책임을 포기하고 도망친 꼴이니까.
흥미롭게도 그들의 사적인 선택 덕분에 딜레마는 해결된다. 시민 앞에서 수는 연설한다. 가족과 함께할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아서 두려워하는 그들의 심정에 공감을 표한다. 판타스틱 4가 본인들의 가족뿐만 아니라 지구의 모든 가족을 보호하기 위해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약속하며 시민들을 설득한다. 그 덕분에 판타스틱 4의 신뢰도가 다시 높아지고, 리드는 갤럭투스와의 전면전을 피할 전 지구적 프로젝트를 실행할 기회를 잡는다.
수의 연설이 특별한 이유
혹자는 이러한 전개를 작위적이라고 비판할 수 있고, 분명 일리 있는 지적이기도 하다. 하지만 극 중 판타스틱 4에 대한 이중적인 묘사를 유심히 살펴보면 수의 연설 이후 편의적인 전개가 의도된 것임을 눈치챌 수 있다. 지구-828에서 판타스틱 4는 그 어떤 MCU 히어로보다도 독특한 지위를 누린다. 그들은 토니 스타크만큼 유명하고, 캡틴 아메리카만큼 존경받고, 토르만큼 고결하며 브루스 배너보다 영민하다고 여겨진다.
실제로 '조니 스톰/휴먼 토치'(조셉 퀸)와 '벤 그림/씽'(에번 모스배크랙)은 모든 아이와 시민들의 완벽한 우상이자 친구다. 수는 '닥터 둠'의 라트베리아를 제외한 모든 국가의 협력을 끌어내는 범지구적 정치적 리더다. 지구에서 가장 똑똑한 과학자인 리드는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살아 숨 쉬는 영감 그 자체다. 영화는 이들의 업적과 위대함을 중간에 삽입된 방송 인터뷰 화면, 과거 자료 등을 통해 계속해서 강조한다.
그와 동시에 정작 관객들에게는 그들의 일상을 중점적으로 보여준다. 예상치 못한 임신 때문에 걱정이 많은 부모와 그저 신난 삼촌들의 모습은 바로 옆집, 옆 동 아파트에서 볼 수 있다고 해도 이상하지 않다. 반면에 초인적인 활약상은 그들의 능력을 확인하는 수준으로만 묘사된다. 영화 자체가 초능력자들의 영웅담보다는 조금 독특한 사람의 일상을 엿보는 것처럼 느껴질 정도다.
이처럼 소소한 히어로의 일상에 초점을 맞춘 덕분에 수의 연설은 특별해질 기회를 얻는다. 모두가 바라고 있지만, 현실에서는 볼 수 없다고 생각하는 이상적인 지도자의 모습을 그녀에게서 발견할 수 있기 때문이다.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새로운 <판타스틱 4>는 정치, 사회, 경제적 지도층과 그 외 계층 간의 심리적 거리감이 그 어느 때보다 벌어지고 있는 현실에 대해 일종의 영화적 위로처럼 기능한다.
지금, 필요한 가족 드라마
근래에 많은 사람들은 의심한다. 과연 우리 사회의 지도층이 사회적 문제를 모두의 문제라고 인식하고 진지하게 걱정하고 있는지를. 더 나아가 그들이 우리와 같은 세계에서 같은 걱정거리를 공유하며 살고 있는지, 같은 미래를 대비하고 있는지 문을 표한다. 지도자들이 공익보다는 그저 사익만 추구한다고 의심하는 시민들이 늘어남에 따라 포퓰리즘에 기반한 극단적 정치 세력도 나날이 발흥하는 중이다.
MCU의 판타스틱 4는 시민들이 품은 의심과 느끼는 거리감을 해소하는 존재다. 그들은 시민들 앞에서 솔직하다. 가족을 포기할 수는 없다고 털어놓는다. 하지만 그렇기에 다시는 가족과 함께하는 일상을 누리지 못할까 봐 걱정하는 것을 안다는 수의 공감에는 진심이 느껴진다. 아무리 우월하고 특별한 능력을 지닌 존재라 해도 같은 고민을 공유하고 있다는 솔직함이 사람들에게 믿음과 공동체 의식을 심어주기 때문이다.
