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nonymoushilarious2025-01-31 13:13:36
월레스와 그로밋: 복수의 날개
월레스와 그로밋: 복수의 날개
세상이 다 미워질 때가 있다. 나에 대한 자책이 과해지고, 그에 따라 주변 사람들에게 어떤 리액션을 해주어야 할지 모르겠을 때가 있다. 말하자면, 아주 약한 번아웃이었을 수도 있고, 그냥 짜증이 반복되어 지쳤던 것일 수도 있다. 모든 것이 다 귀찮아질 때, 병원을 가는 게 좋을 수도 있지만 나는 그럴 때마다 나에게 한 번씩 처방을 내린다. 과거의 해맑았던 내가 봤을 법한 영화로 다시 회귀하곤 한다. 정작 회귀를 실행할 때는 몰랐다가 그 시기를 지나고 생각해보면 그 시기 내가 참 우울했구나 생각하곤 한다. 최근에도 그런 폭풍우가 한 번 지나갔는데, 그 때 나는 나의 어린시절에 항상 함께했었던 애니메이션 '월레스와 그로밋'을 봤었다는 사실을 기억해내며, 새로운 시즌을 찾아보기 시작했다. 현실을 잠시 잊기 위해서, 잠시 생각을 환기시키기 위해서
1. 언제쯤 사고를 안 치실 예정이십니까, 월레스
항상 느끼던 바였지만 이번에도 가장 큰 빌런은 월레스였다. 모든 시즌에 악역들이 등장하곤 했지만 나는 이 애니의 가장 큰 빌런은 월레스라고 생각한다. 어쩜 저렇게 캐릭터가 맹할 수 있을까. 사람도 너무 잘 믿고, 너무 머릿속이 꽃밭이다. 항상 그로밋을 하대하는 것도 사실 조금 마음에 들지 않는다. 그리고 꼭 사건이 터지면 하대하던 그로밋의 도움을 꼭 받고 나서야 그로밋의 소중함을 깨닫는 금쪽이가 따로없다. 이번에도 역시나 원흉은 월레스였다고 생각한다. 그래도 미워할 수 만은 없어서 여전히 월레스가 정상적으로 살아가기를 바라게 되는데, 기계에게 점령당한 삶을 살다가 강제로 아날로그의 삶을 살게 된 그가 버벅대는 걸 보는 것도 나름 하나의 오락적 요소였다. 월레스를 보고 있자면, 기계에 잠식될 현대 인간의 미래를 보는 것 같기도 하다. 우리는 핸드폰을 포함한 기타 기계들에게 점점 삶을 의지하고 있다. 지식을 찾아볼래도 백과사전을 찾아볼 바에 인터넷 검색을 하는 것이 더 편해진 세상에서 월레스가 차 하나 제대로 못 우리는 건 우스워보여도 어쩌면 당연한 것일지도 모른다. 나도 곧 저렇게 되려나 생각해보게 되었다.
2. 그로밋이 월레스에게 충성하는 이유가 뭘까.
보다보면, 월레스는 그로밋의 주인이지만 사실은 그로밋이 월레스를 케어한다. 모든 수상한 낌새는 그로밋이 다 채고, 가끔 자기 뽕에 취해 그로밋을 무시하기도 하는 월레스의 단점을 다 이해하는 그로밋의 마음은 무엇일까. 항상 그로밋은 도움을 주는 포지션에 있을 뿐, 그로밋의 속마음은 한 번도 들어보지 못했다. 그로밋에게는 그 어떤 대사도 주어지지 않기 때문이다. 이번 시즌을 보면서 그로밋이 월레스에게 충성하는 이유가 뭘지 궁금해졌다. 그저 자신을 친구로 인정해준 고마움 때문인가, 아니면 월레스를 물가에 내놓은 어린애처럼 보는 걸까. 확실한 건 월레스는 그들이 친구 관계를 가장한 주종 관계라고 주장하고 싶겠지만 사실은 그들은 그냥 서로가 없으면 안되는 관계이다. 더 정확히 말하면, 월레스는 그로밋이 없으면 안되는 건 누가 봐도 알겠지만 그로밋은 월레스가 꼭 필요한 이유가 무엇인지 대사로 표현된 바가 없어 그저 추측만 할 뿐이다. 자신을 친구라고 생각해주는 월레스가 가끔 사고는 치고 다녀도 '사람은 착하다'는 마인드로 케어하는 것일까 싶었다.
세상이 다 나를 싫어하는 것 같을 때, 가끔은 행복했던 내 과거로 회귀하는 것도 현실 도피로 나쁜 선택은 아니다. 어렸을 때 내 자신을 보면서 잠시 추억에 잠겼다가 킬링타임으로 봐야 할 내용을 가지고 그로밋이 월레스에게 충성하는 이유까지 생각해보며 딴 생각에 빠질 수 있어서, 그렇게 잠시 즐거울 수 있어서 좋았다. 이래저래 불평불만이 많았지만 나는 그들이 행복했으면 좋겠다. 그래서 또다른 미래에 내가 지쳤을 때, 나를 위로해주는 시리즈로 남아주었으면 좋겠다.
Relative cont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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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JIFF 데일리] 지나간 것은 지나친 후에야 알 수 있다
나는 평생 나를 볼 수 없다. 눈으로 나의 전신을 있는 그대로 볼 수 없다는 물리적 한계는 물론이거니와 가장 여리고 약한 면을 깊은 내면에 숨겨두어 세상의 공격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는 것까지. 스스로를 지키기 위한 순간적인 반응. 그것들이 켜켜이 쌓여 자신마저 그 마음으로 들어가는 입구를 잃어버리게 된다.
그럼에도 일상은 아무 영향을 받지 않는 듯하다. 내가 나를 잘 몰라도 하루는 무탈하게 흘러가다 끝이 나고, 또 다른 하루를 맞이하니까. 이쯤 되니 내가 나를 잘 모른다는 사실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은 것도 같다. 가끔 혼란을 맞닥뜨리긴 해도 다들 이 정도의 복잡함은 껴안고 살아가니까. 거창하게는 인간의 숙명이라 여겨도 될 것 같고.
혹은 나는 생각보다 나 자신을 잘 아는 걸지도 모른다. 무엇이 내게 편하고 불편한지 구분할 줄 아니까. 나름 평화롭던 일상. 균열은 언제나 나쁜 것에서 비롯되진 않는다. 미루고 미뤄온 나 자신에 대한 직시를 피할 수 없게 만드는 사람. 잘 모르겠는, 혹은 모르고 싶은 것마저 헤집어 놓는 사람. 그 사람의 등장으로 지극한 현실은 깨지고, 완전히 다른 세계가 펼쳐진다.
Synopsis
강릉에 있는 한 예술고등학교의 연극영화과, 수안은 하이틴 스타인 설이와 급격히 가까워지며 어느 늦은 밤 무작정 자신의 집으로 찾아온 설이와 함께 서울 여행을 떠나게 된다. 이후 서로에게 특별한 감정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확인하게 되지만 오해가 쌓인 채로 설이는 수안을 떠나가게 되고, 훗날 배우가 된 수안은 설이에 대한 그리움에 겨울 바다로 돌아간다.
*스토리 전개상 주요한 스포일러는 거의 없습니다.
