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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샤2022-09-16 13:21:05

영화 '아이리시맨' 리뷰

평등한 덧없음에 대하여 - 갱스터에게도 봄날은 간다

()은 칼보다 평등하다칼을 무기로 잘 사용하려면 완력이 좋아야 하지만총은 방아쇠를 당길 정도의 힘만 있다면 누구나 격발할 수 있다남녀노소 누구나 자신보다 훨씬 거대한 상대를 총으로 제압할 수 있다총이 개입하는 순간 육체적 우위는 드라이아이스처럼 순식간에 기화(氣化)된다총싸움에서는 근육의 무게보다 아무 거리낌 없이 방아쇠를 당길 수 있는 배짱의 무게가 중요하다누구나 총을 쏘려면 쏠 수 있겠지만무심하게 총을 갈기는 것은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방아쇠를 당기는 상상과 실행 사이에는 총신(銃身)의 수억 배에 달하는 까마득한 거리가 있다갱스터 무비의 주인공들은 누군가에게 발포하기 전에 먼저 자신의 죄책감과 양심에 발포한다그들의 사격은 늘 두 번씩 이루어진다그 태연한 반복 동작을 보며 관객은 길티 플레져(guilty pleasure)를 느끼게 된다.

 

 

영화 <아이리시맨(The Irishman, 2019)>을 연출한 마틴 스콜세지는 누구나 인정하는 갱스터 무비의 대가다. <아이리시맨> <디파티드(The Departed, 2006)>, <좋은 친구들(Goodfellas, 1990)>, <비열한 거리(Mean Streets, 1973)> 등 마틴 스콜세지 감독의 이름을 영화사에 아로새겼던 그의 대표적 갱스터 무비들과 같은 듯 다르다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이전 그의 페르소나였던 로버트 드니로(프랭크 시런 역)가 조 페시(러셀 버팔리노 역)와 함께 예전처럼 극의 중심을 든든하게 지켜준다여기에 <대부시리즈와 <스카페이스(Scarface, 1983)>  여러 갱스터 무비에서 활화산처럼 폭발하는 연기로 관객들을 겁박했던 알 파치노(지미 호파 역)까지 가세했다이처럼 갱스터 무비의 전설들이 힘을 합쳐 범죄우정배신의 이야기를 풀어낸다는 사실은 일견 <아이리시맨>이 갱스터 무비의 성공 방정식을 재현(再現)하는 영화일지 모르겠다고 생각하게 만든다.         

 

 

  

<아이리시맨>은 이러한 단편적인 해석을 배반하는 영화다. 1942년생, 한국 나이 79세로 소위 '인생의 황혼기'에 접어든 마틴 스콜세지 감독, 로버트 드니로(1943년 생), 알 파치노(1940년 생), 조 페시(1943년 생)는 동년배다. 누구도 거스를 수 없는 시간의 풍화작용은 그들의 얼굴에도 깊은 주름의 지류를 형성했다. '법 앞에 만인이 평등하다'는 금언(金言)을 비웃으면서 살인을 비롯한 온갖 범죄를 저지르며 밤의 세계에서 군림했던 갱스터도, 늙는다. 사실은 법이 아니라 '시간 앞에 만인이 평등'하고,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는 말처럼 늙은 갱스터를 위한 밤거리는 없다. 시간의 절대적인 힘에 저항해 보려는 걸까. <아이리시맨>은 최첨단 영화 기술 중 하나인 'de-aging'을 활용해 세 주연 배우의 얼굴 주름을 펴서, 마치 초혼(招魂)하듯, 그들의 더 젊었던 시절을 스크린에 소환한다. 그렇게 과거의 영광을 복기해 본들 밤거리를 휘젓던 갱스터의 두 다리는 속절없이 좌표를 휠체어로 옮길 수밖에 없다. 

(CG로 도배된 마블 영화는 '시네마'가 아니라고 비판한 마틴 스콜세지 감독이 'de-aging' 활용했다는 것은 영화가 당대 최첨단 기술과 친구일 수밖에 없음을 새삼 상기시켜준다.)  

 

 

 

<아이리시맨>은 갱스터에게도 봄날은 가기 마련이라고덤덤하게 말한다인생의 황혼을 지나 밤을 향해 걷고 있는 갱스터 무비의 전설들이밤의 고요 속에서누구나 '평등한 덧없음'을 경험할 수밖에 없다고 나직하게 읊조린다총성으로 밤의 고요를 깨는 장면들로 점철되기 일쑤인 갱스터 무비가 오히려 밤의 고요를 느끼게 해 준다는 아이러니야말로 <아이리시맨>의 핵심이 아닐까. <아이리시맨>의 엔딩 크레디트를 채우는 'The Five Satins' 'In the Still of the Night(밤의 고요 속에서)'를 들으며 나는 침묵한다.   

 

 

<끝>

 

 

작성자 . 스샤

출처 . https://brunch.co.kr/@starshines/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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