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INELAB2024-10-23 15:24:05
지브리 스튜디오 버전 이상형 월드컵
네 취향이 한 명쯤은 있겠지

여러분이 뭘 좋아할지 몰라서 다 준비해 보았습니다.
많고 많은 지브리 스튜디오의 남자 주인공 중,
여러분의 마음을 사로잡은 캐릭터는 누구인가요?
(사실 에디터는 캘시퍼를 좋아했답니다… )
이 외에 다른 버전으로도 보고 싶으시다면 댓글 남겨주세요!

줄거리
수백년전 야마토 조정과의 싸움에서 패한 후 북쪽 변방에 숨어서 생활하고 있는 에미시 일족. 평화로운 마을 부근의 숲에 어느날 갑자기 타타리가미(재앙신)가 나타난다. 인간에 대한 증오와 원망이 가득찬 타타리가미는 마을로 돌진하고, 에미시의 차기 족장(族長) 아시타카는 마을을 지키기 위해서 어쩔 수 없이 재앙신에게 활을 날린다. 결국 재앙신을 쓰러뜨린 아시타카는 그 대가로 오른팔에 죽음의 각인이 새겨지고 죽음의 저주를 받게 된다. 아시타카는 마을의 무녀 히이사마로부터 서쪽에서 불길한 일이 일어나고 있음을 알고, 죽을 자신의 운명을 받아들이기로 하고는 서쪽으로 떠나기로 결심한다.

줄거리
10cm 소녀 아리에티, 마루 위 인간 세상으로 뛰어들다! 교외에 위치한 오래된 저택의 마루 밑에는 인간들의 물건을 몰래 빌려 쓰며 살아가는 소인들이 살고 있다. 그들 세계의 철칙은 인간에게 정체를 들키면 그 집을 당장 떠나야 한다는 것! 14살이 된 10cm 소녀 아리에티는 부모님의 도움 없이 홀로 마루 위 인간 세상으로 뛰어든다. 빨래집게로 머리를 질끈 묶으면 작업 준비 완료! 작업 첫 날, 인간 소년 쇼우에게 정체를 들키다! 첫 작업 목표는 각설탕. 생쥐와 바퀴벌레의 방해 공작에도 무사히 주방에서 각설탕을 손에 넣은 아리에티는 두 번째 목표인 티슈를 얻으러 간 방에서 저택에 요양을 온 인간 소년 쇼우의 눈에 띄게 된다. 인간은 무서운 존재라고 생각했던 것과 달리 쇼우의 다정한 모습에 조금씩 마음을 열기 시작한 아리에티. 마루 밑 세계의 규칙을 어기고 쇼우에게 다가가던 어느 날, 아리에티 가족에게 예기치 않은 위험이 찾아온다.

줄거리
중학교 3학년 시즈쿠는 평소 책을 많이 읽는 소녀이다. 여름방학, 매번 도서카드에서 먼저 책을 빌려간 세이지란 이름을 발견하고 호기심을 갖는다. 어느 날 아버지의 도시락을 전해주러 가는 길. 지하철 안에서 혼자 탄 고양이를 보게 된다. 신기하게 여긴 시즈쿠는 고양이를 따라가다 골동품가게에 들어가게 되고, 그곳에서 주인 할아버지와 손자를 보게 된다. 그 손자는 다름 아닌 아마사와 세이지, 사춘기의 두 사람은 점차 서로의 사랑에 대해 알게 된다. 시즈쿠는 바이올린 장인을 자신의 장래로 확실히 정한 세이지를 보면서 자신의 꿈과 미래를 진지하게 고민하게 된다. 그 후 이탈리아 연수를 간 세이지가 돌아 올 때까지 작가가 되고자 도전해 보기로 하고 소설을 쓰게 된다.

줄거리
어느 날, 영문도 모른 채 마녀의 저주로 인해 할머니가 된 소녀 '소피' 절망 속에서 길을 걷다가 거대한 마법의 성에 들어가게 된다. 그곳에서 자신과 마법사 하울의 계약을 깨주면 저주를 풀어주겠다는 불꽃악마 캘시퍼의 제안을 받고 청소부가 되어 ‘움직이는 성’에 머물게 되는데…

줄거리
금지된 세계의 문이 열렸다! 이사 가던 날, 수상한 터널을 지나자 인간에게는 금지된 신들의 세계로 오게 된 치히로.. 신들의 음식을 먹은 치히로의 부모님은 돼지로 변해버린다. “걱정마, 내가 꼭 구해줄게…” 겁에 질린 치히로에게 다가온 정체불명의 소년 하쿠. 그의 따뜻한 말에 힘을 얻은 치히로는 인간 세계로 돌아가기 위해 사상 초유의 미션을 시작하는데…

줄거리
화재로 어머니를 잃은 11살 소년 ‘마히토’는 아버지와 함께 어머니의 고향으로 간다.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과 새로운 보금자리에 적응하느라 힘들어하던 ‘마히토’ 앞에 정체를 알 수 없는 왜가리 한 마리가 나타나고, 저택에서 일하는 일곱 할멈으로부터 왜가리가 살고 있는 탑에 대한 신비로운 이야기를 듣게 된다. 그러던 어느 날, ‘마히토’는 사라져버린 새엄마 ‘나츠코’를 찾기 위해 탑으로 들어가고, 왜가리가 안내하는 대로 이세계(異世界)의 문을 통과하는데…!