본격적으로 나의 미래, 그러니까 진로를 고민하는 시기는 언제인가. 어렴풋이 '나는 뭐 해 먹고살지?'라는 물음은 한두 번쯤 품어봤겠지만, 반드시 선택을 해야 하는 고등학생 무렵 아닐까. 갈팡질팡하는 또래 친구들이 태반이건만 드물게 제가 갈 길을 반짝이게 닦고 있는 소수를 마주치기도 한다. 수안에게 설이가 그랬다. 똑같이 연기가 하고 싶은 배우인데, 이미 드라마 주연을 몇 번이나 해본 설이.
흩날리는 긴 머리칼, 분홍 빨강 따위의 화려한 색조가 잘 어울리는 오목조목한 얼굴, 묘한 분위기까지. 짧은 머리칼에 화장기 거의 없는 수안과는 정반대의 삶인 걸 몸소 보여주기라도 하듯. 수안은 그런 설이를 보며 은근히 부러워하며 동경한다. 무얼 해도 미워할 수 없을 것 같은, 세상의 찬사를 몽땅 껴안는 그 애.
수안의 부러움은 열등감이나 질투로 번지지 않는다. 설이와 자신은 다른 사람이다. 수안은 이런 면에선 자기 자신을 잘 알기에, 세상의 뻔한 잣대나 몰지식함 앞에서도 네가 틀렸다고 지적할 수 있는 담대함을 지녔다. 설이의 눈엔 그 모습이 반짝거릴 것이다. 자신이 무얼 하고 싶은 건지 모르겠는 나와 다르게 분명한 기준을 갖춘 사람. 유약한 자신과 다르게 단단한 느낌. 두 사람은 서로에게서 자신이 가장 가지고 싶은 면을 발견한다.
그런데 앞서 말했듯 일상에 허덕이다 보면 스스로 느끼는 어렴풋한 찝찝함을 완전히 무시하고, 무시하다 보면 자신의 길이 옳았던 것인지 의문을 품게 된다.
배우가 맡는 무수한 역할들은 지금 사회를 살아가는 사람들이다. 고로, 끊임없이 타인을 연기한다. 마치 내가 된 것처럼. 내가 나를 모르는 상태에서 사회에서 당연히 받아들여지는 다른 사람들을 연기하다 보면, 그리고 나의 일거수일투족을 관찰하고 자신보다 더 빠르게 알아차리는 익명의 대중을 보면, 마치 그들이 기대하는 내가 나 자신 같다. 아니, 그게 맞는 것 같다.
사회가 좋아하는 일반적인 특성을 모두 갖춘 사람은 언뜻 보면 행복할 일밖에 없어 보인다. 하지만 겉모습은 그 안에 든 것까지 비춰내지 못한다. 그럼 무엇이 속을 꿰뚫어 볼 수 있는가. 거울이다. 내가 마주하는 지금의 나는 내 것이라곤 하나도 없는 듯해서, 그게 숨이 막혀서 도망치고 싶어 진다. 복잡한 내면을 잠재울 자극적이고 시원하고 재미난 것들로 시선을 돌림으로써.
수안과 설이는 서로가 있기에 모면이 쉬웠지만, 어느 순간부터 되레 어려워진다. 나를 비추던 거울은 눈길을 돌리면 그걸로 끝이다. 하지만 내가 아닌 타인은 마음대로 제거하거나 치울 수 없다. 나 자신을 가장 깊게 드러내는 존재를 막아서기란 불가능에 가깝다. 무엇보다, 피하고 싶지 않은 것 같다. 이 사람과 함께라면 다른 길을 걸을 수도 있을 것 같아서.
그러나 자유분방해 보이는 수안의 심연은 결코 설이와 다르지 않다. 어디로 가야 할지 헷갈린다. 자신에게 가장 편한 게 있다고 한들 그건 사회가 요구하는 것과 다르니까. 그래서 자신의 주체성을 드러낼 만한 시도를 꿈꾸며 미약하게나마 시작하지만, 함께 하겠다던 설이는 온데간데없다. 누가 먼저였을까. 가장 투명하게 서로를 비추던 거울은 얼룩이 덕지덕지 묻은 채 더 깊은 곳으로 묻어진다.
두 사람은 상흔을 남긴 채 각자의 길을 걸어가는 듯했지만, 오히려 그들에게 필요한 시간이었다. 자신이 원하는 것과 사회가 요구하는 것이 동일한지, 정말 원하는 건 무엇인지. 이 답은 현실에서 치이고 살면서는 발견할 수 없었다. 깊은 내면에 들어가려면 끝도 없이 희거나 푸른 것에 제 발로 들어갈 수밖에.
이로써 본래 살던 세계와는 전혀 다른 곳으로 넘어가 꿈인지 현실인지 모를 순간들을 맞닥뜨리며 투쟁한다. 꼭 붙어 다니던 어린 날의 둘은 제각각으로 분리되었다. 으레 좋다고 말하는 무형의 산물들을 얻고, 기꺼이 신기루처럼 놓치고, 결국엔 홀로 남은 자기 자신을 마주한다. 거세게 몰아치는 현실을 몇 번이나 온몸으로 부딪혀 낸, 그 시간을 모두 통과해 낸 나 자신을.
Schedule
- 2023. 04. 29 / 13:00 (230) 메가박스 전주객사 2관
- 2023. 04. 29 / 13:00 (235) 메가박스 전주객사 8관
- 2023. 05. 01 / 10:00 (411) 메가박스 전주객사 3관
- 2023. 05. 05 / 13:00 (822) CGV 전주고사 7관
제24회 전국국제영화제 (JIFF)
- 2023.04.27(목) ~ 2023.05.06(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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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이트 스토커
나이트 스토커
넷플릭스 다큐멘터리. 1984년 4월, 미국 로스엔젤레스에서 첫 살인 사건이 발생하고, 1985년까지 짧은 시간에 무려 열세 명을 살해했으며, 수십 건의 폭행, 강도, 강간 범죄를 저지른 범죄가 발생했다. LA경찰은 처음 살인사건이 발생한 이후, 몇 건의 살인사건이 더 발생할 때까지 이들 살인 범죄가 연쇄살인이라고 판단하지 못하고 있었다.
민완 형사 프랭크와 신참 형사 길버트가 이 사건을 맡아 수사를 시작했다. 범인이 미쳐 날뛸 때는 열흘 사이에 다섯 건의 범죄를 저지르기도 했다. 범인은 매우 주도면밀해서 지문을 포함한 어떤 흔적도 남기지 않았지만, 발자국은 어쩔 수 없었다.
생존자가 증언한 인상착의를 바탕으로 몽타쥬를 그리고, 범행 장소에서 발견한 여러 개의 족적을 확인하면서 범인이 신은 신발이 매우 특이한 신발이라는 걸 밝혀냈다. 그 신발은 나이키나 아디다스 같은 유명 메이커는 아니었고, 그리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회사에서 만든 제품으로, 모두 여섯 켤레가 대만에서 미국으로 들어왔고, 다섯 켤레는 다른 지역으로, 오직 한 켤레만 캘리포니아에 도착했다. 따라서 그 신발은 신은 사람이 범인인 것은 확실했다.
