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ABBITGUMI2024-09-12 14:14:16
이 영화가 죽음을 대하는 태도
<비틀쥬스 비틀쥬스>
모든 존재는 태어난 이상 삶을 살아가야 한다. 하지만 우리는 왜 살아가야 하는지에 대한 의문을 자주 품곤 한다. 삶의 의미와 목적을 탐구하는 것은 누구에게나 어렵고 모호한 문제다. 때로는 그 질문을 깊게 고민하면서 존재론적인 문제에 매달리기도 하고, 때론 이 고민이 답답하고 불편해 외부로 짜증과 분노를 표출하기도 한다. 이런 고민들은 철학적으로 매우 복잡한 문제이기 때문에, 뚜렷한 답을 찾기 어렵다. 우리는 그저 삶의 한가운데에서 갑자기 불쑥 솟아오르는 의문들을 마주할 뿐이다.
삶의 의미를 고민하는 순간들은 특별히 예측할 수 없다. 연애, 결혼, 아이의 탄생, 그리고 누군가의 죽음과 같은 중요한 사건들이 있을 때,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인간 존재의 사이클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특히 죽음은 삶의 끝을 알리는 동시에, 그 자체로 큰 고통을 동반한다. 그런 이유로, 많은 사람들은 삶의 고통과 죽음을 연결해 우울함에 빠져들기도 한다. 사춘기는 이러한 생각들이 더욱 예민해지는 시기이다. 몸과 마음의 변화를 겪으며 삶과 죽음에 대한 질문이 더욱 깊어지고, 많은 청소년들이 불안과 혼란 속에서 이러한 문제를 마주하게 된다.
이 성장의 시기에는 죽음에 대해 고민하고, 삶의 의미를 탐구하는 과정이 깊어진다. 청소년들은 자주 자신이 세상 속에서 어떤 존재인지, 삶이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에 대해 철저히 질문하게 된다. 이는 필연적으로 불안과 혼란을 동반하는데, 이 혼란을 잘 견뎌내는 것만이 삶의 복잡성을 받아들이고, 성숙한 삶을 살아가는 데 도움이 된다. 이 과정에서 죽음은 그 자체로 하나의 철학적인 화두로 등장한다.
[첫번째 감정] 리디아의 혼란
영화 <비틀쥬스 비틀쥬스>의 리디아(위노나 라이더)는 삶 전체가 혼란스러운 인물이다. 그녀는 과거 <비틀쥬스> 1편에서 이미 사춘기를 겪으며 죽음을 동경하던 청소년이었다. 당시 리디아는 세상에 대한 혼란스러운 감정과 죽음에 대한 동경을 동시에 가지고 있었다. 이 영화의 설정에 따르면, 죽은 사람들은 현실 세계에서 살아가는 사람들과 비슷하게 존재할 수 있으며, 죽음 이후에도 일종의 시스템 안에서 살아간다고 묘사된다. 그래서 리디아는 죽음이 곧 끝이 아니라는 생각에 빠지며, 죽은 사람들조차 삶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점에서 안도감을 느꼈다.
리디아는 죽은 사람들과 대화하고 그들을 직접 눈으로 볼 수 있었다. 이러한 경험은 그녀에게 삶의 불편함과 혼란스러움을 더욱 강하게 느끼게 만들었다. 죽음이 곧 자유로움을 상징하는 것처럼 보였기 때문에, 리디아는 죽음을 동경하게 되었다. 하지만 비틀쥬스(마이클 키튼)라는 혼돈의 존재와 마주하면서, 실제로 죽음이 삶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삶 역시 혼란스럽고 예측 불가능하며, 죽음도 그렇다는 것을 이해하게 되는 것이다. 1편에서 리디아는 이러한 깨달음을 통해 삶을 이어가는 힘을 얻었다.
이번 영화 <비틀쥬스 비틀쥬스>에서 리디아는 중년이 되어 등장한다. 청소년기를 지나 성인이 된 리디아는 사춘기 시절과는 또 다른 혼란에 직면한다. 딸 아스트리드(제나 오르테가)와의 관계는 원활하지 않으며, 결혼 생활 역시 만족스럽지 않다. 그녀는 여전히 삶의 혼란 속에서 방향을 찾지 못하고 있다. 다시 한 번 삶의 의미에 대해 고민하게 된 리디아는 자신이 청소년 시절에 가졌던 의문들을 다시 꺼내어 묻는다. 이번에도 답을 찾기가 쉽지 않다. 그녀는 딸에게 자신이 겪었던 혼란을 물려주고 싶지 않지만, 딸은 엄마를 부끄러워하고 그들 사이의 소통은 단절된다. 어쩌면 리디아의 모습은 우리 모두의 모습이 투영된 것일지도 모른다. 우리 역시 비슷한 시기에 혼란과 방황을 겪고, 그 답을 찾으려 애썼으니까.
[두번째 감정] 아스트리드의 혼란
리디아의 딸 아스트리드 또한 혼란스러운 상황에 놓여있다. 어머니와의 소통 문제, 그리고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고민이 겹쳐 그녀는 끊임없이 불안감을 느낀다. 아스트리드는 어머니처럼 죽음을 직접적으로 경험하거나 유령을 볼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지 않다. 어쩌면 이는 그녀가 아직 삶과 죽음의 경계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일 수도 있다. 아스트리드는 죽음이란 것이 그저 먼 이야기처럼 느껴진다. 그러면서도 자신을 둘러싼 가족의 죽음, 특히 외할머니와 외할아버지가 연이어 세상을 떠나며 겪는 혼란에 직면하게 된다.
죽음이라는 테마는 아스트리드에게도 중요한 질문을 던진다. 하지만 팀 버튼의 세계관에서는 죽음은 그저 자연스러운 일처럼 묘사된다. 죽음은 삶의 일부일 뿐이며, 죽음 자체는 슬픔의 대상이 아니다. 아스트리드는 이를 이해하는 과정에서 결국 어머니 리디아와의 관계를 다시 생각하게 된다. 아스트리드가 죽음을 통해 깨닫게 되는 것은 삶의 의미이기도 하다. 그녀는 어머니가 자신 곁에 늘 있었음을 깨닫고, 그 의미를 다시금 되새기게 된다.
영화 속에서 등장하는 죽음은 한편으로는 아무렇지 않게, 자연스러운 현상처럼 묘사된다. 팀 버튼이 창조한 이 세계에서 삶과 죽음의 경계는 희미하다. 외할머니와 외할아버지의 죽음조차 비극으로 다뤄지지 않으며, 그저 일상의 한 부분처럼 느껴진다. 이는 죽음이 곧 삶의 일부이며, 둘은 별개가 아니라는 메시지를 전달한다. 삶과 죽음이 연결되어 있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다.
[세번째 감정] 비틀쥬스의 혼란
비틀쥬스는 그 자체로 혼란을 상징하는 캐릭터다. 그의 존재는 리디아와 아스트리드가 겪는 혼란을 극대화하는 역할을 한다. 비틀쥬스는 스스로 혼란을 일으키는 존재이지만, 흥미로운 점은 그가 아무 때나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반드시 누군가 그의 이름을 세 번 불러야 소환된다는 것이다. 이는 혼란이 자연적으로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 특정한 상황에서 누군가에 의해 촉발된다는 의미를 내포한다. 리디아나 아스트리드가 겪는 혼란이 결국 비틀쥬스를 소환하게 된다는 설정은, 우리가 삶에서 겪는 혼란이 결국 외부의 영향과 내부의 불안이 결합해 터져 나오는 방식과 유사하다.
