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라별2021-12-09 14:00:46
칸은 어째서 기생충을 선택했을까?
영화 <기생충> 리뷰
개봉 직전 칸의 선택을 받은 영화 <기생충>. 우리나라의 첫 황금종려상 수상작품이어서 많은 사람들이 기대를 했고, 그 기대만큼 사람들의 환호도 넘쳐났다. 그래서 나 역시 기생충에 대한 기대감을 안은 채 봤지만 볼수록 의문덩어리였던 작품이었다.
영화 <기생충> 시놉시스
“폐 끼치고 싶진 않았어요”
전원백수로 살 길 막막하지만 사이는 좋은 기택 가족. 장남 기우에게 명문대생 친구가 연결시켜 준 고액 과외 자리는 모처럼 싹튼 고정수입의 희망이다. 온 가족의 도움과 기대 속에 박사장 집으로 향하는 기우. 글로벌 IT기업 CEO인 박사장의 저택에 도착하자 젊고 아름다운 사모님 연교가 기우를 맞이한다. 그러나 이렇게 시작된 두 가족의 만남 뒤로, 걷잡을 수 없는 사건이 기다리고 있었다.
*해당 내용은 네이버영화를 참고했습니다.
이 이후로는 영화 <기생충>에 대한 스포일러가 존재합니다.
사회적 계층의 차이가 적나라하게 드러난 작품
<기생충>이라는 작품이 빈부 격차가 드러나는 영화라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 적나라하게 드러날 것이라고 생각하지 못했다. 교묘하게 그 차이를 드러내서 보는 이로 하여금 그 현실을 더 크게 받아들일 수 있게 만들었을 것이라 생각했는데 반지하와 대저택이라니,, 유치원생이 봐도 부자와 가난한자 이렇게 이분법적으로 구분이 돼서 너무 흑백논리아닌가? 하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상을 받을만큼 역작이었나?
칸이 선택한 작품이라기에 기대했지만 굉장히 평범했던 작품이었다. 빈부격차 속에서 일자리를 찾아보려 기존의 사람을 없애고 자신들이 그 자리로 들어가려고 하는 모습은 한 번쯤 영화 속에서 봤던 장면들이니 말이다. 근데 그것이 가족 전체라는 점이 특별하게 다가온 것일까? 칸에서 황금종려상을 받을만큼 과연 작품들이 뛰어난 영화였는지에 대해 개인적으로 조금 당황스러웠다. 칸의 저명한 영화 관계자들의 눈에는 어떻게 보였을지 모르지만 한국에서 한국영화를 많이 보고 자란 내 눈에는 내용이 뻔했고, 예상이 가능해서 보는 내내 이게 상을 받을 만한 작품인가? 의심스러웠던 영화였다.
그래도 연기력은 좋았던 작품
의심을 하면서 영화를 봤지만 영화를 중간이 끊지 않고 볼 수 있었던 이유는 배우들의 연기력과 그 합이 너무나도 찰떡같았기 때문이다. 송강호와 최우식, 박소담 그리고 장혜진까지 진짜 가족을 보는 것처럼 연기가 너무 물흐르듯 자연스러워서 이질감 자체가 없었다. 그냥 실제 가족을 직접 보는 느낌이랄까? 어떻게 찰떡같이 캐스팅을 했는지캐스팅 디렉터의 안목이 빛났던 작품이었다. 영화의 스토리는 뻔했지만 그들의 연기력만으로도 충분히 가치가 있었던 작품이지 않았나 싶다.
영화 <기생충>은 개인적으로 상을 왜 받았을까?하는 의문이 든 작품이었지만 배우들의 연기력만큼은 정말 만족스러웠던 작품이었다.
Relative cont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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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퀸스 갬빗>에서 제일 좋았던 건,
<퀸스 갬빗>에서 제일 좋았던 건,
체스신동, 그리고 그녀를 사랑한 사람들.
보름 정도에 걸쳐 미국 드라마 <퀸스 갬빗>을 보았다. 너무 재밌어서 쏙쏙 빨려 들어갔던 드라마. 배경은 1960년대고(나는 시대극이 좋다), 소재는 체스이고(생소한 분야를 엿보는 건 더 좋다), 커다란 눈의 여주인공은 너무 매력적이다.
체스가 이렇게나 어렵고 복잡한 게임인 줄은 드라마를 보고 처음 알았다. 모든 공격에 각각의 이름이 붙여져 있고, '퀸스 갬빗'이라는 드라마 제목도 체스 오프닝 기술의 한 부분이라고 한다. 그리고 한 때 사람들이 체스에 그렇게나 열광했는 지도 처음 알았다. 드라마의 배경인 1960년대에는 아주 많은 사람들이 체스에 관심이 있었던 듯하다. 챔피언십도 중계하고, 신문 1면에도 실리고, 챔피언의 우승자는 거의 연예인의 인기더라. (이세돌 같은 느낌일까?)
넷플릭스 드라마 <퀸스 갬빗>
이 드라마는 주인공 '하먼'이 체스에 소질을 보이면서 결국 체스 최강자가 되는 이야기다. 체스 얘기니만큼, 여러 사람들과 체스경기를 두며 심장을 쫄깃하게 하는 장면들은 매우 흥미진진했다. 그치만 내가 이 드라마에서 가장 좋아했던 요소는 따로 있다. 바로 양어머니 '엘마'와의 관계다.
하먼은 어릴 때 친모를 잃고 고아원에서 크다가 13살에 엘마에게 입양됐다. 유년시절의 트라우마 때문인지 타고난 기질인지, 하먼은 시종일관 굉장히 무뚝뚝한 성격으로 나온다. 입양이 되고도 웃는 모습을 여간해선 볼 수 없는 데다, 그런 성격 탓에 사람들과 가까워지지도 못하고 늘 외톨이처럼 지낸다. 그런 하먼을 보듬어준 게 바로 양어머니 엘마였다. 보듬었다고 해서, 하먼을 엄청 옆구리에 끼고 사랑 표현을 하고 그런 스타일은 아니다. 둘은 엄마와 딸의 관계라기 보단 뭔가 친구 같은 관계다. 그런데 나는 그래서 오히려 현실적으로 와 닿았다. 겉으로 나도는 남편 때문에 외로웠던 양어머니와, 고아로 크면서 마음을 잘 열지 못하는 딸이, 서로 친구처럼 의지하는 모습. 낯간지럽게 껴안고 뽀뽀하는 장면 하나 없이도, 둘의 관계는 묘하게 뭉클하고 훈훈한 구석이 있었다.
엘마는 딸이 체스에 소질이 있다는 걸 알고는 적극 뒷바라지 하기 시작한다. 처음엔 남편이 떠난 후 수입이 없어서, 딸이 챔피언십에서 따온 상금으로 먹고살려고 그러는 건가 싶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날수록 하먼에 대한 애정이 곳곳에 드러났다. 잡지에 나온 딸의 기사를 딸보다 더 자세히 찾아 읽는가 하면, 사람들 앞에서 자랑스러워 어쩔 줄을 몰라하고, 그녀의 체스 친구들을 알고 싶어 하고, 체스에 대해 모르면서도 딸의 경기를 지켜보려 한다. 그게 애정이 아니면 뭘까.
무뚝뚝함의 극치였던 하먼 역시, 서서히 양어머니에게 의지하게 되고 사랑하는 게 보인다. 나름의 애정표현이랍시고 '툭'하며 양어머니의 손을 잡을 때. 수입이 없던 양어머니가 "나에게 상금 10%씩만 띄어주겠니?"하고 소심하게 묻자 "15%로 해요"하고 말했을 때. 왠지 모를 흐뭇함에 미소가 절로 지어졌다. 둘 사이의 애정은, 매번 그 서툰 표현들에서 여지없이 묻어 나왔다. 그 은은히 물드는 관계를 지켜보는 게, 바로 내가 이 드라마를 좋아한 가장 큰 이유였고 말이다.
하지만 그런 양어머니 엘마는 건강이 나빠 일찍 죽는다. 모나고 차가운 세상에서 유일하게 하먼을 사랑해주었던 엘마. 그녀의 죽음에도 대성통곡은커녕 눈물 한 방울 보이지 않던 냉랭한 하먼은, 집으로 돌아가는 비행기에서 참았던 눈물 한 줄기를 쏟는다. 생전 양어머니가 좋아했던 위스키를 마시면서. 더도 말고 딱 한 줄기의 눈물이었다. 하지만 그 절제된 모습의 바닥에, 엘마에 대한 애정과 그리움과 연민이 꽉 차 있다는 건, 차고 넘치도록 알 수 있었다는 거.
양어머니 엘마와의 뭉클했던 관계.
드라마는 하먼이 체스 최강자였던 소련선수 '보르고프'를 누르고 우승을 하는 것으로 끝난다. 하지만 난 이 드라마가 결코 체스대회에서 우승하는 여자아이 얘기라고만 느끼지는 않았다. 고아였고 외톨이었던 하먼이, 양어머니를 만나고, 자신을 아껴주는 친구들 베니와 해리, 타운스를 만나면서 마음을 여는 성장드라마로 보였다.
