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nonymoushilarious2025-01-31 13:13:36
월레스와 그로밋: 복수의 날개
월레스와 그로밋: 복수의 날개
세상이 다 미워질 때가 있다. 나에 대한 자책이 과해지고, 그에 따라 주변 사람들에게 어떤 리액션을 해주어야 할지 모르겠을 때가 있다. 말하자면, 아주 약한 번아웃이었을 수도 있고, 그냥 짜증이 반복되어 지쳤던 것일 수도 있다. 모든 것이 다 귀찮아질 때, 병원을 가는 게 좋을 수도 있지만 나는 그럴 때마다 나에게 한 번씩 처방을 내린다. 과거의 해맑았던 내가 봤을 법한 영화로 다시 회귀하곤 한다. 정작 회귀를 실행할 때는 몰랐다가 그 시기를 지나고 생각해보면 그 시기 내가 참 우울했구나 생각하곤 한다. 최근에도 그런 폭풍우가 한 번 지나갔는데, 그 때 나는 나의 어린시절에 항상 함께했었던 애니메이션 '월레스와 그로밋'을 봤었다는 사실을 기억해내며, 새로운 시즌을 찾아보기 시작했다. 현실을 잠시 잊기 위해서, 잠시 생각을 환기시키기 위해서
1. 언제쯤 사고를 안 치실 예정이십니까, 월레스
항상 느끼던 바였지만 이번에도 가장 큰 빌런은 월레스였다. 모든 시즌에 악역들이 등장하곤 했지만 나는 이 애니의 가장 큰 빌런은 월레스라고 생각한다. 어쩜 저렇게 캐릭터가 맹할 수 있을까. 사람도 너무 잘 믿고, 너무 머릿속이 꽃밭이다. 항상 그로밋을 하대하는 것도 사실 조금 마음에 들지 않는다. 그리고 꼭 사건이 터지면 하대하던 그로밋의 도움을 꼭 받고 나서야 그로밋의 소중함을 깨닫는 금쪽이가 따로없다. 이번에도 역시나 원흉은 월레스였다고 생각한다. 그래도 미워할 수 만은 없어서 여전히 월레스가 정상적으로 살아가기를 바라게 되는데, 기계에게 점령당한 삶을 살다가 강제로 아날로그의 삶을 살게 된 그가 버벅대는 걸 보는 것도 나름 하나의 오락적 요소였다. 월레스를 보고 있자면, 기계에 잠식될 현대 인간의 미래를 보는 것 같기도 하다. 우리는 핸드폰을 포함한 기타 기계들에게 점점 삶을 의지하고 있다. 지식을 찾아볼래도 백과사전을 찾아볼 바에 인터넷 검색을 하는 것이 더 편해진 세상에서 월레스가 차 하나 제대로 못 우리는 건 우스워보여도 어쩌면 당연한 것일지도 모른다. 나도 곧 저렇게 되려나 생각해보게 되었다.
2. 그로밋이 월레스에게 충성하는 이유가 뭘까.
보다보면, 월레스는 그로밋의 주인이지만 사실은 그로밋이 월레스를 케어한다. 모든 수상한 낌새는 그로밋이 다 채고, 가끔 자기 뽕에 취해 그로밋을 무시하기도 하는 월레스의 단점을 다 이해하는 그로밋의 마음은 무엇일까. 항상 그로밋은 도움을 주는 포지션에 있을 뿐, 그로밋의 속마음은 한 번도 들어보지 못했다. 그로밋에게는 그 어떤 대사도 주어지지 않기 때문이다. 이번 시즌을 보면서 그로밋이 월레스에게 충성하는 이유가 뭘지 궁금해졌다. 그저 자신을 친구로 인정해준 고마움 때문인가, 아니면 월레스를 물가에 내놓은 어린애처럼 보는 걸까. 확실한 건 월레스는 그들이 친구 관계를 가장한 주종 관계라고 주장하고 싶겠지만 사실은 그들은 그냥 서로가 없으면 안되는 관계이다. 더 정확히 말하면, 월레스는 그로밋이 없으면 안되는 건 누가 봐도 알겠지만 그로밋은 월레스가 꼭 필요한 이유가 무엇인지 대사로 표현된 바가 없어 그저 추측만 할 뿐이다. 자신을 친구라고 생각해주는 월레스가 가끔 사고는 치고 다녀도 '사람은 착하다'는 마인드로 케어하는 것일까 싶었다.
세상이 다 나를 싫어하는 것 같을 때, 가끔은 행복했던 내 과거로 회귀하는 것도 현실 도피로 나쁜 선택은 아니다. 어렸을 때 내 자신을 보면서 잠시 추억에 잠겼다가 킬링타임으로 봐야 할 내용을 가지고 그로밋이 월레스에게 충성하는 이유까지 생각해보며 딴 생각에 빠질 수 있어서, 그렇게 잠시 즐거울 수 있어서 좋았다. 이래저래 불평불만이 많았지만 나는 그들이 행복했으면 좋겠다. 그래서 또다른 미래에 내가 지쳤을 때, 나를 위로해주는 시리즈로 남아주었으면 좋겠다.
Relative cont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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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퀸스 갬빗> 정석에 충실한 냉전 시대 천재의 성장기
1. 1950년대 말, 켄터키의 한 고아원에 맡겨지는 '베스 하먼(안야 테일러조이)'. 처음으로 체스 게임을 하기 전까지만 해도 조용하고, 침울하며 특별할 것 없어 보이는 고아였다. 그러나 주 정부가 고아원에 공급한 진통제에 중독되면서 베스는 체스에 대한 놀라운 재능을 발견하고, 고아원 관리인 '사이빌(빌 캠프)'로부터 체스를 배우면서 그녀는 처음으로 자신이 주도하는 삶을 경험한다. 이후 새로운 가정에 입양되었지만 쉽사리 적응하지 못하던 그녀는 체스 대회에 나가 이름을 알리기 시작함에 따라 안정감을 되찾고, US 오픈에서 경쟁할 정도로 체스에 눈을 뜬 후 남성으로 가득한 프로 체스 세계를 정복하겠다는 목표를 세운다. 그러나 프로 무대에서 경력이 쌓일수록 진통제의 부작용이 심해지고, 더욱 고독해진 결과 그녀는 경쟁에서 손을 떼고 싶은 유혹에 굴복하기 시작한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퀸스 갬빗>의 제목은 체스 게임을 시작하는 여러 전략 중 하나인 '퀸즈 갬빗(Queen's Gambit)'과 동일하다. 백이 폰 하나를 잠시 희생해 유리한 위치를 점하려는 수인 퀸즈 갬빗의 가장 큰 특징은 수없이 분석되었는데도 여전히 가장 뛰어난 체스 선수들인 그랜드 마스터 레벨에서 사용될 정도로 인기가 많다는 점이다. 작중 조력자인 '베니(토머스 브로디생스터)'는 베스에게 변칙보다는 원래 네가 좋아하고 잘 두는 퀸즈 갬빗을 사용하는 게 좋을 것이라고 충고하기도 한다. 바꿔 말해 퀸즈 갬빗은 모두가 예상할 수 있는 선택지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득을 취할 수 있을 정도로 효과적인 오프닝인 것이다. 퀸즈 갬빗의 이러한 전략적 특성은 익숙한 구조와 형식임에도 불구하고 시청자를 사로잡는 데 성공한 드라마의 매력과도 일맥상통한다.
