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롬2021-04-11 15:25:43
괴물이라는 활로 쏘아올린 사회비판의 화살
<괴물> ⭐⭐⭐⭐
촬영
<괴물>은 주로 수평과 수직 관계가 많이 등장한다. 주로 등장하는 장면들이 괴물이 살고 잇는 하수구나 지하는 수평의 촬영으로, 높은 빌딩이나 괴물이 등장하는 다리 사이의 공간을 촬영할 때는 수직의 촬영을 이용하여 보는 이가 괴물의 위압감이나 등장 전의 긴장감을 이어가는 중요한 포인트를 촬영이 짚어준다.
비
'비' 라는 존재는 어떨까 생명의 힘이 깃들고 차분해지는 이미지도 있다마는 이 영화에서는 신비롭고 영롱하며 몽환적인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다. 어둡고 잔잔한 분위기에서 괴물이 깜짝 등장했다고 생각해보자. 공포나 긴장감이 두 배로 나올 것이고, 괴물이라는 소재에 은연히 드러나는 사회 비판에 대한 어두움을 표현하기에 비 만큼 어울리는 배경은 없을 것이다.
사회비판
처음에 봤을 때는 그냥 괴물에 맞써 싸우는 가족들의 사투와 애환에 관한 내용일 줄 알았다. 그런데 생각보다 유쾌하면서도 묵직하고 예민한 문제들을 다루고 있다는 걸 영화를 다 보고 깨닫게 되었다. 한강에 독극물을 타는 초반 시퀀스는 실제로 2000년에 있었던 독극물 무단 방류 사건을 생각내게 하는 장면이다. 그리고 그 밖에도 정부의 미흡한 대처능력과 괴물이라는 소재가 아니라도 충분히 갈등이 벌어지는 문제들을 <괴물>에서 표현한다.
Relative cont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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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물이 인간이 될 수 있는 조건
분명히 이름이 있지만 전쟁 살상 무기 혹은 한 군인의 개로 불리는 여자. 전쟁이 끝나자, 그녀는 길을 잃는다. 어디로 가야하는지, 누구의 명령을 따라야 하는지 모른채. 전쟁 이후의 삶에 대해 고민할 기회가 없었던 그녀는 자신의 삶의 목적을 찾기 위해 자신에게 명령을 내려주던 길베르트 소령을 애타게 찾는다. 그녀에게 삶이란 곧 임무 완수와도 같은 말이었으니까. 그런데 기다리던 길베르트 소령은 오지 않고, 별안간 그의 친구라는 사람이 자신의 거처를 마련해 주고, 직업까지 주어가며, 보살펴준다. 하지만 그녀는 편지 대필 사업의 일원인 자동 수기 인형으로서 새로운 삶을 시작한다. 그에게 명령을 내려주던 길베르트 소령이 마지막으로 내린 명령인 "사랑해"의 뜻을 이해하기 위해서.
자동 수기 인형이란 진짜 인형이 아니라 문맹률이 높던 시기에 편지를 대신 써주는 사람을 일컫는다.
1. 감정을 느끼지 못한다는 것은,
눈 앞에서 사랑고백을 해도 이해하지 못하는 이 여자가 과연 다른 이들의 감정을 전달하는 편지를 제대로 쓸 수 있을까? 일찍이 부모를 잃고, 취급받고, 누군가를 보호하지 않으면 쓸모 없는 전쟁 도구로 취급받았던 그녀는 사람들이 하는 말 이면에 담긴 감정적 행간을 읽어내지 못한다. 그저 철자 그대로 이해하는 것이다. 평생을 군인으로 살아온 그녀에게 다른 이의 감정을 읽는 것은 훈련받을 필요가 없는 부분이었기 때문이었다. 이 애니메이션은 감정 교류를 배운 적이 없는 사람이 다른 이들의 감정을 이해하려고 발버둥치는 과정에서 자기 자신의 감정까지 이해하게 되는 일종의 성장 드라마이다. 인간으로 태어나 감정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그저 저주에 지나지 않음을 방증하듯이.
그녀는 그저 감정을 머리로만 이해할 뿐 느낄 일이 없었다. 그렇기 때문에 그녀의 너무 직설적이고, 사실적인 언행은 그녀를 상대하는 이들에게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올 때가 있다. 사람들은 자신의 진심을 교묘히 숨기기 위해서 진심과는 상반되게 아닌 척을 하기도 하면서 솔직해지지 못하는데, 그녀는 사실만을 이야기하는데, 오히려 그녀에게서 위안을 받은 이들이 있었다. 그녀의 다른 이의 감정 따윈 고려하지 않는 듯한 직설적 언행은 악의를 담고 있지 않았기에 솔직함으로 평가받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처음에는 그녀의 치명적인 단점으로 작용했던 직설적 솔직함은 그녀에게 마음을 열어주는 이들이 생기는 계기가 되기도 하였다. 가끔은 감정을 숨기기 위해, 남을 상처주지 않기 위해 돌려말하는 것보다는 악의 없는 솔직함도 먹힐 때가 있음을 알게 되었다. 다만 그 솔직함이 비아냥으로 혹은 누군가에겐 눈치없음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음을 감안해야 할 테지만.
2. 로봇이 아니에요. 인간입니다.
