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드레2021-12-20 00:20:05
외로운 마음과 파도의 울림, 인 디 아일
영화 <인 디 아일>
운디네와 트랜짓에서 좋은 연기를 보여줬던 프란츠 로고스키의 필모 중 인 디 아일을 보게 되었는데요.
과거와 현재 그 사이의 외로운 마음과 잔잔한 파도의 울림을 잘 표현한 인 디 아일 이라는 영화를 소개할게요.
자본주의에 허덕이는 지게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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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가 그의 현재를 덮쳐와 갱생하려는 현재를 막아서 과거에 묶인 크리스티안.
하지만 그의 새로운 자리에는 좋은 사람들이 있기에 그는 나쁜길로 되돌아가지 않는 행운을 맞이합니다.
주변환경이 정말 중요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장면이라고 생각합니다.
잠깐 등장한 그의 과거는 약간 아쉽지만 다르게 생각해보면 현재를 완전히 덮치지 않아 그의 현재와 주변이 더 잘보였다는 점이 더 크게 느껴졌습니다.
쓰레기통에 얼굴을 박고 폐기물을 먹어치우는 장면이 생생하게 기억에 남네요.
과거에 묶인 것은 크리스티안 뿐만이 아니였죠.
트럭에서 지게차로 옮겨가야만 했던 브루노, 여러사람들의 모습을 조명해 그들을 위로하는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반복되고 잔잔한 일상에 밀려오는 파도는 짧은 시간이지만 그의 긴 시간을 달랠 수 있을 정도였습니다.
언젠가부터 살기위해 노동을 하는 것이 아니라 노동을 위해 살아가는 것처럼 느껴졌는데,
팔릴때까지 헤엄치는 물고기와 다를바 없는 우리가 참 서글퍼졌습니다.
브루노의 빈자리는 언제든지 채워지고 시간은 지나간다는 것이 말이죠.
약간의 커피와 파도소리가 전체를 비춰주는 조명처럼 느껴졌던 영화 인디아일, 추천합니다.
Relative cont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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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성희, 침투의 미학
영화사가 시작되고 인간의 상상력을 기반으로 다양한 무대가 등장하기 시작했다. 과거 기술적 한계로 지구란 한정된 공간에서 진행되던 이야기는 VFX의 발달로 무한한 상상력과 함께 우주로 향해갔다. 기술적으로 우주에 대한 표현은 정교해졌지만 크리스토퍼 놀란급의 과학적 열정 없이는 소소한 오류들이 발견되곤 한다. 하지만 관객들은 영화 속에서 설명이 충분하다면 개의치 않고 영화를 즐겁게 관람한다. 사실 현실에 가까운 우주를 보기 위해 영화관을 찾는 사람은 굉장히 드물 것이다. 우리는 실제에 기반한 다큐보단 누군가에 의해 재창조된 우주에 보다 관심을 기울이기 때문이다. 언제나 새로운 자극을 원하는 인간에게 적절한 방향성을 지닌 영화의 파급력은 빅뱅급의 위력을 보여준다. 그리고 폭발적인 위력을 실감하는 순간 지금까지는 없었던 새로운 우주가 탄생하고 우리는 그곳을 탐험하기 시작한다.
조성희 감독이 보여주고 싶은 세계관이란 어떤 것일까? 그의 이야기에 등장하는 가족들은 일반적이진 않을지라도 가족의 형태를 유지하는 이들이다. 일반적이지 않은 삶에 더 이질적인 존재들의 간섭이 시작되면서 이야기는 서서히 꼬여가기 시작한다. 하지만 사사건건 발생하는 침투를 관대하게 용인하는 것이 조성희 감독이 추구하는 궁극의 미학이며, 이는 작품 속에서 훌륭하게 작동한다.
당연하게도 외부로부터의 침투는 일방적인 폭력이다. 누구에게나 불편한 상황이지만 조성희 감독은 특유의 접근법을 통해 부드럽지만 폭력보다 강력한 설득력을 지닌 제스처를 유감없이 보여준다. 그가 노자의 가르침을 배운 사람이라는 것을 증명할 방도는 없지만 때로는 부드러움이 강한 것을 이기기 마련이다. 그리고 그가 선택한 부드러움이란 천진난만한 아이의 태도에서 시작된다.
