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inoDAY2024-08-28 22:06:52
에이리언: 로물루스 | 클래식의 트렌디한 변주
<에이리언: 로물루스> 리뷰
*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2142년, 웨이랜드 유타니 사가 경영하는 식민지 행성 '잭슨의 별'에서 살아가는 '레인'(케일리 스패니). 그녀는 남동생이나 다름없는 인조인간 '앤디'(데이비드 존슨)와 함께 새로운 행성으로 떠나기 위해 필사적으로 일한다. 마침내 주어진 작업 시간을 모두 채워서 꿈이 이뤄지려는 순간, 레인은 작업 시간이 다시 늘어났고 그녀는 평생 식민지를 떠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그런 그녀에게 친구 '타일러'(아치 르노)가 접근한다. 버려진 우주 기지 '로물루스'에 있는 연료와 우주선을 활용하면 새로운 행성을 떠날 수도 있다는 것. 이에 레인은 목숨을 건 식민지 탈출 계획에 가담한다. 하지만 그들의 계획은 시작과 동시에 어긋난다. 의도치 않게 로물루스에 숨어 있던 에이리언을 깨워버린 것. 에이리언이 습격하는 가운데 레인과 앤디는 서로를 지키기 위한 사투에 나선다.
오마주와 혁신, 두 마리 토끼를 잡다
한계 효용 체감의 법칙. 한 재화의 소비를 한 단위 변화시킬 때 체감하는 효용의 변화분을 한계 효용이라고 할 때, 그 효용의 증가분이 점점 줄어든다는 법칙이다. 영화도 예외는 아니다. 특히 장수 시리즈는 한계 효용 체감의 법칙을 잘 보여준다. 한 시리즈가 장수할 수 있는 힘은 첫 편의 임팩트에서 비롯한다. 액션, 볼거리, 스토리, 캐릭터 중 하나라도 관객의 눈을 붙잡으면, 그 매력이 곧 프랜차이즈의 정체성이 된다.
그런데 시리즈가 반복될수록 이 매력은 장애물이 된다. 한 번 자극에 익숙해진 관객은 더 이상 효용을 느끼지 못할 테니까. 그렇다고 변화를 주는 것도 쉽지는 않다. 오마주와 변화 사이에서 줄을 잘 타야 한다. 과하게 변주하면 기존 정체성을 사랑하는 팬들이 프랜차이즈를 떠날 테니까. 물론 변화를 주지 않으면 이름값만 남은 채 도태된다. <스타워즈> 시퀄 시리즈, <터미네이터> 시리즈가 대표적이다.
<에이리언: 로물루스>의 어깨도 같은 이유로 무거웠다. 본편 4개와 프리퀄 2개의 무게를 견뎌야 했다. 관객의 관심으로부터 멀어져 가던 시리즈도 되살려야 했다. <로물루스>는 영리하게 과제를 해냈다. 시작점으로 되돌아가 클래식한 매력을 선보이면서도 시대에 맞게 달라진 공포를 선보인다. 그 덕분에 <로물루스>는 다른 시리즈의 수많은 속편과는 달리 한계 효용 체감의 법칙을 돌파하는 데 성공했다.
준수한 공포 영화
<로물루스>는 독립적인 공포 영화로서 준수하다. 중반부까지는 <에이리언> 1편을, 후반부는 2편을 오마주 하되 전편을 몰라도 충분히 즐길 수 있다. 초반에는 폐쇄된 공간을 활용한 에이리언과의 추격전이 펼쳐진다. 페이스 허거가 사람의 체온과 소리에 반응한다는 점을 역이용해 복도를 지나가는 시퀀스가 대표적이다. 장소만 우주선 내부로 바뀌었을 뿐, 마치 좀비 영화를 보는 것 같은 서스펜스를 맛볼 수 있다.
특히 억지스러운 전개가 없어서 더욱 인상적이다. 몇몇 공포 영화는 상황을 손쉽게 설정하려고 주인공들을 바보처럼 만드는 실수를 범한다. <로물루스>는 다르다. 여섯 캐릭터를 둘씩 짝지어서 남매 또는 커플이라는 관계성을 부여한다. 그 덕분에 자칫 답답할 수 있는 인간 주인공의 선택에는 최소한의 개연성이 생긴다.
각각의 쌍을 다른 공간에 던져두면서 다양한 상황을 유발하기도 한다. 한 쌍은 화물선에, 다른 한 쌍은 로물루스 기지에, 또 다른 한 쌍은 두 공간에 찢어서 배치하는 식이다. 그 결과 죽거나 도망치기만 하는 단조로운 구성을 벗어날 수 있다. 문을 사이에 두고 여동생 '케이'(이사벨라 메르세드)가 죽는 모습을 바라만 보는 타일러, 그를 도우려는 레인과 그녀를 막는 앤디, 앤디를 원망하는 레인이 한 공간에 모여 있는 장면이 대표적이다.
후반부에는 나름 화끈한 총기 액션을 선보인다. 우주선 내부 중력 생성기와 제모노프의 산성 피라는 변수를 적재적소에 활용해 쌓아 놓은 서스펜스를 일거에 해소하는 쾌감을 안겨준다. 각각의 스테이지를 통과하는 구성은 마치 게임처럼 보이기에 신선하다. 반면에 마지막까지 안심할 수 없는 외계 괴물의 끈질긴 생명력은 <에이리언> 시리즈다워서 반갑다.
공포의 속성이 달라졌다
하지만 <로물루스>에서 가장 인상적인 대목은 오마주가 아니다. 변화다. 구체적으로는 공포의 속성이 달라졌다. 1편이든, 2편이든 <에이리언> 시리즈는 같은 공포를 다뤘다. '미지의 존재로부터의 습격'이 원천이었다. 에이리언은 인류가 아직 다 알지 못하는 우주에 대한 공포감을 시각화한 캐릭터였다. 아무리 죽이고, 우주 공간으로 떨궈도 기어코 살아 돌아오는 이 괴물은 이해할 수 없어서 더욱 무서웠다.
특히 그들은 '인간다움'을 근본적으로 파괴하는 존재였다. 에이리언은 탄생 과정에서부터 인간다움을 철저히 부정한다. 그들은 인간 숙주의 입을 통해 잉태되고, 비정상적으로 빠르게 어머니 뱃속에서 자라난다. 태어날 때는 모체를 찢고 나온다. 이 과정은 인간답지 않아서 불편하고, 잔혹하게 느껴진다.
<로물루스>는 그와는 결이 다른 공포를 보여주려고 노력한다. 범죄자나 인공지능처럼 '일상에서 흔히 접할 수 있는 위협'이라는 현대 사회의 새로운 공포심을 반영했다. 그래서인지 <로물루스>는 인간을 닮은 존재에 대한 두려움으로 가득하다. 그 중심에는 인조인간이 있다. 그들은 인간을 똑 닮았다. 인간과 똑같이 말한다. 심지어 앤디는 스스로를 인간과 같은 존재로 생각한다. 레인을 진짜 가족이라고 생각할 정도다.
하지만 그들의 행동 양식은 인간답지 않다. 목표를 위해서라면 누구든 희생한다. 과학장교 '룩'(이안 홈)은 웨이랜드 유타니 사의 목표를 위해서라면 거리낌이 없다. '검은 액체'를 이용해 개량 인간을 만드는 실험을 지속하려고 정작 사람을 가차 없이 희생한다. 앤디도 잠시 포맷된 동안에는 사랑하는 이를 잃은 슬픔을 전혀 이해하지 못한다. 이렇게 인간을 빼닮았지만 전혀 인간답지 않은 행동은 에이리언과는 다른 두려움을 자아낸다.
인간다움을 잊은 세상
달라진 속성의 공포는 <로물루스>의 메시지와도 맞닿아 있다. 영화는 '잭슨의 별'에서의 삶을 자세하게 보여준다. 사람들은 24시간 내내 해가 뜨지 않는 곳을 벗어날 수 없다. 레인이 계약한 노동 시간을 다 채워서 이주 신청을 하자마자 노동 시간이 실시간으로 늘어났듯이. 즉, 인간이 더 풍요롭고 넓은 공간에서 살겠다는 목적으로 이루어진 식민지 개척은 오히려 인간들을 사지로 몰고 간다.
로물루스 기지 안에서도 비슷한 결의 사건이 반복된다. 인간을 더 완전하게 개량하겠다는 목적의 실험은 오히려 로물루스에 타고 있던 모든 인간을 해친다. 즉, 인간을 위하는 것 같지만 오히려 인간을 해치는 웨이랜드 유타니 사의 욕망은 인간 같지만 인간다움을 이해하지 못하는 인조인간의 행위와 같은 궤에 있는 셈이다.