하지만 그녀가 점점 편지를 대필해주는 자동 수기 인형이 되고, 다른 이들의 감정을 가슴으로 이해하고, 가슴 깊이 공감해 주고 나서부터 그녀는 자신에 대한 자각을 하게 된다. 자신이 죽여왔던 살생의 현장을 다시 되돌아보고, 자신이 했던 일들에 대한 처절한 자기 반성을 하게 된다. 그 과정에서 모두가 알고 있었지만 본인만 모르고 있었던 바이올렛의 정인인 길베르트 소령의 죽음을 알게 되면서 그녀는 정서적으로 무너진다. 인생에서 한 번도 미워한 사람도, 사랑한 사람도 없는 것처럼 살아온 그녀가 드디어 '사랑'이라는 감정을 이해하게 되는데, 정작 사랑을 알게 되었을 때에는 그녀가 사랑해온 사람은 죽었음을 깨달았고, 그 사람을 지켰어야 했던 임무를 완수하지 못했다는 자책감에 오열하게 된 것이다. 그렇게 핏기 없는 인형 같은 삶을 살던 그녀가 진정한 사람같은 삶을 살아가게 된 것이다.
하지만 그녀라고 감정이 존재하지 않았던 것은 아니었다. 다만, 그녀가 깨닫지 못했을 뿐이었다. 결국, 인간과 사물을 가르는 기준은 감정의 유무임을 다시금 깨닫는다. 하지만 그 감정에 대해 느끼고, 이해하는 것도 결국 누군가에 의해, 교육에 의해 사회화되는 과정에서 비롯되는 것이다. 길베르트 소령은 그녀를 사랑했지만 그녀에게 사랑을 가르쳐 줄 생각까지는 못했던 것이다. 그는 그녀의 무감각함이 그저 그녀의 성격적 특성이라고만 생각했던 것이 아닐까. 그는 그녀를 처음부터 수단으로 대우하진 않았지만 그를 만나기 전까지의 그녀의 삶이 이미 수단으로써 이용되어 왔기 때문에 수단으로 이용되지 않는, 목적으로서의 삶에 대해 기대할 수 없는 사람이라는 것을 상상할 수 없었던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총평
사람으로 살아가는 데에 있어서 감정이란 뭘까 깊게 생각해보게 만드는 이야기였다. 바이올렛의 성장 스토리를 지켜보면서 나는 또 나 자신을 반추한다. 일본에서 상도 받은 애니메이션이라던데, 인간에 대해 철학적 고찰을 담은 이야기이기 때문에 이 애니메이션은 작화 뿐만 아니라 시나리오 상에서도 흠잡을 수 없을 만큼 울림이 있는 메시지를 전달하고자 한 흔적이 느껴진다.
나는 항상 무던해지려고 노력하는데, 너무 기뻐하다가도 오버하진 않았나 항상 염려하고, 슬퍼하다가도 너무 깊게 슬픔을 파고들진 않았나 그것조차 염려하곤 한다. 결국 무던해지려고 노력하나 매 순간 무던하지는 못한 것이다. 그 부분이 나의 이상한 성격이라고 생각해 왔었는데, 이 시리즈를 보고 나니, 생각보다 나의 감정적인 모습은 그냥 당연한 것이라는 자각이 들었다. 당연하게 감정이 올라오는 것을 누르려고 했다니, 인간이기를 포기한 것이 아닌가 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바이올렛이 감정을 이해하게 되면서 비로소 인형에서 진정한 사람이 되었던 것처럼 나도 그저 사람이라는 것을 매 순간 증명하고 싶은 것인지도 모르겠다. 요즘 내 상황에서는 특히 나의 사람다움을 표출하고 싶은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바이올렛을 보고 있자니, 나도 내 감정들과 좀 더 친하게 지낼 필요가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바이올렛 에버가든이 자신의 과거에 직면하는 데에 자신의 감정이 동반된 것처럼, 내가 무던해지려고 어떤 감정적 메시지를 찍어눌렀던 것일까 고민해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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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베티블루 37.2>, 찬란하고도 쓸쓸한 사랑
이 영화를 다시 되짚어보면 찬란하고도 아프다는 생각이 먼저 든다.
베티의 웃는 얼굴을 보면 그런 생각이 더더욱 강렬해진다. 눈이 부실 정도로 예쁘지만 어딘가 슬프게 느껴지는 표정.
이 영화는 조르그와 베티의 이야기를 담은 영화이다. 정말 불도저같이 자신이 하고픈 것을 망설임없이 다 하면서 살아가는 베티는 조르그와 사랑에 빠진다. 우연히 조르그가 예전에 쓴 글을 읽은 베티는 작가가 되길 원했던 그의 꿈을 포기하지 말 것을 신신당부하며 열렬히 지지한다.
이 둘은 시간이 지날수록 서로를 더 깊이 사랑하게 되었고, 그러던 어느 날 베티는 자신이 임신을 했다고 말한다. 하지만 이 행복도 잠시, 병원에서 검사를 받은 베티는 사실 임신이 아니었음을 깨닫게 된다. 임신에 대한 환상이었을 수도 있고, 유산한 것일 수도 있다.
아기를 가진 사실에 매우 기뻐했던 베티는 점점 무너져간다. 이는 그칠 기세를 보이지 않았다.
베티는 그저 하염없이 계속 무너지고, 또 무너졌다.
