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wr2021-04-13 15:51:52
장르가 된 멜리사 맥카시, 마침내 슈퍼히어로 되다
넷플릭스 영화 〈썬더 포스〉(2021)
멜리사 맥카시는 〈스파이〉(2015), 〈고스트버스터즈〉(2016), 〈해피타임 스파이〉(2018)에서 비슷한 배역을 연기해 왔다. 터프하고 강인하며 우스꽝스럽지만 결국 우당탕탕 모든 걸 해결하는 여전사. 하지만 이 반복은 질리지 않는다. 그녀가 상징하는 캐릭터 설정 자체가 풍자의 역할을 하며 할리우드의 정형화된 관습과 캐릭터를 비틀기 때문이다. 멜리사 맥카시가 하나의 장르가 될 수 있었던 이유다.
멜리사 맥카시는 〈스파이〉에서는 CIA 현장요원으로 활동했고, 〈고스트버스터즈〉에서는 유령 사냥꾼으로 변신했으며, 〈해피타임 스파이〉에서는 형사로 분해 소수자의 상징인 ‘퍼펫(인형)’과 진한 우정을 나눴다. 그녀의 도전에는 늘 ‘뚱뚱한 백인 여자’가 마주할 만한 어려움이 발생하지만 그럴 때마다 그녀는 유쾌함을 무기로 이를 돌파해 나갔다. 그리고 넷플릭스 영화 〈썬더 포스〉에서 그녀는 마침내 슈퍼히어로가 되었다.
〈썬더 포스〉 스틸컷 ⓒ넷플릭스
여성 영웅, 흑인 영웅, 성소수자 영웅 등을 주인공으로 한 히어로 무비가 나온다는 소식을 들을 때마다 과연 그런 영화가 얼마나 큰 영향력을 발휘할까 의구심이 들기도 한다. 하지만 그럴 때마다 멜리사 맥카시를 떠올린다. 그녀는 정형화된 장르의 주인공을 바꾸는 것만으로도 많은 게 달라질 수 있음을 보여줬다. 주인공을 바꾸는 일이 문화적 헤게모니를 교체하는 일의 전부일 순 없지만 좋은 시작은 될 수 있음을 증명한 것이다.
그러나 바로 이런 관점에서, 영화 〈썬더 포스〉는 많은 아쉬움을 남긴다. 영화는 두 여성 히어로가 시카고를 위협하는 빌런들과 맞서 싸우는 과정을 좇는다. 하지만 아쉽게도 잘 만든 영화는 아니다. 전반적으로 완성도가 떨어진다. 멜리사 맥카시와 투톱을 맡은 옥타비아 스펜서의 화면 장악력도 다소 아쉽다.
멜리사 맥카시 혼자 고군분투하며 영화의 빈틈을 메꾸지만 어딘가 헐거워 보이는 건 어쩔 수 없다. ‘뚱뚱하고 유쾌한 여성 파이터 멜리사 맥카시’라는 장르를 이어가려면 조금 더 완성도 있는 영화가 필요하다. 멜리사 맥카시가 자신이 쌓아온 커리어와 이미지에만 의존하지 않는 ‘좋은 영화’를 다음 영화로 선택했으면 좋겠다.
Relative cont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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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작과 끝이 무한히 반복되는, 깨지 못할 한때의 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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퀴어 (Queer, 2025)
시작과 끝이 무한히 반복되는, 깨지 못할 한때의 꿈
개봉일: 2025.06.20.
관람등급: 청소년 관람불가
장르: 드라마
러닝타임: 137분
감독: 루카 구아다니노
출연: 다니엘 크레이그, 드류 스타키, 레슬리 맨빌, 제이슨 슈왈츠먼, 엔히 자가
개인적인 평점: 3.5 / 5
쿠키 영상: 없음
나에게 루카 구아다니노 감독의 영화는 딱 이 한 문장으로 정립되어 있다. ‘펄떡이는 것들로 그득한, 살아있는 영화’. 들끓는 욕망과 한순간 솟아오르는 치기, 따가운 햇살, 뜨끈한 피, 생생한 피부의 촉감. 온갖 감각이 넘치는 그의 영화는 매번 내 둔해진 감각을 새롭게 재생시킨다.
이 모든 감각들의 시작점엔 바로 ‘사랑’이 있다. 루카 구아다니노 감독이 그리는 사랑은 맹렬하고 솔직하기에 아름다우면서 동시에 추하고 외롭다. 개인적으론 이러한 특징이 가장 잘 드러나는 영화가 <콜 미 바이 유어 네임>이라고 생각하며 당연하게도 나의 루카 구아다니노 최애작 또한 <콜 미 바이 유어 네임>이다.
루카 구아다니노 감독은 <콜 미 바이 유어 네임> 이후로도 온전한 소유를 목적으로 한 카니발리즘 로맨스 <본즈 앤 올>, 세 주인공 사이의 다자간 사랑의 랠리 <챌린저스>처럼 여러 독특한 사랑을 주제로 한 영화들을 쉼 없이 발표했고 나는 그때마다 그의 뜨거운 욕망과 변태력에 큰 박수를 보내곤 했다. 하지만 마음 한 편엔 ‘<콜 미 바이 유어 네임> 같은 영화.. 어떻게 한 번 더 안 되는 걸까…’하는 그리움이 자리하고 있었다.
그래서 <퀴어>를 정말 오래 기다렸다, <콜 미 바이 유어 네임>과 닮은 구석이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을 가진 채. 그런데 영화가 끝나자마자 들었던 생각은 이거였다. “뭐지? 이건 또 봐야 알 것 같은데?”
<퀴어>는 언뜻 <콜 미 바이 유어 네임>과 닮아있는 듯하면서도 매우 다르다. 본격적으로 영화 <퀴어>에 대해 이야기하기 전, <콜 미 바이 유어 네임> 같은 느낌을 기대하고 있는 감독의 팬들에겐 이렇게 말하고 싶다. <콜 미 바이 유어 네임>이 언제 떠올려도 아름다울 한여름 밤의 꿈이라면 <퀴어>는 마음을 걸어 잠가도 비집고 들어오는 칼바람 같은 꿈이라고. <콜 미 바이 유어 네임>이 생생한 감각들을 떠밀어주는 영화라면 <퀴어>는 스스로 인물의 감각을 더듬어내야 하는 버석한 영화에 가깝다고.
<퀴어>는 동명 소설 [퀴어]를 원작으로 만들어진 영화다. 기존 질서에 반항하고 기행을 일삼았던 비트 세대의 주요 인물이었던 원작자 ‘윌리엄 버로스’는 다이내믹했던 자신의 생을 그대로 투영한 문학 작품들을 주로 발표했다. [퀴어]는 그중 한 편으로, 약물 금단증상에 시달리던 그가 멕시코에서 한 청년을 만나며 겪은 경험을 담은 책이다. 영화의 전체적인 줄기는 원작과 크게 다르지 않지만 영화 <퀴어>는 원작에 비해 주인공의 감정이 비교적 아름답게 표현되었고, 이야기 사이 공백이 느껴질 때도 있지만 의식의 흐름대로 흘러갔던 원작에 비해 갈피가 잡혀있는 편이다. 하지만 원작과 영화 모두, 한 번 놓치면 길을 잃어버리기 쉬운 어지러운 작품이니 약간의 주의가 필요하다. (대략 피곤한 날 관람은 피하시라는 말이다.)
영화 <퀴어>의 주인공인 작가 ‘리’는 마약 단속을 피해 미국에서 멕시코시티로 이주한다. 그는 모아둔 돈으로 방탕한 생활을 즐기며 인생을 함께할 짝을 찾는 중이다. 그런데 곱게 말해 ‘짝을 찾는다’고 표현한 거지, 그는 사실 아름다운 청년들에게 열심히 추파를 던지는 중이다. 하지만 리에게도 명확한 기준이 하나 있다. 그건 바로 상대방이 자신과 같은 퀴어여야 한다는 것.