이는 익숙한 형태의 에이리언 대신 '오프스프링'이 마지막 장애물로 등장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오프스프링은 제모노프의 몸과 인간의 얼굴을 지녔다. 인간을 닮았고, 인간처럼 표정도 짓지만 결코 인간은 아닌 '불쾌한 골짜기'는 그 어느 때보다 큰 충격을 선사한다. 이는 인간을 위하는 존재나 행위가 오히려 인간을 해치는 세태와 그 세태가 유발하는 두려움을 시각화한 결말이라고 볼 수 있다.
시리즈의 새 출발
<로물루스>의 스토리텔링은 <에이리언> 시리즈에 일관성을 부여한다는 점에서 더욱 눈에 띈다. <에이리언> 시리즈는 리들리 스콧, 제임스 카메론, 데이비드 핀처, 장피에르 죄네가 각자 개성을 녹여낸 시리즈였다. 반대로 <프로메테우스>와 <에이리언: 커버넌트>로 이어지는 프리퀄은 리들리 스콧만의 프로젝트였다.
그 결과 본편과 프리퀄은 분위기가 상이하고, 설정도 미묘하게 달랐다. 특히 프리퀄은 기원이 분명하지 않았던 에이리언의 신비함을 벗겨내 시리즈 개성을 훼손했다는 비판도 받았다. <로물루스>는 바로 이 괴리감을 채워준다. 기존 에이리언이 등장하는 장르 영화로서의 쾌감은 본편의 연장선상에 있다. 반면에 인조인간을 중심으로 한 스토리텔링은 현대 사회의 새로운 공포심을 자극하는 프리퀄과 궤를 같이 한다.
미술 디자인의 영역도 가교 중 하나다. 로물루스 기지를 비롯해 우주선 디자인은 전반적으로 1편과 같이 투박한 기계미가 돋보인다. 반면에 검은 액체가 있는 실험실만은 <프로메테우스>에서 등장한 유려한 디자인으로 설계되어 있다. 프리퀄과 본편의 장점만을 더해 시리즈에 생명력을 불어넣겠다는 의도를 공간적으로 보여준 셈이다. 영화의 부제가 로마의 건국자인 '로물루스'인 것도 시리즈의 새 출발을 알리는 듯 보인다.
방점은 찍지 못했다
다만 <로물루스>는 시리즈를 회생시키는 것 이상으로 나아가지는 못한다. 뛰어난 연출과 편집, 스토리텔링으로 서스펜스를 끌어올려도 기존 시리즈의 틀을 완전히 벗어나지 못했다는 한계는 분명하다. 에이리언을 완전히 격퇴한 줄 알았지만 인간 몸에서 새로운 괴물이 튀어나온다거나, 어딘가에 숨어 있던 에이리언이 죽지 않고 등장하는 식이다. 다음 사건을 예상할 수 있다 보니 매력이 반감될 수밖에 없다.
캐릭터 구축도 아쉽다. 사실 남매애를 내세운 선택은 꽤 흥미롭다. 보통 상업영화에서는 이성애, 동성애, 우정, 형제애나 자매애를 감정적인 동력으로 자주 활용하기 때문. 그런데 정작 앤디와 레인을 제외하면 남매애를 보여주는 형태는 일차원적이다. 또 앤디와 레인의 남매애도 특별한 인상을 남기지는 못한다. 레인이 특유의 개성을 보여주는 대신 '엘렌 리플리'(시고니 위버)를 2024년에 맞게 업데이트한 모습에 불과하기 때문.
결과적으로 <로물루스>는 시리즈의 연결고리, 혹은 새 출발 그 이상의 위치에 올라서지는 못한다. 가능성을 충분히 보여줬기에 아쉬움은 클 수밖에 없다. 그렇지만 레인의 다음 이야기는 여전히 기대가 크다. <에이리언> 시리즈가 모처럼 명성에 맞게, 또 시대에 맞게 배출한 수작이라는 사실만큼은 부정할 수 없으니까.
Exceeds Expectations 기대이상
과거와 현재를 모범적으로 묶은 새 출발
Relative cont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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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당신만의 숲
한 아름다운 커플이 결혼을 한다. 그 결혼식의 참석자이자 약간은 얼간이같은 나일스는 사실 남의 결혼식이 열리는 그 날을 반복해 살아가고 있다. 자신의 결혼식도 아니고, 자신의 친구도 아닌, 자신의 여자친구의 친구 결혼식을 어제도 보았고, 오늘도 보며, 내일도 보게 될 것이다. 무한타임루프 세계관에 갇혀버린 것이다. 그렇게 남들에게 지나가는 하루이지만 나일스에게는 똑같이 반복될 그 하루를 사는 와중에 세라를 만나 의도치 않게 그녀를 이 타임루프 세계에 끌어들인다.
나일스와 광란의 밤을 보내다가 타임루프 세계관에 갇혀버려 그의 인생을 망친 대가로 나일스를 끊임없이 괴롭히는 나일스 사냥꾼 로이를 포함해 똑같은 하루가 반복되는 불멸의 저주에 걸린 이들은 과연 이 역경을 헤쳐나갈 수 있을까, 아니, 헤쳐나갈 마음들은 있는 건가??
1. 병맛 코드 속 숨겨진 진지한 메시지
이 영화는 정말 웃기다. 영화 전체적인 분위기는 병맛을 넘어 정말 통통 터진다는 표현이 맞을 것 같다. 그런데 이 영화가 주고자 하는 메시지는 결코 가볍지만은 않다.
영화 속에서 타임루프 세계관에 갇힌 나일스, 세라 그리고 로이를 보고 있자면, 하루하루 쳇바퀴처럼 돌아가는 일상에 지친 현대인들을 보는 것 같았다. 똑같이 반복되는 하루에 허우적대는 그의 모습은 큰 보상없이, 이벤트 없이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똑같이 흘러가는 일상을 그저 흘러가는 대로 살다보니, 어제 내가 저녁으로 뭘 먹었는지, 내가 지인을 만난 게 어제인지, 그제인지 잊는 나의 모습을 보는 듯했다. 일에 치이고, 사람에 치이면서 하루하루 버텨내고 있는 사람들의 체념, 방황에서 비롯된 현대인들의 우울한 정서를 느낄 수 있었다. 그런 생각을 하다보니, 분명히 영화는 병맛 코드로 진행되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알 수 없는 짠함, 우울함을 느낄 수 있었다.
현대인들, 특히 직장인들의 삶은 큰 변화랄 것이 없다. 그저 오늘도 회사와 집을 오가며, 내일도 회사와 집을 오갈 것이고, 어제도 회사와 집을 오갔을 것이다. 그 와중에 상사에게 스트레스를 받았을 수도 있고, 다른 친구와 비교를 하며 자괴감에 빠졌을 수도 있으며, 자신이 옳지 못한 행동을 저질러 자신을 자책하고 있었을 수도 있다. 그렇게 인생 자체에서 크게 만족감을 느끼지 못하고, 앞으로 나아가는 방법을 잊은 사람들이 정말 많다.
"난 과거에 뭘하고 살았는지 잊었어요. 기억이 잘 안나요."
현대인 중에서도 나일스는 이미 인생에서 이렇다할 성과를 이뤄내지 못하고 길을 잃어버렸는데, 다른 길을 찾아가 볼 생각조차 안하고, 체념한 사람을 상징한다. 앞으로 더 나아가볼 생각조차 포기한 사람들, 말하자면 우울증에 빠진 사람들을 생각나게 하는 캐릭터였다. 다른 사람들 앞에서는 마냥 웃고 있지만 속은 문드러진 사람들을 보는 것 같았다. 미래에 대한 기대가 없으니, 과거에 내가 한 실수들을 바로잡을 생각도 못하고, 과거를 잊은 듯한 사람으로 보였다. 그래서였는지, 그냥 그가 처한 상황, 타임루프의 원인도 궁금해하지 않고, 그저 시니컬하게 오늘은 어떤 일을 하면서 어떻게 흘러갈지 다 보이는 결혼식 날을 보내야 할까 고민을 하면서 그저 현실에 안주하는 모습을 보인다. 누군가는 그가 미래를 기대할 수 없는, 어쩔 수 없는 상황에 처해 있으니, 현재라도 충실하게 사는 사람이라고 볼 수 있지 않냐고 할 수도 있지만 오히려 타임루프 상황에서 고통받고 있으면서도 타임루프를 벗어나 볼 생각도 없이 체념하고, 안주하는 모습이 더 현실성 있다고 보여진다.
반면, 세라는 나일스와는 달리, 그녀가 처한 이 말도안되는 현실을 바꿔보려고 발버둥치는 의지를 보여준다. 그녀가 이토록 발버둥치는 이유는 그녀의 내면 속에 자리잡은 자기비하적인 감정, 자책감 때문이었을 것이다. 가족에게 도움이 되고 있지 않다고 느끼는 자책감, 나는 사람들에게 온전히 사랑받을 수 없다고 생각하는 자기비하적 감정은 그녀를 갉아먹고 있었지만 그녀 내면 깊은 곳에 그녀도 이런 거지같은 현실에서 벗어나고 싶은 반작용적 감정도 있음을 보여주며, 그녀의 부정적인 일면이 그녀의 진취적인 면모를 더 부각시킨다.
