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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sa2025-05-28 20:40:04

음악이여 영원하라

영화 <씨너스: 죄인들> 후기

 

*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음악은 아주 오래 전부터 주술이나 의식에서 빼놓을 수 없는 요소 중 하나였다. 주술사들은 부족의 안녕을 기원하는 주술에 음을 실어 종교적 의미를 공고히 하였고 부족민들은 노래를 따라 부르며 저마다의 소원을 실어 불꽃에 올려보냈다. 음악은 우리가 상상한 그 이상으로 불멸의 개념이었던 것이다. 이는 비단 한 나라의 종교적 특징이 아니다. 특정 부족의 독특한 풍습이 아니라는 것이다. 노래는 시간을 타고 우리에게까지 오게 되었으며 다양한 장르에 그 혼을 실어 여전히 미래로 향하고 있는 중이다. 뱀파이어와의 처절한 사투를 그린 영화를 소개하는 글의 시작이 왜 음악이냐 묻는다면 단연코 이 영화는 음악에 대한 영화이기 때문이라 말할 수 있겠다

 

1930년대 미시시피 델타 지역. 악명 높은 쌍둥이가 고향으로 돌아와 노래 주점을 차리고자 한다. 때는 대공황의 여파를 겪는 격변의 시기였기에 대다수의 노동자들은 빈곤에 시달렸다. 영화의 주 무대가 되는 클락스데일도 마찬가지다. 마을 공동체는 노래와 주점, 교회를 중심으로 커뮤니티를 형성하며 나름대로 자신들을 지켜내며 살아가고 있다. 영화 초반부, 주인공인 '스모크와 스택'을 비롯해 인물들을 통해 강조되는 것이 바로 이 터프함과 그들을 결속시키는 한 가지. 바로 블루스이다. 마피아, 강도 ... 쌍둥이의 배경은 뚜렷하게 알 수 없으나 아버지를 살해하고 달아난 두 형제를 모르는 이는 없었고 주점 개장을 위해 고향에 돌아와 만나게 되는 이들은 모두 그들이 내미는 돈과 술에 요구를 들어주지만 자신의 프라이드를 결코 굽히지 않으며 형제를 대한다. 이러한 부분에서 <씨너스> 만의 간지가 탄생하게 된다. 이제 막 대도시 시카고에서 돌아온 의문스러운 과거의 쌍둥이 그리고 자신들만의 공동체에서 음악을 안주 삼아 살아가는 사람들. 이들의 재회는 세계관이 되어주고 더 나아가 그 안으로 관객을 초대하는 문이 되어준다. 

 

 

 

그렇게 술과 음악, 춤과 민속이 얽히는 주점에 초대받은 관객은 감독인 라이언 쿠글러가 보여주는 마술에 빠지게 된다. 특히 쌍둥이의 사촌인 '새미', 음악적 재능이 있는 소년은 초중반부에 걸쳐 세계관 형성에 기여할만한 노래들을 들려주고 그 블루스가 이끄는대로 영화의 본무대인 음악 주점의 문을 열어준다. 그리고 그곳은 이미 미래에 앉아있는 관객들과 어울려 노는 장소 그 자체가 되어버린다. 음악이 주술과 의식에 있어서 효능을 보였던 것은 바로 그러한 지점이다. 영화에서도 역시 강조되는 지점인데 음악은 다름 아닌 시간의 개념을 아우르는 매개로 존재하며 과거와 현재, 미래를 무시하는 지속성과 연결성 더 나아가 불멸성을 가진 예술로써 소개된다. 쌍둥이의 음악 주점은 새미의 노래가 울려퍼지는 순간 시간의 절대성을 무시하게 되는 그야말로 대통합의 현장으로 바뀌는 모습을 보여주고 영화는 결코 해당 시퀀스에서 관객의 손을 놓치 않은채 춤을 권하게 된다. 하지만 음악은 다수에게 치유를 안겨주는 동시에 선과 악을 모두 불러모으는 교차로가 되어버리는데 이때 그 음악에 감응한 악으로 뱀파이어가 등장하게 된다. 이들은 그야말로 초대받지 못한 손님들로 초대해주지 않으면 들어갈 수 없는 악으로 나타난다. 