비틀쥬스는 단순히 악당이나 장난스러운 존재가 아니다. 그는 리디아와 아스트리드, 그리고 이 영화를 보는 관객들에게 혼란의 의미를 상징적으로 전달한다. 그가 끊임없이 일으키는 혼란은 마치 우리 삶의 불확실성과도 같다. 비틀쥬스는 우리가 직면한 혼돈을 극대화시키고, 그 안에서 자신만의 방식을 찾아나가는 인물들처럼, 관객들 또한 그 혼란 속에서 삶의 의미를 되새기게 된다.
팀 버튼 감독은 독특한 상상력과 기괴한 미학으로 유명하다. <비틀쥬스> 1편은 80년대 당시에도 파격적인 연출로 주목을 받았고, 이번 <비틀쥬스 비틀쥬스>는 그 후속편으로서 팀 버튼다운 세계관을 극대화한 작품이다. 그가 30년 만에 이 시리즈를 다시 꺼내든 이유는, 아마도 삶과 죽음의 경계를 다시 한 번 탐구하고자 하는 그의 철학적 고민에서 비롯된 것일 것이다. 1편이 내포했던 혼란과 유머, 그리고 기괴함은 여전히 살아있으며, 2편에서는 중년의 리디아를 통해 성숙한 질문들을 던지고 있다.
영화 속 배우들의 연기는 이러한 복잡한 감정들을 잘 전달한다. 위노나 라이더는 리디아로서의 혼란과 방황을 탁월하게 표현했고, 제나 오르테가는 신세대 캐릭터인 아스트리드를 통해 새로운 시각에서 삶과 죽음을 탐구한다. 비틀쥬스를 연기한 마이클 키튼 역시 특유의 괴짜스러움을 유지하면서도 캐릭터의 혼란스러운 본질을 완벽하게 살려낸다.
결국 이 영화는 혼란 속에서도 삶은 계속된다는 메시지를 전달한다. 죽음은 피할 수 없는 일이지만, 그것을 두려워하기보다는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야 한다. 이 영화 속 리디아나 아스트리드는 자신의 삶 속에서 보이지 않았던 따뜻함과 사랑을 영화 말미에서야 발견한다. 그것이 곧 삶의 의미이자 살아가야할 이유다. 또한 영화의 맨 마지막, 리디아의 새엄마인 딜리아(캐서린 오하라)이 죽음 이후 아무렇지 않게 저 세상 열차를 타는 모습은 죽음을 담담하게 받아들여야한다는 것을 이야기하고 있다.
https://www.youtube.com/watch?v=W-3QpAc6ioo
Relative cont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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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킹 리차드>가 흑인을 위한 정치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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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저하게 계획하고, 노력하여, 꿈을 현실로 만들라’는 말을 들었다고 가정해보자. 어떤 기분이 드는가?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내 경우에는 거부감이 먼저 든다. 세상이 계획한 대로, 노력한 대로, 꿈꾸는 대로 굴러가지만은 않기 때문이다. 부유한 백인과 가난한 흑인은 같은 계획을 품고, 같은 노력을 기울여, 같은 꿈을 항해 나아가도 다른 결과를 마주할 확률이 크다. 아무리 치열해도 개인의 노력만으로는 넘어설 수 없는 사회‧문화‧경제적 부조리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노오력’을 향한 조롱, ‘능력주의’에 대한 회의는 이런 맥락에서 나왔다.
〈킹 리차드〉는 다른 길을 간다. 현실의 부당함을 비판하는 대신 더 철저하게 계획하고, 노력하며, 꿈꾼다. 주인공은 전설적인 테니스 선수 비너스 윌리엄스와 세레나 윌리엄스의 아버지 리차드 윌리엄스다. 리차드는 두 자매가 태어나기 전부터 테니스 선수로 키울 것을 ‘계획’했다. 그것만이 딸들이 가난한 흑인 가정에서 태어나 불우하게 자란 자신과는 다른 삶을 살 수 있는, 가족의 미래를 보장하는 길이라 여겼기 때문이다. 리차드는 이웃 주민에게 아동학대 신고를 받을 만큼 열정적으로 두 자매를 훈련시킨다. 딸들이 혹독한 경쟁 시스템에서 소모되다 버려질 것을 우려하여 유명 코치와 스폰서, 에이전트의 제안을 모두 물리치고 자신만의 길을 걸어가기도 한다. 그리고 끝내 자신이 꿈꾸던 것을 이뤄낸다. 문제는 여기에 있다. 리차드의 ‘계획’이 성공했다는 것.
리차드와 비너스, 세레나의 이야기가 갖는 의미는 복합적이다. 인종 정치의 관점에서 보자면 이들은 분명 흑인의 꿈을 증폭시켰다. 세 부녀가 ‘백인 스포츠’인 테니스에 낸 균열은 그들을 보고 테니스 선수를 꿈꾸기 시작한 흑인들로 인해 더 커질 수 있다. 그럼으로써 흑인이라는 이유로 과잉진압을 당하거나 총에 맞지 않는, 마약과 폭력에 빠지는 않는 삶의 가능성이 커질 것이다. 흑인에게 다른 미래가 있음을 상상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세 부녀의 기적적인 성공이 반드시 긍정적인 효과만을 갖는다고 할 수는 없다. 온갖 어려움 속에서도 강한 의지와 용기, 노력을 통해 성공할 수 있는 건 소수에게만 허락된 ‘기적’이다. ‘하면 된다’의 주술은 모두에게 빛나는 미래를 허락하지 않는다. 언제나 소수만이 기적의 주인공이 된다. 그리고 이 소수의 존재가 기적을 꿈꾸며 계획‧노력하지만 성공하지는 못할 사람들의 공허한 기다림을 양산한다. 이것이 바로 신자유주의의 통치술이다.
지금껏 흑인이 주인공인 영화는 대체로 두 가지 길을 걸어왔다. 첫 번째는 〈킹 리차드〉처럼 흑인 개인의 성취를 보여주는 방식으로, 두 번째는 집단으로서의 흑인의 문제와 그들을 위한 정의에 주목하는 방식으로 말이다. 흑인이 차별을 받는다는 건 영화가 그리는 공통적인 현실이지만, 이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두 영화가 서로 다른 답을 내놓는 것이다.
물론 현실은 이 둘 사이의 어딘가에 있다. 성공한 흑인도 언제나 피부색으로 환원되어 독해될 가능성이 있고, 흑인을 위한 정의를 추구하는 운동도 뛰어난 개인의 역량을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문제는 흑인 영화의 범주적 구분이 아닌 해석이다. 영화가 흑인 문제를 다루는 방식에 집중하기보다는 사회적 수용의 측면에 집중함으로써 영화 스타일에 한정되지 않는 다채로운 가능성을 모색하는 일이 요청되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윌리엄스 가족의 노력과 이 이야기를 재생산하여 전파하는 일을 구분해서 생각할 필요가 있다. 이들의 계획, 노력, 꿈은 소중하고 그들이 만들어낸 성취는 존중받아야 마땅하다. 하지만 이것이 ‘덜’ 계획하고 노력하며 꿈꾼 자들을 향한 비난의 근거, 구조적 문제를 해결하려는 또 다른 계획‧노력‧꿈에 대한 폄하로 이어져서는 곤란하다.
