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름소피2021-12-08 16:47:58
1995년 뉴욕, 글로 연결되는 따뜻한 이야기, <마이 뉴욕 다이어리(2021)>
작가가 되기를 꿈꾸던 조안나는 친구를 보러 뉴욕에 왔다가 급하게 뉴욕에서 자리를 잡고 작가가 되기로 마음먹게 된다. 그 곳에서 돈을 벌기 위해 마가렛이 CEO로 있는 작가 에이전시에 들어가게 된다. 회사에 들어가 호밀밭의 파수꾼, J.D.샐린저의 팬레터에 기계적으로 답장하는 업무를 받지만, 조안나는 팬레터를 읽으며 진심으로 답장을 보낸다. 회사에서 일어나는 여러 일들을 겪으며 점점 회사에 적응하는 조안나는 작가 에이전시에서 인정을 받으며 현실과 작가라는 자신의 꿈 사이에서 흔들리게 된다.
이 영화를 보면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패션업계와 출판업계라는 것 만 다를 뿐, 상사와 비서의 관계가 두드러진 다는 점에서 두 영화는 비슷하다. 하지만 분위기 자체는 완전히 다르다.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에서는 화려하고 패션 업계의 차가움이 잘 드러났다면 마이 뉴욕 다이어리에서는 좀 더 차분하고 따뜻한 부분이 주가 되었다.
특히 상사인 마가렛에게 시련이 닥치고 조안나가 위로를 하게 되면서 서로간의 신뢰가 두터워지는데, 이 과정이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에 비해서 좀 더 사적인 시련이었다는 점에서 마가렛과 조안나가 진정한 신뢰를 쌓고 진정한 파트너로 거듭났다는 생각을 하게 한다.
영화의 시작부터 뉴욕의 거리와 건물들을 아름답게 표현해 정말 1994년에 꿈을 이루기 위해 뉴욕으로 떠난 청춘들을 추억하는 듯 했다. 따뜻한 분위기에는 영화의 색감도 한 몫을 했다. 전체적으로 화면에 따뜻한 색감을 썼고, 이러한 부분이 영화의 분위기와 어우러져 더욱 따스함을 느낄 수 있었다.
개인적으로 가장 인상깊었던 부분은 조안나가 호텔 로비에서 상상 속에서 춤을 추는 부분이었다. 조금 뜬끔없다고 느껴지기는 했지만 조안나가 상상하고 있는 것들을 보여주면서 마치 뮤지컬 같기도 하다. 이러한 부분이 작가로서 현실 속에서 조안나의 상상을 엿보는 것 같아 조안나의 작가로서의 정체성과 꿈에 대한 열망을 느낄 수 있었다.
영화에서 조안나는 작가라는 자신의 꿈과 현실 사이에서 고민하게 된다. 마가렛은 자신의 비서 자리에는 작가를 채용하지 않는다고 말하며, 샐린저는 조안나에게 계속해서 작가가 되고 시를 쓰라고 말한다. 그 사이에서 혼란을 겪고 있던 조안나는 뉴욕에 오기 전 버클리에 있던 전 남자친구와 뉴욕에서 함께 지내고 있었지만 자신을 존중해주지 않던 남자친구 모두를 정리하고 결국 자신의 꿈을 이루기 위해 회사를 그만두기로 결심한다. 꿈과 현실사이에서 갈등하는 조안나의 모습은 21세기를 살아가는 청년들의 현실과도 맞닿아 있어 공감을 불러일으키기 충분했다.
*이 글은 씨네랩으로부터 시사회에 초청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Relative cont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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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애증의 모녀에게 멀티버스가 필요했던 이유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씨네랩으로부터 초청받아 참석한 영화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의 시사회 관람 후기입니다.
미국에 이민 와 힘겹게 세탁소를 운영하던 중 국세청 조사에 시달리기 시작한 '이블린(양자경)'. 국세청에 제출할 수많은 관련 서류를 검토하던 그녀는 남편 '웨이먼드(케 후이 콴)'의 이혼 요구와 연애 중인 여자 친구를 인정해달라는 딸 '조이(스테파니 수)' 때문에 대혼란에 빠진다. 그때 이블린의 눈앞에서 멀티버스가 열리고, 알파 지구에서 온 알파 웨이먼드를 만난 그녀는 수많은 자신이 다른 우주를 살아가고 있음을 알게 된다. 알파 웨이먼드는 이블린에게 그녀가 무한한 다중 우주의 절대 악 조부 투파키에 대항할 유일한 인물이라는 사실을 알려준다. 그녀는 수많은 이블린 중 가장 최악의 선택만 한 이블린이기에 모든 멀티버스의 이블린으로부터 능력을 빌려 온다면 위기의 세상과 가족을 구할 수 있다는 것. 또 알파 지구의 이블린이 딸 조이에게 권위적으로 윽박지른 결과 조이가 흑화 해 조부 투파키가 되었으니, 이블린만이 조부 투파키를 막을 수 있다는 점도 알려준다. 이에 이블린은 멀티버스의 운명과 딸과의 관계를 모두 구하기 위한 여정에 나선다.
참신한 소재라면 가만두지 않는 창작자들 덕분에 '멀티버스', 다중 우주 개념은 더 이상 낯설지 않다. 그러나 익숙한 소재를 선택하는 것과 그 소재를 적절히 활용하는 것은 다른 일이다. 멀티버스도 마찬가지다. 필연적으로 다양한 설정을 필요로 하는 다중 우주 개념은 마치 복어와도 같다. 당장 지난 10년 간 할리우드의 정점에 있던 MCU도 <스파이더맨: 노 웨이 홈>을 제외하면 이 소재를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고 있다.
하지만 다니엘 콴과 다니엘 쉐이너트, 두 명의 다니엘이 만든 액션 코미디 영화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이하 <에에원>)는 다르다. 시작부터 멀티버스 세계관을 숨기지 않으며 러닝타임 내에서 완벽하게 소화한다. 영화는 이블린이 책상에 가득 쌓인 서류를 뒤적이는 가운데, 거울에 비친 그녀를 담아내면서 시작된다. 두 명의 이블린을 함께 잡아주던 카메라는 이내 거울 안으로 빨려 들어간다. 마치 지금 보이는 이블린 말고도 다른 이블린이 있다는 걸 암시하듯이. 거울을 활용한 도입부는 흥미롭게도 <에에원> 속 멀티버스만의 한 가지 특징을 암시한다. 영화에는 다중 우주의 다양한 이블린이 등장하지만, 마치 거울 안에 갇혀 있듯 그들이 직접 만나는 장면은 없다. 여기서 모든 것이 시작된다.
"모든 것(Everything)"이 있는 멀티버스, 인터넷
<에에원>의 멀티버스는 MCU를 비롯한 다른 영화의 멀티버스와는 다르다. 일반적으로 멀티버스 영화는 우주 간의 경계가 없어져 '내'가 다른 '나'를 만나는 사건을 다룬다. 반면에 <에에원>의 멀티버스에서는 다른 우주의 '나'에게 있는 능력과 특징의 일부를 '내' 우주로 끌어올 수 있다. 실제로 이블린은 필요한 순간마다 적재적소의 능력을 다른 우주의 이블린으로부터 빌려온다. 괴력의 '디어드리(제이미 리 커티스)'에게 쫓기자 쿵후 마스터 이블린의 격투 실력을 끌어온다. 다수의 적과 싸워야 할 때는 피자집 아르바이트생 이블린의 광고판 돌리는 능력을 가져온다. 조부 투파키도 마찬가지다. 불의의 사고로 모든 우주에 접속할 수 있게 된 그녀는 각종 기상천외한 능력을 끌어다 활용한다. 이 아이디어는 <에에원>의 연출과 프로덕션이 특히 인상적인 이유다. 사실상 세탁소와 국세청 건물 안에서 모든 이야기가 진행되는데도 <닥터 스트레인지 2> 못지않은 스케일을 뽐내기 때문이다.
