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omnium2025-05-07 01:37:14
외롭고 불안한 우리가 90년대의 낭만으로 회귀하고 싶을 때
영화 <중경삼림> 리뷰
**스포일러 포함 리뷰**
여름하면 생각나는 영화가 있다. 뜨거운 열기처럼 타올랐다가 사라진 사랑을 담아낸 <콜미바이유어네임>, 청량한 그리스의 배경이 담긴 <맘마미아>, 푸르른 녹음을 비롯한 사계절의 풍경이 오롯이 담긴 <바닷마을 다이어리> 등 다양한 영화가 있지만, 나에게는 왕가위 감독의 대표작 <중경삼림>이 가장 먼저 떠오른다.
중경삼림을 처음 봤을 때의 기억을 떠올려보자면, 사실 영화의 유명세에 비해 상대적으로 소박한 내용을 보고 실망을 좀 했었다. 당시에는 영화의 영상미보다는 서사에 좀 더 집중하고 봤기 때문에 그랬던 것 같다. 도시인들의 외로움과 쓸쓸함, 고독함이 공허한 사랑 타령으로 점철된 느낌을 받았달까. 하지만 내가 중경삼림의 매력에 완전히 빠지게 된 건, 두 번째 감상부터 시작되었다. 늦은 여름 밤에 약간의 감수성에 젖어있던 나는 이 영화가 불현듯 다시 보고 싶어졌다. 그리고 여름밤의 선선한 공기와 함께 영화의 분위기에 흠뻑 빠져들었다.
중경삼림에는 네온사인이 빛나는 화려한 도시에서 바쁘게 움직이는 군중들과 대비되는 개인의 고독함이 탁월하게 표현되어 있다. 왕가위 감독은 이러한 복잡하고 오묘한 감정을 헨드헬드 촬영 및 슬로우모션, 리듬감있는 편집, 다채로운 색감 등으로 세련되게 표현했다. 이러한 중경삼림 특유의 센티멘탈리즘과 촬영 스타일은 현대에도 유효해서 왕가위 영화의 마니아들을 아직도 끊임없이 양산 중이다.
중경삼림은 모든 장면이 아름답지만, 특히 인상깊었던 장면은 경찰 663과 메이가 처음 대화를 나누는 장면이다. 저 멀리서부터 페이가 일하는 가게를 향해 천천히 걸어오는 경찰 663의 모습은 그가 음식을 주문할 때까지 끊이지 않고 한 번에 이어진다. 별다른 편집 없이 인물이 가까이 다가오며 자연스럽게 클로즈업으로 이어지지는데, 이를 통해 양조위의 아름다운 비주얼을 강조하였을 뿐만 아니라 그의 등장 자체를 더욱 인상깊게 만들어냈다. 또한 이 장면을 메이의 시점 숏으로도 볼 수 있는데, 짝사랑 상대를 바라볼 때 눈을 떼지 못하고 사로잡혀있을 수 밖에 없는 그 심리가 롱테이크를 통해 생생하게 느껴지는 듯 했다. 이후 흘러나오는 ‘California Dreamin’ 사이로 대화를 하게 된 둘은, 경찰 663의 실없는 농담을 기점으로 서로에게 친밀감을 쌓아간다. 이후 두 인물이 경찰 663의 집에서 잠시 시간을 보내는 장면에서도 이 노래가 흘러나오는데, 경찰 663은 페이가 몰래 놓고간 이 CD를 전 연인이 좋아하던 노래로 착각한다. 그렇게 페이가 즐겨듣던 ‘California Dreamin’은 경찰 663이 전 연인에 대한 그리움에서 서서히 벗어나게 만든 매개체이면서도, 영화를 상징하는 곡으로 자리잡게 되었다.
이 영화가 현재에도 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는 이유는 이러한 영상 스타일뿐만은 아닐 것이다. 우연한 만남과 이별이 빠르게 이뤄지고, 옛 연인과의 추억과 그리움이 깃든 물건에 대한 집착하는 등 영화를 관통하는 외로움이라는 감정은 지금도 공감할 수 있는 보편적인 감정이다. 홍콩 반환이라는 변화의 흐름 안에서 불확실한 미래를 앞두고 저마다의 사랑을 찾기 위해 분투했던 청춘들의 이야기는 현시대에도 유효하다. 짧게 스쳐지나간 만남들 속에서도 잊지 못할 순간들을 기억하며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중경삼림은 휘발되지 않을 청춘의 초상을 기록한 작품과도 같다. 왕가위 감독은 찰나의 순간들을 통해 인연의 의미를 알게 되는 과정을 필름에 담아냈고, 그 덕분에 우리는 도시의 고독을 느낄 때면 언제든 90년대의 낭만으로 회귀할 수 있는 안식처를 가질 수 있었다.
Relative cont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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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네트> 영화의 화려함이 가린 진실을 찾아서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오페라 가수 '안(마리옹 꼬띠아르)'과 스탠드업 코미디언 '헨리(아담 드라이버)'는 첫눈에 서로에게 이끌린다. 행복한 만남을 이어가고 결혼을 약속하며 함께 인생을 노래하는 두 사람. 그러나 이미 쇼비즈니스의 스타가 되어버린 둘을 언론은 가만히 두지 않고, 끊임없이 가십으로 그들을 소비한다. 이로 인한 스트레스를 견디다 못한 헨리는 자신의 콘서트를 망치는 등 조금씩 커리어가 무너지기 시작한다. 반면에 안은 커리어는 성공적으로 이어가지만, 헨리로 인해 결혼생활과 딸 아네트의 양육에 조금씩 부담을 느끼기 시작하고 부부 사이에는 어둠이 늘어난다. 그리고 이 어둠이 가장 짙어지는 순간 부부의 삶은 조용한 바다가 폭풍우를 만나듯 전혀 다른 국면에 진입한다.
<아네트>는 '프랑스 천재 감독'으로 불리는 레오 카락스 감독이 <홀리 모터스> 이후 9년 만에 선보인 작품으로, 그의 필모그래피에서 처음 시도된 영어 영화이자 뮤지컬 영화다. 이 작품으로 2021년 칸 영화제에서 감독상을 수상하기도 했던 그는 아내와 사별한 후 딸에 대한 애정이 더욱 커진 자신의 개인사를 반영한 영화를 만들고 싶었다고 밝혔었고, 실제로 <아네트>는 그러한 바람이 적극 반영된 작품으로 보인다. 감독이 딸과 함께 직접 등장하는 영화의 오프닝부터 결말에 이르기까지 <아네트>는 헨리와 안 부부의 연애와 결혼생활과 남겨진 부녀 관계에 대한 이야기에서 한 발도 벗어나지 않으면서 그들이 심연 깊은 곳으로부터 마주해야 했던 정과 진실을 담아낸다.
그렇지만 <아네트>는 단지 한 가족의 일상을 춤과 노래로 담아낸 작품에만 머무르지는 않는다. 작가주의적 경향이 뚜렷한 갑독답게, 뮤지컬 영화의 익숙한 외양과 형식을 변형시키기 때문이다. 쉽고 대중적인 길을 선택하는 대신 카락스의 뮤지컬은 간단한 이야기를 관객으로 하여금 자신의 삶과 일상을 반추하게 만드는 거울로 탈바꿈시킨다. 더 나아가 영화 그 자체의 본질에 대해서도 되돌아보게 한다. 이러한 영화의 의도, 메시지, 수단에 대한 힌트는 작중 반복적으로 등장한다. 바로 카메라의 존재다.
예를 들어 무대 위에서 멋지게 공연을 마무리하고 극장 밖에서 만난 헨리와 안 커플은 수많은 기자들의 카메라에게 둘러싸인다. 뒤이어 카메라에 일거수일투족 포착되는 그들의 연애와 결혼은 그 자체가 하나의 해프닝, 가십이 되어 엔터테인먼트로 소비된다. 그리고 영화는 이러한 구성을 반복한다. 부부 사이에서 태어난 아이에 대해서도, 그들의 결혼 생활에 대해서도, 코미디언으로서의 입지가 나날이 줄어드는 헨리와 나날이 명성이 높아지는 안의 대비되는 커리어도, 그리고 그들의 휴가와 그곳에서 벌어진 사고와 어린 아네트의 놀라운 노래 실력까지도. 이 모든 것은 진실과는 무관하게 가장 자극적이고 흥미로운 방식으로 카메라에 의해 제시되고, 소비된다.
