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다2025-06-25 12:42:09
뛰기만큼 아름다운 쓰러지기.
댄서
이형기의 낙화에는 이런 구절이 있다.
"가야할 때가 언제인가를
분명히 알고 가는 이의
뒷 모습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누군가가 은퇴를 선언한 순간
그의 과거를 톺아보려는 시도는 많이 있었다.
발레의 이단아라 불리던 세르게이 폴루닌의 서사를 생각하면
그가 은퇴를 선언한 시점,
다큐멘터리를 만들고 싶은 욕구가 드는 것은 당연하다.
<댄서>는 젊은 무용수가 발레를 그만두는 시점에서 자신의 역사를 톺아보는 영화다.
그가 발레를 시작한 순간부터 그가 자신의 은퇴 무대를 준비하고 끝내기까지의 과정.
위에서 언급한 부분은 시의 첫 연이다.
다음 연에서는 이런 내용이 이어진다.
"봄 한철
격정을 인내한
나의 사랑은 지고 있다."
세르게이 폴루닌은
가난했지만 발레를 사랑한 과거를 떠올리며 자신의 '봄 한철'을 추억한다. 그러곤 과감히 이 사랑하는 일을 멈추고자 선언한다.
그의 선언은 발레가 싫어진 것이 아니라, 사랑이 저물고 있음에 대한 경각심에서 비롯된다.
"분분한 낙화......
결별이 이룩하는 축복에 싸여
지금은 가야 할 때"
라고 이어지는 구절처럼, 발레를 그만두기로 한 그의 선택은 '하고 싶은 것'이 아닌, '해야 하는 것'이 된다.
이미 허공으로 뛰어버린 그의 발끝은 다시 바닥에 다을 수 없는 거시앋.
"무성한 녹음과 그리고
머지 않아 열매 맺는
가을을 향하여
나의 청춘은 꽅답게 죽는다."
라고 선언하 듯,
무성한 녹음 속에서 춤추는 그의 마지막 춤
Take me to church는
자신의 청춘(발레)에 대한
애달픈 연서이면서도
가차 없는 이별 통보다.
"헤어지자
섬세한 손길을 흔들며
하롱하롱 꽃잎이 지는 어느날"
을 추억하듯,
그의 뛰기는 섬세하고
그보다 인상적인 넘어지기와 구르기가
이 댄스비디오를 지배한다.
그의 작품에서 기억에 남는 것은 단연코
이형기가 낙화의 마지막 연에서 말하듯
"나의 사랑, 나의 결별
샘터에 물 고이듯 성숙하는
내 영혼의 슬픈 눈."
처럼 슬프지만 성숙한
때론 담담하고 의지에 불타있는
그의 들숨과 눈빛이 아닐까.
Relative contents
-
- 인간이 인간 되는 힘, 상상력
SYNOPSIS.
“당신은 몇 번째 미키입니까?”
친구 ‘티모’와 함께 차린 마카롱 가게가 쫄딱 망해 거액의 빚을 지고 못 갚으면 죽이겠다는 사채업자를 피해 지구를 떠나야 하는 ‘미키’. 기술이 없는 그는, 정치인 ‘마셜’의 얼음행성 개척단에서 위험한 일을 도맡고, 죽으면 다시 프린트되는 익스펜더블로 지원한다. 4년의 항해와 얼음행성 니플하임에 도착한 뒤에도 늘 ‘미키’를 지켜준 여자친구 ‘나샤’. 그와 함께, ‘미키’는 반복되는 죽음과 출력의 사이클에도 익숙해진다. 그러나 ‘미키 17’이 얼음행성의 생명체인 ‘크리퍼’와 만난 후 죽을 위기에서 돌아와 보니 이미 ‘미키 18’이 프린트되어 있다. 행성 당 1명만 허용된 익스펜더블이 둘이 된 ‘멀티플’ 상황. 둘 중 하나는 죽어야 하는 현실 속에 걷잡을 수 없는 사건이 기다리고 있었으니…
“자알 죽고, 내일 만나”
POINT.
✔️ 봉준호 감독의 신작. 다른 말이 필요할까요?
✔️ 시작은 하이틴 스타였지만 어느새 모두가 믿고 보는 배우가 되어 있는 로버트 패틴슨. 그뿐 아니라 토니 콜레트, 마크 러팔로, 나오미 애키와 스티븐 연까지... 매력 있는 배우들이 가득 등장합니다.
✔️ 감독의 전작 중 <마더>나 <살인의 추억>보다는 <옥자>와 <설국열차>를 생각나게 하는 작품
✔️ 봉준호 감독은 인터뷰에서 수많은 노동자 특히 산업재해로 목숨을 잃은 청년들을 언급했는데요. 막상 뚜껑을 열어본 사람들은 노동자보다 독재자 쪽을 실재와 많이 연결하는 분위기...�
*<미키17>의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영화를 보신 후에 읽어주셔요.
봉준호가 '명징하게 직조'하는 세계
<미키17>을 본 사람들은 누구나 쉽게 감독의 (영어 영화) 전작인 <옥자>와 <설국열차>를 떠올린다. 비록 입 안은 한강 <괴물> 쪽을 더 닮아 있긴 하지만 아무튼 옥자를 연상케 하는 친근한 외계 괴수가 등장하고, 망해가는 지구를 떠나 얼음으로 뒤덮인 행성을 '개척'하러 떠난 우주선 내부는 어쩐지 얼음으로 뒤덮인 지구의 어떤 기차를 떠오르게 하니까. 한국 사회의 어떤 지점을 송곳처럼 좁고 집요한 시각으로 후비는 대신, 가상의 세계를 설정하고 그 안에서 범세계적인 주제를 두루두루 두드리는 작품들이다. 봉준호 감독의 세계에서 <살인의 추억>이나 <마더> 계열의 영화들을 선호한다면, <미키17>에 대해서도 높이 평가하지 않을 수 있다. 한결 독기가 빠진 느낌, 한결 초점이 여러 군데로 분산된 느낌에서 확실히 호불호가 갈리는 반응이다.
그러나 나는 이 지점이 마음에 들었다. 한국 사회에 사는 사람으로서 그가 후벼파는 세계는 너무 정확하고 그래서 너무 보기 괴로웠으므로 (이는 공포영화를 잘 못 보는 마음에 공감성 수치 비슷한 마음을 뒤섞은 것이다) 한결 넓게 두드리는 세계를 보는 것이 더 좋다. 그리고 그가 '명징하게 직조'해낸 세계에서 다루는 주제 의식도 마음에 든다. 무엇보다 <미키17>은 봉준호 감독 작품으로는 놀랍게도 사랑 영화다. 놀리는 거 아니고 진짜로 사랑 영화.
