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inoDAY2025-05-15 17:01:41
바이러스 | 사랑하는 법을 잊은 이들에게 보내는 격려
<바이러스> 리뷰
*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매일 밤늦게까지 일하는 현실에 지친 나머지 연애할 여유는 꿈도 꾸지 못하는 번역가 '택선'(배두나). 힘겹게 나간 소개팅 자리에서 첫 만남에 청혼까지 하는 모쏠 연구원 ‘수필’(손석구)을 만난 택선은 늘 그랬듯이 수면제와 혼술로 밤을 보낸다. 그다음날, 택선의 세상은 돌연 분홍빛으로 물든다. 초등학교 동창 ‘연우’(장기하)의 영업용 단체 문자에 가슴이 설렌 그녀는 잘 꺼내지도 않던 화려한 원피스를 챙겨 입고 연우를 만나러 간다.
영문을 모르는 연우에게 쉴 틈 없이 플러팅을 하던 택선. 하지만 그녀 앞에는 구급차와 함께 놀라운 소식이 들려온다. 소개팅에서 만난 수필이 치사율 100%의 바이러스에 감염되었고, 갑작스럽게 이성과 사랑에 빠지는 게 감염 증상이며, 그녀 역시 바이러스에 감염되었다는 것. 이에 택선은 수필이 죽기 직전 남긴 메시지대로 유일하게 치료제를 만들 수 있는 연구원 ‘이균’(김윤석)을 찾아 나선다.
다시 사랑할 수 있을까
사랑하지 않는 나라. 대한민국의 2020년대를 수식하는 어휘 중 하나다. 2030 미혼남녀 중 절반 이상이 연애를 하지 않거나 할 의향이 없다는 통계가 해마다 발표되는 실정이다. 많은 사람들이 그 원인으로 현실적 어려움을 거론한다. 과열된 경쟁과 취업난, 불안정한 거주와 같은 현실을 고려했을 때 사랑보다는 자기 취미나 휴식에 에너지와 시간, 돈을 투입하는 게 더 효율적이고, 큰 보상을 준다고 사람들이 느낀다는 것.
다만 사랑하는 법을 잊은 이유는 개인 내부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타인과의 사랑은 한 가지 전제가 필요하다. 자기 자신을 사랑할 줄 알아야 비로소 타인과 사랑을 나누는 법도, 그 과정에서 사랑이 증폭되는 행복도 느낄 수 있다. 그런데 매년 낮아지는 한국의 행복 지수 순위, 나날이 증가하는 정신질환자 수는 그 전제가 채워지지 않았음을 방증한다.
강이관 감독의 <바이러스>는 이 암울한 현실을 타파하고자 한다. 개인과 공동체의 우울증을 영화적으로 극복하려고 한다. 재난 영화의 기본 틀 안에서 개인 차원의 사랑의 부재는 코미디로써, 공동체 차원의 문제는 SF와 멜로적인 분위기로써 승화하려 한다. 문제는 여러 장르와 플롯 사이에서 확실하게 교통정리를 해내지 못했다는 것. 그 결과 <바이러스>의 야심 찬 의도와 통찰은 미처 관객에게 전해지지 않는다.
현실을 축약한 남녀의 장르
두 주인공, 택선과 이균의 서사는 각각 한국인의 개인적, 공동체적 어려움을 대변한다. 택선은 사랑을 하지 못하거나 사랑을 느낄 여유조차 없는 이들의 모습을 보여준다. 번역가로 일하는 택선은 우울증에 걸렸다. 그녀는 불규칙한 업무 환경으로 인해 수면제를 복용해야 할 정도로 불면증에 시달리고, 나날이 혼술에도 익숙해지며, 항상 부정적인 생각에 사로잡혀 있다고 자도 토로한다.
이균은 택선과는 다르다. 나이도 더 많고, 사랑도 충분히 해 본 사람이다. 대신 그는 택선의 우울함 못지않게 무거운 책임감에 짓눌린다. 그는 사랑하는 법을 잊거나 사랑하지 못하는 이들에게 죄책감을 느낀다. 그의 동생이 택선처럼 힘들어하다가 애써 내색하지 않고 버티다가 극단적 선택을 했을 때, 그는 아무런 눈를 채지 못했으니까. 그가 회사 운영진과 싸우면서까지 부작용 없는 우울증 치료제를 개발하려고 악을 쓰는 이유다.
<바이러스>는 이처럼 다른 듯 같은 아픔을 공유하는 두 주인공의 이야기를 여러 장르의 문법으로 표현하고자 한다. 사랑할 여유가 없는 택선의 어려움은 코미디로써 극복하려 한다. 엉망진창이었던 소개팅에서 만난 손석구와의 재회, 바이러스에 감염된 후 초등학교 동창이었던 장기하를 일방적으로 유혹하는 하룻밤이 대표적이다. 반면에 이균의 개인사는 치료제를 개발하는 과정을 보여주는 SF와 재난 영화의 틀과 클리셰에 녹아든다.
사랑이라는 바이러스의 힘
코미디, SF, 재난을 거친 끝에 <바이러스>는 멜로라는 종착역에 도달한다. 이균이 개발하던 우울증 치료제가 유출되는 사고를 계기로 만난 택선과 이균. 택선을 치료하기 위해 이균은 급하게 치료제 개발을 재개한다. 택선은 그에게 강한 호감을 느끼지만, 이균은 명확히 선을 긋는다. 미완성 우울증 치료제가 대량의 도파민을 분비하게 만드는 물질이기에 그녀가 느끼는 호감은 단지 바이러스 감염 증상 중 하나일 뿐이라고.
하지만 그들의 관계는 이균의 생각과 다르게 발전한다. 택선의 플러팅이 계속되자 이균은 조금씩 마음의 문을 연다. 치료제 개발의 계기였던 동생의 자살에 대해서도 털어놓고, 택선을 실험체로 사용하려는 음모로부터 그녀를 보호한다. 본인의 힘으로 그녀를 치료해 내는 데 성공하면서 동생을 지켜주지 못했다는 마음의 짐도 마침내 덜어낸다.
택선도 바이러스에 감염되는 순간까지 자신을 치료해 주려는 이균을 지켜보면서 마음 한편의 외로움을 비로소 떨쳐낸다. 그 과정에서 두 남녀 주인공은 서서히 사랑에 빠진다. 한쪽은 자기 자신을 사랑하는 법을 배우고, 다른 한쪽은 아픔을 털어놓는 법을 익히면서 비로소 상대방을 사랑할 준비를 마쳤기에 가능한 일이다.
이는 여동생의 결혼식에서 건넨 이균의 축사가 인상적인 이유이기도 하다. 그는 사랑이 바이러스와 다를 바 없다고 말한다. 한 바이러스를 극복하고 나면 다른 바이러스에 걸리듯 이별의 아픔과 상처를 극복하고 나면 또 다른 사람과 만나는 것이 사랑이라는 것. 즉, 이균의 축사는 조금도 아플 여유가 없고, 마음의 흉터를 지워낼 힘조차 부족한 지금을 살아가는 한국인에게 <바이러스>가 건네고 싶은 격려라고 할 수 있다.
코미디에 묻힌 서사
문제는 <바이러스>의 격려가 스크린 너머로 제대로 전해지지 않는다는 것. 여러 장르의 문법을 빌린 뒤섞다 보니 주인공들의 이야기나 메시지보다도 무너진 짜임새가 먼저 눈에 들어온다. 택선만 보더라도 그녀의 마음 상처는 잘 느껴지지 않는다. 수필과 소개팅을 하고, 연우와 하룻밤을 보내는 과정에서 그녀의 외로움이 단순히 코미디를 위한 도구로 활용되는 인상이 짙기 때문이다.
이균의 자책도 코미디스러운 분위기와 연출에 가려진다. 바이러스에 감염된 택선과의 우스꽝스러운 상황과 에피소드를 강조하는 과정에서 그의 개인사를 두 세 마디 대사로 처리해 버린 결과다. 결과적으로 두 주인공 사이에 특별한 유대감이 싹트는 계기도, 과정도 매끄럽게 설명되지 못한다. 택선이 자기 목숨이 걸린 실험을 이균에게 일임하거나, 그가 택선을 목숨 걸고 지키려고 하는 후반부 전개와 감정선도 다소 부자연스러워진다.
SF적인 분위기를 조성하는 과정에서도 걸림이 된다. 코미디를 노리는 연출과 묘사로 인해서 SF 장르에 요구되는 정밀함이 실종되기 때문이다. 일례로 극 중 바이러스가 유출되는 과정과 그에 대처하는 당국의 어설픈 일 처리는 코로나 팬데믹을 겪은 관객의 눈높이를 충족시키지 못한다. 마치 <비상선언>을 보는 듯하다. 결국 바이러스 치료제를 만들려고 사투를 벌이는 이균의 모습도 충분히 절박하다는 인상을 남기지 못한다.
