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미널 (The Terminal, 2004)
뉴욕은 그의 목적지가 아니다.
크로코지아에서 온 빅터 나보르스키 (톰 행크스)는 뉴욕행 티켓을 끊었다. 미국에 발을 들여놓기 직전, 입국심사 도중 문제가 누구도 상상할 수 없었던 발생 한다. 그의 나라 크로코지아가 없어진 것이다.
그는 나라가 없는 사람으로 입국에 부적격 판정을 받게 되었고, 국적이 없는 그는 방금 전까지 자신의 고향이었던 크로코지아에도 돌아갈 수도 없게 된다.
잠시 공항 터미널에 머무르도록 임시조치를 취해놓은 사람은 바로 딕슨, 승진을 앞둔 케네디 공항의 국장이다. 그는 자신의 승진을 위해 어떤 문제를 만들고 싶지 않아, 빅터의 상황을 해결하지 않은 채로 그대로 둔다. 공항 관리가 아닌 나라나 법적으로 다뤄주기를 바라면서 말이다. 그렇게 어쩌다 공항에 하룻밤 묵게 된 빅터에게 푸드코트에서 이용할 수 있는 쿠폰과 호출기를 주고, 그는 폐쇄된 67번 게이트에서 잠을 자게 된다.
하지만 다음날 크로코지아의 전쟁은 더욱 심화되었고 빅터의 상황도 악화되었다. 국가가 없는 그는 홀로 이 상황을 해결할 수도 없고, 아무도 이 일을 해결해주지 않는 상황에서 빅터의 할 일은 호출기의 알람을 기다리는 것 밖에 없다. 외교가 재개되어 비자를 받을 수 있을 때까지 기다리는 것뿐이다. 설상가상, 그는 꼬마를 도와주려다가 푸드코트의 쿠폰과 비자를 모두 잃어버리기까지 한다.
그는 이곳에서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영화 터미널은 스티븐 스필버그의 2004년 작품이다. 늘 스펙터클한 SF 장르의 영화로 우리에게 알려진 스티븐 스필버그. 그는 영화계에서 전 세계적으로 이름을 알리게 된 영화 <죠스>, <이티>는 영화 비용이나 제작 측면에서 ‘스케일이 큰’ 작품들을 제작했다. 하지만 그의 필모그래피를 살펴보면 영화 <링컨>, <퍼스트맨>, <쉰들러 리스트>와 같은 인문학적인 메시지를 담은 영화를 기획하는 등 마냥 스펙터클한 규모가 아닌 흔히 '사람 냄새'나는 이야기도 많이 해오고 있다.
(2003년, 2004년 연달아 <캐치 미 이프 유캔>과 오늘 소개한 영화 <터미널>까지 톰 행크스와 함께 했다.)
이렇게 그의 필모그래피를 쭉 살펴보니 그에게 할리우드란 영화적 스케일과 이야기를 전하는 방식일 뿐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는 언제나 사람들, 그리고 삶을 이야기하고 있었다.
<터미널>도 그런 이야기라는 것을 말하고 싶다. 왠지 겨울이 되면 따뜻한 이불속에서 다시 한번 보고 싶게 된다. 영화 <터미널>은 공항에 갇힌 빅터의 생활을 그린 영화다. 그 속에서 우리는 빅터의 삶을 함께 엿볼 수 있다는 것 하나만으로 큰 가치를 갖는다. 왜 그럴까,
(아래 내용부터는 스토리의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빅터에게 공항은 그의 집이 되기에 충분했다.
공항은 의, 식, 주. 생활에 가장 기본적인 것들을 해결할 수 있는 장소이다. 빅터에게 이 곳은 뉴욕으로 나가는 문만 열지 못할 뿐이다.
크로코지아의 긴 전쟁이 시작되면서 그는 터미널 67번 게이트에 자신의 생활공간을 만든다. 그리고 잃어버린 돈과 푸드코트 쿠폰을 대신할 돈을 벌기 위해 공항을 전전하기 시작한다.
잠옷을 입고 공항을 돌아다며 화장실에서 개의치 않게 머리를 감고 씻고,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찾아다닌다. 그리고 그가 돈을 벌기 시작한다. 공항 카트를 정리하며 동전을 벌어 끼니를 때우며 며칠을 지낸다. 이 모습을 본 딕슨은 그의 일자리를 빼앗으려 카트를 정리하는 공항 내 직원을 배치한다.
