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이정2024-10-09 12:06:19
[BIFF 데일리] 다시 오지 않을 시절에게
영화 <우리들의 교복 시절> 리뷰
DIRECTOR. 촹칭션(CHUANG Ching-Shen)
CAST. 천옌페이(Yan-fei CHEN), 항첩여(Chloe XIANG), 치우이타이(Yitai CHIU) 외
PROGRAM NOTE.
1997년. 제1여고 입학시험에 실패한 아이는 엄마의 강압에 못 이겨, 제1여고의 야간 학생이 된다. 같은 교복을 입지만 명찰의 색이 다른 주야간의 학생들은 교실을 공유하는데, 아이는 주간 학생 민과 책상을 나눠쓰게 되면서 단짝 친구가 된다. 민과 함께 민의 교복을 입고 주간 학생이 된 듯한 기분을 느끼던 아이는 어느 날, 루커를 만나 미묘한 설렘을 느끼게 된다. 아련한 추억의 장소이기도 하지만 학업 성취도에 따른 계급 사회의 축소판이기도 했던 그 시절의 학교를 배경으로, <우리들의 교복 시절>은 십 대들의 사랑과 우정, 좌절과 성장의 스토리를 담백하고 솜씨 좋게 풀어 간다. <침묵의 숲>(2020)으로 금마장 신인배우상을 수상한 진연비(천앤페이)를 비롯한 대만의 연기파 신인배우들이 주연을 맡아 풋풋한 성장 드라마를 완성했다. (박선영)
생각해 보면 조금은 이상한 시절이었다. 모두 똑같이 소중하다는 말이 교과서 속 혹은 박물관의 유리벽 속에나 존재하던 시절. 모두 똑같이 소중한 제일여고 학생이라면서 주간반과 야간반 학생들의 명찰 색깔을 다르게 하고, 거기에 굳이 태양과 달이라는 의미까지 부여해 달이 발광체인가 아닌가 하는 생각까지 하게 만드는 것이 정말로 "똑같은" 것일 리 없다. 역시나 주간반과 야간반에게는 입학 첫 날부터 사뭇 다른 공지사항이 주어진다.
입시를 대하는 1997년 대만 풍경은 한국 사람들에게도 꽤나 익숙하다. 구체적 양상은 조금씩 달라도 큼직한 정서만큼은 같다. 아이의 어머니가 아이에게 한 "여자는 사범대가 제일이야" 같은 말, 당시 훨씬 어린 나이였던 나조차 심심찮게 들었던 말이니까. 어른이 되고, 그 시절 그 분들이 진심으로 현실적인 조언을 해준 것임을 이따금 실감할 때조차, 내가 아이의 나이가 될 때까지 쭉 이어진 그 말을 들을 때마다 반사적으로 느꼈던 갑갑함을 부정하지 않는다.
어른들은 자꾸 사춘기의 아이들을 채근한다. 어른들의 마음도 이해는 간다. 당시 입시의 중요성이란, 누군가에게는 인생을 바꿀 수 있는 가장 손쉬운 기회로 보였을 테니까. 인생의 가치를 서열화하고, 그 계단에서 조금이라도 더 높은 곳에 올라, 더 많은 기회를 얻을 수 있는 것. 추후의 노력으로 뒤집기에는 너무 어려운 것. 요즘은 많이 무너지고 있다지만 90년대와 그 이후 꽤 오랜 시간, 학벌은 그런 의미로 많이 받아들여졌으니까.
대입도 아니고 고입 시험에서부터 그런 소외감을 느껴버린 아이는, 투명인간 취급을 받지 않기 위해 거짓을 쌓는다. 그런 아이를 누가 나쁘다고 할 수 있을까? 동경하는 친구 민, 자꾸 설레는 대상 루커... 그런 사람들 앞에서 발돋움을 해보려는 마음이었을 뿐인데. 그러나 이런 마음에서 시작되었다 해도 거짓은 거짓이라, 결국 거짓들은 핑퐁핑퐁 튀어오르고, 누구도 못되게 굴지 않은 상황 속에서 아이들은 제각각의 상처를 받는다.
흔히 '친한 두 (여성) 친구가 동일한 한 남성을 좋아하게 된다'는 설정을 중심에 두는 구도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우정과 사랑이 서로 경합을 벌여야 하는 게 싫고, 그 과정에서 더 소중한 감정들이 배척되기 쉽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영화는 이런 설정을 사용하면서도 과하게 중심에 두지 않는다. 우정과 사랑이 서로 경합을 벌이는 대신, 불평등한 현실의 감각과 퉁 부딪힌다. 이어폰으로 음악을 나눠듣고 탁구를 치며 90년대 청춘을 아름답게 회상하는 동시에, 그 아름다움보다 평등하지 못하다는 감각이 앞서는 슬픔을 보여주는 식이다. 그래서 더 현실적으로 청춘이 드러난다. 사실 아름답기만 한 청춘이 어디 있나.
