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ABBITGUMI2024-10-10 11:40:26
부모가 되면 생기는 또 하나의 마음
- <와일드 로봇>(2024)
부모가 된다는 것에 대해 이미 많은 애니메이션 영화들이 이야기해왔다. 예를 들어, <니모를 찾아서>에서는 아버지 물고기 말린이 위험을 무릅쓰고 바다를 누비며 아들 니모를 찾아가는 과정에서 부모로서의 사랑과 헌신을 그린다. <라이온 킹>에서는 무파사가 어린 심바를 위해 자신을 희생하고, 심바 역시 아버지의 가르침을 통해 성장하며 부모로서의 책임감을 배운다. 이처럼 부모가 자식을 키우는 이야기는 보편적이며 많은 사람들이 쉽게 공감할 수 있는 주제다. 그래서 어쩌면 이 주제는 새롭지 않다고 생각될 수도 있다.
하지만 드림웍스 스튜디오가 30주년 기념으로 내놓은 영화 <와일드 로봇>은 이 보편적인 이야기의 중심에 로봇을 배치해 색다른 접근을 시도한다. 로봇은 감정이 없고, 단지 입력된 프로그램에 따라 움직이는 기계일 뿐이다. 그렇기 때문에 부모가 아이를 향한 사랑을 느끼는 마음도, 따뜻함도, 고민도 없는 존재다. 이 로봇이 부모의 역할을 맡게 되면서 감정이 생기고 변해가는 과정이 매우 따뜻하게 그려진다. 이 영화는 로봇이라는 존재를 통해 부모가 된다는 것의 의미를 새로운 시각으로 보여주고 있다.
[첫 번째 감정] 로봇 로즈의 무감정
로즈(목소리: 루피타 뇽오)는 인간에게 도움을 주기 위해 만들어진 서비스 로봇으로, 처음 등장할 때는 감정이 전혀 없는 기계적 존재로 묘사된다. 영화 초반에 등장하는 로즈는 정해진 프로그램에 따라 행동할 뿐, 자신의 존재에 대해 아무런 질문도 하지 않는다. 그는 주어진 임무를 수행하며 동물들에게 여러 차례 도움을 주려 하지만, 동물들은 그를 경계하고 거부한다. 이 과정에서 로즈는 끊임없이 거절당하지만, 그에게서는 실망이나 슬픔 같은 감정은 전혀 드러나지 않는다. 그저 명령을 따라 행동할 뿐인 로즈의 모습은 기계적으로 느껴지며, 감정이 결여된 그의 행동은 차갑게 보이기도 한다.
어느 날, 로즈는 부모를 잃은 아기 새의 알을 발견하고 그것을 돌보게 된다. 하지만 그때도 로즈에게는 아무런 감정이 없다. 단지 알을 보호하고 새끼 새를 키우는 것이 '임무'라고 생각할 뿐이다. 그의 행동에는 사랑이나 애정 같은 인간적인 감정이 개입되지 않으며, 로즈는 자신이 왜 아기 새를 돌보아야 하는지에 대해서도 깊이 고민하지 않는다. 그저 입력된 지시와 학습된 내용을 바탕으로 행동할 뿐이다. 이 모습은 마치 우리가 부모가 되기 전, 아이에 대한 감정이 없는 상태와도 비슷하다. 아이를 돌보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아이에게 어떤 감정을 느껴야 하는지에 대해 생각해본 적 없는 상태에서 로즈는 그저 주어진 임무를 수행한다.
이런 로즈의 무감정은 영화 초반부에서 관객들에게 조금은 어색하고 낯설게 다가온다. 그는 자신이 왜 아기 새를 돌봐야 하는지에 대해 생각하지 않으며, 그저 기계적으로 행동한다. 하지만 이 무감정의 상태는 로즈가 점차 변해가는 과정을 더욱 극적으로 만들어준다. 관객들은 무감정의 로즈가 어떻게 변해갈지, 그리고 그가 어떤 감정을 느끼게 될지를 지켜보게 된다.
[두 번째 감정] 아기 새 브라이트 빌의 따뜻함
아기 새 브라이트 빌(목소리: 키트 코너)은 로즈에게서 깨어난 뒤, 그를 엄마로 인식하게 된다. 이제 막 세상에 나온 아기 새의 입장에서 로즈는 세상의 전부였고, 자연스럽게 그를 따르게 된다. 브라이트 빌은 로즈에게 끊임없이 다가가며 얼굴을 맞대고, 그의 주변을 맴돌며 애정을 표현한다. 이런 아기 새의 행동은 로즈를 당황하게 만들고, 로즈는 왜 브라이트 빌이 자신을 따르는지 이해하지 못한다. 로즈에게는 애정이라는 개념이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며 브라이트 빌과 로즈 사이에는 추억이 쌓이기 시작한다. 브라이트 빌은 로즈에게 의지하며 성장하고, 로즈는 그런 브라이트 빌의 모습을 지켜보며 그의 성장 과정을 함께 한다. 이 과정에서 로즈는 비로소 브라이트 빌의 따뜻함을 느끼게 된다. 처음에는 그저 자신에게 따라오는 존재로만 여겼던 브라이트 빌이지만, 이제는 그의 존재가 로즈에게 중요한 의미가 되어간다. 브라이트 빌의 따뜻한 마음은 로즈를 변화시키고, 그의 행동 하나하나가 로즈에게 새로운 감정을 심어준다.
브라이트 빌과 로즈의 관계는 단순히 로봇과 아기 새의 관계를 넘어선다. 그들은 서로에게 없어서는 안 될 존재가 되어가며, 함께 시간을 보내는 동안 서로를 통해 성장해 나간다. 브라이트 빌의 따뜻함은 로즈에게 감정을 가르쳐주고, 로즈는 그 감정을 통해 진정한 부모로서의 역할을 배우게 된다. 이는 단순히 로봇과 새의 이야기가 아니라, 모든 부모와 아이가 함께 성장해 나가는 과정을 그린 이야기라고 할 수 있다.
[세 번째 감정] 부모의 사랑
시간이 지나며 로즈는 브라이트 빌의 엄마로서의 역할을 완전히 받아들이게 된다. 그는 브라이트 빌에게 수영을 가르쳐주고, 나는 법을 알려주면서 점점 더 부모로서의 책임감을 느끼게 된다. 브라이트 빌이 새로운 것을 시도할 때마다 로즈는 조마조마한 긴장감을 느끼고, 그가 다칠까 걱정하며 지켜본다. 하지만 브라이트 빌이 스스로 해내는 모습을 보면서 로즈는 큰 감동을 받게 된다. 이 순간, 로즈는 자신이 브라이트 빌을 얼마나 사랑하게 되었는지를 깨닫는다.
영화는 로봇인 로즈에게 '사랑'이라는 감정이 생기는 과정을 매우 효과적으로 묘사한다. 로즈는 이제 단순히 입력된 명령을 따르는 기계가 아니라, 진정으로 브라이트 빌을 걱정하고 사랑하는 부모가 되었다. 로봇에게도 사랑이라는 감정이 생길 수 있다는 것을 영화는 하나의 시스템이 추가된 것처럼 표현하며, 그 감정이 어떻게 로즈의 행동과 사고를 변화시키는지를 보여준다. 로즈에게 생긴 이 새로운 감정은 기억으로 남아 지워지지 않으며, 그의 마음속에 영원히 남아 있게 된다.
영화를 다 보고 나면, 결국 이 이야기는 부모의 사랑과 아이를 키운다는 것이 무엇인지를 말하고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로즈는 로봇으로서 감정이 없는 존재였지만, 브라이트 빌을 돌보며 사랑을 배우고, 부모로서 성장하게 된다. 이는 부모가 아이를 키우며 느끼는 감정의 변화와 성장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으며, 모든 부모가 공감할 수 있는 따뜻한 이야기이다.