일자리를 뺏긴 그는 영어도 서툰 상태이다. 그는 우선 책을 통해 영어 공부를 하고 이 상황을 해결하기 위해 매일 입국심사를 받으러 가서 자신의 상황을 설명한다. 해결할 수 있는 일은 없지만 그는 이곳에서 새로운 아르바이트를 할 수 있게 된다. 입국심사를 진행하는 직원에게 매일매일 그녀의 관심사, 취미, 일상 등을 물어봐주고, 그녀를 좋아하는 공항 식품담당 직원 크루즈를 통해 음식을 얻어 지내게 된다. 빅터는 자신의 환경에 대한 불만에 집중하지 않았다.
그러던 중, 어느 날 그의 보금자리 67번 게이트에 변화가 생겼다. 창고 수준과 같았던 그곳의 공사가 시작되었다.
빅터는 누군가가 바르다만 벽의 마무리칠을 한다.
빅터는 누군가가 공사를 하다만 흔적을 본 발견하고 이내 솜씨를 발휘한다. 공항의 공사팀은 빅터의 솜씨를 보고 고용해, 그는 새로운 일자리를 또 얻게 되었다. 그리고는 동료(?) 직원의 연애를 도와주고, 좋아하는 여자와의 데이트를 위해 온갖 준비를 다하고, 그리고 아무도 도와주지 않고 외면하는 것들에 대해 나서서 이야기하는 사람이다. 그렇게 무려 9개월이라는 시간이 흐른다. 그리고 마침내 크로코지아의 전쟁도 끝나게 된다. 하지만 그가 뉴욕으로 갈 수 없게 된다. 그 사이 승진한 딕슨은 빅터에게 고국으로 돌아가라며 미국에 들어오는 것을 허락하겠다고 한다.
공항 사람들에게 무시받고 없는 사람 같은 존재가 되었던 비터는 이미 공항 사람들에게 친구가 되었고, 영웅이 되었다.
‘프렌즈’.
빅터가 열심히 연습하던 단어이다.
수많은 공항 사람들이 든든한 친구들이 된 빅터에게 딕슨은 더 이상 자신의 권력을 이용한 부조리한 일을 벌일 수 없게 된다.
아무것도 할 수 없는 터미널에서의 9개월
터미널이라는 곳은 출발한 국가와 도착할 국가의 사이이다. 문을 열고 나와, 다시 다른 문을 열고 나가기 전의 장소. 과정의 장소이다. 그가 사랑한 여자는 늘 기다려선 안될 것을 알면서도 자신이 만나는 남자의 연락을 7년째 기다리고 있었다. (결국 어떤 선택을 하고 말지만.)
그리고 빅터는 크로코지아에서 와서, 뉴욕을 향해 문을 열고 싶었다. 둘 다 무언가를 기다리고 있는 곳의 상징이 바로 ‘터미널’이 된다.
누군가의 요구나 지시 외에는 할 수 없는 곳, 어정쩡한 과정의 장소, ‘지나감’을 위해 존재하는 곳과 같았던 그곳에서도 빅터는 삶을 살아가고 있었다. 이 영화는 우리에게 억지스럽게 위로를 하려고 하지도 않고, 어떤 위인의 삶을 교훈처럼 주지도 않는다. 그저 빅터의 9개월을 보여준다. 그곳이 어디든 빅터는 자신의 할 일을 만들고, 사랑했다. 어떤 특별한 목적이 아니라 자신이 할 수 있는 것들에 집중한다.
빅터의 9개월이 꼭 우리의 삶의 일부분, 혹은 전체 같기도 하다. 아무것도 할 수 없을 것만 같은 환경과 우리가 힘들어하는 그림자들. 빅터가 집중한 것은 자신의 삶이다. 자신을 힘들게 하는 환경들이 있었지만 자신의 삶을 사랑했다. 더, 더, 자신의 삶을 사랑하고 싶어 했다. 영화에서 빅터는 어떤 목적이 있다. 늘 지니고 다니는, 그리고 모든 사람이 궁금해하던 '재즈'가 들어있다는 빈 깡통 캔. 그것을 채워야 했다. 아버지의 꿈을 이루러 뉴욕에 가야 했다. 하지만 영화가 말하는 '터미널'에서의 9개월의 생활이 우리에게 수많은 이야기를 하고 있다. 누가 이 영화를 보게 되던지, 분명 터미널 안을 전전하는 빅터를 통해 어떤 이야기를 들을 수 있게 될 것이다.
*사진 출처: IMDB <The Termina (2004) > Photo Gallery
네이버 <터미널> 포토 스틸컷
* 본 콘텐츠는 브런치 성 실 님의 자료를 받아 씨네랩 팀이 업로드 한 글입니다.
원 게시글은 아래 출처 링크를 통해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