미키는 종이처럼 계속해서 재출력되는 '인간'이다. 감독은 한 인터뷰에서 "(태안) 화력발전소에서, (구의역) 스크린도어에서, (SPC 계열사) 제빵 기계에" 사고를 당한 이들을 말하며 "나열한 사건의 그 자리에 또 다른 분들이 일하고 있을 것"이라는 말과 함께, "미키가 복제되는 것이 판타지 같지만 김군 뒤에 박군이, 그 뒤에 윤양이... 일자리는 유지되고 인간이 계속 교체되"는 현실을 이야기한 바 있다.
친구와 마카롱 가게를 냈다가 쫄딱 망한 미키의 이야기는, 숱하게 유행 따라 깔렸다가 사라지는 가게 종목들 (<기생충>의 대만 카스테라는 물론, 그 이전에는 커피 번이나 슈니발렌 과자, 그 이후에는 탕후루가 있다.)을 생각나게 하는 동시에, 4대 보험도 되지 않는 다양한 일자리들을 떠오르게 한다. 그는 망한 자영업자이며, 플랫폼 노동자이고... 무엇보다 자신을 인간으로 보지 않는 고용주가 그 마음을 적나라하게 드러내 놓은 작업장에서 근무하는 사람이다.
미키1에서 미키15까지의 시간은 영화에서 매우 빠르게 처리되지만, 그래서 마치 우주선의 탐험 목적과 우주선이 부여받은 임무를 스케치하는 장면처럼 느껴질 정도지만, 그 과정에서 미키가 인간이라는 감각은 점점 희석된다. 망한 자영업자이자 4대 보험 안되는 노동자였던 그에게, 생체 실험 피해자라는 타이틀이 추가된다. 이쯤 되면 그의 일은 더 이상 노동법상 분류하는 노동에 속하지 않는다. 지구를 빠져나간 우주선에게 법을 들이대는 것도 우습지만, 어쩔 수 없이 생각하게 되는... 근로기준법상 그렇다. 근로기준법 제2조 1항에서 "근로"는 정신노동과 육체노동을 말한다고 정의하고 있으나, 죽음은 이에 해당되지 않는다. 그의 존재와 그의 노동 모두, 법 바깥의 무엇이 된다.
미키의 목소리를 듣고 있는가
극중에서 많은 인물들이 미키에게 "죽는 건 어떤 기분이야?"라고 묻는다. 제니퍼를 생각해서 머뭇거리면서도 어렵게 말을 꺼내는 카이 정도를 제외하면, 대다수는 딱히 대답을 듣고 싶어서 물어본 질문이 아니다. 존재와 노동이 모두 법망 안에 있는 그들에게, 그 질문은 미키와 자신 사이의 선을 확인하는 질문이다. 다시 말해, 미키의 존재를 한 번 더 밀어내는 질문이다. 똑같은 우주선을 타고 있지만, 너는 여기 속한 존재가 아니라는 선포, 미키의 이름을 지워내는 명명(命名)이다.
여기서 <사람, 장소, 환대>라는 책의 한 구절을 떠올리게 된다. "사람이라는 것은 사람으로 인정된다는 것, 다른 말로 하면 사회적 성원권을 인정받는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것은 "사실상 (...) 타인의 환대 속에서만 자신의 사회적 성원권을 확인할 수 있다."
이러한 관점에서 미키17은 필연적으로 무력하다. 절대 다수가 그에게 성원권을 부여하지 않기 때문이다. "모든 정체성 투쟁의 핵심에는 모욕에 대한 저항이 있"고, 모독은 ,"그들을 사물로, 사회적으로 죽은 사람으로 만드는" 데 목적이 있다. "모독(mortification)의 어원에 죽음mort이 있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죽는 건 어떤 느낌이냐는 모욕 앞에 미키는 저항할 수 없다. 그는 다만 짓눌려, 침묵으로 그 시간을 묵묵히 넘길 뿐이다. 이러한 폭력적 구조에 오랫동안 짓눌려온 미키는 크리퍼가 자신을 구해 주었다는 자각조차 하지 못한다. 구조에 억눌린 사람이 으레 그렇듯, 문제를 자신에게서 찾는다. 매일 죽고 다시 태어나며, 사회적으로도 계속 밀어내는 사람들 사이에 있으니 미키는 일종의 부관참시를 당하고 있는 셈이다.
이 태도를 가장 잘 드러내는 인물은 말할 것도 없이 마셜과 일파 부부다. 사실 이들이 미키만을 등한시하는 것은 아니다. 이들이 사람을 사람으로 보지 않는다는 점은 (어쩐지 현실 곳곳에서 많이 본 듯한 기분이 들기도 하고...) 이름을 대하는 태도를 통해 잘 드러난다. 제니퍼의 사망 앞에서 그들이 보인 반응은 '제니퍼'라는 개인의 죽음을 애도하는 게 아니라 '자궁을 가진 가임기 여성'의 죽음을 아까워 하는 것이었고, 그 과정에서 발견된 생명체에게는 '크리퍼'라는 집합명사를 붙인다. 그들에게는 자기들 두 사람 외 모든 인물들이 집합명사로 존재한다.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에 나오는 유바바처럼, 이들은 우주선에서 타인의 이름을 들이마셔 때로는 지우고 때로는 악마화한다.
아무도 들어주지 않는 미키의 목소리를 들어주는 소수의 사람들이 있다. 나샤 그리고 미키18이다. 미키1에서 미키17까지의 우주선의 탐험 역사와 과제를 타고 빠르게 지나가면서 관객이 이 모든 미키들을 한 사람으로 인지할 때, 한 사람처럼 느껴지지 않는 미키18이 등장한다. 마치 <서브스턴스>에서처럼 힘주어 "기억하라 당신은 하나다"라고 말해 주어야만 할 것 같은 색깔 차이를 보인다. 하지만 엘리자베스와 수가 한 사람이었던 것처럼, 미키17과 미키18 또한 한 사람이다. 체제에 순응해야 했고, 법 바깥의 존재인 자신을 받아들여야만 했던 미키17과, 그런 미키17 안에 어딘가 쭈그러져 있었을 다른 마음이 전면에 나선 미키18이 있을 뿐.
그리고 그 모든 미키를 순정으로 끌어안은 나샤가 있다. 특히나 피에타를 연상케 하는 장면이 정말 아름다워 울컥했다. 나샤에게 있어 미키의 존재가 법 안에 포용되었는지 아닌지는 중요하지 않았고 그저 미키를 한 사람으로 바라보았다는 점이, 사랑하는 이의 죽음을 계속 마주하는 것이 괴롭지 않았을 리 없음에도 그를 혼자 두지 않았다는 점이 너무 아름다운 순정이어서.