이 맛도 저 맛도 아닌
마지막으로 재난 영화의 문법을 고수하는 지점에서 <바이러스>의 혼란은 정점에 달한다. 재난 영화, 특히 인재가 발생하는 영화에는 클리셰가 있다. 도덕성보다는 수익에만 초점을 맞춘 기업의 잘못된 실험으로 인해 대형 재난이 발생하고, 해당 기업은 그 와중에도 사고 해결보다는 이익 극대화에만 몰두한다. 유일하게 주인공만이 잘못된 상황을 막기 위해 악전고투한다.
<바이러스>는 이 클리셰를 답습한다. 이균은 환자들을 실험체로 활용하고 폐기하려는 백신 연구소의 잘못된 연구 지침 때문에 반목한다. 그런데 이 갈등과 대립 구도도 온전히 활용되지 못한다. 그저 이균과 연구소 간에 묵은 악연이 있었다는 언급이 있을 뿐, 구체적으로 그 내막을 보여주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재난 영화의 클리셰는 도리어 전반적으로 코미디운 분위기만 깨트릴 뿐, 장르적 쾌감을 선사하지는 못한다.
즉, <바이러스>는 발상과 의도만 좋았다. 정작 발상을 스크린으로 옮기는 데는 실패했고, 어설픈 유머만 남겨버렸다. 너무 많은 재료와 여러 레시피를 섞은 나머지 맛을 알기 어려운 음식이 만들어진 셈이다. 배두나와 김윤석, 손석구와 장기하라는 화려한 캐스팅으로도 그 맛을 되찾기는 요원해 보인다. 그래도 '사랑은 바이러스와 같다'라는 이균의 대사 한마디만큼은 관객의 뇌리에 남을 듯하니 절반의 성공이지 않을까.
Poor 형편없음
코미디, SF, 멜로, 재난이 뒤섞인 난장판
Relative cont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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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픽사라서 아쉽지만 화려한 SF 애니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우주선의 추락으로 인해 지구로부터 4.2백만 광년 거리 떨어진 외딴 행성에 고립된 우주비행사 '버즈(크리스 에반스)', 그의 동료 '엘리샤 호손(우조 아두바)', 그리고 천 명이 넘는 일행들. 행성을 벗어나기 위해서는 고장 난 우주선의 광속 비행 장치를 개발해야 했고, 추락 당시 조종간을 잡고 있던 버즈는 죄책감을 떨치기 위해 시험 비행의 파일럿으로 나선다. 그러나 시험 비행은 실패로 돌아가고, 설상가상으로 광속의 비행으로 인한 시간 지연을 발생하면서 단 몇 분간 비행한 버즈는 수십 년의 지난 행성에 도착한다. 그가 떠난 사이 행성은 '저그 황제(제임스 브롤린)'의 공격으로 인해 황폐해졌고, 버즈는 저그 황제에게 대항하는 동료 엘리샤의 손녀 '이지(키키 파머)'와 그녀의 팀원들을 만나 새로운 임무에 나선다.앤거스 맥클레인 감독의 <버즈 라이트이어>는 픽사 애니메이션 스튜디오의 새로운 장편 애니메이션으로, 버즈 라이트이어의 모험을 그린 SF 애니메이션이자 <토이 스토리> 시리즈에서 파생된 스핀오프 격 영화다. 다만 <토이 스토리>에 등장한 장난감 '버즈 라이트이어'의 이야기를 다루는 것은 아니다. 영화의 오프닝에서 장난감 '버즈 라이트이어'는 본 작의 주인공인 우주 비행사 버즈 라이트이어를 모델로 만들어졌고, <토이 스토리> 1편 당시 앤디가 이 영화를 관람한 후 버즈 라이트이어라는 캐릭터를 좋아하게 되었다고 언급된다.
그래서인지 <토이 스토리> 시리즈의 분위기를 기대하고 <버즈 라이트이어>를 본다면 낭패를 볼 수 있다. 개봉 전 아이맥스 버전 상영을 강조한 이유를 충분히 알 수 있을 정도로 스페이스 오페라 분위기가 강한 영화이기 때문이다. 또 <버즈 라이트이어>에게 이전까지의 픽사 애니메이션을 기대하더라도 당황스러울 수 있다. 영화의 지향점이 다르다 보니 직관적인 재미로 무장한 오락성과 대중성은 확실하나, 기존 픽사 영화에서 맛볼 수 있었던 감동과 메시지가 설 자리는 줄어든 까닭이다.
스페이스 오페라 영화 <버즈 라이트이어>의 매력
<버즈 라이트이어>에서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것은 명백히 SF, 스페이스 오페라의 장르적 쾌감을 목표로 하고 있다는 점이다. 엄연히 <토이 스토리>의 극중극이라고 밝힌 것이나, 버즈의 성우를 본래 담당이었던 팀 앨런에서 캡틴 아메리카의 본체인 크리스 에반스로 변경한 것은 그 방증이나 다름없다. 그래서인지 <버즈 라이트이어>는 매 장면마다 뇌리에 강렬하게 각인된, 우주를 배경으로 한 수많은 영화들의 오마주로 빼곡히 채워 넣고 있다. 우선 냉동 수면 상태로 미지의 행성으로 향하는 장면은 <프로메테우스>나 <아바타>처럼 행성 간 여행을 다룬 영화들과 유사하다. 외계 행성에 착륙하여 식민지를 만드는 것도 <아바타> 시리즈와 닮았다. 광년(光年)이라는 의미의 제목인 '라이트이어(Lightyear)'가 암시하는 상대성 이론에 의한 시간 지연이라는 소재는 <인터스텔라>를 연상케 한다.
이에 더해 스페이스 오페라의 양대 산맥이라 할 수 있는 <스타트렉>과 <스타워즈> 시리즈의 요소들도 빼놓을 수 없다. 낯선 행성에서 생명체의 존재를 확인하기 위해 착륙하거나 사고로 인해 외계 행성에 불시착하는 것은 <스타트렉> 시리즈를 닮았다. 한편 <토이 스토리> 2편에서 버즈와 대결한 바 있는 저그 황제의 존재나 거대한 우주선의 디자인, 그에 맞서 저항하는 세력의 존재, 그리고 안드로이드 로봇들의 등장은 <스타워즈> 시리즈를 연상케 한다. 이처럼 다양한 오마주의 조합은 <쥬라기 공원>, <스타워즈> 등 80년대 초 다양한 영화에 대한 찬사를 담고, 또 일부 SF 장르를 오마주했다는 맥클레인 감독의 인터뷰가 전한 그대로다.
그렇다고 해서 <버즈 라이트이어>가 그저 오마주의 집합체인 것은 아니다. 러닝타임을 가득 메우고 있는 액션 시퀀스들은 버즈의 매력으로 가득하고, 그 덕분에 영화는 고유의 개성을 확보하는 데 성공한다. 실제로 포기를 모르는 캐릭터인 버즈는 다양한 상황에서 온갖 종류의 액션을 선보인다. 손을 쥐게 만드는 광속 비행 시퀀스부터 정체를 알 수 없는 외계 생명체 및 로봇들과의 사투, 그리고 버즈의 트레이드 마크라고 할 수 있는 비행 팩을 이용한 활공까지 활극에 어울리는 시원한 장면들로 가득하다. 또 이러한 장면은 영화 프로모션에서 줄곧 강조된 아이맥스의 역할도 강조해준다. <버즈 라이트이어>는 픽사가 최초로 개발한 3D 애니메이션 IMAX 카메라로 제작되었는데, 이는 액션 시퀀스의 역동성을 강조해주며 빛을 발한다.
픽사 애니메이션 <버즈 라이트이어>의 매력
또한 버즈와 버즈의 팀이 만들어가는 따뜻한 드라마에서는 픽사에게 기대할 수 있는 매력도 느껴진다. 비록 배경은 우주지만 모두가 공감할 수 있는 보편적인 이야기를 들려주기 때문이다. 그 중심에는 실수와 협력이 있다. 우주 특공대 대위인 버즈는 좋게 말하면 책임감이 크고, 나쁘게 말하면 독불장군인 캐릭터다. 거추장스럽다면서 신입 장교의 존재를 마뜩잖아하는 그는 모든 위기 상황을 혼자 돌파하려고 한다. 그리고 그의 독선은 부메랑이 되어 돌아온다. 불시착한 행성에서 외계 생명체의 공격을 받은 버즈는 급하게 우주선을 이륙시키다가 실수를 저지르고, 천 명이 넘는 일행을 고립시키고 만다. 이에 자신의 실수를 만회해야 한다는 생각에 사로잡힌 그는 몇 번이고 탈출을 위한 광속 비행을 시도한다. 그러나 그의 비행은 뜻대로 진행되지 않고, 그렇게 완벽주의자이자 영웅인 그는 세상을 구하는 데 실패한다. 수십 년이 지난 낯선 행성에서 그의 곁에는 로봇 고양이 '식스(피터 손)'만이 남는다.