범인은 키가 약 180센티미터, 백인 또는 밝은색 피부의 남미 계열 사람이며, 신발 크기는 295밀리미터였다. 경찰은 비밀수사에서 공개수사로 전술을 바꾸고, 범인에 관한 정보를 미디어를 통해 공개했다. 한번은 가장 핵심 증거인 신발에 관한 내용은 빼고 언론에 알렸으며, 두번째는 LA시장이 직접 범인의 정보를 공개하는 자리에서, 형사들이 알고 있던 모든 정보를 공개했다.
수사를 하고 있던 형사들은 시장이 언론을 통해 말한 정보로 인해 범인이 자취를 감출 것이고, 수사는 더욱 어려워질 것이라고 판단했다. 하지만 경찰에게 퍽 운이 좋았던 상황이었다. LA시장이 생방송으로 범인의 정보를 언론 앞에서 알리고 있을 때, 범인은 LA를 떠나 다른 지역에 살고 있던 형을 만나러 갔고, 그 다음 날, 그레이하운드를 타고 다시 LA로 돌아온다.
단 하루 사이였지만, 모든 신문, 방송에서 범인의 얼굴 사진이 큼지막하게 박혀 있었고, 거리에서, 버스에서 시민들은 범인 리처드 라미레스를 알아보고 그를 뒤쫓기 시작했다. 결국 범인은 도주에 실패하고, 시민들에게 둘러싸여 린치를 당해 쓰러지고, 나중에 신고를 받고 달려온 경찰에 잡혀 경찰서로 이송된다.
범인 리처드 라미레스는 1985년에 체포되지만, 정식 재판은 1989년에 하게 되고, 그에게 적용된 43건의 사건이 모두 유죄로 선고되면서 리처드 라미레스는 사형 선고를 받는다. 하지만 그는 2013년 병원에서 암으로 자연사하는데, 그가 저지른 범죄에 비하면 행복한 죽음이었다고 말할 수 있다.
리처드 라미네스는 1960년 생으로 멕시코인이다. 그는 태어나면서부터 불우하고 불행한 환경에 둘러싸여 자랐다. 그를 둘러싼 부모, 친척들 모두 폭력적이고, 범죄를 저지르는 사람들이었으며, 마약, 살인을 아무렇지 않게 저지르는 모습을 어렸을 때부터 봤다고 했다.
그는 시민들에게 체포되고, 경찰의 심문을 받으면서도 아무런 죄책감이나 죄의식을 드러내지 않았다. 즉 인간의 모습을 한 '악마' 그 자체라고 할 수 있다. 다만, 의아한 장면이 있었는데, 그가 체포되어 대중과 언론 앞에 나서는 장면에서 고개를 숙이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그건 자신이 저지른 행위가 떳떳하지 못하다는 걸 의식하고, 인지하고 있다는 의미다.
하지만 그 장면을 제외하고, 리처드 라미네스가 재판을 받는 장면을 보면, 일말의 죄의식을 느끼지 못한다는 걸 알 수 있다. 그는 수치심이 사라진 인간으로, 싸이코패스라고 말하기도 어려운, 인간의 외피를 한 '다른 존재'라는 걸 알 수 있다. 이런 표현이 비과학적이라는 건 알지만, 달리 표현하기 어렵다.
과학적 입장으로 보자면, 리처드 라미레스 같은 인간이 나오는 것 역시 사회가 한 '개인'에게 그런 영향을 끼친 것이고, 인간은 주위 환경의 영향을 직접 받으며 성장하기 때문에, '개인'이 어떤 환경에서, 어떤 사람들과 살았느냐가 그 사람의 행동을 결정하는 가장 중요한 요인이 된다는 것은 당연하다.
2009년, 미국의 '라이프'는 '세계의 살인마 31인'을 발표했다. 이 목록에 당연히 '나이트 스토커'인 리처드 마리레스도 있다. 이 목록에 등장하는 연쇄살인마들의 범죄를 보면, 오히려 리처드 라미레스의 악행은 밑바닥에 있을 정도로 끔찍한 살인귀들이 많다.
한국에서도 유영철, 이춘재 같은 연쇄살인범들이 존재하는데, 이들의 공통점은 가정환경이 매우 불행하고 불우했다는 것이다. 가정환경이 불우하다고 모두 연쇄살인범이나 범죄자가 되는 것은 아니니, 이것을 일반화할 수는 없지만, 성장 환경과 과정이 개인의 삶에 깊은 영향을 끼치는 것만은 분명하다.
어린이 한 명을 키우는데 온 마을이 함께 한다는 말은 과거의 공동체가 존재했을 때, 사람들이 사회적 관계를 긴밀하게 유지하며 살았음을 의미하는 말인데, 오늘날, 자본주의가 지배하는 사회에서는 공동체를 해체하고, '개인'을 내세우며, 개인들의 연대와 협동을 구조적으로 파괴한다. 그것이 '자본주의'의 주인인 자본가들이 더 많은 이윤을 차지하는 구조이기 때문이다.
개인의 범죄를 단지 개인의 성향, 일탈, 인성과 같은 비과학적 분석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한 사람의 삶이 존재할 수 있는 사회적, 구조적 역학 관계를 들여다보는 것이 사회의 본질을 이해할 수 있고, 개인의 삶도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다. 여기에 '개인' 고유의 특성이 결합하게 되는 것이고, 극악한 범죄자들은 이런 '개인의 특성'이 그의 사회적 성장 배경과 결합해 범죄를 저지르는 인간으로 진화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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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 (2006)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The Devil Wears Prada, 2006)
<런웨이>의 편집장인 미란다, 그녀의 등장에 모든 직원들은 분주해진다. 너저분했던 책상 위 쓰레기를 모두 치우고, 편한 슬리퍼를 벗고 구두로 갈아 신는다. 기자의 꿈을 꾸던 앤디(앤 헤서웨이)가 면접을 보러 와서 목격한 광경이다. 늘 구두를 신고 다니는 런웨이 직원들을 일명 '또각이'들이라고 하며 남자친구에게 그들의 옷차림을 비판하던 앤디는 어쩌다가 런웨이에 입사하게 된다. 워낙 명성이 자자한 잡지사인 이 곳에서, 그것도 미란다의 직속비서로 1년만 버티면 어떤 회사든 들어갈 수 있다는 소문에 앤디는 또각이들 사이에서 어떻게든 버텨보기로 한다. 하지만 소문난 '얼음공주', '워커홀릭' 미란다의 취향과 세세한 요구를 맞추는 일이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니다. 쉴 새 없이 울리는 앤디의 전화벨 소리만큼 앤디는 정신없이 쏟아지는 미란다의 심부름으로 점점 지쳐가고 10번 잘하다가 1번의 실수로 듣는 쓴소리에 앤디는 그나마 해낸 9번의 보람마저 없어진다.
'할머니 치마'와 편하고 두툼한 운동화를 신고 온 앤디의 첫 출근날, 그녀에게 구두를 던져준 디자이너 나이젤에게 하소연하던 앤디는, 자신이 세계에서 가장 잘 나가는 패션잡지회사에 다니면서 직원들에 대한 불평과 불만만 하고 지냈지 자신은 정작 어떠한 관심도, 애정도 없이 다녔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때부터 앤디는 패션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다. 지금까지 업무에 대한 꼼꼼함과 버티기는 잘해왔었던 앤디의 새로운 노력에 미란다는 점점 눈길을 준다. 쉴 새 없이 울렸던 앤디의 전화벨은 두배, 세배로 더해지고 앤디는 에밀리만 할 수 있었던 미란다의 집에까지 드나드는 일까지 할 수 있을 정도로 미란다에게 인정받게 된다. 앤디는 기존 비서인 에밀리의 자리가 밀려날 수 있는 선택의 기로에 서게 된다. '직장에서 잘 나가면 개인사가 삐걱대지-'라는 나이젤의 이야기가 앤디에게도 일어날까?
