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노라마 2021-11-07 21:26:49
베스트 키즈
제이든 스미스, 성룡 주연의 액션영화이다.
타지로 이사온 주인공 드레가 쿵후를 배운 또래들에게 괴롭힘을 당하고, 한 아저씨에게 쿵후를 배워 그 괴롭힌 아이와 쿵후 대회의 결승에서 붙게되고 이기는 성장, 액션영화이다.
일단 중국에 이민한 미국인이라는 소재가 처음에 신선하게 다가왔고, 주제를 중국의 문화로 잘 넘긴다. 그리고 대회를 준비하고 부터는 액션의 비중이 늘어나며 더 흥미로워 진다. 또한 이민인 꼬마가 쿵후를 배운다는 메인 스토리 라인뿐만 아니라 주인공의 사랑, 한 아저씨의 과거 가족사 등 여러 흥미로운 점을 계속 주어서 좋았지만 마지막에는 그런 것들을 이어붙이기 위해 원래 엄청나게 엄격한 주인공 여자친구의 아버지가 사과 편지 한번에 표정이 풀리면서 대회에 딸을 구경하러 보내는 것을 허락하거나, 한 아저씨의 과거 와이프와 말싸움을 하다가 차가 미끄러져 자신을 제외한 가족이 죽는다는 과거, 그 트라우마를 이겨내는 모습을 보여주는데 그 스토리가 너무 이해하기 어렵고, 빠르게 진행된다는 단점이 있어서 아쉬웠다. 하지만 영화의 흥미를 위해 그럴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액션 또한 눈에 띄었다. 쿵후라는 특이한 무술의 액션을 카메라 무빙에 꽤 잘 담아낸 것 같았다. 특히 처음 한 아저씨가 드레를 괴롭히던 패거리를 상대할때 옷으로 다리를 빠르게 묶는 기술이나, 그런 연출들이 창의적이었고, 또한 서브스토리의 전개로 전체적인 액션의 완급조절이 아주 좋았다.
마지막에 웅장함을 더하면서 쿵후 대회를 이기고 영화가 끝나는 것 또한 깔끔했다고 생각한다.
출처 . 에디터_OREHFILL
Relative cont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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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생존의 과정을 이토록 생생히
눈으로 뒤덮인 산. 멀리서 보기엔 아름답지만, 그 안에 고립되어 살아가야 한다면 그곳은 생지옥이나 다름이 없다. 추위와 배고픔 등 생존을 위한 한계상황에서 인간은 얼마나 버틸 수 있을까? <안데스 설원의 생존자들>은 1972년 안데스산맥 오지에서 조난당한 이들의 실화를 영화화한 작품으로, 삶을 포기하지 않은 이들의 선택과 힘겨운 생존 과정을 생생히 옮겨 담았다.
영화 <안데스 설원의 생존자들> 스틸 / IMDB
1972년 우루과이 공군 571편이 추락한다. 위치는 안데스산맥 중심부. 여행에 부푼 마음을 안고 비행기를 탄 대학 럭비팀 일원들은 한순간 고립무원에 놓인다. 전체 인원 45명 중 생존자는 29명. 하지만 극한의 추위와 배고픔은 생존자들을 지독하게 괴롭힌다. 구조대가 올 것이라는 희망을 품은 이들은 어떻게든 악조건 속에서도 생존을 위해 안간힘을 내지만, 부상 당한 이들부터 한 명씩 숨을 거둔다. 게다가 식량은 바닥나고 굶주림은 심해지는데, 결국 이들은 죽은 시체를 먹기에 이른다.
<안데스 설원의 생존자들>은 1993년 개봉한 <얼라이브>에 이어 또 한 번 동일한 실화를 영화화한 작품이다. <얼라이브>는 각색을 통한 드라마 요소가 강했던 것에 반해, 이번 영화는 실제 일어난 사건을 최대한 사실적으로 그려내는 데 중심을 둔다. 연출과 각본을 담당한 후안 안토니오 바요나 감독은 파블로 비에르시의 저서 ‘눈의 사회’(La Sociedad de la Nieve)의 판권을 구매하고, 제작진과 함께 모든 생존자와 100시간이 넘는 인터뷰를 녹음하는 등 초기 작업을 견고하게 진행했다. 가명을 쓴 <얼라이브>와 달리 이번 영화에서는 실명을 사용하고, 극 중 세상을 떠난 이들의 모든 이름을 화면에 게재하는 등 생존자뿐만 아니라 유명을 달리한 이들의 존재까지 알리는 노력도 기한다.
영화 <안데스 설원의 생존자들> 스틸 / IMDB
확실히 눈에 띄는 건 다큐처럼 느껴질 정도로 구현된 영상이다. <더 임파서블>로 사실적인 쓰나미 재난 영화를 만든 바 있는 감독은 안데스산맥의 아름답고도 공허한 풍경, 비행기 추락 장면, 조난 후 추위와 배고픔에 고통받는 이들의 모습, 눈사태로 고립되는 장면 등은 관객들을 극한의 안데스산맥의 현장으로 데려간다.
특히 조난 후 유일한 거처가 된 사고 비행기 안에서 눈사태의 위협으로 사람들이 파묻히는 사고 장면은 그 자체로 위협감을 느낀다. 마치 거대한 자연(혹은 재난)이 ‘이래도 살아남을 거야’라는 말을 하면서 이들의 생존을 시험하는 것 같은 느낌이 들 정도다. 더불어 극한의 상황에 직면하고 그에 따른 고통의 강도는 인물들의 얼굴로 표현되는데, 유독 영화가 인물 클로즈업이 많은 이유는 여기에 있다.
이런 긴장감은 비주얼뿐만 아니다. 생존이 먼저인지, 인간성이 먼저인지에 대한 대립과 갈등이 시작되면서 극의 내적 긴장감도 더한다. 조난, 재난 등 특수 상황을 그린 영화에서 생존과 인간성 중 어떤 걸 선택해야 하는지에 대한 딜레마는 영화의 중요한 동력으로 작용한다. 자칫 윤리적인 문제로까지 치달을 수 있는 이 부분을 영화는 그들이 처한 최악의 상황을 인식시킨 후, 그 당위성을 확보하는데 주력, 인물들이 왜 그렇게 선택할 수 밖에 없는지에 대한 이해와 삶을 향한 의지를 부각한다.