흥미로운 것은 영화가 작중 등장한 뉴스를 시청하는 사람들과 자신의 관객을 일치시키는 연출을 선보인다는 점이다. 이는 카메라로 인해 관객이 외면적인 것만 보고 평가하고 관찰하는 입장에 놓이기 때문에 가능하다. 연극과 달리 영화를 보는 관객은 일방향적이다. 무대 위의 배우와 직접 상호작용할 수 있는 연극의 관객과 달리 영화 관객은 철저히 카메라에 찍히고 보이는 것만 볼뿐이다. 즉, 작중 카메라는 사실을 자극적으로 변형시키는 뉴스와 그것을 소비하는 대중이나, 영화를 일방적으로 소비하는 관객이나 본질적으로 겉모습 뒤에 숨은 진실을 보지 않거나 못한다는 공통점을 보여주는 장치로 활용된다.
이러한 맥락에서 <아네트>는 간단한 이야기와 달리 독특한 형식적 특징을 살려 카메라로 인해 보지 못하는 진실을 밝혀내려고 한다. 깔끔하게 완성된 세련된 뮤지컬 영화의 모습이 아닌, 거칠고 모난 모습을 통해 보기 좋은 것 너머의 진실을 드러내려고 하는 것이다. 이는 <아네트>를 볼 때 유독 의아하고 실망스러운 대목이 눈에 띄는 이유라고 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송스루(song-through) 뮤지컬답게 영화 속 넘버는 대부분 주인공들의 심리를 노래하는데, LA 글램락의 전설이라고도 칭해지는 밴드 ‘스파크스’가 참여한 음악이 귀를 즐겁게 하는 것에 비하면 노래 가사는 지나치게 일차원적이다. 수영장에서 노래하는 안이나 오케스트라 지휘자의 노래처럼 '나는 괴롭다, 슬프다, 후회한다, 기쁘다, 억울하다'와 같은 직접적인 가사만이 되풀이된다. 또한 노래를 감싸는 배경도 조악하다. 파도치는 바다를 표현한 CG나 아네트가 인형으로 등장하는 것은 한눈에 봐도 어색하다.
그러나 이 작품의 기저에 진실과 본질을 왜곡하고 가리는 카메라, 곧 영화를 비판하는 메시지가 있다고 보면 위의 단점은 다른 의미를 가질 수 있다. 겉치레를 버리고 영화의 본질과 이야기의 원형에 집중시키려는 의도된 연출로 볼 수 있는 것이다. 이는 <아네트>의 형식과 구성 전반에서 영화의 가장 원형적 형태인 고대 그리스의 연극의 그림자가 아른거리는 이유이기도 하다.
두 주인공의 직업인 스탠드업 코미디언과 오페라 가수는 그리스 연극의 두 축인 희극과 비극의 조합을 연상시킨다. 영화의 시작과 끝이 마치 그리스 비극의 코러스와 같은 형식인 것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최대한 영화에 집중하길 바란다는 도입부 코러스의 가사 역시 쇼비즈니스의 대명사가 된 뮤지컬 영화에서 화려한 춤과 노래 대신 설령 보잘것없어 보이더라도 소중한 이야기에 주목해달라고 부탁하는 것과 다름없다. 더 나아가 이는 작중 헨리나 안이 무대 위에서 펼쳐 보이는 퍼포먼스를 가능한 실황 라이브를 보듯 현장감을 살리는 방식으로, 그리고 관객석에서 무대를 보는 구도로 연출한 이유이라고 볼 수 있다.
또한 이러한 측면에서 아네트라는 인형의 인형극은 헨리가 아네트를 대하던 태도처럼 눈에 보이는 것 너머의 이야기를 보고 듣지 못하고 인물의 심정에 공감하지 못하는 세테를 우회적으로 보여주는 장치라고 할 수 있다. 어색한 CG나 과도하게 편의적인 노래 가사들도 비록 덜 다듬어지고 거칠고 화려하거나 세련되지는 않아도 가장 본질에 가깝고 원형적인 것을 표현하기 위한 수단인 셈이다. 그 결과 <아네트>는 영화가 진정으로 말하려는 이야기와 감정 그 자체보다는 단지 화려한 시각효과와 같은 기법처럼 영화 속 엔터테인먼트 영역이 점점 커지는 세태에 대한 비판으로 확장될 여지도 남긴다.
물론 뮤지컬 안에 수많은 극형식을 혼합시키고 영화에 한 편의 통일성을 불어넣지 않는 시도는 굉장히 실험적인 인상을 주며, 실제로도 상당히 난해하고 어렵다. 그래서 초현실적인 이미지, 배우의 연극적 제스처, 화려함과 어두움을 오가는 색채, 희극과 비극이 한 데 어우러지는 서사의 만남은 영화의 메시지와 의도에 공감하거나 동의하지 못할 경우 그저 괴상한 조합에 불과할 수도 있다.
그런데도 이러한 시도는 분명 단순해 보였던 <아네트>의 이야기가 삼중의 진실을 보여줄 수 있다는 점에서 분명 인상적이다. 우선 영화는 희극을 통해 관객을 죽이게 웃기려 하고 비극을 연기해 관객의 죽음을 대신 맛보게 하는 두 배우의 연애 과정과 결혼 이후의 삶을 통해서 진정으로 자신이 원하는 바를 깨닫는 이야기를 보여준다. 그다음으로는 이들의 삶을 보여주는 과도한 형식적 특징을 살려 그들의 삶 자체가 하나의 쇼로 만들고, 이를 통해 그들의 삶을 영화를 통해 훔쳐보고 있는 관객에게 혼란을 안기면서 영화의 본질과 현실을 곱씹을 수 있는 이야기를 들려준다.
무엇보다도 <아네트>는 자신을 보는 모든 이에게 인생의 진실을 일러준다. 헨리와 안 부부처럼 우리 역시 미처 깨닫지 못하고 지내던 자신의 바람과 감정, 그리고 진실을 항상 유념하고 살아야 한다고 말한다. 그 결과 감독이 딸과 함께 직접 영화 서사에 등장하고, 주인공의 공연을 보는 관객이 뮤지컬에 함께 참여하여 노래하고 춤추는 모습을 보여주는 영화는 난해하고 어려운 만큼 다양한 측면에서 깊은 여운과 생각거리를 남긴다.
A(Acceptable, 무난함)
영화의 상징과 기원의 도움을 받아 삼중의 진실을 찾아 나서다
*씨네랩으로부터 초청받아 참석한 영화 <아네트>의 시사회 관람 후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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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로 개수작을 부리는 감독이 있다?
나는 가끔 글을 쓸 때 힘이 들어간다. 그러니까 어떤 주제로 쓸 때 이건 나만 할 수 있는 이야기여야만 한다. 정성일 씨가 와도 절대 쓸 수 없는 그런 것을 추구한다. 근데 막상 까 보면 타인의 것들과 별 다를 것 없다. 예를 들어 <밤의 해변에서 혼자>를 리뷰한 글을 보자. 나는 이 영화를 '아무것도 없는 영화'라고 썼다. 정말 솔직히 말해보자면 나는 이 문장을 쓰고 '와 진짜 전다. 내가 천재긴 해. 이거 아무도 생각 못할 듯. '라고 속으로 생각했다. 사실 확인하고 싶었다. 다른 사람이 쓴 거 읽고 싶었는데 무서워서 안 했다. 이미 알고 있거든. 영화 보고 느끼는 감정이야 사람들 간에 별 다를 바 없고, 홍상수 감독도 이걸 의도했다고 생각했다. 그러니까 내 글은 별로 특별한 것 없을 거라는 그런 불안감 때문에 타인의 리뷰들을 읽지 않았다. 내 글이 특별하다고 생각한 이유는 오로지 내 욕심 때문이었다. 이렇게 실제로는 그럴 리가 없다는 걸 알면서도 나 스스로가 특별해지고 싶은 순간을 나는 찌질함이라 부른다. 이 감정은 멀지 않은 곳에서 또 찾을 수 있다.
난 어디에서 자기 계발서를 대차게 깐 적 있다. 근데 사실 내가 영화를 보고 쓰는 글은 크게 보면 자기 계발서와 다를 바가 없다. 사람이라 느끼는 외로움이나 자아 찾기 뭐 그런 것들을 주제로 삼기 때문이다. 이런 장르의 책들 중 몇몇 권은 이런 것들을 토픽으로 삼지 않는가? 또 나는 1달 전에 카네기의 인간관계론을 읽었다. 일상 속 대화에서 소통능력이 구린 나는 이 책을 읽고 새로운 사람이 된 것처럼 굴었다. 인스타그램에 스토리를 올리면서 양심에 심각하게 찔린 나다. 그래도 나는 이 책이 좋다고 주변인에게 칭찬했다. 이렇게 나에게 합리화의 이유를 붙인다는 걸 뻔히 아는 것 역시 찌질함이라 부른다. 가끔 내 머릿속에서 내가 해온 허튼짓들에 대해 생각한다. 그럼 머릿속에 딱 들어오는 생각이 있다. 나에게서 이 두 가지의 찌질함을 빼놓으면 시체라는 것이다.
