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다2025-06-25 12:42:09
뛰기만큼 아름다운 쓰러지기.
댄서
이형기의 낙화에는 이런 구절이 있다.
"가야할 때가 언제인가를
분명히 알고 가는 이의
뒷 모습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누군가가 은퇴를 선언한 순간
그의 과거를 톺아보려는 시도는 많이 있었다.
발레의 이단아라 불리던 세르게이 폴루닌의 서사를 생각하면
그가 은퇴를 선언한 시점,
다큐멘터리를 만들고 싶은 욕구가 드는 것은 당연하다.
<댄서>는 젊은 무용수가 발레를 그만두는 시점에서 자신의 역사를 톺아보는 영화다.
그가 발레를 시작한 순간부터 그가 자신의 은퇴 무대를 준비하고 끝내기까지의 과정.
위에서 언급한 부분은 시의 첫 연이다.
다음 연에서는 이런 내용이 이어진다.
"봄 한철
격정을 인내한
나의 사랑은 지고 있다."
세르게이 폴루닌은
가난했지만 발레를 사랑한 과거를 떠올리며 자신의 '봄 한철'을 추억한다. 그러곤 과감히 이 사랑하는 일을 멈추고자 선언한다.
그의 선언은 발레가 싫어진 것이 아니라, 사랑이 저물고 있음에 대한 경각심에서 비롯된다.
"분분한 낙화......
결별이 이룩하는 축복에 싸여
지금은 가야 할 때"
라고 이어지는 구절처럼, 발레를 그만두기로 한 그의 선택은 '하고 싶은 것'이 아닌, '해야 하는 것'이 된다.
이미 허공으로 뛰어버린 그의 발끝은 다시 바닥에 다을 수 없는 거시앋.
"무성한 녹음과 그리고
머지 않아 열매 맺는
가을을 향하여
나의 청춘은 꽅답게 죽는다."
라고 선언하 듯,
무성한 녹음 속에서 춤추는 그의 마지막 춤
Take me to church는
자신의 청춘(발레)에 대한
애달픈 연서이면서도
가차 없는 이별 통보다.
"헤어지자
섬세한 손길을 흔들며
하롱하롱 꽃잎이 지는 어느날"
을 추억하듯,
그의 뛰기는 섬세하고
그보다 인상적인 넘어지기와 구르기가
이 댄스비디오를 지배한다.
그의 작품에서 기억에 남는 것은 단연코
이형기가 낙화의 마지막 연에서 말하듯
"나의 사랑, 나의 결별
샘터에 물 고이듯 성숙하는
내 영혼의 슬픈 눈."
처럼 슬프지만 성숙한
때론 담담하고 의지에 불타있는
그의 들숨과 눈빛이 아닐까.
Relative cont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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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뻔한 스릴러를 펀하게. [넷플릭스] 그 여자의 집 건너편 창가에 웬 소녀가 있다
이 후기에는 결말과 해석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알코올 중독에 합법적인 약을 마약처럼 활용하는 주인공 애나는 독특하고 처절한 방식으로 딸을 잃은 여자다. 부모님의 직업을 참관하는 미국의 교육 프로그램에 따라 그녀의 딸은 FBI 프로파일러인 아버지의 일터에 방문한다. 그 방문은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 연쇄 살인마를 인터뷰하는데 딸을 데리고 간 것? 어쩌다 우연히 불운하게 딸과 연쇄 살인마가 한 공간에 갇히게 된 것? 하필 부모님 직장에 방문해야 하는 날이 연쇄 살인마를 인터뷰하는 날이었던 것? 핑계 댈 곳은 많지만, 주인공 애나는 딸을 잃은 슬픔을 그 누구에게도 전가하지 않고 오롯이 자신의 잘못이라 자책하고, 슬퍼한다.
그래서였을까? 딸을 보냈던 그날, 내렸던 비에 트라우마가 생긴 애나는 비가 오는 날이면 밖으로 한 발도 딛지 못한다. 혹시 비를 맞게 되면 기절하기 일수. 그녀가 삶을 버텨낼 수 있는 힘은 술과 약. 그리고 술과 약을 섞어 먹으며 딸의 환영을 보는 일.
그런 그녀를 견디지 못한 남편은 떠나고, 그의 슬픔을 동정하던 이웃들도 그녀의 파괴적인 행동에 동정 대신 불편한 마음을 드러낸다.
그러던 어느 날 애나의 앞집에 어린 여자아이를 키우는 싱글대디가 이사를 온다. 늘 자신을 돌보지 않던 애나는 앞집의 소녀를 보며 자신의 딸을 떠올리고 손놓았던 그림을 다시 시작하게 된다. 앞집의 소녀에게 반한 애나는 그녀의 아버지에게 자연스럽게 호감을 보이게 된다. 그리고 그와 썸을 탄다고 느끼는 순간, 남자의 여자친구가 나타나고 애나는 한없이 작아지는 기분을 느끼게 된다.
남자의 애인은 될 수 없지만, 자신의 딸을 닮은 당돌한 소녀와는 잘 지내고 싶었던 애나. 소녀가 그림을 그리는 것을 좋아해서 그녀에게 무언가를 해주고자 하지만, 남자의 애인이 사사건건 발목을 잡는다. 하지만 틈틈이 소녀와 단둘이 있는 상황에서 애나는 소녀를 위해 할 수 있는 일을 한다. 막 전학 온 소녀를 위해서 쿠키를 사주는 일처럼 소녀에게 도움이 되는 일. 그런데 이 과정을 보고 있자면 어쩐지 소녀는 어딘지 모르게 어른스럽다. 특히 애나와 함께 이웃 여자를 험담하는 장면은 어린아이라기엔 묘하게 이질적으로 보였다. 소녀가 어머니를 잃고 아버지와 둘이 살아서 성숙한 걸까라는 생각도 약간 들었다. 하지만 곧 '그 여자의 집 건너편 창가에 웬 소녀가 있다'라는 제목을 떠올리며, 이 아이는 곧 모두의 뒤통수를 치겠구나 싶은 깊은 의심이 올라왔다. 그리고 그 예상은 맞아떨어졌다.