<남매의 집>을 시작으로 그가 연출한 모든 작품 속에 아이들이 나오는다는 것은 가족을 강조하는 감독의 고집과 등장만으로 마음의 무장이 해제되는 마법 같은 힘 때문일지도 모른다(<잠복근무>에선 범인을 검거하는 살 얼음 판 위에서 철부지 아이 같은 친구들이 등장한다). 하지만 그의 작품 속 아이들은 일반적인 것과 결이 다른 인물들에게 불편함을 선사하는 모습을 자주 보인다. 그리고 대게 그들의 천진함이 수많은 사건들을 야기하는 방아쇠가 되며, 이는 자칫 관객에게조차 불편한 존재가 될 우려가 있다. 그럼에도 조성희 감독은 아이들을 고집한다. 아이들의 천진함을 무기로 그의 세계에 등장하는 또 하나의 인물의 세계에 끊임없이 침투를 강행한다. 대게 침투를 받는 이들은 과거에 집착하는 모습을 보이며, 조성희 감독은 아이들을 통해 경각심 가득한 메시지를 보낸다.과거에 집착하는 사람에겐 미래란 없다. 단지 과거에 갇혀 스스로 정한 궁극적인 목표를 이룰 때까지 아등바등거릴 뿐이다. 이들은 자신의 목표를 위해 아이들의 미래를 송두리째 뽑으려는 시도조차 불사한다. 쉴 틈 없이 살아가던 이들에게 아이들은 천진난만한 침투를 통해 미래로 향하는 길을 열어주게 된다. 자신의 요구를 적극적으로 어필하는 아이들은 순식간에 타인의 삶 속으로 들어가고 그 순간부터 모두에게 질문을 던지기 시작한다. 처음엔 귀찮아 대답조차 않던 이들이 어느 순간 자신을 곱씹기 시작하면서 인물들은 변화하기 시작한다. 태호는 돈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했다. 수양딸 순이의 죽음이 부족한 돈에 의한 것이라는 생각 때문이었다. 태호의 집착은 결국 돈이라는 결과를 이끌어내지만 세상을 이루는 등가교환의 법칙에 따라 꽃님이를 잃고 만다. 드디어 순이의 시신을 수습할 수 있다는 사실에 안도하는 태호는 죽은 딸의 노트를 발견하게 된다. 그리고 자신이 몰랐던 페이지를 발견하게 되면서 행복이란 돈이 아닌 함께한다는 사실만으로도 충분하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결국 과거에 갇혀있던 태호는 자신을 변화시키기 위해 꽃님이란 미래를 찾아 나서게 된다. 그리고 그의 변화는 아이들이란 미래를 지키는 것을 통해 완성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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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디 액트 (The ACT, 2019) - '끊어내지 못한 집착의 말로'
디 액트 (The ACT, 2019)
감독 : 로르 드 끌레르몽-토네르, 스티븐 피에트, 애덤 아킨, 크리스티나 최
출연 : 패트리샤 아퀘트, 조이 킹, 안나소피아 롭, 클로에 세비니, 케일럼 월디
‘끊어내지 못한 집착의 말로’
‘미국 전역을 충격에 빠트린 충격 실화’, ‘아픈 줄로만 알았던 한 소녀의 이중생활’, “날 위해 엄마를 죽여줄래?”
<디 액트>의 홍보영상과 기본 줄거리 설명을 본다면 이 이야기가 어떻게 흘러갈지, 어떤 결말이 기다리고 있을지 대략 짐작이 갈 것이다. ‘이중생활을 숨기고 있던 딸이 엄마를 죽이거나, 최소 죽이려고 시도 정도는 할 것이다.’라고. 몇 개의 멘트만 봐도 어느 정도 그려지는 결말을 가진 작품인데, 왜 8부나 되는 이 드라마를 몰입해서 보게 되는 걸까.
<키싱 부스>에 나왔던 그 여배우(조이 킹)가 삭발을 하고, 충격적인 연기를 선보였다고? <디 액트>가 공개되었다는 소식과 홍보 영상들을 보고 가장 먼저 든 생각이었다. 궁금하니 1화만 한번 봐보고, 별로다 싶으면 보지 말아야겠다- 하며 1화를 재생했는데.. 정신을 차려보니 마지막 화까지 모두 달리고 먹먹함과 자유로움, 그 뒤에 따라오는 불쾌감과 이물감을 느끼고 있는 내가 있었다.
휠체어에 앉아 동화 속 공주 같은 삶을 꿈꾸는 소녀 집시 로즈 블랜처드. 오랜 시간 병치레를 해온 딸 집시를 헌신적으로 돌보는 어머니 디디 블랜처드. 사춘기에 접어든 집시는 옆집 언니 레이시처럼 화장도 하고 남자친구도 사귀어 보고 싶지만, 디디는 집시를 걱정하며 아무것도 못 하게 한다. 엄마의 손길이 닿지 않는 세상을 향한 집시의 열망이 날로 커질 무렵, 집시는 자신이 아픈 환자가 아니고 그동안 엄마의 과잉보호 속에서 살아왔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어두운 비밀로 가득한 판도라의 상자를 열어젖힌 집시는 홀로서기를 계획하고, 머지않아 엄마에게서 완벽히 벗어날 극단적인 방법을 찾아낸다.
* 아래 내용부턴 스포가 있을 수 있습니다. *
“날 위해서 우리 엄마를 죽여 줄래?”
<디 액트>의 주인공은 집시 로즈라는 이름을 가진 소녀와 엄마 디디다. 남편 없이 아픈 딸을 홀로 키워온 디디는 사랑의 집짓기 프로젝트를 통해 집시와 함께 오래 살수 있는, 진짜 우리 집을 마련하는데 성공한다. 디디는 휠체어에 앉아있는 딸 집시를 부드러운 눈빛으로 바라보며 사랑한다고 말한다. 집시 또한 웃으며 디디를 바라본다.
동네 사람들의 온정이 담긴 분홍색 집, 귀여운 인형이 가득한 아이의 침실, 아프지만 밝은 웃음을 가진 아이와 그 아이를 사랑하는 엄마. 외적으론 아무 문제도 없는, 아니 오히려 많은 고난과 역경을 함께 해쳐온 ‘기특한 모녀’의 모습이라고 마을 사람들은 생각한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아이를 향한 사랑은 집착으로 변하고, 집시의 세상은 엄마 디디의 ‘너를 사랑해서 그래’라는 변명으로 가득해진다. 엄마를 제외하고 다른 사람들과 교류를 해본 적 없었던 집시는 새로 이사 온 마을에서 이웃들을 만나며 엄마에 의해 억압당하고 있던 본능의 존재를 느끼게 된다.