즉, 수의 연설은 철저히 개인적이라서 오히려 공동체적이다. 가족애라는 공통점을 확인하면서 시민들은 판타스틱 4, 곧 사회적 지도층과 자신들이 같은 목표와 걱정, 미래를 공유하는 한 공동체이자 가족임을 실감하고 거리감을 좁힌다. 이는 단지 자기 가족뿐만 아니라 모든 가족을 자기 가족처럼 보호하기 위해 갤럭투스와 싸울 것이라는 판타스틱 4의 다소 뻔해 보이는 다짐에 전 지구적 차원의 신뢰가 모이는 이유이기도 하다.
이는 판타스틱 4를 영웅들의 집합체가 아니라 하나의 가족을 그려내는 데 주력한 선택이 서사적으로 영리한 이유다. 하나의 공동체나 하나의 가족과도 같다는 연대 의식보다는 개인과 집단 간의 차이가 주목받고 갈등과 분열이 확산는 현시점에 꼭 필요한 영화로 <판타스틱 4>를 포장해 냈으니까. 설령 그 희망이 비현실적인 꿈과도 같을지라도, 지금 누구나 바라는 정치적, 사회적 희망을 선사하는 영화가 바로 <판타스틱 4>인 셈이다.
가족은 보이는데, 히어로는 안 보인다
하지만 그렇기에 히어로 영화로서, 특히 MCU 영화로서 <판타스틱 4>는 한계가 명확하다. 프랭클린을 지켜야 한다는 수의 모성애가 갤럭투스와 갈등을 빚는 핵심적인 동기인 이상 그녀를 제외한 세 히어로의 존재감이나 역할이 눈에 띌 수가 없는 상황이 조성될 수밖에 없다. 그 결과 리드의 천재성도, 조니의 유쾌함도, 벤의 내적인 고뇌는 돋보이지 않을뿐더러, 캐릭터의 매력으로도 기능하지 못한다.
만약 판타스틱 4 내에서의 갈등이 강조되었다면 다른 캐릭터들에게도 기회가 있었을지 모른다. 예를 들어 갤럭투스의 요구를 두고 수와 리드는 다툰다. 감정적으로 접근하는 수와 달리 리드는 모든 경우의 수를 열어두어야 한다며 비교적 이성적으로 문제 상황에 대처한다. 이때 필연적으로 발생할 수밖에 없는 갈등을 부각한다면 리드만의 신념, 개성, 존재감이 돋보일 수도 있었다. 아이언맨과 대립각을 세운 캡틴 아메리카가 그랬듯이.
하지만 이들의 갈등은 단순한 견해 차이 정도로 비치고, 화해도 신속하게 이뤄지다 보니 기대한 효과는 찾아볼 수 없다. 도리어 극을 평면적으로, 모범적으로 느껴지게 할 뿐이다. 마치 판타스틱 4라는 이상적인 가족상을 통해 가족애와 모성애의 위대함을 강조하는 과정에서 정작 그 구성원들이 완벽한 가족이라는 이데아에 눌려버린 꼴이다. 심지어 수도 예외는 아니다. 헌신적인 어머니라는 이미지 외에는 드러난 바가 없으니까.
조니와 씽의 처지도 마찬가지다. 그나마 조니는 실버 서퍼와의 접점 덕분에 비중을 챙겼지만, 씽은 그조차도 없다. 변하기 전 외모를 의식하거나 대중들의 반응에 싫증을 내고, 연애처럼 평범한 일상을 누려 보려는 모습은 있지만 수의 모성애에 비하면 깊이가 충분치 않다. 이 불균형은 액션씬에서도 유지된다. 나머지 멤버들이 별다른 상황을 못 만들어낼 때, 수는 모성애로 증폭된 능력을 살려 압도적인 활약상을 선보이기 때문이다.