그녀를 너무나도 사랑했던 조르그는 끝까지 그녀와 함께 할 것을 약속한다. 하지만 베티는 다른 아이를 잠시 납치하기까지 하고, 결국 자신의 눈을 스스로 파내어 정신병원에 갇히게 된다. 조르그는 그녀를 탈출시키려는 시도도 하였지만 실패하였다. 결국 조르그는 베개로 질식시켜 직접 그녀의 숨을 거둔다. 영화의 분위기에 압도되어 모든 장면이 인상 깊었지만, 그 중에서도 특히 감명 깊고, 오래오래 기억해두고 싶은 장면들은 다음과 같다.
싸우다가 우연히 조르그가 예전부터 써 왔던 글을 발견하고, 베티가 조금은 뜬금없이 그의 글을 읽는 장면이다.
밤에 읽기 시작하여 시간이 흘러 새벽이 되고, 곧이어 태양이 뜰 때까지 베티는 멈추지 않고 조르그의 글을 계속 읽었다. 무언가에 홀린듯이 집중해서.
- 30세가 되면 인생을 알기 시작한다. 가끔은 쉬어갈 줄도 알게 된다.
조르그는 잠시 자신의 꿈을 보관해두었던 것이다. 나이가 들어 현실을 깨닫게 되면서 아직 순수함이 남아있는 꿈을 넣어두었던 것이다.
- 내게 중요한 거야, 그건 버리지 마.
- 제발 버리지 마.
- 대단한 건 아니야.
바쁜 삶에 치여 잠시 잊고 있던 꿈에 대한 기억이 다시 상기되는 순간이 있다.
내가 이 꿈을 꾸며 열심히 노력했던 사진이나 글 등의 작품을 우연히 발견하여 그 시절이 떠오르기도 하고, 평상시에 일상생활을 하다가 문득 그 꿈을 이루기 위해 노력했던 나의 모습이 생각나기도 한다. 나도 이런 적이 있고, 아마 대부분의 사람들도 이런 적이 있을 것이다.
이 기록과 기억들은 남들에게 자랑스럽게 보여줄 수 있을만큼 대단한 건 아니지만, 그래도 내겐 소중한 것이다. 이 장면에서의 조르그도 그랬을 것이다.
- 결국 그 원고는 베티가 처음으로 읽었고, 그걸 읽으면서 진정을 찾았다.
베티가 조르그의 꿈을 발견한 순간이다.
그리고 베티가 조르그에게 잠시 잊고 있던 꿈을 상기시켜주는 순간이다.
직접 조르그의 글을 타이핑하여 출판사에 보내는 열정을 보이며 그 누구보다도 조르그의 꿈을 열렬히 응원하는 베티가 멍하니 기찻길을 바라보는 장면이다. 이 장면을 보고 나면 베티가 왜 그렇게 극적이고 충동적으로 말하고 행동했는지를 모두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그녀의 본능이었던 것이다. 개인적으로 영화를 다 본 후 이 장면만큼은 한 번 더 보는 것을 추천한다.
어쩌면 베티는 꽤 오래 전부터 속이 문드러져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녀는 위태롭고 불안한 사람이었다.
온전히 조르그를 사랑하며 그가 쓴 글은 명작이고, 그는 위대한 작가임을 끊임없이 상기시켜주는 베티 덕분에 조르그는 살아갈 이유를 찾아냈다.
하지만 여전히 베티의 눈빛은 공허하게 느껴진다.
조르그가 베티를 넓은 들판으로 데려가 성벽에서부터 바위 있는 데까지, 저 멀리 보이는 작은 집까지 모두 사서 베티에게 줄 것을 이야기하는 장면이다.
조르그에게 베티는 그런 사람이었다.
이 순간의 햇빛과 바람소리도, 나뭇가지 사이로 비추는 석양도, 고요함과 언덕을 내려오는 산들바람도 모두 주고 싶은 사람.
불가능하지만 가능하게 해주고픈 사람.
최고의 선물을 안겨주고 싶은 사람.
항상 행복하게 만들어주고 싶은 사람.
임신하지 않았음을 확인하고 점점 무너져가는 베티를 보며 이런 고통을 끝까지 함께 하고자 했던 조르그를 가장 잘 보여주는 장면이다. 화장이 번져 엉망이 된 베티의 얼굴을 본 조르그는 식탁 위에 있던 음식의 소스를 자신의 얼굴에 덕지덕지 묻힌다.
이 장면을 보며 감탄했고 감동했다.
대사 하나 없었지만 그녀의 고통에 공감하고, 이를 함께 나누고자 했던 조르그의 마음이 정말 잘 느껴졌다.
사랑하는 사람이 하염없이 무너지는 것을 가장 가까이서 보는 심정은 어떨까.
상상하기도 두렵다.
자신의 눈을 파내어 정신병원에 갇히게 된 베티의 인생을 마무리지어주는 조르그의 모습이다. 조르그는 직접 그녀의 얼굴을 베개로 눌러 질식시켜 죽음에 이르게 한다.
- 베티는 존재하지 않은 걸 가지려고 하는 것 같아. 이 세상은 베티한테 숨 막히는 곳이란 게 문제야.
- 집에서 네 목소리가 들려. 너 없는 정적이 너무 괴로워. 여기저기서 너의 목소리가 들려.
설탕이 어디 있지?
웃기지 마.
고물 청소기다!
조르그.
조르그, 자고 있어?
조르그의 삶 속에 깊이 들어와 불꽃같은 뜨거움을 안겨준 베티.
그리고 불꽃처럼 금방 사라져버린 베티.
- 우리 도망가자.
조르그는 아마 알고 있었을 것이다. 둘의 이야기의 끝은 파멸이라는 사실을.
