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예슬2021-11-25 20:52:49
남들의 시선이 아닌 내 시선으로 살아가기를, <스왈로우>
스왈로우 리뷰
넓고 쾌적한 집, 다정한 남편, 경제적으로 남부럽지 않은 이 배경은 겉으로 보기엔 아무런 문제가 없어 보인다. 스왈로우를 보며 인생은 멀리서 보면 희극,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라는 말이 생각났다. 그 사람이 행복해보이는지 자유로워보이는지는 그 사람의 이야기를 듣기 전까지는 알 수 없다. 이 말은 헌터의 인생에도 적용해볼 수 있다.
먹어서는 안 될 것들을 먹는 헌터를 보며 시각적으로 보기에 불쾌했고 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너무 괴롭기까지 했다. 이식증과 헌터가 갖고 있는 서사가 연결성이 있는지는 사실 그렇게 중요해보이지 않았다. 너무나도 완벽해보이는 헌터의 결혼생활이 그렇게 행복해보이지도 않았고 헌터의 외양마저 헌터 자신의 것이 아닌 것 같았다.
헌터의 이야기는 상담실에서 자신의 배경을 설명하면서 시작된다. 이전까지는 주어진 배경이나 선택에 순응했다면 상담 이후 헌터는 누군가가 자기에게 강요하는 선택들을 좀 더 적극적으로 거부하며 자신을 드러내기 시작한다. 남편을 위한 선택이나 태어날 예정인 아이를 위한 선택이 아니라 자기 자신을 위한 선택을 하기 시작한 행동들이 마음에 들었다. 임신중절약을 삼키는 행위를 제목과 연관지어 말한 동아리원의 감상도 인상깊었다. 나는 이 감상문을 보고 무언가를 하기로 마음먹은(스왈로우)것도 제목과 연관이 있지 않을까 생각하게 됐다.
내가 마음먹고 싶은 것은 무엇일까?
나는 늘 걱정과 불안을 안고 살아왔기에 그때마다 새로운 다짐을 하기 바빴다.
수없이 삼키고 삼켰지만 별다른 변화가 일어나지 않았을 때 더욱 좌절했다.
그렇지만 생각해보면 영화 속 헌터가 수많은 것들을 삼키며 마침내 그것을 실제 현실에서 드러내기까지 오랜 시간을 버티고 이해할 수 없다는 시선을 견뎠던 것처럼 나도 수십번 수백번 그런 다짐을 삼키며 그것을 실제로 드러내볼 수 있기를 바란다.
Relative cont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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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빛나는 외톨이별처럼
아직 내가 서울시민이 아니었던 10년쯤 전, 도지사 선거를 앞두고 정치인들이 벌이는 설전을 보았다. 한 후보가 세계 최고의 무엇을 도내에 들이겠다고 했고, 상대 후보는 "왜 최고여야 하나?"라고 되물었다. 최초, 최고 속도, 이렇게 최(最)가 붙는 것들의 존재가 정말 우리에게 필수조건인지 의문을 제기한 것이다. 정치인들의 대화에서 자주 등장하는 화법은 아니었다.
그러게, 왜 최고여야 하지? 우리가 왜 꼭 첨단의 첨단을 달려야만 하지? 지켜보던 나도 같은 의문을 품었다. 그가 도지사 후보로 나갔다는 것조차 가물가물해진 지금도 그 말만큼은 마음 한쪽에 남아있다가 가끔 떠오른다. 아마 지금 내가 서울시민으로, 서울에 살면서 느끼는 것들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도시는 끊임없이 우리에게 메시지를 던진다는데, 내게 서울은 시간의 첨단을 달리는 도시로 보인다. 앉아있으면 온 도시가 나에게 그렇게 말하는 것만 같다. 첨단의 첨단을 달려야만 한다고. 새로운 것들을 계속해서 좇아야 한다고. 그렇게 가만히 있으면 안된다고.
어쩌면 내가 음악이든 영화든 앞에 "인디"가 붙는 것들을 좋아하는 이유 또한, 서울에서 받는 그 메시지에 대한 저항인지 모른다. 독립영화나 인디음악은 자본의 영향력이 적다는 뜻이니 뒤집어 말하면 창작자가 더 극명하게 묻어난다는 소리니까. 창작은 어떻게든 창작하는 이의 시간을 헤집으니까. 혹시 첨단의 첨단 기술을 동원한다 해도 그건 창작의 도구일 뿐 결코 전부가 되지 못한다. 창작자의 시간은 선형으로 흐르지 않아, 현재 아닌 시간의 것들이 어떻게든 묻어나게 돼있다.
도시의 욕망과 나의 욕망 사이에서 제각각의 길을 찾는 것이 창작은 아닐까, 생각했던 적이 있다. 그렇게 영화나 음악을 만들어내는 사람들을 보며 했던 생각이다. 그리고 그때마다 같이 떠오르던, 나는 그런 식으로 글을 써낼 수 있을까 하는 불안한 마음. 그리고 이 영화, <다시 만난 날들>은 어쩐지 그런 상념들을 다시 끌어내 준다.
연주하고 곡도 쓰고, 아직 본인의 앨범을 내지는 못했지만 차곡차곡 음악을 쌓고 있는 주인공 태일(홍이삭)은 동료에게 대형 기획사 대표를 소개받는다. 대표는 "뻔한 사랑 노래" 같은 게 좋다고, 트렌디하고 쉬운 게 좋다고 대놓고 이야기하면서, 태일의 곡을 들어보자고 한다.
실력이 인정받고 있지만 자기 음악을 하기엔 아직 자리가 잡히지 않은 애매한 상태. 그 불안한 자리에 있던 태일은 문득 바닷가 마을로 향한다. 오래전 친구들과 밴드를 하던 기억이 스틸 사진처럼 남아있는 곳. 여전히 그곳에 살면서 음악학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는 지원(장하은)을 만나, 찬찬히 시간을 보낸다. 잘 풀리지 않던 곡의 후반부를 지원과 함께 쓰고, 중학생 밴드 아이들의 노래를 보아주고. 그렇게 마음의 코드까지 하나하나 짚는 모습을 살뜰히 보여준다.
그들이 만나는 곳- 내부는 따뜻한 노란 조명으로, 바깥은 푸른 보랏빛 조명으로 덮인 음악학원이라는 공간은 과거의 추억을 가득 담고 있다. 동시에 이제 막 음악에 첫 발을 떼는 중학생 밴드 '더 디스트로이어'가 새싹처럼 자라나는 장소이기도 하다. 필름 사진 속 지금 보면 촌스럽기도 하고 투박하지만 즐거웠던 시절의 그들과, 이제 막 밴드라는 작업의 재미와 신뢰를 알아가는 중학생 손에 들린 필름 카메라. 어쩌면 과거는 미래를 닮아있는지도 모른다. 다 카포Da Capo,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여 흘러가는 시간이어서일지도 모르겠지만. 아이들의 성장과 어른들의 성장이 나란히 포개지며 영화는 흘러간다.
