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엄2025-05-27 20:48:39
"내가 불쌍하지 않아?" 피해자는 보이는데 가해자는 보이지 않는 이유
[짧은 감상] 영화 <그녀가 죽었다> 리뷰
‘보여주기’와 ‘들여다보기’. 언뜻 이해관계가 일치하는 쾌락을 좇는 이들.
그러나 감추고 싶은 자신의 비밀이 드러나려는 순간 쾌락은 공포와 분노로 분한다.
당연하다. ‘보여주고 싶은 것만’ 보여주고 싶었을 뿐인 여자, 자신의 정체는 숨긴 채 남의 ‘모든 것을 보고 싶어’ 했던 남자.
그들의 이해관계는 극 중에서 필연적으로 상충하며 갈등의 끝을 달린다.
결국 매한가지인 것은 둘 중 어느 쪽이든 자신의 비밀은 숨기기에 급급하다는 것. 저마다 이해하기 어려운 방식으로 쾌락을 좇으면서도, 정작 상대방의 쾌락을 목격하며 정신이 나갔다며 고개를 저어댄다. 한국판 <나를 찾아줘>를 연상케 하는 범죄 스릴러 <그녀가 죽었다>는 어느 쪽에도 공감하기 어려운 극단적인 두 인물상을 통해 익숙한 맛으로도 관객의 몰입을 배가시킨다.
이들이 한결같이 주장하는 바는 상대방이 ‘미쳤다’는 것. 그들은 제 잘못은 생각하지 않고 오직 상대방에게서 자신이 피해를 입었다는 사실에 분노하기 급급하다. 누구도 자신이 끼친 피해에는 반성하지 않고 목소리를 높여 내가 피해자요, 나는 불행하노라 외쳐대며 서로를 삿대질한다.
가해자이자 피해자인 그들. 그렇게 가해자로서 ‘나’의 죄의식은 흐려지고, 남는 것은 피해를 호소하는 억울한 ‘나’뿐이다.
그녀가 죽었다. 그렇다. 이 영화에는 ‘그녀의 죽음’으로 상정되는 피해가 분명히 있었다. 그러나 선악의 모호한 경계 속에서 그 실체는 사라지고 없다. 그들이 아무리 피해를 호소해도 관객의 뇌리에 남는 것은 그들의 가해다.
시체는 있었는가? 아니, 온데간데없다. 그들이 바로 살아있는 피해자이자 동시에 명백한 가해자였으므로.
Relative cont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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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까맣게 순수한 아이들의 누아르
언프레임드 - 반장선거 (Unframed, 2021)
개봉일 :2021.12.08. (왓챠 공개)
감독 : 박정민
출연 : 김담호, 강지석, 박효은, 박승준
까맣게 순수한 아이들의 누아르
프레임 안에서 연기를 펼치던 4명의 배우들이 프레임을 넘어, 카메라 앞이 아닌 카메라 뒤에서 각자가 품어온 이야기를 펼치는 새로운 프로젝트 <언프레임드>. 박정민, 손석구, 최희서, 이제훈 배우까지. 그들이 바라본 세상의 조각들이 이토록 애틋하고, 원초적인 빛깔을 띠고 있을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 <언프레임드>에 담긴 4편의 단편영화를 보면 그들이 영화와 이야기를, 이 세상을 얼마나 골똘히 바라보고 있는지 깊이 느낄 수 있다. 더불어 감정을 온전히 전하기 위해 꼭 긴 시간을 쓰는 것만이 정답은 아니라는 걸 다시 한번 깨닫게 만든다.
언프레임드의 첫 번째 에피소드 <반장선거>. 처음 만나는 초등학생 누아르
언프레임드의 에피소드 1은 박정민 배우가 연출한 <반장선거>다. 초등학생이라 하면 가장 먼저 순수한 모습을 떠올리게 되지만, ‘생각해보면 나의 초등학생 시절은 순수하지 않았다.’고 말하던 그는 힙한 초등학생 누아르를 내놓기에 이른다.
초등학생과 누아르? ‘에이 초등학생들이 해봤자~’라고 생각한다면 섭섭하다. 카메라에 담긴 배우들의 다양한 표정들엔 어른들 못지않은 서늘함과 긴장감이 팽팽하게 들어차있다. 특히 주연인 강지석 배우와 김담호 배우의 연기가 가히 압권이다. 서늘한 눈빛과 목소리를 뽐내는 강지석 배우와 귀여운 외모와 단단한 집중력을 갖춘 김담호 배우의 상극에 위치한 매력이 부딪히며 만들어내는 케미가 상당하다.
<반장선거> 스토리
반장선거는 제목 그대로 한 학기 동안 학급을 관리할 반장을 뽑는 ‘반장선거’를 주제로 한다. 반장 후보로 각각 남자, 여자 아이들 사이에서 인기가 많은 유장원, 주선영과 수줍은 성격으로 친구들과 잘 어울리지 못하는 정인호가 등록되고, 아이들은 본인이 지지하는 후보를 위해 목소리를 높인다. 노래를 부르고 간식을 돌리고 열심히 공약을 뽐내고 심지어 싸우기까지 한다. 장원, 선영의 지지자들이 요란하게 싸우는 동안 지지자 없이 단독으로 출전한 인호는 말없이 고개를 숙이거나 책상과 천장의 중간 어딘가를 바라보고만 있다. 어떠한 비밀을 숨긴 채 말이다. “너 반장할래?” 유장원의 서늘한 목소리가 들리며 선거의 전말이 밝혀진다.
엉덩이를 들썩이게 만드는 리듬감
<반장선거>의 배우들만큼이나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매력 포인트를 꼽자면 리듬감이 아닐까 싶다. 쉴 틈 없이 변화하는 컷들과 그 안에 꽉 채워진 어린 배우들의 순수하고 뜨거운 숨결, 마미손의 힙한 음악이 합쳐지며 만들어내는 리듬감과 긴장감이 영화가 끝난 후에도 귓가와 머릿속을 빙빙 맴돈다. 어릴 적 한 번쯤 들어봤을 ‘기호N번 000!’이라는 아이들의 선거 송과 세련된 음악의 만남이라니. 여태껏 상상해 본 적 없었지만, 상상 그 이상으로 찰떡 그 자체였다.
순수하지 않았던, 또는 너무 순수했던 초등학생 시절
공교육의 범위를 벗어난지 꽤 오랜 시간이 지난지라 지금도 그런진 모르겠지만, 나의 초등학생 시절도 박정민 배우의 그 시절처럼 딱히 새하얗게 순수하진 않았던 것 같다. 나만이 아니라 모든 친구들이 말이다. 순수하긴 했으나 새까맣게 순수했다고 해야 할까? 나는 초등학생 시절을 너무 순수해서 본능에 한 발짝 더 가까웠던 순간들로 기억한다.
본능적으로 강자의 편에 서고, 그를 믿고 따르며 무언가 떨어지길 기대하는 본능. 그렇게 편을 가르고 서로의 세력을 뽐내고 견제하는 아이들의 모습에서 내 어린 시절의 모습을 보았다. 특히 ‘이거 선영이가 주는거다-’라며 간식을 돌리던 컷에서 내면의 웃음이 터져버렸다. 반장선거가 가까워질 때면 왠지 간식이 풍족하게 뿌려졌던 기억이 있었는데, 그게 정말 ‘기분 탓’이 아니었구나, 우리만 그런 게 아니었구나.
