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다2025-06-24 13:13:51
디지털 운명을 다시 쓸 수 있다는 피지컬 믿음
미션 임파서블: 파이널 레코닝
말그대로 불가능해 보이는 일들을 척척해 내는 헌트. 늘 머리보다 몸이 먼저 움직이는 그의 이야기는 <미션 임파서블: 데드 레코닝 PART ONE>과 <미션 임파서블: 파이널 레코닝>에서 어떤 정점을 찍는다. 한층 더 머리는 비우고, 몸은 부지런히 움직여야 하는 서사가 완성된 것이다. 디지털과의 싸움을 시작한 헌트는 모든 것을 치밀하게 '생각'하는 인공지능을 이기기 위해 오히려 '생각'하지 않는 선택을 한다. 그것이 이 야이기의 핵심이다. '이미 정해진 운명을 다시 쓸 수 있는가?'란 의문을 '이미 생각한 운명을 다시 쓸 수 있는가'로 수정하과, 그 답으로 피지컬 믿음을 제시하는 것. 지극히 미션 임파서블 시리즈다운 답변이다.
아주 치밀하다고 '생각'하기는 어려운 이야기일지라도, 그것이 보여주는 수많은 '액션'들이 몸으로 느껴지는 서사다.
생가하지 말고 달려.
그것이 헌트가 제시한 디지털 운명을 새로 쓰는 방법이 아닐까?
런던의 거리를 뛰는 그의 모습이 그리워질 것이다.
Relative cont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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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작은새와 돼지씨(2021)> 리뷰
다큐멘터리 영화 <작은새와 돼지씨>라는 제목과 간략한 소개문을 보았을 때, 나는 영화 <내 사랑(2016)>을 가장 먼저 떠올렸다. 시놉시스에 짤막하게 적힌 '예술적 영감'이라는 문구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영화를 모두 감상한 후, 나는 자연스레 에드워드 양의 <하나 그리고 둘(2000)>을 연상하게 되었다. 예술은 ‘작은새’ 김춘나와 ‘돼지씨’ 김종석이 살아온 곧은 삶의 부분이지, 삶 전체가 아니므로. 언제나 그렇듯 삶을 모조리 잡아 삼킬 수 있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 스포일러 주의
재현
영화는 감독 자신의 어린 시절 비디오로 출발한다. 어린이집에서 찍은 영상인 듯한데 주인공은 감독이 아니라는 점이 범상치 않다. 그렇다, 이 영화는 ‘돼지씨’ 김종석의 흥겨운 춤과 ‘작은새’ 김춘나의 자그마한 노래로 시작하는 두 사람의 역사이지 감독의 자전적 에세이가 아니다.
곧바로 문학 작품이 될 수 있을 것만 같은 연애편지를 주고받던 젊은 남녀는 어느새 30여 년을 함께한 부부가 되었다. 언뜻 보면 많은 게 바뀐 듯하다. 알콩달콩한 연애편지를 주고받지 않는 것은 물론이요 두 아이를 키우고, 슈퍼를 운영해 보기도 했던 굴곡진 나날이 당장의 일상에 침범하지 않으니 말이다. 그러나 두 사람을 면밀히 살피자면 꼭 그렇지만도 않다. 인생을 어떻게 시기별로 뚝뚝 분지를 수 있단 말인가. 연애편지를 쓸 때 문학 작품을 떠올렸다던 김종석, 슈퍼를 운영할 때 담뱃갑을 활용해 시를 썼던 김종석은 아파트 경비원으로 일하며 폐지 뒤편에 여전히 글을 쓴다. 슈퍼를 운영할 당시 답답한 마음에 문화센터에서 그림과 서예를 배우기 시작했다던 김춘나는 이제 수준급의 실력을 자랑한다.
새 오리털 파카가 잘 어울린다는 칭찬과 아직도 마누라를 이겨먹으려고 한다는 불평처럼 시시콜콜한 일상을 파고들었며 두 사람을 소개한 영화의 초입은 <작은새와 돼지씨>가 미시적인 개개인의 역사를 조명하려는 시도처럼 느껴졌다. 그러나 이야기가 진행될수록 '작은새와 돼지씨'는 몇 개의 레이어가 쌓인 제목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단순히 작은새와 돼지씨의 지나간 세월을 말하는 것뿐만 아니라, 같은 제목을 가진 전시회를 열기까지의 과정이기도 했으므로. 그러하니 이것은 총체적인 역사와 현재 기록되어가는 순간의 역사가 합쳐진 하나의 다큐멘터리 영화라 할 수 있을 터다.
그러하니 관객은 두 사람의 행적을 쫓아가며, 감독이 딸로서 기획하는 전시에도 함께 동행하게 된다. 더없이 피로할 수 있는 여정임에도 그렇지 않았다. 그 까닭은 영화에 소박하고 따뜻한 시각이 내재되어 있으며, 감독이 두 사람의 모습을 과한 미사여구를 동원하며 포장하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덕분에 우리는 압축된 두 사람의 삶을 빠르게, 부담 없이 훑었을 뿐인데도 하나의 시구, 한 번의 붓질을 위해선 하나의 긴긴 인생이 필요할 수 있음을 배우게 된다. 설령 내가 이 다큐멘터리를 본 후, 작은새 김춘나의 그림을 따라 그리거나, 돼지씨 김종석의 시를 모방한다 해도 큰 의미가 없으리라는 것을 이토록 먹먹하게 인지했던 적은 없었다. 정말이지, 일상을 인공적으로 재배열하면서도 진정성을 유지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닐 텐데 감독 김새봄은 <작은새와 돼지씨>를 통해 그것이 가능함을 증명한다.