음악을 해본 적이 없는 나로서는, 글을 쓴다고 컴퓨터나 노트 앞에 혼자 앉아있는 것밖에 해보지 않은 나로서는 중간중간 부러운 대목도 있었다. 악기라는 도구가 있다는 것도, 합을 맞추며 함께한다는 것도, 코드를 짚으며 음악을 언어처럼 사용해 소통하는 것도. 그러나 그렇게 탄탄해 보이고 함께 있는 듯 보여도 결국 사람 속은 다 알 수 없는 거여서. 과거의 어느 날 태일은 갑작스럽게 그 시간과 공간을 떠났고, 그래서 그 시간을 그리워하는 한편 그래도 더 크고 '메이저'한 것을 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놓지 못했다.
그리고 그런 태일과 닮은 듯 보이는 인물이 덕호다. 기태, 배돌, 북순이라는 다소 직관적인 작명으로 표현될 만큼 파트 색깔이 뚜렷한 아이들 사이에서, 좋아하는 누나와 자신의 쓸모와 락에 대한 마음 같은 것에 이리저리 뒤흔들리는 중인 밴드 보컬. 덕호와 친구들을 보면서 태일은 아이들을 격려하고 또 음악을 다듬어준다. 그 '중2병' 감성을 비웃지도 않고, 과장되게 칭찬하지도 않고 자연스럽게.
창작이란 어떤 걸까. 영화 속 태일은 척추에서 나오듯이, 일기 쓰듯이 그냥 마음을 솔직하게 털어놓으라고 말한다. 그 안에서 덕호는 성장하고, 태일도 자신을 돌아본다. 무언가 만들어내는 삶을 고민해본 이라면 누구든 그 안에서 쉬어갈 수 있는 쉼표 같은 대사들이 녹아 있다.
태일이 그리는 잔잔한 온기가 영화의 한 축이라면, 반대편에는 지원이 가진 단단함이 있다. 욕망하지 않는 소도시의 작은 음악학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다는 설정부터도 그렇지만, 태일에 비해 흔들리지 않고 편안하게 자리를 지켜온 사람의 느낌이 있다. 기죽지 않고 "야" 한 마디만으로 친구를 지켜줄 수 있는 북순도 어떻게 보면 지원과 닮아 있다. 개인적으로는 지원 못지않게 북순이 좋았다.
그러나 이 영화의 매력은 캐릭터에만 있지 않다. 싱어 송라이터 홍이삭의 노래와 기타, 지원 역을 맡은 기타리스트 장하은의 연주는 물론이고 중학생 아이들의 장면도 매력적이다. 밴드 아이들은 연주 실력이 훌륭하면서도 귀엽고, 각 캐릭터가 파트와 잘 어우러지면서 톡톡 튄다. 특히 지원과 기태의 '배틀' 장면은 <말할 수 없는 비밀>의 피아노 배틀 못지않게 흥미로운데, 기태 역을 맡은 양태환은 평창 올림픽 폐막식에서도 공연했다고 한다. 연기를 해온 사람보다는 음악을 해온 사람 위주의 캐스팅이다. 위험할 수도 있었을 것 같은데, 이렇게 빛을 발한다.
주연배우인 동시에 음악감독을 맡은 홍이삭이 만든 곡들도 어느 하나 지나치고 싶은 것이 없다. 뮤지컬 <러브 트릴로지> OST로 알고 있던 곡들이 나와 의아했는데, 엔딩 크레디트 보니 심찬양 감독과 홍이삭이 함께했던 뮤지컬 <러브 트릴로지>가 원안이라고 한다. 자이로부터 시작해서 이나우, 박찬영 등 중간중간 <슈퍼밴드>에 홍이삭과 함께 나왔던 반가운 얼굴들도 눈에 띈다. (엔딩 크레디트에서 김하진, 양지완이라는 이름도 봤는데... 어느 장면인지 놓친 것 같다.) 올해 제천국제음악영화제 개막작답게, 영화 구석구석을 좋은 음악으로 빼곡하게 채웠다는 느낌이다. 후반부 각본이 조금 아쉽다는 생각이 들지만, 그 아쉬움을 음악이 어느 정도 상쇄해준다.
큰 기대 없이 본 영화였는데, 계절에 잘 어울리는 뜻밖의 위로를 선물 받은 느낌이었다. 기타를 잡고 밴드를 한 사람이 많지는 않아도, 직선적인 열정이 있었던 과거와 유려해졌지만 열정이 사그라든 것만 같은 현재를 톺아보는 사람은 많으니까. 우리의 과거는 미래를 닮아있으니, 나의 오늘을 '메이저'하게 쌓는 것 못지않게 과거와 미래를 일정하게 연결하는 단단한 마음도 중요하다. 그게 뜻밖의 위로가 됐다. 큰 무대에 서지 않아도, 어제와 내일을 잘 이어주는 것만으로도 오늘은 가치가 있다는 것이.
하필 요즘 그런 생각을 하던 때였다. 나의 20대에 쓸 수 있을 최선을 쓴 것 같은데, 좋은 평도 꽤 받은 것 같은데, 될 듯 말 듯 어떤 선을 못 넘어가고 있다는 느낌. 이제 더 글을 쓰려면 새로운 무언가를 살아내야 할 것 같은데 뭘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생각. 어쩌면 이 영화 속 태일과 비슷한 시기인 것 같다. 그런 때에 훌쩍 떠날 소도시가 있다는 건, 그 도시를 닮은 사람을 안다는 건 그런 의미에서 얼마나 큰 행운인지.
조바심과 불안해하는 마음은 버리기로 했다. 중학생 덕호가 습관처럼 외치는 빌보드가 아니어도, 뮤직비디오 찍고 앨범 내는 가수가 아니어도, 이들에게는 함께 부른 노래가 있었다. 나도 그런 마음으로, 쓰고 싶은 것들을 소중하게 써내려가기로 했다.
* * *
천만 관객 동원하는 상업영화부터 아직 개봉하지 못한 다큐멘터리 독립영화까지, 빌보드 1위에 오른 방탄소년단부터 이제 막 첫 녹음을 한 누군가의 작은 공연까지. 각자의 취향과 자본의 영향력으로 그린 사분면 어딘가에, 지금도 다양한 음악과 영화가 별처럼 흩뿌려지고 있다.
존 버거의 책에서 읽은 바에 따르면, 우주의 별 절반 이상이 성운에 속하지 않은 외톨이별이라 한다. 가장 많은 빛은 그들에게서 나오는 거라고. 더 다양하고 그래서 더 풍성한, 독립영화와 인디음악의 힘도 그와 비슷할 거라고 생각한다. 이 영화는 나직하지만 힘 있게 빛나는 외톨이별이었다. 지금 내가 하는 일들도 한 외톨이별로서 빛나고 있을 거라 다정하게 도닥여주는 빛. 따뜻한 마음으로 이 영화 음악을 들으며 나의 별을 밝혀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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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빛나는 캐릭터와 아쉬운 관계성
6★/10★
복권에 당첨되었으나 그 돈을 금세 말아먹는 사연은 흔하다. 직접 목격하진 못했더라도 누구나 해외 토픽에서 한두 번쯤은 들어봤을 이야기다. 레슬리도 그중 하나다. 〈레슬리에게〉는 한 작은 마을의 술집 앞에서 레슬리가 기쁨에 겨워 환호하는 장면을 담은 뉴스 화면으로 시작된다. 그리고 6년 후. 레슬리는 철저한 빈털터리가 되었다. 숙박비를 내지 못해 모텔에서 쫓겨난 후 여기저기 부탁을 하고 연락을 돌려보지만 그녀를 받아주는 사람은 없다. 레슬리는 복권 당첨 후 이미 마을의 유명 인사가 되었고, 당첨금 19만 달러를 빠르게 탕진해 빈털터리가 됨으로써 또다시 화젯거리(조롱거리)가 되었다. 망가질 대로 망가진 알코올중독자를 받아줄 사람은 이제 마을에 없다.
