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시글 신고

댓글 신고

Cine_Rec2025-08-31 23:57:05

비밀은 비밀이니까

영화 <비밀의 언덕> 리뷰

[비밀의 언덕] (2022)

감독: 이지은


시놉시스

“가족은 무엇일까요? 저에게 가족은 물음표에요.”

모두에게 사랑받고 싶은 감수성이 풍부하고 예민한 5학년 소녀 ‘명은’이 글쓰기 대회에 나가 숨기고 싶었던 진실과 마주하는, 그 시절 나만 아는 이 여름 우리가 꺼내 보는 비밀스러운 이야기

 

(출처: KMDb 한국영화데이터베이스)


--------------

 

‘빨강머리 앤’의 앤, ‘작은 아씨들’의 조, ‘폭싹 속았수다’의 오애순.

내가 사랑하는 당찬 문학소녀 캐릭터에 ‘비밀의 언덕’의 명은이가 새로 합류했다.


명은이가 이토록 사랑스러운 이유는 무엇일까?

우선 명은이는 이상과 다른 현실 앞에서 주저앉지 않는다. 부모님의 직업이 ‘번듯하지 않다’는 이유로 숨기고 싶어 하지만, 그 마음 뒤에는 사실 평범하고 교양 있어 보이는 부모님을 갖고 싶다는, 아주 솔직한 욕망이 있다. 그래서 아빠는 종이회사에 다니는 회사원, 엄마는 평범한 가정주부라는 가짜 가족을 꾸며낸다. 거짓말을 의심하는 친구가 나타나자 더 큰 거짓말로 비밀을 지켜나가기도 한다.

 

 



타인에게는 솔직하지 못하지만, 자기 자신에게는 누구보다 솔직한 명은. 자신이 원하는 것, 인정받고 싶은 부분을 꾸밈없이 드러내고 성취하려 애쓰는 모습이 당차고 야무지다. 이런 아이에게 “가족은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야 한다”, “무조건 솔직해야 한다”라는 도덕적 잣대를 쉽게 들이밀 수 있을까?



명은이가 매력적인 건, 단순히 똑부러져서가 아니다. 명은이가 마주하는 이상과 현실 사이에서의 괴리, 그 속에서 요동치는 양가적인 감정에 충분히 공감할 수 있기 때문이다. 명은이보다 몸도 마음도 더 자란 우리 역시,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한 구석에서 마음이 흔들리는 순간을 맞이하곤 한다. 원하는 걸 이루지 못해 분하고, 비교 속에 부끄러워지고, 질투심에 휘둘리며 삐뚤어지는 감정들 말이다.

 

 

 

가짜 가족을 만들고 부모님과 떨어져 지내는 명은은 결국 글쓰기를 통해 자신의 마음을 마주한다. 꾸며낸 가족 뒤로 부끄럽고 불편했던 마음 그대로를 글에 담아 자신이 쌓아온 거짓말의 탑을 스스로 허문다. 그 진솔한 고백은 명은이에게 대상을 안겨주지만, 동시에 가족이 상처받을까 두려움도 안겨준다. 그래서 상을 포기하면서까지 이 진솔한 이야기를 지키려 한다. 이 솔직함과 헤아림 사이에서 명은이는 한 단계 성장한다.



영화 ‘비밀의 언덕’이 인상깊은건, 명은의 성장을 단순히 ‘솔직해지고, 그래서 상을 받는’ 서사로 그리지 않았다는 점이다. 명은이가 끝내 간직하고 싶은 속 이야기들을 비밀로 남겨두었다는 것이 좋았다.



명은이가 자신의 이야기를 글로 꺼내놓았다는 점도 의미 깊다. 억지로 내뱉는 말이 아니라, 자기만의 언어로 천천히 마음을 마주한다는 것. 혜진과 하얀처럼 세상 앞에 과감히 자신의 내면을 드러내는 아이들이 있는가 하면, 명은이처럼 조심스레 품고 가는 아이들도 있다.

 

 

 

우리에게도 명은이처럼 차마 드러내고 싶지 않은 부분들이 있을 수 있다. 그렇다고 해서 꼭 잘못된 것도, 죄책감을 가져야 할 일도 아니다. 명은이는 자기 마음을 끝까지 솔직하게 드러내기보다는, 감추면서 부모님의 마음을 헤아린다. 그 모습은 서툴지만 분명 또 하나의 사랑이고, 성장의 방식이다.


타인을 향한 마음, 그리고 숨겨진 내면의 이야기도 결국 길 위에 남아, 언덕의 일부가 된다.

 

*본 리뷰는 씨네랩 크리에이터로 시사회에 참석 후 작성되었습니다. 

작성자 . Cine_Rec

출처 .

  • 1
  • 200
  • 13.1K
  • 123
  • 10M
Comments

Relative contents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