인간성이 메마른 지옥도에서 우리를 구하는 건 결국 사랑이다. 그것이 독점적 연애 관계든, 무어라 정의 내리기 이전에 상대를 소중히 여기는 마음이든, 내가 나를 위하는 마음이든. 오늘의 내가 하루를 살아가기 전에, 나를 끌어안고 내 아픔을 애정과 안타까움 어린 시선으로 지켜본 사랑이 있고. 오늘의 내가 되기까지 잘 먹고 애쓰며 살아낸 과거의 내가 있다. 그리고 이런 내가 다가오기를 미래에서 (조금을 나를 답답해 하면서도) 기다리고 있을, 미래의 나도 있다. 이 모든 존재들의 사랑으로, 우리는 오늘을 산다.
인간이 인간 되는 힘, 상상력
하지만 모든 사람과 자기애 같은 혹은 연인에 대한 사랑 같은 깊은 관계를 맺을 수는 없는 일이다. 그 인간성의 최소선을 우리는 도로시에게서 볼 수 있다. 나 자신과 연인. 가장 가까운 인물들을 제외하고 미키의 목소리, 더 나아가 크리퍼의 목소리까지 들으며 소통의 가능성을 보여주는 유일한 인물이자, 소통의 방식만 놓고 보면 마셜과 일파의 가장 대척점에 서 있는 인물이다.
도로시는 크리퍼의 반응에서 그들이 대화를 시도할 가능성을 상상하는 인물이자, 미키를 인간으로 대하는 유일한 과학자다. 미키의 손이 잘려 나가도 '와 대박' 이러고 있는 다른 과학자들과 달리 (그들에게 미키의 신체는 사물화되어 있다), 미키의 수명이 10분인지 15분인지까지 살뜰하게 신경 쓰고 있는 유일한 과학자다. 타인을 사물화하지 않는다는 건, 타인의 입장을 상상해 볼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도로시가 과학자로서 가진 가장 큰 힘은 아마도 바로 이 상상력이 아닐까. 가능성을 상상하고, 타인의 입장을 상상하며, 지금 없는 것들을 그려 볼 수 있는 능력. 돌아보면 영화에서 마셜과 일파가 만든 세계에 완전히 들어맞지 않는 인물들은 모두 그런 사람들이다. 철저하게 '소모품'으로 대우받고 죽어가는 미키와 함께하는 매일을 상상하는 나샤도, 독재자 없는 세상을 상상하는 미키18도.
결국 사랑도 소통도 그런 상상력에 뿌리를 두고 있는 것은 아닐까. 영화를 보다 보면 제일 끔찍한 것도 제일 애틋한 것도 인간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제일 끔찍한 인간의 상태, 그저 인간성이 메말라 온 세상을 지옥도로 인지하는 상태를 벗어나려면, 소통이라는 상상력을 발휘하는 수밖에 없다. 지금도 어디선가 다양한 의미의 전쟁을 벌이고 있는 어떤 사람에게 이런 상상력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조코처럼 고함을 질러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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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영화, 올해의 힐링영화가 ‘거의’ 확실합니다
춘희는 행복이 낯설다. 행복은 단 한 번도 그녀의 것인 적이 없었다. 여러 이유가 있다. 누군가는 춘희의 부모가 갑자기 한꺼번에 세상을 떠났다는 걸 이유로 꼽을 테고, 누군가는 외삼촌 가족의 구박이 그녀를 힘들게 한다고 생각할 수 있다. 또 다른 누군가는 걸을 때마다 바닥에 자국이 남을 정도로 다한증이 심해 춘희가 사회생활에서 위축된다는 걸 그 원인으로 지목할 것이다. 어쨌든, 춘희가 행복과는 영 거리가 먼 삶을 살아왔다는 것은 분명하다.
그럼에도 춘희가 불행하지 만은 않다는 게 영화 〈태어나길 잘했어〉의 묘한 재미다. 춘희에게서 고통스러운 시간을 겪은 사람에게 으레 보이기 마련인 체념, 무심함, 냉소와 같은 정서를 찾아보기 힘들다. 오히려 그 반대다. 다한증 수술비 마련을 위해 매일 마늘 까는 아르바이트를 하는 마음, 맨발로 자는 노숙자를 걱정하며 새 신발을 선불하는 마음, 사람들이 ‘주황’의 말더듬이 증세만 볼 때 그 내용을 듣고 칭찬해주는 마음에서 춘희가 어떤 태도로 살아가는지를 엿볼 수 있다. 특히 주황과 춘희가 알콩달콩 만들어내는 케미가 압권이다. 어처구니없을 정도로 뻔한 두 사람의 애정행각이 짜증이 아닌 기분 좋은 미소를 유발하는 건, 어려움 속에서도 차분한 단단함으로 묵묵히 삶을 살아내는 춘희와 주황의 마음이 그 어느 때보다도 귀함을 우리가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태어나길 잘했어〉에 결점이 없는 건 아니다. 극 후반부의 조금은 헐거운 감정선은 어리둥절함을 자아낸다. 춘희의 어려움을 ‘치유’의 관점에서만 접근하는 것도 아쉽다. ‘당신 내면의 아이를 안아주세요’와 같은 명제에 굉장히 비판적인 편이다. 왜 상처받았는지는 도외시한 채 치유 그 자체에만 몰두함으로써 상처를 병리화하는 효과를 자아낸다고 보기 때문이다. 원인 진단과 해결이 아닌, ‘잘 버티는’ 임시방편에만 집착하는 느낌이랄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태어나길 잘했어〉는 좋은 영화다. ‘네 탓이 아니야’라는 말은 남들이 아닌 자기 자신에게서 가장 먼저 시작되어야 한다는 점에서 그렇다. 주변에서 아무리 ‘네 탓이 아니야’라고 말해도 자기 자신이 이를 믿지 못하면 수치심과 좌절감은 걷어지지 않는다. 즉, 상처가 생긴 원인을 적확하게 인지하고 문제를 진정으로 ‘해결’하기 위해선 ‘태어나길 잘했어’와 같은 강한 자기 확신이 필요하다. ‘문제는 내가 아닌 날 힘들게 한 것들에 있다’는 명제로 나아가기 위한 출발점으로써 말이다.
춘희는 어려운 상황에 처한 사람도 ‘태도’를 통해 앞으로 나아갈 수 있음을 증명한다. 관객을 웃게 만드는 춘희의 마음들을 다시 한번 살펴보자. 수술비를 벌기 위해 매일 마늘을 까는 춘희는 자신을 힘들게 하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성실한 노력의 중요성을 가르쳐준다. 길거리에 누워 있는 맨발의 노숙자에게 신발을 선물하는 춘희는 따뜻한 연대의 마음이 ‘가진 자의 특권’이 아닌 ‘인간 존재의 특권’임을 가르쳐준다. 말을 더듬는 주황을 남들처럼 무시하지 않는 춘희는 겉으로 드러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음을, 이를 알아봄으로써 우리의 삶이 더 아름답고 풍성해질 수 있음을 가르쳐준다. 그리하여 춘희는 모든 문제를 개인의 심리 상태로 축소 환원하는 세상에서도, 자기 위로에서 시작하는 더 큰 변화의 가능성은 열려 있다는 희망적 명제를 벼려낸다.