<옥희의 영화>는 찌질함에 관한 영화다. 영화는 네 개의 단편으로 이루어져 있다. <주문을 외울 날>, <키스왕>, <폭설 후>, <옥희의 영화>다. 이 네 편에 세명의 주연인 정유미, 이선균, 문성근 배우가 나온다. 지금이야 정유미-이선균 배우가 인기도 제법 있고 우리에게 친근하지만 이때의 이들은 풋풋한 모습이다. 풋풋함. 감독 홍상수는 이 풋풋함이라는 감정 머리 위에서 관객을 갖고 논다. 네 편의 단편에 나오는 주인공들은 나이도 먹을 만큼 먹은 20대거나 대학 교수같이 사회적 지위가 있는 사람이지만 행동하는 건 초등학생의 풋풋함이 느껴진다. <주문을 외울 날>을 보자. 주인공 영화감독 진구는 송 교수에게 '당신 소문이 안 좋은 걸 아느냐?'라고 묻는다. 근데 곧이어 있을 GV에 누가 나타나서 '당신이 내 친구의 인생을 망쳤다. 어떻게 생각하냐'라고 질문을 듣는다. 전자 상황에서 진구는 '혹시나 해서 여쭤본 겁니다'라고 합리화를 하지만 후자의 경우에선 '이 상황에서 이 질문이 맞냐?'라고 역정을 낸다. 자기 자신을 위해 합리화를 한 것이다. 두 번째. 키스왕이다. 친구 옥희를 좋아하는 진구. 진구는 연애를 한 번도 해본 적 없는 숙맥이지만 아무튼 옥희가 좋다. 옥희는 이런 진구의 마음을 전해 듣는다. 송 교수와 진구 사이에서 고민하는 옥희. 친구에게 송 교수와 함께 있을 때 즐겁다고 말해 이쪽을 택할 것으로 보였지만 결국 진구와 함께한다. 엔딩부에 둘이 함께 있는 장면이 나오는데, 그때 옥희가 진구에게 말하는 대사가 압권이다. '나는 네가 착해서 좋아'라는 말에 '착할게'라고 답한다. 아무튼 나는 너를 위해 착해질 것이라고 답하는 것이다. 이 쪽도 자기 스스로를 위해 합리화를 했다. 세 번째. 폭설 후는 굉장히 짧다. 송 교수는 누구보다 수업에 진심인 것으로 보이지만 막상 학생이 안 오니 우웨엑 토와 함께 애정을 뱉어낸다. 이 단편에도 스스로를 위한 합리화가 이뤄진다. 네 번째. 이 영화의 제목이 된 <옥희의 영화>다. 주인공 옥희는 젊은 남자와 산을 오르락내리락하며 나이 든 남자와의 추억을 떠올린다. 하지만 옥희는 나이 든 남자를 고르지 않았다. 산을 왔다 갔다 하는 거 빼곤 별거 없었던 추억이지만 옥희는 함께 했던 시간을 굉장히 특별하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그렇지만 우리 관객이 보기엔 그냥 진구와 송 교수 이상도 이하도 아닌걸. 떠나가는 추억을 회상하며 영화는 끝이 난다. 옥희는 스스로에게 특별했으면 하는 순간을 작품으로 만들었다. 이렇게 영화는 4편의 이야기를 연달아 붙이며 인간이라면 있을법한 찌질함에 대해 이야기한다. 그것도 타 감독들이 하지 않았던 방법으로 말이다.
나는 이 찌질함과 합리화는 베스트 프렌드라고 생각한다. 남은 이해하지 못해도 나 자신은 이해할 수 있는. 그런 '내로남불'이 찌질함이라는 것의 본원이겠지. 첫 번째 <주문을 외울 날>은 이 자기모순에 대한 이야기다. 소문은 근본적으로 내가 보지 않은 것에 대한 이야기다. 누구나 자기의 소문에 관해 들을땐 이게 뭔 소린가? 싶다. 자기는 자기가 제일 잘 알거든. 근데 또 막상 믿기는 쉬워서 타인을 어렵지 않게 의심한다. 나는 사람이 이런 행동을 보이는 이유는 분명하다고 생각한다. 우리가 살 때 특정한 가치관 아래에 모든 것을 결정하며 사나? 아닐 것이다. 내가 직관적으로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서 살고 거기에 우리 스스로는 받아들이는 법을 배우면서 산다. 나이가 든다는 건 이런 자기모순에 익숙해지는 것이겠지. 이런 모순은 <키스왕>에서도 나타난다. 어쩔 줄 몰라 옥희의 집 앞에서 소주를 마시는 진구. 이 앞에서 했던 말이 재밌다. '나는 너랑 대화가 잘 통해서 좋아'와 '착할게' 이 두 마디다. 이 말과 진구의 행동은 본질적으로 모순적이라고 생각한다. 대화가 잘 통하는 거면 성격이 잘 맞는 거고. 착할 게는 안 맞는 부분이 있어도 맞춰주겠다는 것 아닌가? 이 말을 들으면 진구는 옥희를 배려해주는 것으로 보인다. 근데 진구는 타인을 존중하고 그런 거 없다. 숨기고 그럴 것도 없이 옥희와 입을 맞춘다. 연애경험이 없다는 점에서 진구의 이런 화법과 행동은 개연성을 갖긴 하지만 그냥 주인공은 무작정 옥희랑 사귀고 싶은 거다. 그래서 앞 뒤가 다른 행동을 일단 저지르고 본다. '내가 이 친구를 어떻게 대해야지'같은 체계가 아니라 생각나는 대로 움직이는 것이다. 이렇게 첫 번째와 두 번째 이야기는 확실히 대비가 된다. 그러니까 소문의 속성과 짝사랑-연애로 이뤄지는 과정을 대치시킨 셈이다. 난 이 지점이 분명한 의도라고 생각한다. 모순을 느끼기 쉬운 소재이기 때문이다. 사랑은 원래 앞 뒤 다르다. 신나게 전 애인 험담하다 그들의 전화에 혹하는 게 우리 똑은 우리 친구들의 이야기 아닌가? 또 남을 욕할 때의 우리는 스스로에게 관대하다. 남 험담하는 사람이라고 욕먹는 주위의 이야기는 어렵지 않게 들을 수 있다. 이 두 가지는 우리가 타인과 갈등하거나 자기혐오의 빠질 때 주요 소재가 되기도 한다. 또 우리가 살다 보면 이 경험들 한 번씩은 해봤다. 영화는 이렇게 우리 인생에서 절대 별개가 아닌 이기심이란 감정을 일상의 에피소드로 표현해 공감을 얻는다. 즉 구로사와 기요시는 인간 내면에 대한 이야기로 <큐어>를 썼고 봉준호 감독은 어머니의 모성에 관한 작품으로 <마더>를 만들어 관객들의 등골을 서늘하게 했다면 홍상수는 인간의 이기심을 통한 코미디를 그냥 배우 세명에 4천만 원 제작비가 든 4편의 단편영화로 끝내버린 것이다. 일상 속의 이야기가 우리에게 영화로 다가올 때 어떤 느낌인지를 500% 이해하지 않고서는 이럴 수 없다. 완전히 미쳐버린 천재성인 셈이다.