이 비슷한 듯 다른 두 남녀의 차이를 통해 얻을 수 있는 시사점은 모든 사람들이 똑같은 쳇바퀴 같은 일상을 살고 있다고 가정했을 때, 결국 그 상황을 헤쳐나가는 원동력은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는 의지에 달려있음을 시사한다.
2.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의 차이
영화가 진행될 수록 영화 속 캐릭터들은 각자의 의견을 내세우며, 각자만의 인생관을 대표하는 논리를 펼치는데, 그 차이를 비교해보는 것도 재미있다.
나일스의 관점은
"어차피 이 타임루프 세계를 나가도 크게 대단하게 좋은 일은 발생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이 세계는 이미 내가 익숙해진 세계이고, 크게 부족한 것이 없으니, 예상치 못하게 위험해질 수 있는 타임루프 밖의 세계는 이제 관심없어졌다."
라고 한다면, 세라의 관점은
"그래도 이 타임루프 세계를 벗어나면, 우리는 내일에 대한 희망을 가질 수 있게 되지 않는가, 내가 과거에 행했던 과오들을 털어내지 못한 채 죄책감에 시달리면서 이 똑같은 일상 속에서 새로운 무언가를 시도한들 무슨 큰 의미가 있겠는가, 이렇게 죄책감을 안고, 안정감을 추구하기 보다는 과거를 청산하고, 위험한 불확실성에 배팅을 해보고자 한다."
라는 것이다. 이 비슷한 듯 다른 두 남녀의 차이를 통해 얻을 수 있는 시사점은 모든 사람들이 똑같은 쳇바퀴 같은 일상을 살고 있다고 가정했을 때, 결국 그 상황을 헤쳐나가는 원동력은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는 의지 뿐만이 아니라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에 따라 달라질 수 있음을 시사한다.
이런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의 차이는 타임루프 세계관에서 살고 있는 이 두 남녀 뿐만이 현실을 살아가는 사람들에게도 적용해 볼 수 있다. 이런 관점은 결국 안정감 vs 도전 정신으로 압축해 볼 수도 있을 것 같은데, 이 글을 읽고 있는 사람들에게 묻고 싶다. 당신은 어떤 관점으로 살아가고 있는지. 혹은 당신은 어떤 관점에 동의하는지. 나는 개인적으로 세라에 생각에 동감하는 편이다.
3. 당신의 어바인은 무엇인가요
개인적으로 세라의 관점에 동의하지만 로이처럼 타임루프 세계관에서 꾸준히 살아가는 것에 대해 아주 부정하지도 않는다. 어차피 벗어날 수 없는 세계라면, 나만의 안식처를 찾아 매일 똑같이 반복되는 하루 중에서 자신이 긍정하고 살만한 이유를 찾는다면 그것도 그것대로 괜찮은 삶일 것이다. 로이가 그러했듯이.
하지만 난 이게 나일스의 시니컬한 체념과는 달리 평가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나일스는 자신만의 삶의 이유를 찾지 못하고 방황하다가 체념한 것이었다면, 로이는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똑같이 진행될 날들이지만 자신의 가족들의 모습을 보면서 흐뭇해하고, 자신의 아내가 더 이상 나이들지 않을 수 있음을 긍정하면서 자신의 삶까지 긍정하니, 더 이상 나일스 사냥꾼 노릇을 하지 않게 되었다. 더 이상 폭력을 행사하면서 자신의 망가진 인생을 책임을 나일스에게 돌리지 않아도 될만큼 행복하게 살 만한 숨통을 찾았기 때문이다.
이런 로이의 삶의 방식을 통해, 누군가는 세라처럼 쳇바퀴 같은 삶을 용기있게 나올 수 없을지라도 자신이 처한 상황에 대해 남탓을 하지 않고, 자신만의 어바인, 즉, 인생의 소확행을 찾고, 긍정적인 마음을 갖고 삶을 살아낸다면, 그 삶을 체념으로 점철된 망가진 삶이라고 누가 평할 수 있겠는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처럼 우리 모두 조금씩 우울하고, 자신을 자책하고, 원망하고, 가끔 남도 원망하면서 조금은 찌질하게 살아가고 있지만 가끔 자신을 위로하거나 자신을 기쁘게 하는 당신만의 어바인을 찾아낸다면, 당신은 세라처럼 쳇바퀴 같은 삶을 뚫고 나갈 용기가 없음을 비관하면서 살아갈 필요도 없어질 것이다. 결국 이 영화는 우리 모두 거창한 용기 없어도 되니까 자신만의 숲을 찾아 안정적이고 긍정적인 마음으로 버텨내는 미학에 대해 고찰하는 영화이다.
그래서 묻습니다. 당신은 당신만의 어바인이 있나요?
■ 해당 영화의 시사회는 씨네 랩의 크리에이터로서 참석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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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술과 공명과 기억
*온라인 무비 매거진 '씨네랩'을 통해 시사회에서 감상 후 작성하였으며,
줄거리가 일부 서술되어 있습니다. 영화 개봉일은 2월 1일입니다.*누군가의 소중한 기억에 들어가는 기분으로 푹 젖어드는 영화입니다.
극장에서 보시길 적극 추천 드려요. :-)* * *
영화 <애프터썬>은 20여 년 전 11살 소피가 여름방학 끝자락 아버지와 함께 갔던 튀르키예 여행을 소재로 한다. 그래서 현재의 소피, 과거의 소피, 여행에서 찍은 캠코더 영상까지 다양한 결의 영상이 섞여 있다.
리조트로 이동하는 버스에서 부녀가 소곤소곤 귓속말을 하며 여행은 시작된다. 광활한 들판을 달리는 튀르키예의 버스. 영화는 캠코더 줌 소리와 캠코더 속 계단 현상으로 조각조각 깨진 영상으로 시작하면서 이것이 영상임을 선명하게 느끼게 만들더니, 이내 버스를 같이 탄 것처럼 가장 현실적인 시야 안에 관객을 둔다. 덕분에 새삼 깨닫는다. 기억은 단순한 저장과 축적이 아니라 편집과 서술에 가까운 행위라는 것을.
촬영한 사람의 1인칭 시선이 반영된 캠코더 영상처럼, 기억은 사실 1인칭으로 서술된 후 편집된다는 것을. 우리는 우리에게 공명한 것만을 서술할 수 있으며, 서술한 후에 비로소 기억할 수 있는 것이다. 어두운 방에 앉아 캠코더 속 오래된, 변해버린 기억들을 더듬어 보는 아빠의 모습이야말로 ‘기억을 기억’하는 우리 모습에 가까운지 모르겠다. 숨소리만 들리는 이 영화 속 새벽을 가만 집중해 바라보게 되는 것도 어쩌면, 새벽은 모든 추억이 가장 선명하게 요동하는 시간이기 때문에.
이 영화는 관객에게 소피와 아빠의 기억을 설명하고 보여주기보다, 그냥 그들의 기억 속에 관객을 덜렁 내려놓는다. 덕분에 마치 <이터널 선샤인>의 주인공들처럼 기억에 숨어든 기분마저 든다. 남의 부녀 여행에 별안간 동승해 버린 나는 어리둥절한 채로 열심히 두 사람의 세계를 파악한다. 그러다 보면 영화를 본다는 느낌 그 이상으로, 이 영화를 내 기억으로 새로 쓰는 느낌마저 든다. 그렇게 영화는 관객을 적극적으로 이끈다. 기억이란 이렇게도 적극적인, 그럼에도 아주 선명할 수만은 없는 행위인 것이다.
수백 가지 감상문이 가능할 이 영화를 보는 내내, 튀르키예의 높은 하늘과 어마어마한 광량을 함께 느끼는 듯했다. 그래서일까 따끈한 햇볕 아래에서 콧날이 시큰거리는 기분을 느껴야 했다. 이 영화의 어떤 순간이 나에게 공명했는지 서술해 보기로 한다. 결국 나에게 이 영화는 나의 서술로 기억될 테니까.
기억은 공명하는 것
누군가와 관계를 맺는다는 것은, 단지 지금 내 눈앞의 상대뿐 아니라 그의 과거와 미래까지 마주하게 된다는 뜻이다. 그 순간은 비장하고 묵직한 운명의 얼굴을 하고 오지 않는다. 아주 여상한 순간, 가볍게 찾아온다. 미리 준비할 수도 없게.