시대
영화는 김춘나와 김종석의 연애시절 이야기로 시작하고, 30년이 흐른 지금까지도 서로의 예술적 면모를 존경한다는 따스한 이야기를 전하는 등 미시적인 측면에 몰두한다. 하지만 <작은새와 돼지씨>가 두 사람의 구체적 삶을 쓰다듬는 과정을 포함하다 보니, 공적인 시대상이 자연스레 흘러나올 때가 있었다. 예컨대 김종석이 초등학교에서 아이들과 공을 마주 할 때 예전에는 그곳이 '국민학교'로 불렸다는 것도 있겠지만, 결혼을 하며 더 이상 직장을 다닐 수 없었던 김춘나의 사정 역시 있다. 또한 2021년에 이르러, 한국 사회에서 '대기업은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는 요지의 대화가 식사자리에서 이루어진 이면엔 가족이 운영했던 슈퍼가 있을 테니 개인의 미시사와 거시사는 분리될 수 없는 게 당연하다.
30여 년 전 시집에 실어도 될 것 같은 편지를 썼던 김종석은 멀리서 연인을 보기 위해 한달음에 달려왔던 김춘나와 결혼했지만 늘그막에 인간 김춘나를 알게 되었다고 말한다. 그전까지는 여자가 하는 일이 무엇인진 알았다지만 새벽에 퇴근하고, 같은 날 새벽에 또다시 출근을 반복해야 했으니 도무지 아내를 알 수 없었다고 했다. 그래도 그는 그 빼곡한 삶을 살아냈다. 원체 타고난 흥이 많아 지금으로 치면 레크리에이션 강사와 비슷한 직업군을 몇 번 제안받았음에도 가족을 생각하며 거절했다고도 한다. 하지만 그런 이야기를 하는 김종석의 태도에선 슬픔이나 분노를 찾기 어렵다.
그의 글에 반해 지금까지 함께 살고 있으니 김종석이야말로 예술가이지 않겠냐고 말하는 김춘나는 흔히 그렇듯 10대 시절엔 회사원을 꿈꾸었다고 했다. 하지만 결혼을 하며 일을 그만두어야 했고, 늦게라도 대학에 진학해보고 싶었으나 그런 큰 결정은 쉬이 할 수 없었다고 고백한다. 그럼에도 딸 둘을 키우는 것만큼은 행복했다고 할 때 눈물을 내비치지만 그림을 그리고 서예를 할 때 김춘나의 눈에는 생기가 맴돈다. 화폭에 자신이 감각한 현실을 섬세하게 풀어내고, 여러 아이디어를 적용하기도 한다. 스스로를 프로라고 칭하지는 않지만, 그는 현대 예술 안에서 자유를 분명 획득한 것으로 보인다.
베벌리 클락은 책 『실패에 대하여』를 통해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실패할 수 있다. 그럼에도 여전히 잘 살아낼 수 있다'라고. 삶은 검은 숲을 지도 없이, 어쩌면 고장 났을지도 모르는 나침반 하나에만 의지해 걸어 나가는 과정이다. 그러니 자신이 최초에 설정한 꿈이나 목표, 방향성에서 한참 벗어나 도착할지 모른다. 그것을 만일 실패라 한다면 나를 비롯해 많은 이들의 삶엔 실패라는 이름표가 붙을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러한 부류의 '실패'가 항상 참담한 것은 아니다. 우리는 언제나, 어디에서든 잘 살아갈 수 있다, 끝끝내.
은희경이 소설 『마지막 춤은 나와 함께』에 적었듯 ‘살아볼수록 인생은 상투적’인 것 같고, 나이를 먹을수록 인생이 퍽 명료해져 더 이상의 신비가 없는 것 같다는 착각이 쉽게 들곤 하지만, 여전히, 나는 생각한다. 우리 언어의 빈곤이 인생을 밋밋한 것처럼 보이도록 만들 뿐, 실은 모든 인생이 찬란하며, 그 인생을 살아낸 사람이야말로 누구보다 특별하다고.
★★★
* 본 리뷰는 씨네랩 크리에이터로서 시사회에 참석하여 감상한 후, 주관적 견해에 따라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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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 디 에어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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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를 끝까지 다보자마자 떠오른 것은 시몬 드 보부아르의 저서 <인간은 모두 혼자다>와 <그러나 혼자만은 아니다>라는 두 책의 제목이었다. 이 역설적인 두 제목을 합쳐보면, 영화 <인 디 에어>의 역설적인 이야기와 삶의 모순을 담고 있는 이 영화의 주제가 쉽게 드러난다. 물론, 좋은 작품이 언제나 하나의 주제만을 말하고 있지 않듯이, 이 영화 역시 인간의 고독과 삶의 의미 뿐만아니라, 서브 프라임 모기지 사태(2009)가 덮친 미국의 이야기를 다루면서 자본주의의 비정함과 우리시대가 마주하고 있는 고용자의 퇴직 이후의 보장되지 않는 삶에 대한 이야기도 하고 있다. 때문에 다양한 주제로 영화에 대해서 이야기할 수 있을 것이다. 시사점이 많은 영화지만, 자본주의에 대해서 시시비비를 가리는 것은 해당분야의 전문가의 몫으로 넘기고, 이 글에선 인간의 오래된 고독과 삶의 의미에 대해서 말해보려고 한다.
인간은 결국 홀로 남겨진다
<인 디 에어>는 해고 전문가 라이언 빙햄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풀어간다. 라이언은 미국 각지를 비행기로 돌아다니며(그래서 제목이 업 인 디 에어인 것), 다른 회사의 직원들에게 그 회사의 경영진 대신 해고 사실을 통보하는 베테랑 해고 전문가다. 어려서부터 노인들의 죽음을 목격하며, 결국 사람은 혼자 남는다는 사실을 깨달은 라이언은 누군가와 오랜 시간 함께 하는 삶을 꺼려한다. 그때문에, 가족인 누나와 동생과도 자주 연락하지 않고 1년중 집에 있는 날이 고작 43시간밖에 되지 않는 자신의 일과 삶에 편안함을 느끼기까지 한다. 이렇듯 영화 <인 디 에어>속에서 보여지는 라이언의 행동들을 통해 그의 생각을 추적해가는 일은 어려운 작업은 아니다. “어차피 홀로 남겨질 삶이라면, 누구와 이별하는 아픔도 없이 혼자 살다가 조용히 떠나자, 인연이란 어떤 의미에서 자유를 억압하는 굴레일 수도 있다” 라이언은 대략 이런 생각을 갖고 사는 것이 아닐까. 그의 말은 어떤 면에선 타당해보인다.