우리가 대만 청춘영화에 기대하는 풋풋하고 싱그러운 정서들을 충분히 가진 영화다. 동시에 성인의 시각에서 청소년기를 산뜻하게만 그리며 얄팍해지는 대신, 내면에서 끊임없이 재난 경보가 울리는 시기라는 점도 명확히 짚는다.
"다 너희를 위해서 하는 말"이라는 말을 긍정할 수 있게 된 후에도, 나는 그 시절 내가 느꼈던 갑갑함을 부정하지 않는다. 사춘기가 그런 시기 아닌가. 나도 아직 나를 잘 모르겠는데 남들에게 내가 어떻게 보여야 할지 어떻게 보이고 싶은지를 먼저 생각해야 하는 혼란스러움, 할 일은 많지만 지금 하고 싶은 일은 그게 아닌 것 같은 따분함, 마음의 가장 연약한 속살을 마주할 때마다 남들의 껍질은 참 단단해 보이기만 해서 계속 느끼는 초라함과 질투, 나 스스로도 내가 너무 어리고 서툴러 가끔은 나 자신을 견디는 게 벅차서 폭발할 것 같은 마음들까지.
이 영화는 그 나이의 모든 것을 끌어안는다. 다시 오지 않을 시절에게, 수고했다고 말해주듯이. 재난만 있던 시절도 아니고, 아련함만 있는 시절도 아닌 그 시절에게. 때로는 거짓으로 위로 받은 마음조차 거짓은 아니었다고 끌어안으며, 영화에 나온 대사를 축복처럼 건넨다. May the Force be with you!
10/05 20:00 롯데시네마 센텀시티 6관 (상영코드 202)
10/06 12:00 롯데시네마 센텀시티 6관 (상영코드 264)
10/08 17:00 영화의전당 중극장 (상영코드 370)
Relative cont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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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펜서 (SPENCER, 2021) 리뷰
- 2022년 3월 16일, 개봉한 영화 <스펜서>를개봉 전 CGV 용산 아이파크몰에서 열린 시사회에 다녀왔다.씨네랩 크리에이터로서 시사회에 참여할 수 있었는데 오랜만의 영화관 방문이라 설렜던 것 같다.우선, <스펜서>를 관람하기 전 간단한 사전 조사가 필요해 보인다.왕세자비의 이야기를 다루지만 그녀의 일대기를 다룬 것이 아닌 특정 시간 안에서 다이애나가 느꼈을 감정에 집중한다.영화에서 사전 설명이 없기 때문에 아무런 정보 없이 관람하러 간다면 초반에 다이애나에게 몰입하기 어려울 것이다.나는 왕세자비의 이야기라길래 그녀의 삶을 쭉 나열한 영화일 줄 알았다. 그래서 간단한 정보만 읽고 관람했는데 보면서 기존에 한 생각이 틀렸다는 것을 알았고 정보가 아예 없는 관객이 접하긴 불친절하겠다고 생각했다.관람 후기<스펜서>는 다이애나의 일생 중 크리스마스 당일과 전후 3일 동안의 이야기를 다루며 영화는 진행된다.큰 사건을 중심으로 전개되는 이야기가 아니고 한 인물의 내면과 감정을 중심으로 전개되기 때문에 어쩌면 잔잔하다 느낄 수 있다.그러나 다이애나가 처한 상황과 그 속에서 느낀 불안감, 억압, 고통 등이 연출과 음악으로 정말 잘 표현됐다.현악기를 주로 사용한 듯한데 이 현악기들의 음이 무겁고 혼란스러워서 다이애나의 감정이 음악적으로 전달이 잘 된다.오래간만에 귀에 잘 들려와 박히는 음악이었다.또 유독 프레임 중앙에 있는 다이애나를 중심으로 대칭이 이뤄진 컷들이 눈에 들어왔다.그게 어쩐지 왕실 억압 안에 갇힌 다이애나 그 자체 같기도 했고 그래서 그런지 몰라도 그런 장면이 나올 때마다 다이애나가 더 와닿았던 것 같다.사실 이 영화는 연출로도 다이애나를 잘 표현한다.많은 말이 필요 없이 시선으로 다이애나를 억압한다. 영화를 보다 보면 다이애나를 쳐다보는 시선들이 느껴질 것이다.그 시선들을 인식하게 되는 순간 내가 다 숨 막혀진다. 어딜 가나 존재하는 사람들, 빠르게 도는 소문.별장에서 그녀를 바라보는 수많은 시선들과 그녀를 찍기 위한 파파라치들, 특히 파파라치들은 영화 전개 내내 대사로 언급만 있다가 처음 등장한 씬이었는데 프레임 꽉 차게 들어차 있는 파파라치들과 끊임없이 터지는 플래시들로 그녀가 파파라치들에게 얼마나 시달렸는지 짧은 순간에 설명이 가능했다. 짧고 굵은 임팩트영화는 내내 우울하고 불안하다. 다이애나는 폭식과 거식, 구토를 반복하고 환각을 보며 스트레스 받고 고통받아한다.