결국 레슬리는 다른 도시에 있는 아들 제임스에게 간다. 이제 막 성인이 된 제임스는 육체노동을 하며 차근히 자기 삶을 꾸려나가는 중이다. 제임스는 레슬리를 따뜻하게 안아준다. 맛있는 밥과 깨끗한 옷을 주고 새로운 계획이 생길 때까지 얼마든지 집에 머물라고 다정하게 말해준다. 그러나 둘 사이에는 묘한 긴장감이 흐른다. 제임스가 집에 머무는 동안 지켜야 할 단 하나의 규칙으로 ‘술 마시지 말 것’을 요구하는 장면이 보여주듯이 말이다.
짐작 가능하듯, 레슬리는 제임스가 제시한 단 하나의 규칙조차 지키지 못한다. 심지어 술을 마시기 위해 제임스의 하우스메이트 돈에 손을 대기까지 한다. 결국 제임스는 폭발한다. 제임스가 어릴 때, 레슬리는 제임스를 친구에게 맡겨둔 채 술을 마시다 그를 두고 떠난 적이 있다. 때문에 레슬리의 ‘규칙 위반’은 아들의 상처를 또 한 번 후벼 파는 일이다. 제임스가 과거 일을 묻지 않고 따뜻하게 받아줬는데도 또다시 같은 실수를 반복한 레슬리에게 분노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결국 레슬리는 다시 자신이 떠나온 마을로 되돌아간다. 과거 제임스를 맡겼던 친구 집에 신세를 지지만 금세 쫓겨나고 술집, 길거리, 폐건물을 전전한다. 정말 이제 레슬리가 갈 곳은 아무 데도 없는 듯 보인다.
이후 영화는 막다른 길에 몰린 레슬리가 모텔 주인 스위니의 호의로 조금씩 책임감을 배우고 자기 삶을 다시 꾸리는 과정을 담는다. 알코올중독 아내가 있었던, 자신 역시 누군가의 호의로 ‘괜찮은’ 삶을 꾸려나가던 스위니는 다른 사람들처럼 레슬리를 조롱하지 않는다. 처음에는 스위니의 호의를 어떻게든 빼먹을 생각만 하던 레슬리도 조금씩 그의 기대에 부응해나가며 자신에게 존재하지 않았던 미래를 모색하기 시작한다.
이 과정에서 영화는 늘 술 마실 궁리만 하며 폭력적으로 구는 레슬리에게도 남들이 보지 못한, 보지 않은 면이 있음을 드러낸다. 레슬리는 마을 사람들의 짓궂은 조롱을 대수롭지 않다는 듯 넘기거나 들이받는 식으로 ‘시원하게’ 응징하지만 속으로는 언제나 자신이 ‘괜찮은 사람’일 수 있기를 갈망했다. 그리고 벼랑 끝에서 이를 알아봐 주는 스위니를 만나 누구도 기대하지 않았으나 오랫동안 마음 한편에 남겨둔 꿈을 펼쳐낸다.
스위니가 레슬리의 관계에서 의구심이 드는 부분도 있다. 영화는 두 사람의 관계에서 ‘자격’을 묻고 따지지 않는, 인간에 대한 연민과 믿음에 기반한 호의가 가능케 하는 아름다운 순간들을 보이고 싶었던 것 같다. ‘쓰레기’가 된 삶이라도 누군가가 손 내밀어주고, 그로 인해 관계가 시작된다면 ‘괜찮은’ 삶을 살아갈 수 있다고 말이다. 그러나 이 메시지를 분명하게 전달하기 위해서는 조금 더 섬세하고 치밀했어야 하지 않을까 싶다. 둘의 관계가 ‘신데렐라’와 ‘백마 탄 왕자’의 노동계급판 변주로 읽히기도 하기 때문이다. 누군가의 곁을 묵묵히 지키며 버팀목이 되어주는 것과 더 높은 위치에서 누군가를 ‘구원’하는 것 사이에는 큰 차이가 있지만, 그 차이는 한끗 차이로 결정되기도 한다. 〈레슬리에게〉는 분명 전자의 관계 양상을 지향한 듯하지만, 후자의 의구심을 완전히 지울 만큼 탄탄하지는 않다. 결국 이런 유의 영화에서는 스위니 같은 ‘비현실’적인 인물을 설득력 있게 재현하는 데 그 성패가 달려 있기 마련인데 〈레슬리에게〉가 여기에 성공했는지는 의문이다. 분명 적당한 감동을 준다는 점을 부인할 수는 없겠지만 말이다.
〈레슬리에게〉가 끝내 자기 메시지를 온전히 전하는 데 실패한 듯 보이는 것이 유독 아쉬운 이유는, 레슬리 캐릭터의 힘과 이를 연기한 안드레아 라이즈보로의 빼어난 열연 때문이다. 가진 것이 아무것도 없는 자의 공허함, 허탈함, 분노 그리고 동시에 아주 깊은 곳에 깃들어 있는 희망을 응축한 캐릭터와 이를 설득력 있는 리얼한 연기로 선보이는 안드레아 라이즈보로는 영화의 성취에 대한 개인의 판단과 별개로 분명 많은 사람에게 인상적으로 다가갈 것이다.
*영화 매체 〈씨네랩〉에 초청받은 시사회에 참석한 후 작성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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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누가 내 죽음을 권유하는가!
‘당신의 죽음을 국가가 지원합니다’ 누구 마음대로! 신이 아니고서야 누가 내 죽음에 관여할 수 있는가. 하지만 자칫 잘못하면 이 말도 안되는 소리가 눈 앞에 나타날 수 있다. 어느 호러 영화보다 더 사실적인 공포를 담은 <플랜 75>는 국가가 75세가 넘은 국민에게 죽음을 권유한다는 설정을 통해 고령화 사회의 문제를 제기하고 존엄사 문제까지 확장한다. 단순히 현대판 고려장 이야기로 볼 수 없는 극 중 상황은 허구라 하기엔 너무나 현실적이다.
초고령 사회에 놓인 근 미래의 일본. 어느 날 한 노인요양원에서 충격적인 총격 살인 사건이 벌어진다. 범인은 노인들이 나라 재정을 축내고 그 피해를 청년들이 받는다는 메시지를 남긴 채 자살한다. 이후 노인 타깃 범죄사건이 잇따르고, 정부는 대안으로 75세 이상의 노인에게 안락사를 지원한다는 내용의 ‘플랜 75’를 내놓는다. 78세지만 그 누구보다 깔끔하고 열심히 호텔 룸메이드로 일하던 미치(바이쇼 치에코)는 갑작스럽게 명예퇴직을 하고, 일이 없어진 상황에서 플랜 75를 신청할지 고민한다.
| 초고령 사회 속 이들의 민낯
<플랜 75>는 근미래를 다루고 있지만, 결국 초고령 사회를 관통하고 있는 일본의 민낯을 반영한다. 외신 보도에 따르면 2023년 9월 기준, 일본 전체 인구의 10%가 80세 이상, 29%가 65세 이상 고령자다. 이보다 더 중요한 건 생산연령인구(15~64세)인데, 현재는 2명이 1명의 고령자를 부양하지만 50년 후에는 1.3명이 1명의 고령자를 부양, 이에 따른 부담이 가중될 것으로 예상된다. 여기에 계속되는 경제 침체로 인해 생산연령인구의 중심이 되는 젊은 세대들은 경제 활동을 등한시하고, 자신들보다 부를 축적한 노인들과의 세대 간 격차를 더 넓히고 있다. 일본보다 덜하지만, 이 문제는 우리나라도 마찬가지다.