2. 스포츠물의 흥행 공식을 충실히 따르는 <퀸스 갬빗>은 주인공의 천재적인 능력을 눈치채는 평범한 스승부터 조력자가 된 라이벌, 애정을 주지 않는 양아버지까지 각종 클리셰로 가득하다. 주인공인 베스의 특징도 마찬가지다. 사고로 친부모를 잃고 고아원에서 자라며 정신적으로 학대받은 아이가 우연한 계기로 자신의 능력을 깨닫거나, 양아버지에게 무시당하고 학교에서 따돌림당하는 내용은 <스타워즈>나 <해리포터> 같은 작품에서 접할 수 있다. 단지 카리스마, 퇴폐미, 섹시함, 천진함, 냉철함 등 다양한 면모를 자유로이 표현하는 안야 테일러조이의 매력적인 마스크와 안정적인 연기력이 차별성을 확보할 뿐이다.
전체적인 구성도 전형적이다. 총 7개의 에피소드가 다루는 내용을 보면 우선 첫 두 개의 에피소드는 불우한 환경 속에서 체스 능력을 깨닫는 베스의 이야기를 다룬다. 3, 4회는 세상에 자신의 능력을 처음으로 보여준 후 새로운 삶을 즐기는 모습을, 5, 6회에서는 그녀가 보르고프라는 강자에게 패한 후 체스 경기 내외적으로 어떻게 심연에 빠져들어서 어떠한 어려움을 겪는지를 묘사한다. 마지막 에피소드는 자신감을 되찾은 베스가 기어코 세계 최고의 체스 선수가 되면서 끝난다. 이러한 전개는 할리우드의 시나리오 작가인 크리스토프 보글러가 조지프 캠벨의 영웅 신화 연구를 바탕으로 정리한 '영웅의 여정 12단계'와 완벽히 들어맞는다. 따라서 <퀸즈 갬빗>은 일정 수준의 재미를 보장하지만, 동시에 지극히 공식에 충실한 작품이다.
3. 그런데도 <퀸스 갬빗>은 자신만의 차별화된 포인트를 제시하면서 한 번에 정주행 하고 싶은 욕구를 돋우는 데 성공한다. 그 매력은 바로 1950년대 말부터 70년 초중반까지를 다루는 드라마 시대적 배경에서 비롯한다. 이 당시는 미국과 소련을 중심으로 한 냉전이 가장 극심했던 시기로 모든 사회 영역에서 자본주의와 공산주의 간의 총성 없는 전쟁이 펼쳐지고 있었다. 마셜 플랜, 베를린 포위 같은 정치경제적 대립은 물론, 6.25 전쟁 및 베트남 전쟁처럼 물리적인 충돌도 있었으며, 더 나아가 우주에서도 미국과 소련은 경쟁을 이어 나갔다.
드라마는 시대적 배경을 적극적으로 활용한다. 우선 주요 소재인 체스 게임을 단순한 스포츠 이상으로 다루며, 그로부터 강렬한 긴장감을 조성한다. 최종적으로 꺾어야 하는 상대가 소련의 체스 챔피언인 보르고프로 설정된 순간부터 체스 게임은 체제 대결, 정치적 대결의 의미를 지닌다. 모스크바에서 마지막 대회가 열리는 것, 해당 시합장의 분위기가 공산국가 특유의 칙칙한 무채색으로 연출되는 것, 소련 선수와 미국 선수 가릴 것 없이 다 함께 머리를 맞대고 전략을 고안하는 것도 다르지 않다. 덕분에 <퀸스 갬빗> 속 체스 게임은 단순한 스포츠물이 아니라 마치 첩보 영화의 미션 수행 장면을 보는 듯한 같은 비장함과 긴장감을 동시에 선사할 수 있다.
4. 동시에 드라마는 국가적 경쟁이 극에 달한 상황에서 개인의 의사나 행복은 공동체의 이익보다 평가절하될 수밖에 없었던 현실도 꼬집는다. 고아원에 남겨진 아이들의 불우한 성장환경과 아이들을 쉽게 통제하기 위해 남용된 약물은 당시의 시대상을 함축적으로 제시하는 장치다. 약물에 중독되어 뛰어난 체스 능력을 얻었지만 부작용으로 후유증에 시달리는 베스가 어릴 적부터 체스 선수로 훈련받은 소련 선수와 대화하는 장면도 다르지 않다. 사회 전체의 폭력으로 인해 체제와 관계없이 피해자가 나올 수 있음을 지적하면서, 체스 게임에 베스가 겪어야 했던 극심한 고독함과 우울증 같은 개인의 어려움을 투영시키는 것이다.
또한 냉전이 격화되던 해당 시기에 2세대 페미니즘이 태동했음을 고려하면, 이러한 문제의식은 또 다른 측면에서 작품을 읽을 수 있는 기회가 된다. 당시 페미니즘 담론은 가부장제를 비롯한 차별적인 사회구조를 고발하는 데 집중했고, 일부에서는 섹스가 남성 지배의 수단이 아니라 여성을 위한 오락이 될 수 있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이는 드라마가 양아버지의 무관심 때문에 체스 대회에서 생활금을 벌어야 했고, 어머니는 술과 피아노에 의존한 채 어렵게 살아야 했던 그녀의 가정사를 비교적 세심히 표현하는 이유다. 또한 남성으로 가득한 체스판에서 홍일점인 베스의 특출함이 유독 빛나고 그녀가 여러 남성들과 즐기는 사랑 게임이 흥미로운 이유이기도 하다.
더 나아가 드라마는 개인이 경험하는 억압과 특권은 인종과 계층 같은 여러 특성이 중첩되며 상호 작용한다고 주장하는 최근의 페미니즘 흐름도 담아내면서 시간적 배경을 현재에 가까운 방향으로 확장한다. 베스의 친구 '졸린(모지스 잉그럼)'이 대학교에서 법학을 전공하고 일을 하는 데도 흑인이라는 이유로 무시당한다는 에피소드가 대표적이다.