이 천재성은 세 번째, 네 번째 이야기에서 더 뒷받침된다. 진구가 묻는다. '무얼 원하고 사세요?' 송 교수가 답한다. '오늘의 내가 원하는 것과 내일의 내가 원하는 것'이라고 말이다. 이것은 앞에서 내가 썼던 이야기와 공통점이 있다. (그러고 바로 다음 장면에 '학교 때려치우기 잘했다'라고 말하는 송 교수의 대사가 웃겼다.) 네 번째 이야기는 젊은 남자와 나이 든 남자에 관한 이야기다. 그냥 산 타고 왔다 갔다 하는 이야기가 끝이다. 근데 이 등산과 하산만으로도 영화라는 예술의 전부를 보여준다. 남이 보기엔 그냥 에피소드인 이야기를 우리는 끊임없이 과거의 무언가와 비교한다. 그리고 항상 무언가를 골라 다른 것과 작별한다. 이걸 겉으로 드러내 '나는 특별한 사람이야!'라고 티를 내면 찌질함이 될 수도 있다. 또, 어떤 것을 보며 '나는 그럴 수밖에 없었지'라며 자위한다. 심지어 이 영화를 보고 공감을 얻는 과정도 이와 비슷하다. 주인공의 행동이 나와 닮았기 때문에 나답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 영화에서 그 인물이 그렇게 행동하는 건 그 상황이니까 하는 것이다. 즉 다른 외적 요인이 작용하지 않는다는 뜻이고 우리라고 해서 꼭 그렇게 행동하리라는 법은 없다. 그런데 우리는 찌질해서인지 그 영화의 장면과 과거의 에피소드 하나를 같다고 여기거나 '내가 저거보다 낫지'라며 조소하기도 한다. 나 자신을 위한 합리화를 해 버리는 것이다. 또 내 어떤 것과 현재의 어떤 것을 비교해서 우선순위를 정한다. 비교는 아무 의미가 없고 그 나름대로의 의미가 있다는 걸 아주 잘 알고 있는데도 말이다. 이는 네 번째 영화의 등산과 하산을 관통하는 이야기이기도 하고, 왜 홍상수의 영화 내지는 영화라는 장르를 보며 공감하는가?라는 질문과도 닿아있다. 제목이 <옥희의 '영화'>인 이유이기도 할 것이다. 세 가지 질문의 답은 굉장히 쉽다. 우리는 대체로 못나고 찌질하기 때문이다. 완벽한 인간은 없고 모두에게 소심한 구석 하나쯤은 있다. 그리고 우리는 이런 우리의 모습을 숨기고 싶어 하거나 남들과 다른 특별함이라고 여긴다. 잠깐, 이거 우리 모르나? 그럼에도 우리는 타인에게 엄격하고 상처를 호소하며 나는 착한 사람이라고 최면을 건다. 그리고 영화를 보면서 공감을 얻는다. 그래. 그땐 그럴 수밖에 없었지. 그렇게 스스로와 합리화를 한 채로 무언가와 사랑에 빠진다. 그리고 또 영화를 본다. 과거의 나와 현재의 나를 비교하기 시작한다. 예전의 것들을 떠나보낸다. 무한 반복이다. 우리는 이 지루하고 귀찮은 일상 속에 산다. 내가 찌질하지 않다는 변명과 함께 말이다. 감독 홍상수는 이렇게 모순적인 우리의 모습을 포착해 또 네 개의 단편영화로 접근한다. '너 이런 거 내가 다 알아!'라는 말과 함께 관객의 마음을 얻는다. 하나의 장편이 아닌 네 가지의 단편을 통해 전체로서의 의미는 버리고 순간순간 느껴지는 공감을 영화로 만들었다.
그러니까, 다시 말하자면 이 영화는 개수작 같은 영화다. 사실 까고 보면 되게 별거 없는데 그저 이성을 꼬시기 위해 사용하는 개수작 화법인 셈이다. 영화 전면에 주제의식은 사실 별거 없고 느끼는 감정만을 따르라는 대사가 나온다. 난 그것마저도 개수작이라고 생각한다. '나 너희들 마음 다 알아. 왜 영화를 좋아하는지도 안다고. 그러니까 내 영화에 의미 같은 거 찾지 마. 이건 그런 식으로 해석하는 영화가 아니니까. 그냥 니들 이야긴 거 아니까 너희들 마음은 이미 내 거야.' 뭐 이런 식의 개수작인 셈이다. 우리 대부분의 영화 아니 문학작품은 메시지란 게 있지 않은가? 근데 홍상수는 감독이라는 캐릭터를 통해 있어 보이는 말로 주류와는 다른 본인의 세계를 확고히 한다. 내가 만든 세계를 관객에게 주입시켜 '와 이 사람 전다'라고 생각하게 만드는 것이다. 그리고, 제일 중요한 건, 우리는 이 논리에 설득당하는 바보들이다. 조명도 별로고 화장도 안되어있고 관통하는 서사도 심심하며 예산도 작은 그의 영화를 보는 우리는 그에게 꼬인 물고기들이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이 영화를 볼 필요가 없다. 이기적인 우리는 현재의 나와 과거의 무엇을 비교하지 않으면 온 몸이 쑤신다. 홍상수는 우리에게 좋은 솔루션이라고도 말할 수 있겠지. 진짜 인정하기 싫은데 나도 그에게 설득당했다. 아마 신작을 우리 지역에서 볼 수 있다면 보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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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메마른 땅처럼 죄의식마저 갈라져버린 황폐한 마을
2017년 골드 오스트레일리아 도서상, 올해의 ABIA 문학상, 올해의 인디북 문학상 등 주요 문학상을 휩쓸고 뒤늦게 발간된 영국에서도 ‘이 책이 데뷔작이라는 것을 믿을 수가 없다’는 찬사와 함께 워터 스톤스와 선데이 타임스에서 이달의 스릴러로 선정되었으며, 영국 장르문학의 최대 권위 CWA 골드 대거 상에도 노미네이트된 호주 작가 제인 하퍼의 월드 와이드 베스트셀러이자, 장편 데뷔작을 원작으로 제작된 호주 영화 드라이 리뷰이자, 시사회 후기입니다. ‘나를 찾아줘’와 매력적이게 보았던 HBO 시리즈 ‘빅 리틀 라이즈’등을 성공으로 이끈 유명 제작자 브루나 파판드레아가 참여했고 ‘트로이’, ‘시간 여행자의 아내’ 등으로 국내에서도 친숙한 배우 에릭 바나가 주연을 맡아 호주 개봉 당시 3주 연속 박스오피스 1위 및 자국 영화 중 5번째로 높은 오프닝 스코어를 기록하며 이례적인 흥행을 기록했다고 하니 충분한 매력을 가지고 있을 거라 생각되었습니다. 더불어 ‘인비저블 맨’의 촬영 감독 스테판 두시오 역시 이번 작품을 통해 2021 호주 아카데미 시상식(AACTA)에서 최우수 촬영상을 수상했다고 하니 웰메이드 미스터리 스릴러에 대한 기대를 하며 감상하였습니다.
※ 최대한 자제하였으나 일부 스포일러가 될 수 있으니 주의 부탁드립니다.
# 영화 드라이 정보, 줄거리
정말 루크가 한 짓이라고 생각해요?
계속된 가뭄으로 갈라지고 메마른 호주의 키와라 마을의 외딴 농장, 한 집안에서 갓난아기를 제외하고 일가족이 죽는 사건이 발생하고 호주 연방 경찰 에런에게 연락 한 통이 옵니다. 그렇게 어린 시절 친구였던 루크 가족의 죽음으로 20년 만에 고향으로 내려와 장례식에 참석하지만, 자신의 기억 속 강물이 흐르고 수풀이 우거졌던 마을은 바싹 말라버렸고 과거 엘리의 사건 이후 떠났던 그를 사람들은 반기지 않습니다. 뉴스에서는 루크를 아내 캐런과 어린 아들 빌리를 죽이고 자살한 존속 살인으로 보도 중이고 사람들 대부분도 그렇게 믿고 있지만, 루크 아버지는 사건의 진실을 밝혀달라 그에게 부탁합니다. 더 이상 머물고 싶지 않았던 그는 거절하지만, 과거 사건의 진실을 언급하며 협박 섞인 어투로 회유하고, 결국 에런은 사건을 파헤치기 시작하는데...
예고편│ Trailer
원제 : The Dry│감독 : 로버트 코놀리│각본 : 해리 크립스, 로버트 코놀리│원작 : │출연진 : 에릭 바나, 제네비에브 오렐리, 키어 오도넬, 존 폴슨 외 多│장르 : 범죄, 드라마, 미스터리, 스릴러│상영 시간 : 117분│개봉일 : 2022년 3월 30일│국가 : 오스트레일리아, 미국, 영국│등급 : 15세 관람가│평점 : 로톤 토마토 신선도 90% 팝콘 89%, IMDB 6.9, 메타 스코어 69점│시청 가능 서비스 : 3월 30일 개봉 예정
# 영화 드라이 평점
너무 오랫동안 거짓말을 하다 보면 그냥 그게 몸에 배죠
장르가 미스터리, 스릴러 소설을 원작으로 하고 있다는 점에서 읽어보진 않았지만, 베스트셀러에 올랐다는 점에서 어느 정도 기대감을 가지고 관람한 것이 사실입니다. 그러나 장르적으로 전개 속도나 BGM도, 스토리도 심장을 쫄깃하게 옥죄어 오는 연출 방식을 채택하지 않고 일가족 존속살인으로 처리된 사건에 남은 몇 안 되는 단서와 실마리, 인터뷰 등을 통해 범인을 추리해 나가는 과정과 주인공의 과거 시간이 플래시백 형태로 비치며 현재와의 연결점을 보여주고자 노력합니다. 결말에 이르러 두 가지 사건 모두가 해결은 되지만, 특별한 개연성보다는 과거로부터 이어진 주인공의 심적 갈등과 죄책감을 해소하는 정도에서 일단락되다 보니 조금은 허무하게 느껴졌습니다.