이런 시대적 분위기 속에 하야카와 치에 감독이 <플랜 75>를 만들게 된 계기는 2016년 20대 남성이 장애인 시설에 침입, 19명을 살해하고 26명에게 중상을 입힌 ‘가나가와현 장애인 시설 집단 살인 사건’이다. 이 남성은 해당 시설 근무자였으며, ‘장애인은 차라리 죽는 편이 가족에게 편하다’라는 혐오발언을 일삼았다. 더 심한 건 ‘중증장애인들이 활동이 힘들면 보호자 동의를 얻어 안락사 할 수 있는 세계를 만드는 게 목표’라는 내용의 자필 편지를 썼다는 것.
감독은 이 사건을 접하며,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이런 차별적 발언과 생각을 했다는 것과 자신이 더 나은 사회를 구현하기 위해 위대한(?) 일을 저질렀다는 범죄자의 태도에 의구심을 풀었다. 그리고 영화를 통해 범죄자의 말처럼 사회가 운영된다면 과연 어떤 세상이 펼쳐질 것인가를 그린다. 장애인에서 노인으로 변경되었지만, 사회적 약자를 대상으로 펼쳐지는 이야기라는 점에서 그 궤를 같이 하는데, 이는 일본 사회 내에서 장애인 혐오만큼이나 노인 혐오도 문제가 되고 있다는 것을 유추할 수 있다.
| 경제력 없는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
<플랜 75>의 분위기는 건조하다. 인간의 생과 사를 다루는데 있어서 감정의 동요가 일어나는 장면이 즐비할 것처럼 보이지만, 감독은 되려 감정에 휘둘려 이 문제가 흐릿하게 보이지 않도록 애쓴다. 마치 다큐멘터리를 보는 것 같은 느낌의 영화의 초반부는 제도 시행 후, 고령층의 각기 다른 모습을 보여준다.
미치를 중심으로 이 정책을 따르는 이들과 그렇지 않겠다는 이들로 나뉜다. 전자를 택한 이들은 10만엔(한화 약 90만원)으로 여행을 떠난 후 생을 마무리하고 싶다며, 더 이상 젊은 세대들에게 짐이 되고 싶지 않다는 등의 이유를 말한다. 후자는 반대로 자식들의 아이를 봐주는 등 가족과 함께 살고 싶다는 이야기를 한다.
전자를 택한 경우의 대다수는 혼자 사는 독거 노인들이다. 심한 경우, 경제 활동을 더 이상 할 수 없는 처지에 놓인다. 이들이 정책을 울며 겨자 먹기로 택하는 이유는 힘든 삶을 버틸 힘이 없기 때문이다. 사회적 복지와 보상을 받아야 할 이들이지만, 정부는 사회적 안전망을 견고히 엮는 대신, 이들을 죽음으로 인도한다. 안타까운 건 주인공 미치나 정부의 지침에 따르는 시청 공무원 히로무(이소무라 하야토) 삼촌의 경우, 보이지 않는 곳에서 묵묵히 일을 하며 구성원으로서 그 책임을 다한 노동자들이라는 점이다. (심지어 삼촌은 각 지역을 돌아다니며 정기적으로 헌혈을 했다.) 사회가 힘들 때 직격탄을 맞는 노동자들에게 남은 건 죽음을 장려하는 정책뿐이라니 한 숨이 절로 나온다.
미치는 계속 중립을 지키지만, 그 또한 호텔 일을 더 이상 할 수 없게 되는 상황에 놓이고, 일자리를 구하지 못한다. 집도 빼야 할 상황. 가족이 없어 도움을 요청할 곳 없는 독거 노인인 그는 결국 단돈 10만엔을 받고 죽음을 선택하기에 이른다. 마음에 걸리는 건 죽음을 선택하는 것도 자신의 결단이 아닌 타인이나 정부의 보이지 않는 압박에 의해 행해졌다는 부분. 존엄이 상실된 존엄사는 과연 누구를 위한 것인가!
| 이건 우리 모두의 이야기!
<플랜 75>는 미치를 중심으로 돌아가지만, 고령층의 이야기만을 다루지 않는다. 공무원 히로무, 미치가 죽음에 이르기까지 개인별 맞춤 서비스를 제공하는 콜센터 직원 요코(카와이 유미), 안락사로 세상을 떠난 이들의 유품을 처리하는 이주노동자 마리아(스테파니 아리안) 등 직간접적으로 엮인 다양한 세대(또는 이주노동자)의 이야기가 나온다. 영화는 이들의 시선을 통해 고령화 문제를 다각화하고, 이 사안이 결코 노인들만의 것이 아니라는 걸 강조한다.
정책 실현을 위해 친근한 미소로 일을 하는 히로무는 자기 가족이 이 상황에 놓이자 딜레마에 쌓이고, 미치와 매일 15분 동안 통화를 하다 정이 든 요코는 죄책감을 이기지 못한다. 필리핀 고향에 있는 아픈 딸을 위해 요양원에서 시급을 더 많이 받을 수 있는 이 곳으로 온 마리아도 안락사 된 이들의 물건을 정리하며 생과 사에 대한 아이러니함을 온몸으로 받아낸다. 특히 감독은 마리아를 통해 가장하기 힘들고 껄끄러운 일을 이주노동자가 행한다는 것을 보여주며, 노인을 포함해 사회적 약자에게 이 사회는 과연 무엇을 도와주고 있는 것인지 돌아보게 한다.
영화의 분위기에 맞게 배우들의 연기는 과하지 않으면서도 오랜 잔상을 남긴다. 미치 역의 바이쇼 치에코는 극 중 이 상황을 받아들이면서도 후반부 죽음 또한 인간의 존엄성을 지키는 일이라는 점을 강조하듯 ‘그럼에도 난 살아가리라!’라는 결기의 눈빛을 보여준다. 낮고 명료한 보이스 또한 역할의 매력을 더한다. (바이쇼 치에코는 <하울의 움직이는 성>의 소피 역의 목소리 출연을 한 바 있다.) 히로무 역의 이소무라 하야토는 고려장 이야기의 아들처럼 뒤늦게 후회하는 이의 모습을 보여주고, 요코 역에 카와이 유미는 다소 분량이 적음에도 눈빛 하나로 확실한 인장을 찍는다. 영화적 약속을 어긴 채 카메라를 정확히 응시하며 관객에게 무언의 메시지를 전하는 모습은 절대 잊을 수 없다.
