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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brolee2025-02-18 18:10:57

균열과 공포, 부유하는 시선들

영화 <공포분자> 리뷰

** 본 리뷰에는 영화 <공포분자>의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공포분자>는 서로 무관해 보이는 이들의 평범한 일상이 점차 얽혀들어가며 파국으로 이어지는 과정을 그린다. 고정된 카메라에 시간을 담아 묵묵하한 시선으로 일상이 흔들리는 공포를 포착한다.

 

 이립중과 그의 아내, 그리고 젊은 사진작가와 가출 소녀는 병렬적인 구조를 취한다. 아내는 이립중을 버리고 심씨에게로 떠난다. 사진작가는 소녀에게 빠져 여자친구와 헤어진다. 아내는 본인의 심경을 은연중에 소설로 드러내며, 사진작가는 사진을 통해 소녀에게 다가간다. 그러나 자신의 창작물에 대한 두 인물의 태도는 사뭇 다르게 나타난다. 아내에게 있어서 소녀로부터 걸려온 장난 전화, 그로 인해 발생한 잠깐의 의심은 자신의 불륜을 합리화할 구실이 된다. 아내는 이 상황을 소설에 담으며 죄책감을 떨쳐버린다. 그러나 그녀는 소설은 소설일 뿐이라고 말하며 내재된 진실을 인정하지 않는다. 반면 사진에 대한 젊은 소년의 태도는 조금 더 순수하다. 그는 사진을 통해 사랑에 빠지고, 사진을 통해 세상을 본다. 마침내 그의 암실, 창작의 장소에 사진의 주인공인 소녀가 찾아온다. 그러나 소녀는 소년이 사진을 통해 본 것과는 다르다. 그녀는 잠시 소년의 사랑에 응해주는 듯하지만 이내 소년의 카메라를 훔쳐 달아난다. 소녀가 떠난 뒤 암실에는 햇빛이 들어오고, 소년이 조각조각 모아 붙여놓은 소녀의 사진은 바람에 흔들리며 해체된다. 이 장면은 소년이 여자친구와 헤어지는 장면을 연상시킨다. 반투명 커튼이 햇빛을 받으며 바람에 흔들린다. 커튼 너머에 무엇이 있는지 보이지만 커튼은 분명한 존재감을 드러내며 공간을 나눈다. 소설도, 사진도, 그리고 영화도 커튼과 같은 모호한 경계이다. 소설은 소설일 뿐일 수는 없다. 그러나 사진을 통해 본 시선이 전부 진실일 수도 없다. 시선은 현실과 허구 사이에서 부유한다. 이는 고스란히 영화라는 더 큰 시선을 통해 제시된다.

 

 영화는 여러 이미지를 끊임없이 중첩한다. 소강의 카메라 셔터 소리는 도박장에서의 총소리와 비슷하게 들린다. 이립중의 아내와는 관련없는 장소인 도박장에서 시작되는 그녀의 독백은 말하는 주체를 가늠하기 어렵게 만든다. 아내가 창밖을 내다보는 장면에서, 창문을 열자 창밖에 매달린 청소부가 겹쳐 보인다. 영화는 붉은빛이 비치는 소년의 암실에 이어서 붉은 조명의 화장실에 서있는 이립중을 비춘다. 겹겹이 쌓이며 이미지들의 경계는 점차 흐릿해진다. 현실과 허구, 진실과 거짓 사이 느슨하고도 교묘하게 얽힌 실타래 속에 삶은 방향을 잃는다.

 

 영화의 초반부에는 아내의 독백이 등장한다. 봄은 그저 계절의 반복일 뿐, 그걸 아는 사람에게는 아무런 의미도 없다고 말한다. 영화의 말미에는 두 가지 결말이 중첩된다. 그리고 아내는 헛구역질을 한다. 총을 난사하는 이립중의 모습은 영락없는 테러리스트, 공포분자이다. 그렇다면 그의 아내는 어떤가. 또 소년과 소녀는 어떠한가. 아내의 헛구역질은 이립중을 향할지도, 혹은 어쩌면 공포분자일지도 모르는 스스로를 향할지도 모른다. 아니면 그저 이립중의 죽음과 동시에 염원하던 임신의 전조가 나타난 것일수도 있다. 우리는 마지막까지 어떤 것도 확신할 수 없다. <공포분자>는 모호한 시선으로, 공존과 동시에 단절된 우리의 모습을 바라본다.

작성자 . rebrolee

출처 . https://blog.naver.com/jaylee0723/223728308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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