어쩌면 베티도 알았을지도 모른다. 알면서도 어쩔 수 없이, 본능적으로 그 길을 계속 걸어갔던 것일지도 모른다.
처음에 조르그와 베티의 곁에 있던 고양이는 베티가 죽은 이후, 조르그가 베티를 투영시키는 대상이 된다.
조르그는 그렇게 베티와 함께, 베티를 그리워하며, 베티를 기억하며, 베티를 사랑하며 계속 글을 써 내려간다.
이후로도 쭉 써 내려갈 것이다. 자신을 꿈꾸게 만들어준 베티를 추억하며.
베티가 있어야만 자신이 온전한 '나'가 되기에.
영화의 초반부에 나왔던 베티가 너무 사랑스러웠기에 영화의 끝에서 더 우울하고 씁쓸했던 것 같다.
서로에게 아낌없이 사랑을 표현하는 연인의 모습이 너무 예뻐보여서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무너지고 지쳐가는 둘의 모습을 보기가 힘들었다.
한 사람에게 온 열정을 다 불태워 꿈과 생기를 불어넣어 준 사랑.
이보다 찬란하고 쓸쓸한 사랑은 없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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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1월 5주 차, 최신 씨네 뉴스
샤를리즈 테론이 크리스토퍼 놀란의 차기작에 합류합니다. 2025년 초에 유럽 여러 나라에서 촬영을 시작할 예정인 이 작품은 맷 데이먼, 톰 홀랜드, 젠데이아, 로버트 패터슨, 앤 해서웨이, 루피타 뇽오 등 걸출한 스타 배우들이 출연을 알려 화제가 되었습니다.
놀란은 지난 3월, <오펜하이머>가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큰 성공을 거둔 직후 이 영화의 각본 작업에 돌입했다고 합니다. 해당 작품은 유니버설 스튜디오가 제작, 배급하며 2026년 7월 17일에 개봉 예정(북미 기준)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애플TV+ <파친코>, 티빙에서 볼 수 있다
국내 OTT 플랫폼 티빙에서 ‘애플TV+ 브랜드관’을 출시를 알렸습니다. 오는 10일부터 티빙 프리미엄 요금제 가입자는 추가 비용 없이 애플TV+의 콘텐츠를 관람할 수 있습니다.
애플TV+의 콘텐츠로는 국내외에서 큰 화제를 일으켰던 <파친코>를 비롯하여 <테드 래소>, <세브란스: 단절>, <디킨슨> 등이 있습니다.
변요한 <타짜 4> 주인공 발탁
배우 변요한이 새로운 타짜 시리즈의 주인공 장태영 역으로 발탁됐습니다.
<타짜 4>는 싸이더스가 제작을 맡고, 영화 <인생은 아름다워>, <국가부도의 날>을 연출한 최국희 감독이 메가폰을 잡을 예정입니다.
한편, 허영만 화백의 만화를 원작으로 하는 ‘타짜’ 시리즈는 각각 569만 명(타짜), 401만 명(타짜: 신의 손), 222만 명(타짜: 원 아이드 잭)의 관객을 동원하며 준수한 성적을 기록해 왔습니다.
<어느 가족> 릴리 프랭키, 영화 <하얼빈>에서 이토 히로부미 연기
‘안중근 의사 하얼빈 의거’를 다룬 영화 <하얼빈>에서 이토 히로부미를 연기한 배우의 베일이 드러났습니다.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 <어느 가족>에서 호연을 펼친 릴리 프랭키가 그 주인공입니다.
우민호 감독은 “워낙에 좋아하는 배우였다. 그분이 흔쾌히 이 작품의 진정성을 알아주시고 어려운 결정을 내려주셨다.”라고 캐스팅 비하인드를 밝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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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 역시 자인과 끝까지 함께 하겠다, <가버나움>
* 본 리뷰에는 영화의 결말이 포함되어있습니다.
<가버나움> Capernaum, 2018 제작
레바논 외 | 드라마 | 2019.01.24 개봉 | 15세이상관람가 | 126분
감독: 나딘 라바키
나 역시 자인과 끝까지 함께 하겠다, <가버나움>
이 영화는 이오아나 유리카루의 <레모네이드>(2018),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아무도 모른다>(2004), <어느 가족>(2018), 션 베이커의 <플로리다 프로젝트>(2017), 켄 로치의 <나 다니엘 블레이크>(2016)와는 분명 다르게 다가온다. 나열한 영화 속 주인공들을 모두 만났다 자부해도 <가버나움> 속 자인과의 만남을 ‘익숙하다’ 말할 수 없을 것이다. 직접 보지 않으면, 미디어에서 떠들어대는 ‘15분의 기립박수’와 ‘각종 영화제에 초청받았다’는 진정한 의미를 알 수 없지도 모른다. <가버나움>은 어느 리뷰에서도 완벽히 해석할 수 없는 작품이다.
출처: <가버나움> 스틸컷
‘가버나움’은 성서에 등장하는 도시로, 예수가 축복하는 동시에 인간의 욕심에 의해 처참히 무너져 내릴 거라 예언한 곳이다. 성서에서는 ‘축복’과 ‘멸망’을 함께 품고 있는 마을이지만, 자인이 사는 곳은 오직 ‘멸망’만이 존재한다. 감독의 가버나움은 기적보다, 혼돈에 초점을 맞췄다.
