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INELAB2024-11-13 19:31:59
음악도, 연기도 잘하는! 다재다능한 배우들의 영화 9선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은 배우들을 소개합니다!
오는 20일 개봉을 앞둔 뮤지컬 영화 <위키드>에 세계적인 팝스타 '아리아나 그란데'가 출연해 화제가 된 바 있죠. 과연 영화에서는 어떤 모습을 보여줄지 기대감을 모으고 있습니다.
최근 아리아나 그란데뿐만 아니라 레이디 가가, FKA 트위그스 등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으며 활동하는 아티스트들이 많아지고 있는데요.
그래서 준비해 보았습니다!
음악도, 연기도 잘하는 다재다능한 아티스트들의 영화, 함께 보러 가실까요?
<위키드 Wicked>(2024),
존 추 Jonathan Murray Chu
줄거리
자신의 진정한 힘을 미처 발견하지 못한 '엘파바'(신시아 에리보) 자신의 진정한 본성을 아직 발견하지 못한 ‘글린다'(아리아나 그란데) 전혀 다른 두 사람은 마법 같은 우정을 쌓아간다. 그러던 어느 날, '마법사'의 초대를 받아 에메랄드 시티로 가게 되고 운명은 예상치 못한 위기와 모험으로 두 사람을 이끄는데…
마법 같은 운명의 시작, 누구나 세상을 날아오를 수 있어!
<히든 피겨스 Hidden Figures>(2017),
데오도르 멜피 Theodore Melfi
줄거리
천부적인 수학 능력의 흑인 여성 캐서린 존슨 NASA 흑인 여성들의 리더이자 프로그래머 도로시 본 흑인 여성 최초의 NASA 엔지니어를 꿈꾸는 메리 잭슨 미국과 러시아의 치열한 우주 개발 경쟁으로 보이지 않는 전쟁이 벌어지고 있던 시절, 천부적인 두뇌와 재능을 가진 그녀들이 NASA 최초의 우주궤도 비행 프로젝트에 선발된다.
하지만, 흑인이라는 이유로 800m 떨어진 유색인종 전용 화장실을 사용해야 하고, 여자라는 이유로 중요한 회의에 참석할 수 없으며, 공용 커피포트조차 용납되지 않는 따가운 시선에 점점 지쳐 간다. 한편, 우주궤도 비행 프로젝트는 난항을 겪게 되고, 해결 방법은 오직 하나, 비전을 제시할 수 있는 새로운 수학 공식을 찾아내는 것뿐인데….
천재성에는 인종이 없고, 강인함에는 남녀가 없으며, 용기에는 한계가 없다!
세계를 놀라게 한 그녀들의 이야기가 시작된다.
<하우스 오브 구찌 House of Gucci>(2022),
리들리 스콧 Ridley Scott
줄거리
처음부터 사랑에 빠졌던 그 이름 구찌. 내 것이 될수록 더욱 갖고 싶었던 이름, 누구에게도 뺏길 수 없었던 그 이름!
구찌를 갖기 위해 구찌를 죽이기로 했다.
<덩케르크 Dunkirk>(2017),
크리스토퍼 놀란 Christopher Nolan
줄거리
해변: 보이지 않는 적에게 포위된 채 어디서 총알이 날아올지 모르는 위기의 일주일.
바다: 군인들의 탈출을 돕기 위해 배를 몰고 덩케르크로 항해하는 하루.
하늘: 적의 전투기를 공격해 추락시키는 임무, 남은 연료로 비행이 가능한 한 시간.
“우리는 해변에서 싸울 것이다. 우리는 상륙지에서 싸울 것이다. 우리는 들판에서 싸우고 시가에서도 싸울 것이다. 우리는 끝까지 싸울 것이다.”
<페어웰 The Farewell>(2021),
룰루 왕 Lulu Wang
줄거리
뉴욕에 사는 ‘빌리’와 그녀의 가족들이 할머니의 남은 시간을 위해 벌이는 세상에서 가장 따뜻한 거짓말.
<지구에 떨어진 사나이 The Man Who Fell To Earth>(1976),
니콜라스 뢰그 Nicolas Roeg
줄거리
외계에서 온 남자의 이야기를 통해 세상과 정착할 수 없는 정체성의 혼란이라는 뢰그 감독의 주제적 관심사를 다시 한번 확인시켜준 작품.
<성실한 나라의 앨리스 Alice In Earnestland>(2015), 안국진
줄거리
제가 이래 봬도 스펙이 좋거든요. 제 자랑은 아니지만 자격증이 한 14개? 어렸을 때부터 손으로 하는건 뭐든지 잘했어요~ 근데 결국 컴퓨터에 일자리를 뺏겼죠. 그래도 다행히 취직도 하고, 사랑하는 남편까지 만났어요. 그래서 둘이 함께 살 집을 사기로 결심했죠. 잠도 줄여가며 투잡 쓰리잡 열심히 일했어요.
근데 아무리 꾸준히 일해도 빚은 더 쌓이더라고요. 그러다 빚을 한방에 청산할 기회가 찾아왔는데! 왜 행복을 방해하는 사람들이 자꾸 생기는 걸까요? 이제 제 손재주를 다르게 써보려고요. 더 이상 당하고만 있지 않을 거예요!
5포 세대에 고함! 열심히 살아도 행복해 질 수 없는 세상, 그녀의 통쾌한 복수가 시작된다!
<스윙키즈 Swing Kids>(2018), 강형석
줄거리
1951년 한국전쟁, 최대 규모의 거제 포로수용소. 새로 부임해 온 소장은 수용소의 대외적 이미지 메이킹을 위해 전쟁 포로들로 댄스단을 결성하는 프로젝트를 계획한다.
수용소 내 최고 트러블메이커 ‘로기수’(도경수), 무려 4개 국어가 가능한 무허가 통역사 ‘양판래’(박혜수), 잃어버린 아내를 찾기 위해 유명해져야 하는 사랑꾼 ‘강병삼’(오정세), 반전 댄스실력 갖춘 영양실조 춤꾼 ‘샤오팡’(김민호), 그리고 이들의 리더, 전직 브로드웨이 탭댄서 ‘잭슨’(자레드 그라임스)까지 우여곡절 끝에 한자리에 모인 그들의 이름은 ‘스윙키즈’!