그의 확고해보이는 생각과는 다르게, 라이언은 인간은 결국 혼자 남겨지게 되고, 때문에 홀로 떠나는 일이 자신에게 훨씬 편하다고 말하면서도 고독을 견디기 힘들어 하는 사람처럼 보인다. 작중 초반에 오랜만에 만난 이웃과 저녁 약속을 제안하는 부분이나, 알렉스와의 첫 만남에서 그녀를 대하는 그의 태도, 거추장스러운 후배라고 생각했던 나탈리를 떨쳐내지 못하고 신경쓰는 부분들, 그리고 결국 다시 가족에게로 돌아오는 모습, 결정적으로 업무적인 관계에 불과한 수많은 해고자들에게 신경쓰는 부분들로 보아 감정과 공감능력이 풍부한 사람으로 보인다. 하지만, 그는 스스로를 고립시키는 선택을 하는데, 아마도 그건 그가 여지껏 숱하게 겪어온 이별을 다시 겪고 싶지 않은 마음도 있을 것이고, 수많은 고용자들을 만나서 해고 사실을 수없이 통보해야 하는 직업적 특성과 어느 한 곳에 오래 정착할 수 없는 여건 탓이리라고 예상된다.
어차피 홀로 남겨질 운명이라면.
넓다면 넓고 작다면 작고, 길다면 길고 또 짧다면 또 짧은 이 세상속에서 우리는 언젠가 누군가와 만나고, 그 시간을 함께 보내며 언젠가는 이별한다. 만남은 정해져있지 않지만, 이별은 분명하게 정해져있다. 그리고 만남은 행복하고 이별의 때에는 언제나 슬프고 아픔을 동반한다. 그러니, 애초에 누군가와 만나지 않는다면, 누군가와 깊은 관계를 맺지 않는다면 이별로 인한 아픔과 슬픔을 겪을 필요도 없지 않을까. 또한 어차피 헤어질 상대와의 만남이라면 나 자신에게 더욱 많은 시간을 쏟고 나의 삶에 충실한 편이 낫지 않을까. <인 디 에어>의 라이언은 바로 그런 입장에 서있다. 그는 공항수색대에서 보내는 시간들을 환산하여 최대한 경제적으로 시간을 쓰는 한편, 마일리지를 꾸준히 적립하고 아껴서 항공사로부터 최고 등급의 회원이 되고자 한다. 그의 시간속에는 그 어디에도 타인이 끼어들 틈이 없고, 오로지 자기 자신만으로 가득하다.
그런 라이언의 앞에 나타난 두 사람으로 인해서, 라이언은 변하게 된다. 먼저 알렉스와의 만남을 통해서 라이언은 외로움과 고독감을 채워간다. 단순히 외로움과 고독을 해소하기 위해서 적당한 거리를 두고 만남을 유지하려 했으나, 라이언은 알렉스에게 빠져들고, 알렉스 역시 라이언에게 빠져 들어오는 것처럼 보인다. 물론, 라이언 자신은 본인은 이제껏 사랑으로 충만한 마음을 느껴본 적이 없다고 말했지만 그것은 알렉스를 만나기 이전의 이야기일 것이다. 라이언은 누군가를 사랑하는 마음이 커져가면서 그와 함께하는 여생을 그려본다. 처음엔 결혼이라는 제도에 대해서 그토록 부정적이었던 라이언이었지만, 이제 라이언은 알렉스를 가족들에게 소개하고, 그의 집을 찾아갈 정도로 마음을 열었다.
라이언이 알렉스와 관계가 깊어진 것은 서로가 함께 하는 시간이 많아지면서 자연스레 빠져들어간 것도 있으나, 무엇보다 나타샤의 영향이 컸다. 당돌한 신입사원 나타샤는 유능하고 똑똑한 직원이지만, 아직 실무경험이 부족한 라이언의 후배 직원이다. 영화 <인 디 에어>속 라이언은 자신의 오랜 실무 경험을 토대로 신입사원인 나타샤를 교육하고 이끌며, 수많은 일상속 문제들속에서도 나타샤를 이끌지만, 반대로 사랑의 문제 앞에서는 나타샤에게 배워야하는 입장이었다. 나타샤는 알렉스에 대한 마음을 라이언에게 묻고, 라이언은 그저 가벼운 사이라고 대답한다. 나타샤는 가벼운 사이라는 말에 분노하며 라이언에게 왜 상대방을 격하시키냐고 따져 묻는다. 이 순간이 라이언에게 얼마나 크게 작용했을지는 모를 일이다. 하지만, 나타샤가 이때 강조한 진심(real)은 후에 라이언에게 중요한 의미가 되고, 알렉스를 진심으로 대하는 계기가 되었을 것이다. 물론, 알렉스의 진심(real)은 전혀 다른 곳에 있었지만 말이다.
하지만 결코 혼자만은 아니다.
라이언은 그런 인간관계의 어려움을 정확하게 알고 있었을 것이다. 서로를 속박하는 결혼이라는 제도에 대한 반감과 가족마저도 등지고 싶어하는 그 마음에는 인간관계의 어려움, 그리고 서로의 진심과 진실을 알 수 없다는 데에 인간관계에는 불완전한 요소가 있다. 결국 인간관계도 자신이 가진 시간과 기회비용으로 일종의 투자를 하는 셈인데, 깊이있게 투자하기 전까지는 상대방의 정확한 진심을 알 수 없고, 때로는 아무리 많은 시간을 투자해도 상대방의 진심을 알 수 없을 때도 많다. 인간관계란 우선 비용을 지불하고 그 가치를 알아가는 투자방식인데, 주식 투자를 이렇게 한다면 분명 주변에선 미쳤냐고 물어볼 것이다. 라이언의 경우를 보더라도 알렉스에게 자신의 진심과 기회비용을 투자했음에도 알렉스의 진실은 전혀 엉뚱한 곳에 있지 않았나. 때문에, “어차피 홀로 남겨질 삶이라면, 누구와 이별하는 아픔도 없이 혼자 살다가 조용히 떠나자, 인연이란 어떤 의미에서 자유를 억압하는 굴레일 수도 있다”는 나름대로 라이언을 표현한 문장이 일견 타당해보일 수도 있다.