이 드라마는 불안정한 정신의 애나의 시선을 따라 진행되기 때문에, 평온한 일상도 불안하게 보여준다. 아무 일도 벌어지지 않았지만 곧 무슨 일이 벌어질 것 같은 극의 진행. 그리고 그 예상처럼 애나는 살인을 목격하게 된다. 물론 술을 마신 상태에서. 그동안 이웃의 신임을 잃었던 애나의 말은 아무도 믿어 주지 않고, 살인을 당했다고 추정되는 사람은 여전히 문자로 연락이 된다. 애나 역시 자기 자신을 의심할 정도. 드라마를 보는 사람들도 애나가 술을 마시고 환각을 자주 보기 때문에 헛것을 본 건 아닐지 같이 의심하게 된다. 하지만 극이 진행될수록 애나의 의심은 사실이었고, 살인 사건의 범인으로 의심되는 이들이 나타나게 된다.
아내의 죽음으로 수사를 받은 소녀의 아버지. 애나의 집 앞에서 몇 주가 지나도록 우체통을 고치고 있는 수상한 남자. 살해당한 여자의 숨겨진 애인이자 사업 파트너(사기). 그리고 술에 취하면 필름이 끊기는 애나 자신까지.
치밀하진 않지만, 인과관계는 확실하게 짜인 판의 범인은 애나였다. 애나가 아무리 자신이 범인이 아니라고 해도 믿어주는 사람은 없고, 자식을 잃은 슬픔으로 뭐든지 할 수 있는 게 아니냐며 사람들은 애나를 범인으로 몰아간다. 애나는 전화로만 상담하는 상담사가 있었는데, 그는 스스로를 의심하는 애나에게 당신은 그럴 사람이 아니라고 끊임없이 말해준다. 그의 말처럼 애나는 범인이 아니었다.
그리고 애나가 또다시 앞집의 살인을 의심하게 된 날. 비 내리는 길로 뛰어든 애나는 소녀를 살리겠다는 의지로 기어서 앞집으로 향한다. 자신의 딸은 잃었지만, 앞집의 소녀만은 잃지 않기 위해서. 그리고 그녀가 목격하게 된 것은 자신이 지키려 했던 소녀의 민낯. 아버지를 죽이고, 우편물을 가져다주기 위해 자신의 집을 방문한 남자 역시 찌르고, 애나에게 모든 책임을 돌리려 시도하는 소녀. 애나는 죽을힘을 다해서 소녀에게 대항하지만, 과할 정도로 소녀는 힘이 셌다.
사실 이 작품을 특별한 해석이 필요 없는 작품이다. 극의 종반부에 닿으면 친절하게 모든 상황을 설명해준다. 소녀가 자신의 의견을 묻지 않고 임신을 했다는 이유로 어머니를 죽이고, 아버지의 애인과 아버지까지 살해한 과정. 모든 죄를 애나에게 덮어 씌우려고 한 상황까지 모두 알려준다. 그럼에도 이 작품이 식상하지 않았던 이유는 30분 단위로 끊어지는 회차의 빠른 진행과 몰입도를 높이는 배우들의 연기에 있었다. 특히 보통은 아이를 의심하지 않기 때문에 결말도 나쁘진 않았던 것 같다. 물론 수사물이나 스릴러를 많이 본 사람이라면 제목 때문에 소녀를 바로 의심했을 테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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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0번 실패해도 절대 포기할 수 없는 '어떤 것'
나는 지금 박제가 되어버린 천재에 끼지도 못한다. 방 한가운데 가만히 앉아서 젤리를 먹고 있다. 아무것도 하기 싫기 때문이다. 그러다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어 한 결론에 도달했다. 내가 벌였던 뻘짓거리는 절대 돌아오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나는 왜 항상 무언갈 수습하기 위해 이상한 행동을 한단 말인가. 의도가 순수하지 못하면 상대방도 다 알게 되어있다. 난 이 이유로 어떤 행동을 해 상대방을 불편하게 만들어 항상 후회를 한다. 그게 심각한 잘못까지는 아닌 걸 알면서도 말이다. 나는 습관적으로 나 자신에게 솔직하다고 말은 하지만 실상은 그렇지 못할 수도 있다. 나는 어느 순간 굉장히 멋있는 사람이었다가 줘 패 버리고 싶을 정도로 구린 인간이 됐다.
이런 복잡 미묘한 기분이 들 때면 가끔 누군가가 날 따라오는 것 같다. 언젠가 아이언맨이 되고 싶었는데 현실은 시궁창이었다는 글을 쓴 적이 있었다. 아마 그때 언급했던 아이언맨이 내 주위에 있는 것 같다. 그냥 하지 마. 어차피 다 너를 떠나게 될걸. 토익? 그렇게 오래 붙잡으면 실력이 느냐? 너는 그냥 머리가 안 좋지 않아? 걱정을 뭣하려 해. 네가 바라는 거 다 안 이루어져. 온갖 폼은 잡지만 넌 결국 열등감 덩어리일 뿐이지. 그동안 헛짓거리 한 거 기분이 어때? 아이언맨은 비브라늄으로 만든 슈트를 입고 있어서인지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이 모든 잡념의 시작은 내 이상한 행동에서 왔다. 무슨 글을 쓰고 어떤 방식으로 날 위로해도 많은 게 날 떠났다는 사실은 지워지지 않는다. 이 미련과 후회를 어떻게 지워버릴 수 있을까? 문득 나 자신을 완벽하게 회복하기란 불가능에 가깝다고 생각했다. 늘 하는 생각을 다시 하고 있었다. 지워버릴 수 있다면. 미안한 이들이 꼭 행복할 수 있다면. 아예 없던 일로 돌아갈 순 있을까. 창문을 열어 먼 곳을 바라보았다. 시원한 바람이 불어왔다. 멀리 새가 날아가는 모습이 보였다. 근데 갑자기 한 생각이 떠올랐다. 그래. 그렇게 하면 될 것 같아.
<버드맨>은 자아의 회복에 관한 영화다. 주인공 마이클 키튼이 리건으로 나온다. 리건은 왕년에 히어로 무비의 주인공으로 이름 꽤나 날렸던 인물이다. 그러나 현재 위치는 퇴물 그 자체. 레이먼드 카버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 연극으로 세상에게 자기의 가치를 증명해보고자 한다. 당연히 쉽지 않다. 나오기로 한 배우의 머리 위에 조명이 떨어지는 불상사가 발생함에 따라 대체 배우를 구해야 했던 리건. 제레미 레너나 마이클 패스밴더를 호명하지만 사실 이 둘은 할리우드에서 내로라하는 배우들이기 때문에 연극 대타에 호응해 줄 리가 없다. 유명 배우 마이크 샤이너를 섭외한 리건. 샤이너는 메소드 연기를 하는 사람이다. 그는 인성은 파탄이지만 연기력이라면 둘째 가면 서러워 처음 대본 리딩 때도 빼어난 퍼포먼스를 보여준다. 대타의 연기력이 워낙 훌륭했기 때문에 만족하는 리건. 그러나 연극에서 변수가 생겼다.