춘희가 우연한 계기로 ‘과거의 나’를 마주한다는 건 영화의 주요 설정이다. 여러 영화‧드라마 덕에, 많은 사람이 과거의 나를 만나보는 걸 상상해보곤 한다. 만약 누군가가 ‘과거의 나’를 만나는 상상에 마냥 설레고 기쁘기만 하다면, 그는 많은 것을 가진 사람일 확률이 높다. 아버지의 폭력에 시달린 주황, 부모님 사후 힘든 시간을 보냈던 춘희에게 과거의 나를 마주하는 건 잊고 지내던 아픔을 상기시키기에 설렘‧기쁨이 아닌 두려움‧긴장을 자아내는 일이었다. 춘희가 과거의 자신에게 ‘부모님과 함께 죽어버리지 그랬냐’고 거친 말을 쏟아내는 장면에서 그가 얼마나 큰 아픔을 견뎌왔는지 가늠할 수 있다.
하지만 춘희는 삶을 대하는 태도로서 과거의 상처를 대면하고 미래로 나아간다. 자신과 자기 주변 아끼는 춘희의 태도는, 그녀가 끝내 한 번도 자기 것인 적이 없었던 ‘행복’에 언젠가는 도달할 수 있으리라는 확신으로 나아간다. 몇몇 단점으로 인해 〈태어나길 잘했어〉가 올해의 힐링영화가 될 것 같다는 예감에 ‘거의’라는 단서를 붙일 수밖에 없었지만, 나는 춘희에게서 큰 위로를 받았다. 세상이 상처를 주었을지라도, ‘나의 태도’로서 이를 거스를 수 있음을 알려준 춘희와 그 친구들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세상의 많은 외로운 이들을 생각하는 마음’으로 영화를 만들었다는 최진영 감독의 마음이 당신에게도 전달된다면 좋겠다.
*영화 전문 웹진 〈씨네랩〉에 초청받은 시사회에 참석한 후 작성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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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ICFF 데일리] 머리카락에 녹아 있는 기억
SYNOPSIS.
애착 인형 이름은 제프 브리지스, 애정하는 밴드는 플리트우드 맥. 감수성 넘치는 베니와 똘똘한 사촌 돈의 특별한 우정
PROGRAM NOTE.
때는 1990년, 록밴드와 인형을 사랑하는 원주민 혈통 소년 베니는 어느 여름날 부모님에 의해 난생 처음 도시를 떠나 애리조나 원주민 보호구역 내 양떼 목장에 있는 할머니 집에서 지내게 된다. 그곳에서 그는 자애로운 외할머니, 빵떡 소녀라는 별명의 사촌 돈과 자유로운 영혼 루시 이모, 마초맨 삼촌 마빈을 만나게 되고, 잊지 못할 경험을 하게 된다. 성인이 된 베니의 내레이션으로 시작되는 이 영화는 도시 소년 베니의 시선 아래 아메리칸 인디언들의 삶을 섬세하게 들여다보는 작품이다. <조조래빗>을 연출한 타이카 와이티티가 총괄 프로듀서를 맡은 이 영화는 이제껏 거의 다뤄지지 않았던 원주민들이 중심이 된 가족 이야기를 유쾌하면서도 따뜻하게 묘사한다. 록밴드와 TV의 시대였던 90년 미국의 멜랑콜리한 활기, 촌철살인의 유머가 넘치는 미국 인디펜던트 영화의 정수를 느낄 수 있다. (최은영)
<그것이 알고 싶다>에서 다룬 적이 있다. 머리카락에는 우리의 흔적이 남는다고. 프로그램에서는 국과수에서 머리카락을 분석하는 실험을 해 보였는데, 오랫동안 종사한 직업은 물론 최근 바다를 다녀왔다는 사실까지 맞출 수 있었다. 어딘가 오래 묻혀 있다 ‘미라’ 상태로 나온, 한때 살아있던 사람의 몸에서도 머리카락은 비교적 오래 제 모습을 유지하고 있었다. 그런 몸이 발견될 때마다 뉴스 기사들은 하나 같이 “상태 양호”하다고 했다. 이런 머리카락을 통해 DNA를 분석하면 또 그 몸이 살아있을 때의 이야기가 주렁주렁 올라올 것이다.
이런 사실들을 파편적으로나마 알게 된 이후로, 가끔 머리카락이 신기하다는 생각이 들곤 했다. 머리카락 하나는 평소라면 그냥 방바닥에서 증식을 하는지 의심될 만큼 치워야 하는 것에 지나지 않지만, 어떤 현장에서는 결정적인 단서가 되어줄 수도 있겠지. 마찬가지로 내가 일상에서 대수롭지 않게 감고 말리고 빗고 넘기는 머리카락이, 누군가에게는 소중히 여길 무엇일 것이다.
<빵떡 소녀와 나>를 보고서는, 그게 그토록 애틋하고 찡할 수 있다는 걸 알게 된다. 사실은 순전히 제목 때문에 고른 영화였다. Frybread를 빵떡이라고 번역할 귀여운 생각은 누가 했을까. 유난히 잘 붓곤 하는 얼굴을 스스로 빵떡이라고 종종 말하긴 해도 그게 표준어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는데 어엿하게 영화 제목으로 들어가 있는 걸 보니 기특하기까지(?) 했다. 기특한 우리 탄수화물과 탄수화물의 조합 같으니.
귀여운 제목에 귀여운 스틸컷을 보고 골랐는데, 막상 뚜껑을 열어 보니 옥수수죽처럼 슴슴하고 든든한, 어쩐지 따스하고 구수한 내음이 나는 영화였다.
1990년 미국. 키치하게 반짝거리는 도시 한 가운데서 베니가 열중하는 것은 헤드셋으로 쏟아지는 밴드 음악과 손에 쥐어지는 크기의 인형 (본인 주장에 따르면 '액션 피규어') 두 개다. 인형 두 개로 베니가 나누는 대화는 대부분 긴장 일촉즉발의 갈등 상황이다. 외부로 표현되지 않는 소리들이 베니 안에서 왕왕 울릴 때, 부모님 손에 의해 여름방학 동안 할머니댁 행이 갑작스럽게 결정된다. 베니로서는 내키지 않는 일이었지만, 이럴 때 아이가 할 수 있는 일은 많지 않다. 심각한 표정의 부모님의 긴장과 갈등이 이미 베니의 손 끝 인형에까지 묻어나고 있으니까.
한참을 달리고 또 달려 도달한 할머니 댁은 황량하기 그지없는 초원 한 가운데 있다. 지금은 다 집을 떠난 이모 삼촌들의 어린 시절 사진이 여전히 벽에 붙어 있는 곳. 영어를 할 줄 모르는 할머니와 나바호족 말을 할 줄 모르는 베니, 그리고 윽박지르기만 하는 삼촌. 그 사이로 빵떡이가 등장한다. 모두가 빵떡이라고 부르지만 사실 이름은 '새벽Dawn'인 소녀가.