각기 다른 사연을 갖고 춤을 추게 된 그들에게 첫 데뷔 무대가 다가오지만, 국적, 언어, 이념, 춤 실력, 모든 것이 다른 오합지졸 댄스단의 앞날은 캄캄하기만 한데…!
<싱글즈 Singles>(2003), 권칠인
줄거리
29살 나난 (장진영 분)과 나난의 친구인 워킹우먼 동미(엄정화 분). 이들은 행복한 29살을 보낼 수 있을 것인가? 며칠 있으면 새해다. 난 서른 살이 되기 전 인생의 숙제, 둘 중의 하나는 해결할 줄 알았다. 일에 성공하거나 결혼을 하거나.
Relative cont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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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잊을 수 없는 평범한 여행
일상을 살다 보면 문득 어린 시절 기억에 남는 여행을 떠올릴 때가 있다. 수많은 여행 중에서도 그 여행의 공기와 분위기를 세세하게 떠올릴 수 있는 그 여행은 마음속 깊이 남아 현실을 살아갈 수 있는 힘을 준다. 그때 겪었던 즐거운 기억과 부모와 다퉜던 기억까지도 무척 소중하게 느껴진다. 그 당시 부모의 나이가 된 자식의 입장에서 그 여행은 지금의 내 위치에서 그 당시 부모의 어려움과 감정을 알 수 있게 해주는 추억이기도 하다.
사실 어린 시절, 특히 사춘기 시절에는 부모의 마음을 이해하기 어렵다. 많은 것을 부모에게 바라지만 부모는 모든 것을 다 해줄 수 없다. 금전적인 문제도 있고, 그 당시의 상황이 그것에 장애가 되기도 한다. 그런 어려움 속에서도 부모는 자신의 아이에게 좋은 것을 해주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 어딘가로 같이 여행을 가는 것은 자신들의 휴양을 위해서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도 아이에게 좋은 추억을 만들어주기 위해서다. 아니 부모와 자식 모두가 같이 기억할 수 있을 만한 즐거운 시간을 보내기 위해서다. 그렇지 않다면 이렇게나 많은 사람들이 비싼 여행비를 들여가면서 여행을 다니지 않을 것이다. 그 여행에서 즐거운 추억을 만들고 한참이 지난 후에야 자식들은 그때 부모의 마음을 어렴풋이 떠올리게 된다.
아빠와 딸의 평범한 튀르키예 여행을 따라가는 이야기
영화 <애프터썬>은 튀르키예로 여행을 떠난 아빠 캘럼(폴 메스칼)과 딸 소피(프랭키 코리오)의 모습을 보여준다. 현재의 소피(실리아 롤슨 홀)는 이미 성인이 된 상태고 아이도 있다. 그가 과거 아빠의 캠코더에 녹화된 여행 영상을 보며 떠올리는 과거의 모습이 영화의 주된 이야기다. 영화 속 캘럼과 아내는 이미 이혼한 상태이고, 캘럼은 딸 소피와 같이 살고 있지 않은 상황이다. 그래서 아빠 캘럼은 튀르키예의 한 호텔에 예약을 하고 딸과 휴가를 보내면서 시간을 보내려 한다.
캘럼이 예약한 호텔은 그렇게 좋은 곳은 아니다. 금전적으로 여유가 없는 캘럼은 자신이 할 수 있는 가장 좋은 호텔로 예약했고, 여행 내내 소피에게 미안해한다. 이제 막 사춘기가 된 소피는 그런 아빠의 상황을 어느 정도 이해하고 있고 그런 아빠와 잘 지내려고 한다. 소피의 눈에는 주변 자신보다 조금 더 나이가 많은 언니와 오빠들의 행동들에 관심이 더 가게 되고 그런 호기심이 자꾸만 다른 행동을 하게 만든다. 그렇다고 그것이 나쁜 짓은 아니고 여행의 일반적인 루틴에서 조금 벗어난 정도다.
수영을 하고, 선탠을 하고, 바다에서 수영을 하는 아주 일반적인 놀이를 하며 시간을 보내는 두 사람의 여행은 특별한 것이 없어 보인다. 이국적인 튀르키예의 풍광과 새로운 사람들, 그리고 옆에서 같이 시간을 보내고 있는 아빠와 소피가 영화가 담는 전부다. 때론 소피는 아빠의 기분을 상하게 한다. 의도한 건 아니지만 기분이 상한 아빠는 소피에게 화를 내기도 한다. 이내 사과하지만 그만큼 그때의 아빠는 여유가 없어 보인다. 영화 후반부 침대에 앉아 펑펑 우는 캘럼의 뒷모습은 무척 공허하고 슬퍼 보인다.
어려움을 감추고 추억을 선사하려 노력하는 아빠
자신들이 처한 상황이 아주 행복한 건 아니지만 두 사람이 여행을 즐기는 모습은 꽤 보기 좋다. 서로의 모습을 캠코더에 담으면서 작은 농담을 주고받고 주변 여행지에 쇼핑을 다니면서 우스꽝스러운 스트레칭 동작을 같이 하기도 하는 두 사람은 여행지에서 만큼은 무척 행복해 보인다. 특히나 영화 중반에 두 사람은 튀르키예 전통 무늬로 만들어진 카펫을 구경한다. 두 사람이 멍하니 같이 카펫을 보고 앉아있는 모습은 왠지 모르게 기억에 남는 장면이다.
소피가 수영장에서 노는 사이에 캘럼은 혼자 카펫 가게를 찾아 한 카펫을 구입한다. 그 카펫을 자신이 가져갈 것인지, 아니면 누구에게 선물할 것인지를 영화는 알려주지 않지만 영화 후반부에 비추는 성인 소피의 집에 깔려있는 카펫은 아빠가 구입한 그 카펫 무늬다. 그것이 실제로 아빠가 선물한 것이든 소피가 한참 뒤에 비슷한 무늬의 카펫을 산 것이든 그것이 아빠와의 여행에서 영향을 받은 것이라는 것은 분명하다.
