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wr2023-11-27 07:41:57
빛나는 캐릭터와 아쉬운 관계성
〈레슬리에게〉
복권에 당첨되었으나 그 돈을 금세 말아먹는 사연은 흔하다. 직접 목격하진 못했더라도 누구나 해외 토픽에서 한두 번쯤은 들어봤을 이야기다. 레슬리도 그중 하나다. 〈레슬리에게〉는 한 작은 마을의 술집 앞에서 레슬리가 기쁨에 겨워 환호하는 장면을 담은 뉴스 화면으로 시작된다. 그리고 6년 후. 레슬리는 철저한 빈털터리가 되었다. 숙박비를 내지 못해 모텔에서 쫓겨난 후 여기저기 부탁을 하고 연락을 돌려보지만 그녀를 받아주는 사람은 없다. 레슬리는 복권 당첨 후 이미 마을의 유명 인사가 되었고, 당첨금 19만 달러를 빠르게 탕진해 빈털터리가 됨으로써 또다시 화젯거리(조롱거리)가 되었다. 망가질 대로 망가진 알코올중독자를 받아줄 사람은 이제 마을에 없다.
결국 레슬리는 다른 도시에 있는 아들 제임스에게 간다. 이제 막 성인이 된 제임스는 육체노동을 하며 차근히 자기 삶을 꾸려나가는 중이다. 제임스는 레슬리를 따뜻하게 안아준다. 맛있는 밥과 깨끗한 옷을 주고 새로운 계획이 생길 때까지 얼마든지 집에 머물라고 다정하게 말해준다. 그러나 둘 사이에는 묘한 긴장감이 흐른다. 제임스가 집에 머무는 동안 지켜야 할 단 하나의 규칙으로 ‘술 마시지 말 것’을 요구하는 장면이 보여주듯이 말이다.
짐작 가능하듯, 레슬리는 제임스가 제시한 단 하나의 규칙조차 지키지 못한다. 심지어 술을 마시기 위해 제임스의 하우스메이트 돈에 손을 대기까지 한다. 결국 제임스는 폭발한다. 제임스가 어릴 때, 레슬리는 제임스를 친구에게 맡겨둔 채 술을 마시다 그를 두고 떠난 적이 있다. 때문에 레슬리의 ‘규칙 위반’은 아들의 상처를 또 한 번 후벼 파는 일이다. 제임스가 과거 일을 묻지 않고 따뜻하게 받아줬는데도 또다시 같은 실수를 반복한 레슬리에게 분노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결국 레슬리는 다시 자신이 떠나온 마을로 되돌아간다. 과거 제임스를 맡겼던 친구 집에 신세를 지지만 금세 쫓겨나고 술집, 길거리, 폐건물을 전전한다. 정말 이제 레슬리가 갈 곳은 아무 데도 없는 듯 보인다.
이후 영화는 막다른 길에 몰린 레슬리가 모텔 주인 스위니의 호의로 조금씩 책임감을 배우고 자기 삶을 다시 꾸리는 과정을 담는다. 알코올중독 아내가 있었던, 자신 역시 누군가의 호의로 ‘괜찮은’ 삶을 꾸려나가던 스위니는 다른 사람들처럼 레슬리를 조롱하지 않는다. 처음에는 스위니의 호의를 어떻게든 빼먹을 생각만 하던 레슬리도 조금씩 그의 기대에 부응해나가며 자신에게 존재하지 않았던 미래를 모색하기 시작한다.
이 과정에서 영화는 늘 술 마실 궁리만 하며 폭력적으로 구는 레슬리에게도 남들이 보지 못한, 보지 않은 면이 있음을 드러낸다. 레슬리는 마을 사람들의 짓궂은 조롱을 대수롭지 않다는 듯 넘기거나 들이받는 식으로 ‘시원하게’ 응징하지만 속으로는 언제나 자신이 ‘괜찮은 사람’일 수 있기를 갈망했다. 그리고 벼랑 끝에서 이를 알아봐 주는 스위니를 만나 누구도 기대하지 않았으나 오랫동안 마음 한편에 남겨둔 꿈을 펼쳐낸다.
스위니가 레슬리의 관계에서 의구심이 드는 부분도 있다. 영화는 두 사람의 관계에서 ‘자격’을 묻고 따지지 않는, 인간에 대한 연민과 믿음에 기반한 호의가 가능케 하는 아름다운 순간들을 보이고 싶었던 것 같다. ‘쓰레기’가 된 삶이라도 누군가가 손 내밀어주고, 그로 인해 관계가 시작된다면 ‘괜찮은’ 삶을 살아갈 수 있다고 말이다. 그러나 이 메시지를 분명하게 전달하기 위해서는 조금 더 섬세하고 치밀했어야 하지 않을까 싶다. 둘의 관계가 ‘신데렐라’와 ‘백마 탄 왕자’의 노동계급판 변주로 읽히기도 하기 때문이다. 누군가의 곁을 묵묵히 지키며 버팀목이 되어주는 것과 더 높은 위치에서 누군가를 ‘구원’하는 것 사이에는 큰 차이가 있지만, 그 차이는 한끗 차이로 결정되기도 한다. 〈레슬리에게〉는 분명 전자의 관계 양상을 지향한 듯하지만, 후자의 의구심을 완전히 지울 만큼 탄탄하지는 않다. 결국 이런 유의 영화에서는 스위니 같은 ‘비현실’적인 인물을 설득력 있게 재현하는 데 그 성패가 달려 있기 마련인데 〈레슬리에게〉가 여기에 성공했는지는 의문이다. 분명 적당한 감동을 준다는 점을 부인할 수는 없겠지만 말이다.
〈레슬리에게〉가 끝내 자기 메시지를 온전히 전하는 데 실패한 듯 보이는 것이 유독 아쉬운 이유는, 레슬리 캐릭터의 힘과 이를 연기한 안드레아 라이즈보로의 빼어난 열연 때문이다. 가진 것이 아무것도 없는 자의 공허함, 허탈함, 분노 그리고 동시에 아주 깊은 곳에 깃들어 있는 희망을 응축한 캐릭터와 이를 설득력 있는 리얼한 연기로 선보이는 안드레아 라이즈보로는 영화의 성취에 대한 개인의 판단과 별개로 분명 많은 사람에게 인상적으로 다가갈 것이다.
*영화 매체 〈씨네랩〉에 초청받은 시사회에 참석한 후 작성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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