부모가 되어가는 과정
<와일드 로봇>에서 로즈는 단순히 브라이트 빌을 돌보는 데 그치지 않고, 그의 행복과 안전을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희생하는 부모의 모습을 보여준다. 처음에는 단지 프로그램된 임무로서 브라이트 빌을 돌보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로즈는 브라이트 빌을 위해 스스로를 희생할 줄 아는 존재로 변해간다. 브라이트 빌이 위험에 처할 때마다 로즈는 자신의 몸을 던져 그를 보호하고, 자신이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동원해 그의 안전을 지킨다. 로봇으로서의 본래 목적을 넘어, 로즈는 이제 브라이트 빌의 행복과 안전을 위해 기꺼이 희생할 준비가 된 부모가 된 것이다.
이 과정에서 로즈는 자신이 가진 에너지를 아낌없이 사용하고, 자신의 신체를 소모하면서까지 브라이트 빌을 보호하려 한다. 이는 부모가 아이를 위해 기꺼이 자신의 편안함과 안정을 포기하는 모습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다. 부모는 아이를 키우며 자신의 시간을, 에너지를, 그리고 때로는 자신의 꿈과 욕구까지도 희생하게 된다. 로즈가 보여주는 이러한 희생은 부모가 아이를 키우며 자연스럽게 가지게 되는 마음을 상징적으로 잘 표현하고 있다.
결국, 부모가 된다는 것은 단순히 사랑하는 마음을 갖는 것뿐만 아니라, 아이를 위해 자신의 일부를 희생할 줄 아는 존재가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로즈는 브라이트 빌을 위해 자신의 존재를 희생하며, 이를 통해 진정한 부모로서의 역할을 완성하게 된다. 이 영화는 로즈의 희생을 통해 부모가 되면서 얻게 되는 또 하나의 중요한 마음, 즉 아이를 위해 기꺼이 자신을 내어줄 줄 아는 사랑을 깊이 있게 그려내고 있다. 이는 부모와 아이 사이의 관계가 얼마나 깊고 특별한지를 다시 한 번 상기시켜준다.
영화 <와일드 로봇>은 부모가 된다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려주는 작품이다. 영화 속에서 로즈는 브라이트 빌을 돌보며 다른 동물들과 함께 아이를 키워낸다. 이는 아이를 키울 때 부모뿐 아니라 주변의 도움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것을 강조한다. '한 아이를 키우는 데는 온 마을이 필요하다'는 옛말처럼, 이 영화에서는 숲속에 사는 모든 동물들이 브라이트 빌의 성장과 독립을 위해 힘을 모은다. 그들은 브라이트 빌의 문제를 함께 해결하고, 그의 성장 과정을 지켜보며 돕는다. 이러한 공동체적 지원은 아이를 키우는 데 있어서 중요한 요소이며, 영화는 이를 현실적으로 그려내고 있다.
특히 로즈의 변화 과정은 우리가 부모가 되는 과정과 매우 흡사하다. 아이를 향한 마음, 조바심, 그리고 그 모든 행동들은 부모라면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장면들로 가득하다. 처음에는 감정이 없던 로즈가 브라이트 빌과 함께하면서 점차 감정을 배우고, 사랑을 느끼게 되는 과정은 매우 감동적이며, 관객들에게 큰 울림을 준다. 영화는 처음부터 끝까지 눈을 뗄 수 없을 만큼 감동적이며, 부모와 아이 모두에게 큰 공감을 불러일으킨다. 부모라면 아이와 함께 이 영화를 꼭 보기를 추천한다.
영화의 연출을 맡은 크리스 샌더스 감독은 이번 작품을 통해 로봇과 동물이라는 이질적인 존재들 간의 관계를 매우 따뜻하게 그려냈다. 루피타 뇽오와 키트 코너, 페드로 파스칼 등 배우들의 목소리 연기도 훌륭하여 캐릭터들에게 생동감을 불어넣었다. 이 영화는 드림웍스 스튜디오의 30주년 기념작으로, 가족이 함께 볼 수 있는 감동적이고 의미 있는 작품이다. 부모와 아이가 함께 관람하며 서로의 마음을 이해하고, 성장의 의미를 되새길 수 있는 이 영화는 많은 가족들에게 추천할 만한 가치가 있다.
Relative cont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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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추석연휴 영화 추천 '천박사 퇴마 연구소: 설경의 비밀' 스포일러 포함
천박사 퇴마 연구소: 설경의 비밀
23.09.27 개봉
판타지, 12세 관람가
한국, 98분
원작: 네이버 웹툰 <빙의>
출연: 강동원, 허준호 등
강동원 배우 용안 보는 영화로 유명해진
'천박사 퇴마 연구소: 설경의 비밀'!
인배 역의 이동휘 배우가 여기저기서
어떻게 새벽 6시에도 저런 얼굴일 수 있냐며...
여기저기 퍼뜨린 덕에 저도 얼굴을 기대하고 갔는데
이번엔 벚꽃 날리는 효과 후광 효과 이런 건 없었지만
계속 저(카메라)를 쳐다봐서... 심장 아프더라고요
ㅋㅋ
아! 쿠키 한 개 있어요
엔딩 크레딧 1~2분쯤 나오고 쿠키 보여 주니까 나가지 마세요
뭔가 시즌 2가 나와도 될 법한 내용의 쿠키라서...
시즌 2도 기대해 보겠습니당
시놉시스부터 너무너무 재미있어 보여요
귀신을 믿지 않는 가짜 퇴마사, 근데 당주무당집 장손
결국 귀신을 잡는다는 이야기로 흘러갈 거라
무서운 거 1도 못 보는 저는 겁을 많이 먹었었는데요
15세도 아니고 12세 관람가다 보니까 무서운 장면은 거의 없어요
귀신 얼굴, 눈이 좀 기괴한데 그건 적응만 하면 괜찮고
오히려 사람 손가락 잘리는 게 여러 번 나와서 그게 제일 무서웠어요
솔직히 영화 시작하고 20분? 정도까지
무서운 분위기가 계속 연출돼서 나갈까 진짜 고민했는데
오히려 그 이후가 괜찮더라고요 왜지?
범천이 인간들에 여기저기 빙의해 다니는 장면이 있는데
유치해 해보이다가도 또 재미있고
사람들이 각기 다른 무기를 들고 천박사를 공격하는 게 재미있고요
천박사는 하나도 안 다치고 다 막아내는 게 또 웃기더라고요
미스터리, 판타지, 퇴마, 스릴러 등의 장르를 가지고 있지만
일단 이동휘 님이 껴 있다는 건
코미디를 포기하지 않는다는 말이기 때문에 (??)
코미디 3분의 1, 판타지 3분의 1, 스릴러 3분의 1 같아요
아마 추석 연휴 개봉할 영화들 중에서
캐릭터, 스토리, 연출 삼박자가 가장 잘 맞는 영화 아닐까 싶은데요
귀신을 못 보지만 기가 막힌 칼을 가지고 있는 천박사와
귀신 들린 동생을 구하고 싶은 귀신 보는 유경을 붙임으로 인해
캐릭터가 가야 할 길이 확실해졌고
범천이 결국 설경에 봉인될 거라는 걸 시청자 모두 알고 있지만
어떤 방식으로 봉인될지를 기대하는 거잖아요?
98분간 CG가 유치하지 않았던 적이 거의 없었는데
유일하게 엔딩에서 설경이 열리고 닫히는 거긴 최고였던 거 같아요
약간 디즈니 거울 나라의 앨리스 재질?
그에 반해 연출은 사알짝 유치했지만,,,
윤병희 박경혜 배우님께서 유치하지 않게
범천의 옆에서 잘 끌어 주신 것 같아요
솔직히 박경혜 님 손가락 잘리기 전 열연이 다 살림 . . .
박소이 배우 원래 여기 잘하는 건 알았지만
귀신 들린 연기 하는 건 처음 보는데요
눈빛이 정말 무섭고 말하는 게 귀에 착착 붙더라고요
진짜 대박적임......