인생은 역시 누아르
어른이 되어 다시 들여다본 아이들의 세계가 참 흥미롭게 느껴진다. 별거 아닌 것 같은 말 한마디도 한껏 진지하게, 온 힘을 다해 싸우던 그때. 그놈의 반장이 뭐라고.. 선생님도 아니고 반장인데.. 하지만 그땐 그 자리가 그렇게 대단해 보였더랬다. 국회의원도 대통령 선거도 아닌 반장선거지만 이 선거는 나름 진지한 투쟁이자 세력 다툼이다. 어른들의 다툼을 축소해 그대로 옮겨놓은 듯한 선거 한 판이 이토록 흥미로울 줄은 몰랐다.
민주주의의 꽃, 선거!를 가뿐하게 씹어먹고 있는 까맣게 순수한 영혼들을 보며 우리의 인생은 역시 판타지보단 누아르에 가까운 것 같다며 고개를 끄덕여본다. 역시 강한 자의 편에서 우르르 몰려다니는 게 인생이지!
하지만 마지막 결과를 보자면.. 그게 아닌가 싶기도 하고.. 아무튼, 한발 떨어져서 투표를 지켜본 사람으로서.. 이 투표, 다시 하고 싶다.. 그래도 이렇게 인호가 친구들이랑 잘 어울리면 그걸로 된 건가? 아니다. 역시 조금 쓰다.
상대적으로 큰 키에 그늘진 얼굴로 문밖에 올라서있는 강지석 배우와 빛을 받고 있는 동그란 얼굴로 강지석 배우를 올려다보는 김담호 배우의 모습이 뇌리에 강하게 남았다. 유장원과 정인호라는 캐릭터에 어쩜 이렇게 잘 맞는지.. 두 배우가 보여준 집중력과 연기에 감탄했다.
강지석 배우는 최근에 <좋은 사람>을 통해 발견한 이효제 배우와 참 잘 어울릴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언젠가 두 배우가 같은 프레임 안에 있는 모습도 꼭 보고 싶다. 오늘부터 소원 빌어야지. 앞으로 쑥쑥 클 일만 남은 배우님들.. 랜선 이모가 응원할 예정이니 바르게만 자라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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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지적 독자 시점 | 엉뚱한 방향으로 열심히 달린다
*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웹소설 '멸망한 세계에서 살아남는 세 가지 방법'의 유일한 독자, '김독자'(안효섭). 그가 계약직으로 일하던 회사를 퇴사하는 날, 10년 동안 연재된 소설도 마침내 을 맺는다. 오랜 기간 애정을 쏟았던 소설의 결말을 좀처럼 이해하기 힘들었던 김독자는 작가에게 날카로운 피드백을 남기고, 예상치 못한 답장을 받는다. 바로 직접 소설의 주인공이 되어서 결말을 바꿔보라는 것.
김독자가 답장을 확인한 순간, 그의 눈앞에는 세계가 멸망했다는 상태창과 소설 속 도깨비가 등장하고 소설에서만 봤던 미션들이 사람들에게 주어지기 시작한다. 그 순간 김독자는 깨닫는다. 자신만이 이 시나리오의 전개와 결말을 알고 있으며, 더 나아가 소설 속 주인공인 회귀자 '유중혁'(이민호)을 찾아야만 자기 목숨과 이 세계를 구할 수 있다는 사실을.
실패로 귀결된 올인
<전지적 독자 시점>(이하 <전독시>)의 영화화 소식은 기대보다는 걱정이 큰 뉴스였다. 이유는 여럿이지만, 장르의 속성이 특히 문제였다. 영화와 웹소설, 두 장르는 본질적으로 접점을 찾기 어렵다. 극장에서 개봉하는 상업 영화는 대중을 공략해야 하는 상품이다. 심지어 손익분기점이 관객 600만 명인 영화라면 특정 세대나 성별을 뛰어넘는 보편성을 갖춰야만 한다.
그에 반해 웹소설은 본질적으로 대중적이지 않다. 인기작, 흥행작이라 해도 웹소설이라는 장르는 기본적으로 웹툰보다도 더 특수한 틀을 공유하기 때문이다. 웹소설은 주인공의 사회적 성공을 통한 대리만족을 추구하고, 즉각적인 성장과 복수를 통한 '사이다' 전개를 보여주는 데 주력하는 경우가 많다. 여기에 '상태창'을 비롯한 특유의 클리셰가 적극 활용된 게임 판타지의 문법이 더해지면 특수성은 배가 된다.
바로 이 지점에서 <전독시>는 필연적으로 한 가지 과제를 맞닥뜨릴 수밖에 없다. 바로 웹소설의 특수성과 영화의 보편적인 감성을 화학적으로 결합야 한다는 것. 이에 <전독시>는 <신과 함께> 시리즈를 전략적으로 벤치마킹한 듯하다. 몇몇 세계관 설정이나 캐릭터들의 기본적인 특성만 남겨둔 채, 메시지와 이야기는 익숙한 형태로 바꿨다. 이는 설령 원작 팬들에게 비판받더라도, 대중성을 잡겠다는 선택과 집중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전독시>의 해답은 그저 미봉책에 그치고 말았다. 정작 일반 관객마저 설득하는 데 실패했기 때문이다. 보편적인 서사로 탈바꿈한 김독자의 이야기는 매끄럽고, 그 안에 담긴 메시지도 충분히 공감할 수 있다. 문제는 굳이 김독자가 아니어도 쉽게 보고 들을 수 있는 이야기로 117분을 채웠다는 것. 그 결과 <전독시>는 볼거리만 빼면 다른 사회 비판 작품과 다를 게 없는, 관객으로서는 선택할 이유가 없는 영화가 되어버렸다.
독자(讀者)에게 독자(獨自)의 길을 묻다
<전독시>의 핵심 서사는 김독자와 유중혁의 갈등이다. '멸망한 세계에서 살아남는 세 가지 방법'(이하 <멸세법>)의 유일한 독자인 김독자는 알고 있다. '성좌'들의 놀이터가 되어 버린 이 세계의 운명이 유중혁의 목숨에 달려 있다는 사실을. '멸세법'의 주인공인 유중혁은 주어진 미션에 실패해도 회귀해서 다시 미션을 수행할 수 있지만, 그가 실패했을 때 존재하던 세계는 소멸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김독자는 유중혁을 도우려 한다. 소설 상으로는 충무로역에서 화룡과 전투를 벌이다가 죽을 예정인 유중혁의 운명을 바꿔야 한다. 그래야만 본인도 생존할 수 있고, 지하철에서부터 동고동락한 동료들도 살릴 수 있다. 김독자는 자기 도움을 받아서 화룡을 물리치라고 제안하며 유중혁에게 접근한다. 자신이 예지력 비슷한 능력을 지녀서 주요 시나리오와 미션, 장소 및 아이템과 같은 온갖 정보를 알고 있다고도 어필한다.
하지만 유중혁은 김독자의 제안을 거절한다. 필요한 정보를 주면 알아서 화룡과 싸우겠다고. 더 흥미로운 것은 그의 역제안이다. 그는 김독자가 금호역에서 충무로역까지 살아서 오면 조건부로 제안을 받아들일 수도 있다며 여지를 남긴다. 실제로 김독자가 충무로역에 기어코 도달하자 그는 이렇게 제안한다. 무작위로 생성되는 초록색 타일 위에 서야 괴물들의 공격을 피할 수 있는 '그린 존'에서 살아남으라고.