영화를 처음 봤던 5년도 더 지난 그때는 메릴 스트립의 존재감과 앤 헤서웨이의 변화된 모습이 마냥 재미있기만 했다. 하지만 직장생활을 하면서 다시 보니, 다른 것들이 보인다. 특히 앤디의 열정 속에 느끼는 갈등과 갈증에 대한 그녀의 고민들.
자신이 가진 커리어의 성공적인 스토리를 위해 앞만 보고 달리는 미란다의 모습은 그녀의 외적인 포스뿐만 아니라 영화의 플로우에서도 느껴진다. 예를 들면 앤디가 런웨이에 들어가기 위해 한 노력의 과정은 영화에서 밝히지 않는다. 다만 미란다가 앤디를 합격시켰던 이유와 당시 앤디에 대한 미란다의 어떤 감정들을 이야기를 해줌으로써 앤디가 단번에 성장하게 된다. 이 과정도 앤디의 다양한 변화를 한 쇼트로 이어서 담아 이야기의 다음 파트를 밀고 나가는데 힘을 싣는다. 그렇게 앤디는 런웨이에서의 경력을 쌓게 되면서 영화도 앤디 개인의 꿈과 직업에 대해 선택하는 과정들을 같이 쌓아간다. 주축이 되는 두 캐릭터의 성격을 명확하고 디테일하게 설정한 감독은 영화의 엔딩까지 캐릭터에 설정한 신념을 끌고 간다. 그래서 많은 이들이 좋아하는 엔딩씬의 매력이 더하게 된 것일지도 모르겠다. 다시봐도 좋은 영화, 좋은배우들.
원작 소설이 있다고 하는데 아직 읽어보지는 않았다. 다만 원작을 배경으로 한 영화라는 수식어에 걸맞게 영화로써만 보여줄 수 있는 장면들이 확연히 느껴진다. 벌써 개봉한 지 14년이 지난 영화를 오랜만에 관람하니 이 영화가 2020년에 만들어졌다면 어떻게 표현했을까 무척 궁금하다. 그리고 관람객들은 이야기가 이야기가 되고, 이야기가 다음 이야기로 힘을 싣는 이 영화의 매력에 대해 어떻게 생각했을까, 명작은 오랜 세월이 지나도 명작이라는 것을 안다. 결국 콘텐츠도 이야기의 힘이라는 것도 안다. 그저 영화의 체험적인 면모가 커질수록 함께 커질 수밖에 없는 여러 가지 아쉬운 마음에 이런 생각해봤다. 그저 이야기의 힘이 사라지지 않기만을 바랄뿐이다.
•사진 출처: 네이버영화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 포토 스틸컷
* 본 콘텐츠는 브런치 성 실 님의 자료를 받아 씨네랩 팀이 업로드 한 글입니다.
원 게시글은 아래 출처 링크를 통해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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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들어가 보고 싶은 특별한 세계관을 가진 영화 TOP4!
특별한 상상력을 담아 지금껏 본 적 없는 세계관을 바탕으로 전세계 관객들에게 놀라움을 선사하는 애니메이션의 풍성한 이야기들! 코로나로 지쳐있는 분들을 위해 무의식의 세계부터 꿈속 세계까지 작품마다 고유한 세계관을 가진 영화 4편을 소개해드리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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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릴리 슈슈의 모든 것> - '붕괴된 세상과 쏟아져내리는 절망'
릴리 슈슈의 모든 것
개봉일 : 2005.06.23 (한국 기준)
감독 : 이와이 슌지
출연 : 이치하라 하야토, 오시나리 슈고, 아오이 유우, 이토 아유미, 오오사와 타카오
‘붕괴된 세상과 쏟아져내리는 절망’
* 학교 폭력과 관련된 장면들이 많이 나오니 상처가 있거나 거부감이 심한 분들은 주의하세요.*
<러브레터>의 감독으로 유명한 ‘이와이 슌지’의 아름답지만 기괴하고 완벽히 아름답고 우울한 영화 <릴리 슈슈의 모든 것>. 이와이 슌지 감독의 작품을 즐기는 관객들은 그의 영화를 크게 두 가지로 구분한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유명한 그의 작품 <러브레터>처럼 아른아른한 사랑을 아름답게 그려내는 화이트 이와이와 밝은 빛이 내리쬐고 있지만 사실은 눅눅하고 절망적인 순간을 그려내는 블랙 이와이. <릴리 슈슈의 모든 것>은 블랙 이와이 중 가장 완벽하게 우울한 작품으로 분류되며 이와이 슌지 감독의 역작이라 불리는 작품이다. 145분이라는 러닝타임 중 대부분의 시간을 어둡고 괴로운 순간으로 가득 채워놓은, 빠져나오기 힘든 우울의 늪 같은 이 영화 앞에서 나는 아주 무력하게 몸을 웅크렸다. 우울함에 대항력이 없는 사람이다 보니 거의 하룻밤을 꼬박 이 작품의 공기에 빠져들어 헤어나지 못했었다.
‘릴리 슈슈’라는 가상의 가수를 좋아하는 열네 살 소년 유이치가 주인공인 이 이야기는 견디기 힘들지만 견뎌야만 하는 인생의 한순간을 그리고 있다. 갑자기 탈선해버린 절친 호시노는 갑자기 학교폭력의 가해자로 변하고, 유이치는 호시노가 휘두르는 폭력에 휘둘린다. 아프고 슬프지만 어디에도 말할 수 없는 상처는 점점 곪아가고, 유이치를 위로하는 건 릴리 슈슈의 노래와 그녀가 만들어둔 세계뿐이다. 어른들에게 도움을 청할 수도 없기에 유이치는 손에 잡히지도 않는 세계에 기대어 하루를 이겨낸다. 어른들은 아이들의 세상에 관심 없고 그들의 행동을 이해하지 못한다. ‘이렇게나 심한 폭력을 휘두르는데 어른들은 뭐 하는 거야?’라는 질문과 한탄이 절로 나올 만큼 그들은 무관심하다.
나 또한 유이치와 비슷한 유년시절을 보냈던 기억이 있다. (유이치가 당했던 폭력과는 조금 다르고, 그 정도로 심하지는 않았지만..) 심리적인 폭력 앞에서 홀로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점점 위축되었던 중학생 시절, 유이치의 ‘릴리 슈슈’처럼 나를 지탱해 주던 가수와 그들의 세계가 있었다. 어쩌면 우스워 보일 수도 있지만 그들의 음악과 단단한 세계는 나에게 큰 힘이 되어주었고, 나는 여전히 그들을 사랑하고 있다. 나는 아주 아팠던 그 시기를 ‘지나간 과거’라는 카테고리에 집어넣고 더 이상 아프지 않은 어른이 되었는데, 유이치의 미래는 어떻게 될지 잘 모르겠다. 그래도 조금 희망이 보이는 것도 같은데.. 확신할 수 없는 결말이었다.
