혜경2024-10-03 00:47:30
[BIFF 데일리] 이례적이지만 흠잡을 곳 없는 개막작
영화 <전,란> 리뷰
[BIFF 데일리] 이례적이지만 흠잡을 곳 없는 개막작
제29회 부산국제영화제 개막작 <전,란> 리뷰
줄거리
왜란이 일어난 혼란의 시대, 함께 자란 조선 최고 무신 집안의 아들
‘종려’(박정민)와 그의 몸종 ‘천영’(강동원)이 ‘선조’(차승원)의 최측근 무관과 의병으로 적이 되어 다시 만나는 이야기를 그린 영화
감독: 김상만
출연: 강동원, 박정민, 차승원, 김신록, 진선규, 정성일
독립 영화를 중심으로 개막작을 선정하던 부산국제영화제에서 OTT 영화. 그것도 청소년 관람불가 등급의 OTT 영화가 개막작으로 선정된 것은 이례적인 일이다. 10월 2일 영화제의 개막을 앞두고 진행된 기자회견에선 'OTT 영화인 <전,란>을 개막작으로 선택한 이유’를 묻는 질문과 응답이 연속적으로 오갔다. 박도신 부집행위원장은 이에 대해 ‘대중적이고 재밌고, 완성도가 높은 영화이며 OTT 작품에도 문이 열려있음을 말씀드리기 위해’ <전,란>을 개막작으로 선정했다고 답했다.
이후 시대가 어떻게 변할지 <전,란>의 개막작 선정이 앞으로의 시장을 어떻게 바꿀진 알 수 없지만 일단 <전,란>은 박도신 부집행위원장의 말처럼 대중적이고 재밌고 완성도 높은 영화다. 쟁쟁한 배우들과 양면에 각각 다른 색을 장착한 각본, 다방향으로 치고 나오는 다채로운 액션, 빠르게 돌파하는 과감함까지 모두 갖춘, 흠잡을 곳이 없는 작품이다.
<전,란>은 선조의 재위 기간에 일어난 임진왜란의 전, 후사를 배경으로 하고있다. 영화는 비슷하지만 다른 운명을 타고난 두 남자 종려와 천영의 우정과 증오, 각자의 눈으로 시대를 바라보는 다양한 인물들의 의지를 연료 삼아 나아간다. 그리고 흑과 백, 적과 청, 진실과 오해를 맞붙여 스파크를 튀기다 끝내 커다란 불꽃을 만들어낸다.
배우들은 이 커다란 불꽃을 가운데 두고 맡은 인물을 마음껏, 맛있게 요리해 내놓는다. 영화 <군도>이후 약 10년 만에 양반이 아닌 노비 천영이 되어 나타난 강동원 배우는 헤진 도포자락을 휘날리며 귀신같은 몸놀림을 보여주고 그에 대척하는 양반 종려를 맡은 박정민 배우는 변화하는 인물의 감정을 진중하게 무너뜨리고 재조립한다. 비겁한 임금 선조를 맡은 차승원 배우는 자칫하면 모든 게 과도해 보일 수 있는 인물을 한 끗 차이로 비틀어 단단하게 만든다. 의병대와 일본군의 선봉장 겐신을 맡은 진선규, 김신록, 정성일 배우의 김자령, 범동, 겐신은 몇 번이고 들여다보고 싶게 만드는 깊은 매력을 뽐낸다.

<전,란>은 혼란한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이들이 각자의 정도(正道)를 찾아가는 여정이다. 이들은 주어진 운명과 계급에 순응하기보단 그에 맞서길 선택하고 자신에게 꼭 맞는 무기를 손에 든다. 각 무기에 주인의 운명과 의지가 투영되고 그들은 무기를 휘두르며 단단히 막혀있던 계급과 운명의 벽을 조금씩 허물어간다.
비슷하지만 다른 운명을 타고난 종려와 천영은 허물어지고 있는 얇은 벽을 사이에 두고 지키는 자와 허무는 자가 되어 대립한다. 두 사람은 적, 청색의 도포를 두르고 흑, 백의 검을 든 채 마주 선다. 서로의 거울이자 한 덩어리의 실체와 그림자 같기도 했던 두 사람은 갈등의 끝에서 서로를 그림자로 둔 하나의 온전한 실체로 독립한다. 이 과정은 마치 애증 관계 연인의 이별 같기도 하고 고상한 성장통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쟁쟁한 배우들과 양면을 가진 각본, 다방향으로 치고 나오는 다채로운 액션까지. 흠잡을 곳 없이 매력적인 영화 <전,란>은 다가오는 10월 11일 넷플릭스를 통해 공개될 예정이며 10월 2일 제29회 부산국제영화제 개막식과 이어지는 영화제 기간 동안 스크린을 통해 만나볼 수 있다.
[상영시간]
10월 2일(수) 18:00 영화의전당 야외극장
10월 3일(목) 16:30 영화의전당 중극장
10월 4일(금) 12:30 CGV센텀시티 6관
Relative contents
-
- 디지털과 아날로그의 대결
인간은 끊임없이 기술을 발전시켜 왔다. 작은 도구부터 시작된 발명과 발견의 과정은 자동으로 계산을 해주고 이미지를 만들어주는 컴퓨팅 기술로 이어진다. 그 크기마저 작게 만들어 이제는 개개인이 작은 컴퓨터를 가지고 다닌다. 우리 모두가 가지고 있는 스마트폰도 모두 하나의 컴퓨터라고 할 수 있다. 여러 공장에서는 자동화가 도입되어 사람의 작업을 일부 대체하거나 사람이 기계의 작업을 보조하는 경우도 많아지고 있다.
이렇게 우리는 최첨단 기술을 다양하게 사용하고 있다. 최근에는 CHATGPT라는 인공지능이 개발되어 번역을 비롯한 다양한 질문들에 대해 답하기도 하고, 다양한 이미지나 그림을 AI가 만들어내기도 한다. 인공지능은 인터넷에 다양하게 퍼져있는 정보들을 이용해 최선의 답변을 하기도 하지만 그럴듯한 거짓말을 하기도 한다. 스스로 학습하여 내놓는 대답에 많은 사람들이 감탄을 하기도 하지만, 반대로 어디로 흘러갈지 모르는 인공지능의 성장이 인간에 반하는 쪽으로 진행되지 않을지 걱정하는 시각도 있다.
최첨단 인공지능 빌런의 등장
영화 <미션 임파서블: 데드 레코닝 PART ONE>(이하 <미션 임파서블>)에서는 새롭게 개발된 인공지능 엔티티가 등장한다. 영화 초반 비밀리에 잠수함에서 엔티티를 이용한 훈련을 하는 것을 보여주며 시작하는 영화는 인공지능이 스스로 판단하고 인간을 속이기 시작한다. 영화는 그 엔티티와 관련된 두 개의 열쇠와 침몰한 잠수함의 위치를 찾는 과정을 주인공 에단 헌트(톰 크루즈)를 통해 보여준다.