줄거리
사랑스러운 초보마녀 ‘키키’는 검은 고양이 ‘지지’와 함께 빗자루를 타고 마녀 수련을 떠난다. 항구 마을에 불시착한 키키는 첫날부터 우여곡절을 겪지만, ‘배달’에 재능이 있다는 걸 발견하고 본격적인 마법 수련을 시작하는데…


Relative cont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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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밀레니엄의 환희와 청춘의 질감에 관한 인상적인 스케치
술 냄새가 난다. 담배 냄새가 난다. 땀 냄새가 난다. 정돈되지 않은 지저분한 집에서 날 법한 냄새가 난다. 정체를 알 수 없는 마약 냄새가 난다. 제대로 닦아내지 않은 정액 냄새도 문득 코를 찌르고 들어오는 것 같다. 시끄럽다. 클럽 음악과 그것이 만들어내는 진동이 내내 쿵쾅거린다. 싸우는 소리가 난다. 불평하는 소리가 난다. 서로를 원망하는 소리가 난다. 홀로 신세를 한탄하는 소리가 난다. 물건을 집어 던지는 소리가 난다. 저주하며 울부짖는 소리가 난다. 청춘의 냄새, 청춘의 소리다. 이 지독한 냄새와 소리 속에서, 여성 청년 비키는 새로운 밀레니엄을 맞이한다.
2001년의 대만, 고등학교를 중퇴한 비키는 남자친구 하오하오와 동거 중이다. 하오하오는 ‘예술적 퇴폐’를 지향하는 남성이 갖고 있는 쓰레기 같은 전형성을 고루 갖추었다. 돈을 벌지 않고 여성의 노동에 의존한다. 아버지의 롤렉스 시계를 훔쳐 경찰 조사를 받을지언정 결코 직접 노동하는 법은 없다. 하오하오는 두 사람이 함께 사는 집의 월세를 마련하기 위해 스트립 클럽에서 일하는 비키를 의심한다. 그녀가 바람을 피운다는 망상이다. 자신이 노동하면 비키가 다른 곳에서 일할 수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고상한’ 하오하오는 이런 가능성을 감히 상상하지 못한다. 하오하오는 클럽 음악을 만들고 친구들과 술 마실 때만 생기가 돈다. 가끔 욕구가 일어 다짜고짜 비키에게 관계를 요구할 때만 다정해진다. 자기 신세의 비참함에 심취해 마약을 하고 이를 말리는 비키를 경멸한다. 그렇다. 하오하오는 자신의 자발적, 의도적 비루함을 예술가의 고난으로 오독한다. 비키의 몸과 돌봄, 노동에 극단적으로 기생하면서도 그녀에게 군림하려 든다. 치가 떨릴 만큼 익숙한 인물이다(이상의 〈날개〉를 떠올려보라).
소란 끝에 비키는 하오하오를 떨쳐낸다. 그러고는 클럽 관리자 격인 잭에게 의지하는 마음을 갖기 시작한다. 잭은 책임감이 있고 점잖다. 하오하오가 갖추지 못한 것을 가졌다. 그는 비키에게 안정감을 준다.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일본으로 떠난다. 비키는 그가 남긴 흔적을 쫓아 일본에 따라간다. 잭은 그녀를 위해 숙소를 잡아주었고, 편지를 남겼다. 하지만 여기까지다. 비키는 끝내 잭의 비밀에 다가가지 못한 채 혼자 남는다. 잭에게는 비키와의 관계보다 남자들의 세계에서 벌어지는 음지의 일을 처리하고 관리하는 게 더 중요하다. 두 남자가 떠나간 후, 비키는 그제야 홀로 선다.
비키를 비난하지는 않았으면 한다. ‘도대체 왜 저런 남자들이랑 붙어 있냐’라는 책망은 그 욕망의 소유자도 적당한 답을 내놓을 수 없는 물음이다. 우리 모두는 종종 알 수 없는 동기로 이해 못 할 선택을 내린다. 문제는 선택 그 자체가 아니라 그 이후의 혼란을 어떻게 마주할 것인지다. 욕망과 충동의 완전한 통제는 불가능하다. 그 후과를 알맞게 갈무리하는 것이 성인의 자격이다.
불쾌한 냄새와 소음으로 가득 찬 비키의 2001년은 지극한 성장통의 시기였다. 하오하오는 비키가 자신을 떠나려 할 때마다 애원하며 그녀를 붙든다. 그는 자신이 쓰레기인 것을 안다. 만에 하나 ‘예술가’로 성공하면 미련 없이 비키를 버리겠지만, 그 희박한 가능성이 현실로 도래하기까지는 기생할 상대가 필요하다. 그런 자신을 품어줄 여자가 많지 않다는 것을 아는 하오하오는 그래서 비키에게 더더욱 매달린다. 비키는 이를 관계의 특별함으로 착각했다. 그래서 하오하오의 곁에 머물렀다. 잭은 상대적으로 비키에게 안정감을 주지만 그녀와 자신의 비밀을 공유하지는 않는다. 비키는 잭에게 사랑의 대상이 아닌 친밀한 타자일 뿐이다.
세상의 떠들썩한 환호와 함께 맞이한 새로운 밀레니엄은 비키에게 지리멸렬한 현실의 연장에 불과했다. 오히려 모두가 희망적인 미래만을 말했기에 비키가 살아가는 현재의 형편없음이 더욱 극화되었다. 2001년 겨울, 비키는 하오하오와 잭을 거친 후에야 자신만의 뒤늦은 밀레니엄을 마주한다.
영화는 내내 명멸하듯 깜빡거리는 불빛과 뿌옇게 번진 빛의 이미지로 가득하다. 카메라에 담긴 대상의 경계를 명확하게 인식하기 어렵게 만드는, 많은 것을 뒤엉켜 보이게 하는 이 이미지들은 청춘의 열악한 삶을 환기하는 시청각적, 후각적 자극과 맞물려 비키가 살아가는 현실의 혼탁함을 구체화한다. 비키가 문제적 남성들을 떨쳐내고 하얗게 눈 덮인 일본의 한 마을에서 마침내 혼자가 된 것은 이 때문일 것이다. 곳곳에 쌓인 하얀 눈은 어둡고 음습한 방의 뿌옇고 경계가 불분명한 혼탁한 이미지들을 단번에 무력하게 만든다. 일상적 장소에서의 이탈은 종종 시공간의 감각을 새로이 배열하여 기존의 감각을 성찰할 자원이 되어주고는 한다. 자기 자신의 욕망으로 두 남자에게 연루되어 고통받던 비키는 이 극명한 빛의 대비와 일상적 시공간에서의 이탈을 통해 자신을 객관화할 계기를 마련한다. 두 남자로 상징되는 벗어날 수 없는 폭력적 수수께끼를 뒤로하고 밀레니엄의 환희에 뒤늦게나마 동참하는 것이다.