연극에 베드신이 있었는데, 갑자기 급발진을 해버린 마이크가 상대 여자 배우에게 연기가 아닌 실제로 해보자!라고 말한 것이다. 술 한 병 마시고 연극에 들어간 게 화근이 됐다. 어쨌든 연극은 잘 끝났지만 상대역 레슬리는 상처를 받았다. 계속해서 벌어지는 돌발변수에 화가 나버린 리건은 마이크를 해고하려 한다. 그러나 마이크가 가진 티켓파워가 있어 그것마저도 쉽지 않고, 이어진 딸과의 말싸움에서 '아빠는 트위터도 없고 아무것도 없는 인간이다'라는 말을 듣는다. 이렇게 멘탈이 무너질법한 상황들이 하나하나 쌓이다가, 뉴욕 한복판에서 팬티만 입고 후다닥 달리는 상황까지 겪게 된다. 쉽게 마무리되지 않는 연극 준비 과정에 무언가 깨달은 듯 리건은 공연 당일날 뭔가를 결심한다. 계획을 행동으로 옮기는 데 성공한 그는 결국 마스터피스를 완성해 세상에게 자신의 가치를 증명했다.
버드맨. 직역하면 '새(같은) 남자'라는 뜻이다. 새는 날개를 통해 하늘을 날 수 있다. 반대로 인간은 거의 날지 못한다. 비행기 같은 도구를 이용해야 하늘을 날 수 있다. 그건 아마 사람이라는 동물의 특성상 그럴 것이다. 팔로 부채질 몇 번 한다고 해서 그게 감당이 되나? 당연히 아니다. 건장한 팔다리와 뇌가 있으니 뚜벅뚜벅 걸을 수 있는 것이다. 이 뚜벅뚜벅 걷는 모습은 사람의 본성과도 관련이 있다. 그거야 당연히 밖으로 걷지 못하면 맛있는 것들을 갖고 오지 못하니까. 이를 반영하듯 난 아닌 밤중에 배가 고파서 세븐일레븐에 허니버터 칩을 사러 갔다. 원래 사람은 배가 고프거나 졸리면 참지 못한다. 되게 당연한 명제이기도 하다. 근데 그 본질적인 욕구만큼이나 중요한 게 있다. 이건 내가 글을 쓰는 이유와도 관련이 있다. 난 가끔 나에게 물어본다. 왜 그걸 쓰고 있냐고. 나는 돈 많이 벌고 싶다. 엄마 아빠한테 효도하면서 내 인생 잘 살고 싶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이 왜 옳은 선택을 하는지 증명하는 사람이고 싶었다. 근데 그건 내 개인적인 이야기이기도 하다. 40여 편의 글을 썼던 이유에는 또 다른 것이 있다. 이 영화를 찾아보는 사람은 나름대로의 시각이 넓어지고, 또 작품과 관련 없더라도 내가 느낀 감정들에 공감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글을 쓰는 것이다. 난 나 자신에게 이 두 가지 이유를 바탕으로 글을 쓴다고 되뇌었고 몇 달 동안은 실제로 그러고 있다. 직업적인 무언가와 정서적인 무언가를 내포하고 있는 듯하지만 사실 이건 별게 아니다. 사실 앞에서 언급한 창작의 동기는 한 줄로 요약할 수 있다. 나 역시 사랑받고 싶기 때문이다. 누군가에겐 똘똘이, 다른 이에겐 세상 어디에도 없는 멍청이더라도 나는 사랑받고 싶어 하는 인간이었다.
영화 <버드맨>은 인간이 품고 있는 이 감정을 제대로 건드린다. 사랑받는다는 게 과연 쉬운 일일까? 아니다. 사람 마음 얻는 건 손 꼽힐 정도로 어렵다. 근데 막상 우리는 인간이기 때문에 아름답지 않다. 무슨 말이냐? 우리는 필연적으로 추한 존재이기 때문에 실패를 거듭할 수밖에 없다. 사랑을 받는다는 것이 굉장히 어렵다는 뜻이다. 난 잃은 것에 대해 후회하고 또 무언가를 탓해왔었다. 이는 모두 다 마찬가지일 것이다. 무엇이든 사람이 하는 일이기 때문에 인간관 계고 영화고 예술이기 때문에 좋은 것 나쁜 것 다 각기 개성이 살아있을 수밖에 없다. 그렇게 안 좋은 것을 탓하며 시간을 보내다 정신 차려보면 나는 한 꺼풀 성장한 인간이 되어있었다. 내가 얻은 것도 분명한데 잃은 것에 대해서만 자기 자신을 탓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우리에게 <버드맨>은 제안 하나를 건넨다. 무대에 올라서라는 뜻이다. 겁을 먹었건 원래 대인기피라 사람들 앞에 못 나서건 상관없으니 일단 뒤로 숨지 말라는 말을 전했다.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원래 인생을 살면서 내가 바랐던 것 오 전부를 얻는다는 건 불가능하다. 인간은 기본적으로 미완성의 존재라 무언가를 실수할 수밖에 없고 가끔 우리는 이를 실패의 결과물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먼발치에서 보면 아니란 걸 알 수 있다. 원래 완벽한 사람은 없으며 인생 전부를 근사한 순간으로 채우는 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필연적으로 뭔가를 잃으면서 살 수밖에 없다. 어쩌면 이런 점에서 우리의 삶은 연극과도 같은 것이라 볼 수 있다. 연극은 삼라만상의 인간형을 반영하는 예술이기에 나쁜 사람, 안 맞는 사람 얼마든지 나올 수 있다. 사람이 하는 것이기 때문에 어떤 역할을 해야 하고, 이에 따라 각자의 배역이 다르다는 점에서 유사점이 있다.