동영상 캠코터로 녹화된 그 당시의 영상을 보고 있는 성인 소피는 그 여행 즈음 아빠의 나이가 되었다. 조금은 지쳐 보이는 그 모습은 여행지에서 지쳐 보이는 아빠의 모습과 겹친다. 어린 소피가 아빠에게 ‘11살로 돌아간다면 뭘 하고 싶은지’ 묻는 장면이 있다. 하지만 그 질문에 아빠 캘럼은 답을 하지 못한다. 그 당시 자신이 처한 현실은 11살로 돌아간다고 해서 바꿀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자신의 딸에게 해줄 수 있는 최대한을 해주면서도 그것이 부족하다고 생각하는 그에게는 과거로 돌아가기보다는 지금 만난 문제들을 해결하는 것이 우선이었을 것이다.
사춘기인 소피가 그 여행지에서 본 것들은 새로운 것들이다. 다른 커플들의 스킨십 장명에 특히 눈이 자주 가게 되는데, 그때 본 동성애 커플이나, 자신이 경험한 첫 키스 등은 평생에 걸쳐 성정체성과 행동에 영향을 주었을 것이다. 아주 사소하게 스쳐 지나가지만 여행지에서 벌어지는 조금 적극적이고 과감한 장면들은 아빠와의 추억과는 별개로 소피의 기억에 남았다.
아련한 추억, 이제 여행 갔던 그때의 아빠 나이가 된 소피의 시선
소피의 11살 아빠와의 여행은 좋은 추억으로 남았다. 그리고 성인이 된 소피는 과거의 영상을 보면서 그 당시 아빠의 감정을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그때 아빠가 최선을 다해 행복한 추억을 남기기 위해 노력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영화는 아주 평범한 여행의 모습을 담는 것 같지만 그 여행은 소피가 자라면서, 또 성인이 되면서 계속 떠올릴 수 있는 기억이다. 영화는 어쩌면 사소하고 보잘것없어 보이는 한 순간이 얼마나 오랫동안 한 사람의 마음에 영향을 줄 수 있는지를 잘 보여준다.
이 영화는 샬롯 웰스 감독의 자전적 실화를 바탕으로 만들어졌다. 누구나 가지고 있는 유년기 시절 빛바랜 사진같이 남아있는 기억들을 영화적으로 아름답게 담아 보여준다. 유년기에 받은 추억의 감정을 잘 살린 영화 <애프터썬>은 57회 전미 비평가 협회에서 감독상을 수상했고, 39회 뮌헨 국제영화제에서 시네비전상을 받기도 했다.
무엇보다 이 영화는 부모와의 추억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에게 추천할 수 있는 영화다. 또한 현재 아이를 키우고 있는 성인들이 과거 자신들이 부모와 갔던 여행을 떠올릴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주는 영화이기도 하다. 약간은 촌스럽고 투박해 보이는 화면을 보면서 관객 자신이 가지고 있는 추억을 꺼내보게 만든다는 측면에서 꽤 감성적이고 아름다운 영화다.
*영화의 스틸컷은 [다음 영화]에서 가져왔으며, 저작권은 영화사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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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도 해야지 어떡해 - <야구소녀> 리뷰
*스포일러 포함
살다 보면 세상일에는 분명한 인과관계가 없는 것이 많다. 노력이 전부 결과를 이어지는 건 아니며 모든 것에는 다 때가 있다고 하는데, 문제는 그게 언제인지 알 수가 없다는 점이다. 머리를 싸매고 고민하고 막막한 괴로움에 포기를 해야 하는 건지 언제까지 계속해야 하는 건지 매 순간 갈팡질팡 하게 된다. 하지만 그저 모든 생각을 다 지우고 앞으로 묵묵히 나아가야 할 때가 있다. 모든 것에는 때가 있다고 하지만 사실 그때가 온다는 전제로 준비하고 기다리는 것보다 그저 한 걸음 내디뎌 보는 것 그 자체가 목적인 때도 있다.
<야구소녀>는 뛰어난 재능을 가진 천재가 현실의 벽에 부딪혔다가 그것을 극복하는 서사도 아니고 지성이면 감천이라는 식으로 불타는 열정으로 모두를 감동시키는 스토리도 아니다. 주수인은 구속 150킬로가 넘는 '남자를 뛰어넘는' 천재도 아니다. 여자 선수를 부원으로 받아 학교의 이름을 알리려 한 고교 야구단이나 그녀를 프런트에 영입해 야구단 이미지 마케팅을 하려 했던 구단들은 그녀의 재능이나 열정에 크게 감동한 것도 아니었다. 주인공은 여자 선수로서 던질 수 있는 만큼의 구속으로 공을 던졌고 그 단점을 극복하기 위해 '자신이라서 할 수 있는' 것에 치중했다. 그리고 학교와 프로 야구단은 그녀를 과대평가 하지도 과소평가하지도 않고 딱 실제로 지닌 실력만큼 평가하고, 여자 선수라는 상징성을 자신들이 이용하는 대가로 적절한 연봉을 제시한다. 이 영화의 기승전결은 주수인도, 그녀의 부모님도, 영화를 보는 관객도 모두가 만족하는 레벨에서 딱 끝난다.
그러니까 사실, 복권에 당첨되고 싶거나 불로소득을 벌고 싶다는 한탄들을 하지만 사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실제로 바라는 것은 적정 수준의 합리성이다. 노력한 만큼 보상을 받고, 기대한 만큼 결과를 내는 것 말이다. 하지만 내가 생각했던 합리성이 필연적으로 실현되는 것은 아니며 내가 인지하지 못했던 길들도 내 길이 될 수 있음을 받아들이는 것, 즉 현실을 받아들이고 그것을 딛고 또 앞으로 나아가는, 우리가 성장이라 부르는 그것은 복권 당첨보다도 힘들게 느껴질 때가 많다. 세상은 최소한의 합리성도 우리에게 보장해 주지 않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에겐 아직 오늘의 몫으로 이뤄내야 할 성장이 숙제로 남아 있기 때문이다.
주수인이 '여자 중에 제일 잘한다'는 소리를 들으며 여자 구단으로 가기 싫었던 이유는 뭘까?