<가버나움>에 등장하는 이들은 모두 각자의 삶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가난은 그들에게 지독한 굶주림과 끝없는 노동을 강요한다. 대부분은 자신에게 주어진 짐을 짊어지고 살아가지만, 유일하게 자인의 부모만이 기구한 인생에 절망하기만 한다. 자식들에게 아무런 힘이 없는 이름을 던져주고 거리로 내쫓는다. 우리가 자인에게서 일말의 희망도 기대할 수 없는 까닭은 함께 사는 부모가 여전히 젖병을 물고 신세 한탄만 하고 있기 때문이다.
영화는 혼돈 속에 갇힌 자인을 복잡하게 보여주지 않는다. 그의 색 바랜 빨간 신발이 이끄는 대로 따라가기만 해도 충분히 들여다볼 수 있다.
출처: <가버나움> 스틸컷
사하르(여동생)가 생리를 시작하자, 자인은 불안함을 내비친다. 그녀도 떠나간 다른 여동생처럼 남자에게 팔려갈 것이 분명했다. 그 주도권은 자신의 부모가 휘두를 것도 아이는 알고 있었다. 끝내 자인은 여동생을 가게 주인에게 빼앗기고 만다. 지키겠다 맹세한 오빠의 절실함은 부모의 매질로 손쉽게 깨져버렸기 때문이다. 그 이후로 집을 나와 무작정 버스를 타고 떠난 자인은 바퀴맨 복장을 한 할아버지를 따라 작은 놀이동산에 내린다.
놀이동산, 그곳은 아이에게 주어진 새로운 세상일까? 페인트가 다 벗겨진 놀이기구를 통해 짐작했겠지만, 역시 아니다. 하지만 자인은 새로운 인연을 만난다. 너무나 자신과 똑같은.
아이는 식당에서 일하는 라힐과 그녀의 딸 요나스를 만난다. 요나스를 집에서 돌보는 것으로 자인은 라힐과 함께 생활하기 시작한다. 나무판자들이 간신히 바람을 견디고 있는 판자촌에서 아이는 또다시 동생을 성심성의껏 돌본다. 비극에 비극이 더해지는 순간에도 그들은 내내 웃고 있고, 우린 말 못 할 고통을 느낀다.
참 아이러니하게도, 그들에는 너무나 익숙한 하루일 뿐이었고 미소마저 사라지게 할 여유가 없었을 뿐이었다.가버나움에서 벗어나지 못한 것은 자인만이 아니다. 불법체류자 라힐 역시, 딸과 안전한 삶을 살기 위해 새로운 신분증을 구해야만 한다. 비극 속에 살고 있지만, 그들은 생을 포기할 수 없다. 그러나 순식간에 라힐이 경찰에 잡히고, 자인은 요나스와 긴 기다림을 함께 하다 결국 불법 신분증을 만드는 어른에게 속아 요나스를 두고 집으로 향한다. 출생신고서를 가지러 집에 온 그 순간, 사하르가 죽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불행이 끊임없이 두 사람을 덮쳐오지만, <가버나움>은 이를 너무나 태연한 시선으로 바라보기만 한다.
그렇게 자인은 법정에 서서 순순히 자신이 한 충격적인 행동을 읊는다.
여동생의 남편을 칼로 찔렸음을.
출처: <가버나움> 스틸컷
절망스럽지만, 자인이 간신히 암흑을 찢고 나와 처음 마신 건 엄마의 모유가 아니라 술이었을 것이고, 처음 눈을 떠 본 것은 밤마다 헐떡이는 부모의 옆모습이었을 것이다. 일찌감치 깨달았겠지. 자신이 누릴 수 있는 권리는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다는 걸.(열두 살로 추정되는 아이는 부모를 고소하기 전까지 그 권리가 자기에게 있는지조차 확신할 수 없었다.)
부모는 아이의 앙상한 신체를 때리는 것에서 멈추지 않는다. 끝내 아이를 자기의 손으로 가버나움에 가둬버린다. 더 충격적인 건, 그들이 끊임없이 가버나움 안에서 새 생명을 갈구하고 있다는 점이다. 결국 자인의 손에 칼을 쥐게 한 건, 가난에 힘입어 현실을 부정하는 법밖에 모르는, 무능력하면서 요란하기만 한 부모의 만행 때문이다. 따라서 자인이 법정에 서서 ‘가난이 아닌 부모를 용서할 수 없다’고 말한 건 당연한 결과다. 모든 걸 통달한 어린아이의 나지막한 선언이 이 작품의 시작과 끝을 책임지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학교도 다니지 못했던 아이가 스스로 삶의 고난과 슬픔을 터득했음에도 가족은 불완전하다 못해 제대로 형성되지도 않았다. 절망 속에서도 희망을 품었던 자인에게 가족은 더 이상 가족이 될 수 없었고, 아이는 선택한다. 부모를 버림으로써 자신에게 새로운 삶을 선물하기로.
그렇게 밝은 웃음을 지으며 다시 시작한다.
출처: <가버나움> 스틸컷
<가버나움>는 감각적인 장면 전환과 역동적인 스토리, 실제 빈민가에서 캐스팅한 배우들의 열연으로 완성된 수작이다. 그 덕에 필자는 쉽게 감동할 수 없었다. 물론 감동과는 아주 먼 이야기지만, 이 작품을 ‘레바논의 고립된 현실에 직격탄을 날리는 영화’라고만 정의해서는 안 된다는 것은 확신한다.
다른 건 몰라도 이 말은 꼭 하고 싶다.