이냐리투 감독은 이 연극이라는 소재의 특성을 바탕으로 영화를 만들었다. 영화를 만들었는데 연기를 소재로 했다는 건 난 분명히 연기와 현실을 동일시 키고자 했다고 생각한다. 키건이 연극배우로 나서는 극 그 자체나 이 <버드맨>이 누군가의 연기를 바탕으로 만들어졌다는 건 분명하게 대칭이 되기 때문이다. 이에 대한 근거는 더 있다. 드럼과 롱테이크다. 드럼 연주자는 극에서 시도 때도 없이 막 등장한다. 마치 이냐리투 감독이 '이건 대놓고 허구예요'라고 넌지시 던지는 것처럼 말이다. 영화 안에서의 현실고 연극의 구분선이 얕아졌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 영화의 롱테이크 역시 '인물이 어떤 선택을 했는가'에 따라 한 갈래로 나뉜다. 현실은 롱 테이크고 숏 테이크고 그런 거 없다. 일단 눈 떠서 태어났으면 죽을 때까지 롱테이크인 셈이다. 마치 이 영화의 카메라 촬영 기법처럼. 영화는 이 두 가지 소재를 뒤섞은 후 이 극과 현실의 공통점을 뽑아내서 우리에게 '어떤 인생을 살아야 하는가'라고 질문한다. 이는 우리가 우리 삶을 어떻게 바라보는지와 관련이 있었다. 더 나아가서 나는 이 영화 후반부 리건의 선택이 그렇게 중요하다고 보지 않는 입장이다. 우리는 이를 추론만 할 수 있는데, 나는 감독이 쉬운 답을 보여줬다고 생각한다. 난 애초부터 이냐리투 감독이 키건의 선택에 대해 스포트라이트를 주고 있지 않다고 생각한다. 스포트라이트를 주면 그 죽음이라는 것에 관심이 쏠린다. 이 사람이 왜 죽었을까. 우리는 이 선택에 대해 논의할 확률이 굉장히 높다. 명예회복에 성공한 이가 굳이 그럴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근데 이냐리투 감독은 처음부터 죽음을 빼버렸다. 아니 사실 누가 봐도 죽을법한 상황에 죽음을 생략하는 과감함을 보여준 것이다. 후반부의 죽음을 생략하는 수를 통해 반사이익을 얻는 건 영화의 메시지다.
내가 생각하는 이 영화에서 내포하는 주요한 메시지는 인생의 역설이다. 세상에게 내 가치를 인정받기 위해 그가 골랐던 선택지가 무엇인가. 연극이 그 선택의 전부였을까? 물론 그의 명예회복에 연극이 좋은 매개체가 된 건 사실이지만 그게 아니다. 팬티바람으로 뉴욕 한복판을 달려가거나 총으로 했던 자살시도가 그의 명예회복을 도운 것들이었다. 완전 대놓고 드러나는 아이러니다. 연극을 통해 사랑받고자 했던 그는 연극 외적인 요소가 내부의 관심으로 환기되는 경험을 했다. 영화는 이 과정에 대해 이야기한다. 인생은 연극과도 같다. 싹수없는 후배 놈이 내 연극을 망쳐가며 퀄리티를 떨어트릴 수도 있고, 내가 생각했던 것 외의 요소로 큰 사랑을 받을 수 있다. 하지만 이것은 우리에게 낯선 것이 아니다. 사랑받는 인생을 위해 우리는 필연적으로 더 넘어져야 한다. 나를 둘러싼 상황은 기본적으로 역겹고 모순적이다. 아닌 사람 있나? 내가 무언갈 얻기 위해서는 그만큼의 대가가 필요하다. 즉 삶에서 간절히 바라는 무언가를 얻는 과정이 무조건 아름답지는 않다는 뜻이다. 영화는 이런 삶의 아이러니를 키건이라는 인물을 통해 표현하고 있다. 그리고 우리에게 질문하고 있다. 당신은 어떤 선택지를 고를 것인가요. 창문 밖에서 뛰어내리는 것과 같이 스스로의 욕망에 좀 더 솔직해질 것인지, 아니면 실패가 두려워 사람들 앞에 숨을 것인지 물어보고 있다. 우리 인생은 기본적으로 모순덩어리라 사랑받기가 굉장히 어렵다. 그럼에도 우리는 도전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키건이 그랬고, 당신이 그래 왔던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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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월 1주 차, 최신 씨네 뉴스
안녕하세요. 영화/ OTT 전문 큐레이션 웹 매거진 씨네랩입니다:)
이번주 씨네 뉴스는 국내외 다양한 소식으로 알차게 준비 해 보았는데요!
그럼, 어떤 이슈가 있었는지 살펴볼까요?!
▶11월 <오징어 게임> 리얼리티 쇼 공개
ⓒ넷플릭스
오는 11월 영국에서 제작된 <오징어 게임 : 더 챌린지 >가 넷플릭스를 통해 공개될 예정입니다.
‘오징어 게임’ 속 서바이벌 게임을 현실로 구현해 456명의 참가자가 상금을 두고 벌이는 생존 서바이벌 리얼리티 쇼이며
11월 10개의 에피소드로 진행될 것으로 공식 날짜는 미정입니다.
넷플릭스 시리즈 <오징어 게임 2> 는 제작 준비 과정에 있으며 공개일은 미정입니다.
▶ <더 존: 버텨야 산다 시즌 2> 디즈니+ 6월 14일 공개
©월트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유재석 & 이광수 & 권유리의 <더 존: 버텨야 산다 시즌 2>가 6월 14일 공개됩니다.
<더 존: 버텨야 산다 시즌 2>는 일상생활을 위협하는 각종 재난 속 더 리얼하고 강력해진 극강의 8개 재난 시뮬레이션에서 다시 뭉친 ‘수.유.리’ 인류대표 3인방의 상상 초월 생존기를 그린 리얼 존버라이어티로 오는 6월 14일 디즈니+에서 전격 공개될 예정입니다.
▶ 넷플릭스 시리즈 <셀러브리티> 6월 30일 공개
©넷플릭스
넷플릭스의 새 시리즈 ‘셀러브리티’가 오는 6월 30일 공개를 확정했습니다. 셀럽들의 화려하고도 치열한 민낯을 그린 넷플릭스 시리즈로 박규영, 이청아, 강민혁, 이동건, 전효성 출연, 6월 30일 넷플릭스를 통해 전 세계 190여 개국에 공개될 예정입니다.