*영화 매체 〈씨네랩〉에 초청받은 시사회에 참석한 후 작성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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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타쿠 콜렉션] 이토록 황당하고 찬란한 우리의 삶을
2025년쯤 되면 날아다니는 자동차가 하늘을 뒤덮을 줄 알았습니다.
하지만 정작 닥쳐보니, 우린 여전히 축축한 길을 걸으며 불평하고 있습니다. 걸으며 우린 여전히 오늘 하루 먹고 살 것에 대해 고민합니다. 인터넷 창을 10개씩 띄워둔 것처럼 병렬로 염려합니다. 말끔히 끝맺지 못한 문제들과 새로이 피어나는 일들은 생경합니다. 해가 바뀔 때 다졌던 마음은 그새 조금 닳았습니다.
이 복잡하고도 허망한 시기, 우리는 무엇으로 이 혼란을 해결할 수 있을까요.
“내 모든 선택이 최선이었을까? 그때 다른 선택을 했더라면 어땠을까? 내 주변 사람들도 이런 후회를 할까?”
아직 밤이 긴 계절, 도저히 답을 낼 수 없는 문제들이 줄을 잇습니다. 오늘 이야기할 영화는, 날이 밝을 때까지 천장에 그간 했던 모든 선택을 쏟아놓는 당신을 위한 영화입니다. 혼란스럽고 화려한, 분주하고 반짝이는 영화,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입니다.
※ 영화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의 내용에 대한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제목도 기나긴 이 영화는, 1인분을 하며 살기에도 버거운 주인공 에블린이 다중우주의 운명을 짊어진 알파 세계의 남편 웨이먼드와 만나며 시작됩니다. 빨래방을 운영하던 에블린은 한순간에 무수히 많은 다중우주를 거대한 악으로부터 지켜내야 하는 임무를 떠맡게 되죠. 에블린은 자신이 일생동안 했던 선택들로부터 수많은 다중우주가 파생되었으며, 각 우주의 자신이 현재의 자신은 상상조차 해본 적 없는 모습으로 살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우리는 선택하고, 후회합니다.
그때 그 말을 하지 않았더라면, 그 일을 맡지 않았더라면, 그 사람과 만나지 않았더라면.
에블린 역시 이러한 생각을 멈출 수 없는 사람 중 한 명이죠. 에블린은 이혼 서류를 내미는 남편, 멀어져가는 딸, 압류 직전의 빨래방으로 구성된 자신의 세계를 위태롭게 움켜쥐고 있습니다. 분명 매순간 최선을 다한 것 같은데, 어째서 이렇게 살고 있는 것인지 에블린은 도저히 알 수가 없습니다.
다중우주를 넘나드는 법을 가장 먼저 깨달은 우주인 알파버스의 웨이먼드, 즉 알파 웨이먼드는 에블린에게 ‘당신은 내가 여태 본 수천 명의 에블린 중 최악의 에블린으로 살고 있다’고 말합니다. 이를 들은 에블린이 어째서 자신이 최악이냐고 되묻자, ‘당신은 이 우주에서 마치지 못한 목표, 이루지 못한 꿈이 너무 많아 무한한 가능성이 있다’고 말하죠.
우리의 삶도 마찬가지일 겁니다. 셀 수 없이 많은 우주 중 바로 이 우주에서의 우리는 어쩌면 최악의 선택지만을 골라왔을지도 모릅니다. 비가 올 날에 우산을 챙겨 나가지 않았던 것, 뚜껑을 제대로 잠그지 않은 물병을 가방에 집어넣었던 것, 한 잔 더 마셔도 버틸 수 있을 것 같다고 판단했던 것부터, 어떤 갈림길에서 되돌릴 수 없는 무언가를 결심한 것까지 말입니다.
하지만 이 경우에, 역설적이게도 우리는 최악이기에 괜찮습니다. 우리가 될 수 있었던 그 어떤 존재들처럼 판단하고 결정해도 됩니다. 기상천외한 행동을 하고, 가져본 적 없는 시각으로 세상을 보아도 됩니다. 내민 적 없는 손으로 누군가를 붙들고, 끌어안아도 됩니다. 지금의 내가 최악이라면, 모든 우주를 뒤져도 이곳의 나보다 큰 잠재력을 가진 존재는 찾을 수 없을 테니까요.
에블린이 수많은 우주의 자신과 조우하고 인생에서 진정으로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알아가는 한편, 모든 우주를 집어삼키려 하는 거대한 악, 조부 투바키는 이미 판단을 내렸습니다. Nothings matter. 아무것도 중요치 않다는 것이죠. 조부는 알파버스에서 받은 과도한 차원 이동 훈련으로 인해 분열되어 하나의 존재인 동시에 모든 존재가 되었고, 모든 우주의 힘을 지니게 되어 도덕적 기준조차 잃고 말았습니다. 조부가 원하는 것은 하나입니다. 아등바등 살려고 해봤자 아무 의미가 없으니, ‘베이글’ 안으로 들어가자는 것이죠.