<릴리 슈슈의 모든 것>이라는 제목을 가진 이 영화는 유이치가 릴리 슈슈라는 가수와 같은 마음을 가진 팬들에게 의지하며 희망과 절망을 모두 겪었던 그 시절의 기록이다. 도를 넘은 학교폭력과 외로움, 무력함, 우울함, 그나마 조금 쌓아올렸던 세상이 한순간에 무너져내리는 절망감. 같은 것들이 버무려진 시간은 보는 이마저도 무력하게 만든다. 다른 아이들처럼 설레는 첫사랑을 하고, 친구들과 즐거운 여행 기록을 남기고, 절친한 친구와 같은 밤하늘을 보면서 대화를 나누고 싶어 하는 보통의 소년이었던 유이치가 견뎌야 했던 슬픔은 보통의 것이 아니었다.
‘아직 세상도 잘 모르는 어린애가 슬프면 얼마나 슬프고 얼마나 힘들겠어?’라고 생각하면 안 된다. 나이가 어리다 해도 사는 게 버거운 순간이 있다. 어른이 감당해야 할 감정과 책임감, 아이가 감당해야 할 감정과 책임감은 분명 다르고, 어른들에 비하면 아이의 세상은 다소 좁지만, ‘그것이 세상의 전부’인 소년의 어린 날은 누가 뭐라 해도 이미 충분히 버겁다.
작은 감정의 파고에도 예민하게 반응하는 여린 소년의 마음을 자비 없이 푹푹 쑤셔대는 세상에서 소년은 다른 세상에 눈을 돌리며 위로를 받는다. 길고 어두운 터널을 내 발로 걸어 나가는 것이 아닌 그저 살아남기 위해 그 자리에서 견뎌내는 시간들. 유이치가 보여준 그의 완전하게 우울하고 축축한 시간들을 끌어안고 한참을 함께 울었다. 드뷔시의 아름다운 음악이 이렇게 나를 우울하게 만들 날이 올 줄은 감히 상상치도 못했다.
릴리 슈슈의 모든 것 시놉시스
'릴리 슈슈'의 노래를 너무나 사랑하는 열네 살 소년 유이치. 그러나 그의 일상은 힘들다. 둘도 없는 단짝 친구 호시노가 어느날 반 아이들의 리더가 되어 자신을 이지메 시키고 첫사랑 쿠노 역시 이지메를 당하지만 그녀를 도와주기에는 자신의 슬픔을 감당하기에도 벅차다. 소년의 유일한 안식처는 오로지 영혼을 뒤흔드는 듯한 ‘릴리 슈슈’의 노래 뿐... 그러나 현실은 노래로 감출 만큼 만만하지 않다...
* 아래 내용부턴 스포가 있을 수 있습니다 *
“내 고통은 에테르로 치료된다.”
릴리 슈슈가 구축한 세계 에테르. 그곳은 평온함과 영원함이 보장된 장소다. 릴리 슈슈는 에테르를 음악으로 만든 인물로 많은 팬을 보유한 가수다. 유이치는 첫사랑 쿠노를 통해 릴리슈슈를 알게 되고, 항상 옆에 있던 쿠노와 친구들의 자리가 비었을 때쯤, 릴리슈슈의 세계에 빠져든 유이치는 릴리슈슈를 통해 위로를 받게 된다.
막 중학생이 된 1999년. 유이치는 신입생 대표로 답사를 읽은, 1등 출신이라고 소문난 모범생 호시노와 친구가 된다. 함께 동아리 활동을 하고, 같이 어울리는 친구들도 생겼다. 외계인인 게 아닐까 싶을 만큼 완벽한 친구 호시노, 집안마저 잘살고 엄마도 말도 안 되게 예쁜 호시노. 중학교에 오며 항상 옆에 있던 그녀(쿠노)의 자리는 비게 되었지만 그 빈자리를 채워주는 친구들이 있어 마냥 즐거운 시간이었다. 하지만 1999년 9월을 기점으로 유이치와 친구들의 평온한 에테르 같은 세상은 멸망한다. 호시노의 세상이 무너진 날을 기점으로 말이다.
2000년은 유이치가 14살이 된 해이자 그의 잿빛 시대가 시작된 해다. 엄마의 재혼으로 새아빠를 따라 성을 바꿔야 했고, 통칭 ‘완벽하고 착한 부잣집 아들’이었던 절친 호시노가 갑작스러운 방황을 시작하며 유이치에게도 폭력을 휘두르기 시작한 그 해. 유이치는 언제나와 같이 행동했지만 그를 둘러싼 세상은 그렇게 어두워져있었다.
호시노의 부모님이 경제적 능력을 잃고, 가정이 흔들리자 호시노는 탈선과 폭력을 선택한다. 호시노 또한 초등학생 시절 왕따를 당한 상처가 있었는데, 그때의 기억과 아픔이 기폭제가 된 것인지 그는 동급생을 괴롭히는 일진 학생을 응징하며 그 순간을 기점으로 변하기 시작한다. 학교 폭력의 피해자가 완벽한 가해자로 변하는 순간. 벌거벗은 일진이 호시노의 발밑에서 기고 있는 장면이 다소 기괴하고 충격적으로 다가온다. 항상 어른들의 말을 잘 따르며 모두가 나를 제대로 모르고 있다고 생각하면서도 그 틀에 맞춰 생활하려 했던 아이 호시노는 더 이상 참지 못하고 나를 모르는, 남이 맞춘 세상을 폭파시키기에 이른다. 호시노가 유이치와 피해자들에게 행한 폭력과 잔혹한 행동들은 무엇으로도 정당화될 순 없으나, 견디는 것 대신 자신의 세상과 다른 이를 격렬하게 깨부수는 걸 선택한 그의 내면에 쌓인 부담감과 분노는 다소 안타깝게 느껴진다. 하지만 이 행동을 포장하거나 미화할 생각은 추호도 없다. 영화 또한 그렇게 말하고 있다.
<릴리 슈슈의 모든 것>이라는 영화가 폭력을 정당화하거나 미화하는 것 같다는 불호평을 내놓는 관객들도 일부 보였는데 그건 아마 영화 전반에 깔리는 아름다운 드뷔시의 음악 때문이 아닐까 싶다. 쿠노가 좋아하던 드뷔시의 아름다운 음악들과 화면 안에 가득 차는 따스한 햇빛. 아름답고 평화로운 장면에 주로 쓰일만한 장치들을 잔인한 폭력이 행해지는 순간에 집어넣은 건 이 두 가지의 대립을 통해 현실의 잔혹함을 더욱 부각시키기 위함이었을 것이다. 햇빛이 비치는 순간이라 해서 모두 아름다운 것이 아니고 부드러운 클래식 음악이 깔린다고 해서 모두 우아한 순간은 아니다. 유이치가 겪고 있는 현실이 그렇다. 멀리서 보면 괜찮은 것 같은데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렇지 않다. 또래 친구들과 함께 걷고 있는 것 같은데 자세히 보면 그저 끌려다니는 것 뿐이다. 어른들은 이 사실을 알지 못하고 유이치와 쿠노, 츠다는 그렇게 아픔을 속절없이 삼켜야만 했다.
“죽으려 마음먹었다.”