▶ 메가박스 6월 클래식 라이브 여름음악회 진행
ⓒ메가박스
메가박스의 ‘클래식 소사이어티’가 세계 3대 교향악단에 속하는 빈 필하모닉과 베를린 필하모닉 클래식 공연을 중계 상영합니다. 올해 빈 필하모닉 여름음악회는 6월 9일, 베를린 필하모닉 발트뷔네 콘서트는 25일 전 세계 80개 이상의 국가에서 중계 상영하며 국내에서는 특별관 돌비 시네마, MX 상영관을 포함한 메가박스 23개 지점에서 만나볼 수 있습니다. 자세한 내용및 예매는 메가박스 공식 홈페이지를 통해 확인 바랍니다.
▶ 제27회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6월 29일 개막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부천판타스틱영화제가 올해 산업프로그램(B.I.G)의 아시아 판타스틱영화 제작네트워크(NAFF) 프로젝트 마켓 선정작 18개국 29편을 31일 발표가 했습니다. BIFAN은 6월 29일부터 7월9일까지 부천시청·한국만화박물관·CGV소풍·메가박스 부천스타필드시티 등과 온라인 상영관 웨이브(wavve)에서 만날 수 있으며 B.I.G NAFF 프로젝트 마켓은 6월30부터 7월3일까지 4일간 온·오프라인 개최됩니다.
▶ <아바타: 물의 길> 디즈니+ 6월 7일 공개
2022년 12월 개봉한 <아바타: 물의 길>이 6월 7일 디즈니+를 통해 공개됩니다.
팬데믹 이후 외화로서는 첫 천만 관객 돌파, 국내 전체 개봉작 중 역대 매출액 2위를 기록했을 뿐만 아니라
글로벌 역대 박스오피스 TOP3에 진입하며 전 세계적으로 흥행 신드롬을 일으킨 바 있습니다.
'아바타' 시리즈는 5부작으로 제작될 예정이며 시즌3는 2024년 12월 개봉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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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네랩이 들려드리는 오늘의 씨네뉴스는 여기까지 입니다.
추후 더 유익한 소식으로 찾아 오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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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월 셋째 주 극장 개봉 & 예정작
엘비스 프레슬리의 아내였던 프리실라 프레슬리가 1985년 산드라 하먼 작가와 함께 집필한 회고록 '엘비스와 나' (1985)를 원작으로 하는 <프리실라>가 개봉을 앞두었습니다.
넷플릭스 인기 오리지널 시리즈 <키싱 부스>의 노아 플린으로 인지도를 올린 제이콥 나다니엘 엘로디와, 개봉을 앞둔 <시빌 워> <에이리언: 로물루스>로 주가를 올리고 있는 케일리 스패니 주연의 영화로 세기의 록가수 엘비스 프레슬리와 결혼한 여성 프리슬라의 삶을 그린작품으로 환상적인 케미를 예고했는데요.
특히 이 작품으로 케일리 스패니가 제80회 베니스 국제 영화제에서 여우주연상을 수상했으며,
<사랑도 통역이 되나요?>로 평단의 찬사와, 흥행대박을 터트린 소피아 코폴라가 연출을 맡은 작품입니다.
2023 타임지 선정 올해의 영화 4위에 오른 올해 꼭 봐야할 영화 <프리실라>
6월 3주차 개봉예정작 줄거리 같이 알아보아요!
프리실라
Priscilla
개요: 드라마, 멜로/로맨스, 뮤지컬 | 미국, 이탈리아 | 113분
감독: 소피아 코폴라
주연: 케일리 스패니, 제이콥 엘로디
개봉: 2024.06.19.
배급: 오드 AUD
시놉시스
독일 미군 기지의 파티에 참석한 소녀 ‘프리실라 볼리외’는 당대 최고의 슈퍼스타 ‘엘비스 프레슬리’를 만난다. ‘엘비스’는 ‘프리실라’에게 첫눈에 반하게 되고, 두 사람은 저항없이 서로에게 빠져든다. 평범한 소녀였던 ‘프리실라’는 ‘엘비스’의 연인으로 세간의 주목을 받으며, 삶의 모든 것이 변하기 시작하는데… 세상을 뒤흔든 로큰롤의 황제와 평범한 소녀. 두 사람의 가장 센세이션한 로맨스를 만나다!
프렌치 수프
The Taste of Things
개요: 드라마, 멜로/로맨스 | 프랑스 | 135분
감독: 트란 안 훙
주연: 줄리엣 비노쉬, 브느와 마지멜
개봉: 2024.06.19.
배급: ㈜플레이그램
시놉시스
20년간 최고의 요리를 함께 탄생시킨 외제니와 도댕. 그들의 요리 안에는 서로에 대한 존경과 배려, 그리고 사랑이 있다. 인생의 가을에 다다른 두 사람, 한여름과 자유를 사랑하는 외제니는 도댕의 청혼을 거절하고 도댕은 오직 그녀만을 위한 요리를 만들기 시작한다.
1초 앞, 1초 뒤
One Second Ahead, One Second Behind
개요: 멜로/로맨스, 판타지 | 일본 | 120분
감독: 야마시타 노부히로
주연: 오카다 마사키, 키요하라 카야, 히이라기 히나타
개봉: 2024.06.19.
배급: ㈜블레이드이엔티
시놉시스
늘 남들보다 한발 앞서는 바람에 입시도, 일상생활도, 연애도 쉽지 않은 우체국 청년 ‘하지메’. 남들보다 늘 한발 느린 템포로 사진을 찍으며 느리지만 조용한 삶을 살고 있는 ‘레이카’. 어느 날, 미모의 뮤지션 ‘사쿠라코’를 만난 ‘하지메’는 가까스로 데이트 신청에 성공하지만, 눈을 떠 보니 약속날은 지나가버리고 얼굴까지 새빨갛게 타버린다. 파출소에까지 찾아가 잃어버린 하루를 되찾기 위해 동분서주하던 하지메는 우체국에서 매일 우표를 사가던 ‘레이카’가 사라진 하루의 열쇠를 쥐고 있다는 걸 알게 되는데..! 천년 도시 교토에서 살아가는 1초 빠른 남자와 1초 느린 여자. 분실된 하루에는 과연 어떤 비밀이 숨겨져 있을까?