우주 특공대의 영웅에서 외톨이가 되고, 죄책감과 좌절감에 빠져들었던 버즈. 그러나 인생의 가장 어두운 지점에서 그는 앞으로의 삶을 바꿀 경험을 한다. 다 함께 지구로 돌아가기 위해 외계 행성에 침공한 저그 황제의 로봇 군대와 싸워야 하는 버즈. 그는 뛰어난 실력자들로 구성되었다고 생각했던 이지의 팀이 훈련조차 받아보지 않은 오합지졸이었음을 알게 된 후 실망감을 숨기지 못한다. 그러나 숱한 고비를 넘기고, 로봇들의 추격을 따돌리면서 버즈는 조금씩 팀원들의 진가를 깨닫고 그들의 능력을 인정하며, 그렇게 하나의 팀으로 거듭난다. 백지장도 맞들면 낫듯이, 모든 부담을 혼자 떠맡을 것이 아니라 타인과의 협력이야말로 정말로 큰일을 이룰 수 있는 힘이라는 점을 깨닫는다. 이처럼 혼자가 아니라 함께 해야만 헤쳐나갈 수 있는 위기가 있음을 보여주는 이야기는 개인주의적 사회를 살아가는 모든 이들에게 픽사다운 교훈을 전하는 듯 보인다.
픽사이기에 아쉬운 <버즈 라이트이어>
그럼에도 불구하고, <버즈 라이트이어>는 끝끝내 한끗이 아쉽다는 인상을 지우지는 못한다. 화려한 볼거리와 감동적인 스토리에도 불구하고 2%가 부족하다. 메시지가 지나치게 일반적이기 때문이다. 실패를 딛고 일어서는 열정과 협력의 중요성을 일깨우는 버즈의 이야기는 분명 많은 이들의 공감을 살 수 있다. 버즈와 버즈의 동료들이 원팀으로 거듭나는 과정도 뿌듯하다. 그러나 그 임팩트가 강렬하지는 않다. 과거 픽사 애니메이션이 선사했던, 환상적이면서도 매우 현실적인 깨달음이나 배움은 잘 느껴지지 않는다. 버즈와 그의 동료들이 진정한 팀으로 거듭나는 과정에 담긴 의미를 온전히 전달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성공과 실패에 매몰되기보다는 삶의 매 순간을 즐기는 게 우선이라고 노래하던 <소울>과 같은 특별함을 <버즈 라이트이어>는 제대로 보여주지 못한다.
작중 버즈는 자신의 실패 덕분에 협력의 중요성을 깨닫는다. 그런데 여기서 중요한 것은 그저 실패가 아니다. 그보다는 완벽주의자이자 엘리트인 버즈가 실패했다는 점이 중요하다. 우주 특공대원으로서 버즈는 철저한 능력주의자로 묘사된다. 그의 자부심과 명예는 그가 사관학교에서 고난을 겪으며 쌓아 올린 능력에서 비롯된다. 그래서 그는 처음 만난 팀원들을 계속해서 시험하고 또 불신한다. 그들에게 충분한 능력이 있는지를 확인하며, 능력이 부족하다고 판단하자 팀으로서 움직이기를 거절한다. 과거 상관이자 동료였던 엘리샤의 손녀인 이지마저도 능력이 없다는 이유로 거부당한다. 다른 팀원들이 특공대원 옷을 입는 것조차 불만스러워하며, 엘리샤와 공유하던 시그니처 대사 “무한한 공간, 저 너머로”를 그들과 나누지도 않는다. 또 그는 다른 팀원들의 상처도 보지 못한다. '모(타이카 와이티티)'가 자신의 실수 때문에 모두를 위험하게 했다고 자책할 때, 그를 위로하는 다른 팀원들과 달리 버즈는 그의 책임을 재확인하는 말을 내뱉고 만다.
이러한 버즈의 모습은 현대 사회 속 엘리트의 부정적인 면모를 단적으로 드러낸다. 역사학자인 토마스 프랭크는 <민주당의 착각과 오만>에서 엘리트들은 서로를 존중하지만 그들의 범주 밖에 있는 이들에게는 연대 의식을 갖지 못하며 연민도 느끼지 못한다고 지적한다. 일정 수준에 이르지 못한 이들은 자신들과 동일한 수준의 능력을 지니지 못했기에 동등한 대우를 누릴 자격이 없다는 것이다. 작중 버즈도 다르지 않다. 하지만 바로 이러한 부정적 면모 덕분에, 버즈의 변화에서는 깊이 있는 사회적 메시지가 느껴진다. 버즈의 실패는 능력주의 사회와 엘리트들 역할과 기능에 한계가 있음을 단적으로 보여주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의 변화는 단순히 팀워크의 중요성을 보여주는 데서 그치지 않는다. 자신의 어려움과 부담감을 털어놓으며 마음의 문을 여는 버즈의 변화는 한계를 노출한 능력주의 사회를 개선할 방법인 협력과 연대의 힘을 보여주는 것이나 다름없다. 이는 최정예 요원들 대신 이지와 다른 팀원들을 우주 특공대로 받아들이는 버즈의 마지막 선택이 인상적인 이유이고, 픽사다운 메시지를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그러나 아쉽게도 이처럼 한 차원 깊고 넓은 메시지는 러닝타임 내내 잘 전해지지 않는다. 일반적인 이야기 밑에 숨어 있는 메시지와 감동을 드러내기 위해서는 그들이 수면 위로 드러날 수 있는 특정한 모멘텀이 필요한데, 전반적으로 평탄하게 전개되는 영화에는 그런 대목이 없기 때문이다.
실제로 <버즈 라이트이어>는 미션에 실패한 영웅이 원인을 깨닫고, 능력적으로나 인격적으로나 한 단계 성숙해진 다음 기어코 임무를 다해낸다는 왕도적인 스토리라인을 착실히 따른다. 그래서 픽사 애니메이션의 트레이드마크라고 할 수 있는, 예상을 빗겨나가는 반전도 없다. 그나마 저그 황제의 목적과 정체가 반전이라면 반전이지만, 주요 소재인 광속 여행, 상대성 이론, 시간 지연의 개념을 토대로 이를 유추하는 데 어려움이 크지 않기에 그 충격은 반감된다. 시선을 강탈하는 고양이 로봇 삭스의 활약도 혼자서 변수를 만들어내는 수준은 아니다. 그 결과, 일반적인 이야기를 뛰어넘는 픽사만의 날카로운 통찰력은 끝내 빛을 보지는 못한다.
버즈 라이트이어는 픽사를 상징하는 캐릭터 중 하나다. 1995년에 개봉한 세계 최초의 장편 CG 애니메이션 <토이 스토리>는 픽사의 성공 신화의 신호탄을 쏘아 올린 작품이었고, 그 중심에는 투톱 주인공인 우디와 버즈가 있었다. 이처럼 픽사의 아이덴티티나 다름없는 캐릭터를 화려하고도 도전적인 영상으로 되살려냈다는 점에서 분명 <버즈 라이트이어>에게는 박수가 아깝지 않다. 다만 버즈와 함께 30여 년 간 발전해 온 픽사의 스토리텔링 역량을 고려하면 기대에 살짝 미치지 못하는 아쉬움이 남는 것도 어쩔 수는 없다. 그래도 다행이라면, 세 개의 쿠키 영상에서 그 아쉬움을 달랠 실마리가 찾을 수 있다는 점이 아닐까 싶다.
A(Acceptable, 무난함)
버즈의 다음 비행을 기대케 하는, 화려하거나 평범할 픽사의 스페이스 오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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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씨네픽 어워즈 '2022년 올해의 영화' 6편
안녕하세요!
영화/OTT 콘텐츠 큐레이션 웹매거진 '씨네랩'입니다.
씨네픽 인스타그램을 통해 씨네픽 팔로워분들의 올해의 영화는 무엇인지 설문을 받아봤는데요!
과연 씨네픽 팔로워가 선정한 올해의 영화는 무엇일지?!!
지금 한번 만나러 가보시죠!
헤어질 결심
ⓒ 네이버 영화
응답자 중 반 이상의 선택한 올해의 영화는 바로 <헤어질 결심>입니다. <헤어질 결심>은
박찬욱 감독의 세밀한 연출과 매혹적인 배우 앙상블로 호평을 받으며 국내뿐만 아니라 전 세계를
사로잡았다. 볼 때마다 달라지는 관점에 따라 다른 해석으로 영화를 감상할 수 있다 보니 N차 관람
열풍이 돌기도 하였다. 뉴욕타임즈, BBC, 포브스 등 주요 외신에서 2022년 최고의 작품 중 하나로
꼽히며 전 세계를 매혹시킨 마스터피스 다운 저력을 입증했다.
▶ 줄거리: 산에서 벌어진 변사 사건을 수사하게 된 형사 '해준'(박해일)이 사망자의 아내 '서래'를
만나고 의심과 관심을 동시에 느끼며 시작되는 이야기를 그린 영화
리멤버
ⓒ 네이버 영화
두 번째 씨네픽 팔로워 선정 '올해의 영화'는 이성민 배우와 남주혁 배우 주연의 영화 <리멤버>
입니다. 알츠하이머 환자의 자비 없는 복수 이야기를 탄탄하게 그려내고 이성민 배우와 남주혁
배우의 세대 초월 절친 케미로 호평을 받았다. 개봉 첫날 전체 박스오피스 1위를 차지하였고,
상영 당시 관객들의 입소문이 꾸준히 이어졌다.
