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INELAB2025-04-11 17:49:02
역사에 길이 남을 롱테이크 장면
인디와이어 선정, 영화 역사상 최고의 롱테이크 10선

다들 한 번쯤은 ‘롱테이크’에 대해 들어본 적 있으시죠.
롱테이크는 말 그대로 한 개의 숏이 여러 분 동안 지속되는 장면을 의미하며,
때로는 한 장면 전체를, 심지어 여러 장면을 하나의 숏으로 담아내기도 합니다.
최근 롱테이크를 적극적으로 활용한 넷플릭스 시리즈 <소년의 시간>과 애플 티비의 <더 스튜디오>가
큰 사랑을 받고 있는 가운데, 인디와이어가 선정한 ‘영화 역사상 최고의 롱테이크 10선’을 공개했습니다.
인디와이어는 롱테이크는 본질적으로 ‘속임수의 부재’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연출하기 어려운 기법이며,
종종 필요성보다는 과시적인 목적에서 사용되기도 하지만, 적절하게 활용되고 완벽하게 구현될 경우,
스크린에서 가장 짜릿한 경험을 선사할 수 있다고 설명하였습니다.
[인디와이어 선정 목록]
① <어톤먼트>, 조 라이트
② <로프>, 알프레드 히치콕
③ <검은함정>, 오손 웰즈
④ <소이 쿠바>, 미하일 칼라토조프
⑤ <좋은 친구들>, 마틴 스콜세지
⑥ <올드보이>, 박찬욱
⑦ <플레이어>, 로버트 알트만
⑧ <주윤발의 첩혈속집>, 오우삼
⑨ <러시아 방주>, 알렉산더 소쿠로프
①⓪ <칠드런 오브 맨>, 알폰소 쿠아론
*영화 순서와 순위는 무관합니다.








Relative cont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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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27회 크리틱스 초이스 TV드라마 부문 <오징어 게임> 주요 3개 부문 후보선정
안녕하세요.
영화/OTT 콘텐츠 큐레이션 웹 매거진 '씨네랩'입니다.
오늘은 2022년 '제27회 미국의 크리틱스 초이스 어워즈'의
주요 후보작들을 소개하려고 합니다.
'크리틱스 초이스 어워즈'는 미국 방송영화비평가협회에서 선정하는 시상식으로
비평가들이 선정하는만큼 권위있는 시상식이라고 알려져있습니다.
올해 TV드라마 부문에 <오징어 게임>이 드라마 시리즈상, 드라마 시리즈 남우주연상(이정재),
그리고 외국드라마상의 총 3개 부문 후보에 올라서 화제가 됐습니다.
그럼 본격적으로 주요 부문 후보작들을 함께 살펴보실까요?
작품상
1.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
2. <틱,틱!..붐!>
3. <파워 오브 도그>
4. <듄>
5. <돈 룩 업>
6. <코다>
7. <리커리쉬 피자>
8. <킹 리차드>
9. <나이트메어 앨리>
10. <벨파스트>
▶ 정말 쟁쟁한 후보작품들이 많습니다. 얼마전 골든글로브 작품상 후보가 발표가 됐는데요. <듄>은 골든글로브에 이어 크리틱스 초이스에도 작품상 후보에 올랐으며,
아마 이번 아카데미/오스카의 작품상 후보에 오를 것으로 예상됩니다.
감독상
1. <리커리쉬 피자> (폴 토마스 앤더슨)
2. <파워 오브 도그> (제인 캠피온)
3. <듄> (드니 빌뇌브)
4.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 (스티븐 스필버그)
5. <나이트메어 앨리> (기예르모 델 토로)
6. <벨파스트> (케네스 브래너)
▶정말 감독상 후보군들도 쟁쟁합니다. 주목할 점은 <파워 오브 도그>의 제인 캠피온 감독과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의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감독상 재대결 매치입니다.
1993년에 <피아노>를 연출한 제인 캠피온 감독과 <쉰들러 리스트>의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이 다시 만났습니다. :)
남우주연상
1. <시라노> (피터 딘클리지)
2. <맥베스의 비극> (덴젤 워싱턴)
3. <킹 리차드> (윌 스미스)
4. <틱, 틱!...붐!> (앤드류 가필드)
5. <파워 오브 도그> (배네딕트 컴버배치)
6. <피그> (니콜라스 케이지)
▶ 오랜만에 남우주연상 후보로 돌아온 <피그>의 니콜라스 케이지입니다. 피터 딘글리지 배우를 제외하고는 모든 배우들이 오스카 후보나 오스카 수상의 전적이 있는 배우들인데요.
과연 이번 크리틱스 초이스에서는 어느 배우가 수상할지 기대가 됩니다.
여우주연상
1. <타미 페이의 눈> (제시카 차스테인)
2. <하우스 오브 구찌> (레이디 가가)
3. <잃어버린 딸> (올리비아 콜먼)
4. <빙 더 리카르도> (니콜 키드먼)
5. <리커리쉬 피자> (알레나 하임)
6. <스펜서> (크리스틴 스튜어트)
▶<리커리쉬 피자>의 알레나 하임 배우가 수상을 할지 기대가 되는데요. 후보에 오른 배우들이 모두 상을 받을 만한 자격과 실력이 있지만,
씨네랩의 예상으로는 <하우스 오브 구찌>의 레이디 가가의 수상이 유력하지 않나 조심스럽게 예측해봅니다.
남우조연상
1. <벨파스트> (제이미 도넌)
2. <빙 더 리카르도> (J.K 시몬스)
3. <하우스 오브 구찌> (자레드 레토)
4. <벨파스트> (키어런 하인즈)
5. <파워 오브 도그> (코디 스밋 맥피)
6. <코다> (트로이 코처)
▶ <파워 오브 도그>의 코디 스밋 맥피는 정말 인상적인 연기를 보여주었습니다. 쟁쟁한 남우조연상 후보 중에서 <벨파스트>의 2명의 배우들이 후보에 올랐네요.
남우조연상 수상도 <벨파스트>의 배우 중 한명이 수상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여우조연상
1. <벨파스트> (커트리나 발프)
2.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 (아리아나 드보스)
3. <킹 리차드> (안저뉴 앨리스)
4. <파워 오브 도그> (커스틴 던스트)
5.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 (리타 모레노)
6. <매스> (앤 다우드)
▶여우조연상 후보는 꽤 낯선 배우들이 많아보이지만, 올해 모두 인상깊은 연기를 보여준 훌륭한 배우들입니다.