단순히 살아남을 뿐만 아니라 설령 동료들이 목숨을 잃어도 그들을 돕지 않고 홀로 살아남으라고도 요구한다. 즉, 유중혁은 혼자서 움직이는 걸 선호하는 자기 방식을 따를 수 있는지 증명하라면서 김독자를 시험에 빠트린다. 자기 목숨과 이익부터 먼저 챙길 것인지, 아니면 남을 돕다가 같이 죽을 것인지. '멸세법'의 유일한 독자(讀者)였던 김독자에게 독자(獨自)가 될지 말지 양자택일을 강요하는 셈이다.
독자(獨自)가 될 수 없는 이유
이 선택의 갈림길에서 김독자는 흔들린다. '멸세법'의 원래 전개대로라면 유중혁의 말을 따를 때 생존 확률이 높아지니까. 또 세계가 멸망한 상황에서도 살아남으려고 타인을 속이고 짓밟는 광경을 이미 목격했기에 현실을 비관하기도 한다. 그러나 초록색 타일 위에 가만히 서 있는 자신과 달리 다른 시민들까지도 구하기 위해 괴물들과 혈투를 벌이는 동료들을 보면서 김독자는 과거를 떠올리고, 결심한다. 독자(獨自)는 되지 않기로.
왜냐하면 그는 이미 유중혁이 제시한 길대로 살아봤고, 그 끝에서 비극을 맛봤기 때문이다. 학교 폭력에서 벗어나기 위해 그는 또 다른 피해자 친구와 싸워야만 했다. 그 친구가 자살하자 죄책감과 절망이 그를 덮쳤고, 그로부터 도망치고 위안을 얻기 위해 그는 '멸세법' 속 세계에 빠져들었다. 하지만 소설의 결말은 김독자의 트라우마를 건드렸고, 그의 절망을 심화시켜 버렸을 뿐이었다.
모든 미션을 완료한 유중혁 외에 다른 인간은 모두 죽은 '멸세법'의 결말은 김독자의 인생을 부정하는 것과 다르지 않았으니까. 김독자는 강한 자만이 살아남는 세상에서 줄곧 피해자였다. 학교 폭력에 시달리고, 성인이 되어서는 비명문대 출신이라고 무시당하고, 계약직의 설움을 온몸으로 느끼며 살아왔다. 그렇기에 단 한 명의 강자, 곧 독자의 삶과 이야기 외에는 무가치하다는 소설과 유중혁의 길을 김독자는 결코 긍정할 수 없다.
그래서 그는 혼자라도 확실히 살아남을 길을 포기한다. 그 대신 알고 있는 전개도 아니고, 죽을지 살지도 모르지만, 동료들과 함께하는 길을 선택한다. 유중혁과 같은 독자(獨自)의 길도, 주어진 전개를 따르기만 하는 독자(讀者)의 길도 아닌 새로운 길을 걷기로 결심한다. 즉, <전독시>는 경쟁과 약육강식의 원칙, 본능적인 이기심의 길 외에 이타적으로 공존하는 삶도 존재한다는 사실을 일깨워 주고자 한다.
독자도, 독자도 아닌 주인공의 삶
김독자의 선택에 담긴 함의는 다른 캐릭터의 사연을 만나 확장되고 강화된다. 예를 들어 수류탄 투척 훈련 중 수류탄을 놓친 훈련병을 구하지 못했다는 트라우마에 시달리는 부사관 '이현성'(신승호)은 혼자 살아남는 게 얼마나 고통스러운지를 누구보다도 가장 잘 아는 캐릭터다. 금호역 바깥으로 정찰을 나갔다가 '천인호'(정성일)의 속임수에 당해서 친구를 잃은 '정희원'(나나) 또한 혼자 생존한 삶의 무의미함을 누구보다도 잘 안다.
'이지혜'(지수) 또한 김독자와 유사한 선택의 갈림길에 선다. 교실에서 세계의 멸망 소식을 들은 뒤 옆자리 짝꿍을 교살하고, 같은 반 친구 중 유일하게 살아남는 데 성공한 지혜. 그녀는 유중혁처럼 독자적으로 움직이며 자신의 안위만을 챙기지만, 몸을 던져서 일행을 살리려는 김독자의 끈질긴 설득에 마음을 고쳐먹는다. 그렇게 이들은 도깨비들이 만든 규칙에 도전해서 승리를 거두며 함께 살아남는 삶의 의미를 새삼 깨닫는다.
이처럼 <전독시>는 모두가 주인공으로서 한 장을 차지할 수 있는 삶을 이야기한다. 진화한 화룡을 제압하는 클라이맥스의 구성만 보더라도 의도를 명확히 알 수 있다. 유중혁 혼자서는 화룡에게 아무런 상처도 내지 못한다. 하지만 김독자, 이현성, 정희원, 이지혜, '유상아'(채수빈), '이길영'(권은성)가 한 팀으로 뭉쳐서 잠재된 능력을 모두 발휘하면 화룡도 제압할 수 있다. 액션의 구성으로서 메시지를 온전히 시각화한 셈이다.
메시지가 낳은 기시감
아이러니하게도 바로 이 지점에서 <전독시>는 매력을 잃는다. <전독시>의 메시지는 이 IP만의 특색이 아니기 때문이다. 승자 독식, 이기적 경쟁 사회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공동체의 중요성과 타인과 함께 사는 이타적 삶의 가능성을 강조하는 서사는 굳이 <전독시>가 아니더라도 여러 사회고발물에서 접할 수 있다. <오징어 게임>과 비교하더라도 휴머니즘의 상징이 된 성기훈과 김독자의 캐릭터성은 큰 차이가 없다.
이 기시감은 생존 게임과 같은 <전독시>의 구조로 인해 극대화된다. 지하철 칸에서 살아남으려면 생명 하나 이상을 죽여야 하는 미션은 <오징어 게임>에서 등장한 구슬치기나 숨바꼭질과 다를 게 없다. 금호역에서 더 많은 코인을 차지하기 위해 피해자를 만들어 내는 군상극은 오징어 게임 참가자들이 숙소에서 서로를 죽고 죽이며 패거리를 이루는 정치극과 그 메커니즘이 동일하다.
충무로역에 만들어진 그린존은 그 정점이다. 사람들은 매번 숫자와 위치가 달라지는 초록 타일 위에 서기 위해서 서로를 끌어내리며 악전고투를 벌이는데, 이 장면은 <오징어 게임 2>가 선보인 짝짓기 게임과 절대 다르지 않다. 사회적 메시지도 그 자체로는 특별하지 않은 가운데, 메시지를 전달하는 형식조차 익숙한 결과 <전독시>는 예상치 못하게 <오징어 게임> 열화판 혹은 게임 판타지 버전 <오징어 게임>처럼 보이기까지 한다.
불친절해서 이질적인
만약 <전독시>가 차별화된 볼거리를 보여줬다면 이 기시감을 효과적으로 가릴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전독시>는 그러지 못했다. CG로 구현된 스펙터클이 화려하지만 이질적이기 때문이다. 환상 속의 배경과 괴물 캐릭터는 눈요깃거리로서의 역할은 해낸다. 상태창이 뜨는 게임 판타지 세계관이라는 것을 고려하면 마치 RPG 게임을 스크린 위에 구현한 듯한 느낌도 있다.