조부가 발견한 진리, ‘베이글’은 모든 것을 빨아들입니다. 그 안에선 어떠한 기준도, 성취도 필요치 않습니다. 조부는 무수히 많은 우주를 넘나들며, ‘허무’를 경험했습니다. 삶은 결국 무엇을 위한 것도 아니며, 우린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계속해서 이어지는 조부 세력과의 전투 속에서 아무것도 바꿀 수 없었던 에블린 역시 이에 반박할 수 없었고, 조부의 논리에 수긍합니다. 이때 남편인 웨이먼드가 에블린을 붙듭니다. Please be kind! 이해할 수 없는 웨이먼드의 말을 통해 에블린은 깨닫습니다. 늘 실없고 바보같았던 남편, 에블린 없이는 꼼짝없이 굶어죽었을 것만 같은 남편 웨이먼드는 놀랍게도 자신의 삶 속에서 자신만의 방식으로 투쟁하고 있었다는 점을요. 손님의 빨랫감에 장난스레 붙여놓던 장난감 눈알, 에블린이 타박하던 그의 순진하고 물러터진 성정은 실상 세계를 끌어안는 가장 강한 힘이었으며 세상과의 기나긴 사투를 승리의 관점에서 볼 수 있도록 하는 제 3의 눈이었던 것입니다.
Nothings matter. 웨이먼드의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볼 때에도, 아무것도 중요치 않습니다. 여태 어떤 일을 망쳤든, 어떤 두려움을 가지고 있든 우리는 우리가 사랑하는 존재들과 진심을 나누며 살아가면 됩니다. 그게 각자의 생에서 단단히 지켜낼 수 있는 가치이고, 삶이 가지는 의의이기도 합니다. 우리는 우리 자신과 주변 사람들, 세상에게 더 친절해짐으로써 길지 않은 일평생을 더 나은 선택으로 꾸려갈 수 있다고 영화는 이야기합니다.
삶과 허무, 선택과 사랑이라는 굵직한 주제를 관객에게 쥐어줌과 동시에, 영화는 온갖 패러디와 농담으로 러닝타임을 가득 채웁니다. 어쩌면 이가 ‘인생에 대한 고민은 그리 진지하게 접근해야 하는 것이 아님’을 시사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영화를 다 본 후의 당신이, 우리가 마주친 이 우주의 사랑스러운 점을 가득 떠올릴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2021년에 세상에 처음 나온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는 국내 팬들의 꾸준한 성원에 힘입어 지난 2월 14일에 재개봉했습니다. 3월 1일에 넷플릭스에서 공개되기도 했죠. 이 영화를 언제든 접할 수 있는 우주에 살고 계신 점을 축하드려요.
기회가 되실 때, 에블린의 멀미 나는 여정을 함께할 수 있길 바라며, 마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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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더 나은 커뮤니케이션으로
수평적 교환을 통한 소통의 성취
현대 사회 구성원 가운데 커뮤니케이션의 영역을 소홀히 하는 사람은 찾기 힘들다. 유동하는 정보들과 부유하는 자의식이 어지럽게 얽혀있는 불안정한 사회에서 나를 둘러싼 다른 존재와의 소통은 매우 중요하다. 사회에서 인간은 고립된 존재가 아니므로, 늘 누군가와 소통하며 살아가야 한다. 그렇다면 외계인과 인간의 소통을 그리는 다양한 텍스트들은 소통을 둘러싼 맥락 변화에 수반되는 자연스러운 문화적 징후이다. 드니 빌뇌브의 SF 영화 <컨택트(Arrival)>(2016)에서 외계의 존재를 상대하는 임무를 맡은 웨버 대령은 “그들이 뭘 원하고, 어디서 왔는지” 반드시 알아내야 한다며 언어학자들을 다그친다. 상당수의 인간은 웨버처럼 지구를 방문한 불청객을 향해 의구심과 불안감을 표출할지도 모르겠다. 불가해한 타자와 대면하는 순간에 인간은 어떻게 선택하는가. 이때 <컨택트>의 루이스 박사는 낯선 타자와의 소통에 있어 어려움을 겪는 현대인들에게 시사점을 제공해 줄 수 있다.
루이스는 외계의 존재와 원활히 대화하고 싶다. 웨버 대령에게 ‘캥거루’ 일화를 드는 루이스는 오역 없는 명확한 상호 의사전달을 위해서 기본이 되는 사항을 놓치지 않는다. 많은 사람이 외계인이라는 타자를 적 혹은 침략자와 동등한 층위로 인식하지만, 루이스는 편견을 접어두고 소통의 가능성을 최대한 확보하고자 한다. 전문가들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헵타포드로부터 특별한 반응을 끌어내지 못하자 군인과 분석관들은 조바심을 느끼지만, 루이스는 이내 다른 방법을 제시한다. 그들의 언어를 감지할 수 없다면, 우리의 언어를 그들에게 제시하는 방식 말이다. 루이스는 군인, 과학자들과 대비된다. 그녀가 수평적인 교환을 지향한다면, 후자의 집단은 수직적인 질문 혹은 강요에 매달린다. 루이스는 타자를 향한 편견을 완전히 거둔 채 그들 앞에 나서고, 나머지 인원은 몇 겹의 벽을 세우느라 소통의 성취와 멀어진다. 영화에서 루이스는 그 누구보다도 가장 먼저 오염 방지 슈트를 벗어던지고 헵타포드를 찾아간다. 다른 사람들은 그런 루이스를 보며 놀라워한다. 루이스가 선형적인 인간의 개념 대신 헵타포드의 비선형적 개념, 언어와 시간에 관한 낯선 형태의 사유를 수용하여 그들의 사고 체계에 적응할 수 있었던 이유가 여기에 있다.