마지막에 그녀는 별로 외로워 보이지 않는다. 잘 웃고, 표현도 할 줄 알게 되며, 특유의 무뚝뚝함에서 해제되어 길거리의 노인들과 인사하고 체스도 둔다. 나는 그게 보르고프를 꺾고 우승한 것보다도 더 흐뭇했다. 하먼이 엇나가지 않고 클 수 있었던 자양분은, 체스이기도 했지만 결국 사람이지 않았을까.
체스 최강자 고르고프와의 시합.
여담이지만, 이 드라마가 방영된 후 구글에서는 '체스 두는 법'이 9년 만에 검색 최고치를 기록했다고 한다. 음, 난 드라마를 보고 나니 오히려 체스에 관심을 가지기 싫어지던데. 왠지 내 머리가 얼마나 나쁜지만 드러날 것 같아서 말이다. 그저 좋은 드라마, 웰메이드 드라마로 깊이 간직해야지. 간만에 훌륭한 드라마를 보고 나니 갈비탕 한 그릇을 비운 것 마냥 속이 뜨끈하다.
* 본 콘텐츠는 브런치 우두미 작가님의 자료를 받아 씨네랩 팀이 업로드 한 글입니다. 원 게시글은 아래 출처 링크를 통해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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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혜선,변요한 배우의 역량으로 미스터리를 이끌다
취미는 훔쳐보기
이 영화의 주인공은 공인중개사 구정태(변요한)다. 얼핏 보기엔 그냥 잘생긴 남자다. 하지만 구정태에겐 은밀한 취미가 있다. 바로 훔쳐보는 것이다. 아무도 모르게 타인을 훔쳐보면 왠지 나 혼자만 다른 세계에 있다는 쾌감이 든다. 멀리서 보면 그냥 나도 똑같은 사람일 뿐이잖아? 조용히 취미생활을 가지면 사람들도 모르게 되어있다. 심지어 직업이 공인중개사다. 이 말은 즉슨 타인의 집에 쉽게 들락날락할 수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그런 정태에게 어떤 여자가 눈에 들어온다. 그 여자는 이 영화의 다른 주인공 한소라(신혜선)다. 예쁜 외모를 가진 한소라. 한소라가 소시지를 먹는 모습에 구정태가 관심을 갖게 되고, 이는 곧 두 사람과의 만남과도 이어진다. 어렵지 않게 한소라의 집 키를 얻은 구정태. 이번에도 몰래 한소라의 집에 침입한다. 아무리 불러도 대답을 안 한다. 그럼 아무도 없다는 뜻이겠지? 어차피 집 키도 한소라가 줬다고. 문을 열고 들어가는 구정태. 충격적인 광경을 목격한다. 한소라가 칼에 찔린 채로 발견된 것이다. 뭐지? 이게 무슨 상황이지? 경찰에 신고하기엔 변태라는 것을 스스로 시인하는 셈이 되니 난처하고, 혼자 살인마를 잡기엔 너무나도 어렵다. 정태 곁에서 벌어지는 이상한 사고들. 안 그래도 잡혀갈까 무서운데 하나같이 감당하기 어려운 것들이다.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은 있다던데, 정태는 과연 위기를 탈출할 수 있을까?
몰입감은 뛰어나
이 영화에 대해 이야기할 때 가장 좋았던 점은 플롯이다. 왜? 이 영화가 다루고자 하는 많은 부분을 하나의 동력으로 치환시켰기 때문이다. 이 영화가 다루고 싶었던 가장 대표적인 것은 소셜 미디어의 폐해다. 일반적으로 ‘소셜 미디어의 폐해’하면 뭐가 생각날까? 금세 <더 글로리>에서 최혜정 캐릭터가 보이는 것에 대해 과하게 신경 쓰는 장면이나 <댓글부대>에서 관심을 감당하지 못한 누군가가 떠오를 것이다. 이런 류의 소셜 미디어 묘사는 그동안 많이 볼 수 있었다. 사실 이 영화에서도 이런 식의 소셜미디어 묘사가 들어가기는 한다.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것들로 채워진 것이다. 하지만 그 이면을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스릴러, 미스터리물에 있어 이야기가 갑자기 폭발력을 가지는 지점이 어디일까? 이야기가 예상하지 못하는 곳에서 흘러가야 한다. 그럼 영화가 플롯에서 보여줘야 할 것이 있다. 앞 상황을 중심으로 뭐가 진짜인지 믿게 만드는 것이다. 이 서스펜스에 대한 부분을 영화가 만들어가는 방식이 흥미롭다. 그리고 그 서스펜스는 우리가 아주 잘 알고 있는 미디어의 단점이기도 하다. 어디까지 믿고 어디까지 받아들여야 하는지에 대한 부분을 영화가 플롯으로 실체화시킨 것이다. 핵심 플롯뿐만 아니라 곁가지가 되는 부분도 미디어가 발전했기 때문에 따라왔던 단점을 묘사하고 있다. 가령 여성 스트리머/BJ/유튜버가 인터넷 방송을 하면 어떤 문제가 생길까? 이 부분에 대한 문제나 그럴듯한 구색을 갖췄지만 타인에게 얼마든지 폭력을 가할 수 있는 언론의 역할까지 영화가 단순하고 간단한 이야기 같아 보이지만 현 세태의 다양한 모습을 품고 있다. 좋은 각본이었다.
하지만 이렇게 다층적으로 어울리는 이야기를 만들기는 했지만 하나하나 세세하게 들어가면 걸리적거리는 부분이 몇 있다. 가령 이 영화에서 경찰의 역할은 애매하다. 왜? 이 영화에서 차지하는 역할이 전면에 드러나있다. 이것은 치명적이다. 초반부부터 목적을 대놓고 드러내고 등장하기 때문에 인물의 생동감과 개연성이라는 측면에서 약점이 생기는 것이다. 심지어 경찰의 역할이 들어가야 할 때 아예 등장하지 않거나 유명무실하기까지 하다. 설정을 편의적으로 쓴 것이다. 대표적으로 첫 장면이 그렇다. 이 장면이 보여주는 문제제기가 우리 현실에서 개선이 필요하다는 당연하다. 하지만 이 대사가 영화 안에서 빛을 발한다면 경찰 캐릭터가 좀 더 유능했어야 하는 것 아닌가? 또 이 장면에서 보여주는 문제상황이 영화 전적으로 들어가야 하는 것 아닐까? 그냥 단순히 특정 누군가와의 대립에서만 끝났다는 점이 이 캐릭터를 왜 이렇게 묘사했어야 하는지의 측면에서 아쉬운 부분이다. 또 이 인물이 영화 안에서 제기하는 사회적인 문제가 합리적인 지적이 되려면 이 인물이 경찰로서 핵심 플롯이 다루는 사건에 유의미하게 접하는 모습이 보였어야 했다. 하지만 이 부분을 영화가 묘사하는 방식은 애매하다는 점에서 아쉽다. 왜 이런 캐릭터가 들어갔을까? 이는 영화의 다른 캐릭터들을 비교하면 더 두드러진다. 어떤 인물은 미디어의 병폐를 보여주다가 이야기의 방향키를 틀어서 혼자 사는 여성이 가진 어려움을 암시한다. 다른 캐릭터는 빈곤한 인간 내면을 표현함과 동시에 한국사회에서 수도 없이 봐왔던 문제 해결을 구사하는 인물이기도 하다. 이런 식으로 이 영화의 인물들은 목적 이전에 캐릭터의 생동감을 먼저 고려하고 만들어졌다. 하지만 이 영화의 경찰들은 플롯 안에서 겉돌면서 극후반부가 아니면 없어도 되는 존재가 된다.