하지만 리와 같은 퀴어, 그것도 진심으로 사랑을 나눌 퀴어를 찾는 건 쉽지 않아 보인다. 처음 등장하는 앳된 청년은 퀴어가 아닌 것처럼 보이고 퀴어임이 확실해 정사를 나눈 청년은 육체적인 사랑. 그 이상을 원치 않는 것처럼 보인다. 거기에 더해 퀴어가 아닌 이들은 리를 대놓고 괄시하니 리는 항상 사랑을 하면서도 외롭다.
그러던 어느 날, 열기 가득한 길거리. 리는 수많은 인파 너머로 지나가는 유진을 보고 첫눈에 반한다. 그는 모든 걸 내려놓고 노골적인 표현과 거짓말까지 동원하며 유진의 옆자리를 사수한다. 리는 지금껏 다른 청년들에겐 퀴어인지, 퀴어가 아닌지. 말과 몸을 동원해 거침없이 질문해왔지만 유진에겐 같은 질문을 던지지 못한다.
그렇게 설레면서도 풀리지 않는 의문으로 가득한 날들이 지나가고 리는 온갖 노력 끝에 유진과 육체적 관계를 맺는다. 몸을 맞췄으니 이제 마음을 맞춰갈 순서가 아닐까. 리는 기대감에 부풀어 유진을 다시 찾는다. 하지만 유진의 태도는 점점 미스터리하게 변하고 유진을 향한 리의 갈망과 애정. 외로움은 쉼 없이 몸집을 키운다. 그리고 그것에 짓눌린 리는 유진의 사랑을 얻기 위해 또 다른 것에 집착하게 된다.
- 아래 내용부터 영화의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Queers가 아닌 Queer
영화의 중심인물은 리와 유진, 두 사람이고 영화의 사건 또한 두 사람의 관계를 중심에 두고 이어진다. 하지만 이 영화의 제목은 ‘퀴어들(Queers)’이 아닌 ‘퀴어(Queer)’다. 그 이유는 리의 이야기 속에서 동성인 상대를 진심으로 사랑한 퀴어는 리뿐이기 때문이다.
극 중에서 유진의 신체, 행동, 젊음은 리의 시선에 의해 끊임없이 대상화되지만 리의 모습은 그렇게 표현되지 않는다. 리는 유진에게 욕망을 느꼈지만 유진은 리에게 진짜 욕망을 느끼지 않았기 때문이다. 유진이 퀴어에 대한 관심을 보이기 시작한 후, 리는 유진이 퀴어일 수도 있다는 기대감을 갖고 그의 몸에 손을 얹는다. 유진은 리의 손길을 거부하지 않고 함께 밤을 보낸다. 리는 이를 유진이 퀴어이고 자신을 허락했다는 의미로 받아들인다. 하지만 유진은 리와 같은 감정을 갖고 있지 않았다. 유진을 향한 리의 마음이 사랑이라면 리를 향한 유진의 마음은 호기심에 가깝다. 유진에게 리는 ‘가보지 않은 다른 동네 퀴어바’ 처럼 그저 궁금한 것. 딱 그 정도인 거다.
유진은 리와의 관계를, 퀴어와의 관계를 체험한다. 그는 리와 나란히 앉아 함께 술을 마시고, 같은 메뉴로 저녁 식사를 하고, 같은 영화를 보며 발을 맞춘다. 하지만 리가 그토록 바랐던 순간이 지나간 후, 유진의 호기심은 급속도로 사라진다. 유진은 첫 정사 이후 리가 여운에 빠져있는 사이 리의 성기에 닿았던 손을 리의 셔츠에 닦거나 키스를 나눈 후 입술을 닦거나, 더 이상 리와 같은 메뉴를 먹지 않는 -첫 정사 이후 장면들에선 리 앞엔 술. 유진 앞엔 콜라가 놓여있다.- 등 거리를 두는 행동을 보인다. 금전으로 얽힌 2장 이후의 관계는 예를 들 필요도 없을 만큼 한눈에 봐도 건조하고 일방적으로 표현된다. 그리고 실제인지 리의 환상인지 경계가 모호하긴 하지만 영화의 끝에 가선 유진이 ‘저는 퀴어가 아니’라 말하는 장면도 등장한다.
사실 이 두 사람의 관계는 첫 정사 전, 저녁 식사 장면에서부터 예견된 것이었다. 리가 식사를 미뤄두고 진지하게 퀴어의 인생을 이야기하는 동안 유진은 리의 말에 집중하지 않고 게걸스레 식사를 이어간다. 이 때 카메라가 식당 밖에서 두 사람을 비추는 컷에선 유진이 앉아있는 쪽은 벽으로 가려져 있고 리가 앉은 쪽만 유리로 되어있어 마치 리가 앞에 앉은 유진이 아닌 두꺼운 벽에 대고 홀로 이야기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리는 영화 내내 통할 수 없는 벽, 유진을 향해 열심히 사랑을 이야기했고 또 자신과 같길 바랐다. 하지만 유진에게 리와 리의 사랑은 구토를 불러오는 술 같은 존재였다. 유진은 리의 집으로 가던 날 밤. 리에게 맞춰 술을 마셨고 마지막으로 집에서 리가 직접 따라준 술을 한 잔 마시고는 결국 토를 하고 만다. 리는 ‘술은 별로 안 마시지 않았나?’라며 유진을 걱정함과 동시에 약간의 의아함을 가진 채 화장실 밖에서 그를 기다린다. 리는 아무리 술을 많이 마셔도, 아무리 유진을 사랑하고 또 사랑해도 만족하지 못하지만 유진은 리가 건넨 술과 사랑을 구역질과 함께 뱉어낸다. 그렇게 유진이 사랑을 뱉어내는 동안 리는 유진이 그어놓은 선 밖에서 괴로워할 뿐이다.
무한히 새로 시작되는 잘못된 사랑과 그것을 향한 진심
리는 유진을 위해 자신이 그어놨던 선을 하나 둘 넘는다. 리는 첫 번째로 만난 청년에겐 “너 퀴어 아니지?”라고 물으며 그를 추궁하고 청년이 거짓말을 한 것이라 판단한 후 자리를 뜬다. 두 번째로 만난 청년과 밤을 보낸 후엔 돈을 줘서라도 그를 잡을까 고민하다가 이내 지갑을 닫는다. 그런데 유진을 처음 본 후, 리는 거짓말을 쳐 유진을 십아호이에 불러내고, 하룻밤을 보낸 남자들에게 집을 털렸다는 친구 조에게 “털리기 싫었으면 집이 아닌 모텔로 가지.”라고 말하면서도 자신은 유진을 집으로 초대한다. 그리고 유진에겐 지갑을 여는 걸로도 모자라 십아호이의 일부를 인수하기까지 한다. 더 나아가 리는 텔레파시를 가능하게 해준다는 식물, 야헤에 집착하고 다시 약에 손을 대며 또 다른 선을 넘게 되는데 이 모든 건 유진과 얽힌 사랑, 외로움이라는 감정 때문이다.
리는 선을 넘으면서까지 진심으로 사랑을 쟁취하려 했지만 안타깝게도 상대를 잘못 골라도 너무 잘못 골랐다. 리와 유진이 여행을 떠나기 전, 1장의 후반부에서 리는 메리와 함께 있는 유진에게 찾아가 돈을 줄 테니 자신과 함께 남미로 떠날 것을 제안한다. 하지만 유진은 그의 제안에 이렇다 할 반응을 하지 않는다. 그때 메리가 두 사람 쪽으로 다가와 리와 유진 사이에 있는 체스판에 손을 뻗는다. 그리고 조금 전에 리가 손댔던 체스 말을 옮기며 “이거 여기 아니잖아.”라고 말한다. 둘 곳이 아닌, 두면 안 되는 칸에 자리를 잡은 체스 말처럼 리는 ‘퀴어를 진심으로 사랑하지 않는’ 유진의 세계에 잘못 발을 들여버린 것이다.