<컨택트> 스틸컷
관계의 전도가 만들어내는 소통의 형태
구로사와 기요시의 SF 영화 <산책하는 침략자>(2017)에는 발화된 언어를 학습하려는 외계인이 등장한다. 이 영화의 외계인은 지구를 침략하려고 한다. 이들은 인간보다 훨씬 고등한 존재들이다. 극 중 한 외계인은 인류를 멸망시키는 일이 며칠 걸리지 않는다고 말하기도 하고, 지구의 기술력이 형편없다며 불평하기도 한다. 이때 외계인들이 굳이 인류 절멸을 위한 사전 답사라는 명분으로 인간에게서 뭔가를 찾으려고 한다는 점이 흥미롭다. 인간의 관점에서 타자와의 소통 가능성을 그렸던 <컨택트>와는 다르게 이 영화는 관계의 역학을 다르게 묘사한다. 외계인이 주체고 인간이 객체로 전도된 인상을 풍긴다. 더 나아가 영화에서는 외계인에게 신체를 뺏긴 신지의 아내인 나루미가 매우 흥미로운 인물로 묘사되는데, 인간과 외계인 사이의 전도된 관계에서 나루미가 어떤 존재로 기능하는지 들여다본다면 타자와의 소통 가능성에 관한 흥미로운 논점을 추출할 수 있기도 하다.
외계인이 인간에게서 개념을 탈취하는 목적은 의외로 간명하다. 인간이 어떤 존재인지 파악해서 효율적으로 정복하고 싶다는 마음 때문이다. 이 침략자들은 어딘가 엉성하게 지구를 침공 계획을 세운다. 인류를 절멸시키겠다는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툭툭 던지면서도 인간이 어떤 존재인지 탐구해보겠다는 모순적인 태도를 드러낸다. 이들은 인간에게서 주요한 가치를 뺏는다. 이를테면 ‘가족’. ‘소유’, ‘일’과 같은 개념들이다. 기묘한 소통의 형태, 양방향이 아닌 뒤틀린 단방향의 커뮤니케이션이 반복되면서, 두 개체 간의 관계 양상에 변화가 생긴다. 우리 처지에서 철저한 타자인 외계인이 주체인 인간과 유사해질 수 있다는 가능성이 생긴다. 외계인의 관점에선 주체(외계인)의 객체(인간)화라고 볼 수 있겠다. 영화 속 세 명의 외계인 중에서 주인공 격인 신지는 이러한 모호성을 내포한 존재다. 이 관계의 역학은 다소 폭력적이다. 그러니까 이러한 단방향 소통 구조는 흡사 원주민의 문명을 지워내는 제국들의 만행처럼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이 기묘한 관계를 규정하는 데 있어 방금 사용한 예시는 적절하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비록 폭력적인 단방향의 소통이긴 해도, 정체성이 모호하게 묘사되는 존재인 신지를 통해서 타자성을 수용하는 개체의 심리를 고찰할 수 있다는 점에서 그렇다.
또한, 신지의 아내인 나루미는 외계인과 기존 신지의 의식이 융합된 포스트휴먼 격인 새로운 남편을 바라보면서 혼란에 빠지는데, 영화에 묘사된 나루미의 대응 방식에서 또 다른 낯선 타자와의 소통에 있어 현대인들에게 시사하는 바가 발견된다는 점도 지나칠 수 없다. 신지의 정체를 파악한 당국에서 신지를 잡아가려고 하자, 나루미가 이를 눈치채고 신지와 함께 도망친다. 나루미는 인류를 위기에 몰아넣을 수 있는 위험한 판단을 내린다. 하지만 주체성과 객체성의 분리가 모호해진 존재인 신지를 향한, 그러니까 탈경계화된 존재를 향한 인간의 손길은 다층적인 소통의 층위가 생성되는 기회를 만든다.
관계의 전도가 촉발하는 새로운 소통의 형태는 <산책하는 침략자>뿐 아니라 <컨택트>에서도 발견된다. 시간성에 관해서 새로운 인식 체계를 받아들인 루이스는 일종의 포스트휴먼이다. 그녀에게 과거-미래-현재는 모두 동일선상에 놓인 채 공존하는 시점들이다. 미래를 엿보는 ‘현재의 나’는 곧 그 대상인 ‘미래의 나’와 정신을 공유할 수 있다. 단순한 미래 예지 능력을 갖춘 존재가 아닌 새로운 형태의 시간관념을 장착한 포스트휴먼으로 진화한 셈이다. 이런 루이스는 모호한 존재성을 떠안은 채, 헵타포드에게 그랬던 것처럼 인류에게 손길을 내민다. 이 루이스의 행동들이 단순히 결정론적 관점에서 예정된 행동이 아닌, ‘선택’처럼 묘사됐다는 점이 타자를 향한 루이스의 심리와 행위가 내포하는 지점을 다변화한다. 루이스에게 다수의 평범한 인류는 일종의 타자처럼 기능할 수 있지만, 이 전도된 관계에서 피어나는 루이스의 선택들로 또 다른 소통의 기회가 열릴 수 있다. 미지의 영역처럼만 보이던 우주는 21세기 들어 더욱 선명해졌고, 미디어에서 소비되는 외계 존재와 같은 불분명한 타자는 우리의 불안감을 증폭시키고 있다. 외계의 존재와 맞닥뜨리는 먼 미래의 순간을 상상하면서, 우리는 불가해한 타자와 어떻게 소통해야 하는지 사유해야 할 필요가 있다.
<산책하는 침략자> 스틸컷
이미지 출처: 네이버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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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난히 짧은 2월, 러닝타임 짧은 영화 -9-
❣️[Cinelab Curation]❣️
이번 주 씨네랩 뉴스레터 씨네-뉴스에서는 짧은 러닝타임을 가진 영화들을 소개해 드릴 예정인데요!
2월.. 너무 짧아 아쉽진 않나요?
