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INELAB2024-12-11 12:26:51
영화 보고 나면 편지할게요
잊을 수 없는 영화 속 편지

씨네픽을 사랑하는 이들에게.
안녕하세요, 씨네픽입니다.
날씨가 부쩍 추워졌는데 다들 건강 잘 챙기고 계신가요?
다가온 연말연시로 인해 편지 쓸 일이 많아졌죠.
에디터는 특별한 일이 없더라도 편지를 쓰고 받는 것을 참 좋아하는데요.
여러분은 어떠신가요. 편지와 가까운 사람인가요?
편지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이어도 괜찮습니다.
편지와 어색한 사람도 이 영화를 보고 나면 불쑥 쓰고 싶은 마음이 생길 거예요.
그럼, 영화 보고 나면 또 편지할게요.
사랑을 담아,
씨네픽 드림.

줄거리
1994년, 알 수 없는 거대한 세계와 마주한 14살 ‘은희’의 아주- 보편적이고 가장- 찬란한 기억의 이야기

줄거리
아빠와 20여 년 전 갔던 튀르키예 여행.
둘만의 기억이 담긴 오래된 캠코더를 꺼내자 그해 여름이 물결처럼 출렁이기 시작한다.

줄거리
평범한 일상을 살아가던 '윤희' 앞으로 도착한 한 통의 편지.
편지를 몰래 읽어본 딸 '새봄'은 편지의 내용을 숨긴 채 발신인이 살고 있는 곳으로 여행을 제안하고, '윤희'는 비밀스러웠던 첫사랑의 기억으로 가슴이 뛴다. '새봄'과 함께 여행을 떠난 ‘윤희’는 끝없이 눈이 내리는 그곳에서 첫사랑을 만날지도 모른다는 기대를 품는데…

줄거리
쌍둥이 남매인 잔느와 시몽은 어머니 나왈의 유언을 전해 듣고 혼란에 빠진다. 유언의 내용은 죽은 줄로만 알았던 생부와 존재조차 몰랐던 형제를 찾아 자신이 남긴 편지를 전해달라는 것. 또한 편지를 전하기 전까지는 절대 장례를 치르지 말라는 당부도 함께 담겨있다. 어머니의 흔적을 따라 중동으로 떠난 남매는 베일에 싸여 있던 그녀의 과거와 마주한다. 그리고 그 과거의 끝에는 충격적인 진실이 기다리고 있는데....

줄거리
“오늘은 너한테 꼭 하고 싶은 말이 있는데”
수학여행을 하루 앞둔 오후, 세미는 이상한 꿈에서 깨어나 하은에게로 향한다. 오랫동안 눌러왔던 마음을 오늘은 반드시 전해야 할 것 같은 기분이 들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넘쳐 흐르는 마음과 달리 자꾸만 어긋나는 두 사람.
서툰 오해와 상처를 뒤로하고, 세미는 하은에게 진심을 고백할 수 있을까?

줄거리
용돈 벌이를 위해 폴의 러브레터 대필을 맡게 된 엘리. 하는 짓이 마음에 들진 않지만, 자꾸 만나다 보니 이 친구, 정이 든다. 그런데 그건 둘째 치고, 러브레터 상대에게 자꾸 설레는 걸 어쩐담?

줄거리
"1998년 1월엔 눈이 많이 왔어요. 감기 조심하세요." '일마레'로 이사온 성현(이정재 분)에게 이상한 편지가 남겨있다. 1999년, 2년 후로부터 온 편지. 그 편지에 있던 내용들이 예언과도 같이 현실 속에 나타난다. 그날은 거짓말 같이 함박눈이 내리고. 자신의 편지가 1998년 12월로 갔다는 것을 믿게 된 은주(전지현 분)는 자주 그곳으로 편지를 보낸다.

줄거리
1918년 제1차 세계 대전 말 뉴올리언즈. 80세의 외모를 가진 사내 아이가 태어난다. 그의 이름은 벤자민 버튼.
부모에게 버려져 양로원에서 노인들과 함께 지내던 그는 시간이 지날수록 젊어진다는 것을 알게 된다.
12살이 되어 60대의 외모를 가지게 된 그는 어느 날 6살 소녀 데이지를 만난 후 그녀의 푸른 눈동자를 잊지 못하게 된다. 청년이 되어 세상으로 나간 벤자민은 숙녀가 된 데이지와 만나 만남과 헤어짐을 반복하다 비로소 둘은 사랑에 빠지게 된다. 하지만 벤자민은 날마다 젊어지고 데이지는 점점 늙어가는데…


Relative contents
-
- 길거리로 내몰린 아이들
*해당 영화 감독은 과거 성범죄 전과가 있는 감독으로 감상할 때 주의하시길 바랍니다.
영화 '꿈의 제인'을 통해 가장 먼저 알게 된 것은 가출 청소년들이 그들만의 무리를 만들어 가족처럼 생활하는 '가출팸(가출 패밀리)'의 존재였다. 그러나 이들 중 대부분은 경제적으로 독립을 하기 어려운 상황이며 집에서도, 학교에서도 보호를 받지 못하기 때문에 거리에 나와 방황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렇게 대안가족을 형성한 가출팸들은 생계를 꾸리기 위해 돈을 벌려고 하지만 아르바이트를 하기 힘든 상황이기 때문에 쉽게 범죄에 노출되고 비행을 겪기도 한다.
누구보다도 보호 받아야 되는 이들이 계속해서 위험에 노출 된다는 것과 이들을 구제하고 보호할 수 있는 방법이 별로 없다는 것이 안타까웠다. 보통 가출 청소년의 경우 집안에서 가정폭력을 겪거나 엄마 혹은 아빠의 부재로 인해 보호자와 갈등을 겪으며 충동적으로 집을 나오기도 하는데 문제는 안락한 주거공간이 없기 때문에 누군가의 보호가 절실하다는 점이다. 온라인 채팅 상에서 도움을 요청하는 것이 가장 대표적인데 이들을 보호해준다는 명목 하에 만남을 요구하다가 성폭행을 당하거나 성매매 카르텔에 빠지게 된다는 점이 가장 충격적이었다.
비록 영화 속에서는 그런 모습을 보여주지는 않았으나 주인공인 소현은 가출팸의 보호자 제인의 사망 후 거리를 전전하다 만난 가출팸 안에서 불안을 느끼며 끊임없이 유해한 환경에 노출되고 자신을 지켜주려던 지수의 죽음을 목격하는 등 비극을 겪는 것을 보게 된다. 영화를 통해 가출팸에 대해 더 자세히 알아보기 위해 자료조사를 하던 중 청소년의 성매매 혹은 청소년이 성범죄에 노출되는 가장 큰 수단이 랜덤채팅임을 알 수 있었는데 문제는 이 랜덤채팅을 이용하는 청소년의 수가 증가하며 연령은 낮아지고 있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실시간으로 누군가가 이런 행위를 감시하지 않는 이상 청소년을 보호하는 것은 힘들 뿐더러 직접적인 범죄행위가 이루어지지 않는 이상 글이나 채팅으로는 범죄로 간주하지 않기 때문에 범죄가 발생하기 이전에 청소년을 구제하기 힘들다는 점을 알 수 있었다. 바로 이런 허점을 알고 있는 이들이 이점을 이용해 범죄를 저지르고 그 행위에 가담하는 사례가 발생하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가출팸이 주목을 받는 경우는 이미 범죄가 이루어진 뒤 피해자가 발생한 상황, 피해자가 가해자가 된 경우다.