하지만 리는 유진을 포기하지도, 그를 죽이지도, 자신을 죽이지도 못한다. 유진을 미워하고 또 사랑하기 때문에. 리가 마지막으로 본 환상 속엔 방 안에 누워있는 유진과 ∞ 모양의 지네 목걸이와 자신의 꼬리를 물고 있는 빨간 뱀이 나온다. 이 뱀은 꼬리를 삼키는 자 ‘우로보로스’를 떠오르게 하는데, 이는 ‘시작이 곧 끝’이라는 의미와 영원성을 상징한다고 한다.
리의 사랑은 이 뱀과 지네처럼 시작과 끝이 영원히 반복되는 ∞ 모양을 따라 움직인다. 리는 지독한 외로움에 벌벌 떨다가도 무심히 얹어진 유진의 발에 안정감을 느끼고 환상 속에서 유진을 죽이고도 그를 껴안고 눈물을 흘린다. 사랑하기에 미치도록 증오스럽고 사랑하기에 감히 죽일 수도 없었던 외로운 그의 사랑은 매일같이 부서졌다가 또 새롭게 시작된다. 심지어는 숨을 거두는 날까지도 말이다.
리는 침대 위에서 죽음을 맞이하며 유진과 함께했던 순간을 떠올린다. 왼쪽으로 돌아누운 리의 발 위로 같은 방향으로 누운 유진의 발이 겹쳐지고 리는 마지막 숨을 뱉는다. 과거 현실에선 벌벌 떨면서 허락을 받고 나서야 겨우 자신을 등지고 있는 유진과 발을 한 번 겹칠 수 있었는데.. 리는 혼자만의 상상 속에서나마 잠시 유진과 자신의 자리를 바꿔본다.
사랑을 지켜줄 것이라 믿었던 여행의 끝
리에게 남미 여행은 사랑을 지킬 마지막 기회였기에 그는 여행에 최선을 다했고 죽을 때까지 이 여행을 잊지 못한다. 반면 유진에게 이 여행은 당시 하고 있었던 신문사 아르바이트와 다름없는 그저 돈을 벌기 위한 일 정도로 인식된다. 그래서인지 유진은 여행이 마무리되자마자 완전히 사라져버린다.
이러한 여행의 결말은 1장에서 두 사람이 영화관에서 함께 봤던 영화 <오르페>의 흐름과 비슷하다. <오르페>는 장 콕토의 영화로 오르페우스와 에우리디케 신화를 재해석한 작품이다. 신화를 간단하게 요약하자면 이렇다. 사랑에 빠진 오르페우스과 에우리디케가 결혼을 한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에우리디케가 뱀에 물려 죽는다. 슬픔에 빠진 오르페우스는 저승의 신에게 아내를 돌려달라 간청해 저승에서 에우리디케를 데려올 단 한 번의 기회를 얻는다. 하지만 오르페우스는 앞서 신이 걸었던 조건을 잊고 실수를 저지르고 또 한 번 에우리디케를 잃는다. 유진을 얻었다 잃고, 다시 그를 얻기 위해 야헤가 있는 정글로 뛰어들었지만 영영 그를 다시 볼 수 없게 된 리의 이야기는 오르페우스 신화와 닮아있다.
의식을 한 겹 깨부수고 심장을 토하고도 이룰 수 없었던 사랑은 파편화된 감정만을 남긴다. 혼자 남은 남자, 리는 그 파편들을 끌어안는다. 그것들은 리의 마음을 날카롭게 찌르지만 그는 절대로 그것을 포기하지 못한다. 정말 끝 맛까지 참 쓰디쓴 드라마다.
* 본 리뷰는 씨네랩 크리에이터로서 시사회 참석 후 작성하였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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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디제잉에 푹 빠진 어느 한 여자가 시련을 겪고 행복해지는 영화!
윤이나는 한때 DJ 음악을 했지만 지금은 음악을 그만두고 콜센터 회사를 다닌다. 사실 윤이나의 어미니인 신애가 기독교에 푹 빠진 광신도였기에 윤이나에게 음악을 하지 말라고 권유까지 했다. 하지만 예전에 음악을 같이 했고 지금은 유명해진 DJ 크릭(민기)을 클럽 앞에서 만나 디제잉을 권유받는다. 클럽에 가서 디제잉을 하게 된 윤이나는 DJ크릭(민기)의 지인 중에 유명 레이블 소속사 캐스팅 매니저에게도 초대도 받지만 그녀가 가장 관심이 있는 건 벽보에 붙어있는 베를린 DJ 오디션이다. 어머니인 신애의 반대를 무릅쓰고 베를린에 갈 수 있는 오디션을 위해 다시 DJ 음악을 시작한다. 과연 윤이나는 베를린 DJ 오디션에 합격할 수 있을까?
디제잉의 진수를 보여주는
윤이나의 힘!
윤이나는 사실 어머니와 사이가 안 좋았고 자신이 만든 곡을 민기가 베껴 쓴다. 그리고 그녀에게는 일찍 낳은 아이가 있다.
삶이 힘들고 고달파도 기회는 있는 걸까?
사실은 윤이나에게 일찍 낳은 아이가 있었고 키울 수가 없어서 위탁 가정에게 맡겼다. 하지만 위탁가정도 사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어서 윤이나가 낳은 아이를 입양 보내려고 한다. 어머니인 신애는 기독교에 완전히 빠졌고 매일을 불안하게 사느라 윤이나에게 도움이 되지 못했다. 그래서 부모인 신애가 DJ 음악을 사탄의 음악이라고 볼 정도로 과격한 말까지 하기도 하고 너무 불안하기 때문에 일어나지도 않는 일들을 미리 걱정해서 집안일은 하지 않고 네팔에 지진이 났다는 TV 소식을 보고 지하 창고까지 직접 만든다. 또한 네팔에서 온 여자를 교회에서 만나지만 한국말을 잘 못한다며 온갖 심부름을 시키고 하인처럼 부려먹어서 화를 참지 못한 네팔 여자에게 크게 다치게 된다. 이런 어려운 시련 속에서도 윤이나는 자신의 꿈을 다시 키우는데 멈추지 않았다. 자신과 같이 음악을 했던 준석에게 클럽이 안된다는 넋두리를 듣자 클럽에서 디제잉도 하며 편의점 알바를 하면서까지 클럽 전단지를 만들어 홍보하는 노력까지 한다. 그런데 자신에게 찾아온 어려운 시련들이 닥친다. 위탁가정에서는 윤이나의 아이를 교회 지인에게 입양시키겠다는 말을 듣기도 하며 민기가 자신의 음악을 표절하여 인기를 얻었다는 것도 알게 된다. 그렇게 희망이 사라질 즘에 베를린으로 가기 위해 남다른 DJ 음악 실력을 선보이는 윤이나는 간절함을 느낀다. 아마도 이 영화가 전해주고 싶은 메세지는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간절함이 있다면 언젠가 좋은 일이 일이 생길 수 있다는 메세지를 전해주는 것 같다.
수많은 시련 속에서 나를 이끄는 힘은 오직 내게 있는 것이다.