그러다 다이애나가 자살시도 직전 자유롭게 내달리는 장면 이후 왕세자비 다이애나가 아닌 자신의 원래 성인 스펜서로 살아가기 위해 별장을 나가는 장면은 그녀가 고통받던 생활에서 벗어남을 의미해 안도감이 들다가도 그녀의 일생의 끝을 알고 있기에 마냥 행복하게 바라볼 수 없어서 씁쓸했다.조금 더 일찍 자유를 맞이했다면 더 좋았을 텐데항상 영화를 볼 때 도입부 5분가량을 가장 집중한다. 영화를 함축적으로 나타내는 경우가 많으니까스펜서는 그 부분이 차가 다니는 길에 죽어있는 꿩이었는데 그 꿩을 사이로 차들이 아슬아슬하게 지나간다.영화 후반 다이애나는 직접 꿩이 되겠다 언급했는데 어쩐지 도입부에 그 꿩이 다이애나를 비유한 게 아닐까 싶다왕실에서의 삶에 고통받던 다이애나는 시체나 다름없었을 것이고 계속된 통제에 시달리며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했을 테니그녀의 안타까운 죽음이 떠오르기도 하고<스펜서>는 상당히 따뜻한 색감으로 영상 자체도 매우 예쁘다. 왕실 일부를 다르다 보니 화려한 장식과 소품들은 덤앞서 말했듯이 큰 사건 중심으로 전개되는 영화가 아니다 보니 스케일도 크지 않고 잔잔하다 생각할 수 있다.그러나 한 인물 몇 십 년간 느꼈을 감정과 내면을 짧은 시간 안에 표현해낸 게 대단하고 영상미도 예쁘고 음악도 영화랑 정말 잘 어울리니꼭 한번 관람해 보길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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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음을 따뜻하게 하는 가족 이야기, 영화 <위국일기>
<위국일기(違国日記)>는 갑작스럽게 함께 살게 된 이모와 조카가 서로를 이해하며 서서히 가족이 되어가는 과정을 담은 일본 영화입니다. 소설가 마키오는 소식을 끊고 지내던 언니가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을 듣고 장례식에 참석합니다. 그곳에서, 고아가 된 조카 아사를 두고 ‘버려진 대야 같은 신세’라고 사람들이 수군거리는 모습을 본 마키오는 충동적으로 아사를 맡기로 결심합니다.
‘위국일기(違国日記)’는 문자 그대로 해석하면 ‘어긋난 나라의 일기’입니다. 이 제목은 이모와 조카의 태생적 거리감과 서로의 성격과 생활방식이 달라 불편함을 느끼는 상황을 상징합니다. 두 사람이 전부를 이해하지 못하더라도 서로의 차이를 인정하고 존중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메시지를 전합니다.
같은 제목의 만화를 원작으로 한 영화는 가족과 인생의 중요한 순간을 차분하게 돌아보게 합니다. 주연을 맡은 아라가키 유이(이모 역)와 하야세 이코이(조카 역), 카호(이모 친구 역)의 섬세한 연기는 마치 그들의 삶을 옆에서 지켜보는 듯한 몰입감을 줍니다. 감독의 서정적인 연출 역시 이들의 일상을 조용히 담아냅니다.
씨네랩의 영화 크리에이터로 영화의 시사회에 초대받아 좋은 영화를 감상했습니다. <위국일기>는 일상 속에서 각자가 품고 있는 외로움과 상처를 담담하게 그려낸 작품입니다. 이모와 조카의 복잡한 감정선과 세대 간의 이해와 소통을 담아낸 이 영화는 관객에게 잔잔한 감동과 따뜻한 여운을 남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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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브 투 헤븐 : 나는 유품정리사입니다> - '전하지 못한 퍼즐 조각을 맞춰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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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브 투 헤븐 : 나는 유품정리사입니다
개봉일 : 2021.05.14 (넷플릭스 공개)
감독 : 김성호
출연 : 이제훈, 탕준상, 홍승희, 정석용, 정영주, 임원희, 지진희
전하지 못한 퍼즐 조각을 맞춰가다.