관념적으로 분홍색과 가장 대비된다고 생각하는 파란색의 집에 살고 있는 이웃, 레이시 모녀는 집시 모녀와 다르다. 레이시는 자유롭게 친구들을 만나고, 화장을 하고, 운전을 하고, 남자친구를 만난다. 핑크색으로 도배된 집시의 집과는 반대로 레이시 모녀의 집은 파란색이며 공주 드레스, 왕관을 제외하고 ‘어른스러운’장신구를 해본 적 없는 집시와 달리 레이시는 마음대로 옷을 입고 남자친구가 준 목걸이를 목에 차고 있다. 레이시의 손길과 알록달록한 색을 가진 화장품이 집시의 얼굴을 스쳐간 날 이후로 집시는 자연스레 또래 아이들의 생활을 궁금해하고, 또 바라게 된다.
“집시에겐 저밖에 없어요.”
디디는 집시를 완벽하게 통제하고 싶어 한다. 집시의 의견과는 상관없이 올해의 아동으로 신청하고, 있지도 않은 질환이 있다며 간식조차 먹지 못하게 하고, 사전 설명 없이 집시의 이빨을 뽑는다. ‘내 딸은 내 손안에 있어야 한다.’는 철칙이라도 있는 건지, 집시는 혼자 걸을 수도 씻을 수도 먹을 수도 없다. 휠체어에 앉아 엄마가 갈아 넣어주는 음식을 기다려야 한다.
디디는 작고 약했던 딸이 소녀를 지나 어엿한 성인이 될 무렵까지 가스라이팅을 계속한다. “너는 몸이 약하니까”, “너에겐 엄마밖에 없으니까.”, “너는 나를 사랑하니까.” “우리 사랑만 있으면 충분하지 않니?”. 그리고 그와 동시에 다른 사람들 앞에선 딸을 가장 사랑하는 엄마 코스프레를 한다.
그녀는 이제 성인이 된 딸에게 의료보험 카드가 잘못됐다는 거짓말까지 치며 ‘너는 아직 어른이 아닌 내 손안에 있는 아기.’라는 사실을 반복해서 주입한다. 매일 샤워를 위해 엄마에게 알몸을 보이고 병원을 잘 다녀온 보상으로 폭신한 인형을 선물받고, 엄마의 품 안에서 잠드는 집시는 언제까지나 디디의 아기다. 아니 아기여야만 한다. 디디는 그렇게 생각했을 것이다.
하지만 디디가 모든 걸 통제하고 집시를 속이려 해도 소녀(Girl)였던 집시가 여자(Women)가 되는 건 막을 수 없었다. 남자와 성에 대해 눈을 뜬 집시는 이제 자신을 소녀가 아닌 여자로 인식한다. 얌전하게 올려 입었던 드레스의 어깨춤을 살짝 내리고, 코스프레 행사장에서 왕자님을 만났다며 결혼을 생각한다. 너무 오래, 강하게 눌려있어서인지 집시의 욕망과 비밀은 빠르게 자라난다. 자유를 향한 갈망은 다중 인격 장애를 가진 닉을 만나면서 가속도가 붙고, 엄마를 죽이지 않는 이상 자유를 얻을 수 없다는 결론을 내린 집시는 닉과 함께 디디를 살해하게 된다.
1화부터 4화까지는 'The Act'라는 타이틀이 인물에게 가려져 일부 보이지 않는 형태를 하고 있지만, 집시가 본격적으로 비밀을 갖기 시작하고 성에 대한 욕망을 드러내는 5화부터는 'The Act'라는 타이틀이 인물의 앞으로 나와 온전한 형태로 나타난다. 이러한 타이틀의 변화는 주인공이 본격적으로 자신의 욕망을 향한 의지를 갖고 행동하기 시작한다는 의미가 아닐까.
집시와 닉이 디디를 살해한 것이 정당하다고 볼 순 없으나 디디가 집시를 평생 동안 신체적, 정신적으로 학대한 건 사실이다. 멀쩡히 걸을 수 있는 아이를 자신의 통제권 아래 놓기 위해 휠체어에 앉혔고 성욕과 식욕, 그리고 사회를 향해 보일 수 있는 당연한 호기심마저 ‘하면 안 되는것’이라고 말하며 집시의 모든 행동을 제한한다. 근데 여기서 좀 안타까운 건 디디 또한 자신과 비슷한 엄마 밑에서 자랐다는 것이다.
딸에 대한 집착과 가스라이팅은 당연하게도 대물림되었고, 딸이 엄마를 죽음으로 몰고 가는 결말까지 고스란히 대물림된다. 디디는 엠마(디디의 엄마)가 자신의 모성애를 무시하고 몸이 약한 딸 집시를 빼앗아 갈지도 모른다는 불안함에 지속적으로 시달린다. 어릴 적부터 엄마의 통제 아래 자란 그녀는 몸이 약한 집시를 두고 교도소에 수감된 후부터 더욱 심한 집착 증세를 보인다. 다시 집으로 돌아온 날 집시는 디디를 알아보지 못했고, 몸이 약해 특별히 관리해줘야 한다는 이야기를 들었던 집시는 트램펄린을 타다가 바닥으로 추락한다. 디디의 불안감은 점점 고조된다.
엄마가 우리 딸을 빼앗아갈지도 몰라, 몸이 약한 딸이 언제 다칠지 몰라. 이 두 가지 불안감은 디디를 정상적인 판단을 할 수 없게 만든다. 결국 디디는 집시를 휠체어에 앉히고 병든 엄마에게 내성이 생길 걸 알면서도 새로운 진통제를 쥐여준다. 그리고 디디의 집착과 폭력 아래 자라온 집시는 디디의 등에 꽂을 칼을 산다. 하지만 디디가 죽고도 집시는 디디에게서 벗어나지 못한다. 집시는 디디의 환영을 보고, 단 걸 먹으면 안 된다고 했던 디디의 말처럼 아이스크림 금지 표시가 그려진 티셔츠를 입는다. 그리고 닉은 성인임에도 불구하고 당연하게 엄마가 닉에게 먹을 것을 구해줘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이 모든 행동과 가치관은 디디가 남긴 흔적이었다.
