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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Hyun2024-08-29 23:26:50

이래서 '헬조선'이 싫어요

영화 '한국이 싫어서' 리뷰

"추운 겨울, 해가 뜨기도 전 어두컴컴한 새벽. 집에서 머리카락도 말리지 못하고 급하게 뛰어나간다. 사람들이 가득한 초록색 마을버스를 탄다. 정거장 12개를 지나 내린다. 지하철 1호선에 몸을 싣는다. 서울로 가려는 사람들로 지하철도 만원이다. 옴짝달싹할 수 없다. '지옥철'에선 스트레칭조차 사치다."


"신도림역에서 지하철 2호선으로 갈아탄다. 다시 12개 정거장을 가 강남역에 내린다. 강남역 근처 회사로 뛰어간다. 엘리베이터도 발 디딜 틈이 없다. 겨우 ‘대리’라는 직함이 붙어 있는 회사 자리에 도착해 외투를 벗고 한숨을 쉰다. 집에서 회사까지 걸린 시간만 2시간. 출근길이 아니라 전쟁을 치른 것 같다."

 

영화 시작과 함께 보여주는 계나(고아성)의 출근길과 내레이션은 보고 듣기만 해도 숨이 턱턱 막힌다. 쳇바퀴 돌 듯 반복되는 하루하루를 힘겹게 버티고 있는 젊은이들의 일상을 함축적으로 보여주고 있어서다. 우리는 이 같은 사회구조를 향해 '헬조선'이라는 단어로 비하하곤 한다.

 

장강명 작가의 동명소설을 영화화한 영화 '한국이 싫어서'는 행복을 찾아 직장과 가족을 두고 한국을 떠나 뉴질랜드행을 택한 20대 계나의 이야기를 그린다. 

 

앞서 언급한 내레이션과 함께 계나의 일상을 찬찬히 들여다보면 별다른 것이 없다. '지옥의 통근길'이지만 안정적인 직장을 다니고 있고, 7년간 사귄 취준생 남자친구, 넉넉하지 않지만 자식들을 사랑하는 부모님. 20대 젊은이들의 평균치다. 물론 계나는 이 지점들이 지긋지긋하고 행복을 느끼지 못해 '한국이 싫어서' 떠나려고 결심한다.

 

뉴질랜드에 도착하는 순간부터, 영화는 시계열을 따르지 않고 과거와 현재, 계나의 뉴질랜드 라이프와 한국에서 겪었던 삶을 끊임없이 교차하여 보여준다. 계나를 중심으로 7년 간 사귄 남자친구(김우겸)와 가족, 장수 고시생 대학 동기 경윤(박승현), 뉴질랜드에서 만난 유학원 동기 재인(주종혁)과 앨리(트래 테 위키), 유학원 가족과의 만남 등으로 관객들의 숨통을 죄었다 풀었다 한다.

 

 

 

원작이 출간한 지 10년이 지났음에도 대한민국은 여전히 '헬조선'이고, 팬데믹을 겪고 난 뒤에는 더욱 팍팍해졌다. 고통 속에서 행복을 찾고자 '욜로', '소확행' 등 행복론들이 스쳐 지나갔고, 영화는 누구나 다 알고 있지만 확신 없는 것들을 상기시킨다.

 

물론 계나의 뉴질랜드 라이프도 녹록지는 않다. 문화와 언어의 장벽을 느끼고, 인종차별을 겪기도 한다. 그는 아르바이트를 전전하면서 새로운 친구를 사귀고 누군가와 사랑에 빠진다. 한국생활과 다른 점이 있다면, 그는 행복이 과대평가됐다고 생각하며 남의 기준에 맞춰 막연한 목표를 향해 열심히 사는 것보다 자신의 마음에 귀 기울이며 따라도 된다는 깨달음을 얻는다. 그래서인지 뉴질랜드에선 미소 짓는 계나의 얼굴이 많이 잡힌다.

 

원작을 먼저 읽었던 관객들이라면 '한국이 싫어서'가 다소 판타지스럽게 다가올 수도 있다. 한국을 떠났음에도 여전히 발생하는 불공정과 불평등사회에서 허덕이는 계나의 모습은 사라졌고, 이를 기민하고 날카롭게 찌르는 시선 또한 찾아보기 힘들기 때문이다. 장건재 감독이 "뉴질랜드를 낭만화하지 않으려고 했다"고 기자간담회를 통해 밝히긴 했지만, 여전히 뭔가 아쉬운 건 어쩔 수 없다.

 

호불호가 갈리고 비현실적으로 다가올 법한 영화 이야기를 몰입하게 만드는 건 주연인 고아성 덕분이다. 현실 앞에 숨이 턱 막힌 이 시대의 젊은이들의 실감 나는 얼굴로 분노하다가 해방감을 누리고, 어떤 때에는 다시 좌절하기도 하며 관객을 끌어당긴다. 

 

★★★

 

 

작성자 . J-Hyun

출처 . https://brunch.co.kr/@syrano63/3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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