사실 <미션 임파서블>의 전체 시리즈에서는 신기한 최신 기술이 많이 등장한다. 감쪽같이 변장시키는 마스크를 비롯해 목소리 변조 기술 같은 최신 기술은 이 영화 시리즈의 트레이드 마크였다. 하지만 이번 7편에서는 그 최신 기술을 사용하지 못하게 된다. 인공지능인 엔티니가 가장 고도화된 최신 기술에서 탄생한 디지털 무기라고 할 수 있다. 그 디지털 무기에 대항하는 방법은 다시 과거의 아날로그 기술을 이용하는 것뿐이다. 그렇게 아날로그 기술과 맨몸으로 달리는 액션이 조화롭게 맞물리며 영화의 몰입도를 높인다.
영화 속에서 세계의 국가들은 엔티티를 소유해서 그 힘을 쓰길 원한다. 디지털을 이용한 거의 모든 것을 할 수 있게 만드는 엔티티는 그들의 입장에서는 강력한 무기다. 하지만 그 무기가 전 인류에게 재앙적인 영향을 줄 것이라는 것을 아는 에단은 유일하게 그 무기를 파괴하려고 한다. 그래서 이번 이야기 속에서 에단과 그의 동료들을 제외하면 모두가 엔티티를 소유하려고 한다. 엔티티를 찾으려는 목적자체는 같지만 궁극적인 이유는 완전히 다른 것이다.
새로운 인물의 등장과 에단 헌트의 활약
에단과 그의 동료 일사(레베카 퍼거슨), 루터(빙 레임스), 벤지(사이먼 페그)는 먼저 열쇠를 찾으려 하지만, 소매치기인 그레이스(헤일리 앳웰)가 중간에 끼면서 상황이 복잡해진다. 누군가의 의뢰를 받아 열쇠를 훔친 그레이스는 영화 중반까지 에단과 그의 팀마저 큰 위기에 빠트린다. 그레이스의 역할은 과거 일사가 처음 등장했을 때처럼 그녀가 믿을 수 있는 인물인지 아니면 적의 편인지 헷갈리게 하는 것이다. 일사라는 캐릭터가 처음 등장했을 때보다는 그 위압감이 적지만, 그레이스는 충분히 영화에 긴장감을 불어넣는다.
영화에서는 엔티티가 고용한 가브리엘(에사이 모레일스)이라는 인물이 등장한다. 그는 엔티티가 만들어내는 다양한 디지털 도움을 받아 엔티티가 자신의 뜻을 펼칠 수 있게 하는 행동대장 역할을 한다. 그는 두 열쇠를 이용해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유일하게 아는 사람으로 설정되어 있다. 그가 최악의 빌런이지만 그를 함부로 죽일 수 없도록 설정한 것이다. 가브리엘은 완전히 디지털 기술을 맹신하는 인물이다. 어쩌면 그가 따라야 할 신이라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반면 에단은 이번 영화에서 아날로그를 더 신뢰한다. 그래서 이번 이야기가 아날로그와 디지털의 대결같이 보이기도 한다. 특히나 에단 역을 맡은 톰 크루즈는 직접 다양한 액션장면을 연기했다. 그러니까 디지털 기술을 최대한 자제하고 실제로 아날로그 액션을 보여주려 노력한 것이다. 어려운 촬영과 위험한 액션 장면에도 아날로그 감성이 덧붙여져 있는 것이다. 그런 영화의 기술적인 연출 방법으로도 아날로그의 힘을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또 다른 관점에서 보면 자유의지론과 운명론의 대결처럼 보이기도 한다. 영화 속 엔티티는 세상의 모든 디지털 정보를 분석해 미래에 어떤 일이 벌어질지 예측할 수 있다. 그래서 엔티티의 행동대장인 가브리엘은 계속 내일 무슨 일이 일어날지 아주 자신 있게 말한다. 반면 에단은 그 예측대로 되지 않을 거라고 이야기한다. 그와 그의 팀은 자신들만의 자유의지로 운명론과 대결을 벌이는 것이다. 그런 관점에서 가브리엘과 에단의 대결을 보는 것도 무척이나 흥미롭다.
아날로그 액션과 디지털 빌런이 만나다
에단에게 임무를 주는 IMF의 국장 키트리지(헨리 체르니)는 과거 <미션 임파서블> 1편에서 국장으로 등장했던 인물이다. 그는 이번 영화에서 1편과 마찬가지로 에단을 믿지 못하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그가 어떤 인물인지 속단하게 만들지 않는 것도 이 영화가 가진 장점이다. 그가 결국 어떤 쪽을 믿고 지원하게 될지 지켜보는 것도 흥미롭다. 그 외에도 가브리엘과 함께 일하는 파리(폼 클레멘티프)는 위압적인 액션으로 에단을 위협하고, 브로커인 화이트 위도우(바네사 커비)도 가브리엘과 에단 사이에서 긴장감을 만들어낸다.
이번 <미션 임파서블>에서는 그레이스, 일사, 파리, 화이트 위도우 같이 여성 캐릭터들이 다양한 활약을 보여준다. 에단 헌트라는 인물이 모든 일의 중심에 있지만 4명의 여성 캐릭터들 역시 에단의 편 혹은 그 반대편에서 이야기 중심에 있다. 그레이스는 이번 영화에서 처음 등장해 다양한 추격장면을 보여준다. 비록 격투 훈련이 된 캐릭터는 아니지만 후반부 에단과 벌이는 탈출 액션이 훌륭하다. 일사와 파리는 격투능력이 무척 인상적인 캐릭터들이다. 그들은 자동차 추격, 사격, 근접 격투 등 종류를 가리지 않고 하드보일드한 액션을 보여준다. 화이트 위도우는 카리스마 넘치는 브로커로 등장해 인상적인 모습을 보여준다.
<미션 임파서블>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은 액션이다. 이번 영화에서도 다양한 액션 장면들이 등장하는데 시리즈의 다른 영화보다 한 액션 시퀀스가 무척 길게 구성되어 있다. 자동차 추격장면을 시작으로 추격액션과 근접격투, 그리고 마지막 달리는 기차에서 벌어지는 액션은 화면에서 눈을 떼지 못하게 한다. 특히나 에단이 달리는 기차에 올라타기 위해 절벽에서 오토바이를 타고 뛰어내리는 장면은 톰 크루즈가 직접 오토바이를 타고 점프를 뛰어 유명해진 장면이다. 그는 가장 위험한 장면인 이 스턴트를 가장 먼저 촬영했다. 혹시라도 있을 사고를 대비해 가장 먼저 이 장면을 촬영했다.
톰 크루즈의 <미션 임파서블>은 이제 마지막 한 편만을 남겨두고 있다. 이번 <미션 임파서블: 데드 레코닝>의 이야기가 마무리되지 않았기에 내년에 개봉할 두 번째 영화를 더욱 기다리게 만든다. 훌륭한 완성도와 촘촘한 첩보 이야기가 녹아있어 많은 관객들이 극장을 찾을 것 같다.
*영화의 스틸컷은 [다음 영화]에서 가져왔으며, 저작권은 영화사에 있습니다.
주간 영화이야기 뉴스레터!