어떤 의미에선 그의 말은 옳지 않다. 인간은 홀로 남겨지게 된다는 말은 옳다.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평생을 혼자 사는 편이 낫다는 것은 옳지 않다. 오히려, 인간은 어느순간 홀로 남겨지기 때문에, 함께라는 이유로 행복했던 기억들을 간직하고 있어야만, 후에 찾아올 긴 고독의 시간들을 견뎌낼 수 있는 것이다. 또한, 인간은 감정을 다양하게 표현하는 사회적 동물로 태생적으로 고독을 좋아할 수는 있어도, 수많은 인간관계의 바깥에서 고립되어 평생을 살아가는 것은 절대다수의 인간들에겐 힘든 일이다. 영화 <인디에어>는 라이언의 입을 통해서 인간은 결국 혼자라고 말하는 한편으로 이 영화는 라이언, 알렉스, 나타샤 모두가 결국 외로움을 이겨내지 못하는 평범한 사람들로 그려내고 있다. 그들은 말도 안되는 연애를 하고(나타샤), 잠깐의 외로움을 달래기 위해 목적없이 만나고(라이언), 불륜 생활을 이어가며(알렉스), 저마다의 방식으로 외로움을 달래며 긴 고독의 시간에서 벗어나고자 한다.
특히나 라이언은 자기 입으로 인간은 결국 홀로 죽게된다고, 낯선 비행기와 기내식이 편하다고 말하면서도 깊은 고독속에서 살아가는 인물이다. 역설적으로 라이언은 고독을 자처하고 있는 한편으로 영화 전반에서 자신이 자처한 고독을 견디지 못하고 있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라이언은 해고 사실을 전달하는 베테랑 해고 담당자로 누구보다도 스스로의 감정을 잘 관리하고 있는 강인한 사람일 것 같고, 실제로 나름의 신념을 갖고 살아가는 강인한 사람이지만, 강인한 그 역시도 고독앞에서 수없이 무너져내리고 갈팡질팡한다. 이건 무슨 의미인가. 영화속에서 해고된 직원들의 마지막 인터뷰 장면을 빌려서 대답하자면, 인간은 결국 혼자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것이다. 사람은 홀로 죽는다는 라이언의 가정이 옳다고 치자. 하지만, 그 짧은 마지막 순간에만 사람은 홀로 남겨지며, 우리는 삶속 대다수의 시간들을 서로 교류를 맺으며 살아간다. 물론, 만남이 있으면 이별이 있고, 좋아하는 사람과의 이별은 언제나 슬프고, 오랜 여운을 남긴다.
이별과 죽음을 앞둔 순간은 분명 길고 슬프다. 하지만, 우리 삶 전체를 놓고 보았을 때, 이별의 순간과 죽음을 앞둔 순간은 얼마나 짧은 찰나와 같은 순간인가를 생각해본다면, 그 짧은 순간을 피하고자 삶 전체를 고독하고 칙칙하게만 살아가겠다는 계산은 누가보아도 손해다. 애초에 수지가 맞질 않는다. 또한, 이별의 순간과 죽음을 앞둔 짧은 순간, 아주 힘겨운 시기를 지나가는 순간에, 힘이 되어주는 것은 사회적 고립이 아니다. 누군가가 뻗어준 손을 잡아야만 일어날 수 있는 순간도 있고, 몸은 노쇠해져 초라하게 홀로 남겨지는 순간에, 그대로 마음이 무너지지 않고 버틸수 있는 것은 사랑하는 사람들과 충만하게 보낸 어느 한 시절의 기억들 덕분일 것이다.
나만의 별을 찾아서
영화속 라이언은 그 의미를 아주 뒤늦게서야 깨닫는다. 실무 경력은 라이언에 비할바가 못되지만, 누군가와 열렬하게 사랑해보고, 미친듯이 울어보기도 한 나타샤는 라이언보다 먼저 그 의미를 깨닫고, 라이언에게 진실된 마음과 삶의 의미를 알려준다. 똑똑하고 젊은 여성인 나타샤는 첫 직장생활도 실패했고, 첫사랑도 실패했지만, 왠지 그녀는 그 실패를 딛고 계속해서 앞으로 걸어갈 것만 같다. 라이언은 여전히 공항에서 탑승수속을 밟고, 기약없는 비행편에 올라탄다. 그의 목적지는 정해져있지 않다. 하지만, 영화의 마지막이 되어서야 그의 마음이 비로소 열리기 시작했음을 알 수 있다. 가족과도 연을 끊고, 직장 동료들과의 연결도 최소한으로 하고, 누군가와 사랑에 빠져서 결혼을 하는 일은 더더욱 싫었던 그였지만, 그는 이제 결혼한 동생 부부를 위해 자신의 항공사 마일리지를 양도하고, 나탈리를 위해 추천서를 써주고, 알렉스를 향한 마음으로 그녀의 집앞까지 찾아간다.
그가 탄 비행기는 미국 전역을 떠돌 것이다. 그리고 그 역시 언제쯤 다시 집으로 돌아올 수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이제 그의 마음만은 아무런 정처없이 떠돌지는 않을 것처럼 보인다. 가족에게로 되돌아오고, 사랑에 실패도 해보고, 한참 어린 후배에게 철 좀 들라고 한 소리도 들어본 라이언은 이제 이전과는 다르다. 라이언의 다음 목적지는 어디일까. 누나와 동생의 가정도 그의 마음이 머무를 목적지일 수도 있을테고, 아니면 새로운 목적지를 찾아 헤매고 다닐지도 모르겠지만, 다만 한가지 분명한 사실은 이제 그의 여행은 정처없는 비행에 그치는 것이 아닌, 자신만의 별을 찾아 헤메는 비행이 될 것이라는 사실이다.
