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2024-04-30 22:55:45
원초적인 웃음이 필요할 땐 과거로 회귀할 것
화이트 칙스
가끔 옛날 영화가 보고 싶을 때가 있다. 다 알고 있는 내용이지만 또 보고 싶을 때가 있다. 그래서 잊을 만하면 90년대 영화들을 다시 찾아본다. 요새 영화들에서는 대단한 서사를 찾을 수 없다고 생각이 드는 이유는 웬만한 서사들이 그 때까지 나온 영화들에서 다 찾아볼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00년대 헐리웃 영화들은 90년대의 황금기스러운 느낌보다는 로맨틱 코미디, 원초적 코미디가 더 많았던 것 같은 느낌도 든다. 물론, '트랜스포머'같은 대규모 프랜차이즈 영화들도 많이 등장했었지만 그런 영화들보다 그런 코미디 영화들을 즐겁게 보았던 기억이 있다. 내 인생의 오글거리는 하이틴 영화들은 그 때 봤던 게 전부이지만 그 때 많이 보아서 지금 환상이 없는 것인지도 모른다. 여하튼 간에 요새 다시 향수에 젖고자 하는 미친 감성에 젖어 보았던 영화가 '화이트 칙스'였다. 굉장히 어설프지만 원초적인 웃음을 주는 영화를 보고 싶었다. 이 영화를 언제 처음 봤었는지도 기억이 없는데, 참 코미디라는 장르에 충실한 영화라고 생각이 든다. 물론 지금 와서 보면 흑인에 대한 비하가 넘쳐나고, 그 비하가 영화의 소재가 될 정도로 당연시되던 사회였구나 다시 실감하게 된다.
1. 아무리 봐도 어색한 티가 나는 분장
영화는 두 재벌 상속녀로 위장하기 위해 흑인인 경찰이 백인으로 위장하는 분장을 감행한다. 참 누가 봐도 안닮았는데, 이걸 겉모습으로 알아채는 인간이 없다는 게 정말 웃긴 지점이다. 오히려 여자 치고 너무 운동 신경이 좋아서 수상함을 느끼지, 외양에서는 전혀 이상해 보이지 않았다는 게 이 영화가 가진 장점 중 하나인 '허무하게 웃기기'이다. 약간 밑도 끝도 없는 개그를 보고 나면 아니 저게 뭐야 하다가 막판 가서 와하하 웃게 되는 그런 시간차 공격 같은 개그들이 넘쳐난다. 지금에 와서 그 영화를 처음 보는 상황이라고 가정한다면 처음엔 웃기 보다는 경악할 것 같긴 하다.
하지만 그 지점이 이 영화의 장점인데, 처음부터 영화의 목적이 코미디이기 때문에 관객을 웃기려는 데에 많은 공력을 들였다는 것이 보인다. 물론 웃음의 소재가 다소 원초적이지만 가끔 이런 영화도 보고 싶을 때가 있지 않은가. 그런데 참 웃긴 건 이 영화도 유치한 건 매한가지인데, 왜 요새 만들어지는 코미디 영화에서 큰 감명을 받지 못할까. 이 영화도 그다지 작품성을 논하기는 조금 애매한 그저 오락 영화이고, 웃음의 코드가 대단히 고급스럽지도 않은데, 이 영화는 계속 보게 되면서 다른 코미디 영화들은 식상하다고 느낄까. 그건 나의 위선인가, 아니면 코미디 영화가 그만큼 발전이 더딘 장르인 것인가.
2. 웃음의 소재가 비하인 것은 조금...
영화의 가장 코믹한 캐릭터 중 하나인 라트렐이라는 농구선수가 나온다. 흑인인데, 백인 여자를 좋아한다. 그리고 마지막에 자신이 좋아하던 여자가 사실은 흑인 남자였다는 사실에 실망하는데, 포커스가 남자였다는 것때문에 실망한 것이 아니라 흑인이라서 실망했다는 지점이 '이건 요새 나오면 안되는 대사 아닌가' 싶었다. 그리고 흑인에게 맛들이면 헤어나올 수 없다는 둥 이런 대사들도 참 요새 나오면 논란 거리가 되지 않았을까.
그 시절이니 용인된 대사들이 참 많이 보였다. 주인공들이 모두 흑인이라서 그런지 몰라도 흑인에 대한 편견에서 비롯된 대사들이 참 많이 나오는데, 그걸 현재를 살아가는 흑인이 본다면 불쾌해할 수도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마치 헐리웃 영화에서 동양인들은 너드 혹은 전문직종으로만 그려지는 게 동양인 입장에서 세상 답답한 것처럼 말이다.
뭐, 코미디 영화를 보면서 뭔 불만이 많냐 싶을 수도 있지만 코미디라는 것이 누군가를 비하하지 않고 웃기는 것은 생각보다 고급 스킬이기 때문에 그런 고급 유머를 구사하는 영화를 보고 싶은 마음이라고 생각해주었으면 좋겠다.
3.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명장면은 배출한.
이 영화의 명장면은 그 클럽에서 댄스 배틀하는 장면을 빼놓을 수가 없는데, 개인적으로 그 장면이 뭐라고 그렇게 여러번 보게 되는지 모르겠다. 여자들끼리의 춤배틀인데, 어딘지 모르게 안무를 억지로 외운 것 같은 몸치 바이브들도 웃긴데, 다 같은 몸치이면서 누가 이겼네 졌네 하고 있는 것도 코미디 포인트였다. 그 다음에 주인공들이 백인 여성으로 위장하고서 세상 올드스쿨 느낌나는 춤을 추는 것도 재밌었지만 말이다. 뭐랄까, 그 배틀 장면은 허세에 점령당해 버린 남자들을 보는 느낌이었다. 굉장히 오글거리는데, 그래 어디까지 오글거리나 보자 하면서 끝까지 보게 되는 장면이다.
OTT 영화들은 성행하는데, 볼게 없다고들 한다. 그럴 때는 과감하게 과거로 가보시라고 추천한다. 지금보다는 확실히 영화들이 기술적으로 만듦새가 어색한 지점이 많긴 한데, 오히려 서사적인 측면에서는 그 내용이 더 새롭다. 그때에는 새로이 등장했던 서사여서 그런지, 요새 더 발전된 서사들도 많음에도 불구하고, 그 투박한 서사가 오히려 더 신선하게 느껴질 때가 있다. 그래서 90년대 영화들을 돌려보게 된다. 곱씹을수록 좋은 영화들이 참 많다. 음, 그런 의미에서 '화이트 칙스'는 곱씹을수록 좋은 영화라고까지 칭송하고 싶진 않지만 가끔 삶이 무료할 때 대책없이 웃고 싶을 때 꺼내봐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
작성자 . Anonymoushilariou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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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전포인트와 소소한 스토리
11.01 에 본영화 .배우들의 다양한 배역과 입체적인 캐릭터, 90년대 후반의 시대를 엿보는 맛은 쏠쏠하지만,다른 성별이 판단한 여자의 모습을 제3자의 입장에서 봤을때, 참으로 어색하고 우스꽝스러운 장면이 몇 가지 있는건 어쩔 수 없는 한계인가?
Relative cont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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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넷플릭스] 더 체어 (2021)
* 본 리뷰는 <더 체어>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더 체어 (2021)
출연: 산드라 오, 제이 듀플라스, 홀런드 테일러 등
장르: 코미디, 드라마
공개일: 2021.08.20
방송 횟수: 6부작
유색인종 최초의 여성 학과장 '지윤'
미국의 명문 펨브로크 대학교의 영문학과 최초의 유색인종 여성 학과장이 된 '지윤(산드라 오)'. 부푼 마음을 껴안고 승진해 높은 자리에 앉았으나 그녀가 학과장이 된 것은 사실상 독이 든 성배를 손에 쥔 것과 다름 없었다. 영문학과는 수강생이 날이 갈수록 줄어든다는 위기 상황에 직면해 있었고, 학장은 노년의 교수들을 잘라 비용 삭감을 하기 위해 지윤을 학과장 자리에 앉힌 것이다.