나는 이런 상황에서 청소년들이 성범죄 및 비행에 노출되지 않고 사회의 보호를 받으며 생활할 수 있도록 구제하는 시스템이 마련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또한 가출팸은 군대처럼 위계조직으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에 범죄나 비행에 있어서 쉽게 탈출하기 어렵다. 이렇게 생존만을 위해 산다면 인간의 존엄성에 대해 잊기 쉽고 결국 더 많은 범죄가 양산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우리 사회가 소위 가출팸이라고 불리는 이들이 윤리의식을 지키며 사회의 범주 안에서 안전하게 생활할 수 있도록 성인으로서, 책임이 있는 사람으로서 올바른 길로 인도해야 할 책임이 있다고 생각한다. 사회가 적극적으로 나서서 범죄가 발생하는 것을 막고 피해자들을 보호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기술의 발달로 인해 다양한 형태의 범죄가 생기는 만큼 우리가 사용하는 인터넷, 이를 누릴 수 있게 만든 IT업계들이 책임감을 갖고 건전한 인터넷 문화를 형성하는 것 또한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
- <괴물>이 우리에게 던지는 질문
오마이뉴스에서 [영화 속 감정 읽기] 라는 연재를 합니다. 영화리뷰안에 각 인물이 대표하는 감정을 적고 그에 대한 여러 생각들을 소개할 예정입니다.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이 리뷰에는 영화의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우리는 어떤 상황을 바라볼 때, 그 안의 모든 것을 다 고려해서 판단할 수 있을까. 아마도 그건 불가능할 것이다. 물론 어떤 다툼이나 논쟁이 벌어졌을 때, 제3자의 입장에서 양쪽의 이야기를 모두 듣긴 할 것이다. 그리고 그 이야기를 바탕으로 자신만의 판단을 한다. 누가 옳고, 누가 그른지. 그리고 지시도 한다. 너는 어떤 식으로 해야 하고 또 너는 다른 식으로 해야 한다는 식의 조언들. 하지만 아무리 모든 것을 이해하고 판단했다고 생각한다고 해도 우리의 판단에는 빠지는 부분이 생길 수밖에 없다.
어쩌면 그 자체가 삶의 한 부분일지도 모른다. 어떤 일이 일어나면 내면에 일어나는 모든 전후 사정을 다 알 수는 없다. 오직 그 안에 들어가 있던 당사자만이 그 모든 것을 알 수 있을 뿐이다. 제3자적 입장에서는 아무리 애를 쓰고 노력해도 정확히 알 수 있는 방법이 없다. 그런 한계가 우리가 흔히 오해라고 부르는 판단을 낳는다. 그렇게 만들어진 오해는 눈덩이 같이 커져 누군가를 괴물로 만들기도 한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괴물>은 이 영화를 보는 모든 관객들에게 세 번에 걸쳐 묻는다. 과연 누가 괴물인가?
첫 번째 감정 - 엄마의 걱정
미나토(쿠로카와 소야)의 엄마 사오리(안도 사쿠라)는 싱글맘이다. 남편의 사고사 이후 혼자 아이를 키우는 그는 아들을 잘 키우기 위해 무척 애쓴다. 초반에 등장하는 엄마와 아들의 모습은 큰 문제없이 평범해 보인다. 맨 첫 장면에서 멀리 떨어진 한 건물에서 불타는 것을 같이 바라보는 사오리와 미나토의 모습에서 어떤 걱정이나 불안을 느낄 수 없다. 하지만 그 장면 이후, 미나토의 이해하지 못할 행동들이 이어진다. 신발 한 짝을 잃어버리거나, 머리카락을 자르는 행동은 엄마 사오리의 걱정을 조금씩 끌어올린다.
사오리의 물음에도 미나토는 특별한 설명을 하지 않는다. 그냥 조용히 씻거나 앉아 있을 뿐이다. 사오리는 더 캐묻지 못하고 마음속의 걱정을 그냥 쌓아둔다. 그러다 어느 날 사오리는 미나토의 학교에 상담차 방문하게 되고 조금은 이상한 학교 교장선생님과 주변 선생님들의 반응에 걱정이 더욱 커진다. 이런 사오리의 걱정은 그 상황을 선생님들, 그중에서도 미나토의 담임 선생님인 호리(나가야마 에이타)를 의심하게 만든다.
사오리는 왜 이렇게 걱정을 내려놓지 못할까. 혼자 아이를 키우지만 본인의 아이를 잘 알지 못한다는 조바심이 그 걱정을 더욱 크게 만드는 것인지도 모른다. 사오리의 걱정이 폭발하는 장면이 있다. 미나토가 다쳐 병원 갔던 날, 병원을 나서면서 아무렇지 않은 듯 아들을 대하지만, 아들이 별 반응이 없자 갑자기 폭발하듯 질문을 던지기 시작한다. 영화 속에서 사오리의 감정이 가장 폭발하는 장면이자 그가 가지고 있던 마음속의 걱정이 겉으로 온전히 드러나는 장면이다. 사오리는 아들에게 직접 답을 찾지 못하자 학교 선생님에게서 그 답을 찾는다. 그 답은 걱정이라는 감정에서 나온 것이고, 엄마 사오리의 관점에서는 가장 합리적인 판단이었다. 여기서 영화는 첫 번째로 묻는다. 선생님은 괴물이 맞을까?
두 번째 감정 - 선생님의 답답함
미나토의 담임인 호리는 미나토의 학교에 새로 부임한 선생님이다. 그의 시점에서도 시작은 화재가 난 건물 근처다. 그는 꽤 좋은 마음을 가진 선생님이다. 아이들에게 다정하고 최대한 이해해 보려 노력하는 모습이 그의 이야기에 담겨있다. 자신의 반 아이들을 모두 세심하게 챙기지만, 그중에서도 미나토와 요리(히이라기 히나타)가 자꾸 그의 눈에 들어온다. 때론 미나토가 물건을 집어던지기도 하고, 요리는 화장실에 갇히기도 한다. 그걸 이해해보려 하지만 아이들은 특별한 이야기를 하지 않는다.
호리의 시점에서 그는 잘못한 것이 없다. 하지만 미나토와 의도하지 않은 충돌로 그의 엄마 사오리를 만나게 되면서 그는 조금씩 억울한 상황에 놓이게 된다. 자꾸만 이상한 행동을 하는 것 같은 미나토를 유심히 관찰하고 주변 아이들에게도 물어보지만 그의 답답함을 풀어줄 학생을 만나지 못한다. 그가 할 수 있는 건 폭력적이고 편향적인 선생님이라는 판단을 받고 학교에서 잠시 떠나는 일이다. 그런 답답한 상황 속에서 그를 바라보는 주변의 시선은 곱지 못하고, 여자친구도 그를 떠난다.
아마도 이 영화에서 가장 답답하게 느껴지는 파트가 선생님 호리의 이야기일 것이다. 그는 이 이야기 속에서 걸스바에 다니는 선생님이라는 나쁜 소문의 주인공이 되고도, 특별한 변명조차 할 기회가 없다. 미나토의 엄마 사오리에게도, 교장선생님에게도 이야기를 해보았지만 그의 답답함은 풀리지 않는다. 괜히 미나토나 다른 아이를 다그쳐보지만 아이들은 입을 꾹 닫고 있다. 답답한 그가 학교 건물 옥상에 올라가는 모습에서 그의 답답한 마음이 무척이나 측은하게 느껴진다. 그의 허탈하고 답답한 표정을 짓는 장면을 보여주면서 영화는 두 번째로 묻는다. 호리를 억울하게 만든 학생 미나토는 괴물이 맞을까?
세 번째 감정 - 아이들의 사랑
마지막 파트의 이야기는 두 아이의 이야기다. 미나토와 요리의 감정이 영화의 후반부를 꽉 채우고 있다. 사오리와 호리의 시점에서는 이 두 아이들이 잘 보이지 않았다. 이 영화를 연출한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이 의도적으로 감췄던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우리는 일상을 살면서 단편적인 정보만을 가지고 무언가를 판단할 수밖에 없다. 사오리는 아들에 대한 걱정으로 제대로 된 사실을 볼 수 있는 기회를 잃었고, 호리 역시 자신의 답답함 때문에 진짜 아이들에게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알지 못했다. 영화 속 인물들처럼 우리도 진실이 무엇인지 보단 자신이 느끼는 감정과 생각을 바탕으로 사안을 볼 수밖에 없다.
이야기 속에서 요리는 여자 아이들과는 잘 지내지만, 남자아이들에게는 놀림의 대상이 된다. 자신을 조금 다르다고 생각하는 요리는 집에서도 아버지에게 나쁜 소리를 듣는다. 하지만 요리는 특별히 자신의 감정을 드러내지 않는다. 오히려 평온해 보이는 그의 표정이 더욱 미나토의 호기심을 자극했는지도 모르겠다. 미나토는 어느 순간부터 요리에게 마음이 가기 시작하고 그 주변에서 맴돌다가 결국 가장 친한 친구가 되어버린다. 두 사람이 같이 보내는 시간이 많아지면서 그들의 마음엔 친구로서 좋아하는 것 이상의 감정이 시작된다. 그건 미나토에게 엄청난 혼란을 가져온다.