흥미롭게도 <에에원>의 멀티버스는 낯설지 않다. 아무것도 모르지만 필요한 순간 모든 것을 가져다 쓸 수 있는 멀티버스는 어딘가 친숙하다. 이유는 간단하다. 이 멀티버스는 인터넷이라는 이름으로 이미 우리 주변에 존재하기 때문이다. 현대인은 요리 레시피부터 지하철 배차 시각에 이르기까지 실생활에 필요한 모든 것을 암기하거나 알지 못한다. 대신 필요한 순간마다 인터넷에 접속해 가장 적절한 정보를 찾아내 활용할 줄 안다. 이 맥락에서 보면 이블린과 조부 투파키의 갈등은 단지 멀티버스의 운명을 건 대결이 아니다. 인터넷을 사용하는 서로 다른 세대의 갈등이다. 멀티버스를 처음 접한 이블린이 놀라움을 금치 못하는 모습에서는 인터넷을 비롯해 스마트폰과 같은 모바일 세계를 처음 접한 기성세대를 엿볼 수 있다. 반면에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멀티버스를 다루는 조부 투파키에게서는 태어날 때부터 인터넷을 서핑하던 새로운 세대의 모습을 볼 수 있다.
두 다니엘은 <에에원>이 "세대 차이와 인터넷, 현대인들에게 만연한 잠재된 공포를 담고 있는 영화"라고 말한다. 당장 전화번호를 모두 외우고 다니던 사람들의 눈에 그럴 필요를 느끼지 못하는 사람들은 마치 다른 우주에서 온 사람을 보는 것처럼 이해하기 어려울 수밖에 없다. 누군가에게는 숨 쉬듯 당연한 삶의 방식이지만 다른 누군가는 그들처럼 숨 쉬고 그들을 따라잡기 위해 노력해야 하다. 그래서 인터넷으로 인해 정보가 넘쳐 나고, 같은 시공간에 전혀 다른 세상이 펼쳐지는 시대에 부모와 자녀의 관계는 일상이 아니다. 좀처럼 이해할 수 없는 행동만 골라하는 철천지원수 간의 싸움으로 보이기도 한다. 이는 이블린이 동성애자인 조이를 좀처럼 이해하지 못하는 이유이자, 이블린이 막아야 하는 빌런 조부 투파키가 알파 지구의 조이인 이유다.
멀티버스 속 "모든 곳(에브리웨어)"의 의미
그렇다고 해서 <에에원>이 어머니, 부모님, 기성세대가 마주한 놀라움과 혼란에만 주목하는 것은 아니다. 영화는 멀티버스가 너무나도 자연스러울 조이의 내면을 장악한 공허함에도 깊은 관심을 기울인다. 그녀는 멀티버스 안에서 원하는 모든 것을 할 수 있고, 모든 것이 될 수 있다. 그래서 그녀의 삶은 역으로 무의미하다. 이는 SNS와 같은 인터넷 공간에서 머무는 시간이 길어지고, 그곳에서 접하는 정보에 압도되거나 좌절하거나 공허함을 느끼는 일이 많아진 현대인의 모습과 매우 유사하다. 그 결과 조부 투파키가 된 조이는 모든 것을 파괴할 블랙홀, 검은 베이글을 만든다. 세상을 휩쓸기 위해서가 아니라 자기 자신을 파괴하기 위해서. 이렇게 조부 투파키는 이름만 다른 같은 공간에 사로잡혀 삶의 의미와 이유를 잃어버린 인물을 대변한다.
조부 투파키의 캐릭터성은 <에에원>을 단순히 코미디와 액션으로 점철된 오락 영화가 아니라 예상치 못한 진중함까지 맛볼 수 있는 깊이감 있는 영화로 만든다. 삶의 의미를 잃은 조부 투파키는 바위만 존재하는 우주에서 비로소 평온해진다. 모든 것들에게 개입하거나 신경 쓰지 않아도 되는 우주의 고요함만이 소중한 것이다. 하지만 이블린의 생각은 다르다. 그녀는 모든 일을 알기 때문에 오히려 생생히 흘러가는 지금 이 순간의 경험과 선택이야말로 가장 중요하고 뜻깊은 것이고, 당장 옆에 있는 이들에게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고 말한다. 그래서 조부 투파키처럼 모든 멀티버스를 오갈 수 있는 능력을 얻은 이블린은 무위의 우주에서 딸을 끄집어 내려한다. 자신에게 권한 검은 베이글을 거절하고, 돌이 된 우주에서도 딸을 구하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
이블린과 조부 투파키의 논쟁은 두 다니엘이 <에에원>에 "가족 드라마용, 공상과학용, 철학용 답이 각각 따로 있다"는 말로 이어진다. 철학적, 종교학적 사유가 함축되어 담겨 있기 때문이다. 어찌 보면 이 모녀는 마치 해탈의 경지에 올라 모든 것을 깨달은 사람들이다. 모녀의 갈등은 깨달은 자가 현실 세계를 무의미하다고 여겨 도덕적 규범을 무시하거나 외면할 것인지, 아니면 다른 이들도 자신처럼 해탈할 가능성이 있다고 여기며 그들을 사랑하고 그들에게 관심을 주며 살 것인지에 대한 논쟁인 것이다. 그래서 이블린이 끝까지 조이를 포기하지 않는 것은 모성애이자 멀티버스의 붕괴를 막는 히어로의 자세이지만, 동시에 종교 철학적 선택이기도 하다. 특히 이블린이 제3의 눈을 개안하는 것, 불교 미술 양식인 탱화의 분위기가 물씬 풍기는 메인 포스터, 부처의 깨달은 마음을 상징하는 원불교의 일원상처럼 생긴 베이글의 존재는 오랜 시간 종교를 막론하고 이어진 논쟁을 다시 떠올리게 하기에 충분하다.
"단 번에(All at once)" 모든 것의 의미를 알게 된 사람의 마무리
이렇게 조부 투파키와 조이의 마음을 읽은 뒤 영화는 이블린의 시점으로 되돌아온다. 그녀가 온갖 우주를 경험하며 단 번에 깨달은 가르침을 어떻게 실천할 것인지를 보여준다. 에블린은 마침내 딸을 이해한다. 그녀는 조이가 레즈라는 사실 자체를 받아들이지 못해서 딸과 매번 싸웠다. 하지만 그건 표면적인 문제일 뿐 핵심은 자신과 딸의 세상이 같지 않으며 모녀가 서로 다른 세상을 살고 있음을 이제 깨달았다. 설령 딸의 세상이 두렵고 혼란스럽더라도, 발을 내디뎌 새로운 세상을 이해하고, 딸의 관점에서 딸의 고충에 공감하되 먼저 살아 본 이만이 알 수 있는 변치 않을 삶의 지혜를 일러주어야 한다는 가르침을 터득한다. 이렇게 먼저 다가가서 위해서 그저 평범할 수 있었던 가족 드라마에는 멀티버스가 필요하다.
이처럼 <에에원>은 두 다니엘의 말마따나 수많은 혼란 속에서 "가족에게 관심 갖는 법을 배우는 엄마의 이야기"이다. 딜도와 애널 플러그, 장난감 눈깔 등을 예상치 못한 순간에 등장하는 B급 코미디 요소는 익숙함에 신선함을 더하는 양념일 뿐이다. 영화는 줄곧 딸을 이해하지 못하고 혼란에 빠진 엄마가 딸이 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사는지를 마침내 깨달은 후 화해하는 익숙한 흐름을 따라간다. 그래서 온갖 장르적 특징을 다 섞어 놓아 왁자지껄하고 정신없던 멀티버스는 결국 눈물 한 방울과 함께 가족 드라마로 귀결된다.