튀르키예를 여행하는 중 딸에게 질문을 받은 아빠 캘럼의 순간이 그러했다. 11살 소피는 몰랐지만 그 질문은 삼십대 아빠가 아닌 과거의 11살 캘럼에게 던져진 것이었다. 아빠가 지금 11살이라면 무엇을 할지, 아빠의 11살 생일은 어땠는지. 아직 충분히 위로받지 못한 자신의 11살을 떠올리며 캘럼은 질문을 피하려다가, 캠코더를 끄고서야 대답한다. 조금 슬펐던 생일, 자신이 했던 선택을. 그러자 소피는 잘 선택했네, 하고 은은하게 대답한다. 십 년이 두 바퀴나 지난 지금, 그때엔 존재하지도 않았던 이가 지금 말해주는 것이다. 잘했다고. 과거의 자신에게 공명하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30대의 아빠가 11살 소피에게 해준 말이, 언젠가 30대의 소피에게 공명할지 모른다. 지금은 고향에 소속감을 느끼고 행복하다는 소피에게, 훗날 생각이 변한다 해도 네가 원하는 대로 살 수 있다는 말을, 아빠는 그래서 남겨두었는지도 모른다. 어떤 얘기든 할 수 있는 사이를 꿈꾼 것도 그래서일 것이다. 언젠가 스스로가 남들과 다르고 유별난 듯이 느껴질 때, 더 이상 소속감을 느끼지 못할 때가 온다면 그때, 지금 이 대화가 떠오를 수 있도록. 두 사람이 앉아있던 바다의 부표처럼 이 기억 위에 앉아 쉴 수 있도록. 시간의 흐름 속에서 우리는 변하고, 어떤 말들은 이전과 전혀 다른 의미로 와닿게 된다.
마찬가지로, “내일도 신날까?”라는 말에 대한 대답도 이미 두 사람의 생애 다른 순간에서 이미 대답되었을 것이다. 그리고 아주 어쩌면, 여전히 섬광 속 아빠를 꿈에서 보는 현실의 소피가 잠에서 깨어 기꺼이 아기 침대로 향하는 선택에는 이런 시간이 영향을 미쳤을지도 모른다.
기억은 서술되는 것
아빠와 소피는 기억을 서술하는 방법을 잘 아는 사람들이다. 물속에서 서로의 사진을 찍고, 캠코더를 들고 다닌다. 그러나 시간을 물성에 잡아 두는 데에만 얽매이지도 않는다. 담아둘 수 없는 시간도 성실하게 마주한다. 버스에서 내렸을 때 하나 같이 사진을 찍는 사람들 틈에서도 자기들의 행위에 집중하고, 온천에서 머드를 발라 줌으로 미안한 마음을 녹이기도 하면서.
그들이 함께 사는 사이가 아니라는 것은 대화에서 금방 드러난다. 같은 하늘 아래 있다는 것으로 같이 있음으로 같이 있음을 느낄 수 있다는 소피의 말에서 실은 참 그리웠다는 마음이 읽힌다. 같이 있는 가족이 놓치기 쉬운, 애틋한 마음의 무게를 늘 그림자처럼 인지하고 있다. 아마 그 마음이 두 사람의 여행에 보조를 맞춰 주었을 것이다.
게다가 두 사람은 눈높이가 그럭저럭 맞는다. 철없는 말도 이따금 툭툭 뱉는 아빠와, 사람들의 어린애 취급마저 여유롭게 소화할 만큼 성숙한 소피는 친구처럼 다양한 대화를 한다. 두 사람의 대화는 무겁지도 가볍지도 않다. 화장솜으로 얼굴을 가만가만 어루만져 주는 저녁처럼, 서로 등을 맞댄 느낌으로 나란히 있다. 함께 있지 못한 사이에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 이런 시간을 공들여 쌓았을 것만 같다. 호신술이라며 잡힌 손 뿌리치는 방법을 가르치는 시간처럼, 포켓볼도 아마 저렇게 가르쳤을 것이다. 그 시간이 두 사람의 세계를 만들었다.
캠코더에 연결한 호텔 텔레비전 옆에 첩첩 쌓인 몇 권의 책이 두 사람의 세계를 보여준다. <명상하는 법>이라는 가상의 책과 실제 태극권 교본, 마가렛 타이트의 <시, 이야기, 글 쓰기(Poems, Stories, and Writings)>도 놓여 있다. 시인인 동시에 영화인이었던 마가렛 타이트의 책이 놓인 것에 대해, 샬롯 웰스 감독은 독립적으로 자기 세계를 구축해 나갔던 스코틀랜드 영화인들을 바라보는 마음이라고 대답했다.
문득 궁금해진다. 자기 손으로 이야기를 써내려가는 사람의 책을 여행지에서도 읽고 있는 소피가, 훗날 이 순간을 어떻게 서술하고 기억할까. 그러다 불현듯 깨닫는다. 이 영화 자체가 그 대답임을. 극 중 인물의 미래는 영화 이후의 (관객이 알 수 없는) 선형적 시간이 아닌, 영화 안에 이미 들어있기 때문이다. 인간이 기억을 서술하는 한, 시간은 회전목마처럼 무한히 순환한다.
기억은 기억되는 것
두 사람의 여행은 적당히 무료하고 적당히 나른하며 적당히 신난다. ‘인스타그래머블’하고 요란하지 않았던 그 시절의 여행답게. 두 사람은 튀르키예 구석구석을 살뜰하게 즐긴다. 소피의 머리에 실을 감고, 하나하나 이야기를 넣어 짰다는 카펫을 구경하면서. 실을 얽고 짜는 데 재능이 있는 땅, 이야기를 얽고 짜는 데 재능이 있는 땅이다.
그러나 삶은 카펫이 아니어서, 우리는 모든 이야기를 다 읽어낼 수가 없다. 모든 자식들이 다 그렇듯 우리는 생각보다 아빠를 잘 모른다. 이따금 캘럼이 보이는 어두운 면들을 영화는 자세히 서술하지 않는다. 까만 티셔츠를 입고 바다로 걸어 들어가는 모습, 카펫 더미에 기대서 짓는 표정 같은 것들에서, 밝아 보이는 아빠 이면의 캘럼이 있음을 어림짐작하게 할 뿐이다.
저렇게 대화가 많은 부녀여도, 아무리 소피가 성숙해도, 그토록 꼭 끌어안았어도. 아빠와의 기억은 천천히 차오르는 폴라로이드 사진 같아서, 아주 선명하지도 않지만 다시 인화할 수도 없다. 자식에게 부모의 기억이란 대개 그럴 수밖에 없는 것 같다. 그래서 더 애틋하다.
두 사람은 헤어지는 순간까지 착실하게 캠코더에 담는다. 지켜보고 있음을 알기에 돌아보고, 장난을 치면서 이별을 조금 유예해 보기도 한다. 그러나 모든 이별은 종결될 수밖에 없다. 사랑한다는 말로든, 잘 가라는 말로든. 밝은 미소로든, 서글픈 미소로든. 우리는 다만 피할 수 없는 종결의 순간에 어떤 모습으로 서 있을지 선택할 수 있을 뿐이다.
소피는 이제 성인이 되어 그 시절의 기억을 재생해 볼 수 있지만, 어떤 대화와 어떤 뒷모습, 어떤 씁쓸한 미소 같은 것들은 미처 캠코더에 다 담기지 못했다. 그러나 괜찮다. 수영복을 입은 소피의 어깨나 머리칼을 따끈따끈 데워 주었을 어느 여름의 태양 빛처럼, 직면하지 않아도 흔적을 남기는 것들이 있다. 기억으로 서술되고 공명하고 그렇게 끝내 추억이라는 이름을 얻은 어떤 순간들이 있다. 과거의 사람이 되어 버린 그 시절의 아빠는 이제 섬광의 기억 속에 있다. 서술되지 않은 것들까지 총합하여 소피는 아빠의 카펫과 다른, 자신의 기억을 써내려갈 것이다.
앞으로 나아갈 때에야 비로소 뒤에 있는 이를 인지할 수 있다. 등 뒤의 존재를 생각하며 깨닫는다. 삶은 본질적으로 긴 이별임을, 즐겁고 평온한 순간조차 우리는 다 알 수 없는 서로를 더듬거리며 멀어져 가고 있음을, 함께 있는 순간은 당연한 게 아니었음을, 그럼에도 서로를 서술하고 서로 공명하고 깊이 기억하는 일이 사랑임을. 그래서 슬프고 그래서 따끈한 어떤 여름 햇살 같은 사랑임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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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얘들아, 엄마 아빠 복직한다!
이야기는 1편의 마지막 장면부터 시작한다. 그 말인 즉슨, 전편을 보는 것이 정신건강에 좋을 것이라는 말이기도 하다. 하지만 전편에 대해 대략적으로 간추려서 시작부분에 충분히 말하고 있어서, 크게 신경 안쓰면 그냥 봐도 괜찮다.
언더마이너가 땅 밖으로 솟구치면서 가족들이 슈퍼수트를 입고 달려 나간다. 밥 가족은 비록 언더마이너가 은행을 털어 가는 걸 막지는 못했지만, 그럭저럭 시청 건물이 부서지는 건 간신히 막아낸다. 그러나 아직 슈퍼히어로는 불법, 그들은 시민들을 구하고서도 경찰서에 끌려가 취조를 당한다.