결국 〈킹 리차드〉가 할리우드의 문법과 방식으로 풀어낸 세 부녀의 이야기를 어떻게 해석하고 받아들일지는 우리 사회의 몫이다. 왜 이들이 재능과 꿈을 가졌음에도 남들보다 더 철저하게 계획하고 노력해야만 했는지에 주목하여 계획‧노력‧꿈을 평등하게 만드는 방법을 고민할지, ‘결국 하면 된다’는 부조리한 명제의 반복에 그칠지는 영화를 소비하는 사회의 역량에 달렸다. 이는 영화 제목의 ‘King’을 리차드의 헌신에 대한 존중을 담은 표현으로 이해할지, 성공하지 ‘못한’ 절대다수를 발아래 두는 왕의 의미로 해석할지의 문제이기도 하다. 이 영화가 인종적 정의의 방법론에 관한 풍부한 이야기를 만들어내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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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빅토르 하라의 마지막 노래
빅토르 하라, 파블로 네루다, 살바도르 아옌데
-빅토르 하라의 마지막 노래
'빅토르 하라'의 이름을 처음 들은 건 1980년대 후반에서 90년대 초반 사이로 기억한다. 이 시기에 나는 대학생 선배들과 함께 사회과학 공부를 하고 있었고, 변증법적 유물론, 서양경제사론, 제3세계 정치, 러시아 혁명사, 한국민중사, 마르크스, 레닌의 저작 같은 역사, 철학, 경제학, 사회주의 이론 등을 공부했다. 이 무렵 제3세계 역사에서 칠레, 아르헨티나, 쿠바 같은 나라들의 정치 상황과 노동계급의 투쟁, 사회주의자의 활동 등에 대해서도 개략적으로 배웠는데, 이렇게 거시적 관점에서 자본주의와 제국주의 그리고 여기에 대항하는 반제국주의 투쟁을 공부하면서 미국과 유럽의 자본주의 체제와 자본가들이 사회주의 국가와 사회주의자를 얼마나 악랄하고 처참하게 학살했는가를 알게 되었다.
그런 점에서 칠레는 한국의 '혁명운동'에 중요한 가르침을 주는 사례였다. 특히 살바도르 아옌데의 집권과 피노체트의 쿠데타로 이어지는 과정이 어떻게 일어났고, 군부 쿠데타 뒤에서 막대한 자금과 조직을 동원한 미국의 CIA가 절대적 영향을 끼쳤다는 것, 반공 군사독재가 칠레의 진보 지식인, 학생, 노동자를 수만 명 학살하고도 미국의 보호 아래 오래도록 집권하게 되었다는 걸 알게 되고, 한국의 군부 쿠데타와 장기 독재 역시 칠레와 매우 닮았다는 점에서, 1950년대에서 1980년대까지 제3세계에서 반공 군부 쿠데타가 세계적으로 광범위하게 일어났고, 이는 자본주의 체제인 미국과 유럽의 국가들이 강력하게 지원한 결과이며, 그 목적은 쏘련과 중국을 비롯한 공산주의 국가와 체제 경쟁, 이념 전쟁을 통해 공산주의가 확산되는 것을 막고, 쏘련과 중국을 압박하려는 것임을 알 수 있었다.
칠레의 살바도르 아옌데 대통령이 사회주의자로 선출된 최초의 대통령이라는 것, 칠레를 사회주의 국가로 만들기 위한 진보적 개혁이 일어나면서 자본가와 부르주아 반동 세력의 역습이 시작되었고, 이 와중에 민중의 사랑과 지지를 받고 있던 빅토르 하라가 아옌데 대통령을 지지하면서 빅토르 하라와 아옌데 대통령은 같은 운명을 맞게 된다.
빅토르 하라의 음악을 처음 들은 건 2000년 초반이었다. 내가 알기로 빅토르 하라와 관련한 책이 그때 처음 한국에 등장했고, 책에는 부록으로 음악 CD가 들어 있었다. 이 글을 쓰려고 내가 받은 CD를 찾아보았는데, 운 좋게도 한번에 찾을 수 있었다. 그때 알고 지내던 선배가 복사해 준 CD를 소중하게 간직하고 있었고, 지금도 처음 그대로 보관하고 있다.
빅토르 하라에 대해서는 관심 있는 사람이라면 어느 정도는 알고 있을 것이다. 칠레의 민중가수이며, 사회주의자로 살바도르 아옌데 대통령을 지지했고, 그의 음악이 칠레 민중에게 절대적인 사랑을 받으면서 큰 영향을 끼치게 되자, 쿠데타로 권력을 찬탈한 피노체트가 빅토르 하라를 불법, 체포, 구금한 다음 참혹하게 고문하고 학살했다.
이 다큐멘터리 영화는 빅토르 하라를 다룬 가장 최근의 이야기다. 빅토르 하라를 이야기하려면 칠레의 현대사를 빼놓을 수 없다. 빅토르 하라는 1932년, 칠레 남부 산티아고 근처의 가난한 농가에서 태어났다. 집안이 가난했고, 아버지는 소작농이었다.
빅토르가 태어나던 1932년 이전에도 이미 격동의 역사를 겪고 있었다. 칠레는 1818년 스페인의 지배에서 독립했으나 완전한 독립은 아니었다. 1891년 내전이 일어났고, 1920년대 사회주의 사상이 민중의 지지를 받으며 성장하기 시작했다. 이는 1917년 러시아 혁명이 성공하면서, 사회주의 혁명이 세계로 퍼져나가는 것을 확인할 수 있는데, 1920년대 한국에서도 '조선공산당'이 탄생하는 것과 맥을 같이 한다. 중국에서도 거의 비슷한 시기에 '중국공산당'이 활동을 시작했다.
칠레에서도 1920년대 이미 개혁적 성향의 대통령을 선출했지만, 자본가와 부르주아의 세력이었던 의회의 극심한 반대에 부닥쳐 사회 개혁은 대부분 좌절된다. 그리고 곧 이어 1924년, 군부 쿠데타가 발생하고, 빅토르가 태어나던 1932년까지 칠레 정치 상황은 불안정하게 이어지고 있었다.
소작농으로는 도저히 한 가족이 먹고 살기 어렵다고 판단해서 빅토르의 부모는 도시인 산티아고로 이주하기로 결정한다. 빅토르가 열 살 무렵, 가족은 산티아고로 이주하고, 열여섯 살 무렵, 빅토르는 판토마임 극단에 가입해 단원으로 활동한다. 빅토르가 태어나 성장하던 1932년부터 살바도르 아옌데가 대통령이 되던 1970년 사이는 중도 정권이 들어서면서 무난한 시기였다.