▶ 줄거리: 가족을 모두 죽게 만든 친일파를 찾아 60년간 계획한 복수를 감행하는 알츠하이머
환자 필주와 의도치 않게 그의 복수에 휘말리게 된 20대 절친 인규의 이야기
수프와 이데올로기
ⓒ 네이버 영화
세 번째 씨네픽 팔로워 선정 '올해의 영화'는 양영희 감독의 영화 <수프와 이데올로기>입니다.
영화는 국내외 유수 영화제에 초청과 수상하며 작품성을 인정 받았고, 박찬욱,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 등 영화계 인사들로부터 열띤 지지를 받으며 올해 가장 주목해야 할 다큐멘터리로
떠올랐다. 10월 20일 개봉 이후 끊이지 않는 호평과 입소문으로 장기 상영을 이어가기도 하였다.
▶ 줄거리: 서로의 생각은 다르지만 따뜻한 수프를 나눠 먹게 된 한 가족의 어머니가 평생 숨겨온
비밀을 알게 되며 점점 서로를 마주하는 이야기
썸머 필름을 타고
ⓒ 네이버 영화
네 번째 씨네픽 팔로워 선정 '올해의 영화'는 청춘, 로맨스, 시대극, SF 장르가 어우러진 영화
<썸머 필름을 타고!>입니다. 영화는 2022년 재팬 필름 페스티벌 온라인 상영을 통해 국내
관객들에게 알려졌고, 이후 트위터 실시간 트렌드를 장악하며 정식 개봉 요청이 쏟아졌다.
정식 개봉 후, 영화는 폭발적인 입소문을 바탕으로 최고의 좌석 판매율을 선보이기도 하였다.
▶ 줄거리: 시대극 찐팬인 고교생 ‘맨발’이 절친인 ‘킥보드’, ‘블루 하와이’ 그리고 미래에서 온
의문의 소년 ‘린타로’와 함께 영화를 찍으며 펼쳐지는 이야기를 담은 영화
화이트 노이즈
ⓒ 네이버 영화
다섯 번째 씨네픽 팔로워 선정 '올해의 영화'는 블랙 코미디 장르의 넷플릭스 오리지널 영화
<화이트 노이즈>입니다. <결혼 이야기> 이후 노아 바움백 감독과 아담 드라이버가 다시
호흡을 맞춘 작품이다. 영화는 제79회 베니스국제영화제 개막작이었으며, 올해 부산국제
영화제에서도 상영되며 공개 전부터 관객들의 호평을 받은 작품이다.
▶ 줄거리: 불확실한 세상에서 사랑과 죽음, 행복의 가능성이라는 인류 보편의 수수께끼와
씨름하는 동시에 일상적인 문제와 갈등을 해결하려 애쓰는 오늘날 미국 가정의 모습을 담은
블랙 코미디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
ⓒ 네이버 영화
여섯 번째 씨네픽 팔로워 선정 '올해의 영화'는 마블 루소 형제가 제작하고, 다니엘스 듀오가
연출한 영화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입니다. 영화는 해외에서 개봉 당시 10개 관에서
시작해 3,000개 이상 확대하였고, 1억 달러 수익을 올리는 등 글로벌 흥행을 이끌었다. 이에 이어
국내에서도 N차 관람이 이어졌으며, 개봉 4주차에도 좌석 판매율 2위를 유지할 정도로 큰 인기를
끌었다.
▶ 줄거리: 미국에서 세탁소를 운영하는 ‘에블린(양자경 분)’이 어느 날 자신이 멀티버스를 통해
세상을 구원할 주인공임을 알게 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리고 있는 작품
씨네랩 에디터 Hiz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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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먼지를 털고 능숙하게 벼려 밝힌 영화라는 여명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 | 2021 | 스티븐 스필버그 | 156분
※영화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의 주요 내용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동쪽으로는 허드슨강과 리버사이드파크, 서쪽으로는 센트럴파크를 옆에 낀 뉴욕 맨해튼의 어퍼 웨스트 사이드 Upper West Side에는 미국 역사의 곡절이 담겨있다. 식민지의 역사로부터 19세기 후반 산업화 시기 노동 계급의 거처, 20세기 전쟁의 풍파로부터 생존을 담보하기 위해, 혹은 생활고를 피해 희망을 찾고자 정착한 이민자의 터전으로 발전한 이곳은, 도시 재개발로 자본과 사람이 유입해 문화와 예술이 발흥하는 뉴욕을 대표하는 부촌이 되었다. 지금의 멀끔하고 반듯한 건물과 거리, 햇볕을 쬐고자 바깥에 나온 느긋한 시민의 쉼터로 자리 잡기 전, 그러니까 약 60여 년 전 도시 재개발로 링컨 센터 건설을 위한 첫 삽을 막 뜬 그때 삶을 일궈 온 사람들은 떠나야 할 날만을 기다려야 했다. 뮤지컬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는 사라질 위기에 처한 백인 하층 노동 계급 지역 할렘 Harlem과 중남미 이민자의 거리 산 후안 힐 San Juan Hill을 배경으로 생존과 반목을 넘은 두 사람의 비극적인 사랑을 담았다. 시대를 넘어 여전히 사랑받는 뮤지컬을 영화화한 로버트 와이즈 감독의 1961년 동명의 작품은 뮤지컬 영화의 고전으로 찬사를 받아왔다. 이 영화를 무려 스티븐 스필버그가 리메이크한다는 소식에 영화 애호가들은 기대와 (주로는) 우려가 엇갈렸다. 세계에서 가장 성공한 영화감독 중 한 사람이 만들어 낼 첫 뮤지컬 장르라는 관심과 함께, 우리는 이미 상업적 성공을 거둔 이 오래된 이야기를 지금의 관객에게 어떻게 다시 선보일 것인가에 관한 눈초리를 거두지 않았다. 감독에게는 잘 돼야 본전, 망치면 원작을 경험한 관객의 실망만 커질 수 있다는 부담이 컸으리라. 그렇지만 노련한 거장은 결국 고전의 향수와 창작자의 정체성, 그리고 현재의 시선에서 영화 매체에 마침맞은 재구성을 이루어냈다.
셰익스피어의 오랜 고전 《로미오와 줄리엣》을 모티프로 50년대 미국을 배경으로 한 파벌 간의 갈등 속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이 주제인 이 뮤지컬은 레너드 번스타인의 음악과 제롬 로빈스(제리 라비노비츠)의 안무가 결합해 지금까지도 브로드웨이와 할리우드에서 사랑받는 작품으로 남아 있다. 다만 1960년대 당시의 기술력이나 연출을 고려하더라도, 원작의 배우와 무대, 소품이라는 세트피스가 완벽하게 합일되었다고 보기는 어렵다. 물론 유명한 오프닝 씬이나 체육관의 댄스파티 속 뮤지컬 넘버와 안무의 조화는 지금 보아도 훌륭한 장면이지만, 비교적 정적인 카메라 시선과 배우들의 대사 처리 등 뮤지컬 실황에 영화적 기법을 첨가한, 60년대 무성영화와 유성영화의 과도기적 흐름에는 아쉬움이 남는다. 극과 영화의 차이가 시각 매체로써 특히 공간의 무한한 변화 가능성 유무에 있다고 한다면 2021년 영화는 어퍼 웨스트 사이드라는 한 지구地區를 통째로 배경 삼아 다양한 볼거리를 제공한다. 〈America〉는 도시 전체를 무대 삼아 거리를 누비며 화려한 퍼포먼스를 선보이고, 배우들의 익살스러운 연기가 포인트인 〈Gee, Officer Krupke〉에서는 경찰서의 소품들로 열정적인 무대를 보여준다. 거기에 〈Cool〉에서의 부서진 폐건물을 중심으로 ‘토니’(안셀 엘고트)와 ‘리프’(마이크 파이스트), 제트파 사이의 갈등과 신경전, 체육관에서의 댄스파티 등 뮤지컬 넘버를 스크린에 구현하는 데 일조한 카메라 워킹도 빼놓을 수 없다. 촬영감독 야누시 카민스키는 발레와 라틴댄스 기반의 춤의 역동성을 부각한다. 공들인 정교한 합과 역동적인 집단 군무가 스크린 앞 관객에게 화려하고 멋진 장면으로 선보일 수 있게 된 이유다. 관객은 현실이라면 받아들이기 어려울 수 있을 날 선 갈등과 비극을 춤과 노래를 통해 어느 정도 희석된 버전의 모습으로 친숙하게 받아들인다.