그런 그들에게 손길을 뻗친 것이 데버테크 기업, 보이드와 에블린 남매는 슈퍼히어로 합법화를 위한 프로젝트를 계획하고, 일라스티걸에게 업무를 맡긴다.
지금 영화를 돌이키며 생각하니 놀라운 것이, 어느 한 쪽에 치우치지 않고 모든 인물들에게 균형잡힌 역할과 분량이 주어졌다는 것이다. 보통은 주요 인물의 스토리를 앞세워 영화를 진행시키다 주위 인물을 개입시키는 것이 보통이다. 그러나 어느 인물도 한 뼘의 오차가 없이 공정하게 배분된 분량을 담당했다.
디즈니가 얼마나 치밀한가 하면, 1편과 2편에서의 인물들 위치와 상황이 정확히 반대로 놓여있다는 것이다.
슈퍼히어로가 불법이 되었던 가장 결정적인 계기는, 미스터 인크레더블 즉 밥이 추락할 뻔한 열차를 멈췄던 사건이었다. 그 사건으로 많은 사람들이 목 깁스를 했고, 다들 슈퍼히어로를 몰아내자는 시위를 했다. 그러나 2편에서 일라스티걸, 즉 밥의 아내인 헬렌이 가장 먼저 해결해낸 임무가 달리는 열차를 멈춘 것이다. 이 사건으로 슈퍼히어로에 대한 사람들의 여론이 긍정적이게 변한다. 결국 부부를 두고 영화는 상반된 결과를 도출해낸다.
재미있게 볼 수 있는 것이 또 하나 있다. 인크레더블 시리즈의 특징 중 하나인데, 부모가 벌려놓은 일을 아이들이 해결한다는 점이다.
아마 초능력이라는 특수한 소재를 통해 우리가 흔히 보는 부모와 자식간의 역할 분담을 뒤바꾸는 듯 하다. 단순히 부모와 자식이라는 역할을 뒤바꾸는 것 뿐 아니라, 시대 흐름에 따라 세대교체를 시도하는 것이라고 볼 수도 있다. 과거 큰 영광을 누렸던 구세대는 밥(미스터 인크레더블), 헬렌(일라스티걸), 루시우스(프로톤), 이 세 사람이다. 그리고 이제 이 시대에 맞춰 새롭게 등장하는, 조금 더 융통성 있는 세대가 바로 바이올렛과 대쉬, 잭잭이라고 볼 수 있다.
그 중에서도 바이올렛은 역할은 아주 크다. 거의 주인공이 바이올렛이 아닌가 할 정도로, 그녀의 활약이 컸다. 이야기 자체도 바이올렛의 데이트라는 사건으로 1편과 2편을 엮었다.
그 점에서 그녀가 이 시리즈를 관통하는 중요한 인물이라는 걸 알 수 있다. 게다가 그녀는 주위 인물들이 모두 흔들릴 때도 가장 이성적인 판단과 가장 감성적인 격려를 건넨다. 애초에 1편에서도 그녀의 역할이 컸다. 중점 이야기로 두었던 게 바이올렛의 성장이었으니까. 이번 편에서도, ’사춘기’라는 뻔하지만 재미있는 위치를 통해 바이올렛은 인크레더블 가족의 중점, 기둥으로 우뚝 선다. 이건 여담인데, 바이올렛 너무 좋음.. 아빠의 무작정 밀고나가는 용기에 엄마의 신중함과 결단역이 더해진, 사실상 영화 내에서 가장 완벽한 슈퍼히어로라고 할 수 있다.
인크레더블 1편이 가족이 뭉치게 되는 이야기를 던지고 작은 여운을 주고 끝냈다면, 이번 2편은 확실한 목적을 향해 달려가는 이야기로 다음 이야기에 대한 예고편이나 다름없었다. 슈퍼히어로의 합법화 라는 목적과, 아직 끝나지 않은 수 많은 떡밥들이 그 증거다. 영화를 보는 내내, ’아, 이게 진짜 이야기다!’라는 생각을 했다. 그러다 보니 아무래도 영화 전체적인 완성도 부분에서는 떨어지지만, 2편에서의 에피소드는 충분히 보여준 것 같다.
아마 이 다음 편 무조건 나올 것 같다고 예상하는 이유가,
1. 언더마이너는 1편부터 2편까지 계속 나오고도 아직 제대로 다루지 않았으며
2. 슈퍼히어로에 대한 합법화가 이제야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보통 영화관에서 영화를 볼 때, 가장 집중하는 시간이 영화가 시작되고 20분 정도인 것 같다. 그런데 러닝타임 내내 초반 20분의 집중도를 그대로 잡은 영화는 내 기억으로는 이게 처음이다.
그렇다고 이것저것 잡다하게 이야기를 섞었다는 느낌도 없었다. 물론 여러 인물들의 이야기가 여기저기 흐트러지긴 했지만, 나중에는 잘 정리되기 때문에 큰 문제가 없다. 하나의 상황으로 여러가지 이야기를 보여주긴 하지만 이해력을 흐트리지는 않는다. 그리고 결국 전부 한 가지의 결말로 가져간다.
그 중에서도 잭잭의 초능력이 완벽하게 드러내기 시작했다는 점에서 이야기가 아직 끝이 아님을 알 수 있다.
잭잭은 바이올렛, 대쉬와 더불어 신세대를 의미한다고 했는데, 사실 그 중에서도 가장 가능성이 많은 캐릭터다. 잭잭과 에드나의 만남은 사실 세기적 예술가들의 만남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에드나는 자신의 작품 세계가 확고한 사람이고, 다양한 시도를 하는 열린 예술가이다. 자신의 작품이더라도 오래된 것이라면 고리타분하고 후졌다고 욕하는, 예술혼이 불타는 사람인 것이다.
그런 에드나가 잭잭의 수많은 가능성을 보고 흥분하는 것은 당연하다. 어쩌면 잭잭은 미래에 에드나같은 예술가가 되지 않을까.
인크레더블 2의 엔딩크레딧이 올라가는 순간부터, 인크레더블 3가 기대되기 시작했다.
인크레더블 시리즈는 인물들이 다 죽지 않는 이상 영원히 영화를 만들 수가 있다.
슈퍼히어로 + 악당 = 인크레더블
이기 때문에, 슈퍼히어로들과 악당이 파업하지 않는 이상 영원히 이야기가 생기기 때문이다.
(아 설마 그럼 다음 이야기는 파업하는 이야기인가...)
영화를 얼마나 만들든 모두 봐 줄테니 제발 만들어주세요...디즈니 픽사님들아...
오랜만의 극장 나들이가 즐거워졌던, 인크레더블 2 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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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유와 안식을 찾아 떠나는 마지막 여정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윈스턴'(이안 맥쉐인)의 총을 맞고 추락한 '존 윅'(키아누 리브스)'. '바워리 킹'(로렌스 피시번) 덕분에 간신히 살아난 그는 최고 회의에 복수하고, 완전히 자유로워질 방법을 모색한다. 그러나 최고 회의로부터 처분 권한을 위임받은 '빈센트 드 그라몽 후작'(빌 스카스가드) 덕분에 그는 다시 한번 위기에 빠진다. 한 때 동료였던 킬러 '케인'(견자단)과 현상금을 노린 '추적자'(셰미어 앤더슨)가 그라몽 후작의 사주를 받아 존의 목을 노리기 때문. 이들은 존을 쫓아 '코지'(사나다 히로유키)와 '아키라'(리나 사와야마)가 운영하던 오사카 콘티넨탈 호텔까지 습격한다. 존도 앉아서 당하지는 않는다. 그는 완전한 평화와 안식을 가져다줄 마지막 반격을 준비한다.
<존 윅> 시리즈의 명과 암
"그런 거 할 시간에 존 윅은 한 사람이라도 더 죽입니다." <존 윅> 시리즈를 가장 잘 설명하는 문구다. 오로지 복수를 향해 내달리는 단순한 서사와 셀 수 없는 사람이 죽어나가는 액션의 향연은 <존 윅>의 정체성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1편에서 존 윅은 강아지와 자동차를 잃은 그 순간부터 한 명이라도 더 확실하게 죽이는 데 총력을 다했다.
하지만 이 문구는 <존 윅> 시리즈의 그림자이기도 했다. 시리즈가 점차 커지고 화려해지면서 단순한 매력이 옅어진 까닭이다. <존 윅 3: 파라벨룸>이 대표적이다. 일단 액션이 기대 이하였다. 총격전과 주짓수가 조합된 이른바 '건짓수'의 분량은 줄었다. 대신 나이프나 연필을 사용한 액션이 빈자리를 대신했다. 날렵한 닌자에 맞서는 키아누 리브스의 느린 액션은 허술해 보였다. 내용 면으로도 이질감이 강해졌다. 최고 의회, 장로, 패밀리, 심판관 같은 낯선 고유명사가 등장했기 때문이다. 그만큼 존 윅의 복수와 도주에 초점을 맞추지 못했다.