가장 인간답기에 가장 아프면서도 따뜻한 이야기를 담은 <무브 투 헤븐>은 특별한 시선을 가진 유품 정리사 나무와 그의 후견인 상구가 세상을 떠난 사람들의 마지막 이사를 도우며 사랑하는 이의 죽음을 조금씩 받아들이고 성장하는 과정을 그린 드라마다.
사람들은 저마다의 인생을 살아가고 본인의 이야기와 흔적들을 남긴다. 각자 다른 형태의 죽음, 다른 인생, 다른 이야기들을 한 아름 담은 노란 유품 상자의 무게가 꽤나 묵직하게 느껴진다. 유품 정리사인 나무는 그 무게감을 끌어안고 오늘도 그들의 이야기를 전하기 위해 노력한다.
살아있는 것들은 언젠가 죽는다. 인생과 죽음의 과정은 공평하지 않을지언정 죽음이란 결과는 모두에게 공평하게 다가온다. <무브 투 헤븐>은 시청자들이 누군가의 죽음과 마주하게 만들며 삶과 죽음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 볼 수 있는 시간을 제공한다. 나는 <무브 투 헤븐>을 보며 몇 년 전 내가 처음으로 마주했던 죽음과 작년 여름쯤에 읽었던 김완 작가의 <죽은 자의 집 청소>라는 책을 함께 떠올렸다.
난 죽음에 대해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어릴 때부터 꽤 많은 반려동물들과 함께하고 그 친구들을 보내며 ‘반려동물의 죽음’을 겪어봤지만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은 23살의 나이가 되어서야 처음 겪어보았다. (동물과 인간의 죽음의 무게를 나누려는 의도를 가진 표현은 아니다. 동물이든 사람이든 죽음과 생은 고귀한 것이라는 것을 잘 안다.) 어린애를 굳이 상갓집에 데려갈 필요는 없다는 부모님의 신조 아래 자란 나는 먼 친척들이 돌아가셔도 상갓집에 가보지 못했다. 사실 정말 어릴 때 한두 번 본 사이라 얼굴도 기억 안 나는 어른들이어서 더 그랬는지도 모르겠지만, “누가 돌아가셨단다.”라는 엄마의 말에 나는 별다른 감정을 느낀 적도 없었다. 내 눈앞에, 마음에 그의 죽음이란 것이 와닿지 않았으니까.
내 주변엔 어린 나이에 가족의 죽음을 겪은 친구들이 꽤 있었다. 중학교 때 함께 어울렸던 친구는 초등학생 때 산업재해로 아버지와 이별했고, 고등학교 때 함께 어울렸던 친구는 나와 만난 지 얼마 안 됐을 때쯤 할아버지와 이별을 했다. 친구들은 나에게 간혹 아물지 않은 이별의 상처를 털어놓기도 했는데, 나는 그저 “네 마음이 어떨지 모르겠지만.. 진짜 힘들겠구나.”와 같은 내 감정에 충실한 반응을 뱉어내기만 했다. 그땐 나름 진심을 담아 이야기했지만, 돌이켜보니 그 친구들에게 미안할 만큼 영양가 없는 한마디였던 것 같다.
그렇게 ‘죽음’이 무엇인지 티끌만큼도 가늠하지 못한 채 나는 20살을 넘겨 성인이 되었고 23살이 되던 해, 처음으로 사랑하는 이의 죽음을 맞이했다. 그리고 그제서야 삶과 죽음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되었다. 그리고 몇 년이 지나 만난 <무브 투 헤븐>은 그때의 기억과 고민들을 다시 떠오르게 만들었다.
<무브 투 헤븐>은 세상을 떠난 이들의 목소리를 전함과 동시에 억울한 죽음, 외로운 죽음, 아무도 슬퍼하지 않는 죽음 등 여러 인물들의 죽음에 담긴 사회적 문제들을 따끔하게 꼬집는다. 산업 재해 사망사건을 돈 몇 푼으로 해결하려 하는 회사, 노인이 된 어머니를 방치하고 돈만 챙기려는 아들, 데이트 폭력으로 사망한 피해자, 차가운 사회의 시선에 내몰린 연인과 노부부, 무책임한 부모들에게 버려져 해외 입양된 아이의 외로운 인생까지. 각 화마다 새롭게 등장하는 인물들의 인생 이야기를 함께 더듬다 보면 그들이 겪어야 했던 차가운 시간들과 고질병처럼 고쳐지지 않는 문제의 까끌함이 마음속에 깊이 스며든다. 정말 힘들지 않고, 아프지 않은 인생이 하나도 없다.