영화 <안데스 설원의 생존자들> 스틸 / 넷플릭스 제공
영화는 인물들이 인육을 먹기까지 많은 고민과 보이지 않는 전쟁을 치렀다는 걸 보여준다. 모두의 생존을 위해 칼을 집어든 로베르트(마티아스 레칼트)와 그 반대편에 서서 인간성을 지키려는 누마(엔조 보그린칙)를 보여주며, 인육 취식은 그만큼 어려운 결정이었다는 걸 보여준다. 더불어 앞서 소개한 눈사태도 인육을 먹으며 배고픔에 대한 걱정이 없어진 후 이들에게 닥치는데, 마치 금기를 어긴 이들에게 신이 형벌을 내린 것 같은 느낌, 죄책감에 짓눌린 이들의 마음을 대변하는 듯한 느낌도 든다.
이런 일련의 과정을 통해 영화는 어떠한 역경이 와도 삶을 놓지 않는 게 인간다움이라고 말한다. 극 중 이를 잘 표현하는 건 난도(아구스틴 파델라)인데, 사고 후 큰 부상을 입고, 엄마와 여동생을 먼저 떠나보낸다. 하지만 현재 상황에 안주하지 않고 앞으로 나아가려했던 누마의 바통을 받아 그 또한 삶을 이어 나가기 위해 정진한다. 인육을 먹는 고통을 자처하더라도 사고에서 살아남은 삶을 살아가고 싶은 생존자들의 마음 또한 이를 같이 한다.
영화 <안데스 설원의 생존자들> 스틸 / 넷플릭스 제공
이들은 각고의 노력 끝에 생존하고, 병원에서 안식을 취하지만 결코 기뻐하지 않는다. 생존자들이 겪은 이 일에 대해 혹자는 기적, 혹자는 비극이라 말한다. 삶은 소중하지만, 이를 영위해 나가는 건 그만큼 어려운 일. 사고 당시 16명의 생존자 중 한 명인 구스타프 제르비노는 모 인터뷰를 통해 당시 경험으로부터 얻은 교훈을 이렇게 말했다. “삶이란 우리가 하던 일을 계속해 나아가는 것이다.” 50년 전에 일어난 기적 혹은 비극을 마주하는 우리들은 과연 어떻게 이 이야기를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
덧붙이는 말: <안데스 설원의 생존자들>은 제80회 베니스 국제 영화제 비경쟁 부문 초청작 및 폐막작으로 공개되었고, 제38회 고야상 13개 부문 노미네이트, 오는 7일(북미 기준) 열리는 제81회 골든 글로브 시상식 외국어영화상 후보, 제96회 아카데미 시상식 국제영화상 부문 스페인 대표 출품작이다. 과연 이 영화의 메시지가 수상으로 이어질지 귀추가 주목된다.
평점: 4.0 / 5.0
한줄평: 기적 혹은 비극을 마주하는 삶의 자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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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메뚜기 월드'가 된 <쥬라기 월드 3>의 의미와 한계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공룡들의 터전이었던 이슬라 누블라 섬이 파괴되고, 섬을 벗어나 세상 밖에 자리 잡은 공룡들. 세계가 혼란에 휩싸인 가운데 '오웬(크리스 프랫)'과 '클레어(브라이스 달라스 하워드)'는 공룡들을 보살피고, '메이지 록우드(이사벨라 써먼)'를 지키기 위해 작은 오두막을 떠나지 않는다. 그러던 어느 날, 복제 인간 연구를 진행하려는 기업 '바이오신'에 의해 메이지가 납치당하고, 오웬과 클레어는 메이지를 구하기 위한 여정에 나선다. 한편, 미국 서부에 나타나 농가들을 휩쓸고 다니는 거대한 메뚜기 떼를 조사하던 '엘리 새틀러(로라 던)'는 오래된 친구 '앨런 그랜트(샘 닐)'과 함께 메뚜기들이 바이오신의 유전자 조작으로 만들어졌음을 깨닫는다. 이에 엘리와 앨런은 그 증거를 확보하기 위해 과거의 동료인 '이안 말콤(제프 골드브럼)'의 도움을 받아 공룡들이 모여 있는 바이오신 소유의 보호구역으로 향한다.
<쥬라기 월드: 도미니언>은 1993년에 개봉한 <쥬라기 공원>을 시작으로 29년간 이어진 시리즈의 마지막 작품이다. 그래서 <쥬라기 월드> 삼부작의 주인공인 크리스 프랫과 브라이스 달라스 하워드부터 <쥬라기 공원> 삼부작의 주인공인 로라 던, 제프 골드브럼, 샘 닐까지 한 자리에 모여 피날레를 장식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피날레를 가장 화려하게 꾸며주는 이들은 역시나 공룡이다. 전편에서 이슬라 누블라를 탈출해 북미 대륙에 상륙한 공룡들은 이제 어디에서나 볼 수 있다. 항상 공원이라는 장소에 갇혀 있었던 공룡들은 이제 바다에서도, 눈 내리는 산맥에서도, 소들이 뛰어놀던 평원에서도, 심지어 암시장에서도 나타난다.
그런데 이번 영화에서는 한 가지 독특한 지점이 있다. 언제 어디서나 공룡을 만날 수 있는 세상을 배경으로 만들어 놓고도 영화는 정작 공룡에게 큰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 이번 작품에서 세상을 위기에 몰아넣은 것은 온갖 곳으로 퍼져 나간 공룡이 아니라 유전자 조작 메뚜기 떼이고, 영화의 메인 플롯도 유전자 조작 메뚜기를 개발한 기업인 바이오신을 고발하는 것이다. 이처럼 공룡이라는 소재에 국한되지 않는 대목은 긴 시리즈에서 반복되던 메시지를 탈피해 새로운 화두를 던지며 일견 <쥬라기 월드: 도미니언>만의 개성처럼 느껴진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진한 아쉬움이 남는 대목이기도 하다. 시리즈의 진정한 주역인 공룡의 임팩트가 약해지고, 시리즈의 마무리로서도, 또 단독 작품으로서도 완성도가 기대에 미치지 못한 결정적인 원인이기 때문이다.