“나 역시 자인과 끝까지 함께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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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크린 너머 세계속으로...스웨덴] 알렉산더의 네버랜드는 도피가 아니라 저항이다
피터팬의 환상 세계를 넘어선, 상상의 윤리와 저항의 힘
“어른이 되고 싶지 않아.”
피터팬은 현실을 등지고 네버랜드로 떠납니다.
그곳은 아이들이 어른의 세계로부터 벗어나, 자유롭게 꿈을 꾸는 환상의 섬이죠.
잉마르 베르만의 영화 《화니와 알렉산더 (1982)》에도, 현실의 폭력과 권위로부터 도망치고 싶은 한 아이가 있습니다. 그 아이의 이름는 알렉산더. 어린 알렉산더 역시 피터팬처럼 환상의 세계를 원하지만, 그 목적은 사뭇 달랐습니다. 그의 상상은 단순한 도피나 동심이 아닌 현실과 맞서기 위한 ‘저항’이자, 자유를 지키기 위한 ‘투쟁’에 가까웠죠. 그에게 상상은 냉혹한 현실에서 살아남기 위한 생존 방식이었습니다.
“연극의 목적은 세상에 거울을 비추는 것이다. 선은 선대로, 악은 악 그대로, 있는 그대로를 비춰내며 시대의 모습을 고스란히 드러내는 것이다.”
— 『햄릿』 3막 2장 16~19행
『햄릿』에서 “연극의 목적은 세상에 거울을 비추는 예술”이라 말합니다. 그러나 영화 속 주교는 오롯이 진실만이 옳으며 거짓을 행하는 행위는 악하다고 했습니다. 그의 세계에서는 연극도, 상상도, 작은 거짓말 하나 용납되지 않았죠. 그러나 그가 말하는 ‘진실’은 정말 정당했을까요?
스웨덴, 느린 진보의 시간을 거쳐 평등한 국가가 되기까지
작은 세계로 벗어나 알렉산더가 마주한 현실 세계는 우리가 아는 평등한 스웨덴의 이미지와 다소 차이가 있습니다. 영화적 배경은 1900년대 초. 신분제가 폐지된 지 수십년이 흘렀지만 스웨덴 사회의 계급 구조는 여전히 견고했고, 사회 곳곳엔 그 잔재가 남아있었습니다.
당시 스웨덴의 국교였던 루터교는 절대적인 질서와 규율을 강조했습니다. 영화에 등장하는 주교는 그 보이지 않는 질서의 권위를 상징하는 인물입니다. 자유롭고 예술적인 영혼을 지닌 에크달 가문의 사람들은 이러한 종교적 억압과 대조를 이루며, 영화 속 갈등의 긴장감을 서서히 고조시켜 나갑니다.
에밀리와의 재혼을 앞둔 주교는 이렇게 말합니다.
“당신의 집과 가구, 옷, 보석, 귀중품, 친구, 습관, 생각… 모두 두고 오란 말이오.”
이 말은 그녀에게 단순히 결혼 조건을 제시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곧 “당신의 자아를 내려놓으라”는 요구와도 같았죠. 그리고 알렉산더는 이 모든 과정을 묵묵히 지켜봅니다. 그의 눈에 비친 현실 세계는 잔혹했고, 주교가 말하는 질서는 곧 폭력이었습니다. 그렇다면 왜 에밀리는 주교와 재혼을 하게 되었을까요?
오마주, 그러나 달라진 여성 서사
《화니와 알렉산더 (1982)》는 셰익스피어의 4대 비극 중 하나인 『햄릿』에서 깊은 영감을 받은 작품입니다. 연출과 상징 곳곳에서 『햄릿』을 연상 시키면서도 베르만 감독은 독자적인 메시지를 섬세하게 투영합니다. 마치 “오마주를 한다면 이렇게 하라”는 모범적인 예시처럼 읽히는 대목이기도 해요. 그러나 여성 서사를 표현하는 방식에 있어서 중요한 차이를 보여줍니다.
『햄릿』극 중 극 <쥐덫>의 왕비는 남편의 죽음 이후 어떤 상대와도 재혼하지 않겠다고 다짐하지만, 결국 루시아너스(Lucianus)라는 남성과 재혼하게 됩니다. 강렬했던 왕비의 맹세는 보잘것 없이 흩어졌고, 이는 그녀의 선택에 대한 도덕적 판단에 불을 지피는 계기가 되고 말죠.
반면 에밀리는 남편을 떠나보내고 깊은 슬픔을 겪지만, 두 아이와 자신의 생존을 위해 재혼을 선택합니다. 그녀의 선택은 약속의 배반이 아닌, 생존을 위한 강인한 결단입니다. 고전에서 파생된 서사를 현대적인 시선으로 재해석한, 베리만 감독의 섬세한 각색이 돋보이는 지점입니다.
“거짓 증언을 하지 말라”
알렉산더는 주교의 세계에서 ‘거짓말쟁이’로 낙인 찍힙니다. 주교는 그를 다락방에 가두고, 십계명 중 하나인 “거짓 증언을 하지 말라”는 교리를 근거 삼아 가혹한 벌을 내립니다. 그러나 알렉산더에게 ‘거짓’이란 악의가 아닌, 상상력의 일부이자 자신을 표현하는 수단이었습니다.