장점으로도 못 가리는 한계
다행이라면 시각적 요소가 단점을 일정 부분 상쇄한다는 것. 갤럭투스의 첫 등장 장면은 셀레스티얼 '아리솀'의 <이터널스> 등장씬에 비견될 수준의 위압감을 선보인다. 막상 지구에 도착한 후에는 기대에 비해 압도적이지 않지만, MCU에서 드물게 접할 수 있었던 우주적 공포감이 오랜만에 느껴지는 장면임에는 분명하다. 이에 더해 중성자별을 배경으로 펼쳐진 실버 서퍼와의 추격전도 MCU에서 기대하지 못한 볼거리를 선사한다.
무엇보다도 1960년대의 시대상을 반영한 세계관 디자인이 인상적이다. 임신 테스트기, 주방 도구, TV 같은 일상적인 소품뿐만 아니라 뉴욕의 스카이라인에 이르기까지 복고적인 문화와 혁신적인 기술력이 결합 풍경이 눈을 사로잡는다. 레트로퓨처리즘의 정수라고 해도 과하지 않을 정도다. 이는 우주 개발을 비롯한 과학 기술의 발전에 대한 낙관적인 분위기, 더 나아가 판타스틱 4를 향한 존경과 선망 어린 시선과도 조화를 이룬다.
그렇다고 해도 <판타스틱 4>의 한계를 완전히 숨기지는 못한다. 스토리텔링에 집중한 나머지 히어로 영화에게서 기대할 수 있는 쾌감 중 일부가 지워진 듯한 인상을 남겼다는 것. 또 공들인 가족 서사도 지나치게 모범적이라서 도리어 매력이 반감된다는 것. 이는 설령 MCU에 편입되기 이전에 제작된 과거 '판타스틱 4'에 비해서는 완성도가 높아졌다고 하더라도 호불호가 나뉠 법한 이유이기도 하다.
이는 MCU의 새 방향성으로 인한 문제 같기도 하다. 양보다는 질에 집중하겠다는 케빈 파이기의 발표 이후 공개된 <썬더볼츠*>와 <판타스틱 4>의 장단점이 같기 때문. 현대인의 정신 건강, 현대 사회의 정치적 갈등이라는 현실적 이슈를 반영한 서사가 전자라면, 기대에 못 미치는 액션은 후자다. 이러한 시도가 MCU의 진짜 부활로 이어질지 지켜보는 것도 쿠키 영상이 예고한 <어벤져스: 둠스데이>를 기다리는 재미가 아닐까 싶다.
Acceptable 그럭저럭
MCU 답지 않게 너무 반듯한 팀업 무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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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듄(DUNE)' 리뷰 - 영화 세계관 및 스토리 요약정리(*스포일러가 있습니다)
- 동명의 원작소설 기반 분석 해석
- 베네 게세리트, 초암공사, 퀴사츠 헤더락 등 정리
- 영화 정보
장르: 스페이스 오페라
감독: 드니 빌뇌브
각본: 에릭 로스, 존 스페이츠, 드니 빌뇌브
원작: 프랭크 허버트의 듄(1965)
제작: 드니 빌뇌브, 케일 보이터. 메리 페어런트,조 카라치올로 주니어
주연: 티모시 샬라메, 제이슨 모모아 외
촬영: 그레이그 프레이저
음악: 한스 짐머
촬영 기간: 2019년 3월 18일 ~ 2019년 7월 26일
제작사: 레전더리 엔터테인먼트,워너브라더스
수입사: 워너 브라더스 코리아
개봉일: 2020년 12월 1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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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좋은 사람> 티저 예고편
고등학교 교사 ‘경석’(김태훈)의 반에서 지갑 도난 사건이 발생하고,
같은 반 학생이 ‘세익’(이효제)이 범인으로 지목된다.
‘경석’은 ‘세익’을 불러 어떤 말을 해도 믿을 테니 진실을 말하라고 하지만,
세익은 무조건 아니라며 억울함을 호소한다.
그날 밤, 학교에 데려왔던 ‘경석’의 딸 ‘윤희’가 교통사고를 당하게 되고
또 다시 ‘세익’이 범인으로 지목되는데…
의심하는 순간 모든 것이 흔들렸다
의심과 믿음 그 사이에 좋은 사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