5. 결국 <퀸스 갬빗>은 체스를 통해 한 시대와 그 시대에서 살아가는 한 개인을 조명하되 제목처럼 뻔하지만 뻔하지 않은 능력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스포츠물의 클리셰와 영웅 신화의 구조를 착실히 따르는 전형성에도 불구하고, 체스 그 자체보다 주인공을 중심에 배치해 그녀의 내적의 변화와 성장에 더 초점을 맞춘 결과 고유한 특색을 찾아낸 것이다. 이는 약물에 의존하던 미국의 여성 체스 선수가 모스크바에서 열린 시합에서 친구와 조력자들의 도움을 받아 약물 없이도 승리하는 수를 떠올리는 데 성공한, 작품의 문제의식이 한 데 집약된 바로 그 순간 일어나는 전율을 잊을 수 없는 이유다.
E(Exceeds Expectations 기대 이상)
다음 시즌이 나오면 좋고, 없어도 완벽한 드라마. 체스계의 <스타워즈: 새로운 희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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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회광반조 혹은 부활의 서막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실비'(소피아 디 마티노)가 '계속 존재하는 자'(조너선 메이저스)를 죽인 후, TVA에 돌아온 '로키(톰 히들스턴). 갑작스럽게 생긴 타임슬립 능력 때문에 고생하는 와중에 로키는 TVA가 위기에 빠졌음을 깨닫는다. 시간선이 무한대로 증폭하기 시작한 나머지 시간 직조기가 파괴되기 직전이고, 이를 막지 못하면 모든 우주가 붕괴할 테니까.
이에 '모비우스'(오언 윌슨), TVA 가이드북의 저자 '우로보로스/OB'(키호이콴)와 함께 시간 직조기를 고치기 시작한 로키. 그는 '렌슬레이어'(구구 음바타로)의 방해를 뚫고 계속 존재하는 자의 변종 '빅터 타임리'(조너선 메이저스)를 찾아내며 최선을 다한다. 하지만 그 이후로도 계속해서 실패를 맛본 로키는 마침내 깨닫는다. 운명의 딜레마 속에서 결단을 내릴 때가 됐음을.
<로키 2>, MCU 드라마의 최고점
<완다비전>부터 <로키 2>까지 총 9편. MCU가 디즈니+에서 선보인 드라마 숫자다. 사실 MCU 드라마는 양에 비해 질이 만족스럽지 않았다. 부속물 같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었다. 영화가 메인 스테이지라면, 드라마는 사전 작업에 가까웠다. 실제로 <완다비전>은 <닥터 스트레인지 2>를, <팔콘과 윈터 솔져>는 <캡틴 아메리카 4>와 <썬더볼츠>를, <미즈 마블>과 <시크릿 인베이젼>은 <더 마블스>를 준비하는 단계였다.
자연히 여러 설정을 설명하느라 바빠서 주인공 이야기에 집중할 여력도 없었다. <로키>만 해도 멀티버스 설정을 알리느라 바빠서 로키의 분량을 제대로 챙기지 못했다. 그나마도 로키의 변종 중 하나인 실비와 나눠야 했으니. <변호사 쉬헐크> 역시 헐크와 데어데블에 밀려서 정작 주인공이 스포트라이트를 받지 못했다. 선후배 케미가 돋보인 <호크아이>에서도 바튼보다는 케이트 비숍에게 비중이 쏠렸다.
따라서 <로키 2>에게는 과제 두 개가 있었다. MCU 드라마로서 독립적인 완결성을 증명해야 했다. 로키의 단독 작품으로서는 주인공에게 온전히 집중해 달라는 요구를 충족시켜야 했다. <로키 2>는 해냈다. 2011년부터 10년 넘게 이어진 로키의 성장 서사를 더 바랄 수 없을 만큼 깔끔하고 감동적으로 매듭지었다. 다만 물음표도 여전하다.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 3>처럼 <로키 2>도 MCU의 구원자라는 확신만큼은 주지 못했다.
그 시절 우리가 로키를 사랑한 이유
2011년 <토르: 천둥의 신>에서 첫 선을 보인 이후로 로키는 가장 많은 사랑을 받은 MCU 빌런이었다. 본래 <토르: 다크 월드>에서 죽어야 했지만, 사전 시사회에서 관객이 좀처럼 죽음을 받아들이지 못해 되살려야 했을 정도로. <어벤져스: 인피니티 워>에서도 죽음을 잔인하게 연출하고 몇 차례에 걸쳐 죽었다고 언급한 후에야 관객들은 그의 사망을 수용했다.
관객은 신의 결핍에 공감했다. 그는 버려지고 싶지 않았고, 혼자이고 싶지 않았다. 토르 주위에 친구가 가득한 것을 질투하고, 냉소하며, 비웃는 거만하고 까칠한 신이었다. 하지만 누구보다도 외로웠다. 자기 종족이 아닌 이들 사이에서 길러졌고, 아버지에게서 버려졌으며, 누구보다도 사랑하고 따른 어머니가 죽는 발단을 초래했다. 그렇기에 그는 누구보다도 토르가 자기를 동생으로 인정하길 바랐고, 기꺼이 형의 오른팔이 되었다.
동시에 로키는 자유의지 때문에 누구보다도 인간적이었다. 패배자라는 운명을 이기려는 욕구로 가득했기에 그는 괴로웠다. 아스가르드의 두 번째 왕자이기에 결코 왕이 될 수 없는 2인자의 설움. 어떻게 해도 잘난 형 토르를 이길 수 없었던 패배자의 회한. 장난의 신은 죽을 때가 돼서야 비로소 이길 수 없는 운명을 수용했다. 세상을 재창조하며 신 노릇을 하려는 타노스에게 "너는 결코 신이 될 수 없다"라고 말하면서.
물론 로키는 토르 트릴로지, <어벤져스>, 그리고 <인피니티 워>를 통해 자기 약점과 결점을 모두 극복했다. 바로 이 대목에서 드라마 <로키>의 영리함이 드러난다. <어벤져스: 엔드게임>에 재등장한 2012년도 로키를 활용해 그 시절 팬들이 사랑했던 로키를 재소환해 두 번째 기회를 줬다. 자유의지를 발휘해 다른 방향으로 성장하고, 그에게 주어진 '영광스러운 목적'을 선택할 수 있는 기회를.
장난의 신, 마침내 영광을 맛보다
실비가 계속 존재하는 자를 죽이고, 시간 직조기는 폭증하는 시간선을 버티지 못하며, 모든 시간대가 파괴될 상황. 페이즈 1부터 혼자였고, 항상 자유를 갈망한 로키는 이제 딜레마에 직면한다. 겉으로는 우주와 TVA를 지키려고 과거와 미래를 넘나들며 노력하지만 속내는 달랐다. 실비의 지적대로 로키는 또다시 혼자가 되기 싫었다. 모비우스를 비롯한 TVA 동료가 본래 시간선에서 자기를 잊고 살아갈 때 외롭게 남고 싶지 않았다.