내로라하는 대배우들 사이에서
박소이 배우 연기가 제일 눈에 띄었던 것 같아요 짱짱
기생충 부부, 조이현 배우, 박정민 배우
그리고 블랙핑크 지수 님까지
다양한 분들이 카메오로 나오셔서 더욱 즐길거리가 풍부했습니다
특히 박정민, 지수 나오는 부분이 기억에 남는데요
박정민 님의 신들린 연기와 지수 님의 신들린 미모......
*스토리: 5/5점
*연출: 5/5점
*영상미: 3/5점
*OST: 1/5점
*연기: 5/5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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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쾌하고도 진솔한 러브
유쾌하고도 진솔한 러브
영화 <엘리멘탈>
감독] 피터 손
출연] 레아 루이스, 마무드 애시, 웬디 맥렌던 커비, 메이슨 베르트하이머
시놉시스] 불, 물, 공기, 흙 4개의 원소들이 살고 있는 ‘엘리멘트 시티’ 재치 있고 불처럼 열정 넘치는 ‘앰버'는 어느 날 우연히 유쾌하고 감성적이며 물 흐르듯 사는 '웨이드'를 만나 특별한 우정을 쌓으며, 지금껏 믿어온 모든 것들이 흔들리는 새로운 경험을 하게 된다.
#스포일러 유의#
이민자의 이야기를 담다영화 엘리멘탈은 불 속성을 가진 엠버의 가족이 엘리멘트 시티로 이주를 하면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엘리멘트 시티에서 물, 흙, 공기 원소들은 평화롭게 그들의 생활을 영위하며 살아가고 있었다. 이곳에 불들이 이주를 오면서 엘리멘트 시티 외곽에 불의 집성촌(?)을 만들어 생활하기 시작한다.
초반 그들이 이주를 할때는 어느 누구도 그들을 따뜻하게 대해주는 이들이 없었다. 불의 속성상 화르륵 주변을 태우기 때문에 그들을 두려워하고 낯선 존재로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집을 렌트할 수 없었던 그들은 엘리먼트 시티 외각에 아무도 살지 않는 쓰러지기 일보 직접의 집을 구해 그곳을 보금자리로 택한다. 엄청난 노력을 들여서 집다운 집을 만들고, 불들이 살아가는데 필요한 다양한 식량과 자재들을 팔면서 점차 불들이 살아갈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 나간다.
엘리먼트 시티 내에 한 공간에 자리잡긴 했지만 엘리먼트 시티에서 함께 어울린다기 보다는 그저 한 공간에서만 그들이 살아가고 있음을 지속적으로 보여준다. 기존 엘리멘트 시티와의 보이지 않는 경계가 있는 것처럼 말이다. 이는 아무래도 이민가정들이 항상 느끼는 감정을 표현한 것이 아닐까 싶다. 같은 나라에서 같은 언어를 쓰고 있지만 그 뿌리가 다르다는 이유로 완벽하게 어울리기 힘들다는 모습을 이렇게 서로 다른 성질을 가닌 4원소 중 가장 대립적인 불을 통해서 이민가정의 모습을 잘 보여주고 있었다.말하지 않으면 모르는 것
영화를 보는 내내가 가장 안타까웠던 것은 엠버와 그녀의 아빠 버니의 반목이다. 그 둘은 서로를 너무나 사랑하지만 너무나 사랑하여 서로를 오해하고 있는 부분이 있었다. 아빠 버니는 가게를 계속해서 이끌어오면서 이 가게를 딸 엠버에게 물려주고자 한다. 하지만 아직 너무나도 다혈질인 엠버에게 넘겨주기에는 때가 이른 것 같아서 더 성장하면 이 가게를 물려주고자 한다. 그런 아버지의 뜻을 이어받아 엠버 역시 가게를 물려받는 것을 꿈으로 생각하지만 정작 마음 속 깊은 곳에서는 이를 거부하고 있었다.
이러한 엠버의 정체성을 일깨워주는 존재는 바로 물 '웨이드'다. 다른 이들이 불인 엠버를 무섭고, 다른 존재로 인식하며 거리를 둔다면 웨이드는 엠버를 전혀 편견없이 있는 그대로의 원소로 봐준다. 버니의 가게가 그동안 법을 어기면서 운영을 한 것을 적발하고 공무원으로서 이를 시청에 고발하지만 버니와 엠버의 사정을 알고 진심으로 이를 도와주고자 노력한다. 그 과정에서 엠버에게 투명하고도 강한 유리를 만들어낼 수 있는 능력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고, 웨이드는 그런 그녀에게 꿈을 찾아가라며 응원을 해준다.하지만 엠버는 자신을 키우기 위해 이제까지 희생을 한 부모님을 져버릴 수 없었다. 웨이드에게 모진 말을 해가며 가게로 돌아가지만 그 과정 속에서도 엄청난 내적 갈등을 겪는다. 서로가 원하고 있는 것을 명확히 얘기하지 않고, 내가 이걸 사실대로 말하면 상대방이 상처를 입을까봐 걱정하는 마음에, 그 사랑이 너무나도 큰 나머지 계속해서 자신에게 상처를 입히면서 버니와 엠버는 서로를 대하고 있었다.
결국 대홍수 속에서 엠버와 버니는 가게는 수단일 뿐 자신의 꿈도 목표도 아니라는 것을 서로가 알게 되면서 그동안 오해했던 묵은 감정을 풀어낸다. 아무리 가족이라도 서로에게 자신의 마음을 직접적으로 알려주지 않으면 지레 짐작을 할 수밖에 없고, 그 속에서 오해는 계속해서 커지게 된다. 자신의 마음을 솔직하면서도 건강하게 서로에게 이야기할 수 있는 것이 결국에는 서로에게 상처를 주지 않으면서 사랑할 수 있는 방법이 아닐까 싶다.다른 원소들의 이야기는 어떨까?
영화 엘리멘탈은 4원소의 이야기 중에서도 물과 불의 이야기를 중점적으로 다루고 있다. 다른 공기와 흙은 조연급이랄까? 물과 불의 이야기에서 다름과 이민가족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냈던 것 처럼 과연 다른 원소 공기와 흙의 이야기는 또 어떻게 풀어낼 수 있을지 혼자서 기대를 하게 되는 작품이었다.
사실 현실세계에서도 불은 다른 원소들과 그리 좋은 합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다. 불은 나무를 태우고, 공기를 뜨겁게 가열시키는 존재니 말이다. 물과 불처럼 서로 상극은 아니더라도 나무와 공기 역시 서로에게 유익하게 무언가를 주고 받는다는 느낌은 아니다 보니 과연 다른 원소들과는 어떤 이야기를 풀어낼 수 있을지 궁금한 부분이 있었다. 그래서 엘리멘탈 2가 나와서 1에서는 조연급에 불과했던 흙과 공기의 비중이 높아져서 그들과의 관계성에 대해서도 보다 풍족하게 이야기가 펼쳐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영화 엘리멘탈은 이민가정에 대한 이야기와 함께 한 가족의 사랑 방법에 대해서 유쾌하면서도 진솔하게 다루고 있는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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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JEONJU IFF 데일리] 기억의 파편을 통한 연대와 마음
여름의 카메라 Summer's Camera
Korea | 2024 | 83min | Fiction | 전체관람가 | Asian Premiere
▶Director
성스러운 Divine SUNG
▶Cast
김시아 이은솔 유가은 배영란 곽민규
▶시놉시스
아빠를 따라 사진을 찍던 여름은 아빠가 세상을 떠난 후, 카메라에서 손을 놓게 된다. 그런 여름이 축구부 에이스인 연우에게 첫눈에 반해 고등학교 때 아빠가 쓰던 카메라로 홀린 듯 사진을 찍는다. 필름을 현상하자 그 속에는 고등학교 시절 아빠가 찍은 것으로 보이는 사진들이 있다. 여름은 사진들 속에서 아빠의 비밀을 보게 된다. 과연 여름은 첫사랑을 이루고 아빠의 비밀을 파헤칠 수 있을까?