엔딩 장면에서 ‘집시는 복역을 끝마치고 가정을 이룰 예정’이라고 적힌 글씨를 보자마자 나는 이 끔찍한 집착의 고리가 또 이어지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 연관도 없는 내가 그 결정에 대해 뭐라고 말할 자격은 없지만, 그 결정이 또 다른 불행을 만드는 건 아닐까? 집시가 피해자임은 틀림없지만 어쨌든 그 집착과 폭력의 고리를 끊을 수 있을 거란 보장은 없으니까 말이다.
“휠체어에 갇혀있었어요.” 집시는 이렇게 말한다. 평생을 갇혀있었고 엄마의 등에 칼을 꽂은 그 덕분에 세상에 나올 수 있었다고, 그가 나를 구했다고 말이다. 매일같이 사랑한다고 말했던 엄마의 등에 칼을 꽂아야만 하나의 인격체, 온전한 어른이 될 수 있었던 그녀의 운명이 너무도 기구하다.
<디 액트>의 결말을 보고 생각했다. “나는 무엇을 보고 싶어 여기까지 달려온 걸까?”. 사실 잘 모르겠다. 디디가 죽고 나면 속이 시원할 거라 기대하지도 않았으며 그렇다고 집시를 응원한 것도 아니다. 그저 이 폭력과 집착이 끝나기만을 바랐고, 조금 소름 끼치게도 디디가 죽음을 맞이했을 때 “드디어!”라고 마음속으로 소리치기도 했다. 하지만 흔히 말하는 사이다 ~ 같은 감정은 아니었다.
피해자가 가해자로 변하는 대물림의 순간, 그리고 사랑이라는 변명 아래 행해지는 지독한 폭력. 이 모든 걸 끊어낼 수 있는 방법은 또 다른 폭력뿐이었다는 사실이 아쉽고, 안타깝고, 찝찝하다.
* 본 콘텐츠는 블로거 Kyung film 님의 자료를 받아 씨네랩 팀이 업로드 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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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ICFF 데일리] 사춘기 소녀의 한여름날 로드 무비
Summary
부모님의 이혼 후 떨어져 살던 자매가 여름방학을 맞아 외할머니집에서 조우한다. 마치 단편소설을 읽는 듯 담백하고 따뜻한 이야기 (출처: 서울국제어린이영화제)
Cast
감독: 이바야시 유카
출연: 노기시 코노하, 이케다 노노카, 이와이도 세이코
'여름방학' 하면 어떤 기억이 떠오르시나요? 저는 개학 일주일 전 몰아 쓰던 일기, 왠지 모르게 붕 뜨는 마음, 특별한 일이 생길 것만 같은 기대감, 그리고 눈 깜짝할 새 찾아오던 개학 날 아침 같은 것이 생각납니다.
제10회 서울국제어린이영화제 영화 마루 섹션에 출품된 <환상의 반딧불>은 사춘기 소녀의 기본값 표정을 장착한 '카나타'라는 친구의 여름방학 이야기입니다. '카타나'에게 중2 여름방학은 어떤 기억으로 남았을까요? '카나타'와 같은 표정을 지었던 어린 날이 있다면, 말 못 할 고민을 참고 견딘 사춘기 시절이 있다면, 당신은 지금 당장 <환상의 반딧불>의 여름날로 떠날 준비가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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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나타'는 사춘기의 한가운데를 지나고 있는 15살 소녀입니다. 그의 사춘기는 질풍노도와는 사뭇 거리가 멉니다. 함께 당번을 맡은 친구가 자리를 비워도 군말 없이 맡은 구역을 다 청소하고, 엄마가 일하는 가라오케 바에서도 늦은 시간까지 묵묵히 일손을 돕는 그런 어린이죠. 선생님이 우스갯소리로 던진 "당번의 일이라면 곰도 퇴치하겠네!"라는 말에 "최선을 다해봐야겠죠."라고 담담하게 답하는 성격의 소유자입니다. 속내를 알 수 없는 무표정으로 맡은 일에만 성실히 집중하는 것이 바로 '카나타'의 일상입니다.
그렇게 엄마의 가게 일을 도우며 방학을 보내던 '카나타'는 자신의 앞을 지나가는 한 대의 자동차를 목격합니다. 차 안에는 화기애애한 모습의 아빠와 어떤 여성, 그리고 동생 '스미레'가 있었죠. 묵묵히 제 할 일을 해나가던 '카나타'는 그렇게 한동안 가만히 멈춰 서 있습니다.
불평불만이 하나도 없는 이 아이를 바라보고 있자면, 자기주장은 뒤로 한 채 어른들의 말만 곧이곧대로 따르는 수동적인 아이인가 싶기도 합니다. 하지만 영화는 '카나타'의 여름방학을 차분하게 담아내면서 이 아이가 체념의 태도를 통해 결핍과 허전함을 견뎌내고 있었다는 걸 드러냅니다.