다른 선택지도 있었다. 실비가 계속 존재하는 자를 죽이기 전에 먼저 그녀를 죽이면 신성한 시간선과 TVA를 모두 지킬 수 있었다. 하지만 그러지 못한다. 그녀를 사랑하니까. 다른 모든 시간선의 붕괴도 지켜볼 수 없다. 함께 사라질 모든 자유의지의 소중함을 누구보다도 잘 아니까. 그래서 그는 타협점을 찾는다. 빅터 타임리를 찾아내 시간 직조기 수리를 맡기고, OB의 지식을 모두 전수받아 새 장치를 만든다. 그러나 끝내 실패한다.
이도 저도 할 수 없는 운명의 갈림길에서 로키는 결심한다. 신성한 시간선을 지키기 위해 다른 변종을 죽이고 세계를 파괴하는 대신, 모든 존재의 자유의지를 지켜주기로. 계속 존재하는 자의 역할을 대신해서 모든 시간대에 무한한 가능성을 부여하기로. 언제나 자기를 괴롭힌 자유의지에 몸을 맡겨 자기 결핍을 채워내기로. 운명에 순응하는 대신 자기 이야기를 새롭게 쓰기로.
그렇게 로키는 신성한 시간선과 멀티버스의 종말을 막았다. 비록 혼자 남았지만, 친구와 애인은 지켰다. 장난의 신이 아니라 이야기의 신이 되어 항상 떠들던 '영광스러운 목적'도 이뤘다. <어벤져스>에서 인간에게 모든 자유를 빼앗아 평화적인 질서를 이루겠다던 로키는 모든 이의 자유를 수호하는 신이 되었다. 그렇게 13년에 걸친 그의 성장은 끝났다. 영화가 아닌 드라마로 만나야 하는 게 아쉬울 정도로 감동적인 마무리다.
멀티버스 사가에 뿌리내리다
<로키 2>는 로키의 이야기를 끝맺으면서도 위기의 MCU에 새로운 나무를 심기에 더욱 인상적이다. 특히 영리하게 활용한 신화적인 모티브의 함의가 의미심장하다. 모든 시간선을 손에 쥔 채 왕좌에 앉은 로키. 수많은 시간선이 그를 감싸고 있는 모습은 마치 나무 같다. 북유럽 신화 속 우주의 중심에서 모든 세계를 연결하는 '위그드라실'을 닮았다.
위그드라실 덕분에 멀티버스 사가가 시작 이후 갈피를 못 잡던 MCU는 비로소 안정감을 갖는다. 위그드라실과 신성한 시간선의 차이 덕분에 비로소 큰 그림이 보이기 시작하기 때문. 신성한 시간선은 직선적이다. 멀티버스 전쟁을 막는다는 미명 하에 모든 시간대(branch)의 자유의지를 파괴한 결과다. 위그드라실은 다르다. 온갖 방향으로 뻗어나가는 가지(branch)에는 각 우주의 자유의지가 깃들어 있다.
그 덕분에 MCU는 비로소 멀티버스 사가의 큰 그림을 어렴풋이나마 보여줄 수 있다. <앤트맨 3> 속 사건이 짧게나마 언급되듯이 로키가 살려두고 보호하는 자유의지로 인해 멀티버스 전쟁이 시작될 수 있다는 것. 더 나아가 그 전쟁에서 로키에게 새로운 역할이 주어질 수도 있다는 것. 그러니 <로키 2>는 곱절로 감동적이다. 가장 사랑받은 캐릭터의 아름다운 마무리로 여태 흔들리던 세계관에 단단한 뿌리를 잡아주니까.
회광반조, 아니면 부활의 서막
다만 <로키 2>도 극복 못한 한계가 있다. 우선 결말의 임팩트와는 별개로 평균적인 완성도는 높지 않다. 특히 3화까지는 흡입력이 약하다. 빅터 타임리를 찾고 TVA를 구하려는 내용이 펼쳐지는데, 이 대목의 전개가 다소 느슨하기 때문. 또 20세기 런던이나 시카고 박람회 정도를 제외하면 시즌 1과 달리 공간적 배경이 TVA와 시간 직조기 통제실로 한정적이다. 자연히 타임슬립의 재미가 떨어진다. 이를 만회할 액션씬도 부족하다.
작품 외적으로는 여전히 속 시원한 해답을 내놓지 못했다. MCU는 페이즈 4부터 같은 질문에 시달렸다. "인피니티 사가의 영향력에서 벗어나 멀티버스 사가를 안착시킬 수 있는가?" 여태 답은 '아니요'였다. 토르, 닥터 스트레인지, 앤트맨, 블랙팬서 모두 길을 잃었다. 스파이더맨도 기존 프랜차이즈의 인기에 힘입어 인기를 끌었다.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 3>가 그나마 성공적이었지만, 인피니티 사가의 에필로그에 가까웠다.
<로키 2>도 마찬가지다. 물론 새로운 세계관을 보여준 <로키>는 멀티버스 사가와 무관하지 않다. 그러나 근본적으로는 인피니티 사가에서 가장 사랑받은 캐릭터 중 하나를 빌려온 작품이기도 하다. <가오갤 3>처럼 인피니티 사가의 또 다른 에필로그라 봐도 무방하다. 그렇기에 <로키 2>가 멀티버스 사가의 회광반조일지, 아니면 부활의 서막일지는 아직 물음표다. <가오갤 3>의 다음 주자가 <더 마블스>인 걸 고려하면 더더욱.
Exceeds Expectations 기대 이상
자유 의지로 완성한 영광스러운 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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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선한 얼굴에 감춰둔 악
* <그 남자, 좋은 간호사>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
그 남자, 좋은 간호사 (2022)
감독: 토비아스 린드홀름
출연: 제시카 차스테인, 에디 레드메인
장르: 스릴러
상영시간: 121분
공개일: 2022.10.26
누구보다 친절하고 다정했던 그가 연쇄살인범이라니. 중환자실에서 근무하는 간호사 '에이미(제시카 차스테인)'은 환자들과 그들을 간병하는 가족들에게 언제나 호의적으로 대하는 상냥한 인물이다. 때로는 이러한 친절 때문에 상사로부터 지적을 받기도 한다. 하지만 '에이미'는 남들 몰래 심근경증을 앓고 있었고, 업무 도중 심장에 무리가 올 때면 호흡 곤란을 겪으며 고통스러워 했다. 회복을 위해서는 휴식이 필요했지만 두 딸을 홀로 양육하는 입장에서 일을 놓을 수는 없었다. 더구나 미국의 비싼 의료비를 감당하기 위해서는 의료보험을 받을 수 있도록 일 년의 근무기간을 채워야만 했다.