구독하여 읽어보세요 :)
네이버 프리미엄 콘텐츠에서 제 뉴스레터를 구독하실 수 있어요.
https://contents.premium.naver.com/rabbitgumi/rabbitgumi2
https://taling.me/vod/view/53700
https://www.notion.so/Rabbitgumi-s-links-abbcc49e7c484d2aa727b6f4ccdb9e03?pvs=4
-
- 그러나 아무도 없었다
줄거리
교통사고를 당해 병원에 입원한 하루미. 그녀는 병원에서 만난 '레이코'라는 친절한 간호사와 가까이 지낸다.
퇴원이 다가오고 재활치료를 앞두고 있는 하루미에게 레이코는 일을 그만두려 하는데 함께 살면서 월세를 반씩 아끼는 게 어떻냐고 제안한다. 마침 일을 못 하게 된 처지의 하루미는 레이코를 룸메이트로 받아들인다.
어느 날인가부터 하루미는 이상한 일을 겪기 시작하면서 레이코를 의심하게 된다. 결국 하루미는 레이코를 미행하게 되는데...
감상포인트
1. 동물 죽는 장면 나오니 그런 장면 못 보는 분들은 미리 참고하시길.
2. 초반 전개가 약간 지루할 수 있으나, 일본식 이름은 나중에 헷갈릴 수 있으니 집중해야 한다.
3. 전형적인 일본식 전개라고 할까.
감상평
영화는 사건이 일어난 시점으로부터 과거로 돌아가 현재까지의 일을 짚는 액자형 구조의 서사다. 초반에는 굉장히 잔잔 바리로 흘러가기 때문에 조금 지루할 수도 있다. 책이든 영화든 일본 작품의 가장 큰 단점은 이름을 기억하기가 힘들다는 점이다. 가끔 책 읽다가 앞으로 돌려서 '아, 얘가 얘였지.'하고 확인해야 하는 일도 있는데, 이 영화는 잔잔하다 보니 얼굴도 딱 기억하기가 힘들다. 인물이 그리 많지도 않은데... 그냥 내가 집중을 안 한 걸 수도.
전형적인 일본식 전개다. 내가 생각하는 일본식 전개란, 차근차근 상황을 전개시키면서 아주 세세하게 복선을 깔고 마지막에 결말을 '얹는다'라는 느낌이다. 최근 작품들은 굉장히 스피드하게 전개한 후 마지막에 결말을 마지막에 뻥 '터트린다'라는 느낌인데 반해, 정적이고 느린 감이 있어서 아무래도 호불호가 많이 갈릴 것 같은 영화.
스피드한 것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예스러운 전개 방식 때문에 지루하다고 느낄 수도 있겠다. 하지만 나 같이 쌓음의 미학을 좋아하는 사람에게는 괜찮은 영화. 폭풍우가 몰아치기 직전의 고요한 바다처럼 음산한 기운을 가득 품고는 있지만, 절대 거세게 몰아치지는 않는다.
이런 스타일은 특히 도서를 원작으로 하는 작품에서 도드라지는 것 같다. 책이 궁금해서 찾아봤는데 한국에는 정식 출간을 하지 않은 모양이다. 아무리 찾아도 없다. 영화 자체는 2014년도 작품이긴 한데, 아무래도 원작 소설은 그것보다 훨씬 더 오래되지 않았을까 싶다. 메모리 카드 나오는 것 보고 굉장히 반가웠던... ㅋㅋㅋ
*여기부터는 스포일러를 포함한 글입니다.*
영화는 '스릴러'에서 '공포'로 전환되는 지점이 확실하다. 바로 하루미가 거울을 볼 때다. 레이코의 행동이 단순히 집착이라고 생각했다가, 알고 보니 이중인격자였다는 걸 알게 되고, 마지막에 그 이중인격자 즉, 레이코와 마리가 바로 나 자신이라는 걸 알았을 때.
약간 아쉬웠던 점은 이렇게 몇 번 의심을 하게 만든 후에 중요한 사실을 밝히고 나니 충격이 좀 덜하다는 느낌이다. 내용이 꺾이는 지점이 한두 군데가 아니다 보니 긴장감이 오히려 느슨해지는 감이 있다. 그래서 마지막에 진실을 알았을 때도 뻔하다는 느낌을 준다. 그건 좀 아쉬웠다. 같은 이야기라도 글자로 읽었을 때와 영상으로 시청할 때는 굉장히 다르다. 원작에 너무 충실했던 건 아닌가, 조금 각색했으면 좋았을걸, 하는 아쉬움이 있다.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아마 원작이 다루는 사회적 문제를 그대로 가져오고 싶어서 원작을 파괴하지 않은 것 같다.
사회적으로 보호받지 못하고 학대 당하던 하루미는 자신을 지키기 위해 또 다른 자아를 형성한다. 한 명은 자신을 방어하기 위해 이야기를 나누는 친구로 나타난 레이코, 한 명은 자신을 지키기 위해 타인을 공격하는 마리. 극단적으로 치우친 마리라는 자아는 하루미를 넘어 에리에게까지 손을 뻗는다.
"괴로웠지? 도망칠 수 있는 방법 알려줄게.
자신에게 다른 이름을 하나 지어 줘."
"그럼, 마리."
"그래, 마리라는 이름을 줄게."
언뜻 보면 뜬금없다는 생각이 들 수도 있다. 에리라는 여학생이 갑자기 튀어나와서 하루미에게 '마리'라는 자아를 부여받는 듯한 장면은 특히 그렇다. 하지만 하루미가 고통받는 상황에서 벗어나기 위해 엄마를 죽인 지 몇 년이 지났음에도 사회는 여전히 변하지 않았다.
그들 곁에는 아무도 없었다.
어린 학생들을 보호하기 위한 법의 울타리는 무너진 채로, 어떤 어른도 이런 상황에 대해 책임지지 않은 채로 하루미와 에리의 지옥 같은 나날들은 반복되고 있었다. 영화는 이런 사회적 문제를 적나라하게 짚어내며 노골적으로 비판한다.
동시에 어린 학생을 저지한 것이 경찰이 아닌 하루미라는 사실이 안타까움을 자아낸다. 다른 누구도 아닌, 에리에게 마리라는 자아를 주었던 하루미 자신이 말이다. 마리는 에리가 자유로워지길 바랐다. 하지만 하루미와 레이코는 그것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은연중에 느끼고 있었던 것이다.
어쩌면 어머니를 죽인 것에 대한 죄책감이었을지도 모른다. 지옥 같은 삶을 견디기 위해 만들어낸 자신의 자아가 했던 행동을 자기 자신이 부정해야 하는 아이러니함. 잘했다고도, 잘못했다고도 할 수 없는 이 상황에 마음이 쓰라렸다.
손금이 바뀌면 운명이 바뀐다고 하던가. 에리를 막아서며 남은 칼자국은 하루미가 받았던 상처 때문에 레이코와 마리라는 인격이 새로이 만들어졌다는 것에 대한 상징이다. 더불어 이제는 이 칼자국을 보며 자신이 누구인지 잊지 않겠다는 다짐이기도 하다.
"다행이에요. 당신은 제 상상이 아니라서."