따라서 <존 윅> 시리즈의 잠정적인 마지막이라 할 수 있는 영화 <존 윅 4> 앞에 놓인 과제는 명확했다. 단순해질 것. 본래 매력인 건짓수의 미학을 보여주고, 존 윅의 이야기를 군더더기 없이 매듭 지을 것. 결론부터 말하면 <존 윅 4>는 두 과제를 훌륭히 완수한다. 총성과 비명소리는 시작부터 끝까지 영화를 도배한다. 자유와 안식을 갈망하는 존 윅도 더 바라기 어려울 정도로 깔끔하게 퇴장한다.
존 윅의 액션을 망라하다
<존 윅 4>의 러닝타임은 2시간 49분. 대부분 액션이다. 전편을 봤다면 익숙한 장면이 가득하다. 문짝이 떨어진 차, 귀를 때리는 클럽 음악 사이로 퍼지는 총소리, 계단에서 구르고 또 구르는 존 윅, 일본도를 든 사무라이까지. 무의미한 반복은 아니다. 4편의 배경인 '파리' 덕분에 다양한 방식으로 변주된다. 마르스 광장에서 마주 앉아 마지막 '결투' 조건을 정하는 담판. 개선문을 빙 돌며 펼쳐지는 살육. 미술관과 예술 작품 앞에서 이뤄지는 대화... 이전 시리즈에서 비슷한 장면을 봤다 해도 무언가 다른 인상을 받기에 충분하다.
새로운 요소도 있다. 일 대 일로 총을 겨누는 '결투'다. 낯설지는 않다. 서부극에서 자주 볼 수 있는 설정이기 때문이다. 존 윅의 작중 첫 등장 덕분에 더욱 그렇다. 사막에서 말을 타는 존 윅. 그는 양복만 입었을 뿐 카우보이나 다름없다. 새로운 인물도 눈길을 잡아 끈다. 케인을 연기한 견자단은 전편에 등장한 닌자 액션과는 다른 현대적인 쿵후 액션을 자랑한다. 특수분장을 한 스콧 애드킨스의 액션도 인상적이다. 외관은 마블 영화의 킹핀 못지않은 거구인 킬라. 그러나 그는 체구에 걸맞지 않게 날렵한 몸놀림을 자랑하면서 존 윅을 위기로 몰아간다. 새로움과 익숙함의 조화는 화려한 피날레로 손색없다.
기술적으로도 뛰어나다. <존 윅 4>는 화면을 흔드는 셰이키 캠을 많이 쓰지 않는다. 대신 격투를 화면 중심에 놓으면서 어떤 상황이 펼쳐지는지 정확히 알 수 있게 한다. 덕분에 모험적인 시도가 빛난다. 건물 안에서 존 윅이 '용의 숨결'이라는 탄환을 사용하는 장면이 대표적이다. 존 윅에게 달려드는 킬러들은 총에 맞아 터져 나간다. 영화는 하늘에서 바라보는 '탑 뷰(top-view)' 시점으로 액션 장면을 보여준다. 연이은 폭발의 향연 덕분에 관객은 강력한 타격감을 느낄 수 있다. 분위기는 다소 다르지만 <킹스맨> 1편에서 사람들의 머리가 터지는 장면과 유사한 쾌감이다.
액션이 보여준 존 윅의 지옥
<존 윅 4>의 액션은 훌륭한 조력자 덕분에 더욱 빛난다. 단순하면서도 우직한 복수 서사 덕분이다. 1편에서 존은 아내가 남긴 마지막 선물을 파괴한 이들에게 복수했다. 킬러의 삶을 그만두고 아내와 살겠다는 소박한 꿈. 아내가 죽은 후로는 살인을 하지 않고 자유롭고 평화롭게 살겠다는 꿈이 깨졌으니까. 그 꿈을 되찾기 위한 복수 외의 이야기는 없었다.
2편부터는 전편 내용을 계승하되 살짝 변주했다. 존 윅의 복수는 물론 존에게 죽은 이들의 복수가 함께 펼쳐진다. 복수를 끝내고 싶은 존은 자기가 과거에 저지른 살인 때문에 자유를 찾지 못한다. 그는 복수의 굴레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계속해서 살인을 저지르지만, 바로 그 살인 때문에 다시 굴레에 얽매인다.
4편에서도 마찬가지다. 장로를 만나 초반부 장면이 이를 잘 보여준다. 존은 사막에서 장로를 찾아 그를 죽인다. 하지만 장로는 그가 무슨 짓을 해도 굴레에서 벗어날 수 없다고 말한다. 오사카 컨티넨탈 호텔도 안식처는 될 수 없다. 복수의 칼날이 존을 놓치지 않기 때문이다.
이는 개선문을 배경으로 한 40여 분의 액션 시퀀스가 감정적으로도 인상적인 이유다. 존 윅의 처지를 단적으로 보여주기 때문이다. 그는 지쳤다. 그에게는 병으로 죽은 아내를 온전히 애도할 자유만 있으면 됐다. 하지만 그는 상심을 미처 달래지도 못한 채로 온갖 이들에게 쫓긴다. 몇 안 되는 휴식처는 사라졌고, 최고 회의는 친구와 동료까지 이용해 그의 목을 노린다. 그러니 파리 시내에서 총성과 신음, 비명이 이어질수록 관객은 자유와 안식을 갈망하는 존 윅에게 공감할 수밖에 없다. 존의 지옥을 두 눈으로 목격한 이상.
서부극으로 시작해 서부극으로 끝나는 이유
그렇다면 존 윅에게 완전한 자유와 안식은 무엇일까? 영화는 두 장면을 통해 그 끝을 암시한다. 하나는 양복을 입은 존 윅이 요르단 사막에서 말을 타고 펼치는 추격전이다. 다른 하나는 '결투'다. 둘의 공통점은 하나다. 서부극에서 빠지면 아쉬운 상징적인 장면이라는 것. 실제로 <존 윅 4>는 웨스턴 영화다운 피날레로 나아간다.
많은 서부극은 피카레스크 장르가 섞인 이야기, 복수극의 형식을 띤다. 작품 속 주인공은 악인이 아니다. 하지만 그는 어쩔 수 없는 이유로 숱한 악행을 저지른다. 그리고 그 대가를 결코 피하지 못한다. <로건>이 인용한 영화 <셰인>의 대사만 봐도 알 수 있다. "사람을 죽이면 고통 속에 살게 돼. 되돌릴 방법은 없어. 그게 옳든 그르든 낙인이 되어 지워지지 않지. 이제 어머니한테 가서 괜찮을 거라고 전하렴. 이제 이 계곡에 총성은 없을 거라고..."
존 윅도 마찬가지다. 그의 끝은 울버린, 로건과 다르지 않다. 그에게 죽음은 슬픈 일이 아니다. 킬러로서의 삶, 영원히 손에 피를 묻혀야 하는 삶, 복수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는 삶에서 완전히 벗어난 안식처다. 아내의 무덤에서 시작한 시리즈가 그의 무덤으로 끝나는 이유다.
새로이 등장한 인물들의 관계는 <존 윅 4>의 깔끔한 수미상관에 당위성을 더한다. 케인과 아키라의 악연이 대표적이다. 딸과 함께 살고 싶은 그는 옛 동료인 존을 죽이라는 그라몽 후작의 제안을 받아들인다. 그 과정에서 오사카 컨티넨탈의 지배인 코지를 죽인다. 결투를 끝낸 케인은 마침내 자유의 몸이 되어 딸을 만난다.
하지만 그의 앞에는 코지의 딸, 아키라가 나타난다. 그녀의 손에는 칼이 들려 있다. 아버지의 복수를 해야 하기 때문이다. 즉, 존 윅처럼 악행의 대가를 받아들이지 않는 한 복수의 굴레를 끊을 방법은 없다. <존 윅 4>의 이야기가 지극히 서부극스럽게 끝나야 하는 이유다.
<존 윅 4>는 거의 흠잡을 데 없는 영화다. 액션도 서사도 기대한 것 이상을 보여준다. 시리즈의 결말로서도, 한 편의 독립된 작품으로서도 준수하다. 작별을 고하면서도 존 윅과의 재회를 기대할 여지를 남긴 마무리도 재치 있다.
다만 한 가지 단점이 있다. 너무 길다. 전편(131분)에 비해서도 169분은 과하다. 긴 러닝타임을 액션으로 꽉 채우다 보니 지치는 대목도 있다. 물론 존 윅의 액션도 이야기도 후회 없이 쏟아내겠다는 채드 스타헬스키 감독의 야망은 잘 전해진다. 그러나 조금만 더 압축했더라면 좋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을 지울 수는 없다.
이에 더해 너무나 깔끔한 마무리 역시 단점이라면 단점이다. 여러 정황으로 미뤄 봤을 때, 키아누 리브스의 <존 윅> 시리즈 본편을 만나기는 어려울 듯하다. 이런 상황에서 <존 윅 4>의 완벽에 가까운 결말은 다음 타자인 스핀오프 영화 <발레리나>와 드라마 <콘티넨탈>의 어깨를 짓누르는 듯 보인다. 과연 그들이 <존 윅>을 넘어설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될 수밖에 없으므로.