다시 날아 오르기를, Up in the air
영화 <인디에어>는 21세기에 들어서 경제적으로 가장 곤란한 시기에 직면한 미국 내부의 이야기를 하면서, 그 어려움을 견딜수 있는 힘이란 가족이나 친구를 비롯한 가까운 사람들에게 달려있다고 말하는 영화로서, 서브 프라임 모기지 사태 이후 경제적 어려움에 처했을 수많은 이들에게 마음의 안식처가 머지 않은 곳에 있고, 언젠가는 더 나아질 것이라는 희망을 주고 있다. 해고 통보를 아웃소싱한다는 점에서, 그리고 그 해고 절차마저도 비용의 문제로 간소화하고자 노력하고 있다는 점에서 자본주의의 비정함도 엿보이는데, 이렇듯 엿보이는 자본주의의 비정함이 주제의식을 더 강화하고 있다. 그러니까, 사회가 그렇게나 비정하기 때문에 비정한 사회속에서 살아남기 위해서 마음이 머무를 곳이 더욱 필요한 것이 아닐까 하는 결론으로 이어지는 것이다. 어려운 시기에 만들어지고, 개봉해서, 어려운 상황에 놓인 수많은 사람들에게 사랑하는 사람들의 곁으로 돌아가 충분한 휴식을 취하고, 다시 날아오르기를 권유하고 있는 영화 <인디에어>였다.
* 사진출처 : 네이버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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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두 남자의 활어회 같은 입담여행, <트립 투 그리스>
- 트립 투 그리스(The Trip to Greece, 2020)
제작 : 영국, 코미디 │ 감독 : 마이클 윈터바텀
출연 : 스티브 쿠건, 롭 브라이든
등급 : 15세 이상 관람가 │ 러닝타임 : 103분"소소한 행복감을 계속 선사하던 시리즈를 그리스에서 제대로 마무리한다"
-이동진 영화평론가-
영국 대표 배우 스티브 쿠건 & 롭 브라이든
환상의 팀워크로 완성한 낭만 가득 여행기
여행이 한결 다채로워지는 순간은 언제일까. 좋은 사람과 함께할 때, 그리고 여행에 대한 풍부한 교감으로 그 깊이를 확장할 때. 영화 <트립 투 그리스>의 두 남자 ‘스티브 쿠건’과 ‘롭 브라이든’이 떠나는 여행은, 그 두 가지 여건을 충족시키는 여행이 아닌가 싶다.
스티브 쿠건과 롭 브라이든은 영국의 내로라하는 배우이자 입담꾼들이다. 그들이 함께 여행을 시작한 건 <트립 투 잉글랜드>에서였다. 감독 ‘마이클 윈터바텀’은 이 영화의 영감을 실제 두 배우들과의 점심식사 자리에서 얻었다고 한다. 두 사람이 주고받는 유머와 풍부한 지식은 그렇게 ‘트립’ 시리즈가 되어, 잉글랜드에서 이탈리아로, 이탈리아에서 스페인으로, 이번에는 그리스로까지 넘어왔다.
중년 남자 두 명이 떠나는 여행이 그리 재밌을 줄은 미처 몰랐다. 마치 다듬어지기 전의 비방용 영상을 보는 것 같았다. 끊임없이 주고받는 서로를 향한 짓궂은 장난과 성대모사 등은 기본이고, 그때 그때 여행지에서 떠올리는 노래와 상황극 등은 이래도 되나 싶을 정도로 생생하게 이어진다. 감독이 영감을 받았다던 두 사람의 대화가 어떤 것이었을지 짐작해볼 수 있었다.
두 사람의 해박한 지식 또한 영화를 보는 재미에 한 몫한다. 두 배우의 나이는 50대다. 인생의 절반을 살아오는 동안 켜켜이 그들의 삶에 쌓여온 문화예술과 역사, 미식에 대한 잡다한 지식들은 그들이 끊임없이 농담 같은 대화를 이어갈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원천으로 적극 활용된다. 물론 영화 촬영을 위해 사전에 전달된 상황과 정보들은 몇 가지 존재한다. 하지만 그 소수의 사전 정보를 제외한다면 절반 이상이 거의 두 배우의 즉흥적인 티키타카로 채워진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이 영화의 정체성은 바로 그 날 것의 힘에 있었다. 여행지를 다니면서, 빼어난 음식을 맛보면서, 두 배우가 떠오르는 대로 아는 대로 이야기하는 것. 그리고 그 대화가 곧 씬이 되고 영화가 되는 것, 그것이 바로 <트립 투 그리스>다.
그러다가도 문득문득 그들이 가족의 구성원이자 가장이라는 느낌을 선뜻 느끼게 하는 대목도 존재한다. 스티브의 아버지는 여행 중 병세가 심해지시는데, 그때마다 아버지의 상황을 아들로부터 듣는 스티브의 모습은 영락없는 50대 가장이자, 누군가의 아들이었다. 롭도 마찬가지다. 그는 시종일관 스티브를 놀리고 개구진 성대모사를 하다가도, 아내나 딸과 통화할 때면 영락없는 애처가 기질을 드러낸다. 두 배우의 사회적인 모습과, 개인적인 면을 둘 다 볼 수 있다는 점에서 이 영화의 묘미가 더욱 짙어지는 느낌이 들었다.
두 배우가 함께 ‘트립’ 시리즈로 호흡을 맞춘 지도 어언 10년. 두 배우의 어디서도 본 적 없던 활어회 같은 형태의 여행을 보고 있자니, 이상은의 <삶은 여행>이라는 노래의 노랫말이 문득 떠오른다. 10년이라는 시간을 함께 호흡을 맞추며 보낸 두 사람의 시간 또한 커다란 의미에서 여행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서다.