 

KKK단 부부를 습격하여 동료로 만들고는 쌍둥이의 음악 주점을 습격한 대장 '렘닉'은 영화 러닝타임 중 더블린을 언급하는 아이리쉬 포크 음악을 부르며 주점 안 생존자들을 유혹한다. 이미 다수의 주점 손님들이 뱀파이어로 변모하고 이들의 노랫소리가 더욱 강해짐에 따라 관객은 다름 아닌 배척과 차별의 역사를 깨닫게 된다. 램닉의 출신지로 추측할 수 있는 아일랜드 역시 유럽에서의 박해를 피해 미국 남부로 건너온 이주민이며 꽤 긴 시간 동안 백인으로 인정 받지 못한채 배척받은 역사가 존재한다. 차별과 배척의 대상이 되었던 공동체에서 불려졌던 노래들은 서로를 서로에게 이끌게 되었고 그렇게 두 진영간의 고립과 일원이 되기를 강조하는 상황들이 발생하게 된다. 하지만 영화는 흔한 장르성 짙은 크리쳐물처럼 이 대립의 구도를 길게 가져가지 않는다. 처절한 전투나 승리를 묘사하는 대신 영원의 음악에 모여든 뱀파이어 공동체를 보다 압도적으로 묘사하며 그에 최후의 일격을 가하는 것 마저 캐릭터성 짙은 쌍둥이 주인공이 아닌 새미의 기타임을 강조하길 택한다. 기타에 아로새겨진 역사로 렘닉을 처치한 새미는 스모크의 가호 아래 안정적이고 올바른 목사 아들의 삶보단 악을 꾀어낼지언정 음악으로써 저항하고자 한다. 새미가 후반부에서 보여준 것은 음악의 저항성이기도 하다. 이와 동시에 새미를 집으로 보낸 스모크 역시 한 순간 벌어진 상실에 저항한다. 렘닉이 찾아오지 않더라도 KKK단의 습격을 받을 예정이었던 술집이었기에 보다 직접적으로 그 복수를 행하고자 한 것이다. 뱀파이어마저 배척하는 백인의 시대적 횡포에 저항하는 모습을 보다 확실히 그림으로 영화에선 간접적으로만 등장했던 역사의 차별을 응징함으로 메세지 역시 확고히 하고자 했음을 알 수 있다. 

 

 

 

더 나아가 사실 영화는 한 차례 블루스라는 장르가 뿌리깊은 인종 차별의 역사를 한 순간 멈춘 것과도 같은 과거 묘사가 등장한다. 음악이 지배한 공간 안에서는 유대가 강해진다. 그렇기에 음악 주점의 묘사 뿐 아니라 뱀파이어가 된 이들도 렘닉을 따라 포크 음악을 부르며 몸을 움직인다. 영화는 음악을 매개로, 유대로 설명한다. 더 나아가 라이언 쿠글러 감독은 영원을 살며 자신의 동족을 늘려가는 뱀파이어라는 특정 크리쳐의 특성을 십분 활용하여 그런 음악의 영원가능성, 즉 불멸을 나타낸다. 스모크가 놓아준 동생 스택이 이미 노년의 뮤지션이 된 새미에게 찾아와 그의 음악을 논하는 것 역시 같은 맥락에서 해석이 가능해진다. 중반부 영화 내에서 가장 강한 인상을 가져간, 시간이라는 절대성이 무너진 시퀀스에서 새미의 노래와 일렉트로닉 기타, 디제잉 장비들이 얽혀 연주되어지는 것과 같이 이미 노래로 한 차례 저항했던 새미는 음악으로 그 시간을 관통한다. 여전히 그 날의 그 모습이었던 뱀파이어들처럼 새미의 연주는 형태만 바뀌었을 뿐 악 역시 초대하는 음악 그 자체임에는 변함이 없는 것이다. 

 

음악은 언제 어디에서나 흘러나오고 있었을 것이다. 우리는 노래를 불렀고 이것에 매혹된 것은 비단 인간 뿐이 아닐 것이다. 어쩌면 현대에 와서는 이름조차 잊혀진 것들이 우리와 같은 저항의 영원의 초대의 노래를 불렀을지 모른다. 장르의 매력으로 음악이라는 주제를 극대화시킨 영화 <씨너스: 죄인들>의 노래 역시 불리어졌기에 분명 시간을 타고 영원으로 향할 것이다. 영화관이라는 공간 안에서 관객들 역시 음악 아래 하나의 공동체가 되었음을 체험했고 그 순간만큼은 일리노이 클락스데일의 위치한 한 쌍둥이 형제의 주점이었음을 느꼈을 것이다. 그리고 아주 시간이 한참 흐른 후에도 누군가는 그것을 기억할지도 모른다 물론 그 모습은 뱀파이어와도 같겠지만. 

 

작성자 . mis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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