빅토르는 1951년, 칠레대학교 연극학부에 입학하고, 칠레 민요를 연구하고, 연주하는 동아리 활동을 시작한다. 1961년부터는 칠레대학교 부속 연극연구소에 근무하며 무대연극을 연출한다. 그는 어렸을 때부터 음악과 가까이 지냈는데, 빅토르의 어머니가 칠레 전통음악을 부르는 가수였다. 마을의 행사가 있을 때면 빅토르의 어머니는 전해오는 민요를 불렀고, 빅토르는 어릴 때부터 어머니의 노래를 들으며 칠레 음악의 원형을 익혔다. 그도 처음에는 어머니가 부른 것처럼 칠레의 전통 음악을 연주하고 노래했으나 차츰 사회의 모순에 눈 뜨면서 작사, 작곡한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1965년 무렵부터 작사, 작곡한 노래를 불렀고, 이 노래들은 노동자, 농민, 기층민중의 고통스러운 삶을 그렸거나, 칠레 사회의 부조리를 고발하는 노래들이었다.
빅토르 하라가 만나게 되는 사회주의자 살바도르 아옌데 대통령은 1908년에 태어났으니, 빅토르 하라보다 24살이 많다. 발파라이소의 중상류층 가정에서 태어난 아옌데의 집안은 교육자, 학자, 법률가들이 가족이었으며, 아버지가 변호사였고, 삼촌들도 사회주의자, 공산주의자들이었다. 집안의 영향을 받은 아옌데는 칠레대학교에서 의학을 공부하면서 학생운동도 활발하게 참여했다. 아옌데가 의사인 것은 체 게바라와 비슷하다. 아옌데나 체 게바라나 모두 중상층의 집안에서 태어났지만, 자기가 살아가고 있던 사회 현실에서 민중들의 삶이 얼마나 고통스러운가를 가까이 보면서 진보적이고 혁명적인 사상을 받아들이게 된다는 점에서 닮았다.
빅토르 하라가 민중의 노래를 본격 만들던 1960년대 중반에 이미 살바도르 아옌데는 진보정당(칠레공산당)의 정치인으로 이름을 널리 알리고 있었다. 빅토르는 아옌데의 정치철학과 사상을 지지하며, 민중의 삶을 노래로 만들었다.
1970년 대통령 선거에서 아옌데는 인민연합(칠레 사회민주당, 칠레 공산당) 후보로 나와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아옌데는 대통령이 되자 곧바로 '사회주의를 향한 칠레의 길'이라는 이름으로 사회주의 정책을 펼치기 시작했다. 대규모 사업장을 국유화하고, 민중의 복지에 우선 투자했으며 토지개혁을 실시했다.
하지만, 이후 벌어지는 일은 우리가 잘 아는 것처럼, 미국CIA의 적극적 개입, 칠레 내부의 자본가, 부르주아의 반대, 미국 정부의 악의적 방해 - 구리값 인하, 투자자금 회수 등 - 로 인해 아옌데 대통령이 추진하려던 개혁정책은 실패하게 된다.
마침내 1973년, 미국CIA는 칠레 군부에 쿠데타를 일으킬 것을 지시하고, 피노체트가 전권을 쥐고 군사행동에 들어간다. 칠레 공군폭격기가 아옌데 대통령이 있는 모네다궁을 폭격하고, 탱크가 밀고 들어가 전투가 벌어지면서 아옌데 대통령은 국민에게 마지막 라디오 방송을 하고 자살한다. 아옌데 대통령의 죽음은 자살과 타살의 논란이 많은데, 자살 쪽으로 의견이 기울고 있다.
아옌데 대통령이 피노체트 군부 쿠데타에 맞서 싸우던 마지막 날, 1970년 9월 11일, 그때 파블로 네루다는 죽음을 불과 12일 앞두고 있었다. 아옌데 대통령보다 네 살 많은 네루다는 어렸을 때부터 시를 쓰기 시작했고, 1920년부터 '파블로 네루다' 필명을 쓰기 시작했다. 1934년부터 1939년까지 스페인에 있는 칠레대사관에서 근무할 때 스페인 내전을 목격했으며, 이때 인민전선정부의 탄생, 프랑코 군부의 쿠데타가 벌어지는 걸 가까이서 볼 수 있었다. 네루다는 칠레에 귀국해 1945년 상원의원이 되면서 칠레공산당에 입당한다. 하지만 반동정권에 의해 공산당이 불법화되면서 칠레를 탈출해 아르헨티나, 멕시코 등을 전전하다 1952년이 되어서야 다시 칠레로 돌아올 수 있었다.
1970년, 아옌데 정부가 들어서면서 네루다는 프랑스 대사가 되었고, 1971년 노벨문학상을 받는다. 1973년 피노체트 쿠데타가 발발하고, 아옌데 대통령이 사망하고, 수많은 진보지식인, 학생, 노동자들이 군부에 의해 어디론가 끌려가 학살당하고 있을 때, 그는 암으로 투병하고 있었다. 병석에서 빅토르 하라가 주검으로 발견되었다는 소식을 들은 네루다는 피노체트 군부 쿠데타를 비난하는 시를 썼으며, 특히 빅토르 하라의 죽음에 대해 그의 아내에게 '그자들이 사람을 죽이고 있어. 산산조각이 난 시신들을 건네주고 있다고. 노래하던 빅토르 하라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 당신 몰랐어? 그자들이 하라의 몸도 갈기갈기 찢어놓았어. 기타를 치던 두 손을 다 뭉개놓았대.'라고 분노하며 말했다.
이 영화는 이런 일련의 사건들이 발생하고 시간이 약 40년 가까이 흐른 다음의 이야기다.
빅토르 하라의 아내 호안 하라는 빅토르 하라가 대학으로 처들어온 군인들에 의해 칠레 경기장으로 끌려갔고, 그곳에서 참혹한 구타를 당했으며, 어떤 군인이 쏜 총에 의해 사망했다는 이야기를 듣는다. 다행히 도와주는 사람들이 있어 산티아고 공동묘지 바깥에서 빅토르 하라의 시신을 수습할 수 있었다. 호안 하라는, 그래도 자신은 남편의 시신이라도 수습해서 다행이라고 말한다. 수만 명의 사람들은 지금도 시신을 찾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쿠데타를 일으켜 아옌데 대통령을 죽음으로 몰고갔고, 진보 지식인, 학생, 노동자 수만 명을 학살한 피노체트는 1973년 권력을 찬탈한 이후 1990년 선거에서 지면서 17년 장기 독재를 마감한다. 박정희가 1961년부터 1979년까지 18년 동안 장기 독재를 한 것과 비슷한 상황이다. 피노체트는 박정희, 전두환처럼 피도 눈물도 없는 잔혹한 독재자였으며, 미국의 이익을 대리하는 제국주의 앞잡이였다.
한국에서도 박정희, 전두환 독재 시기에 민주화운동이 활발하게 벌어졌듯이, 칠레에서도 피노체트 독재 시기에 민주화운동이 활발하게 펼쳐졌다. 남아메리카는 스페인의 식민지 영향을 받아 가톨릭이 폭넓게 퍼졌고, 민중의 거의 대부분이 가톨릭(구교)을 종교로 받아들이고 있었다.