수많은 혼잣말
글쓴이 입장에서 영화에서 두드러졌던 요소는 나레이션이다. 나레이션이 이 영화에서 어떻게 작동할까? 바로 형식의 가장 기본요소라는 점에서 중요하다. 이 영화는 어떤 장면이 있고 그 모습을 특정 인물이 해설하는 형식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 형식을 이끄는 인물은 구정태다. 구정태의 가장 중요한 설정이 뭘까? 바로 누군가를 염탐한다는 것이다. 구정태는 어떤 장면을 보고 그것을 해설하는 방식으로 이야기를 이끈다. 인물의 이 특성을 영화의 성격과 연결시킬 필요가 있다. ‘염탐한다’라는 행위는 영화라는 매체의 속성과도 이어지는데, (잘 만들어진 이야기를 바탕으로) 누군가의 일상 내지는 일대기를 지켜보는 것이 영화 아닌가? 그리고 대화는 기본적으로 타인과 하는 행위이며 구정태는 나레이션을 통해 관객과 대화하고 있다. 이 두 전제라면 이 영화는 대화를 통해 관객을 영화 안으로 끌고 들어왔다는 의미기도 하다. 이 전제를 효과적으로 활용하는 <그녀가 죽었다>는 관객을 구정태를 지켜보는 인물임과 동시에 그와 같이 타인들을 지켜보게 하는, 일종의 염탐꾼으로 만들어버린다. 구정태가 대화하는 대상이 우리 관객이라면 영화가 고의적으로 구정태의 관점과 우리의 관점을 동일시시킨 것이다. 이것은 중요하다. ‘누군가에게 보이는 것과 보는 것’이라는 두 딜레마가 주인공 두 사람의 핵심이라는 걸 생각해 보면 이야기가 가리키는 대상이 관객을 향한다는 점에서 그렇다. 결국 우리도 이들을 훔쳐보는 염탐꾼인 것과 동시에 ‘보이는 것’에 대해 집착하는 인물이지 않냐고 반문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 내레이션이 너무 많은 부분을 설명한다는 점은 영화의 단점으로 뽑을 수 있다. 이 영화가 관통하고 지나가는 한국사회의 문제점들은 다 중요한 것들이다. 퇴색되지 않고 오롯이 전달하려면 감정적이지 않는 톤으로 전달하는 게 그 효과를 더할 수 있다. 그러려면 내레이션이 이렇게까지 많이 들어갈 필요가 없었다. 인물의 내면을 통해 감정이입을 유발하는 역할을 하기 위한 내레이션이 따로 있고, 관객을 극으로 초대하는 내레이션이 따로 있다. 그래서 어느 내레이션은 좀 사족처럼 들리기도 한다. 그러다가 영화 후반부쯤 되면 이 내레이션 연출에 통일성이 깨진다. 기획의도를 살리는 연출이라면 엔딩부에 누군가가 등장할 필요가 없다. 왜? 그 대사의 내용은 관객들이 알아서 판단하고 있기 때문에 그냥 혼자 마무리지어도 큰 차이는 없어 보인다. 그러나 영화는 자신감이 없었는지 톤을 해치는 장면을 넣어 더 쉬운 접근법을 택했다. 어떤 관객들은 이 장면이 직접적이라서 좋았다고 할 수도 있을 듯하다. 글쓴이는 그 의견에 반대한다. 이야기의 형식에 측면에서 이 부분은 혼자 마무리지어도 좋지 않았나 생각한다. 가장 마지막 장면과 어울리기도 하고.
어느덧 베테랑
이 영화의 주인공을 맡은 변요한 배우는 뛰어난 연기를 보여준다. 이 영화에서 구정태가 맡은 과제는 두 가지다. 거리감과 박진감이다. 전자 거리감에 대한 부분은 간단하다. 이 영화에서 구정태가 벌이는 범죄행위는 하나같이 끔찍한 것들이다. 이 글을 읽는 모두들 누군가가 나를 지켜본다고 하면 싫을 것이다. 이 싫은 느낌을 영화가 부지런하게 묘사하기 위해 변요한 배우는 사소한 차이로 기괴함을 불어넣는다. 가령 초반부 캐릭터를 설명할 때 혼자 싱글벙글한 표정을 짓는 모습을 보면 익숙한 것 같으면서도 조금의 차이를 두며 인물을 관객에게 설명한다. 그리고 후반부가 되면 이 인물의 내면이 사실상 이야기의 중심이 되며 관객의 마음을 대변하게 된다. 여기서는 자유롭게 감정연기를 보여주며 이야기를 마무리짓는데 후술 할 신혜선 배우가 뛰어놀 수 있는 좋은 발판이 됐다.
다른 주인공을 맡은 신혜선 배우는 그동안의 필모그래피에서 가장 좋은 작품을 만났다. 일단 연기하는 데 있어 가장 개성이 있는 캐릭터다. 영화를 다 보고 나면 이 한소라 캐릭터가 약간 클리셰를 따른 감도 없지 않아 있기는 하다. 하지만 신혜선 배우의 얼굴을 반대로 활용한 데에서 개성이 생긴다. 신혜선이라는 배우의 이면을 활용한 좋은 사례가 될 것이다. 연기를 빛내주는 연출도 큰 도움이 되는데, 코디나 메이크업 같은 것도 선을 굵게 그려 한소라라는 인물이 가진 화려함과 허술함을 강조했다. 글쓴이가 감탄했던 부분은 목소리 톤을 변주하는 장면이다. 이 장면들은 여러분이 직접 확인하시길 바란다.
보이는 것 중 무엇이 진짜인지 묻다
글쓴이가 이 영화에 대해 한 단어로 요약하면 외로움이라고 생각한다. 그 외로움을 정서적인 측면을 강조한 것이 아니라 장르적인 원동력으로 바꾸어 팽팽한 이야기를 만든 영화가 이 <그녀가 죽었다>다. 외롭기 때문에 인간들이 벌이는 행동이 예상하지 못할수록 더 특이점을 갖는 것이다. 글쓴이는 이 인간들의 모습을 보면서 과연 나는 다른가? 하는 생각이 든다. 사람 가득한 버스에서 인스타그램을 켜 나는 조금 달랐으면 한다는 이상한 바람. 지금 당장 고가의 브랜드 제품을 사고 싶다는 허영심. 영화는 이 수많은 모습들을 외로움으로 꿰어 관객에게 질문을 던진다. 당신은 과연 당신의 하루를, 또 당신을 사랑하고 있나요? 답은 여러분이 내릴 차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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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켄 로치 할아버지가 묻는다. 그대들 어떻게 살 것인가.
켄 로치 감독이 1936년생이니까 2023년 기준 87세이다. 이제 더 이상 영화를 만들 수 없을 것 같다고 선언했기 때문에 영화 <나의 올드 오크>는 아마도 마지막 작품이 될 것 같다. 사실 지금으로부터 10여 년 전, 영화 <지미스 홀, 2014년>을 보여주면서 은퇴 선언을 한 적이 있었다. 그러나 뭔가 돌아가는 꼴을 보니 마음에 들지 않은 구석이 있었던 것인지 영화 <나, 다니엘 블레이크, 2016>을 가지고 와 칸 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을 받아간다. 이후 영국 북동부 지역의 낙후된 공간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들로 영화 <미안해요 리키, 2019>, 이번에 개봉하는 영화 <나의 올드 오크, 2023>까지 3부작으로 구성된 연작을 완성하게 되었다. 영국 북동부 3부작 영화를 간략하게 소개하면서 켄 로치 할아버지가 묻는 '그대를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한 질문에 대해 생각해 보도록 하겠다.
영화 <나의 올드 오크, 2023> 포스터
복지 수당 받기 더럽게 힘드네 : <나, 다니엘 블레이크, 2016>
다니엘의 부인은 오랫동안 앓았다. 평생 목수로 일했지만, 남은 것은 늙고 쇠약해진 몸뚱이와 간병으로 기울어진 가정뿐이다. 다니엘은 정부에 복지 대상자로 신청해 수당을 받으려고 하지만, 이런저런 이유로 빙글빙글 여기저기 돌다가 자기네들이 설정해 둔 기준에 부합하지 않는다는 말을 듣는다. 그나마 신청할 수 있는 복지 사업은 서류를 컴퓨터로 제출해야만 하니 미치고 팔짝 뛸 노릇이다. 진짜 심각한 지병이 있어서 일하기도 어려운데, 자꾸 근로 능력이 있는데 복지 수당만 챙기려는 사람으로 몰아가기도 한다. 노인 대상 복지 체계만 이런 것도 아니다. 어린아이들을 혼자 양육해야 하는 케이티도 마찬가지다. 소통되지 않는 원칙과 각종 서류들, 증빙이 되는 번호들, 성실하지 못해 복지 대상자가 되었다는 따가운 시선들 등 모든 장애물을 넘고 넘어가야 겨우 복지 수당이라는 목표점에 도달할 수 있다.
영화 <나, 다니엘 블레이크, 2016> 포스터
자영업자는 아닌데, 노동자도 아니라네요 : <미안해요 리키, 2019>
제인네 가족은 아빠, 엄마, 오빠, 제인. 이렇게 네 식구가 같이 살고 있다. 아빠는 택배 일을 하시고, 엄마는 요양보호사로 일하고 계시다. 두 분이 맞벌이를 하시기 때문에 제인은 학교가 끝나면 혼자 빈 집에 들어와서 엄마가 요리해 놓은 음식을 먹고, 숙제를 한다. 오빠 셉은 집에 늦게 들어오는 날이 많은데, 친구들과 어울려 다니며 그림을 그리는 것을 좋아한다.