부모의 이혼으로 인해 아빠 그리고 동생과 따로 살게 된 '카나타'는 반으로 갈라진 가족의 한 켠에서, 우주선처럼 둥둥 떠 있는 것 같은 전학 온 학교에서, 외로움과 쓸쓸함을 겪습니다. 나만 빼고 모두가 행복해 보이는 상황을 애써 모른 척하기 위해 '카나타'가 택한 방법이 남들의 부탁을 고스란히 들어주는 것이었죠. 어차피 자신이 바라는 일이 이뤄지지 않을 거라면, 적어도 다른 사람이 바라는 일은 이뤄주자는 마음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그렇게 '카나타'는 자신이 바라는 일들을 꾹 참습니다. 이를테면 아빠의 햄버그스테이크를 다시 먹어보는 것과 같은 아주 작고 소박한 바람들을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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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나타'의 결핍이 드러나는 영화의 전반부를 지나면, 할머니 댁을 찾은 언니 '카나타'와 동생 '스미레'의 이야기가 전개됩니다. 말 없는 언니 '카나타'와 달리 동생 '스미레'는 밝고 명랑하기 짝이 없습니다. 오랜만에 만난 언니가 그저 반갑기만 한 '스미레'의 얼굴에서는 웃음기가 가시지 않습니다. 그러다가 반딧불이를 보고 싶어 하던 '스미레'의 바람으로, 자매는 할머니 댁에서 짙은 여름 속으로의 여행에 나섭니다. 언니와 동생의 로드 무비가 시작되는 시점이죠.
반딧불이가 없는 시기라는 걸 알면서도 동생의 애원으로 길을 나선 '카나타'는 힘들어 주저앉은 '스미레'를 보고, 결국 쌓인 울분이 터져 버리고 맙니다. '카나타'의 눈에는 '스미레'가 참는 법 없이 제 하고 싶은 대로만 응석 부리는 것으로 보였죠. 그러나 '스미레' 역시 자신만의 방식으로 결핍의 상황을 이겨나가고 있었습니다. '카나타'는 체념으로, '스미레'는 명랑함으로, 그 방식이 조금 달랐을 뿐이죠.
'스미레'와의 여정을 통해 굳게 닫아둔 마음의 문이 슬며시 열린 언니 '카나타'는 반딧불이를 보고 싶어 하는 동생을 위해 손전등으로 '환상의 반딧불'을 만들어 줍니다. 그리고 자신에게 결핍되었던 웃음과 미소를 오래간만에 되찾습니다. 짧고 작은 여행을 마친 '카나타'는 더는 꾹 참지 않기로 합니다. 자매를 찾으러 온 부모님을 보고, 아빠에게 달려가 안기는 용기를 내보기도 하죠. 동생과 함께 놀던 장난을 혼자 다시 해보며 피식 웃음 짓기도 하고요.
영화는 국내에 <환상의 반딧불>이라는 이름으로 소개됐으나, 개인적으로는 영제인 <The Wonder of a Summer Day>가 작품 전체의 흐름과 더 잘 어울리는 듯합니다. 표정 하나 없이 늘 참기만 하던 한 아이의 외로운 나날들에 반짝임을 채워 준, '단 하루의 어느 멋진 여름날'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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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상의 반딧불>은 색감과 대비를 활용해 녹음이 우거진 여름의 느낌을 고스란히 전달하는 영화입니다. 차분하고 따뜻한 연출이 여름방학이라는 단어가 연상시키는 묘한 느슨함의 분위기를 갖고 있기도 합니다. 아마도 앞으로 '여름' 하면 떠오르는 또 하나의 작품이 되지 않을까 싶네요.
Schedule in SICFF
2023.09.15(금) 롯데시네마 은평 7관 11:00
2023.09.18(월) 롯데시네마 은평 7관 13:30
서울국제어린이영화제 기간: 09월 13일 - 09월 2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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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침묵’하는 아버지를 향한 집요한 물음
6★/10★
전 세계에서 많은 사랑을 받은 김창열 화백은 1971년부터 50여 년간 물방울만 그렸다. 한두 번이면 “구도”지만, 50년이면 “계획”이다. 도대체 무엇이 그 오랜 세월 동안 그로 하여금 단 하나의 대상만 그리게 만들었을까?
다큐멘터리 영화 〈물방울을 그리는 남자〉는 김창열 화백이 물방울이라는 대상에 도달한 과정을 담았다. 화자는 아들이다. 아들은 늘 과묵한 아버지의 내면이 궁금했다. 그래서 아버지와의 추억, 일화뿐 아니라 그의 그림과 사회 활동을 고루 재료 삼아 그 중심에 가 닿고자 한다.
영화에 담긴 김창열 화백은 늘 느리게 움직이며 대부분 침묵한 상태다. ‘추상적이면서도 내밀하다’는 이유로 노자의 《도덕경》을 늘 가까이하고 깨달음을 향한 집요함을 보인 달마대사의 다소 섬뜩한 일화를 자주 인용하기도 한다. 여기까지는 신비롭다. 그러나 동시에 영화는 김창열 화백이 관(官)이 기획한 행사, 즉 명예와 관련된 일을 거부하지 않고 적극적으로 참여했다는 점도 보인다. 한 인터뷰에서 브리지트 부이오 감독과 영화를 공동 연출한 아들 김오안 감독은 아버지가 이 영화를 보지 못한 게 다행이라고 말했다.* 그가 아버지를 안전한 공간에 모셔두고 성역화하는 대신, 설령 불경스럽더라도 아버지의 침묵을 해석하기 위해 다양한 가능성을 검토했다는 소리다.
그리하여 아들은 결국 아버지의 어린 시절에 도달한다. 북에서 태어나 학교를 다니던 김창열 화백은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공산주의를 비판하는 글을 쓴 후 고향을 떠나 본격적인 예술 활동을 시작했다. 이후 뉴욕으로 건너갔으나 팝아트와 소비문화가 만연한 거대 도시는 그에게 지독한 피곤함만 남겼다. 또 한 번의 이동. 그가 새로이 정착한 파리에서 김창열 화백은 마침내 물방울을 만났다.