영화는 음악만큼이나 조명을 사용하는 방식에서도 극적 상황을 조성하는 장치로 적절하게 사용한다. 체육관 뒤편에서 토니와 마리아(레이철 지글러)가 처음 만나는 장면에 건너편 틈 사이로 빛이 스며오는 장면이나 (개인적으로는 원작의 장면이 사랑에 빠진 몽롱한 분위기를 더 살렸다고 생각하지만) 제트파와 샤크파의 패싸움이 벌어지는 소금창고 양편으로 길게 늘어진 그림자가 움직이며 겹치면서 발생하는 명암의 대비로 두 파벌 사이의 긴장이 고조되는 장면을 연출하는 부분도 인상적이다. 원작이 주차장의 자동차 헤드라이트 빛을 조명 삼아 펼쳐지는 발레 대결이라면 리메이크된 작품에서는 훨씬 실감 나는 대전이 벌어진다. 지금은 박물관이 된 오래된 성당에서 두 사람의 영원한 사랑을 맹세하는 동안 모자이크 사이로 비치는 아름다운 빛이나, 밤과 낮이 교차하며 달라지는 빛의 분위기도 눈여겨보게 된다. 연출을 위한 소품의 적절한 사용도 눈에 띈다. 앞서 제트파가 경찰서에서 자신들의 행위를 정당화하려는 시퀀스에서 주변 소품을 활용한 앙상블은 재기 발랄하며 맹랑한 캐릭터에 잘 들어맞는다. 토니가 싸움을 말리러 갔지만 결국 베르나르도(데이비드 알바즈)를 죽인 후 마리아의 방 창문으로 들어와 바람에 날리는 커튼 사이의 장막을 사이에 둔 만남이나, 사랑을 위해 토니를 감싸주는 마리아에게 분노하는 아니타(아리아나 데보스)와의 듀엣에서 집에 걸어 둔 천으로 흔들리는 마리아의 감정을 표현하는 등의 장면들은 원작과 비교하는 흥미로운 지점이다.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 리메이크작을 관람하기 전 관객은 두 가지 질문을 던진다. 첫 번째는 뮤지컬을 어떤 방식의 영화로 만들 것인가.이고, 두 번째는 이 오래된 서사를 21세기의 관객들에게 어떻게 풀어갈 것인가.이다. 링컨 센터 공사를 위해 곳곳이 헐린 50년대의 맨해튼에서는 불안한 젊은이들의 방황과 분노가 담겨있다. 오히려 원작의 멀끔한 세트보다 이 불안한 10대들의 감정이 잘 드러나도록 설계한 2021년의 영화는 기존의 원작을 유지하면서도 작금의 사회 현실을 반영하며 원작에 담긴 불쾌한 지점, 혹은 지나쳤던 지점을 부각하고 교정하는 방식으로 차별화를 한다. 시나리오와 노래에는 십 대 청소년의 일탈과 사회 갈등, 이민자 사회의 대립과 빈곤, 재개발 문제가 담겨있다. 그러나 당대 인식의 기반에 깔린 인종 차별과 여성 혐오 등의 문제는 상대적으로 갈등의 중심부에 두지는 않는다. 영화는 그 원형을 일부 유지한 채 스코어의 가사들을 윤색함과 동시에 넘버를 일부 재조립하는 방식으로 신선한 효과를 준다. 감독은 원작에서 지나쳤던 미국 사회(이지만 사실 모든 사회에 통용될)에 고착된 차별과 갈등을 이야기의 모티프나 브릿지로 만들어 시의성을 높인다. 원작에서는 ‘우리의 미국’에 들어온 이민자 집단을 별종 혹은 외부 집단으로 설정해 그들의 유입으로 두 파벌의 구도가 형성되었으며 현재의 갈등이 발생한 원인으로 지목한다. 경찰을 비롯한 어른들조차 백인 소년들의 편에 서서 이민자들을 향해 차별적 분위기를 형성한다. 그러나 리메이크작에서는 맨해튼이라는 지역의 역사의 흐름에서 자본에 밀려 탈락한 백인 하층 노동자 집단과 중남미 이민자 집단이라는 두 비주류 집단 간의 반목과 대립을 명시한다. 경찰로 상징되는 기존의 기득권 엘리트 집단의 눈에는 두 파벌 모두 사회에 도움이 되지 않는 골칫거리인 것이다. 여전히 미국 정치 지형에 대입할 수 있는 상황을 명확히 설정했음은 스페인어에 따로 자막을 붙이지 않았다는 점에서도 드러난다. 영어가 제1 언어인 미국이나. 두 언어에 익숙지 않아 그들의 자막 설정을 따라가야 하는 한국의 관객 관점에서 불친절할 수 있겠으나 이민자라는 정체성을 그만큼 확고히 보여주는 설정도 없다. 이는 영어를 쓰도록 강제하는 주류 사회 분위기에 편입하려는 당시 이민자들의 노력을 보여주면서도 역설적으로 그들의 언어가 다문화 국가인 미국에 여전히 존재한다는 표식과도 같다.
주인공인 토니와 마리아를 중심에 두면 영화는 대립적인 집단 간 젊은 연인의 비극적인 사랑을 노래하지만, 청소년들의 일탈을 대하는 어른들, 그리고 그들을 외곽으로 내모는 사회에 눈을 돌린다면 또 다른 지점을 발견할 수 있다. 사실상 복지서비스와 사회 안전망의 부재가 젊은이들을 어떻게 죽음으로 내모는가에 관한 이야기로 본다면 이들의 파국에 사회와 기성세대의 책임은 없는가를 질문하게 된다. 여기서 두 파벌의 중립지대인 가게(약국)의 주인인 ‘독’을 대신해 원작에는 없던 인물인 ‘발렌티나’(리타 모레노)를 추가한 점은 익숙하며 낡아 버린 서사에 새로운 결을 터 주는 탁월한 역할을 한다. 발렌티나는 이 이야기에 나오는 몇 안 되는 어른 캐릭터이자 아직 어린 청년들의 치기와 감정의 골을 봉합하고 화해하는 방향으로 인도한다. 설정상 독과 사별한 부인이며 유대인이자 코카시안과 결혼한 푸에르토리코인이라는 점에서 영화는 그에게 복합적인 감정선과 서사를 부여한다. 인종과 문화 등 다층적인 차별과 분노가 폭발하는 공간에서 발렌티나는 인종 정체성과 사회적 지위 사이에서 어느 쪽에도 온전히 위치하기 어려운 인물을 연기한다. 배신자 소리를 듣기까지 하는 아픔에도 이 이야기 속 유일한 ‘어른’의 역할을 담당한다. 그러나 이보다 중요한 지점은 발렌티나가 1961년 원작에서 아니타 역할을 맡았던 리타 모레노라는 사실이다. 영화는 원작 속 아니타의 넘버였던 〈Somewhere〉를 사실상 원곡자인 발렌티나에게 넘겨준다. 그렇게 이 넘버는 61년 작품의 아니타의 감정과는 다른, 한 노인이 끝내 안온한 삶을 바랐으나 여전히 이루지 못한 현실을 향한 회한의 노래이자, 분열로 극한 대립을 벌이는 현대 사회를 향한 기약을 알 수 없는, 하지만 이뤄야 하는 목표의식으로 변한다. 또한 여기서 그는 하나의 배역을 넘어 원작과의 가교 역할을 함과 동시에 영화의 테두리를 넘어 확장된 메시지를 전달한다.
아니타는 제트파에게 마리아의 전언을 일러주려 발렌티나의 약국에 갔다가 성폭행을 당한다. 원작은 이 상황을 극화된 리듬과 안무를 부여해 단지 서사의 변곡점 역할로 넘어갔지만, 정황상 아니타가 강간을 당한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어른으로서 역할을 해야 할 독은 상황을 종결시키며 충동적인 청년들의 철없는 행동으로 넘어간다. 폭력의 피해자인 아니타에게 누구도 사과와 위로는 없었다. 그리고 60년이 지나. 과거의 악몽이 그때의 아니타이자, 지금 발렌티나의 눈앞에 재현된다. 영화는 과거 리드미컬한 연출로 재현된 끔찍한 장면을 다시 보여주면서도 상황의 극화 없이 정확히 직시하는 연출로 기이하며 끔찍하게 느낄 수 있도록 보여준다. 그래서 관객에게 지금의 상황이 명백한 범죄라는 사실을 각인시킨다. 또한 원작과 달리 제트파와 함께 있던 백인 여성들이 성폭력의 현장에서 함께 아니타를 보호하기 위해 항의하고, 남성들에 의해 쫓겨나는 장면은 이 사건이 단순한 인종 혐오가 아닌 더 큰 차별적 관념에서 비롯되어 있다는 점을 강조한다. 상황을 발견한 발렌티나는 제트파를 제재하고 아니타를 내보낸 뒤 범죄를 저지른 한 명 한 명의 얼굴을 노려보며 “너희들을 어릴 때부터 보아왔고, 어떻게 살아왔는지를 기억한다”라고 이야기한다. 이 장면은 결국 60년 전 어린 아니타가 노인이 된 지금까지도 그때의 사건과 가해자들을 기억하며, 자신은 그 끔찍한 트라우마를 안은 채 살아남은 생존자라는 사실을 일갈하는 장면이다. 그는 60년 전 그 날에 갇힌 피해자에서, 이제는 자신과 같은 상황에 놓인 여성을 위해 목소리를 높인다. 젊은 남성들을 단호히 ‘강간범’이라고 호명하며 여성폭력의 피해자이자 생존자를 대변하는 어른으로서 말이다.