택배 일이나 요양보호사 일은 자영업자는 아닌데, 노동자도 아니란다. 한국에서는 이러한 직종을 특수형태근로종사자라고 한다. 회사의 보호를 받아야 할 때에는 자영업자로 내몰리고, 자유롭고 독립적인 노동 유연성을 발휘하려 할 때에는 노동자로 당겨진다. 팽팽하게 당겨진 줄 사이에 묶인 제인의 아빠와 엄마는 더 많은 근로를 요구받고, 혹사를 당한다. 혹사당한 몸과 마음을 가지고 집에 돌아와 아이들과 따뜻한 이야기를 나누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영화 <미안해요 리키, 2019> 포스터
똑똑똑, 들어가도 되나요? 저는 난민이에요 : <나의 올드 오크, 2023>
한국은 아시아 최초로 2016년 난민법을 제정하였다. 2024년부터는 한국의 이주민 비율이 공식적으로 5%를 넘기 때문에 '다문화 국가'에 진입한다. 사실 미등록 이주민들이 빠진 수치이기 때문에 이미 5%는 진작에 넘었다. 난민법에는 재정착 희망난민제라는 것이 명시되어 있는데, 이는 정부가 직접 난민 캠프로 가 그 곳에서 한국에 정착하기를 희망하는 사람들을 데리고 오는 것이다. 태국의 난민 캠프에서 어렵게 살고 있는 미얀마 출신의 가족들이 이 제도를 통해 한국으로 들어왔고, 앞으로도 지속적으로 확대될 예정이다. 만약 재정착 희망난민제로 한국에 들어온 난민 가족들을 버스에 태워 인구 유출이 심각한 문제인 지역에 정착하도록 보낸다면, 어떤 문제들이 발생할까? 이런 일이 한국에서 일어나기엔 아직 이르다고 생각한다면, 주변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에 너무 무관심한 것은 아니었는지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
영화 초반, 더럼 지역으로 버스가 들어온다. 이 버스에는 시리아 난민 캠프에 살던 가족들이 타고 있다. 버스에서 내린 야라는 동네 사람들의 혐오를 온몸으로 받아낸다. 그런 모습을 보고 있자니 올드 오크 사장님 TJ는 마음이 불편하다. TJ는 야라의 카메라는 수리하도록 도와주고, 자신의 공간에 들어와도 된다고 허락해 준다. 맛있는 음식을 먹고, 기쁜 일과 슬픈 일을 함께 나누며 둘은 친구가 된다.
친구가 된 TJ와 야라
<나, 다니엘 블레이크>나 <미안해요 리키>는 영화 제목에 주인공의 이름이 들어있지만, <나의 올드 오크>는 공간명이 제목이 되었다. 물론 <미안해요 리키>의 원제는 그렇지 않은데, 한국에 들어오면서 이름을 넣는 것으로 지어졌다. 앞선 두 영화가 인물에 초점을 맞추어서 이야기를 전달한다면, 나의 올드 오크는 인물들이 만나서 대화하는 장소가 강조된다. '올드 오크'라는 펍은 원래 40년 동안 단골로 다녔던 사람들이 '우리의 공간'이라고 여기는 곳이었다. 그들은 자신들의 역사가 담긴 공간이 '우리가 아닌 자'들에게 허락되는 것이 아쉽고, 서운하고, 화가 난다. 그래서 쉬이 내어주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쓴다. 돈은 없는데, 돈 들어갈 곳은 많고, 나름 열심히 한다고 했지만 결과가 마음만큼 따라주지 않는 일은 부지기수며, 인생이 쉬웠던 적은 한 번도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로가 서로의 버팀목이 되는 것을 포기하면 안 된다. 포기하는 순간, 사람 인(人) 글자가 바로 무너져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테니까 말이다.
뉴캐슬어폰타인 - 선더랜드 - 더럼 순으로 영국 북동부 3부작 영화의 배경이 이동한다.
* 해당 리뷰는 씨네 랩(CINE LAB) 크리에이터 시사회 참석 후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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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색자>와 <택시 드라이버>의 비교 분석
필자는 과거, <수색자>와 <택시 드라이버>를 본 적이 있었다. <택시 드라이버> 시청 당시, 웰메이드 영화임은 분명했지만 왠지 모를 꺼림칙함이 있었는데 그때는 원인을 알 수 없는 채 지나 보냈었다. <수색자>를 보았을 때도 약간의 비슷한 감정을 느끼긴 하였지만 <택시 드라이버>만큼의 불쾌감은 아니었다. 당시엔 두 영화의 관련성을 알지 못하였으나 수업을 통하여 두 영화의 내러티브 구조의 비등함에 흥미를 갖게 되어 더 자세히 알아보고자 두 영화를 선정하였고 그 과정에서 처음 <택시 드라이버>를 보았을 때의 불쾌함의 원인도 알게 되었다. 따라서, 본고에서는 1956년 존포드의 <수색자(The Searchers)>와 1976년 폴 슈레이더가 각본하고 마틴 스콜세지가 연출을 맡은 <택시 드라이버(Taxi Driver)>, 두 영화에서 같은 주제를 다른 장르를 통해 어떻게 이야기하는지 내러티브 구조를 중심으로 비교하고 의미를 분석해보고자 한다. 우선, 영화 탄생의 시기적 배경과 영화를 통하여 말하고자 하는 바를 살펴본 후에 영화 속의 인물과 환경, 영화적 스타일 면에서 살펴보도록 하겠다.
영화 탄생의 시기적 배경
우선 영화 탄생의 시기적 배경을 알아보고자 한다. 할리우드 시대에 서부극의 시작이자 기존 서부극의 컨벤션을 확립했던 존포드는 1956년, 기존의 30, 40년대 서부극과는 다른 수정주의 서부극을 만들었다. 분위기는 달라졌는데 이전과 같은 스튜디오에서의 고전 영화들이 더 이상은 통용되지 않게 된 50년대, 존 포드 또한 2차 대전 이후 새로운 이데올로기나 사회적 흐름 속에서 스스로 성찰적으로 바뀌게 되면서 역사관, 사고방식에 변화가 있었고 수정주의 서부극의 시작이자 <수색자>를 감독이자 작가로서 개인의 예술적인 작품으로 만들어낸다. 기존 서부극의 평면적인 인물에 더 이상 감흥을 느끼지 못하는 50년대의 관객의 변화 또한 <수색자> 탄생에 일조했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면에서 선한 백인과 악한 인디언의 대립구도를 만들어 관객을 백인의 입장에 위치시키던 할리우드 기존의 이데올로기적 전략의 전통방식을 무너뜨린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개봉 당시보다도 1970년대 이후에 걸작으로 재평가받았다.
누벨바그, 뉴웨이브의 영향이 할리우드 쇠퇴기에 영향을 미치고, 새로운 작가주의적이고 개인적인 예술로서 영화를 바라보게 되면서 완벽하게 영화적 세대교체가 일어나고 60년대 후반을 기점으로 할리우드 영화가 부활하면서 누벨바그 영향을 받은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자신의 경험을 찍는 개인적인 영화들이 많아지고 이는 영화 체제 변화에 변화를 줌으로써 고전 할리우드 영화를 재해석하는 장르적 만개가 일어난다. 고전 할리우드에서 B급 영화 취급을 받던 장르들을 누벨바그 감독들이 재해석하면서 자기 영화를 불러오게 된다. 이를 뉴아메리칸 시네마에 적용시키며 프란시스 포드 코폴라, 우디 알렌과 같은 뉴할리우드 감독들이 누벨바그 시대 감독들이 재해석한 고전 할리우드를 또다시 패러디하고 오마주 해내는 와중에 마틴 스콜세지는 존포드의 <수색자> 구조를 가지고 필름누아르식으로 변형한다.
주제 (내러티브 구조 분석)
1868년 미국 텍사스, 남북전쟁이 끝나고도 쉽게 집으로 돌아오지 못하고 황야를 떠돌던 이든 에드워즈가 어느 날 한때는 연인이었지만 동생 아론과 결혼해 버린 마사와 그의 가족들이 있는 고향으로 돌아온다. 하지만 이내 인디언(코만치 족)으로부터 습격을 받아 가족들이 살해당하고 조카 데비는 인디언 추장 스카에게 납치된다. 이에 이든은 아론이 양아들로 키우던 인디언 혼혈남아 마틴 폴리와 함께 데비를 찾으러 떠난다. 광적인 열정으로 오랜 수색 작업 끝에 데비를 찾아내지만, 10여 년의 시간이 흐르고 데비는 추장 스카의 아내가 되어 반 인디언의 상태였다. 이에 이든은 데비를 구하러 갔음에도 불구하고 죽일 생각까지 하지만 마지막엔 생각을 바꿔 데비를 구출한 뒤 마을로 데리고 돌아오고 그는 다시 마을을 떠난다.
베트남전에서 생사의 극한 경험을 하고 뉴욕으로 온 트레비스는 홀로 외로운 시간을 보낸다. 불면증에 시달리던 그는 택시운전사로 취직하여 밤새워 근무를 하지만 여전히 쉽게 잠들지 못하고 근무가 끝난 아침엔 극장으로 가 포르노를 보며 시간을 보낸다. 뉴욕의 밤거리를 달리는 트래비스는 다양한 사람들을 보면서 거리의 쓰레기라고 생각하며 나날을 보내던 중, 공화당 선거운동캠프에서 일하는 베시에게서 본인을 구원해 줄 천사의 모습을 느끼고 다가가지만 첫 데이트에서 포르노 극장에 데려가면서 둘의 관계는 깨져버린다. 그런 상태에서 트레비스는 우연히 13살의 어린 창녀 아이리스를 만나게 되고 아이리스를 구해야 된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다양한 시도를 하지만 번번이 실패하고 정신이상자 수준의 망상에 빠진 상태로 대통령 후보를 암살할 계획으로 체력단련을 하고 총까지 구입하지만 이 또한 실패해 버린다. 그 길로 아이리스가 있는 곳으로 가서 아이리스를 구하고 포주들을 살해한 뒤 본인도 자살하려 했으나 경찰에 체포되고 이는 매스컴에 알려지면서 그는 영웅으로 등극하게 되고 그는 다시 택시 운전사의 자리로 돌아간다는 내용으로 케네디 대통령 암살, 워터게이트 사건, 베트남전 패배 등의 사건을 통해 극심한 가치관의 혼란을 겪고 있던 70년대 미국 사회의 분위기가 잘 나타나 있다.