지윤이 학과장이 된 직후부터 마치 예고했다는 듯이 사건사고가 시한폭탄처럼 터진다. 연인과 친구 사이를 애매하게 유지하는 동료 '빌(제이 듀플라스)'는 학생들의 영상 조작으로 인해 나치 신봉자가 되어 학교를 떠들썩하게 만들고, 지윤이 한때 존경했던 노교수 '조앤(홀런드 테일러)'은 쫓겨나듯 학교 지하로 연구실을 강제로 옮기게 되면서 학교에 울분을 터뜨린다. 이와 같은 다양한 갈등의 요소들은 모두 지윤을 향해 화살을 돌리고, 학과장으로서 적응할 시간조차 없었던 지윤은 이 모든 문제들을 해결하기 벅찬 상태다. 학과장이 된 '지윤'의 소소한 교내 에피소드와 승승장구 스토리가 이어질 줄 알았지만, 실상은 거지 같은 유리절벽을 마주한 그가 고군분투하며 당면한 문제들을 해결해나가는 긴박한 과정을 그린다.
독이 든 성배, 유리절벽에 내몰리다
명문대 최초의 유색인종 여성 학과장, 에밀리 디킨슨을 가르치는 영문학과의 한국계 미국인 교수. 한국인이라면 쉽게 끌릴 수밖에 없는 소재다. 인물의 신선한 설정을 통해 구태의연하고 낡아빠진 학과를 뜯어 고치는 개혁가의 모습을 그릴 것으로 예상했다. 하지만 그 누가 오더라도 살릴 수 없을 정도로 기피 학과가 되어버린 영문학과의 문제를 모두 떠안기기 위해 유색인종 여성을 앉혔다는 점에서 <더 체어>는 '유리절벽'에 대한 이야기를 써내려간다.
사실 학과장이라는 자리는 비백인 여성 교수로서 커리어를 쌓기 위해 혹할 수 밖에 없는 제안이고, 대학 입장에서는 이를 빌미 삼아 학과의 문제를 쉽게 떠넘길 수 있다. 지윤이 학과장이 된 이후 중요한 책임은 모두 그에게 물으면서 학과장의 자율적인 권한은 학교 측에서 통제하려는 모습에서 그를 학과장에 발탁한 의도가 다분히 드러난다. 1화에서 지윤이 학과장실 의자에 앉자마자 의자가 부서진 것은 곧 학과장으로서의 그의 앞날이 순탄치 않을 것을 예고하는 사건이며 지윤을 벼랑 끝으로 모는 사건들이 연달아 찾아오며 그의 자리를 위태롭게 만든다. 유색인종 여성 교수의 성공사를 그린 것이 아닌 현실적인 고난을 담아냈다는 점에서 지윤의 모습들은 특히나 공감을 불러일으킨다.
무려 K-돌잔치 문화까지 등장, 한국인만 느낄 수 있는 재미
주인공을 맡은 '산드라 오'는 극중 한국계 미국인 역할로 등장하는데, 배역명이 '김지윤'이라 캐릭터가 더욱이 한국적으로 느껴진다. 미국 드라마에서 한국의 문화를 표현하는 경우는 최근 들어 적잖게 찾아볼 수 있게 되었지만, 미국인의 시선에서 바라보는 스테레오타입에 가까운 모습일 뿐 한국의 제대로 된 문화를 담아낸 작품은 많지 않았다. 하지만, 간간이 한국어를 쓰는 '산드라 오'부터 아예 한국말로만 대화하는 그의 아버지 '하비', 그리고 미드에 등장할 것이라고는 생각조차 못했던 K-돌잔치 문화와 한국인 아주머니들 특유의 뒷담화까지. 한국인과 한국 문화에 대한 이해가 없었다면, 만들어낼 수 없었을 디테일한 요소까지 반영하였다. 타 국가의 문화를 최대한 자연스럽게 극에 녹여내면서 현실 고증에도 충분한 신경을 기울였다는 게 다른 작품들과의 차별점으로 느껴져서 인상적이었다. '산드라 오'가 직접 제작에도 참여한 작품이기 때문에 한국 문화을 담은 각본에도 추가적인 검증을 세세하게 거쳤을 것이라 본다.
몰락해가는 순수문학 학과의 현실
유색인종 여성 교수의 역경과 극복이 일차적으로 중요한 스토리라면, 주인공 지윤을 비롯한 그의 주변 인물들, 즉 영문학과에 속한 교수들에 관한 이야기에 이차적으로 주목해볼만 하다. 영문학과의 위기는 다름 아닌 IT 기술의 중요성이 팽배해져 가는 시대에 순수문학 학과가 겪고 있는 몰락의 상황으로 해석할 수 있다. '문송합니다'로 알려져 있는 문과생들의 취업난은 이미 현실이 된 지 오래이고, 당연히 이들은 순수문학을 학문적으로 이해하고 접근하는데 큰 관심이 없다. 이러한 시대적 배경은 노년의 교수와 젊은 교수들 간의 강의 방식에 차이를 일으키고 , 학문을 향해 상이한 견해를 가지게 됨으로써 또 한 번의 갈등 관계를 만든다. <더 체어>는 이와 같은 순수문학을 다루는 학과 앞에 닥친 문제를 해결해나가는 과정을 그리기보다는 해당 교수진들의 고민과 갈등들을 현실적으로 제시하는 정도로 마무리한다. 주인공의 이야기뿐 아니라 다양한 접근법을 통해 작품을 해석할 수 있는 여지를 남긴 셈.
간결하고 빠른 호흡, 적절한 유머
<더 체어>는 한 회당 30분 정도 되는 분량이 6회차까지 이어지는 드라마인데, 호흡이 짧고 전개가 빠르며 사건의 발단과 갈등의 심화까지의 과정들이 휙휙 지나간다. 사회적으로 꽤나 심각한 문제들을 다루고 있음에도 시트콤적인 연출과 이색적인 한국식 유머를 더하며 무겁지 않게 해당 소재들을 담았다. '산드라 오' 특유의 단단하고 고혹적인 저음 보이스는 학과장 역할과 상성을 일으키며 티격태격하는 딸 '주주'와의 관계도 사랑스럽게 그려진다. 그리고 다양한 갈등이 오가는 속에 백인 노교수 '조앤', 젊은 흑인 교수 '야즈', 그리고 동양인 학과장 '지윤' 세 사람만큼은 서로를 존중하고 따뜻한 시선을 보낸다는 점에서 여성들의 끈끈한 유대감 또한 느껴진다. 짧은 분량의 작품에 많은 내용을 담으려다 보니 결말이 갑작스럽게 느껴질 수는 있지만, 메이저한 소재의 작품이 아님에도 가볍고 쉽게 감상할 수 있는 작품이다.
- 씨네랩 크리에이터 popofil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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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가신 존재들의, <보호자>
* 제22회 전주국제영화제 시네마천국 (온라인 및 오프라인 상영작)
* 본 리뷰에는 영화의 결말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보호자 Brother's Keeper(2021)
터키 외, 드라마, 85분
감독: 페리트 카라한
성가진 존재들의, <보호자>
조각난 비누를 하나씩 든 아이들이 속옷만 입은 채 줄을 지어 좁은 복도를 걸어간다. 웃음소리가 간간이 들리지만, 누구도 줄에서 벗어나지 않고, 앞사람의 뒤통수를 보고 공용 샤워실로 들어간다. 한 부스에 세 명이 짝을 이뤄 한 바가지를 번갈아 사용해 샤워하는 아이들. 빠르게 머리에 비누를 문지르고 물을 끼얹으며 씻는 유수프. 잡담은 필요 없다. 15분 안에 씻지 않으면 다음 조를 위해 무조건 나가야 한다. 이들을 긴 막대기를 들고 감시 중인 감독관. 그는 보일러실이 있는 벽 맞은편에 서서 큰 소리로 뜨거운 물을 틀 것을 요구한다. 그런데, 날카로운 목소리만큼이나 어려 보이는 감독관, 그는 유수프와 같은 또래다.