캣퍼슨
Cat Person
개요: 드라마, 공포, 스릴러 | 프랑스 | 118분
감독: 수잔나 포겔
주연: 에밀리아 존스, 니콜라스 브라운
개봉: 2024.06.19.
배급: 판씨네마㈜
시놉시스
남자가 무슨 짓 할지 두려운 여자 VS 여자가 무슨 말 할지 겁나는 남자 갓 스물이 된 극장 알바생 '마고'는 고양이 두 마리를 키운다는 남자 '로버트'를 만나 첫눈에 호감을 느끼게 된다. 하지만 '로버트'와 데이트를 이어갈수록 처음의 설렘은 점점 공포로 변하고… '마고'가 '로버트'의 집을 방문한 날, 고양이가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그의 진짜 모습을 의심하게 된다. 당신의 데이트도 악몽이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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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애국이라는 이름으로
어느 날, 영국 첩보국 일명 '서커스'의 국장, 컨트롤은 부하 짐 프리도에게 밀명을 내린다. 서커스 안에 숨어있는 러시아 스파이 '두더지'의 존재에 대해 알고 있는 헝가리 장군을 만나보라는 것. 하지만 짐이 만난 장군은 일종의 함정이었고, 그는 살해된다. 그 후, 사건에 책임을 지고, 컨트롤과 함께 물러난 조지 스마일리는 러시아의 첩보국장 카를라가 숨겨놓았다고 전설처럼 언급되곤 했지만 모두가 믿지 않았던 두더지 잡기 작전에 돌입한다. 그러던 와중에 변절했다고 알려져 있던 리키 타르가 그를 찾아와 자신에게 벌어졌던 자초지종을 토로하고, 자신의 보고를 묵살한 서커스를 의심하는 발언을 그에게 쏟아낸다. 이 때, 조지는 리키 타르의 증언을 토대로 서커스의 일원 4명 중에서 누가 스파이일까 고민하게 되는데, 과연 그는 러시아에서 보낸 스파이를 깔끔하게 잡아낼 수 있을까?
1. 액션 신이 없어도 긴장감 넘치는 장면들
"아무도 믿지 말게, 짐. 특히 수뇌부 사람들은 말이야."
짐 프리도에게 내려진 컨트롤의 밀명은 서커스 멤버 중에서 두더지가 있으니, 그를 찾아내라는 것이었다. 컨트롤은 짐에게 두더지가 앨러라인일 경우, 암호명으로 팅커, 헤이든일 경우에는 테일러, 블랜드일 경우, 솔져, 에스터 헤스일 경우, 푸어맨으로 지정해 주었다. 그나마 컨트롤이 신뢰하는 서커스 멤버였던 것으로 보이는 스마일리는 자신의 동료를 의심해야 했기 때문에 모든 일을 은밀히 진행한다. 단 한 번의 무력적인 충돌 없이. 그 결과, 그저 남을 믿지 않는 것만으로 스파이를 찾아낸다.
흔히 첩보 영화라면 시원한 액션을 기대하게 되기 마련이지만 이 영화는 액션 신이 없다. 하지만 충분히 긴장감이 있다. 특히, 스마일리를 돕고 있는 피터 길럼이 리키가 보고하던 날의 업무 일지를 빼돌려 오라는 지시를 행하는 장면에서의 배우는 문서를 유출하는 자신을 보호해야만 하는 그의 급박함과 침착함을 잘 표현해내었다고 생각하며, 그런 연기에 긴장감 넘치는 빠른 템포의 음악을 덧입히니, 급박한 상황을 잘 표현하는 음악과 그의 침착한 행동이 조화를 이루어 멋있는 장면이 연출되었다.
그만큼 이 영화는 제이슨 본, 007시리즈처럼 요원들의 멋있는 액션을 보고 쾌감을 느끼는 것을 타겟으로 잡지 않았다. 스마일리는 사람을 잘 이용하는 것이 가장 큰 무기인 캐릭터이다. 무표정 속에서 그는 동료를 수없이 의심하고, 정보원들이 물어다주는 정보도 철저히 그만의 검증 과정을 거친다. 그를 보고 있으면 첩보원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사람을 보는 눈을 키우는 것이고, 믿을 만한 사람에게서 정확한 정보를 얻어내는 것이 액션보다 더 중요한 덕목이라는 것을 상기시켜 주는 것만 같다.
2. 변절자를 대하는 스마일리의 모습
"전 선택해야만 했어요. 도덕적 선택 못지 않은 미학적 선택이었죠. 하지만 전 그의 수하가 아닙니다."
영화 말미에 스파이의 정체가 밝혀지면서 스마일리가 동료들을 추궁하는 장면이 나온다. 이 때, 자신이 러시아 첩보국의 스파이가 된 것은 미학적인 이유였다는 대사가 궁금증을 자아냈다. 그 미학적이라는 말의 의미는 혹시 이미 스파이라고 탄로난 상황에 썩을대로 썩은 서방 세계를 떠나 뜨고 있는 다른 국가의 스파이가 되는 것이 폼나지 않느냐 라는 것일까. 입을 삐죽거리며, 자신의 폼생폼사를 논하는 그를 보니, 조금 찌질해 보이기도 했다.
그래서 그런지 관객의 입장에서 칙칙한 필터로 그려진 한 인간이 배신으로 몰락을 바라볼 때, 모호하지만 강렬한 감정이 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 모호함이 짠함일 수도 있고, 경멸일 수도 있고, 오묘한 감정의 총합이었다. 관객의 입장에서 동료를 배신한 자가 이유랍시고 한 말은 그저 추해 보일 뿐이었는데, 그 추함은 아마도 자신의 변절을 멋있음으로 포장하고자 하는 그의 태도에서 비롯된 것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스마일리의 추궁은 감정적이지 않았다. 추궁을 하고 있는 와중에도 그는 호통을 치면서 추궁을 하고 있긴 하지만 크게 표정을 일그러트린다거나 동료의 배신에 눈물 흘리며 감정적 호소를 하지 않는다. '네가 어떻게 나를 배신할 수가 있어' 같은 신파적인 요소가 없다. 그저 건조하지만 힘있는 말투, 서늘한 눈빛으로 그저 질문할 뿐이다. 정보 전쟁에서 우위를 차지한 자가 가질 수 있는 태도, 굳이 화를 내지 않고도 정보로만 승부를 보고, 차분히 취조하는 그의 태도에서 카리스마가 느껴졌다.