이는 마지막 장면이 영화의 시작만큼이나 인상적인 이유다. 세상의 모든 이야기와 사정을 알게 된 이블린이지만, 그녀는 멀티버스 속으로 빠지지 않고 눈앞에 있는 세무국 직원 디어드리에게 주목한다. 설명을 제대로 못 들었으니 한 번만 다시 말해달라면서 디어드리에게 관심을 쏟는다. 서류에 눈이 고정되어 있을 뿐 정작 가족이나 손님에게 제대로 신경 쓰지 않고 있던 오프닝과 비교하면 천지 차이 나는 변화다. 멀티버스가 이름만 다른 인터넷 공간이라고 생각한다면, 상대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먼저 다가가서 이야기를 들어주는 작은 관심이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말처럼 들리기도 한다.
다만 <에에원>에도 단점이 없지는 않다. 우선 뒷심이 부족하다. 사실 영화는 템포가 상당히 빠르다. 세탁소에서의 오프닝만 보더라도 알 수 있지만 쇼트 하나하나가 굉장히 짧고, 화면 전환도 빠르다. 그런데 러닝타임도 짧지 않다. 2시간 19분에 달한다. 그 결과 영화는 상대적으로 길게 체감되고, 피로감이 쌓인다. 클라이맥스라 할 수 있는 이블린과 조이의 화해 장면이 생각보다 늘어진다는 인상이 남는 이유다. 확실한 임팩트를 주려는 의도였는지는 몰라도, 모두가 예상할 수 있는 전개를 의도적으로 끈다. 말 한 마디면 종결될 상황에 굳이 부연 설명을 덧붙이는 듯 느껴진다. 그래서 누적된 피로감에 약간의 지루함이 더해지면서 감흥이 덜해진다.
호불호가 나뉠 가능성도 크다. 장르를 하나로 단정 짓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지만, <에에원>은 기본적으로 가족 드라마와 코미디 영화의 혼합이다. 그런데 이 코미디가 미국식 B급 감성을 적잖이 풍기는 관계로 취향에 어긋나는 순간 영화는 전반적으로 혼잡하다. 조부 투파키가 남성 성기를 무기처럼 휘두르는 장면이나 성인 기구를 활용한 코미디가 대표적이다. 관객을 웃기겠다는 목표 충족에는 적합한 아이디어일지 몰라도, 그 자체로 다소 그로테스크하게 느껴질 여지도 충분하다.
그렇지만 개개인의 취향 차이를 제외한다면 <에에원>이 멀티버스라는 소재를 120% 살려낸, <탑건: 매버릭>과는 또 다른 의미로 올해의 '시네마'라는 점에 동의하는 것은 어렵지 않아 보인다. 그러다 보니 멀티버스라는 소재를 붙잡고 고생 중인 MCU 입장에서는 다소 쓰라릴 수 있겠다는 생각도 든다. <인피니티 워>와 <엔드게임>의 감독인 루소 형제가 <에에원>의 제작자이니, 그들과 재계약하지 못한 걸 땅을 치며 후회할지도 모를 일이다.
E(Exceeds Expectations, 기대 이상)
마블이 보고 배워야 할 멀티버스 활용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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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살인자ㅇ난감 | 색다른 외관에 못 미치는 깊이감
*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편의점 아르바이트를 하며 평범하게 살아가던 대학생 '이탕'(최우식). 어느 날, 그는 편의점에 난입한 취객들과 실랑이를 벌이고, 퇴근길에 그들과 다시 마주쳤다가 우발적으로 살인을 저지르고 만다. 급하게 자취방에 숨은 그는 미처 숨기지 못한 범행 도구를 떠올리며 불안해하면서도, 사망자가 악독한 범죄자였다는 뉴스를 보면서 묘한 위안을 얻는다.
하지만 안심도 잠시. 예상치 못한 목격자 '선여옥(정이서)이 등장하면서 이탕은 더 큰 난관에 봉착한다. '장난감'(손석구) 형사가 이끄는 수사망이 점점 그를 조여올 뿐만 아니라 여옥의 협박과 갈취도 그를 위협하기 시작한 것. 이에 자수와 도주를 두고 고심하던 이탕은 결단을 내린다. 모든 증거를 지우기 위해 살인자가 되어 살기로.
<살인자ㅇ난감>의 명암
한국 영화 시장에는 네 번의 성수기가 있다고들 한다. 여름 방학, 크리스마스, 추석과 설날 연휴. 하지만 팬데믹 이후에는 통하지 않는 말이다. 특히 명절 연휴의 위력이 옛날 같지 않다. 작년 추석에는 <1947 보스톤>, <천박사 퇴마 연구소: 설경의 비밀>, <거미집>이 모두 흥행에 실패했다. 지난 설 연휴에도 <도그 데이즈>, <데드맨>, <아가일> 모두 외면받았다.
대신 그 자리를 OTT가 채웠다. 특히 넷플릭스의 약진이 눈에 띈다. <오징어 게임>, <수리남>처럼 명절 연휴를 겨냥한 대형 한국 콘텐츠가 연달아 흥행하는 중이다. <살인자ㅇ난감>도 그 바통을 이어받았다. 공개된 후 3주 차가 되도록 국내외에서 넷플릭스 콘텐츠 순위 1위 자리를 놓치지 않았다.
그러나 빛과 그림자는 한 몸인 법. <살인자ㅇ난감>에는 성적만으로 확인할 수 없는 문제가 있다. 한국 콘텐츠의 고질병, 부족한 뒷심이다. 에피소드 8개 중 앞선 절반은 환상적이다. 출연진 말마따나 '팝(pop)하다'라는 표현이 안성맞춤인 독특한 연출이 정주행을 결심하게 만든다. 문제는 그다음이다. 풍경이 부산으로 바뀐 후부터 각 캐릭터는 표류하고, 극은 동력을 상실한다.
살인자의 난감함을 꽃피우다
<살인자ㅇ난감>의 매력은 예상을 과감하게 벗어나는 이미지의 향연에서 비롯된다. 이탕은 선여옥을 죽이려 한다. 그녀의 거실에서 머리를 향해 망치를 휘두르는 탕. 그 순간 화면이 전환된다. 탕과 여옥은 거실에 있지 않다. 웬 꽃밭에 있다. 그곳에서 탕이 전속력으로 달려와 여옥의 머리를 망치로 후려친다.
특히 이 장면을 슬로 모션으로, 그것도 순식간에, 빨간 피는 가능한 등장하지 않는 방식으로 보여준다. 색다른 배경, 교차 편집, 짧고 담백한 묘사가 한 데 어우러지니 임팩트는 강렬하다. 잔혹함을 대신하는 상쾌한 이미지를 보면 '이 드라마는 다르다!'라는 느낌을 받을 수밖에 없다.
더 나아가 '팝한' 연출의 힘은 휘발성이 아니다. 살인자의 난감함이 아름다운 화면과 대조를 이루며 더 명쾌하게 드러나기 때문. 의도치 않게 살인을 저지른 이후 충격에 빠진 이탕. 그의 정신적 피로감과 죄책감은 그가 선여옥을 죽일 때만큼이나 독특하지만, 기묘한 환각으로 표현된다. 그 덕분에 그가 살인에 대한 거부감을 잃고 점점 살인에 빠져드게 되는 일련의 흐름도 더 설득력 있게, 직관적으로 제시된다.