여성으로 태어난(그게 생물학적으로 사회적으로 무엇을 의미하든지 간에 그냥 가장 보편적으로) 사람들이라면 모두 이해할 것이다. '여자 치고 털털하다' '여자 치고 잘한다' 같은 말은 몇 백번을 들을수록 기분만 나쁘다. 여자라는 집단을 통째로 비하하면서 그 집단에 속한 너는 집단의 부정적 속성에 물들지 않은, 긍정적으로 구분되는 개체라는 말인데 이게 어떻게 칭찬인가?
하지만 영화 속에서 수인은 사람들에게 어떠한 항변도 설명도 하지 않고 묵묵히 공을 던진다. 왜냐면 그러고 싶으니까. 자신이 남자라면 듣지 않았을 말들에 속이 상하고 '현실'과 '경제적' 문제를 보라고 윽박지르는 세상이 짜증 나지만, 어쨌든 거기에 순응해서 살 생각은 없으니까 그냥 계속 공을 던진다. 그리고 그것이 수인 혼자만의 외로운 싸움이라고 생각하던 영화의 관객은 트라이아웃에서 정제이미를 만나는 순간 왠지 모를 안도감을 느낀다. 수인과, 나와, 다르겠지만 비슷한 싸움을 하는 사람들이 또 있구나, 같은 안도감이다. 꼭 서로 팔짱을 끼고 같은 구호를 외치지 않아도 그 안도감에 너도 이 자리 오기까지 참 뭣 같은 일 많이 겪었겠구나, 라는 약간의 공감과 연민이 섞인 감정도 연대라고 부를 수 있지 않을까.
구속을 더 이상 올릴 수 없다는 걸 모두가 인정하게 된 시점에서 수인은 진태의 도움을 받아 너클볼을 연습하기 시작했고, 아빠는 더 이상의 시험 응시를 포기하고 엄마는 수인을 응원하고 지원해 주기로 했고, 수인이 다니던 고등학교에는 여자 선수들의 지원서가 들어오기 시작했다. 흔히들 문이 하나가 닫히면 다른 문이 열린다고 한다. 글쎄, 실제의 삶은 그것보다는, 문이 다 닫히면 닫힌 문 안에서 할 수 있는 일을 해야 하는 것에 가깝다. 나의 존재가 아직 존재하는 한 정말 실질적으로 아무것도 안 할 수는 없으니까. 뭘 어떡해, 그래도 해야지.
우리는 지금 할 수 있는 일을 해야만 한다. 나의 노력에 대한 보상이 없다고 해도 지금 내가 알 수 없는 부분 때문에 모든 걸 미리 포기할 수는 없다. 그런 식으로 세상일을 하나씩 지워나가다 보면 결국 내가 해야 할 일은 아무것도 없다. 미래는 아직 오지 않은 시간이지만 오늘은 이미 일어나고 있다. 불확실하고 불안하고, 그래도 어떡해? 그냥 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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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또다시 걸작인 줄 알았다, 1시간 동안은
- 5★/10★
영화는 긴박한 소리가 오고 가는 병원 안, 검은 배경에 여성 성기의 모양의 빛이 비치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이는 엄마 자궁 속에서 처음 빛을 마주한 보Beau의 시선이다. 이제 막 세상으로 나오는 중인 보의 귓가에 이내 엄마의 분노 섞인 외침이 들린다. 그녀는 간호사가 아이를 땅이 떨어뜨렸다고 생각한다. 간호사는 건조한 듯 침착한 목소리로 아이를 떨어뜨리지 않았다고 답하지만, 엄마는 계속 아이가 바닥에 떨어져 머리를 다쳤다고 미친 듯이 분노한다. 진실이 무엇인지는 모른다. 다만 보가 태어나는 순간부터 어머니의 애착적 분노와 함께라는 사실만은 분명하다.
그리고 수십 년이 지났다. 중년의 남성이 된 보는 어딘가 불안해 보인다. 보는 심각한 편집증으로 고통받는 중이다. 그가 태어날 때 머리를 다쳤다는 엄마의 주장이 사실인 걸까? 혹 엄마의 ‘과한’ 집착이 보를 힘들게 한 것일까? 이번에도 진실이 무엇인지는 알 수 없다. 정신적 문제를 가진 보가 다음 날 비행기를 타고 엄마를 만나러 갈 예정이라는 점만이 분명하다.
그러나 보의 계획은 꼬여버린다. 옆집에서 밤새 큰 소리로 음악을 틀어놓고 파티를 해도 잠을 잘 자던 보는, 누군가가 이 소음을 보의 집에서 나는 것으로 오해하는 쪽지를 조심스레 문틈으로 밀어 넣는 아주 작은 소리에 벌떡 일어나 예민하게 반응한다. 그러다 그만 늦잠을 자버린다. 설상가상으로 엄마에게 끔찍한 사고가 발생했다는 소식이 들려온다. 늘 위협받는다는 느낌에 사로잡혀 집 밖에 나가기조차 수월치 않은 보가 비행기도 없이 엄마를 찾아 먼 길을 떠나야만 하는 상황에 처한 것이다.
엄마를 찾아가는 보의 여행은 기이하다. 도중에 만난, 전쟁으로 아들을 잃은 그레이스 부부는 자신들보다 나이가 많아 보이는 보를 입양한 듯 굴며 놔주지 않으려 한다. 숲속 고아들이 꾸린 극단은 보가 갖지 못한 생의 기대를 연극으로 선보여 보를 사로잡는다. 어디까지가 현실이고 어디까지가 망상인지 모를 일련의 여정 끝에 마침내 엄마의 집에 도착한 보. 파국이다. 수십 년 세월 동안 묵혀온 분노, 집착, 의존, 기대가 한데 뒤엉켜 쏟아진다. 문제는 보의 편집증적 공포보다 엄마의 집착이 더 힘이 세다는 것. 두려움에 질린 보는 엄마를 향한 물리적, 상징적 여정을 어떻게 마무리할 것인가?