하니엘의 영화 명언집
※ 씨네랩의 크리에이터로서 돌비 시네마 시사회에 초대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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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행복해지는 과정을 설명하는 데 걸리는 시간 318분
행복이 뭘까? 사랑하는 사람들이랑 같이 있으면 행복해질까? 아니면 맛있는 걸 먹으면? 요기요로 치킨 시켜 먹으면 행복해질까? 사고 싶은 것들을 사면 행복할까? 26년 인생 전부를 고민해서 결론을 찾기 위해 이리저리 동분서주해본 바 난 아직도 잘 모르겠다. 넷플릭스를 통해 보고 있는 <퍼니셔>에서는 주인공이 '행복이란 치명타를 날리기 위해 호시탐탐 우리를 노리는 것'이라고 답했다. 또 어제 2년 만에 만난 여사친과의 대화에서의 나는 "'이만하면 됐다'라고 생각하는 순간 인생의 업보가 굴러들어 온다"라고 말했다. 이 두 정의를 다른 말로 한다면 '행복이란 있다가도 없는 것'이나 '행복하면 그에 맞게 좌절이 따라올 수밖에 없는 것'이 될 것이다.
이런 결론을 내기까지의 나는 사람에게 있어 행복은 극히 드물다는 염세주의 때문에 이런 생각을 가진 것인지도 모르겠다. 고등학생 땐 버거운 학교 스케줄 때문에 힘들고. 대학생 때는 '왜 사람들이랑 어울리는 재미를 찾지 못했지' 싶어 괴롭고. 사회인이 되기 전 지금 순간은 공부하는 게 어려워서 짜증 난다. 행복한 순간이 과연 나에게 언제 찾아오나 싶다. 아니, 사실 내가 쓴 글에 의하면 인생은 절대 완벽하게 모든 걸 가져다주지 않는다고 한다. 그러면 애초부터 행복하다는 것은 살아있는 동안 전부 느끼기는 어려운 게 아닐까? 만족하다가도 어떤 것에 싫증이 나면 불행에 빠지기 쉬우니까. 내가 뭘 대단하게 성장해서 인격이 성숙해져도 갈등, 좌절, 실패, 불안, 뭐 그런 것들은 항상 나를 따라왔다. 행복한 인간이란 어쩌면 불가능한 꿈을 꾸는 게 아닐까. 그럴 때마다 영화를 튼다. 내 삶의 행복했던 순간을 투영하고 또 돌아보기 위해서다. 이런 우리에게, 또 나에게 5시간 18분짜리 작품이 기다리고 있다. 포스트 고레에다 히로카츠, 아니 '제1의 하마구치 류스케'의 데뷔작을 찾아 나서보자.
1) 어떤 것에 대한 영화인가요?
네 명의 친구가 있다. 사쿠라코. 후미코. 준. 아카리다. 이들은 사회에서 만난 친구로 여느 때처럼 호호 수다를 떨고 있다. 마음이 잘 맞았기 때문에 각자를 잘 알고 있다고 생각했던 넷. 즐거운 소풍을 마치고 후미는 자기가 아는 워크숍에 넷이 참석하는 게 어떠냐고 제안한다. 워크숍에 참석한 친구들. 그렇게 워크숍 강사의 프로그램을 끝마치고 뒤풀이 자리에 합류한다. 그곳에서 친구들의 중추적인 역할을 했던 준이 폭탄선언을 한다. 나. 이혼을 준비 중이야. 심지어 바람도 피웠어. 네 명의 친구 중에는 불륜에 아픈 기억이 있는 사람도 있기 때문에 받아들이는 리액션이 그렇게 좋지는 않다. 물론 굳이 이것 때문이 아니더라도 깜짝 놀란 반응을 선보이는 친구들. 준은 친구 네 명에게 이혼소송 재판에 오는 게 어떻겠냐고 제안한다. 그 재판에서 왜 준이 불륜을 해서라도 현재의 남편과 결별할 수밖에 없는지를 이해하게 된다. 그렇게 준에 대한 이해가 분기점이 되어 세명은 각자가 처해있는 상황과 결혼생활을 돌아보게 된다.
영화는 이 '돌아봄'을 소재로 삼았다. 돌아봄으로써 각자의 인간관계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기도 하고, 사랑의 시작과 끝이 관찰되기도 하며 누구끼리는 싸우기도 한다. 소통하기 위해서는 어떤 태도를 견지해야 하는지도 알게 되고, 타인을 받아들인다는 건 무슨 뜻인지도 제시하기도 한다. 사실 이것들을 지켜보며, 주인공들이 본연의 돌아보면서 알 수 있는 건 이들의 삶이 죄다 불행함의 연속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알게 된다. 318분의 마음이 움직이는 과정을 관찰하고 보이는 엔딩신에서 왠지 모르게 느껴지는 카타르시스가 있다. 이들의 인생은 불행한 순간들의 연속인데, 엔딩신에서 왠지 모를 따뜻함을 경험할 수 있다.
2) 어떤 영화로 정의할 수 있을까요?
이는 왜 이 영화가 '러닝타임이 318분인가?'와도 닮아있다고 생각한다. 이 영화는 시간에 관한 영화로 정의할 수 있을 것이다. 다 보는데 드는 소요시간이 318분이라서 그렇게 정의했냐고 묻는다면 그건 '아주 예'다. 감독이 바보도 아니고 아무 이유 없이 영화를 5시간 넘게 설정 할리는 없겠지? 영화는 얼핏 보면 드라마가 아니라 다큐멘터리에 가깝다. 영화는 보통 경제적이다. 2시간 동안 한 사람에게 일어난 사건을 요약하거나, 누군가의 일대기를 축약하는 등 정해진 시간 안에 어떤 것을 보여줘야 하기 때문이다. 홍상수의 <북촌방향>이나 <스파이더맨 : 노 웨이 홈>만 봐도 그렇다. 전자는 한 장소에서 반복해서 일어나는 사건에 대한 이야기였고 후자는 무려 다른 평행세계에서 악당들이 침입하는 영화였던 것 다들 기억할 것이다. 근데 이 영화는 다르다. 2시간을 뛰어넘어 5시간이라는 러닝타임이 나왔다. 이것은 의도가 분명하다. 천천히 감정이입의 빌드업을 짰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마치 친구가 되어 함께 일상을 견디는 효과를 주고 싶어 그랬던 게 아닐까 생각해본다. 왜, 친분이 있는 사람에게 우리는 마음을 더 주지 않는가. 그렇게 사람들의 일상을 같이 지나며 관객들에게 똑같이 공허하고, 똑같이 외롭고, 똑같이 괴로운 일과를 더 잘 느끼게 도와준다. 그리고 단 한순간을 보여주며 완벽하진 않더라도 좋은 매개체가 될 수 있는 무언가를 보여준다. 난 이 엔딩부로 달려가는 메시지의 힘이 마음이 변하는 시간과도 관련이 있다고 생각한다.
3) 이 영화의 장점은 무엇일까요?
2번의 질문과 비슷한 답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영화의 장점 역시 '318분'이라는 러닝타임이다. 천천히 친구들의 일상을 보여주는 이 영화. 영화는 시간을 길게 늘였기 때문에 공허함을 채우기 위해 이혼소송을 준비 중인 준의 심리상태를 이입할 수 있게 해 준다. 준뿐만이 아니다. 다른 세 친구가 느끼는 외로움을 또 느끼게 하기 위해 역시 1시간에 가까운 시간을 할애했다. 근데 1시간만 할애하다 끝나는 게 아니고, 그 각자의 사연마다 얽히고설킨 게 있어 집중하는데 어렵지 않을 거라 생각한다.
4) 난이도가 있는 영화인가요?
대사가 많긴 하다. 집중하지 않으면 후다닥 넘어갈 수도 있다. 또 장점이라고 언급했던 '러닝타임 318분' 역시 단점으로 작용할 수도 있다. 근데 '해피 아워'를 보는 분들이라면 영화에 관심 있지 않을까? 지금 당장 왓챠가 아니면 볼 수 없는 걸로 알고 있다. 이해가 어려우면 되감기를 하거나 끊었다가 다시 보는 방식을 택하면 될 듯.