전체적으로 자신의 잘못을 가리기 위해 조작한 서류가 화를 자초하고 이를 무마하기 위해 진실을 아는 직원과 일가족을 살인해버린 사람, 그리고 과거 자신이 딸을 죽였다는 사실을 다른 사람에게 전가하며 살아오다 정말 다른 사람이 죽였다고 믿어버리는 거짓말 같은 상황들을 그립니다. 가뭄으로 말라버린 땅처럼 작은 마을 안에서 모든 이들이 각자의 거짓말로 인해 갈라져 있던 것이죠. 그것은 과거 에런 자신이 남기고 간 죄책감에 대한 혼란을 일으켜 현재의 사건에 머물게 하는 단초가 되고 보는 이들로 하여금 변화하는 그의 심리를 따라 사건의 진상을 파헤치는 원동력이 되어주기도 합니다. 이러한 측면에서 잔잔한 흐름과 각 인물들의 심리묘사를 섬세하게 그렸다는 점은 장점이지만 장르적으로 명확한 한계가 느껴지는 건 어쩔 수 없었던 것 같습니다.
계속해서 보이는 황망한 사막과도 같은 마을 배경은 진실을 쫓는 그의 건조한 시선을 계속해서 유지시키고 반복되는 플래시백을 통해 과연 현재와 과거에는 어떤 연결고리가 있는 것인가 하는 의구심이 들게끔 만듭니다. 표면적으로 자신의 죄의식이 쉽사리 떠나지 못하게 한다는 점이 뚜렷해 보여 애초에 과거 엘리를 죽인 진범을 알고 있었기에 미련이 더 남은 것이 아닌가란 생각도 들게 하죠. 그렇기에 마을 사람들의 거짓말은 그저 하나의 수단일 뿐, 최악의 가뭄으로 바닥이 드러난 강바닥처럼 변해버린 마을과 그 안에서 야기되는 사람들의 이기심을 보여준다고 할 수 있습니다. 하나 반성이나 속죄라는 의미를 나타내기보단 의문스러운 엔딩을 그려내고 있어 굉장히 모호한 시선을 그대로 유지한 채 끝을 맺습니다. 에릭 바나라는 배우가 가지고 있는 깊고 어두운 눈매가 러닝 타임 내내 분명 빛을 발하지만, 글쎄요, 빈 공간을 채우기에는 혼자 너무 버거운 느낌이었던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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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변치 않는 진실 위로 쏟아지는 새로운 조각들
스틸워터 (Stillwater, 2021)
개봉일 : 2021.10.06 (한국 기준)
감독 : 토마스 맥카시
출연 : 맷 데이먼, 아비게일 브레스린, 카일 코탄, 디애너 듀나건, 로버트 피터즈
변치 않는 진실 위로 쏟아지는 새로운 조각들
올 10월은 개인적으로 상당히 두근거리는 달이다. <듄>, <베놈>같은 많은 영화팬들이 기대하고 있는 영화와 함께 사랑하는 배우 맷 데이먼의 영화가 2편이나 개봉하는 달이기 때문이다.
<그린나이트>를 보며 시대극의 새로운 매력을 느끼고, 개봉 소식이 들리자마자 쭈욱 기다렸던 <라스트 듀얼: 최후의 결투>, 그리고 지금 후기를 쓸 이 영화 <스틸워터>가 2주의 텀을 두고 연달아 개봉하다니. 거의 한 달 내내 영화관에서 맷 데이먼을 볼 수 있을 거라는 기대감을 가득 담고, <포드 V페라리> 이후로 거의 2년 만에! 스크린에서 맷 데이먼을 만났다.
<스틸워터>는 함께 사는 친구를 살해한 혐의로 고향 땅에서 아주 멀리 떨어진 도시의 교도소에 갇힌 딸의 무혐의를 입증하기 위해 노력하는 아버지의 이야기다. 실제로 유학 중 살인 혐의를 받아 4년간 복역했던 아만다 녹스 사건에서 모티브를 얻어 탄생한 이 영화는 추리 영화이자 주름진 가족 영화, 그리고 아버지로서, 온전한 나로서 성장을 거듭하는 주인공의 성장 영화다.
진실을 쫓는 발걸음
마르세유라는 여유롭고 맑은 도시 속에 똑-떨어진, 이 도시와 어울리지 않는 이방인 빌 앨리슨은 딸이 간절한 마음을 담아 적은 편지를 읽고, 딸의 무죄를 밝히기 위해 말도 통하지 않는 도시와 차가운 시선들에 맨몸으로 부딪힌다. 견고하게 짜여져있던 ‘유죄’라는 벽에 조금씩 금이 가는듯 보이더니, 언제부턴가 새로운 사건의 조각들이 빌의 머리위로 후두둑 떨어지기 시작한다.
언제나 내 딸은 무죄일 거라고 믿었지만 제대로 된 증거가 없어 교도소 안에 갇힌 딸을 바라보기만 해야 했던 아버지 빌은 이제야 정말 아버지다운 일을 할 시점이라고 느꼈는지, 아니면 이 일을 할 수 있는 건 자신밖에 없다고 생각했던 건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사건의 실마리를 붙잡는다.
완전한 진실보단 나와 우리의 평화를 위해
<스틸워터>는 앨리슨이 연루된 사건의 진실과 분명한 선과 악의 구분보다는 빌이 바라는 평화. 즉, 이 부녀 사이의 진전과 아버지의 원초적인 부성애에 집중한다.
고강도의 육체 노동직을 소화하며 어느새 거친 얼굴을 갖게 된 아버지와 아버지의 사랑을 충분히 받지 못했다고 생각하는 딸. 고된 하루를 다시 버티기 위해 손대선 안될 영역에 기댔던 아버지와 그런 그를 증오했던 딸. 사랑하는 딸을 지키지 못했던 아버지와 최대한 멀리 떠나고 싶었던 딸.
앨리슨의 바람대로 두 사람은 미국에 있는 스틸워터(고향)와 프랑스의 마르세유에서 각자의 이유로 발이 묶인 채 긴 시간을 보낸다. 빌은 지금껏 무력하게 딸의 죄를 함께 지고 살아왔지만, 이번엔 정말 딸을 구해내겠다고 이제는 무능력하고 믿지 못할 아버지가 되지 않겠다고 다짐한다. 내 딸과 우리를 위해서라면 누가 범인인지, 어떻게 이 사건을 풀어가야 할지는 중요하지 않다. 그저 앨리슨의 무죄를 입증할 수 있는 확실한 증거가 필요할 뿐이다.
맷 데이먼의 새로운 매력을 보여주는 캐릭터, 빌
주인공 ‘빌’을 맡은 맷 데이먼의 우직한 연기가 이 영화의 가장 큰 매력이다. 거칠지만 그렇다고 투박하지 않게 깊은 감정선을 파내려 가는 그의 연기와 감정의 흐름을 든든히 떠받쳐주는 멋진 목소리에 완전히 홀려버렸던 시간이었다.
130여 분의 러닝타임과 앨리슨의 사건, 마르세유에서 만난 버지니와 마야와의 에피소드를 숭덩숭덩 썰어놓은 이야기의 흐름에 다소 지루함을 느꼈다는 후기도 있었지만, 빌의 심경 변화와 앨리슨의 사건을 함께 풀어가려면 피할 수 없는 선택이었다고 생각한다. 만약 앨리슨의 사건만을 다뤘다면 ‘빌’이라는 캐릭터가 이만큼 빛나지 못했을 것이다.
실수와 후회를 잔뜩 쌓은 아버지, 아버지를 미워하지만 그 밖엔 믿을 사람이 없는 딸. 그리고 낯선 나라에 떨어진 두 사람의 조력자가 되는 소중한 인연들과 이방인을 차갑게 비웃는 차별적인 시선들. 이 영화의 중심이 되는 사건은 거리를 넓히고 싶었던 부녀의 틀어진 사이, 잘못된 사회의 차별과 시선, 잘못된 사랑과 극단적인 선택이 낳은 결과물이었다. 사건의 전말, 빌과 앨리슨이 앞서 풀어내지 못했던 마음들을 함께 풀어보고 싶다면 이 영화를 힘차게 파보길 추천한다.
스틸워터 시놉시스
진실을 파고들수록, 비밀은 깊어진다
친구를 살해한 혐의로 감옥에 갇힌 딸의 무죄를 입증할 마지막 기회를 위해 나서는 아빠 '빌'
사건의 실체에 가까워질수록 예기치 못한 사실을 알게 되는데…
* 아래 내용부턴 스포가 있을 수 있습니다 *
아버지의 조금 늦은 부성애
빌은 아내가 자살한 후 일과 술, 약에 홀려 긴 세월을 보낸다. 앨리슨을 보살펴준 건 빌의 어머니 샤론이었고, 그는 약 때문이었는진 몰라도 경찰에 한 번 잡혀갔던, 그리 아름답지 못한 과거도 갖고 있다. 빌이 사건을 해결하겠다고 하자 샤론과 앨리슨은 술이나 약에 취한 상태냐고 묻는다. 지금껏 빌이 이들에게 어떤 가족이었는지, 이 대사에서 여실히 느낄 수 있었다.
