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wr2025-08-14 07:34:02
자기 행복을 스스로 창조한 예술가, 어쩌면 우리 모두의 이야기
영화 〈제프 맥페트리지: 드로잉 라이프〉
애플 워치를 사용하는가? 혹은 인공지능과 인간의 ‘사랑’을 다룬 영화 〈그녀〉를 본 적이 있는가? 그렇다면 당신은 이미 제프 맥페트리지의 예술을 접한 적이 있다. 제프 맥페트리지가 애플 워치에 뜨는 애플페이스를 디자인했고, 〈그녀〉에서 인공지능 인터페이스를 시각화하는 디자인을 담당했기 때문이다. 영화, 글로벌 브랜드, 예술……. 이 남자의 예술 영역은 넓고 그 경계는 모호하다. 예술성과 상업성을 두루 챙기는 성공적인 21세기 예술가의 전형이라 할 만하다.
제프 맥페트리지의 예술 여정을 차분히 짚어나가는 이 영화는 그가 ‘자신을 위해’ 무엇을 했는지를 반복해서 묻는다. 한 예술가가 사회에서 인정받는 데는 여러 요인이 있다. 예술가의 재능이 사회적 분위기, 정치적 국면과 맞물리는 것은 그중 하나다. 저항이 사회 곳곳에서 분출하는 들끓는 분위기에서 ‘순수예술’을 하는 사람은 영 대접받기 어렵다. 그 반대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이것만이 예술가가 탄생하는 조건은 아니다. 모든 재능 있는 사람이 자기에게 알맞은 때를 만나는 것도 아니다. 예술가는 그와 별개로 자신만의 기예를 다듬어야 한다. 대체할 수 없는, 자신만의 인장이 담긴, 언젠가 때를 만나면 더 많은 사람의 영혼을 홀릴 솜씨를 갈고닦으며, 자신과 자신의 예술을 펼칠 순간을 준비해야 하는 것이다.
제프는 오랫동안 자기 비전을 향해 나아가는 길을 다듬어왔다. 먼저, 그는 흔히 생각하는 ‘난봉꾼 예술가’가 아니다. 머리를 맑게 하는 걸 중요시하는 그는 적절한 자기관리를 게을리하지 않았고 술과 약물에 탐닉하는 예술계 인사와 거리를 뒀다. 분위기에 휩쓸리지 않은 것이다. 더불어 그는 자신이 무언가를 표출하지 않으면 고통받는 영혼을 가졌다는 것도 알았다.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를 알아야 엄한 데 기운을 낭비하지 않을 수 있다. 이런 면에서, 자기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를 어릴 때부터 분명하게 알고 있던 그는 예술가로서 분명 유리한 지점에 서 있다고 볼 수 있다.
모든 예술가의 작품은 호불호가 갈린다. 제프의 작품도 마찬가지일 것이다(어느 블로그에는 제프의 작품이 들어간 애플 워치를 보며 ‘왜 못생긴 얼굴이 화면에 뜨는지 모르겠다’며 불만을 표하는 글도 있다). 그래서인지, 나는 제프가 이미지로 소통한다고 강조하며 그의 예술 작품을 보여주는 대목에서는 그리 큰 감흥을 느끼지 못했다.
그 대신, 어느 예술가가 자신의 영역을 구축하기 위해 스스로 공들인 시간과 작업의 순간을 슬며시 엿본 것은 충분히 즐거웠다. 자신만의 방법으로 구축한 예술의 토양에서 지속해서 영감을 얻고, 평판을 유지하기 위해 노력하고, 때로는 강박과 일상적 슬픔에 사로잡혀 고군분투하는 그에게서, 예술 너머 모든 분야에서 분투하는 인간의 잔상을 본 듯하다. 제프가 ‘나 자신의 행복을 스스로 창조했다(create my own happiness)’고 말하는 것도 이런 맥락에서다. 자기만의 비전을 갖고, 그 비전을 추구하기 위해 자신에게 맞는 방법을 찾고, 그에 따라 반복되는 작업으로 역량을 쌓아가며, 예술가로서 영향력을 확장해 나가는 것. 이는 제프뿐 아니라 자기만의 무언가를 추구하는 모두에게 해당하는 말일 것이다. 이런 삶을 살고 싶다.
*영화 매체 〈씨네랩〉에 초청받은 시사회에 참석한 후 작성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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