그들이 떠난 자리엔 유품 한 박스와 슬픔, 후회가 가득하다. 슬픔과 후회는 그들을 지키지 못한 남은 이들의 몫이다. 그리고 누군가가 이 외롭고 억울한 죽음을 겪지 않도록 문제를 해결해나가야 하는 것 또한 남은 이들의 몫이다.
사람은 죽어서 자신의 이름과 몇 개의 흔적을 남긴다. <무브 투 헤븐>의 주인공 그루는 비정형적으로 흩어진 흔적을 정리하며 그들이 남긴 마지막 말들의 조각을 맞춰간다. 고인들의 자리에 남은 단출한 짐들은 그들의 인생을 말해주고 그 몇 마디가 남긴 무게감은 그루의 어깨에 내려앉는다. 그루는 진심이 담긴 고인들의 마지막 말들을 마음으로 품어내며 조금씩 성장한다. 아빠(정우)와 헤어지는 것을 가장 두려워했던 아이가 아빠의 빈자리를 받아들이고 그 자리를 슬픔이 아닌 아빠가 남겨준 사랑으로 채워가는 모습을 보며 마음 한구석이 저릿해지는 느낌이 들었다.
더불어 형(정우)에 대한 오해로 인해 그를 미워했던 상구가 형이 오래도록 쌓아두었던 마음과 마주하며 변화하는 과정 또한 꽤나 감동적이다. 본인도 어리면서 더 연약한 동생을 위해 모든 마음을 내주고도 후회하고 미안해했던 정우의 마음이 두텁게 쌓인 캐비닛 문을 열었을 때, 상구의 세상은 정우가 남긴 사랑으로 가득 찬다.
그루는 사랑하는 동생과 아들을 위해, 못다 한 말을 남기고 떠난 사람들을 위해 자신의 마음과 사랑을 모두 내바쳤던 아빠 정우의 길을 그대로 따라 걷는다. 아빠가 남긴 사랑과 마음가짐을 연료 삼아 아주 천천히, 하지만 아주 바른 걸음걸이로 말이다. 그리고 그 옆엔 그루의 삼촌, 상구가 있다.
그루가 들고 있는 유품 박스의 색깔은 노란색이다. 봄이란 계절과 희망을 담은 듯이 아주 예쁜 노란색. 어쩌면 죽음은 끝이 아닐지도 모르겠다. 죽음이란 새로운 생이, 새로운 시간이 시작되는 지점이 될 수도 있으며 떠난 이가 남긴 말과 흔적들은 새로운 희망이 되어 이 세상을 바꿔놓을 계기가 될 수도 있다. 그루의 품에 안긴 노란 유품 박스가 슬픔이 아닌 희망과 그들의 아름다운 추억들로 가득 차는 날이 오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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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코믹으로서도 좀비로서도 영화로서도 낙제
이수성 감독은 1년에 장편을 1~2편씩 꾸준히 공개할 정도의 다작 감독이다.
한국 감독중에 이런 케이스는 성애 영화 감독이나 홍상수 감독을 제외하면 사실상 없는 수준이다.
또한 장르도 다양하게 시도하는 편인데, 주력으로 하는 에로, 액션, 코미디 뿐만 아니라 스릴러, 드라마 장르도 때때로 시도할 정도이다.
이번 강남좀비는 대뷔작인 미스터 좀비 이후 다시 좀비 영화로 돌아왔다.
원래 개봉은 작년 12월 이었음에도 개봉을 미뤘는데, 이번에는 극소규모 개봉후 직행하는 지난 영화들과는 다르게 작품에 자신이 있기에 개봉 연기를 택한건가 하는 기대감이 들었다.
하지만 그 기대감은 헛된 기대였음을 깨닫게 되었다.
우선 각본이 매우, 정말 처참하다.
영화는 코로나, 유튜버의 활성 등 현시대에 화제가 되는 주제들을 혼합시켰지만 주제의 성찰은 일체 보이지 않고 수박겉핥기 수준이라 의미 없는 수준에 불과하다.
영화의 주연인 지일주 배우는 연기 경력이 많음에도 불구하고 어색하게 느껴지는데, 이러한 이유는 각본의 문제가 크다고 본다.
대사들도 과하게 인위적인 부분이 많아 몰입을 해치는 부분도 많다.