〈보 이즈 어프레이드〉는 〈유전〉, 〈미드소마〉 등으로 전 세계 공포, 미스터리, 스릴러 영화 팬들을 사로잡은 아리 에스터 감독의 신작이다. 감독의 자전적 요소가 깃들어 있다고 전해져 관객의 기대치도 그만큼 올라갔다. 자신만의 방식으로 장르 영화의 문법을 새로이 구축해온 감독이 자전적 이야기를 들려준다는 데 대한 기대였다. 감독은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개막식 인터뷰에서 ‘외롭고 이상한 사람들을 위한 영화제’에서 ‘외롭고 이상한 남자’의 이야기를 선보여 기쁘다면서도, 이 영화에 대한 호불호가 강하게 갈릴 것이라 예상했다. 이왕이면 영화를 본 관객들의 논쟁 끝에 이 영화가 좋다는 사람들이 이기길 바란다는 말도 덧붙였다.
〈보 이즈 어프레이드〉가 이상한 남자가 주인공인 영화는 맞다. 호불호가 갈릴 영화도 맞다. 그러나 영화가 좋다는 사람이 논쟁에서 이길 영화로 보이지는 않는다. ‘호불호’ 차원이라기에는 단점이 너무 크기 때문이다. 보의 여정이 본격적으로 시작되기 전까지는 영화의 만듦새가 상당하다. 보가 느끼는 현실의 여러 공포와 엄마의 기대를 충족시키지 못할 거라는 불안이 촘촘하고 단단하게 펼쳐져 흡인력을 높인다. 현실과 망상 사이에서 분열하며 괴로워하는 보의 캐릭터는 이유는 다르더라도 저마다의 문제를 겪는 모든 동시대 관객을 영화 속 보의 위치로 이끈다. 우리에게는 각자의 여정이 있고, 그 여정에는 늘 기대와 두려움이 복합되어 있기 때문이다. 즉, 〈보 이즈 어프레이드〉는 여정을 떠나기 전인 보의 위치에 대한 관객의 동일시에서만큼은 분명한 성공을 거둔다.
그러나 여기까지다. 정작 보의 여정이 시작된 이후에는 그를 향한 관객의 동일시가 어려워진다. 가장 큰 이유는 이야기가 너무 과잉이라는 데 있다. 재능을 인정받은 감독이 자기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펼쳐낼 본격적인 기회를 얻었을 때 종종 발생하는 문제다. 절제 없이 자신이 느끼고 생각한 모든 것을 영화 속에 집어넣어버리는 것이다. 메시지와 이미지의 과잉은 보와 같은 위치에 섰던 관객을 하나둘씩 밀어낸다. 결국 보는 또다시 ‘혼자’가 된다. 영화 전반부에서 모두를 끌어들인 흡인력의 기반은 스스로 무너지고 만다.
보 캐릭터를 어린아이(미성숙)처럼 연기하는 호아킨 피닉스의 연기가 자꾸 눈에 걸리는 것도 이 때문이다. 보 캐릭터가 설득력을 잃지 않은 전반부에서는 그의 연기가 튄다는 느낌이 들지 않는다. 하지만 보가 ‘혼자’가 된 후반부에서는 그의 울먹거리는 듯한 목소리가 종종 거슬린다. 다소 난삽한 여정 끝에 보 캐릭터가 설득력을 잃었기 때문이다. 같은 이유로 가장 극적이어야 할 영화의 결말 역시 김이 빠진다. 보가 납득할 수 없는 방식으로 그에 대한 판결이 내려지지만, 그 감정은 관객에게 별다른 감정을 자아내지 못한다. 한국의 관객이라면 〈신과 함께〉 시리즈에 대한 기시감으로 헛웃음이 나올지도 모른다.
요컨대 〈보 이즈 어프레이드〉는 관객이 자연스레 보의 시점에 이입하게 하는 데는 성공하지만, 정돈되지 않은 메시지와 이미지의 과잉으로 관객을 보의 여정에 끝까지 동참시키지는 못한다. 어쩌면 감독의 세 번째 걸작이 되었을지도 모를 이 영화가 아쉬운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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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관계를 정의하는 시선
*이 글은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레오와 레미, 두 소년의 친밀한 관계는 이들이 학교에 들어가면서부터 변화한다. 서로의 집에서 서로의 가족과 함께할 때는 전혀 이상하지 않던 것들이 학교에서 같은 또래의 아이들과 함께하게 되면서부터 다른 아이들의 주목을 받는 이유가 된다. 매일같이 당연스럽게 여겨지던 이들의 두터운 관계는 타인의 시선이 입혀지기 시작하면서 그렇게 ‘친구치곤 너무 가까운 사이’로 여겨진다. 첫 등교일에 자기소개 시간부터 서로에게 기대며 다정한 둘을 바라보는 같은 반 아이 시선부터 시작해 둘이 사귀는 사이냐는 다른 아이의 직접적 질문이나 보통의 남자아이들과 다른 행동을 한다며 놀리고 괴롭히는 일부 아이들은 그 정도는 다를지라도 레오와 레미에게 직간접적으로 폭력을 가하는 존재들이다.
이들의 관계가 틀어지는 계기가 되는 주된 장소가 '학교'인 것은 어쩌면 당연하다. 학교는 가족을 제외한 타인을 사실상 처음 마주하게 되는 공간이며, 사회화 과정의 본격적 시작과 같은 곳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동시에 학교라는 공간은 누군가에게는 사회의, 세상의 폭력을 처음 마주하게 되는 두려운 곳이기도 하다. 당연한 말이겠지만 물리적인 폭력이 아닌 시선이라도 또 다른 폭력이 될 수 있다. 쉽게 정의하고 사고의 범주 안에 있지 못한 개념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어떠한 시선이 말이다. 레오와 레미를 자신들과 다르게 본 아이들의 시선은 두 사람에게 그것이 잘못됐다는 인식을 갖게 만들었고, 그중 한 사람, 레오가 레미를 스스로 멀리하게 만들었다. 같은 상황에 놓인 두 소년의 태도는 달랐다. 레오는 그러지 않길 택했고, 레미는 놀림받는 것보다도 자신을 배척하는 레오의 행동을 견디지 못한다.