<쥬라기 공원> 시리즈의 주제와 메시지
그간 <쥬라기 공원> 삼부작과 <쥬라기 월드> 1편의 주제는 분명했다. 인간의 기술적 진보에 대한 경고였다. 공룡이라는 환상 속에는 윤리 없이 유전공학을 상업적으로 이용하는 거대 기업들에 대한 비판, 돈과 명예를 좇아 경쟁적으로 발전할 뿐 자기 통제가 이루어지지 않는 현대 과학에 대한 경고, 인간이 자연을 제어한다는 것은 혼돈 효과에 의해 불가능하다는 통찰이 담겨 있었다. 이는 오리지널 삼부작에서 쥬라기 공원이 끝내 실패로 귀결되고, 성공적인 듯 보였던 쥬라기 월드마저 폐장해야 했던 공통의 원인이었다.
그러나 전편인 <쥬라기 월드: 폴른 킹덤>부터 시리즈는 기본적인 뼈대는 간직한 채 주제를 조금씩 확장시키기 시작했다. 화산이 폭발하며 파괴되는 이슬라 누불라 섬에서 공룡들을 구하기 위해 악전고투하는 오웬과 클레어의 이야기를 담은 전편은 두 개의 축으로 구성되었다. 인간과 동물의 교감이 한 축이고, 다른 생명의 흥망성쇠에 인간의 개입이 어디까지 허용될 수 있는지에 대한 질문이 다른 한 축이었다.
<쥬라기 월드: 도미니언>도 마찬가지다. 콜린 트레보로우 감독의 인터뷰에서 시리즈를 관통하는 주제 위에서 새로운 질문을 던지고자 하는 의도를 엿볼 수 있다. 그는 “이슬라 누블라 섬에서 데리고 나온 공룡들을 더 큰 세상 속에 풀어놓게 된 거예요. 그것의 결과를 탐험해 볼 수 있는 정말 멋진 기회였습니다. <쥬라기 월드: 도미니언>은 우리가 자연계의 힘을 존중해야 할 필요가 있다는 것을 말하는 영화입니다"라고 영화의 주제를 설명한다. 특히 '자연계의 힘'이라는 말은 영화가 공룡들이 일으키는 문제보다 거대한 메뚜기들이 일으키는 문제에 더 집중한 이유를 암시한다. 이제 <쥬라기 월드>는 단순히 공룡, 그리고 공룡과 인간의 공존을 넘어서서 인간과 공룡까지도 포함하는 쥬라기 '월드', 곧 공룡이 사는 '세계' 그 자체로 시선을 돌린다.
정치생태학적 메시지가 돋보이는 변화
<쥬라기 월드: 도미니언>의 변화에서는 미국의 정치 철학자인 제인 베넷의 그림자가 짙게 느껴진다. 정치생태학자인 그녀는 자연과 물질도 인간처럼 세계의 변화에 반응하는 적극적이고 능동적인 주체라는 주장한다. 그간 인간은 오직 인간만이 의지와 목적을 갖고 주변에 존재하는 환경, 사물, 비인간 생명체를 이용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베넷에 따르면 비인간 행위자에게도 인간처럼 의지와 목적을 가진 채 행동할 수 있는 잠재력이 있고, 비인간 행위자는 인간 행위의 방향성도 바꿀 수 있다. 인간은 식물, 동물, 무생물, 자연의 집합체로 이루어진 네트워크에 속해 있고, 인간의 모든 행위는 매 순간 사물과 결합해 효과를 일으키는 것이다. 인간의 문화가 자연과 뒤얽혀 활기차게 반응한 결과이듯이, 인간의 의도 역시 거대한 비인간 행위자인 자연과 환경을 만나 실현된다.
거대 메뚜기의 등장도 정치생태학적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바이오신은 유전자 조작으로 만든 곡물 종자들을 배포하고, 비대한 메뚜기 떼를 개발해 식량 공급망을 혼란시킨 후 식량 산업을 지배하려는 계획대로 움직이고 있었다. 하지만 바이오신의 계획은 뜻대로 진행되지 않는다. 메뚜기들 역시 그 계획에 반응하여 능동적으로 움직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자신의 계획이 탄로 날 것을 우려한 바이오신의 CEO '도지슨(캠벨 스콧)'은 증거 인멸을 위해 키우고 있던 메뚜기 떼를 모두 소각 처분한다. 그러나 예상하지 못한 수준으로 질긴 생명력을 지닌 메뚜기들은 연구실을 탈출해 공룡이 거주하는 숲 전체에 불을 퍼뜨리며 도지슨의 의도와는 정반대의 상황을 초래한다. 이는 인간의 모든 행위가 비인간 행위자의 의도와 반응과 만난 후에야 비로소 결과를 낳는다는 점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즉, 전편이 다른 생명체의 세계에 인간이 주체로서 어떻게 개입할 지에 주목했다면, <쥬라기 월드: 도미니언>은 한 발 더 나아가 인간과 비인간의 네트워크가 움직이는 방식을 비춘다.
영화는 이처럼 복잡하게 연결된 인간과 비인간이 서로 정동(affect)하는 모습을 감정적으로 그려내기도 한다. 그 중심에는 오웬과 벨로시랩터 '블루'가 있다. <쥬라기 월드> 시리즈에서 오웬과 블루의 관계는 항상 특별했다. 비록 누구도 쉽사리 공감하거나 이해하지 못했지만, 오웬은 언제나 블루를 조련할 방법은 없으며 그저 그의 선택과 행위를 존중할 수 있을 뿐이라고 말했다. 즉, 오웬과 블루는 동등한 주체로서 관계를 맺고 있으며, 인간과 공룡의 관계를 넘어 인간과 비인간의 관계를 상징한다. 그리고 이들의 관계는 세상을 바꾸는 결정적 기제가 된다. 바이오신이 새끼인 베타를 납치하자 극도로 난폭해진 블루. 그런 블루에게 오웬은 메이지와 함께 베타도 구해오겠다고 약속한다. 이후 그의 약속에 예상치 못한 유전자 조작 메뚜기 사태가 더해진 결과 바이오신의 악행은 온 세상에 공개되고, 공룡들에게는 삶의 터전이 생기며, 블루와 오웬은 각각 가족을 되찾는다. 메이지와 베타의 관계가 오웬과 블루처럼 진전되는 것은 덤이다. 이렇게 <쥬라기 월드: 도미니언>은 공룡에 국한되지 않는 상상력을 통해 자연계의 힘에 대한 메시지를 전달한다.