그럼 그걸 보는 관객들은 말할 수 있다. 미나토는 괴물이 아니다. 요리도 괴물이 아니다. 같은 남자인 두 사람은 그저 서로를 사랑한 것뿐이다. 그것이 비정상이라는, 우리가 알고 있는 정보는 미나토에게 강력한 반발심과 혼란을 가져다준다. 그것은 미나토의 학교 생활과 가정생활에 영향을 주었고, 그것에서 파생된 감정이 바로 엄마 사오리의 걱정과 선생님 호리의 답답함이다. 그 모든 소용돌이 안에서 미나토는 그 모든 감정(걱정, 답답함, 혼란 그리고 사랑)을 홀로 감당하고 있었던 것이다. 영화는 마지막으로 묻는다. 그럼 진짜 괴물은 누구인가?
훌륭한 이야기 구조가 만들어내는 강력한 울림
영화를 다 보고 나면 영화가 묻는 질문에 답을 생각하게 된다. 하지만 쉽게 대답할 수 없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은 미나토와 요리가 밝은 햇살 아래에서 웃고 뛰어가는 장면이다. 그것이 행복한 결말인지 아니면 그들의 상상 속에서만 있는 일인지는 보는 관객들의 판단에 달렸다. 하지만 적어도 우리는 모든 이야기를 보고 나서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 정확히 알게 되었다. 그리고 두 아이들의 마음과 사오리의 마음, 호리의 마음을 모두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그것 자체가 행복한 결말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총 세 개의 파트로 구성된 이 이야기를 그대로 따라가는 것은, 관객이 각 인물을 오해하게 만드는 것이다. 영화 속에서도 건물의 화재에 대한 소문이나, 선생님 호리에 대한 소문 등 확인되지 않은 정보들이 돌아다니는 모습이 종종 나온다. 결국 누구도 그 당사자의 상황을 정확하게 알지 못하면 쉽게 오해하게 된다는 것이다. 영화 <괴물>은 실제로 관객에게 주는 정보를 이야기에서 조금씩 빼면서, 그런 오해와 잘못된 정보로 인해 발생하는 여러 가지 나쁜 감정에 대한 것을 이야기하고 있다.
*영화의 스틸컷은 [다음 영화]에서 다운로드하였으며, 저작권은 영화사에 있습니다.
https://www.notion.so/Rabbitgumi-s-links-abbcc49e7c484d2aa727b6f4ccdb9e03?pvs=4
-
- 구파도 감독의 신작 <만년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 게 있어>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月下老人. 달 월, 아래 하, 노인 노, 사람 인의 한자로 풀이하면 ‘달 빛 아래의 노인’이 된다. 중국 고대 설화에서 시작되어 붉은 실로 남녀의 다리를 묶어 인연을 맺어주는 전설 속의 노인을 뜻한다. 현대에서는 부부의 인연을 맺어주는 중매인 중매하는 중매쟁이를 뜻하기도 한다. 멜로/로맨스 장르인 <그 시절, 우리가 좋아했던 소녀>(2012)로 국내에도 잘 알려진 구파도 감독은 전작 공포 스릴러 <몬몬몬 몬스터>로 2017년도에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에서 관객상을 수상한다. 두 장르는 다르지만 각각의 장르에서 두각을 나타낸 감독은 <만년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 게 있어>로 판타지 로맨스물이라는 장르를 소화해낸다. ’사후세계’, ‘환생’이라는 아이템뿐만 아니라, 보고 있자면 묘사하는 사후 세계의 프로덕션 디자인이나 세계관이 국내 작품 <신과 함께>가 떠오른다. 그도 그럴 것이, 감독은 <신과 함께>를 보고 2001년에 쓴 소설 <月老>을 영화화하기로 결심했다고 한다.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재밌다. 복합적인 장르의 혼합과 스토리 진행 호흡에서 B급 영화로 느껴지게 하는 부분이 없진 않지만, 그렇게 넘기기에는 핵심으로 다뤄지는 소재가 중요하게 느껴진다. 인간으로 환생하기 위해 사자(使者)로 일하게 된 주인공에게 주어진 임무는 인간들의 연(緣/부부가 되기 위한 젊은 연인의 연)을 이어주는 일이다. 이에 따라 파생된 배경이자 사자로 등장하는 주된 인물은 샤오룬/핑키/원한을 가진 악령까지 세 명이 된다. 이들의 생전 애정 관계를 풀어보자. 짝으로 다니게 된 샤오룬과 핑키 중 핑키는 나름 연이라고 생각했던 남성으로부터 배신당해 죽음에까지 이르게 된 인물이다. 사자가 되기 위한 교육을 받던 중 그 남성에게 복수하기 위해 환생이 불가한 악령이 되는 것에 흔들리기도 한다. 그때 나타난 악령 운명 깃발을 떨어트리게 하는 샤오룬의 등장은 복선처럼 후에도 핑키의 운명을 다른 길로 안내한다. 여기까지’ 딱히 생전에 미련이 없을 것만 같은 평범한 ‘전사’라면 샤오룬은 끈끈한 연을 맺던 연인이 있던 인물이다. 초등학교 5학년 때부터 줄곧 샤오미를 따라다니며 결혼해달라고 설득한 끝에 그 답을 받으려는 순간 벼락에 맞아 죽게 된 샤오루는 이승에 사랑하는 연인 샤오미를 남겨두게 된 것이다. 마지막으로 악령은 500년 전 부하들에게 배신을 당하고 끊임없이 이 일을 잊고 환생하는 부하들을 보며 원한을 품고 악령이 된 인물이다. 이 셋은 크게 두 분류 사랑을 하던 사람/사랑을 하고 싶었던 사람로 나뉘며 그 중 후자에 속하는 핑키와 원령은 그 중에서도 원한의 정도로 다시 나눌 수 있다. 핑키 또한 원한을 가지고 자신을 죽인 남성을 죽일까 하지만 이내 시선을 돌려 새로운 연을 찾아간다. 하지만 비슷하게 애정(관계)을 갈망하던 악령의 원한은 점점 집착으로 변해 멈출 수 없게 된다. 이들은 저승에서까지 애정을 갈망하는 이승과는 별 다르지 않은 삶을 산다. 저승까지 가지고 가는 일이라면 인간에게 가장 중요한 일이 아닐까.
전생의 기억을 잃었던 가진동이 키우던 강아지 아루를 만나 기억을 되찾으며 그와 동시에 혹은 기억이 떠오르기도 전에 느꼈을 감정이 느껴지는, 가진동(샤오룬 역) 얼굴의 미세한 떨림은 모든 서사를 제쳐두고 사랑하는 이를 남겨두고 저승에 가게 된 이의 아픔을 느끼기에 충분했다. 판타지/공포/로맨스 멜로의 뒤죽박죽이지만 완성도 높은 장르를 오가며 2시간 동안 지루할 틈이 없는 장면들 와중에도 감정을 이어갈 수 있도록 한 데에는 배우들의 연기력과 핵심소재가 한몫했다는 의견이다.
사랑하는 사람이 있는 살아있는 사람이라면 봐야 하는 영화라는 생각이다. 더불어 사후 세계에서 받는 묵주에서 악행으로 인한 3알이면 돌고래로 환생할 수 있다는 디테일한 설정들에서 환생을 기대해보게 만든다. 2021년도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개막작으로 초청된 <만년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 게 있어>는 국내 영화사벌집에서 공동제작 및 수입하여 그린나래미디어를 통해 2월 9일 개봉한다.
***본 리뷰는 씨네랩 크리에이터로서 초청받아 작성한 글입니다.
-
- 해가 져도 끝나지 않는 잔혹한 어른들의 게임
오징어 게임 (Squid game, 2021)
개봉일 : 2021.09.17 (넷플릭스 공개)
감독 : 황동혁
출연 : 이정재, 박해수, 오영수, 위하준, 정호연, 허성태, 아누팜 트리파티, 김주령
해가 져도 끝나지 않는 잔혹한 어른들의 게임
<도가니>, <수상한 그녀>, <남한산성>까지. 매번 다른 느낌의 작품들을 선보이는 황동혁 감독의 신작 <오징어 게임>이 9월 17일 넷플릭스를 통해 공개되었다.