이든이 남북전쟁에서 패한 후, 어디에도 소속되지 못하는 남군 장교로서 절망감과 외로움에 사무친 인물이라면 <택시 드라이버>의 트레비스는 베트남전의 후유증으로 절망감과 외로움에 빠져있는 인물이라 볼 수 있다.
두 작품의 서사적 구조를 보면 ‘사회의 쓰레기 제거'로 할리우드식 영웅전 서사 구조를 가지고 있다. <수색자> 같은 경우는 평화로운 마을이라는 질서에서 코만치로 인해 무질서가 되고 회귀하여 다시 질서를 되찾지만 이전과는 전혀 다른 새로운 세계의 질서이다. 이를 <수색자>는 서부극이라는 장르를 통하여, <택시 드라이버>는 필름 누아르라는 장르를 통하여 보여주고 있다. 또한, 50년대 이후, 작가주의적 성향이 더욱 깊어지면서 서브텍스트 또한 큰 의미를 가지고 있다. 따라서 평면적인 이야기뿐만 아니라 주인공의 전사, 다른 인물들의 스토리 등 심층적으로도 볼 필요가 있다. <수색자>에서 이든과 마사의 관계에서 이든의 채울 수 없고 말할 수 없었던 사랑이 이든의 분노의 원천이라고 할 수도 있다. 이러한 내재된 분노가 이든이 돌아오지 못하고 황야를 떠도는 이유를 더 깊게 만들어주기도 한다.
결과적으로 두 영화는 국가(남북전쟁과 베트남전)란 이름으로 불려 갔다가 돌아왔을 때, 이들을 수용하지 못하는 사회와 정상적이고 일상적인 삶에 복귀하지 못하고 주변을 맴도는 자의 외로움과 분노를 보여주고 있으며 이를 통해 미국의 폭력성과 영웅주의를 비판하고 있다.
인물과 환경 (인물 분석)
<수색자>의 이든은 기존 서부극, 과거의 영웅적인 총잡이와는 다르게 문제를 가진 인물로, 극 중에서 데비에 대한 태도로서 자신의 정체성이 깨지는 것을 발견한다. <택시드라이버>의 트레비스 또한 서부극의 총잡이 같은 인물이지만 실은 부정적인 인물로 같은 구조라고 할 수 있다.
존 포드의 서부극 시대까지만 해도 미국의 영웅주의가 팽배하였지만 60~70년대로 넘어가면서 영웅주의를 깨는 영화들이 등장한다. <수색자>의 이든 또한 정의와 명예에 목숨을 걸었던 기존의 영웅적인 총잡이와는 다르게 사랑하는 여자 때문에 떠난다(극 중에서 여자는 초반에만 등장하지만 이후에도 그러한 의미들이 등장한다). 동생과의 관계에서도 약간의 문제가 있는, 돈으로 거래하는 관계임을 암시하기도 한다. 트레비스 또한 망상과 현실의 구분에서 혼돈하다 결국 극한에 이르러 폭발하는 인물로 그 폭발의 결정적 계기는 베시와 아이리스라는 두 여자로부터 받은 배신감이라고 할 수 있다. 베시에게 거절당한 뒤, 구원자가 되기로 결심하고 영웅이 되고자 한다. 트레비스가 아이리스를 구해주려 하지만 거절하는 아이리스는 이미 인디언이 되어버려 자신을 구하러 온 이든을 경계하는 데비의 모습의 변주라고도 할 수 있다.
<수색자>에서 마틴에 대한 이든의 태도에서도 이든의 불완전함이 드러난다. 마틴이 자라면서 피부색이 어두워지자 ‘널 몰라보았다’며 이후 마틴에 대한 태도가 차가워지는 것을 볼 수 있다. 또한 구하러 간 데비가 인디언의 여자가 되자 굉장한 적대심을 드러냄으로 이든의 인종차별적인 행동들을 볼 수 있다. <택시 드라이버>에서는 뉴아메리칸 시네마의 특징이기도 한 특징으로 트레비스를 굉장히 마초적인 남성으로 그려내면서 자신이 더러워진 도시의 구원자라는 망상에 사로잡힌 살인자이자 영웅으로 그려낸다. 이런 구조를 통하여 <수색자>는 영웅처럼 보이지만 비도덕적이고 문제 있는 인물로, 인물 자체를 통해 미국의 폭력성과 영웅주의를 비판하고, <택시 드라이버>는 트레비스와 뉴욕의 상반된 거리라는 공간적 배경을 통해 비판하고 있다.
영화적 스타일 (영화의 형식)
각 영화들이 어떤 영화적 스타일을 통해 주제를 드러내는지, 메타포와 촬영 기법 등을 통해 알아보겠다.
캄캄한 집 안에서 마사를 따라 문 밖을 나가 이든을 보여주는 도입부와 데비를 데리고 돌아온 이든을 반기는 사람들이 데비를 데리고 집으로 들어갈 때 카메라도 어두운 집 안으로 들어가 황야에 홀로 남은 이든을 찍는 마지막 장면은 <수색자>의 형식상의 특징 중 그 형식을 가장 잘 보여주는 수미상관의 구조를 취한 형태이다. 여기서의 ‘문’ 또한 큰 의미를 가지고 있는데 영화의 모티브가 되기도 하는 ‘문’은 가정과 황야, 문명과 야생 등 문 안과 문 밖의 세상이 완전히 다른 선과 악을 구별해 주는 이항대립 구조의 역할을 하기도 한다. 이때까지의 서부극에서 분명하게 보여주었던 경계이기도 하다. <수색자>의 도입부와 마지막 장면에서는 ‘문 안’이 가정이지만 문명화된 사회를, 밖은 야생, 즉 무질서를 의미한다. 그래서 영화에서는 줄곧 문 안과 밖을 항상 구분시키도록 한다. 영화의 후반부에서 데비를 발견하고 끌어안으며(사진 1, 사진 2) ‘집으로 가자’는 장면도 동굴의 문 밖은 야생을 의미하며 데비와 이든은 문명으로 문 안에서 대화를 한다. 이와 같이 야생과 문명사회를 구분시킴으로써 미국의 이중성을 고발하는 것이다.
<택시 드라이버>에서는 뉴욕의 낮과 밤의 상반된 거리를 이중적인 공간으로 볼 수 있는데, 조국을 위해 싸우고 돌아왔으나 모두가 부담스러워하며 그가 설 자리가 없기 때문에 야간 택시 기사로 근무를 하며 밤거리만을 다니는 이유이기도 하다. 이는 <수색자>의 도입부에서 남북전쟁이 끝나고 군복을 입고 찾아왔으나 아무도 환영하지 않는 고향으로 홀로 찾아온 이든과 대응되기도 한다.
트레비스의 군복 또한 의미가 있는데, (사진 3)의 일자리를 구하러 간 트레비스는 군복을 입고 있고, 후보를 암살하러 가는 장면(사진 4)에서도 군복을 입고 모히칸 스타일의 머리를 하고 있다. <수색자>의 직접적인 변형이기도 하며 트레비스가 본인이 베트남전 군인이었음을, 인디언의 존재를 상기시킴으로 미국이 가지고 있던 폭력성을 그래도 드러내는 장치로 작용한다. 군복은 그가 그가 베트남전에서의 후유증을 더 잘 보여주고 있으며 (사진 3)은 뉴아메리카시네마의 특징 중 하나인 이중프레임으로 구성된 프레임이기도 하다. 체력 단련을 하는 장면에서 보이는 그의 등 뒤의 큰 상처(사진 5)는 전쟁에서 얻은 것으로 짐작되고, 불면증에 시달리며 포르노 극장(사진 6)에서의 첫 영화는 교육받지 못하고 홀로 살며 아무런 배경 없는 사람이 할 수 있는 여가 수단으로, 일상에 복귀가 어려움을 극대화시켜주고 있다. (사진 7)은 첫 데이트에 베시를 포르노 극장에 데려간 뒤 베시에게 성토당하는 장면.
<택시 드라이버>가 야생에서 들어온 남자를 배척해 버리는 도시에 대한 이야기라면 뉴욕이라는 도시는 미국사회 특수성을 대변하는 공간이자 서구 현대문명의 일면을 상징하는 공간이고 문화이며 경제의 중심이지만 영화에 등장하는 뉴욕의 거리는 그런 뉴욕의 거리와는 다르다. 이러한 뉴욕의 거리의 상반됨을 강조하는 요소 중 하나가 베시가 근무하는 ‘공화당’ 캠프이다. (사진 8) 우연히 대선 후보와 비서를 태우는데, ‘공화당’은 트레비스에게 자신이 좋아하는 천사가 일하는 곳이고 정치 행보상 미국의 미래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그들의 이야기를 들으니 실상은 지저분한 썩어빠진 이야기들이었다. 이러한 사건과 총은 트레비스에게 동기부여가 된 것이다. 트레비스는 낮-꿈꿔왔던 천사 같은 외모의 대선 캠프에서 일하는 여자-과 밤-13 살의 창녀, 포주화된 뉴욕의 뒷골목-을 떠돌며 미국의 이중성을 본 것이다.