#기억의 파편을 통한 연결
사진은 찰나의 순간을 포착하는 기억의 파편이자 그중에서도 필름은 직접 감각 할 수 있다는 점에서 보이지 않는 기억을 전달할 수 있는 물질이다. <여름의 카메라>는 그런 기억의 파편을, 어느 ‘여름’의 기억을 순수하고도 아름다운 청춘의 한 장면으로 보여준다. 돌아가신 아버지의 필름 카메라를 이어서 사용하는 여름은 현상을 통해 그동안 알지 못했던 아빠의 시선을 마주하게 된다. 여름의 사랑은, 그리고 여름이 마주하는 아빠의 사랑은 필름과 참 닮아있다. 여름이 마주하게 되는 아빠의 사랑은 뜨거웠던 그의 계절 중 일부일 뿐이고, 그 사랑의 주인인 아빠는 돌아갈 수 없는 과거의 기억처럼 더 이상 마주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 기억의 파편은 이제 필름이라는 물질을 통해 딸 여름에게 전해져 그녀의 관점에서 새로이 감각되고, 재생될 뿐이다.
기억의 파편, 감각되는 물질을 통한 이러한 연결은 <여름의 카메라>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 재일조선인이나 조선인과 같은 디아스포라의 기억이나 홀로코스트의 기억처럼 역사적 기억이 후세대로 전승되는 과정에서 중요히 언급되고 있다. 시간이 지나 기억의 당사자, 체험의 당사자가 사라졌을 때 그 기억은 어떻게 기억될 수 있을까? <여름의 카메라>와 함께 전주국제영화제에서 상영 중인 임흥순 감독의 <기억 샤워 바다>에서는 ‘옷’을 통해 디아스포라로서의 한 사람의 삶이 후대로 전승되고 있고, 작년에 국내에서 개봉한 <클로즈 유어 아이즈>에서는 영화 필름이 과거 단절된 영화와 인물을 이어주고 있다. 그리고 <여름의 카메라>에서 여름은 필름을 통해 아빠와 이어지고, 새로운 인연과 연결된다. 그렇게 아빠가 쓰던 여름의 카메라는 하나의 매개로서 여름을 곳곳으로 연결하고 그녀의 일상에 스며든다.
#매개체로서의 필름과 여름의 연대
<여름의 카메라> 속 인물들은 서로의 존재를 인정하며 끈끈하게 연대하는데, 그들이 서로에게 다가가고자 애썼다기 보다 그들의 첫 만남은 모두 의도치 않은 우연함으로 시작된다. 여름은 우연히 축구부 연우를 만나 셔터 소리가 들리는 듯한 설레는 감정을 느끼고, 필름을 현상하여 의도치 않게 보게 된 사진에 의해 아빠의 과거 기억과 마주하게 되며, 그 기억을 따라가다가 마루를 만난다. 그리고 이런 우연한 만남은 따뜻한 연대로 이어진다. 이때 여름의 중요한 매개체는 ‘필름 카메라로, 여름이 사진을 찍어주고 현상하고, 그 실물을 다시 누군가와 나누는 과정을 직접 실천하며 인물들과 그녀의 관계는 점점 가까워진다.
<여름의 카메라>에서 필름이 인물들 사이를 연결하고, 단절된 무언가와 이어주는 매개체로 작용하고 있는 것처럼, 여름의 커밍아웃과 정체성 또한 작품 속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는데, 그것은 인물들 간의 관계를 더욱 끈끈하게 하는 계기가 된다. 여름이 가장 가까운 절친인 민정에게 자신이 여자를 좋아한다고 고백할 때, 민정은 이미 그에 대해 알고 있다고 답하며, 여름의 정체성을 자연스럽고 일상적인 것으로 받아들이고, 그녀의 존재 자체를 존중하고 지지하는 모습을 보인다. 한편, 현상된 사진 덕에 마루에게는 의도치 않게 첫 만남부터 연우를 좋아한다는 사실을 밝히게 되는데, 이것은 당혹스럽거나 난처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마루와 공통분모를 형성함으로써 그와 더욱 가까워지고 친밀해지는 계기가 되고, 여름 자신 또한 자신의 감정을 있는 그대로 느끼고 수용함으로써 연우와 마음을 트고 가까워지게 되는 것이다.
이처럼 <여름의 카메라>에서 여름의 정체성은 인물들 간의 연대를 더욱 견고하고 단단히, 친밀하게 만드는 것이 되고, 그들은 서로를 있는 그대로 존중하고 지지하는 모습을 보인다. 그들은 때로는 함께 성장하는 친구가, 때로는 유일하게 고민을 나눌 수 있는 동지가 되며 다양한 형태로 연대하고, 함께 성장하며 순수하고도 뜨거운 계절을 함께 보낸다, 그리고 이것은 우리에게 새로운 연대의 가능성과 다양한 형태의 연결을 꿈꾸게 한다.
감독은, 5/5일 진행된 <여름의 카메라> GV에서 ‘밝은 퀴어 영화’를 만들고 싶었다고 밝힌 바 있다. 그러한 점에서 <여름의 카메라>는 감독님이 목표하신 바에 아주 부합하는 영화가 아닐까 생각한다. 영화의 푸르른 배경과 따스한 색감은 주인공들의 통통 튀는 말투와 어우러져 햇살 같은 그들의 청춘을 돋보이게 하고, 인물들이 내뱉는 툭툭 내뱉는 진솔한 마음들은 숨기거나 걱정하고, 끙끙 앓아야 할 것이 아니라 가까운 이와 나눌 수 있는 것, 해결될 수 있는 것으로 제시됨으로써 인물의 성장과 미래를 향한 여정에 기여한다. 여름의 사진처럼 그들의 사랑과 아픔, 청춘과 우정은 이내 지나가 붙잡을 수 없겠지만, 그들이 나눈 설렘과 기억은 이 영화를 통해 그들에게, 그리고 관객들에게 오래도록 남을 것이라 생각한다.
▶제 26회 전주국제영화제
2025. 4. 30. ~ 2025. 5. 9.
▶상영일정
2025. 05. 03 (토) 메가박스 전주객사 3관 17:00 (GV)
2025. 05. 05 (월) 메가박스 전주객사 3관 14:00 (GV)
2025. 05. 06 (화) 메가박스 전주객사 3관 2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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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엇이 우리를 지켜줄 것인가?
해당 리뷰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여우가 범의 허리를 끊었다.” <파묘>의 초반부를 이끄는 동력은 미국 한인 재벌의 핏줄에 흐르는 저주다. 저주를 따라 이름 없는 묘를 파헤치며 증오에 찬 혼령을 깨운 영화는 의미심장한 대사를 기점으로 장르적 변환을 시도한다. 한국의 오컬트 영화를 책임지고 있는 장재현 감독은 무덤과 혼령의 공포에서 한걸음 더 나아간다. 무덤이 위치한 범의 허리를 팔수록 묻혀있던 한반도의 뿌리 깊은 역사가 드러난다.
핏줄의 영향에서 벗어날 수 있는 사람은 없다. 상황에 따라 이 사실은 축복이기도, 저주이기도 하다. 미국과 한국에 소유하고 있는 부동산으로 큰 부를 이룬 LA의 한인 재벌에게 유전병이 발병한다. 가문에 이어진 부유함은 축복이지만 핏줄을 타고 내려온 광기와 죽음의 그림자는 피할 수 없는 저주다. 저주에서 벗어나기 위해 박지용(김재철)은 불신을 무릅쓰고 무당 화림(김고은)에게 의뢰를 부탁한다.