각자의 사연을 가진 채 삶의 끝에 서있는 456명의 참가자와 인생을 완전히 뒤바꾸고도 남을 천문학적인 액수의 상금 456억. 수많은 참가자들은 지옥 같은 현실에서 굶거나 빚쟁이에게 찔려 죽느니 목숨 걸고 인생 한번 바꿔보자며 명함에 적힌 번호로 전화를 건다.
한 사람당 1억. 최후의 1인에겐 456억. 누가 이런 서바이벌을 벌였는진 알 수 없지만 참가자들은 머리 위로 쏟아지는 돈다발에 “이건 진짜다.”라는 믿음을 얻는다. 옆에 누워있는 참가자는 믿을 수 없지만 돈만큼은 착실하게 믿는 것이다. 그리고 내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 믿지 못할 경쟁자들은 모두 제거해야 한다며 공격성을 내비치기 시작한다. 이 게임에서 죽는 게 나만 아니면 되니까. 생판 모르는 이의 목숨 vs 추가되는 1억 + 나의 생존 중 어떤 걸 선택하겠냐고 묻는다면 당연 후자가 아닐까.
<오징어 게임>은 황동혁 감독이 2008년에 구상하고 2009년에 쓴 이야기다. 당시 일본 서바이벌 물인 <라이어 게임>, <배틀 로얄>과 같은 작품들을 보며 서바이벌 물의 요소를 한국적으로 접목해 내기 위해 고민한 결과로 탄생한 것이 <오징어 게임>이라고 한다. 오랜 시간이 흐른 만큼 약간의 각색이 더해지긴 했지만 이런 소재를 10여 년 전에 이미 모두 구상해놨다는 사실을 들었을 땐 놀랄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아쉬웠다. 그 당시에 바로 제작이 됐다면 지금보다 더 큰 주목을 받을 수 있었을 텐데. 아무래도 그 사이에 영화 <헝거게임>이나 웹툰 <머니게임>처럼 돈과 명예를 건 서바이벌 물들이 지나간 후라 서바이벌 물 자체의 신선함은 조금 떨어진 것이 사실이다.
그래서인지 <오징어 게임>은 아이들의 게임을 재해석하는 방법으로 다른 서바이벌물들과 차별화를 둔다. ‘극한의 공포 속에서 게임 참여자들은 서로를 의지하다가도 한순간에 의심하고 배신하고 결국엔 서로를 해하게 된다.’는 서바이벌 물 특유의 심리적 공포는 똑같이 존재하지만 <오징어 게임>은 다른 서바이벌 물들과 다르게 조금 더 단순하고 귀여운 게임을 반복한다. 어릴 적 골목에서 친구들과 했던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같은 게임들 말이다. 9편으로 구성된 시리즈엔 총 6종류의 추억의 게임이 등장하는데, 어떤 게임이 나오는지는 스포가 될 수 있으니 전부 언급하지 않겠다.
이 시리즈의 차별점이자 가장 큰 매력은 낯설고 아기자기한 세트장과 디테일한 요소들이다. 강박증이 되살아나는 기분이 들 만큼 완벽하게 딱 떨어지는 각진 물건들과 진짜 같은데 가짜 같은 공간들이 담고 있는 무게감, 그리고 눈에 딱 들어오는 일꾼들의 핑크색 슈트와 선물 상자처럼 포장된 관들. 기계처럼 움직이는 일꾼들이 만들어내는 동작의 흐름들이 주는 묘한 분위기가 특히 만족스러웠다. 내용은 아름답지 않지만 눈에 담긴 세트장은 빈틈없이 마음에 들었다.
서바이벌 물 특유의 설정들과 게임의 일부로 인해 앞서 나온 여러 작품들과 비교되며 표절 논란을 함께 안고 가고 있지만 작품 자체가 완전한 표절이라고 말하기엔 애매한 부분들이 있다. 장르적 특성과 플래그, 일부 장면과 소재를 모두 독창적, 독보적으로 구성하기엔 이미 서바이벌 장르가 쌓아온 이미지와 개념, 시간이 지나도 크게 변하지 않는 사람의 심리라는 틀이 있기에 앞선 작품들과 맞아떨어지는 부분이 있을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이 부분은 무조건 욕하기보단 개인적인 기준에 따라 판단하면 되지 않을까 싶다.
<오징어 게임>은 간단한 룰로 이뤄진 추억의 게임들을 돈과 목숨을 건 피 튀기는 생존 게임의 주제로 이용하며 어릴 적 우리의 모습, 어른이 된 우리의 모습의 간극에서 오는 아이러니를 끌어올린다. 어릴 땐 친구들과 골목에서 웃으며 게임을 하던 아이들이 어느새 어른이 되어 인생 한번 뒤집어보겠다고 피 흘리고 절규하며 게임을 하고 있는 모습이 씁쓸하고 슬플 뿐이다. 그때는 술래가 되거나 게임에서 져도 딱밤 한방이나 인디언 밥 한 번이면 패자 벌칙으로 충분했는데 이 게임에서 탈락하면 무조건 죽는다. 탈락한 자는 죽는다는 게임 특성상 아무래도 잔인한 장면들이 다소 많이 등장하긴 한다. 총으로 사람을 쏘거나.. 사람의 신체가 망가진다거나. 많이 고어한 편은 아니지만 반복해서 노출되다 보면 거부감이 들 수 있으니 참고하시길 바라겠다.
* 아래 내용부턴 스포가 있을 수 있습니다 *
목숨을 걸고 참여하는 게임 속 약육강식의 법칙
<오징어 게임>의 참가자들은 초대장을 받고 자신의 손으로 참가를 결정한다. 사람들이 우수수 죽어 나가는 걸 보면서 두려움을 느끼고 도망갔던 참가자들은 현실에 떠밀려 대부분 다시 게임장으로 돌아온다. 그리고 최후의 1인이 내가 될 수도 있다며 확률을 계산하고, 그 확률을 높이기 위해 이기심과 폭력성을 여과 없이 내보인다. 사람이 많아지면 당연히 무리가 생기고, 권력을 잡는 힘센 무리가, 나쁜 무리가, 그에 대응하는 착한 무리가 생기기 마련이다. 생존이라는 본능 앞에서 사람의 심리가 어떻게 변하는지, 살기 위해 어떤 행동까지 벌일 수 있는지. 추악하고 추잡한 본능의 단면을 제대로 훔쳐본 기분이었다. 근데 웃긴 건 왠지 이해가 가더라는 것이다. 나도 살아남기 위해선 충분히 그들처럼 행동했을지도..
게임의 참가자들은 게임장 입소에 앞서 똑같은 옷과 신발을 신고 이름 대신 번호를 부여받는다. 이들은 게임장의 위치도 모르고 당장 다음에 펼쳐질 게임 종목도 알 수 없고, 옆에 서있는 참가자의 이름도 알 수 없다. 아무것도 모른다. 하지만 게임을 컨트롤하는 사람들은 참가자들의 모든 걸 알고 있다. 이름, 나이, 사는 곳, 학력, 특이사항을 포함해 이들 인생의 대부분을 알고 참가자들 머리 위에서 이들의 행동을 관찰하며 즐거움을 느낀다.
가면에 그려진 도형과 가면의 종류에 따라 철저한 계급제로 운영되는 오징어 게임이란 작은 사회에서 참가자들은 얼굴과 몸을 속절없이 노출한 채 장난감으로 전락하고 만다.
* 이 게임에선 가면에 그려진 도형의 각이 많을수록, (네모>세모>동그라미), 상급자의 개념인 듯하다. *
끝나지 않는 게임에 대한 피로도
<오징어 게임>을 보면서 가장 많이 든 생각은 무력한 참가자의 모습이 우리 모습과, 무한히 경쟁해야 하는 게임이 우리 사회 모습과 비슷하다는 것이었다. 누군가에게 “같이 살자”고 말할 여유도, 그런 약속을 지킬 여력도 없이 이기적으로 변할 수밖에 없는 지쳐버린 우리들. 그리고 465명 중에 1등을 해야만 살아남을 수 있는, 최후의 1인을 가리기 위해 자비 없이 반복되는 게임들. 이 게임은 지옥이라 불리는 우리 사회의 일부분을 아주 크게 확대해 놓은 듯한 모습이다.