문제는 CG로 만들어진 화면만 볼 때와는 별개로 정작 배우들이 카메라에 잡힐 때는 배경과 인물이 따로 논다는 것. 자연히 CG를 즐기기에는 불편할 수밖에 없다. CG로 구현한 판타지 세계관을 받아들일 심적인 여유를 주지 않아서 더 어색한 감도 있다. <전독시>는 받아들여야 하는 정보량이 많은 영화다. 갑자기 멸망한 세계, 도깨비와 괴물의 존재, 느닷없는 시나리오와 코인, 회귀자라는 또 다른 주인공과 판타지운 아이템 등등.
그런데 관객이 모든 설정을 이해할 틈도 주지 않고 영화가 빠르게 진행되니 몰입도는 현저히 낮을 수밖에 없다. 심지어 청각적 요소도 상황을 악화한다. <전독시>는 상황이나 설정 설명을 온전히 대사에 맡겼다. 이런 상황에서 폭발음 등에 대사가 묻히는 경우가 잦다 보니 관객은 영화가 불친절하다고 느끼기 쉽다. 이 또한 CG의 화려함보다는 이질감과 같은 단점이 먼 눈에 띄는 이유 중 하나다.
그로 인해 마땅히 주목을 받아야 할 장점조차도 빛을 잃는다. 충무로역 액션 시퀀스가 대표적이다. 초반에는 일직선의 역사 구조를 활용해서 한 방향으로 내달리는 움직임을 반복하며 역동감을 선사한다. 화룡이 진화하는 순간 지하철 역사의 벽면이 붕괴하서 우주 공간이 펼쳐질 때부터는 공간의 제약을 뛰어넘는 입체적인 동선을 보여줌으로써 쾌감을 선사한다. 하지만 영리한 발상과 구성은 이질감과 불친절함에 의해 가려져 버린다.
<전독시>가 보여준 현재와 미래
제작자인 리얼라이즈픽쳐스 원동연 대표는 <전독시>가 개봉 직후 600만 명이라는 손익분기점을 달성하기 어려운 흥행 추세를 보이자, 언론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지금 초반 타점이 별로 안 좋다. 그리고 원작 팬들이 계속 공격을 하고 있어서 힘들지만 겪어야 할 일이다." 안타깝게도 이 발언은 <전독시>가 흥행하지 못한 현재를 방증할 뿐만 아니라 한국 영화계의 어두운 미래를 예고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특수성이 무기인 웹소설을 보편적인 감성으로 재해석한 이상 이미 <전독시> 영화는 원작과 선을 그은 작품이다. 즉, 흥행 부진의 책임은 일반 관객에게 굳이 다른 작품 대신 <전독시>를 선택할 이유, 오랜만에 영화관을 찾아야 할 이유를 제공하지 못한 영화 자체에 있다는 의미다. 이런 상황에서 흥행 부진의 책임을 원작 팬들에게 돌리는 것은 실패에 대한 원인을 분석하지 못했거나 일부러 외면한다는 말이나 다름없다.
그러니 설령 <전독시>가 영화 소비 쿠폰과 문화의 날 효과에 힘입어 극적으로 흥행에 성공한다 해도 마냥 기뻐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원인을 제대로 분석하지 못한다면 유사한 문제, 같은 실수를 되풀이하지 않을 것이라는 보장도 없으니까. 더 나아가 <전독시>와 같은 실수를 다른 작품도 하지 말라는 법이 없고, 그럴수록 일반 관객이 영화관을 찾을 이유는 사라지기 마련이므로.
Poor 형편없음
방향성도 만듦새도 설득력 없는, 공허하게 화려한 블록버스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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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앤트맨과 와스프 : 퀀텀매니아 (2023)
* <앤트맨과 와스프 : 퀀텀매니아>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
앤트맨과 와스프 : 퀀텀매니아 (2023)
감독: 페이턴 리드
출연: 폴 러드, 에반젤린 릴리, 조나단 메이저스, 캐서린 뉴튼, 마이클 더글라스, 미셸 파이퍼
장르: SF, 액션
상영시간: 124분
개봉일: 2023.02.17
MCU는 <스파이더맨: 노 웨이 홈>을 제외하고는 큰 재미를 보지 못했던 페이즈4를 뒤로 하고, 어느덧 다섯 번째 페이즈에 돌입했다. 그 시작점은 어벤져스 멤버들 중 존재감이나 파워 면에서는 가장 약한 축에 속하지만 내용상의 전개에서 핵심적인 부분을 담당해 왔던 <앤트맨> 시리즈가 이어받았다. <앤트맨>의 세 번째 시리즈인 <앤트맨과 와스프 : 퀀텀매니아>는 '앤트맨'이라는 타이틀이 가진 인지도나 파급력에 비해서는 꽤나 막중한 임무를 얻게 되었다고 볼 수 있다. 페이즈5를 넘어 페이즈6까지 메인 빌런의 포지션을 소화할 '정복자 캉'의 첫 선을 보이는 무대임과 동시에 <닥터 스트레인지 : 대혼돈의 멀티버스>, <토르: 러브 앤 썬더>, <블랙팬서 : 와칸다 포에버>까지 굵직한 작품들이 연달아 혹평을 받은 상황에서 페이즈5를 성공적으로 이끌어 가야 하는 처지에 놓였기 때문이다.
'앤트맨' 시리즈는 본디 가족영화적인 측면이 강했고, 다른 마블 솔로 무비들과 비교했을 때 광활한 우주 공간을 작중 배경으로 활용한다거나 강력한 히어로나 빌런들이 등장하는 스토리와도 거리가 멀었다. 하지만 <어벤져스: 엔드게임> 이후 캐릭터들의 상황과 세계관의 흐름이 급변했고, 멀티버스의 개념이 도입된 이상 '앤트맨' 특유의 유쾌한 분위기를 끌고 나갈 수만은 없는 상황에 이르렀다. <앤트맨과 와스프 : 퀀텀매니아>는 배경을 현실이 아닌 양자영역으로 옮겼고, 스토리의 95% 이상을 할애하였기 때문에 '앤트맨'만의 아기자기하고 소박한 맛은 완전히 사라졌다. 대신 MCU 작품에 제대로 등장한 건 처음인 양자영역이 문명과 생명체가 존재하는 공간으로 그려져 신비로운 영상미와 독특한 외형의 캐릭터들로 시선을 끌었고, 비주얼 면에서도 스케일이 커지고 훨씬 화려해졌다. 하지만, 표현만 '양자영역'을 빌려 왔을 뿐 마블이 상상력을 통해 구현한 이 시공간은 <스타워즈>나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에 등장할 법한 또다른 행성 정도로 비춰져서 시각 효과나 미술이 참신하고 압도적이었다고 보기는 어렵다.
이야기는 전형적인 세기말 미국 가족영화의 공식을 그대로 따른다. 중요한 정보를 전달하지 않고 답답하게 구는 인물들, 가족을 구하기 위해서라면 초인적인 힘도 발휘할 수 있다는 끈끈한 가족애, 위기의 순간마다 구원해줄 누군가가 등장한다는 극적인 전개까지. 전형적이지만 누구나 쉽게 이해할 수 있는 구조의 스토리이고, 캐릭터들의 입을 빌려 양자영역을 비롯한 과학 용어들이나 뒤죽박죽이 된 시간 개념 등을 친절하게 설명해주고 있어 제아무리 MCU의 진입장벽이 높아졌다 할지라도 본작을 받아들이는 데는 큰 어려움이 없을 것이다.