보이고 만질 수 있는 환한 빛의 세계와 그림자에 숨어있는 어둠의 세계. 그 경계에 무당 화림이 있다. 불신이 놀라움으로 바뀌는 얼굴을 보며 속으로 비웃음을 감추는 이 젊은 무속인은 빛의 세계로 삐져나온 어둠의 것들을 능숙하게 다루고 해결한다. 지용의 아기를 보고 묫바람, 즉 대대로 이어진 유전병의 원인이 선대의 묫자리에 있다고 진단한 화림은 지관 상덕(최민식)을 찾는다. 돈 있는 자들의 묫자리를 봐주며 “땅을 팔아먹고” 사는 상덕은 하늘과 땅의 이치와 만물의 순환을 읽는 풍수사다. 죽은 사람의 자리가 좋지 않다면 묘를 이장해야 한다. 막대한 돈이 걸린 이장을 위해 장의사 영곤(유해진)까지 합세해 무속인 화림과 조수 봉길 그리고 풍수사 상덕은 힘을 모은다.
산 깊은 곳, 산세가 탁 트여있지만 여우가 많고 어쩐지 그늘이 진 곳이 의뢰인 박지용의 조부가 묻힌 자리다. 친일로 부와 지위를 얻은 박지용의 조부는 “악지 중의 악지”에 묻혀 있었고, 그 한은 젖과 꿀이 흐르는 미국에 사는 후손들에게 영향을 끼치고 있었다. 화림과 봉길 그리고 상덕과 영근이 힘을 합쳐 굿과 이장을 동시에 진행하지만, 관은 열리고 증오만 남은 혼은 현실에 손을 뻗친다. 나라를 팔아 100년 넘게 부와 명예 그리고 조부의 증오에 찬 저주를 이어받은 후손들은 목숨으로 대가를 치른다.
조부의 관 아래 묻혀 있던 수직으로 세워진 거대한 관이 드러나며 범의 허리를 자른 여우의 정체가 밝혀진다. 두 번째 관의 등장은 영화가 다루는 시간의 범위를 500년으로 확장시킨다. 신기가 없는 사람일지라도 진저리를 칠만큼 께름칙한 위용을 자랑하는 관에 봉인돼 있던 것은 일본의 정령 ‘오니’다. “험한 것”의 존재가 구체적으로 드러날수록 초자연적이고 형이상학적인 미스터리에서 오는 공포는 줄어든다. 조부의 혼이 유리창을 통해 흐릿한 형상을 인지할 수 있는 무언가였다면, 500년 이상 묵은 장군의 정령은 그림자와 육체를 지니고 간을 빼먹는 구체적인 형상의 괴물이다. 장재현 감독은 정체를 알 수 없는 무언가가 아닌 압도적인 무언가로 두려움을 자아내기 시작한다. 자신을 ‘전쟁의 신’이라 부르는 이 존재는 ‘두려움’ 그 자체다. 원한을 품고 성불하지 못한 혼이 아니라 죽음을 먹고 자란 두려움의 실체화다. ‘오니’는 자신의 부하가 될 것을, 두려움에 무릎 꿇고 복종할 것을 요구한다. 한번 두려움에 굴복했던 화림은 봉길을 잃을 뻔한 위기를 겪고 자신의 지켜줄 존재를 대동한다. 무당 화림이 모시는 ‘할매’ 앞에서 오니는 승탑에서 그러했듯 불의 형상이 되어 도망간다.
<파묘>는 끊을 수 없는 연결과 순환의 고리 위 인간의 모습을 보여준다. 핏줄, 신 그리고 땅과 하늘의 모든 것이 우리를 둘러싸고 있으며, 과거부터 쌓아 온 역사는 미래로 이어진다는 것을 주지 시킨다. 신내림을 받아야만 하는 무속인에게 신이란 거부할 수 없는 핏줄과도 같다. 하늘과 땅의 이치를 아는 풍수사는 순환의 원리를 외면할 수 없다. 화림이 할매의 비호를 받고 상덕이 음양오행의 이치에서 길을 찾듯, 일본의 두려움에 굴복해 영혼을 바친 박씨 가문은 저주에 떠안을 수밖에 없다. 이들이 선택한 것은 곧 일본 오니와의 연결이기 때문이다. <파묘>는 한반도라는 땅과 연결된 애국지족의 마음이 민족을 배반한 반역자와 침략자들을 뿌리 뽑는 영화다. 땅에 새겨진 역사는 잊혀지지 않는다.
범의 허리, 즉 한반도의 허리를 끊으려는 일본의 책략을 막기 위해 ‘철혈단’은 땅의 말뚝을 뽑는다. 상덕은 그들의 이름이 새겨진 나무와 자신의 피로 불타는 칼을 격퇴하는 데 성공한다. 땅의 기운을 읽는 자의 피와 역사를 지켜낸 이름들로 불타는 철이 자아내는 두려움은 격파된다. 작은 태양 같은 동그랗고 빨간 도깨비불의 모습은 일장기를 연상시킨다. 그러니 상덕이 음양오행의 이치로 오니를 물리치는 것은 일장기를 음양이 조화된 태극기가 베어내는 것과 다름없다. 현대 한국 영화사의 맥락에서 보면 <명량>의 이순신(최민식)과 <영웅>의 설희(김고은)가 (윤)봉길과 함께 일본 장군을 격퇴하는 것이다.
영화를 본 뒤 ‘우리 조상님들은 잘 묻혀 계신지’ 걱정되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땅과 하늘의 기운을 살피고 망자에게 예의를 다하는 한국인이라면 모든 것이 연결되어 있음을 무의식 중에 알고 있는 것이다.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 지금 이 땅을 딛고 선 우리도 언젠가는 역사의 일부가 된다. 수 천년 이어진 민족의 역사뿐 아니라 미래로 이어질 역사도 잊어서는 안 된다. <파묘>의 시작과 끝에는 새로운 시대의 생명이 있다. 박씨 가문의 갓난아기에서 시작한 여정은 상덕의 딸과 배 안의 아기를 축복하는 결혼식으로 끝난다. 장재현 감독은 역사에 축적된 불의를 심판하며 미래의 세대로 희망을 넘긴다. 박씨 가문의 장손들과 악한 역사를 함께 해 온 어머니는 죽었지만 며느리와 아이만은 살아남았다. 어쩔 수 없이 이어져 내려온 친일의 역사를 이어받은 아이를 용서한다. 이제 아이는 무엇과 연결될지 선택해야 한다. 과거의 사람들은 새로운 세대에게 무엇을 물려줄 것인가. 현재의 우리는 무엇을 선택할 것인가. 어떤 선택을 내리든 거대한 역사와의 연결을 피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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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메뚜기 월드'가 된 <쥬라기 월드 3>의 의미와 한계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공룡들의 터전이었던 이슬라 누블라 섬이 파괴되고, 섬을 벗어나 세상 밖에 자리 잡은 공룡들. 세계가 혼란에 휩싸인 가운데 '오웬(크리스 프랫)'과 '클레어(브라이스 달라스 하워드)'는 공룡들을 보살피고, '메이지 록우드(이사벨라 써먼)'를 지키기 위해 작은 오두막을 떠나지 않는다. 그러던 어느 날, 복제 인간 연구를 진행하려는 기업 '바이오신'에 의해 메이지가 납치당하고, 오웬과 클레어는 메이지를 구하기 위한 여정에 나선다. 한편, 미국 서부에 나타나 농가들을 휩쓸고 다니는 거대한 메뚜기 떼를 조사하던 '엘리 새틀러(로라 던)'는 오래된 친구 '앨런 그랜트(샘 닐)'과 함께 메뚜기들이 바이오신의 유전자 조작으로 만들어졌음을 깨닫는다. 이에 엘리와 앨런은 그 증거를 확보하기 위해 과거의 동료인 '이안 말콤(제프 골드브럼)'의 도움을 받아 공룡들이 모여 있는 바이오신 소유의 보호구역으로 향한다.