(사진 9) 자신의 방에서 대통령 후보 저격을 위해 거울을 보며 연습을 하는 트레비스는 일종의 의식을 치르며 극단적인 나르시시즘에 빠져들고 정작 암살에는 실패하고 도망치는 모습과 대조를 이루며 영화의 주제를 분명하게 드러내는 역할을 한다.
뉴욕의 택시 기사 트레비스는 뉴욕의 밤거리를 돌아다니며 관찰하는 관찰자의 시선으로 충분하게 보여진다. 뉴욕의 밤거리를 보며 트레비스가 내뱉는 독백(사진 10)은 이 영화가 가지고 있는 전체적인 구조를 가장 잘 나타내주는 대사라고도 볼 수 있다. 너무나 어둡고 쓰레기 같은 뉴욕을 보면서 ‘이 사람이 과연 무엇을 위해 싸웠나’에 대한 의심, 생각을 하게 만들고 소시민이 스스로 성찰하게 하는 얘기로 이 영화를 완성시켜 준다. 영화의 후반부에서 그는 ‘인간쓰레기’인 포주들을 죽이고 자신의 손으로 총 모양을 만들어 자신의 머리를 겨누며(사진 11) 미소를 짓는다. 그의 미소에선 천사 같은 순진성과 악마 같은 잔인성이 공존하며, 여기까지 트레비스가 보여주었던 망상과 행동은 위기에 빠진 전통적인 미국적 가치를 회복하고자 하는 욕망의 징후이자 절망적인 시도라고 볼 수도 있다.
바깥세상과 단절된 채 억눌리고 비틀린 한 외로운 인간의 내면적 광기를 탐색하면서, 베트남 전쟁 이후 영웅이 존재할 수 없는 세계에서 집단적인 정신분열증에 시달리는 미국 사회의 병폐를 담고 있는 두 영화를 통해 단순히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바만 느껴져서 처음에는 느끼지 못하였던 것, 전쟁 이후 국가를 위해 자신은 내어 바친 개인조차 받아들이지 못하는 사회로 돌아온 인물들의 외로움이 이제야 조금은 감응되는 듯하다.
<택시 드라이버>는 고독감과 좌절감으로 망상에 빠져든 한 퇴역한 군인의 모습을 통해 70년 미국 사회가 앓고 있던 베트남 전쟁 후유증을 탁월하게 그려낸 사회 심리 드라마이지만 기존의 영웅물에만 적응하고 있었던 나에게 기존 영웅물들과는 다른, 비도덕적이고 문제 있는 인물을 그대로 표현한 인물설정으로 적잖이 당황하게 했다. 영웅주의를 비판하고 미국이 가지고 있는 폭력성을 그대로 드러내는 필름 누아르의 표본의 영화임을 볼 수 있었다. 어쩌면 <택시 드라이버>가 서부극에서 필름 누아르가 되기 전에 이미 <수색자>는 서부극의 형태를 한 필름 누아르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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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퇴폐적이고 음울한 세계관 영화 8선
안녕하세요 씨네랩입니다! 인간의 심리를 자극하는 복잡 미묘한 낯선 컨셉, 퇴폐적이면서 음울한 새로운 세계관을 구축한 영화 8편을 소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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롤링스톤지 선정 2017년 최고의 영화 TOP 10
<맨체스터 바이 더 씨> 담담하면서도 폭발적인 감정 열연을 선보여 제89회 미국 아카데미 남우주연상, 제74회 골든 글로브 남우주연상 및 유수 영화제 남우주연상을 휩쓴 케이시 애플렉이 고스트 역할을, <그녀><캐롤> 등을 통해 국내에서도 큰 사랑을 받고 있는 루니 마라는 사랑을 잊기 위해 떠나는 여자 M으로 변신했습니다. '유령'관점에서 진행되는 영화로 독특한 소재인데 데이빗 로워리 감독은 “수년간 전 세계에 있는 누가 보더라도 한 눈에 알아차릴 수 있는 전통적인 고스트 이야기를 해보고 싶었다”라고 덧붙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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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괴한 상상력의 총아’라는 평가를 받아 온 길예르모 델 토로 감독의 <판의 미로-오필리아와 세 개의 열쇠>는 칸 영화제에서 상영 직후, 영화를 관람한 전세계 기자들이 일제히 수상 예상작으로 손꼽았던 화제작입니다. 상영 후 22분동안 기립박수를 받고 특수효과와 기발한 판타지에 대한 부분이 많은 호평을 받으며 웰메이드 판타지에 대한 인상적인 모습을 남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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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찬욱 감독은 10년 전부터 <박쥐>를 기획하며 설계해 왔다고 합니다. <공동경비구역 JSA> 촬영 당시부터 송강호에게 출연제의를 했고, 이후 완성된 박쥐는 '신부’, ‘뱀파이어’, ‘살인’의 문제를 들어 윤리와 구원, 폭력의 문제를 그리며 메시지와 스타일, 모든 면에서 박찬욱 감독의 영화세계를 집약해 놓은 영화로 평가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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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스폰트리에 감독 본인이 수위높기로 유명한 <안티크라이스트>보다 보기 힘든 영화라고 언급했고, 감독은 행성 충돌로 세상이 끝나는 게 아니라 우울증이 세상을 멸망시킬 수 있다고 생각하며 그런 생각을 많이 반영한 영화라고 설명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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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여 년의 시간이 걸려 완성된 극비 프로젝트 <스플라이스>
‘퍼즐 스릴러’라고 불리는 똑똑한 SF <큐브>를 통해 장르적인 개척을 이룬 빈센조 나탈리 감독은 <스플라이스>의 시나리오 구상과 사전 조사, 프로덕션 디자인과 스토리 보드까지 직접 준비하며 공을 들였다고합니다.
<스플라이스>는 프랑켄슈타인과 프로메테우스 신화의 현대적인 변주이며 두 개의 이야기 속에 담긴 과학적인 상상과 철학적인 사상을 SF 장르 속에 담아낸 영화라고 평가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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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 출신의 감독 타셈 싱은 하버드 대학을 중퇴하고 뮤직비디오 및 유명 기업들의 광고를 제작하며 영상 감각을 쌓았고 영화계까지 도전하며 첫 결과물로 완성한 것이 바로 <더 셀>입니다. 광고 감독이었던 만큼 뛰어난 영상미, 미장센으로 주목받으며 좋은 평을 받은 작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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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71회 칸영화제 주목할만한시선 부문 수상한 <경계선>은 해외의 권위있는 영화제들로부터 극찬을 받은 작품입니다. 인간 세계에서 공존하는 트롤들의이정체성을 찾아나가는 기묘하면서 매혹적인 스토리로 비현실적인 장르를 관통해 남녀의 성, 인종, 사회적 신분 등 모든 경계를 뛰어넘는 오드 판타지 로맨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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칸 영화제 심사위원상 수상, 제 89회 아카데미 시상식 각본상 후보작이었던 2015년 화제작 <더 랍스터>는 요르고스 란티모스 감독의 특유의 낯설고 기괴한 설정의 영화입니다.
감독은 스탠리 큐브릭과 루이스 부뉴엘 감독의 영향을 받아 비현실적이고 우화적인 설정과 서사, 정교하고 인공적인 미장센, 무미건조하면서도 신경을 긁는 영화의 특징이 있고 파격적이고 금기의 선을 넘는 소재를 자주 쓰면서 호불호가 많이 갈린다는 평가를 받기도 합니다.
"삶은 매우 매우 복잡하다 따라서 난해한 영화 역시 허락되어야 한다"라고 말한 데이빗 린치 감독의 말처럼 영화의 세계는 넓고 다양합니다. 오늘 추천한 영화들은 호불호가 갈려 쉽게 다가서기 어렵지만 보고나면 잊혀지지 않는 강렬한 영화들인데요. 클래식한 영화들 대신 가끔은 색다른 컨셉의 영화를 경험해보는게 어떨까요? 그 영화 역시 우리 삶의 일부분을 가져왔을테니까요
주말 비소식이 있습니다 안전하고 즐거운 주말되시고 다음주 영화추천으로 또 만나요
영화 큐레이터 AMY였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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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양이를 부탁해 / 2001
나는 연말이 되면, 자꾸만 사랑하는 이들을 만나고 싶어진다. 한 해의 마무리에는 꼭 당신들의 올해 끝얼굴을 함께 마주봐야 편안해지고, 포근한 느낌이 든다. 가족이 아닌 오랜 친구들에게 무언가 복고하는 감정을 느끼는 걸 보면, 우리가 놓고 온 중요한 것이 자꾸만 더 있을 거란 생각이 든다. 나는 그걸 당신들의 얼굴을 통해 알고 싶어하지만, 몇 해를 보고 또 보아도 공허한 마음은 계속 커져간다. 우리가 잃어버린 그것이 무언지는 아무도 알려 하지도, 알 수도 없다. 정말 우리가 잃어버린 것인지, 나 혼자 길을 헤매는 건지도 영문 모를 일이다.