그밖에도 영화는 원작의 애니바디(아이리스 메나스)를 피상적인 톰보이 캐릭터에서 FTM(Female to Male) 트랜스젠더로 설정해 제노포비아와 함께 성소수자 혐오로부터 집단 내에서 인정받는 서사를 부여한다. 처음에는 배제된 소수자에서 결국 공동체의 일원으로 인정받는 애니바디는 모든 상황을 관찰하고 사건의 실마리를 제시하는 역할을 한다. 제트파가 마련한 권총이 치노(조쉬 안드레스 리베라)로 이어져 발생하는 결말에 비중을 두어 미국 사회의 고질적인 논쟁인 총기 규제 문제를 다루는 모습도 보인다. 허가받지 않은 자의 미숙한 총기 사용으로 노출되는 범죄의 양상은 작품 중후반에 꽤 자세히 다뤄진다.
관객은 공연과 영화의 차이를 알고, 누구보다 영화를 사랑하는 감독이 만드는 뮤지컬 영화를 한 편 보았다. 거기에 감독은 현대 사회를 관통하는 소수자성과 대립에 주목하며 기존의 작품 속에 감춰있던 이야기를 발굴했다. 사랑과 생존 중 더 중요한 것을 묻는 발렌티나의 질문에 토니는 사랑을 택한다. 그러나 존엄한 삶의 소중함은 사랑과 양립할 수 있다는 사실을 끝내 알지 못한 채 영화는 비극적인 결말로 끝난다. 그러나 남겨진 자들의 몫은 존재하고, 삶은 여전히 지속한다. 서로 같은 달빛 아래 다른 마음으로 밤이 오기를 바랐던 이들은 소중한 사람들을 잃었다. 모두가 각자의 길을 떠나는 원작의 마지막에 2021년의 영화는 엔딩 크레딧에 남겨진 자들의 삶을 위로하듯 새벽이 밝아 오는 맨해튼의 도시를 보여준다. 비극 안에서도 삶은 소중하고, 끝까지 놓지 말아야 할 것을 붙드는 한 빛은 찾아온다는 사실. 어쩌면 스티븐 스필버그의 영화 인생 사십여 년 동안 한결같이 말하던 이 명제를 살아남은 이들에게 전해주고 싶었기에, 그는 여러 우려를 감수하고 자신의 필모그래피에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를 넣고 싶었던 건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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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나의 올드 오크(2023)> 리뷰
켄 로치 감독은 <나, 다니엘 블레이크(2016)>로 처음 만났다. 희망을 손쉽게 내어주지 않는 그의 단호함에 깜짝 놀랐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보리밭을 흔드는 바람(2006)>을 보았을 때에도 마찬가지였다. 그의 긴 필모그래피 중 내가 감상한 건 고작 두 편에 불과하지만 스무 편 이상의 영화가 더께처럼 내 안에 쌓여가는 동안에도 그의 영화는 강렬함을 잃지 않고 살아남았고, 켄 로치의 영화는 어떤 영화든 분명 어떠한 울림을 갖고 있으리라는 확신을 갖게 되었다. 그렇기에 오랜만에 켄 로치를 스크린으로 만날 수 있게 되어 대단히 기뻤다.
일단 감독에 대해 잠시 이야기해 보자. 그는 블루 칼라의 시인이라는 수식어가 붙을 정도로 노동 계급에 관심이 많으며, 눈에 띄는 연출을 거듭하는 감독은 아니다. 극히 평범한 인물의 생활상을 통해 부조리함을 일깨우고 현재 우리 사회에 필요한 게 무엇인지를 담담하게, 효과적인 방식으로 보여준다. 달리 말하자면 켄 로치는 영화를 구성할 때, 희망이 아니라 좌절을 선택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는 의미이다. 그의 영화가 아무리 담백하더라도 어쩐지 러닝타임 내내 긴장을 느꼈다면 아마 이런 맥락 때문이리라.
나는 몰랐으나, 그가 은퇴를 번복했다고 한다. 어떤 이유로 그가 메가폰을 잡았을지는 찾아보지 않아도 알 것만 같았다. 우리가 보는 세상이 참으로 수상쩍지 않은가. 인간이 마땅히 갖추어야 하는 존엄은 자꾸만 증발한다. 살아있는 존재는 존재 증명을 강요당한다. 특히 이번 영화 <나의 올드 오크>는 시리아 난민 사태가 주요 테마였으므로 이 비참은 더욱 크게 다가온다(*영화 <사마에게>를 함께 권한다). 난민이란 타국은 물론 고향에서조차 ‘생존권’조차 보장받기 힘든 약자이므로.
다만 우리는 상대적으로 난민 사태를 피부로 느끼기 힘든 지역에 살고 있기에, 퍽 괜찮아 보이는 주거 환경부터 보장받는 그들이 영국의 많은 복지 혜택을 누리는 것처럼 느낄 지 모른다. 정주민들의 곱지 않은 시선이 있더라도 말이다. 그러나 영국은 유럽국가중에서도 강경한 정책을 취하는 나라이다. 국민호와 양연희(2019)의 연구에 따르면 21세기 이후 영국의 반 난민정서는 정치계와 언론 등이 조직적으로 연계되며 점층적으로 심화되어왔으며, ‘비호 신청자들의 굴종을 유지’시키기 위한 다양한 통제 정책을 개발해 온 것으로 보인다. “착취 논리는 사람이 아니라 시스템이 만든다”는 말마따나, 난민을 쉽사리 포용하지 않는 영국 사회의 분위기는 당연하고도 자연스럽게 영화 내에 반영되어 있다. 정주민의 끝없고 부당한 혐오는 놀라울 지경이며, 주인공으로 설정된, 상황의 부조리함을 이해하는 발렌타인조차 몇 번이고 침묵한다. 이 부자 나라에서 그들을 돕지 못하는 환경은 우스꽝스럽고 잘못된 게 틀림없다고 지적하면서도, 펍을 방문한 손님이 오랜 우정을 들먹이고 더 이상 오지 않겠다거나 참지 않겠다며 반 협박에 가까운 말을 건넬 때엔 자신의 처지를 걱정하는 장면을 통해 우리는 인물의 반응에 분노하면서도, 처지에 공감하게 되는 분열을 겪는다. 어쩌겠는가. 그 역시 간판 하나조차 제대로 바꿔 달지 못하며 보험조차 최소한으로 들었던 그 역시 삶의 공간이 대단히 좁은, 평범한 영국인일 뿐이다.
그러나 켄 로치는 이런 상황을 대수롭지 않게 넘기거나, 더이상의 방법이 없다며 손을 놓지 않는다. 그는 굳건하게 "When you eat together, you stick together"를 말한다. 희망은 너무나 많은 고통을 주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은, 고통을 안기는 건 낙담이자 정지라고. 그렇기에 야라는 꿋꿋하고 당당하게, 끊임없이 걸으며 연대를 이끌어낸다. 부정당한 듯 보인 순간조차 이후의 친절을 위한 예고에 불과했다는 건 지나치게 동화적인 듯 보이지만 우리는 언제나 그런 낙관에 의지해 삶을 이어가는 법 아니겠는가. 상실을 아는 사람은 강하다. 외지인을 거부했던 소녀의 어머니가 다리를 놓아준 미용실에서 사진을 찍고, 강아지를 잃은 발렌타인에게 식사를 전한다. 마음은 한 번 두드리는 것만으로 열리지 않는다. 지속성은 결국 공동체를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탈바꿈시켰다. 여주의 아버지가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에 마을 전체는 그를 애도했다.
이러한 변혁이 모든 난민에게 주어지진 않을 것이다. 특히 영국이라면 – 말했듯, 영국은 난민 문화에 굉장히 각박한 나라이므로 – 더더욱 힘들 것이다. 또한 켄 로치가 말했듯 “영화는 대중에게 질문을 던질 수 있는 매개체“이지 실질적인 변화를 이끌어내진 못한다. 기실, 예술이란 얼마나 무용한가? 엔도 슈사쿠의 말을 살짝 비틀어 옮기자면, 영화든 예술이든 인간에게 즉각적인 효과를 주지 못한다는 점에서 무용하며 지금 당장 병을 치료하고 삶에 변혁을 이끌어내지 못한다. 그리고 대중은 이런 무용함에 지쳐 언제든 잔혹하게 떠나가기 마련이다. 그렇기에 영화는 두 가지 방면으로 관객을 엷게 흔들고 설득한다. 난민을 수용하는 일은 공동체를 위한 선의의 약속이자 지향이라는 윤리적인 점에서도 중요하되, 장기적으로 “다양성은 부담이나 결핍이 아니라 다양성의 조화를 약속할 수 있다면 우리사회를 더 강하게 만드는 진보적인 힘”이기도 하다고. 어떤 부분이든 우리가 잊어선 안 되는 가치라고 말이다.