정신없이 물을 머리에 끼얹던 유수프는 맞은편 부스에서 씻고 있는 절친 메모에게 눈을 떼지 못한다. 메모가 실수로 비누를 물을 받는 통에 떨어트리면서 함께 씻던 두 친구에게 괴롭힘을 당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체구가 훨씬 작은 메모와 말다툼이 일어나면서 샤워실이 소란스러워지자, 도끼눈을 한 채 등장하는 함자 선생님. 그는 감독관을 먼저 혼내고, 샤워시간에 싸움을 한 세 명에게 강제로 찬물로 샤워할 것을 명한다. 오들오들 떨면서도 눈에 불을 켜고 앞에 서 있는 감독관 때문에 뜨거운 물을 틀 수가 없던 그들은 결국 영하 35도에 15분간 얼음장 같은 물로 목욕을 마친다. 이를 불안한 눈으로 보고 있던 유수프.
다음날 아침, 유수프는 메모가 침대에서 일어나지 못하는 걸 발견한다. 머리가 어지럽고 속이 매슥거린다며 서 있지 못하고 힘없이 쓰러지는 친구를 부축하는 유수프. 유수프는 메모를 보건실로 힘겹게 데려간다. 전쟁에서 총을 맞고 죽어가는 동료를 살리고자 필사적으로 그를 끌고 가는 군인의 모습과 다를 바 없는 모습으로.
영화 <보호자>는 터키 동부, 아나톨리아 산맥에 위치한 남자 공립 기숙학교를 다니는 유수프에게 일어난 일을 관찰자의 시점으로 담아낸다. 감독은 터키 기숙학교에 얼마나 폭력과 억압이 만연해 있는지를 고발하고자 이 작품을 만들었다. 누군가를 보호하고 책임지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보호의 의무를 가진 자라면, 반드시 지켜야 한다. 자신이 누굴 책임져야 하는 지를 알아야 하고, 이를 선택사항이란 착각을 해서도 안 된다. 그것은 굳이 도덕적, 윤리적 측면으로 생각을 바꿔 이해할 필요도 없는 부분이다. 앞서 말했듯, '의무'니까.
출처: 영화 <보호자> 스틸컷 (다음)
<보호자>엔 너무나 당연하듯, 우리가 기대한 '보호자'는 등장하지 않는다. 유수프의 성장을 위해 그의 정감 있고 따뜻한 멘토 역시 없다. 대신 눈도 뜨지 못한 채 색색거리며 누워있는 메모를 '성가신' 눈으로 바라보는 어른들이 있다. 열한 살밖에 안 된 아이가 원인 모를 병에 걸리게 된 이유를 찾아야만 하는 사람들. 그들은 전부 공립학교의 선생님들이다, 학생을 책임질 '의무'를 가진.
"공립학교를 다니는 덕분에 여기서 자고, 배불리 먹는 거야.
일주일에 한 번씩 목욕하고 매달 용돈도 받는데 왜 불평불만이 많아!
용모는 청결하게 복장은 단정하게 자세는 바르게!
100m 밖에서 너희를 봐도 '우리 학교 학생이다' 할 수 있게, 밖에서도 모범을 보여야 한다.
열심히 일해야 한다. 국가의 자산이자 건실한 시민이 되어라!!"매일 아침 운동장 강단 위에 서서 대놓고 자기 얼굴에 침 뱉지 말라고 학생들을 협박하는 교장선생님. 그는 유수프가 메모를 보건실로 데려가 준 날에도 학교 교칙을 어긴 학생의 목덜미를 잡고 이발기로 그의 머리 반을 밀어버렸다. 전교생이 보는 앞에서 거침없이 이발기를 드는 일이 교장의 삶에 가장 의미 있는 일이 되어버린 현실. 이를 보는 유수프의 눈빛엔 깊은지 짐작할 수도 없는 두려움과 터트릴 수 없는 울분이 가득했다.
점심시간, 배식 줄 앞에 서서 아이들의 식판을 검사하는 셀림 선생님은 유수프의 앞에 가던 학생을 불러 세운다. 그가 유수프와 같이 빵 두 개를 챙겼기 때문이다. 급식실이 떠나가듯 아이에게 소리 지르는 선생님. 빵 하나론 부족했다는 학생의 말에, 다른 친구의 식량을 훔쳤으니 오늘 점심을 굶으라 명령한다. 예외는 없다. 유수프는 재빨리 메모를 위해 집은 빵 하나를 놓고 셀림 선생님을 지나 자리에 가서 앉는다. 모든 학생이 배식을 받고 자리에 앉아야만 기도를 하고 밥을 먹을 수 있다. 유수프는 선생님 몰래 자신의 빵을 반 잘라 주머니에 숨긴다. 메모를 주겠다고 식판 위에 빵을 올려놓고 나가는 순간, 또 뺨이 날아가고 말 테니까.
그러나 메모는 빵을 먹지 못한다. 유수프의 얼굴은 점점 더 어두워진다. 다시 셀림 선생님을 찾아가지만, 선생님은 이미 약을 먹었고 열도 없는 아이를 어떻게 하라는 듯 짜증을 낸다. "그럼 됐지. 더 할 거 없잖아." 그는 늘 바쁘다. 교육자로 가르치는 것만 하면 되는 삶을 살고 있지 않다. 다른 선생들과 순번을 돌아가며 기숙사 당직을 서야 하고, 고집 센 교장선생님의 잔소리를 듣지 않기 위해 더 열심히 아이들에게 폭력을 써서라도 감시하고 통제해야 한다. 셀림을 비롯한 선생님들의 환장 쇼는 이때부터 시작된다. 밥도 먹지 못하고 정신도 차리지 못하고 있는 메모의 상태를 세 번째 보고 받은 셀림은 그제야 보건실로 향한다. 직접 메모의 상태를 보고 나니 심각해지는 그. 당장 병원으로 데리고 가야 하는데, 엄청난 눈과 산맥 안에 고립된 학교에서 도시로 나갈 수 있는 사람도 방법도 없다. 더구나 핸드폰 신호로 제대로 잡히지 않는 상황. 보건실 안에 나뒹구는 빈 약통을 보던 셀림은 유수프에게 '목욕시간에 있었던 벌' 이야기를 듣자마자 함자 선생님을 찾는다.
골치 아픈 일이 벌어질 것 같은 일에, 메모와 유수프에게서 벗어나기 위해.
그렇게 줄줄이 이어지는 책임전가 현장은 영화 내내 놀라울 만큼 계속된다.
출처: 영화 <보호자> 스틸컷 (다음)
함자 선생님은 찬물로 목욕을 시킨 걸 인정하지만, 늘 그렇듯 말썽꾸러기들의 탓을 한다. 감독관을 불러 싸대기를 날리며 "너 때문에 친구가 아파서 누워있잖아!"라고 윽박지르는 건 서비스랄까. 교장은 학생이 알려준 핸드폰 신호 찾는 방법을 이용해 119와 주변 지인들에게 도움을 요청한다. 물론 중간중간 함께 샤워했던 두 친구를 불러 "쓸모없는 것!" 책임 전가하는 것도 빼먹지 않는다. 어젯밤 기숙사 당직을 섰던 케냔 선생님이 합류하면서, 아파 보였던 메모를 그냥 자게 한 사실이 알려진다. 그는 당당하게 자신의 직업은 교사지 경비원이 아니라 못 박고, 다른 선생님들 역시 유일하게 차가 있는 직원을 도시로 치즈를 사 오라 시킨 교장의 얘길 꺼내며, 교장에게까지 책임이 있음을 피력한다. 유수프는 이 난리부르스를 눈도 뜨지 못한 메모를 보며 듣고만 있을 뿐이다.
마침내 교장은 가끔 보일러 실에서 몰래 샤워하는 학생들이 있단 말에, 보일러 담당자인 '아카프'를 호출한다. 그가 맘 놓고 비난하고 힐난할 수 있는 대상은 학생들 말고 더 있었다. 자신의 권력 아래 있는 모든 이 중 가장 하찮다고 여기는 보일러 담당자. 비로소 아카프의 입에서 사건의 진상이 밝혀진다.
메모가 갑자기 쓰러진 이유엔 분명한 사건이 또 있었다.
차가운 물로 목욕해 감기에 걸릴 것 같은 친구를 위해, 아카프에게 담배 한 갑을 주고 보일러실에 들어가 함께 목욕한 절친 유수프. 유수프는 자신을 둘러싼 선생님들에게 어젯밤 저녁에 있었던 이야기를 울며 털어놓는다. 메모와 장난치다 실수로 쇠로 된 파이프를 샤워기로 건들었고, 그 파이프가 메모의 머리에 떨어졌다는 것.