의미를 모를 땐 하얀 태양 바라봐 / 드넓은 이 세상 어디든 평화로이
춤추듯 흘러가는 신비를 / 오늘은 너와 함께 걸어왔던 길도
하늘 유리 빛으로 반짝여 / 삶은 여행이니까 언젠가 끝나니까
인생의 황금기를 지나 50대가 된 두 배우, 두 사람의 관록, 여행과 우정, ‘오디세우스의 발자취’라는 뻔하지 않는 여행 테마, 날 것의 대화. 이 모든 요소들이 트립 시리즈를 관통하는 색이자 매력이 아닐까.
<트립 투 그리스>를 끝으로 트립 시리즈는 마무리가 된다는 소식을 들었다. 하지만 이 시리즈 덕에 알게 된 두 배우의 남은 발자취는 두고두고 응원하게 될 것 같다. 삶이라는 여행이 언젠가 끝난다던 이상은의 노래처럼, 두 배우는 서서히 노년이 되어가겠지. 하지만 두 사람을 보고 나면 인생이든 진짜 여행이든, 끝을 향해 가는 여정이 그리 두렵지만은 않아진다.
성격도 꿈도 다르지만, 서로가 서로에게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여행 메이트가 되어주었던 두 사람을 보는 103분 동안 너무 즐거웠다. 그리고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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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올 봄, 우리들의 마음을 노랗게 물들일 영화 <당신의 사월>
올 봄, 우리들의 마음을 노랗게 물들일 영화 <당신의 사월>
출처: 네이버 영화
유난히 춥고 쓸쓸하게만 느껴진 올 겨울을 보내고 사회적 연대와 사람들의 발길이 더욱 그리워진 요즘, 따뜻한 온기로 그리운 빈 자리를 위로해 줄 영화 <당신의 사월>이 봄을 맞아 다시한 번 우리들의 마음을 노랗게 물들일 예정이다. 그날의 기억을 안고 살아가는 우리를 이야기하는 다큐멘터리 영화 <당신의 사월>은 일상 속 노란 리본을 아름답게 그려낸 메인 포스터를 공개하며 예비 관객들의 이목을 집중시키고 있다.
<당신의 사월>은 2014년 4월 16일의 이야기를 간직하고 살아가는 당신과 나의 이야기를 담아내며 우리 마음속 깊이 자리하고 있는 희망을 이야기하는 다큐멘터리다.
이번에 공개된 메인 포스터는 맑은 하늘과 넓은 운동장의 배경과 함께 중심부에서 포스터 전체를 가득 채운 노란 리본이 가장 먼저 눈에 띈다. 매번 우리들에게 봄을 알리는 개나리꽃이 피어있는 장면과 어우러진 “그날을 기억하는 우리의 이야기, 당신의 리본을 보여주세요”라는 카피는 익숙한 일상 속에 자리 잡고 있는 우리들의 리본을 되짚어보게 만든다. 더불어 노란색이 주는 위로와 희망의 메시지로 우리들의 마음을 뭉클하게 만드는 포스터는 돌아오는 4월 16일을 기억하며 노란 리본을 매달아 보자고 권유하는 듯하다.
한편, 7주기에 맞춰 세월호 참사 피해자 및 유가족들에게 연대와 공감을 전하고 세월호 문제 해결을 위해 힘을 실어줄 영화 <당신의 사월>은 지금 가장 기억해야 되는 작품으로 주목받으며 2021년 가장 주목해야 되는 작품으로 손꼽히고 있다.
씨네랩 에디터 Jad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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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끔 볼만한 로맨스도 있다
혹시 아시는 분 있으실까 모르겠는데, 나는 로맨스 장르를 거의 보지 않는다. 내용이 뻔하기도 하고, 결말도 뻔하기도 하고, 대사가 오글거리기도 하고. 하지만 가끔은 좋은 대사가 있는 드라마라면 보기도 한다. '나의 해방일지'도 로맨스가 있는 드라마이기도 했으니까. 아, 로맨스를 안본다기 보다는 로코를 안본다고 하면 더 정확할까.
그런데 넷플릭스를 뒤지다가, 그 날따라 새로운 것을 좆고 싶은 생각보다 좀 더 예전 것들 중 안본 걸 캐내보고 싶었는데, 이 드라마를 발견하게 되었다. 처음에는 휴일에 잠잘 때 asmr같이 틀어놓을 작정이었는데, 웬걸 처음부터 끝까지 다 보았다. 물론, 오글거리는 대사가 아주 없다고 할 수 없었지만 극의 분위기를 지배하는 차분한 결이 꽤나 마음에 들었다.
1. 차분하지만 지루하진 않은
한 때 일본 영화를 많이 보던 때가 있었다. 차분하지만 결코 지루하지 않은 영화들도 매력있구나 라는 것을 알게 되고나서부터였다. 그게 한 6-7년 전인데, 우리나라에도 이제 그런 컨텐츠가 조금씩 늘어나고 있는 것 같다고 느껴 괜히 좋았다. 은섭이 해원을 바라보는 감정도 따뜻해서 좋고, 사람들이 자신의 삶을 놓지 않으면서 조금씩 앞으로 나아가는 모습들이 내가 가고자 하는 방향과 흡사해서 그런 드라마를 굳이 해외에서 찾지 않아도 이제 꽤나 찾을 수 있겠다는 느낌이 들어서였는지도 모른다.
그저 일상을 살아가는 모습 속에서 도시에서 상처받은 해원도, 그 해원을 키워낸 그녀의 이모도, 엄마도 은섭도 모든 사람들이 각자만의 비전을 가지고 살아가는 모습이 너무 멋졌다. 그 비전들이 소소하더라도 그 소소함을 가진 그들이 너무 빛나 보여서 성공하는 법을 강의하는 사람들보다 더 눈길이 가는 등장인물들이었다.