평범해진 살인자
하지만 <살인자ㅇ난감>은 첫인상의 이점을 더 살리지 못했다. <살인자ㅇ난감>의 신선함은 소재를 다루는 방식에서 비롯한다. 핵심은 발상의 전환이다. 살인을 잔인하지 않게 다루는 연출과 미장센이 돋보였다. 문제는 다른 부문에서 발상의 전환을 찾을 수 없다는 것. 즉, 살인의 외양만 바꿨을 뿐, 이야기의 본질은 색다르지 않다. 그 결과 <살인자ㅇ난감>의 초반과 후반은 괴리감이 극심하다.
캐릭터의 완성도가 그 방증이다. 주인공 이탕은 자기 직감대로 사람을 죽이고, 사망자가 범죄자라는 사실을 확인한 후에 자기 살인을 정당화한다. 그러면서도 평범한 대학생의 면모도 지녔다. 살인 이후 극심한 악몽에 시달리고, 자수를 결심하며, 가족의 품을 그리워한다. 이처럼 살인이라는 거대한 충격 앞에서 갈팡질팡하는 청년이 이탕이라는 캐릭터의 특성이었다.
그런데 배경이 부산으로 바뀐 후부터 이탕이라는 캐릭터는 평범해진다. 그는 노빈의 도움을 받아 자기 직감이 옳음을 확인한 뒤 범죄자를 처단한다. 마지막까지도 범죄의 대가를 치르지 않은 채 정의롭다고 믿는 살인을 저지른다. 이처럼 "죽어 마땅한 놈들은 죽어야 한다"는 신념을 거침없이 실천에 옮기는 그는 다크 히어로에 가깝다. 살인의 무게감 때문에 괴로워하던 전반부의 이탕과는 전혀 다른 인물이다.
살인 장난감도, 살인자 난감도 찾을 수 없다
'송촌'(이희준)과 장난감 형사의 존재감도 덩달아 유명무실해진다. 송촌은 본래 이탕의 내적 고뇌를 드러내는 장치여야 했다. 죄를 저지른 사람을 죽인다는 공통점이 있지만, 차이점도 명확한 캐릭터이기 때문이다. 그는 이탕에게 "죽어야 할 놈을 판단하는 너 스스로를 믿을 수 있냐"라고 묻는다. 살인 대상의 범죄를 인지하고 죽이는 자신과 그렇지 않은 사람은 윤리적으로 다르다는 지적에 이탕은 혼란스러워한다.
그런데 드라마는 윤리적 딜레마를 깊게 파고들지 않는다. 그들 간의 차이점은 논제가 던져지자마자 퇴장한다. 분위기만 잡은 후에 이탕을 정의의 사도로, 송촌을 그에 맞서는 마지막 빌런 정도로 간략히 묘사한다. 그러다 보니 '살인자'에 관한 새로운 이야기를 보여줄 것 같았던 첫인상을 후반부에서는 찾아볼 수 없다.
장난감 형사의 문제는 더 크다. 그는 범죄자를 법의 범위 내에서 단죄해야 하고, 죽어야 할 사람을 정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고 믿는다. 슈퍼히어로 영화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전형적인 경찰 혹은 검사 캐릭터다. 자연히 그와 이탕의 대립은 익숙하다. 그 와중에 드라마가 은연중에 이탕의 행위에 정당성을 부여하고 있으니, 그와 이탕의 대립각은 날카로움이 부족하다.
이에 더해 평면적인 인물에 생동감을 불어넣으려는 노력도 적다. 장난감과 아버지의 묘한 관계, 아버지와 송촌의 과거를 토대로 형사가 살인자가 되는 이야기를 쌓으려 한 시도는 엿보이나 역부족이다. 세 인물 간의 감춰진 이야기가 단순한 애증과 부조리로 귀결되기 때문. 손석구라는 배우의 독특한 마스크가 아니었다면 더 희미한 캐릭터였을지도 모른다.
반복돼서 더 아쉽다
사실 후반부가 맥 빠지는 현상은 <살인자ㅇ난감>만의 문제가 아니다. 여러 한국 콘텐츠에서 볼 수 있는 문제다. 피카레스크 성향의 원작을 영상화할 때 선인-악인, 가해자-피해자로 나눌 수 없는 캐릭터가 단순해지면서 뒷심이 약해지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마스크걸> 같은 작품이 대표적이다.
이유는 어렵지 않게 유추할 수 있다. 특히 웹툰 원작의 경우, 흥행이나 편의성을 고려해 대중적인 플롯에 맞춰 각색이 자주 이뤄진다. <살인자ㅇ난감>의 후반부도 마찬가지다. 연결성과 흐름은 깨져도, 이탕 중심으로 구도를 간략화했다. 장점도 분명하다. 한정된 분량 내에서 이야기를 끝까지 끌고 가는 동력을 유지할 수 있다.
하지만 처음에 보여준 색다른 연출을 고려하면 결말로 향하는 과정이 평범하다는 인상도 부정할 수는 없다.
기대감을 한껏 부풀린 나머지 용두사미가 된 셈이다. 객관적인 성공과는 별개로, 가능성과 잠재력을 스스로 옭아맨 <살인자ㅇ난감>이 유독 아쉬운 이유다.
Acceptable 무난함
또 하나의 뒷심 부족을 목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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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매거진에 담긴 따뜻한 인생 한 편, 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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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렌치 디스패치 (The French Dispatch, 2021)
개봉일 : 2021.11.18. (한국 기준)
감독 : 웨스 앤더슨
출연 : 틸다 스윈튼, 프란시스 맥도맨드, 빌 머레이, 제프리 라이트, 애드리언 브로디, 베니시오 델 토로, 오웬 윌슨, 레아 세이두, 티모시 샬라메, 리나 쿠드리
매거진에 담긴 따뜻한 인생 한 편, 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영화
국내에선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로 가장 유명한 감독, 웨스 앤더슨. <개들의 섬> 이후 3년 만에 공개된 그의 신작 <프렌치 디스패치>는 이제껏 봐왔던 그의 작품 중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과 가장 닮아있는 작품이 아닐까 생각한다. 앞서 공개된 <프렌치 디스패치>의 배경 일러스트와 여러 스틸컷들을 보자마자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의 호텔과 색감이 자연스럽게 연관되어 떠올랐고, 이 영화는 ‘가장 웨스 앤더슨스러운 영화’가 되지 않을까 기대했다. 그리고 그 기대는 아주 행복할 만큼 착-맞아떨어졌다.
이 두 작품은 외적인 부분뿐만이 아니라 웨스 앤더슨 감독이 담아낸 작품 속 메시지 또한 서로 닮아있다.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이 구스타브와 제로의 우정, 오랜 시간 한 장소를 지켜낸 그들의 인생에 대한 존중을 표하는 작품이라면 <프렌치 디스패치>는 가상의 매거진인 ‘프렌치 디스패치’를 운영했던 편집장 아서와 매거진에 글을 기고한 작가들. 즉 열정과 따뜻한 마음을 지닌 저널리스트들에 대한 경의를 표하는 작품이다.
글을 사랑하고, 글을 쓰는 사람을 존중하며 오랜 시간 ‘프렌치 디스패치’라는 주간지를 만들어온 편집장 아서와 저명한 필진들을 주인공으로 한 이 영화는 프렌치 디스패치의 마지막 발행을 앞두고 시작된다. ‘내가 죽으면 매거진도 발행을 중지한다.’라는 아서의 유언을 따라 프렌치 디스패치라는 매거진 또한 죽음(마지막 발행)을 준비하게 된다. 오래 이어져온 길고 긴 매거진의 역사가 끝나는 기념적인 마지막 발행본에 어떤 특종을 실을 것인가. 편집장실에 모인 저널리스트들은 각자의 특종을 이야기하며 고민한다.