5) 배우들의 연기들은 어떠한가요?
여기에 나오는 배우들은 전문 배우가 아니라고 한다. 일본의 한 도시에서 감독 하마구치 류스케가 워크숍을 열어 배우들을 모았다고 한다. 정말 솔직히 말하면 그런 티가 좀 난다. <드라이브 마이 카>에서 무뚝뚝한 가 후쿠와 미사키는 뭔가 자연스러운 느낌이 있지 않았나? 여기 나오는 사람들은 좀 어색한 부분이 있다. 특히 준 역의 남편 역할 뭔가 국어책 읽는 느낌이 강했다. 그런데 뭐 보는데 지장이 있거나 그러진 않다. 무난한 디렉팅이었다.
6) 이 영화를 보기 전에 알아야 할 사실이 있나요?
없다. 무슨 사전 지식이 필요한 작품은 아니다. 아, 인물 간의 행보와 직업에 대해 염두하고 영화를 보면 감상하는 데 있어 폭 넓게 다가오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몇몇 주인공은 자기들의 욕망을 투영하고 있다. 또 엔딩신에서 두 주인공이 '무슨 소재로 대화하고 있는가'를 생각해보자. 그럼 알 수 있을 것 같다. 이런 개같은 인생에서 이것이야 말로 일상을 버틸 수 있는 힘이 되지는 않을까 뭐 그런 기분이 들지 않을까.
7) 어떤 사람에게 추천하고 싶나요?
간단하다. 행복해지고 싶은 사람. 외로운 사람. 공허한 사람. 본질적인 치유가 어려운게 사람의 상처고 또 관계 아닌가. 영화는 이들의 속내를 들여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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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톺아보기] 김우빈 배우 출연작 파헤쳐 보기!!
안녕하세요!
영화/OTT 큐레이션 매거진 '씨네랩'입니다.
스윗한 선장님부터 마트 알바생까지
드라마부터 예능까지 활약하며, 곧 스크린에서 활약할 배우가 있죠!
바로 배우 '김우빈'입니다.
오늘의 톺아보기 주인공은 바로 배우 '김우빈'입니다.
그럼, 김우빈 배우의 필모그래피를 톺아보러 가볼까요?!
ⓒ 에이엠엔터테인먼트
김우빈 배우는 매 작품마다 안정적인 연기를 보여주었는데요.
김우빈 배우의 연기 선생님이었던 문원주 배우가 가르쳐준 인물 일대기와 백문백답을 작성법이
김우빈 배우가 안정적인 연기를 선보이고, 캐릭터 그 자체로 보일 수 있도록 도움을 준 것 같습니다.
배우 '김우빈 프로필
ⓒ 에이엠엔터테인먼트
이름 | 김우빈
출생 | 1989년 7월 16일
소속사 | 에이엠엔터테인먼트
데뷔 | 2011년 KBS2 드라마 스페셜 '화이트 크리스마스'
별명 | 공룡, 우빵이
배우 '김우빈' 데뷔 과정
ⓒ 에이엠엔터테인먼트
김우빈 배우는 서울대학교 생물학과 교수를 꿈꾸다 중학교 1학년 때 모델로 꿈이 변했다.
2008년 김서룡옴므쇼에서 모델로 데뷔한 김우빈은 W, 보그걸, 엘르걸 등의 모델로 활약하며 입지를 다졌다.
2011년 KBS 드라마 스페셜 '화이트 크리스마스'를 통해 배우로 데뷔하였고, 이후 '신사의 품격', '아름다운 그대에게'에서 짧게 출연을 하다 2012년에 '학교 2013'에서 주연을 맡게 된다.
배우 '김우빈' 대표작
학교 2013 - 박흥수
ⓒ KBS StarTV: 인물사전
전학만 5번을 다닌 문제아이자, 상당한 존재감을 드러내는 인물이다.
또한, 공포감을 조성하는 인물인 '박흥수' 역을 맡았다.
------------- 시청 가능한 OTT -------------
웨이브, 왓챠
상속자들 - 최영도
ⓒ SBS Drama
IQ 150이자 멘사 회원일 정도로 머리가 좋지만,
다른 학생들을 잔혹하게 괴롭히는 '최영도' 역을 맡았다.
------------- 시청 가능한 OTT -------------
웨이브, 왓챠, 쿠팡플레이
친구2 - 최성훈
ⓒ 네이버 영화
죽은 동수(장동건)의 아들이며, 어린 시절부터 방황하며 소년원에 수감된다.
준석의 조직에 들어가 부하가 되어 심부름꾼으로 활약하는 '최성훈' 역을 맡았다.
------------- 시청 가능한 OTT -------------
넷플릭스, 티빙
기술자들 - 이지혁
ⓒ 네이버 영화
뛰어난 두뇌를 가져 작전의 설계는 물론 모든 위조에 능한 멀티플레이어.
못 여는 금고가 없는 금고털이계의 '마스터 키'인 '이지혁' 역을 맡았다.
------------- 시청 가능한 OTT -------------
넷플릭스, 웨이브, 티빙, 쿠팡플레이
스물 - 차치호
ⓒ 네이버 영화
엉뚱한 성격을 가졌으며, 잉여의 삶을 지향하는 인기 절정의 백수인 '차치호' 역을 맡았다.
------------- 시청 가능한 OTT -------------
넷플릭스, 웨이브, 왓챠, 쿠팡플레이, seezn
함부로 애틋하게 - 신준영
ⓒ 싸이더스 HQ
배우와 가수를 넘나드는 엔터테이너이자 한류 최고의 톱스타.
도도하고, 까칠하며, 건방진 성격을 지닌 '신준영' 역을 맡았다.
------------- 시청 가능한 OTT -------------
웨이브, 왓챠, 쿠팡플레이
마스터 - 박장군
ⓒ 네이버 영화
뛰어난 프로그래밍 실력과 명석한 두뇌로 원네트워크를 키워 온 브레인이자
진회장의 최측근인 '박장군' 역을 맡았다.
------------- 시청 가능한 OTT -------------
티빙, 왓챠
우리들의 블루스 - 박정준
ⓒ 네이버 영화
김우빈 배우는 말고 따뜻하며, 성실해 누구에게나 신뢰가 높은 인물.
서너 개의 직업을 동시다발적으로 가진, '박정준' 역을 맡았다.
------------- 시청 가능한 곳 -------------
넷플릭스, 티빙
씨네랩 에디터 cammi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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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BIFF 데일리] 개들의 왕이 행한 어떤 기적
이 글은 씨네랩에서 초대 받아 작성한 영화 리뷰입니다.
* 스포일러 주의
감독: 뤽 베송
출연진: 케일럽 랜드리 존스, 조조 T. 깁스
시놉시스: 어느날 밤, 한 심리학자는 유치장에서 만난 붉은 드레스의 남성을 상담한다. 그의 이름은 '더글러스'. 200마리가 넘는 개를 키우며 '도움이 필요한 이를 돕는다'는 그는 심리학자와의 대화를 통해 자신의 학대 받던 과거와 힘겨웠던 장애인으로서의 삶, 그리고 그가 그 도시의 '다크 히어로'가 될 수 밖에 없었던 사연을 털어 놓는다. 한 사회에서 개인의 비극적인 삶이 어떻게 만들어지는지를 세련되고 흥미진진한 스릴러의 형식으로 풀어낸, 거장 '뤽 베송'의 수작.