3.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두가 두더지의 손아귀에
"실패와 추문만 난무할 뿐 쓸만한 요원이 없어요"
두더지가 잡혔지만 모두가 공범이었고, 결백함을 주장하기엔 너무 멀리와 있었다. 그들은 국가를 위해 충성한다는 명분 아래 정보를 유출시키고 있었다. 영국에는 믿을 만한 정보원이 없다면서 자국 디스를 했지만 결국 그들도 변절까지는 아니지만 국가의 막대한 손해를 끼치고 있었다. 아이러니하게도. 모두가 두더지의 농간에 놀아나는 요원으로서 치명적 실수를 저지른 것이다.
또한, 그들은 두더지가 짜놓은 판을 뒤집을 수 있는 기회가 많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짐 프리도에게 조용히 살 것을 종용하고, 러시아 첩보원에 대해 아는 사람들을 해고시켜가면서 서커스를 곪게 만들었다. 그들의 의도는 영국에게 이로운 방향으로 정보를 얻기 위함이었겠지만 말이다. 충성심을 역이용해 자신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이끌어나가다니, 카를라라는 캐릭터는 단 한 번의 얼굴 등장도 없이, 참 존재감이 크다.
그들의 충성심은 영화 막판에 두더지의 정체를 알게 되고, 두더지의 소재지에서 나오며 스마일리와 마주쳤을 때, 그의 '뒤통수 제대로 맞았다'는 한 실패자의 표정에서 알 수 있었고, 또다른 실패자는 스마일리의 추궁 장면에서 그가 울먹일 때, 조금 보이는 듯했다. 그들은 변절자가 아니라 속아넘어간 사람들일 뿐이었다는 것을.
그렇게 잘난 척들을 했지만 결국 스파이의 농간에 놀아난 사람들임이 탄로나버린, 작전에 실패한 요원들의 말로를 보니, 첩보 세계의 냉정함이 보였고, 첩보원들은 참 치열하고, 치밀해야 함을 느꼈다. 스마일리의 무표정하고, 치밀한 일처리가 이해가 가는 부분이었다. 인간으로서 동정해주고 싶기도 했지만 이 영화는 인간적인 이해보다는 철저한 요원들의 세계를 보여주는 영화이기에 깊은 인간적 이해는 그만두도록 하자.
4. 총평
한국에도 비슷한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영화가 있다. 이 영화를 보고, '공작'이라는 영화가 떠올랐는데, 정보 전쟁에서 우위를 점해야 하는 사람들의 삶을 잘 보여주고 있다는 점과 첩보원들에게 중요한 것은 액션을 위한 좋은 몸이 아니라 눈치와 머리 싸움이라는 것도 잘 보여주고 있는 영화라는 점이 비슷하다. 공작에서도 그렇고, 이 영화에서도 그렇고, 내부에 숨어있는 적을 색출해낸다는 점에서 비슷한 점이 많다. 첩보 세계에 대해 조금 더 현실적으로 그린 영화를 찾고 있는 이들에게 이 두 영화를 추천한다.
이런 영화들을 볼 때면, 애국이라는 단어의 의미에 대해 한 번도 생각해 보게 된다. 누군가에게 애국은 다른 이들에게 변절일 수도 있는 첨예한 단어이기 때문일까.
※ 해당 영화는 Netflix에서 시청이 가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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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리뷰] 키싱부스
넷플릭스에서 유명한 하이틴 영화들이 몇 개 있다.
내가 사랑했던 모든 남자들에게, 키싱 부스 등등. 하이틴 영화를 선호하는 편은 아니지만 사람들이 좋아하는 영화에는 나름의 이유는 있지 않을까 싶어 보았다. 내가 사랑했던 모든 남자들에게는 예전에 후기를 남긴 적이 있고, 키싱 부스는 출퇴근 때 가볍게 보기 좋았다.
하이틴 영화에 늘 나오는 관계답게 주인공인 엘과 엘이 짝사랑하는 노아는 이루어지면 안 되는 사이다.
노아는 엘의 오랜 절친인 리의 형으로 엘과 리는 친한 친구의 법칙으로 서로의 가족은 절대 건드리지 않는다고 맹세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당연하게 엘은 노아를 짝사랑하고 노아도 알고 보니 엘을 짝사랑한다. 미국 하이틴 영화에서 늘 나오듯 남자 주인공은 싸움만 하고 여자관계가 복잡한 문제아지만(그런데 하버드를 간다.) 여주인공은 특별할 것 없는 보통 사람이다. 여느 영화와 똑같이 축제나 자선행사 같은 이벤트가 벌어지고 그 와중에 여주인공에게 위해가 되는 사건사고가 발생한다. 그 사건사고가 발생할 때마다 등장하는 백마 탄 왕자가 노아다. 그러니 둘이 이루어지지 않을 수가 없다. 둘은 사랑에 빠지지만 대외적으로 사귀는 사이임을 공표하지 못한다. 리의 존재 때문이다.
엘과 노아의 관계만큼이나 엘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이 친구와의 관계이다. 엘은 리에게 "사실 너의 형과 사귀고 있어. 너와의 약속은 깨버렸어."라고 말할 용기가 없기 때문에 계속 리에게 관계를 숨기지만, 우리 모두 이 노래의 끝을 알고 있다시피 당연히 관계는 들킨다. 관계를 들킴으로 리는 형과 엘에게 실망하고 셋의 관계는 파국을 마주한다. 파국을 마주했지만 긴장감은 전혀 들지 않는다. 나는 이 노래의 끝이 무엇일지 알고 있다.
주인공은 친구와의 관계도 중요하지만 자신의 사랑도 중요함을 리에게 말하고, 리도 그 관계를 존중해 줌으로 우정도 지키고 사랑도 지킨다.
영화의 제목이 '키싱 부스'이지만 키싱 부스가 제목으로 자리매김할 만큼 영화에서 특출나게 하는 역할은 없다.
영화 제작자는 아마 키싱부스를 플롯의 전환, 추억을 환기시켜주는 매개체 또는 10대들에게 운명적인 사랑 혹은 불타는 사랑의 매개체쯤으로 삼으려고 노력했지만 그다지 와닿지 않았다.
중간중간 억지로 집어넣은 설정이 불쾌하게 느껴졌다.