영화는 실제로 방학 동안 할머니댁에 맡겨진 아이들의 일상처럼, 슴슴한 모험의 맛으로 가득 차 있다. 분명 애들한테 물어보면 "심심해 죽겠어!"라고 대답하겠지만, 먼 훗날 돌아보면 가장 소중한 추억이 거기 다 고여 있는 것처럼 느껴질 그런 날들. 아이들에게 호의적이고 다정한 태도를 보이며 아이들 마음을 풀어주는 이모가 있는가 하면, 있는 상처 없는 상처 박박 긁어 결국 갈등을 표면화하고 마는 삼촌도 있다. 그들을 가만 들여다보고 있으면 점점 쓸쓸해지는 풍경이, 그곳을 지키는 마지막 사람들 같은 스산한 기분이, 함께 올라온다. 지방 소멸을 걱정하는 동네의 마지막 젊은이 같은 기분이 든달까. 내가 한국인이라 지방 소멸이라는 단어가 나온 것이지, 저들에게는 잃어가는 원주민 문화의 흔적에 대한 감정일 것이다.
그리고 영어 배우기를 거부한, 나바호족 문화를 꼿꼿하게 지키는 할머니가 있다. 할머니는 양탄자를 만들어서 기념품 가게에 팔지만, 양탄자에 영혼이란 것이 있다면 그것만은 할머니 곁에 모조리 남아있을 것만 같다. 양탄자 무늬의 의미와 거기 담긴 상징들, 나바호족에게는 '진실보다 중요한' 상징들을 할머니는 손주들에게 이유식처럼 떠 먹인다. 할머니의 자장 안에서 나바호족의 문화는 보드랍고 편안하게 풀어진다. 비록 어른이 되면서 (영화에서는 서술되지 않는) 여러 원주민으로서의 어려움 속에서 제각각의 길을 가는 이모삼촌 삶의 궤적은 쓸쓸한 감정을 불러오지만, 아기의 '첫 웃음'을 축하하며 첫 웃음 잔치를 하는 모습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때로는 쓸쓸하고 때로는 아름다운. 이 영화 속 가족은 아주 애틋하거나 아주 냉담하지 않은, 그래서 나와 매우 다른 사람들임에도 어쩐지 더 일반적으로 느껴지는 사람들이다. 그래서 영화를 다 볼 때쯤이면 할머니 댁에 다녀온 기분이 든다.
이 영화에서 가족들은 많은 순간 서로의 머리카락을 만진다. 손주들의 머리를 정성껏 감겨 주고, 머리를 묶어 주고, 어루만져 주는 할머니의 사랑. 머리카락은 기억이라는 말은 DNA에 대한 과학적인 사실만이 아니라, 나바호족의 상징에서도 진실이다. 가끔은 사실보다 상징이 더 진실을 닮아 있는 세상에서, 아메리카 원주민들의 지혜가 고요히 빛난다.
사실은 서로 다 알고 있던, 녹록지 않은 가족사를 이고 '빵떡 소녀와 나'는 앞으로도 성장해 갈 것이다. 아이라 해서 모르지 않는다. 머리카락이 자연스럽게 기억을 간직하듯, 가족 안에서 켜켜이 쌓이고 흐른 일들은 아이들에게도 고스란히 묻어난다. 그러나 할머니가 떠먹여준, 고요하게 빛나는 지혜와 상징이 촛불처럼 아이들의 삶을 밝혀주지 않을까. 나도 촛불 하나를 들고 영화관 밖으로 나서는 듯한 마음이다. 어쩐지 창포 향이 날 것 같은 기분. 지구 반대편 누군가의 이야기가 이렇게 우리네 이야기 같아도 되나? 아마 그게 영화의 힘이겠지. 이 기억 또한 내 머리카락에 남을 것을 안다.
9월 17일 20:00-21:29 롯데시네마 은평 7관
9월 18일 19:30-20:59 롯데시네마 은평 6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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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판의 미로(2006), 퍼스널 쇼퍼(2017)
떠나간 사람들을 위하여, 영화 <판의 미로>
<판의 미로>를 관람하면서 계속해서 던진 의문은 왜 이 영화는 이렇게 잔인하고 끔찍한 장면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가? 에 관한 것이었다. 그리고 그에 대한 대답은 영화가 끝날 때쯤 알 수 있었다. 영화의 배경이 되는 것은 인민내각에 반발하여 쿠데타를 일으킨 군부가 마침내 스페인 내전을 승리로 끝낸 후인 1944년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내전은 끝났지만, 스페인 곳곳에선 여전히 인민내각을 지지하는 게릴라(partizan)들이 활동하고 있었다. 이 영화의 이야기는 바로 이 사건, 인민내각을 지지하는 소수 게릴라 군과 그들을 무력으로 숙청하는 정부군의 갈등이 중심이 된다.
이 당시의 시대상을 생각해보면, 이 영화는 왜 이렇게 잔인하고 끔찍한 장면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가에 대한 답을 찾을 수 있다. <판의 미로>가 있는 그대로 보여주고자 하는 것은 동화속 이야기가 존재하지 않는 잔혹한 현실이다. 이 영화의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것은 오필리아와 게릴라 군이다. 주인공 오필리아는 순수한 마음으로 동화속의 이야기를 좇는 인물이며, 영화의 또다른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인민 내각을 지지하고 자유와 주권을 위해 투쟁했던 수많은 저항군들과 그들의 지지자들이 투쟁을 통해 얻고자 하는 것은 순수한 이상이다. 이들은 순수한 이상을 공유하고 있다. 하지만, 현실은 그런 순수한 가치를 보지 못하는 이들에게 무참히 짓밟힌다. 영화 <판의 미로>의 플롯은 순수한 동화속의 세계와 비정한 현실의 세계를 오가며 이상과 현실 사이에 존재하는 간극을 넓힌다. 이런 극명한 대조로 이상의 세계는 더없이 아름답고도 처연한 세계가 되고, 현실의 세계는 더없이 잔혹하고도 차가운 세계가 된다.
<판의 미로>가 있는 그대로 보여주고자 하는 것은 동화속 이야기가 존재하지 않는 잔혹한 현실이다.
어머니의 곁으로
시각적인 요소들에 대한 이야기도 빼놓을 수 없다. 우선 판의 초상과 지하세계로 향하는 미로의 문은 염소의 뿔이 달린 전형적인 중세 유럽의 악마의 모습을 상징하는 것처럼 보이는데, 이 형상이 동시에 자궁의 모양을 닮아있다는 점은 중요하다. (영화속에서도 자궁에 대한 비유가 직접적으로 나타나기 때문에, 이건 내 개인적인 판단이 아님) 자궁은 생명이 잉태되고, 새로운 생명이 세상으로 나오는 장소다. 하지만, <판의 미로>에서 그곳은 생명이 다시 돌아가는 장소로 그려진다.