빌도 자신이 좋은 아버지가 아니란 걸 안다. 그래서 계속 일자리를 유지하려 노력하고, 술을 끊고, 아주 멀리 떨어진 도시 마르세유까지 앨리슨을 만나러 간다. 그리고 그 도시에서 "아빠는 아무것도 해결할 수 없다.“고 생각하는 딸의 진심을 아주 직관적으로 듣게 된다. 그는 그간의 실수를 만회하려 노력하지만 계속 꼬여버리는 사건 앞에서 짧은 절망을 느낀다. 하지만 아버지를 제외하면 기댈 곳이 없는 딸 앨리슨과 자신을 마치 아버지처럼 따르는 마야를 보살피며 조금 늦게 발현된 부성애를 불태운다. 빌은 앨리슨이 좋아하는 색과 옷 스타일 같은 작은 정보 하나조차 모르고 있는 아버지였지만, 그가 늦게나마 태워낸 부성애는 거짓이 아니었다.
간절함에 밀려 틀어진 방향성
‘어떤 방식을 써서든 앨리슨의 무죄를 입증하겠다.’는 게 빌의 최종적인 목표다. 빌은 버지니의 도움을 받아 파티가 있었던 바의 사장과 전직 경찰을 만나고, 위험한 동네인 칼리스테를 휘젓는다. 그리고 끝내 범인으로 추정되는 아킴을 지하실에 가두게 된다.
버지니는 아무 아랍인이나 잡아넣으라는 바 사장을 보고는 인종 차별주의자라고 몸서리를 치며 빌과 잠깐의 대립구도를 만든다. 그 상황에서도 빌은 ”그저 내 딸을 위한 일“이라며 고집을 꺾지 않는 모습을 보였다.
빌이 칼리스테에서 좌절을 한 번 맛보고 버지니와 마야의 집에 함께 살기 시작하면서 결과만을 향해 돌진하던 걸음을 좀 늦췄나 싶었는데, 그는 사건의 키를 쥐고 있는 아킴을 보자마자 다시 방향성을 꺾어 맹렬한 추적을 시작한다.
온전한 해결법이 아닌 걸 알면서도, 잘못되어 가고 있는 걸 알면서도 말이다. 결국 앨리슨의 무죄는 입증되었지만 잘못된 방향성을 선택한 빌은 다시 하나의 사랑을 잃고 만다. (사실 내 자식을 위해 무엇이든 할 수 있는 게 부모의 마음이니 그의 선택을 질타할 생각은 별로 없다. 그래도 내 자식은 지켰으니까..?)
가난한 학생과 부자 학생
<스틸워터>는 딸의 무죄를 향해 달리는 아버지의 발걸음을 중심에 두고, 사건의 일부 조건들을 겉으로 떼어내 사회에 만연하게 일어나고 있는 인종차별적 행동들과 편견들을 이야기한다.
아킴이 살고 있는 동네 칼리스테는 마약거래가 빈번히 일어나는 치안이 좋지 않은 곳이다. 아킴은 조금 포장하자면 거친 동네, 나쁘게 말하자면 버려진 동네에 가까운 그곳에서 살아온 아랍인 청년이다. 아킴을 찾기 위해 방문했던 바의 사장은 아랍인 학생들을 보고 원숭이 놈들이라 칭하고, 누구를 감옥에 잡아넣든 어차피 언젠가 죄를 지었을 것이라며 차별적인 말들을 뱉어낸다.
앨리슨의 주변인이었던 교수 또한 앨리슨이 미국인이라는 이유만으로 잘 살아온, 교육받은 학생이라 생각하고 앨리슨의 연인이었던 아랍계 학생 리나를 가난한 학생이라 생각한다. 그리고 둘의 사이를 애초에 어울릴 수 없었던 사이라 단정 짓는다.
빌은 시추기의 등장으로 당장 밥벌이가 어려워진 상황에 처해있으며, 앨리슨이 어렸을 때 또한 항상 땅굴을 파며 어렵게 생활을 이어왔다. 미국 출신 백인이라는 딱지에 따라붙는 카우보이라는 조롱과 혼자 잘 살아온 이기적인 놈이라는 편견은 칼리스테에 방문한 빌을 위험에 빠트리기도 한다.
여러 인물들의 대사 속에 은근하게 녹아있던 차별과 편견, 그리고 그에 따른 위험요소들에 불편함을 느끼는 순간이 꽤나 많았다.
”진실은 없어요. 이야기뿐이죠.“
결국 이 사건의 마무리에 진실은 없이 떠도는 이야기와 결과만 있을 뿐이다. 리나는 살해당했다. 하지만 앨리슨이 죽인 건 아니다. 앨리슨은 벗어나고 싶다고만 이야기했지 리나를 살해한 적은 없다. 이 말들은 진실이긴 하다. 하지만 다른 진실의 조각들은 조용히 묻혀버린다.
뒤이어 어떤 이의 흔적이 나왔다. 앨리슨은 진범이 아니다. 등등 여러 이야기가 떠돌았지만 진실은 밝혀지지 않는다. 당사자들만 알고 있을 뿐.
스틸워터로 돌아온 빌은 스틸워터의 모든 게 달라 보인다고 말한다. 사실 변한 건 없는데, 그의 눈엔 모든 게 달라 보이는거다. 묻혀있던 진실이 전부 밝혀진 건 아니지만 앨리슨이 아닌 다른 사람이 범인으로 지목되어 얼핏 모든 게 뒤바뀐 것처럼 보이는 이 사건처럼 말이다.
바뀐 건 없지만 바뀌어버린 사건. 무거운 사건을 겨우 들어옮겨 맞이한 이 결말이 마냥 시원하진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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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뒤엎어진 테이블, 그 위에 남은 추한 본성들
주요 내용
- 영화 소개, 줄거리
- 긴장감을 끌어올리는 요소들
- 붕괴되는 부모
- 사건의 피해자들이 의미하는 것
- 거울 같은 연출
보통의 가족 (A Normal Family, 2024)
뒤엎어진 테이블, 그 위에 남은 추한 본성들
개봉일 : 2024.10.16.
관람등급 : 15세 이상 관람가
장르 : 드라마, 스릴러
러닝타임 : 109분
감독 : 허진호
출연 : 설경구, 장동건, 김희애, 수현
개인적인 평점 : 4 / 5
쿠키 영상 : 엔딩크레딧 시작 전에 하나
나는 보통 아주 재밌거나 취향에 딱 맞는 영화를 만나면 미쳤다고 표현한다. 그런데 미쳤다는 뭔가 한순간 강하게 후려치는 느낌이 있다. 그래서 <보통의 가족>은 미쳤다기보단 시종일관 우아하게 돌고 있는, 돌아있는 영화라고 표현하려 한다.
<보통의 가족>은 왈츠를 추듯 우아하게 합을 맞추는 배우들과 함께 부드럽게 턴을 돌며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나아간다. 예상을 벗어나는 이야기의 흐름은 호기심을 일으키고 서서히 상승하는 대비감과 극 전반에 흐르는 클래식 음악은 우아한 긴장감을 끌어올리며 한눈 팔 틈을 주지 않는다.
<보통의 가족>은 헤르만 코흐의 소설 [더 디너]를 리메이크한 영화로 한 테이블에 모여 식사를 하고 있는, 보통의 가족처럼 보이는 이들의 이면을 거침없이 털어내는 작품이다.
영화는 다른 성격의 두 형제, 묘한 신경전을 벌이는 내부인과 외부인 같은 두 여자, 속을 알 수 없는 아이들 사이에 얼룩진 거울 한 장을 대놓고는 동일한 질문을 던진다.
“자, 이런 문제가 생겼어. 너는 어떻게 할래?”
동시에 튀어나온 각자의 응답은 서로 얽히고 설키며 새로운 쟁점을 만들고 거울 앞에 앉은 인물들은 시시각각 태도를 바꾸며 식은땀을 흘린다. 땀이 지나간 자리엔 서늘함과 축축한 불쾌감만이 남는다.
영화는 주인공들에게 자극적인 음식을 반복해 대접하며 그들이 언제까지 태평한 척을 할 수 있는지 실험한다. 이들은 애써 꼿꼿한 자세와 평온한 호흡을 유지하며 자리를 지키지만 결국엔 폭발하여 테이블을 뒤엎는다. 이제 이 가족의 테이블 위에 오가는 건 이기적인 합리화와 책임 전가, 추한 본성뿐이다.