<플랜 75>의 이야기는 일본에만 해당하는 것은 아니다. 전체 인구의 20% 이상이 65세 이상인 초고령사회 진입 초읽기에 들어간 우리나라에서도 충분히 일어날 수 있는 일이며, 멀지 않아 다른 나라에서도 벌어질 이야기다. 감독은 영화 속 상황이 앞으로 직면할 문제이고, 심히 고민해야 한다고 말한다. 각종 수치와 효율성만으로 사회 문제는 해결할 수 없고, 도리어 악화시킬 수 있다고 덧붙인다. 더 나은 사회를 만들기 위해, 노인들의 진정한 사요나라를 위해 우리에게 필요한 건 무엇인가? 노인을 위한 나라는 존재하는 것일까?
사진 제공: 찬란
평점: 3.5 / 5.0
한줄평: 현대판 고려장으로 치부하기엔 너무나 현실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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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류 종말 직전 드러나는 사회의 모순
현대 사회의 모든 것은 정치와 관련이 있다. 정치적인 결정은 무언가를 풀어나갈 수 있는 열쇠가 되고, 그 사회 구성원이 조금 더 편하게 살아갈 수 있도록 뒷받침해주기도 한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정치인이 되어 자신이 이루고자 하는 사회를 만들어가려고 애쓴다. 그리고 일반인들은 그 많은 정치인들 중 자신과 사회에 좀 더 도움이 되는 사람이 누구일지 투표를 통해 선택한다. 자신이 선택한 사람이 선출되지 않았더라도 정치는 사회를 변화시키고 사람들의 삶에 조금씩 영향을 준다. 그래서 정치는 우리 삶에서 완전히 떼어내기 어렵다.
하지만 정치는 사회를 혼란스럽게 하거나 발전을 막기도 한다. 인류가 그동안 겪었던 전쟁은 바로 정치 때문에 벌어진 일이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들은 더욱 정치에 관심을 두고 좀 더 좋은 방향으로 흘러갈 수 있게 선택을 한다. 정치라는 것이 언제나 조용하고 안정적으로 흘러가지는 못한다. 수많은 경쟁이 벌어지고, 다양한 분야에 그 정치의 영향력이 확대될 수 있다. 우리가 흔히 정답이 있다고 생각하는 과학 영역에서조차 정치적 영향력은 힘을 뻗고 있다. 과학 연구의 방향성이나 연구 인력의 숫자 등이 정치적인 결정에 따라 언제든 바뀔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나 우주 탐사 같은 영역은 온전히 정치적인 상황과 결정으로 인한 예산 투자가 없다면 진행되기 어려운 분야이기도 하다.
지구 충돌 혜성을 발견한 두 과학자 그리고 정치인
영화 <돈 룩 업>은 지구에 곧 충돌할 혜성을 발견하게 된 두 과학자가 나라를 통치하고 있는 정치인들에게 이 사실을 알리는 과정을 담은 블랙코미디다. 영화 초반 민디 박사(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와 그의 박사 과정 제자 케이트(제니퍼 로렌스)가 혜성을 발견하는 과정은 여느 재난 영화의 장면과 다를 바 없다. 기존 재난 영화와 다른 방향으로 흘러가게 되는 건 그들이 관련 보고를 하기 위해 백악관에 간 이후 벌어진다. 여기엔 나사의 테디 박사(롭 모건)도 동행하게 되는데, 이들은 그들이 예상하지 못한 상황과 만난다.
민디, 케이트, 테디 이렇게 세 과학자가 처음 대면하는 정치인은 대통령 올리언(메릴 스트립)이다. 그를 만나기 위해 하루 이상을 기다리게 되는데 대통령은 자신과 관련된 정치적 문제를 해결하는 것에 먼저 시간을 할애하기로 결정했기 때문이다. 또한 혜성의 지구 충돌을 전달했을 때, 그는 정치적으로 그 사안을 언제 공개하고 이용할지를 계산하기 바쁘다. 인류 멸망이라는 엄청난 재난 상황 앞에서도 대통령과 그의 참모들은 과학자들의 말을 온전히 과학적 발견으로만 해석하지 않는다. 그 안에 정치적인 의도가 당연히 포함되어 있을 거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이런 태도는 언론인들에게서도 나타난다. 유명 방송사도 정치인과 크게 다르지 않다. 과학자들은 자신들의 메시지를 정치인들이 잘 받아주지 않자 다음 해결 방법으로 매스컴을 택한다. 그들은 처음에는 백악관이 그 사실을 무시했다는 사실을 바탕으로 과학자들을 방송에 출연시키지만 그들 역시 과학자들의 말을 온전히 믿지 않는다. 심지어 혜성을 발견한 과학자들, 즉 천문학자들과 반대 의견을 가진 전문가들의 의견을 듣고 천문학자들의 저의를 의심하기까지 한다. 방송사 간부들 조차 그 과학자들이 아주 순수한 학문적 발견이 아니라 정치적으로 그것을 이용하려 한다고 생각한다.
정치적으로 소비되어 버리는 과학자들
방송사에서 과학자들을 소비하는 방식도 이 영화에 잘 나와있다. 잭(타일러 페리)과 브리(케이트 블란쳇)는 아주 가벼운 시사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 그 프로그램에 출연하게 된 민디 박사와 케이트는 인류 종말이라는 상황을 심각하게 이야기하지만 진행자인 잭과 브리는 그것을 별일 아닌 것처럼 농담으로 받아넘긴다. 그리고 화를 내는 케이트와 침착하게 대응한 민디 박사를 비교하면서 케이트는 SNS에 이상한 마녀 이미지로 떠돌게 만들고, 민디 박사는 전문가로 떠받든다. 그러니까 같이 혜성을 발견한 두 사람조차 그들의 이익을 위해 각각의 이미지를 만들어낸 것이다.
민디 박사와, 케이트, 테디 박사는 각자의 방식으로 그 정치적인 판단을 벗어나려 애쓴다. 자신은 순수하게 과학적 발견을 했고, 그것이 곧 지구 종말이기 때문에 무언가를 해야 한다고 외친다. 하지만 그들의 의견은 한낱 정치적인 의견으로 받아들여진다. 대중들은 현재 정부를 지지하는지에 따라 한쪽은 과학자의 의견을 믿지 않고, 다른 한쪽은 과학자의 의견을 믿는다. 영화에서는 그 의견 대립을 ‘돈룩업(위를 쳐다보지 마)’과 ‘룩업(위를 쳐다봐)’으로 표현하고 있다. 일종의 정치적인 해쉬태그 대립을 아주 현실적으로 보여준다.
세 과학자는 끊임없이 그들의 방법으로 종말을 막기 위해 무언가를 해야 한다고 외친다. 우리 사회에서 지구적 환경 재난을 피하기 위해 대책을 세워야 할 시점이라고 주장하는 여러 사회단체나 과학자들의 의견이 떠오르게 된다. 사람들은 그들의 주장을 과학적으로 현실적으로 알고 있지만 당연히 그 안에 정치적인 문제가 들어가 있다고 생각한다. 온전히 과학적인 사실 만으로는 대중을 움직일 수 없고, 그것을 움직이기 위해서는 정치인과 정치적인 노력이 필요하다. 하지만 그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완전한 지지나 행동은 요원하다. 반대의 의견은 사회연결망을 통해 확산되고 더 굳게 믿어진다.