또한, 이 통로를 통해 고통도 죽음도 없는 영원한 안식처로 들어갈 수 있는 것은 순수한 마음을 가진 오필리아라는 점과, 메르세데스가 판의 이야기에 대꾸했다는 점 역시 중요하다. 비달이 판을 볼 수 없었던 것(그렇기에 그들은 미로를 지나가지 못할것이다 :¡NO PASARÁN!)과는 다르게, 오필리아와 메르세데스를 비롯한 게릴라 저항군들은 판의 존재를 알 수 있다는 점은, 오필리아가 미로를 통해 낙원에 닿을 수 있었듯이, 그들 또한 낙원에 닿을수 있을 것이라는 의미인셈이다. 그렇다면, 생명이 태어나는 곳으로 다시 돌아간다는 것은 어떤 의미인가? 앞서 말한 자궁의 모양을 닮은 이 상징적인 장소로 되돌아간다는 것은 퇴행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자궁의 모양을 닮은 판의 미로로 되돌아간다는 것은 모든 생명을 잉태하는 어머니의 곁으로 되돌아감을 의미한다.
판은 그 자신이 “산이고 숲이자 대지”라고 말했는데, 그런 판이 상징하는 것은 ‘생명’이다. 즉, 자궁의 모양을 닮은 판의 미로로 되돌아간다는 것은 모든 생명을 잉태하는 어머니의 곁으로 되돌아감을 의미한다. 한 번도 본적없는 이를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는 이유는 모든 인간의 아버지와 어머니가 바로 산이고 숲이자 대지인 그들의 안에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바로 여기서 우리는 한 발 더 나아가 생각해볼 수도 있다. 하나의 부모를 공유하는 자식들이 모두 가족이라는 점에서 우리는 이 땅의 모든 생명체는 결국 이 지구라는 부모에게부터 태어난 존재로서, 같은 피를 나눈 가족들이 서로 다르다는 이유로 서로를 죽인다는 일의 무의미함과 논리적인 모순도 되짚어 볼 수 있다. 영화 <판의 미로>는 부정한 과거사에 대한 폭로와 반성에서 멈추지 않는다. 이 영화는 오필리아가 세계의 열쇠를 찾아가는 과정과 그 여정을 통해서 순수한 이상을 품고 어딘가에서 스러져갔을 수많은 이들의 넋을 위로하고 있다. 때문에, <판의 미로>는 잔혹한 세계에 바치는 우리 시대의 가장 아름다운 동화라고 불러도 좋을 것이다.
남겨진 사람들을 위하여, 영화 <퍼스널 쇼퍼>
<퍼스널 쇼퍼>는 영매 모린이 자신의 쌍둥이 오빠 루이스의 죽음 이후 루이스의 영혼과 교감하기 위해 파리에 머무는 동안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판의 미로>가 떠나간 이들의 넋을 위로하는 영화라면, <퍼스널 쇼퍼>는 남겨진 사람들을 위한 영화라고 할 수 있다. 개인적으로 영화가 만들어진 시기와 개봉시기, 그리고 파리라는 장소를 두고 또 한번 파리 테러(2016)사건과 그 이후 남겨진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었는지 생각해봤다. 이 영화는 진지하게 좇아가면 보이는 것이 많은 영화다. 가령 영화가 끝나갈 때쯤 보이는 루이스의 희미한 실루엣도 놓치기 쉬운 결정적인 장면인데, 섬세한 시선으로 끈질기게 보면 많은 것들이 보이고 많은 이야기가 해결되는 영화이기도 하다. 개인적으로는 그때문에 재밌게 봤다. (사별을 다룬 영화를 재밌게 봤다고 말하는 것은 굉장한 실례일지도 모르겠다만)
<퍼스널 쇼퍼>에 대해선 많은 이야기를 할 수 있다. 우선 <퍼스널 쇼퍼>를 지배하는 시간성에 대해서 이야기를 해봐야 하는데, 영화에선 클린트에 대한 비평으로 “한 세기전에 그려진 작품을 지금 우리가 보는 것”이라고 표현한다. 또 한편, 루이스는 “사람을 꿰뚫어보고”, “죽음을 예감”하는 인물이며, 심령주의란 “현실 너머의 세계에 대한 믿음”이라는 말도 중요하다. 즉, 이 영화는 시간에 속박되어 있는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3차원 너머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으로, 이 영화의 시간성은 과거와 현재 미래 모두를 아우르고 있다. 이 시간성이 중요한 것은 영화의 해석과 관련된다. 특히, 영화의 초반부 루이스의 집에서 모린이 마주한 제 3자의 영혼과 관련이 깊다. 스포일러가 될 수 있으니 여기까지만 쓰고, 다음 이야기를 해보자.
이 영화의 시간성은 과거와 현재 미래 모두를 아우르고 있다.
금기와 열망의 사이에 대한 이야기도 해볼 수 있다. 영화속에서는 사회적 금기와 자발적 금기가 나타나는테, 영화속에서 이 금기들은 모두 깨진다. 어떤 경우에는 굳이 깨야하는 금기인가 싶지만, 어떤 경우에는 깨야만 하는 금기가 맞구나 싶기도 하다. 가령, 우리의 가장 오래된 금기는 성서에 기록된 남의 물건을 탐하지 말라는 것이다. 모린은 키라의 퍼스널 쇼퍼로서 그녀의 물건을 대신 구매해주는 역할을 하는데, 당연히 그녀의 역할은 거기까지다. 키라의 물건은 온전히 키라의 것이다. 하지만, 모린은 키라의 옷을 입어보고 신발을 신는다.
금기를 깬 것이다. 이런 금기들은 굳이 깨야하는 금기인가 싶어서 어리둥절한데, 모린이 키라의 옷을 입고 신발을 신는 것은 자신이 되고자 하는 모습이 되고 싶은 그녀의 열망에서 비롯된 것으로 영화속에서 다소 흐릿하게 보여지는 열망이다. 그리고, 이후 보여지는 자발적인 금기들의 경우는 보다 그 열망이 직접적으로 드러난다. 가령, 모린의 자위 장면은 쌍둥이 오빠가 죽은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육체적인 행복을 누리면 안된다는 모린의 자발적인 금기와 남겨진 사람의 금기를 깨는 장면이며, 루이스의 여자친구가 루이스가 떠난후 새로운 남자친구를 만나고 있다며 고백하는 장면도 그녀가 스스로 설정한 자발적인 금기를 깨는 장면이다.
모린이 키라의 옷을 입고 신발을 신는 것은 자신이 되고자 하는 모습이 되고 싶은 그녀의 열망에서 비롯된 것이다.