왜 난 이제 네 얼굴을 깜박깜박 들여다보면 더 슬퍼지는 걸까? 지금의 나는 몹시 충분한 사람인데도 당신들과 마주하고 나면 반토막이 나서 집으로 돌아오는 걸까? 즐겁고 공허한 양가적인 마음이 스무살 때부턴 계속 이어져왔다. 더 알고 싶으면서, 아무것도 모르던 때가 그리워 눈물이 나올 것만 같아 꼭 손을 쥐고만 서 있었던.
“스물셋.. 아니 늦어도 스물 넷에는 꼭 이 영화를 봐야 해. 더 늦으면, 이 영화는 볼 수 없거든. 아무리 봐도 절대로 이해할 수 없을걸?”
먼저 이 영화를 본 H언니가 내게 당부하며 말해주었다. 참. 세상에 그런 영화가 어디있어? 라는 생각과 호기심으로 가볍게 보았다. 언니의 말은 정말이었다. 나는 정말로 서른에 이 영화를 보았다면 후회했을거야, 언니. 해주와 지영의 마음을 이해하고 싶어안간힘을 썼을거야.
<고양이를 부탁해>. 이 영화는 고등학교 때 절친이었던 다섯 소녀들의 이야기를 다룬다. 어느덧 졸업을 하고 스물이 되어버린그녀들. 각자의 삶이 지고 있는 각기 다른 무게를 감당해내느라 바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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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주는 증권사의 계약직 직원이다. 이른 나이에 일찍이 좋은 직장에 취업한 해주는 자신의 직장을 자랑스러워 하며, 더욱 인정받기 위해 자신을 낮추며 열심히 일한다. 상사의 무시, 성희롱 등을 견디면서도
해주는 꿋꿋이 해낸다.
해주에게 지금 가장 중요한 것은 자기 자신이다. 자신의 직장, 자신의 외모, 또 자신의 가정사 등. 어른이 된 해주는 더이상 친구들에게 예전만큼의 관심을 쏟지 않는다. 대신 사회가 요구하는 바에 맞춰 열심히 나아가기에 급급하다. 우리의 사회초년생들의모습과 다를 바 없는 해주. 너무도 냉정하고 현실적으로 보이지만, 어쩌면 해주의 방식만이 이 사회에선 어린 우리가 살아남는방법일지도 모른다.
해주와 가장 친했던 지영. 지영은 집이 가난하다. 부모는 일찍이 여의고, 할머니 할아버지와 살고 있다. 여러 종이를 겹쳐 대충지은 듯한 집에서 사는 지영은 직장에서 잘린 후, 매일을 생활고에 시달리며 살아간다. 지영에게는 삶이 지옥이다. 자신의 가난이 끔찍히 싫고, 벗어나려 안간힘을 써보지만 세상은 자꾸만 그녀를 단념시킨다.
그럼에도 꿈을 갖고 있는 그녀. 지영은 텍스타일 아트에 관심이 많다. 어려운 환경에서도 자신의 꿈을 놓지 않는 지영. 매일 같이한 칸씩 색을 칠해나간다.
또 다른 친구인 태희. 태희의 집은 큰 찜질방을 운영한다. 부유한 집에서 아무런 걱정 없이 살아가는 태희는 자신보다 못한 것들에 관심을 가지는 사람이다. 매일 같이 장애인 봉사활동을 나가고, 그 봉사활동에서 만난 지체장애인의 시를 대신 써주며 사랑하기도 한다. 지나치는 작은 것에도 동정을 갖는 태희. 그런 그녀는 자신에게 올곧은 길만 요구하는 집안이 힘들다. 자꾸만 멀리 떠나고 싶어하는 태희.
그런 태희는 다섯 친구의 관계가 소중하다. 고등학생 때 친구였던 이 관계를 이어나가기 위해 유일하게 노력하는 인물이다. 자신만 이 관계에 항상 노력하고, 마음을 쏟는 게 서운하지만 결국 또 모든 걸 도맡아하고 있는 그녀. 그녀를 보면 많은 생각이 들어슬퍼진다.
해주: 미안하다. 이거 오늘까지 꼭 해야한다는데. 낸들 어쩌냐? 야. 내 생일이라서 안된다고 그럴 순 없잖아.
태희: 왜 맨날 내가 전해야 하는건데? 일일히 연락해서 약속 잡는게 얼마나 신경 쓰이는 일인지 알아? 결국 나만 연락하잖아 매일.
해주의 생일로 오랜만에 모이게 된 다섯 친구들. 하나씩 해주에게 선물을 건넨다. 비류,온조는 뽕브라를. 태희는 립스틱. 세 친구들은 스무살에 걸맞는 선물을 준다. 지영은 길에서 주운 고양이를 해주에게 준다. 자신이 열심히 손수 그린 텍스타일 포장지로감싼 상자에 담아.
선물이야. 이름은 티티야. 예쁘게 키워.
이 장면이 결국 친구들의 관계를 보여주는 단편적인 장면이란 생각이 든다. 해주는 지영의 선물을 받고는 당장 포장지를 찢어버린다. 지영의 정성과 꿈이 담긴 텍스타일 그림은 해주에겐 그저 종이쪼가리에 불과한 짓. 돈도 안 되는 쓸모 없는 낙서에 불과하다. 그 찢어진 그림을 들어 지영에게 말을 거는 태희.
태희: 이거 네가 그린 그림 맞지? 야. 멋있는데? 근데 이거 하나하나 다 그리려면 조금 지루하겠다.
태희는 항상 버려지고 찢긴 것을 주워 다시 봐준다. 정확히는 봐주려고 노력하지만, 하지만 그 공감은 전적으로 상대를 위로해주지 못한다. 그저 씁쓸히 웃어보이는 지영. 친구들의 관계는 조금씩 금이 가기 시작한다.
다섯 중에서도 해주와 지영은 더욱 친했다. 같은 무리에서도 더 마음이 가는 사람이 있는 듯, 두 사람은 그런 특별한 사이였다. 그렇지만 성인이 된 후, 현실이라는 벽에 부딪히며 너무도 달라져버린 둘. 지영은 고등학생 때와 다를 것 없이 해주에게 진심이지만, 해주는 그 마음을 온전히 받아들이기엔 벌써 어른이 된걸까. 자꾸만 지영의 마음에 흠집을 내는 해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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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주: 야 서지영. 진짜 놀랬다? 난 네가 나한테 고양이 선물할 줄은 상상도 못했는데.
지영: 예쁘게 키워.
해주: 근데 너 요새 뭐해?
지영: 뭐 좀 생각하느라고. 그냥 있어.
해주: 생각? 무슨 생각?
지영: 유학 가면 어떨까 생각 중이야. 요즘 텍스타일 공부하는 사람들 외국으로 다들 나가잖아.
해주: 유학은 뭐 아무나 가니? 돈이 있어야 가지. 그러지말고, 이 언니가 알바 자리 소개해줄테니까 용돈이나 벌어서 학원이나다녀보던지 해. 어때?
(지영은 밖으로 나가버린다.)
해주: 야. 서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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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주의 회사에 찾아온 지영. 자신이 준 고양이를 버려버린 해주이지만, 마지막으로 그녀를 믿어보기로 한다. 하지만 흘리듯 한말을 기억할리 없는 해주. 지영은 몇시간을 지하철 역에 앉아 기다린다. 너무도 달라진 둘의 관계.
매일 같은 장소에서 같이 똑같은 경험을 하며 같이 울고 웃던 고등학교 시절과 달리, 이제는 서로가 무엇을 하고 사는지도 잘 모르게 된 둘. 각자가 처한 환경은 이제 너무도 다르게 흘러가고 있다. 그 속에서 열심히 살아가다 보면, 어쩔 수 없이 멀어져버리는 옛 친구들. 서로를 향한 마음의 크기는 다르고, 서운함은 쌓여만 가고 편한 존재라는 이유로 서로에게 상처를 아무렇지 않게주게 된다.
서로가 없으면 안 될 것만 같았던 우리가, 사회의 발을 맞추기 위해 그렇게 쉽게 멀어질 수 있다는 사실이 참 슬프고 연약하게 느껴졌다. 그녀들의 등 뒤로 보이는 “좋은 여행, 영원한 추억”이라는 문구가 자꾸만 눈에 띄었다. 우리에게 영화가 하는 말 같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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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오래된 집이 가라앉기 시작한 지영. 지영이 처한 현실처럼 그녀를 압박해오기 시작한다. 점점 좁아지고 설 곳이 없어지는 지영. 여기저기 일을 구해보다 태희에게 결국 돈을 빌리게 된다.
그런 지영의 부탁에 자신의 전단지 알바를 반 나눠주곤
돈까지 빌려주는 태희.
태희: 저 사람들은 다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 걸까?