영화 내내 하루미를 쫓아다니는 구도는 처음 교통사고가 날 때부터 하루미 안에 있는 또 다른 인격들을 다 보았다고 말한다. 그게 사실인지 그냥 로맨틱하려고 하는 말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어쨌거나 그 말은 하루미에게 남은 아픔의 흔적들을 그는 알아보았다는 뜻이다. 자신을 알아봐 주고 상처를 이해해 주는 사람을 만난 하루미는 이제 다른 인격들에게서 벗어날 수 있다. 혼자가 아니니까.
"하지만 그 애는 아직도 에리라고 불리기 싫어해요. 자기 이름인데도."
"그렇겠죠. 그놈이 나쁜 짓을 하면서 계속 귀에 속삭였을 테니까요."
다만 영화는 여전히 이런 사회 속에 피해자가 남아있음을 상기시킨다. 하루미는 기적적으로 누군가를 만나 치유되었지만, 에리는 그렇지 못한 상황이다. 영화가 마냥 해피엔딩으로만 끝난 게 아니라, 이런 여지를 주었다는 점에서 높이 평가하고 싶다.
-
- 우주복을 벗고 더 큰 우주로
안녕하세요~! 파노라마에서 첫번쨰로 작성하는 영화 리뷰 입니다~!
처음 리뷰할 영화는 원더입니다 줄거리부터 만나보실까요?
1. 원더 줄거리
‘원더’는 안면기형장애를 가지고 있는 어기와, 어기의 주변 인물들을 다룬 이야기이다. 5학년이 되자 어기의 부모님은 어기를 학교에 보내기로 한다. 어기는 홈스쿨링 대신 처음으로 학교에 가게 된다. 어기의 가족들은 어기의 외모에 대해서 어기가 상처를 받지 않도록 노력한다. 하지만 학교는 아니었다. 친구들은 정말 다양한 시각으로 어기를 바라보았으며, 그 상황에서 어기는 상처와 행복을 받는다.
2. 원더를 보고 나서 - 플립과 원더의 공통점과 차이점
줄거리는 원더의 주인공인 어기를 중심으로 요약하였지만, 원더에서는 어기의 상황만을 다루지 않는다. 나는 비슷하게 연출한‘플립’이라는 영화가 떠올라‘플립’과‘원더’를 비교하며 글을 작성해보았다.
첫번째. 영화 플립과 원더의 공통점은 바로 화자가 한명이 아니라는 것이다.
원더에서는 이름과 나레이션을 통해 화자의 전환을 보여준다. 플립도 마찬가지로 화자가 바뀔때마다 나레이션을 하는 인물이 바뀐다. 플립은 두 사람을 교차적으로, 원더는 여러명의 시선을 시간의 흐름에 따라 나누어서 보여준다. 플립에서는 줄리와 브라이스의 갈등상황을 보여줄 때 하나의 상황을 두 사람의 시선으로 보여주는 연출을 사용하여 인물의 감정에 관객들이 따라갈 수 있도록 연출하였다. 원더는 처음에 어기로 시작해서, 어기 – 비아 – 미란다 – 잭 순서로 인물이 이야기의 시간의 흐름에 따라 전환된다. 플립은 둘의 상황에 모두 공감할 수 있었다면 원더는 조금 다르다고 생각했다. 원더의 인물변화는 플립처럼 갈등 상황에서 주인공이 아닌 타자의 시선으로 한번 더 보는 것에 초점을 맞추기보다는, 어기를 다른사람들보다 특별하게 보이지 않도록 하는데 있다고 생각한다. 어기는 학교에 간 첫날 친구들에게 외모로 놀림을 받았다. 슬퍼하는 어기에게 부모님은 위로를 해주며 어기의 상황이 마무리된다. 만약 어기가 가진 콤플렉스를 부각시키게 연출하고 싶었다면, 바로 다음 씬에서 어기가 부모님의 위로로 자신감을 얻게 되고 용기있게 자신의 콤플렉스를 드러나는 씬으로 구성했을 것이다. 하지만 원더는 그렇지 않다. 부모님이 어기에게 위로를 해주는 모습 뒤로 카메라는 누나인 비아에게 초점을 맞춘다. 어기와 같이 학교 첫날이었던 비아도 힘든 하루를 보낸 것을 보여준다. 왜냐하면 비아의 하나뿐인 친구인 미란다는 갑자기 비아를 무시했기 때문이다. 어기와 비아의 씬 연결을 통해 영화가 보여주는 것은 어기를 마냥 측은지심의 시선으로 보지 말라는 신호라고 생각한다. 모든 사람들에게 힘든 부분은 하나씩 있다. 물론 영화 안에서 어기가 비아에게 외모로 놀림받은 적이 있냐고 질문한 뒤 비아가 아니라고 대답하는 장면이 있지만, 서로 힘들었던 부분이 달랐을 뿐이다. 또, 원더는 플립처럼 같은 상황을 두 번 보여주지 않는다. 분명히 갈등 상황이 있음에도 갈등 상황을 부각시키는 것이 아닌 인물의 마음을 나레이션을 통해 그대로 보여준다. 잭이 왜 다른 친구들에게 어기를 뒷담화 했는지의 사정은 보여주지 않는다. 하지만 잭이 얼마나 어기를 소중히 여기고 있는지를 보여주고, 잭의 시선으로 어기에게 사과를 구하는 모습을 보여주며 잭의 마음을 관객들에게 전달한다.
두 번째. 영화의 주제를 전달하는 어른이 있다는 것이다.
플립에서는 브라이스의 할아버지를 통해 이야기의 주제를 전달한다. 그리고 원더에서는 부모님, 학교 선생님들과 교장선생님인 터쉬만을 통해 이야기의 주제를 전달한다. 할아버지와 터쉬만의 공통점은 인물들의 편견에 대해 일침을 가하는 것이다. 플립에서는 줄리에 대해 브라이스가 가지고 있던 편견에 대해서 얘기를 해준다. 마찬가지로 원더는 어기를 괴롭히던 친구의 부모님이 가지고 있던 편견에 대해서 얘기한다.
플립과 원더는 화자를 여러명으로 설정하여 인물의 마음을 각각의 시선에서 공감할 수 있도록 했다. 원더의 경우 화자가 여러명이 아니었다면, 보통의 영화처럼 어기를 기준으로 악과 선으로 나누어 그려졌을 것이다. 하지만 어기도 다른 사람들과 똑같고, 놀립받거나 과도하게 배려받을 존재가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었다. 영화는 인물을 어기를 위해서만 존재하는 인물로 만들지 않는다.
원더 명대사
- 그 사람이 누군지 알고싶을 때는 그냥 바라보면 된다 - 어기 풀먼
- You really are a wonder. - 이자벨
- 위대한 사람은 센 사람이 아니라 다른 이들에게 싸울 용기를 불어 넣는 사람이다 - 터쉬만
-> 원더 포스터
파노라마_이가애 에디터
-
- 설계자 | 자기 설계도마저 잃어버린 설계자
*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의뢰받은 청부 살인을 사고사로 조작하는 설계자 ‘영일’(강동원). 그의 치밀한 설계가 조력자 ‘재키’(이미숙), ‘월천’(이현욱), ‘점만’(탕준상)을 만나면 경찰도, 검찰도, 그 누구도 사고가 사실 철저한 계획 살인임을 알아내지 못한다. 어느 날, 영일은 새로운 의뢰를 받는다. 차기 검찰총장 후보인 '주성직'(김홍파)을 죽여달라는 주성직의 딸 '주영선'(정은채)의 의뢰. 영일과 팀원은 여러 시나리오를 검토하며 신중히 설계에 돌입한다.