웨스 앤더슨스러운 영화
‘웨스 앤더슨스럽다.’ 웨스 앤더슨 감독의 작품을 전부 다 보지 않고 아주 일부만 봤다 하더라도 이 말이 무슨 뜻인지 확 체감이 될 것이다. 이전까진 ‘웨스 앤더슨스러움’을 제대로 느낄 수 있는 작품을 두 가지만 추천한다면 <로얄 테넌바움>과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을 이야기했는데, <프렌치 디스패치>를 보고 나선 생각이 바뀌었다. <프렌치 디스패치>와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로. 그만큼 이 영화는 ‘웨스 앤더슨스러움’의 끝판이라고 말할 수 있겠다.
웨스 앤더슨 감독의 감각이 엿보이는 색감과 이야기의 구성과 더불어 배우들의 열연과 매력 또한 이 영화의 ‘웨스 앤더슨스러움’을 가득 충전한다. 웨스 앤더슨 사단이라고도 불리는 빌 머레이, 애드리언 브로디, 오웬 윌슨, 틸다 스윈튼 배우와 웨스 앤더슨의 영화를 통해 새로운 모습을 보여줌과 동시에 그의 색감에 완벽하게 물든 레아 세이두, 티모시 샬라메, 리나 쿠드리, 제프리 라이트 배우 등. 훌륭한 배우들이 웨스 앤더슨 감독이 그린 아름다운 세계를 가득 채운다.
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영화
<프렌치 디스패치>는 매거진의 특성을 알맞게 살린 영화로, 각각의 주제를 가진 4개의 챕터로 이뤄진 옴니버스식 구조로 이루어져 있다. 저널리스트들이 준비한 에세이와 3가지 특종. 그리고 쇠락과 사망에 대한 챕터까지.
사건들 사이에 연관성이 하나도 없기 때문에 이러한 구성을 다소 산만하다고 느낄 수도 있겠으나, 나는 이 부분이 더 큰 장점으로 와닿았다. 필진들이 각자의 시선으로 담아낸 색다른 세상 이야기를 보며 여러 세계를 한곳에서 만나보는 느낌이었다고나 할까. 모든 이야기가 매력적이었고, 하나의 이야기를 볼 때마다 “아.. 저런 미학적 세계에서 한 번쯤 살아보고 싶다.”, “내 시간을 저 세계에 넣어두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웨스 앤더슨 감독의 영화를 볼 때마다 매번 이런 생각을 하게 된다. 저 세계에 한 번쯤 살아보고 싶다고)
개인적으로 이 영화는 1회차 관람이 아닌 다회 관람을 추천한다. 1회차 관람 때는 초반부에 와르르 쏟아지는 정보량과 수많은 인물들, 눈을 깜빡이기 아까울 만큼 아름다운 요소들로 가득찬 화면에 정신이 혼미했는데, 여러 번 반복해 보면서 그제서야 각 캐릭터의 이야기에 더 집중할 수 있었던 것 같다. 특히 무심하게 ‘No Crying’ 던지던 아서 편집장의 작은 행동들이 눈에 띄기 시작하며 영화의 엔딩을 더 감동적으로 느낄 수 있었다.
하지만 영화에 담긴 모든 메시지를 이해하지 못하더라도 이 영화는 충분히 관람할 가치가 있다. 영화에 담긴 색감과 미술 장치들, 컷의 구성, 캐릭터들의 디테일 등을 눈에 담기만 하더라도 엄청난 영감을 줄 것이라 확신한다. 언제 멈추든 상관없이 모든 순간이 작품이다.
프렌치 디스패치 시놉시스
20세기 초 프랑스에 위치한 오래된 가상의 도시 블라제 다양한 사건의 희로애락을 담아내는 미국 매거진 ‘프렌치 디스패치’ 어느 날, 갑작스러운 편집장의 죽음으로 최정예 저널리스트들이 한자리에 모이고 마지막 발행본에 실을 4개의 특종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하는데…! 당신을 매료시킬 마지막 기사가 지금 공개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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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의 성쇠, 희로애락. 모든 것을 함께 한 프렌치 디스패치
매거진 프렌치 디스패치는 아서의 편집장 부임과 함께 '피크닉' 대신 '프렌치 디스패치'라는 새로운 이름을 얻는다. 이 매거진은 아서와 함께 탄생했고, 그의 유언에 따라 마지막을 맞이한다. 많은 사람들의 희로애락과 도시의 여러 이야기를 담은 프렌치 디스패치는 이제 역사 속으로 사라질 준비를 시작한다.
프렌치 디스패치는 도시의 성장과 함께 여전히 해결되지 않는 문제, 사람들이 살아가는 모습들을 모아 한곳에 엮어낸다. 가벼운 마음으로 함께 훑어보는 도시 여행기를 시작으로 정신 병동에 갇힌 천재 예술가의 비밀, 이 도시에 오랜 시간 이어져온 공화당의 흔적을 지우기 위해 겁 없이 커다란 게임을 시작한 청년들의 도전기, 아주 오랜만에 현장으로 돌아온 경찰서장의 아들 납치 사건, 그리고 이 모든 이야기를 엮어낼 수 있도록 매거진을 만들어준 훌륭한 저널리스트 아서의 일대기까지. 프렌치 디스패치 매거진은 아서와 이 도시의 일대기이자 글을 쓰는 사람들의 삶을 지탱해 준 버팀목이다.
알고 보면 다정한 편집장 아서와 그를 따르는 필진들
세 편의 특종과 부록에 해당하는 도시 에세이 한편으로 이뤄진 이야기가 착착 줄 맞춰 지나가고, 이야기가 끝날 때마다 해당 호를 준비하며 필진들의 글을 읽는 아서의 모습이 함께 보인다
무심한 표정으로 'No Crying'을 강조하던 아서의 모습을 보면 다정함 같은 건 없을 것 같지만, 알고 보면 이만큼 따스한 마음을 가진 편집장이 또 없다. 그리고 필진들도 자연스레 아서의 말을 따른다.
아서는 원고의 양이 예상을 훌쩍 웃돈다는 이야기를 듣고 원고를 쳐내는 대신, 매거진 인쇄에 들어갈 용지의 부수를 늘리는 선택을 하고, 마감을 앞둔 채 문밖으로 나오지 않는 작가를 재촉하지 않고 조용히 기다린다.
말없이 타자를 두드리고 있는 크레멘츠 옆에 쌓인 몇 장의 바삭한 토스트, 조심스레 들리던 아서의 노크 소리와 적당한 거리에 위치한 의자. 손짓을 한 번 한 후 불편한 기색 없이 타자기를 두드리는 크레멘츠. 다른 기자가 제안한 수정사항은 바로 받아들이지 않으면서도 아서의 한마디는 바로 수긍하는 세저랙. 낯선 도시의 차가운 창살 안으로 건네진 입사 지원서와 한 권의 책. 매거진의 발행 중지와 함께 문제없을 만큼 챙겨주라는 보너스에 대한 언급까지. 편견 없이 따뜻한 편집장의 시선이 느껴지는 요소들이 영화 곳곳에 스며있다.