2. 요란하지 않은 인간관계의 진득함
내가 로맨스를 좋아하지 않는다고는 했지만 아주 안 보진 않는다. 나만의 로맨스를 보는 기준이 있다면, 무조건 담백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게 대사든 분위기든. 이 드라마가 딱 그렇다. 은섭과 해원의 로맨스를 이뤄내기 위해 대단한 우연이 필요한 것도 아니고, 둘의 관계를 보다 보면 그저 하루를 살아내다 보면 사랑에 빠져있는 듯한 모습인 것 같았다. 물론 은섭의 짝사랑이 먼저였고, 오래 지속되었던 것도 있지만 은섭이 그렇게 오래 좋아했으면서도 해원에게 흔한 플러팅 하나 하지 않는 그 지점이 굉장히 멋있어 보였다. 내 취향이 이상한 건지 그렇게 소심해 보이더라도 조심히 다가와 주는 사람이 참 좋다. 사람이 요란하지 않고 진중해 보이는 것 같기도 해서 말이다.
둘 사이의 관계 말고도 모든 인간 관계들이 적당히 따뜻해서 좋았다. 드라마 상에서나 볼 수 있을 법한 상황이지만 딱 적당한 수준의 관심과 챙김이 보여서 훈훈해 보였던 것 같다. 이 드라마에서 선을 넘는 행보를 보이는 인물은 보영밖에 없다. 그 외에는 모든 분위기가 요란하지 않고, 모든 사람들이 적당히 따뜻하고 진득하다. 튀는 성격의 사람들이 없으면 무슨 재미로 이야기를 보나 싶겠지만 각자의 삶을 사부작사부작 하는 사람들을 보면 정말 나도 내 삶을 다시 내 페이스대로 살고 싶어진다.
3. 이 드라마의 주인공은 명여
이 드라마의 문학적인 분위기를 캐리하는 캐릭터는 해원의 이모, 명여다. 은섭도 독서 모임을 주최하기는 하지만 가끔 도라이같은 소리도 문학적으로 하고 있는 명여를 보고 있자면 웃기기만 하다. 하지만 이 드라마에서 청춘들의 로맨스는 관객들을 끌어당기기 위한 장치에 불과하고, 명여의 이야기가 이 드라마의 이야기 중추를 담당한다. 명여는 무관심으로 관심을 표현하는 인물이고, 재능이 있지만 자기 자신이 재능이 없다고 세뇌하면서 사는 사람인 것처럼 보인다. 해원이 느꼈을 엄마의 빈자리를 명여가 채운 듯한 느낌이 든다. 더 이야기를 하면 드라마를 안 보신 분들에겐 스포가 될 것 같으니 이만 줄인다. 그저 명여 같은 친구, 지인 있으면 참 좋겠다고 생각했다. 무엇보다도 도시에서 상처 받고온 해원은 고향에서 은섭을 통해, 보영과의 갈등에 마주하는 경험을 통해, 하다못해 자신에게 무심하다 못해 무신경했던 이모와 엄마를 마주하며 자신의 상처를 직면한다. 그렇게 해원은 자신의 상처를 다독이며, 다시 도시로 돌아간다.
이런 지점들이 '리틀 포레스트' 영화와 닮았다고 생각한다. 고향이라는 곳의 중요성은 언제든 내가 재충전하러 돌아갈 수 있는 곳이라는 인상을 주기 때문이다. 리틀 포레스트나 이 드라마 모두 도시에서 상처받고 고향으로 돌아온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았다는 공통점이 있는 것 같다. 나에게도 그런 곳이 있다. 나의 고향, 하지만 나는 내 고향에 가면 두문불출한다. 시골이라는 곳이 주는 답답함과 지나친 관심이 가끔은 힘들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이 두 작품을 보면서, 내가 생각하는 시골이라는 장소가 주는 환상을 그렇게라라도 풀어내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총평
분명히 이 드라마는 로맨스인데, 난 참 쓸데없는 사고의 확장만 하고 말았다. 로맨스에 감동 받는 것보다, 배우들의 얼굴에 감탄을 표하는 것보다 그저 잔잔함에 꽂혀 삼천포로 빠진 것이다. 이걸 좋다고 해줘야 하나, 헛소리 작렬이라고 해줘야 하나. 나도 잘 모르겠다. 이상 의식의 흐름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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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크린 너머 세계 속으로… 독일] <타인의 삶>을 보면서 배우는 정치
<타인의 삶>을 보면서 배우는 정치
- 감시자의 눈으로 본 인간의 본성
한 남자가 있다. 그는 국가를 위해 감시하고, 의심하고, 고발한다. 인간의 숨결까지 탐지하려는 국가의 냉혹한 눈, 바로 슈타지의 비밀요원 게어트 비슬러. 그의 존재는 사람을 들여다보는 듯하지만 정작 인간의 마음은 닫힌 채 살아온 그림자다. 그러나 그가 감시하던 한 예술가 커플의 삶, 그 속의 자유와 사랑은 서서히 그를 흔들게 된다.
이 영화는 감동적인 이야기인 동시에 역사적 증언이 된다. 배경은 1984년 동베를린. 철의 장막 이편, 동독은 사회주의라는 이념 아래 국가가 개인의 삶을 철저히 지배하던 곳이었다. 슈타지(Ministerium für Staatssicherheit), 국가보안부는 그런 통제의 최전선이었다. 이들은 말 그대로 '국민을 보호하는 척, 국민을 감시한' 조직이었다. 1950년부터 90년까지 존재한 이 기관은 소련의 KGB를 모델로 창설해 서방 세계의 자유주의를 '적대적 사상'이라 규정하고, 이를 사전에 제거하기 위해 시민들의 일상까지 침투했다. 이 조직은 이웃, 연인, 가족의 신뢰까지 파괴해버린다.
이 냉혹한 국가 장치는 바로 냉전의 부산물이다. 2차 세계대전 이후 독일은 미국과 소련의 이해관계 속에서 서독과 동독으로 분단됐다. 서독은 마셜플랜과 NATO의 보호 아래 자유주의 진영의 전진기지가 되었고, 동독은 바르샤바조약기구의 일원이자 소비에트 블록의 전초기지가 되었다. 이념은 경계를 만들었고, 경계는 인간을 서로 다른 방향으로 밀어냈다.