매력도, 비중도 없는 공룡들
문제는 공룡으로 인해 변화한 세계와 인간에 대해 이야기하다 보니, 정작 시리즈의 주역인 공룡의 매력과 비중이 모두 급감한다는 점이다. 실제로 작중 공룡들은 전개에 따른 부속품 정도로 묘사된다. 이는 지난 시리즈에서 다양한 공룡들을 지속적인 등장시키고, 그들의 독특한 행동양식을 부각하며 개성을 어필해왔던 것과는 대비를 이룬다. <쥬라기 월드>에서 비정상적인 흉포함으로 강렬한 인상을 남겼던 인도미누스 렉스, <쥬라기 월드: 폴른 킹덤>에서 생물병기로 길러졌던 인도랩터처럼 존재감을 과시하는 공룡을 찾아볼 수 없다. 대신 공룡들은 공룡 암시장이 있는 몰타에서, 하늘에서, 얼어붙은 댐 위에서, 그리고 지하 터널 등에서 주인공들의 길을 가로막는 장애물의 역할을 하는 데 그친다.
구체적으로 보면, 스토리 진행에 결정적 영향을 끼치는 블루만 하더라도 그 중요성이나 비중과는 별개로 시작과 끝에 겨우 모습을 비추는 데 그친다. 시리즈의 마스코트라고 할 수 있는 티라노사우루스 '렉시'의 대우도 다르지 않다. 첫 등장부터 마지막 액션씬까지 기가노토사우루스의 힘에 밀려 시종일관 제대로 싸우지 못하던 렉시의 모습은 시리즈의 상징에게 기대했던 것과는 거리가 멀다. 렉시가 다른 공룡과 협력하면서까지 기가노토사우루스를 쓰러뜨려야 하는 이유가 설명되지 않다 보니 렉시의 등장에는 반가움과 의문이 공존하기도 한다. 빌런 포지션에 가까운 기가노토사우루스 역시 평범한 육식 공룡에 불과할 뿐, 뇌리에 각인될만한 캐릭터성을 어필하지는 못한다. 심지어 후반부 공룡들의 액션씬에서 카메라가 공룡보다 싸우는 현장을 탈출하려는 인간에게 포커스를 맞추다 보니 이들의 존재감은 안타깝게도 더욱 줄어든다.
피날레로서도, 독립 작품으로서도 아쉬운 완성도
이에 더해 시리즈의 최종장으로서 <쥬라기 월드> 3부작과 <쥬라기 공원> 3부작을 모두 아우르려는 시도가 크게 성공적이지 못한 나머지 영화의 메시지가 묻히는 듯한 인상도 남는다. <쥬라기 월드: 도미니언>은 크게 세 개의 스토리로 구성되어 있다. 첫 번째는 오웬과 클레어, 그리고 케일라가 바이오신에게 납치된 메이지를 찾아 떠나는 이야기다. 두 번째는 엘리 새틀러 박사와 앨런 그랜트 박사의 이야기로, 그들은 거대한 유전자 조작 메뚜기와 관련된 진실을 찾아 바이오신 보호구역으로 향한다. 마지막은 도지슨의 음모를 저지하려는 이안 말콤 박사와 램지 콜의 서사다. 서로 다른 세 개의 스토리는 제각기 진행되다가 3막에 이르러 하나로 합쳐지고, 다양한 오마주를 통해 시리즈를 하나로 종합한다.
그러나 이러한 시도는 역으로 독립된 작품으로서의 완성도를 하락시키는 결과를 초래한다. 우선 세 개의 이야기를 묶기 위한 작위적인 전개가 눈에 들어온다. 예를 들어 바이오신 건물에서 탈출한 엘리, 앨런, 이안 일행의 차는 숲 한가운데서 전복되는데, 이 사고는 때마침 오웬과 클레어가 있는 바로 그 장소에서 일어난다. 또 복제 인간인 메이지를 세 스토리의 교집합으로 활용하는 것 역시 영화의 잠재력을 온전히 살리지 못한 선택처럼 보인다. 전편에서 미처 다 공개되지 않았던 메이지의 과거사는 원본과 복제본의 가치에 관해 깊이 있는 스토리텔링을 가능케 하는 극적 장치다. 그러나 메이지의 개인사를 철저히 가족애와 모성애를 강조하는 감정적 측면에만 제한한 결과, 그녀의 이야기는 다소 평범한 방식으로 소비되고 만다. 두 시리즈의 캐릭터들을 하나로 묶어서 시리즈의 전통도 살리고 향수도 고취하려던 선택이 부메랑이 되어 돌아온 셈이다.
마지막으로 다루고자 하는 바가 많다 보니 147분의 러닝타임에도 불구하고 조연급 캐릭터들의 동기를 설명하는 데 있어서 어려움을 겪는다. 제법 비중이 있는 조연인 '케일라 와츠(드완다 와이즈)'나 '램지 콜(마무드 아티)'만 해도 배경 설명이 없다. 케일라는 지나가다가 흘끗 본 아이(메이지)를 구하기 위해 직업과 목숨을 걸고 오웬과 클레어를 도울 정도로 정의감이 강한 인물이다. 그런데 영화는 케일라가 왜 그런 사람이 되었는지에 대해 아무 정보도 주지 않는다.
램지 콜 또한 바이오신 회사에 협력하는 중관 관리자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내부의 부패를 고발한 반전 있는 인물이다. 하지만 그가 왜 그러한 선택을 했는지에 대해서는 설명이 없다. 시리즈의 메인 악역이었던 '헨리 우(B.D. 웡)'도 다르지 않다. 그는 자신의 과오를 반성하며 양심의 가책을 느끼는 모습으로 등장하는데, 영화 내에서 그 과정은 제시되지 않는다. 이렇게 주인공들을 제외한 캐릭터들이 도구적으로 활용된 결과 영화 전반의 개연성도 부족해진다.
물론 <쥬라기 월드: 도미니언>은 오락영화로서, 또 블록버스터로서의 역할을 적절히 수행해낸다. 특히 중반부 몰타에서 펼쳐진 공룡과의 속도감 있고 강렬한 추격씬은 마치 <분노의 질주>를 연상케 한다. 수많은 오마주를 통해 <쥬라기 공원> 시리즈 팬들의 추억을 자극하는 점도 충분히 감동적이다. 그러나 마지막이라는 이유로 너무 힘을 많이 준 탓일까? <쥬라기 월드: 도미니언>은 시리즈의 끝으로서도 독립된 작품으로서도 기대에 미치지 못하며, 야심 차게 준비한 메시지마저 온전히 전달하지 못한 채 일단락되는 듯 보인다.