파이프가 빠지는 바람에 그날 아침부터 보일러가 고장이 났던 거였고, 메모는 쓰러져버렸으며, 그렇게 자부했던 공립학교의 시스템이 사실 탈이 날 수밖에 없던 휴짓조각이었음이 밝혀졌다. 보호를 받아야 할 아이들이 병풍 신세로 전락하고, 선생님들의 불만과 교장의 불편함과 귀찮음이 뒤섞여 있던 보건실 안에서 마침내 어른들은 책임자를 선정한다. 유수프 역시 더 이상 눈발을 해치며 선생님과 학생들을 호출하지 않아도 된다.
풀리지 않을 것만 같던 사건이 말끔히 해결되지 않았나.
오직 이 아이만이 '골치 아픈 사건'을 '철없는 애들의 실수'로 바꿔치기할 수 있다.
출처: 영화 <보호자> 스틸컷 (다음)
어디서부터 잘못되었을까. 일주일에 딱 한 번 샤워를 하는데, 15분 동안 세 명이서 한 바가지로 물을 써야 하고, 급식은 반드시 정해진 자리에서 모두 같은 양의 밥을 먹어야 한다. 짓궂은 호기심 따위로 학교의 명예를 더럽히는 순간 일렬로 서서 뺨을 맞거나 이발기에 머리를 맡겨야 한다. 자, 우린 이미 다 알고 있다. 보일러실에서 몰래 샤워를 하는 아이들이 메모와 유수프가 처음이 아니며, 알 수 없는 병에 걸려 쓰러지는 메모와 같은 아이들이 앞으로도 계속 나올 거다. 그럴 때마다 책임질 자는 사건 당사자나 주변 아이가 될 것이고, 가해자와 피해자 역시 전부 학생들로 판명될 것이다. 보건실을 담당하는 감독생은 아픈 아이들에게 평생 해열제만 처방할 거다.
그것에 이 학교에 사는 아이들의 현실이다. 따라서, 보건실 창문에 달린 안전 창살이 감옥의 창살로 변해 보이는 건 당연한 결과다. 그들의 삶은 결코 외부에 알려지지 않을 거다. 정해진 시간에 일어나 공부하고 밥 먹고 잠을 자면서 위대한 시민으로 크겠다는 우렁찬 학생들의 목소리만 담 넘어 들려오겠지.
<보호자>에서 유일하게 창살을 끊을 수 있는 사람은 유수프뿐이었다. 미끄러운 보건실 문 앞에서도 한 번도 넘어지지 않은 사람이 바로 유수프였다. 보건소 바닥이 눈이 녹아 미끄러워 매번 들어올 때마다 중심을 잃고 마는 선생님들과 아이는 달랐다. 그들은 유수프와 메모의 이름을 수없이 까먹어 다시 물어보는 것과 같이, 너무나 간단한 보건실 바닥 문제조차 해결하지 않는다. 가장 기본적인 것조차 직접 해결하지 않으려는 책임 없는 어른으로 인해 친구를 구하고 싶은 마음이 곧 나를 살리기 위한 열망이었음에도, 아이는 처참히 무너지고 만다.
좀처럼 올라가지 않는 입꼬리와 창백한 입술, 짙은 다크서클과 폭 들어간 두 눈, 그리고 불안한 검은 눈동자. 유수프는 눈을 힘겹게 뚫고 온 구급차에 실려가는 메모를 홀로 보건실 안에서 바라본다.
자신이 지금 어디에 있는지 뼈저리게 느끼면서. 다시 돌아온 샤워실 안, 물을 머리에 뿌리는 유수프의 옆모습, 그의 머리 한가운데가 쭉 길이 나있다. 이발기로 유수프의 목덜미를 잡고, 전교생이 보는 앞에서 그를 '메모를 죽인 장본인'으로 선포했을 교장의 얼굴이 떠오른다. 그러나 그 소름 끼치는 상상을 길게 할 수 없다. 엄마에게 매몰차게 '버텨라'란 말을 들으며 숨죽여 울던 유수프가 완전히 사라지고 없기 때문이다. 더는 그의 얼굴에서 두려움이나 원망이 느껴지지 않는다. 화면을 넘어 관객을 정면으로 응시하는 유수프의 텅 빈 눈. 사랑도, 우정도, 희망도 완전히 소멸되어 버린 아이가 자신의 영혼마저 버린 것 같은 공포, 이 공포만큼 두려운 게 있을까.
더 섬뜩한 건, 어른들의 무책임함과 책임을 전가하는 행동이 전부 아이들에게 그대로 답습되고 있다는 걸 너무나 잘 보여주고 있다는 것이다. 샤워실 통로를 돌아다니며 윽박을 지르는 감독관과 아무것도 모르면서 보건실 선생님 노릇을 하는 감독생을 봐라.
그래, 유수프가 사는 세상은 원래 이랬다. 다른 세상은 없다.
<보호자>는 끊임없이 반복될 것이다. 그리고 언제나 고통은 아이들의 몫이겠지.
누굴 탓할 수조차 없게 만든 강압적인 통제와 억압,
<보호자>는 보여줬을 뿐이고, 난 순식간에 끌려들어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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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파괴지왕이 정신차리고 만든 액션 영화
용서를 하는 데에는 꽤 많은 시간이 걸린다. 누군가 나를 아프게 했으면 아프게 한 상대방에게 분노를 먼저 표출하지만 시간이 지나고 상대방이 왜 자신을 아프게 했는지를 생각하다 보면 어떤 경우에는 용서를 할 수 있겠다는 판단을 할 수도 있다. 살면서 누구나 크고 작은 가해자가 될 수 있고, 그런 것들에 대해 사과를 해야 할 일도 발생한다. 또한 반대로 피해자의 입장에서 상대의 사과를 받아들이고 용서를 해야 할 위치에 서기도 한다. 긴 삶 속에서 그렇게 가해자와 피해자의 입장은 반복적으로 각자에게 다가온다. 그저 감정이 실린 분노와 복수보다는 상대방을 좀 더 이해하려는 노력이 필요하기도 하다.
영화 <앰뷸런스>는 액션 영화 전문 감독 마이클 베이의 신작이다. 이 영화는 경제적인 어려움을 겪는 윌(야히아 압둘 마틴 2세)이 은행 전문 털이범인 형 대니(제이크 질렌할)에게 도움을 요청하러 갔다가 우연히 은행털이 범죄에 합류하게 되면서 벌어지는 일을 담고 있다. 그들은 은행털이 과정에서 문제가 생겨 건물에 들어온 앰뷸런스를 타게 되는데, 그 차에는 구급대원 캠(에이사 곤잘레스)과 윌의 총에 맞은 경찰이 치료를 받고 있다. 이들이 구급차에 타서 병원을 빠져나가면서 추격전이 시작되게 되는데, 특히나 이 차 안의 윌, 대니 그리고 캠 사이에는 긴장구도가 형성된다.
마이클 베이표 액션 영화 <앰뷸런스>
기본적으로 윌은 우연히 은행털이를 하게 되지만 급박한 상황에서 경찰에게 총을 발포하고 만다. 그렇게 그는 가해자가 되지만 영화를 보는 관객은 그가 그렇게 악한 인물이 아니라는 것을 앞에서 제시된 정보를 통해 알고 있다. 반면 대니는 은행털이 전문으로 동생 윌을 끔찍이도 아끼지만 그의 불같은 성격으로 예측할 수 없는 인물이다. 그 사이에 있는 구급대원 캠은 대니와 윌을 보면서 자신의 살길을 찾으려고 하는데 그는 대니와 윌 사이에서 두 인물을 아주 세밀하게 파악하는 인물이다.