칠레 민주화운동에서 가톨릭 교회의 역할은 중요했다. 피노체트가 가톨릭 사제, 수녀까지도 학살했으며, 지식인, 학생, 노동자 대부분이 가톨릭 교도였기 때문에, 가톨릭 교회에서 이들의 죽음을 보며 침묵할 수 없었던 상황이었다.
호안 하라는 빅토르 하라의 주검을 수습한 다음, 미국으로 탈출한다. 그리고 그때부터 지금까지 피노체트 독재 정권의 범죄를 증언하고, 남편 빅토르 하라의 참혹한 주검을 세상에 알렸으며, 빅토르를 죽인 자들이 누구인지 찾는 일을 멈추지 않았다.
칠레에 민주정부가 들어선 2009년 이후 호안 하라는 36년 동안 가매장했던 빅토르 하라의 시신을 정식으로 매장할 수 있었다. 이때 수많은 칠레 시민이 빅토르 하라의 장례식에 참가했다.
호안 하라와 칠레 진실화해위원회는 1973년 당시 칠레경기장에 있었던 병사들을 찾아내 그들의 증언을 듣기 시작했다. 그때 칠레경기장에서 어떤 일이 있었는지, 얼마나 많은 사람이 죽었는지, 누가 그들을 죽이라고 명령했으며, 누가 방아쇠를 당겼는지 병사들의 입을 통해 듣기 시작한 것이다.
하지만 많은 병사들은 입을 열지 않았다. 그들은 40년 가까운 시간이 흘렀어도 여전히 두려워하고 있었으며, 그때 자신들에게 명령을 했던 장교들이 찾아와 입을 열지 말라고 협박했다는 증언이 나중에 나오기도 했다.
하지만, 아무리 비밀을 지키려 해도, 완전 범죄는 있을 수 없다. 특히 역사에서 일어난 사건은 수많은 증인이 존재하고, 누군가는 반드시 입을 열기 마련이다. 최초의 증언자는 1973년 당시 칠레 경기장에 있었던 병사 파레데스였다. 그는 중위 페드로 바리엔토스가 빅토르 하라를 죽였다고 증언했다.
진실화해위원회가 바리엔토스를 찾았지만, 그는 이미 미국 시민권자로 플로리다에 살고 있었다. 게다가 피노체트 독재 정권에서 출세했던 인물들은 1991년 이후 미국이나 유럽으로 도망했다. 피노체트도 1991년 영국 런던으로 도망갔지만 1998년, 런던에서 체포당한다. 스페인 정부가 피노체트를 납치, 살인죄로 기소하고 국제수배를 하자 영국의 사법부가 체포한 것이다. 피노체트는 2000년 병보석으로 풀려나 칠레로 돌아왔으며, 2006년 병으로 사망했다.
호안 하라와 진실화해위원회는 미국 법원에 바리엔토스를 상대로 민사소송을 한다. 바리엔토스의 행위로 인해 호안 하라와 그의 가족의 삶이 막대한 피해를 입었으므로 배상해달라는 취지였다. 그리고 칠레에서 모은 증거자료들을 법원에 제출했다.
첫번째 증인이었던 파레데스의 증언은 바리엔토스 본인과 그의 호위병 두 명에 의해 부인당했다. 바리엔토스가 당시 중위였고, 근처에서 경호 업무를 하고 있었던 것은 맞지만, 칠레 경기장에는 가 본 적이 전혀 없다고 증언한 것이다. 파레데스는 나중에 자신의 증언이 거짓이었다고 말한다.
진실화해위원회와 호안 하라는 낙담하지만, 다시 증인을 찾아나섰고, 이번에는 수십 명의 증인들 - 당시 칠레 경기장에 있었던 병사들 -의 증언을 녹화한다. 그리고 결정적인 증언이 당시 바리엔토스의 호위병이었던 나바레테로부터 나온다. 나바레테는 바리엔토스가 칠레 경기장의 책임자였으며, 경기장에서 벌어지는 모든 일은 바리엔토스가 지시, 결정했다고 증언했다.
이렇게 많은 증언이 있음에도 바리엔토스는 끝까지 자기는 그 자리에 없었으며 빅토르 하라를 죽이지 않았다고 말한다. 그는 인상 좋은 모습으로, 침착하며 온건하게 말한다. 자기도 살바도르 아옌데 대통령을 지지한 사람이며, 군인이 된 것은, 피노체트가 쿠데타를 일으킨 이후 징집당한 것이고, 자기는 순찰과 경호 업무만 했을 뿐이라고 말한다. 그의 말을 들으면 그가 정직한 사람처럼 보인다.
심지어 바리엔토스는 자발적으로 거짓말 탐지기 테스트를 받겠다고 말한다. 그렇게 거짓말 탐지기 테스트를 하지만, 테스트를 주관한 사람의 증언은, 바리엔테스가 '기만적인 인물'로 보인다고 말한다. 즉, 자기 자신까지 속이는 인물이라는 것이다.
2016년, 미국 법원은 호안 하라의 주장에 일리가 있다고 판단하면서 바리엔토스는 호안 하라에게 2,800만 달러(330억 원)를 보상하라고 판결했다. 나중에 알려졌지만, 바리엔테스는 빅토르 하라를 죽이기 전에 러시안룰렛을 하며 살인을 즐기듯 한 인물이고, 빅토르 하라를 죽인 것으로 보아 더 많은 사람을 학살했을 가능성이 많은 인물이다.
호안 하라는 91세로, 다행히 그가 살아 있어 끝까지 남편 빅토르 하라의 죽음에 대한 진실과 범죄자를 찾아내 그 죄를 물을 수 있다는 것에 깊이 감사했다.
빅토르 하라의 노래는 독재자들이 민중의 노래를 얼마나 두려워하는가를 잘 보여주는 역사적 사례다. 독재자들은 공통적으로 민중의 노래를 싫어한다. 한국에서도 박정희, 전두환 독재 정권에서 수많은 노래들이 금지곡으로 묶였고, 가수들은 탄압당했다.
노래가 총칼보다 강하다는 걸 우리도, 적들도 알고 있다. 지금도 칠레에서는 빅토르 하라를 기리는 행사가 있고, 천 명이 기타를 들고 모여 함께 연주하며 빅토르 하라를 추모하는 행사도 갖는다. 민주주의와 정의가 실현되기까지 수많은 사람들의 생명이 끊기고, 피가 강물처럼 흘러야 하지만, 민주주의는 피를 먹고 자란다는 말처럼, 민중의 끊임없는 투쟁많이 민주주의를 지킬 수 있다는 것을 칠레의 역사에서 확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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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착할 수 없을 만큼, 머물 수 없는 마음들.