씨네랩은 조심스럽게... <파워 오브 도그>의 커스틴 던스트의 수상을 예측해봅니다.
앙상블 연기상
1. <벨파스트>
2. <돈 룩 업>
3. <파워 오브 도그>
4.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
5. <리커리쉬 피자>
6. <더 하더 데이 폴>
▶ SAG의 앙상블 연기상처럼 크리틱스 초이스에도 연기 앙상블상이 있네요. 아무래도 배우들의 합을 주요 수상 기준으로 보는 바 배우들이 많이 출연하는 작품이 수상 가능성이 높지 않을까 싶습니다.
<벨파스트>와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가 수상 가능성이 높을 것 같네요 :)
각본상
1. <리커리쉬 피자> (폴 토마스 앤더슨)
2. <돈 룩 업> (애덤 맥케이, 데이빗 시로타)
3. <벨파스트> (케네스 브래너)
4. <킹 리차드> (자흐 바일린)
5. <빙 더 리카르도> (애런 소킨)
▶ 감독들은 본인이 각본을 쓰고 연출까지 맡아서 하는 경우가 많죠? 봉준호 감독도 대표적인 케이스이구요.
<리커리쉬 피자>의 폴 토마스 앤더슨도 천재 감독이자 각본가로 유명한데요. 폴 토마스 앤더슨 VS 애런 소킨 VS 애덤 맥케이의 삼파전이 예상됩니다.
각색상
1. <파워 오브 도그> (제인 캠피온)
2. <잃어버린 딸> (매기 질렌할)
3.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 (토니 커쉬너)
4. <듄> (존 스파이츠, 드니 빌뇌브, 에릭 로스)
5. <코다> (시안 헤더)
▶올해는 <파워 오브 도그>가 평단의 엄청난 칭찬을 받으며 올해 영화의 다크 호스로 평가 받습니다.
<파워 오브 도그>의 제인 캠피온 VS <잃어버린 딸>의 매기 질렌할 감독이 대결이 눈에 띄는데요. 아! <듄>의 드니 빌뇌브 감독도 있네요. 각색상 후보군들도 정말 쟁쟁해서 예측하기가 어렵습니다.
외국어 영화상
1. <드라이브 마이 카> (일본)
2. <신의 손> (이탈리아)
3. <플리> (덴마크)
4. <사랑할 땐 누구나 최악이 된다> (프랑스)
5. <A 히어로> (스페인)
▶ 올해 외국어영화상 후보도 정말 쟁쟁합니다. 가장 주목할만한 영화는 하마구치 류스케 감독의 <드라이브 마이 카>인 것 같습니다.
올해 정말 많은 평단과 관람객의 호평을 받은 작품으로 외국어영화상까지 수상할 수 있을지 기대가 됩니다.
그리고! <사랑할 땐 누구나 최악이 된다>는 씨네랩의 전신인 하이,스트레인저의 공동배급 작품입니다. 정말 자랑스럽고 기쁜 소식입니다! :)
내년 상반기 개봉 예정 중에 있으니 많은 관심과 사랑 부탁드리겠습니다!
그리고 크리틱스 초이스 외국어 영화상의 수상도 간절히 기대해봅니다!
<오징어 게임> TV드라마 부문 총 3개 부문 후보
▶마지막으로 올 한해 전세계 콘텐츠 시청자들의 인기를 독차지한 자랑스런 대한민국 콘텐츠 <오징어 게임>의 크리틱스 초이스 후보 선정 소식입니다.
크리틱스 초이스는 영화 뿐만 아니라 TV드라마 부분의 수상도 진행되는데요. <오징어 게임>이 바로 드라마 시리즈상, 드라마 시리즈 남우주연상 (이정재), 외국 드라마상 등 총 3개 부문에 올랐습니다.
정말로 축하드리며. 1월 9일 수상도 간절히 기도하고 응원하겠습니다.
씨네랩 에디터 Hez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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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친밀성 장인의 퀴어 외로움 탐구
루카 구아다니노 감독은 친밀성‧사랑의 미묘한 감정을 포착해 극적으로 만드는 데 가장 탁월한 재능을 가진 감독 중 하나다. 상류층 중년 여인의 마음에 불어닥친 고요한 폭풍을 펼쳐내는 〈아이 엠 러브〉(2011), 치정癡情이 치사致死 사건에 이르는 과정을 감각적으로 그려낸 〈비거 스플래쉬〉(2017), 더 이상 무슨 설명이 필요할까 싶은 〈콜 미 바이 유어 네임〉(2018), 사회가 금지하는 사랑을 ‘식인’에 빗댄 충격적이고도 강렬한 러브 스토리 〈본즈 앤 올〉(2022) 등등. 야심 차게 도전한 공포영화 〈서스페리아〉(2019)는 영 호불호가 갈렸지만, 그는 〈챌린저스〉(2024)로 다시금 ‘자기 주제’로 돌아와 그를 추앙할 수밖에 없도록 만들었다. 윌리엄 버로스의 원작 〈퀴어〉의 연출을 그가 맡기로 했다는 소식을 듣고 가슴이 두근거린 이유였다.
오래전에 읽은 원작의 줄거리는 잘 기억나지 않는다. 《퀴어》와 짝을 이루는 작품인 《정키》와 더불어, 우울하고 건조한 분위기만이 강하게 기억에 남아 있다. 어쩌면 당연한 건지도 모른다. 《퀴어》는 어느 외로운 부자 게이가 젊고 아름다운 남성의 관심을 구걸하며 내내 괴로워한다는 것 말고는 별다른 줄거리가 없는 작품이니까.
퀴어 소설, 퀴어 영화에서 한물간 게이 남자들은 보통 주변부에서 조연 역할만 맡는다. 젊고 파릇한 주인공들이 눈앞의 사랑을 붙잡지 못했을 때 어떤 비참한 삶을 살아가는지 환기하는 부수적이지만 중요한 역할 말이다. 제임스 볼드윈의 퀴어 고전 소설 《조반니의 방》부터 몇 년 전 개봉해 호평받은 영화 〈네 마음에 새겨진 이름〉까지. 게이 텍스트에서 ‘제때’ 짝을 찾지 못하고 방황하는 인물들은 늘 되고 싶지 않은 미래만을 표상했다.