영화 속 정치인들은 그들의 프로파간다에 설득력을 더하기 위해 영웅을 이용한다. 베네딕트(론 펄만)이라는 인물을 내세워 핵미사일을 발사할 때 참여시킴으로써 대통령 본인과 집권당의 정치적 지지율을 끌어올릴 수 있는 이미지를 만든다. 그렇게 만들어진 이미지에 많은 사람이 열광하면서 이 사안을 더욱더 정치적으로 판단하게 만든다. 이런 정치인의 의도된 행동을 매스컴은 라이브로 중계하고 정치적 영향력을 더욱 확산시킨다. 여기서 영웅은 혜성을 발견한 과학자들이 되어야 마땅함에도 불구하고 정치인들은 자신의 정치적 이미지를 위해 전혀 엉뚱한 사람을 영웅으로 만든다.
현실 속의 모습이 잘 드러난 블랙코미디
영화 <돈 룩 업>은 관객이 가지고 있는 정치적인 성향에 구애받지 않고 비슷한 해석을 할 수 있다. 집권하고 있는 여당에 대입해도, 그 대척점에 있는 야당에 대입해서 해석해도 충분히 다양한 해석이 가능하다. 정치라는 것이 진행되는 프로세스와 그것으로 대중들이 받는 영향이 이 영화에 아주 적나라하게 드러나 있기 때문이다. 이 영화 속에서 어떤 것이 옳은 선택인지를 우리는 이미 알고 있는 상태에서 영화를 보게 된다. 하지만 현실에서 생각해보면, 대중의 입장에서 어떤 정치인들의 말이 맞을지, 과학자의 말에 정치적인 성향은 들어가 있지 않을지 정확히 알기는 어렵다. 그래서 만약 정말 종말 상황이 벌어진다고 하면 그것의 진위를 파악하는데 한참 걸리거나, 아예 파악하지 못할 가능성도 있다. 어쩌면 그것이 가장 아픈 부분일 수 있다. 결국 모든 활동에 대한 판단은 무언가를 보고 자기 자신이 할 수밖에 없다. 그건 결국 사회적 정쟁과 대립을 피할 수 없게 만든다.
세 과학자가 처한 상황은 꽤 코믹하게 그려져 있다. 처음엔 안절부절못하다가 이성을 찾는 과학자 민디를 연기한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는 아주 순수한 모습과 자신만만한 모습을 오가며 그만이 할 수 있는 연기를 보여주고 있다. 특히 후반부에 그가 지구 종말을 외치는 장면은 압권이다. 혜성을 처음 발견한 박사과정 학생 케이트를 연기한 제니퍼 로렌스는 전혀 정치적인 색깔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처음에 방송에서 짜증을 부렸던 것 때문에 자신의 의견을 제대로 이야기하지 못하는 역할을 잘 연기했다. 그런 답답함과 분노가 제니퍼 로렌스의 뾰로통한 얼굴에 잘 드러나있다.
이 영화를 연출한 아담 맥케이 감독은 <빅쇼트>나 <바이스> 같이 사회적인 인물이나 상황에 대한 이야기를 해왔다. 그가 각본까지 도맡아 하면서 꽤 맛깔스럽고 재치 넘치는 대사와 상황을 통해 정치적으로 벌어지는 부조리와 블랙코미디 같은 상황을 현실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이번 <돈 룩 업>에서도 현실의 문제점을 날카롭게 파고들어 그것을 보는 관객들의 공감을 이끌어낸다. 영화에서 보이는 웃픈 상황들이 허구라는 측면에서는 안도감이 들지만, 그것이 현실과 아주 가깝다는 사실에서는 불안감이 들게 한다.
*영화의 스틸컷은 [다음 영화]에서 가져왔으며, 저작권은 영화사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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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 룩 업 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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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번뇌와 번민, 요괴로 재탄생하다
삶에서 고민이나 걱정거리는 항상 찾아온다. 평생을 살면서 이런 고민들이 없이 살아가는 시간은 많지 않다. 어떤 사람은 그 무수한 고민들의 해답을 찾지 못해 우울하거나 절망하고 또 다른 사람은 그 고민을 통해 자기 자신을 알아가고 삶의 방향성을 찾기도 한다. 이 모든 과정은 쉽지 않다. 불교에는 번뇌(煩惱)라는 말이 있다. 근본적으로 자신에 대한 집착으로 인해 일어나는 마음의 갈등을 뜻한다. 인간의 기본 욕구인 의식주를 비롯해 발생하는 자신의 마음의 갈등이라고 할 수 있다. 불교에서는 이 번뇌들을 극복하고 마음의 평안을 얻은 상태가 곧 열반의 경지라고 이야기한다.
그만큼 모든 인간은 마음속에 찾아오는 다양한 번뇌를 각자의 방법으로 억누르거나 조절해가며 살아간다. 이것이 잘 조절되지 않거나 억눌러지지 않으면 그것은 번민(煩悶)이 된다. 마음이 답답해진다는 의미의 번민은 열반으로 가지 못한 사람들의 마음속을 가득 채워 괴로움을 만든다. 어쩌면 과거의 사람들도 그랬겠지만 현대의 사람들은 번뇌를 해결하지 못해 번민이 가득해 더욱 우울해졌는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엄청난 발전을 이룬 지금에도 여전히 많은 사람들은 마음의 갈등 속에서 괴로워하고 있다.
번뇌와 번민에 대한 영화 <제8일의 밤>
영화 <제8일의 밤>은 번뇌와 번민에 대한 영화다. 불교의 개념을 가지고 와서 두 단어를 어떤 기이한 존재로 형상화했다. 붉은 눈과 검은 눈을 일종의 요괴의 눈으로 설정하고 과거 부처가 별도의 장소에 각각을 봉인하여 묻어버렸는데 현재에 그것의 봉인이 풀려 벌어지는 일을 담고 있다. 누군가에 의해 봉인이 풀린 붉은 눈은 검은 눈을 찾기 위해 사람을 징검다리 삼아 조금씩 검은 눈이 있는 곳으로 가게 되면서 그것을 막으려는 사람들과 만나게 되는 이야기가 전개된다. 영화의 맨 첫 장면부터 산스크리트어로 설명되는 요괴의 봉인 과정은 꽤 흥미롭다. 마치 불교 삽화처럼 구성된 애니메이션이 현지어와 함께 설명되며 영화가 하고자 하는 이야기의 분위기를 만든다.
영화에서 가장 중심이 되는 인물은 묵언 수행 중인 스님으로 등장하는 청석(남다름)이다. 등장인물 중 가장 마음의 짐이 없어 보이는 인물이며 순수해 보이는 인물이기도 하다. 큰 틀에서 보면 그가 요괴의 두 눈이 다시 만나는 것을 돕기도 하고 또 그 반대로 막기도 하기 때문에 영화에서는 꽤 중요한 인물이다. 그리고 과거 스님이었으나 지금은 평범한 삶을 이어가고 있는 인물인 진수(이성민)는 보다 입체적인 캐릭터다. 과거의 어떤 사건 때문에 번민하는 인물인데 그 과거는 청석과 연결되어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영화의 후반부에서 진수가 가진 번민을 어떤 방식으로 해결하는지는 요괴와의 싸움에서 중요하게 다루어진다.