글과 함께한 일생
<프렌치 디스패치>는 도시의 수많은 이야기를 기록하고 오랜 시간 같은 자리를 지켜온 친구 같은 매거진 '프렌치 디스패치'와 그를 지탱했던 저널리스트들에 대한 경의를 표한다. 매거진의 탄생과 죽음을 모두 함께한 편집장 아서와 그를 따랐던 훌륭한 작가들. 아서의 죽음을 확인하고 한곳에 모인 작가들은 마지막 기사로 편집장의 부고문을 쓰기로 결정한다. 매거진이 만들어지기 전 그의 삶부터 프렌치 디스패치의 탄생과 편집장으로서의 행보까지. 각자가 보고 느껴온 아서의 이야기가 편집장실 안에 가득 차고, 탁탁-경쾌한 타자기의 소리와 함께 부고문이 조금씩 완성된다.
아서는 평생을 글을 읽고, 모으며 작가들과 함께 살아왔다. 글과 사람을 사랑하던 저널리스트의 죽음은 또 한편의 글이 되어 프렌치 디스패치에 실린다. 아서의 일대기는 발행이 중지된 매거진 속에 영원히 남아있을 것이다. 그를 사랑하던 작가들이 써낸 글 속에서 말이다.
부고문이 실린 마지막 발행본을 함께 읽을 수 있다면 참 좋을 텐데, 프렌치 디스패치가 발행되는 저 가상의 도시에 살아봤다면 참 즐거웠을 텐데, 괜스레 마음이 찡해지는 엔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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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BIFAN 데일리] 진실과 진심 사이에
감독] 임찬익
출연] 이주승, 아디나 바잔(Adina BAZHAN), 구성환, 조하석 등
프로그램 노트] 다큐멘터리 조연출 승주는 자신의 작품을 연출하는 것이 꿈이지만 그 꿈을 이루기는 쉽지 않다. 이번에도 역시 조연출 신세로 고려인 결혼식 다큐멘터리 촬영을 위해 카자흐스탄으로 떠나는 승주. 그러나 감독의 갑작스러운 교통사고로 인해 예정된 촬영을 하지 못하고 제작비만 날리고 만다. 이런 열악한 환경 속에서 다큐멘터리를 완성하면 승주의 연출 입봉작을 제작하겠다는 대표의 말에 승주는 가짜 결혼식 촬영을 계획한다.
목표가 간절할수록 처해 있는 현실은 더욱 괴롭다. 그렇기에 목표를 이루기 위한 유혹에 쉽게 빠지기 마련이지만, 그런 과정을 통해 이룬 목표는 달콤하기보다는 쓰디쓸 뿐이다. 자명한 인생의 진리를 전하는 이 작품은 카자흐스탄의 아름다운 풍광과 이에 어우러진 배우들의 따뜻한 연기로 그 메시지가 더욱 뚜렷하게 드러난다. 승주가 가짜 결혼을 위해 선택한 카자흐스탄 이름 ‘다우렌’의 진정한 의미가 빛을 발하는 결말에 이르면 미소가 절로 지어진다. (이정엽)
선혈이 낭자한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의 스크린 중에도 이따금, 부드러운 초록빛이 스크린을 메울 때가 있다. 좀비를 비롯한 이생명체의 공격, 디스토피아의 살벌한 세계관, 고어나 호러 영화를 전혀 보지 못하는 나 같은 사람도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를 자주 찾는 이유다. 나와 비슷한 누군가라면 <다우렌의 결혼>이 꽤나 반가울 것이다. 이 영화는 처참한 장면 대신 말갛고 순한 장면으로 마음을 두드리니까.
일상을 군더더기 없이 연기하며 감탄을 자아내는 배우 이주승은 여기서도 적당한 피로와 타협으로 점철한 현대인의 얼굴로 포문을 연다. 난민촌을 담은 다큐멘터리라면 취약한 상황에 처한 사람 보호 차원에서 이름을 적당히 가명 처리하고 가명임을 밝혀도 될 것 같은데...라고 나는 생각하지만, 조연출 승주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던 모양이다. 책상 앞에서 쪽잠을 자고 있는 대로 고민하며, 열심히 일상을 채운다.
꿈은 너무 멀게만 느껴진다. 분명 입봉이라는 꿈을 위해 나아가고 있는데, 어쩐지 자꾸 꼬이고 박살나고 멀어지기만 하는 느낌으로 승주는 카자흐스탄의 작은 마을을 걷는다. 그림처럼 아름다운 풍광 속에서, 이방인에게 기꺼이 자리와 음식을 내어주는 사람들 사이에서, 그의 얼굴만은 펴지지 않는다. 이 영화는 사실 고려음식 열전이었던가 싶어질 만큼 멋진 식탁 장면들에 정신이 혼미해질 때에도, 승주만큼은 뚱한 표정이다.
마을 잔치를 결혼식처럼 둔갑시키는 것도, 거짓 결혼식을 만드는 것도, 그는 내켜 하지 않는다. 진짜가 아니니까. 다큐는 진짜를 찍는 작업이니까. 그러나 도저히 물러설 길이 없다 싶자, 그는 결국 가짜 결혼식을 결정한다. 마을 사람들이 모두 결혼식이라고 믿는다면, 그럼 괜찮지 않을까 하는 말에 적당히 물러선다. 어쩌면 승주가 이 영화에서 처하는 갈등은 "다큐멘터리가 추구하는(더 정확히 '추구할 수 있는') 것은 진실인가 사실인가" 하는 질문과 이어질 수도 있다.
그래서인지 나는 '진짜'라는 말의 범위를 가늠하며 영화를 보았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진짜'는 때로는 진실, 때로는 사실의 의미로 통용되니까. 그러나 이 영화는 다큐멘터리에 대한, 혹은 진실과 사실에 대한 깊은 고뇌로 우리를 데려가지 않는다. 대신 진짜라는 말의 경계를 슬며시 녹이고 넓힌다.
순한 마음은 진짜다
샤슬릭을 굽는, 그러니까 음식을 만드는 연기와 냄새를 피우면서 결혼식 소식을 알린다. 마을 사람들은 서로서로 결혼식 소식을 전하고, 어쩌다 마주친 승주의 카자흐스탄 이름 '다우렌'을 연신 부르며 환한 미소로 축하를 건넨다. 그 입소문과 축하의 장면들은 하나 같이 순하기만 해서, 보는 내내 참 좋았다. GV에서 들으니 실제 마을 이장님도 그 중 한 명으로 등장했다던데, 촬영에 열려 있는 마을 사람들의 마음이 그렇게 드러난 모양이다.
상대와 나의 관계성이나 거기서 얻게 될 손익을 계산하지 않고, 그냥 누군가의 행복에 마냥 기뻐하는 마음. 물론 거기에는 아디나가 그 동안 마을에서 쌓아 온 덕망이라는 배경도 있겠지만, 그냥 젊은이들의 사랑과 결합을 어여삐 여겨 주는 마음이 표정에서 묻어났다. 그 순한 마음은 이 영화가 가진 가장 큰 힘이고, 보기만 해도 기분이 좋아지는 장면이다.
같이 옮긴 걸음은 진짜다
가짜 결혼으로 시작했지만 아디나와 승주 일행은 점차로 가까워진다. 기분 좋은 날, 바람 좋은 날 함께 둘러앉아 좋은 음식을 같이 먹고, 같이 걸어다니고, 같이 웃는다. 이러한 과정이 단순히 연인으로서의 과정으로 그려졌다면 이 영화를 굳이 볼 이유가 없었을 것이다. 다행히 이 영화는 그런 진부한 멜로 서사 쪽으로는 힘을 주지 않았다.