〈퀴어〉의 특이점은 여기서 출발한다. 주인공 리는 처음부터 젊고 예쁜 남자를 혈안이 되어 찾아다니는 사람으로 등장한다. 남자랑 ‘둘만 있으면 자려고 드는’ 리의 평판은 바닥이고, 그런 리의 외로움을 알아보는 몇몇 멕시코 청년만이 리에게 몸을 허락한다. 그러던 와중 눈부신 청년 유진이 나타난다. 리는 유진을 처음 마주하는 순간부터 그에게 ‘영혼이 이끌린다’. 영화는 반복적으로 유진을 욕망하는 리 영혼의 움직임을 보여준다. 흥미로운 건 유진을 사랑스럽게 다듬는 영혼과는 달리 제자리에서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육체다. ‘차갑고 미끄러워서 잡기 어려운 물고기’와도 같은 유진의 곁에서, 리는 내내 전전긍긍하고, 안달복달하며, 처연할 정도로 애절하다. 일주일에 두 번만이라도 내게 다정하게 대해달라는 리의 간청은 자유롭게 유진을 애무할 수 있는 영혼과 달리 대체로 그를 냉정하게 대하는 유진 육체의 호소와도 같다.
‘대대로’ 퀴어의 피를 타고났다는 것에 대한 수치심에 유진의 기분과 태도에 다라 삶의 모든 행복이 결정되는 또 다른 비참이 더해진 리의 가여운 외로움이야말로 이 영화가(그리고 원작이) 근본적으로 다루려 하는 것이다. 리가 공허함에 마약에 빠지고, 텔레파시를 가능케 해주고 심지어는 상대의 생각을 조종할 수 있게까지 해준다는 신비한 약초 ‘야헤’를 찾아 나서는 것은 모두 이 외로움 때문이다. 리가 유진과 함께 에콰도르의 어느 숲으로 들어가 야헤의 비밀을 탐험하는 부분은 전반부보다 몰입감이 현저히 떨어지고, 감독이 아직도 〈서스페리아〉에 미련이 남았나 싶은 불길한 짐작을 주기도 하지만 영원히 젊고 아름다운 유진에게 절대적 타자일 수밖에 없는 리의 외로움에 초점을 맞춰본다면 어느 정도 이해가 되기도 한다. 더불어 리는 야헤 경험을 통해 이성애와 동성애를 오가는 유진 역시 나름의 불안을 갖고 있다는 것을 확인하기도 한다. 그래봐야 그 대상이 리일 수는 없겠지만 말이다.
다만 몸도 제대로 가누지 못할 정도로 나이든 리가 수십 년 후에도 여전히 유진을 갈망하고 있다는 듯한 결말의 장면은 퀴어의 외로움을 너무 감상적으로 해석한 것만 같아 아쉽다. 늙고 한물간 게이인 리의 외로움은 비단 유진의 거부에서만 기인하지 않는다. 이 외로움은 게이/퀴어 존재론의 핵심이다. 그러나 엔딩 장면은 이를 유진을 향하는 개별적인 마음으로 축소하는 효과를 낳는다. 이 장면에서, 문득 〈문라이트〉의 열린 결말이 얼마나 위대했는지를 다시금 생각했다. 친밀성 장인의 퀴어 외로움에 대한 감각적인 이번 탐구는, 절반의 성공인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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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IWFF 데일리] 폐허된 억압 풀기
감독: 키라 코발렌코
출연: 밀라나 아구자로바, 알릭 카라에프, 소슬란 쿠가에프, 케탁 비빌로프
시놉시스: 한때 광산촌이었던 북오세티야. 이다는 가족을 사랑하지만 숨 막히는 통제로부터 벗어나려 한다. 오빠 아킴이 집으로 돌아오면서 치유되지 못한 트라우마가 하나둘 밝혀진다.
첫 장면에서 아다는 외투를 코까지 올려 입은 채 벽에 기대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다. 영화의 시작에서 이 이미지를 마주했을 때 옷에 가려 보이지 않는 아다의 입이 웃고 있을지 아니면 긴장에 떨고 있는지 모르겠고 궁금하다는 인상을 받았다. 이런 인상은 이 영화가 관객에게 아다를 보이는 방식과도 일치하는 부분이 있다. 아다가 애타게 기다리던 사람은 집을 나갔던 오빠 아킴이다. 전사를 모른 채 재회하는 남매를 마주하게 되는 관객의 입장에서 이들의 만남은 조금 이상해 보인다. 아다는 집에 돌아온 아킴에게 지나치게 집착하는데 그 관계가 남매 사이보다 남녀 사이로 느껴지는 부분이 더러 있다. 마찬가지로 아다의 동생 다코는 아다에게 지나치리만큼 의존한다.
가장 이상하게 느껴지는 건 아다 아다 아버지가 이들을 대하는 태도다. 아다의 아버지는 아다에게 집안일을 모두 하도록 시키면서 그에게 집착하는 모습을 보이는데, 이 모습이 매우 강압적으로 보이지만 그 속에서 악의는 느껴지지 않는다. 아다의 아버지는 아다에게 특히나 동생을 챙기는 걸 강조하는데 동생은 한창 학생 또래의 나이로 보이지만 학교를 다니지 않고 일을 하는 것으로 보이며 아다도 그런 시기를 거쳐왔을 것임을 추측하게 만든다. 아다가 아프게 된 원인이 밝혀질 때까지 관객은 이런 가족의 모습을 보면서 무언가 이상하다 생각할 수밖에 없다. 단 하나 느껴지는 건 모두의 행동에 악의는 없다는 것이다.
영화 안에서 아다가 겪은 일은 직접적으로 칭해지지 않고 아다가 인질 사건을 겪었다는 정도로만 묘사되는데 이 영화는 베슬란 초등학교 인질 사건(2004)을 겪은 후 북오세티야의 어느 마을을 배경으로 한다. 베슬란 초등학교 인질 사건 당시 체첸 반군은 베슬란 초등학교에 무장 침입해 1000명 이상의 인질극을 벌였고, 체첸 반군과 러시아군 간의 총격전으로 330여 명이 사망한 러시아를 비롯해 세계 최악의 인질극으로 남은 사건 중 하나다. 아다가 어떤 상황에서 이 인질극에 처하게 됐는지는 구체적으로 알 수 없으나 아다가 거의 성인이 다 됐다는 점과 배의 아문 상처는 사건 이후 꽤 오랜 시간이 지났음을 짐작하게 만든다.