그 외에도 형사 호태(박해준)와 후배 형사 동진(김동영) 그리고 신비한 인물 애란(김유정)이 등장해 극에 생동감을 불어넣으려 애쓴다. 주요 등장인물 중 진수와 호태는 과거의 어떤 사건 때문에 마음 한구 석에 큰 번민을 가지고 있는 인물들이다. 그들의 표정은 시종일관 어둡고 심각하다. 요괴에게 희생당한 인물들을 각자의 방식으로 쫓아가게 되는데, 진수는 그 이유와 막는 방법을 알고 요괴의 흔적을 따라가는 반면 호태는 이면에 어떤 일이 진행되는지 모른 채 그 길을 따라가게 된다. 동진과 애란의 경우, 요괴와 연관성 있는 인물로 그들이 요괴가 지나가는 징검다리가 되는지 여부가 영화의 긴장감을 만들어내고 있다.
번민으로 가득 차 있는 인물 진수
관객의 입장에서는 사실 진수의 시선과 입장을 주로 따라가게 되기 때문에 그가 가지고 있는 태도나 말에 집중할 수밖에 없다. 영화 초반 진수와 청석이 만났을 때는 거의 대화가 없다. 청석은 묵언 수행 중이며, 진수는 상대방과 별로 대화하고 싶어 하지 않기 때문이다. 청석이 자신이 생활하던 절에서 봉인된 검은 눈을 들고 내려온 후, 자신의 스승과 함께 생활했던 진수를 만나게 되는데 그 어느 순간에 청석은 말을 하기 시작한다. 그가 2년 넘게 하고 있던 묵언 수행이 중단된 이후 두 인물의 대화가 많아지고 교류가 시작된다. 그런 게 이렇게 대화가 많아진 이후 청석을 바라보는 진수의 눈빛은 더 큰 번민에 휩싸이는 듯 보인다.
결국 영화가 후반부로 진행될수록 진수와 청석의 관계는 복잡해진다. 이미 모든 걸 다 알고 있는 인물은 진수는 자신과 연관된 청석을 지켜야 하지만 그에 대한 분노가 같이 자리하고 있기 때문에 그 두 마음이 그의 마음속에서 끊임없이 싸우는 것을 영화는 반복적으로 보여준다. 그것이 영화에서는 어떤 영적인 속삭임을 통해서 전달되거나, 진수의 망설임과 표정으로 드러난다. 아마도 영화에서 가장 좋은 지점을 뽑으라면 진수와 청석의 애매한 관계를 보여주는 장면들일 것이다.
영화가 가진 번뇌와 번민의 형상화는 꽤 독특하고 괜찮은 아이디어다. 그것을 실체화하고 살아 움직이게 하면서 불교를 바탕으로 한 일종의 퇴마 이야기를 만들어냈다. 하지만 이 영화 안에 퇴마사라고 불만한 인물은 없다. 진수가 그에 가장 가깝지만 완성된 요괴 앞에서 그가 할 수 있는 것은 거의 없다. 요괴의 약점이 전혀 없는 존재이기 때문에 그가 중간에 그에 대항하거나 싸우는 장면은 너무 일방적이어서 오히려 맥이 빠진다. 중간중간 요괴가 사람들을 옮겨 다니면서 요괴가 조종하는 인물들이 보여주는 기괴한 모습은 공포스럽지만 그 이외의 장면에서는 그런 긴장감이 연결되지 않는다.
영화에 등장하는 호태와 애란의 경우, 영화가 꽤 공들여 이야기 속에 등장시키긴 하지만 결국 그들이 등장할 수밖에 없는 이유를 영화는 제시하지 못한다. 그래서 그들이 등장할 때마다 영화는 추진력을 잃고 자꾸 뒷걸음친다. 이 두 인물은 아마도 영화가 보여주고자 하는 반전을 만들어내는데 중요한 역할을 하는 인물들이고, 또 근본적으로 번뇌와 번민의 부득이한 희생자일 텐데 그들이 영화 말미에 하는 역할은 미미할 뿐이다. 결국 영화가 집중하는 것은 진수와 청석이며, 특히 진수가 가진 번뇌와 번민을 그가 어떤 방식으로 처리하느냐가 영화의 결말과 연결된다. 영화는 번뇌와 번민을 요괴로 보여주고 있지만 사실 그 요괴는 진수의 마음에 이미 존재하고 있었던 것인지 모른다.
독특한 아이디어로 밀어붙이지만 아쉬움이 많은 영화
영화 <제8일의 밤>은 사실 1일부터 8일까지의 각 날짜가 중요하지는 않다. 대부분은 8일 밤에 벌어지기 때문에 그 전의 날들은 큰 의미를 가지기 어렵다. 요괴가 이동하는 단계가 있지만 그것이 마지막 날짜를 제외하고는 중요하지 않기 때문에 1일에서 7일까지 벌어지는 일들을 볼 때 이야기가 많이 늘어진다. 그래서 8일에 벌어지는 일을 끝까지 지켜보는 것이 쉽지 않다. 8일 밤에 벌어지는 마지막 장면들에서는 꽤 긴장감 있는 상황들이 이어지지만 요괴들을 상징하는 검은 연기나 그래픽들이 다소 어색해 보여 아쉬움을 남긴다.
이 영화의 감독인 김태형 감독은 <제8일의 밤>으로 각본과 연출 데뷔를 했다. 첫 데뷔작이라는 점에서 최악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여러 가지 측면에서 아쉬움을 남긴다. 주연 배우 이성민은 그가 가진 특유의 어두움과 과묵함으로 진수 역을 잘 소화하고 있다. 또한 창석 역을 맡은 매부 남다름의 연기도 인상적이다. 순수하고 누군가에게 의지하고 싶은 어른 스님의 연기를 잘 보여주고 있다. 여러 아쉬움에도 불구하고 넷플릭스에서 단독으로 공개된 <제8일의 밤>은 극장보다는 집에서 불을 끄고 관람할 때 더욱 괴기스러움이 전달될 작은 영화다.
*영화의 스틸컷은 [다음 영화]에서 가져왔으며, 저작권은 영화사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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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일의 밤 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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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라져가는 모든 것들에 대한 판타지
‘매드 맥스’시리즈로 디스토피아 마스터로 우뚝 선 조지 밀러 감독과 매 작품마다 강렬한 임팩트를 남겨주는 틸다 스윈튼, 이드리스 엘바가 천일야화 같은 흥미로운 이야기를 펼친 매혹적인 영화 3000년의 기다림 리뷰입니다. ‘알라딘’ 속 지니의 재해석이라고 봐도 무방한 감독만의 독창적인 세계관을 통해 장르를 특정 짓기 어려운 묘한 매력이 공존하는 스토리로 굉장히 특별한 시간을 선물합니다. 오스만 제국의 신화에서 시작되어 3천 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이어진 한 인물에 대한 서사는 어릴 적 들었던 전래동화 같은 경험을 주기도 하죠. 그럼 미리 시사회로 만나본 작품의 후기를 통해 좀 더 설명해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
※ 최대한 자제하였으나 일부 스포일러가 될 수 있으니 주의 부탁드립니다.
당신의 마음이 갈망하는 건 무엇입니까?
“Make a wish”
학회 참석을 위해 이스탄불을 방문한 이야기 학자 알리테아는 도착한 공항에서부터 발표가 진행되는 강의실까지 기묘한 환각을 마주합니다. 신기한 체험을 뒤로 한 채 기념품을 사기 위해 오래된 물건들을 파는 가게에 방문하고, 이상하게 마음이 이끌리는 파란색 유리병을 사옵니다. 그날 저녁, 유리병을 세척하던 중 갇혀있던 정령 지니가 빠져나오고 자신의 해방을 위해 3가지 소원을 들어주겠다고 합니다. 그러나 특별히 원하는 것이 없었던 알리테아는 옛이야기에서 소원은 항상 대가가 따른다며 빌지 않겠다고 하죠. 이에 그는 그녀를 설득하기 위해 3000년간 자신이 경험한 이야기를 들려주는데...