A(Acceptable, 무난함)
쥬라기 '월드'와 '쥬라기' 월드 사이의 불협화음 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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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성들은 환호하고 여성들은 불쾌해하는 영화의 뒷면
*스포 포함
애마는 유명한 19금 영화 <애마부인>을 모티브로 만든 시리즈이다. 시리즈를 보기 전에도 제목만 듣고서는 애마부인을 떠올릴 수 있을 정도로 애마부인은 오로지 "야함", "자극"으로 유명한 영화인데 이를 어떻게 풀어낼지가 가장 궁금했다. 보기 전에는 이하늬, 조현철, 진선규 등 연기 잘하는 것으로 유명한 배우들이 출연하여 더욱 기대감이 컸다.
1980년대 영화 시장
이 드라마는 새로운 신인배우인 주애(방효린)가 기존 유명 배우인 희란(이하늬)을 재치고 애마 부인으로 스타덤에 올랐다는 내용을 담는다. 희란을 보고 꿈을 키워온 신인 배우 주애는 노출, 19금 장면이 가득한 자극적인 각본들에도 성공하고 싶다는 일념 하나로 모든 걸 바쳐 성공한다. 언제까지나 표면적으로 보면은 그렇다.
드라마의 배경은 1980년대이다. 1980년대를 배경으로 한다는 것은 민주화 운동을 얘기할 것이라는 예고다. 애마 역시 그렇다. 극 중 <애마>에서 나오는 대부분의 시련은 시대 배경 때문에 발생한다. 야한 장면을 넣고 싶은 감독(조현철)의 요구 또한 올바른 문화를 만든다는 정부에서 컷 당하고, 희란을 포함한 여러 배우가 윗선에서 하는 모임, 파티 등에 끌려가 속된 말로 술집 여자처럼 춤추고 옷을 벗고 그들의 방 안까지 들어가야 하는 이유가 이것이다. 그들에게 잘 보이지 않으면 영화는 없다.
영화사 사장(진선규)은 배우들을 팔아넘기고 주변 스태프들은 침묵한다. 말하면 죽여버리겠다는 경고에 쉽게 말할 수도 없고 배우들은 착취의 길로 빠져 죽기까지 한다. 도무지 인권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데 사장은 오히려 이것을 기회로 삼아 그들과 연을 만들고, 장부를 만들어 윗선을 견제할 생각까지 한다.
극 중 계속 나오는 단어가 썅X인데 주인공인 희란은 초반에는 나에게 못되게 대하는 여자, 감당하기 힘든 여자로서의 썅X으로 묘사되다가 후미에서는 이런 그지 같은 상황 속에서 악바리로 버티는 썅X으로 감히 존경스럽게까지 여겨진다. 이런 시대 상황 속에서 희란은 자신의 먼저 걸어온 길을 후배들이 겪지 않기 하기 위해, 굴복하지 않기 위해 고개를 더 뻣뻣이 드는 썅X이 된다. 그런 희란의 노력 덕에 주애는 모욕을 참지 않는 사람, 영화를 위해 나까지 버리지 않는 사람이 된다.
마지막 화쯤 되어서, 희란은 이런 시대의 고리를 완전히 끊기 위해 배우 인생을 놓을 각오를 하고 진실을 밝힌다. 그들을 돕는 사람들도 목숨을 다해 진실을 알리고자 하고, 영화를 위해 배우를 팔던 사장은 그토록 원치 않은 안기부로 들어간다. 다른 의미의 새 시대의 영화를 맞이한 것이다.
야한 영화의 감독
애마의 스토리, 연출, 호불호야 어쨌든 가장 인상 깊은 장면이 뭐냐, 이 드라마의 의의가 뭐냐 한다면 나는 망설임 없이 초반에 나온 이 말을 뽑겠다. " 각본이랑 XX하지 말고, 실제 여자랑 좀 해." 극 중 어리숙하고 현실에서는 말도 잘 못하는 감독의 노출, 욕망, 말도 안 되는 에로티즘을 그득히 넣은 각본을 보고 10년 차 배우인 희란이 하는 말이다. 희란이 받아본 각본은 도대체 주인공이 어디서 어떻게 욕망을 느낀다는 건지 이해는 어렵지만, 여하튼 감독이 보고 싶은 것이 분명한 것들로 꽉꽉 차있다. 다르게 말하면 "더럽고 저급하지만 보고 싶은" 장면들의 연속이다.
감독은 은근한 것을 원했다. 은근히 꼴리는 거. 사람들이 찾는 것. 그것이 아니지만 그것을 상상할 법한 것. 1970년대까지의 영화의 문법을 충실히 따르고자 한다. 다만 영화사 사장은 새 시대가 열렸으니 대놓고, 모두가 알만한 야한 장면을 원한다. 충실한 욕망, 자극적인 19금. 그저 잘 팔리고자 하는 것이 중요하다. 다만, 예술적 욕망을 원하는 감독이든, 상업적 욕망을 원하는 영화사 사장이든 그중 어느 것도 "여성의 욕망"의 형태는 없다. 그래서 희란은 "새로운 애마부인"을 요한다.
감독은 말한다. 여성이 소심해서 직접은 말하지 못하지만 속으로는 은근 원하고 있던 그 욕망을 윗집 사는 첫사랑이 여성을 거칠게 억지로 범하는 것으로 해소하는 것이라고. 이것이 숨겨진 여성의 진짜 욕망이라고. 다만 희란은 새로운 1980년대를 본다. 사장은 대놓고 19금으로 새 시대를 열고자 한다면 희란은 여성도 납득 가능한 이야기를 하고자 한다. 단순히 벗는 얘기가 아닌 정말 여자의 이야기. 남자에서 벗어나 여성 둘이서 새 인생을 찾아가는 이야기.
외압에 의해 사장의 손으로 그 더러운, 잘 팔리는, 남성은 환호하지만 여성은 불쾌한 영화가 세상에 나왔지만 희란의 이야기는 뒤늦게라도 오리지날레라는 이름으로 등장한다. 현재까지도 영화사 사장의 상업적인 야한 영화나 감독 같은 은근히 예술적으로 야한 영화가 지판에 널리고 널렸지만 희란의 "진짜 여성의 욕망"을 넣은 영화는 드물다. 19금은 남성의 전유이고, 그들의 욕망을 위한 것이라는 인식이 2025년까지 크게 변하지 않기 때문이다. 여전히 링 위에서 이를 악물고 관심을 받기 위해 이 직업을 이어가기 위해 옷을 벗는 여성 배우들이 존재한다. 그래서 나도 이 말을 대신 바치고 싶다. "각본이랑 하지 말고 실제 여자를 좀 만나라"라고.