아무리 많은 시간이 흐른다 해도 비극적 사건은 그것을 겪은 사람들에게 영향을 끼칠 수밖에 없다. 아다의 마을에는 사건 이후 폐허와 불안의 정서를 깊게 깔려있다. 아다 아버지가 친구와 나누는 대화에서 친구의 결국엔 다들 고향으로 돌아온다며 아킴이 다시 고향으로 올 것이라는 말은 그 불안감이 아다 아버지만의 것이 아님을 보여주는 장면일 것이다. 아다 아버지는 이들 사이에서 자신의 아이들을 끔찍이 여기는 아버지로 인정되고, 그런 아버지의 곁을 지키는 아다와 다코도 효심 있는 아이들로 받아들여진다.
그러나 비극을 겪었다 해도, 어떤 이유로든 아다 아버지의 아다에 대한 억압이 정당화될 수는 없다. 아다의 아버지는 아다가 도망치지 못하도록 아다의 여권을 숨기고, 집 문을 걸어 잠갔다. 아다가 도망치는 날에는 어김없이 주변에 수소문해 그를 다시 찾아와 곁에 뒀다. 수술로 호전될 가능성이 있는지는 모르나 병원에 아다의 병에 대해 진단받으러 가지도 않는다. 결국 아다 아버지의 행동은 일종의 방치다. 아버지의 억압에 누구의 도움 없이는 도망칠 수 없었던 아다는 오빠 아킴이 옴으로써 다시 집을 떠나는 꿈을 꾼다.
결국 아다는 도망치려는 자신에 대한 충격으로 쓰러진 아빠를 그냥 두고 떠나려고까지 하게 되는데 결국엔 오빠의 도움으로 구조되긴 하지만, 아버지는 후유증으로 말을 할 수 없게 된다. 이제 아버지가 말을 할 수 없으니 자신이 말할 수 있게 됐다며 소리치는 아다는 울분에 차있다. 자신이 더이상 억압할 힘이 없자 취하는 행동으로 보이는 부분이 있지만, 아다 아버지는 결국 아다에게 여권을 내미는데, 그런 아버지를 아다가 껴안고 그 상태에서 경련이 와 그대로 굳는 아버지의 모습은 가부장제 억압의 마지막을 상징하는 의미로도 다가오는 지점이 있다.그럼에도 아다는 자신의 마을을, 아버지를 벗어난다. 아킴의 오토바이를 타고 달리는 두 사람을 결혼 행렬이 뒤따르면서 영화의 카메라는 그 일행이 들고 있는 캠코더로 넘어가 거친 핸드헬드 촬영으로 바뀐다. 두 사람의 뒷모습이 흔들리며 카메라에 찍히고, 아다의 여권과 기저귀가 든 가방은 한쪽 끈이 떨어져 있다. 떨어진 끈을 잡고 있던 아다는 이내 그 끈마저 놓아 버리고, 가방은 도로에 뒹굴며 멀어진다. 내내 카메라의 시선에 머물러있던 아다는 그렇게 완전히 해방된다.
아다의 모든 순간을 연기하는 밀라나 아구자로바는 처음인데도 그 연기가 엄청난데 영화의 결도, 연기의 결도 상당히 다르긴 하지만 <안티고네>의 나에마 리치가 떠오르는 순간이 있었다. <꼭 쥐었던 주먹 풀기>는 제74회 칸 영화제 주목할만한 시선 부문에서 대상을 수상한 바 있다.
Schedule
2022-08-26 13:00-14:37 <꼭 쥐었던 주먹 펴기> 메가박스 상암월드컵경기장 3관
2022-08-31 13:30-15:07 <꼭 쥐었던 주먹 펴기> 메가박스 상암월드컵경기장 4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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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트립 투 그리스> 오디세우스의 두 발자국을 쫓다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영국 유명 배우 '스티브(스티브 쿠건)'와 '롭(롭 브라이든)'은 ‘옵저버’ 매거진의 제안으로 6일 동안의 그리스 여행에 나선다. 터키 아소스를 시작으로 이타카에 이르기까지 <오디세이아> 속 오디세우스의 발자취를 따르는 둘은 동시에 레스보스 섬에서는 레즈비언이라는 단어의 유래, 델포이 신전에서는 신탁을 받는 방법, 아테네 디오니소스 극장에서는 그리스 비극과 희극의 차이 등 온갖 주제로 인생과 예술, 사랑에 대해 토론과 농담을 나눈다. 이처럼 유쾌하던 여행은 스티브가 아들의 예상치 못한 전화를 받고 롭이 아내의 빈자리를 절실히 느끼는 찰나에 뭉클한 인생 여정으로 변모한다.
2010년 <트립 투 잉글랜드>를 시작으로 <트립 투 이탈리아>와 <트립 투 스페인>을 거쳐 2021년 <트립 투 그리스>로 이어지는 마이클 윈터바텀 감독의 '트립' 시리즈는 단순히 유명 관광지를 둘러보는 작품이 아니다. 마치 <꽃보다 청년> 시리즈를 영화관에서 보는 듯한 독특한 매력을 품고 있기 때문이다. 영국을 대표하는 배우 스티브 쿠건과 롭 브라이든이 여러 도시를 여행하며 보는 풍광과 즐기는 음식, 만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영화는 때로는 극적으로, 때로는 그들 바로 옆에서 함께 여행을 즐기는 것처럼 사실적으로 전달한다.
시리즈의 네 번째 영화인 <트립 투 그리스>도 다르지 않다. 여름날 에게 해의 바다를 수영하는 행복, 다 무너져가는 델포이 신전에서 안개 낀 그리스의 산등성이를 바라보는 벅참과 허무함, 그리스의 자랑인 꿀술에 곁들인 다양한 해산물과 육류 요리의 향연은 당장 영화관을 박차고 그리스로 날아가고 싶은 욕구를 자극한다. 여행지에서의 로맨스와 예상치 못한 만남은 이 모든 경험을 더욱 화려하고 다채롭게 즐기도록 도와준다.