일부 후기들에선 반복되는 잔인한 장면들, 다소 느리게 느껴지는 전개에 대한 아쉬움을 볼 수 있었는데, 6번의 게임을 지나다 보면 다소 피로감이 몰려오는 건 사실이다. 단순한 게임이지만 믿었던 이들이 서로를 배신하고, 결국엔 1명만이 남아야 한다는 룰 아래 누군가는 죽어야 한다는 긴장감과 허탈함의 반복이 주는 감정 소모가 굉장하다. “이렇게까지 해야 해? 예상은 했지만 진짜 싫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 끝날 듯 끝나지 않는 생존 게임의 늪에서 허우적대며 함께 지쳐간 기분이었다.
이 게임은 끝나지 않는다. 어릴 때 친구들과 골목길에서 하던 게임들은 해가 질 때쯤, 엄마의 “얘들아, 밥 먹어~”라는 말과 함께 끝났는데, 고립된 섬 안에서 펼쳐지는 생존 게임에 참여한 이들에겐 게임을 중지시켜줄 사람이 없다. 주최자들은 “참가자 과반수가 동의하면 게임을 중지할 수 있다.”는 조항을 걸었지만, 참가자들은 머리 위에 쌓인 돈을 포기하지 못한다. 말려줄 사람도, 욕심을 포기할 사람도 없다.
한낮에 시작된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부터 밤처럼 어두운 세트장에서 치러진 징검다리까지, 하늘은 점점 어두워져가는데 생존에 대한 긴장감을 놓을 틈이 없다. 게임 주최자들은 여러 극한의 상황들을 연출하며 참가자들을 몰아가고, 차후엔 제발 극단적인 선택을 하라며 부추기기까지 한다.
게임 안의 인물들
돈과 생존이 달린 게임 앞에서 사람들은 조금씩 변화한다. 마지막까지 남은 주인공 기훈과 상우, 새벽이 그 변화를 가장 크게 보여주는 인물이다.
새터민 새벽은 아무것도 없이 동생과 덩그러니 남겨진 세상에서 엄마를 데려올 돈을 모으기 위해 거친 일도 마다하지 않으며 살아왔다. 그래서 새벽은 아무도 믿지 못한다. 게임의 초반, 새벽은 어떤 무리에도 끼지 않으려 하지만 진심으로 자신을 걱정하는 기훈에게 마음을 열고 마지막 순간엔 기훈에게 동생을 맡아달라는 부탁을 남긴다.
-
상우는 <오징어 게임>의 최고 브레인이다. 서울대 수석 입학이라는 타이틀을 달고 있는 그는 정형화된 지략가의 모습을 보여줌과 동시에 생존에 있어 가장 계산적인 인물이다.
개인적으로 <오징어 게임>에서 가장 마음에 들어왔던 인물은 상우였다. 상우는 처음 게임에서 쫓겨나왔을 때 알리에게 차비를 빌려주거나 달고나 게임 직전 우산을 고른 기훈에게 게임 종류를 말해줘야 할지. 같은 양심적 고민을 하는 모습을 보이는데, 그는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더 이기적으로 변한다. 자신을 믿은 알리를 배신하고, 부상을 입은 새벽을 찌르고 끝내 마지막 게임에선 기훈에게 칼을 휘두른다. 그는 보통 선하게 설정되는 주인공(기훈)의 편에 함께하면서도 생존을 위한 이기심을 숨기지 않는다.
마지막 게임에서 상우는 기훈에게 우승을 양보하며 죽음을 선택한다. 이 선택은 기훈에 대한 믿음, 사과의 의미 50%와 허공에 돈이 날아가는 것을 막기 위한 결단 50%가 합쳐진 일부 계산적인 행동이 아니었을까 싶다.
기훈은 약삭빠르기보단 타인을 생각하는 마음이 넓은 사람이다. 가족도, 동료도, 어머니도, 내 인생도 챙기고 싶었기에 무엇도 완벽하게 해내지 못한 그는 엉망이 된 인생을 되돌리기 위해 오징어 게임에 참여한다. 그는 약자인 1번 일남과 혼자인 새벽에게 먼저 손을 내밀고 게임 안에서 경쟁자가 된 상우에게도 옛 추억을 얘기하며 적대감을 하나도 내비치지 않는다.
좋게 말하자면 살육 게임 안에서도 인간성을 잃지 않는 선인. 나쁘게 말하면 바보 같은 오지라퍼. 그런 상우가 변하게 된 건 마지막 라운드를 앞두고 상우가 죄책감 없이 사람을 죽인 순간부터였다. 마지막 만찬을 끝내고 칼을 집은 상우를 경계하던 기훈은 새벽의 죽음과 함께 방어와 공생이 아닌 공격을 선택하게 된다. 6번째 게임인 오징어 게임에서 공수를 결정하라는 질문에 ‘공격’이라 답하는 기훈의 대사로 그의 확고한 심경 변화를 느낄 수 있다.
1화의 시작, 기훈과 상우가 오징어 게임을 하는 장면이 나오고 9화에선 어른이 된 두 사람이 생존을 건 싸움을 하는 장면이 나온다. 함께 골목을 뛰놀고 서로를 의지하며 자란 기훈과 상우가 어쩌다 이런 상황까지 몰리게 된 걸까. 문득 슬퍼지는 장면이었다. 기훈과 상우는 서로에 대한 믿음을 잃지만 마지막 순간엔 다시 떠오른 추억과 기훈의 결단으로 둘의 사이가 잠시나마 회복되는 모습을 보인다. 하지만 다시 그때로 돌아가기엔 너무 많이 와버린, 너무 많이 변해버린 두 사람은 함께 집으로 돌아가지 못한다. 지영의 말대로 “6.25이후 최대의 비극”같은 게임이었다.
게임 밖의 인물들
<오징어 게임>은 잔인하다. 자의로 참가하긴 했지만 어쨌든 돈과 생존을 필사적으로 바라는 참가자들을 마치 게임 말처럼 게임판 위에 올려두고 관찰하고, 가볍게 죽인다. 참가자들은 게임 내에서 서로의 이름과 추억을 나누며 나름의 동료애와 우정을 쌓아가지만 주최자들은 극적인 게임 연출을 위해 그 심리마저도 이용한다. 아침이 지나고 해가 져갈 때쯤, 이제 거의 끝나간다고 생각될 때쯤 주최자들은 가장 가까운 사람과 1:1 게임을 붙여 참가자들의 작은 위로와 희망마저 빼앗는다.
그리고 가장 잔인한 건 게임에 함께 참여한 일남의 존재다. 구슬치기 게임을 하며 양심의 가책과 일남을 잃은 슬픔에 절어있던 기훈을 농락하듯 게임이 끝난 후 1년, 일남은 다시 기훈에게 카드를 보낸다. 일남이 게임에 참가한 이유는 돈이 없어서, 삶이 힘들어서가 아니었다.
“보는 것이 하는 것보다 더 재밌을 수가 없지.”
그저 인생의 재밌는 것이 없어 참여했을 뿐, 기훈은 목숨을 지키기 위해, 일남을 지키기 위해 진심을 다했는데, 일남은 그저 재미 때문에 게임을 열고, 게임에 참가한다. 되짚어보면 일남은 누가 봐도 불리한 상황임에도 큰 걱정 없이 게임을 해왔다.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게임을 할 땐 걱정 없는 아이 같은 표정으로 선두로 뛰어나갔고, 구슬치기 게임에선 미련이 없다는 듯 기훈에게 구슬을 양보한다. 그리고 참가자 간 큰 싸움이 벌어지던 날 밤. 일남이 높은 침대에 올라가 “그만해, 나 너무 무서워!”라고 소리치자 프론트맨은 이내 스페셜 게임의 중지를 선언한다.