Exceeds Expectations 기대이상
자기 자신을 넘어서서 마침내 자유와 평화를 찾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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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발선에 선 이들을 위한 영화 8선
여러분은 한 해의 속도를 무엇으로 느끼시나요?
이제는 학교가 어색해져 버린 나이지만, "한 해가 또 지나가는구나"라는 감각만은 여전히 '수능'으로 느끼게 되는 것 같습니다. 올해 역시 마찬가지였는데요. 어느새 쌀쌀해진 날씨와 함께 시험 일정 역시 다음 주로 성큼 다가왔습니다.
그래서 이번 주는 수험생을 비롯해 출발선에 선, 혹은 다시 뛰기 위해 숨을 고르고 있는 이들을 위한 영화들을 준비해 보았습니다. 졸업을 앞둔 학생들의 이야기인 만큼 졸업 시즌에 맞추어 감상하시는 것도 추천해 드리고 싶습니다. 학생이 아니어도 에디터처럼 잠시 추억에 빠져 볼 수 있는 기회가 되기를 바라며 소개해 드립니다.
그럼, 출발선에 선 여러분 모두에게 행운 빌어요!
<북스마트>, 올리비아 와일드
줄거리
꿈도, 연애도, 다이어트도 모든 것이 완벽할 것 같은 스무 살이 가장 기대되는 나이 열아홉! 아이비리그에 합격한 ‘에이미’와 ‘몰리’는 대학과 스펙이 인생의 전부라 믿는 파워 범생이. 춤은 글로, 파티는 책으로 배운 두 사람은 고3의 마지막 졸업 파티에서 잊을 수 없는 레전드 핵인싸가 되기 위해 사상 초유의 일탈을 계획하는데….
<린다 린다 린다>, 야마시타 노부히로
줄거리
시바사키 고등학교에선 문화제 준비가 한창이다. 고교생활 마지막을 장식할 문화제에 참가하기 위해 연습 중이던 밴드는 멤버들의 부상과 탈퇴 등으로 해체의 위기를 맞는다. 남은 멤버만으로 연주할 곡을 찾던 이들은 우연히 전설적 밴드 '블루하트'의 '린다 린다'라는 곡을 듣게 되는데... '바로 이거다!' 다급히 보컬을 찾던 중 마침 이들 앞을 지나가던 한국에서 온 교환학생 송에게 보컬을 제안한다. 아직 일본어가 미숙한 송은 계속 고개만 끄덕이다가 얼떨결에 밴드 보컬을 떠맡게 된다. 송의 노래실력을 처음 알게 된 밴드 멤버들... 그래도 학창시절 마지막 문화제를 포기할 수 없는 이들, 밴드 연습을 하며 국적을 뛰어넘는 우정을 쌓아 나가는데...
<반쪽의 이야기>, 앨리스 우
줄거리
용돈 벌이를 위해 폴의 러브레터 대필을 맡게 된 엘리. 하는 짓이 마음에 들진 않지만, 자꾸 만나다 보니 이 친구, 정이 든다. 그런데 그건 둘째 치고, 러브레터 상대에게 자꾸 설레는 걸 어쩐담?
<리바운드>, 장항준
줄거리
농구선수 출신 공익근무요원 ‘양현’은 해체 위기에 놓인 부산중앙고 농구부의 신임 코치로 발탁된다. 하지만 전국대회에서의 첫 경기 상대는 고교농구 최강자 용산고. 팀워크가 무너진 중앙고는 몰수패라는 치욕의 결과를 낳고 학교는 농구부 해체까지 논의하지만, ‘양현’은 MVP까지 올랐던 고교 시절을 떠올리며 다시 선수들을 모은다.
주목받던 천재 선수였지만 슬럼프에 빠진 가드 ‘기범’ 부상으로 꿈을 접은 올라운더 스몰 포워드 ‘규혁’ 점프력만 좋은 축구선수 출신의 괴력 센터 ‘순규’ 길거리 농구만 해온 파워 포워드 ‘강호’ 농구 경력 7년 차지만 만년 벤치 식스맨 ‘재윤’ 농구 열정만 만렙인 자칭 마이클 조던 ‘진욱’까지 아무도 주목하지 않은 최약체 팀이었지만 신임 코치와 6명의 선수가 2012년 전국 고교농구대회에서 써 내려간 8일간의 기적 모두가 불가능이라 말할 때, 우리는 ‘리바운드’라는 또 다른 기회를 잡는다.
<소녀는 졸업하지 않는다>, 나카가와 슌
줄거리
폐교를 앞둔 고등학교. 마지막 졸업식까지 D-2. 4명의 소녀 어쩔 수 없는 이별 앞에 소녀들이 간직한 애틋하고 비밀스러운 마음은…? 한 소녀는 멀리 떨어져야 하는 남자친구에게, 한 소녀는 중학교 때부터 짝사랑하는 친구에게, 한 소녀는 안식처가 되어준 선생님에게, 한 소녀는 차마 읽을 수 없었던 졸업식 답사를 들려주고 싶은 소년에게.
안녕… 나의 학교, 청춘 그리고 사랑.
<빅토리>, 박범수
줄거리
1999년 세기말 거제, 춤만이 전부였던 필선'(이혜리)과 '미나'(박세완)는 댄스 연습실을 마련하기 위해 서울에서 전학온 치어리더 '세현'(조아람)을 내세워 치어리딩 동아리를 만든다. 그렇게 9명의 멤버들이 모여 탄생한 '밀레니엄 걸즈’는 ‘치형'(이정하)의 거제상고 축구부를 위한 치어리딩 공연을 시작으로, 응원이 필요한 곳이라면 어디든 달려가게 된다. 그곳이 시장, 병원 그리고 아버지들의 파업 현장이라 할지라도. 누군가를 응원하며, 나 자신도 응원받는 모두의 빅토리가 시작된다!
<싱스트리트>, 존 카니
줄거리
‘코너’는 전학을 가게 된 학교에서 모델처럼 멋진 ‘라피나’를 보고 첫 눈에 반해 사랑에 빠진다. ‘라피나’에게 잘 보이고 싶은 마음에 덜컥 밴드를 하고 있다는 거짓말을 한 ‘코너’는 급기야 뮤직비디오 출연까지 제안하고 승낙을 얻는다. 날아갈 것만 같은 기분도 잠시, ‘코너’는 어설픈 멤버들을 모아 ‘싱 스트리트’라는 밴드를 급 결성하고 ‘듀란듀란’, ‘아-하’, ‘더 클래쉬’ 등 집에 있는 음반들을 찾아가며 음악을 만들기 시작한다. 첫 노래를 시작으로 조금씩 ‘라피나’의 마음을 움직인 ‘코너’는 그녀를 위해 최고의 노래를 만들고 인생 첫 번째 콘서트를 준비하는데…
<월플라워>, 스티븐 크보스키
줄거리
말 못할 트라우마를 가지고 자신만의 세계에 갇혀있던 ‘찰리’는 고등학교 신입생이 돼서도 친구들과 어울리지 못한 채 방황한다. 그러던 어느 날, 타인의 시선 따위는 신경 쓰지 않고 삶을 즐기는 ‘샘’과 ‘패트릭’ 남매를 만나 인생의 새로운 전환을 맞이한다. 멋진 음악과 친구들을 만나며 세상 밖으로 나가는 법을 배워가는 ‘찰리’. 자신도 모르는 사이 ‘샘’을 사랑하게 된 그는 이제껏 경험한적 없는 가슴 벅찬 나날을 보낸다. 하지만 불현듯 나타나 다시 ‘찰리’를 괴롭히는 과거의 상처와 ‘샘’과 ‘패트릭’의 겉잡을 수 없는 방황은 시간이 흐를수록 세 사람의 우정을 흔들어 놓기 시작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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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 사람의 삶으로 '인간 대우'에 대해 돌아보다
모두의 삶에 적용되는 말이겠지만 난 성매매와 노출될 일이 없다. 당연히 평범한 일반인들이 성매매를 할 일이 없지만 이건 나의 개인적 에피소드와도 관련이 있다. 어느 길거리를 걸어가다 어떤 할머니가 '학생! 여자 있어!'라고 한 걸 듣고 갑자기 겁이 나서 와다다 도망친 전력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실 성매매에 노출될 일이 없다기 보단 그때의 기괴했던 사건을 생각하면 가까이하기 싫은 게 정답이다.