또한 좀비를 심각하게 편의주의적으로 다뤘는데, 좀비의 이동 속도나 감염 속도, 내구도, 반응등이 너무 제각각이고 심지어 좀비 한명은 낙법까지 써서 싸우니, 관객 입장에선 혼란스러울 따름이다.
이러한 각본 때문에 표방한 장르인 코믹도 웃기지 않다.
개그들도 전체적으로 유치한데다가, 그나마도 초반 이후로 코미디 요소는 사실상 없어진다 봐도 무방하다.
웃은 적이 딱 한번 있는데, 그것마저도 폭소가 아닌 피식 수준이다.
코미디 장르를 다작한 감독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수준이다.
또한 편집도 좀비 장르에 적합한 스피드한 편집이 없이 너무 평범하다.
일반 드라마 장르라고 봐도 무방할 수준으로 카메라 움직임은 후술하겠지만 허술한 분장과 미술을 더욱 티나게 만든다.
이어서 분장과 미술도 정말 허술하다.
저예산임을 감안해도 말이다.
좀비 분장이라곤 색깔도 티가 나서 웃음이 나올 정도의 가짜 피와 렌즈를 낀게 전부이다.
조연은 그나마 분장에 더 신경을 써준것이 보이는데, 피부 손상과 같은 것은 가짜 티가 많이 나는 등 여전히 아쉬움이 보이고 엑스트라들은 정말 아쉬울 정도이다.
또한 작중 대다수(사실상 전부)를 차지하는 배경인 상가의 경우 너무 깔끔해서 어색하다.
피가 묻거나 파손된 기자재가 일체 안보여, 마치 좀비만 인위적으로 갑자기 데려다 둔 느낌이 든다.
필자는 개인적으로 좀비 영화를 좋아한다.
아포칼립스부터 밀실 계열까지 정말 다양한 작품을 보는 편이다.
좀비 장르 특성상 저예산이 많기에 아쉬운 작품이 많다는 걸 감안하고 평가하는 편이지만, 강남좀비는 그 중에서도 낙제점이다.
영화 포스터에 따르면 일명 "코믹좀비액션"을 노린 영화이다.
하지만 영화는 코믹도, 좀비도, 액션도 잡지 못했다.
이수성 감독의 다양한 장르를 시도하는 도전정신은 칭찬하고 싶다.
하지만, 이제는 영화 하나의 퀄리티에 집중하는 자세를 가져야한다고 말하고 싶다.
그렇다면 언젠가 그 도전정신이 비평적 측면에서도 인정받을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씨네랩 크리에이터로서 시사회에 초청받아 참석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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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로 지금이야, 놓치지 마
코너는 라피나와 함께 배를 타고 런던으로 간다. 코너의 형 브랜든은 벅찬 환호성과 함께 멀어져 가는 이들의 뒷모습을 바라본다. 형은 동생이 현실의 벽에 막혀 포기해야 했던 자신처럼 되지 말길 바랄지도 모른다. 브랜든은 코너를 향해 토해낸다. 너는 막내로 태어나서 편하게 내가 닦아놓은 길을 걸어왔잖아. 나도 한때는 기타를 치며 사람들과 놀고 달리기도 잘했다고. 사람들은 알지도 못하면서 나보고 약쟁이에 대학 중퇴자래. 나도 열정 많은 사람이었는데. 형은 열정으로 가득했던 지난날의 한순간을 돌이켜본다. 존 카니의 <싱 스트리트>를 보고 나면 가슴속에 처박아뒀던 먼지 쌓인 꿈을 꺼내보고 싶다. 자신이 꿈꾸던 삶에 가닿은 사람이 과연 몇 명이나 될까. 모두 이런 이유, 저런 이유로 포기하고 대안을 찾으며 꿈꾸던 삶과 멀어진 채로 일상을 버텨낸다. 그때 조금 더 해볼걸, 포기하지 말고 고집부려볼걸. 많은 이들이 후회와 미련이 뒤얽힌 복잡한 마음을 가슴 한구석에 묻어두고 살아간다.
젊으니까 그런 거라고?
코너와 라피나가 배를 타고 바다로 나가자 비가 쏟아지고 파도가 몰아친다. 그럼에도 그들은 웃는다. 꿈을 향한 이들의 길에 어떤 고난과 역경이 닥치더라도 문제 될 게 없다. 사실 코너가 부럽다. 라피나에게 첫눈에 반해 그녀와 접점을 만들려고 계획에도 없던 밴드를 덜컥 만드는 코너가 부럽다. 네가 라피나를 런던에 데려다주면 어떠냐는 에이먼의 말에 황당해하지 않고 비행기 표는 얼마냐며 끝내 배를 타고 그녀를 런던으로 데려가는 코너가 부럽다. 소년은 거침없이 본능과 직감을 따르며 하고 싶은 대로 살 수 있다. 무언가를 시도했다가 잘못된다 하더라도 이번 경험이 좋은 밑거름이 될 거야, 라면서 포장해버리면 그만이다. 사실 나는 굉장히 현실적인 사람이다. 그래서 더 코너 같은 사람이 부러운 걸까. 아니 정확히는 뭘 해도 용인되는, 젊음의 기운을 마음껏 발산할 수 있는 환경 자체가 부러운 걸까.