<클로즈>는 트랜스젠더 발레리나의 실화를 바탕으로 했던 <걸>에 이은 루카스 돈트 감독의 두 번째 장편 영화다. 감독 자신이 밝혔듯 이번 영화는 자신의 유년시절 자전적 경험과도 일정 부분 맞닿아 있다. 전작에서 감독은 영화의 초점을 온전히 주인공 '라라'에게 맞춰 라라의 내면 변화를 세밀하게 따라갔다. 신체와 환경의 변화를 겪으며 혼란스러운 인물의 내면을 들여다보는 형식의 연출을 취하며 관객이 여성성의 이상과 현실 사이에서 고통받는 라라에게 간접적으로 동화되도록 만들었다. 인물을 그려내는 감독의 분명하고도 명확한 시선은 공감의 깊이를 더해 많은 당시 많은 호평을 받았다. 감독은 <걸> 이후 남성성과 관련된 영화도 만들고 싶다는 생각을 시작으로 지금의 어린 소년들의 우정이 사회의 요구와 압박에 의해 파괴되는 이야기를 만들게 됐다고 밝혔다.
이번 영화의 경우 전작보다 개인적이고 사적이라는 평을 받고 있는 반면, 감독은 자신의 영화를 정치적인 영화라 칭하는 점은 흥미롭게 다가온다. 영화의 오프닝에서 레오와 레미가 함께 전쟁놀이를 하며 놀던 요새는 둘을 지켜내지 못한다. 서로가 전부여도 다라고 할 만큼의 평화롭고 친밀했던 관계를 보여주는 초반부가 지나가고, 다른 아이의 "너희 둘이 사귀어?"라는 질문을 시작으로 둘은 서로의 관계를 의식하게 된다. 둘이 같은 침대에서 자다가 몸장난으로 시작하던 것이 몸싸움으로 번져 서로 돌아누워 가쁜 숨을 내쉬는 장면은 묘하게 생긴 둘 사이의 거리감을 보여주는 장면이다. 자신들 스스로가 정의할 틈도 없이 두 사람의 사이는 그렇게 점점 멀어져 간다.
두 사람의 다툼은 한 번 더 등장하는데 이번엔 돌이킬 수 없다. 다투더라도 아무렇지 않게 회복되던 관계는 레오의 행동 하나에 결국 어그러지고야 만다. 먼저 간 레오를 기다리다가 나중에야 학교에 도착한 레미는 레오에게 화가 나 그를 마구 때리는데 앞선 다툼과 마찬가지로 핸드헬드로 비교적 거칠게 찍었다. 울분에 차 서럽게 울며 주먹을 휘두르는 레미의 얼굴만큼 현재 상황을 파악하면서도 레미의 행동까지는 예상하지 못해 당황한 레오의 얼굴이 들어온다. 당연히, 레오는 그것이 마지막이 될 수 있을지 짐작조차 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나 레미가 보이지 않아 신경 쓰이던 불안감은 점점 커지고, 결국 레오는 친구의 상실을 맞게 된다.
레미는 영화의 일반적인 구성을 생각한다면 정말 갑작스럽게 사라지게 되는데, 이 점이 처음엔 당황스러울지도 모른다. 두 인물이 주인공인줄 알고 러닝타임의 반도 안 된 것 같은데 벌써 한 인물이 사라지다니. 하지만 이 영화의 방점은 그렇게 되도록 만드는 사회적 원인과 갑작스럽게 친구의 상실을 맞이하게 된 레오가 이를 어떻게 받아들이게 되는지, 바로 그 과정에 있다. 꽃밭에서 함께 활짝 웃으며 달리던 두 사람은 더 이상 같이 웃을 수 없다. 이젠 레오 만이 그곳에 남아있다. 레오 가족의 생업으로 보이는 화훼농사 즉, 꽃은 레오와 레미 두 사람을 은유하는 것으로 보인다. 영화는 꽃의 수확을 반복적으로 보여준다. 마치 레오와 레미처럼 사회의 시선과 기대에 억눌리게 되는 많은 어린 소년들을 은유하는 것 같다.
레오는 처음엔 크게 티 내지 않지만 레미의 부재를 받아들이지 못한다. 레미에 관해 좋게 얘기하는 반 아이들의 말에도 화가 난다. 레미를 보던 레오의 시선은 이제 레미의 엄마에게로 향한다. 아마도 죄책감 때문일 것이다. 자신의 행동으로 인해 레미가 그렇게 됐다는 생각에. 하지만 레오는 용기가 나지 않아 주변을 서성일뿐이다. 학년이 다 끝날 때가 되어서야 용기를 냈다. 자기 자신 만이 멀어졌던 관계를 돌아볼 수 있기 때문에. 레오는 그렇게 레미의 엄마에게 숨겼던 사실을 말하며 레미와의 관계를 닫는다. 어쩌면 그럼으로써 레미와 다시 가까워질 수 있기 때문일 수도 있지 않을까. 친구와의 예상할 수 없던 갑작스러운 이별을 레오는 그렇게 스스로 마무리짓는다. 타인의 시선에서 시작했던 영화는 레오의 시선으로 끝을 내며 모든 과정을 본 우리에게 당신은 이 이야기를 어떻게 봤는지 묻는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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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샷건 웨딩(2022) 리뷰>
영화 <샷건 웨딩(2022)>는 <피치 퍼펙트(2012)>로 유명한 제이슨 무어 감독의 신작으로, 결혼 직전의 달시(제니퍼 로페즈) & 톰(조쉬 더하멜) 커플에게 갑작스레 닥친 재난을 코믹한 액션과 결부시킨 영화이다. 사실 제목에서부터 두 사람의 결혼식이 심상치 않으리라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샷건 웨딩이라니! 미국 문화에 익숙한 사람이라면 이 단어가 거친 서부 개척시대에서 유래한 말이라는 것을 기억할 터다. 현대에 와선 속도위반 등으로 인해 급히 치러야만 하는 결혼식 정도로 희석되었다고는 하지만, 최초의 의미든 현대의 의미든 단어가 갖는 기본적인 방향성은 동일하다. 당사자의 의지가 우선시된 다기보단 외부의 압력 혹은 필요에 따라 진행되는 결혼식이라는 것. 이런 점에서 제목만으로도 우리는 영화관에 들어가기 전부터 우리는 많은 상상과 기대를 하게 된다. 두 사람을 둘러싼 외부 갈등은 무엇일까, 왜 생겼을까, 그리고 둘은 그 갈등을 어떻게 넘어서서 행복한 결합을 이루어 낼 것인가?