예술적 자유와 창작이 숨 쉬는 에크달 가문에서 자란 알렉산더는, 감당하기 어려운 현실을 상상과 이야기로 견뎌냈습니다. 하지만 주교는 그런 ‘거짓’조차 죄로 규정하며 아이를 단죄 하려 들었고, 결국 현실 세계의 권위적인 교주 앞에서 작은 세계의 어린이는 위태롭게 흔들립니다.
구원의 손길, 이방인의 등장과 주교의 파멸
다락방에 갇혀 있던 화니와 알렉산더를 구한 인물은, 절묘한 타이밍에 등장한 이삭이었습니다. 유대인 상인으로, 스웨덴 사회에서 이방인처럼 존재하던 그는 어디선가 신비롭고 기묘한 골동품들을 수집하며 에크달 가문과도 교류를 이어온 인물입니다. 그는 현실 세계에서 병들어가던 화니와 알렉산더를 작은 세계로 돌려보내기 위해 위험을 무릅쓰고 구출을 감행합니다.
주교가 다락에서 마주한 아이들은 실체가 아닌, 그의 내면에 떠오른 환영이었습니다. 그 순간 주교는 처음, ‘작은 세계’ 안으로 발을 들입니다. 이 장면에서 카메라 전환은 꽤나 흥미롭습니다. 처음엔 비어 있는 다락방 바닥을 비추며 아무것도 없는 고요한 공간을 보여줍니다. 하지만, 황급히 다락방을 뛰어 들어오는 주교의 시선을 따라 같은 공간을 다시 비출 때, 그곳엔 평온히 잠든 화니와 알렉산더가 누워 있습니다. 주교가 그들의 실체를 확인하려 손을 뻗는 찰나 에밀리는 단호히 말합니다. “건드리지 말아요!”
주교가 환영에서 헤어나오지 못하는 그 틈을 타, 아이들이 무사히 도망치길 바라는 사람처럼 말이죠.
주교에게 환영은 단순히 경험했다는 정도에 그치지 않습니다. ‘진실만이 선하다’고 믿어온 그가, 악이라 여겨온 세계 — 즉 ‘거짓의 영역’에 처음으로 발을 들인 순간이기 때문이죠. 다락방 한가운데, 십자가 아래에서 그는 속으로 이렇게 중얼거렸을지도 모릅니다.
“하나님 아버지, 어찌하여 저를 버리셨나이까.”
한편 이삭 야코비의 도움으로, 아이들은 탈출에 성공합니다. 그리고 그날 밤, 잠들지 못한 알렉산더는 이삭의 집 안을 누비다 기묘하고 오싹한 기운이 흐르는 방 한가운데에서 아버지와 마주하게 됩니다. 이미 여러 차례 나타난 환영이었지만, 이번 공간에서의 만남은 특별합니다. 이승과 저승, 현실과 비현실을 잇는 통로 같은 곳에서 알렉산더는 아버지와 진솔한 대화를 나눕니다. 죽어서도 늘 곁에 있겠다는 아버지의 위로는 차갑고 섬뜩하지만, 동시에 따뜻하고 다정합니다. 알렉산더에게 아버지는 언제나 마음속에 살아 있는 존재입니다. 어쩌면 그것이, 주교를 진정한 ‘아버지’로 받아들일 수 없었던 이유일지도 모르죠.
마음의 어둠을 들여다보는 사람
알렉산더는 이삭의 집에서 이스마엘을 만납니다. 그는 영적으로 강인하고 사람의 마음을 꿰뚫어보는 초월적인 능력을 지녔으나, 오히려 그 능력이 세상에는 위협적인 존재로 여겨져 격리된 인물이었죠. 하지만 그런 이스마엘에게도 알렉산더는 쉬운 상대가 아니었습니다. 이스마엘은 알렉산더의 마음 깊은 곳에 숨어있는 감정을 끌어올리기 위해, 조심스럽지만 끈질기게 다가섭니다. 그리고 마침내, 알렉산더의 마음 속에 억눌려 있던 주교에 대한 증오를 발견하죠.
— 이스마엘은 알렉산더의 어둠을 건드려 끔찍한 환영을 보여줍니다.
불길에 휩싸인 숙모가 나타나, 고통으로 몸부림 치며 주교의 침실로 들어갑니다. 수면제를 먹고 깊이 잠든 주교는 불길 속에서 파멸을 맞이합니다. 이것이 단순한 환상이라면 좋았겠지만— 다음 날, 주교는 실제로 죽음을 맞습니다.
이스마엘이 속삭이던 모든 이야기가 현실이 된 것입니다.
“재미만을 추구하지 말라(El blot til lyst)”
“재미만을 추구하지 말라(El blot til lyst).” — 첫 도입부에 등장하는 메세지
이는 단순한 교훈이 아니라, 예술을 받아들이는 우리가 가져야 할 태도에 대한 물음입니다.
알렉산더를 억압하던 주교의 파멸은 일시적인 통쾌함을 선사하지만, 곧 그 감정의 정당성에 대해서 곱씹게 되지요.
내가 느낀 이 통쾌함, 카타르시스는 과연 정당한가
남을 파멸시켜 얻는 해방은 진정한 해방일 수 있을까
영화는 유희와 감정적 해소에 머무르지 않고 그 너머의 진실을 마주하게 만듭니다. 예술은 때로 모두를 위로하고 숨 쉴 틈이 되어주지만, 결국 우리는 현실 세계를 살아가야만 하는 사람들이니까요. 작은 세계를 품고 살아가되 그 안에 매몰되어서는 안 된다고 — 영화는 마지막 순간, 날카로운 현실의 감각을 일깨웁니다.