<쥬라기 월드: 도미니언>은 1993년에 개봉한 <쥬라기 공원>을 시작으로 29년간 이어진 시리즈의 마지막 작품이다. 그래서 <쥬라기 월드> 삼부작의 주인공인 크리스 프랫과 브라이스 달라스 하워드부터 <쥬라기 공원> 삼부작의 주인공인 로라 던, 제프 골드브럼, 샘 닐까지 한 자리에 모여 피날레를 장식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피날레를 가장 화려하게 꾸며주는 이들은 역시나 공룡이다. 전편에서 이슬라 누블라를 탈출해 북미 대륙에 상륙한 공룡들은 이제 어디에서나 볼 수 있다. 항상 공원이라는 장소에 갇혀 있었던 공룡들은 이제 바다에서도, 눈 내리는 산맥에서도, 소들이 뛰어놀던 평원에서도, 심지어 암시장에서도 나타난다.
그런데 이번 영화에서는 한 가지 독특한 지점이 있다. 언제 어디서나 공룡을 만날 수 있는 세상을 배경으로 만들어 놓고도 영화는 정작 공룡에게 큰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 이번 작품에서 세상을 위기에 몰아넣은 것은 온갖 곳으로 퍼져 나간 공룡이 아니라 유전자 조작 메뚜기 떼이고, 영화의 메인 플롯도 유전자 조작 메뚜기를 개발한 기업인 바이오신을 고발하는 것이다. 이처럼 공룡이라는 소재에 국한되지 않는 대목은 긴 시리즈에서 반복되던 메시지를 탈피해 새로운 화두를 던지며 일견 <쥬라기 월드: 도미니언>만의 개성처럼 느껴진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진한 아쉬움이 남는 대목이기도 하다. 시리즈의 진정한 주역인 공룡의 임팩트가 약해지고, 시리즈의 마무리로서도, 또 단독 작품으로서도 완성도가 기대에 미치지 못한 결정적인 원인이기 때문이다.
<쥬라기 공원> 시리즈의 주제와 메시지
그간 <쥬라기 공원> 삼부작과 <쥬라기 월드> 1편의 주제는 분명했다. 인간의 기술적 진보에 대한 경고였다. 공룡이라는 환상 속에는 윤리 없이 유전공학을 상업적으로 이용하는 거대 기업들에 대한 비판, 돈과 명예를 좇아 경쟁적으로 발전할 뿐 자기 통제가 이루어지지 않는 현대 과학에 대한 경고, 인간이 자연을 제어한다는 것은 혼돈 효과에 의해 불가능하다는 통찰이 담겨 있었다. 이는 오리지널 삼부작에서 쥬라기 공원이 끝내 실패로 귀결되고, 성공적인 듯 보였던 쥬라기 월드마저 폐장해야 했던 공통의 원인이었다.
그러나 전편인 <쥬라기 월드: 폴른 킹덤>부터 시리즈는 기본적인 뼈대는 간직한 채 주제를 조금씩 확장시키기 시작했다. 화산이 폭발하며 파괴되는 이슬라 누불라 섬에서 공룡들을 구하기 위해 악전고투하는 오웬과 클레어의 이야기를 담은 전편은 두 개의 축으로 구성되었다. 인간과 동물의 교감이 한 축이고, 다른 생명의 흥망성쇠에 인간의 개입이 어디까지 허용될 수 있는지에 대한 질문이 다른 한 축이었다.
<쥬라기 월드: 도미니언>도 마찬가지다. 콜린 트레보로우 감독의 인터뷰에서 시리즈를 관통하는 주제 위에서 새로운 질문을 던지고자 하는 의도를 엿볼 수 있다. 그는 “이슬라 누블라 섬에서 데리고 나온 공룡들을 더 큰 세상 속에 풀어놓게 된 거예요. 그것의 결과를 탐험해 볼 수 있는 정말 멋진 기회였습니다. <쥬라기 월드: 도미니언>은 우리가 자연계의 힘을 존중해야 할 필요가 있다는 것을 말하는 영화입니다"라고 영화의 주제를 설명한다. 특히 '자연계의 힘'이라는 말은 영화가 공룡들이 일으키는 문제보다 거대한 메뚜기들이 일으키는 문제에 더 집중한 이유를 암시한다. 이제 <쥬라기 월드>는 단순히 공룡, 그리고 공룡과 인간의 공존을 넘어서서 인간과 공룡까지도 포함하는 쥬라기 '월드', 곧 공룡이 사는 '세계' 그 자체로 시선을 돌린다.
정치생태학적 메시지가 돋보이는 변화
<쥬라기 월드: 도미니언>의 변화에서는 미국의 정치 철학자인 제인 베넷의 그림자가 짙게 느껴진다. 정치생태학자인 그녀는 자연과 물질도 인간처럼 세계의 변화에 반응하는 적극적이고 능동적인 주체라는 주장한다. 그간 인간은 오직 인간만이 의지와 목적을 갖고 주변에 존재하는 환경, 사물, 비인간 생명체를 이용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베넷에 따르면 비인간 행위자에게도 인간처럼 의지와 목적을 가진 채 행동할 수 있는 잠재력이 있고, 비인간 행위자는 인간 행위의 방향성도 바꿀 수 있다. 인간은 식물, 동물, 무생물, 자연의 집합체로 이루어진 네트워크에 속해 있고, 인간의 모든 행위는 매 순간 사물과 결합해 효과를 일으키는 것이다. 인간의 문화가 자연과 뒤얽혀 활기차게 반응한 결과이듯이, 인간의 의도 역시 거대한 비인간 행위자인 자연과 환경을 만나 실현된다.
거대 메뚜기의 등장도 정치생태학적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바이오신은 유전자 조작으로 만든 곡물 종자들을 배포하고, 비대한 메뚜기 떼를 개발해 식량 공급망을 혼란시킨 후 식량 산업을 지배하려는 계획대로 움직이고 있었다. 하지만 바이오신의 계획은 뜻대로 진행되지 않는다. 메뚜기들 역시 그 계획에 반응하여 능동적으로 움직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자신의 계획이 탄로 날 것을 우려한 바이오신의 CEO '도지슨(캠벨 스콧)'은 증거 인멸을 위해 키우고 있던 메뚜기 떼를 모두 소각 처분한다. 그러나 예상하지 못한 수준으로 질긴 생명력을 지닌 메뚜기들은 연구실을 탈출해 공룡이 거주하는 숲 전체에 불을 퍼뜨리며 도지슨의 의도와는 정반대의 상황을 초래한다. 이는 인간의 모든 행위가 비인간 행위자의 의도와 반응과 만난 후에야 비로소 결과를 낳는다는 점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즉, 전편이 다른 생명체의 세계에 인간이 주체로서 어떻게 개입할 지에 주목했다면, <쥬라기 월드: 도미니언>은 한 발 더 나아가 인간과 비인간의 네트워크가 움직이는 방식을 비춘다.
영화는 이처럼 복잡하게 연결된 인간과 비인간이 서로 정동(affect)하는 모습을 감정적으로 그려내기도 한다. 그 중심에는 오웬과 벨로시랩터 '블루'가 있다. <쥬라기 월드> 시리즈에서 오웬과 블루의 관계는 항상 특별했다. 비록 누구도 쉽사리 공감하거나 이해하지 못했지만, 오웬은 언제나 블루를 조련할 방법은 없으며 그저 그의 선택과 행위를 존중할 수 있을 뿐이라고 말했다. 즉, 오웬과 블루는 동등한 주체로서 관계를 맺고 있으며, 인간과 공룡의 관계를 넘어 인간과 비인간의 관계를 상징한다. 그리고 이들의 관계는 세상을 바꾸는 결정적 기제가 된다. 바이오신이 새끼인 베타를 납치하자 극도로 난폭해진 블루. 그런 블루에게 오웬은 메이지와 함께 베타도 구해오겠다고 약속한다. 이후 그의 약속에 예상치 못한 유전자 조작 메뚜기 사태가 더해진 결과 바이오신의 악행은 온 세상에 공개되고, 공룡들에게는 삶의 터전이 생기며, 블루와 오웬은 각각 가족을 되찾는다. 메이지와 베타의 관계가 오웬과 블루처럼 진전되는 것은 덤이다. 이렇게 <쥬라기 월드: 도미니언>은 공룡에 국한되지 않는 상상력을 통해 자연계의 힘에 대한 메시지를 전달한다.