***
살다보면 인생에 끔찍한 비극이 몰아닥칠 때가 있다. 그럴 때면 인간 개인은 속수무책으로 그러한 불행의 늪에 빠져 허우적거린다. 숱한 비애와 비탄에도 분명히 끝은 있을텐데도 그것에 시달리는 그 순간만큼은 그것은 영원할 것만 같고, 그로 말미암아 사람의 마음에는 깊은 좌절과 원망, 분노가 깃든다. 그 재앙이 차라리 천재지변이라면 차라리 낫다. 그건 '어쩔 수 없었던 일'일테니까. 그러나 그것이 사람에 의한 것이라면 어떨까? '피할 수 있었지만 피하지 못한' 재앙을 맛보았을 때, 사람은 외롭고 억울해진다. 원망은 사람과 사회와 하늘로 향하고 무엇보다도 가슴에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안겨준다. 애석하게도 사람이 사는 곳에는 언제나 그런 재앙이 있고, 그래서 우리의 도시에는 언제나 비참이 도사린다. 이러한 비참의 끝에는 무엇이 기다리고 있을까? 우리는 우리에게 닥친 비극적 운명의 멍에를 어떻게 벗을 수 있을까? 어떻게 나아가야 할까? 그리고 이러한 비극이 반복되지 않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할까?
아래에서부터 소개할 뤽 베송의 신작, <도그맨>에서 이러한 사회 구조적 문제에 기인한 재앙과 그에 대해 끝없이 고민하며 벗어나고자 한 인물의 이야기를 그려낸다.
1. 철장에서 자란 소년이 '도그맨'이 되기까지
어린 '더글러스'(이하 '더그')는 유년 시절의 어느 일부를 철장에서 보냈다. '투견으로 쓰일 개에게 먹이를 주었다'는 이유만으로. 지극히 가부장적이고 폭력적이던 아버지의 광기는 집안 어디에서나 도사렸다. 형은 아버지처럼 되어가며 가족을 감시했고, 어머니는 결국 그를 이기지 못하고 떠났다. 그러나 더그는 완전히 고독하지는 않았다. 그의 곁에는 개가 있었으므로. 더그에게 개들은 그와 같은 아픔을 경험하고 서로를 보듬어주는, 그의 유일한 가족이었다. 개들은 언제나 그의 곁을 지켰다. 그가 아버지의 학대 끝에 반신불구가 된 후에도, 그가 도움과 위안이 필요할 때면 언제나. 그런 그가 소위 '도그맨'이 된 것은 무척이나 자연스러운 수순이었을지도 모른다.
https://youtu.be/CKHtgQzY3js?feature=shared
소년은 자랐고, 더는 그 끔찍한 집에 살지 않게 되었지만 그럼에도 학대의 흔적은 남았다. 다리를 쓸 수 없었고, 다리를 쓰지 못한다는 것은 단순히 걷지 못한다는 것 이상의 것을 의미했다. 각박한 인간 세상은 '걸을 수 있는 사람'에 맞춰져 있으니까. 더그에 대한 사회의 취급은 길 위를 떠돌아 다니는 유기견의 그것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에디트 피아프의 명곡 '군중'의 노랫말에서처럼, 세상은 그에게 환희를 주었지만 곧 그를 거두어가버렸으므로 그는 절망과 분노를 이겨내는 방법을 익혀야 했다.
그래서 그는 원래의 자신이 아닌 다른 사람이 되기로 한다. 금요일에는 트렌스젠더 바의 '에디트 피아프'가 되었다. 연기를 하고 분장을 했다. 비참이 깃든 얼굴 위로 분칠을 하고, 찰나 같은 순간 동안 바로 서서 노래를 부르고 있노라면, 사람들은 비로소 그를 '걷지 못하는 사람' 이상의 누군가로 보았다. 언젠가 짝사랑하던 연극 선생님의 말처럼, 셰익스피어의 세계에서는 그는 무엇이든 될 수 있었다.
그러지 않은 날에는 '도그맨'이 되었다. '도그맨'은 불행한 개들과 사람을 거두고 도왔다. 그가 합법적으로 남을 도울 길은 흔치 않았으므로 그의 방식은 적지 않은 경우 합법의 영역 밖에 있었다. 그래서 위험했고, 그래서 때론 공포의 대상이 되기도 했으며, 이윽고는 그의 운명을 끝을 향해 달려가게 했지만, 어쨌든 그는 그 일을 했다. 이유는 간단하다. 그것이 그가 할 수 있는 몇 안되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2. 불행이 있는 곳에 신은 개를 보낸다
이러한 '도그맨'의 삶은 예수의 공생애와 닮아 있다. 그는 가장 더러운 개 철장에서 나고 자랐다. 장애는 그가 할 수 있는 것들을 할 수 없게 했고, 그래서 그는 더욱 고난 길을 걸어야만 했다. 그렇게나 고생했으면 사람을 미워할 법도 한데, 개들에게서 숭고한 사랑을 배운 더그는 가장 외롭고 힘든 이들을 위해 기꺼이 손을 내밀었다. '부의 재분배'라는 명목으로 값나가는 것들을 좀 훔치긴 했으니 숭고한 의미만으로 그 일을 한 것이라고 볼 수는 없을테지만, 그가 보인 관용 또한 숭고하지 않다 말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이 다크히어로를 움직이게 한 동인은 '돈'이 아니라 타인의 고통에 대한 연민과 동감이었으니까. 그것은 대단히 숭고한 마음이 아닌가.
이러한 기독교적인 메타포는 영화의 말미에서 절정에 이른다. 인생의 모든 것을 고한 더글러스는 그의 벗들로 말미암아 유치장을 벗어난다. 휠체어에서 일어난다. 꺼져가는 생명을 붙잡고 비틀비틀 걷는다. 앉은뱅이를 고친 예수의 기적처럼. 그리고 마침내 외친다.
'저는 떠날 준비가 되었습니다!'
개들의 왕은 마침내 땅 위로 쓰러진다. 등 뒤에 거대한 십자가 그림자를 드리운 채. '대가는 치러졌고, 아픈 과거는 잊었다. 그 자리에는 어떤 후회도 남지 않는다'. 수없이 많은 그의 자식, 개들만이 그의 곁을 지킬 뿐이다.
https://youtu.be/4r454dad7tc?feature=shared
***
영화 <도그맨>은 불행을 딛고 '일어서는' 사람의 이야기를 그린다. 그의 인생은 험준하기 그지 없지만 그럼에도 그는 그 안에서 아가페적인 사랑을 찾는다. 비록 그의 생은 마감되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의 사랑이 지워지지는 않을 것이다. 그와 동시에, 그는 그를 비롯한 많은 이들을 비참하게 만든 세상에 대해 과격한 방식으로 저항한다. '홍길동'이나 '로빈훗'처럼 가진 자의 부를 재분배하고 가혹한 이를 응징하는 그의 방식은 그 옛날 로마 제국에 저항하던 급진혁명파인 '젤롯당'이 연상되기도 하고, '눌린자, 포로된 자'에게 기꺼이 다가갔다는 예수에 대한 묘사가 떠오르기도 한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는 '도그맨'을 사랑을 위해 알려지지 않은 혁명을 해 온 혁명가라고 불러도 좋을 것이다.
사랑과 혁명. 이것은 어쩌면 영화가 제안하는 '비극을 이기는 법'일지도 모른다. 물론 우리가 더글라스처럼 개를 부릴 수도 없을테고, 불법적인 일을 일삼을 수도 없는 노릇이지만, 낮은 이들에게 기꺼이 사랑을 베풀고 우리가 처한 사회의 어두운 부분을 솎아내려는 시도 정도는 할 수 있을 것이다. 가령 길 위를 떠도는 유기견들의 사정이 나아지게 하기 위해 개를 '사지 않고' 입양하는 방식을 택할 수도 있고, 장애인을 위한 법안이 통과되게 하기 위해 말 한 마디라도 덧붙일 수 있을 것이다. 의심이 가더라도 한번 해 보자. 그런 소소한 베풂이 이어지다보면 언젠가 '기적'이 일어날지도 모른다.