곤경에 빠진 '에이미' 앞에 한 남자가 따뜻한 구원의 손길을 내민다. 중환자실 야간 근무조로 충원된 남자 간호사 '찰스 컬린(에디 레드메인)'은 처음부터 '에이미'에게 호의를 베풀며 그녀가 홀로 감내해야 했던 일들을 도와주기 시작한다. 아내에게 이혼당한 '찰리(찰스 컬린)'와 홀로 두 딸을 키우는 '에이미'는 처음부터 대화가 잘 통했고, 두 사람은 하나의 콤비처럼 친밀해진다.
'에이미'의 담당 환자인 '애나'는 상태에 호전을 보이던 찰나 갑작스레 사망을 하고, 파크필드 기념병원은 보건부의 요청에 따라 이 사망 사건에 관해 경찰에 수사 요청을 한다. 병원 측은 모든 수사 과정에 성실히 임하는 척하며 최대한 정황을 숨기려 하고, 경찰은 조사 끝에 '찰리'의 비밀에 한 발짝 다가가게 된다. 병원의 위험 관리자가 잠시 자리를 비운 틈에 경찰은 '에이미'로부터 환자에게 주입되서는 안 되는 약물(인슐린)이 투여되었다는 정보를 얻고, '찰리'를 향한 수사망을 점점 좁혀간다.
'에이미'는 철썩 같이 '찰리'를 좋은 간호사라고 믿었다. 환자 가족에게 베푼 작은 친절만으로도 꾸지람을 내뱉는 삭막한 병원 환경에서 자신의 비밀을 숨겨주고, 언제나 망설임 없이 도와주는 '찰리'는 누구보다 따뜻하고 배려심 많은 동료였다. 하지만 '애나'에 이어 또 한 명의 환자 '켈리'의 몸에서도 인슐린이 발견되어 의문사를 하게 되고, 경찰과 '찰리'의 과거 동료 '로리'에게서 그의 과거 행적을 접하게 된 '에이미'는 더 이상 그 스윗한 미소를 받아들일 수 없게 된다. 그녀는 이제 경찰의 편에 서서 수사에 협조를 해야 했다. 언제 의문사를 당할 지 모르는 수많은 환자들, 그리고 아이들과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그 남자, 좋은 간호사>는 연쇄살인범 '찰스 컬린'의 실화를 바탕으로 제작된 영화로 '에디 레드메인'이 연기한 '찰리'는 실제로 15년간 40명에 달하는 환자를 약물로 살해해 종신형을 선고받았다. (시인하지 않은 범죄까지 포함한다면 그가 살해한 환자는 400명 정도일 것이라고 한다.) 왜 그렇게 많은 환자들을 죽인 것인지 작중 명확한 이유가 공개되지는 않았지만 실제 경찰 조사에서는 중환자실의 환자들을 고통으로부터 해방시키기 위해 벌인 짓이라고 밝혔다. 범죄사건의 스케일에 비해서는 제법 궁색한 변명이다.
스윗하고 다정한 간호사의 미소가 섬뜩한 살인마의 조소로 느껴지기까지. '제시카 차스테인'과 '에디 레드메인'의 클로즈업 샷들을 위주로 진행되는 작품은 스릴러의 긴박하고 속도감 있는 전개보다는 정적이고 절제된 연출을 택했지만 긴장감을 잃지는 않는다. 특히 외적으로는 온정적인 모습을 띠면서도 묘한 서늘함을 풍기는 '에디 레드메인'의 섬세한 연기는 평이한 스릴러에 깊은 몰입감을 형성한다. 환자들의 죽음에 무력감을 느끼고, 심장질환 때문에 괴로워 하지만 희망을 잃지 않는 '제시카 차스테인'의 입체적인 연기도 훌륭하다.
다만 무엇을 강조하고 싶은 것인지 이야기가 깔끔하게 정리되지는 않는다. 연쇄살인범을 잡기 위한 수사물인지, 수백 명의 환자를 죽인 범죄자의 심리를 파헤치는 심리극인지, '찰리'의 범죄 행태를 알면서도 묵인한 대형병원에 대한 사회비판극인지, 혹은 친절한 얼굴을 하고 끔찍한 범죄를 일삼는 인물을 통해 소름을 유발하는 스릴러인지 방향성이 분명치 않다. 자극적이지 않은 화면 연출과 스토리 구조는 언제든 환자들이 죽어나갈 수 있는 중환자실 배경의 삭막함과 무력감을 표현하기 좋은 장치였으나 후반부에 갑작스레 '찰리'의 고백으로 마무리되는 촘촘히 쌓아온 긴장을 한 순간에 떨어뜨린다. 배우들의 호연으로 실화를 착실하게 재연하는데만 성공했을 뿐 작품은 굉장히 무난한 스릴러에 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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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월 3주차 최신 씨네뉴스 1호
📮7월 3주 차 최신 영화 소식이 도착했습니다!
루카 구아디아니노 감독이 차기작 《Artificial》 촬영 준비에 본격 돌입했다고 합니다.이 작품은 《틱틱붐》의 앤드류 가필드와 《아노라》의 유라 보리소프가 주연을 맡은 AI업계 코미디로,2023년 샘 알트먼 OpenAI CEO 해임·복직 사태를 모티브 삼아 권력 다툼과 인공지능 산업의 윤리적 딜레마를 유머러스하게 풀어낼 예정입니다.
앤드류 가필드는 ‘샘 알트먼’ 역을, 유라 보리소프는 알트먼 해임을 주도한 ‘일리야 수츠케버’ 역을 맡았고, 약 4천만 달러 규모의 예산으로 올여름 샌프란시스코와 이탈리아에서 로케이션 촬영에 들어가 2026년 극장 개봉을 목표로 하고 있다고 하네요.
그 외 소식으로는 최민식·박해일 주연의 《행복의 나라로》가 하반기 개봉을 계획 중이며, 박찬욱 감독의 신작 《어쩔수가없다》가 예고편 심의 접수를 했는데요, 후반 작업이 거의 끝난 모양입니다. 칸 영화제 출품은 아쉽게 불발되었지만, 베니스 영화제 경쟁부문 초청이 유력하다고 하니 하루빨리 공개되었으면 좋겠네요ㅠㅠ
《행복의 나라로》는 2019년에 제작된 작품인데 올해는 드디어 개봉할수 있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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❶ 조쉬 사프디 신작, 티모시 샬라메 주연 〈마티 수프림〉 비밀 테스트 상영
❷ 최민식x박해일 임상수 감독 신작 <행복의 나라로> 하반기 개봉
❸ 앤드류 가필드, 유라 보리소프 루카 구아다니노 감독 신작 출연 확정
❹ 티나 로메로, 좀비 영화 <Queens of the Dead> 연출
❺ HBO, ‘해리 포터’ 리부트 첫 이미지 공개·영국서 촬영 돌입
❻ 박찬욱 감독 신작 <어쩔수가없다> 예고편 심의 접수, 베니스 영화제 갈까
❼ 엄태화 감독, 김고은x구교환 출연, <미쟝센단편영화제> 트레일러 공개
❽ <웬즈데이> 주연 제나 오르테가, 팀버튼 감독 8월 한국 내한 확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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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디아스포라들의 뿌리 내리기, <미나리>
※ 이 글은 영화 <미나리>의 내용 스포일러를 담고 있습니다.