유이치는 죽음을 생각한다. 혼란스러운 가정의 변화, 호시노의 직간접적인 괴롭힘. 그리고 첫사랑 쿠노가 폭력과 괴롭힘에 시달리는 걸 눈앞에서 보고도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무력감. 유이치는 내 세상을 모두 지탱하고 있는 릴리 슈슈의 라이브 현장에서 죽기로 결심한다. 에테르의 기운이 가장 충만한 릴리슈슈가 있는 공간에서 죽음을 선택한다면 왠지 평화로운 세상으로 갈 수 있을 것만 같았기 때문일까.
하지만 호시노는 마지막까지 유이치를 괴롭게 한다. 호시노는 유이치의 표를 뺏어 쓰레기 던지듯 길바닥에 내버리고 혼자 공연장에 들어간다. 유이치는 넋이 나간 표정으로 호시노를 쳐다보고, 그가 들고 있는 파란 사과를 보고 충격에 빠진다. 유일하게 의지했던 릴리슈슈와 릴리슈슈에 대해 함께 이야기하며 유이치의 마음을 위로해줬던 그의 팬. 그게 바로 호시노였던 것이다. 유이치는 넋 나간 사람처럼 공연장 주변을 맴돈다. 그리고 사람이 몰린 틈을 타 호시노를 칼로 찌른다. 우리만의 표식이었던 파란 사과에 꽂힌 피 묻은 칼. 유이치가 처음으로 포효하는 모습을 보이며 호시노를 찌른 그날, 유이치의 에테르는 무너졌고 더 이상 고결하지 않은 세상으로 바뀐다. 쏟아져 나오는 사람들 사이에서 그간 쌓였던 분노와 울음을 토해내는 유이치의 모습이 다소 낯설고 무섭기도, 안쓰럽기도 하다. 무너진 세상을 돌파하기 위해 유이치가 할 수 있었던 일이 이것뿐이었던 현실이 아릴만큼 슬프다.
유이치는 잿빛으로 물든 세상에서 어떻게든 살아남았다. 새로운 해가 왔고 새로운 머리색을 하고 다른 학년이 되어 다시 등교를 한다. 그리고 첫사랑 쿠노를 만난다. 심한 왕따와 성폭력까지 겪어야 했던 쿠노는 나의 걱정과 다르게 아주 강하게 살아남았다. 어떤 것에 의지하고 있는지는 전혀 알 수 없지만, 꿋꿋하게 그 아프고 우울한 시기를 견뎌냈다. 여전히 드뷔시를 좋아하는 쿠노는 지금도 릴리슈슈를 좋아할까?
유이치가 호시노를 찌른 날 이후로 릴리슈슈는 불길한 가수라는 타이틀을 얻게 되는데,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이 영화에서 릴리슈슈는 결국 불행, 우울 또는 마지막을 뜻하는 존재가 아니었을까 싶다. 유이치를 통해 릴리슈슈의 음악을 접하게 된 츠다는 이내 현실을 이겨내지 못하고 ‘날고 싶다’며 자살을 선택했고, 직접 행동에 옮기진 않았지만 유이치도 릴리 슈슈의 기운이 가장 충만한 날, 자살을 결심했었다. 그리고 릴리슈슈의 기운이 가득한 공연장에서 유이치는 호시노를 죽인다. 누군가에게 현실을 견디는 가장 큰 버팀목이 되어주던 릴리 슈슈의 음악은 한순간에 그들이 마지막을 결심하게 만드는, 또는 마지막과 함께하는 존재가 되기도 한다. 쿠노는 아마 이제 더 이상 릴리슈슈를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 되지 않았을까. 생각해 본다.
환상으로 가득한 에테르에 기대기보단 묵묵히 현실을 견디며 살아남은 쿠노가 아직도 릴리슈슈를 좋아하는진 정확하지 않지만 그녀가 영화의 등장인물 중 가장 희망적이고 강한 인물임은 알 수 있다. 어쩌면 쿠노의 생존은 작은 희망일 수도 있겠다. 쿠노가 좋아하는 드뷔시의 곡이 깔린 마지막 장면, 이전과 다른 머리 스타일을 한 쿠노와 유이치가 마주 보고 서있다. 항상 서로의 옆에 서있던 두 사람이 잿빛 세상을 무너트리고 재회한다. 잿빛을 거둬낸 이 순간이 앞으로도 계속될 수 있을지, 잿빛으로 물든 기억을 이겨낼 수 있을진 두 사람의 마음에 달렸다. 하지만 두 사람이 다시 마주하는 순간이 이제껏 보아온 순간에 비해 너무 평화롭고 따뜻해서, 나는 그들이 새로운 해를 무사히 넘길 수 있을 거라 믿고 싶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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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나치게 정직했던 건 아닐까요 도지사님
주말마다 하는 고민이 있다. '이거 봐야 해 말아야 해?'다. 재미없는 사회복무요원 생활 속 작가님 소리 듣는 건 재미있다. 그래서 CGV 어플을 켜고 프리미어 시사회와 온갖 쿠폰에 민감한지도 모르겠다. 거의 주마다 가는 영화관. 유일하게 생각했던 진로가 물 건너 간 후에 이 영화 저널 쓰기는 나에게 좋은 놀이가 되고 있다.
오늘도 고민에 여념이 없다. 이걸 봐야 해 말아야 해? <정직한 후보>? 1편 그냥 평범했는데. 근 30분간의 고민을 뒤로하고 '그래. 한번 가보자'라고 마음을 먹는다. 버스를 타고 영화관에 도착한다. 이거 장병 할인받고 싶은데요. 네. 5시에 들어가시면 되세요. 이거 맞나? 환불할 수 있나? 어플을 켜서 환불할 수 있나 확인한다. 환불 불가라는 글자가 떡하니 눈에 들어온다. 그래. 한국영화의 부흥을 위해서라고 (다시) 되뇌기로 한다. 그리고 나는 솔직히 후회했다. 조금만 덜 정직하면 좋았을 것 같았다. 2021년, 코로나19가 덮치지 않은 지구, 대한민국에 사는 백수 주상숙 씨가 정치인으로서의 재기를 계획하고 있다. <정직한 후보 2>다.
나는야 백수
전직 3선 의원 주상숙. 국회의원을 세 번이나 했다. 놀라운 기록이다. 국회의원 한번 해보기도 어려운데 3번이나 하는 건 정말 대단한 것이다. 그런 기록이 있으면 보통 원내정당에서 '중진'으로 불린다. 중진의 뜻은 무거울 중자에 잘 담겨 있다. 조직에서 무게감이 있다는 건 많은 책임감을 수반하는 일이다. 그런데 이 사람은 영 아니다. 인생에서 뭐가 가장 쉬웠니? 거짓말이오! 거짓말로 3선이나 해 먹었지만 그 탓에 역풍이 날아들었다. 4선 도전을 시원하게 말아먹고 시장에 출마한 주상숙. 이미 떠난 민심이 쉽게 돌아올 리가 없다. 당연히 실패했다. 현대사의 여느 정치인이 그랬듯 야인으로 돌아간다. 남편 소유의 아파트까지 팔아 선거 자금으로 댄 주상숙. 그동안 모아놨던 돈은 홀라당 까먹고 강원도의 어느 집에서 남편과 함께 조용히 살고 있었다.