그런데 막상 작전을 개시하자마자 예기치 못한 변수에 계획이 흔들리고, 영일은 국내 최고의 설계자 '청소부'가 움직였음을 눈치챈다. 과거 '청소부'에게 동생 '짝눈이'(이종석)를 잃은 바 있는 영일. 이제 그는 '양경진'(김신록)을 필두로 한 경찰의 수사를 피해 의뢰와 복수, 두 마리 토끼를 동시에 잡을 설계도를 그리기 시작한다.
설계자가 설계도를 못 그려
리뷰 작성법을 배울 때도, 기사를 작성할 때도, 자기소개서나 논문을 쓸 때도 항상 듣는 말이 있다. "설계도를 먼저 그려라." 글감이 될 주제를 정했다면 그와 관련된 모든 아이디어를 먼저 펼쳐 놓고, 글의 순서를 짜라. 이때 전체 흐름에서 불필요한 아이디어가 있다면, 아무리 아까워도 과감하게 버려라. 그래야만 작가의 의도가 하나의 글로 응축되어서 일관성 있게 독자에게 전달될 테니까.
이요섭 감독의 신작 <설계자>는 이 가르침을 정확히 역행한다. 여러 아이디어는 분명 눈길을 끈다. 영일과 청소부 중 누가 더 그럴듯하게 사고를 꾸미는지를 추적하는 범죄극은 긴장감을 조성하기에 충분하다. 이에 더해 사고를 설계할 줄 알지만 정작 자기 팀원의 사고사를 막지 못한 설계자의 자괴감을 지켜보는 심리극도 흥미롭다.
하지만 정작 그들을 어떻게 엮어낼 지에 대한 고민은 찾아보기 힘들다. 그 결과 <설계자>는 범죄극과 심리극 사이에서 중심을 못 잡고 흔들린다. 서로가 서로의 영역에 개입하면서 역으로 시너지 효과를 낸다. 배우들의 열연이 헛되이 느껴질 정도다. 자연히 '믿고 있는 진실을 언제나 의심해야 한다'는 사회적 메시지도 덩달아 빛을 보지 못한다.
자격미달 범죄극
<설계자>라는 제목을 보면 떠오르는 작품이 있다. 조의석 감독의 <감시자들>이다. 둘은 내용도 비슷하다. 주인공이 경찰과 범죄자라는 차이는 있지만, 아직 세상에 드러나지 않은 특정 팀의 작전과 역할을 조명한다는 큰 줄기가 같다. 실제로 <감시자들>은 상공에서 도시를 훑는 듯한 신선한 연출로 호평받았다. 현장 팀장, 미행 전문가, CCTV 전문가, 천부적인 기억력을 지닌 요원이 합을 맞춘 깔끔한 액션을 보는 재미도 상당했다.
안타깝게도 <감시자들>의 미덕까지는 닮지 못했다. 일단 '설계자'라는 콘셉트의 잠재력을 제대로 활용하지 못한다. 초반부까지는 나름대로 재기 있는 상황이 연출된다. 타깃을 어떤 상황으로 유도하고, 어떤 방식으로 살인을 저지르고, 어떻게 도주하며 증거를 지울 것인지 그 얼개를 대략적으로나마 보여준다.
하지만 중반부부터는 설계된 사고를 연이어 제시할 뿐, 그 사고들의 설계도는 전혀 보여주지 않는다. 필요에 따라 자살이나 교통사고를 끌고 온 뒤 알고 보니 전부 청소부의 설계였다는 식의 무책임한 전개가 이어진다. 그러다 보니 좀처럼 긴장감이 깃들지 않는다. 누가 그 사고를 어떻게 계획한 것인지를 추적하는 것도 범죄극으로서의 재미일 수 있었는데, 그 가능성을 스스로 저버린다.
이에 더해 팀으로서 움직이는 재미도 거의 찾아볼 수 없다. 리더인 영일과 변장 담당자인 월천 외에는 각자 전문 영역이 뚜렷하게 드러나지 않는다. 경험의 유무에 따라 맡는 역할이 달라지지만, 정작 경험이 가장 많아서 신뢰를 받는 재키는 가장 중요한 작전을 망치는 데 일조한다. 심지어 후반부에 가서는 굳이 팀으로 움직일 이유도 없어 보인다. 영일 혼자서도 온갖 사고를 꾸며내는데 통달한 모습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너무 얕은 심리 스릴러
그렇다고 해서 설계자의 심리를 깊이 파고드는 것도 아니다. 영일은 분노와 복수심에 사로잡힌 인물이다. 누구보다도 지키고 싶었던 동생 짝눈이가 청소부의 설계로 인해 목숨을 잃어햐 했기 때문. 그래서 그는 청소부를 찾아내기 위해 의심스러운 사고를 항상 추적한다. 이는 자기 설계가 또 한 번 무너지고 점만이 교통사고로 목숨을 잃자 그가 이성적인 판단을 하지 못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하지만 영화는 영일과 짝눈이의 관계를 납득시키지 못한다. 그들의 관계는 표면적으로만 제시된다. 짝눈이는 영일에게 그 무엇보다도 소중한 가족이다. 설계자 일을 할수록 세상사와 인간에 대한 신뢰를 잃은 영일에게도 짝눈이는 유일하게 심적으로 안정감을 주는 존재다. 그는 모르핀 후유증으로 인해 고통받는 재키를 꾸준히 보살필 정도로 심성이 착하니까.
그런데 이 관계는 너무 단순하게 묘사된다. 영일과 짝눈이 사이에 있었던 두세 가지 사건은 플래시백으로 되풀이될 뿐이다. 그나마 재키가 짝눈이를 그리워하는 대사를 몇몇 더하지만, 그 내용마저도 러닝타임 내내 도돌이표다. 자연히 영일에게 짝눈이의 죽음이 그토록 큰 아픔인지 공감하기 어렵다. 그 결과 심리극으로 급전환하는 중반부부터 영화는 급격히 서스펜스를 잃고 템포가 늘어진다.
공중에서 사라진 메시지
물론 <설계자>의 지향점을 유추할 단서는 있다. 마지막 플래시백에 따르면 영일과 짝눈이는 단순한 가족 관계가 아니다. 짝눈이는 설계자 일을 그만두려 한다. 일을 할수록 의심과 편집증이 깊어지는 영일을 보면서 인간적으로 살고 싶은 욕구가 깊어졌기 때문. 영일은 그런 짝눈이를 이해하지 못한다. 이는 삶의 태도에 대한 이야기다. 괴롭고 불편해도 의심을 거듭하며 진실을 추구할지, 아니면 진실에 눈 감더라도 편안한 삶을 누릴지.