1. 국경을 넘어 씨를 뿌리는 자들
디아스포라(diaspora)란 '~넘어', '경유'라는 의미의 그리스어 전치사 'dia'와 '씨를 뿌리다'라는 의미의 동사 'spora'가 합쳐져 생긴 말이다. 다시 말해, '국경을 넘어 씨를 뿌리는 자'들을 가리킨다. 이 단어는 본래 이스라엘 밖을 거주하는 유대인들을 가리키는 말이었지만, 시간이 흘러 자신의 태생지를 벗어나 다른 곳에서 뿌리를 내리고 사는 사람들이 늘어나자, 이주민, 난민, 이주노동자, 소수민족 공동체 등을 모두 가리키는 말이 되었다. 그리고 이러한 디아스포라들이 만든 작품들을 두고 디아스포라 문학, 디아스포라 영화 등이라 말한다.
이러한 관점에서 봤을 때, 아이작 정 리의 영화, <미나리>는 한국에서 미국으로 건너가 새로운 삶을 꾸려나가는 이민 1세대들의 이야기를 그렸으니 디아스포라 영화라고 할 수 있겠다. 그러나 여기서 우리가 확실히 해야 하는 것은 이 영화가 단순히 '재미 디아스포라'들만의 이야기를 담고 있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만약 우리가 영화 <미나리>에서 '한국'과 '한국적인' 것에만 초점을 둔다면, 우리는 이 영화가 전하는 많은 메시지들을 놓치게 될 것이다.
분명히 이 영화는 곳곳에서 한국적인 요소들을 탁월하게 드러낸다. 그것은 한국인들에게는 한국적인 공감을, 백인 중심의 할리우드 영화계에 있어서는 '보기 드문' 독자성을 보여준다. 그러나 그뿐이었다면 <미나리>가 이토록 주목받지는 못했을 것이다. 공감받지 못하는 영화는 그 생명력을 오래 유지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미나리>는 누구의 공감을 받았을까? 다름 아니라, 또 다른 '디아스포라'들이다.
그렇다. 디아스포라들의 땅인 미국에서, 이 영화가 각광받는 것은 이상할 일이 없다. 시기는 다르지만 그들은 저마다 고향 땅을 떠나 새로운 삶의 터전에 씨를 뿌리고 뿌리를 내린 사람들이다. 그 과정은 때론 희망적이고, 때론 처절하다. <미나리>의 가족들의 모습은 재미 동포들의 모습이기도 하지만, 지극히 미국 시민적인 모습이기도 하다는 소리다.
디아스포라의 의미를 좀 더 확장해서 생각한다면, 이 이야기는 '고향을 떠나 새로운 삶의 터전으로 나아간' 사람들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바야흐로 2021년. 고향에서 평생을 사는 사람은 이제 그리 많지 않다. 누구나 한 번쯤은 혹독한 타향살이를 경험했고, <미나리>는 그때의 뼈아픈 추억을 떠올리게 한다. 그래서 보편적이다.
<미나리>가 '제이콥'이 낯선 아칸소에 한국 작물의 '씨를 뿌리는' 이야기라는 점을 생각해 보았을 때, 이 이야기는 정말이지, 기가 막힌 디아스포라 영화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2. 새로운 땅에 뿌리내리기
자, 이제 본격적으로 <미나리>의 이야기를 살펴보자. 이 영화는 디아스포라들이 '씨를 뿌리고' '뿌리를 내리고자' 분투하는 이야기이자, 이성과 감성, 현대적 사고와 전통적 사고의 대립에 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여러분은 화분을 분갈이해 본 적이 있는가? 아주 건강한 식물을 아무리 조심스럽게 옮겨도 식물은 본래 있던 화분에서 뿌리째 뽑혀 낯선 흙에 심기는 것을 버거워한다. 그들의 뿌리는 이질적인 흙에 적응하기 위해 분투한다. 잔뜩 움츠러든다. 어떨 때는 잎이 죄 시들기도 한다. 새로운 흙에 뿌리를 내린다는 것은 그만큼 고달프다.
그것은 디아스포라들의 사정도 마찬가지이고, <미나리>의 주인공, 제이콥 가족이라고 예외는 아니다.
"바퀴 달린 집이다!"
그들의 바퀴 달린 집은 언제든지 토네이도에 휩쓸려갈지 모른다. 낯선 아칸소 땅에서 혼란스러워하는 제이콥 가족의 심정과 마찬가지로.
제이콥 가족은 이미 미국에 이민 온 지 10년이 지났다. 그들은 저마다 스스로를 증명해내야 한다는 압박에 시달린다. 제이콥은 그들의 '에덴 정원'을 일구어 성공을 이루어내야 한다. 10년 동안 유능한 병아리 감별사로 일했으나 뾰족하게 가계를 성장시키지 못한 그에게 농장은 마지막 보루이다. 모니카는 심장이 약한 데이빗이 늘 걱정이다. 아칸소의 병원은 집에서 너무 멀리 있고, 그것은 언제 닥칠지 모를 아이의 위험에 대비할 수 없음을 의미한다. 아이의 안전과 가정의 안정을 지키는 것이 그녀의 사명이자 목표다. 앤은 매일 같이 싸우는 부모님과 아픈 남동생을 둔 장녀이다. 그렇기에 그녀 역시 어린아이임에도 불구하고, 또래보다 먼저 성숙해야 한다는 마음의 굴레를 안고 살아간다. 그리고 데이빗은 심장에 구멍이 나 있다. 그는 언제나 연약하고 보호받아야 할 존재로 여겨진다. 아이답게 한창 뛰어 놀 나이지만 그러지 못한다. 아이는 죽음을 두려워한다. '연약한 아이'라는 말을 멍에처럼 쓰고서.
수평아리는 쓸모가 없어. 그래서 폐기되는 거야.