하지만 이 영화를 이국적인 도시와 매력적인 레스토랑, 맛있는 음식 뜨거운 태양과 푸른 바다의 향연만으로는 온전히 표현할 수 없다. <알쓸신잡> 마냥 영국의 시인 윌리엄 워스워즈, 낭만파 시인 바이런과 셸리, 세르반테스와 돈키호테와 같이 특정 인물을 발자취를 따라가며 그에 대한 깊은 대화를 나누었던 전작들처럼, <트립 투 그리스> 역시 터키 아소스에 위치한 트로이 유적지로부터 오디세우스의 발자취를 따라가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그리스를 대표할 수 있는 수많은 인물들과 영웅들 중 굳이 오디세우스를 여행의 나침반으로 선정한 것은 <트립 투 그리스>에서 가장 흥미로우면서도, 영화를 특별하게 만드는 대목이다. 자타공인 그리스 신화 최고의 영웅인 헤라클레스와 그리스의 수도인 아테네의 시조 테세우스를 비롯해 아르고 호의 원정을 이끈 이아손의 행적을 따라가더라도 영화에서 보여주는 대부분의 장소를 둘러보는 데 사실 아무 문제가 되지 않기 때문에 더욱 의미심장한 선택이기도 하다. 그 이유는 두 주인공이 겪는 서로 다른 모습의 삶에 담겨 있다.
성공에 대한 야망이 가득해 유럽 곳곳을 돌아다니던 스티브는 어느새 성인이 된 아들로부터 할아버지가 위독하다는 소식을 접한다. 즐거운 여행과 로맨스를 즐기다가 갑작스러운 충격에 빠진 스티브에게 이제 그리스는 단순한 여행지가 아니다. 그리스인들이 저승세계의 입구로 여겼다는 동굴 안에서 그는 자신이 마치 아버지 대신 스틱스 강의 뱃사공 카론이 모는 나룻배를 타는 듯한 불길한 느낌을 받고, 밤에는 영혼들이 영원히 떠돌아다닌다는 아스포델 들판에서 아버지를 만나는 악몽까지 꾼다. 결국 마지막 목적지인 이타카로 향하던 중 부고를 접한 스티브는 급히 아들이 있는, 20년 전에 이혼한 아내와 함께 살았던 집으로 돌아간다.
한편 편안한 여행을 추구하는 롭은 일주일 간 여행을 떠난 것에 불과한데도 끊임없이 가족을 그리워한다. 낮과 저녁을 가리지 않고 딸에게 영상통화를 거는 그는 자신만이 그리스의 미를 즐기는 것이 불편하고, 잠시 집을 떠난 사이 더욱 커지는 아내의 빈자리를 좀처럼 견디지 못한다. 그래서 스티브가 영국으로 돌아간 후에도 그는 아내를 마지막 목적지였던 이타카로 불러 멋진 재회를 즐기고, 그녀와 함께 여행을 계속하며 그토록 바라던 소소하고 행복한 일상을 영위한다.
이러한 스티브와 롭의 이야기는 <오디세이아> 속 오디세우스를 구성하는 두 모티브를 각각 나누어 재해석한 결과라고 할 수 있다. 그가 집으로 가고 싶은 지친 여행자이면서 호기심 가득한 열정적인 여행자라는 두 개의 모티브가 겹쳐진 영웅이고, 그래서 선역도 아니고 악역도 아니며 매우 입체적이고 인간적이기에 가능한 해석이다. 우선 오디세우스는 지친 여행자다. 단순히 트로이에서 10년을 보내고, 바다에서 10년을 떠돌았기 때문이 아니다. 세상 끝에 다다른 항해 중 잠시 들른 저승에서 어머니 안티클레이아의 혼을 만나 임종을 지키지 못한 깊은 슬픔에 빠지기 때문이며, 갓난아기 이후로 보지 못한 아들 텔레마코스가 자신을 대신해 가족을 지탱해야 했던 것에 죄책감을 느끼기 때문이다. 작중 스티브는 이러한 오디세우스를 닮았다.
동시에 오디세우스는 열정적인 여행자다. 그는 키르케와 칼립소가 제안하는 안정적이고 죽지 않는 삶을 마다하고 바다로, 이타카로, 아내를 향해 끊임없이 항해한다. 어떤 괴물과 시련이 기다리고 있어도 그리워하던 아내 페넬로페를 만나고, 그녀를 괴롭히던 모든 구혼자들을 죽이고 행복을 누릴 때까지 결코 여행을 멈추지 않는다. 그의 여행은 새로운 세상을 탐구함과 동시에 집으로 돌아가는 과정이다. 이 오디세우스는 유머와 호기심으로 무장한 채 스티브의 여행까지 이어받은 롭의 모습으로 재탄생한다.
중요한 것은 스티브와 롭의 서사로 나뉜 오디세우스의 여정을 하나로 합쳐서 들여다볼 때, <트립 투 그리스> 속 주인공들이 오디세우스의 항해를 따라갈 수밖에 없었던 이유가 드러난다는 사실이다. 이는 오디세우스가 그리스의 모든 영웅들과 가장 다른 삶을 추구한 영웅이기에 가능한 일이다. 이는 그를 그리스인 중 최초의 현대인이라고 볼 수 있는 이유이고, 그렇기에 그가 현재를 사는 우리들의 삶을 일주일 간의 여행으로 축약시키는 이 영화가 본보기로 삼기에 가장 적합한 그리스 사람이라고 할 수 있는 이유다.
그가 다른 그리스 영웅들과 목표가 다르다는 사실은 아킬레우스와의 만남과 이후 그의 행동에서 엿볼 수 있다. 오디세우스는 저승에서 만난 아킬레우스에게 살아생전에 가장 위대한 전사였고 그 이름은 죽은 후에도 세상에서 영원히 빛난다고 위로를 건넨다. 이에 아킬레우스는 "죽음에 대해 내게 그럴싸하게 말하지 마시오. 영광스런 오디세우스여! 나는 세상을 떠난 모든 사자들을 통치하느니 차라리 지상에서 머슴이 되어 농토도 없고 재산도 많지 않은 가난한 사람 밑에서 품이라도 팔고 싶소이다”라고 답한다. 이러한 아킬레우스의 한탄을 들은 후 오디세우스는 옛 전우의 말대로 살아간다. 칼립소와 함께 영원히 살 수 있는 기회를 마다하며 인간으로서 자신의 유한함을 인정하고, 귀향하여 페넬로페와 함께 이승에서의 시간을 행복하고 값지게 살아나간다.