하지만 <앤트맨과 와스프 : 퀀텀매니아> 역시 '앤트맨'이 주인공이 되어 그의 서사를 주도적으로 풀어낸다기 보다는 새로운 빌런 '정복자 캉'의 데뷔전이라는 명목에 무게중심이 실리면서 마블은 또 한 번 페이즈4의 문제점을 답습한다. <어벤져스: 엔드게임> 이후 MCU 작품들이 호불호가 크게 갈리는 이유 중 하나는 각 시리즈마다 주인공이 이끄는 굵직하고 독립적인 서사가 존재한다기 보다는 새로운 히어로나 빌런, 혹은 배경이나 세계관의 설정을 투입시키는데 인기 있는 히어로를 이용하는 모양새로 비춰졌기 때문이다. '앤트맨' 역시 이러한 흐름을 피할 수 없었는데, 갑자기 양자영역으로 빨려들어가게 된 '앤트맨'의 가족들이 '정복자 캉'에 대항하는 이야기가 펼쳐지면서 '앤트맨'의 서사보다는 빌런을 소개하는데 좀 더 비중을 둔 결과물이 탄생했다.
이로 인해 가장 피해를 입은 인물은 '와스프(에반젤린 릴리)'인데, 과거 감독은 '와스프'는 '앤트맨'의 사이드킥으로서 존재하는 캐릭터가 결코 아니며 '앤트맨' 시리즈는 '앤트맨'과 '와스프'가 공동 주역이 되어 함께 이끌어가는 작품이라 언급한 바가 있다. 하지만, 이번 시리즈는 타이틀에 이름이 들어간 주연이라는 게 무색하게 '와스프'의 비중이 급격하게 줄어들었고, 심지어 '정복자 캉'과의 악연을 가진 '재닛 밴 다인(미셸 파이퍼)'과 비교하더라도 분량과 임팩트 면에서 모두 부진했다. 딸 '케이트'를 향한 '스콧 랭(폴 러드)'의 부성애가 강력한 주제의식으로 작용하면서 상대적으로 '와스프'에게는 존재감을 발휘할 만한 신이 주어지지 않았다.
그렇다면, 사실상 작품의 진주인공 포지션을 차지해버린 '정복자 캉(조나단 메이저스)'은 제역할을 다했을까. MCU는 본작에 '정복자 캉'이 등장할 것을 예고하면서 누구보다 위험하고, 강력한 빌런임을 암시했다. 이는 예비 관객의 기대감을 높일 수 있는 장치이기도 했지만, 어벤져스 내에서도 약자로 그려졌던 '앤트맨'이 그 대단한 빌런을 어떻게 상대할 수 있을까라는 의문을 남긴다는 점에서 일종의 모순 같은 마케팅이었다. 애초에 다른 어벤져스 동료들도 없는 상황에 있는 '앤트맨'이 수많은 시공간에서 셀 수 없이 많은 어벤져스를 죽였다는 '정복자 캉'에 단독으로 대항한다는 것은 힘의 균형이 맞지 않은 싸움일테니.
'정복자 캉'의 카리스마나 위압감은 '조나단 메이저스'의 연기력으로 어느 정도 충족이 되었지만, 관객을 설득시킬만한 위력이나 무시무시함을 보여주지는 못한다. 특히 개미 군단과 'M.O.D.O.K'에 의해 리타이어 되는 결말은 그의 초라함만 부각시킬 뿐이다. 물론 그가 가진 위험적 요소가 완전히 드러나지 않는 것은 아니다. '재닛'으로 인해 양자영역 탈출에 실패한 그가 몇 년만에 문명을 건설하고 잔혹한 통치자가 되어 군림하고 있었다는 것은 고작 한 사람이 가진 힘이 얼마나 대단한 지를 방증하는 장치들이다. 이는 스토리를 세세하게 짚어봐야 체감이 되는 부분이고, 기본적으로 전투신이나 지략적인 측면이 캐릭터들이 가진 힘의 크기를 가르는 통상적인 기준이 되기 때문에 '정복자 캉'을 허술하게 연출했다는 비판을 지우기에는 역부족인 듯하다.
유머 타율도 빈약했고, 화려한 영상미도 이전 마블 시리즈들을 압도할 만한 수준은 아니었다. '정복자 캉'의 묘사나 '앤트맨'과 그 가족의 서사 모두 특색이 부족했다는 점에서 이번 작품 역시 페이즈4부터 지속되었던 혹평을 피할 수는 없을 것 같다. 그럼에도 '앤트맨' 시리즈만의 가족적인 메시지를 꾸준히 계승하고 있다는 점에서 세계관이 기하급수적으로 확장되고 있는 와중에도 최대한 시리즈의 정체성을 유지하려고 한 노력이 엿보이기는 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쿠키 영상을 통해 엄청난 떡밥을 투척하여 기대감을 높임으로써 골수팬들의 마음을 잡는데는 일부 성공했다고 본다. (두 번째 쿠키영상이 가장 재밌었다.)
두 번째 쿠키영상과 달리 첫 번째 쿠키영상은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든다. '정복자 캉'의 존재가 얼마나 위험한 지를 확실하게 보여준 장면이기는 했지만, 앞으로 그들로 인해 벌어질 사건들과 복잡할대로 복잡해진 이야기의 향방을 생각하면 머리가 절로 띵해진다. 특히 마지막을 장식한 수많은 '캉'들의 존재는...이제는 징그럽게 느껴질 정도다.
- 씨네랩 크리에이터 popofil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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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광기에 가까운 사랑이 이렇게 이해될 줄이야
폴 토마스 앤더슨에 대한 찬사는 많이 들어왔다. 하지만 제대로 된 영화를 본 적은 없었는데, 갑자기 내 눈에 팬텀스레드라는 영화가 들어왔다. 분명 이 영화는 로맨스인데 굉장히 긴장감 있다. 마치 스릴러 영화를 보는 것 같은 그런 긴장감 말이다. 로맨스라고 하기엔 장르 영화에 가깝고 로맨스 영화가 아니라고 하기엔 배우들의 눈빛이 설렌다. 그들의 사랑을 정의 내린다면 광기의 사랑이 아닐까.
1. 예민하다 못해 까칠한 남자
레이놀즈는 잘나가는 디자이너다. 그의 삶은 디자인으로 시작해 디자인으로 끝난다. 워커홀릭이고 내가 만든 옷만이 진정한 예술이라고 생각하며 사는 남자다. 상류층 여성들을 상대하며 그들의 인정을 받은 남자인 만큼 그런 생각을 하는 것도 이해가 안 되진 않는다. 하지만 순수한 아름다움에 가까워질수록 그의 성격은 더욱 괴팍해지고 모든 주변 사람들을 그의 일상에 끼워 맞추려는 이기적인 모습도 보인다. 그를 둘러싼 여자들은 모두 그의 삶에 맞추어 병정처럼 살아가고 있기에 자신에게 맞추지 않는 주체적인 여자는 애초에 필요하지 않은 것이다. 그의 누나, 시릴도 그의 인생에 맞춰 사는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하지만 그의 잘생긴 외형과 재능으로 많은 여자들을 홀리면서도 여자들이 그에게서 떨어져 나가는 이유도 그의 그런 자기 중심적인 태도 때문이다.
그런 그의 인생에 나타난 알마는 순종과 개성 사이에서 뛰노는 여자다.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모르겠는, 어떻게 보면 치명적인 매력의 여자인 것이다. 하지만 그녀를 자신의 루틴에 맞추고자 했던 그는 점차 그녀의 엄마 같은 매력에 그녀의 페이스에 말려 그녀에게 잠식되어 버린다.
