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다지_주드2021-12-15 00:30:14
투쟁하는 노동자, <미싱타는 여자들>
<미싱타는 여자들> 시사회 리뷰
*씨네랩 크리에이터로서 시사회에 참석함
*영화 개봉은 내년 1월 예정
암살되거나 탄핵되거나 재판받은 역대 대통령들의 공적을 평가할 때 흔히 나오는 소리가 있다. 비록 독재를 좀 했지만, 사람을 좀 고문했지만, 대량학살을 좀 명령했지만 그래도 경제 발전에 이바지하지 않았느냐고, 그 덕에 우리가 이렇게 잘 살고 있는 거라는 소리이다. 민주주의와 사람의 목숨과 존엄을 희생해 경제를 도모하는 것 자체도 합리화될 수 없지만, 칭송받는 발전의 과정에서 죽어가고 고통받는 사람들이 있었다면 더욱 그렇다. 시몬 베유가 <중력과 은총>에서 <카라마조프의 형제> 중 이반의 말을 인용해 "이 거대한 건축물이 더없이 훌륭하다 한들, 이것을 얻기 위해 어린아이의 눈물 한 방울이라도 치러야 한다면 나는 거부하겠"다고 했듯이, 한 명의 노동자로서 경제 발전이라는 대의를 위해 노동자들이 착취당하는 것에 반대한다. <미싱타는 여자들>은 자본주의 논리 하에서 노동자들을 착취한 사회와 자본가와 정부에 맞서 싸우고 저항한 노동운동가들의 이야기이다.
<미싱타는 여자들>의 시사회는 동대문 메가박스에서 진행되었다. 노동자로서의 당연한 권리, 인간으로서의 당연한 권리인 휴식할 권리를 위해 투쟁한 주인공들이 청춘을 보낸 평화시장에서 멀지 않은 장소다. 본인 역시 어린 나이부터 노동해야 했던 전태일은 청계천의 공장들, 특히 자신이 일하던 평화시장의 어린 여성 노동자들이 열악한 환경에서 착취당하고 근로기준법이 있음에도 지켜지지 않는 상황에 분개했다. 그는 몇 년 간 노동 환경 개선을 위해 동료 노동자들을 모으고 근로기준법을 알리려 노력했다. 1970년 11월에 시위를 계획했으나, 경찰의 방해로 시위가 무산될 위기에 놓이자 자신의 몸에 석유를 뿌리고 불을 붙여 몸을 불살라 근로기준법 준수와 노동환경 개선을 부르짖었다. 전태일의 분신 후에도 많은 노동자들이 근로기준법의 보호를 받지 못했고, 이 다큐멘터리는 전태일이 지핀 작은 불씨를 이어받은 투쟁자들이 겪은 싸움과 삶을 조명한다.
평화시장의 의류 공장에서 일한 '시다'들은 주로 13~17세의 어린 소녀들이었다. 이들은 환기도 되지 않고 섬유먼지가 날리는 좁고 어두운 공간에서 잘 먹지도, 쉬지도, 다리를 펴지도, 화장실을 편하게 가지도 못한 채 하루의 반이 넘는 시간을 일해야 했다. 당사자의 입을 통해 듣는, 평화시장의 어린 여성 노동자들이 작업장에 오게 된 계기도 다양하다 - 어떤 이는 가난한 집안 사정으로, 어떤 이는 여자가 고등교육을 받는 것이 옳지 않다고 여겨졌기 때문에 이 끔찍한 일터에 오게 되었다. 전태일 분신 사건을 계기로 평화시장에서 청계피복노동조합을 조직한 노동자들은 배워야 부당한 사회를 바꿀 수 있다고 믿었고, 어린 노동자들에게 배움의 기회를 제공하기 위한 노조교실이 열렸다. 인터뷰에서 한 분이 말하기로, 노조교실에서 1부터 조까지 숫자를 한자로 읽고 쓰는 법(당시 은행은 금액을 표기할 때도 한자를 사용했다고 한다)을 배우고 받은 과제가 은행에 가서 통장을 만들고 예금하는 일이었다고 한다. 교육은 실용적인 지식을 제공했을 뿐 아니라 성취감을 얻는 경험을 주어 세상을 바꾸려는 적극성이 발아하도록 도왔다.
그러나 독재 정부는 노동자가 배우는 것을 못마땅하게 여겼고, 경찰은 강압적으로 노동교실을 폐쇄했다. 1977년 9월 9일, 180여 명의 조합원들이 경찰의 저지선을 뚫고 노동교실 건물 안에 들어가 전태일의 어머니이자 노동운동가이고 민주화운동가인 '어머니' 이소선의 석방과 노조교실 반환을 요구했다. 경찰의 폭력 진압에 저항하던 노조원 중 한 명은 3층에서 뛰어내려 척추에 큰 부상을 입었고, 셋은 유리조각으로 배와 팔을 그어 심각하게 피를 흘렸으며, 많은 어린 여성 조합원들이 전태일처럼 분신하겠다고 경찰을 위협하며 사무실 집기에 불을 질렀다.
이날 53명의 조합원들이 경찰에 연행되었다. '주동자'로 추정되는 노조원들은 모욕적인 대우를 받으며 감옥에 갇혔다. 민주화 운동을 하다 잡혀온 대학생들과 달리 학력 없는 노동자들은 감옥 안에서도 간수들에게 차별적이고 더 가혹한 대우를 받았고 일주일이 넘는 기간 동안 씻거나 속옷조차 갈아입지 못하게 하는 학대가 그 일부였다. 반공 사상이 권력을 강화하고 독재를 정당화하기 위해 이용되던 시대, 독재 정권은 살기 위해 투쟁한 노동자들을 북한의 지령을 받은 '빨갱이'로 몰아세웠다. 누가 노동조합에 나가라고 시켰냐고 배후를 캐묻는 것은 물론, 노동운동가들과 함께 싸우고 그들을 지원한 이소선을 어머니라고 부르는 것이 북한에서 김일성을 아버지라고 부르는 것과 같은 맥락이 아니냐고 다그치고 이들이 시위한 날짜인 9월 9일이 김일성의 생일이니 공산주의에 매수되었다는 증거가 아니냐고 윽박질렀다.
<미싱타는 여자들>은 청계피복노조 노동교실사수투쟁 당시의 상황을 당사자들의 증언으로 생생하고 자세하게, 고통스럽고 슬프게 들려준다. 평범하게 바다로 놀러 가기도 하고, 장시간 노동에 지쳐 남산에 수면을 취하러 올라가기도 했던 일상도, 노동조합과 노조교실을 위해 맹렬하게 저항한 투쟁기도 모두 하나의 인생이다. 이들 중 어떤 이들은 함께 싸우던 동지와 가정을 이뤘고, 오랜 기간 가족에게 아픈 기억과 영광을 숨기고 살다 뒤늦게야 말하기도 했으며, 한때 같은 길을 걸었지만 더 이상 연락하지 않는 친구의 연락을 기다려오기도 했다. 담담한 텍스트로 전달할 수 없는 열정과 분노, 슬픔과 감동. 역사의 한 장이자 같은 시대를 살고 있는 미싱타는 여자들의 목소리가 지금을 살고 있는 관객인 나와 무관하지 않은 이 싸움이 끝나지 않았다고 말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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