매력도, 비중도 없는 공룡들
문제는 공룡으로 인해 변화한 세계와 인간에 대해 이야기하다 보니, 정작 시리즈의 주역인 공룡의 매력과 비중이 모두 급감한다는 점이다. 실제로 작중 공룡들은 전개에 따른 부속품 정도로 묘사된다. 이는 지난 시리즈에서 다양한 공룡들을 지속적인 등장시키고, 그들의 독특한 행동양식을 부각하며 개성을 어필해왔던 것과는 대비를 이룬다. <쥬라기 월드>에서 비정상적인 흉포함으로 강렬한 인상을 남겼던 인도미누스 렉스, <쥬라기 월드: 폴른 킹덤>에서 생물병기로 길러졌던 인도랩터처럼 존재감을 과시하는 공룡을 찾아볼 수 없다. 대신 공룡들은 공룡 암시장이 있는 몰타에서, 하늘에서, 얼어붙은 댐 위에서, 그리고 지하 터널 등에서 주인공들의 길을 가로막는 장애물의 역할을 하는 데 그친다.
구체적으로 보면, 스토리 진행에 결정적 영향을 끼치는 블루만 하더라도 그 중요성이나 비중과는 별개로 시작과 끝에 겨우 모습을 비추는 데 그친다. 시리즈의 마스코트라고 할 수 있는 티라노사우루스 '렉시'의 대우도 다르지 않다. 첫 등장부터 마지막 액션씬까지 기가노토사우루스의 힘에 밀려 시종일관 제대로 싸우지 못하던 렉시의 모습은 시리즈의 상징에게 기대했던 것과는 거리가 멀다. 렉시가 다른 공룡과 협력하면서까지 기가노토사우루스를 쓰러뜨려야 하는 이유가 설명되지 않다 보니 렉시의 등장에는 반가움과 의문이 공존하기도 한다. 빌런 포지션에 가까운 기가노토사우루스 역시 평범한 육식 공룡에 불과할 뿐, 뇌리에 각인될만한 캐릭터성을 어필하지는 못한다. 심지어 후반부 공룡들의 액션씬에서 카메라가 공룡보다 싸우는 현장을 탈출하려는 인간에게 포커스를 맞추다 보니 이들의 존재감은 안타깝게도 더욱 줄어든다.
피날레로서도, 독립 작품으로서도 아쉬운 완성도
이에 더해 시리즈의 최종장으로서 <쥬라기 월드> 3부작과 <쥬라기 공원> 3부작을 모두 아우르려는 시도가 크게 성공적이지 못한 나머지 영화의 메시지가 묻히는 듯한 인상도 남는다. <쥬라기 월드: 도미니언>은 크게 세 개의 스토리로 구성되어 있다. 첫 번째는 오웬과 클레어, 그리고 케일라가 바이오신에게 납치된 메이지를 찾아 떠나는 이야기다. 두 번째는 엘리 새틀러 박사와 앨런 그랜트 박사의 이야기로, 그들은 거대한 유전자 조작 메뚜기와 관련된 진실을 찾아 바이오신 보호구역으로 향한다. 마지막은 도지슨의 음모를 저지하려는 이안 말콤 박사와 램지 콜의 서사다. 서로 다른 세 개의 스토리는 제각기 진행되다가 3막에 이르러 하나로 합쳐지고, 다양한 오마주를 통해 시리즈를 하나로 종합한다.
그러나 이러한 시도는 역으로 독립된 작품으로서의 완성도를 하락시키는 결과를 초래한다. 우선 세 개의 이야기를 묶기 위한 작위적인 전개가 눈에 들어온다. 예를 들어 바이오신 건물에서 탈출한 엘리, 앨런, 이안 일행의 차는 숲 한가운데서 전복되는데, 이 사고는 때마침 오웬과 클레어가 있는 바로 그 장소에서 일어난다. 또 복제 인간인 메이지를 세 스토리의 교집합으로 활용하는 것 역시 영화의 잠재력을 온전히 살리지 못한 선택처럼 보인다. 전편에서 미처 다 공개되지 않았던 메이지의 과거사는 원본과 복제본의 가치에 관해 깊이 있는 스토리텔링을 가능케 하는 극적 장치다. 그러나 메이지의 개인사를 철저히 가족애와 모성애를 강조하는 감정적 측면에만 제한한 결과, 그녀의 이야기는 다소 평범한 방식으로 소비되고 만다. 두 시리즈의 캐릭터들을 하나로 묶어서 시리즈의 전통도 살리고 향수도 고취하려던 선택이 부메랑이 되어 돌아온 셈이다.
마지막으로 다루고자 하는 바가 많다 보니 147분의 러닝타임에도 불구하고 조연급 캐릭터들의 동기를 설명하는 데 있어서 어려움을 겪는다. 제법 비중이 있는 조연인 '케일라 와츠(드완다 와이즈)'나 '램지 콜(마무드 아티)'만 해도 배경 설명이 없다. 케일라는 지나가다가 흘끗 본 아이(메이지)를 구하기 위해 직업과 목숨을 걸고 오웬과 클레어를 도울 정도로 정의감이 강한 인물이다. 그런데 영화는 케일라가 왜 그런 사람이 되었는지에 대해 아무 정보도 주지 않는다.
램지 콜 또한 바이오신 회사에 협력하는 중관 관리자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내부의 부패를 고발한 반전 있는 인물이다. 하지만 그가 왜 그러한 선택을 했는지에 대해서는 설명이 없다. 시리즈의 메인 악역이었던 '헨리 우(B.D. 웡)'도 다르지 않다. 그는 자신의 과오를 반성하며 양심의 가책을 느끼는 모습으로 등장하는데, 영화 내에서 그 과정은 제시되지 않는다. 이렇게 주인공들을 제외한 캐릭터들이 도구적으로 활용된 결과 영화 전반의 개연성도 부족해진다.
물론 <쥬라기 월드: 도미니언>은 오락영화로서, 또 블록버스터로서의 역할을 적절히 수행해낸다. 특히 중반부 몰타에서 펼쳐진 공룡과의 속도감 있고 강렬한 추격씬은 마치 <분노의 질주>를 연상케 한다. 수많은 오마주를 통해 <쥬라기 공원> 시리즈 팬들의 추억을 자극하는 점도 충분히 감동적이다. 그러나 마지막이라는 이유로 너무 힘을 많이 준 탓일까? <쥬라기 월드: 도미니언>은 시리즈의 끝으로서도 독립된 작품으로서도 기대에 미치지 못하며, 야심 차게 준비한 메시지마저 온전히 전달하지 못한 채 일단락되는 듯 보인다.
A(Acceptable, 무난함)
쥬라기 '월드'와 '쥬라기' 월드 사이의 불협화음 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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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 사람의 죽음이 끌어올린 현실
한 사람이 자살했다.
그리고 또 한 사람이 더 자살했다.
주변 사람들은 동요하지만, 이내 다시 제자리를 찾아 일상을 살아간다. 그 사람이 다니던 회사나 학교도 마찬가지다. 조직의 입장에서 그 상황을 빨리 수습하고 어수선한 분위기에서 벗어나려 애쓴다. 그 사람이 무엇 때문에 죽음에 이르렀는지, 왜 그런 상황에 처하게 되었는지는 쉽게 드러나지 않는다. 그렇게 사람들은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고, 그 죽음은 다시 잊혀진다. 결국 변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
영화 <다음 소희>은 이 두 죽음의 과정과 그 이후를 보여주는 영화다. 영화가 보여주는 그 일련의 과정은 무척 건조하고 차갑다. 두 죽음에 공감하면서도 그걸 막을 수 있었던 주변 사람들의 상황도 어느 정도 이해가 가는 기묘한 상황이 계속 이어진다. 그래서인지 후반부에 책임자를 찾는 과정은 무척 답답하게 느껴진다.