일남이 이기적인 모습을 보이지 않고 목숨이 달린 게임의 승리를 기훈에게 양보할 수 있었던 것, 그가 무섭다고 소리치자 상황이 종료되었던 것은 일남은 게임에서 지더라도 생명을 잃지 않기 때문에, 통제 못할 상황에서 일남이 생명을 잃는 걸 방지해야 했기 때문이다. 6화 깐부 에피소드에서 일남이 기훈에게 구슬을 양보하며 두 사람 사이의 믿음과 우정을 보여주는 장면에 울컥하긴 했으나 차후에 일남이 보여준 그 행동이 전혀 아름다운 것이 아니란 걸 알게 됐다. 결국 양심을 잃어버린 기훈의 모습에 대한 만족도를 구슬로 표현한 것일 뿐, 그 구슬 안에 담긴 진심이 무엇이었을지.. 더 이상 일남의 마음을 믿을 수 없었다. 생각해 보면 일남은 기훈을 가장 우습게 만드는 존재가 아니었던가.
<오징어 게임> 속 대부분의 등장인물들은 게임에 참가하거나 게임을 진행한다. 등장인물들 중 유일하게 게임과 직접적인 연관성이 없는 인물은 준호다. 경찰인 준호는 실종된 형이 남긴 명함과 기훈의 증언을 듣고 게임장 내부에 들어가게 된다. 그는 가장 용감하고 정의로운 인물이다.
준호는 주최자, 참가자, 외부인의 삼각 구도를 만들어 이야기의 흐름을 팽팽히 당겨낸다. 그리고 참가자들은 하나도 파헤치지 못한 오징어 게임의 비밀과 프론트맨의 정체를 밝혀내고 새로운 궁금증을 떠올리게 만든다. 차후 시즌 2가 제작된다면 준호의 생존 여부가 기훈에게 가장 큰 힘 또는 변곡점이 되지 않을까 싶다. 주최자들을 제외하고 그 해 오징어 게임에서 생존하거나 죽는 장면을 확실히 보여주지 않은 사람은 두 사람이 유일하니 말이다.
극한의 상황에서도 인간성을 지킨 주인공
주최자들은 극한의 상황에서 참가자들이 서로를 죽이고 탈락시키는 장면을 기대한다. 그들이 생각하는 인간의 본성이란 이기심과 공격성이다. 기훈은 게임 내내 동료라 생각되는 인물들을 챙겼으며 마지막 라운드에서도 상우를 살리기 위해 게임을 중단하려는 모습을 보인다. 그리고 오징어 게임이 끝나고 상금을 받았음에도 죄책감과 여러 감정들로 인해 여전히 돈을 사용하지 못하고 있다.
일남은 남다른 우승자 기훈을 불러내 지나가는 사람들의 양심을 시험하는 마지막 게임을 제안한다. 하지만 기훈은 매번 일남과 주최자들의 예상을 뛰어넘어 타인에 대한 믿음과 인간성을 지키고 일남과의 게임에서도 승리한다. 그는 인간들의 밑바닥을 훑으며 즐거워하던 주최자들에게 커다란 한방을 먹이고 이 게임의 진정한 승자가 된다.
이 게임은 정말 평등한 걸까
“게임 안에선 모두가 평등해.”
<오징어 게임>은 반복적으로 평등을 주장한다. 이들은 밖에선 한 번도 이기지 못하는, 아무것도 아닌 사람들을 모두 똑같은 위치에 놓고 인생의 마지막 기회를 주는 거라며 참가자들에게 자비를 베푸는 것처럼 말한다. 하지만 이건 전혀 평등한 게임이 아니다. 참가자와 주최자의 위치는 하늘과 땅 차이고 참가자들 사이에서도 끊임없이 위계질서가 형성된다. 참가자들은 생존이 걸린 게임에서 본능적으로 서로를 해치고 죽지 않기 위해 숨는다. 목숨을 건 무한 경쟁을 끝내는 방법은 생명이 다하는 것 외엔 방법이 없다.
주최자들은 이 게임이 결국 평등할 수 없다는 걸 알면서도 참가자들의 엎치락뒤치락 하는 모습을 하나의 내깃거리, 구경거리쯤으로 소비한다. 애초에 각자 다른 신체능력과 지능, 게임에 대한 경험치를 가진 400여 명의 사람에게 똑같은 게임을 제안하는 게 어떻게 평등할 수 있을까. 주최자로서 편의를 확보한 일남, 뽑기 게임에서 라이터를 사용한 미녀와 덕수, 일남 덕분에 게임을 통과한 기훈, 장기 적출로 미리 게임을 알았던 참가자 등.. 열심히 포장했지만 결국 평등하지 않은 게임이었다.
만약 456억을 얻을 수 있는 인생 역전의 기회가 온다면, 그 기회를 꽉 잡겠는가? 묻는다면 나는 절대 아니라고 답할 것이다. 일확천금의 커다란 기회라면 그걸 놓쳤을 땐 그만큼 잃는 게 많을 테니, 큰 도박은 하고 싶지 않다. 하지만 정말 내일 죽을 수도, 내일 모든 걸 잃을 수도 있는 상황이라면 또 다르려나.
-
- 군대 얘기 <D.P>는 왜 재밌는가
군대 얘기가 재미 없는 게 아니라
흔히들 생각한다. 여자들은 남자 군대 이야기를 안 좋아한다고. 군대에서 축구한 얘기, 군대에서 마티즈만 한 멧돼지를 본 얘기, 군대에서 자면서 야간행군을 한 얘기 등등. 하지만 군대의 '군'자만 들어가면 여자들이 미간을 찌푸린다는 건 어쩌면 옛날 얘기일지도 모른다.
최근 군대 이야기를 다루며 넷플릭스에서 입소문을 탄 웹 드라마 <D.P.>가 장안의 화제다. D.P. 란, Deserter(탈영병) Pursuit(뒤쫓음)의 약자로, 즉 군대 내 탈영병들을 쫓는 '군무 이탈 체포조'를 일컫는다. 군대에서 일어나 군대에서 마무리되는 이 뼛속까지 군대 얘기인 드라마를 이토록 열광하며 보는 게 남자들 뿐일까? 여자인 나도 3일 만에 이 드라마를 정주행 했으니 그런 것 같진 않다. 군대 경험과 지식이 전무한 여자들에게도 이 드라마는 미치게 재밌었다는 얘기다.
드라마는 안준호(정해인)가 육군 헌병대 D.P. 에 차출되면서 벌어지는 에피소드들을, 낱개의 이야기처럼 다루되 하나로 서사로 연결하는 꼼꼼한 짜임새를 담고 있다. 그러나 단순히 짜임이 좋은 이야기였다면 이 드라마는 이렇게 지금의 '난리'를 겪지 않았을 것이다. 짜임새보다 이 드라마가 더 대단한 건 바로 군대에 대한 화자의 시선 때문이다.
병역의 의무를 지녔고 신체 건강한 남성이라면 누구나 다녀오는 곳으로 여겨지는 군대. 하지만 외부와 철저히 차단된 채 하나의 다른 세계처럼 여겨지는 그곳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외부인들은 잘 알지 못한다. 드라마는 그런 시청자들을 끌고 군대라는 곳이 어떤 곳인지, 어떤 문제가 존재하고 그 문제가 어떤 방식으로 당연시되고 있는지를 까발리고, 이해시키고, 설득한다. 단순히 군대에 적응하지 못한 사회부적응자쯤으로 여겨지던 탈영병들도, 이 드라마에 의하면 피해자에 가깝다. '얼마나 덜떨어지면 탈영하냐'가 아니라, '왜 탈영했는가'의 시선으로 그들을 쫓기 때문이다. 그렇게 드라마는 탈영병들이 겪은 군대 내 폭력과 부조리들을 하나하나 짚어내고, 이에 시청자들은 군대라는 조직이 아닌 군 병역자, 즉 '사람'을 들여다보게 된다.
드라마를 보다 보면, 주인공인 줄 알았던 준호(정해인)와 호열(구교환)은 서서히 제삼자가 되고, 탈영병들이 극의 주인공이 되는 것 같은 느낌을 받게 된다. D.P. 가 성공적으로 탈영병을 잡는 이야기인가? 싶었다가, 정신 차려보면 탈영병의 안타까운 삶에 마음 아파하는 나를 발견하게 되니까. 준호(정해인)에게 유달리 친절한 선임으로 등장한 석봉(조현철)이, 에피소드 5-6화에서 극을 끌고 가는 주인공으로 바뀌었을 때에는 안타까움에 애가 탈 정도였다. 결국 이 드라마는 '잡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아니라 '잡히는 사람들'의 이야기였던 것. 그들이 왜 근무지를 이탈했고, 왜 조금만 견디면 끝나는 세상을 견디지 못해 극단적 선택을 선택하는지에 대한 이야기. 그 이해를 돕기 위해 철저히 제삼자의 시선으로 시작해 탈영병의 시선으로 끝나는 드라마가 바로 <D.P>였던 셈이다.