- 존스 레이먼의 The Half Life 원작 소설인 영화 퍼스트 카우는 윌리엄 블레이크의 지옥의 격언으로 첫 장을 여는데, "새에게는 둥지, 거미에게는 거미줄, 인간에게는 우정." 이 문장은 영화 전체를 아우르는 만큼 영화가 끝나고 나서 다시 곱씹어볼 수 있다. 이토록 낯선 곳에 지금보다 더 나은 삶을 위해 떠난 이들의 짧지만 긴 여정이 시작된다. 서부극이라는 단어를 들으면 말, 카우 보이, 거친 모습들이 생각나지만 이 영화는 어딘가 좀 다른 모습들로 채워져 있다. 낯선 단어에서 오는 생생한 낯섦을 경험할 수 있는 영화 '퍼스트 카우'를 본격적으로 소개하려고 한다.다소 좁은 화면비,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지나가는 배의 모습이 보였다가 사라진다. 평온함으로 뒤덮인 곳에서 부스럭 거리는 소리와 함께 그때의 흔적이 현재에 의해 조금씩 형체를 드러낸다. 우연인지 운명인지 사냥꾼들의 식량을 담당하는 쿠키는 누군가에게 쫓기는 킹 루에게 옷과 술을 비롯한 먹을거리와 잠자리를 제공한다. 그리고 다시 만날 거라고 생각지도 못했던 쿠키와 킹 루는 시간이 지나 어느 마을에서 만나고 킹 루는 쿠키에게 자신의 집에 초대하여 술과 잠자리를 제공한다. 그렇게 두 번째 만남은 진지하게 꿈에 대해 이야기하는 시간이 되었고 그들은 공동의 목표를 세운다. 그들이 세운 목표는 어느새 명확한 구상으로 이루어져 빵을 만들어 팔게 된다. 쿠키가 만든 빵은 마을 사람들이 줄을 설 만큼 굉장한 인기를 누리게 되어 팩터 대령도 이에 관심을 가지게 된다. 생각했던 것보다 일이 커지면서 그들이 몰래 행했던 일들도 조금씩 불안해진다. 바로 이 마을의 최초이자 유일한 젖소에게서 몰래 짠 우유로 만든 것도 모자라 팩터 대령의 암소였다는 것이다. 어디에도 정착할 수 없는 이들은 끊임없이 위기에 봉착하게 되지만 이 이야기의 화자는 이들에게 어떤 감정도 가지지 않고 반문하듯 자연을 제외하곤 누구도 정착할 수 없다는 것을 암시하며 어떠한 결말을 쥐어준다. 그것이 누구의 입에서 나왔는지는 중요하지 않다는 듯이 명확하지는 않다.백인이 주도하는 사회에서 비주류인 데다가 소외된 두 사람이 어디에도 정착할 수 없는 몸을 이끌고 우정을 유지하리란 결코 쉽지 않은 일이었다. 그럼에도 그들은 현재에 최선을 다하고 서로를 신뢰하며 다시 만나 그 자리에 계속 머문다. 낯선 곳에서 적응할 수 조차 없이 낯선 것들 중에서 가장 낯설지 않은 두 사람이 조우하는 순간은 참 짧고도 길었다. 앞과 뒤가 이렇게 잘 맞아떨어지는 영화는 오래도록 기억에 남기 마련인데, 이 영화도 그러했다. 낯선 곳에서 적응할 수 조차 없이 낯선 것들과 정착할 수 없을 만큼이나 머물 수 없는 마음들이 마주하여 새에게는 둥지, 거미에게는 거미줄, 인간에게는 우정이 귀결되게 한다. 처음에는 오해했고 두 번째는 진지했으며 세 번째는 들킬 위기에 처하면서도 서로를 배신하지 않는 그 우정이 참으로 빛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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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월 첫째 주 극장 개봉 & 예정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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팀 버튼 감독의 신작 <비틀쥬스 비틀쥬스>가 오는 9월 4일 개봉합니다.
이번 영화는 '비틀쥬스' 시리즈의 36년 만의 후속작으로, 제 81회 베니스 국제 영화제의 개막작으로도 선정되었습니다.
<비틀쥬스 비틀쥬스>에서는 원작의 주연이었던 마이클 키튼과 위노나 라이더가 다시 한 번 호흡을 맞추며 기대를 모으고 있습니다. 또한, <웬즈데이>의 제나 오르테가가 출연하고, 캐서린 오하라, 윌렘 대포, 모니카 벨루치 등 화려한 캐스팅이 돋보입니다.
비틀쥬스1988
원작 <비틀쥬스>는 1,500만 달러의 제작비로 7,370만 달러의 흥행 수익을 거둔 작품으로, 팀 버튼 감독과 마이클 키튼, 위노나 라이더에게 큰 인기를 안겨준 영화입니다. 이번 신작은 한국에서 시리즈 최초로 극장에서 개봉할 예정입니다.
비틀쥬스 비틀쥬스
Beetlejuice Beetlejuice
개요: 코미디, 판타지, 공포 | 미국 | 105분
감독: 팀 버튼
주연: 마이클 키튼, 위노나 라이더, 캐서린 오하라, 제나 오르테가, 모니카 벨루치, 윌렘 대포, 저스틴 서룩스
개봉: 2024.09.04.
배급: 워너 브러더스 코리아㈜
줄거리
유령과 대화하는 영매로 유명세를 타게 된 ‘리디아’와 그런 엄마가 마음에 들지 않는 10대 딸 ‘아스트리드’. 할아버지 ‘찰스’의 갑작스러운 죽음으로 가족들은 함께 시골 마을에 내려간다. 유령을 보는 엄마가 마음에 들지 않는 ‘아스트리드’는 방황하던 중 함정에 빠져 저세상에 발을 들이게 되고 딸을 구하기 위해 ‘리디아’는 인간을 믿지 않는 저세상 슈퍼스타 ‘비틀쥬스’를 소환한다.
이루지 못한 ‘리디아’와의 결혼을 조건으로 내민 ‘비틀쥬스’. 이번엔 ‘아스트리드’가 ‘비틀쥬스’를 다시 저세상으로 보내야 하는데···. 저세상 슈퍼스타 '비틀쥬스'와 Z세대 반항아 '아스트리드'! 산 자와 죽은 자, 누가 남을 것인가!
안녕, 할부지
My Dearest Fu Bao
개요: 다큐멘터리, 애니메이션 | 한국 | 95분
감독: 심형준, 토마스 고
주연: 푸바오, 아이바오, 러바오, 루이바오, 후이바오, 강철원, 송영관, 이세현
개봉: 2024.09.04.
배급: ㈜바른손이앤에이
줄거리
선물로 찾아온 만남, 예정된 이별 푸바오의 중국 귀환 일정이 결정되고, 사랑하는 이들의 아쉬움이 커져만 간다 마침내 다가온 이별의 순간, 푸바오의 행복을 위해 애써 담담해 보였던 강바오와 송바오 역시 흔들리기 시작하는데… 헤어질 때를 알기에 매 순간 진심이고 애틋했던 그들 1354일, 그동안의 못다 한 이야기 안녕, 그리고 안녕…
원맨
N THE LAND OF SAINTS AND SINNERS
개요: 액션, 범죄, 스릴러 | 아일랜드 | 106분
감독: 로버트 로렌즈
주연: 리암 니슨, 케리 콘돈
개봉: 2024.09.04.
배급: 이화배컴퍼니㈜
줄거리
전설의 킬러, 그가 다시 돌아온다! 과거를 묻고 은퇴하는 베테랑 청부살인업자. 테러리스트들이 그의 마을에 들이닥친다. 게다가 어린 소녀를 학대하는데… 지킬 것이 생겼다. 정체가 탄로났다. 처음으로 남을 위해 다시 총을 드는데… 그의 분노가 폭발한다!