그러니까 쓸모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해.병아리 감별소에서 제이콥은 데이빗에게 이렇게 말한다. 그들의 처지는 병아리 감별소의 병아리들과 다를 것이 없다. 쓸모가 있으면 살아남지만, 쓸모가 없으면 '폐기된다'. 그래서 그들은 더욱 절실해진다. 살아남고 싶기 때문이다. 잘 살아보고 싶기 때문이다.
3. 우물 찾기의 여정
"나는 여기에 가든을 하나 만들 거야"
제이콥은 절실한 만큼 자수성가의 꿈을 키워나간다. 이렇다 할 밑천도 없이 빛으로 시작한 농사일이었지만 그는 이 일에 꽤 자신이 있었다. 해마다 한국에서 쏟아져 들어오는 이민자들만 3만여 명이라고 하니, 한국 농작물을 파는 일은 썩 전망이 좋은 일이었다. 그는 '멍청한 미국 놈들'이나 '약삭빠르고 제 잇속만 챙기는 도시에 사는 한인들'에 의지하지 않고 스스로의 힘으로 아무것도 없는 들을 일구고 우물을 판다. 그는 아들에게 말한다.
한국 사람은 말야, 마음이 아니라 머리로 하는 거야.
그의 이런 생각은 꽤 그럴싸해 보인다. 이웃의 폴은 그만의 독특한 방식으로 기독교에 심취해 있고, 외로움을 달래기 위해 찾아간 교회에서는 무지가 낳은 인종차별 발언을 쉽사리 내뱉는다. 우물을 찾아달라고 사람을 불렀더니 나뭇가지로 물을 찾겠단다. 명석한 제이콥으로서는 기가 찰 수밖에.
그러나 삶은 뛰어난 머리 계산만으로 꾸려 나가지는 것이 아니다. 인간이 살아가기 위해서는 그 이상의 것이 필요하다. 뿌리 없이 위태롭게 흔들리는 제이콥의 가정에는 혼란과 평화의 올리브 가지를 물고 날아올 사람이 필요했고, 그것은 다름 아니라 모니카의 어머니, '순자'다.
4. 할머니 같지 않은 할머니, 순자
어린 데이빗이 보기에 순자는 할머니답지 않은 할머니다. 맛있는 쿠키를 굽기는커녕, 요리는 통 할 줄 모르고, 텔레비전이나 보면서 화투 치는 것을 낙으로 삼는다. 남자아이인 자기를 '프리티 보이'라고 하질 않나, 밤새 오줌을 좀 쌌기로서니 고추가 망가졌다고 '딩동 브로큰'이라고 하질 않나. 그녀가 그에게 건네는 것은 달콤한 케이크가 아니라 쓰고 고약하기 짝이 없는 한약이다.
데이빗은 생각한다. 이런 할머니는 차라리 없는 것이 낫다고. 정도의 차이가 좀 있을 뿐이지, 그 사정은 앤도 마찬가지다. 미국에 자란 두 아이에게 지극히 한국적인 '순자'는 너무나 낯설다. 이 할머니라는 존재는 당최 납득이 안 간다. 그래서 처절하게 저항한다. 나는 할머니가 싫어요!
"아팠을 텐데도 잘 참아냈구나. 스트롱 보이네, 스트롱 보이!"
앤과 데이빗에게 순자는 '틀'을 깨는 사람이다. 미국 할머니라면 하지 않을 법한 일을 스스럼없이 하고, 엄마(모니카)라면 하지 말라고 했을 일을 해도 좋다고 한다. 합리적이지 않다. 전통적이며 감성적이다. 머리로 생각하는 일에 익숙한 그들에게 순자의 모든 행각은 낯설고 불편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순자에게 물들어 간다.
순자는 '아이들은 원래 아프면서 크는 거'라며 심장이 아픈 데이빗에게 뛰어도 좋다고 말한다. 만약 뛰기 힘들다면 걸어가자고 한다. 다친 아이에게 너는 연약하고 아픈 아이라고 하지 않고, 그 아픔을 이겨냈으니 강한 아이라고 한다. 그녀에게 데이빗은 언제든 죽을지 모르는, '쓸모없는' 아이가 아니라, 더없이 착하고 강한 아이다.
그녀가 보내는 무조건적인 사랑과 지지는 이성과 합리로는 이해될 수 없다. 그러나 데이빗은 그녀의 비합리적인 믿음을 받아들이면서 더욱 견고해진다. '스트롱 보이'이라는 순자의 말은 주술처럼 힘을 입어 데이빗을 강하게 만든다.
제이콥 가족은 순자의 등장을 시작으로 서서히 깨달아 나간다. 현대적인/도시적인 합리주의에 대한 그들의 견고한 믿음이 반드시 옳은 것은 아니라는 것을. 어느 땅에든 사람이 뿌리내리기 위해서는 다른 사람의 도움이 필요하다는 것을. 그들은 광신도처럼 보이는 폴에게서 숭고한 지지를 얻고, 안 맞는 옷 같던 교회에서 새로운 친구를 사귄다. 제이콥은 농작물 판매처를 찾았고, 데이빗은 심장 건강이 더 좋아졌다. 이대로만 간다면 그들의 삶은 좋을 것만 같다.
4. 인생은 새옹지마라
운명의 장난일까. 제이콥 가족이 꿈에 그리던 '온전한 자립'에 한 발짝 내디딜 때마다, 운명의 주사위는 그들을 두 발짝 뒤로 물러서게 하는 것 같다. 그렇게나 열심히 살았는데 세상은 야속하기만 하다. 데이빗의 몸이 좋아졌는데 순자는 뇌졸중에 걸려 몸을 가누지 못한다. 농작물이 훌륭히 자랐으나 부부간의 감정의 골도 자라났다. 기껏 한국 농작물을 팔 거래처를 찾았는데, 바로 그날, 자식같이 기른 농작물들은 한 번의 화재로 불 타 사라진다.
영화는 단순한 해피엔딩을 보여주지 않는다. 좋은 일이 있으면 나쁜 일이 생기고, 나쁜 일이 있으면 그 너머에는 다시 좋은 일이 있다. 흔히 아메리칸드림하면 떠올리는 성공 신화와는 썩 일치하지 않는다. 그러나 이 파도치는 삶의 곡선 속에서 관객들은 제이콥 가족의 삶이 마냥 불행하지도 않을 것이라는 것을 안다. 불행의 순간은 언제나 닥쳐오지만 그 너머에는 다시 좋은 일이 있을 것이므로.
뱀이 나온다는 수풀 사이에 발견한 샘에서는 순자가 한국 땅에서 가져온 미나리 씨앗이 싹을 틔우고 뿌리를 내려 밭을 이루었다. 제이콥은 거들떠보지도 않던 그 미나리. 그토록 근사하게 자란 농작물들이 불타 사라진 후 남은 것도 바로 그 미나리였다. 제이콥이 데이빗과 미나리를 캐러 가며 '할머니가 참 좋은 자리를 찾으셨네.'라고 말하는 장면은 그가 그간 품고 있던 고집을 버리고 그가 '비합리'적인 것으로 생각한 세계를 수용하였으며, 그로 말미암아 한 발짝 더 성장할 것임을 알게 해 준다.