+) 개를 다루는 사람의 이야기이지만 개가 폭력적으로 다루어지지 않아서 좋았다. 뤽베송 감독은 아주 어릴 때부터 개를 키웠다는데, 그런 감독의 생각이 잘 드러나는 거 같다.
++) 다양한 음악이 삽입되었는데, 특히 에디트 피아프의 노래들이 더글러스의 삶과 절묘하게 어우러진다. 영화를 보기 전후에 한번씩 들어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
[상영 일정]
[부산국제영화제 10.4~1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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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객이 전도된 마블의 쿠키 인질극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혼자서도 거뜬히 은하계를 수호하는 히어로 '캡틴 마블/캐럴 댄버스'(브리 라슨). 어느 날, 우주선에서 이상한 신호를 감지한 후 정찰을 떠난 그녀는 평소와 달리 계속해서 열려 있는 '점프 포인트'를 발견한다.
그런데 점프 포인트에 손을 댄 바로 그 순간부터 캐럴에게는 이상한 일이 생긴다. 능력을 사용할 때마다 캡틴 마블의 광팬이자 고등학생 히어로인 '미즈 마블/카말라 칸'(이만 벨라)과 빛의 파장을 조작하는 히어로 ‘모니카 램보’(티오나 패리스)와 위치가 바뀌기 시작한 것.
'닉 퓨리'(새뮤얼 L. 잭슨)의 도움을 받아 우여곡절 끝에 크리족 리더 '다르-베'(자웨 애쉬튼)의 음모로 인해 이상 현상이 발생했다는 사실을 깨달은 셋. 그렇게 팀 '마블스'는 캡틴 마블에게 복수하고 지구를 비롯한 여러 행성을 파괴하려는 다르-벤을 저지하기 위한 모험에 나선다.
똑 닮은 자매, <캡틴 마블>과 <더 마블스>
2019년에 개봉한 <캡틴 마블>은 큰 성공을 거뒀다. 국내 관객 500만 명을 돌파했고, 전 세계에서 11억 달러가 넘는 수익을 올렸다. 다만 비평적으로 호평받지는 못했다. 히어로 영화 1편의 기본 소양이 부족했기 때문. 슈퍼히어로는 자기 능력을 어떻게 활용할지 고뇌한다. 아이언맨도, 캡틴 아메리카도, 토르도 예외는 없었다. 반면에 <캡틴 마블>은 캐럴 댄버스의 책임감을 어필하지 못했다.
주인공의 서사가 빈약하니 보조 플롯도 조명받지 못했다. 예를 들어 <캡틴 마블>에서는 여성 서사 못지않게 의외로 강조된 이야기가 있었다. 난민이다. 전쟁으로 고향을 잃은 우주 난민 스크럴 종족의 이야기가 적지 않은 비중을 차지했다. 이를 통해 <캡틴 마블>은 지금까지도 해결되지 않는 지중해 난민 이슈에 대한 관심을 환기하고, 드라마 <시크릿 인베이젼>의 틀을 깔 수 있었다. 주목받지 못했을 뿐이다.
<캡틴 마블>의 속편이자 캡틴 마블, 미즈 마블, 모니카 램보의 팀업 무비인 <더 마블스>는 1편의 행보를 따라간다. 의외의 선택은 있다. 굵직하고 민감한 사회적 이슈를 건드린다. 세 히어로의 능력도 확실하게 각인시킨다. 하지만 캡틴 마블을 비롯한 주요 인물의 서사와 캐릭터성은 여전히 완성도가 높지 않다. 결국 차기작을 예고하는 쿠키 영상만 뇌리에 남는다. 이조차도 <어벤져스: 엔드게임>의 기대감만 키운 전편 행보를 따른다.
캡틴 마블의 성장기
물론 1편의 단점을 극복하려는 시도는 곳곳에 있다. 특히 캡틴 마블의 내적인 성장을 보여주고, 캐릭터의 완성도를 높이려는 노력이 인상적이다. <캡틴 마블>과 <엔드게임>에 이어 이번 영화 초반부까지 캐럴 댄버스는 독선적인 행동을 일삼는다. 누구보다도 강력하기에 그녀는 옳다고 믿는 일을 저지르는 데 망설임이 없다.
그러다 보니 그녀는 여러 문제를 일으킨다. 크리의 모성인 '할라'를 급습해 행성을 관리하는 A.I. '슈프림 인텔리전스'를 파괴했다. 관리 체계가 없어진 할라는 내전에 휩싸이고, 대기, 물, 태양광 같은 자원이 없어졌다. 이로 인해 캐럴에게는 '말살자'라는 이명이 붙었다. 또 이 오명을 혼자 힘으로 씻어내기로 결심하고 지구로의 귀환도 차일피일 미룬다. 그 때문에 어릴 때 캐럴을 가족처럼 따르던 모니카와의 관계도 엉망이 된다.
<더 마블스>는 캐럴 댄버스가 자기 독선과 오만으로 인한 과오를 극복해 나가는 과정을 다룬다. 빌런 ‘다르-벤’과의 대결을 통해서는 본인이 초래한 참극을 직시하고 자기 힘으로 할라의 문제를 해결한다. 특히 자기 광팬인 고등학생 히어로 미즈 마블, 절친의 딸 모니카와 팀으로 활동한 대목이 주효했다. 부끄러운 과거와 고민도 마음껏 털어놓을 수 있을 정도로 부드러워졌고, 독선적인 면모도 내려놓을 수 있었으므로.
우주 경찰 캡틴 마블, 지구 경찰 미국
MCU 속 캡틴 마블의 독특한 위상을 고려하면 그녀의 변화는 꽤 흥미로운 은유이기도 하다. 캡틴 마블은 압도적인 히어로다. 광속보다 빨리 움직일 수 있고, 크리 족이나 타노스의 함선을 단신으로 파괴하는 힘을 지녔다. 타노스와 일신으로 대적할 수 있을 정도로 강력하다.
이를 현실의 지구에 대입하면 꽤 의미심장한 비유가 된다. 미국이라는 초강대국의 지위를 보여주기 때문. 캡틴 마블이 우주를 마음껏 넘나들듯이 미국은 지구의 바다와 공중을 넘나드는 유일한 국가다. 마음만 먹으면 나라 하나를 풍비백산할 수 있는 군사력을 투영할 수 있는 국제적 위상도 캡틴 마블의 존재감과 유사하다.
그런데 <더 마블스>는 캡틴 마블의 힘을 부정한다. 간신히 보금자리를 만든 후 크리와 평화협정을 체결하려는 스크럴. 그러나 그들은 협정 체결 직전에 캡틴 마블 때문에 다시금 행성을 잃는다. 그들은 캡틴 마블을 비난한다. 힘이 얼마나 강한 지는 중요하지 않으며, 적재적소에 활용할 수 있어야 한다고 일침을 놓는다. 설사 크리가 진심으로 평화를 원한 게 아니라 해도, 그녀 때문에 다시 한번 피해를 입었다면서.
이는 세계의 이목이 집중된 이스라엘-팔레스타인 관계를 비롯해 미국이 개입한 수많은 국제분쟁을 연상시키기에 안성맞춤이다. 또 그간 MCU 속 영웅들의 서사와도 일맥상통한다. 미국 군수산업의 모순을 지적한 아이언맨, 미국의 패권주의를 비판한 캡틴 아메리카와 유사한 국제관계 관점을 공유하기 때문이다.