※스포일러 주의
<샷건 웨딩>의 초반부는 비교적 타 로맨틱 코미디 영화와 다르지 않다. 결혼식을 앞둔 커플이 있고, 둘을 둘러싼 말 많고 문제 많은 가족이 있다. 사실, 커플 사이의 갈등조차 터질 듯 말 듯 아슬아슬하다. 서로를 끔찍하게 여기는 듯 하지만 식전 파티에서 손을 놓지 말아 달라는 달시의 부탁조차 곧바로 지켜지지 않을 만큼. 어디 그뿐인가? 이혼 후 애인과의 애정을 과시하며 등장하는 부유한 달시의 아버지 로버트(치치 마린)는 자신이 제시한 럭셔리한 호텔 결혼식을 물린 딸과 예비 사위를 탐탁지 않아 하고, 달시의 어머니 레나타(소냐 브라가)는 달시에게 로버트의 애인 해리엇(다르시 카덴)이 자신에게 웃어 보이는 것도, 다소 점잖지 않아 보이는 톰의 어머니 캐롤(제니퍼 쿨리지)이 다가오는 것조차 끔찍하다며 토로한다. 심지어 캐롤은 집안의 전통이라며 다 녹슨 칼을 결혼 선물로 주고, 달시가 조금도 원치 않았던 구식 웨딩드레스를 입게 권하는 데다가, 톰의 아버지 래리(스티브 콜터)는 끊임없이 비디오만 찍다 축사를 하는 동안엔 고개를 꾸벅이며 졸기까지 한다. 이렇듯 <샷건 웨딩>의 등장인물은 결혼식을 앞둔 커플과 그 두 사람을 둘러싼 가족 관계 등으로 깔끔하게 정리되는 도식이고, 이 갈등을 푸는 것에 100분 이상을 할애해도 유쾌한 로맨틱 코미디가 될 것도 같다. 하지만 액션 요소를 한 스푼 추가함으로써 이 영화는 한 걸음 더 나아간다.
필리핀의 어느 섬에서 열리기로 한 결혼식은 사실 예비 신부 달시가 원했던 스몰 웨딩과는 전혀 다른 류의 것이고, 부족한 재력과 장래의 불투명성으로 달시의 부모님에게 제대로 어필하지 못했다는 초조함을 지닌 예비 신랑 톰 사이엔 바쁘다는 이유로 회피하기만 한 불안이 자리한다. 이 갈등은 식이 시작되기 전까지 점차 고조된다. 게다가 달시의 아버지 로버트가 초대한, 달시의 전 약혼자이자 사업 후계자와 다름없이 예뻐한다는 숀이 도착하는 바람에 달시와 톰 사이의 분위기는 한없이 냉랭해졌다. 그렇다 한들 어쩌겠는가? 본국과 한참 떨어진 태평양의 섬까지 와준 하객들을 생각한다면 갑작스레 모든 걸 멈출 순 없어 보인다. 그럼에도 ‘당신을 위해서’ 모든 것을 참으려 했다는 달시와 ‘당신을 위해서’ 완벽한 결혼식을 준비하고자 했던 톰 사이의 말다툼은 점차 수위가 높아지고 달시는 끝내 반지를 손가락에서 뺀다.
그러나 이때 피할 수도, 이해할 수도 없는 거대한 위기가 당도한다. 바로 해적이 섬을 포위한 것. 결혼식은 그야말로 쑥대밭이 된다. 하객은 모두 인질이 되었고, 로버트는 거의 모든 재산을 잃기 직전이다. 말다툼을 하고자 인적이 드문 곳에 있었던 달시와 톰이 이 상황을 타개할 유일한 희망이 된다. 결혼식을 물리니 마니 했던 두 사람이 결국 다시 뭉친다. 피는 물론 벌어진 상처만 봐도 졸도할 듯한 달시가 수류탄을 들게 되고, 높은 탑에 오르는 것조차 무서워하던 톰이 낙하산에서 하강하게 되는 데엔 상대방을 지키고 둘을 아끼는 하객을 구하겠다는 선의와 사랑이 존재한다. 결혼 직전 터졌던 갈등을 전우애로 다시금 봉합한 두 사람이 행복한 결혼을 하는 건 당연지사다.
<샷건 웨딩>을 코믹 액션버스터로 소개했지만 영화에 몇 번이고 등장하는 결혼식의 의미 변화를 떠올린다면 이 영화는 액션 장르로 포장했을 뿐, 전형적인 로맨틱 코미디 영화의 문법을 따른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가장 처음 등장한 결혼식은 ‘오로지 행복만으로 칠해내고 싶었던 환상적인 결혼식’이나, ‘단 하나뿐인 반려자와 나누는 흠 없는 일생’이란 미숙한 판타지의 상징이며 철저히 부서진다. 이후 영화는 이혼하지 않고 큰 갈등 없이 산 것처럼 보였던 톰의 가정조차 실은 울퉁불퉁한 현실을 얼렁뚱땅 봉합하며 살고 있었다는 것을 밝히고, 인생이란 대단히 매끈한 아스팔트 도로를 빠르고 행복하게만 질주하는 것과 거리가 멀다는 것을 털어놓는다. 달시와 톰은 이토록 엉망진창이 된 결혼식조차 소중한 인생의 일부라는 것을 배우며, 정신없는 인생을 몇 번의 위험을 무릅쓰더라도 서로를 구하고자 몸을 내던질 줄 아는 상대와 함께 꾸려나갈 수 있다면 더없이 기쁘리라는 깨달음을 얻는다. 그렇게 영화 말미의 결혼식에서 두 사람은 결혼이라는 서약의 의미를 되새기고, 진정한 결합을 완성한다.