이렇게 보면 극 중 다른 캐릭터는 영일과 짝눈이의 심리 상태를 사회적 차원으로 확대하는 장치다. '하우저'(이동휘)를 필두로 한 유튜버가 대표적이다. 그들은 영일의 설계가 절반 정도 성공한 주성직 사망 사고와 관련해 수많은 정보와 이미지를 만들어 노출시키고, 무엇이 진실인지 알 수 없는 회색 지대를 만든다. 그 안에서 배신자와 진실을 찾아낼지 말지는 각자의 선택이다. 서로 다른 선택을 한 영일과 월천이 충돌하듯이.
그 연장선상에서 주영선은 관객의 시점을 대표한다. 그녀는 아버지 주성직의 죽음과 관련해 언론의 집요한 추적에 시달리며 불안해한다. 또 무엇이 진실인지 좀처럼 확신을 갖지 못한다. 미디어의 과잉 이미지가 빚어낸 현대 사회의 확증편향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인물인 셈이다. 이를 통해 <설계자>는 '진실은 있지만, 그것을 숨기려는 이들이 존재하고, 진실을 알기 위해 그들과 끝까지 싸워야 한다'는 메시지를 전하려는 듯하다.
다만 여러 단서 간의 연관성이 보이지 않는 게 문제다. 짝눈이는 흩어져 있는 모든 캐릭터와 플롯을 한 데 이어 줄 유일한 연결고리다. 그런데 정작 그의 서사가 단편적으로 비치고 있으니 <설계자>의 여러 아이디어와 메시지는 하나의 이야기로 응축될 수가 없다. 하우저, 주영선을 비롯해 보험사 직원들이 자주 등장하는 지점과 영화가 급격히 동력을 잃는 시점이 겹치는 게 우연이 아닌 이유다.
청소부는 대체 누군데
이 모든 문제는 메인 빌런인 청소부를 활용하는 방식에 집약되어 있다. 청소부의 정체와 관련된 반전은 <설계자>의 메시지에 힘을 더한다. 모든 계획이 실패로 돌아가자 영일은 청소부가 사실 존재하지 않았으며 자기는 그저 망상에 빠졌을 뿐이라고 좌절한다. 그렇게 그는 모든 사고를 의심하려는 노력을 그만둔다. 바로 그 순간 만족스러워하는 청소부의 정체가 드러나며, 영화는 영일처럼 포기해서는 안 된다고 말한다.
최근 작품 중에는 <댓글부대>와 유사한 그림인 셈이다. 반전을 통해 영화와 현실의 경계를 순간적으로 무너뜨리고, 사회적인 메시지에 힘을 더한다. 그런데 이 반전은 성과에 비해 대가가 너무 크다. <댓글부대>는 반전을 준 후에 분량이 충분하지는 않아도 관객의 의문을 최소한 해소하려는 노력은 보여줬다.
반면에 <설계자>는 반전을 납득할 수 있는 최소한의 장치도 두지 않았다. 청소부는 영일을 심리적으로 완전히 무너뜨렸지만, 영화만 보면 청소부가 어떻게 그 설계를 성공시켰는지 전혀 알 수가 없다. 반전을 위한 반전일 뿐, 러닝타임 내내 품은 의문에 대해 답을 얻을 수 없다. 그러다 보니 범죄극으로서도, 심리극으로서도 완결성을 확보하지 못한다. 그렇게 <설계자>는 제목이 무색하게도 마지막까지 설계도를 찾지 못했다.
Dreadful 끔찍한
아이디어만으로는 건물을 못 올려
-
- 불안하고, 흐리고, 타오르지 못한 청춘들
최근 스크린은 다시금 '청춘'이라는 키워드를 소환하고 있다. 네오 소라감독의 <해피엔드>부터 안소니 첸의 <브레이킹 아이스>, 그리고 <한국이 싫어서>에 이르기까지, 국적도 언어도 다르지만 이들 작품은 기묘한 공명으로 연결된다.
각기 다른 국적의 젊은 감독들이 포착한 동시대 청춘의 초상은 명확한 해답 없이 부유하는 시대의 공기 속에서 저마다의 불안과 혼란을 힘겹게 감내하는 얼굴들이다.
답답한 현실, 불투명한 미래, 그리고 스멀스멀 피어오르는 존재론적 공포. 이들의 서사는 다르지만, 정서는 맞닿아 있다.어디론가 떠나고 싶지만, 어디로 가야 할지 알 수 없는 막막함. 어쩌면 지금 우리 시대 청춘의 자화상일지도 모른다.
이러한 맥락에서, "청춘이라는 단어를 싫어한다"고 공언했던 이창동 감독의 <버닝>(2018)을 다시 보았다.
감독은 '푸른 봄'이라는 단어가 내포한 통속적인 낭만성을 일찌감치 거둬낸다.
영화 속 세 젊은이, 종수, 해미, 그리고 벤은 따스함이나 찬란함과는 거리가 먼, 미세먼지처럼 부옇고 쾌쾌한 현실 속에 위태롭게 존재한다.
이들의 삶은 무언가를 향한 갈망으로 채워져 있지만, 그 대상의 실체도, 방향 감각도 불분명한 욕망들 사이에서 위태롭게 휘청인다.<버닝>을 마주하는 경험은 종종 불쾌하고 껄끄럽다. 감독은 인물들 내면에 깊숙이 자리한, 차마 말할 수 없거나 혹은 말하고 싶지 않은 감정의 응어리들을 집요하게 파고든다. 특히 영화는 현실의 무게와 불가해한 세계 앞에서 무력한 개인의 모습을 선명하게 각인시킨다.
예컨대, 파주, 북한과 맞닿은 접경 지역의 노을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해미의 춤 장면을 떠올려보자. 그녀는 아프리카 부시맨의 '그레이트 헝거' 춤을 추며 삶의 의미를 갈망하는 듯하지만, 그 몸짓은 공허한 하늘 아래 한없이 작고 위태로워 보인다.
카메라는 해질녘의 붉은 스산한 빛 속에서 반라의 몸으로 춤추는 해미의 모습을 무심한 듯 담아내며, 그녀의 존재가 언제든 사라질 수 있는 덧없음, 혹은 이미 사라지고 있는 중임을 암시한다.
이 장면은 아름답지만 동시에 불안하며, 청춘의 열망이 실체 없는 허공을 향해 흩어지는 듯한 인상을 남기는 것 같다.벤이 종수에게 폐비닐하우스를 태우는 자신의 은밀한 취미를 고백하는 장면 역시 마찬가지다.
물질적으로 모든 것을 가졌지만 정작 삶의 의미를 찾지 못해 주기적으로 비닐하우스를 '태운다'는 벤의 말은, 종수에게는 해미의 실종과 연결되는 섬뜩한 암시로 다가온다.
여기서 비닐하우스는 사회적으로 무가치하다고 여겨지는 것들, 혹은 해미처럼 연고 없고 주목받지 못하는 존재들의 은유로 읽힌다.
벤에게는 그저 유희에 불과한 '태움'의 행위가, 누군가에게는 생존과 직결된 절박함일 수 있다는 자본주의 사회의 비정한 단면과 계급적 박탈감을 서늘하게 드러낸다.