2. 순종의 끝은 그 사람을 소유하는 것이다
알마는 처음부터 레이놀즈에게 반했다. 그의 화려한 외모와 그가 만드는 옷에 반했던 것이다. 그렇게 아름다움이 전부인 세계에 들어온 그녀는 그의 진짜 모습을 보고 실망하지만 그를 포기하진 않는다. 그녀가 그의 루틴을 무시하는 경우는 한 가지 이유 때문이다. 그와의 단 둘만의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와의 관계 속에서 항상 누군가 끼어든다고 생각했던 그녀는 그의 온전한 관심이 필요했지만 그는 그녀를 자신의 삶의 병정으로서만 생각한다. 이 정도 됐으면 떨어져 나갔어야 맞는데, 그녀는 그에게 독버섯을 먹인다. '죽이려고 하는구나'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그녀는 그를 죽이려고 하는 것이 아니다. 그를 너무 사랑해 그와 자신 사이에 있는 벽을 깨기 위해, 자신에게 온전히 의지해 그를 자신의 것으로 만들기 위해 딱 죽지 않을 만큼만 먹이는 것이다. 그를 무력화시키기 위한 것이다. 그렇게 해서라도 그녀는 그를 갖고 싶은 것이다.
3.두 사람의 관계성
두 사람은 어긋나는 것 같으면서도 굉장히 찰떡궁합이다. 다시는 서로와 같은 상대는 못 만날 것 같다. 레이놀즈는 센 척 하지만 연약한 사람이고 알마는 순종적인 척하지만
가만 보면 소유욕이 굉장히 강한 사람이다. 또 어떤 관점에서 보면 그들은 서로를 각자의 방식으로 길들이는 과정을 거쳤던 것이다. 레이놀즈는 규율로서, 알마는 무조건적인 희생으로서. 레이놀즈의 입장에서는 자신의 연약함을 가리기 위해 규율로 자신을 휘감고 사는데, 그 연약함을 알아채고 그 규윻을 깨고 자신에게 온전히 기대라고 요구하는 알마가 부담스러웠을 것이다. 하지만 알마가 어느 순간 자신의 엄마와 대비되어 보이는 순간 그는 그녀에게 지배당하게 되어 버린 것이다.패권싸움에서 알마가 이긴 것이다. 이 싸움이 그들의 관계에서는 사랑싸움이었고, 그들의 사랑 싸움이 긴장감 넘쳐 보였던 이유는 매 순간 기싸움의 연속이었기 때문이고 흔하디흔한 사랑싸움 같아 보이진 않았기 때문이다. 알마가 이 싸움에서 이기기 위해 독버섯을 먹이는 것을 보면 어떤 누군가와의 관계성 속에서 사랑과 집착은 어쩌면 같은 말 아닐까라고 생각했다. 집착은 그저 더 열망하는 사람이 가지는 사랑의 형태인 것이다. 사람을 내가 원하는대로 어떻게 해볼 수 있다는 것, 그것은 광기라고도 평가되지만 광기로라도 사랑을 해야하는 사람과 그 사랑의 평안함을 느끼는 사람이 있다면 그 두 사람의 관계성은 그 자체로 평화가 아닐까.
사랑을 느끼는 감정은 다분이 주관적이기에 남의 눈에 이상해 보이든 말든 당사자들이 느끼는 것이 평화롭다면 이들의 사랑이 광기로 보여도 인정해줘야 하는 걸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사랑이란 결핍을 채우는 어떤 것이라는 관점에서 본다면, 결핍이 많은 사람일수록, 결핍의 정도가 깊은 사람일수록 사랑을 잘하거나 사랑에 목을 매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겉으로 보면 레이놀즈가 더 결핍이 있어 보이지만 알마가 레이놀즈를 지배하려고 하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알마가 더 큰 결핍이 있는 것이 아닐까 상상해 보게 된다. 각자의 결핍을 충족하는 모습만으로도 그들의 사랑은 이루어진 것이라고 볼 수 있겠다. 겉보기에 그들의 사랑이 어떻게 보이는지는 별로 중요하지 않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도 결국 이 영화를 보면서 미쳐버린 걸까.
두 주연 배우의 눈빛이 영화에 집중하게 만드는 중요한 요소이다. 그리고 영화 시작에서 흐르는 음악이 굉장히 인상적이다. 그들의 긴장감있는 관계를 잘 묘사한 것 같다. 아주 진중하면서 catchy하다. 음악만 들어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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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간의 기억은 그 자체로 기록이 된다
당신은 매일 40개의 새로운 단어를 만들고, 마치 모국어인 것처럼 자유롭게 구사해야 한다. 그러니 우선 외워야겠지. 시험공부하듯 어디에 적을 순 없고, 머리에 담아 조그맣게 읊조리는 정도만 가능하다. 종일 외우는 데에 집중할 환경이 주어진 것도 아니다. 설거지나 재료 준비 등 주방 일을 하며, 당신을 감시하는 사람들의 눈을 피해 머리를 굴려야 한다. 잠들기 전 시간을 이용할 수도 있겠다. 기도문을 외듯 나지막이 웅얼거리는 당신을 핀잔할, 당신과 같은 '방'을 쓰고 있는 수백 명의 질타를 견디면서.
대체 무슨 상황이길래. 제2차 세계대전, 나치 수용소, 그리고 페르시안으로 위장한 유대인. 세 가지 키워드로 단박에 이해할 것이다. 영화 초반부의 방점은 '페르시안'에 찍혔다. 그러니까, 앞서 언급한 상황은 나치 수용소로 잡혀간 한 유대인이 페르시아인인 척하며 독일군 장교에게 알려줄 페르시아어를 준비하는 과정이다. 정확히는 '만드는' 과정. 그는 페르시아어를 할 줄 모르지만, 순간적인 기지는 뛰어났다. 거대한 거짓에 그럴싸한 작은 사실 몇 개를 섞으면 진실보다 더 진실처럼 보인다던가. 앞으로 그가 겪을 일과 딱 맞는 말이다.
자, 어떻게 매일 40개의 단어를 만들며 목숨을 부지할 것인가?
도망가는 건 방법이 아니다. 지뢰밭에 발을 디디거나 독일군의 총을 맞거나. 죽음으로 향하는 길은 살고자 하는 당신이 택할 게 못된다.
다행히 영화의 주인공, 그리고 실화를 기반에 둔 소설의 주인공은 다른 방법을 찾는다.
이제 그의 이야기를 따라갈 때다.
*아래 내용은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타오르는 불. 불길에 그을리는 종이. 종이 위 까만 글자들이 사그라진다. 그 위로 영화를 만든 이들의 이름과 역할이 생겼다 사라지고 다시 생기길 반복한다. 암전. 이윽고 숲처럼 보이는 탁 트인 공간. 꼭 맞는 나무의 대칭 가운데, 사람의 뒷모습이 보인다. 절뚝이는 것도 같고, 무언가 위태로운 느낌이다. 자신의 몸집보다 훨씬 커다란 코트를 짊어지고서. 걸음은 투박할지언정 무너지지 않고 계속 앞을 향한다. 영화가 끝나고, 본 것을 되새기면서 깨닫겠지. 복선 그득한 장면들이었단 걸.