결혼이 연애 과정에 쌓아 올린 낭만의 최종점이 될 수 없다는 것, 사랑의 최종점이 아니라는 것을 분명하게 밝힌다는 점에서 <샷건 웨딩>을 고전적 로맨틱 코미디와 완전히 동일선상에 놓을 수는 없을 것이다. 심지어 영화가 최종적으로 말하고자 하는 건 사랑의 완성도 아니다. 감독이 유쾌하게 풀어나가는 것은 삶의 복잡다단함이다. 단 하나의 일반적인 결말을 원할 뿐이더라도 뜻밖의 상황이 펼쳐져 엄청난 사투를 벌여야 할지도 모른다는 경쾌한 경고라 여겨도 좋다. 혹은 뒤죽박죽, 알쏭달쏭한 인생 속에서 함께 웃을 수 있는 동반자 한 명만 있다면 그것이야말로 성공한 결혼(혹은 삶)일지 모르겠다는 으쓱임 하나 정도이지 않을까.
<샷건 웨딩>은 정말이지 여러모로 뻔하고 가벼운 영화지만, 예상치 못한 곳에서 속속 등장하는 소품의 활용과 다채로운 사투만큼은 일품이다. 전투뿐만 아니라 달시와 톰의 티키타카나, 범상치 않았던 하객의 대응 역시 웃음을 적지 않게 자아낸다. 참을 수 없는 진지함으로 가득한 일상에 지쳤더라면, 당신의 100분을 마법처럼 채워줄 <샷건 웨딩>을 감상해 보는 건 어떨지.
★★★
* 본 리뷰는 씨네랩 크리에이터로서 시사회에 참석하여 감상한 후, 주관적 견해에 따라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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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3 서울독립영화제 후기 (2)
4. 악은 존재하지 않는다 ( 감독 하마구치 류스케)
국내에선, 작가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 <여자 없는 남자들> 이 원작인 영화 <드라이브 마이 카>로 가장 잘 알려진 감독 하마구치 류스케.
타 작품들을 워낙 재미있게 봤던 터라, 기대를 안고 가장 먼저 티켓팅에 도전한 영화이다. 역시나 좋았고, 전작들과는 색다른 느낌을 주는 이야기였다.
영화 <악은 존재하지 않는다>
영화가 끝난 후 진행된 시네토크에서, 이 영화는 ‘다큐멘터리에서 시작해서 픽션으로 끝나는 영화’라고 하신 평론가님의 말씀이 기억난다. 이보다 이 영화를 더 잘 설명할 수는 없는 것 같다.
자연을 보호하고자 하는 거주민, 그리고 그 반대쪽에 서서 어떻게든 글램핑장을 건설하려는 회사 직원들의 이야기. 와중에 한 사건이 발생하게 되고, 엔딩에 이르러서는 충격적인 장면이 묘사된다. 어떠한 순간순간들이 문학적으로 다가와 좋았다. (스포일러 방지를 위해 말을 아껴야겠다. 정보없이 봤을 때 오는 놀라움이 크다)
광활한 풍경, 유머러스한 대화, 그리고 오프닝이 정말 볼만하다.
그리고, ‘악은 존재하지 않는다’.
5. 백탑지광 (감독 장률)
영화 <군산:거위를 노래하디>, <경주>, <춘몽>으로 잘 알려져 있는 영화감독 장률. 이번 영화 <백탑지광>은 한 편의 시를 닮았다.
영화 <군산>과 <경주>
영화 <춘몽>과 <백탑지광>
백탑은 그림자가 지지 않아요
영화 제목 '백탑지광'에서의 백탑은 베이징에 있는 탑으로, 그림자가 지지 않는다. 이는 곧 한 등장인물이 '우리에겐 그림자가 없다'라고 상대에게 말하는 것과 연결된다. 각자의 아픔과, 말 못할 서러움들을 내면에 꾹꾹 눌러담고 있어서일까.
속에 자리한 그늘을 안고 살아가는 인물들은 각자의 힘으로 묵묵히 생을 버텨내고 있다.
내가 안아줘도 될까요?
용기내어 이렇게 물어보며 자신의 그림자를 꺼내 보인다. 조금은 다른 모양일지라도, 그렇게 서로가 서로를 포갠다.
너의 그림자와 나의 그림자를 겹쳐본다.
괴로움, 죄책감, 고독감 모두. 나의 아픔과 너의 아픔까지도.
그 순간에는 조금 쓸어내릴 수 있을 것만 같다.
마음껏 봤고 마음껏 좋아했다.
12월의 압구정 cgv의 온기를 그리워하게 될 것 같다. 영화인들 틈에 끼어 12월 4일부터 7일까지, 4일간 출석했던 서울독립영화제. 2024년에는 또 어떤 좋은 영화들을 만나게 될까. 영화가 가진 힘을 믿으며 앞으로의 2024년도, 좋아하는 것을 꾸준히 좋아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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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입밖으로 귀신의 정체를 발설하는 순간 사망하는 마을? - 랑종 감독의 최고 흥행작
'랑종' 개봉기념 감독전작리뷰 Part2
피막 (2013)
- 포탄이 터지는 전쟁터에서 칼 하나로 생존에 성공한 전우들. 하지만 제대 후 그들이 도착한 곳은 전쟁터보다 더 무서운 마을. 진실을 말하면 죽게 되는 이 공포의 마을에서 살아남으려면 문 닫고 입 닫는 방법 뿐이다. 하지만 친구를 죽게 나둘 수 없다며 생사고락을 함께 한 전우 '피 막'을 살리기 위해 친구들이 발 벗고 나서는데...태국 역대 박스 오피스 1위
태국 최초 천만관객을 돌파 시킨
영화 '랑종' 감독의 최고 흥행작 리뷰귀신보다 더 무서운 전우들의 마을 탈출기! 이 영화 흥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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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애프터썬> 2차 예고편
“오랫동안 이 영화의 햇볕에 그을리고 싶다” - ?????? 영원히 흔적으로 남은 그해 여름의 기억 [애프터썬] 2차 예고편 공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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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비밀의 정원> 메인 예고편
“네가 괜찮은지 알고 싶어”
이사를 준비하며 행복한 미래를 꿈꾸는 정원과 상우 부부
다정하고 든든한 이모와 이모부
10년 전 비밀을 간직하고 있는 엄마와 동생
어느 날 걸려온 전화 한 통이 말하고 싶지 않았던 정원의 과거를 떠올리게 하고
평화롭던 가족들의 일상에도 변화를 가져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