켄 로치가 영화를 빌어 자신의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는 게 너무도 분명하기에, 주인공인 야라의 꿈이 사진가이며, 영화의 시작이 사진기의 파괴였다는 점은 몹시 흥미롭다. 영화 속에서 카메라는 내가 겪는 현실과 당신의 현재를 포착하는 기록이자 아버지가 남긴 사랑의 상징이다. 또한 발렌타인의 역사를 증언하는 기록이기도 하다. 카메라가 포착하고 인화하여 출력되는 건 단순한 시점의 공유가 아니라 경험의 재생산이자 확대이다. 현실을 왜곡하는 사진과 영상 또한 온라인을 떠돌지만 이게 세상의 전부가 아니라는 건 자명하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 마을의 모든 이가 태피스트리를 깃발처럼 내걸고 행진하는 장면은 결국 우리에게 포착되지 않았는가. 그렇다. 우리는 결국 나아갈것이다. 더 나은 세계로. 같이 밥을 먹을 줄 안다면. 그러니까, 타자화 없이 수평적인 공간에서 함께한다면.
참고문헌
국민호, 양연희. (2019). 유럽의 반 난민정서 강화와 영국 비호신청자의 참상. 디아스포라연구, 13(1), 95-134.
김새미. (2020). 난민과 공생: 문화예술 활동을 통한 관계 맺기. 문화와 정치, 7(1), 69-103.
윤종욱. (2020). 켄 로치 영화의 변화와 연속성: 〈캐시 컴 홈〉(1966)과 〈나, 다니엘 블레이크〉(2016) 비교 분석. 영화연구,(85), 5-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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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23회 전주국제영화제 추천작] 로봇이라고 꼭 인간이 되고 싶은 건 아니야
- SF 장르의 매력에 빠진 건 김초엽 작가의 소설 덕분이었습니다. 소설집 <방금 떠나온 세계>,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 등을 읽고, 근미래에 펼쳐질지도 모를 세상을 미리 엿보는 묘한 기분을 느꼈죠. 오직 과학적 상상력만이 써낼 수 있는 이야기가 있다는 걸 그전엔 몰랐습니다.그런데 제23회 전주국제영화제의 시작을 알리는 작품이 마침 요즘 제가 사랑해 마지않는 SF 장르라는 겁니다. 9일간의 영화제 일정 중 굳이 개막식 참석을 선택한 것도 이 작품을 전주 돔의 웅장한 대형 스크린으로 감상하고 싶었기 때문인데요. 아니나 다를까, 저는 <애프터 양>에 완전히 매료되고 말았습니다.애프터 양After Yang<애프터 양>은 안드로이드 ‘양’과 함께 사는 한 가족의 이야기입니다. 백인 남성, 흑인 여성, 동양인 아이, 그리고 동양인의 얼굴을 한 테크노 사피엔스로 구성된, 사회가 ‘정상성’을 부여하는 가족의 형태와는 거리가 먼 4인 가족이죠. 극 중에서는 ‘양’을 안드로이드 대신 ‘테크노 사피엔스’라고 부르기에, 앞으로는 저도 그를 테크노 사피엔스라고 지칭하겠습니다.‘다름’에서 시작한 이 가족은 ‘평범’을 추구하는 여느 가족보다 대단하고 멋집니다. 입양한 아이가 자신의 뿌리를 잊지 않도록 아시아계 테크노 사피엔스를 데려온 것을 보면 알 수 있죠.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양’이 작동을 멈춥니다. 원작(단편소설 <Saying Goodbye to Yang>)의 제목을 보면 알 수 있듯이, 사실 이 작품의 더 정확한 줄거리는 ‘테크노 사피엔스 ‘양’과 이별하는 한 가족의 이야기’입니다.⊙ ⊙ ⊙‘양’을 고치려고 동분서주하던 아빠 ‘제이크’는 ‘양’이 다른 테크노 사피엔스와 달리 기억 저장 장치를 갖고 있음을 알게 됩니다. 테크노 사피엔스 전문가는 ‘제이크’에게 ‘양’의 기억을 확인한 다음, 연구 가치가 있는 ‘양’과 그의 기억을 넘겨달라고 부탁하죠. 판독기를 통해 ‘양’의 사적인 기억을 살피던 ‘제이크’는 알 수 없는 묘한 기분에 사로잡힙니다.딸 ‘미카’는 아빠에게 무엇을 보고 있느냐고 묻습니다. ‘제이크’는 “Just a documentary.”라고 답하는데요. 맞습니다, 그가 보고 있는 것은 ‘양’의 시선에서 기록(document)된 일상일 뿐입니다. 인간의 관점에서는 차량의 블랙박스와도 같죠. 그럼 도대체 무엇이 ‘제이크’를 혼란스럽게 한 걸까요?그것은 바로 로봇답지 않은 ‘양’의 모습 때문입니다. 그의 기억 장치에는 마치 인간의 추억과 같은 것들이 저장되어 있었습니다. 연인처럼 보이는 한 여인, 인상적인 순간을 떠올리게 하는 옷, 그 여인과 함께 들었던 노래 같은 것들이었죠. ‘인간이 아닌 존재’인 테크노 사피엔스가 인간처럼 기억하고, 행동하고, 심지어는 사랑을 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다시 말해 ‘양’의 인간다움이 그를 혼란스럽게 한 겁니다. ‘제이크’는 고민합니다. ‘양’은 인간이 되고 싶었던 걸까?⊙ ⊙ ⊙영화는 이 지점에서 관객에게 한 가지 질문을 던집니다. 그런데 과연 ‘인간이 아닌 존재’는 모두 인간이 되고 싶어 할까? 정체성에 관한 물음은 이렇게 등장합니다.저는 그동안 깨닫지 못했습니다. 인간이 되고 싶어 하는 로봇의 이야기, 그런 로봇을 안쓰러워하는 인간의 이야기가 얼마나 인간 중심적이었는지요. 인간과 로봇을 각각 다수자와 소수자에 빗대어 생각해보니, 쉽게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이성애자가 성소수자에게 “이성을 사랑하고 싶은데, 그럴 수 없어서 슬프지?”라고 묻거나, 비장애인이 장애인에게 “나처럼 살고 싶지?”라고 묻는 것은 고민할 필요도 없이 선을 넘는 질문이니까요.물론 ‘양’은 때때로 인간의 삶에 대한 부러움과 동경을 드러냈습니다. 그러나 ‘양’에게는 그 나름대로의 행복한 삶의 방식이 있습니다. 사람들과 따뜻한 교감을 나누고, 입양 아동인 동생 ‘미카’의 뿌리를 찾아주기 위해 고민하며, 무가 있어야 유가 존재한다(There’s no something without nothing)는 꽤나 분명한 가치관까지 갖고 있죠. 그에게 왜 그렇게 생각하고 행동하느냐고 물으면, ‘양’은 그저 이렇게 답합니다. “아마도 그렇게 프로그래밍된 것이 아닐까요?”문득 이런 생각을 해봅니다. 우리 사회도 소수자를 이런 방식으로 이해한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그저 애초에 프로그래밍된 방식이 다를 뿐이라고 말이에요.⊙ ⊙ ⊙로봇과 인간으로 ‘다름’을 이야기하는 <애프터 양> 덕분에 인간 중심적 사고, 다수 중심적 사고를 조금은 덜어낼 수 있었습니다. 영화에서 ‘양’을 안드로이드가 아니라 테크노 사피엔스라고 부르는 이유도 이러한 이유 때문이지 않았을까 생각해봅니다. 그들을 호모 사피엔스와 같이 또 하나의 구성원으로서 바라본 것이죠.제23회 전주국제영화제 개막식에서 관객들은 아름답고 시적이며 따뜻한 SF 영화에 뜨거운 박수를 보냈습니다. 전주국제영화제 집행부가 이 작품을 개막작으로 선정하는 데 일말의 고민도 하지 않은 이유를 너무나도 명백히 알 수 있었던 작품, <애프터 양>이었습니다.Summary진보한 기술이 일상에 스며든 가까운 미래, 제이크 가족 소유의 안드로이드 ‘양’은 아시아계 청년의 모습을 하고 있다. 중국에서 입양한 딸 ‘미카’의 보호자 역할은 물론 그녀의 문화적 기반을 공고히 하는 형제인 셈이다. 어느 날 ‘양’이 갑작스레 작동을 멈춘다. ‘양’을 고치기 위해 여러 곳을 오가던 ‘제이크’는 양에게 기억을 저장하는 특별한 기능이 있음을 알게 된다. ‘양’의 기억 데이터를 탐험하기 시작한 ‘제이크’는 자신이 다 알고 있다고 생각한 안드로이드 ‘양’의 사적인 시간들을 발견하기 시작하는데…. ‘양’은 과연 인간이 되고 싶어 한 걸까? (출처: 전주국제영화제)Cast감독: 코고나다출연: 저스틴 H. 민, 콜린 패럴, 조디 터너스미스, 말레아 엠마 찬드라위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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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월 넷째 주 주말 박스오피스 분석 with 씨네픽
안녕하세요, 씨네픽입니다! :)
5월 넷째 주도 잘 보내셨나요?오늘은 전국 곳곳에 비 소식이 있다고 하니 모두 잊지 마시고나가시는 길에 꼭꼭 우산 챙기시길 바랍니다!!씨네픽과 함께하는 주말 박스오피스 분석과 한 주 동안 진행했던 씨네픽 예측 이벤트인'주말 박스오피스 순위 예측'도 같이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그럼 시작해 볼까요?...국내 주말 박스오피스
1. <범죄도시2> (-)▶ 5월 셋째 주에 이어 넷쨰 주에도 <범죄도시2>가 1위를 차지하였습니다.