콜센터 현장 실습생 소희의 죽음 그리고 주변부의 반응
영화 속에 등장하는 주인공의 주변 사람들처럼, 우리는 생각보다 주변의 일들에 무관심하다. 사회도 마찬가지다. 어떤 사람이 힘들 때 그 사람은 자신의 힘든 감정과 환경에 대해 이야기할 사람을 찾는다. 친구나 직장 동료는 그런 한탄을 들어줄 수 있는 좋은 사람들이다. 하지만 그런 주변의 사람조차 개개인의 깊숙한 속마음까지 다 알기는 어렵다.
가까운 사람과의 마음도 다 알기 어려운데, 간간히 스쳐 지나가는 주변의 다른 사람들은 더 알기 어려울 것이다. 다른 부서에서 일하는 동료, 스쳐 지나가는 편의점 알바생, 전화로 만나게 되는 콜센터 직원. 우연히 만나게 되는 여러 사람들을 보면서 우리는 그들이 가지고 있는 세세한 어려움과 감정을 전혀 알지 못한다. 그저 무심히 지나쳐갈 뿐이다.
우리가 무심히 지나쳐가는 수많은 사람들 중에서도 감정을 참아야 하는 직업을 가진 사람들이 있다. 넓게 보면 서비스직에 종사하는 사람들일 것이다. 그들은 고객의 요구를 들어주고 불만을 처리해 가면서 일을 해나간다. 아마도 가장 극단에 있는 사람들은 콜센터 직원들인 것 같다. 전화기의 목소리로 고객을 대하는 그들은 우리가 평소에도 꽤나 자주 전화로 만나게 되는 사람들이다. 일반적으로 그들은 사람들의 짜증을 받아내야 하는 일을 한다.
처음 전화를 걸었을 때, 받기 싫어하는 사람들을 설득해야 하고 어떤 서비스에 대한 불만을 가졌거나, 서비스 해지를 원하는 고객들을 잘 달래야 한다. 무엇보다 중요한 건, 고객이 어떤 태도를 보이더라도 화내면 안 된다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콜센터 직원들은 다른 사람들에게 그저 전화로 스쳐 지나가는 불쾌한 사람들로 인식된다.
콜센터 노동자들의 아픈 현실을 그대로 드러내다
영화 <다음 소희>는 콜센터에서 현장 실습을 하게 된 소희(김시은)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상업 고등학교나 취업 관련 고등학교에 다니는 것으로 보이는 열여덟 살의 소희는 대기업의 하청업체에 취업이 되었다는 생각에 무척 신나 한다. 영화의 초반에 등장하는 소희의 모습은 당차고 밝다. 회사 사무실에 출근해서 일을 시작하기 전, 소희의 얼굴은 희망으로 가득하다.
그 희망은 출근 첫날부터 깨진다. 서비스 해지 방어를 해야 하는 소희의 일은 불만으로 가득 찬 고객들의 감정 쓰레기통이 되어야 하는 일이다. 화를 내는 고객 목소리에도 차분하게 이야기해야 한다. 서비스를 해지하지 않으면 더 좋은 혜택을 준다는 말로 고객을 설득하지만 돌아오는 건 분노에 가득 찬 목소리와 욕설이다. 때론 말을 물고 늘어지며 통화를 끊지 않거나 변태적인 말을 던지기도 한다. 소희를 비롯한 콜센터 직원들은 그 모든 말을 듣고도 화내거나 따지지 못한다.
그렇게 쌓인 분노를 표출시킬 곳은 없다. 콜센터 직원들은 대부분 고등학교에서 현장 실습으로 파견된 학생들이다. 이제 막 성인의 위치에 오르려 하는 그들은 계속 한없이 위축되어 버린다. 회사는 숫자로 이루어진 성과를 강조하면서 참고 일하라고 압박한다. 수많은 콜센터 직원 중 한 명인 소희도 계속 위축된다. 매니저에게 이야기해도, 회사는 참고 일하고 성과를 내라는 요구를 할 뿐이다. 엄청난 모욕을 받고도 그걸 주변에게 쉽게 털어놓지 못한다.
주변의 기대도 이야기를 못하게 만든다. 소희의 부모님은 자신의 딸이 대기업 계열사에 취업을 했다고 좋아한다. 학교 선생님도 자신이 추천한 회사에 학생이 취업하게 되었다고 자랑스러워한다. 그 회사에서 어떤 일을 하는지, 어떤 처우를 받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특히나 학교 선생님에게는 자신이 취업을 시키고 그것이 자신의 실적이 올라가는 일이기 때문에 학생을 보내고 그만두지 못하게 하는 것이 자신의 이익과 직결된다.
죽음의 책임을 흐려지게 하는 성과주의의 그늘
영화는 소희의 죽음 이후에 형사 유진(배두나)을 등장시켜 소희를 죽음에 이르게 한 것으로 보이는 사람들의 얼굴을 비춘다. 콜센터 매니저와 임원들, 학교 선생님들, 교육청 직원들 같은 어른들은 한결같이 이야기한다. 자신이 달성해야 하는 성과 때문에 아이들이 일하는 환경이나 처우는 생각하지 못했다고. 그런 얼굴들에 형사 유진은 묻는다.
"막을 수 있었잖아. 근데 왜 보고만 있었냐고"
영화는 소희의 죽음과 그것의 원인으로 추정되는 사람들을 따라가지만 그들에게도 각자의 사정이 있다. 그럼 누가 책임질 것인가. 그리고 누가 그 상황을 조금 더 나아지게 할 것인가. 영화가 진짜 말하고자 하는 것은 바로 그것이다.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 죽음, 그걸 바라보는 우리들이 할 수 있는 일은 수화기 너머로 콜센터 노동자들을 대할 때 좀 더 침착하게 감정을 자제하는 일이다. 그들의 고충을 생각한다면 조금은 부드럽게 대화할 수 있지 않을까. 또한 사회적으로 콜센터 노동자들이 겪는 대우에 대한 관심을 잊지 말아야 한다.
영화 속에 등장하는 아직 어린 10대의 고등학생들도 잊을 수 없다. 현장 실습이 곧 취업이 되는 그들에게는 한 번 들어간 회사를 쉽게 포기할 수 없다. 그냥 그만둘 수 있지 않냐고 물을 수 있겠지만 어렵게 얻은 취업자리이고 한 번 이탈하면 다시 그 자리로 돌아가기 어렵기에 그들이 할 수 있는 선택은 많지 않다. 어린 노동자들을 이용하고 착취에 가까운 노동을 하게 하는 고용주들에 대한 관심도 계속 이루어져야 한다.
영화를 연출한 정주리 감독은 영화 <도희야>를 통해 폐쇄적인 지역 사회와 인권문제를 잘 다룬 적이 있다. 이번에 연출하게 된 <다음 소희>는 2017년에 전주에서 실제로 일어났던 실습 여고생의 자살을 모티브로 하고 있다. 실제 현재 벌어지고 있는 콜센터 노동자들의 현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면서 현장 실습이라는 명목하에 어린 노동자들을 어떤 식으로 이용하고 있는지를 고발하는 영화다. 무엇보다 한 노동자의 자살이 이루어지기까지 주변부에 위치한 어른들이 얼마나 무심하게 그들을 지나쳐오는지를 보여주는 영화다.
무심코 지나치고 만나게 되는 콜센터 노동자들을 우리가 어떤 시선으로 대하고 바라봐야할지를 생각하게 하는 수작이다. 영화적 재미를 놓치지 않고 너무 감정적으로 치우치지도 않는 영화는 무척 자연스럽게 우리가 앞으로 무엇을 해야할지를 생각하게 만든다.
*영화의 스틸컷은 [다음 영화]에서 가져왔으며, 저작권은 영화사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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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과연 이게 효과적으로 마블에 안착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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