영화 속 대니는 전형적인 범죄 우두머리지만 직접 특정 인물이나 주변 인물에게 총을 쏘지는 않는다. 하지만 영화 속 모든 범죄를 조정하고 관리한다는 측면에서 그는 확실히 가해자에 속한다. 하지만 다른 인물인 윌과 캠은 가해자와 피해자 사이를 오간다. 감독이 의도하지는 않았겠지만 빠르게 진행되는 추격 장면 속에서 누군가는 가해자가 되어 총을 쏘고, 다른 누군가는 피해자가 되어 그 총을 맞는다. 그리고 영화가 그 인물들의 복잡함을 해결하는 방법은 큰 고민 없는 용서다. 길게 이어지는 추격전 속에서 그들은 서로의 진짜 모습을 파악하고 이해하면서 각자가 가지고 있는 응어리를 '용서'라는 것으로 풀어낸다. 그래서 이 영화가 제시하고 있는 액션 장면 이외의 요소들은 캐릭터의 구도를 통해 '갑작스럽게 맞닥뜨린 가해와 용서'라는 테마를 제법 진지하게 다루고 있다.
앰뷸런스 안에 있는 세 인물의 감정과 상황을 아주 디테일하게 보여주는 영화는 의외로 앰뷸런스 밖에 있는 인물들에 큰 비중을 두고 있지 않다. 수많은 경찰들이 등장하고, FBI 요원이나 은행 강도 전문 인력들을 등장시키지만 그들이 맡은 영화 속 역할은 그저 장애물 정도로 활용될 뿐이다. 끝없이 이어지는 추격 장면에도 그들은 앰뷸런스를 막지 못하는데 다르게 보면 그렇게 외부에 등장하는 인물들이 하나같이 이해할 수 없을 정도로 바보같이 느껴지기도 한다. 그래서 영화를 다 보고 나서도 앰뷸런스 밖에 있었던 인물 중 기억에 남는 인물은 없다.
2시간이 넘은 영화의 러닝타임은 지루할 틈이 없이 이어진다. 이 영화가 긴장감을 유지하는 방식은 현란하고 빠른 카메라 워크와 폭발 장면을 이용해서다. 조금 지루해질 때가 되면 새로운 폭발이나 사건이 생기고 카메라가 빠르게 움직이면서 앰뷸런스의 안과 밖을 다룬다. 앰뷸런스 안을 비추며 숨 고르기를 하고 관객에게 캐릭터의 감정을 전달하는 반면, 앰뷸런스 밖을 비추는 카메라는 액션의 박진감을 전달하려고 애쓴다. 그런 카메라의 수고 덕분에 영화가 끝날 때까지 엄청나게 빠른 속도감을 느낄 수 있다.
지루할 틈 없이 질주하는 2시간
이 영화에 담긴 액션은 과거 마이클 베이의 영화인 <나쁜 녀석들> 시리즈나 <더록>, <아일랜드> 같은 영화에서 선보인 추격 액션을 다시 보는듯한 느낌을 준다. 비교적 적은 예산으로 제작된 이번 <앰뷸런스>는 마이클 베이 감독 특유의 카메라 워크가 돋보이고, 그가 좋아하는 자동차 파괴 장면이 포함되어 있다. 하지만 그렇게 등장하는 액션 장면은 과거 전작들에 비해서 과하다는 느낌은 줄어들었다. 그래도 파괴적인 느낌을 주긴 하지만 예전 영화들에 비해서는 적당하다는 생각이 들 정도다. 집중하는 등장인물을 줄이고, 조금은 단순한 이야기 구조 그리고 쉴 새 없이 이어지는 자동차 추격 장면으로 과거보다는 영리하게 긴장감을 만들어내고 있다.
대니를 연기한 배우 제이크 질렌할은 감정 조절이 잘 되지 않고 터져버릴 것 같은 캐릭터 연기를 보여주고 있다. 이미 그의 전작인 <스파이더맨 파 프롬 홈>이나 <나이트 크롤러>에서 보여준 연기처럼 꽤 믿을 만한 인물이라는 느낌을 주면서도 폭주하면 무서운 에너지를 뿜어내는 인물을 잘 표현하고 있다. 또한 동생 윌을 연기한 배우 야히아 압둘 마틴 2세는 순수하지만 형을 위해서 조금은 바보 같은 일도 벌이는 인물을 잘 보여주고 있다. 캠 역의 배우 에이사 곤잘레스는 전문적인 구급대원 역할로 윌과 대니 사이에서 줄타기하는 인물로 인상 깊은 연기를 보여준다.
영화 <앰뷸런스>는 전형적인 할리우드 액션 영화다. 특히나 이 영화가 보여주는 액션은 과거 90년대나 2000년대 초반에 나왔던 조금은 투박해 보이고 단순한 액션 영화 스타일을 재현하고 있다. 과거의 스타일이 최첨단 카메라 기술을 만나 꽤 긴장감 넘치는 액션 영화를 만들어냈다. 이야기의 구성의 완성도나 캐릭터의 구도에는 아쉬움이 남지만 극장에서 즐길 수 있는 액션 영화로서는 손색없는 영화다.
*영화의 스틸컷은 [다음 영화]에서 가져왔으며, 저작권은 영화사에 있습니다.
[간단한 리뷰가 포함된 movielog를 제 유튜브 채널에서도 보실 수 있습니다. :)
주로 말 위주로 전달되기 때문에 라디오처럼 들어주셔도 좋을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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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앰뷸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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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로봇이 찾은 작은 희망
누군가를 돌본다는 것은 모든 동물의 본능과도 같다. 아주 가까운 자식은 그런 돌봄을 받는 가장 기본적인 존재다. 아이를 키우고 자라는 모습을 보면서 가장 기본적으로 의식주를 챙겨준다. 그리고 정서적으로 교류하면서 서로에 대한 신뢰와 정을 쌓아간다. 그 모든 과정은 아이가 성인이 되면서 끝이 나는 듯 하지만 그 아이가 또 다른 가정을 만들면서 다시 비슷하면서 다른 과정이 시작된다. 세대와 세대를 지나면서도 변하지 않는 이 과정은 아마도 모든 동물들이 자라면서 교류하는 과정에서 보이는 모습들이다.
무엇보다 자신이 지키고 돌보려고 하는 존재가 밥을 먹고 자신과 시간을 보내면서 즐거워하는 모습을 보는 것은 어떤 심적인 안정감을 주기도 한다. 그래서 살아있는 동안 계속 그 어떤 존재를 돌본다. 아이가 자라면 강아지나 고양이 같은 동물을 키우거나 식물을 키우며 무언가와 끊임없이 교류한다. 그렇게 무언가를 돌보는 행위 자체가 인간이 가진 하나의 본능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다 큰 자식이 자신의 품을 떠나 독립할 때, 약간의 허무함과 아쉬움을 느끼게 되는 것일 것이다.
오존 파괴로 혼자 살아남은 주인공 핀치와 로봇 제프의 이야기
영화 <핀치> 속 주인공 핀치(톰 행크스)는 지구 오존 파괴로 거의 파괴된 지구에 살아남은 사람이다. 영화 초반 화면 속의 핀치는 낮에 특수한 장비를 입고 밖에서 활동을 하고, 밤에는 그나마 안전한 실내에서 생활한다. 주변에 다른 사람은 보이지 않고, 작은 로봇과 개 한 마리가 그와 함께 생활하고 있다. 그리고 과거 개발자였던 그는 제프(칼레 랜드리 존스)라는 새로운 로봇을 개발한다. 그 외에 등장인물은 나오지 않는다. 그야말로 지구 종말의 상황 속에서 겨우 살아남은 핀치의 생활이 영화에 담긴다.
새로운 로봇인 제프는 많은 지식을 전송받긴 했지만 실제로 걷고, 활동하는 것에 아직 교육이 필요한 존재다. 핀치는 제프를 교육시키고 알려주면서 폐허가 된 세계에서 그가 어떤 도움을 줄 수 있는 존재가 되길 희망한다. 그러니까 제프는 핀치에게 남은 마지막 희망인 셈이다. 그리고 따뜻한 온기를 나눌 수 있는 개를 돌보면서 남은 삶을 겨우 살아내고 있다.
핀치가 키우는 개는 '굿이어'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다. 굿이어는 우리가 아는 여느 개처럼 정이 넘치고 인간 주변을 맴돌며 온기를 만든다. 핀치는 그를 돌보는 일에 최선을 다한다. 핀치가 로봇 제프를 만들어낸 궁극적인 이유 자체도 자신이 세상을 떠난 이후에 굿이어를 돌볼 수 있는 존재를 만들기 위함이었다. 제프는 그런 핀치의 기대에 한참 못 미치지만, 핀치는 자신이 만든 로봇이 올바른 길을 갈 수 있도록 가르치고 또 돌본다. 그저 바보 같은 인공지능 로봇에 불과했던 제프의 변화과정이 영화의 중반 이후부터 담긴다.