애마의 이야기
애마는 하고자 하는 이야기는 분명했으나 아직 내가 준비되지 않은 상황에서 준비되지 않은 이야기를 많이 하긴 했다. 희란이 많이 참고 있었고 할 말을 했다는 건 알겠지만, 민주화 단체의 활동이나 그들의 조력자가 어째서 마음을 굳힌 건지 등의 이야기는 분량 상인지 그닥 도파민이 돌지 않아서인지 많이 빠져있다. 그래서 마지막 화가 나왔을 때는 조금, 아니 많이 당황스러웠다. 말을 타고 가는 장면은 영화 <러브라이즈 블리딩>의 마지막 부분이 떠오르기도, <델마와 루이스>의 한 장면이 생각나기도 했는데 일부로 판타지스러운 느낌을 주고 싶었나 생각했다. 다만 당혹스러움은 어쩔 수 없었다.
하지만 짧은 화 탓에 충분히 킬링타임 용으로 좋았고 이하늬, 진선규, 특히 조현철의 연기가 연기라고 볼 수 없을 정도로 자연스러웠다. 다만 인물 간 관계성이나 개연성을 제대로 느끼기에는 6화는 많이 짧았다. 말하고자 하는 내용은 많은데 킬링타임용은 되어야 해서 그것을 생략하고 축약하다가 살짝 아쉬워졌지만 그 덕에 접근성은 좋아진 듯하다.
웃기지만 생각할 만한 주제가 있는 드라마를 보고 싶을 때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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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축생도를 가로지르는 예수
해당 리뷰는 씨네랩의 초대를 받아 시사회 관람 후 작성되었습니다. :)
붉은 조명 속에서 카산드라(산드라 지말스카)는 쓰러진 이오를 부둥켜안고 소리친다. 이윽고 시간이 빠르게 역재생되며 이오를 일으켜 세운다. 붉은 조명 대신 눈부신 스포트라이트가 공연 무대 위에 꼿꼿하게 서 있는 카산드라와 이오를 비춘다. <당나귀 EO>는 ‘이오’(당나귀의 울음소리에서 빗댄 이름)의 부활로 시작하는 영화다. 부활은 이 당나귀의 구도자적 여정을 암시한다. 이미 한번 죽음을 맞이했던 당나귀는 지금 자신이 서 있는 곳보다 더 낮은 자리로 향한다. 공연장 바깥에서는 ’동물 서커스 중단‘을 외치는 동물권 단체의 시위가 한창이다. 법에 따라 이오는 서커스단을 떠나 다른 곳으로 인도된다.
서커스 무대에서 카산드라와 이오는 함께 연기했지만 공연의 주인은 엄연히 카산드라다. 이오는 서커스 공연의 도구일 뿐이다. 그러나 카산드라와 이오는 공연자와 도구를 넘어선 정서적 교감을 이루었다. 카산드라의 곁을 떠나 마주하게 된 다양한 축생도의 삶 속에서 카산드라와 같은 교감은 이루어지지 않는다. 경주마 목장에서 짐을 옮기고, 아이들을 위한 체험용 당나귀가 되고, 야생의 숲 속에서 밤을 지새우며, 여우 모피 공장과 살라미용 말고기 트럭을 거쳐 황량한 외진 저택에 이르기까지 장소에 따라 이오는 다양한 역할과 기능을 수행한다. 어디에서도 소통과 교감을 기대할 수 없다. 이오는 계속해서 카산드라의 손길과 눈길을 그리워한다.
극 중 이오의 역할을 맡은 당나귀는 모두 여섯 마리다. 이오는 다양한 장소로 이동하는데 공간의 이동은 의도적으로 분절된다. 다양한 장소에서 다양한 역할과 기능으로 쓰이는 이오는 모두 다른 당나귀이자 하나의 당나귀다. 각기 다른 여섯 당나귀가 하나의 메시지를 연기하는 같은 당나귀인 것이다. 동물 배우를 배려하기 위한 이 선택은 모든 동물이 ‘너’이자 ‘나’인 영화의 메시지와도 일치한다.
중간중간 삽입되는 붉은빛의 시퀀스는 각기 다른 동물의 시점을 보여준다. 숲 위를 활강하는 듯한 버드아이뷰의 시퀀스는 웅덩이에 처박히는 새의 시체로 끝난다. 목장의 백마는 좁은 운동장을 기계에 매달려 둥글게 맴돈다. 네발 로봇은 쓰러지고 달리다 반사체에 비치는 자신의 모습을 보고 혼란스러워한다. 이처럼 동물 혹은 동물 아닌 존재들은 폐쇄된 공간에 갇혀 존재적 고립을 겪으며 죽음을 목전에 두고 있다. 붉은빛의 시퀀스는 곧 축생도의 다양한 죽음의 모습이다. 감독은 이 축생도에 인간을 포함한다. 살라미용 말고기를 운반하는 트럭 운전사는 먹을 것을 구하는 흑인 여성에게 먹을거리를 주고 성관계를 제안한다. 여성은 도망가고 운전사는 괴한에 의해 죽는다. 트럭 내부의 붉은 조명이 그를 붉게 비춘다.
이오는 의문의 남자를 따라 외진 곳에 있는 황량한 저택에 도착한다. 시공간이 분리된 듯한 저택에서 등장하는 인물들의 관계 역시 모호하다. 엄마와 의붓아들로 보이는 이들은 종교적 예식을 치른 뒤 부정한 관계의 뉘앙스를 풍긴다. 이곳에서 이오는 아무 쓸모가 없는 외부의 존재다. 이때 이오를 향해 대문이 열리며 파란 화살표가 보인다. 저택을 나선 이오는 거대한 물줄기가 흐르는 댐 앞의 다리 위 정점에 멈춰 선다. 마치 ‘어디로 갈 것인가’ 고뇌하는 것처럼. 이오는 물줄기가 그러하듯 더 낮은 곳으로 향한다. 이때 물줄기는 시간을 거슬러 다시 한번 역재생된다.