52헤르츠 고래들
52-Hertz Whales
개요: 드라마 | 일본 | 136분
감독: 나루시마 이즈루
주연: 스기사키 하나, 시소 쥰, 쿠와나 토리, 오노 카린, 미야자와 히오. 카네코 다이치
개봉: 2024.09.04.
배급: 해피송
줄거리
마음의 상처를 숨긴 채 작은 바닷가 마을의 외딴 집에서 살고 있는 ‘키코’. 비 오는 어느 날 자신과 같은 아픔을 가진 어린 소년을 만나게 된다. 목소리를 잃어버린 소년의 SOS를 알아챈 순간, ‘키코’는 그녀의 SOS를 들어준 ‘안고’를 떠올리게 되는데… “딱 한 명 내 목소리를 들어주는 사람이 있었어” 세상에서 가장 외로운 52헤르츠 고래들의 희망과 구원이 이야기가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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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절찬 상영중] 기생충
[김태혁의 ‘절찬 상영중’ – 기생충]
이것은 빈부격차 이야기가 아니다
이것은 파이프(로 보이는 물체) 아래 "이것은 파이프가 아니다"라고 써놓음으로써 많은 사람을 당황하게 만든 <이미지의 반역(배반)>이라는 그림이다. 정말 그럴까? 이 그림을 그린 르네 마그리트의 사유를 차용해 물질적 속성을 따지자면, 이 이미지는 '그림'이라기보다는 <이미지의 반역(배반)>이라는 '그림'을 스캔한 '컴퓨터 파일'이라고도 할 수 있다. '그림을 그리는 철학자' 르네 마그리트는 언어와 대상, 대상과 대상을 재현한 이미지, 언어와 이미지의 연결은 자의적이므로 얼마든지 단절되거나 자유롭게 재구성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어떤 대상이 통념상 있음 직한 공간을 벗어난 생경한 장소에 위치하고, 현실에서라면 한 프레임 안에 있는 것이 불가능한 대상들이 공존하는 그의 그림들은 나태한 사고를 깨부순다. 생각의 한계를 무너뜨린 르네 마그리트의 초현실주의 회화는 당대를 뒤흔들었고, 후대의 다양한 예술가에게 영감을 불어넣었다.
블랙코미디, 스릴러, 가족 드라마 등 하나의 영화 안에서 함께 존재하기 어려운 다양한 장르적 요소가 뒤섞여 장르를 규정하기 힘든 영화 <기생충>을 본 후, 현실의 경계를 파괴하는 파격적 미학을 선보인 르네 마그리트의 <이미지의 반역(배반)>이 떠올랐다. 르네 마그리트가 회화 예술의 관습을 격파했듯이 봉준호 감독은 영화 장르의 틀을 붕괴시켰고, 언뜻 누가 보아도 빈부격차가 핵심인 것 같은 <기생충>에 빈부격차 자체보다 더 중요한 메시지가 있기 때문이다.
이 영화에는 가정 형편이 극단적으로 차이나는 두 가족이 등장한다. 두 가족은 사는 곳이 정반대다. 잇따른 자영업 실패로 궁지에 몰린 기택(송강호) 가족은 누추한 반지하집에 살고, 성공한 IT기업 CEO인 박사장(이선균) 가족은 유명 건축가가 설계한 대저택에 산다. 햇빛이 잘 들어올 리 없는 기택의 반지하집은 대낮에도 어둑하고, 채광이 끝내주는 박사장의 대저택은 실내에 있어도 비타민D를 합성할 수 있을 만큼 자연광이 풍부하게 들어온다. 기택 가족은 고기는커녕 한끼 제대로 챙겨 먹기도 힘들지만, 박사장의 부인 연교(조여정)는 짜장 라면에 한우 채끝살을 넣어 먹는다. 박사장 집에 사는 강아지들이 기택 가족보다 영양 상태가 훨씬 더 좋으리라는 것은 자명하다.
이 두 가족 간의 극심한 격차는 영화 플롯의 변곡점이 되는 비 오는 밤 시퀀스에서 극적으로 표현된다.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 쏟아지는 비를 맞으며 하염없이 계단을 내려가고 또 내려가는 기택 가족을 보고 있노라면 자연스레 수직적 계급 사다리가 연상된다. 가난한 자는 달동네처럼 높이 올라가야 하거나, 반지하처럼 깊이 내려가야만 하는 곳에서 자신의 거처를 마련할 수 있다. 물론 부자도 지대가 높은 곳에 사는 경우가 있다. 하지만 부자는 가난한 사람처럼 좁은 계단을 걸어 올라가지 않고, 기사가 운전하는 고급 승용차에 앉아 잘 닦인 도로를 따라 집에 도착한다.
이처럼 빈부격차를 확실하게 드러내는 설정과 상징이 영화를 가득 채우고 있는데, <기생충>이 진짜 말하고자 하는 것이 빈부격차가 아니라는 생각이 떠오른 이유는 무엇일까? <기생충>에는 부자와 빈자가 함께 등장하는 영화라면 으레 기대할만한 부자에 대한 부정적 묘사가 없다. 영어를 섞어서 말하는 박사장의 부인 연교와 기택에게서 불쾌한 냄새가 난다고 말하는 박사장이 재수없을 수는 있다. 하지만 그들은 경제적 계급 격차를 다룬 여느 영화나 드라마에 등장하는 부자들처럼 불법적인 수단을 동원해 부를 일군 사람들이 아니다. 어처구니없는 이유로 누군가에게 폭언이나 폭력을 행사하지 않는다. 자신들에게 필요한 서비스를 제공하는 사람에게 정당한 돈을 지급하고, 속마음은 다를지 몰라도 최소한 겉으로는 예우한다. 기택의 부인 충숙(장혜진)이 술에 취해 박사장 가족의 인성을 긍정적으로 평가하면서 “돈이 다리미야. 돈이 주름살을 쫘악~ 펴줘.”라고 말하는 것은 일리가 있다. <기생충>은 빈부격차의 ‘현상’ 자체는 실감 나게 보여주지만, 빈부격차를 타파하고 경제적으로 더 평등한 사회를 이뤄야 한다고 주장하는 영화는 아니다.
돈을 매개로 엮인 박사장 가족과 기택 가족의 관계는 빈부격차를 문제시하기보다 빈자와 부자 간의 상호의존성에 주목하게 만든다. 박사장 가족은 굳이 자신들이 직접 하지 않아도 될 출퇴근 운전, 집안일, 자녀 교육을 자신들보다 더 잘 처리해주는 사람에게 기꺼이 대가를 지불한다. 박사장 가족에게 귀찮고 시간 낭비에 불과한 일들을 대신해주는 기택 가족은 요긴한 존재다. 한편, 박사장의 주머니에서 나오는 임금은 기택 가족이 당장 먹고살기 위해 없어서는 안 될 돈이다. 박사장 가족과 기택 가족은 서로가 서로를 필요로 하는 관계다.