그런 여러분들께 짧지만 마음에 오래 남을 영화 몇 편 소개해 드릴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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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결과’보다 ‘과정’을 사랑한 사람들의 이야기
우리는 성장하면서 계속 특정한 목표를 가지고 있다. 그 목표를 이루기 위해 노력하고 또 도전하면서 원하는 결과를 얻기 위해 무척 애쓴다. 청소년 시절에 가장 중요한 목표는 바로 시험이다. 중간고사와 기말고사 그리고 궁극적으로 가장 큰 목표인 수학능력시험까지 1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좋은 시험 결과를 얻기 위해 무던히 애쓴다. 우리 교육 시스템 안에서 학교에 다니는 가장 큰 이유는 많은 것을 배우는 것에 있겠지만 결국에는 좋은 시험 결과를 얻기 위한 것이 가장 클 것이다. 그렇게 다양한 과목을 공부하고 또 시험을 보면서 누군가는 그 결과에 만족하고 또 한걸음 나아가겠지만 또 다른 누군가는 실망스러운 결과를 받아 든다.
삶의 많은 것이 그 시험의 결과에 의해 좌우된다. 현실이 그렇다. 수능 시험의 결과에 따라갈 수 있는 학교가 정해지고, 학교가 정해지만 그곳에서 다시 또 다른 시험 준비에 매달린다. 그리고 그 결과가 다시 직장의 질에 영향을 미친다. 한 사람의 삶 전체가 그것에 의해 결정되는 것처럼 보인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시험에서 좋은 결과를 얻기 위해 매달릴 수밖에 없다. 그런 의미에서 시험에 매달리는 사람들은 한 편으로는 안쓰럽게 느껴지기도 한다. 그저 알고 있는 지식이 어느 정도인지 파악하는 그 ‘시험’이라는 것이 우리 전체 삶을 흔들고 있기 때문이다.
기숙학교에 다니는 수포자 지우의 이야기
영화 <이상한 나라의 수학자>는 수학 시험 성적 때문에 고민하는 지우(김동휘)의 이야기를 담는다. 지우는 현재 공부 잘하는 학생들이 다니는 기숙학교에 다니고 있다. 과거 사고로 아버지를 잃고 홀로 남은 어머니와 떨어져 살면서 최대한 어머니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노력하는 인물이다. 하지만 모든 과목 중에서 수학이 그를 가로막는다. 수학 성적은 하위권이고, 그것 때문에 그의 담임 선생님(박병은)은 일반학교로 전학을 권유한다. 그때 지우는 학교의 경비원이면서 숨은 수학천재 학성(최민식)을 만난다.
영화 속 학성은 개인사에 비밀을 가지고 있다. 늘 딸기우유를 먹는 그는 어느 날 수학 문제를 풀고 있는 모습을 지우에게 들킨다. 그리고 수학을 가르쳐달라는 지우의 부탁을 결국 받아들인다. 이렇게 둘은 스승과 제자 사이가 된다. 지우는 전형적으로 결과 중심적으로 생각하는 인물이다. 반면에 학성은 과정을 중시하는 인물이다. 이렇게 두 인물을 대비시키면서 이들 간의 긴장감이 만들어진다. 이 모습은 일반적으로 결과를 중시하는 사회 교육 시스템과 그에 반하는 학성이 대립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럼 학성은 그저 과정에만 충실하라고 이야기하는 걸까. 아니다. 학성이 말하는 과정은 결국 좋은 결과를 만들기 위한 밑바탕을 만드는 것이다. 수학이라는 학문은 정확한 결과를 내는 학문이지만 그에 못지않게 그 결과를 내기까지 어떤 과정을 거치는지도 중요하다. 그 문제에 도전하는 과정에서 오는 도전정신과 희열감을 통해 숫자, 수식과 친해지는 과정이 있어야 원하는 결과까지 갈 수 있다는 것이다. 학성은 결과에만 집착하는 지우를 못마땅해하고 세세한 설명을 하지 않기도 하지만, 그런 태도가 지우에게 일종의 도전정신을 심어준다.
결과보다 과정을 중시하는 천재 수학자 학성
이 영화의 악역이라고 할 수 있는 담임 선생님 근호는 전형적인 나쁜 선생님의 모습을 하고 있다. 다른 영화들에서 그동안 봐왔던 아주 전형적인 선생님의 모습이라서 좀 평면적으로 보이는 인물인데, 영화는 이 근호라는 인물을 이용해 결과도 중요하지만 그 결과까지 가는 과정이 중요하다는 것을 증명하려고 한다. 그러니까 학성이 풀고 있는 방정식에서 결과를 중시하는 일종의 상수로 그려진다. 워낙 학성과 지우가 중심인물이 되다 보니 주변의 다른 인물들에 대한 묘사는 근호와 같이 너무 평면적으로만 묘사되고 있다는 점이 아쉽다.
탈북자인 학성과 평범한 남한 학생 지우에게 접점이 없어 보이지만 영화는 그들 사이에 어떤 유사 부자의 감정을 넣었다. 아주 대표적인 장면이 둘이 앉아 된장찌개와 계란 프라이를 먹는 장면일 것이다. 밥 위에 계란을 얹어주는 학성의 모습과 그걸 받아서 맛있게 먹는 지우의 모습에서 그 둘이 현재 결핍된 아버지와 아들에 대한 사랑을 느끼게 해 준다. 이 영화가 따뜻하게 느껴지는 건, 이 둘 사이에 만들어진 신뢰와 챙기고 싶은 마음 때문일 것이다. 또한 과정의 중요성을 이야기하는 영화답게 이 두 사람의 관계가 좋은 결과를 맺기까지의 과정을 세심하게 보여주고 있기도 하다.
학성 역을 맡은 배우 최민식은 <천문:하늘에 묻는다> 이후 오랜만에 좋은 연기를 보여준다. 힘을 뺀 연기로 부드러운 목소리를 들려주며 과거의 회한과 후회를 안고 살아가는 탈북 수학자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지우 역을 맡은 배우 김동휘는 <탐정 홍길동:사라진 마을>과 <피터팬의 꿈> 같은 영화들에서 인상적인 연기를 보여준 적이 있다. 이번 <이상한 나라의 수학자>에서는 자신이 피해를 입더라도 자신의 목소리를 밖으로 내지 않고 힘든 일을 안고 가려는 조금은 소심하고 체념적인 지우를 잘 표현해냈다.