김창열 화백은 고민하고 또 고민했다. 전쟁이 아니었다면 “꽃, 여자의 나체, 풍경”을 그렸을 시대에 태어났으나 바로 눈앞에서 누군가의 처참한 죽음을 목격한 그는 자신이 살아남은 이유가 ‘소명’ 때문은 아니었을까 추측한다. 살아남았다는 '우연'을 '필연'으로 전환하기 위해 물방울에 천착한 것이다. 즉 그에게 물방울은 치유와 화해, 초탈을 위한 수단이자 과정 그리고 목적이었다. 김창열 화백이 작업한 수많은 물방울 그림에는 그가 오랜 시간 물방울을 그리며 품은 생각과 감정이 담겨 있다. 하나하나의 물방울에 이름과 설명을 덧붙이는 아들의 내레이션은 아들이 끝내 아버지의 침묵을 해석했음을, 마침내 아버지를 이해했음을 의미한다.
아버지의 남다른 침묵을 이해하기 위해 5년여의 시간 동안 영화를 만든 김오안 감독에게서 누군가를 이해하고 품는 태도를 배운다. 한 사람은, 그가 품은 세계는 5년이라는 시간 동안 좇을 만큼 거대하기도, 물방울 하나에 응축될 만큼 단순하기도 하다. 영화 〈물방울을 그리는 남자〉에는 조화롭게 공존하는 두 모순이 담겼다.
*김창열 화백은 2021년에 세상을 떠났다.
영화 전문 웹진 〈씨네랩〉에 초청받은 시사회에 참석한 후 작성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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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월 첫째 주 극장 개봉 & 예정작
“놀지 말고 영화 하나 만들자. 내가 출연하겠다.”
전도연 배우가 오승욱 감독에게 한 이 말로부터 탄생한 <리볼버>
오승욱 감독은 전도연 배우가 아니었다면 이 작품은 나올 수 없었을 것이라고 말했으며, 전도연 배우의 출연이 확정된 후에야 제작사와 투자사가 결집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
<무뢰한> 이후 8년 만에 메가폰을 잡은 오승욱 감독의 신작 <리볼버>는 전도연 배우뿐만 아니라 지창욱, 임지연 배우가 주연을 맡아 밀도 높은 연기를 선보일 것으로 기대됩니다.
제작 후 유럽과 아시아 주요 지역 172개국에 선판매된 화제작 <리볼버>!
8월 1주차 개봉예정 PICK 4작품을 소개합니다.
리볼버
Revolver
개요: 범죄 | 대한민국 | 114분
감독: 오승욱
주연: 전도연, 지창욱, 임지연
개봉: 2024.08.07.
배급: 플러스엠 엔터테인먼트
줄거리
“약속한 돈을 받는데 무슨 각오가 필요해”
꿈에 그리던 새 아파트 입주를 기다리던 경찰 수영은 뜻하지 않은 비리에 엮이면서
모든 죄를 뒤집어쓰면 큰 보상을 해준다는 제안을 받고 이를 받아들인다.
2년 후 수영의 출소일, 교도소 앞 그녀를 찾아온 사람은 생전 처음 보는 윤선 뿐 수영은 일이 잘못되었다고
직감한다. 잃어버린 모든 것을 되찾기 위해 보상을 약속한 앤디를 찾아 나선 수영은 그 뒤에 있는 더 크고
위험한 세력을 마주하게 되는데…
물은 바다를 향해 흐른다
The Water Flows to the Sea
개요: 드라마 | 일본 | 123분
감독: 마에다 테츠
주연: 히로세 스즈, 오니시 리쿠
개봉: 2024.08.07.
배급: 트윈플러스파트너스㈜
줄거리
“여기 삼촌 혼자 사는 집이 아닌가요?” 요리 실력 최고인 까칠한 직장인, 여장 타로이스트, 해외 이곳저곳을 여행하는 교수, 가족 몰래 만화가가 된 삼촌까지. 개성 넘치는 메이트들이 살고 있는 셰어 하우스에 고등학생 ‘나오타츠’가 새로 입주한다. “사카키 씨와 함께 있고 싶어요” 엄마와 헤어진 후 10년 동안 마음의 문을 닫았던 ‘사카키’는 첫눈에 ‘나오타츠’가 누구인지 알아보고, ‘나오타츠’ 역시 ‘사카키’와 얽힌 복잡한 인연을 알게 되는데…
디베르티멘토
Divertimento
개요: 드라마 | 프랑스 | 114분
감독: 마리-카스티유 망시옹샤르
주연: 울라야 아마라, 리나 엘 아라비
개봉: 2024.08.07.
배급: 찬란
줄거리
1995년, 파리 교외의 이민자 가정 출신인 ‘자히아 지우아니’는 지휘자의 꿈을 안고 파리 한가운데 있는
명문 음악 고등학교로 전학을 간다.
이민자 출신의 어린 여자라는 이유로 높은 장벽을 마주하지만 지휘에 대한 열정으로
세계적인 마에스트로 ‘세르주 첼리비다케’의 눈에 든다.
음악으로 세상을 변화시키고 싶었던 자히아는 다양한 출신의 친구들을 모아 특별한 오케스트라를 결성한다. 일명 ‘디베르티멘토’. 오직 손끝으로 세상을 움직인 17살 마에스트라의 감동 실화가 지금 바로 시작된다!