그래서 성매매에 대해 깊게 생각해 본 적이 없다. 당연히 하고 싶은 마음이 안 들기 때문이다. 그 대신 영화나 책에서 포르노 배우에 대한 묘사를 몇 번 보긴 했다. 당연히 이들도 사람이다. 뭐 인스타그램에 노출이 있는 사진을 올린다고 해서 이상한 일들을 겪어야 한다는 자격이 있는 건 아닐 것이다. 보라고 올린 것 맞는데, 그걸 입 밖에 실제로 꺼내서 상대방에게 피해를 주는 행동은 또 다른 차원 아닌가? 이는 사실 외국의 몇몇 사람들에게만 적용되는 이야기는 아닌 듯하다. 많은 유명 셀럽들은 매력 있는 남자, 여자라는 이유로 성희롱을 당한다. 당장 네이버에 'dm 성희롱'이라 검색하면 기사가 몇 개 보인다. '무언가를 선택해서(유명해져서) 나쁜 일을 겪는 것을 감수해야 한다'는 건 좀 잔인한 말일지도 모른다. 그들도 선택지를 고르기 이전에 사람이기 때문이다. 1960년대의 인도에 한 여성 정치인이 이와 관련해 하고 싶었던 말이 있었다고 한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컨텐츠로 가보자.
실제로 있었다고 하는 몇몇 사건들
1960년대 인도다. 변호사 아버지 아래에서 유복하게 자랐던 강가. 강가는 남자친구 한 명이 있다.. 영화배우가 꿈이었던 강가. 강가는 애인의 제안에 뭄바이로 향하게 된다. 근데 그것은 뭄바이로 향하는 길이 아니었다. 애인을 사창가로 팔아넘겼던 강가의 남자친구. 한 순간에 모든 게 사라졌다. 꿈과 목적까지 잃어버린 강가. 유곽에서 하고 싶지도 않았던 일을 하며 남자를 대하는 것을 업으로 삼는다. 모르는 사람과의 관계뿐만이 아니라 어쩔 때는 두들겨 맞기도 하는 강가. 그녀에겐 희망이 없는 것처럼 보인다. 돌아갈 길 같은 건 없다. 이미 돌아가도 가족들에게 손가락질받을 것이 뻔했기 때문이다.
멍투성이의 얼굴과 함께 지역 마피아에게 향한다. 복수를 원하는 강가. 복수는 보기 좋게 성공한다. 강가는 이 사건을 기점으로 이 지역의 짱이 되겠다는 다짐을 아로새긴다. 많은 돈을 모으고, 같은 편의 사람들을 영입하며 점점 성장하는 강가. 영화는 강가라는 이름이 강구 바이가 되는 과정을 묘사한다. 한 여인의 성장과정을 중심으로 영화를 만들었다.
이해가 되는 소재들
결론부터 이야기하면 야한 장면 안 나온다. 영화의 후반부에 특정 인물의 연설 장면을 말하기 위해서 불필요했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그 대신 사람과 사람을 때리는 장면은 몇 번 나온다. 이 외에는 잘 짜인 스릴러라고 생각이 들었다. 인도라는 낯선 소재에도 불구하고 이야기 전개가 잘 감겨서 촘촘했다. 그런데 앞에서 적었던 영화의 하이라이트 신이 굳이 필요했나?라는 생각이 든다. 영화를 보며 들 수 있는 생각은 연대와 주체성일 것이다. 그리고 영화는 이 두 요소들을 낯설 수도 있는 인물을 통해서 무언가 뭉클하게 전달한다. 잘했다. 각본이나 디렉팅을 맡았던 제작진 분들은 좋은 선택을 골랐다. 그런데 굳이 그런 요소를 표현하기 위해 선택지가 전부였을까? 싶다. 얼핏 보면 그녀를 그렇게 만든 세상을 합리화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하다. 그녀가 매력적인 정치인이고, 또 자기와 같은 피해자들을 위해 어떤 일을 했는지만 묘사해도 영화는 충분했다. 그런데 굳이 하이라이트 신에서 자극적인 단어가 나온다. 솔직히 불필요했다. 품위와 존엄성은 이 영화가 19금 코드를 적당히 묘사했다는 점에서 충분하다고 느낀다. 성적으로 자극적이지 않으니 나름의 품위가 생기는 것이다. 영화의 이야기 전개 상으로 후반부 한 10분은 컷 하거나 적당히 줄였다면 극을 보는데 깔끔했을 것 같다.
눈치 보며 춤추기
인도 영화하면 가장 먼저 생각나는 것은 <세 얼간이>이다. 알 이즈 웰! 잘 만들어진 코미디 영화로 웃고 춤췄던 인도 영화. 그냥 뮤지컬 영화니까 이런 거겠지 생각했다. 그런데 내가 일부만 본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인도 영화들이 춤추고 노래하는 부분이 개연성 없이 마구 난사된다는 것들을 몇 번 읽었다. 인도 영화라는 넷플릭스의 분류 등급을 읽기 이전에 염려부터 했다. 마피아 퀸이라는 부제만 봐도 이 영화는 범죄/스릴러인데 갑자기 춤추고 노래할까 무서웠다. 그러나 이 영화는 잘 만들었다. 이런 요소들을 아예 배제하지 않았다. 그러나 있을 때 들어갔고, 없을 때 없다. 그러니까 극을 볼 때 나 같은 염려는 하지 않아도 된다는 말이다! 각본을 쓴 사람이 할리우드 영화를 많이 본 티가 난다.
밝은 건 밝고 어두운 건 어둡게
또한 이 영화하면 생각나는 강점은 색감이다. 까무잡잡한 피부와는 대조되는 흰 옷은 곳곳에 자주 쓰인다. 정치인으로 연설할 때, 최후 반부 엔딩신, 유곽에 잡혀온 애들을 해방해줄 때 등등 뭔가 감독이 인물들을 통해 관객에게 전하고 싶은 말이라고 생각이 들 때 흰 옷이 나온다. 감독이 인물의 의상으로 처지를 비유한 부분이라 볼 수 있을 것이다. 또 뒷배경에서 탁한 세트장을 고른 점이나 촬영했던 카메라 렌즈까지 색채 대비를 효과적으로 사용했다.
연대로 함께 나아가다
앞에서도 썼듯 영화의 주요 소재는 연대다. 그리고 부제는 '마피아 퀸'이다. 그러니까 영화의 주인공 강구 바이는 마피아와 연대를 한다. 이 마피아는 주로 남자로 묘사된다. 만약 마피아까지 여성으로 묘사됐다면 이 영화는 많은 이들에게 설득력이 떨어졌을 것이라 생각한다. 또 마피아들의 성격이 나름 합리적인 부분이 있는 점이나 선한 남성 캐릭터도 출연했다는 부분은 감독이 단순히 여성 서사만을 중심으로 극본을 짜지 않았다는 것이 충분하다. 뭐 성매매 피해자들에 대한 묘사를 중심으로 쓰는 게 주요 플롯인 것은 맞다. 그러나 영화는 절대 이 사람들과의 연대가 현재 사회가 품고 있는 여러 문제들을 전부 다 해결할 것이라고 믿지 않고 있다. 보시면 안다.
좋은 퍼포먼스
이 영화의 주인공은 인도 배우다. 인도 여배우를 다 알지는 못하기 때문에 당연히 처음 봤다. 좋은 퍼포먼스를 보여줬다고 생각한다. 당차고 씩씩하게 여러 관문들을 격파하고 성장하는 인물의 이야기를 몰입이 되게 탁월한 묘사가 돋보였다. 만약 인도에도 영화 시상식이 있다면 상을 받게 되지 않을까? 생각이 들었다. 엔딩의 눈빛 연기에선 뭉클함도 있다. 또 주조연으로 출연했던 다른 배우들도 당시 인도에 대한 묘사가 강점으로 잘 발휘되어 나름의 역할을 수행한다. 또 영화 자체가 1960년대 인도 묘사를 적절히 잘해놔서 그냥 무난하게 보기 좋은 영화다. <오징어 게임>이 성공한 것처럼 넷플릭스라는 플랫폼이 있으니 다른 나라의 창작물들을 보게 되니 이런 건 참 좋은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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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월 5주 최신 개봉영화(007 노 타임 투 다이, 수색자, 스쿨 아웃 포에버, 서유기: 재세요왕, 용과 주근깨 공주)
[WEEKEND CHOICE MOVIE] 2021년 9월 4주차 #개봉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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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에 대한 더 자세한 내용은 https://blog.naver.com/rainbbox
@Weekend Choice Movi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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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무도 못건드리는 양아치가 탄 버스에 하필 동석이형이 ㅋㅋㅋㅋ
영화에취한다 비지니스메일: allwey02@gmail.com
영화에취한다 인스타
https://www.instagram.com/allwey01
사용중인 이어폰 : 저지연 무선이어폰 GTW270 hybri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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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바람의 검객> 예고편
절대 악에 맞서기 위해 신념의 검을 든 검객!
에도 막부가 쇠락해 가는 혼돈의 시대.
격변의 시대 뒤에는 이름 없는 무사들의 활약이 있었다.
떠돌이 무사 쇼는 유곽에 팔려온 소녀를 구해주려다
신정부와 에도 정권의 치열한 전쟁 한 가운데 서게 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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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모탈 컴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