인생은 길고 젊으니까 실패하고 좌절하면서 빙빙 돌아가도 절망하지 말라는 어르신들의 말이 틀렸다는 건 아니지만, 오늘날의 청년들은 떠안고 있는 것들을 쉽게 떨쳐내고 새로운 삶에 도전할 만큼 단순한 세상을 살고 있지 않다. 그런데 코너를 보고 있으면 사실 이런저런 얘기들은 전부 핑계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한다. 나는 코너만큼 과감하지 않고 현실적이라 늘 걱정을 안고 산다. 그게 코너와 나의 차이다. 코너는 젊으니까 저렇게 손발 가는 대로 행동하지, 라는 말들은 어쩌면 잘못된 건 아닌가. 그가 젊다는 이유만으로 본능을 따라 여러 시도를 하는 게 아니라는 말이다. 코너라서 그런 거고, 나이랑은 상관이 없는 일이다.
기회를 놓치지 않는
분위기가 후끈 달아오른 공연, 코너는 분위기를 깨고 발라드를 부르려고 한다. 팀원들이 진심이냐고 되묻지만 뜻을 굽히지 않는다. 코너는 그 순간을 놓치기 싫었다. 그때 그 곡을 불러야 원하는 대로 무언가 이뤄질 것만 같은 기분일 테니까. 그는 기회를 잡을 줄 아는 사람이다. 가슴속에 하고 싶은 무언가가 있다면 그때를 놓쳐서는 안 된다. 코너는 늘 기회를 잡지만 나는 기회를 떠나보낸 적이 많았다. 그런 코네와 라피나가 만나게 된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코너는 그녀에게 왜 물에 빠졌는지 묻는다. 우리 작품을 위해서야. 절대 적당히 해서는 안 된다는 그녀의 대답. 코너와 라피나는 아직 새파랗게 젊고 현실의 벽에 부딪혀 본 경험이 많지 않다. 그러나 그것들로는 이들의 희망찬 런던행을 뒷받침할 수 없다. 그들은 그냥 그런 사람들이다. 눈앞에 찾아온 기회를 그냥 떠나보내지 않는다. 그들은 과감하고 행동력이 강하며 꿈을 향한 열정이 있는 사람이고 각자가 바라는 이상적인 삶을 살아갈 자격이 있다.
<싱 스트리트>는 사랑과 꿈에 청춘 감성의 밴드 음악을 존 카니의 입맛대로 입힌 영화다. 그리고 어떻게 보면 감독의 위트 있는 권고를 담고 있는 영화이기도 하다. 꿈꾸던 것들, 하고 싶던 것들을 묻어두거나 잊은 채 일상에 전념하는 수많은 현대인들에게 존 카니가 말한다. 원하는 게 있다면 지금 해보라고. 꿈에 닿으려면 찾아온 기회를 놓쳐서는 안 된다고 말이다.
* 본 콘텐츠는 브런치 드플레 님의 자료를 받아 씨네랩 팀이 업로드 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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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손에서 자꾸 눈물, 아니 땀이 난다구요!
OTT 플랫폼들이 많이 생기면서, 걸어야 하는 작품들의 숫자들도 점점 많아지고 있다.
그럼에도, 최우선으로 고려되는 곳은 "영화관"이다.
실제로, 국내에서도 개봉한 <스마일>은 "VOD"로 직행할 영화였지만 내부 시사의 긍정적인 반응에 힘입어 극장 개봉으로 선회했다.
그리고, 그 결과는 알다시피 북미 박스오피스 2주 연속 1위와 함께 제작비(1700만 달러) 대비 10배의 흥행으로 받고 있다!
영화 <폴: 600미터>도 내부 시사의 반응에 힘입어 극장으로 발길을 옮긴 작품인데, 또 다른 <스마일>이 될까?친구이자 남편 "댄"을 잃은 아내 "베키"와 친구 "헌터"는 이를 극복하고자 철거를 앞둔 600미터 방송탑을 오르기로 한다.