그런데 이대로 무너질 거면 주상숙에게 3선의 기운이 날아들지 않았다. 시장에서 생선 손질하고 있는데 트럭 하나가 바다에 풍덩 빠졌다. 수영할 줄 아는 분 없으세요? 없었다. 그럼 내가 빠지고 말지. 무작정 바다에 빠져 트럭 운전수였던 청년 한 명을 구한다. 정작 기절 상태에 빠진 주상숙. 정신을 차려보니 국회의원 시절 보좌관이었던 희철이 반긴다. 뭐지? "누나. 기회가 왔어요." 무슨 말이야? 희철은 병상에 있던 커튼을 치웠다. 바로 자기를 취재하려 찾아온 기자들이 상숙을 반겼다. 이게 무슨 일 이래? 아무 계획 없이 바다에 빠졌던 일이 정치인 주상숙에게 구원의 동아줄이 된 것이다. 과연 이대로 죽으란 법은 없다. 이 사건을 기점으로 점점 부활의 서막을 밟아가는 주상숙. 눈 떠보니 강원도지사다. 몰락한 커리어가 다시 한번 기지개를 켰다. 고점을 찍는 지지율에 어깨에 힘이 잔뜩 들어간다. 이러다가 대통령도 생각해 볼 법하겠어? 그녀에게 브레이크란 없다. 아니 없을 것 같았다. 주상숙은 두 가지 브레이크를 만난다. 바로 다시 찾아온 '그분', 거짓말 못하는 주둥아리와 도지사 곁에서 열심히 해쳐먹는 부랑자들이다. 그녀는 과연 재선에 성공할 수 있을까?
2년 만에 돌아온 신작
2020년 개봉한 1편이 2년 만에 후속작을 냈다. 주인공은 여전히 라미란, 김무열 두 배우다. 전작은 150만 명의 관객을 동원하며 손익분기점은 넘었다. 전작을 요약하자면 '캐릭터가 잘 살아있는 코미디 쇼'였다. 이는 주상숙이라는 인물의 직업적 특성과도 이어진다. 주상숙은 정치인이다. 정치 인하면 대중적으로 익히 알려져 있는 이미지는 거짓말이다. 선거 때마다 겉으로만 쨘하고 나타나서 달콤한 말로 유권자들을 속이는 모습은 많은 미디어를 탔다. 이렇게 잘 알려진 특성을 '진실을 말해야만 하는' 상황과 결합시켜 코미디 요소를 만들어냈다.
전편을 보며 느꼈던 점은 신선했다는 점이다. 정치인이 진실된 말만 한다는 설정은 그냥 문장 자체가 신선하다. 거짓말하는 정치인을 가지고 하는 범죄, 스릴러물은 많이 봤어도 정반대의 특성을 살려 코미디화 시킨 건 거의 처음 보는 것 같았다. 그리고 라미란이라는 배우는 이런 낯선 설정을 톡톡히 잘 살렸다. 후반부 신파가 들어간 전개와 전반부 코미디 요소를 살리는 방법, 또 정치인으로서의 모순된 지점까지 디테일을 구석구석 살려 생동감을 부여한 좋은 연기가 돋보였다.
이런 생동감은 앞에서도 서술한 '정치인들의 민낯 드러내기'와 시너지를 낸다. 후보의 비리사실을 지적하지만 그런 인물 역시 뒤가 썩었다는 묘사, 사실대로 말하는 것이 오히려 차별점을 부여한다는 설정, 정치인의 기본 준비물 같았던 원정출산, 언론인 매수 등등 어딘가 익숙했던 현대사의 단면을 코미디화 시킨 것은 아주 좋았다. 특히 후반부에 'ZOO'라는 단어를 활용한 말장난은 살짝 아쉽기는 했지만 사실 우리나라 어느 시기의 국회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런 특장점이 앞에서 서술한 라미란 배우의 활용법과 플러스 효과를 내며 나름 좋은 평이 많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이 상황에서 후속작이 나왔다. 오롯이 장점만 발현됐다면 좋았을 것이다.
우연히 발견한 느낌
1편은 좋았다. 신선했고 정치사 이면을 들여다보는 관점까지 나쁘지 않았다. 후반부에 들어간 신파도 뭐 납득이 안 가는 건 아니다. 충분히 뭉클했고 이야기 전개에 억지로 균열을 낼 정도로 뻔뻔하지는 않았다. 또 초반부 '왜 진실만을 말하는 주둥이가 됐는가?'도 이 정도면 충분한 설명이었다고 본다. 코미디 영화에서 왜 이게 웃겨?를 일일이 설명하면 장르적인 재미가 떨어진다고 생각한다. 평범한 일상을 어긋 내는 요소가 있어야 코미디가 성립하지 않겠어?
그런데 이 영화, 그러니까 본편인 2편에서는 안 좋은 부분만 답습했다. 사실 좋은 부분이 안 좋은 부분으로 변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일단 1편에서 느껴졌던 신선한 코미디를 2편에서 그대로 끌고 왔다. 초반부터 코미디 패턴이 예상되기 때문에 안 웃기다. 이 지점은 굉장히 치명적이다. 주상숙의 입에서 무슨 말이 나와도 웃기지가 않다. 이 코미디 패턴이 곡선 형태로 바뀌면 모르겠는데 영화 전반적으로 관통하는 코미디는 이 진실밖에 말하는 입에 의존했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코미디 영화인데 식상해서 안 웃기는 것이다.
그렇게 전반부를 이 코미디 패턴에 할애하고 중반부로 넘어간다. 중후반부로 넘어가면 사실 이 영화는 스릴러로 변한다. 도지사가 된 주상숙이 어떤 일을 겪고 해결하는 과정이 영화의 물리적인 분량을 차지하고 있다. 여기서 짠 이야기 전개는 예상외로 좋았다. 고공 행진했던 주상숙의 지지율이 원인이 되고, 정치인으로서 지리멸렬했던 과거가 좋은 인재를 바라보지 못한다는 인과관계가 성립된다. 이를 바탕으로 나름의 전개는 짜임새가 있다. '내가 도지사이기 때문에' 무작정 의사결정을 보여주지 않는 주상숙, 후반부 제시되는 빌런의 정체, 주상숙 친구 캐릭터, 문제 해결을 이루며 소모적으로 활용하지 않은 캐릭터 사용까지. 영화는 코미디를 설계했지만 오히려 스릴러로서의 장점을 발현하는 아이러니를 보여준다.
왜 그랬을까
왜 코미디가 기능하지 않았을까 더 생각하면 이유가 더 나온다. 일단 초반부. 앞에서 서술한 바와 같이 1편에서 봤던 코미디 패턴이 그대로 반복되기 때문에 그냥 무덤덤해진다. 또 이 방식이 러닝타임 후반부까지 거의 대부분을 차지하기 때문에 식상하기까지 하다. <육사오>에서 군이라는 공간적 세팅을 통해 다방면으로 코미디 요소를 만들었던 것과는 대조적이다. 또한 <공조 : 인터내셔날>에서 임윤아, 유해진, 다니엘 헤니, 현빈 네 배우의 장점을 활용해서 만든 코미디와도 다르다. 진실을 말하는 입이 된 차희철과 주상숙이 직설적인 화법으로 특별한 상황을 만들어낸다는 것 그게 끝이다.