단연 정주행을 마쳤을 때, 내가 느낀 감정은 '이 시발노무 군대'였다. 상명하복이라는 미명 하에 선임이 후임을 구타하고 괴롭히고 인격적인 모독을 가해도 되는 것으로 여겨지는, 이 대한민국 군대의 부패한 성질에 심장이 터질 것처럼 화가 났다.
외부와 단절된 곳에서 그들이 어떤 세상을 구축하고 유지하는지는, 누군가 고발하지 않으면 알 수없다. 사회에서는 마냥 순했던 석봉(조현철)이 선임의 오랜 괴롭힘으로 군을 이탈한 위험한 인물이 되기까지, 정말 그 체계에 적응하지 못한 석봉의 잘못만이 있을까? 드라마를 정주행 한 자라면, 아마도 모두가 고개를 가로저을 것이다. 석봉을 괴롭힌 개차반 선임들, 그리고 더 오래전 그들을 괴롭혔을 과거의 선임들, 수많은 방관자들, 그리고 여긴 원래 그런 곳이라는 오랜 문화. 그것들이 결국엔 근본적으로 해결해야 할 지점이라는 걸 모두가 공감했을 것이다.
오랜 시간 견고히 다져진 세계를 무너뜨리는 것은 어려운 일일 것이다. 하지만 고인 물은 썩으므로, 언젠가는 물을 순환하기 위해 댐을 무너뜨려야만 한다. 끊임없이 누군가가 탈영을 하고 극단적 선택을 하는 일이 반복된다면, 이제는 정말이지 돌아볼 때가 아닐는지. 상명하복이라는 이름 아래 짓밟히고 있는 인권에 대해서. 진정한 수직체계와 선임이 후임을 개처럼 여겨도 되는 것이 동일시되는 한 세상에 대해서 말이다.
<D.P.>가 휩쓸고 간 난리통에는 그리하여 사회적 숙제가 남았다. 총기난사와 자살, 탈영, 구타, 괴롭힘이라는 불명예를 끌어안은 군대가 이제는 정말 바뀌어나가기를, <D.P.>의 열혈 시청자로서 바라보는 바다.
정해인의 재발견
앗. 그리고 배우 정해인에 대해서도 짧게 이야기하고 싶다. <밥 잘 사 주는 예쁜 누나>로 인기남에 등극해, 진득한 연기보다는 광고를 많이 찍는 스타의 전철을 밟는 듯했던 그가, 이 드라마를 선택했다는 것에 두 번 세 번 놀랐다. 그리고 다시 보였다. 배우 정해인이 추구하는 노선이 어떤 것인지가 보였기 때문이다. 얼굴만 말간 한 배우가 아니라, 빡빡머리로 흙바닥을 뒹굴며 연기하는 배우임을 보여준 그에게 정말이지 감동받았다. 무엇보다 그는 연기를 참 잘했다. 어린 나이에 그림자가 가득한 안준호를 연기한 정해인은, <밥 잘 사 주는 예쁜 누나>의 그저 훈훈했던 연하남과는 정말 전혀 다른 인물이었으니까. <D.P.>는, 내게 정해인을 다시 보게 해 준 작품이기도 했다. 그가 오래오래 다양하고 좋은 연기를 보여주면 좋겠다.
오랜만에 정말 여러모로 훌륭한 드라마를 만나 반가웠다. 여자들은 더 이상 군대 얘기를 싫어하지 않는다. 적어도 <D.P.>를 본 여자들이라면.
woodumi
INSTAGRAM @woodumi
BRUNCH brunch.co.kr/@deumji
-
- 당신, 마술을 믿습니까?
지난 5월 6일 넷플릭스의 <안나라 수마나라>가 전세계로 공개되었다. 개인적으로 영화 중에서 '뮤지컬 영화'를 가장 좋아하는 만큼 한국의 뮤지컬 미디어 작품이 어떻게 나올지 너무나 기대가 되었다. 바로 보고 싶었으나 최근 일이 너무 밀려 어제 날을 잡고 1화부터 6화까지 한번에 정주행했다.
앞서 말하자면 드라마는 정말 기대 이상이었다. 뮤지컬 영화(드라마) 특유의 감성과 볼거리를 최대한 잘 살리고자 노력한 것이 눈에 보였다. 네이버 웹툰 원작 <안나라 수마나라>와는 다소 그 분위기가 차이가 있지만 오히려 리메이크된 드라마의 분위기가 더 좋다고 느껴질 정도였다. 이번 글을 통해 '뮤지컬 영화(드라마)'의 간단 이야기와 함께 <안나라 수마나라> 간단 리뷰, 볼까 말까 고민하시는 분들에게 도움이 될 법한 이야기를 해보려고 한다.
? <뮤지컬 영화> 어디까지 아세요?
▶ 사실 뮤지컬 영화는 아주 아주 오래된 장르의 영화이다. 오래된 영화를 좋아하시지 않거나 영화사, 영화학에 크게 관심이 없다면 대부분 <맘마미아> <라라랜드> <레미제라블> 정도로 뮤지컬 영화를 처음 접할 가능성이 큰데, 뮤지컬 영화의 시초는 무려 1927년 <재즈 싱어>이다. 무성영화에서 유성영화로 넘어오던 시절, 음악과 효과음에 관하여 굉장히 중요하게 생각하던 시기인 만큼 20년대 후반 부터 TV가 대중에게 보급되기 전까지인 50년대 까지는 정말 무수히 많은 뮤지컬 작품들이 쏟아져 나왔다. <백설공주와 일곱 난장이(1938)>를 필두로 <환타지아(1940)>, <피노키오(1940)>, <아기코끼리 덤보(1941)>, <아기사슴 밤비(1942)> 등 디즈니사가 뮤지컬 형식의 애니메이션 작품을 최초로 시도한 시기도 이 당시이다.
▶ 다만 50년대 전세계적으로 TV가 차츰 보급되기 시작하면서 영화 시장 자체가 상당히 침체되는데 이때 당시에 뮤지컬 영화는 특히나 심한 타격을 입는다. 그럼에도 지금까지도 뮤지컬 영화 최고의 작품으로 뽑히는 <파리의 미국인 (1951)>, <Singin' In The Rain (1952)>, <The Band Wagon (1953)>, <7인의 신부 (1959)> 4작품 개봉하여 뮤지컬 영화는 역사로 사라지진 않고 잘 버텨주었다. 하지만 아무래도 뮤지컬 영화 장르 특성상 20 ~ 30대 여성관객이 주를 이룬 터라 매니아틱한 한계가 있어 현재까지 넘어오더라도 다른 장르영화에 비하면 그 수가 현격하게 낮다. 그래서 가끔 한 번씩 나오는 뮤지컬 영화를 보면 개인적으로 환장하는 이유이다...ㅎ
※ 위에 언급된 작품 이야기도 더 디테일하게 하면서 뮤지컬 영화 자체에 대해서 더 길고 자세하게 이야기하고 싶긴한데 ,그렇게 하면 역사 수업마냥 너무 길고 재미 없어져서.. 나중에 반응이 좋으면 한 번 더 정리하는 시간을 가져보겠습니다. ※
? <뮤지컬 영화> 호불호가 왜 심한거야?