사실 영화 <핀치>의 중심인물은 핀치가 맞지만, 영화 후반부에는 핀치보다 제프의 영화로 보인다. 제프의 탄생부터 그가 배우고 성장하는 과정을 하나씩 보여주는 영화 속에서 제프는 그저 감정 없는 로봇이라기보다 하나의 인간이 탄생하고 성장하는 존재로 보인다. 그가 무언가를 배우고 성장하고, 또 실수하는 과정을 보는 것이 이 영화가 전달하고자 하는 감정이자 서사이다. 제프는 뭘 해도 서툴러 보인다. 실수하고 미안하다는 말을 반복하는 그의 모습에서 오히려 더욱 인간미가 느껴진다. 이 영화에서 온기가 느껴진다면 그건 모두 제프의 서툴고 어색해하는 그 모습에서 오는 것일 것이다.
로봇 제프의 따뜻한 성장기
이 영화에는 악당이 나오지 않는다. 그래서 조금은 심심하게 느껴지는 면이 있다. 영화에서 가장 무서운 적은 바로 보호막이 사라진 지구의 환경이다. 환경이 만들어낸 토네이도와 폭풍은 아주 짧은 시간 이어지지만 아주 무서운 파괴력을 보여준다. 영화는 악당 캐릭터를 등장시키기보다는 핀치가 그토록 보살피고 지키려는 노력에 대한 이유를 설명하는데 좀 더 관심이 있다. 마치 부자 관계처럼 보이는 핀치와 제프가 서로 주고받는 대화들이 조금은 척박한 화면과 영화에 생동감을 불어넣는다.
주인공 핀치 역을 맡은 톰 행크스는 따뜻한 인간미를 가진 인물을 다시 한번 연기한다. 과거 <캐스트 어웨이>에서 그랬던 것처럼 혼자 등장해 개와 로봇과 벌이는 그의 연기는 부드럽게 느껴진다. 이번엔 로봇 제프라는 존재가 있어 어느 정도의 상호작용을 보여주고, 유머도 포함되어 있어 시종일관 편안하게 영화를 볼 수 있게 만든다.
이 영화를 연출한 미구엘 사포크닉 감독은 과거에 <리포맨>(2010)이라는 SF 영화를 연출한 적이 있다. 또한 <얼터드 카본> 같은 드라마 에피소드 연출하는 등 SF 장르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 감독이다. 그가 연출한 <핀치>는 지구 종말의 분위기 속에서 따뜻함을 담았는데 그 따뜻함이 누구도 아닌 차가운 이미지의 로봇에게서 느껴진다는 점에서 특이한 점이 있다.
영화 속 핀치가 돌봐주었던 굿이어를 위해 만든 로봇 제프는 인간보다 더 인간적인 로봇이 되어간다. 그가 핀치에게 배운 것처럼 그는 어떤 존재를 똑같이 돌보면서 살아갈 것이다. 그가 과연 굿이어와 교류를 하게 될지, 굿이어가 로봇이라는 차가운 존재를 받아들일지는 영화에서 직접 확인하면 좋을 것 같다. 영화 <핀치>는 애플 TV에 공개되어 있다.
*영화의 스틸컷은 [IMDB]에서 가져왔으며, 저작권은 영화사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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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새벽의 모든 이들에게 비치는 이타적 별빛
온기가 차오른다! 차가운 겨울의 공기가 어느덧 따뜻한 봄의 공기로 변할 때쯤 관객은 비로소 스크린을 투영해 전달되는 온기를 오롯이 받아들인다. 그것도 서서히, 그리고 적정 거리를 유지하면서. <새벽의 모든>은 차갑지만 그래서 더 따뜻함을 느끼고 그 소중함을 알게 되는 영화다. 그 계기는 멀리서 조심스러운 몸짓으로 서로에게 이타적 별빛을 비추는 두 주인공에게 기인한다.
후지사와(가미시라이시 모네)와 야마조에(마츠무라 호쿠토)는 아동용 과학 키트를 만드는 작은 회사의 선후배 사이다. 옆자리에 앉아 있지만, 절대 친하지 않다. 데면데면하던 이들은 서로가 가진 병을 알게 되면서 조금씩 가까워진다. 후지사와는 PMS(월경전증후군)로 인해 한 달에 한 번은 억제할 수 없는 짜증을 표출하고, 야마조에는 공황장애로 갑작스럽게 발작을 일으킨다. 병은 다르지만, 그 아픔은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는 이들은 일말의 동질감을 느낀다. 그리고 조심스럽게 서로를 도울 방법을 찾는다.
미야케 쇼가 연출한 <새벽의 모든>을 보면 진부한 격언 하나가 떠오른다. “동트기 직전이 가장 어둡다”는 말이 바로 그것. 극 중 대사에도 나오는 이 말은 후지사와와 야마조에의 현 상황을 말하는 듯하다. 마음의 병으로 끝없이 짙은 어둠이 깔린 터널을 지나고 있는 이들은 새벽이 오기 전의 시간을 보내고 있다. 행복보다 절망의 순간을 자주 맛보는 이들은 서로를 이해하고 도와주며 묵묵히 버텨나간다.
다른 작품이었다면 이런 이들의 다음 단계는 ‘사랑’이겠지만, 영화는 관객의 기대를 저버린다. 미야케 쇼는 로맨스 장르의 관습에 전혀 기대지 않는다. 대신 적절한 거리를 유지하고 이 힘든 세상을 살아가는 현대인으로서의 동질감 느끼고, 질병으로 힘겨워하는 삶을 이해하는 시선을 유지하며, 관계를 이어나간 다. 사랑보단 연대를 내세우며, 힘겨운 싸움을 해나가는 두 주인공은 마음이 아닌 손을 맞잡는다.
영화만의 차별성은 연대 말고도 두 주인공의 ‘거리감’에 있다. 이들은 가까이도 그렇다고 멀지도 않은 적정 거리를 유지한다. 뭔가 더 나은 삶을 위해 서로의 일거수일투족을 지켜보며 도와주는 게 아니다. 가깝지도 그렇다고 멀지도 않은 거리에서 질병으로 삶이 무너질 때 기꺼이 손을 내미는 정도다.
극 중 야마조에는 PMS에 늪에 빠진 후지사와의 감정을 알아차리고 함께 사무실 밖에 나와 회사 자동차 세차를 함께 한다. 그녀가 짜증을 내도 받아주며, 안정될 때까지 지켜봐 준다. 그러면서 그녀에게 한 달에 한 번은 꼭 도와주겠다고 약속한다. 후지사와도 마찬가지로 대중교통을 이용하지 못하는 야마조에게에게 집에서 노는 자전거를 주거나 직접 머리를 잘라주기도 한다. 서로에게 부담을 주지 않으면서도 최대한 도움과 관심을 전하는 그 거리의 길이는 엔딩크레딧이 올라갈 때까지 유지된다.
초반 이들이 숱하게 말하는 ‘미안합니다. (스미마셍, すみません。)’는 그 적정 거리를 찾는 시행착오처럼 보인다. 이 과정을 지나온 주인공들은 비로소 서로에게 미안한 대상이 아닌 이해와 공감, 위로를 전하는 대상이 된다. 감독은 이런 거리감을 유지하는 것이야말로 나와 다른 이의 삶을 이해하고 서로가 일상을 평화롭게 유지하는 첫 단계라고 말하는 듯하다.
영화는 이 거리감을 ‘별’로 치환한다. 이름 없는 작은 별이라도 작지만 아름다운 빛을 멀리 떨어진 또 다른 별을 향해 비춘다는 극 중 대사는 마치 두 주인공을 연상케 한다. 그 빛이 오랜 시간이 걸려 도착함에도 그 행위 자체로서 위안과 힘을 얻는다는 점은 영화의 주제와 일맥상통한다. 이는 후반부 이동용 플라네타륨(천체 투영기) 행사장에서 별자리를 관찰하는 장면에서 나오는데, 특별한 사건 없이 담백하게 진행되면서 차곡차곡 쌓인 관객의 감정이 이 부분에서 탁 터진다. 마치 기나긴 겨울을 지나 봄을 맞이하듯 따뜻한 감동이 전해진다.