안정적인 연기를 보여주는 배우 최민식과 김동휘
영화를 연출한 박동훈 감독은 많은 작품을 연출하지는 않았다. <전쟁영화>라는 단편 영화로 대한민국 영화대상 단편 영화상을 수상하기도 했지만 그 이후, <소녀 x소녀>, <계몽영화> 같은 작은 영화들을 간간히 연출했었고, 가장 최근에 연출한 작품이 이번 <이상한 나라의 수학자>다. 이번 영화에서는 결과에만 집착하는 한국의 교육 시스템을 이야기하면서 그것을 따라갈 수밖에 없는 학생의 모습을 잘 보여주고 있다. 그리고 학생들을 올바른 과정 속으로 끌어당기는 건 결국 과정이 좋은 결과를 가져온다는 깨어있는 어른의 목소리라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현대사회에서는 결국 결과가 많은 것을 결정한다. 그것 자체를 피할 수는 없다. 하지만 그것 못지않게 과정 역시 중요하다. 좋은 과정이 생략된 결과는 오래가지 못하고 머릿속에 남지 않고 증발되어 버린다. 영화 속 지우는 학성의 의도에 맞게 과정에서 얻을 수 있는 ‘재미’와 ‘희열’을 느낀다. 조금 느리지만 그가 원하는 시험 결과도 얻어낸다. 그 이후 그 학생과 시스템을 유지시키는 건, 결국 어른들의 몫이다. 영화는 다소 극적으로 구성되어 있지만, ‘수학’이라는 과목의 특성을 잘 활용하여 보는 관객들에게 과정이 그만큼 중요하다는 것을 다시 한번 이야기하고 있다. 우리 모두가 이미 알고 있는 사실이지만 현실에서 쉽게 잊어버리게 되는 그 사실이 영화를 보는 내내 다시 전달된다. 무엇보다 그 모든 전달 과정이 지우와 학성의 따뜻한 관계를 통해 전달되고 있어, 영화를 다 보고 난 관객들은 기분 좋은 마음으로 극장을 나설 수 있을 것 같다.
*영화의 스틸컷은 [다음 영화]에서 가져왔으며, 저작권은 영화사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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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WIFF 데일리] 1950, 1995년. 레즈비언 로맨스의 두 계보
(왼)〈올리비아〉, 자클린 오드리 감독 작품, 1950, 프랑스, 7★/10★
(오)〈두 소녀가 사랑에 빠진 믿을 수 없는 진짜 이야기〉, 마리아 마젠티 감독 작품, 1995, 미국, 7★/10★
제24회 서울국제여성영화제에서 ‘복원: 아카이브의 맹점들’이라는 제목의 세션이 열렸다. “최근 몇 년간 세계 각지의 내셔널 아카이브와 필름 파운데이션에서 복원된 여성 감독들의 작품을 상영하는 특별전”을 표방한 세션이었다. 그중 〈리옹으로의 여행〉, 〈올리비아〉, 〈두 소녀가 사랑에 빠진 믿을 수 없는 진짜 이야기〉를 봤다. 첫 번째 영화는 역사에 중대한 공헌을 했으나 잊힌 여자를 기억한다는 것의 의미를 좇는 작품이고, 나머지 두 작품은 레즈비언 로맨스‧섹슈얼리티를 다루는 작품이다. 이 글에서는 각각 1950년 프랑스, 1995년 미국에서 제작된 후자의 영화들을 다뤄보고자 한다.
영화제 홈페이지에 따르면, 〈올리비아〉를 연출한 자클린 오드리는 1950년대의 거의 유일한 여성 감독이었다. 영화의 배경은 프랑스의 한 기숙학교다. 주인공 올리비아는 영국 기숙학교에 있다가 막 프랑스로 옮겨 온 참이다. 그녀가 영국과 프랑스의 기숙학교를 비교하는 대목이 흥미롭다. 그는 교장 쥘리에게 영국 기숙사의 엄한 규율과 도덕적 규제가 숨 막혔다고, 그와 반대되는 이곳이 좋다고 말한다. 여성들만으로 구성된 학교에서 규율과 도덕 없음이 레즈비언 섹슈얼리티의 분출로 이어짐을 짐작하기는 어렵지 않다.
올리비아가 새로 옮긴 기숙학교에는 교장 쥘리와 또 다른 선생님인 카라를 중심으로 한 두 세력 축이 있다. 쥘리와 카라는 묘한 경쟁관계에 있다. 그들이 표면적으로 경쟁하는 이유는 학생들의 ‘인기’다. 그러나 '인기'는 레즈비언 욕망의 다른 이름이다. 올리비아를 유독 아끼는 카라는 올리비아가 쥘리에게 빠진 게 명백해지자 질투에 사로잡힌다. 카라를 연기한 시몬느 시몽 배우의 연기가 매우 인상적인데, 그녀는 ‘지나치게 예민하고 늘 신경질적이며 불면증에 시달리는 불안정한 여성’ 캐릭터를 굉장히 인상적으로 연기해낸다. 질투에 빠진 카라의 존재로 인해 암시적으로 언급되는 쥘리와 올리비아의 로맨스도 한층 강렬해진다. 쥘리 방 바로 옆에 배정된 올리비아의 방, 우연한 스킨십에 뒤따르는 “열정이 넘치는구나!”라는 말, 올리비아와의 밀회 약속을 ‘망상’이었다고 철회하는 쥘리 등등…. 카라의 질투와 결부된 두 사람의 은밀한 로맨스는 성애적 장면 없이도 섹슈얼리티를 강렬히 그려낼 수 있음을 보인다.