가짜 연인 행세를 해야 하는 불가피한 상황에서 애정이 꽃피는 드라마를 우리는 숱하게 보아 왔으며, 심지어 가짜 결혼이라니 얼마나 올드한 틀인가. 이 영화에서 결혼이라는 틀은, 서로를 종속하는 폐쇄적 로맨스가 아닌 순한 동화로 들어가는 입구처럼 기능한다. 멜로 드라마라기엔 개연성이 흐릿하다는, 바로 그 점이 마음에 들었다. 아디나와 승주 각자의 걸음이 모였다 흩어지는 또 모이는 과정으로 의미가 있으니까. 다소 거짓말 같은 엔딩도 그럭저럭 납득하게 되는 건, 그래 세상에 이런 이야기도 있었으면 좋겠다 싶어지기 때문이다.
마주본 눈은 진짜다
누군가의 방을 들여다본다는 건, 그의 꿈과 소원을 보는 것과 같다. 거기까지 보았다는 것은 상당히 가까운 관계일 때만 가능한 일이다. 순한 마음에 둘러싸인 환경에서, 같이 걷고, 그의 마음 한 자락을 엿보고, 그의 눈 속에서 자신과 같은 면까지 보고 나면, 이제 그 두 사람은 먼 사이라고 할 수 없다. 그러다 보면 가끔은 자기 자신에게 하고 싶은 말이 상대에게 턱 튀어나오기도 하는 것이다.
상대를 바라본다는 것은, 어느 정도 자기 자신을 들여다보는 일이기도 한 것 같다. '다우렌' 승주와 아디나가 서로를 보고 자신을 본 것처럼, 이 영화를 본 나도 다시 나를 본다. 푸른 갈치를 생각하면서. 나의 '진짜'는 어디에 있는지, 혹시 어디 그물에 걸려 빠르게 썩어가고 있는 건 아닌지.
이 영화에서 '진짜'를 느끼게 한 것들은 모두 그저 진심이었다. 다큐멘터리가 사실을 담아 진실을 추구하는 것이라 하지만, 연출자 따로 감독 따로인 상황에, 아예 가짜 상황을 연출해 담는 상황조차 "다큐도 연출이라니까!" 하는 말에 어영부영 묻히는 상황에서, 그 말은 자꾸 삐그덕거리고 어긋나기만 한다. 대신 이 영화 내내 오롯이 빛나는 것은 진심이다. 백석의 시에 나오는, "욕심이 없어 희여졌"고 "착하디착해서 세괃은 가시 하나 손아귀 하나 없"으며, "너무나 정갈해서 이렇게 파리"한 존재들처럼 조용히 새하얀 진심.
백석을 생각하니 더더욱, 이 영화의 배경에서 은은한 미소를 짓고 있는 사람들을 생각하게 된다. 1937년 척박하게 얼어붙은 땅에 대뜸 던져졌으나, 숱한 죽음을 목격하고도 살아남은 사람들. 거기서도 국수를 말고 김치를 담그는 사람들. 이 세월 다 가고도 그 마음은 그대로여서, 처음 보는 사람에게도 풍성한 식탁을 차려주는 사람들. 어쩌면 이 영화에 묻어난 진심은 그들에게서 흘러나온 것인지도 모르겠다. 푸른 산과 너른 초원에 곱게 펼쳐진 이들의 톡톡한 존재감을 극장에서 다시 만날 날을 기대한다.
2023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6/29-7/9) 상영시간표
7월 2일 17:00-18:23 CGV소풍 8관 (상영코드 431)
7월 5일 16:30-17:53 CGV소풍 4관 (상영코드 7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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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의상을 담당한 패션디자이너 8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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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션 디자이너가 해석한 영화와 캐릭터는 어떨까?
90년대 부의 상징이었던 조르지오 아르마니의 <더 울프 오브 월 스트리트>부터 아방가르드 대표명사 장 폴 고티에의 <제 5원소>까지! 패션 디자이너가 해석한 영화와 캐릭터 같이 만나보아요
비밀이 가득한 젊은 백만장자 '개츠비'의 이야기를 그린 <위대한 개츠비>
<위대한 개츠비>에서 명장면을 꼽으라면 바로 파티장면이 빠짐없이 언급되는데요. 파티씬의 여성 파티복을 프라다에서 제작했다고 합니다. <로미오와 줄리엣>에서도 의상을 맡은적 있는 미우치아 프라다.
화려한 장식과 강렬한 색채를 잘 살리는것 같아요.
선 넘는 세 남녀의 아슬아슬한 관계는 테니스 선수들의 삼각관계를 그린 <챌린저스>
로에베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조나단 앤더슨은 <챌린저스>의 2000년대 초반에 유행한 프레피룩을 선보였는데요. 조나단 앤더슨은 " '보여주기'와 '승리'라는 개념을 느끼게 해주는 의상을 만들고자 했다'"라며 의도를 설명했습니다.
23세기의 뉴욕과 이집트, 크고 아름다운 우주를 무대로 선과 악의 싸움을 그린 <제 5원소>
프랑스 패션 디자이너 장 폴 고티에는 6년 동안 에르메스의 기성복을 디자인했으며, 미래 도시를 배경으로 한 영화에서 파격적인 의상을 제작했습니다. 붕대를 연상시키는 주인공의 의상은 영화의 독특한 매력을 더해줍니다.
<비거 스플래쉬>는 이탈리아 섬에서 휴가를 즐기던 록 스타와 그녀의 연인이 예기치 않게 옛 연인과 그의 딸을 만나면서 벌어지는 긴장감 넘치는 이야기를 그립니다.
시몬스의 의상은 영화의 시각적 매력을 한층 더 끌어올립니다. 특히, 주인공들의 세련되고 절제된 스타일은 영화의 우아하고 감각적인 분위기와 잘 어우러져, 시몬스의 디자인 철학을 잘 반영하고 있죠.
<세브린느>는 1967년에 개봉한 루이스 부뉴엘 감독의 영화로, 낮에는 부유한 주부, 밤에는 은밀한 이중 생활을 하는 여주인공 세브린느의 이야기를 다룹니다.
이브 생 로랑의 의상은 세브린느의 이중적인 삶과 심리를 패션으로 표현하며, 영화의 미스터리하고 관능적인 분위기를 한층 더 강화합니다. 특히, 클래식하면서도 도발적인 디자인은 영화의 시각적 아름다움과 주인공의 복잡한 내면을 잘 담아내고 있습니다.
<더 울프 오브 월 스트리트>는 1980년대와 1990년대 월스트리트를 배경으로 한 실화를 바탕으로, 주식 중개인 조던 벨포트의 부패와 타락을 다루는 이야기 입니다.
아르마니의 의상은 영화의 화려하고도 혼란스러운 분위기속 주인공들의 성공과 권력을 잘 녹여냈습니다. 특히, 정교하게 재단된 수트와 세련된 비즈니스 룩은 캐릭터들의 야망과 라이프스타일을 잘 나타내어 영화의 시각적 몰입도를 높였습니다.
<티파니에서 아침을>은 트루먼 커포티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뉴욕을 배경으로 한 주얼리 가게 앞에서 아침을 즐기는 주인공 홀리의 이야기를 그립니다
프랑스의 저명한 패션 디자이너 위베르 드 지방시는 영화 <티파니에서 아침을>에서 주인공의 의상을 담당하여 그의 우아하고 고급스러운 디자인 감각을 선보였는데요. 세련되고 우아한 스타일을 완벽하게 표현하며, 그녀의 자유분방한 성격과 도시적인 매력을 강조, 영화의 상징적인 블랙 드레스는 지방시의 미니멀하면서도 우아한 디자인 철학을 잘 담아내어 영화의 시각적 아름다움을 한층 더 돋보이게 했습니다.
<007 스펙터>는 제임스 본드 시리즈의 한 편으로, 비밀 조직 스펙터를 추적하는 본드의 활약을 그립니다.