참고로 이 장면에서 행사 참여자들에게 별자리에 관한 이야기를 전하는 이는 후지사와다. 이 역을 맡은 가미시라이시 모네는 의 미츠하 역의 목소리 연기를 맡을 정도로 특유의 맑고 깨끗한 목소리가 강점. 이 장점이 이 장면에서 잘 발휘된다.
두 주인공만큼 빛나는 건 작은 별과도 같은 회사 사람들이다. 후지사와와 야마조에를 있는 그대로 이해하고 배려하는 것은 물론, 회사 구성원으로서의 단체 생활을 강요하지 않고, 자기 일을 묵묵히 하는 것에 만족해한다.
이들은 대단한 일을 하는 사람들이 아니다. 과학 키트를 사용할 학생들을 위해 부단히 상품을 조립하고 포장하며 각 학교에 전달하는 일을 한다. 마치 30년 전 똑같은 행사를 준비했던 회사 사장 동생의 음성 기록 및 메모가 두 주인공에게 큰 힘이 된 것처럼, 회사 사람들도 30년 후 자신들이 만든 키트를 접한 학생들이 사회 구성원으로서 맡은 바 일을 멋지게 할 수 있도록 작은 빛을 비추는 일을 한다. 누가 알아주지 않아도 묵묵히 그 빛을 전하기 위해 노력하는 이들의 모습은 북극성 보다 더 찬란해 보인다.
<새벽의 모든>은 아름다운 영화다. 비록 두 주인공의 삶이 힘들고 비루할지언정, 전반적으로 깔린 사람의 온기가 숨겨진 아름다움을 빛낸다. 이는 감독의 전작 과 마찬가지로, 16mm 필름과 자연광을 활용한 아날로그 감성을 담아냈기 때문. 연속해서 힘든 삶을 살아가고 있다면 영화가 주는 공감과 위로, 그리고 희망의 메시지를 가슴에 품길 바란다. 언젠가 어둠이 걷히고 새벽을 알리는 광명을 마주할 그날을 기다리며.
덧붙이는 말: 16mm 필름과 자연광을 활용한 아날로그 감성이 듬뿍 담긴 의 메이킹 영상이다. 극장 가기 전 이 영상을 보며 영화의 느낌을 고스란히 마음속에 저장해 보면 좋을 듯 싶다!
사진제공: 미디어캐슬
평점: 4.0 / 5.0
한줄평: 새벽을 기다리는 모든 이들의 빛나는 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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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진정 숨어야 할 자는 누구인가,
출처 : 왓챠피디아
1985년 아일랜드의 소도시,
빌 펄롱은 석탄을 팔며 아내, 다섯 딸과 함께 소박하게 살아가고 있다.
크리스마스를 앞둔 어느 날,
지역 수녀원에 석탄을 배달하러 간 빌 펄롱은 숨겨져 있던 어떤 진실을 마주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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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호러, 미스터리, 스릴러 장르가 아니면, 혹은 작품성이 너무 뛰어나 흥미를 이끄는 작품이 아니라면, 대대적으로 명작이라고 평가 받는 작품 외에는 굳이 찾아보지 않는다. <이처럼 사소한 것들> 또한 처음에는 내 취향과 멀리 떨어진 영역에 속해 있었으나 친구의 정성 넘치는 후기로 인해, 킬리언 머피가 그토록 원작도서를 영화로 제작하는 데 힘썼던 이유를 알아볼까 싶었던 사소한 호기심이 확실한 흥미로 번지게 되었다.
기본적으로 배우 킬리언 머피의 연기력에 대한 신뢰는 상당하지만, 작품을 직접 다듬어 가는 감각이 어느정도일지는 가늠이 되지 않았기 때문에 영화에 대한 기본적인 정보가 전무한 채로 아무런 기대도 하지 않고 극장에 들어섰다. 다만 홍보 포스터나 메인 예고편으로 접한 극중 전체적인 톤은 차갑고, 무겁고, 차분했다는 이미지만 기억 속에 있었다. 그리고 줄거리를 모르는 상태에서 영화 예고편을 훑어봤을 때는 어떠한 사건, 미스터리하고 조금은 충격적일 수 있는 문제가 크리스마스와 함께 다가와서 주인공이 그걸 해결해야 하는 건가? 싶은 궁금증이 조금 들었다.
포인트1. 이처럼 모호한 것들
출처 : 왓챠피디아
클레어 키건의 원작소설을 읽지 않은 입장에서 봤을 때, 주인공 '빌 펄롱'의 감정선이 다소 모호하다고 느껴졌다. 특히나 영화 <이처럼 사소한 것들>의 플롯은 현재에서 주인공 '펄롱'이 석탄을 팔고 나르는 업무에 성실히 임하다가 우연히 수녀원의 부조리한 일을 목도하고, 과거에서 강렬한 기억으로 남아 있는 순간순간들이 자연스레 엮여 떠오르면서 고요했던 감정에 파동이 생기고 끝없는 고민을 반복하며 수녀원의 깊은 부분까지 관여하게 되는 것인데, 일련의 과정이 모두 명확하지 않게 표현되었다. 이에 더해, 시퀀스 진행 또한 비교적 루즈하게 진행되어 그렇게 길지 않은 러닝타임이 굉장히 길게 느껴지기도 했다.
펄롱의 어머니와 아버지 / 출처 : 왓챠피디아
과거에, 펄롱은 어머니와 함께 큰 저택의 주인분께 신세를 지게 되었다. 운이 좋게도 집주인은 매우 사려 깊은 편이었고 일반적인 가정에서 느낄 법한 따뜻한 애정과 선물이 두 사람에게 오고 갔다. 그러나 당시의 펄롱은 아직 너무 어려 자신이 어떤 상황에 처해 있으며 어떤 것을 감내해야 하는지 잘 알지 못했다. 사소한 것들에 속상했고 어머니에게 투정 아닌 투정을 부리기도 했다. 그래도 어리고 유약한 '아이'인 자신을 보살펴주는 상황 속에 있음은 분명했다. 그러나 어머니는 왜 혼자 펄롱을 키우고 계셨는지, 갑자기 왜 운명을 달리하셨는지, 아예 두 인물의 주변에 없는 듯했던 아버지라는 존재가 사실은 마지막에 어머니와 같이 저택에 서 있었던 남자임을 암시하는 등 모호하게 제공된 정보들은 극을 구성하는 데 꽤 중요한 부분이었기 때문에 펄롱이 이끄는 스토리에 몰입하고 이해하는 것을 어렵게 만들었다.
또한 현재에서는, 과거를 이끌어낼 정도로 펄롱에게 충격적으로 다가온 수녀원의 실체와 아이들이 위험에 처한 정도가 굉장히 절제되어 드러났기 때문에 그 실상을 파악하는 데 어려움이 있었다. 평범하고 반복적인 루틴을 절대 어기지 않았던 펄롱이 하나 둘 자신만의 규칙을 어길 정도로 충격을 받았다면, 관객도 어느정도의 감정적인 영향을 받고 펄롱의 사소한 변화에 이입할 수 있도록 연출적으로 조금 더 이끌어줄 수 있었을 거 같은데, 그렇지 않았다. 철저히 그의 시선을 따라 객관적인 정보들만 제시할 뿐, 수녀원에 대한 더 깊은 비리와 그 안에서 강압적으로 이루어지는 일들은 제대로 알 수 없었다. 바깥공간과 철저히 분리되어 조그마한 징후들만으로 수녀원에 부딪쳐 누군가를 구해주려는 개인의 용기를 다루고자 했다면 그 연출의도는 매우 성공적이었다고 말하고 싶다. 동시에, 한 작품의 결말은 주인공의 심사숙고한 선택으로 이루어지는 장면인만큼 관객으로서 강한 여운을 느껴야겠으나 아쉽게도 그러한 강렬함은 없었음을 부정할 수 없다.