이오를 부활케 했던 역재생이 다시 반복되며 죽음으로 향한다. 마침내 이오는 소 도살장의 한편에 서게 된다. 이곳에서 이오는 자신의 방향을 선택하지 못한다. 귀에 번호표를 단 소들 사이에서 이오는 겁에 질린 채 도축의 행렬에 내몰린다. 이오는 축생도에서 가장 흔하고 초라한 방식으로 죽음 앞에 선다. 그러나 이오는 몸소 그곳에 존재한다. 계속해서 더 낮은 곳으로 향했던 이오의 여정은 그렇게 끝난다. 축생도를 가로지르는 당나귀의 수난사는 인간 사회를 비판적으로 가시화하는 한편 보잘것없다고 여겨지는 당나귀의 생생한 실존을 가시화한다. 대사가 없는 주인공이 존재적으로 내뿜는 함의는 이러하다. ‘내가 여기 있었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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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JIFF 데일리] 이별부터 공존까지 멀지 않은 우리 사회의 일부.
한국단편경쟁 6은 4개의 단편 영화를 하나로 묶어내었다. <너에게 닿기를>, <작별>, <분리에 대한 중요한 발견과 그에 따른 몇 가지 불안>. <곰팡이>으로 구성되어 있는 영화이다.
너에게 닿기를
오재욱 감독
시놉시스
학급반장 수진은 의도치 않게 같은 반의 청각장애인 주연을 다치게 한다. 수진은 친구들과 함께 주연을 찾아가 사과하려고 하지만, 주연은 사과를 받지 않고 친구들은 도움이 되지 않는다.
리뷰
여러 가지 수단으로 전달되는 말과 표정의 중요성.
반장인 수진이 같은 반 청각장애인인 주연을 다치게 했다. 그로 인해 주연에게 찾아가 사과를 하려 하지만 주연은 그 사과를 받아주지 않는다. 그 과정에서 수진은 '수화'를 통해 자신의 진심을 전달하려 하지만 어떤 방법을 써도 도무지 전달되지 않는다. 무표정 때문일까. 어떤 말도 듣고 싶지 않은 마음일까. 알 수는 없지만 이대로 멈출 수는 없었다. 오늘 안에 사과를 건네고 오해가 풀리길 바랄 뿐이다.
어떤 대상에게 말을 건넨다고 해서 나의 모든 말이 누군가에게 닿는 것은 아니다. 강요하는 것보다 자연스레 받아들여지는 것이 더 중요하다. 누군가가 나의 이야기를 다 알아봐 주는 것은 당연한 일이 아니다. 심지어는 무언의 목적으로 인해 사과를 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너에게 닿는 그 순간은 어떤 ‘오해’에서 벗어나 다시 진심이 통하는 것으로 이어진다. 공유하는 건 형식적인 말이 아니라 감정이 그대로 담겨 있는 진심이 더 중요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영화이다. 말을 하지 않아도 알 수 있다는 말과는 다르게 말을 해야만 알 수 있다고 말한다.
작별
공선정 감독
시놉시스
사고로 친구를 잃은 영주는 외상으로 인해 대학을 휴학했다. 그리고 정신과 치료를 병행하며 중학생들에게 진로상담을 해주는 봉사활동을 하고 있다. 시간이 흘러 어느덧 영주는 치료와 봉사활동의 마지막 날을 앞두고 그해의 가을을 맞이하게 된다. 친구와 작별한 지 1년째 되는 10월, 영주는 상실의 고통으로부터 회복하게 되었을까.
리뷰
누군가의 슬픔은 그 자체로 받아들여져야 하지만 우리의 현재는 그렇지 않다. 언제부턴가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에서는 ‘슬픔’이라는 감정에 굉장히 피로도가 높아졌다. 그래서인지 누군가에 대한 위로와 추모보다는 원인에 대한 책임이 우선시 된다. 정작 해결해야 할 것은 해결되지 않은 채, 상황과 추측만이 남아있다. 사회에서 수많은 슬픈 일들이 반감을 일으키는 일이 된 건 무엇 때문일까. 사회가 받아들이지 않는 것보다 ‘나 자신’이 받아들일 수 없는 이별에 대해서 중점적으로 이야기하는 영화이다.
분리에 대한 중요한 발견과 그에 따른 몇 가지 불안
전찬우 감독
시놉시스
임신 사실을 알게 된 연인의 집에 모르는 남자아이가 텔레비전을 고쳐 달라며 찾아온다. 순순히 텔레비전을 고치는 남자와 그 모습이 이해가 가지 않는 여자. 여자는 아이를 경찰에 신고하고 아이 엄마를 기다린다. 늦은 밤. 아이 엄마는 연인의 집에서 아이와 재회한다. 아이가 떠난 연인의 집. 두 사람은 아이가 남긴 텔레비전 사이에서 서로에 대해 이야기하고 다시 재회한 아이와 아이 엄마는 연인의 집에 두고 온 텔레비전에 대해 이야기한다.리뷰
두 사람이 외출한 사이, 모르는 남자아이가 집에 앉아있다. 텔레비전을 고쳐주면 가겠다고 말하는 아이, 그 말을 들은 남자는 순순히 텔레비전을 고친다. 하지만 그 모습이 이해가 가지 않는 여자는 아이를 경찰에 신고하고 아이의 엄마를 기다린다. 늦은 밤이 되어 아이 엄마가 연인의 집에 찾아왔고, 아이와 다시 재회한다. 아이가 떠난 연인의 집. 두 사람은 아이가 남긴 텔레비전 사이에서 서로에 대해 이야기하고 다시 재회한 아이와 아이 엄마는 연인의 집에 두고 온 텔레비전에 대해 이야기한다. 서로가 중요해서 떨어질 수 없지만 함께 할 수도 없는 사이에 대한 어떤 정의를 보여주는 영화일까. 여러 가지 의문이 들었던 영화였다. 장면이 조각조각 연결되며 같은 시간 속 다른 대화는 더욱 희미하게 흩어진다.
곰팡이
박한얼 감독
시놉시스
30대 여자 J는 배우자의 유골에 곰팡이가 피어있는 것을 발견한다. 그 곰팡이를 밥에 올리자, 곰팡이가 스스로 움직여 음식을 찾아간다. J는 곰팡이 핀 음식을 욕조에 넣어 무언가를 만들기 시작한다.리뷰
J의 상황이나 과거를 제대로 알 수는 없었지만 분명한 건 배우자의 존재는 J의 모든 것이나 다름없었다는 것은 분명히 알 수 있었다. 그래서인지 곰팡이에 영혼이 스며들어 있는 듯 보였다. 자리를 옮겨가며 검은색 자국을 조금씩 넓혀가는 모습을 지켜보며 J는 무슨 생각을 했던 걸까. 곰팡이가 핀 음식을 욕조로 옮겨 담으며 무언가를 만들고 그 속의 자신을 담근다. 그렇게 해서라도 비로소 하나가 되는 그 모습은 진정으로 바라던 것일까. 진짜가 아닌 것에 빠져들게 하는 상실의 마무리가 참으로 무섭게 여겨졌다. 굉장히 강렬한 인상을 주었던 영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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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로소 죽음으로 완성되는 삶.