극장총집편 봇치 더 록! 전편
BOCCHI THE ROCK! Movie Part 1
개요: 애니메이션 | 일본 | 90분
감독: 사이토 케이이치로
주연: -
개봉: 2024.08.07.
배급: CJ CGV
줄거리
“혼자라면 ROCK을 해라!” 대인 관계에 서투른 소녀 ‘고토 히토리’는 무대에서 빛나는 밴드 활동을 동경해 기타 연주를 시작하지만, 여전히 친구가 없다. 혼자서 연습하며 실력을 키우던 중 자신의 연주 영상을 인터넷 사이트에 올리고 어느 날 ‘결속밴드’에서 드럼을 담당하는 ‘이지치 니지카’가 먼저 ‘고토 히토리’에게 말을 거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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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삶과 죽음의 두려움에 관한 SF
우리는 누구나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가지고 살아간다. 인간뿐 아니라 모든 동물과 식물이 죽음이라는 것에 대한 두려움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다치거나 아픔을 겪어야 하는 순간을 피하려고 노력한다. 인간은 그런 사고나 질병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의학기술을 발전시켰다. 다친 사람을 치료하고 질병을 치료하거나 예방할 수 있는 약을 개발하여 수명을 길어지게 했다. 그래서 인간의 수명은 조금씩 길어져 길면 100세까지 살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졌다. 이렇게 의학이 발전할 수 있었던 데에는 죽음에 대한 공포와 두려움이 큰 역할을 했을 것이다.
그렇다면 오래 산다는 것은 정말 좋은 것일까. 삶을 오랜 시간이어가려는 욕망은 과거 진시황의 이야기로 대표된다. 진시황은 장수하기 위해 명약을 찾아내려 애썼다. 그는 죽음을 두려워했기 때문에 늙고 죽지 않는 무언가를 찾아 헤매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가 삶이 계속 이어졌을 때를 상상해 본 적이 있을까. 아마도 없을 것이다. 삶이 계속 지속되고 인생에서 겪는 희로애락을 반복적으로 경험하게 된다. 하나의 생을 살면서 매일 행복한 시간만 가질 수는 없다. 누군가가 죽으면 그 마음의 아픔을 감당해야 하고 몸이 아프면 그것을 치유하려고 노력해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죽지 않는 삶에도 고통과 두려움이 따른다.
영화 <서복>은 복제인간을 등장시켜 삶과 죽음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과거 정보국 요원이었던 기헌(공유)은 어떤 병으로 인해 시한부 삶을 살고 있다. 그때 정보국에서 복제인간 서복(박보검)을 안전한 장소로 이동시켜 주면 서복에 대한 실험으로 추출한 기술로 병을 치료해준다는 제안을 받는다. 과거 같이 일했던 파트너의 목숨을 잃게 했다는 죄책감에 빠져있는 기헌은 자신을 치료하기 위해 그 일을 받아들인다. 복제인간 서복은 실험실에서 태어나고 자라면서 계속 실험을 당하는데 실험실에서 그는 물건 취급을 받는다. 세상에 나가본 적 없는 그는 기헌과 함께 외부로 나가게 되고 서복을 죽이려는 어떤 세력의 공격을 받고 도망자 신세가 된다.
영화 속 기헌은 죽음을 두려워하는 인물이다. 그리고 죄책감이라는 고통 속에 살아가는 삶에 대한 두려움도 같이 느끼고 있다. 그래서 삶과 죽음의 경계선에서 어떤 방식으로 삶을 살아가야 할지 잘 모르고 방황하는 인물이기도 하다. 사실 그도 자신이 어떤 것을 더 두려워하는지 어떤 선택을 하며 삶을 살아가고 있는지 알지 못한다. 그가 서복을 만나고 그의 질문을 받기 시작하면서 자신이 왜 죽음을 두려워하는지, 삶에서 느끼는 고통이 죽음과 비교했을 때 얼마나 두려운지를 자기 자신에게 묻기 시작한다.
서복은 정상적인 환경에서 자라지 않았다. 엄마라고 부르는 임 박사(장영남)에 의해 만들어졌고 그에 의해 교육받고 자랐지만 그가 만들어진 목적은 인간의 수명을 늘리는 것이다. 그래서 수많은 실험과 주사의 고통을 견디며 삶을 이어가야 한다. 특별한 사고가 없다면 죽지 않는 서복도 기헌과 마찬가지로 살아가는 것이 고통이고 두려움의 시간이다. 기헌과 차이점이 있다면 서복은 삶이 계속 이어지는 것이 고통스러운 것이라는 것을 알고 그것을 두려워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는 영화 내내 기헌에게 묻는다. 죽음이 왜 두려운 것이고 피하고 싶은 것인지.
세상의 일반적인 생활에 대해서 전혀 모르는 서복이기 때문에 서복을 쫒는 사람들을 피해 도망 다니는 과정에서 기헌은 서복에게 자잘한 삶의 정보나 재미들을 알려준다. 이를 테면 컵라면 먹는 법 같은, 서복이 과거에 경험해 보지 못한 정보들을 전달하면서 서복의 호기심을 채워준다. 즉 기헌이 삶에 대한 감정이나 지식을 서복에게 알려주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영화가 조금씩 진행될수록 이 관계는 뒤집어진다. 서복이 던지는 삶과 죽음에 대한 질문들은 기헌에게 새로운 시각을 가지게 하고 고민에 빠지게 한다. 기헌이 단순한 삶의 정보를 전달한다면, 서복은 철학적인 화두를 전달한다.