톰 포드의 의상은 본드의 냉철하고 세련된 이미지를 강조하며, 그의 강인함과 스타일리시한 면모를 부각시킵니다. 특히, 완벽하게 맞춘 수트와 클래식하면서도 현대적인 디자인은 본드의 카리스마와 자신감을 잘 표현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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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메마른 마을, 메마르지 않은 사건
- 저는 미스터리와 스릴러 장르에 환장하는 사람입니다. 이 장르의 것이라면 영화, 드라마, 다큐멘터리, 소설, 만화를 가리지 않고 사랑하죠. 그런 제게 웰메이드 미스터리 스릴러 영화 한 편이 극장에 걸린다는 소식이 들려왔습니다. 설렘으로 양껏 부푼 마음을 안고 헐레벌떡 영화를 감상하고 돌아왔습니다. 과연 <드라이>는 진성 미스터리 스릴러 팬의 마음을 사로잡았을까요?※ 씨네랩으로부터 초청받아 3월 16일(수)에 진행된 <드라이> 시사회에서 영화를 감상했습니다. <드라이>는 2022년 3월 23일 국내 개봉했습니다.드라이The Dry<드라이>는 호주의 한 시골 마을에서 벌어진 사건의 진상을 파헤치는 연방 요원 '에런'의 이야기입니다. 어릴 적 친구였던 '루크'의 갑작스러운 죽음으로 고향에 돌아온 '에런'은 일가족을 살해한 후 자살한 것으로 보이는 '루크'의 누명을 벗겨달라는 부탁을 받습니다. 하지만 마을에 머무르며 사건을 조사하는 '에런'을 대하는 마을 사람들의 태도는 삭막하기만 합니다. 일 년 가까이 비가 내리지 않아 메말라버린 땅처럼 말이죠.그도 그럴 것이 '에런'은 과거 여자친구 '엘리'를 죽였다는 오해를 받아 마을을 떠난 인물입니다. '엘리'의 유가족과 마을 사람들의 시선이 곱지 않을 수밖에요. '에런'은 자꾸만 떠오르는 과거를 뒤로 한 채 사건의 실체에 조금씩 다가갑니다. 그 과정에서 '엘리'의 유가족이 일가족 살인 사건과 연관된 것으로 보이는 증거가 발견되고, 과거의 사건과 현재의 사건이 하나로 연결됩니다.가뭄으로 황폐하게 메말라가는 마을과 달리 과거의 사건은 메마르지 않고 사람들의 마음속에 남아있습니다. '에런'이 마을에 남아 사건을 조사하는 이유도 죽은 '엘리'를 향한 마르지 않은 죄의식 때문이죠. 영화는 계속해서 과거와 현재를 교차해 보여주는데요. 황폐하게 말라버린 마을의 현재 모습은 이 모든 사건이 벌어지기 전의 생기 넘치던 과거의 모습과 극명하게 대비됩니다.⊙ ⊙ ⊙영화 <드라이>는 미스터리와 스릴러가 버무려진 작품입니다. 미스터리 애호가로 널리 알려진 윤영천 작가의 책 <미스터리 가이드북>에 따르면, 미스터리는 '과거에 무슨 일이 일어났는가?'에 집중하고, 스릴러는 '앞으로 무슨 일이 일어날 것인가?'에 집중하는 장르입니다. 이 영화에서는 증거를 되짚어가며 일가족 살인 사건의 실마리를 조사하는 현재 시퀀스가 미스터리, 필히 '엘리'가 죽는다는 것을 아는 상태에서 '엘리'의 죽음 이전에 벌어진 일을 묘사하는 과거 시퀀스가 스릴러에 해당합니다.그러나 이 영화는 장르의 전형성을 따르지 않는 독특한 작품입니다. <드라이>에는 미스터리 장르의 재미인 사건의 통쾌한 해결이나 스릴러 장르 특유의 한 치 앞을 알 수 없는 긴장감 따위가 없습니다. 촬영 기법, 편집 효과, 사운드 등으로 그런 감정들을 의도적으로 유발하지도 않습니다. 잔잔하게 현재와 과거의 사건을 짚어가며 인물의 감정과 인물 간의 갈등을 고스란히 표현할 뿐이죠.⊙ ⊙ ⊙이러한 시도가 어떤 관객에게는 색다름으로, 어떤 관객에게는 아쉬움으로 남을 겁니다. 안타깝게도 저는 후자였습니다. 장르를 불문하고 영화의 가장 핵심 요소는 이야기와 플롯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장르의 전형성을 탈피한 이 영화의 도전 정신이 빛나기엔 이야기는 개연성이 부족했고, 플롯은 다소 억지스러웠습니다. 일례로 영화는 러닝타임 내내 별개의 사건처럼 보이는 두 사건(일가족 살인사건과 '엘리'의 죽음)이 실은 연관된 하나의 사건이었다는 식으로 이야기를 풀어갑니다. 하지만 두 사건은 눈에 보이는 그대로 아무런 연관성이 없는 개별적인 사건이었죠. 앞서 이야기했던 '엘리'의 유가족이 일가족 살인 사건과 연관된 것으로 보이는 증거 역시 단어의 중의적 의미로 인한 오해일 뿐이었습니다. 저는 관객의 흥미를 자극하기 위해 두 사건의 연관성을 억지로 만들어냈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습니다.또 '에런'은 영화 포스터에 쓰인 카피처럼 '살인자에서 경찰로 돌아'온 인물도 아니었습니다. 그저 마을 사람들로부터 그날의 행적을 의심받았을 뿐이죠. 장르의 매력을 어필하고자 과장한 카피로 관객을 유인한 겁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이러한 기만을 정말 싫어합니다.⊙ ⊙ ⊙영화 <드라이>는 기대가 컸던 만큼 아쉬움도 큰 작품이었습니다. 저처럼 장르적 매력을 기대하고 이 영화를 택하신다면 기대 만큼의 만족감은 느끼실 수 없을 겁니다. 하지만 영화를 감상하는 관점은 사람마다 다르기 마련이죠. 두 장르를 혼합해내는 색다른 방식을 경험하는 것도 나쁜 선택은 아닐 거라고 생각합니다. 여러분은 이 영화를 어떻게 보셨나요?Summary불미스러운 일로 고향을 떠났던 '에런'은 친구 '루크'의 장례식에 참석하기 위해 20년 만에 고향을 찾는다. 가족을 죽이고 자살한 것으로 보이는 '루크'. 유가족의 요청으로 사건을 파헤치던 '에런'은 여자친구였던 '엘리'의 죽음에도 석연치 않은 부분이 있음을 알게 되는데... 묻혀있던 두 개의 진실이 드러나기 시작한다! (출처: 씨네21)Cast감독: 로버트 코놀리출연: 에릭 바나, 제네비에브 오렐리, 키어 오도넬, 존 폴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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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사랑하고 사랑받고 차고 차이고> 런칭 예고편
모두가 행복한 사랑을 바라는 ‘아카리’(하마베 미나미)와
한 발 뒤에서 사랑을 기다리는 ‘유나’(후쿠모토 리코).
서로 정반대의 성격이지만
우연한 계기로 친구가 된 둘.
고등학교 첫 학기가 시작되고
‘아카리’와 ‘유나’에게도
마음을 전하고 싶은 상대가 생겼다.
“너도 내 마음과 같을까…?”
조금씩 천천히, 너에게로 가는 길
열일곱, 우리들의 성장형 청춘 로맨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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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귀공자> 메인 예고편
필리핀 불법 경기장을 전전하는 복싱 선수 ‘마르코’ 앞에 정체불명의 남자 ‘귀공자’를 비롯한 각기 다른 목적을 지닌 세력들이 나타나 광기의 추격을 펼치는 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