▶ 뮤지컬 영화는 영화가 가진 시, 공간적인 제약 없이 조금 더 사실적으로 시각적 효과를 사용해 흥미를 유발하고 영화를 보면서도 마치 뮤지컬을 보는 것 같은 느낌을 주는 영화이다. 그러다 보니 영화 이야기에 '노래'와 '안무'가 반드시 혼재되어 줄거리를 전진시키거나 등장인물을 발전시킨다. 즉, 기존 영화에서 당연하게 지켜지던 '인-과'와 '기-승-전-결'의 형태가 흔들리게 된다. 뜬금없이 등장하는 노래와 안무로 갑자기 모든 갈등 상황이 풀린다던가, 너무 슬픈 상황에 갑자기 주인공이 노래 한 곡 불렀더니 내적 발전을 이룬다던가 하는 것이 좋은 예시이다. 보통의 영화라면 갈등 해소를 위한 장치 혹은 사건이 있어야하고, 등장 인물이 내적 발전을 이루기 위해서라면 그만큼의 시련과 계기가 있어야하는데 '뮤지컬 영화'에는 이게 명확히 없다. 이렇듯 영화 감상에 있어 '서사(이야기)'를 중심으로 전해지는 대리만족이나 간접 체험을 중요하게 생각하시는 분이라면 이런 것이 잘 지켜지지 않는 '뮤지컬 영화'는 다소 유치하고 '영화'라는 생각조차 들지 않을 수 있다. 애초에 보통 영화는 시청자의 이목을 집중시키는 '뮤직비디오'는 아니기 때문이다. 물론 이외에도 뮤지컬 영화를 선호하지 않는 다양한 이유가 존재할 수 있지만 아무래도 '뮤지컬 영화'가 갖는 이 고유의 특징 자체가 가장 크지 않을까 싶다.
▶ 반대로 '뮤지컬 영화'를 굉장히 좋아하시는 분들은 그런 서사 중심의 이야기 전달이 아닌 뮤지컬 영화의 '연출'자체에 관심을 갖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단순히 "노래가 좋아서 뮤지컬 영화 좋아하는 거 아니야?"라고 하기엔 영화 자체의 압도적 연출에 반해 그 '노래'를 들으면서 생각나는 그 '장면'들이 좋은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실제 뮤지컬에서는 할 수 없는 영화라는 미디어 장르에서만 가능한 극한의 상상력을 보여주는 '연출'은 어디서도 볼 수 없는 매력적인 특징이다. 영화라는 공간을 정말 영화처럼 쓰는 장르는 당연코 뮤지컬 영화가 최고이다. 현대 영화에선 찾기 힘든 정말 다양한 미장센이 쓰이고 시각적으로 화려한 다양한 색채와 효과가 쓰인다. 오히려 영화라는 편집이 들어가는 미디어 작품에 가장 어울리는 장르가 아닐까. 이러한 뮤지컬 영화의 특징은 어떤 장르영화 보다도 한번 빠지면 쉽게 헤어나오기 쉽지 않다.
▶ 앞서 말했듯이 뮤지컬 영화는 서사나 등장 인물의 감정을 노래와 안무가 이끌어간다. 이 부분 역시 굉장히 매력적인 부분이다. "나 너무 힘들고, 슬퍼."라고 한 마디 대사로 전달되면 되는 주인공의 감정이 노래를 통해 전달하기 때문에 굉장히 서정적이고, 한 마디 대사보다는 길지만 오히려 감정선의 공유는 함축적이다. 이 함축적인 감정의 공유가 영화(드라마)를 보는 내내 지속되고 끊이 없이 관객의 마음을 울린다. 굉장히 뜬금 없는 타이밍에 나오는 '노래'라고 할 수 있지만 사실 굉장히 함축된 타이밍에 나오는 '노래'라는 것이다.
? <안나라 수마나라>는 어땠어? 볼까 말까?
▶ 드라마 <구르미 그린 달빛> <이태원 클라쓰>의 연출을 맡은 김성윤 감독님의 작품 <안나라 수마나라>는 굉장히 매력적인 작품이었다. 드라마 자체는 인생에 대한 아름다운 메시지를 담고 있다. "살면서 누군가에게 정서적인 지지를 받는게 쉽지 않은 사회에서 꼭 사회가 정한 기준에 부합하지 않더라도 단 한 사람만 믿고 지지해준다면 마법과 같은 힘을 발휘할 수 있지 않을까?"라는 메시지 말이다. 너무나 동화같은 소재지만 현대를 살면서 이보다 필요한 게 있을까 싶기도 하다. 드라마는 총 6부작으로 '아이', '일등', '리을'의 관계를 통해 서로 발전하고 치유하는 이야기를 다룬다. (이렇게 보니 감독님이 예전에 연출하신 <드림하이>가 생각도 나네요.. 보신 분이 있으시려나ㅋㅋ)
▶ 드라마가 '뮤지컬 드라마'라고 하여 크게 걱정하시는 분들이 있다면 솔직히 엄청 심하게 '뮤지컬'적 요소가 강하지 않다고 말씀드리고 싶다. 애초에 김성윤 감독님이 <안나라 수마나라>를 "감성 성장 드라마"라고 규정했기 때문이다. 이 드라마에서 음악은 작품 속 인물의 성장에 따른 순간 순간의 메시지를 전달하는 요소지 엄청나게 이야기의 중심 축을 이끌고 갈만큼 영향을 끼치지는 않는다. 개인적으로 '뮤지컬 영화'를 극불호 하시는 분이 아닌 이상 <라라랜드>정도는 엄청 재밌게 보진 않았지만 적당히 재밌게 봤다하시는 분은 한국적인 뮤지컬 드라마의 만남이 너무 어색하진 않으리라 생각한다. 혹시라도, 그래도, 애매하다면 1화 정도 보시고 나머지를 볼지 말지 결정하셔도 괜찮을 것이다. 1화 분위기가 거북하지 않다면 나머지 5개의 회차도 비슷한 분위기이다.
? <안나라 수마나라> 원작과는 어때?
▶ 개인적으로 웹툰이나 소설등으로 원작있는 작품의 영화나 드라마화에서 원작과 비교하는 것을 썩 좋아하지 않는다. 원작의 오래된 팬 분들이 무작정 깎아 내리는 것도 싫고, 매체 자체가 다른 두 작품을 그렇게 비교하는 게 그리 의미있다고 생각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번 <안나라 수마나라>도 원작이 흑백 웹툰인 것에 반해 드라마 내내 상당히 화려한 색감을 자랑하고 빛을 굉장히 신경써서 사용한다. 나아가 각 캐릭터의 성격도 상당히 다르기 때문에 딱히 비교할 것이 없다. (원작과 다르다고 해서 작품이 나쁜 것은 아니지 않나.. 작품이 나쁘면 그냥 작품이 별로인것이지..) 다만 웹툰이든 드라마든 <안나라 수마나라> 속 '어른이 된다는 것은 무엇인가?'라는 작품 전체를 관통하는 메시지는 변함이 없다. 개인적으로 원작의 팬이라면 원작과는 이런 차이가 있구나 하면서 감상하셔도 재밌을 것이고 원작을 아예 모르시는 분이라면 이런 소재의 뮤지컬 드라마가 있구나 하면서 감상하시면 좋을 것이다.
▶ 최근 넷플릭스에서 주목받는 작품들이 장르물 중심이었기 때문에 '동화 같은 이야기'를 담은 <안나라 수마나라>를 통해 마음에 따뜻한 위로를 받고 아름다운 연출을 감상하시면 어떨까 생각합니다. 추천하는 작품이에요.
-
-
- [우리의 감독을 찾아서_#5] 순수와 희망에 관하여 (with. 김시진 감독)
‘우리의 감독을 찾아서’는 단편 영화 감독을 만나 영화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는 팟캐스트입니다. 영화를 통해 어떤 말을 하고 싶었는지, 영화란 무엇인지, 그리고 더 나아가 예술이란 무엇인지에 관하여 이야기를 나눠봅니다.
00:00 인트로 01:12 [대부]이야기 04:12 작가로서의 삶 05:53 [바다 저 편에] 이야기 14:59 아역배우 연출에 대하여 17:29 희망에 대한 이야기 21:29 순수함에 대하여 28:47 동물권에 대한 이야기 43:29 괜한 이야기를 하였나…? 46:16 앞으로 이야기 47:42 마무리
-
- 영화 <인어가 잠든 집> 메인 예고편
우리 아이는 살아있어요” 절망 끝에 피어난 간절한 희망! ⠀ #히가시노게이고 소설 원작 [인어가 잠든 집] 메인 예고편 공개!
-
- 영화 <아임 유어 맨> 티저 예고편
페르가몬 박물관의 고고학자 ‘알마’는 연구비 마련을 위해
완벽한 배우자를 대체할 휴머노이드 로봇을 테스트하는 실험에 참여하게 된다.
그렇게 오직 ‘알마’만을 위해 뛰어난 알고리즘으로 프로그래밍된
맞춤형 로맨스 파트너 ‘톰’과
3주간의 특별한 동거를 시작하게 되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