영화 <타인의 삶>은 냉전기의 동베를린이라는 단절된 시간 속에서 감시라는 절대적 권력 아래 무너져 가던 인간성을 기적처럼 다시 일으켜 세운 이야기다. 이 영화는 한 비밀경찰의 ‘변화’나 ‘감동적 회개’를 그리는 데 머물지 않는다. 오히려 감시라는 구조적 억압이 인간의 내면을 어떻게 포위하고 파괴하는지를 보여주며 그 틈 사이로 고개를 내미는 인간적 연민의 가능성을 직조해간다.
<타인의 삶>이 보여주는 비극은 총성이아닌 침묵 속에서 벌어진다. 그것은 독재가 강요한 '침묵의 사회'며 감시가 개인의 내면까지 잠식한 체제의 결과다. 하지만 그 안에서도 사람은 사람을 이해하고, 사람은 사람을 위해 변한다. 비슬러는 감시를 중단함으로써 처음으로 누군가의 삶에 진심으로 '참여'한다. 이것이야말로 정치가 놓친 인간의 가능성이다.
동독은 1989년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며 붕괴의 길을 걷는다. 고르바초프의 페레스트로이카와 글라스노스트는 숨겨진 갈등을 수면 위로 끌어올렸고, 결국 독일은 1990년 10월 3일 통일을 이뤄냈다. 이 통일은 국경이 아니라 체제와 기억, 억압과 저항의 통합이기도 했다.
출처 : 나무위키
이 영화는 국가와 체제가 인간의 존엄을 어떻게 왜곡하는지를 보여주는 하나의 역사서다. 동독이라는 나라는 소련의 영향 아래 세워진 ‘작은 전체주의’였고, 감시는 단지 정치적 기술이 아닌 일상적 감각이자 언어였다. 믿음은 분해되었고, 관계는 해체되었으며, 침묵은 권력이 되었다.
이 대목에서 우리는 한반도를 생각하게 된다. 독일은 수십 년 간 동서독 정상회담과 베를린 협약 등 정치적 협상을 통해 꾸준히 준비해왔고, 주변국 특히 프랑스의 협력도 큰 역할을 했다. 그러나 한국은 여전히 ‘Asia Paradox’의 그림자 아래 있다. 경제적으로는 상호의존이 깊지만 정치와 안보는 대립의 선을 넘지 못하고 있다. 이데올로기의 균열을 극복하지 못한 민족주의, 그리고 '존재론적 안보'에 집착하는 주변국들의 태도는 탈냉전의 기회를 아시아에서는 아직 꽃피우지 못하게 한다. 북한의 핵 위협과 중국의 부상, 미중 체제경쟁과 일본의 군사적 재무장까지 지금의 동아시아는 냉전의 유산 위에 여전히 군림하는 긴장 상태다.
우리는 타인의 삶을 어디까지 들여다볼 수 있을까. 혹은 들여다보는 그 순간 우리는 여전히 우리 자신일 수 있을까? 우리는 체제의 감시자이면서 동시에 양심의 증인이 될 수 있는가?
비즐러는 이 질문에 대해 말이 아닌 행동으로 응답한다. 침묵하는 감시자에서 말없이 도운 구원자로의 여정은 곧 인간이 시스템을 넘어설 수 있다는 희망의 변주다.
여전히 감시의 언어가 살아있는 북쪽, 그리고 여전히 분단을 일상의 배경으로 삼고 있는 남쪽. 우리는 아직도 역사 속에 머물러 있다. <타인의 삶>이 동독의 폐허 속에서 조용히 속삭이는 ‘양심’의 존재는 지금 우리가 직면한 한반도 분단 현실에서도 중요한 울림을 남긴다. 우리는 언제쯤 타인의 삶을 온전히 이해하고, 공감하고 함께 살아낼 수 있을까?
감시의 균열에서 피어난 양심. 그 서사는 여전히 끝나지 않았다. 그리고 아마도 그것은 이제 우리의 서사가 되어야 한다. 그런 가능성을 우리가 믿는다면 언젠가 이 땅에도 장벽이 무너질 수 있으리라
<영화에서 보는 정치> 교양 수업에서의 영화 <타인의 삶>을 보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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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화양연화 리마스터링 영화 후기 (2020_200)
영화직관하는 남자 영직남의 “화양연화 리마스터링” 후기입니다.
쿠키 영상은 없네요.. 영직남의 2020년 영화직관 200편 달성 이벤트에 참여해 주세요~#화양연화, #장만옥, #양조위, #왕가위, #아메리카노, #이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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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옥의 화원 - 평범한 여직원이 분노하면 벌어지는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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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당 영상은 씨네 랩 크리에이터로 활동하며 12월 15일 개봉한 작품
‘지옥의 화원’의 시사회를 다녀온 뒤 제작한 영상입니다.
압도적 격투 능력만 있다면 최강의 여직원으로 칭송 받는 대양아치의 시대… 왕년의 양아치, 폭주족들이 최강 자리를 놓고 사내 파벌을 형성하며 군웅할거하고 있는 혼란 속에서 지극히 평범한 회사 생활을 보내던 나오코는 새로 입사한 란과 우연한 계기로 친해지게 된다. 그러나 뛰어난 싸움 실력을 지닌 란이 사내 서열을 평정한 후 전국 양아치들의 표적이 되고 나오코 역시 주먹 세계의 거대한 소용돌이에 휘말리고 마는데… 회사원은 언제나 싸우고 싶다. 심장을 뜨겁게 할 오피스 코믹 액션의 등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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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사흘> 1차 예고편
2024년 대미를 장식할 역대급 오컬트 호러 영화가 나왔다! 박신양X이민기X이레의 색다른 연기 변신! [사흘] 1차 예고편 공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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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글래디에이터 2> 1차 예고편
권력, 반란 그리고 복수 다시 시작하는 위대한 결투의 서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