예고편│Trailer
원제: Three Thousand Years of Longing│감독: 조지 밀러
각본: 조지 밀러, 어거스타 고어(Augusta Gore)
원작: A. S. 바이어트의 단편 소설 모음집 ‘The Djinn in the Nightingale's Eye’
출연진: 틸다 스윈튼, 이드리스 엘바, 알릴라 브라운, 피아 선더볼트, 버크 오즈투르크 외 多
장르: 멜로/로맨스, 판타지, 드라마│상영 시간: 108분
국가: 오스트레일리아, 미국│등급: 15세 관람가
수입: (주)엔케이컨텐츠│배급: (주)디스테이션
평점: 왓챠피디아 예상 3.5, 평론가 7.0, 로튼토마토 신선도 72% 팝콘 73%, IMDB 6.7, 메타 스코어 60점
상영 일정: 개봉일 2023년 1월 4일
오랜만에 만난 조지 밀러의 판타지
“어떤 의미에서는 호, 어떤 의미에서는 불호”
우리에게 친숙한 호리병의 정령 지니가 자신의 해방을 위해 자신의 삶에 만족하며 살아가는 현대 사회의 서사 학자 알리테아를 설득하기 위해 지난 3000년간의 삶을 들려주는 이야기입니다. ‘매드 맥스: 분노의 도로’ 이후 오랜만에 찾아온 조지 밀러의 신작이지만, 시청각적 요소와 액션이 주를 이룬 전작을 떠올릴 수 없는 정반대 스타일을 추구합니다. 이야기 속의 이야기라는 점에서 한 편의 소설을 읽는 듯한 내레이션이 전개의 중심이고, 기원전 시바 왕국의 여왕부터 오스만 제국을 지나 르네상스 시대까지 펼쳐지는 판타지가 뒤섞인 플래시백은 현대적으로 재탄생된 천일야화를 보는 느낌을 줍니다. 스토리텔링이 중점적인 사안이 되다 보니 ‘매드 맥스’ 느낌을 생각하신 분들에겐 실망스러울지도 모릅니다.
그럼에도 재미있었던 이유를 보자면, 전래동화 같은 분위기와 어우러진 화려한 연출력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인간의 욕망에서 시작되었다 할 수 있는 소원에 대한 불행이 반복되는 대서사는 판타지스러운 개성 있는 비주얼로 눈앞에 펼쳐지고 관객은 오디오북처럼 들리는 그의 절절한 이야기를 화면으로 함께 마주합니다. 상상이 현실이 되고 현실이 상상이 되는 장면들은 세상의 모든 능력을 가졌지만 기구한 운명을 살아온 불멸자 지니를 더욱 초연하게 만드는 역할을 해줍니다. 그리고 그 과정을 통해 감독은 관객 각자가 생각하는 사랑에 대한 의미, 행동 등에 관해 생각해 보게 만듭니다. 흥미거리와 생각할거리를 함께 질문하는 모양새이지요.
멜로로 변한 지니의 소원
"잊혀가는 것들에 대하여”
그리스어로 ‘진실한’을 뜻하는 알리테아로 추측하건대, 이야기는 사랑이라는 익숙한 내용을 정령 지니가 겪었던 모든 상황들을 통해 관객에게 전달합니다. 그리고 불행으로 가득했던 과거 사연들을 지나 또다시 불행해질 것임을 알면서도 같은 선택을 하며 사랑은 혼자 하는 것도, 외면하는 것도, 희생하는 것도 아닌 서로를 위한 행복임을 말하면서요. 어쩌면 너무 뻔한 스토리일지도 모르지만, 소원을 들어주는 정령에게 현대인들이 목매다는 돈과 권력 같은 물질적인 욕망이 아닌 기피되고 있는 사랑을 택했다는 것이 재미있었습니다. 자기 삶에 만족한 주인공이어서 그런지도 모르지만, 지금처럼 각박해가는 시대에 더 필요한 것이 잃어버린 사람과 사람 간의 관계에서 피어나는 감정이라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아마 잊혀가는 모든 것들에 대한 갈망일지도 모르겠네요.
한 줄 평 : 잊히는 세상 모든 것들에 대한 그리움을 사랑에 담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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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딜리버리 - 아이빼고 다 가진 금수저 부부 VS 아이빼고 다 부족한 MZ커플의 위험한 거래
*해당 리뷰영상은 영화배급사 마노엔터테인먼트를 통해 저작권 협의가 진행되어 제작된 영상입니다
유산 상속을 위해 아이가 필요한 금수저 부부 ‘귀남’(김영민)과 ‘우희’(권소현).
계획 없는 임신을 해서 난감해진 개털 백수 커플 ‘미자’(권소현)와 ‘달수’(강태우).
‘미자’와 ‘달수’는 생활고로 인해 안타까운 결심을 하고, 하필 ‘귀남’이 있는 산부인과를 찾게 된다!
그리고 ‘우희’의 아버지 ‘태식’(동방우)을 속이기 위해 금수저 부부는 임신 사기극을 계획하는데…
올 가을 가장 버라이어티한 공동 태교가 시작된다!
11월 20일 대개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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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레이맨, 넷플릭스에서 보기 아까운 액션 영화
?Rabbitgumi 입니다!
마블 어벤져스 엔드게임의 감독인 루소 형제가 마블에서 벗어나서 다양한 시도를 하고 있죠.
이번에는 넷플릭스의 투자를 받아 그레이맨이라는 영화로 돌아옵니다.
라이언 고슬링과 크리스 에반스가 출연하고 있는 액션영화인데요,
꽤 스케일이 큰 액션 영화여서 극장에서 선 공개 되었어요.
넷플릭스가 엄청난 금액인 2억 달러를 투자한 영화죠!
이 영화가 어땠을지 좀더 자세히 알려드릴게요! :)
자세한 리뷰는 영상을 참고해주세요! :)
그리고 제가 매주 일요일마다 영화에세이를 전달 드리는 Rabbitgumi 영화 이야기 뉴스레터에도 관심을 가져주시고 많은 구독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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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캐롤> 메인 예고편
하늘에서 떨어진 것 같은 나의 첫사랑, 마지막 사랑 올겨울을 아름다운 사랑으로 물들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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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넷플릭스 <버드 박스 : 바르셀로나> 공식 티저 예고편
2018년 세계적인 센세이션을 불러일으키며 관객들을 사로잡았던 흥행 영화 《버드 박스》의 프로듀서들이 그 세계관을 더욱 확장한 《버드 박스: 바르셀로나》를 선보인다. 미스터리한 힘으로 전 세계의 인구가 급감한 후, 세바스티안은 바르셀로나의 황량한 거리에서 어떻게든 살아남기 위한 여정을 이어간다. 다른 생존자들과 불안정한 연합을 맺고 도시에서 탈출하려고 시도하는 세바스티안. 하지만 예상치 못한 더욱 사악한 위협이 점점 더 가까이 다가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