영국에서 이 영화가 상영 금지되었다는 데서 레즈비언 섹슈얼리티의 위반하는 힘은 한층 더 강해지기도 한다. 파국적 사건 이후 비밀을 품은 우아함을 지닌 채 학교를 떠나는 쥘리와 더 이상 수동적으로 매달리지 않겠다는 올리비아의 표정도 압권이다. 남성/권력이 사건을 제대로 규명하지 못한 채 뒷모습만으로 등장했다가 퇴장하는 대목은 쥘리, 올리비아, 카라 등 여성들이 구축한 내밀한 세계가 독립성‧자립성을 갖추었음을 보이기도 한다.
〈올리비아〉가 고상하고 고전적인 방식으로 레즈비언 섹슈얼리티의 세계를 엿보게 해준다면, 〈두 소녀가 사랑에 빠진 믿을 수 없는 진짜 이야기〉는 유쾌하고도 사랑스러운 방식으로 레즈비언 로맨스를 풀어낸다. “1990년대 퀴어 로맨스 영화의 정전과도 같은 영화”라는 평을 받는 영화답게, 영화에는 그 시대 레즈비언 하위문화를 엿볼 수 있는 장면들이 많다. 주인공 랜들 딘은 낙태 반대 운동을 하는 어머니와 헤어지고 레즈비언 애인과 함께 사는 이모네 집에서 지낸다. 딘에게 ‘다이크’라는 모욕이 일상적이라는 데서 알 수 있듯, 그 역시 전형적인(그래서 멋있는) 톰보이 미학을 체현한 레즈비언이다.
주유소 화장실에서 이성애 결혼을 한 여자와 몸을 섞으며 욕망을 충족하던 딘은 어느 날 자신과는 모든 게 정 반대인 한 여자를 만난다. 딘의 정체성은 노동자계급, 백인, 남성성, ‘문제아’ 등으로 구성된 데 반해 이비는 부유하고, 흑인이며, 이제 막 남성 애인과 헤어진 '이성애자'고, 모범생이다. 완벽하게 다른 둘은 금세 사랑에 빠지고 다름 앞에 놓인 금기들을 하나하나 헤쳐 나간다. 그리고 다름을 조율하는 동시에 유지하며 서로를 매혹의 대상으로 남겨두고 영원히 탐색할 것임을 약속한다.
모든 소란이 한 장소에 모여 폭발하듯 분출되는 영화의 유쾌한 결말에서 그 모든 소음이 상관없다는 듯 서로의 귀를 막아주고 생긋 웃는 딘과 이비의 얼굴은 〈올리비아〉가 창조한 세계와 닮은 데가 있다. 누가(특히 남성/권력) 뭐라 하든 그들 관계의 주인은 자신이며 그 주권을 빼앗기지 않은 채 앞으로도 여성을 욕망하는 여성으로 남겠다는 의지가 읽힌다는 점에서 그렇다.
두 영화에서 파생된 수많은 여성/퀴어 영화가 남성중심적‧이성애규범적 사회에서 ‘미처 생각이 미치지 못한, 모순되는 점이나 틈’인 맹점을 만들어내고 있다. 그리고 그 계보는 세계가 변할 때까지 계속 이어질 것이다.
*영화 전문 웹진 〈씨네랩〉에 초청받아 서울국제여성영화제(SWIFF)에 참석한 후 작성한 글입니다. 서울국제여성영화제는 8월 25일부터 9월 1일까지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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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감염?되면 과장 부장 사장과 직급 떼고 붙을 수 있는 바이러스?가 있다고?? '메이헴'
흥해라 이 영화
메이헴 (2017)
- 좀비처럼 일만하던 직장인으로 가득한 회사에 분노 바이러스가 퍼지고 상사의 무시와 부당한 요구에도 꾹 참던 직원들이 분노를 폭발시키기 시작하는데...Walking Dead 아니고 Working Dead
좀비 바이러스보다 더 치명적인 바이러스의 침투로 시작된 사내배틀로얄무비 이 영화 흥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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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결말포함 영화리뷰? 구타로 숨진 해병대 군인의 억울한 죽음ㅣ결말포함 영화리뷰ㅣ어퓨굿멘ㅣ방구석1열
? [결말포함/영화리뷰] "어퓨굿맨"(A Few Good Men, 1992)
"살아있을 때 봐야하는 영화들" : 명품영화 고품격 영화리뷰 시리즈각본: 아론 소킨
감독: 롭 라이너
출연: 톰 크루즈, 잭 니콜슨, 데미 무어, 케빈 베이컨#결말포함 #영화리뷰 #결말포함영화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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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어 굿 맨> 메인 예고편
조용한 섬마을에서 함께 살고 있는 ‘벤자민’과 ‘오드’는
서로를 유일하게 이해하는 6년 차 연인이다.
가정을 꾸리고 싶은 두 사람은 아이를 갖기 위해 노력하지만,
‘오드’가 임신을 할 수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벤자민’은 그런 ‘오드’를 대신해 아이를 낳기로 결심하는데…
세상의 편견과 고정관념에 맞서는
용기 있는 사랑과 연대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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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500일의 썸머> 2021년 특별 예고편
운명적 사랑을 믿는 남자 ‘톰’
모든 것이 특별한 여자 ‘썸머’에 완전히 빠졌다.
사랑은 환상일 뿐이라고 생각하는 여자 ‘썸머’
친구인 듯 연인 같은 ‘톰’과의 부담 없는 썸이 즐겁다.
“저기… 우리는 무슨 관계야?”
설렘으로 가득한 시간도 잠시
두 사람에게도 피할 수 없는 선택의 순간이 찾아오는데…
“우리 모두의 단짠단짠 연애담!”
설레는 1일부터 씁쓸한 500일까지
서로 다른 남녀의 극사실주의 하트시그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