리와 형의 관계 설정
"항상 형은 내 모든 것을 뺏어갔어. 그런데 이제는 너(엘)도 뺏어갔지."
엘과 리의 부모님의 관계 설정
"나는 너의 엄마와 오랜 시간을 보내며 자주 다투었지만 나중에는 왜 다투었는지 기억도 나지 않아. 살면서 정말 좋은 친구 한 명만 있다면 성공한 인생이야"
이 외에 OMG 걸스나 리의 사랑이라든지 절친의 법칙 등등. 2020년에 키싱 부스가 공감이 갈만한 매개체인지, 자선행사나 학교 축제, 졸업파티가 설렘을 줄 수 있는 것인지 전혀 이해가 가지 않았다. (물론 미국인들은 이해할 수 있지만)
그럼에도 이 영화를 술술 보게 되는 이유가 있다면 최근 콘텐츠의 흐름을 기가 막히게 따랐다는 점이다.
이제 대중들은 갈등관계가 매우 복잡하거나 사건사고가 질질 늘어지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정극이나 심각한 사건사고를 다룬 스토리 혹은 깊이 생각해야 할 거리를 던져주는 것들을 싫어하는 것은 아니다. 단지 이런 것들은 깊이 생각할 수 있게 시간을 투자해야 한다. 시간을 투자하기 위해서는 마음을 단단히 먹어야 한다. 넷플릭스에도 "결혼 이야기" 나 "아메리칸 팩토리"를 비롯한 영화, 다큐 등 많은 생각을 하게 해주는 콘텐츠들이 있지만 이런 것들은 마음먹을 시간이 필요하다. 그러기에 사람들이 선뜻 플레이 버튼을 잘 누르지 않는다.
키싱 부스는 플레이 버튼을 단순히 누를 수 있게 만든 영화다. 사람들이 플레이 버튼을 쉽게 누를 수 있도록 갈등구조는 단순하게, 설정이 억지 같지만 대충 납득할 수 있게 (이거 알지? 어차피 중요한 거 아니니까 대충 넘어가자 식), 판타지는 적절하게 실현시켜주도록 만든 것이다.
그래서 나도 플레이 버튼은 쉽게 눌렀지만 좀처럼 공감하지 못했는데, 이건 내 나이 문제다. 애초의 나와 같은 연령대를 겨냥한 영화가 아니다.
이 영화의 주제는 10대를 비롯한 20대 초반들을 겨냥했다. 보통 20대 중반 이후부터는 중요해지지 않는 "우정과 사랑을 양립할 수 있는가" 다. 거기에 빠른 교차편집, 단순한 갈등구조, 그들에게는 상식이지만 나에게는 공부해야 할 밈들이 애초부터 커트라인인 것이다.
나는 리의 어머니나 엘의 아버지 이 외 많은 등장인물들이 조명되지 못하는 점이 아쉬웠는데 생각해보면 애초에 그들의 역할은 그 정도까지 인 것이다. 나는 스토리에서 쓸데없는 등장인물들은 없다고 생각하고 만약 등장한다면 당위성과 개개인의 특성을 잘 살려줘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10대들은 그렇지 않다.
10대들은 주변 인물들이 중요하지 않다. 주변 인물들이 내뱉은 말이나 상황이 중요하지 그 인물 자체가 꼭 있어야 할 당위성 같은 것이 없는 것 같다.
이 영화가 속편이 제작되어 이미 개봉했다는 것도 보았다. 심지어 키싱 부스 3로 그 후속작까지 제작 중이라는 소식도 들었다. 좀처럼 공감할 수 없는 문화의 상대성이 혼란스러운 영화였다. 이제 나도 구시대의 반열에 한 다리 정도는 걸쳐있는 것 같다.
"아저씨. 꼭 설명해야 해요? 대충 알자나요... 넘어 갑시다. "
키싱 부스.
* 본 콘텐츠는 브런치 까마구의 까망책방 님의 자료를 받아 씨네랩 팀이 업로드 한 글입니다.
원 게시글은 아래 출처 링크를 통해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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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포일러] 스파이더맨 노웨이 홈에 누구나와요? 그 사람들 나오나요?
큰 스포일러는 없지만 영화를 보지 않으신 분들에게는 스포일러가 될 수 있으니 영상이나 글은 영화 관람 후 읽어주세요! :)
스파이더맨 노웨이홈이 드디어 개봉했습니다!
기존 마블 영화의 팬이시거나 기존 스파이더맨 시리즈들을 좋아하셨던 분들에게는 선물같은 영화입니다.
그동안 모든 시리즈를 보셨던 분들이라면 그동안의 추억과 영화의 장면, 대사들이 많이 떠오르실 거에요.
마블이 작정하고 팬서비스를 해주는 영화 같기도 합니다.
자세한 리뷰는 영상에서 확인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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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존 오브 인터레스트] 끝장리뷰 | 벽, 담벼락, 담장(wall) 상징 | 결말해석 | 헨젤과 그레텔 분석 | 사운드와 이미지, 옆모습(측면 숏), 열화상카메라 의미
[존 오브 인터레스트](2024)에 대한 헐거운 리뷰
Chapter 1 벽, 담벼락(wall), 결말해석
Chapter 2 사운드와 이미지, 옆모습(측면 숏), 헨젤과 그레텔
00:00 존오브인터레스트
01:07 닮은 영화들
03:01 wall
06:43 결말해석
07:50 사운드, 이미지, 옆모습
08:59 핸젤과 그레텔
10:52 별점 및 한 줄 평
11:15 다음 리뷰 예고
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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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아워 미드나잇> 30초 예고편
학교 연습실과 옥탑방을 오가며 반 백수처럼 지내는 무명배우 지훈.
사내연애를 하던 중 말 못할 사건을 겪고 속앓이 하는 직장인 은영.
지훈이 한강 비밀 순찰 아르바이트를 시작한 날, 두 사람은 우연히 처음 만난다.
한가로운 밤 산책이 위로가 되는 시간, 같이 걸을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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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웨이브 <이블 시즌2> 공식 예고편
심리학자 크리스틴, 수련 사제 데이비드 그리고 벤은 성당의 의뢰를 조사하며 온갖 미스터리한 사건을 마주한다. 한편, 스스로 악마와 거래했다는 릴런드와 대립하며 과학과 종교 사이에서 악의 근원을 추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