아이들을 사이에 두고 충돌하는 어른 재완, 재규, 연경, 지수 역을 맡은 설경구, 장동건, 김희애, 수현 배우는 예리하게 갈아낸 각자의 캐릭터를 손에 쥐고 쉴 틈 없는 칼싸움을 펼친다. 이들이 만들어내는 팽팽한 대립구도는 극의 텐션과 몰입력을 한도 없이 끌어올린다.
개인적으로 설경구, 장동건 배우의 경우 최근 필모그래피의 방향이 조금 아쉽다고 느끼고 있었는데, 이 영화를 보고 ‘아직은 이 배우들을 더 믿어봐도 괜찮을 것 같다’는 믿음이 생겼다.
다른 신념을 가진 재완과 재규. 연경과 지수재완은 살아있는 멧돼지를 사냥하고 재규는 죽어가는 사람을 살린다. 재완은 악질 가해자에게 ‘(돈을) 얼마나 줄 수 있냐’고 묻고 재규는 피해자가 병원 수납을 마치지 못했음에도 그의 생명을 위해 우선 다음 수술 날짜를 잡는다. 돈을 좇는 재완과 돈보다 올바름이 중요한 재규. 재완과 재규는 형제지만 다른 신념을 갖고 있다.
재규의 아내인 연경은 재규와 비슷하게 선한 신념을 갖고 살아간다. 그는 성공한 프리랜서 번역가이자 아동 복지에 힘을 보태는 어른이며 치매가 온 시어머니를 돌보는 착한 며느리다. 최근 가족이 된 재완의 아내 지수는 재완의 재력 덕분에 생긴 여유를 즐기고 있다. 지수는 자신을 외부인 취급하는 연경과 약한 대립각을 잡는 것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그것을 오래 유지하지 않고 스스로 이 가족과 한 발자국 정도 거리를 둔다.
- 아래 내용부터 영화의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붕괴되는 부모들
아이들 사건의 피해자, 노숙자가 의미하는 것재완은 나래 사건의 합의를 위해 가해자와 대화를 나눌 때 이렇게 말한다.
“(부모는) 자식 앞에선 약해지기 마련이죠.”
이 말은 혜윤의 부모인 재완, 시호의 부모인 재규, 연경에게도 그대로 적용된다.
재완, 재규, 연경은 자신의 삶에 있어선 각자 다른 신념을 가진다. 하지만 ‘내 아이가 죄를 저질렀다’는 문제에 있어선 각자의 신념을 무너트린 채 비슷하게 행동하고 결국 같은 결론을 낸다. 부모들은 아이를 위해 눈물 흘리고 싸운다. 그리고 붕괴된다.
억울한 피해자인 노숙자와 나래는 재완, 재규 형제의 신념 변화를 보여주는 장치다. 노숙자는 아무 잘못도 하지 않았지만 폭행이라는 큰 신체적 충격을 받고, 나래는 어른들의 싸움 때문에 사고를 당하고 병원에 입원한다. 재완, 재규는 아이들이 독단적으로 벌인 폭행 사건을 알고 큰 충격을 받는다. 노숙자는 혼수상태가 되고 나래는 큰 수술을 받으면서도 삶을 위한 사투를 벌인다. 재완, 재규는 충격을 받은 후에도 아직 남아있는 각자의 신념에 따라 ‘이대로 숨길 수 있다’, ‘시호를 자수 시켜야 한다.’ 주장하며 옥신각신 싸움을 한다. 그러다 노숙자는 사망, 나래는 상태가 다시 나빠지게 되고 그 시점에 시호와의 진솔한 대화, CCTV 영상의 발견이라는 상황을 뒤집을 사건이 터진다. 이때 형제의 굳건했던 신념은 붕괴되고 뒤바뀌게 된다.
처음엔 피해자의 눈물에 공감하며 나래 엄마에게 예배당을 알려주던 재규는 그곳에 앉아 가해자인 아들을 생각하며 눈물을 흘리고 피해자인 노숙자가 죽었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갑자기 입맛이 돌기라도 하는지 식판을 싹싹 비워낸다. 아내인 연경은 시어머니의 냄새 나는 옷을 갈아입히다 이 소식을 듣고 여러모로 깨끗하게 해결된 상황에 만족하며 웃음 짓는다. 반대로 돈을 위해 가해자를 옹호하던 재완은 복잡한 얼굴로 노숙자의 집에 찾아가 돈 봉투를 밀어 넣는다. 이후 세 사람은 바뀐 신념을 주장하며 더 강하게 충돌한다.
지수는 이 ‘신념의 붕괴’라는 사건에서 제외되는 유일한 어른이다. 연경은 지수를 혜윤의 엄마가 아닌 사람, 외부인으로 반복해 칭하는데 지수는 여기에 열을 내기보단 그럭저럭 받아들이는 모습이다. 사실 냉정하게 말하자면 지수는 혜윤과 큰 친밀감이 없고 부모라기엔 조금 먼 느낌이 있다. 그래서 지수는 재완, 재규, 연경과는 다르게 객관적인 외부인의 시선으로 혜윤, 기호의 사건을 바라보게 되고 마지막엔 CCTV 영상을 공유하며 엇나간 재완의 신념을 붕괴시키는데 큰 역할을 한다.
숨겨둔 양면성을 꺼내놓다
인물들의 심경 변화, 거울 같은 연출사람에겐 한 가지 면만 있을 수 없다. 누구나 추하고 부끄러운 면을 갖고 있다. 다만 그것을 어떻게 포장하느냐에 따라 보이는 게 다를 뿐이다. 영화는 우아하게 와인을 마실 것 같아 보이지만 실제론 턱에 초고추장을 묻히고 와인을 소주처럼 들이키는 지수, 고급스러운 정장을 차려입고 꼿꼿하게 앉아있지만 사실은 꽉 끼는 옷에 숨도 못 쉬어 화장실에서 몰래 지퍼를 푸는 연경, 정정당당함을 이야기했으면서 시호를 위해 극단적인 사고를 치는 재규를 보여주며 완벽함 뒤에 숨겨진 부끄러운 모습들에 대해 이야기한다. (재완은 이들과 다르게 부끄러운 모습을 먼저 보여주고 후반부에 들어 그 뒤에 있는 보통의 모습을 보여준다.)
이들 중에서 양면성을 가장 잘 보여주는 인물은 재규다. 그는 가족들 앞에서 정의로운 척을 하지만 뒤에선 아이들과 똑같은 일들을 저지른다. 그는 술을 먹고 노숙자를 폭행, 유기한 아이들처럼 술을 먹고 고라니를 친 후 사체를 유기한다. 두 사고 장면은 비슷한 연출 요소들로 채워진다. (피해자를 질질 끌고 가는 가해자와 바닥에 그려지는 피, 비슷한 카메라 구도)
노숙자의 소식을 듣고 시호와 대화를 나누며 포장을 걷어낸 재규는 CCTV 속 아이들이 했던 말과 비슷한 결의 발언들을 내뱉고, 재완이 가해자를 옹호하며 했던 행동을 그대로 따라 하며 그를 차로 쳐버린다. 이제 재규에게 남은 건 뻔뻔한 본성뿐이다. 흘러가듯 들렸던 ‘재규가 알고 보면 무서운 사람’이라는 어머니의 말, ‘너랑 나랑 진짜 나쁜 형제 새끼’라는 재완의 말은 거짓이 아니었다.
상영이 끝난 후에도 이래저래 떠들고 싶게 만드는 영화가 있다. <보통의 가족>이 딱 그렇다. 영화가 끝나면서 테이블 위 조명도 모두 꺼졌지만 극 중 인물들이 남긴 첫맛과 끝 맛은 여전히 입안을 맴돌며 아쉬움을 남긴다. 나는 아직 이 화려한 갈등의 테이블 위에 차려진 인물들을 더 씹고 뜯고 맛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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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웬디>, "늙는다는 것은 위대한 모험이야"
씨네랩으로부터 언론배급시사회를 초청받아 크리에이터 자격으로 개봉 전 <웬디>를 관람하였다.
피터팬 탄생 110주년을 기념하며 지난 6월 30일에 개봉한 영화 <웬디>는 영원히 어른이 되지 않는 아이인 '피터'가 아닌 '웬디'의 시선으로 바라본 '피터팬'을 그려낸 작품이다.
<웬디>의 감독 벤 자이틀린은 어린 시절부터 재미와 자유를 추구하는 피터팬을 꿈꿨지만, 영화 <비스트>를 연출한 후 삶 전체가 바뀌는 경험을 하여 이를 계기로 '나이 드는 것'에 대한 새로운 의미를 탐구하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탄생한 것이 바로 '피터팬'을 각색한 <웬디>이다.