사건만 남고 주인공은 사라지는 마법
문제는 1편처럼 엉성한 플롯이다. 부실한 완성도 때문에 영웅의 성장담도, 비유도 부분적으로만 드러난다. 배경을 쌓아 올릴 충분한 분량이 쌓이기도 전에 일단 사건 속으로 주인공을 던져 놓는다. 실제로 <더 마블스>는 시작과 동시에 점프 포인트 때문에 파괴된 행성과 세 주인공의 위치가 뒤바뀌는 문제를 보여준다. 이후 해결법을 찾고, 한 팀이 되어 문제를 해결하는 이야기가 이어진다.
좋게 보면 짧은 러닝타임에 걸맞은 시원한 전개다. 하지만 <더 마블스>의 핵심이 캡틴 마블의 성장과 팀업이라는 걸 고려하면 적절한 스토리텔링이라 할 수 없다. 주인공에게 감정이입할 여유를 충분히 주지 않은 채로 이야기가 빠르게 진행되다 보니 관객은 쏟아지는 정보를 받아들이기에 바쁘다. 그 과정에서 주인들의 갈등도 날림으로 해결되기 때문에 그들이 한 팀을 만드는 과정에 몰입하기도 어렵다.
예를 들어 캐럴과 모니카의 갈등은 하루아침에 해결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캐럴의 절친이자 모니카의 어머니인 '마리아'(러샤나 린치)의 부고를 지키지 못한 일을 포함해 수십 년의 앙금이 쌓인 문제니까. 그런데 영화는 둘 사이에 활달한 제삼자 카말라를 완충지대로 투입해 10분도 되지 않은 사이에 모든 감정의 골을 메워 버린다. 캐럴이 자기 독선과 과오를 깨닫는 이야기가 중심이 되어야 하는데, 정작 그 변화를 체감할 수가 없다.
즉, 영웅이 성장할 방향은 알려주지만, 사건에 캐릭터가 묻혀 버린 형국이다. 현란한 CG, 더 귀여워진 구스와 다른 아기 플러큰의 활약이 지나가고 나면 정작 주인공이 뭘 했고, 어떻게 변했고, 어떻게 성장했고, 앞으로 어떤 모습을 보일지 파악할 수가 없다. 이는 <토르: 러브 앤 썬더>, <앤트맨 앤 와스프: 퀀텀매니아>에서 목도한 문제와 똑같다.
조연도, 빌런도 함께 실종된다
다른 캐릭터도 존재감을 보여줄 수가 없다. 주인공 이야기를 풀어내기도 바쁜데 다른 조연들의 서사에 투자할 시간이 있을 리 만무하다. 자연히 <더 마블스>는 불친절해진다. 일단 모니카와 미스 마블에 대한 최소한의 설명이 없다. 디즈니+에서 <완다비전>과 <미스 마블>을 보지 않으면 두 히어로에 대해 알 수 있는 정보는 스쳐 지나가는 플래시백 외에 전무하다.
그러니 '마블스'라는 팀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이해하기도 어렵다. 세 여성 히어로의 연대를 그려낸 여성 영화라지만, 정작 셋의 연대감이 느껴지지 않으니 여성 서사 관련 논쟁도 무의미하다. 그나마 능력을 쓸 때마다 서로 위치가 바뀐다는 점을 살려낸 초반부 액션씬이 눈을 사로잡지만, 그조차 점점 매력을 잃는다. 액션의 절대적인 양도, 스턴트 액션의 박력도 부족하기 때문. 관객이 MCU에 기대하는 눈높이를 맞추지 못한다.
빌런도 마찬가지다. 사실 다르-벤은 꽤 입체적인 인물이다. 캡틴 마블이 미국에 대한 은유라면, 그녀는 개발도상국을 대변한다고 볼 수 있다. 다르-벤은 캡틴 마블 때문에 파괴된 할라를 복구하기 위해 악행을 저지르기 때문. 즉, 그녀의 행적은 환경이라는 더 큰 선을 위해 개발도상국도 희생을 감내하라는 선진국 논리에 대한 비판으로 읽힐 여지가 있다. 크리 제국이 빌런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맥락이 완전히 동일하지는 않지만.
하지만 <더 마블스>는 다르-벤에게 뱅글과 코스미 로드(망치)로 점프 포인트를 열어 위기를 조성하는 역할 그 이상을 맡기지 않는다. 그녀가 캡틴 마블과 적대하게 되는 계기에 대한 설명도 딱 한 장면뿐이다. 그녀의 최후 역시 히어로와 대립한 결과보다는 자멸에 가깝기 때문에 임팩트가 크지 않다. 타노스, 로키, 제모 남작, 웬우 등 과거 MCU의 빌런을 돌이켜보면 MCU가 빌런 레시피를 잃어버린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쿠키 영상을 보기 위한 100분
결국 남는 것은 쿠키 영상뿐이다. 본편 끝에는 카말라가 드라마 <호크아이>의 주인공 케이트 비숍을 만나며
'영 어벤저스(Young Avengers)'의 등장을 암시하는 장면이 나온다. 엔딩 크레디트 후에는 멀티버스를 매개로 MCU와 기존 20세기 폭의 엑스맨 시리즈의 만남을 예고하는 쿠키 영상이 있다.
두 장면 모두 마블 팬의 심장을 뛰게 하기는 충분하다. 특히 엑스맨과 MCU의 만남은 디즈니가 20세기 폭스 스튜디오를 인수한 이후로 팬들이 오매불망 기다린 이벤트다. MCU의 다음 작품이 <데드풀 3>인 점도 팬들의 기대감을 키우기에 충분하다.
하지만 이 기대감도 마냥 좋은 일은 아니다. 상업적으로는 훌륭한 전략일지 몰라도, 본편 완성도를 고려하면 MCU 영화가 일종의 '쿠키 영상 인질극'으로 변질된 것은 아닐까 하는 우려가 더 커진다. 특히 한국 관객은 기대보다 실망이 커도 놀랍지 않다. 마블 코리아가 적극적으로 홍보한 '얀 왕자', 박서준의 출연 분량이 카말라의 가족이나 구스보다도 적기 때문.
Dreadful 끔찍한
멀티버스와 팀업이라는 강박. MCU의 엑스맨마저 걱정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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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진짜로 일어날지도 몰라 기적> 재개봉 예고편
기차가 서로 스쳐 지나갈 때 ‘기적’이 일어난대~
그래서 소년이 바라는 건.. 화.산.폭.발?!!나는 엄마랑 할아버지랑 할머니랑 삽니다. 동생 류랑 아빠는 저기 멀리서 따로 삽니다. 엄마랑 아빠랑 맨날 싸우더니, 이런 꼴이 될 줄 알았습니다. 나의 소원은 우리 가족들이 다시 함께 사는 것입니다. 그러려면 저기 저 위에 있는 화산이 폭발해서 아빠랑 류가 있는 곳으로 이사를 가면 됩니다. 형은 화산이 꼭 폭발하게 해달라고 매일매일 기도하는데 철부지 내 동생은 가면라이더가 되고 싶다고나 하고, 정말 어린이 같은 소원입니다. 그런데, 친구들이 하는 말이 새로 생기는 고속열차가 반대편에서 서로 달려오다가 스쳐 지나가는 순간에 ‘기적’이 일어난다는 것입니다! 아싸~ 그럼 거길 가서 소원을 빌면 되겠네! 그래서 좋아하는 선생님이랑 결혼하고 싶은 친구랑, 야구선수가 되고 싶다는 친구랑 거길 가려고요. 동생도 오라고 해서 나랑 같은 소원을 빌라고 해야겠어요. 난, 우리 가족이 꼭 같이 살았으면 좋겠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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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정말 먼 곳>
자신만의 안식처를 찾은 진우,
그에게 뜻하지 않은 방문자가 도착하며
조용했던 날들이 흔들리기 시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