인류사회는 금기를 만드는 것으로 사회적인 혼란을 막고자 했다. 법이 그 대표적인 것이고, 윤리적이고 사회적인 금기들 역시 사회적 혼란을 막기 위한 금기에 해당된다. 금기를 깨는 행위는 어떤 의미에선 기존의 질서를 벗어나는 것으로 다소 부정적으로 해석된다. 한 예로 성경에서 말하는 최초의 인간, 아담은 금기를 어겼다는 이유로 낙원에서 추방당했다. 금기를 깨는 행위가 부정적이기 때문에, <퍼스널 쇼퍼>에서 금기를 깨는 행위는 중요하다. <퍼스널 쇼퍼>에서 금기를 깨는 행위는 사회적 혼란과 소요를 일으키는 것이 아니라, 누군가를 잃은 슬픔과 상실감, 그리고 애도와 추모라는 분위기와 자발적 죄의식의 질서에서 벗어나 다시 원래의 행복해질 권리를 찾기 위한 삶으로 되돌아오기 위한 것이기 때문이다.
이 영화는 상실감으로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을 사람들. 특히, 그 상실감으로 과거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죄의식에 갇혀 행복해질 권리를 찾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이제 당신도 행복해질 권리가 있으며, 그들도 당신의 곁에서 당신이 언제까지고 행복하기를 바랄 것이라(“죽은자가 산자를 보살핀다”는 말의 의미는 바로 그런 것이기도 하다)는 따뜻한 위로를 건네는 작품이다. 따뜻한 메세지 못지 않게 이야기를 따라가는 재미도 있는 괜찮은 작품으로 전체적인 만듦새가 좋은 영화라고 하겠다.
* 사진출처 : 네이버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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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월 둘째 주 주말 박스오피스 분석 with 씨네픽
제라드 버틀러 주연의 <크리미널 스쿼드>가 속편으로 돌아왔습니다.
전작과 동일하게 크리스찬 거드게스트 감독이 메가폰을 잡은 <크리미널 스쿼드2: 판테라>가 개봉 첫 주 누적 수익 1,550만 달러를 기록하며 박스오피스 1위를 차지했습니다. 전작은 입소문을 타며 총 4,500만 달러를 벌어들였고, 제작비 4,000만 달러가 투입된 이번 속편 역시 비슷한 성적을 거둘 것으로 예상되고 있습니다.
제라드 버틀러는 전작과 동일하게 빅 닉 역을 맡아 유럽으로 건너가 강도 전문가 도니(오셔 잭슨 주니어)를 추적하는 이야기를 그립니다.
한편, 1,320만 달러를 벌어들인 <무파사: 라이온 킹>이 2위를, 국내에서는 큰 호응이 없는 것과 달리 북미에서는 큰 사랑을 받고 있는 <수퍼 소닉3>가 누적 수익 2억 달러를 넘기며 3위를 차지했습니다.
국내에서는 <하얼빈>이 여전히 선두를 지키고 있습니다. 3주째 주말 박스오피스 1위를 지키고 있지만, 전주보다 약 18만 명이 적게 들어 누적관객수 400만 명을 겨우 넘긴 상황입니다.
금주에도 별다른 대작이 개봉하지 않는 상황이기에 이번 주말에도 무난하게 순위권 앞에 위치할 것으로 보이나,
과연 손익분기점인 650만 명의 벽을 넘어설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되고 있습니다.
지난주와 동일하게 <소방관>이 2위를 지키고 있으며, <히든페이스> 박지현 주연의 <동화지만 청불입니다>가 새롭게 순위권에 들어 3위를 차지했습니다. 각각 누적 관객 수 370만 명, 10만 명을 기록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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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불편한 냄새를 킁킁 맡아 우리에게 다가오는 영화
난 남자치고는 목소리가 높은 편에 속한다. 그래서 살면서 이런저런 에피소드에 부딪히는데, 역시 목소리와 관련된 것이라면 '전화상으로는 여자인 줄 알았다'는 말일 것이다. 이게 특히 기분이 나쁘다거나 그런 건 아니다. 목소리 높아서 살면서 장애가 생길 일이 몇 개나 있겠어? 당연히 없지. 그냥 남들이랑 다르다 뿐이지 그게 사는데 문제가 있고 그런 건 아니다.
그런데 이런 '남들과 다름'에 대해 디테일하게 들어가면 쓸 말이 많아진다. 그냥 단순히 목소리가 높은 축에 속하지 않아도 타인과 우리를 를 구별하는 사례는 한 200만 개쯤 나올 수 있다. 습득력이 늦거나. 외모가 남들이랑 다르거나. 취향이 좀 다르거나. 이 외에도 살아오면서 각자가 겪는 페널티는 지천에 깔려있기 때문에 여러분에게 '살면서 평범한 게 쉬웠나요?'라고 묻는다면 어려웠다고 대답하는 사람이 전 세계 인구의 한 85%쯤 될 것이라 생각한다. 평범함이라는 단어의 뜻은 '뛰어나거나 색다른 것 없이 보통이다'라고 한다. 그럼 평범하게 사는게 쉬워야 정상 아닌가? 왜 우리는 이렇게 남들과 달라서 삶이 어려운 걸까? 가끔 보면 답답하다. 남들과 달라 얻는 이점도 있을 텐데. 세상이 이런 우리의 모습을 찾는다면 좋을 것 같은데. 인스타그램을 켜면 남들은 행복하게 사는 모습만 보인다. 그럼 안으로 마음의 뱡항이 꺾인다. 스스로를 학대하는 것이다. 이런 마음을 가져본 우리에게 우화 같은 이야기가 기다리고 있다. 저 멀리 덴마크로 날아가 보자.
1. 무엇에 관한 이야기인가요?
차이와 다양성에 대한 이야기라고 쓸 수 있을 것이다. 또, 그 무엇보다 더 중요한 것은 역시 혐오에 관한 영화라는 점이다. 첫 장면. 주인공 티나는 출입국 사무소에서 일하는, 남들과 심각하게 다른 사람이다. 왜 다르냐고? 딱 처음 보자마자 보이는 특징이 있다. 외모가 솔직히 못생긴 축에 속한다고 생각한다. 그 대신 티나에겐 뛰어난 능력이 있다. 그 사람의 냄새만으로도 감정을 찾아낼 수 있는 능력이다. 만약 누군가가 마약을 가지고 이 출입국사무소를 지나간다고 가정해보자. 그럼 냄새로 쨘 하고 찾아낼 수 있는 것이 티나다. 이 티나는 동거인과 함께 살고 있다. 직업도 있고 같이 사는 애인 비슷한 것도 있어서 어찌 보면 평범한 삶을 사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 티나에게 보레라는 남자가 나타나며 완벽히 전복되는 일상을 경험한다. 일상이 전복돼서 얻는 서스펜스가 영화의 전부인 것이 아니다. 영화는 티나가 갖고 있는 비밀을 서서히 공개하며 주인공의 한 개인으로서의 딜레마를 묘사한다. 또 그렇게 함으로써 우리에게 묻는다. 이 장면들을 보며 느끼는 생각들, 그거 다 네 입장에서 한 생각은 아닐까? 그게 맞는 걸까? 네 입장에서 한 생각들, 우리가 다 협소한 인간이라 그런 건 아닐까? 우리는 우리의 시각에서 바라보기 때문에 타인을 이해할 수 없다. 이 시각에 대해 근원적인 질문을 던지는 것이 이 영화다.