이렇게 본다면, 영화의 제목인 '기생충'의 의미가 조금 다르게 다가온다. 과연 박사장의 재력에 의지한 기택 가족만 누군가에게 기생한 것일까? 부자의 일상을 누리기 위해 허드렛일을 대신해줄 누군가가 꼭 필요한 박사장 가족도 기택 가족에게 기생한 것인지도 모른다. 가난한 사람 중에 부자가 되고 싶지 않았던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다. 기택 가족의 사업이 잘 풀렸다면, 기택 가족이 누군가를 고용해 잡일을 맡겼을지 모를 일이다. 이처럼 <기생충>은 부자가 되고 싶다는 욕망을 달성하는 데 성공한 사람과 실패한 사람의 차이를 극명하게 보여줄 따름이다. 강한 신분 상승 욕망을 지닌 기택의 아들 기우(최우식)가 자신의 계획대로 부자가 된다면 어떤 일들이 벌어질까? 기우는 박사장만큼 주름지지 않은 부자로 살 수 있을까? 혹시 나쁜 인간이 되지는 않을까? 자본주의 사회를 살아가는 우리 내면의 꿈틀거리는 욕망과 콤플렉스를 잘 살펴보라고 영화 <기생충>은 우리 앞에 거울을 들이민다.
* 본 콘텐츠는 브런치 김태혁 님의 자료를 받아 씨네랩 팀이 업로드 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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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상이 멸망해도 마동석표 액션은 생존
넷플릭스 영화 '황야'를 보며 느끼는 건, 세상이 멸망하더라도 마동석표 액션만큼은 어떤 식으로든 오랫동안 생존할 수 있겠다는 점이다. 확실히 검증된 액션이긴 하나, 액션만으로 끌고 가기엔 어딘가 허전하다.
'황야'는 폐허가 된 세상, 오직 힘이 지배하는 무법천지 속에서 살아가는 자들이 생존을 위해 벌이는 최후의 사투를 그린다. 마동석이 주연 이외 제작, 각색에 참여했고, '범죄도시' 시리즈를 비롯해 다수 작품에서 무술감독을 해온 허명행 감독의 입봉작이다.
지난해 여름에 개봉한 '콘크리트 유토피아'처럼 포스트 아포칼립스를 그리 있긴 하나, 전반적인 느낌은 '범죄도시' 멸망편을 보는 듯하다. 마동석이 연기하는 남산 캐릭터는 '범죄도시' 마석도와 닮아있고, 유머 코드나 갈등 해결 구조 또한 그렇다. 두 사람이 의기투합해서 만드는 '범죄도시 4'의 스핀오프로 착각해도 무방할 수준이다.
무술감독으로 이름 날렸던 명성에 걸맞게, 허명행 감독은 '황야'에서 자신이 갈고닦았던 노하우를 쏟아낸다. 맨몸, 총기, 단검 액션 등 다양한 액션으로 디자인해 보는 이들의 도파민을 자극시킨다. 액션을 좋아하는 이들이라면 '황야'를 가볍게 즐기기 좋은 반면, 마동석표 액션을 자주 접했다면 기시감이 느껴질 수도 있다.
'황야'의 문제점은 영화의 서사가 매우 빈약하다는 것. '물을 점유한 이가 권력을 누린다'는 단순한 세계관을 설명하는 데 필요 이상으로 할애하고, 전개 속도가 매우 느려 흥미를 유발하지 않는다. 수많은 캐릭터들이 등장한 것에 비해 관계성이나 계급 등 생각만큼 다채롭지 않고 어떤 지점에서는 유치하게 다가온다. 예를 들면, 과학자 양기수(이희준)의 욕심과 이와 관련해 갈등을 빚는 순간 등은 손발이 오그라든다.
대사나 말맛도 평이하다. 마동석 스타일의 농담을 제외하고 귀에 꽂히거나 기억나는 게 거의 없다. 절정 부분에서 직접 메시지를 꽂는 수나(노정의)의 대사는 촌스럽게 비칠 수도 있다. 서사의 레이어가 촘촘했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묻어난다.
스토리텔링의 약점을 배우들이 연기로 커버한다. 주인공인 마동석은 자신의 전매특허인 원펀치와 무기를 활용한 액션 시퀀스, 특유의 개그를 뽐내며 존재감을 자랑한다. 남산의 파트너인 지완 역의 이준영이나 수나를 맡은 노정의 또한 제 몫을 해낸다.
'황야'에서 단연코 돋보인 인물은 이희준이다. 인류의 미래를 고민하며 연구에 집중하는 의사라는 정체성의 이면엔 삐뚤어진 부성애가 숨겨져 있었고, 이를 광기로 폭발시키는 그의 연기는 리스펙트다. 또 특수부대 소속 중사 은호를 연기한 안지혜는 기대 이상이었다. 다른 작품에서 액션으로 시선강탈한 적이 있지만, '황야'에서도 번뜩인다. 액션 못지않게 대사나 감정 연기도 안정적으로 소화해 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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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 여분의 삶이 벌이라고 생각했어.”
#윤희에게 #MoonlitWinter
-BGM
Raphael Leto - Wanted Me (feat. DNAKM)-Contact
93marvel@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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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정재 감독의 헌트, 올 여름 가장 재미있는 영화
?Rabbitgumi 입니다!
올 여름 그동안 개봉하지 못했던 큰 영화들이 극장에 공개되었는데요.
이정재 감독의 헌트는 그 리스트의 맨 마지막에 위치한 작품이었습니다.
이정재 배우가 감독으로서 첫 연출을 맡은 작품이기도 했죠.
25년 지기 친구 정우성과 같이 공동 주연을 맡았는데요.
이 영화 흥미진진한 액션 스릴러입니다.
첩보 장르의 특성도 잘 담겨 있구요.
이 영화가 어땠을지 좀더 자세히 알려드릴게요! :)
자세한 리뷰는 영상을 참고해주세요! :)
그리고 제가 매주 일요일마다 영화에세이를 전달 드리는 Rabbitgumi 영화 이야기 뉴스레터에도 관심을 가져주시고 많은 구독 부탁드립니다!
뉴스레터에사는 일반적인 영화 리뷰 보다는 보면서 떠올렸던 감정이나 생각들을 정리하여 전달 드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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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넷플릭스 <페이트 : 윙스의 전설 시즌2> 예고편
플로라의 첫 등장 ? 《페이트: 윙스의 전설》 시즌 2에서 첫선을 보이는 파울리나 차베스를 만나보세요. 가족이 된 걸 환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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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클라이밍> 메인 예고편
“너는 나고, 나는 너야”
세 달 전 교통사고를 겪은 세현은 세계 클라이밍 대회를 앞두고
회복되지 않는 컨디션과 경쟁에 대한 압박으로 악몽에 시달린다.
그러던 어느 날 밤, 사고 당시 고장 났던 세현의 핸드폰으로 전화가 걸려온다.
다름 아닌, 바로 '나'로부터.
연락을 주고받을수록 서로 연결되어 있음을 느끼는 두 사람.
급기야 세현은 또 다른 세현의 임신이 자신에게도 영향을 끼친다는 것을 알게 되고,
그 이후 악몽처럼 기이한 일들이 일어나기 시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