29일 오전 9시 경(개봉 후 12일), 600만 관객을 넘기며 올해 개봉한 영화 중 최초 기록을 선보였습니다. 이러한 추이를 봤을 때 전작의 최종 관객 수를 곧 넘길 수 있을 것이라 예상됩니다.
주말 동안 (5월 27일~5월 29일) 관객 수 179만 2,749명을 동원했으며, 총 누적 관객 수는 654만 6,641명을 돌파하였습니다.2. <닥터 스트레인지: 대혼돈의 멀티버스> (-)▶ <닥터 스트레인지: 대혼돈의 멀티버스>가 개봉 후 4주가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박스오피스를 지키고 있는데요.
2주 연속 1위를 차지했고, 현재 2주 연속 2위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주말 동안 (5월 27일~5월 29일) 관객 수 17만 1,114명을 동원했으며, 총 누적 관객 수는 575만 4,408명을 돌파하였습니다.
3. <그대가 조국> (NEW)▶ 5월 25일에 개봉한 <그대가 조국>은 주말 동안 (5월 27일~5월 29일) 관객 수 10만 7,255명을 동원했으며, 총 누적 관객 수는 15만 7,528명을 돌파하였습니다.
<그대가 조국>은 제 23회 전주국제영화제에서 특별상영을 한 작품이며, 여러 다큐멘터리를 연출한 '이승준' 감독이 감독을 맡았습니다.| 줄거리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인가 검찰공화국인가. 검찰의 칼날이 그대에게 향하지 않는다고 자신할 수 있는가
사냥이 시작됐다. 검찰이 던진 좌표를 따라 언론은 몰려들고 소문은 꼬리를 문다. 분노한 대중 앞에 검찰은 칼을 휘두른다.저기 쫓기는 자는 누구인가. 그대가 아니라고 자신할 수 있는가.
▶ 씨네픽의 이번 주 102회 예측 이벤트는 5월 4주 차 박스오피스(순위) 예측입니다. 한 주동안 많은 분들이 참여해주셨는데요.
씨네픽 참가자분들이 예측해주신 5월 4주 차 박스오피스 순위의 결과는 어땠는지 다 같이 확인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씨네픽 유저 예측 결과
정답자 비율(%)
▶ 한 주 동안 많은 씨네픽 유저분들이 박스오피스 순위를 예측해 주셨는데요. 박스오피스 1위 순위를 가장 많은 분들이 맞혀주셨고,
그다음으로 2위, 3위 순으로 많이 맞춰주셨습니다. 90%의 사람이 <범죄도시2>의 1위를 예측 성공하였는데요. 2위 역시 반 이상의 사람이 정답 예측에 성공하였습니다.
이에 비해 <그대가 조국>의 3위를 맞춘 비율은 굉장히 적었습니다.
참여해 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드리며, 씨네픽은 다음 주에 더 재밌고 유익한 제98회 씨네픽 이벤트로 인사드리겠습니다! :)
4. <배드 가이즈> (▼1)▶ <배드 가이즈> 역시 4주째 박스오피스에서 순위를 차지하고 있는데요.
매력적인 캐릭터와 스토리, 그리고 나이 불문하고 즐길 수 있다는 점에서 영화가 박스오피스 TOP5를 유지할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주말 동안 (5월 27일~5월 29일) 관객 수 1만 3,530명을 동원했으며, 총 누적 관객 수는 39만 2,766명을 돌파하였습니다.
5. <몬스터 싱어: 매직 인 파리> (NEW)▶고전 명작인 <오페라의 유령>을 모티브로 제작한 <몬스터 싱어: 매직 인 파리>가 5위를 차지하였는데요.
중독성 강한 OST와 '거대 벼룩'이라는 특별한 설정과 기발한 상상력이 담긴 모험담을 담아
주말 동안 (5월 27일~5월 29일) 관객 수 1만 1,352명을 동원했으며, 총 누적 관객 수는 1만 2,260명을 돌파하였습니다.
| 줄거리
1910년 대홍수로 에펠탑마저 물에 잠긴 파리는 안개 낀 도시 곳곳에서 목격된 미스터리한 괴물로 떠들썩하다.
소문의 주인공은 바로 거대 벼룩 ‘프랑코’ 아름다운 목소리와 마음씨를 가졌지만 무서운 외모 때문에 쫓기던 그는
우연히 인기 가수 ‘루실’을 만나 가면을 쓴 가수로 데뷔한다. 그들의 환상적인 공연은 대성공을 거두지만 ‘프랑코’를 수상히 여긴경찰이 포위망을 좁혀오고 친구들은 ‘프랑코’를 지키기 위해 비밀 작전을 세우는데!
북미 주말 박스 오피스
▶ 북미 박스오피스 1위는 27일에 개봉한 <Top Gun: Maverick>이 차지했습니다.
넷째 주 주말에는 총 두 작품이 새롭게 등장했는데요. 바로 1위의 <Top Gun: Maverick>, 3위의 <The Bob's Burgers Movie>입니다.
<Top Gun: Maverick>은 6월 22일에 국내 개봉 예정이고, <The Bob's Burgers Movie>는 아직 국내 개봉이 불확실한 상태입니다.
주말 동안(5월 27일~5월 29일) <Top Gun: Maverick>의 매출액은 $124,000,000 (한화 약 1,557억)의 매출액을 달성했습니다. 총 누적 매출액 또한 동일합니다.<북미 박스오피스 TOP 5> (2022년 5월 27일 ~ 2022년 5월 29일)1. <탑건: 매버릭> 1억 2400만 달러 (누적 1억 2,400만 달러)2. <닥터 스트레인지: 대혼돈의 멀티버스> 1,6400만 달러 (누적 3억 7,077만 달러)3. <밥스버거: 더 무비> 1,260만 달러 (누적 1,260만 달러)4. <다운튼 애비: 새로운 시대> 590만 달러 (누적 2,847만 달러)5. <배드 가이즈> 463만 달러 (누적 8,137만 달러)...씨네픽의 5월 넷째 주 박스오피스 분석 콘텐츠는 여기까지입니다.이번 주도 건강한 한 주가 되기를 바라며씨네픽은 다음 주 월요일, 이 시간에 또 재밌고 유익한 콘텐츠로 찾아뵙겠습니다.감사합니다!-!씨네랩 에디터 Hiz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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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결말포함】로리콘의 충격적인 최후
#롤리타 #로리타 #lolita
안타까운 소식이 끊이질 않습니다
시국이 정말 뒤숭숭한 요즘이 시국 이 시점에서
우리에 책임은 없는가
우리를 되돌아봤으면 합니다영화 롤리타를 통하여
성과 성욕 그리고
올바름에 대해 생각해봅니다※ 작가 슈라 원칙
1. 독자를 실망시키지 않는다
2. 어그로를 끌지 않는다
3. 수익을 먼저 생각하지 않는다
4. 함부로 남을 비방하지 않는다※ 연락처
adonai0919@gmail.com※ 트위치
https://www.twitch.tv/sura_chtr※ 인스타그램
https://www.instagram.com/b.writerTrack: Syn Cole - Gizmo [NCS Release]
Music provided by NoCopyrightSounds.
Watch: https://youtu.be/pZzSq8WfsKo
Free Download / Stream: http://ncs.io/GizmoBut he knows the way that I take;
when he has tested me,
I will come forth as gold.
Job 2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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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동원, 이종석의 "설계자" / 잘생김이 연기되지 못한 빛바랜 비주얼 / 반전과 결론은 볼만
영화직관하는남자 홍큐의 "설계자" 후기입니다.
*쿠키영상은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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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디즈니+ <나는 그루트다> 공식 예고편
훅- 들어오는 귀여움 주의!! 한 마디면 충분한 히어로가 온다! 아이 엠 그루트?? 아이 엠 그루트! ? 디즈니+ 오리지널 단편 [나는 그루트다] 8월 10일 단독 공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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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넷플릭스 <에밀리, 파리에 가다> 시즌 2 공식 예고편
오직 나만을 위해, "Say Oui!" 이번 크리스마스, 마음 가는 대로 즐기는 거야. 돌아온 《에밀리, 파리에 가다》, 곧 공개 예정. 오직 넷플릭스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