포인트2. 주요 장면, 그리고 '리틀 나이트메어'
(왼) 출처 : 왓챠피디아
<이처럼 사소한 것들>에서 단연 최고의 장면은 새벽에 잠 못들던 펄롱이 수녀원에서 다시 갔다가 창고에 갇혀 있던 아이를 발견하고 함께 수녀원에 들어가 원장수녀님과 긴 대화를 나누고, 해가 뜸과 동시에 수녀원의 아이들이 군대와도 같은 정렬을 맞추어 하루 일정을 시작하는 순간과 그 옆을 지나쳐가는 외부인 펄롱의 동선이 드라마틱하게 엇갈리는 씬이라고 할 수 있다. 모든 것이 잠들어 있는 듯했던 원장수녀님의 집무실에서 문을 열고 나오자마자 공장 돌아가는 기계 소음, 사람들이 분주하게 움직이는 인기척들, 세탁실 특유의 꿉꿉한 온도가 느껴지는 것 같은 효과음들이 모두 차례대로 몰아치면서 느껴지는 은근한 리듬감이 굉장한 위압감을 가진다.
출처 : Steam 'Little Nightmares'
더 나아가 집합하는 아이들, 그러한 집단의 변수 그자체인 펄롱이 맞닿아 엇갈리는 장면은 공포게임 '리틀 나이트메어'를 떠오르게 만들기도 했다. '리틀 나이트메어'는 특유의 조용하고 차분한 분위기에 반대되는 분주하게 움직이는 NPC들의 인기척과 기계음들이 마음 속 깊이 잠재되어 있던 불안감을 일깨운다. 본능적으로 위험을 느끼게 된다. <이처럼 사소한 것들> 또한 그렇다. 겉으로는 멀쩡하고 첫 한 발자국만 들어왔을 때 마주하는 로비는 성스럽게 느껴지기도 하는 수녀원에 조금만 더 들어갔을 뿐인 펄롱은, 심리적 위압감을 느낀다. 실제적인 폭력이 행사되는 건 아니다. 오히려 펄롱 앞에서는 따뜻한 차와 달콤한 케이크를 내어준다. 상냥하다. 의례적인 인삿말과 함께 펄롱에게 주어지는 평범한 돈봉투가 내포하는 의미가 무엇인지 우리도 너무 잘 알기 때문에 마음 속 저 편에서부터 올라오는 본능적인 불쾌감이 수녀원의 불편한 진실을 간접적으로 드러내는 것일지도 모른다.
출처 : 왓챠피디아
원장수녀님이 '무엇을 봤든 이 곳에서는 아무 문제도 없고 당신은 조용히 하는 게 신상에 좋을 거야'라는 의미를 에둘러 표현하는 대화 속에서 펄롱이 "저는 엄마 성을 따랐는데 아무 문제 없었어요"라고 맞받아치는 단말마의 대사도 매우 인상적이었다. 여담이지만, 위 사진의 원장수녀님께서 <해리포터와 불사조기사단>에 나오는 등장인물 '엄브릿지'와 매우 닮으셔서 무의식적으로 더 압도되었을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실제로 작품에서 연기하시는 걸 보면 외모 뿐만 아니라 대사를 내뱉는 특유의 억양도 굉장히 닮아 있어서 해리포터를 관람하셨던 분들은 약간의 기시감을 느끼셨을 거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포인트3. 막달레나 수녀원 사건
출처 : 왓챠피디아
세상에는 굉장히 많은 사건들이 존재한다. 전쟁통에 이루어졌던 수많은 학살, 고문 등 엄중한 사건들부터 살인, 납치, 강도 등 개인이 저지른 사건들까지. 개중에는 특정 장소에서 사람들이 실종된다든지 물리적으로 설명되지 않는 미스터리한 사건들도 사이에 끼어 있다. 여러 사건들의 개요를 이해하다보면 다양한 분야의 정보를 알 수 있기 때문에 단순한 흥미를 넘어 시야를 넓히기 위해 일부러 검색해보기도 했으나, <이처럼 사소한 것들>의 배경이 된 '막달레나 수녀원 사건'은 처음 들어보는 사건이었다. 나는 스스로가 꽤 많은 이야기들을 알고 세상에 만연해 있는 문제점들을 의식하고 있다고 생각했으나, 아직 한참 부족하다는 사실을 깨달을 수 있었다.
'막달레나 수녀원 사건'은 최소 1922년부터 1996년까지 아일랜드에서 벌어졌던 여성을 대상으로 한 인권 유린 사건이다. 킬리언 머피는 아일랜드 출신으로서 자신의 국가가 겪은 역사적 고통을 가시화하는 데 집중하며 정체성을 뚜렷하게 지니고 있는 배우인만큼 이 작품을 왜 영화화하고자 했는지 그 마음을 어렴풋이 알 것 같았다. 오랫동안, 심지어 조직적으로 강도 높게 이루어진 착취, 폭행 등의 만행들을 제대로 다룬 영화가 이전까지는 단 한 작품 뿐이었다는 걸 미루어 보면 <이처럼 사소한 것들>이 갖는 의의가 더욱 크다는 사실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출처 : 왓챠피디아
자본과 권위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그리고 집단이 악한 짓을 저지르고 있다면 같은 사람으로서 제대로 된 행동이 무엇인지 분명히 일깨워주어야 하지 않겠는가? 그러나 작품 속 수많은 인물들이, 사소한 변화로 커다란 선택을 한 펄롱이 더욱 돋보일 만큼 어리석은 언행을 남발한다. 수녀원이 마을의 모든 일에 연관되어 있으니 가정을 잘 건사하기 위해서는 무엇을 봤든 조용히 넘어가자고 하는 동료, 펄롱의 최측근에서 그의 고민을 함께 감당하기 보다는 침묵과 방관을 당당하게 선택하고 유도하는 아내.
얼마나 많은 이들이 평온한 일상을 유지하고 자본을 얻고자 하는 이유로 악행을 무관심하게 받아들였을까? 올바른 인간성을 터득한 사람이라면, 진정한 사회성을 학습한 사람이라면 '잘못된 것'이 무엇인지 정확하게 직시하고 고쳐야만 한다. 진정으로 숨어야 할 자는 펄롱도 아니고, 수녀원에 피해 당한 여성들도 아니다. 내가 하는 말과 행동이 어떤 영향력을 갖는지 깊이 사유하지 않는 사람 같지도 않은 사람들이 스스로를 부끄럽게 여겨야 할 것이다.
백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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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당신이 겨울에 보면 좋을 영화 5편
‘몽글몽글 심야영화’ Ep.02 당신의 겨울에 감성 이불을 덮어줄 영화 5편
크리스마스도, 2017년도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당신의 겨울에, 어두운 방에서 이불 덮고 귤 까먹으며 보면 좋을 영화 5편을 소개해드립니다.
렛미인 / 룸 / 브리짓존스의 일기 / 캐롤 / 러브레터
** 강한 스포일러는 없으나, 콘텐츠 특성상 일부 내용이 스포일러가 될 수 있다는 점 알려드립니다.
** 소개 순서는 영화의 선호도와 무관합니다.
** '몽글몽글 심야영화'는 모두가 하루를 마무리할 때 영화를 켜는 '환몽씨네'의 상명이가, 심야에 들려주는 영화 이야기입니다. 자기 전, 혹은 적적한 밤과 새벽에 한번씩 꺼내 먹는 조그마한 야식처럼 들어 주세요 :)
** 시간 관계상 아쉽게 소개해드리지 못한 영화 5선 (라라랜드 / 인사이드 르윈 / 헤이트풀8 / 물랑루즈 / 이터널 선샤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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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질(2021) 영화 예고편 분석
- 원작영화 "세이빙 미스터 우"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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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르: 액션, 스릴러
감독 | 각본: 필감성
제작: 강혜정
출연: 황정민
제작사: 외유내강
배급사: 대한민국 넥스트엔터테인먼트월드
촬영기간: 2019년 5월 15일 ~ 2019년 8월 13일
개봉일: 대한민국 2021년 8월
제작비: 80억 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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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대도시의 사랑법> 1차 예고편
사랑은 다 도파민의 농간인데 왜 저는 저 둘을 사랑하게 된거죠? ( ᐪ ᐪ ) 🎬 《대도시의 사랑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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