두려움이 앞섰지만, 완등하는 데에 성공하고 내려가려던 순간. 사다리들이 부서지고 마는데...1. 비유가 아니라 본능입니다.
읽어야 하는 소설과 달리, 영화는 "메타포(비유)"를 볼 수밖에 없다!
그래서, 창작자의 의도와는 다르게 보는 이에 따라 해석되어 재미가 달라지는데, 이는 '어떻게 실밥을 쥐는지?'에 다양한 궤적을 그리는 변화구들로도 볼 수 있다.
하지만, 본 작품 <폴: 600미터>는 가장 편차 없는 구종 '빠른 직구(=속구)'로 가장 기본이 되는 공으로 관객들을 맞이한다.
궤적 없이 단순히, 빠르게 지나가는 공이지만 관객들은 휘둥그레지게 바라볼 수밖에 없다.제목의 원제 "Fall"이 "추락" 혹은 "떨어지다"로 해석하듯이 영화는 보는 이들에게 계속해 제목을 상기시킨다.
그렇다면, 사람들은 언제부터 높이에 대한 공포 '고소 공포증'을 느끼는 걸까? - 이는 생후 6개월부터 "양쪽 눈의 시력(양안시)"으로 높낮이를 확인할 수 있게 되면서 생긴다!
어찌 보면, 영화 <폴: 600미터>가 보여주는 600미터 탑은 "메타포(비유)"가 아니라 "본능"을 건드는 것이니 유달리, 무섭게 느껴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2. 도대체, 왜 그러는 건데...
이런 이유로 그저, 올라가기만 하는 것임에도 영화는 공포스러운 분위기를 조성하는 데에 성공한다.
물론, 공포를 만드는 데에 위·아래를 가리진 않는다!
극 중. "헌터"의 직업이 "유튜버(혹은 인플루언서)"로 '좋아요'를 이끌어낼 위험천만 사진들을 찍는 장면들이 나온다. - 한 손으로 난간에 버티는 모습이 그러한데, 보고만 있어도 손에 땀이 나오고 비명도 나오려고 한다!
하지만, 영화가 보여주는 "아래"는 무서움만이 전부가 아니다.영화가 관객들에게 상승의 이미지를 위태롭게 가져온다면, 자연스레 하강은 안전하다고 해석하게 만든다.
극 중. 물과 생존 도구들이 있는 가방이 탑 아래에 떨어졌다든지 메시지를 보내기 위해서 땅 아래로 핸드폰을 떨어트리는 행동들까지 의도적인 배치들을 찾을 수 있지만 "메슬로우의 욕구 5단계"를 보면, 확실하게 알 수 있다!
"메슬로우의 욕구 5단계"에서 가장 높은 욕구는 "자아실현"이지만, 제일 아래에 있는 "생리적 욕구"가 충족되지 않는다면 성립 자체가 되지 않는다.
결국, 이마저도 "본능"을 건드린다고 봐야겠다. - 실제로, 무게 중심이 낮을수록 넘어지지 않는다.3. 직구만으로 충분한 장악력
해당 작품의 이야기가 펼쳐지는 곳은 600미터 상공의 "피자판(극 중. 주인공들이 이렇게 정리한다)"만한 크기이다.
결국, 관객들에게 스릴감을 안겨주기 위해서라도, 올라가든 내려가든 이곳을 빠져나가야만 한다.
앞서 말한 '본능(공포, 안전)'들이 있지만, 이는 사람마다 느끼는 정도가 달라 객관적인 기준으로 삼을 수 없어 관객들을 설득시킬 동기와 이야기의 필요성이 대두된다.결과부터 말하면, 강력한 직구와 다르게 변화구들은 밋밋하다.
107분으로 적지 않는 분량이긴 하나, 영화가 전반적으로 "직구"만으로 충분하니 애써 준비한 "반전"은 어딘가 이해되지 않은 채 마무리된다.· tmi. 1 - 극장 개봉이 결정되었지만, 욕설이 너무 많았던 관계로 재촬영을 통해 "성인 등급"에서 "PG-13"으로 낮췄다!
· tmi. 1. 1 - 재밌는 건. 재촬영을 "딥페이크"와 비슷한 기술로 해결했다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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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화...가 될지도 모를 이야기. 《돈 룩 업》 12월 일부 극장에서, 그리고 넷플릭스에서. 《돈 룩 업》의 주인공은 무명의 두 천문학자. 혜성이 지구와 충돌할 거란 사실을 발견한 두 사람은 언론사를 있는 대로 찾아다니기 시작한다. 시시각각 다가오는 재앙을 온 인류에 경고하기 위해. 애덤 매케이 각본 및 연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