이런 코미디 설정은 이야기의 전개 방식에서도 악영향을 끼친다. 이 영화의 러닝타임 절반은 '이런 병 아닌 병이 들어온 후 대응하는 주상숙의 모습'으로 축약할 수 있다. 그런데 1편을 생각할 필요가 있다. 할머니의 기도가 주효해서 사실을 말하지 않으면 큰일 나는 처지가 된 상숙. 무슨 말이냐? 이 사람이 이런 특성을 가진 건 초자연적인 현상이다. 그런데 이 영화의 초반부처럼 '이렇게 말하면 예외가 되어서 난감한 상황을 돌파할 수 있어요'를 제시하는 건 조금 아쉬웠다. 영화가 직접 이 작품의 설정 오류를 말해주는 느낌? 신이 소원을 들어줘서 그렇게 된 건데 예외를 두면 '저런 상황에서 잘 참아서 넘어가면 되는 것 아닌가'라고 생각이 들기 쉽다. 그럼 몰입이 깨지는 것이다.
또한 기본적으로 주상숙과 차희철이 이런 처지가 된 사건 설계 자체도 엉성하다. 물론 <육사오>에서의 설정 역시 엉성했다. 보통 그쯤 되는 복권은 알아서 찢어지거나 더러워지기 마련이다. 그런데 이 영화에서의 기본 베이스는 애초부터 흔들릴 수밖에 없다. 할머니를 그렇게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이 사진은 왜 버렸대? 그리고 바다에는 왜 그렇게 자주 빠지는 거야? 또 근본적으로 주상숙이 왜 정신을 안 차렸는지도 의문이다. 그렇게 커리어가 허위 공작으로 부서질 뻔한 인물이 높은 지지율 때문에 변해서 위기에 봉착한다? 코미디 영화에서 인과관계를 따지면 웃길 일이 없다는 것 잘 알지만 이건 좀 아쉽다. 아쉬운 만큼 후에 웃기면 다행인데 단조로운 패턴이 식상하기까지 하니 더 두드러지는 것이다. 또 코미디 쪽 파트에서 이야기가 앞으로 전개되는 부분이 거의 없다. 극후반부를 위한 준비물? 생각해보면 그 시퀀스가 없어도 일처리 시원시원한 건 다 알 수 있다. 내가 왜 주상숙이 결혼식 주례 보는 걸 알아야 하지? 큰 의미가 없는데?
이런 식의 이야기 전개가 있다 보니 러닝타임 절반이 의미가 없게 느껴진다. 또 그나마 작동하는 후반부의 스릴러도 각본이 깔끔한 건 아니다. 엉성한 단점이 그대로 느껴진다. 이런 영화의 만듦새 때문에 뭔가 텅 비어 보이는 느낌은 지울 수가 없다.
반짝반짝 빛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후반부의 스릴러 코드에서 엿볼 수 있는 장점이 있다. 정치인과 보좌관들이 정책을 설계하며 겪는 노고가 그대로 전해진다. 또 앞에서 서술한 바와 같이 각본이 엉성하긴 해도 이야기 전개가 굴곡이 있는 편이라서 흥미진진하다. 이 과정에서 주상숙 캐릭터 설정이 빛을 발했다. 이 사람이 사실만을 말하는 사람이기 이전에 성격이 이래서 그대로 행동한 것이 그대로 드러난다. 이를 위해 라미란 배우가 연기를 정말 잘했다. 1편에서 상도 받았지만 오히려 난 이 2편이 이 배우의 최고작 같다. 어디에서 힘을 주고 빼야 하는지를 잘 이해한 좋은 퍼포먼스였다. 또 신파가 들어가진 않았지만 감정적으로 뭉클해지는 부분이 있다. 이 때도 눈빛, 말투 연기 하나로 극에서 설득력을 부여한다. 라미란 배우가 이정은, 김혜수 배우만큼이나 원톱 롤을 줘도 잘 소화한다는 걸 처음 알았다.
또 김무열, 서현우 배우도 높은 경험치를 경제적으로 활용했다. 김무열 배우 연기 잘하는 것 같다. <악인전> <소년심판>이랑 연기가 비슷한 것 같은데 정말 다르다. 특히 <소년심판>에서의 연기는 나긋나긋하게 침착한 인물을 잘 소화했다고 볼 수 있다. 또 내면에 상처가 있어 그만큼의 동기부여를 작동시키는 게 당시의 김무열 캐릭터 아닌가. 그런데 이번에는 같은 원톱 여성 주인공을 보조했지만 아예 정반대의 퍼포먼스를 소화하며 극을 보조한다. 개인적으로 1편에서 싸움 잘한다는 특징을 준 것으로 아는데 액션 신이 없었던 건 많이 아쉽다. 또 서현우 배우 역시 베테랑 티가 난다. <죄 많은 소녀>에서 이기적인 선생님 역할과 비슷한 것 같지만 다시 생각해보면 또 다르다. 착한 척은 하되 그냥 눈빛부터 나쁜 놈 티가 나면서 차희철 캐릭터와 대비를 이뤄야 하는데, 이 과제를 무탈하게 소화해낸다. 그러나 배우들 중에서 가장 재발견으로 느껴지는 부분은 윤두준 배우다. 하이라이트라는 팀에서 배우를 데뷔한 사람이 누가 있지? 이기광 씨만 기억에 남았는데 윤두준이라는 이름도 기억에 남을 것 같았다. 말투를 통한 인물 해석이 돋보였다. 드라마에서는 몇 번 나오셨던데 영화에 나와서도 잘하실 것 같다. 역시 액션 연기가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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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루만에 넷플릭스 전세계 1위 한국 드라마 지옥 정주행 하기(해석)
넷플릭스 오리지날 한국 드라마 지옥 1~3 편의 내용입니다.
영화에취한다 비지니스메일: allwey02@gmail.com
사용중인 이어폰 : 저지연 무선이어폰 GTW270 hybri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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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클라이밍> 런칭 예고편
“너는 나고, 나는 너야”
세 달 전 교통사고를 겪은 세현은 세계 클라이밍 대회를 앞두고
회복되지 않는 컨디션과 경쟁에 대한 압박으로 악몽에 시달린다.
그러던 어느 날 밤, 사고 당시 고장 났던 세현의 핸드폰으로 전화가 걸려온다.
다름 아닌, 바로 '나'로부터.
연락을 주고받을수록 서로 연결되어 있음을 느끼는 두 사람.
급기야 세현은 또 다른 세현의 임신이 자신에게도 영향을 끼친다는 것을 알게 되고,
그 이후 악몽처럼 기이한 일들이 일어나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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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하우스 오브 스네일스> 메인 예고편
소설 작가 안토니오는 조용히 고독을 즐기면서 다음 소설에 대한 영감을 얻으려 말라가 산맥의 한 작은 마을로 향한다. 마을에 들어서면서 처음 느낀 산뜻하고 따듯한 분위기와 달리 마을 사람들은 어쩐지 경계심이 가득하다. 그런 그들의 이야기를 글로 써내려 가던 그는 시간이 지날수록 무언가에 홀린 듯 이상한 현상들을 겪는다. 그러던 어느 날 마을에서 살인사건이 일어나고, 마을 사람들이 충격적인 전설을 숨기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안토니오는 곧 자신을 둘러싼 현실이 전설보다 더 잔혹하다는 것을 깨닫게 되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