'페르시아어 수업' 타이틀이 뜨고, 익숙한 풍경이 시야에 맺힌다. 덜컹대는 트럭 안, 사람들의 얼굴과 목소리. 다만 썩 좋아 보이지 않는다. 불안한 눈빛들. 키 큰 남자가 옆 사람과 작게 조잘거린다. 남자의 무미건조한 눈빛은 옆 사람이 샌드위치가 있다는 말에 마구 반짝인다. 자신이 갖고 있는 아주 유서 깊은 책을 줄 테니, 이거랑 교환하자고. 엄청난 값어치의 물건을 얻는 거라며. 눈망울이 큰 남자가 샌드위치를 내밀자 키 큰 남자는 제 몫을 제외한 남은 샌드위치를 책과 함께 넘긴다.
페르시아어로 된 책. 키 큰 남자가 샌드위치를 욱여넣으며 말한다. 훔친 거라고. 그건 유대교 율법에 어긋나는 행동이다.
도적질 하지 말라
지적하자, 대수가 아니라는 듯이 남자는 마저 씹어댄다. 눈망울이 큰 남자, 그러니까 영화의 주인공 '질'은 뒤이어 딴지를 걸지 않는다. 상황이 상황인지라 별 수 없다고 받아들였을까. 훗날 자신도 율법을 무시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을까. 도적질 하지 말라의 다음 37, 거짓증거 하지 말라.
트럭이 멈추고 독일군의 명령으로 안에 있던 사람들, 즉 유대인들이 우르르 내린다. 소지품을 한 곳에 내려놔. 가방이 툭툭 바닥에 떨어지고 총살이 시작된다. 이때 우리가 아는 액션 영화 같은 드라마틱함은 찾아볼 수 없다. 그들을 비추는 카메라, 즉 우리 관객들이 보는 화면은 고정되었다. 정적인 프레임. 비명이나 절규가 나올 새도 없이 모든 일은 끝난다. 단 한 사람, 질을 제외하고.
그는 품에 있던 페르시아어로 된 책을 내밀며 자신이 유대인이 아니라고 말한다. 군인들이 믿을 리 없는 소리다. 그러나 많고 많은 언어 중 페르시아어를 할 수 있다는 가능성 하나로 그들은 혹한다. 페르시안이라니. 장교 '코흐'에게 데려가면 포상으로 통조림 열 개를 받을 것이다. 아니면, 죽이면 되고.
불신, 권위에 대한 자존심과 자긍심, 똑똑하다는 자만심. 이 모든 성질을 뭉쳐 사람으로 빚으면 코흐가 만들어지려나. 아니다. 이건 독일군 사령관도, 다른 장교들도, 다른 군인들도 충분히 될 수 있다. 다만 코흐만 가진 것이 있었으니 바로 간절함이었다. 그는 전쟁이 끝난 후, 동생이 있는 이란으로 넘어가 식당을 열 생각으로 그득하다. 독일을 벗어날 생각을 한다는 건 그가 당에 충성하지 않는다는 의미이다. 무엇보다 독일의 패배를 예상하는 것이다.
질이 자신을 책의 주인인 '레자'라고 거짓말했듯 코흐 또한 자신의 속내를 숨기며 당에 충성하는 척 해왔다. '거짓증거 하지 말라'는 큰 틀에선 그들은 차이점이 없는 듯했다. 코흐도 결국 전쟁 통에서 살고자 했을 뿐 아닌가? 각자의 배경과 상황은 제각각이므로 최선을 다하다 보면 무언가를 어기기도 하고, 어긋나기도 한다.
매일 이어지는 교습. 하루에 4개로 시작했던 수업은 갑자기 하루 40개로 늘어났다. 이때부터 질은 패닉 한다. 끝이라는 생각에 도망치려 든다. 그러나 도망갈 곳이 없기에 제 발로 돌아온다. 음식물 쓰레기를 버리고 왔다며, 최선을 다한 거짓말로.
여기, 또 변수가 생긴다. 코흐가 명부 작성을 담당했던 '엘사'를 쫓아내고, 그 자리에 질을 앉힌 것. 엘사와 달리 질의 글씨체는 명필이기도 하다. 그의 일터는 이제 주방이 아니라 명부가 펼쳐진 책상 앞이다. 질에게 주어진 건 45분의 시간, 명부, 만년필과 잉크, 그리고 독일어 40개가 적힌 종이 한 장. 질의 머릿속은 온통 단어 만들 생각뿐이긴 하나, 코흐가 시킨 일부터 하는 게 순서다.
펜촉에 잉크를 묻혀가며 꾹꾹 종이에 눌러 적다가 문득, 기시감을 느낀다. 눈앞에 보이는 건 글자들. 독일군의 철저한 관리 하에 수감번호로 불리는 이름들. 이름은 곧 단어다. 그 이름들을 조금만 변형하면 금세 새로운 단어가 탄생한다. 이거면 살 수 있다. 질은 들뜬 마음으로 '페르시아어'를 조합해간다.
시간이 쌓일수록 몇몇 군인들은 질이 불만스럽다. 특히 주방을 감독하는 일로 쫓겨난 엘사와 그리고 처음부터 질이 유대인이라고 확신한 '맥스'가 보기에. 위계가 엄격하기에 그들의 농간에도 질은 레자로서 목숨을 이어나간다. 교묘한 줄타기가 잘해가던 레자. 실수로 페르시아어 수업 첫날에 말했던 '빵'을 '나무'와 똑같은 단어로 발음한다. 그리고 끝난 줄만 알았던 레자는 사경을 헤매며 무언가를 중얼거렸다. 그건 코흐만 알아들을 수 있는 언어, 그러니까 레자가 만들어 낸 페르시아어였다. 거짓에 거짓을 더하자 더할 나위 없는 견고한 진실로 변모한다.
코흐는 점점 더 노골적으로 레자를 변호하며 자신을 이름으로 부르라고 명한다. 내키지 않아도 그를 친근한 호칭으로 부르던 질, 아니 이제 레자라는 명명이 우리의 눈과 귀엔 더 익숙하다. 모든 것이 엇비슷하게 뒤섞이던 순간, 전환점을 맞이한다.
독일군은 수용소에 있던 사람들을 단체로 이송하고, 그럴 때마다 레자는 코흐의 보살핌으로 농장에 피신한다. 그는 마치 독일군의 아군 같다. 텅 빈자리는 새로운 사람들로 채워졌다. 코흐의 맞은편 침대는 이탈리아 형제가 차지했고, 저도 모르게 레자는 그들에게 큰 도움을 준다. 형제 한 사람은 자신의 목숨을 바치며 레자를 지켜낸다. 그는 동생을 살리기 위해서라지만 어쨌든, 레자는 목숨 하나를 직접적으로 빚진 느낌이다.
레자는 그 죽음들을 지켜보며 가라앉는다. 진짜 페르시안이라서 죽임을 당한 사람과 그 사실을 감추기 위해 죽은 남자.
이 대목이 코흐와 그의 차이를 보여준다. 레자는 자신의 생존으로 직간접적으로 죽은 이들에게 죄책감을 느끼고, 자신 또한 죽음으로써 모든 잘못을 짊어지려 한다. 죽어 마땅한 사람은 자신이라고 생각했으므로. 애석하게도, 코흐는 제 부하들을 총으로 위협하면서까지 죽음을 목전에 둔 그를 끄집어내어 곁에 둔다. 그에겐 아직 레자가 필요하다.
그리고 드디어, 독일의 패색이 짙어진다. 코흐가 그토록 바라던 독일에서의 탈출 시기다. 처음 수용소에 왔을 무렵 질이 꿈꿨던 일이기도 하다. 아마 잡혀온 초반에 이런 일이 생겼다면, 그는 홀로 도망치지 않았을까. 도망갈 기회가 생기자 뒤도 안 돌아보고 달렸듯이.