이때 '칼립소(kalupso)'라는 이름이 그리스어로 '감추는 자'라는 뜻임을 고려하면, 오디세우스가 영원히 살되 세상에서 잊히고 자신의 삶이 무의미해지는 것을 거부했음을, 대신 아킬레우스가 말한 평범하고 소소한 일상으로의 복귀를 삶의 의미로 선택했음을 알 수 있다. 그는 삶을 포기하면서까지 불멸의 명성을 추구하던 그리스 영웅들과는 달리 지금 당장의 삶의 아름다움에 주목했고, 평범한 인간으로서의 행복을 손에 넣기 위해 발버둥 친 영웅인 것이다. 그 결과 오디세우스는 완전무결해 보이는 신화 속 인물들과 달리 인간적이고 소박한 면모를 가졌고, 그 어떤 영웅들보다 현대인들의 공감을 이끌어 낼 수 있다. 따라서 두 주인공이 오디세우스의 발자취를 따르는 건 최선의 선택일 수밖에 없다. 오디세우스는 그리스 여행 중 현재까지의 삶을 되돌아보고, 여행의 끝에서 일상의 소중함을 느끼며, 결국 각자의 삶으로 되돌아가는 여정을 가장 먼저 경험한 그리스인이기 때문이다.
이에 더해 <트립 투 그리스>는 오디세우스의 인간적인 삶을 답습하는 것을 벗어나서 그의 여행을 현실적인 범주로 확장시키기도 한다. 스티브가 영화 촬영 당시 자신을 도왔던 스태프를 만나 난민 캠프로 가는 시퀀스가 대표적이다. 자신의 의지와는 무관하게 머나먼 남의 땅에 와서 기약 없는 생활을 지속하고, 지중해 온갖 곳을 표류하며 집 없이 전전긍긍하며, 정착할 수 있는 집으로 가고 싶어 하는 난민들의 모습은 수천 년 전에 살았던 한 남자를 닮았다. 이때 대본 없이 실제로 운영하는 레스토랑에 들어가 현지 상황에 자연스럽게 녹아들면서 다큐멘터리와 극영화를 자유롭게 넘나드는 원터바텀 감독의 연출은 그리스의 현실을 자연스럽게 영화와 오디세우스의 이야기에 스며들도록 유도하면서 더 크고 짠한 울림을 남긴다.
물론 <트립 투 그리스>의 모든 점이 좋지는 않다. 차 안에서 서로 자신이 가성을 더 잘 쓴다면서 '그리스'의 테마곡 'Grease is the word'를 부르는 장면처럼 두 배우의 상황극이나 농담이 과하게 길어지는 순간에는 극본 없이 배우들의 역량을 믿는 윈터바텀 감독의 스타일이 성공과 실패 사이에 아슬아슬하게 걸쳐 있는 듯 보인다. 허구와 사실의 경계를 넘나들면서 영화에 생동감을 불어넣기는 하지만, 또 그렇기에 안정된 형식의 부재가 낳는 태생적 불안함을 떨치지 못하는 것이다. 이에 더해 그리스 신화나 비극, 역사 등을 비롯한 인문학 전반에 대한 관심의 차이에 따라 만족도가 널뛸 수 있는 작품이라는 점도 부정할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단점들이 그리스 여행이라는 코스 요리를 즐기는 것 그 자체의 즐거움을 가리지는 못하기 때문에, 두 배우의 여행과 대화가 선사하는 낭만은 충분히 만족스럽다.
E(Exceeds Expectations, 기대 이상)
그리스 최초의 현대인을 따라 걷는 그리스의 과거와 현재
*씨네랩으로부터 초청받아 참석한 영화 <트립 투 그리스>의 시사회 관람 후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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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지에 대한 공포
30년간 계속된 일가족 연쇄 살인 사건. 유일한 증거는 피해자의 생일이 14일이라는 것과 ‘롱레그스’라는 서명이 적힌 암호 카드뿐. 영원히 미제로 남을 뻔한 사건에 남다른 능력의 FBI 요원 ‘리’가 투입되고 지금껏 아무도 알아내지 못한 암호를 해석하는데... 모든 프레임에 악마의 단서가 심어져 있는 지난 10년간 가장 무서운 영화
<롱레그스> 줄거리
이질적일 만큼 새하얀 장소에 나타난 차. 혼자 집 밖으로 나온 아이. 나오는 인물은 아이 하나지만 비워져 있는 차 안, 뒤쪽에서 들려오는 뻐꾹뻐꾹 소리로 아직 드러나지 않은 인물이 공간에 존재함을 인지시킨다. 4:3 비율로 보이는 장면에서 이는 보는 이로 하여금 불안하고 스산한 기분을 안기며 시작한다.
주인공 ‘리 하커’는 FBI 요원으로 뛰어난 직감을 인정받고 연쇄 살인 사건에 투입된다. 용의자가 있는 장소를 특정하고 알 수 없는 그림들에게서 정답을 유추해 내는 리의 직감은 기이할 정도다. 단순히 ‘직감이 좋음’이라는 특성으로 치부하기엔 초자연적인 현상 같은 리의 직감.
FBI의 유능한 요원들조차 밝혀내지 못했던 살인사건의 진상은 리의 직감으로 서서히 밝혀지기 시작한다. 하지만 리조차 누군가에게 끌려가듯이 풀어나가고 있기에 분명 사건을 수사하고 있는 주인공을 따라 영화가 진행됨에도 불구하고 살인사건에 대한 의문을 풀 수 없다.
그런데 이러한 의문은 범인에 대한 것이 아니다. 수사 시작부터 우리는 연쇄 살인 사건의 범인이 롱레그스임을 알고 있으며, 심지어 얼마 지나지 않아 롱레그스의 얼굴도 알게 된다. 영화 속에서 궁금한 점은 이제 어떤 방식으로 살인을 저질러 왔냐는 것이다. 롱레그스는 어떻게 집에 침입했고 아무 흔적도 없이 빠져나갈 수 있었던 걸까.
<롱레그스>는 얼핏 보면 수사물 형식을 띄고 있다. 신입 요원 리 하커가 연쇄 살인 사건을 수사하는 게 영화 중후반부까지의 내용이니까. 하지만 초반에 미약하게 보여주던 리의 개인적인 이야기가 중반부터 본격적으로 드러나면서 살인 사건, 그리고 롱레그스가 리와 연관이 있음이 보여진다. 리는 그렇게 살인사건에서 한 발짝 떨어진 수사관이었다가 어쩌면 연쇄 살인사건에서 살아남은 생존자일지도 모르게 되며 리의 개인사는 곧 살인사건의 핵심이 된다.