2. 배우들의 연기 합은 어떤가요?
우리가 배우가 된다고 생각해보자. 나에게 시나리오 한 편이 왔다. 근데 그 내용이 '얼굴이 남들과 심각하게 못생겼으며 냄새로 인간의 감정을 파악하는 인물'이라고 한다. 뭐 업이 연기인 사람이야 '이거야 쉽지' 싶을 수도 있지만 우리 같은 일반인들에게는 먼 이야기가 아닐 수 없다. 이렇게 판타지, 드라마적 내용을 배우들이 큰 거리감 없이 소화해낸다. 또, 영화가 가질 수 있는 단점을 연기로 극복해낸 부분도 있다. 덴마크 언어는 우리와 좀 많이 멀리 떨어져 있지 않은가? 실제로 비행기 타고 덴마크로 가려면 환승이나 장기간 비행을 감수해야 할지도 모른다. 근데 이런저런 페널티가 있어도 몰입에 큰 무리가 없을 정도로 배우들은 뛰어난 퍼포먼스를 보여줬다.
3. 이해하기 어렵지는 않나요?
음. 이 영화는 아름다운 영화가 맞다. 근데 동시에 어마어마하게 불쾌할 수도 있는 작품이다. 대사가 많거나 플롯을 꼬아놓은 문제가 아니다. 이게 자세하게 쓰면 스포일러가 될 것 같아서 더 말할 수는 없겠지만 영화는 우리 머리 안에 있는 경계선에 대해 정면으로 들이받는다. 무슨 말이냐고? 내용이 이해하기 어렵다는 뜻이 아니다. 근데, 우리 상식 밖의 이야기라고 느낄 수도 있으니 마음의 준비하고 보시라는 뜻이다. 혐오스러운 장면은 없다. 우리 생각을 뒤집어놓을 뿐.
4. 보기 전에 알아야 할 지식이 있나요?
딱히 없다. 위에서 적었듯 보기 전에 마음의 준비를 하고 봐야 한다는 것이 키 포인트가 될 것 같다.
5. 어떤 사람에게 추천하고 싶나요?
사실 영화를 가볍게 보는 분들에게 엄청 과하게 추천해주고 싶지는 않다. 3, 4번에서 적은 바와 같이 이 영화는 우리의 머리 안에 박혀있는 편견에 정면승부를 거는 작품이기 때문이다. 영화 보는 게 익숙하지 않은 분들이라면 '원래 영화가 이런 것도 말하나?' 싶을 수도 있을 것 같다. 잔인하거나 야하거나 이런 높은 수위를 많이 접했던 사람이라면 이 영화의 불쾌한 골짜기에 면역이 될 수 있지 않을까? 라이트 팬들이 본다면 2시간을 땅바닥에 버린다!라는 뜻은 아니다. 이들에게도 좋은. 근데 화들짝 놀라는 정도가 더 정도가 클 것이라는 뜻이다. 다음으로 추천해주고 싶은 사람은 사실 우리 모두다. 왜냐면, 우리 이 세상에 하나도 안 힘든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을 것이다. 각자도 각자 나름대로의 고달픔을 살고 있겠지. 나는 이 스트레스가 세상과 내가 다르기 때문에 온다고 생각한다. 단순히 나만 해도 난 사회성이 그렇게 좋은 편이 아닌 것 같아서 혼자가 됐던 시간이 많았던 것 같다. 왠지 어떤 프로그램에 나온 무슨 참가자가 어디 나사 빠진 행동을 하면 '이거 나인가' 싶어 찔리는 게 나인걸. 반면교사 삼아 성장한다지만 왠지 모르게 나는 내가 싫을 때가 많다. 이런 내가 영화를 보는 2시간 내내 눈호강을 했다면 거짓말이지만 묘하게 느껴지는 위로가 있었다. 난 확실히 이 영화를 보고 불쾌했다. 그래서, 불쾌한 모습을 가감없이 드러냈기 때문에 감독이 따뜻한 구석이 있는 사람이라고 느꼈다. 우리는 본질적으로 사회에게 불편함을 유발할 존재일지도 모른다. 그러면 어때? 어느 곳에선가 우리는 공감을 통해 각자로 서 있을 수 있고, 이런 식으로 손을 내미는 게 감독의 화법인데. 무작정 다 잘될 거라고 하는 것도 의미가 있을지도 모르지만 우리는 평범하지 않은 채로 여생을 살아야하기 때문에 더 강하게 서있을 수 있는 방법이 필요한 것 같다. 그 현실적인 해결책이 이 작품일지도 모르고. 다만 중요한 건 혐오가 능사는 아니라는 것이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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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우에게 즉석에서 더빙을 부탁하면 일어나는 일 | 씨네마사지 ?
영화 드라마 모두 마사지하듯 시원하게 이야기로 풀어드립니다!
씨네마사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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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7
꿀보이스 정재헌 성우님과 함께하는 너의 이름은. 리뷰 두번째 시간!
출연
황보 라이언 정재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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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견자단의 마지막 여정 엽문4 :더 파이널 [영화리뷰 결말포함]
영화에취한다 비지니스메일: allwey02@gmail.com
결말포함된 영상이니 시청에 주의하시기 바랍니다.
엽문4 이 영화는 원 저작권자의 사용허가를 받은 영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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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귀문> 메인 예고편
1990년 집단 살인사건 이후 폐쇄된 귀사리 수련원
그곳에서 사람들이 사라진다!1990년, 귀사리의 한 수련원에서 건물 관리인이 투숙객들을 살해하고 자살하는 사건이 발생한다. 이후 매년 자살 및 사망 사고가 발생하자 수련원은 문을 닫은 채 수년간 방치되고, 들어간 사람은 있으나 나온 사람이 없다는 ‘귀문’에 대한 괴담이 돌기 시작한다.
한편 수련원에서 한풀이 굿을 시도하다 죽음에 이른 어머니의 비밀을 파헤치려 그곳을 찾은 심령연구소 소장 ‘도진’과 공모전 영상을 촬영하기 위해 수련원에 들어간 대학생 ‘혜영’, ‘태훈’, ‘원재’는 소름끼치는 기괴한 공포와 마주하게 되는데…
감당할 수 있다면 ‘귀문’을 열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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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티탄> 리뷰 예고편
어린 시절, 교통사고로 뇌에 티타늄을 심고 살아가던 여성이 기이한 욕망에 사로잡혀 일련의 사건에 휘말리다 10년 전 실종된 아들을 찾던 슬픈 아버지와 조우하게 되며 벌어지는 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