5. 시련의 극복을 통한 성장 서사
다시 말하자면 이 한 편의 영화는 지독한 시련을 통해 성장통을 겪는 사람들의 이야기이다. 동시에 구원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시련은 뼈 아프나 사람을 성장하게 한다. 혹은, 성장을 확인하게 한다. 제이콥은 애지중지 기른 작물들이 모두 불타는 그 헛간에서 비로소 모니카를 구한다. 자식 부부의 한 해 수확을 모두 불타게 한 자신을 자책하여 물가로 향하는 순자를 불러 세운 것은 다름 아닌 앤과 데이빗이다. '할머니 가지 마세요. 우리랑 같이 집에 가요.' 심장이 아파 뛰지 못하던 데이빗은 할머니를 향해 달려간다. 손을 내민다. 심장이 아파 뛰지 못한다던 자신에게 할머니 순자가 기꺼이 손을 내밀어줬던 것처럼.
이러한 일련의 서사들을 통해 '쓸모를 증명하고자' 했던 제이콥 가족은 '세상에 쓸모없는 것은 없으며', '쓸모 있지 않아도 괜찮다'는 것을 배운다.
그들의 뿌리내리기는 여전히 때론 즐겁고, 때론 고달플 것이다. 그러나 예전만큼 처절하거나 고독하지는 않으리라. 판도라의 상자에 마지막 남은 희망처럼 그들의 삶 속에는 푸른 미나리가 밭을 이루고 있을 것이므로.
+) 알면 재미있는 기독교적 관람 포인트
1. 제이콥은 히브리어로는 '야곱'이다. 약삭빠른 야곱은 신의 사자와 씨름을 하여 신의 인도와 번영된 삶(땅)을 약속받았다.
2. 데이빗은 히브리어로 '다윗'이다. 소년 다윗은 골리앗이라는 거인과 싸워 이겼고 이후 이스라엘의 왕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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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과함께> 시리즈 속 지친 삶을 위로하는 명대사 공개!
출처 : 네이버 영화
영화 <신과함께- 죄와 벌>과, 영화 <신과함께-인과 연>이 1월 재개봉되며 영화 속 가슴을 울리는 명대사로 다시 한번 관객들에게 따뜻한 위로를 전해주고 있다.
주호민 작가의 인기 동명 웹툰을 원작으로 한 <신과함께> 시리즈는 저승에서 온 망자가 그를 안내하는 저승 삼차사와 함께 49일 동안 7개의 지옥에서 재판을 받으며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린 <신과함께-죄와 벌>과 환생이 약속된 마지막 49번째 재판을 앞둔 저승 삼차사가 그들의 천 년 전 과거를 기억하는 성주신을 만나 이승과 저승, 과거를 넘나들며 잃어버린 비밀의 연을 찾아가는 이야기를 그린 <신과함께-인과 연> 2편으로 각각 1,440만 명, 1,227만 명의 관객을 모으며, 한국 영화 사상 최초로 시리즈 모두 천만 영화 반열에 올랐다. 많은 사랑을 받은 영화 <신과함께> 시리즈는 3편과 4편 제작 소식을 알리기도 해 사람들에게 엄청난 관심을 받았다.
이처럼 신기록과 완성도 높은 CG를 자랑하는 영화 <신과함께>의 후속편을 기대하며 재개봉한 영화 <신과함께> 주인공들의 다양한 메시지를 살펴보고자 한다
출처 : 네이버 영화
"지나간 일에 새로운 눈물을 낭비 하지 말자" - 수홍
영화 <신과함께> 시리즈에서 ‘수홍’ 역을 맡아 뛰어난 연기력으로 뜨거운 호평을 받은 김동욱 배우는 “지나간 일에 새로운 눈물을 낭비하지 말자”라는 명대사를 통해 관객들에게 진한 울림을 선사했다. 극 중 자신의 형 ‘자홍’을 먼저 떠나 보낸 후 원망과 그리움이 사무친 마음을 표현한 이 대사는, 많은 관객들의 기억 속 삶에 위로가 되는 명대사로 남아있다.
출처 : 네이버 영화
"아무리 고통스러운 기억도, 지금 김자홍 씨처럼 저승 와서 말할 때 보면 다 예쁜 추억이 되어있어요" – 덕춘
러블리한 매력과 섬세한 연기력으로 ‘덕춘’역을 완벽히 소화한 김향기 배우의 아름다운 명대사도 돋보인다. ‘덕춘’의 대사 “아무리 고통스러운 기억도 지금 김자홍 씨처럼 저승 와서 말할 때 보면 다 예쁜 추억이 되어있어요”는 관객들을 긍정적인 사고로 가득 채워준다. 특히, 코로나19로 인해 일상에 많은 변화를 겪고 있는 요즘, 힘을 북돋아주는 덕춘의 명대사는 더욱 의미 있게 다가온다.
출처 : 네이버 영화
"나쁜 인간은 없다는거, 나쁜 상황이 있는거지" – 성주신
저승차사 출신의 집을 지키는 ‘성주신’역할을 맡은 마동석 배우도 주옥 같은 명대사로 수 많은 관객들의 공감을 자아냈다. 강한 인상의 ‘성주신’이 나지막이 전하는 속 깊은 대사 “나쁜 인간은 없다는거, 나쁜 상황이 있는거지”는 삭막한 세상 속 타인의 상황을 생각해보는 계기를 마련해준다.
영화 <신과함께> 3편 촬영은 올해 시작될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지난 1월 7일과 21일 재개봉하여 지금 전국 극장에서 만나볼 수 있는 영화 <신과함께>시리즈로 코로나19 장기화로 지친 우리의 마음을 위로 받아보는 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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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너의 이름은? 정재헌!! ?? 리뷰내내 꿀보이스로 녹여버렸다,, 현직 성우의 애니메이션 리뷰가 궁금하다면? Click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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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6
씨네마사지의 첫 게스트 ?? 정재헌 성우님과 함께하는 너의이름은 리뷰
출연
황보 라이언 정재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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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동석의 오류
최신 한국 영화를 리뷰하고 추천합니다
영화 '시동'을 소개합니다
여러분의 구독과 좋아요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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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가 슈라 원칙
1. 독자를 실망시키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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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en he has tested me,
I will come forth as gold.
Job 2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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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버트론 행성의 새로운 시작 트랜스포머 🤖, 롤 아웃! [트랜스포머 ONE] 2차 예고편 공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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