카메라는 벤의 말에 동요하는 종수의 불안한 눈빛과 대비되는 벤의 무심하고 여유로운 표정을 교차시키며, 관객으로 하여금 현실의 부조리와 그 안에서 느끼는 개인의 무력감을 생생히 체험하게 한다.혜미는 질문도, 판단도 유보한 채 홀연히 사라진다.
그녀가 키우던 고양이 '보일'처럼, 존재했는지조차 불분명한 흔적만을 남긴 채. 종수는 그 이유를 알지 못한 채, 혹은 알기를 거부한 채 살아간다.
그는 무언가를 간절히 바란 적도, 제대로 분노해 본 적도 없는 듯, 깊은 무기력에 잠식되어 있다.
결국 종수의 내면에서는 어떤 감정도 쉽사리 타오르지 못한다. 해미의 사라진 비닐하우스처럼, 청춘 또한 실체 없이 연기처럼 스러져가는 듯하다.지금의 청춘은 과연 '버닝'할 수 있을까.
만약 그렇다면 무엇을, 어떻게, 그리고 누구를 향해 태워야 하는가.
<버닝>의 마지막, 종수가 벤의 포르쉐와 자신의 옷가지를 불태우는 장면은 처절하지만 모호한 해답을 제시한다.
그것은 분노의 표출인가, 자기 파괴인가, 아니면 무력한 현실에 대한 절망적인 몸부림인가.어쩌면 지금의 청춘은, 이창동 감독이 포착한 것처럼, 붉고 노랗게 타오르다 이내 서늘하게 파래지며 스러지는 저녁 하늘처럼, 찬란하게 '타오르기'보다는 소리 없이 '사라지고 싶은' 쪽에 더 가까울지도 모른다. 그리고 이것이 바로 우리가 마주한 시대의 가장 정직한 감각이자, <버닝>이 던지는 불편하지만 외면할 수 없는 질문의 무게일 것이다. 이 영화는 불안하고, 흐리고, 끝내 타오르지 못한 청춘들을 위한 쓸쓸한 진혼곡과 같다
-
- [JIMFF 인터뷰] 영화를 향한 그의 사적인 고백, 영화 <리퀘스트> 최인규 감독 인터뷰
영화 <고백할 수 없는>으로 데뷔한 최인규 감독의 두 번째 작품이 제20회 제천국제음악영화제를 찾았습니다. <리퀘스트>는 영화를 만들고 싶은 LP 바 사장님 '준호'의 가게에서 벌어지는 이야기입니다. 최인규 감독은 영화를 향한 애정으로 가득한 영화인이면서, 실제로 망원동에서 영화에 등장하는 동명의 LP 바를 운영 중인 사장님인데요. 자연스레 주인공 '준호'와 겹쳐지는 그는 현실과 판타지를 오가는 구성 속에 자전적인 경험을 녹여 사적인 고백을 전합니다. 제천예술의전당에서 최인규 감독을 만나 그의 두 번째 장편 영화에 관한 내밀한 이야기를 들어 보았습니다.
리퀘스트
The Request
Summary
'준호'는 손님 '동석'에게 연주 얘기를 꺼낸다. 전 여친, '수정'과 판박이라 첫눈에 반했지만, 갑자기 사라져 버렸다고 말한다. 며칠 뒤, 경찰이 찾아와 '연주'가 바 앞에서 죽었다며, 자신을 심문했다고도 덧붙인다. 동석은 실은 '연주'가 여친이고, 오늘이 49재라고 '준호'에게 털어놓는다. (출처: 제천국제음악영화제)
Cast
감독: 최인규
출연: 박호산, 송재림, 고은민
실제로 ‘더 파인트’라는 LP 바를 운영하고 계신 것으로 알고 있어요. ‘준호’도 영화인을 꿈꾸며 바를 운영하고, 극 중에는 <리퀘스트>라는 동명의 시나리오를 읽는 장면도 나오죠. 감독님을 연상하지 않을 수 없는 인물과 배경인데요. 어떻게 이 영화를 시작하게 되셨나요?
'리퀘스트'는 중의적인 표현이에요. 이 영화가 '정시내의 영화 음악'을 신청하는(request) 어떤 묘령의 여인에 관한 이야기잖아요. 이것이 겉으로 보이는 텍스트라면, 서브 텍스트는 사실 제게 묻는 질문인 거죠.
20년간 영화 이력을 쌓아왔지만, 처음부터 영화를 한 건 아니었어요. 광고 회사에 있다가 뒤늦게 영화를 하고 싶어서 유학을 다녀왔어요. 다녀와서 프로듀서나 연출 일을 하다가 9년 전에 <고백할 수 없는>이라는 작품을 만들었고요. 그런데 생각만큼 자주 작품을 하지 못하더라고요. 하고 싶은 이야기를 관객들에게 전하지 못하는 게 늘 아쉬움과 회한으로 남았어요. 그런데 나이는 자꾸 먹고, 시간은 자꾸만 흘러가잖아요. 한 번쯤은 저 자신에게 질문해 보고 싶은 마음에, 지나간 것에 대한 아쉬움과 회한에 관한 이 영화를 만들게 됐어요.
솔직히 말하면 개인적인 이야기를 영화에 담는 게 부끄럽기도 해요. 영화에도 "너무 사적이고 작은 이야기 아닐까요?"라는 대사가 나오죠. 실제로 시나리오를 쓰면서 고민했던 부분이에요. 그래도 자랑스럽지 않더라도 어찌 됐든 한 번은 내 이야기를 해보자고 마음을 먹고, <리퀘스트>를 썼어요.
LP 바에서 <리퀘스트> 시나리오를 쓰는 '준호'처럼, 감독님께서도 LP 바에서 이번 이야기를 쓰셨나요?
네, 사람들이 없을 때 썼습니다. 사실 제 가게가 영화인들의 아지트예요. 시나리오를 쓰다가도 영화인들이 가게를 찾아주고 그랬죠. 그래서 이번 작품에 가게 손님들로 와주신 분들이 스태프로 많이 참여했어요. 독립 영화에서 쉽게 쓸 수 없을 만큼 뛰어난 스태프들인데, 많이 도와주셨어요. 그래서 촬영이 정말 잘 나왔습니다.
전작 <고백할 수 없는>이 사회의 축소판인 집을 중심으로 하는 영화였는데, 이번에도 LP 바라는 한정된 공간 안에서의 이야기를 다루셨어요. 공간을 중심으로 하는 영화를 계속해서 만들고 계시네요.
한정된 공간은 심리적인 스펙터클을 끌어내는 데 좋은 도구가 되어준다고 생각해요. 그렇지만 예산 문제도 고려하지 않을 수 없어요. 야외로 나가는 순간, 촬영 회차가 늘어날 수밖에 없거든요. 그런데 사실은 로드무비를 굉장히 좋아해요. 다음 작품은 꼭 밖에서 찍어보려고 해요.
평소 호기심이나 관찰을 통해 작품의 영감을 많이 얻으신다고 알고 있습니다. 이번 작품에도 호기심과 관찰이 발동된 지점이 있었나요?