오늘의 크레마 리뷰 어떠셨나요? ☕
하나의 장면, 한 잔의 크레마처럼 잔잔하고 진한 여운을 담아 글을 씁니다.
📧 crema@maily.s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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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 로맨스 영화 좋아하시나요?!
그렇다면?! '너의 결혼식' 보셨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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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너의 결혼식' 재미있어요! 보세요!
첫사랑의 그리움과 설렘을 한곳에 모아 향수를 느끼게 해준 작품
'너의 결혼식'리뷰 시작합니다!
기본정보
장르 : 로맨스, 드라마
감독 / 각본 : 이석근
출연진 : 박보영, 김영광
개봉일 : 2018년 8월 22일
평점 : 9.01
스트리밍 : tvN , NETFLIX, 웨이브, 왓챠
기획의도
"기억하나요? 당신의 첫사랑?"
고3 여름, 전학생 '승희 (박보영)'를 보고 첫눈에 반한 '우연 (김영광)'
승희를 졸졸 쫓아다닌 끝에 마침내 공식 커플로 거듭나려던 그 때!
잘 지내라는 전화 한 통만 남긴 채 승희는 사라져 버리고,
우연의 첫사랑은 그렇게 막을 내리는 듯 했다.
1년 뒤, 승희의 흔적을 쫓아 끈질긴 노력으로 같은 대학에 합격한 우연.
그런데 그의 앞을 가로막은 건... 다름 아닌 그녀의 남자친구!
예술로 빗나가는 타이밍 속, 다사다난한 그들의 첫사랑 연대기
등장인물
한승희 (박보영)
3초의 운명을 믿는 여자
"이 사람이구나 느낌이 오는 시간이 3초래"
황우연 (김영광)
승희만을 바라보는 순정 직진남
"사랑은 타이밍이다. 근데, 그건 정말 극복이 안 되는 걸까?"
여담
중국에서 <니적혼례>이라는 제목의 영화로 리메이크 되었다.
너의 결혼식 주인공으로 김영광이 아닌 강하늘이 남자 주인공으로 물망에 올랐으나
다른 작품과 촬영시기에 맞물리면서 최종 김영광으로 낙점이 되었다고 한다.
(강하늘도 정말 잘 어울릴것같지만! 그래도 난 김영광!)
후기 및 결말
결말부터 살펴보자면
사랑에 타이밍이 있다는 말을 믿으시나요?!
못 믿으신다면 영화에서 승희와 우연의 자꾸 엇갈리는 타이밍 속에 한탄하고 안타까워하지만
결국 운명을 이기지 못해 서로는 헤어지며 서로 응원하며 영화는 끝이 납니다.
(역시... 처사랑의 불변의 법칙인가....)
영화 '너의 결혼식'은 첫사랑과의 추억을 한껏 끄집어 내면서
너,나, 우리, 모두에게 있었던 첫사랑의 향수와 기억을 끄집어 내주는 영화였습니다.
무엇보다 이런 역할의 최적화된 박보영의 사랑스러움과 김영광의 어리숙하지만
한여자만 바라보는 듬직함이 만나 더욱더 재미있게 봤던 작품 입니다.
영화는 9점대로 높은 평점을 유지하며 믿음과 어디하나 모진곳이 없는 완벽한
향수를 그리던 영화라 저는 추천합니다!
오늘밤..
학창시절의 달콤한 로맨스를 끄집어내며
"너의 결혼식" 영화 한편 어떠신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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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블랙팬서의 죽음 이후 과연 매력적인 영웅이 탄생했을까
?Rabbitgumi 입니다!
채드윅 보스만의 죽음으로 영화 블랙팬서에도 변화가 필요하게 되었어요.
1편에서 겨우 세팅이 되었는데, 다시 2편에서 재세팅이 필요한 상황이죠.
이번에 2편이 개봉을 하게 되었는데 이번 영화가 마블 페이즈4의 마지막 영화에요.
그래서 더욱 사람들의 기대를 받고 있던 영화였죠.
마블 페이즈4가 스파이더맨 정도를 제외하면 모두 고만고만 했거든요.
이번에 개봉한 블랙팬서도 아주 좋다고 하긴 어려워요.
하지만 나쁘지 않은 영화인건 분명합니다.
자세한 내용은 전체 리뷰를 참고해주세요!
이 영화가 어땠을지 좀더 자세히 영상에서 알려드릴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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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두 곳의 영화제를 다녀오며 느낀 점
#한예종졸업영화제 #한국영화아카데미졸업영화제 #단편영화
안녕하세요. 오랜만에 직접 인사 드리는 영화등대입니다. 오늘은 정말 오랜만에, 제 근황과 제가 다녀왔던 영화제들에 관한 이야기를 하려고 합니다. 영화리뷰를 기대하셨던분들에게는 조금 죄송스럽지만, 근래에 제가 영화들을 보며, 영화제를 다녀오며 느껴진 이야기를 좀 해볼까 합니다. 이건 순전히 저 개인적인 생각이고, 저는 영화관계자가 아닌, 오로지 팬의 입장에서 느껴졌던 감정을 이야기해볼테니, 제가 하는 말을 전적으로 믿어달라는것도 객관적이다는것도 아니다는 점 말씀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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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목표는 세상에 없는 돈이다" 통일 직전의 한국, 역사를 바꿀 사상 최고의 범죄가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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