아 맞다. 까먹기 전에. 여기 돈.
지영: 고마워. 언제까지 주면 돼?
태희: 그냥. 돈 생기면 갚아.
근데 어디에 쓰려 그래?
지영: 그냥 좀 필요해서. 그런 얼굴로 쳐다보지 좀 마.
태희: 네가 전화해서.. 의외였다?
지영: 그래? 내가 그렇게 전화를 안했나?
태희: 우리 모일 때는 맨날 내가 먼저 연락하지. 네가 먼저 연락한 적 한 번도 없었잖아.
졸업하니까 애들이랑 멀어지는거. 그게 젤로 섭섭하다?
학교 다닐때가 정말 좋았었는데. 매일 만나다가 떨어져 지내니까 이젠 만나도 별로 할 얘기도 없고.
개인적으로 태희의 이 대사가 마음에 와닿았다. 매일 보던 사이가, 단지 물리적으로 멀어졌다는 이유만으로 우리는, 우리들은 이렇게 변해버리는 건가? 라는 서운함을 스무살 때 너무 큰 혼란으로 겪었다. 서로를 낱낱이 알던 때와는 달리, 몇 달만에 만나 간간히 그동안의 일상을 전하는 것은 꽤 우리의 졸업이란 것을 실감하게 되었다.
그래서 나는 자꾸만 반갑고 자꾸만 텅 비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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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참을 걷다 길에서 노숙자를 만난 지영과 태희.
지영: 아까 그 거지 말이야. 난 솔직히 그렇게 될까봐 좀 무섭다?
태희: 글쎄, 난 무섭단 생각은 안 해봤고. 가끔 그런 사람들 보면 궁금해서 따라가보고 싶기는 하다? 매일 뭐하면서 지내는지. 아무런 미련 없이 자유롭게 떠돌아지낼 수 있다는 건 좋은 거 아닐까?
지영: 그걸 자유라 그러니? 난 그렇게 생각 안해. 그렇게 다니다가 무슨 일이라도 당하면 어떡해.
태희는 사회의 소외된 사람들에게 연민을 보이는 선한 인물이다. 하지만, 그녀는 그들의 입장을 온전히 헤아리지 못한다. 그건그녀가 그런 입장이 되어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항상 부족함 없이 자란 태희는 거지, 외국인 노동자들, 고기잡이 배를 보며 “자유”를 떠올린다. 하지만 지영은 가난을 안다. 그것이 자유가 아닌 보이지 않는 감옥이라는 현실의 쓴 맛을 직접 겪어본 인물이다. 지영에게 그것들은 남의 이야기가 아닌 자신 그 자체이기에, 자꾸만 지영은 걱정한다. 당장 집이 가라앉으면 어떡하지? 저러다무슨 일을 당하면 어떡하지? 하고서 말이다.
결국 마음뿐인 연민을 가진 이들이 이 세상에 얼마나 많은지,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되었다. 다 가지고 남은 여유로 남들을 돌보는이들과, 진심으로 소외된 사람들의 입장을 아는 이의 차이가 무언지 생각해보게 되는 장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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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달이 지나고, 또 다시 만나기로 한 친구들. 이번에도 역시 태희의 제안으로 약속은 진행된다. 지영은 해주와의 저번 일로 아직마음이 상해 더이상 해주를 보고싶어하지 않는다. 그런 건 상관 없이, 그저 지기와 가까운 곳에서 효율적으로 만나고 싶어하는해주. 각 인물들의 성격이 다 드러난다.
지영: 꼭 그래야해?
태희: 한 달에 한번씩은 꼭 만나줘야 한다고. 그래야 우리 우정에 금이 안가지.
해주: 우정? 참.
비류, 온조: 아. 그럼 말이 또 달라지지.
해주: 근데 언제 인천까지 가니. 니네가 서울로 오면 안돼?
비류, 온조: 하여튼 얘는 꼭 지 생각만 한다니까.
지영: 난 해주한테 가는 거면 안 가.
태희: 우리 넷이 서울을 가는게 낫니. 너 하나가 인천을 오는 게 낫니?
해주: 너희 넷이 서울로 오는거 !
결국 인천에서 만난 다섯 친구들. 시작부터 지영은 해주와 말도 섞지 않으며 둘의 냉랭한 분위기가 이어진다.
태희: 야. 너 지영이한테 왜 그래 자꾸. 학교 다닐 땐 너네 둘이 제일 친한 사이였잖아.
해주: 예전에 친한 사이였다는 게 뭐가 그렇게 중요하니? 현재가 중요하지.
태희: 현재? 그래서, 현재 너한테 중요한 게 뭐야?
해주: 옷이다. 왜! 됐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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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전히 서로가 소중하지만, 서로가 가장 중요하진 않게 되어버린 우리들. 이건 결국 나만의 문제가 아닌 모든 스물을 겪은 청춘들이 알게 된 씁쓸함일 것이다. 다섯 친구들이 인천에서 쇼핑을 하며 각자 둘러보는 장면은 결국 아무리 친구여도, 자신의 인생은 혼자 살아가야 하는 것이란 뜻인 것처럼 느껴져 씁쓸한 웃음이 지어졌다.
해주와 지영이, 태희처럼 미래에 대한 고민과 꿈으로 가득차 멀리 떠나버리기도, 현실에 안주하기도 하며 부지런히 살아가는 동안에 종종 만나 서로를 바라봐주는 따듯함은 오래 이어지기를 바란다.
지금의 내 나이는 어쩌면 가장 혼란스럽고, 바쁘며 치열한 나이인지도 모른다. 졸업의 끝과, 새로운 시작의 아슬아슬한 경계선. 그 속에 걸쳐있는 우리들. 앞으로도 우리가 더 멀어진다는 건 변함 없는 사실이겠지만, 문득 생각나면 서슴없이 연락하고 언제나열여덟처럼 깔깔대며 철없는 소리만 하는 우리이길 바란다. 다들 나와의 여행을 영원한 추억처럼 계속한다면 좋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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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희가 지영에게 한 말이 자꾸만 남는다.
태희: 지영아. 나는 니가 도끼로 사람을 찍어 죽였다 그래도 니편이야. 다 이유가 있어서 그러는거라고 생각해. 나 너 믿어.
가끔은 해주였고, 또 가끔은 지영이었으며 종종 태희였던 모든 방황하는 스물에게 보내는 영화. [고양이를 부탁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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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썸머 필름을 타고 - 무언가를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보내는 러브레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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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여름엔 너희들의 청춘을 내가 좀 쓸게”
시대극 찐팬으로 영화 감독을 꿈꾸는 고교생 `맨발`.
영화 동아리에서 자신이 기획한 [무사의 청춘]이 탈락되자
직접 영화를 만들기 위해 절친 `킥보드`, `블루 하와이`와 드림팀을 결성한다.
우연히 극장에서 만난 미래에서 온 의문의 소년 `린타로`를 주인공으로 전격 캐스팅한 `맨발`은
꿈에 그리던 촬영을 시작하지만 예상치 못한 문제가 터지는데…
영화도, 꿈도, 사랑도 Ready Action!
올 여름 최고의 청춘+로맨스x시대극÷SF 걸작이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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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파이프라인 영화 후기 / 기름훔치는 도유꾼 / 송유관 천공기술 / 2% 부족한 범죄 액션
영화직관하는 남자 영직남의 “파이프라인” 후기입니다.
엔드크레딧과 함께 코믹 엔지(?) 영상이 있는데, 왜 넣었을까 궁금하네요 ㅠㅠ#서인국, #범죄액션, #도유꾼, #기름절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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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크루엘라> 화려한 반격 영상
처음부터 난 알았어. 내가 특별하단 걸
그게 불편한 인간들도 있겠지만 모두의 비위를 맞출 수는 없잖아?
그러다 보니 결국, 학교를 계속 다닐 수가 없었지
우여곡절 런던에 오게 된 나, 에스텔라는 재스퍼와 호레이스를 운명처럼 만났고
나의 뛰어난 패션 감각을 이용해 완벽한 변장과 빠른 손놀림으로 런던 거리를 싹쓸이 했어
도둑질이 지겹게 느껴질 때쯤, 꿈에 그리던 리버티 백화점에 낙하산(?)으로 들어가게 됐어
거리를 떠돌았지만 패션을 향한 나의 열정만큼은 언제나 진심이었거든
근데 이게 뭐야, 옷에는 손도 못 대보고 하루 종일 바닥 청소라니
인내심에 한계를 느끼고 있을 때, 런던 패션계를 꽉 쥐고 있는 남작 부인이 나타났어
천재는 천재를 알아보는 법! 난 남작 부인의 브랜드 디자이너로 들어가게 되었지
꿈을 이룰 것 같았던 순간도 잠시, 세상에 남작 부인이 ‘그런 사람’이었을 줄이야…
그래서 난 내가 누군지 보여주기로 했어
잘가, 에스텔라
난 이제 크루엘라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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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아키라> 메인 예고편
네오 도쿄가 또 한번 폭발한다! 미래를 예언한 혁신적인 명작 애니메이션! #아키라 예고편 공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