물론 호기심과 관찰도 있었겠지만, 이번에는 자전적인 이야기에 상상을 더하려고 했어요. 바에서 노트북을 펴놓고 시나리오를 쓰면서 상상을 한 번 해보는 거죠. '이 시간에 묘령의 여인이 바에 온다면?' 이런 상상들을 섞어서 이번 작품을 완성했어요.
현재와 과거, 인물과 인물들이 마구 섞이는 구성이 정말 인상적인데요. 그 과정에서 피어나는 미스터리도 흥미롭습니다.
전형적인 느낌이 들지 않도록 구성 간의 경계를 명확하게 하지 않으려고 했어요. 예를 들어 장면을 전환할 때, 잠에서 깨어나는 모습이나 확장된 동공을 잡는 등의 표현들이 많잖아요. 이런 것들은 관객에게 영화를 이해하는 일종의 가이드라인이 되어주기도 하지만, 저는 관객에게 해석의 자유를 넘겨주고 싶었어요.
그래서 이 영화에서는 현관에 매달린 종을 이용해서 전환한다든지, 사운드나 시선에 변주를 준다든지, 패닝을 자주 이용했어요. 수평의 움직임으로 시간과 지나간 것들에 대한 회한을 이야기하려고 했던 면도 있고요. 하지만 제 손을 떠나면 퍼즐을 가지고 노는 건 언제나 관객들의 몫이에요.
같은 배우들이 다른 배역으로 계속 등장하며 미스터리를 강화하기도 합니다. 1인 3역의 고은민 배우, 1인 2역의 송재림 배우, 그리고 주변인에서 사건의 중심으로 점점 스며드는 박호산 배우까지, 이 배우들과는 어떻게 함께하게 되셨나요?
캐스팅에 시간이 꽤 걸렸어요. '준호'는 40대 중반의 일상을 잘 표현할 수 있는 배우가 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몇 명을 후보에 두고 있었는데, 박호산 배우가 시나리오를 좋게 보시고 연락을 주셨죠. 송재림 배우는 박호산 배우와 상반된 이미지인 사람, 그리고 일상보다는 판타지가 맞는 배우를 찾으려고 했어요. '은영', '연주', '수정' 역을 표현했던 고은민 배우는 <연애 빠진 로맨스>에서 우연히 봤는데, 괜찮아서 딱 찍었어요. 정말 바에 앉아서 혼술할 수 있는 사람일 거 같더라고요. 고은민 배우에게는 1인 3역을 계산하면서 연기하지 말고, 장면들을 편하게 연기했으면 좋겠다고 말씀드렸어요. 대신 판타지인 장면은 일부러 대사를 문어체로 쓰는 식으로 변화를 주었죠.
미스터리가 중심이 되지만, <리퀘스트>의 큰 줄기를 이루는 것은 사랑 이야기예요. 이 부분이 전작과는 완전히 다른 부분이라고 느껴지는데요.
제가 러브 스토리를 대단히 좋아하는 편은 아니에요. 장르 영화를 더 좋아하죠. 그러나 인간의 감정을 가장 은밀하게 담을 수 있는 건 결국 멜로라는 생각이 들어요. 그래도 진한 사랑 이야기로는 가지 않으려고 했어요. 제가 그런 걸 못하는 성향이기도 하지만, 전면적으로 다루지 않고 관객에게 오로지 맡겨야만 그들이 느끼는 감정의 진폭이 더 커지는 것 같아요.
극 중에 <인생은 아름다워>, <클로저> 등의 명작들도 많이 등장합니다. 전형성을 탈피하려는 시도 속에도 전형을 만든 명작들을 향한 감독님의 존경심이 엿보여요.
영화를 배우고 시나리오를 쓰면서 제게 영감을 주었던 영화들을 오마주하고 싶었어요. 음악도 그렇고요. 마이클 잭슨이나 양희은 LP 앨범도 같은 맥락에서 등장시킨 거죠. 결국엔 <리퀘스트>도 지나간 영화들의 영향을 받아 탄생한 영화니까요. 영화를 향한 일종의 고백이에요.
이 작품은 회한과 새 출발을 이야기하지만, 장면 곳곳에 우리 일상에 늘 존재하는 아름다운 순간을 향한 추앙이 담겨 있어요. 감독님께서 생각하는 인생이 가장 아름다운 순간이 궁금해집니다.
영화인으로서 관객과 만나는 것, 그게 진짜 아름다운 것 같아요. 영화는 제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관객에게 보여주는 것이잖아요. 극 중에서 '준호'가 특별한 순간이라면서 사진을 찍어 기억하는 것처럼, 관객에게도 제 영화를 통해 특별한 순간을 경험했다면 그것으로 기분이 너무 좋은 거죠. 작고 소박한 순간일지도 모르겠지만, 저한테는 굉장히 아름다운 순간이에요. 제 영화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었던 지금 이 순간, 2024년의 제천도 아름답게 기억될 거예요.
9월 6일(금) 16:00 세명대 태양아트홀
9월 8일(일) 19:00 세명대 태양아트홀
글: 하이스트레인저 방해리
사진: 하이스트레인저 김소현
-
- 나는 여기에 있다 - 좋은 재료로 끓인 라면 같은 영화
-
*해당 영상은 씨네 랩 크리에이터로 활동하며 4월 12일 개봉하는 작품
[나는 여기에 있다]의 개봉전 시사회를 다녀온 뒤 제작한 영상입니다.
과거, 살인자를 검거하는 과정에서
칼에 폐를 찔린 후 장기 이식을 통해
기적적으로 살아난 형사 ‘선두’(조한선)
수사 일선에 복귀한 그는 연쇄 살인범 ‘규종’(정진운)을 쫓던 중
장기 이식 코디네이터 ‘아승’(노수산나)을 통해
‘규종’이 자신과 같은 공여자의 장기를 이식받은 것은 물론,
공여자가 과거 자신이 검거했던 살인자라는 것을 알게 되는데…
피 끓는 형사 VS 폭주하는 살인자
지독한 운명에 얽힌 두 남자의 극한 추격이 시작된다!
-
-
- 영화 <위왓치유> 티저 예고편
평범한 집처럼 꾸며진 3개의 세트장,
12살로 설정한 페이크 계정을 만들고 컴퓨터 모니터 앞에 선 배우들.
계정 계설과 동시에 전 세계 남성이 접촉해왔으며
열흘 간 나체사진 요구, 가스라이팅, 협박, 그루밍 등을 시도하는 남성은 총 2,458명이었다.
그리고 우린 그 중 21명과 대면하게 된다.
범죄의 형식이 온라인으로 확산된 언택트 시대.
성에 대한 가치관이 형성되지 않은 아동·청소년들에게 일어나는 충격적인 디지털 성범죄를 추적한다.
그리고, 가해자들의 처벌까지 이어질 수 있을까?
디지털 성범죄자 검거 프로젝트
<#위왓치유>
-
- 왓챠 <이멜다 마르코스: 사랑의 영부인> 공식 예고편
[왓챠 익스클루시브]
"제가 영부인이던 시절에는 부랑자들이 없었어요."
필리핀의 20년 부패 독재 정권의 실세 이멜다 마르코스가 돌아왔다.
그녀의 넘치는 사랑이 빚어낸 참혹한 역사가 낱낱이 공개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