"사람은 누구나 좋든 싫든 성장하고 변화하게 되며,
이때 수많은 실패를 거듭하며 어린 시절 품었던 확신들은 서서히 사라지게 된다."
- 벤 자이틀린 감독
기찻길 옆 식당에서 일하는 어머니를 도우며 살고 있는 웬디에게는 쌍둥이 남자 형제인 더글라스와 제임스가 있다. 이 작은 식당이 세상의 전부인 소녀 웬디의 마음 속에는 호기심과 모험심, 수갈래로 뻗어나가는 꿈들이 있다. 다른 날과 마찬가지로 모험에 대한 꿈을 꾸던 날 밤, 웬디는 기차를 타고 있는 소년 '피터'를 발견한다. 더글라스, 제임스와 함께 기차에 탄 웬디는 영원히 어른이 되지 않는 '아이'로 살아갈 수 있는 신비로운 섬에 도착한다.
그리고 웬디의 길고 긴 여정이 시작된다.
영화를 보는 내내 든 생각은 '낯설다'였다.
내가 어렸을 때 관람하고 지금 어렴풋이 기억하는 영화 <피터팬>의 분위기는 동화같은 세상 속에서 아이들이 아기자기하게 살아가는 모습이었다. 하지만 <웬디>는 동화라기보다는 '야생', '거칠다', '생생하다', '스릴 넘친다'라는 단어들이 더 어울리는 영화이다.
어른들이 없는 세상 속에서 어린 아이들은 여기저기를 모험한다. 동시에 방황한다.
여러 사건사고를 겪는 아이들이 이에 대처하는 방법은 서툴다. 불안정하다.
마치 알게 모르게 점점 몸과 마음은 자라지만, 아직 내면에 '아이로 남고 싶다'라는 생각이 존재하여 생기는 불협화음같다.
그리고 이러한 불협화음은 웬디의 불안한 시선을 통해 잘 전달된다.
영화를 보며 가장 놀랐고, 감탄한 점은 아역배우들의 연기였다.
'웬디' 역할의 데빈 프랑스, '피터' 역할의 야슈아 막, '더글라스' 역할의 게이지 나퀸, '제임스' 역할의 개빈 나퀸 등 모든 아역배우들이 영화와 하나가 되는 연기를 선보였다. 영원히 어른이 되지 않고 살아갈 수 있는 섬이 주요 배경이기에 아역배우들이 영화를 이끌었는데, 이질적인 느낌이 하나도 없었다.
이 섬에서는 희망을 잃으면 늙게 된다. 더 이상 아이의 모습으로 남아 있지 못하는 것이다. 이 섬에서 어른이 되어버린 사람들은 모두 희망과 기쁨을 잃어버린 '아이들'이었다. 영화의 중반부에서 쌍둥이 형제 중 제임스는 항상 함께 하던 더글라스가 섬에서 없어지자, 깊이 절망한다.
"희망을 버리면 안 돼. 그게 널 늙게 하는 거야."
웬디는 제임스가 희망을 잃지 않도록 노력하지만, 제임스는 결국 희망을 잃고 점점 노화하기 시작한다.
이 순간 나는 수없이 많은 꿈과 희망을 가졌다가 시간이 흘러 몸과 마음이 자라면서 꿈을 하나둘씩 포기한 '나 자신'을 떠올렸다. 그 동안 나의 꿈을 포기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고,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나 자신을 위로하며 살아오곤 했었다. 사실 이 모든 일들이 '나 스스로 나의 희망을 버린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자 조금 씁쓸해지기도 했다.
영화 속에서 주체적이고 활동적인 웬디는 용맹하게 모험을 주도한다. 노화가 시작된 제임스를 회복시키기 위해 여러 노력을 이어나간다. 희망을 잃고 어른이 된 사람들에 대항하고, 바닷 속 '어머니'의 존재를 깨닫기까지의 모든 여정의 주체는 '웬디'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늙는다는 것은 위대한 모험이야."
웬디는 '자연스럽게 나이가 드는 것'의 가치를 깨닫게 된다. 늙는 것이 무조건 부정적이지 않다는 사실을 깨달은 웬디는 섬을 떠나기로 결심한다. 다시 현실세계로 돌아간 웬디는 시간이 흐르는 동안 자연스레 늙어가며 그에 맞는 삶을 살아간다.
하지만 피터는 섬에 계속 남아 있는다. 피터는 '영원히 아이로 남아 있기'를 바란 것이다. '나이 듦'의 가치를 깨달은 웬디와 상반되는 결정을 하였다.
"마법은 피터의 섬에만 있는 것은 아니었으며,
이제부터 피터의 이야기는 잠자리 이야기에 그쳐 있다."
웬디가 겪은 '피터가 사는 섬'에서의 이야기는 모험 이야기가 되어 웬디의 아이들에게 전해지기 시작했다. 희망과 꿈이 가득한 삶을 사는 아이들에게 모험에 대한 강한 욕구를 불어넣는 '잠자리 이야기'가 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꿈을 꾸는 아이들에게 또다시 피터가 탄 기차가 찾아온다. 어린 웬디를 닮아 강한 모험심과 호기심을 간직한 웬디의 딸은 이 기차를 탄다. '영원히 어린 아이로 남을 수 있는' 곳으로 간다.
웬디의 딸이 '나이 듦'의 가치를 깨달을 수 있을지는 미지수이다.
과연 다시 현실 세계로 돌아올지, 아니면 영원히 어린 아이가 되어 그곳에서 살아갈지.
'잃어버린 꿈과 희망, 그리고 동심'에 대해 깊이 생각해보게 된 영화였다.
어린 시절 나는 정말 무수한 꿈을 가진 아이였으며, 항상 희망찬 아이였다. 하지만 커가면서 자연스레 이 꿈과 희망들은 사라졌다. 포기했다기보다는 '사라졌다'라고 표현해야 적절한 것 같다. 한 해 한 해 나이가 들고, 점점 현실을 깨닫고 이에 적응해가며 자연스레 내가 가진 (조금 무모하다고도 생각되는) 꿈은 사라져갔다.
이런 꿈들은 이제 막 어른이 되어 현실에 치여 힘들게 살아갈 때 문득 떠오르곤 한다. '아 그땐 이런 꿈을 가졌었지', '그땐 참 순수했지', '어릴 땐 겁도 없었다' 등의 생각처럼 말이다. '어렸던 나 자신'이 그립다기보다는 '어릴 때 내가 가졌던 순수한 꿈'이 그리운 것 같다. 순수했던만큼 많은 열정을 가졌고, 밝고 활기찬 모습이었으니까. 사실 지금도 종종 그립다.
하지만 '피터'가 나타나서 어린 아이로 남을 수 있는 섬에 가자는 제안을 한다면 거절할 것 같다.
현실세계에서 '아이에서 어른이 되어가는' 과정은 많이 힘들고 버티기 어렵다. 언제 진짜 어른이 될지도 불확실하다. 마냥 불안정한 시기이다. 하지만 어른이 되어가며 우리는 새로운 것을 배운다. 그리고 또다른 꿈을 꾸기 시작한다. 수많은 경험을 하고, 여러 시행착오를 겪으며 (내면적으로) 단단한 사람이 될 수 있다. 한 단계 더 성장할 수 있다. 그리고 마냥 순수하기만 하던 꿈이 아닌, 앞으로 살아가며 '진짜 이루고자 하는', '진짜 이룰 수 있는' 꿈을 가지게 된다. 이 꿈은 삶의 원동력이 될 수도 있고, 나 자신을 발전시킬 수 있는 힘이 될 수도 있다.
이 영화 속의 '웬디'처럼 말이다.
아이에서 어른으로 자연스럽게 나이가 들어가며 얻는 지혜만큼 값진 것은 없다고 생각한다. '피터의 섬'에서 겪는 일들이 아무리 재미있고 뜻깊다 해도 말이다. 개인적으로 어린 아이들보다는 다소 지친 현실을 살고 있거나 때때로 어린 시절을 그리워하는 어른들에게 이 영화를 추천하고 싶다. 혹은 아이에서 어른이 되어가는 과도기를 겪으며 혼란스러워하는 사람들에게 추천하고 싶다.
늙는다는 것은 위대한 모험이다.
이 모험을 하며 우리는 여러 감정을 겪고 이를 통해 또다른 교훈을 배우며,
앞으로 계속 나아갈 수 있는 용기와 지혜를 얻고,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며 또다른 행복을 맞이할 수 있다.
피터의 섬 안에 줄곧 있으면서 이런 흥미진진한 모험을 포기하기에는 너무 아쉽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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