영화에서 등장하는 인물 가운데, 정보국의 안부장(조우진)도 흥미롭게 느껴진다. 그는 복제인간 기술로 인간의 수명이 연장되는 순기능보다는 인류 자체가 줄어들거나 멸망할 수 있는 것에 두려움을 느낀다. 죽지 않고 특별한 능력이 있는 복제인간의 탄생이 결코 인간에게 좋을 것이 없다는 것이 그의 두려움을 극대화시켰다. 극 중에서 그는 기헌과 서복과 대척점에 서서 싸우는데 그의 두려움은 인류 말살에 대한 두려움이어서 안부장의 시선으로 영화를 보면 그는 사악한 악당의 기질을 가진 것만은 아니다.
즉, 기헌과 서복 그리고 안부장, 그리고 연구에 투자한 김 회장(김재건) 등 모든 인물을 움직이게 하는 두려움이다. 서복이 끝이 없는 삶에 대해 두려움을 가지고 있다면 나머지 인물들은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크게 느낀다. 그리고 기헌은 그 중간 어딘가에서 고민하는 인물이고 영화를 보는 관객들이 감정 이입할 수 있는 캐릭터다. 서복이 던지는 새로운 질문들을 듣고 기헌의 마음이 움직이는 것처럼 관객의 마음도 움직인다. 그런 이유에서 영화 말미 서복의 눈빛은 쉽게 잊히지 않는다.
SF 액션이라는 외피를 쓴 영화 <서복>은 복제인간을 등장시켜 서복과 기헌이 이끌어가는 드라마를 차분히 보여준다. 그래서 간간히 이어지는 액션이 크게 눈에 띄지 않고 서복에 의한 일방적인 타격만을 전달하기 때문에 서로 주고받는 전투 장면이 거의 등장하지 않는다. 그래서 액션을 통해 긴장감이 올라가기보다는 다소 김이 빠지는 느낌이 다소 강하게 든다. 반면에 영화가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굉장히 명확하다. 서복이 던지는 삶과 죽음에 대한 질문은 직접적으로 관객에게 전달됨으로써 각자가 가지고 있는 두려움이 어떤 쪽으로 기울어있는지를 저울질하게 만든다. 즉, 볼거리 측면에서는 아쉬움이 크지만 자신이 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명확히 전달하는 영화다.
긍정적으로 본다면 메시지가 명확해서 성공적이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꽤 큰 제작비가 들어갔고 관객들이 기대했던 볼거리가 하고자 하는 서사와 잘 섞이지 않으면서 액션과 서사가 따로 노는 것처럼 느껴진다. 이렇게 명확한 메시지를 이야기하고자 한다면 굳이 이렇게 큰 규모의 액션 장면이 들어갈 필요가 있었을까 의문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그래서 메시지와 연기를 제외하고는 아쉬움이 많이 느껴진다. 공유와 박보검의 연기가 모두 좋은데 특히 박보검은 천진난만하고 순진한 서복과 굉장히 높은 싱크로율을 보여준다.
이 영화는 <불신지옥>, <건축학개론>을 연출한 이용주 감독의 세 번째 연출작이다. 공포나 멜로 장르 안에서 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명확히 담아냈던 전작들은 공포와 멜로 장르에 적절하게 그런 메시지를 녹아내어 감정을 움직였다. 하지만 이번 <서복>은 SF 액션 장르에 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잘 어우러졌다고 보기는 어려울 것 같다. 어쩌면 영화 속 기헌이 조금 덜 두려운 쪽을 선택한 것처럼 감독 자신이 조금 덜 두려운 쪽을 선택해 집중한 것인지도 모른다.
*영화의 스틸컷은 [다음 영화]에서 가져왔으며, 저작권은 영화사에 있습니다.
[간단한 리뷰가 포함된 movielog를 제 유튜브 채널에서도 보실 수 있습니다. :)
주로 말 위주로 전달되기 때문에 라디오처럼 들어주셔도 좋을 것 같아요.]
유튜브 Rabbitgumi 채널 구독과 좋아요도 부탁드립니다!
<서복 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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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추석연휴 추천 극장영화 / 아쉬움은 있지만 볼만했던 베테랑 2 / 정해인 황정민 케미 / 기대를 조금만 낮추면 편하게 즐길 수 있을듯
영화직관하는남자 홍큐의 "베테랑 2" 후기입니다.
*3편을 예고하는 듯한 조금은 충격적인 쿠키영상이 엔드크레딧 후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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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로스트 시티> 메인 예고편
전설의 트레저를 차지하기 위해 재벌 페어팩스(다니엘 래드클리프)는 유일한 단서를 알고 있는 베스트셀러 작가 로레타(산드라 블록)를 납치하게 된다. 어쩔 수 없는 비지니스 관계로 사라진 그녀를 찾아야만 하는 책 커버모델 앨런(채닝 테이텀)은 의문의 파트너(브래드 피트)와 함께 위험한 섬에서 그녀를 구하고 무사히 탈출해야만 하는데…
적과 자연의 위험이 도사리는 일촉즉발 화산섬
대환장 케미의 그들이 생존하여 섬을 탈출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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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고장난 론> 30초 예고편
비봇을 갖는 것이 유일한 소원인 소심한 소년 '바니'에게도 드디어 '론'이라는 비봇이 생겼다. 그러나 첨단 디지털 기능과 소셜 미디어로 연결된 다른 비봇들과 달리, 네트워크 접속이 불가능한 고장난 '론' 자유분방하고 엉뚱한 '론'으로 인해 벌어지는 엉망진창, 스릴 넘치는 모험을 함께하며 '바니'는 진실한 우정이 무엇인지 점 점 깨닫게 되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