인생은 자신의 의지에 의해 이루어지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짧지만 빼곡하게 놓여있는 한 여인의 삶을 바라보며 개인을 보호해주어야 할 사회가 그 역할을 하지 못하면서 개인에게 쏟아지는 비극이 얼마나 참혹한지를 느끼게 한다. 인물의 감정에 보다 객관적인 시선으로 바라볼 수 있게 하는 소격 효과를 통해 우리의 삶까지도 되돌아보게 만드는 영화 '비브르 사 비'를 소개한다. 1962년에 장 뤽 고다르 감독에 의해 만들어진 고전 영화지만 여전히 반짝반짝 빛나고 있다. 어떻게 인생과 끊임없이 연결된 이 영화를 사랑하지 않을 수 있을까.
배우를 꿈꾸는 나나는 자신의 원하는 순간에 도달하지 못하는 상황이 반복되는 현실에 분노한다. 하지만 누구 하나 그녀의 마음을 헤아려 주지 않는 탓에 날카로운 말을 뱉어낼 뿐이었다. 배우를 하고 싶은 열망은 더욱 거세지지만 쉽게 펴지지 않는 평온함에 격렬한 몸짓을 행한다. 현실에 안주하지 않고는 성공을 향하는 길이 없다는 것을 알게 된 나나는 행동의 책임이 자신에게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꿈을 위해 뛰어든다. 그 무서운 말은 맴돌고 맴돌아 다시 나나를 찾아온다. 그녀가 세상에서 사라져도 여전히 남아있을 말의 잔혹한 모습이다.
책임이라는 단어로는 설명되지 않을 그녀의 삶은 꿈과 자유를 향해 나아가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모습으로 더욱 극대화된다. 돈이 없으면 삶의 궁핍해지고 돈을 벌면 그녀의 꿈과 멀어지는 의도치 않은 상황을 마주하며 나나의 일은 족쇄가 된다. 자신의 선택으로 이루어진 행위였지만 결코 그 행위는 자신의 의지대로 되지 않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이 냉혹한 현실 속에서 나나의 편이 되어주지 않았던 세상은 그녀를 무참히 짓밟고 마치 자유가 세상에 존재하지 않았던 단어였던 것처럼 그녀의 영혼도 소멸시킨다.
이 혹독함 속에서도 진리를 좇고자 하는 그녀의 의지는 여전히 살아 숨 쉬고 있었다. 어떤 카페에서 만난 철학자를 만나며 나나의 깊고 짙은 생각이 잘 드러나는 장면이었는데, 늘 타인의 의지대로 행동해 왔던 나나가 대상에 대한 밀도 있는 생각에 대해서 말을 하는 모습이 보인다. 목적의 대상이 아닌 그 자체로 바라보는 시선은 물론이거니와 삶의 태도에 대해 생각해보게 하는 건, 결코 나나에게만 해당되는 말은 아니었다. 자신의 생각 그대로 말이 만들어지지 않는 답답함에 질문을 건네기 시작하며 이야기를 나눈다. 말이라는 본질에 대해 생각하면 할수록 자신의 현실과는 정반대의 모습을 하고 있는 탓에 더욱 비참하게 느껴졌다. 그저 생계유지에 불과한 일이지만 하면 할수록 빠져나올 수 없는 수렁에 불과했다는 것을 그녀도 알고 있었을 것이다.
'비브르 사 비(Vivre Sa Vie)'는 이 영화의 제목으로 자기만의 인생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자신이 지향했던 삶의 모습과는 다른 모습을 살았던 나나의 모습이 더욱 참혹하게 느껴진다. 왜 세상은 힘없는 개인에게 더 엄격한걸까. 그녀가 마주한 현실과는 달리 원하던 대로 스스로 판단하고 선택할 수 있었다면 꿈도 사랑도 잃지 않았을 것이고 결말 또한 자신의 의지대로 바꿀 수 있었을 것이다. 쉽지 않은 이 삶 속을 유영하는 영화는 다큐멘터리와 드라마 사이를 오가며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자기만의 인생에서 행복한지를 묻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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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영화가 실화라는 사실에 할 말을 잃었습니다. 보시면 압니다.[결말포함]
영화에취한다 비지니스메일: allwey02@gmail.com
영화: 헌팅 오브 힐하우스
이 영화는 원 저작권자(배급사)의 사용 허가를 받은 영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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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반드시 알아야 할 완다비전의 새로운 사실들
#산돌구름 #완다비전 #EW
"마블쟁이는 산돌구름에게 폰트를 지원 받았습니다"*영상 타임라인*
00:00 인트로
00:39 미국의 TV 황금기, 시트콤
01:37 리얼 시트콤 with 라이브 청중
02:16 완다 & 하우스오브엠
04:00 인피니티 사가의 보상들?
04:56 키스씬
05:27 아웃트로2020. 11. 17 영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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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블쟁이 인스타그램: @marvel_jeng2* 영상에 사용된 모든 음악은 Epidemicsound 의 정식 라이센스 음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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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프렌치 디스패치> 리뷰 예고편
20세기 초 프랑스에 위치한 오래된 가상의 도시 블라제
다양한 사건의 희로애락을 담아내는 미국 매거진 ‘프렌치 디스패치’
어느 날, 갑작스러운 편집장의 죽음으로
최정예 저널리스트들이 한자리에 모이고
마지막 발행본에 실을 4개의 특종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하는데…!
당신을 매료시킬
마지막 기사가 지금 공개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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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수색자> 티저 예고편
어두운 밤 총성이 울린 후 파견 나온 교육장교가 사망하는 사건이 일어난다.
같은 시각 출입통제구역 DMZ로 탈영병이 도주하는 일이 발생하고 3소대는 DMZ 수색 작전에 긴급 투입된다.
그곳에서 대원들은 탈영병도, 수색 대원도 아닌 정체불명의 병사를 목격한다.
그리고 알 수 없는 죽음의 릴레이가 시작되는데..
모든 건 바로 그날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