과거를 4:3 화면 안에서 비추며 이해할 수 없는 기괴한 분위기를 한껏 살렸으며, 사건을 풀어가는 요원들도 이 사건을 벌인 롱레그스도 설명하지 못하고 설명해도 이해하지 못하는 악마의 존재는 오컬트적인 측면을 강화한다. 잦은 점프 스퀘어로 놀래키기 보다는 영화 자체에 우리가 상식으로 이해할 수 없는 존재, 즉 악마에 대한 공포를 퍼뜨려 놓으며 불길한 분위기를 영화 진행 내내 유지한다.
아무것도 모르지만 자신의 기억과 주변에 대해 찜찜해 하는 리 하커를 마이카 먼로의 연기가 몰입감을 확 살려준다. 니콜라스 케이지의 기괴한 인물, 롱레그스 역시 <롱레그스>가 악마라는 알지 못하는 존재에 대한 공포감을 상승시킨다. 그렇지만 롱레그스가 직접적으로 나타나는 장면들은 오히려 불길하고 사람이 해결할 수 없는 사건일지도 모른다는 미스터리한 감정을 반감시키는듯해 아쉬웠다. 하지만 기이한 분위기의 오컬트 영화를 보고 싶다면 추천한다.
그런데 15세인 것치고는 꽤나 끔찍한 장면들이 있으니 못 보는 사람들은 유의하길.
*이 글은 씨네랩으로부터 초청받아 참석한 <롱레그스> 시사회에서 관람 후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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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야기는 비단을 닮아
브런치 넷플릭스 스토리텔러로 선정되어 넷플릭스 멤버십과 소정의 상품을 지원받았으며, 넷플릭스 콘텐츠를 직접 감상 후 느낀 점을 발행한 글입니다.
*주요 줄거리가 서술되어 있습니다. 아무 정보 없이 보기 원하시는 분은 나중에 다시 읽어주세요.
1992년 싱가포르. 노이즈가 자글거리는 필름 너머로 습기와 열기가 푹푹 전달되는 것만 같다. 그 안에 안경을 끼고 카메라를 든 십대 여자아이가 웃는다. 영상 속 어린 샌디 탠 감독은 친구들과 로드무비를 찍고 있었다. 이 다큐멘터리 영화는 옛 사진과 영상으로 싱가포르 역사와 그 안의 자기 모습을 돌아보며 시작한다.
필름의 질감과 색감을 좋아한다면, 단편소설 속 특색 있는 인물들을 곱씹으며 읽는 시간을 좋아한다면 이 영화를 사랑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무성 영상과 옛날 사진, 노트 등 오래 간직해온 자료들을 재미있고 유쾌하게 편집해 냈다.
넷플릭스 다큐멘터리 <셔커스:잃어버린 필름을 찾아서>
영화와 음악을 사랑하고, 그 마음 그대로 움직일 만큼 행동력 있던 십대 시절. 샌디는 친구들과 함께 도서관 복사기로 잡지를 만들고, 콜라주 이미지로 자기 취향을 더덕더덕 붙이고 있다. 그 시절 응당 갖기 마련인 분노와 반항을 자기만의 에너지로 사용하며 성장했다. 검열 아래서도 자기 취향을 확장해 나가는 이들의 생생한 눈빛. 그의 회상대로 "광란은 일상을 앞질렀다" 할 만한 시절이었다.
그때부터 그는 이미 영화의 세계에 살고 있었다. 소피와 자스민 두 친구도 함께였다. '조지 카도나'라는 교사가 지도하는 영화 제작 수업을 들었다. 조지는 스스로를 미국 영화 제작자라고 소개했지만, 국적도 출신도 정확히 알 수 없는 사람이었다. 이들은 수업을 마치면 드라이브를 하며 들개들을 보곤 했다. 아무 짝에도 쓸모없어 보일 수도 있다. 그러나 영화를 사랑하는 십대 아이들에게는 큰 영향력을 남긴 시간이었을 것이다. 껌 씹는 것조차 금지했을 정도로 경직되어 있던, 침묵과 미소를 권장했던 당시 싱가포르 사회에서는 흔치 않은 만남이었다. 누벨바그를 사랑하는, 빛이 변해가는 풍경을 가만히 보고 있는 어른이라니.
오래된 영화는 스승에게, 또 이어 제자에게도 영감을 남긴다. 샌디는 조지와 찰떡 같은 호흡을 맞추다가, 싱가포르 배경의 로드무비 시나리오를 일필휘지로 써나간다. 1990년대 초반은 '싱가포르 영화'라는 개념 자체가 아직 낯설던 시절이었다. 아예 싱가포르를 배경으로 하는 영화조차 많지 않았던, 싱가포르 영화의 떡잎이 돋기 시작하던 즈음이었다. 눈 쌓인 들판에 발자국을 남기며 뛰어다닐 생각에 들뜬 아이들처럼, 샌디는 마구 직진하기 시작했다.
의견 차이는 있었지만 소피와 자스민도 영화 <셔커스>를 위해 최선을 다했다. 소피는 공손한 메일을 써서 회의를 잡았다. 테이프 하나 기타 하나로 음악을 만들어야 하는 친구도 있었다. 배우 오디션을 치르고, 다들 설렘과 기대를 가득 안고 이 영화에 모든 것을 쏟아부었다. 필름과 장비도 제공받았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조금씩 이상하다. 회의를 조율한 사람은 소피지만 정작 회의 직전에 조지는 소피를 부엌으로 보낸다. "영화를 믿은" 소피는 내켜하지 않으면서도 그 자리를 순순히 내어준다. 제한된 장비로 정성껏 만든 음악이 담긴 테이프, 그 하나뿐인 테이프도 조지가 가져가서 돌려주지 않았다. 들개를 찍으러 함께 다니던 제자들을 데리고, 조지는 이제 ATM에서 ATM으로 돌아다닌다. 아이들의 모든 저금까지 이 영화에 쏟아부었다. 자스민은 이상한 점을 하나씩 기록하고 지적한다. 영화를 완성시킬 야심에 차서 직진만을 고수하고 있는 샌디에게는 이 모든 이상한 점이 보이지 않는다.