수용소 내 모든 문서들은 활활 타오른다. 레자의 손으로 적힌 무수한 이름들도. 이름의 주인들은 이미 세상에 존재하지 않기에, 글자가 사라지면 모든 증거가 사라지는 셈이다. 피해가 없어지면 가해 또한 잿더미가 된다.
코흐는 혼란스러운 수용소에서 레자를 빼낸다. 자신은 공항에 가서 테헤란으로 넘어갈 거라며, 가벼운 발걸음으로 레자를 등진다. 레자는 뒤돌아 자신 앞에 놓인 광경을 본다. 눈으로 뒤덮인 곳. 길은 보이지 않지만, 그가 만들 모든 발걸음이 곧 길이 될 테다.
당연히 코흐는 국경을 넘지 못한다. 그는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언어로 벨기에인 행세를 하려 들었다. 상황이 심상치 않자 그의 눈동자는 마구 흔들린다. 하지만 꿋꿋하게 가짜 페르시아어를 모국어처럼 익숙하게 말한다. 그는 알 수 없었을 테지. 단순히 속은 게 아니라, 그가 말한 것들은 모조리 사람의 이름이었다고.
마지막.
질은 영국군에게서 질문을 받는다. 수용소에 얼마나 많은 사람이 있었느냐고. 수천 명이라는 답. 살아남은 다른 생존자들 또한 쉬이 답할 질문이다. 질문은 이어진다. 그중에서 기억 남는 이름이 있냐고. 기대가 담기지 않은 물음이다. 살아있는 게 기적인 그들에게 무엇을 더 바랄 수 있겠는가.
하지만, 그에게는 있다. 2,840개의 가짜 페르시아어. 2,840개의 이름들. 2,840명의 사람들이. 그는 머릿속에 빼곡한 명부를 읊는다. 천막 안이 점점 고요해지며 모든 시선이 그에게로 쏠린다. 공간은 그의 목소리와 빠르게 놀리는 펜촉 소리만 들린다.
죄책감, 고통, 미안함, 고마움, 공포, 안도. 뒤섞인 감정은 눈물이 되어 뚝 뚝 떨어진다. 그래도 그의 입은 계속 단어들을 뱉는다. 살기 위해 빌렸던 단어들에게 진실을, 원래의 이름을 돌려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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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극장에서 본] 태워 재가 될지, 숯이 될지?
흥행을 떠나 현재, 국내 극장가에서 <킬링 로맨스>의 화제성이 뜨겁다.
그도 그럴 것이 <남자사용설명서, 2013>와 <상의원, 2014>을 연출한 "이원석"감독의 신작 <킬링 로맨스>는 자신의 취향을 꾹꾹 담아낸 작품이다!
태워서 버티면 숯이 되는 것이고, 못 버티면 잿가루가 되듯이 <킬링 로맨스>는 극과 극의 반응들을 만들고 있다.
'나는 숯인지 아니면, 재가 될지?', 그게 궁금해 비싼 돈을 들여가며 극장으로 가 직접 두 눈으로 확인해 보았다!대한민국의 톱스타 "여래"는 단, 한 번의 발연기로 잠적하고 그 사이에 "콸라섬"에 "조나단 나(aka. 존나)"를 만나 결혼까지 하게 된다.
그리고, 온 가족이 "서울대" 출신의 4수생 "범우"는 자신의 최애 "여래"가 옆집에 이사를 온 것을 알게 되고 행복한 나날을 보낸다.
하지만, "여래"가 "조나단 나(aka. 존나)"과의 결혼이 행복하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되고 "범우"는 "여래"와 위험한 계획을 짜는데...1. 숯 같은 내 취향!
앞서 말했듯이 영화 <킬링 로맨스>는 취향이 갈릴 수밖에 없는 작품이다.
캐릭터의 이름부터 "존나"라는 것에서부터 심상치 않음을 느낄 수 있지만 이야기는 생각보다 어렵지 않다.
"동화책"이라는 소재에서부터 배우들의 비현실적인 외모, 그리고 "뮤지컬"은 "디즈니 프린세스"가 겹쳐 보인다.
그도 그럴 것이 "조나단 나(aka. 존나)"의 모습은 <라푼젤, 2011>를 비롯해 주인공을 가두려는 "계모"가 보이며, "범우"는 그런 "여래"를 구하는 왕자가 보인다!하지만, <겨울왕국, 2014> 이후 "디즈니 프린세스"의 이야기는 많이 달라졌다.
그 이전에는 "왕자"와 같은 구원자를 기다리는 수동적인 위치였다면, 이제는 직접 움직이는 능동적인 위치로 바뀌었다. - <겨울왕국2014>만 본다면, "한스(왕자)"는 악당으로 역할이 바뀐다!
그런 점에서 이후 "범우"를 주도하는 "여래"의 변화는 예상 가능하나 그 범주가 "살인"이라는 점에서 파격적으로 느껴진다.관건은 이런 과정에서 보여주는 장면들의 연출 방식이다.
"훅쉿팍쿵"은 물론이고, 노래방, 그리고 케이블 TV에서 볼법한 광고까지 난데없이 나오는 "뮤지컬"까지 호불호를 떠나 '대다수 관객들이 어떻게 받아들일지?'에 대해 생각이 앞설 따름이다.
이를 감독 본인도 이를 알았는지 마지막 "여래"의 영화를 보는 관객들 장면에서 극과 극의 반응으로 갈리는 모습을 보여준다.
좋게 보인다면 한없이 이뻐 보이겠지만 나쁘게 보인다면 그만큼 미워할 수밖에 없는 영화가 <킬링 로맨스>이다.· tmi. 1 - 당초 "워너브라더스 코리아"에서 제작된 영화였으나 투자 철회로 상영이 보류되었던 작품이었다.
· tmi. 2 - 극 중. "여래이즘"은 아시다시피, "비"의 "레이니즘"을 개사한 곡인데 실제로, 무보수로 불러주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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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벤져스 엔드게임을 느리게 봐야만 보이는 것들
#산돌구름 #엔드게임 #이스터에그
"마블쟁이는 산돌구름에게 폰트를 지원 받았습니다"*영상 타임라인*
00:00 인트로
00:50 누구보다 빠른 앤트맨
01:20 마지막으로 머리를!!
01:40 묠니르 잡는 캡틴, 방패 잡는 캡틴
02:40 전투 속 디테일들
03:23 똑똑하지 못했던 헐크, 똑똑해진 헐크
04:16 토르 눈은 인공 눈, 감마선이 70년대?
04:55 아웃트로2020. 11. 11 영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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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아바타 : 물의 길> 메인 예고편
판도라가 다시 열린다" 판도라 행성의 신비로운 바다와 제임스 카메론 감독이 선사하는 최고의 영화적 경험! [아바타: 물의 길] 메인 예고편 대공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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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특송> 캐릭터 예고편
예상치 못한 배송사고로 걷잡을 수 없는 사건에 휘말린
특송 전문 드라이버 ‘은하’.
어쩌다 맡게 된 반송 불가 수하물에 출처를 알 수 없는 300억까지!
경찰과 국정원의 타겟이 되어
도심 한복판 모든 것을 건 추격전을 벌이게 되는데…
NO브레이크! FULL엑셀!
성공률 100% 특송 전문 드라이버가 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