그 시절의 샌디
우여곡절 끝에 촬영이 끝난다. 성취와 동시에 탈진할 수밖에 없는 경험이었다. 이들은 각자의 자리로 돌아간다. 이미 외국의 영화학교에 다니고 있던 소피, 자스민, 샌디 모두 각자의 학교로 돌아가고, 조지만이 싱가포르에 남아 필름 작업을 하기로 했다. 샌디는 간절한 마음으로 <셔커스> 완성을 기다렸지만, 아무리 기다려도 필름은 오지 않는다. 그리고 조지와 필름이 증발하듯 사라져 버린다. 모든 이야기를 등에 지고 사라져 버린 것이다. 열심을 다했던 셋은, 아니 더 많은 이들은, 충격에 빠진다. 그토록 최선을 다해 모든 것을 쏟아부었는데 남은 것은 갈수록 흐릿해지는 기억뿐이다.
그는 무엇이었을까? 영화 제작의 내부자가 아니라 외부자였던 것일까? 순식간에 실패로 전락한, 야심만만했던 기획들. 샌디는 괴로운 기억을 닫아두었다고 말한다. 그런데 이상하다. 이 다큐멘터리는 시작부터 <셔커스>를 포함한 영상과 사진으로 편집되어 있다. 1992년 촬영과 이 다큐멘터리가 나온 2018년 사이 필름을 되찾았다는 뜻이다. 샌디 탠 감독과 친구들은 <셔커스> 필름을 어떻게 다시 얻게 된 걸까? 조지는 누구였을까? <셔커스>는 잃어버린 필름을 찾는 동시에, 그와 함께 사라진 조지를 찾는 여정이 된다.
조지, 그리고 샌디
조지가 어떤 사람이었는지, 샌디 탠 감독이 <셔커스> 필름을 어떻게 다시 만나게 되었는지는 영화에서 직접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실제로 무슨 일이 있었는지와 무관하게, 샌디 탠 감독에게 조지가 어떤 의미로 남았는지와도 무관하게, 필름에 담긴 시간과 열정까지 절도해간 조지가 이 영화에 갇히면서 체포되었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었다. 결국 그는 샌디 탠 감독의 작품 소재가 되었으니까.
영화를 사랑한다고 영화 속 인물이 되는 건 아니다. 창작을 업으로 삼을 거라면 이야기 바깥에 사는 자신을 잃지 않아야 할 것이다. 이야기 바깥을 부단히 걸어다니며 자기 길을 만들고 자기 이야기를 쌓아야 한다. 그러나 조지는 그렇지 못했다. 평생 한 편의 영화 감독도 되지 못했고, 오히려 누군가의 이야기의 소재로만 남고 말았다. 소재가 된다고 나쁜 삶은 아니지만, 추측하건대 아마 그가 진정 원한 삶은 아니었을 듯하다.
변죽만 울리다 보면 진정 자기가 원하는 중심으로 들어갈 수 없다. 자신의 세계를 확고히 쌓아가는 이, 조금씩이라도 자기 이야기를 자기 방법으로 표현하는 법을 익혀가는 이에게 이길 재간이 없다. 조지는 그렇게 샌디의 영화 소재, 등장인물로만 이름을 남겼다.
진짜 조지는 어떤 마음이었을까. 알 수 없지만, 나의 추측에는 내가 반영된다. 자신의 영화는 만든 적 없는 이가 다른 이의 영화를 향해 던지는 비릿한 시선에서 나는내 비겁함을 발견한다.
취미라는 단어에 가둬 두기엔 내게 글쓰기란 너무 의미가 깊은 일이다. 그러나 본업이 아니라는 이유로 너무나 쉽게 밀려난다. 맹렬하게 고민하고 애쓸 때도 있지만 어디로 흘러가는 건지 모르겠는 마음이 더 크다. 그러다가도 특별한 재능을 특별하게 인정받는 남들을 보면 부럽고, 은연 중에 내게도 그런 "한 방"이 찾아와주길 꿈꾸는 마음이 슬쩍 고개를 든다.
그 마음은 망상에 지나지 않단 걸 안다. 어떤 계기를 만나 반짝 주목받을 수도 있겠지만, 그 또한 꾸준히 해나가는 과정의 한 순간일 뿐이다. 내가 하고 싶은 게 뭔지 더듬더듬 확인하고, 이게 최선일까 불안해하면서도 차곡차곡 모자이크화처럼 시간을 채워가는 것밖엔 방법이 없다는 걸.
그러다 보면 뭐라도 담겨있을 것이다. 그 시절의 건물과 패션의 색감마저 아름다웠던, 지금은 사라져버린 싱가포르 풍경조차 특별하게 느껴지는 <셔커스> 필름 컷들처럼. 특별하기보다 특이한 인물들로 가득한, 자기만이 가질 수 있는 색깔로 꽉 차 있는 컷들이었다.
거칠고 투박해도, 온 세계가 공감할 수 없어도, 앞선 시간에서 알게 모르게 배운 것들이 녹아 있고, 생생하게 살아있는 것들. 샌디 탠 감독은 필름을 빼앗기고, 이후의 커리어에도 영향을 받았지만, 오랜 시간 끝에 결국 <셔커스>를 영화라는 방법으로 완성했다.
타의에 의해 끊긴 피륙은 무명도 비단이 된다고, 박완서 소설 어딘가에서 읽었다. 이건 그 비단을 닮은 이야기였다. 다시 오지 않을 그 시절을, 지금 여기서도 다시 감싸안을 수 있을 만큼 힘 있는 비단. 피륙을 끊은 가위조차 휘감고 계속 너울너울 이어져가는 비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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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가족의 색깔> 메인 예고편
남편 ‘슈헤이’가 갑작스레 세상을 떠나고
그의 아들 ‘슌야’와 단둘이 남게 된
‘아키라’는 오랜 시간 왕래가 끊긴
슈헤이의 아버지 ‘세츠오’를 찾아간다.
세 사람은 어색한 동거를 시작하고,
아키라는 철도를 좋아하는 슌야를 위해
기관사가 되기로 결심하는데···
우리는 진짜 가족이 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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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매스> 메인 예고편
돌이킬 수 없는 사건으로 아이를 잃은 두 부부의
슬픔, 분노, 절망, 후회가 폭발하는
111분의 마스터피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